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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9일 19시 33분 등록

저자에 대해서

 

처음 그분을 알게 되었을 때가 1인 소호기업 세미나에서 였다.

나는 우연치 않게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강의는 강의로 들리지 않았다.

바로 내 옆에 오랜시간 동안 알고 지낸 인생선배의 쓴소리로 들려왔다.

나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고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다.

모든 주제가 바로 내 문제를 직시하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호기심에 변화경영연구소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

나는 흥분되었고 동화되었다. 적어도 이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축이 무엇일까?

나는 변화경영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변화경영을 제대로 설명해 놓은 것이 없었다.

그것은 그 분의 삶의 태도였고 의미였던 것이다.

나에게 변화라는 것은 자기계발서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자기계발서들의 한계를 느껴보곤 하였다. 대부분 형식과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그 형식과 방법은 나에게 적용되기 어려웠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세부적이었고 너무 좁게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빠른 시간을 요구했다. 나는 복권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몇백원으로 할 수 있는 행복한 유희정도였다. 기존의 자기계발서는 실리적이라서 꿈을 얘기하면서도 꿈을 제약해 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들의 허망함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나의 편협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인간의 변화라는 부분도 체계적일 수 있구나! 라는 첫번째 관점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인간의 내면속의 각자의 욕망을 발현시킬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 불쏘기개라는 것을 직접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프라인 수업 때 그 분을 보게 되었다.

15시간 정도의 수업시간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연구원들을 살피고 길을 찾게 해주려 힘쓰시는 그 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 믿음이라는 것은 이래야 하는거구나! 신뢰라는 의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졌다.

그렇다 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의 말이 싫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주체성 없는 말들이 다시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 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변화를 채찍질 하는 것이 더욱 싫었다. 이런 면에서 그 첫 오프수업은 깨달음을 주었다.

스스로 최전방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어주시는 그 분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나대로 그 분이 되고 싶었다. 행동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흥분되었다. 삶의 길이 조금씩 보여줬다. 샛길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방법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고 한걸음 한걸음 더 뚜렷하게 하루를 살면 결국 이루어 질것이고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오늘 이 하루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 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내 부족한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진실하게 대면하면서부터 나의 문제점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문제점주변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내가 바뀌지 않으면 원하는 멋진 삶을 살 수 없다는 명확한 진실을 보게 되었다.

지금 나의 스승님을 저자로서 대면해보면서 스승님의 목적이 개개인마다 꽃이나 불꽃이 되기를 원하신 거라면 스승님은 성공하고 계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속의 주인을 대면해 보았기에 더더욱 명확하다.

그 분은 소리 없는 발걸음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마흔세살에 놓인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마흔 세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게 해준다. 동시에 마흔을 앞 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마흔을 대비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듯 하다. 설득의 방법을 여러모로 살펴보면서 공감대라는 부분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나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왜 이 책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을까?

어쩌면 책의 일차 타겟이 아닌 나이지만, 앞으로 맞이할 내 마흔 세살의 삶에 대한 풍부한 한 인간의 이야기들이 숫자와는 상관없이 지금 나에게 바로 적용해야 할 문제라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왜일까?

이 책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공감대라는 요소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저자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마흔세살의 삶속에서 스스로의 변모의 모습을 가장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그것이 공감의 첫번째 요소였다. 과장도 없고 가식도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한번 해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져 오게 한다.

 

또한 공감의 요소는 세월을 넘나든다. 그것은 풍부한 포용성으로 가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미래의 일이기도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 관심사로 주목을 이끌어 낸다. 그런 친밀감의 요소로 다가오기에 친근하게 읽힌다.

 

다른 공감의 요소는 바로 저자 자신이 변화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변화의 주체의 목소리는 현실감을 더해준다.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한 사람의 변화이야기가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의욕을 자극 하는 것이고, 개인의 삶속에서 벌어진 사실적인 이야기들과 관점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들을 풍부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공감의 요소들은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들의 개인화를 만들어 낸다.

내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게 만들면서 개인들을 자극하게 하는 것이다.

1장의 지난 10년의 이야기들은 43살에 누구나 겪을 만한 불면증과 불안의 감정들을 통해 저자와 독자의 감정상태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2장의 마흔 살에서는 사회속에서 말하는 마흔의 관점들을 정리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기존의 관점들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켜보기도 하고 공유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장의 목적은 공유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새로운 마흔살의 관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다.

3장의 직장생활에서는 변화의 주체가 되었던 저자 자신의 케릭터를 통해 독자들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게 만든다. 독자들 스스로가 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내면을 저자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개인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느낌으로 독자들과 교감해본다. 거기서 형성되는 공감대는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변화에 성공했을까?

이제 고객들은 마음을 열고 저자를 주시할 수 있게 된다.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한 개인의 마흔 세살의 모습을 그려본다. 한 개인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개인의 모습으로 스스로의 위대함을 감춘다. 지극히 개인화시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내 마음을 잘 아는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4장 얼굴-페르소나 > 5장 가족 > 6장 자연 > 7장 건강 > 8장 길에서 > 9장 집, 공간으로의 구성은 가장 사소하면서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을 공유해 보고자 함이다. 그것은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의도 즉, 지금 이 현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함을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43살의 나이에 맞이할 수 있는 변화 그것은 정신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건강과 잊혀졌던 꿈들 일 것인데 그 현실적인 누구나의 꿈을 자극한다.

나도 저런 집을 갖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것은 먼 꿈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꿈이다.

저자는 그 욕망을 끄집어 내어 준다. 자꾸 외친다! 여러분도 나처럼 될 수 있다!라고

 

여기까지가 공감의 요소를 활용하기 위한 구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렬하게 커진 욕망과 저자를 믿게 만든 공감대의 요소는 10장 학습과 11장 일이라는 자칫 딱딱한 요소를 소화해 내기에 충분하게 적용되어 있다.

이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극을 받았고 욕망이 그려졌다.

 

그리고 저자는 이제 분명한 의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것도 저자 자신 스스로의 독백의 목소리로 간접적으로 아주 섬세하게 마음을 살피며 설득한다.

사실 저자 자신의 의도는 10장과 11장의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 드러나진다.

그런데 만약 학습과 일이라는 부분이 이 책의 앞머리에 위치해 있었다면 이 책이 이만큼 설득적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뛰어남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독자들의 저항감을 풀어주고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 열린마음속에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시키고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놀랍다.

 

평설로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담지 않고 변경연구원의 말을 실어 보내는 것 또한 책의 전체적인 톤에 어울린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삶과 동일시 되기에 평가를 위한 평가임을 말하고 싶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글에는 감정이 있어야 하고, 그 감정은 사람의 현 상태를 살펴서 조심스럽게 흥미롭게 유혹하며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할말은 나중에 서로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해주는 것이 좋음을 느껴본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개정판 서문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마흔 살 10년을 쓰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냈다. 이것이 역사의 위대한 점이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도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타도 구본형! 이것이 이 책 속에 숨어 있는 정신이다.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 하는 사람을 돕니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 번째 고객인 것이다.

 

이 책은 나에 대한 기록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인물들이나 쓰는 자서전 시장에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끼어든 것이다. 그들에게는 불쾌한 일이고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자서전은 나이 먹어 쓰는 회고록이고, 통상 죽기 전에 한 번 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10년에 한 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었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40대의 10년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 었다.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 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15]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17]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21]

 

모든 것이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22]

 

비대해진 육체와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내게 마흔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23]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24]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25]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 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30]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32]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 깊이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긴 인생이 빛깔이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36]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각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다.[37]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이것이 어쩌면 내 불면이 원이었는지도 모른다.[37]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남아 있어도 그들은 이미 사라지는 사람들이 되었다.[38]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43]

 

어플루엔자라는 부자병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허한 인생을 위로받기 위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45]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47]

 

마흔 살이 되면 문제를 끼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니까 빼도 박도 못 하는 시기다.[48]

 

마흔 살의 이야기는 일상의 거울 같은 것이다. 매일의 경험들이 마흔 살의 이야기의 주류를 이룬다.[48]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보낸다. 좀더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장난기 어렸던 젊은 시절을 떠나보내고, 사회적 관습이나 책임, 자의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한 자유를 반환하게 되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마흔 살은 개인을 군중과 대중 속의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넘어, 자유와 전통적 권위 사이의 힘 겨루기를 넘ㄴ어, 진정한 사회회를 겪게 되면서 보수화된다.[48]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 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49]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이미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뜨는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52]

 

중년이 되어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53]

 

젊은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며 장엄한 절대진리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나이와 함께 성숙하면서 실리적이고 일상적인 정서적 지식과 자신의 이해에 따른 주관적 판단에 익숙해진다.[54]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55]

 

마흔이 되면 악에 대해서조차 관용적이 된다. 이것은 중년의 융통성이고 미덕이 된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56]

 

치료한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것이다.[57]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58]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 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 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59]

 

나는 삶을 연극에 비교하는 것을 싫어한다. 삶은 연극이 아니다. 우리는 극장 안의 배우도 관객도 아니다. 배우란 짜여진 배역에 따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역은 결국 내가 아니다. 극복과 연출, ,리고 배역까지 맡아야 비로소 삶으로 비유될 수 있다. 또한 우리를 삶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으로 비유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참여하는 자들이며 변신하는 자들이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부러움과 질시로 관람하는 관객이 아니다. 삶을 연극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만약 삶이 연극이 되면, 삶의 개념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연극이 삶이 아니듯 개념 또한 삶은 아니다.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60]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62]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해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62]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63]

 

나는 이 인기 없는, 그러나 모두를 괴롭히는 과제에 집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69]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70]

 

나는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은 역사학도였다.[71]

 

나는 다른 청년과 마찬가지로 꿈꾸는 존재였다. 과감하고 명쾌하며 단박에 뒤집히는 화려한 가난의 전복….. 나는 그때 혁명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72]

 

나 역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양식을 챙겨 떠난다 하더라도 곧 바닥이 날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하며 양식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83]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IBM밖으로 끌고 나와 모든 기업과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나의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들려줄 이야기는 있었지만 들어줄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찾아내야 했다.[83]

 

내가 자기고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 나는 능동성이라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85]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85]

 

유혹은 설득 이전에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85]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을 포장하든지, 크고 부드러운 젖가슴으로 지그시 눌어 이성을 질식시키든지, 위대한 사사을 통해 혼을 빼앗거나 달콤한 꿈속으로 사람들을 몰고 간다.[86]

 

나 역시 스스로를 마케팅하기 위해 강력한 매력이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 나의 콘텐츠,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알려야 했다. 어떻게? 이것이 고민의 핵심이었다.[86]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을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87]

 

조직과 개인의 변화가 필요할 때 누군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고,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냈던 것이다. 나는 마케팅에 성공했다.[88]

 

경영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89]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89]

 

평범함과 군중의 품을 떠나면서 외로웠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따.[91]

 

나는 절대로 아부 같은 것을 못 한다. 나이 들고 교활해져 이제는 가끔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건 좋은 말 정도일 뿐이고, 아부라 할 만한 정도는 못된다.[107]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113]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114]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나는 양복 호주머니에 내 용돈이 7백만원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그러나 3백 원밖에 없을 때는 불안해지고 2백 원 이하로 내려갈 때는 우울해진다.[115]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115]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자유롭기가 어렵다.[116]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117]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117]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118]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123]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124]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1인 기업을 만들 때의 기본적인 구성이었다.[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138]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140]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 해서는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147]

 

우린 그저 한 달에 한 번 만나면 자주 만나는 것인데, 그래 보았자 10년에 100번 정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주 만나게 되었다.[148]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157]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봐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161]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163]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다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나에게는 발이 없다. 나는 한 곳에 서 있다. 나는 나무와 같다.[167]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없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169]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나무의 멋이다.[169]

 

나는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170]

 

나는 얼굴이 눈부신 얼짱이 아니므로 얼굴로 승부할 수 없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노래로 사람을 모을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잇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173]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질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여,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마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욕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175]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191]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199]

 

30년 또는 40년을 더 산들 그때 돌아보면 역시 인생은 한 줌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막막한 슬픔으로 남았던 그 사건들이 다 지나가 흩어진 꽃잎 같은 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직 살 시간이 남아 있을 때는 과거의 일들이 추억으로, 현실과 이어지는 원인으로 남아 있다고 인식하겠지만, 마지막 숨은 이런 모든 것 역시 한 순간에 일어나 찰나의 것들임을 증명해줄 것이다. 원인도 결과도 없이, 느닷없는 장면들의 중첩으로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든 일 역시 과거만큼 분명한 꿈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뿐이다.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은 꿈꾸었기 때문에 언젠가 그 절실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다. 열심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성공학자들의 말을 나는 조롱한다. 그들은 대부분 신통치 않은 예언가들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 뿌리를 알 수 없는 낙관, 유치한 전개, 더덕더덕 기운 미덕과 잠언의 눈더기로 치유가 아닌 잠시의 진통효과를 과장하는 시시한 돌팔이들이 이야기를 싫어한다.[207]

 

나는 미래의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209]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209]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떄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210]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210]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먼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담배를 끊고 일찍 자고 먹는 양을 줄이고 더 많은 운동을 하라고 내게 명령하기도 한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더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더 많이 아이들과 생활을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즐기고 일 때문에 바쁜 척하지 말라고 말한다.[210]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211]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려오는 나의 방식이다.[212]

 

그때 나느 한 마리의 늑대였다. 절벽의 끝에 서서 달을 보고 울부짖는 울음소리였다. 대상이 없는 분노 때문에 그저 달을 보고 길게 우는 울음소리 속의 외로움이었다.[214]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생은 정의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215]

 

나의 영혼이여, 그대의 항해는 그대가 태어난 땅이리라.-니코스 카잔차키스[216]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218]

 

여든이 되어 물어보자. ‘삶이 나에게 요구한 것’, 즉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었을까? 망막에서 빛이 사라질 때, 내 삶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넘어갈 때, 나는 그 속에서 사소한 일상을 보게 될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찰나의 눈빛, 그녀와 남긴 어떤 대화의 뉘앙스, 그리고 어떤 웃음, 그리고 또 어떤 분논, 아내의 손, 친구의 엉클어진 머리카락, 젊었을 때의 어떤 고뇌, 창문으로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 그 뒤의 하늘----바로 이런 것들이 내 삶이었다.[219]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220]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221]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은 씨앗 같은 것이라 주위에 뿌리면 수많은 결실과 함께 되돌아온다. 더 많은 씨앗을 얻게 된다.[222]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223]

 

위선은 악덕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숨기는 악덕이다. 꽁꽁 숨길 수 있으면 유능한 것이다.[241]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을 절제 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 보았다.[242]

 

어떠한 경우든 식물은 한번쯤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243]

 

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일을 하면 한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된다.[249]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259]

 

성공은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263]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265]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269]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273]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275]

 

허물을 벗어버릴지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277]

 

철학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는 활동 [279]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281]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한 곳에 짐을 풀고 편히 쉬더라도 그것은 길 위에서의 숙박이다.[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283]

 

어제 읽던 책을 끝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고, 오늘 못 보면 언젠가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새로 받은 하루이다. [284]

 

나는 경영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써 훌륭한 휴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286]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286]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진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수신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288]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 봄으로써 변화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 한다.[288]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289]

 

모든 일에는 고객이 있다. 이것이 경영의 관점이다. 누가 내 일의 첫 번째 고객인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294]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일은 반복을 거부하는 것이다.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 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295]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297]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297]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297]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298]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298]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 번째 커리어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르네상스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과감한 전환을 하고 싶었다.[298]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299]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업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299]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 가 없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업가들은 그것을 정보를 얻는다고 표현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책읽기라고 부를 뿐이다.[299]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300]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301]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글쓰기에서의 실험이나 사업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모색은 다를 바가 없다. 글쓰기와 사업은 업종은 다르지만 같은 특성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말해도 좋다.[301]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301]

 

한달 동안 단식을 하면서 지리산 기슭의 외딴 마을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굶주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비로소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글쓰기가 내 일이 되었다.[303]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여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303]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304]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다. [306]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311]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312]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312]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312]

 

자시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다.[313]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313]

 

나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찾아내어 더러운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314]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점을 활용했다. 내가 찾아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식물적 특성을 고안해 두었다.[314]

 

세일즈와는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음이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아주 작은 나라는 소우주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쉬지 않고 시그널을 보냈다.[315]

 

나는 말보다는 문자가 지니는 조용한 설득력을 더 좋아했다.[315]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316]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 손과 머리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조화가 이루어지면 익숙해진 것이다. [316]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랑은 어디 있는가? 가슴이 뛰지 않으면 아미 사랑이 아니다. 일이 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317]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공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킨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환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317]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318]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떼어내고 빚어낸 후 색칠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18]

 

나는 내 이야기의 생명력을 더 연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의 개인적 관심사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구성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모든 숨겨진 욕망은 개인적이다. 따라서 개인적 관심사와 맞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내용이라도 진심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321]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강연은 죽은 것이다.[322]

 

나는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민감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타입이다.[327]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끝이에요.[329]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332]

 

어디에고 하루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우연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335]

 

나는 먼저 그들이 그럭저럭 봉합시켜 놓은 일상에 대한 만족을 헤집어 놓는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불안한 불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펴놓는다. 불길이 타오르면 그들의 욕망은 여기저기 묶여 있는 봉합선을 뜯고 분출된다. 그들은 더 불안해지고 더 불편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내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나는 들의 시시한 삶, 평범한 일상에 대한 분노와 불길을 부추기고 타오르게 하는 묘한 입김으로 속삭이는 자여야 한다.[336]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336]

 

나는 사람들이 가장 자기다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이것이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내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다.[337]

 

나는 내 강연의 품질에 책임이 있다. 만족스러운 거래가 또 다른 거래를 만들어낸다.[339]

 

내가 하는 일은 또한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꽃씨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미세하여 대루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고 연약하며 보잘 것 없는 것이 싹을 틔우면 이내 자라고 꽃을 피운다. 꽃은 유혹한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처럼 꽃은 여성의 은밀함이다. 환한 대낮에 자신의 성기를 온 세상에 활짝 펼쳐 보인다. 이 대담함이 식물의 생존과 번영의 비법이다.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산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343]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속에서 이루어진 꿈….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350]

 

또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늘 시간을 남겨놓았다. 친구들을 위해서도 늘 시간을 남겨놓았다.[350]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353]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최선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운을 시험하고, 필사적 노력을 시험하며,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시험한다. 푸른 그곳이야 말로 삶의 본향이기 때문이다.[354]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내게는 팔아야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고 적어도 두 시간은 쓴다. 나는 정신적 여행자이다.[355]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356]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끝을 예견하는 참담한 현실주의를 증오한다. 현실이란 결국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358]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362]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363]

 

나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일을 가지고, 내 일의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삶을 불지를 수 있도록 잠시 쏘시개 불꽃역할을 할 수 있다. 1인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은 반드시 먼저 본업으로 고객을 도와야 한다. 돈만 추구하는 기업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내놓았다고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범죄를 위한 사소한 속죄의 형식을 뿐이다.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364]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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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7.19 23:17:54 *.147.132.40
내속의 주인을 대면한 혁산.
당신의 발걸음이 느껴져.
따뜻하게 잘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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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00:39:59 *.12.130.72
브라보~! 그대 리뷰 중 최고야.
특히 <내가 저자라면>에서 "할 말은 나중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한다"
구성을 보는 아주 날카로운 눈이었어. 그대의 목소리도 넘 뚜렷하고.
그럴 줄 알았어. 아주 탁월할 줄 알았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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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7.22 16:17:17 *.251.224.83
기존의 자기계발서는 실리적이라서 꿈을 얘기하면서도 꿈을 제약해 버리곤 하였다.

샛길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스승님은 성공하고 계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속의 주인을 대면해 보았기에 더더욱 명확하다.

그 분은 소리 없는 발걸음이다.

== 혁산의 다른 글도 나쁘지 않았지만,
유독 돋보이는 표현이 많은 것은, '마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겠지요.
구성에 대한 분석이 너무 날카로워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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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7.24 16:20:32 *.216.130.188
머리 식힐려고 이리저리 헤매이다
선배님 댓글을 보고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아 그냥 쓰면 큰일나겠구나~ ㅎㅎ
선배님 지켜보시는데~ 후배로서 잘해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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