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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9일 23시 4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그를 만난 후 잊고 살았던 질문을 수없이 듣게 되었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변경연에 지원하려는) 너는 누구니?"
"(신화에 빗댄) 너는 누구니?"
"(역사에 빗댄) 너는 누구니?"
"(개인사로 바라본) 너는 누구니?"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나를 신화의 세계에서 끌고 와야 했고, 역사의 세계에서 끌고 와야 했으며, 최근에는 내 개인사에서 끌고 왔어야 했다.

조금씩 지나면서 내가 누군지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큰 대리석 돌덩이에서 다비드상을 발견한 것과 같이
그는 제자들의 굳어진 마음, 잊혀진 꿈에서 베아트리체를 발견하고, 조르바를 발견하고, 무사를 발견한다.

제자가 이야기하면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메모를 시작한다.
한번도 제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끊지 않으며 인내심 있게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끝까지 듣는다
어느날 메모하는 그의 뒤를 지나가다가 그의 메모장에 가득 씌여진 메모들 속에서 나는 우리의 미래를 보았다. 우리의 가능성을 보았다
16시간, 17시간... 그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들으며 쏟아지는 잠을 참기 위해 그는 맨발로 가만가만 강의실을 걸으며, 벽에 기대어 고개를 주욱 늘리고 졸음을 쫓는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지만 제자들이 행여 이야기를 다 못할까봐 걱정스럽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코멘트가 발표하는 제자에게 양식이 된다며 '모두 다 했니? 안 한 사람 없니?'
를 재차 확인하고서야 메모장에 적어놓은 자신의 코멘트를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재미난 점은 그는 한번도 '너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너는 이런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잡으로 훨씬 좋을 것 같구나'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마치 고인 웅덩이 옆에서 그 물이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물결을 이루며 흐를 수 있도록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웅덩이 옆의 흙들을 정돈하는 이와 같다.
물꼬가 터져 제자의 꿈과 열정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상상하며 그는 조용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다

스승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스승이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스승의 존재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럼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혜롭다라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내 주변의 어느 누군가가 참 멋진 답을 해주었다.

"지혜란 둘 다 이기게 하는 것이다"

나도 이기고 너도 이기고, 나도 만족하고 너도 만족하는 것이 지혜의 묘다
그는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원한다.

"너 스스로도 행복해지고, 너와 더불어 세상을, 사람을 행복하게 해라"

그가 제자에게 건네는 모든 코멘트에는 이러한 바램이 숨어져 있다.

그는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라는 비전을 행동으로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40대의 어느날 울림이 있는 뜨거운 삶을 되찾은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사람이다

그를 만나고, 그리고 연구소 동기를 만나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이 가슴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온다.
'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마치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의 마음처럼 말이다

지난 오프 모임 전날 퇴근길에 갑자기 지난 해 빵을 굽는다고 사고서는 거의 일년간 방치한 오븐을 다시 돌려 쿠키를 구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두어 시간 넘게 마트를 쏘다니다가 재료가 못 구해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요새 나는 먼지가 앉은 마음의 오븐을 재가동해 꿈, 열정의 쿠키를 다시 굽고 있다
물론 탈 수도 있겠고, 설익을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떠랴. 잘 익어질 때까지 계속 구으면 되지
오븐을 어떻게 돌리는지 잊고 살았을 무렵, 그는 먼지를 닦아주고 전원 콘센트를 찾아주었다
전원이란 결국에는 그 수많은 방향에서 비롯되지만 결국은 같은 질문들
'너는 누구니' 에서 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를 가만히 머릿 속에서 그려본다.
탁자 위에는 붉은 와인이 탐스럽게 그를 기다리고, 안경을 선글라스처럼 머리 위로 올린 후, 메모장에 글을 쓰는 한 중년의 남자가 보인다
사람에게 말을 할 때 맑고 깊은 눈으로 지긋이 쳐다보며 가끔 마음에 드는 대답을 했을 때 얼굴이 모두 하얀 치아로 뒤덮일 만큼 씨익 크게 웃는다.

그가 입을 떼면 이야기는 가사가 되고 목소리는 베이스 기타가 되어 두껍고 낮은 음색의 노래가 공간에 퍼져 듣는 이의 가슴을 퉁..퉁.. 친다.

그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솔직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그래서 나에 대해 솔직하다.
30년의 세월동안 데리고 산 나인데, 불과 6개월만에 그는 나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그는 이 말이 가슴 속에 사무쳤나 보다. 그는 제자들과 허물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왕관을 머리에 쓰고 망토를 두른 채 기분이 좋아 두둥실 춤을 추며 사람을 즐기고 삶을 즐기고 있다.

젊은이는 미래를 얘기하고 늙은이는 과거를 추억한다
나는 그의 과거보다 미래가 더 궁금하다. 내가 면접여행 때 그에게 했던 첫 질문처럼 나는 그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까 기대된다

제자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분홍빛 아우라가 넘실대는 그가 참 좋다


2. 내가 저자라면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늘상 그러했듯 친구들과 그날도 맥주를 한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흐르다가 서로의 꿈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했는데 한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40대가 그 어느 순간보다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너는 40대에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순간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40대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거의 단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이야기 했지만 그것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겨냥해 말한 꿈이었으며,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그것 역시 30대를 벗어난 사랑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상상력이란 고작 눈 앞의 수년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중년의 나에 대한 이질적인 느낌에 나는 40대 너머의 세계에 대해 전혀 생각의 시선을 두지 않았다.

내가 40대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어찌 보면 내 안에 자리잡은 ‘40대에 대한 편견’ 즉 저자의 표현처럼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지는 비극적인 나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40대는 30대의 승리가 원숙하게 무르익는 나이이자 축배의 거품이 사라지는 나이였다. 시작하는 나이가 아니라 정리하는 나이였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40대는 여느 40대와 달랐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40대에 인생을 재발견했으며, 그때부터의 삶은 그 이전의 삶이 아니었다고 한다.
40대 이전의 구본형은 40대 이후의 구본형과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해가 지는 세계에서 나와 자신의 해가 이제 막 떠오르는 세계로 떠나오게 된다. 43살 불면증에 몸을 뒤척이던 어느날 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는 두 개의 태양을 품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두 개의 태양이 시작된 이야기, 그리고 막 떠오르는 태양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게 된 과정과 그 동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1장. <지난 10년>과 2장 <마흔 살>, 그리고 3장 <직장생활>은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흔 살이 지니는 사회적 위치,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본인의 마흔 살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왜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4장 <얼굴-페르소나> 와 5장 <가족>은 저자, 구본형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왜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 챕터를 구성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두번 읽으니 이것이 바로 저자답게 40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집중하는 이야기는 거시담론이 아니다. 가장 작은 이야기의 단위인 나의 이야기이다.
그가 집중하는 시간의 길이는 평생이 아니다. 가장 작은 인생의 단위인 하루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저자의 하루가 눈 앞에서 그려지고, 그의 얼굴이 그의 표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얼굴과 가족이라는 두 개의 장을 통해 독자는 저자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줄을 끊고 인형에서 자유인이 된 그의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변화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6장 <자연>에서 그는 자연의 설득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다. 나무와 DNA를 나눈 형제로서 세상을 향해 씨앗을 퍼트리는 소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7장 <건강>은 6장 <자연>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연의 대서사시를 인간의 삶에 대비하여 설명한 장이 7장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나이 듦의 의미,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6장과 7장의 경우, 저자의 특별한 재능이 유감없이 펼쳐지는 장이다. 그는 일상적인, 그래서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시시한 일반적인 현상들 속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끄집어 내고 있다. 그는 꽃과 나무가 피고 지는 것을 통해,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통해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일상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이야기한다.

8장 <길에서>는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명료하게 그 행복의 길을 가기 위한 비법에 대해 속삭여준다.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9장 <집, 공간>은 그 하루를 어떻게 재배하여 내 욕망의 밭으로 키워낼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8장 <길에서>부터 9장 <집, 공간>으로 이르는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인생의 단계 단계를 유랑하는 유목민에서 내 욕망의 텃밭을 일구는 정착민으로의 여정과도 같다.

10장 <학습> 과 11장 <일>은 바로 저자, 구본형의 현재이다. 그리고 미래이다
43세 이후의 구본형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챕터들이다.

1장 <지난 10년>, 2장 <마흔 살>, 3장 <직장생활> 에서 40대에 접어든 그가 변곡점을 지나오는 것을 보고,  4장<얼굴-페르소나>와 5장<가족> 에서 가장 그다운 ‘Mestory’를 접하였다. 그리고 6장 <자연>과 7장<건강>에서 자연과 인생의 여정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였으며 8장<길에서>와 9장<집, 공간>에서 인생이라는 긴 여정 안에서 꽃 필 변화의 씨앗를 오늘로 데리고 와 나만의 하루로 만드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현재의 그의 생각과 일, 삶이 고스란히 담긴 10장 <학습>과 11장 <일>이 이어진다.

그는 드디어 ‘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그의 삶의 소명임을 말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40대 이후 새로운 인생경영을 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삶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운 변화가 일구어지길 바라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이 되는 일이다”

여기 40대에 새로운 삶을 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삶의 여정의 초대장을 독자에게도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History)로 시작되었지만 나의 이야기(Mestory)로 바톤을 터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3.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서문]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충분히 썩어 비옥해진 과거가 미래의 수확량을 결정한다는 것은 농사를 한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책을 펴내며] 자서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삶이며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이었다.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한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개인의 역사라고 인식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이다

1장. 지난 10년

[21]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24]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4] 불면은 내게 또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방법이다. 단지 나 스스로 불면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동물은 자신의 신체가 결딜 수 있을 만큼은 반드시 자도록 만들어졌으니깐

[26]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30]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

[31]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31] 훌륭한 작품은 그것이 어떤 표현 방식을 가졌든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현실보다 극적이고, 현실보다 교훈적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현실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32]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34] 당혹스러움은 과거와의 연속성이 깨짐에 따라 생겨난다. 과거와 나 사이에 순간 구멍이 뚫리게 된다. 나는 이 돌연한 과거의 상실을 즐긴다. 과거의 끈으로부터 갑자기 자유로워진 나를 상상한다.

[37]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완숙한 성취의 시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기가 된 것이다.

[38] 마흔은 이미 서산에 지는 해가 되었다. 마흔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던지지 못하는 황혼의 여생이 되고 말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2장. 마흔 살

[44] 내가 혐오하는 그가 나와 동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든가, 동질성을 인정하고 적어도 그를 혐오하는 것을 중단해야 했다.

[44] 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부자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허한 인생을 위로받기 위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

누군가의 칭찬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엇인가 정말 괜찮은 것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47]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48]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보낸다.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50] 마흔 살은 당나귀의 삶이다. 젊은이들의 자유를 포기한 채 두 어깨에 가득 짐을 지고 홀로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30대에 마흔 살의 조짐이 나타난다. 반면에 마흔을 지나 한창 인생이 익어가는데도 마법의 환상에 빠져 있는 젊은 중년도 있게 마련이다.

[52] 마흔 살은 여성적인 특성의 수용이기도 하다. 좀 더 감성적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성적인 특성을 받아들인다.

[54]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같다. 그들의 창조성의 99퍼센트는 영감에 의한 것이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이란 말은 중년의 창조성에 대한 명언이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56]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더 관용적이 되는 반면 덜 도덕적이 된다. 그리하여 도덕적 상대주의를 옹호한다

[58] 젊었을 때 사람들이 너무 희망적이었다면, 마흔 살이 되어서는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막연히 한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 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에 뛰어본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1막에서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2막에서 돌연 주연으로 바뀌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60] 삶을 연극에 비유한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62]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마흔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3장. 직장생활

[70]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72] 에게 해의 꽃과 바위만 있는 섬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

[78] 필요의 원칙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임.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82] 카프카, <돌연한 출발>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하면 나는 필경 굶어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 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84]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85]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88] 한때는 공부를 더 해볼까도 고려했지만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은 것들을 읽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박사라는 사회적 인증의 과정과 틀은 내게 아무런 흥분도 주지 못했다.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89]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를 걷는 사람(edge walker)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들 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4장. 얼굴 - 페르소나

[99] 초상화가 노마 밀러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 초상화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안만 제대로 그려지면 밖은 저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100]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102]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머리용 가발이다. 그러나 모자에는 당당함이 있다. 모자라는 액세서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멋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11]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순간순간 움직여 영상을 그려낸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내 얼굴이 아니었다. 저런 모습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은 무한히 많은 얼굴 가운데 겨우 몇 가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113]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113] 어느 날 나는 내게 ‘날마다 먹이를 주는 손’을 거부했다

[114]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나는 그때 인형을 움직이는 끈을 보았다. 인형극 속의 인형은 아주 많은 실에 묶여 있다. 인형은 실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유의 한 표현인데 인형의 자유는 모두 묶여 있는 실에서 온다. 인형의 자유는,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속박으로부터 온다. 실을 끊으면 인형은 움직일 수 없다.

[115]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저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16]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도 팔지 않는다. 돈에 묶이지 않고 가볍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인형은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다.생명은 내 안에 있다.

[116]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다.

[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pathos of distance)를 추구했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 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나를 묶고 있는 줄 하나를 끊어냈다. 다른 줄도 끊었다. 나는 인형에서 자유인이 되었다.그리고 자유인이 가지는 자유와 책임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5. 가족

[12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 이탁오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125]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르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130] 함께 먹는다는 것은 - 아마도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 -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다.

[130]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람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137]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1인 기업을 만들 때의 기본적인 구상이었다.

[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139] 그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만 존재할 뿐, 그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140]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143]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146] 친구와 비즈니스를 같이하는 것은 안좋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6장. 자연

[157]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 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이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59] 얼마 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160]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163]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힘들다.

[164]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모든 꽃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

[167] 나에게는 발이 없다. 나는 한 곳에 서 있다.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가장 먼저 나의 모든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169]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않으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이다.

가장 장엄한 문명의 단편이 장례이듯이 낙엽은 죽음조차 아름다운 삶의 과정으로 창조해낸다. 나무는 해마다 한 해의 삶을 기록한다. 한 겹의 나이만큼 줄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두꺼워지며 키가 더 자라게 된다.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170]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170]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170] 나무는 한 곳에 서서 점점 더 멀리 본다. 발이 없는 대신 세상을 떠돌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172] 한 때 감자나 벼, 밀, 보리 등은 들판에 자라던 잡초였다.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덕분에 이것들은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하게 되고 번영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여 번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173]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것이다.

[174] 스스로 진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지고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마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7장. 건강
[181] 가을은 과실이 빛나는 계절이다. 나무의 울창함은 사라지고 남겨야 할 씨앗이 중요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182] 거울 속에서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젊었을 때의 상상의 대부분은 흔적 없이 날아가고 겨우 몇 개만 우연한 현실이 되어 있다.

[183]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185] 자연은 다산과 낭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쏟아 붓고, 싹 틔우고, 꽃을 피운다. 과도하게 주고, 가장 적절하고 강한 것만 남게 한다. 몸이 수십억 개의 세포를 만들고 채 활동하기도 전에 죽게 만드는 것은 자연이 ‘최선’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185] 모든 세포의 일차적 꿈은 ‘두 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분열하는 세포는 잠정적으로 종양세포이기도 하다

[186] 죽음은 성장을 보호한다. 죽음은 무분별하고 과다한 욕망을 제거해줌으로써 생명체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와준다.

[188]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다. 윌 듀랜트의 지적대로 남성은 ‘자궁, 즉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류인 여성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였다. 여자들은 가축을 길들이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길들였다.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이라는 사회적 특질을 배우고 익히도록 했다.

[191] 욕심스러운 ‘나이 듦’은 과다한 욕망에 차 여전히 ‘두 개’가 되고 싶은 세포, 즉 암과 같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7] 월급쟁이가 과로를 치료할 수 없듯이 심장도 자기 병을 치료할 시간이 없다.

[200]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간 다음 적절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뒤로 돌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 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이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8장. 길에서

[206] 추억은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흔 아홉이 되어 지나 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207]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래의 꿈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208]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209]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210]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또한 지금을 구원해 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215] 나는 그 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17]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217] 나는 가끔 인생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나면 뼈만 남는 생선처럼 허망한 것을 그렇게 공을 들여 하루종일 장만한단 말인가?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먹고 살수도 있다.

[218]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20]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마다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223]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9장. 집, 공간
[230] 원의 세조 쿠빌라이, 18세기 말 영국의 시인 콜리지의 미완성의 시 <쿠빌라이 칸>
황제 쿠빌라이는 자신이 꿈 속에서 본 대로 궁궐을 세웠고, 시인의 꿈은 현실 속에 시를 남겼다

[231] 그리고 아주 작은 골방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방을 ‘삶의 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살다 보면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 방은 어제와 결별하는 방이며 특별한 오늘을 부여받는 곳이다.

[240] 문명의 어원에 ‘재배하다. 양육하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문명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다. 재배한다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이것을 문명이라 한다. 잡초 뽑기는 그러니깐 문명인 셈이다
[241] 아무 것이나 자라도록 방치된 밭은 게으른 농부, 더 이상 농부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의 직무 태만의 결과이다. 이것이 재배의 의미이다. 밭을 제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고 싶은 것을 심는 것이다. 심고 싶은 것, 즉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욕망들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반자연적이다. 키우려고 하는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보았다.

[242] 나는 마흔이 넘어 내가 키우려고 마음먹은 작물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작물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작물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은 잡초를 뽑고, 자양분을 제공하며, 훌륭한 밭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의 욕망…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49]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생명을 만나고, 생명과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생명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253] 내가 하루를 지내는 일상의 작은 공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목의 세계 속의 고향이고, 내가 뿌리 내린 비옥한 공간이다.

10장. 학습

[260]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 칼릴 지브란

[263]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263]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올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26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5]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주었고 달리 해석하게 해주었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게 해주었고 다시 속세를 그리워하게 해주었고 사람을 찾아나서게 해주기도 했으며,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해주기도 했다.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268]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도가 있으면 좋다. 그러나 정말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대체로 나는 나침반만 가지고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269]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70]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270] 나 역시 내가 읽은 책이고, 그들이 생각한 생각이며, 그들이 겪은 경험이다. 내 속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과 경험이 살아 숨쉬고 있다.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이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다.

[271]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73]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274] 물이 리듬을 타지 못하면 물과 함께 흐를 수 없고, 노래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다.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그 바람결에 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274] 낯선 소리, 낯선 얼굴, 낯선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학습의 즐거움이다.

[275]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라테이야(aletheia)’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

[276]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278] 들뢰즈는 철학사를 연구한 철학자였는데, 자신은 철학사를 뒤적이다가 마음에 드는 철학자를 만나면 뒤에서 덮쳐 ‘계간을 했다’고 한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나의 것을 접속하여 사생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들뢰즈의 취미였다.

[279] 그가 이질적인 것들, 다른 삶들을 받아들여 자신이 뒤에서 닾친 모든 사람의 삶을 자신 속에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생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 속에서 확장해가고, 동시에 자신 속에 그들을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속에 여러 명이 있는 것이고, 그들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접속되고 연결되며 내재화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의 즐거움이 아닐까?

[280] 니체를 읽는 것은 피 끓는 방랑의 유혹이지만, 그를 알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과거의 니체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니체는 그러므로 ‘미래의 아들’이었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 받고 있는 시간이다.’

[281]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283]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 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285] 청중을 통과한 것은 살아 남는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을 얻지 못한 것들은 새로운 언어로 고쳐지거나 버려진다. 책을 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강연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리사이틀이고 화가의 전시회 같은 역할을 한다.

[285]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 내겐 이것이 하루이다.

[286] 나는 경영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써 훌륭한 휴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 그것은 ‘현실세계 속으로 꿈을 침투’시키는 작업이었다.

[286]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최인훈의 글)

[287] 때때로 무리 속에 있지만 그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288]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11장. 일

[294]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이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296]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298] 내가 요구하는 품질기준
-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298]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 번째 커리어도 없다.

[299]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300] 사업과 글쓰기의 공통점 : 모방
-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의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

[303]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6]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다.

[30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 그 비밀을 니체가 ‘아곤(agon)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에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의 힘을 ‘덕(virtus)’이라고 불렀다.

[310] 그 지겨운 연습, 그것이 내 목을 조른다. 어디에도 마술같이, 노력 없이, 눈 깜박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311]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그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312]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즉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312] 스스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구곡양장의 길을 따라 여러 번 ‘삼고초려’의 극진함을 보여야 한다.

[313]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4] 내 안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잘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315] 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대신 책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구했다. 나는 그들을 읽는다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유를 기초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좋았다.

[318] ‘지금 이 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319] 쏟아 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지식은 늘 새로운 지식으로 전화되며 새로운 체계로 진화한다. 새로운 연합을 모색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320] 강연은 하나의 지적 퍼포먼스이다. 강연자가 몰입하지 못하는 강연은 좋은 강연이 아니다.

[328]  ‘모든 예술가가 특별한 삶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예술가이다.’ - 엘릭 길

[331]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이여서는 안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하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호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334] 자기의 창조와 생성은 어쨌든 스스로를 공격해야 한다. 씨앗이 쪼개야 싹이 나올 수 있다.

[336]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339]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이때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42]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이 되는 일이다.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343]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에필로그

[349]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 냈다.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354] 끝없는 새로움으로 아침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는 한 개의 꽃이다.

[354] 알을 낳을 때면 갈라파고스 섬으로 찾아드는 거북을 생각하곤 했다. 알을 낳고 수많은 새끼들이 부화되어 바다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들지만 그 중에 살아남아 바다까지 가는 놈들은 몇 안된다.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최선’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하루는 그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내 하루들은 바로 그 거북의 새끼들이었다.

[355]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357] 나는 내 해가 지는 세계에서 오후에 나왔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내 해가 지금 막 떠오르는 세계로 떠나왔다. 나는 두 개의 하루, 두 개의 태양을 갖게 되었다.

[361]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즐거움의 결과였다. 목적을 가진 야심작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363]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363] 1인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은 반드시 먼저 본업으로 고객을 도와야 한다.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고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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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7.20 00:12:01 *.147.132.40
숙인!
당신을 처음 보았을때 아담한 체구에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동양적인 고전미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시간이 지난후 글 & 오프라인에서의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며
타이핑을 치는 작업들을 통해 당신을 조금더 가까이 볼수 있었다.
당신의 내공을 느끼며.
기억하는지.
호가 숙인이라고 지어졌을때 탈렌트가 많아 고개를 사람들이 숙여야 한다고.
그 백미를 지난번 오프라인 모임시 더욱 여실히 확인할수 있었다.
당신의 발표에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웠었다. 고개를 숙였었다.
그순간 당신이 나의 스승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표현을 하지 못하였었다. 알량한 그 자존심 때문에.
이제는 당신의 글에서 나온 얘기처럼 이야기를 하고싶다.

당신은 연구원 동기이자 친구이자 스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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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0:33:40 *.246.196.63
에고~~ 승호 오라버님! 이런 과찬의 말씀을 ㅡㅜ
댓글 보고 제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지난번 오프 모임.. 저는 단지 솔직한 저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기로 결심했었던 것 뿐입니다
나를 깨고자 했던 시도였는데, 오라버니의 어떤 부분까지 제가 함께 깨뜨린건가요? ^^
기분 좋은데요~ ㅎ

제게도 승호오라버니는 올해 제가 얻은 가장 멋진 친구이자, 동기이자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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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00:48:01 *.12.130.72
야아... 우리 쎄이의 <저자에 대한>풀이 정말 사랑과 애정이 넘친다.
읽는 내 얼굴에도 미소가 한가득하게 말이야... ^^**

그래 쎄이야. 쿠키가 설익으면 어떻고 타면 또 어때. 그런거지 머.
언젠가 잘 구으면 되지. 우리 모두는 사부님 제자들인걸.

아... 행복하다. 네 글과 그 속의 사부님 생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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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0:34:36 *.246.196.63
다음에 쿠키 (or 머핀) 구어갈게요~ 언니 ^^
설익어도, 타도 맛나게 먹어줄거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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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21:43:14 *.160.33.149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다.   내 아내에게 물어 보면 담박 안다.  아무리 폼잡으려 해도 오래 산 아내를 당할 수 없다.   그러나 너희들이 좋게 봐 주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같다.  기쁜 일이다.  고맙구나.  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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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23:03:26 *.145.58.162
고심을 하다가 저자 구본형이 아닌 스승 구본형에 대해 글을 써보았습니다
이 글은 지난 오프모임을 하고 난 후 한숨에 적어내린 글이에요.
제가 느낀 그대로,  제가 본 그대로랍니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인걸요
사부님, 항상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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