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수희향
  • 조회 수 202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7월 20일 00시 25분 등록

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ü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문>

ü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ü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마흔 살 10년을 쓰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냈다.

ü  이것이 역사의 위대한 점이다.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ü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내지는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ü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 번째 고객인 것이다.

 

<책을 펴내며>

ü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 이것이 위대한 인물과 힘있는 자들의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 존재했던 무수히 작고 개별적인 인간들이 증발해서 사라져버린 역사학, ‘인간이 없는 인간에 대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ü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ü  나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프롤로그>

ü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니체)

ü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17).

 

<1: 지난 10>

ü  육체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안으로부터 비대해지고 느슨해진다.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22).

ü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24).

ü  어쨋거나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5).

ü  10년 단위로 쓰여진 마음껏 살아본나에 대한 소설과 개인사가 기록될 것이다. …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변화의 기술을 나에게 들이댄 변화경영 전문가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26).

ü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만다. 마르셸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30).

ü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라고 표현했다 (30~31).

ü  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며 이것을 확인했다. 훌륭한 작품은 그것이 어떤 표현 방식을 가졌든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현실보다 극적이고, 현실보다 교훈적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31).

ü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31).

ü  플로베르의 소설 <11>중년에 이른 한 여인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이 꽃들처럼 싱싱함은 사라졌어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쓰라리고 자극적인 향기를 풍겼다” (36).

ü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나의 강점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 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36).

 

<2: 마흔 살>

ü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니체).

ü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46).

ü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59).

ü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59).

ü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1).

ü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62).

ü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63).

 

<3: 직장 생활>

ü  개선과 혁신, 그것은 혁명이라는 단어의 현실적 대체 용어였다 (73).

ü  미국인들은 대학을 나와 4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할 때 최소한 열한 차례 이상 직장을 바꾸고, 최소한 세 차례 정도는 바탕 기술 자체를 바꾸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평생직장은 사망했고, 평생 직업은 끝없는 학습으로만 가능한 움직이는 타깃이 되고 말았다 (74).

ü  우리는 조급한 자본 (impatient capital)’이 지배하는 시대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 우리는 장기적 관점이 사라져가는 경제 시스템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75).

ü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76).

ü  짧은 체류, 여러 번의 전직이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 현상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나에게, 내 미래에 활용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78).

ü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이것의 필요의 원칙이다 (78).

n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n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배타적 폐쇄성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 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n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계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n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ü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80).

ü  나 역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양식을 챙겨 떠난다 하더라도 곧 바닥이 날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하며 양식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은 오히려 나를 흥분시켰다 (83).

ü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했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84).

ü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84).

ü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줄 뿐이다 (84).

ü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햐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85).

ü  세일즈가 도망치는 고객에게 달려들어 창을 꽂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짐승이 다니는 길에 온갖 화려한 미끼를 주렁주렁 단 덫과 올가미를 놓아두는 것이다 (85).

ü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 1 법칙이다 (85).

ü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85).

ü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르몬이다 (86).

ü  그 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87).

ü  자신을 변화 경영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새로운 직업을 하나 만들어내 셈이다 (87).

ü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 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88).

ü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 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89).

ü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89).

ü  나는 사는 듯 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0).

ü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8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 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다 (91).’

ü  이유도 없는 우연한 흐름이 곧잘 필연적 운명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제 나의 20년 과거는 죽었다. 나는 그 과거를 차디찬 물 속에 버리고 그 과거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제의 나는 꽃처럼 낙옆처럼 죽어 흘러가고 사라졌다. 나무들은 가장 추울 때 그렇게 서 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91).

ü  2000년 봄에 새로운 세계로 떠나왔다. …나는 제2의 인생 속으로 들어갔다. 조직에게 양도했던 힘과 권리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평범함과 군중의 품을 떠나면서 외로워졌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91).

ü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92).

 

<4: 얼굴- 페르소나>

ü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 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 초상화는안에서부터 밖으로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안만 제대로 그려지면 밖은 저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99).

ü  생각은 머리를 통해 눈에 나타난다.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100).

ü  난 가발은 싫어한다. … 다른 사람처럼 평균이 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자에는 당당함이 있다. 모자라는 액세서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멋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02).

ü  좋은 모자라는 것은 내게 잘 어울리는 모자를 말하는 것이다 (103).

ü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103).

ü  쓸데없는 치장은 야심한 밤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온 여자들이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지워내야 하는 화장 같은 것이다 (108).

ü  어리숭해 보이는 것이 훨씬 큰 장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10).

ü  약간 돈 것은 아주 재미있다. 기존의 존재 방식에 대한 파격이 아니라 그 편견에 대한 비웃음이 재미있었다. 그 때 나는 내 얼굴조차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없을 만큼 경직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신을 잘 알지 못했고, 더욱이 자신을 활용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얼굴은 다른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그것은 해골에 인피를 씌운 죽어 있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내 생각의 죽음을 상징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았다. 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111).

ü  내 얼굴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겨우 몇 가지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112).

ü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 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112).

ü  미셸 푸코의 말들이 생각났다.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 권력에 매여 있다 (112).

ü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내 의식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었다. 문학이 우리에게 숨 쉴 곳을 제공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표현대로 기본적으로 불온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조금 미칠 수 있다 (113).

ü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3).

ü  내 속에는 불꽃이 있었다. 그 불꽃은 처음에는 그저 어둠 속에 숨어 있고 싶어했다. … 그러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불꽃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게 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불꽃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13).

ü  돈이 없어도 가난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상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그때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14).

ü  한 순간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114).

ü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115).

ü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도 팔지 않는다. 돈에 묶이지 않고 가볍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인형은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다.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116).

ü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있을 것이다 (116).

ü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117).

ü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 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17).

ü  나는 인형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인이 가지는 자유와 책임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117).

ü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남의 얼굴들을 그리워하다 여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고 규범을 배우고 문화 속에 던져지면서 의도적 왜곡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되어 갔다 (117~8).

ü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118).

 

< 5: 가족>

ü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음은 결코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토마스 무어).

ü  나는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씩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123).

ü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어떤 책에서 이탁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24).

ü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밤낮을 함께 하니 갈등도 없고 싸움도 없이 지낼 수는 없다.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 다닌다 (125~6).

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아마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다 (130).

ü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거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130).

ü  나는 비교적 무난한 사람이다. 말은 없지만, 정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축에 속한다 (132).

ü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고 나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먼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멀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133).

ü  나에게는 나의 주관들이 있다. 더 좋은 방식, 더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있다 (133).

ü  아내와 나의 관계에서 신혼 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싸우고 난 후 화해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히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 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신혼 때는 그러지 못했다. 참는 데까지 참고 있다가,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딪혔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세우고 침묵을 지키며 기싸움을 했다 (135).

ü  우리는 법도를 지키는 남편과 아내라기 보다는 허물없는 친구같이 되어갔다 (136).

ü  일반인들이 참가비를 내고 참석하는 교육 모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 나는 더 이상 바쁘고 싶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도와줄 아주 좋은 파트너가 있어 내가 더 바빠지는 일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언제고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137).

ü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1인 기업을 만들 때의 기본적인 구상이었다 (137).

ü  나는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나 일할 수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어디고 이내 훌륭한 사무실이 될 수 있다. 온통 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나게 노는 일에 주력한다.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138).

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 있다 (138).

ü  나는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소중한 그들이 바로 나의 구속이 된 것이다.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139).

ü  그런데 왜 하필 죽음이 생각날까? 그 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만 존재할 뿐, 그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없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139).

ü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차는 달빛을 타고 떠올라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아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140).

ü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143).

ü  그러나 우리는 딱 한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정치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모처럼의 기분을 망치게 되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재수 없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그렇다 (144).

ü  집은 좋은 곳이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정겨운 모습으로 늘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우린 유목민에서 다시 정착민으로 돌아온다.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로부터 아늑하고 따듯한 공기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환기를 하듯 다시 그 자유를 찾아나서곤 했다 (145).

ü  친구들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145).

ü  난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사람에게 가는 정이 적어서가 아니라, 수줍어하고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내성적 성격 때문이다 (145).

ü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 서로에게 아무 부담도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것이 제일 좋다. 진짜 친구와는 외로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좋다 (146).

ü  친구들 사이에는 이해가 끼면 안 된다. 친구와 비즈니스를 같이 하는 것은 안 좋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147).

ü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 동안 나는 뭘 했나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147).

ü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47).

ü  즐거움 역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그래야 커진다. … 즐거움은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147).

ü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148).

ü  마음이 가는 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148).

 

<6: 자연>

ü  자연과 신, 그 어느 쪽도/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둘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본성의 집행관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ü  홀로 산에 있으면 아름다움에 취하게 마련이다. 홀로 있음에 취하고, 바로 그 때문에 고독 너머에 있는 연결 끈을 더듬더듬 찾아내게 된다. 언어의 표현 방식을 넘어 교류되는 정신적인 교감은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157).

ü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 넣는다. ….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 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57).

ü  살아 있다는 것은 이렇게 떠나기 전 입었던 옷을 입고 깨어나는 것이다. 언젠가 깨어날 수 없다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은 우리가 입었던 옷을 바꿔 입혀준다 (158).

ü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160).

ü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0).

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습이 늘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혹 사랑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미풍에 녹아내릴 수 있을 만큼 불안한 것임을 예감하기도 한다. 포도주 빛처럼 매혹적이다가 지독히 역겨운 상황으로 반전하기도 하고, 평화로운 푸른 바다 같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해일로 돌변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동반이기도 하고,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랑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며 가장 빠져들기 쉽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사랑의 매력이다. 사랑의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천변만화의 격정이다 (160~1).

ü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충고이다 (163).

ü  자연은 내게 내가 그 일부라는 것을 늘 일깨워준다 (163).

ü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 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164).

ü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모든 꽃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피어난다. G.K 체스티턴의 말대로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164).

ü  풀님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을 밟고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지나갈 때 당신이 고개를 숙여야 할지라도/ 내가 죽으면 / 나 역시 당신의 자매가 될 것입니다 : 이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이다. 풀과 나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다. 우리는 같다 (165).

ü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 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7).

ü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 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167).

ü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167).

ü  내가 가장 되고 싶은 나무는 깊은 산속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탁 트인 아름다운 곳에서 오래 자란 줄기 붉은 소나무이다. 그 그윽하고 향기로운 모습이라니 (168).

ü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사람들이 종종 찾아주는 너무 깊지 않은 산 맑은 계류 옆의 커다란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68).

ü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느 거리의 가로수로 잘 자란 느티나무였으면 좋겠다. 느티나무는 멋이 있다 (168).

ü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 그 외에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169).

ü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 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169).

ü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69~170).

ü  한 때 감자나 벼, , 보리 등은 들판에 자라던 잡초였다.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덕분에 이것들은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하게 되고 번영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여 번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식물들이 펼치는 고도의 유혹- 먹고 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에 우리는 즐겁게 걸려든 것이다 (172).

ü  식물에게서 배운 또 다른 교훈은 바로 번영하는 방법이다. 곳곳에 수없이 많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번영의 상징성이다 (172).

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든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173).

ü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 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 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3).

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날려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73~4).

ü  내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전략을 써두었다: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175).

 

<7: 건강>

ü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그 속에 붕괴된다는 모멸과 서서히 몰락한다는 수치심을 포함하고 있다 (182).

ü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84).

ü  자연은 다산과 낭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쏟아 붓고, 싹 틔우고, 꽃을 피운다. 과도하게 주고, 가장 적절하고 강한 것만 남게 한다 (185).

ü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다. , 아무 때나 짝짓기를 하고, 음식을 탐내며, 싸움질을 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88).

ü  인류의 역사가 그렇듯이 개인의 역사도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동물로 태어나 사회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고 자연과 문명 사이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갈등은 인간의 숙명이다. ‘멋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인간의 재갈, 즉 문명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188~9).

n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n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n  여론과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ü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189).

ü  문명은 욕망이 과도한 탐욕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복제를 시도할 때 제동을 걸어준다. 부모의 이름으로, 학교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법과 여론의 이름으로 말이다 (189).

ü  죽음은 모든 생명이 시작과 더불어 반드시 치러야 할 빚이다. 이것은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191).

ü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1).

ü  죽음으로써 우주의 커다란 질서 속으로 합류하게 된다 (198).

ü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199).

ü  죽음이 명함을 남겨 놓고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작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0).

ü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201).

 

<8: 길에서>

ü  비 내리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니/ 이 오후 시간을 즐겨라.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는 시간이니/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 (205).

ü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206).

ü  30년 또는 40년을 더 산들 그 때 돌아보면 역시 인생은 한 줌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206).

ü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 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208).

ü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210).

ü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210).

ü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욕망이다 (211).

ü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그런 의미에서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 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2).

ü  꿈은 또한 목적지다. … 정신적 여행자에게 현재란 과거 (추억)을 떠나 미래 ()로 가는 길 위의 어느 곳이다 (212).

ü  길을 나서자마자 길이 천 갈래 만 갈래니, 만약 자기 자신에게 주재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겠는가? – 주자 <선인들의 공부법> 213

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길을 가게 된다. 갈림길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 마음 속에 그 드물게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한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시인 백석 (213).

ü  지상의 모든 갈림길을 잊고,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달로 가고 싶었다. … 나는 달빛을 따라 아름다운 꿈길로 접어들고 싶었다 (214)

ü  달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울부짖음이었다. 외침은 그래서 가슴을 거쳐 목구멍으로 오르는 동안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 그것은 슬픔과 가장 닮았다 (214).

ü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15).

ü  걸어온 것에도 길은 없고/ 걸어야 할 것에도 길은 없다/ 그렇지만/ 걸어온 것과 걸어야 할 것 없이는 / 길 또한 없다 나가르주나 (대승불교의 스님) 216

ü  때때로 또 갈림길 앞에 서서 망설일 것이다. 어쩌면 길인지 조차 분명치 않은 희미한 길 앞에서 되돌아가야 한다는 어둠 속의 속삭임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216).

ü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음이 찾아 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6).

ü  나는 책을 쓰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무엇보다 즐거운 취미인 셈이다. 그 해 발간된 책은 일 년 동안의 내 관심사였다. 책 한 권이 나오면 내 일 년 동안의 정신적 여정이 정리된 것이다.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도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217).

ü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218).

ü  깨달음의 내용은 없고 그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정도가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이다. … 머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깨달음이 없으면 인생의 반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19).

ü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0).

ü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여러 곡물이 섞인 밥을 먹고 하루에 30분씩 운동하고 한 시간씩 햇빛을 쪼일 수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는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221).

ü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221).

ü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221).

ü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은 씨앗 같은 것이라 주위에 뿌리면 수많은 결실과 함께 되돌아온다 (222).

ü  바람이 조금 있는 아름다운 날에는 밝은 햇빛 속을 반바지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산책하고, 우울한 날에는 집 안에서 그 기분에 어울리는 좋은 책 한 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은 이미 행복하다. 이 때 돈이란 밥 먹고 난 후 아이스크림 한 개, 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실 만큼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인생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 아닐까? (222).

ü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223).

 

<9: , 공간>

ü  집은 채광이 잘 되는 동남향 집이면 좋겠다. 유리를 많이 써서 햇빛이 듬뿍 들어오게 하고 싶다 (229).

ü  나는 늘 책이 가득한 서가가 있는 서재 속에 앉아 있는 나를 그리워했다 (229).

ü  나는 서가를 읽고 쓰는 장소 외에도 가끔은 졸기도 하는 공간, 그러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으면 그대로 뜰로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워했다. … 졸음과 잠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아름다운 여행이다 (229~230).

ü  서재는 꿈을 꾸기에 좋은 곳이다. 그 속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이야기 속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크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차분한 서재 하나를 가지고 싶다. 조금 읽다가 생각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다시 아무런 상황의 규제도 없는 꿈 속으로 가서 더 많이 이해하길 바란다. 이렇게 알게 된 것을 글로 쓰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내게 독서와 꿈과 쓰기는 책 속의 경험을 배워 원래 내 마음 속에 갖추어져 있던 근본을 이해하는 학습이다 (231).

ü  그리고 아주 작은 골방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무 바닥에 벽은 전부 황토로 만든 방이면 좋겠다. 작은 나무 책상 하나에 나무 의자 하나, 그리고 바닥에 놓은 꽤 큰 방석 하나가 이 방을 채운 소품의 전부이다. 나는 이 방을 삶의 방이라고 부르고 싶다.매일 이 방에 들어와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 이 방은 탐욕의 때를 벗는 곳이다 (231).

ü  이 방은 분노를 죽이는 방이고 질투와 자만을 죽이는 방이다. … 이 작은 방은 늘 내가 새롭게 태어나게 도와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 이 방에서 나는 늘 나와 만나고 싶다.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232).

ü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터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터를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233).

ü  꽃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237).

ü  문명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다 (240).

ü  어떤 경우든 식물은 한 번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 (243).

ü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243).

ü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3).

ü  공간이 인간을 만든다는 말은 맞다. 이곳에서 나는 인간의 마음에 흡착되는 자연의 마음을 익히게 되었다. 북한산 자락에 앉아 있으니 위대한 스승의 품에 안겨 있는 셈이다 (243~4).

ü  멀리 두고 그리는 마음은 그리움이고 가까이 두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워하고 또 볼 수 있으니 이처럼 다행일 수 없다. 모든 사물의 이치가 그럴 것이다 (244).

ü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그 꽃잎에는 어찌할 수 없이 작고 여리며 앙증맞고 환한 귀여움이 가득하다 (246).

ü  목련은 아름답지만 지고난 다음 그 무거운 주검을 주체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이 작은 꽃은 살아 있을 때처럼 갈 때도 가볍기 그지없다 (247).

ü  노동은 노동 안으로 우리를 불러 들인다. 노동 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고 몰두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동처럼 그 성과가 눈에 잘 나타나는 것도 없다 (249).

ü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 울타리 안이 우리의 세계다. 이제 물리적 거리는 소멸되었다. … 우리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지구는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루를 지내는 일상의 작은 공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목의 세계 속의 고향이고 내가 뿌리 내린 비옥한 공간이다 (253).

ü  우리의 육체가 거리낌없이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어느 경우든 집은 우리의 아늑한 밀실이다. 특히 나처럼 홀로 1인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집은 작업장이고, 직장이며, 사무실이고, 일상이 이루어지는 훌륭한 세계이기도 하다 (254).

ü  삶은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햇빛으로 존재한다 (254).

ü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254).

ü  나는 하루를 숨쉴 수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원해왔다.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창문을 열면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밀려드는 그런 공간을 원해왔다 (254).

 

<10: 학습>

ü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니체 (259).

ü  1인 기업가가 되었을 때, 나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하늘은 파랗고 아름다웠다. 비로소 나는 풀려났다. 위탁한 권리를 되찾았고, 무진장한 시간을 돌려 받았다. 통쾌한 일이었다 (259).

ü  자유는 또한 불안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겨 주었다. … 나는 외로움과 불안과 대면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60).

ü  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팔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 그거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260).

ü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261).

ü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서게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를 보호해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262).

ü  성공은 채찍이다. 쉬지 못하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 놓는 주마가편의 바로 그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263).

ü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올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263).

ü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263).

ü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3~4).

ü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264).

ü  나는 나만의 놀이를 찾아내려 했다. … 내 속에서 일어나는 조급함에 그 이유 없음을 질타하곤 했다. 이유 없는 조급함에 대해서는 늘 한 호흡을 더 쉬곤 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어떠한 것들과도 가능한 한 싸우지 않으려고 애쓴다 (264).

ü  심심하면 그저 심심함과 함께 놀았다. …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주었고, 달리 해석하게 해주었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게 해주었고, 다시 속세를 그리워하게 해주었고, 사람을 찾아나서게 해주기도 했으며,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해주기도 했다 (264~5).

ü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265).

ü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라고 부른다 (265).

ü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 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 적이 없는 것이다 (265~6).

ü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267).

ü  어떤 때는 며칠 사이에 책을 한 권 쓸 수 있으리라 느끼기도 한다 (267).

ü  어떤 때는 내 힘이 아니라 신명의 도움을 받아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다 (268).

ü  쓰다 보면 묘한 곳에 이르게 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다가든다. 그러면 신이 난다. 글을 글에 연하여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언어로 파고든다. 나는 이 방법을 즐긴다 (268~9).

ü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 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69).

ü  이것을 지적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성의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잡아 끄는 다른 힘들을 느끼곤 한다. 간혹 어떤 직관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준다 (269).

ü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한 번에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는 더딘 깨달음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는가! (269).

ü  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269).

ü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된다 (270).

ü  독자는 작가와 같다. 그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책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과 사유의 한계 속에서만 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70).

ü  학습을 통해 우리는 늘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돌연 자신이 속했던 사유의 세계를 떠나 전혀 이질적인 사유의 쾌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271).

ü  교육과 훈련,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서만 포인트가 누적되는 자본이 바로 인적 자본이다. 자신을 자본화할 때는 전략적 배려를 해야 한다. 인생은 길지만 또한 짧고 유한하기 때문이다 (271).

ü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71).

ü  나는 책방에서 아무 책이나 고른다. 분류를 따르지 않고 모든 장르의 책을 두루두루 훑어본다는 뜻이다. … 그러나 아주 짧게 눈빛만 먼저 교환해본다. 별로 싸우고 싶지 않은 놈들도 있다. 책을 들춰보는 순간 천박한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 내 시간을 훔치는 놈들이며, 나를 화나게 하여 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놈들이다 (272).

ü  나는 나의 눈으로 책을 본다. 이미 마흔이 넘은 사람이다. 이미 삶의 웬만한 구석들은 혀로 핥아본 사람이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 것을 생활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바쁜 일인데, 언제 그들의 중언부언을 들어줄 시간이 있겠는가? 단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273).

ü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변모의 예술이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273).

ü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73).

ü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그 바람결에 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274).

ü  배움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역사든 또는 과학이든, 배움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에 아는 것이다 (274).

ü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 누구의 이야기가 되었든, ‘우리가 결국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지적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274~5).

ü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275).

ü  사회적 필요성과 자격의 취득이 목적인 경우는 그들의 위엄과 전통을 따라야 할 것이다. 힘은 그들에게서 오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 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야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 (275).

ü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 놈이었다. … 그는 모든 가치를 열정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277).

ü  전기작가로 유명한 스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리면 니체는 불꽃처럼 게걸스럽게 스스로를 불사르고 스러지고싶어했다. 불꽃이야말로 바로 그였다. 그의 본질은 넘실대는 불꽃 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 파괴와 가지고 잇던 믿음의 상실, 자기 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 처형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277).

ü  들뢰즈는 철학사를 연구한 철학자였는데, 자신은 철학사를 뒤적이다가 마음에 드는 철학자를 만나면 뒤에서 덮쳐 계간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들뢰즈가 철학을 사유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나의 것을 접속하여 사생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들뢰즈의 취미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칸트를, 칸트가 듣는다면 노라 뒤집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78).

ü  들뢰즈가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니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니쳬의 뒤를 덮쳐 사생아를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어느새 니체가 자신을 덮치더라고 했다. 그는 철학이란 개념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마 새로운 베치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 위한 모색과 실험이 될 것이다 (278~9).

ü  나는 그가 이질적인 것들, 다른 삶들을 받아들여 자신이 뒤에서 덮친 모든 사람의 삶을 자신 속에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생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 속으로 확장해가고, 동시에 자신 속에 그들을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속에 여러 명이 있는 것이고, 그들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접속되고 연결되며 내재화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의 즐거움이 아닐까? (279).

ü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처음에는 헤겔과 닮았다. 그러다가 현존에 지독한 부정을 가했던쇼펜하우어가 되었고, 바그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떠났다. 이윽고 자기의 개념을 창조해낸 바로 그 니체가 되었지만, 그는 다시 남들이 알고 있는 니체 씨를 떠나갔다 (279).

ü  그는 다이너마이트였으며, ‘광대였으며, ‘모든 금지된 곳을 찾아나서는유목민이었으며, 외부인이었고, 방랑자였다. 떠나는 사람이었으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280).

ü  니체를 읽는 것은 그러므로 피 끓는 방랑의 유혹이지만, 그를 알기는 어렵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 곳에 허물만 남기고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를 불지르고 그 재위에서 새로워지려고 한 사람이었다 (280).

ü  니체는 그러므로 미래의 아들이었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받고 있는 시간이다. … 그는 늘 너무 일찍 와서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280).

ü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281).

ü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버렸으면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281).

ü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1).

ü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불가에서의 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의 삶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머리를 깎고서 출가하여 홀로 살며 정진하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 속에서 하루가 꾸려진다 (282).

ü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283).

ü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84).

ü  책을 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강연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리사이틀이고 화가의 전시회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자체로 소중한 학습의 도구와 방편이 된다 (285).

ü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다. 학습은 종종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 그러나 학습의 또 하나의 얼굴은 뜨겁다. 혼이라든다 열정, 몰입, 감성, 직관 같은 단어들이 중요한 개념이 되기도 한다. 학습은 뜨거운 무엇이고,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며,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286).

ü  나는 경영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써 훌륭한 휴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 냉정하고 가혹한 경영 속으로 뜨거운 김이 솟구치는 인문학적 유산을 배치시킴으로써 돈으로 피폐한 영혼과 벌거벗은 몸을 돌아 볼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학문적 관심사이다. 그것은 현실세계 속으로 꿈을 침투시키는 작업이었다 (286).

ü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286).

ü  자신을 닦는 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 진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수신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Let it go! Let it go! 둑을 세워 마음의 흐름을 모아 두지 않고 그것이 흐르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선하고 아직 그 선함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생겨나는 열정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 커다란 파도 같은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288).

ü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봄으로써 변화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 한다. 아마 내 50대는 변화경영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 될 것 같다 (288).

ü  도전이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 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88~9).

 

<11: >

ü  흰색 드레스 셔츠를 입고 보랏빛이 도는 분홍색 바탕에 흰 점들이 은하수처럼 퍼져 있는 넥타이를 맸다. 짙은 회색의 정장 재킷을 걸쳤다. 거울 속에는 약간 들뜨고 흥분한 기분 좋은 얼굴이 하나 들어 있었다.

ü  나는 강연을 하러 간다. 첫 출근을 하던 날의 기분을 상상해보라. 새로운 책을 한 권 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강연을 하러 가는 날마다 나는 그런 기분에 젖곤 한다. 새로운 책, 새로운 대상, 새로운 내용, 새로운 날은 나를 춤추게 한다.

ü  모든 일에는 고객이 있다. 이것이 경영의 관점이다. 누가 내 일의 첫 번째 고객인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294).

ü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 경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년마다 기록되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의 개인적 역사이며,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며, 나에 대한 연구 보고서이다 (294).

ü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295).

ü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니요? 당신은 양파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버리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296).

ü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 초라한 미국인과 거대한 인디언 노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철학의 힘이다 (296~7).

ü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 요건이다 (297).

ü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297).

n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n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ü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질 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298).

ü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 번째 커리어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르네상스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에서 과감한 전환을 하고 싶었다. 완벽하게 새롭게 구성된 인생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298).

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사업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299).

ü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업가들은 그것을 정보를 얻는다고 표현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책읽기라고 부를 뿐이다 (299).

ü  모방할 때의 요령이 두 가지라는 점에서도 사업과 글쓰기는 일치한다.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글쓰기에 미치는 감정의 힘은 말할 것도 없고, 경영자들 역시 자신의 머리로 이해한 것만 가지고는 경영의 일선에서 활용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00).

ü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300).

ü  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300).

ü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300).

ü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글쓰기에서의 실험이나 사업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모색은 다를 바가 없다. 글쓰기와 사업은 업종은 다르지만 같은 특성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말해도 좋다 (300~1).

ü  지금 돈을 벌었다고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다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 (301).

ü  세상을 살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301).

ü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302).

ü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인 곳을 골라내어 내 방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그것들을 재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즐긴다. 책을 볼 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한다.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거나 역사서를 보거나 전문 서적을 읽을 때 내 주제는 늘 변화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302).

ü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3).

ü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304).

ü  강점은 꿈을 이루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이든 그것을 현실의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304).

ü  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이것도 타고난다 (304).

ü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 할 사람을 고르는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305).

ü  느끼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 공격을 받으면 반격하기보다는 마음 속에 깊이 분노를 간직하는 기질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평범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높이 평가하며천성적으로 사물의 여러 관련성을 모두 타진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현실적이거나 실리적이지 못하다 (305).

ü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 등이다 (305~6).

ü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306).

ü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자기를 깨우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수신이 이윽고 가정과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장하게 된다 (306).

ü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306).

ü  남과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어낸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빛이다. 반딧불이든 커다란 등불이든, 그들은 우리에게 늘 빛을 던져 준다 (306).

ü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7).

ü  나는 멋진 싸움꾼은 아니다. 싸움꾼이기에는 상처를 쉽게 받는 선천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는 타입은 아니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갈등이 나를 키워주었다. 마음 속의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는 했지만 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307).

ü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대 우리의 것이 된다. 그 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310).

ü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311).

n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ü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312).

ü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 이 내면의 영웅이 스스로 일어나 초려에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312).

ü  스스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구곡양장의 길을 따라 여러 번 삼고초려의 극진함을 보여야 한다. 인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만에 하나 자기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다 (312).

ü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3).

ü  나는 나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찾아내어 더러운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억제된 불길이다. 나는 때때로 침울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였다. 분노를 적의 없는 상태로 감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스스로에게 물기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제대로 타오를 수 없었다. 가득한 연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문을 열고 굴뚝을 달아 불길이 훨훨 타오르도록 했다. 이것이 나를 살려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잘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다 (314).

ü  그러나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점을 잘 활용했다. 내가 찾아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식물적 특성을 고안해 두었다. 세일즈와는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음이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아주 작은 나라는 소우주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쉬지 않고 시그널을 보냈다 (314~5).

ü  나는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다. 늘 쉽게 상처 입는 편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대상을 잘 골라야 했다. … 책은 훌륭한 스승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가르쳐 주었다 (315).

ü  또한 나는 글을 통해 내 생각과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만일 글을 쓸 수 없었다면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아내야만 했을 것이다 (315).

ü  이런 시도들이 내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영웅을 끌어내어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것, 그렇게 예정된 바로 그 사람밖에는 될 수 없다. 내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던 소심한 자아는, 밖으로 나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사람의 작은 영웅이 되고 싶어했다 (316).

ü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자신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는 작은 왕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위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316).

ü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그러나 최고는 늘 기계적 익숙함에 다시 한 번 저항한다.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불온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다시 익힌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애인이 아내가 되고 아내가 다시 애인이 된다 (316).

ü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가슴이 뛰지 않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일이 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 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 내야 한다 (317).

ü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n  내가 쓰는 글을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n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야 한다. …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n  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17~9).

ü  문득 내 인생을 돌아보면 한없이 여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저 하나의 일만 하면 된다. … 이 세상에서 그 일만이 내가 살아 있는 목적이 된, 그리하여 내 일상의 하루가 되어버린 그 일 외에 나는 아무런 할 일도 없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생각하고 버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또 모든 생각을 한다 (319).

ü  강연은 글쓰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내 직업이다. 나는 많은 강연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의 강연 일정은 아무 매력적이다. 그 이상 되면 하기 싫어진다. 강연은 쏟아내는 작업이다.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말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19).

ü  지식은 늘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체계로 진화한다. 새로운 연합을 모색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강연은 이런 지적 프로세스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할 수 없다면 강연자는 스스로를 교살하는 셈이다.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행위가 바로 쏟아냄이 들어옴을 초과하는 지식 유출을 방관하는 행위다. 일 년이 되지 못해 그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된다. 그리고 충전이 불가능한 배터리처럼 폐기된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320).

ü  나는 특정한 강의안이나 패키지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책을 쓰는 것의 장점은 그 내용의 핵심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320).

ü  좋은 내용이었지만 내 강연은 고작 그 강연장 안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들은 강연장을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잊었다. … ‘좋은 말은 강연장이라는 무균실에서만 살아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에 불과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부서지며 다시 어제의 관성으로 합류되는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이 많았다 (321).

ü  나는 내 이야기의 생명력을 더 연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의 개인적 관심사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모든 숨겨진 욕망은 개인적이다. 따라서 개인적 관심사와 맞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내용이라도 진심으로 끌어 들일 수 없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은 좋은 상품이 아니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청중이 듣고 싶은 강연이 좋은 강연이다. 나는 담당자들에게 사전에 청중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서너 개 알려주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청중의 문제로부터 강연을 시작하곤 했다 (321~2).

ü  강연은 하나의 지적 퍼포먼스이다. 내가 먼저 그 내용에 만족해야 하고, 청중의 개인적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322).

ü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강연은 결국 전달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이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도 예술가가 자신을 표현할 때의 자세와 유사한 몰입이 있어야 한다. 강연자가 몰입하지 못하는 강연은 좋은 강연이 아니다. …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강연은 죽은 것이다 (322).

ü  어떤 싸움이든 청중에 대한 애정이 깊어야 한다. 그들 앞에 서서 한 번 둘러보면 대략 오늘의 싸움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다. 집단에는 에너지가 있다 (322).

ü  청중은 대개 세 가지 부류가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323).

n  한 부류는 열심히 들으려는 사람들이다. … 그들이 듣는 것은 연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연사가 한 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다. 스스로를 듣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러나 껍질만 성실한 사람들도 있다. … 좋은 청중과 무늬만 좋은 청중은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눈빛이 교환되면 금방 알 수 있다. … 이들은 어쨌든 모범집단이다. 강단에선 연사를 즐겁게 해주는 우군이다.

n  또 한 부류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 어쩔 수 없이 전체의 일정에 참여하지만 그저 동원된 청중은 어디에나 있다. … 나는 그들을 휴먼집단이라고 부른다. 강연의 에너지를 무산시키는 무기력 집단이기도 한다. … 그들은 대체로 인생 자체에 지쳐 있다.

n  또 한 부류는 까다로운 집단이다. ‘어디 날 흥분시켜봐. 내가 들을 만하면 들어줄게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자리에 앉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비판적이고 냉소적이기도 하며 열정적이기도 하다. 자신이 꽤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고 자존심이 높은 부류이다. 개중에는 아주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다. 두 시간 정도의 상대로 최고인 빳빳한 대상이다. 나는 빳빳한게 좋다. 이들이 내 타깃이다. 나는 이들을 놀이집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내 편으로 돌아서면 강연은 일단 성공한 것이다.

ü  이 세가지 부류가 어떤 비율로 섞여 있느냐에 따라 청중의 성격이 정해진다. 가장 쉬운 강연은 이미 내 편들로 가득 찬 모임에 나가 강연하는 것이다. 이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아직 내 손으로 그런 모임을 만들지는 않는다 (324).

ü  가끔 누군가가 아주 열성적으로 내 강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 지지자들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고, 그 무리 속에 휩싸이는 것을 즐긴다. 위로받고, 격려받고, 무언가 된 듯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324~5).

ü  그러나 이 속에는 늘 불안이 있다. 인기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언젠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의지한 자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늘 변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기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기를 추구하는 자는 인기를 잃음으로 결국 불행해지거나 스스로의 왜곡에 빠지기 쉽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디, 모든 화려한 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325).

ü  개인적인 대화나 상담에서부터 수백 명, 수천 명을 모아놓은 대중강연까지 표현의 기본 매체는 말이다 (326).

ü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탐이 나더라도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327).

ü  모든 예술가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예술가이다라는 영국의 삽화가인 에릭 길의 말은 횟수가 많아지면 판박이가 되기 십상인 강연의 세계에서도 특별한 자신의 표현법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328).

ü  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갈채하는 강연을 하고 싶었다.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좋은 강연을 한 셈이다. 나와 관중은 호흡을 같이 한다. 그들은 나를 응시하고 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은 고조된다. 강연은 콘서트가 되고 리사이틀이 된다. 우리는 쉽게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강연이다 (328).

ü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31~2).

ü  그 순간 내 일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덮고 있는 행복의 껍질을 뜯어내는 것이 매우 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데 된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이라는 초콜릿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그들은 그 초콜릿 덮개가 벗겨지는 것에 분개한다. 그리고 적대적이 된다. 솔직한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333).

ü  내 일은 예민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의무를 주며 할 일을 주고 숙제를 내줌으로써 그들을 못 견디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333).

ü  적절한 적대감은 결국 본인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사용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공격하지 않고는 과거를 떠날 수 없다. 자기의 창조와 생성은 어쨌든 스스로를 공격해야 한다. 씨앗을 쪼개야 싹이 나올 수 있다 (334).

ü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 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334).

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오늘 강연의 대상이 아니다. … 그러나 어디에고 하루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우연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 역할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사냥에 익숙한 늑대처럼 그 소수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탐색한다. , 저기 있다. 그들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표정과 그들의 한숨이 들린다 (335).

ü  나는 먼저 그들이 그럭저럭 봉합시켜놓은 일상에 대한 만족을 헤집어 놓는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불안한 불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펴놓는다. 불길이 타오르면 그들의 욕망은 여기저기 묶여 있는 봉합선을 뜯고 분출된다. 그들은 더 불행해지고 불편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내 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시시한 삶, 평범한 일상에 대한 분노의 불길을 부추기고 타오르게 하는 묘한 입김으로 속삭이는 자여야 한다 (335~6).

ü  불행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발견하는 법과 동일하다. 마음을 조금 열기만 하면 된다. …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모든 인생의 재미를 희생한 대가로 받은 보상이라는 것이 시시할 정도로 쪼들리는 월급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336).

ü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336).

ü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당황스럽고 길을 잃게 하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늘 과거와의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사랑만큼 우리를 달라지게 하는 것도 없다. 사랑에 빠지면 눈조차 멀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많은 흥분과 미움과 증오와 눈물로 짜여진 옷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336~7).

ü  나는 사람들이 가장 자기다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다. 이 일은 매우 주제넘은 짓이기도 해서, 나는 힘겹게 행복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적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속성이다 (337).

ü  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은 껍데기를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야만 하는 자기존중과 애정이 필요한 대장정이다 (337).

ü  나는 청중 모두를 위해 강연하는 것이지만, 그 강연은 결국 그들 가운데 누군가를 위한 강연일 뿐이다. … 내 강연은 그러므로 콘서트나 리사이틀로 그쳐서는 안 된다 (337~8).

ü  강연은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그들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그들일수록 해야 한다. … 내 강연의 목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그들이 되어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속에서 그들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338).

ü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이 때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39).

ü  나는 어디든 내 강연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강연료는 내가 결정한다. 기업은 이익집단이고 나 역시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제공하는 가치에 상응하는 가격을 책정한다. 나는 강연료를 꽤 많이 받는다. 그리고 점점 더 높여 받는다. 이유가 있다. 나는 내 강연의 품질에 책임이 있다 (339).

ü  그러나 나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쇼 비즈니스가 아니다. 예를 들어 신문이나 TV에 나가 얼마나 얼굴이 팔렸는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 TV는 나를 홍보해주지만 내면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시장 가격에 영향을 많이 줄 수는 있지만 강의의 내용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홍보의 효과를 내 강연료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홍보는 매출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단위시간당 강연료를 올려주는 원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내용은 없고 값은 비싼, 단명한 개살구가 될 뿐이다 (340).

ü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340).

ü  어제의 진실은 오늘의 진실이 아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전문 분야의 적절한 대우를 늘 요구한다. 내가 나아졌을 때 그 가격을 올린다.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정직한 거래라고 생각한다 (340).

ü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시간을 마음대로 배정할 수 있고,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 전에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쓰여졌다. 그러나 이제 내 편이 되었다. 나는 전보다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341).

ü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정교하게 상징화하고 싶었다. 그 동안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라는 말이 명쾌한 듯 보였지만 어딘지 상징성이 결여되어 보완하고 싶었다 (341).

ü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 :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이다 (341~2).

ü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한다. …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한다 (342).

ü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342).

ü  작고 연약하며 보잘것없는 것이 싹을 틔우면 이내 자라고 꽃을 피운다. 꽃은 유혹한다 (342).

ü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343).

ü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343).

 

<세 개의 에필로그>

ü  내 자신의 등불이 되고 피난처가 되라/ 다른 피할 곳을 찾지 말라. 내면의 빛에 최대한 다가서라 (347).

하나

ü  바다는 참으로 많은 물결로 만들어졌다. 물결은 바다의 생존을 알리는 표상이다. 문득 내가 저 많은 물결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저 한 순간의 존재,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내 다른 파도로 살아났다 (347).

ü  하루는 물결처럼 사라지고 물결처럼 다시 생성된다. 모든 하루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상징이다. 이 속절없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348).

ü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내 일을 찾을 것이고 매일 그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햇빛같이 눈부신 생각이었다 (348).

ü  이상하지만 아주 편안하게, 그 믿음은 내 속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349).

ü  당장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을 재편했다. …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 냈다 (349).

n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나는 읽고 생각하며 자연과 만나고 쓴다. 이것은 고독한 시간이다. 알지 못하는 것들의 시간이며,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채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날마다 추측한다. 상상한다.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그 세계가 움직이는 법칙을 깨닫게 된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내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며 즐긴다.

n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n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늘 시간을 남겨 놓았다. 친구들을 위해서도 늘 시간을 남겨 놓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언제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 다만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과 함께 인생의 길고 지루한 길을 웃고 떠들며 지나곤 했다. 그들은내 외로움 옆에 서 있는 동반자였다.

n  세 번째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대체로 강연과 홈페이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찾아내 주기를 바랐다. 전생에 나는 아마 나무였을 것이다.

n  나는 트리맨 (treeman>이다. 바람이 불면 솨아소리를 내며 온 잎들을 있는 대로 바람에 실어 날리는 나무이다. 봄이 되면 꽃을 주렁주렁 피우는 나무이다. 여름 소나기 끝에 햇빛이 다시 쨍해질 때 초록색 물방울을 달고 서 있는 싱싱한 이파리로 뒤덮인 나무이다. 때가 되면 꽃보다 더 진한 단풍으로 깊어지는 나무이다. , 그리고 그 나무, 겨울 그 강풍에 아무 소리 않고 죽은 듯 서 있는 그 나목,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온몸 안을 꽃으로 가득 채운 채 꽃 터지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351).

ü  변화는 마흔 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 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352).

ü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직접 연출하고 직접 출연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바로 나였다. 나는 나를 재료로 가장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나만을 위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352).

ü  아무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 인생을 만들어보기 위해 나는 시시한 긴 팔 와이셔츠와 넥타이와 양복을 던져버렸다 (352).

ü  나는 인생을 참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늘 긴 여행을 선망했다. 언젠가 떠나리라. 언젠가는 말이야.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나왔다. 이것이 지난 10년 사이에 내게 일어난 굉장한 일이었다. 그날은 나의 역사속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날이었다 (353).

ü  모든 위대한 것이 다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나에게 고정된 우상은 없다. 나는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353).

ü  실패도 성공도 없다. 어쩌면 그런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새로움으로 아침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는 한 개의 꽃이다. 새벽에 망울을 달고 이내 만개하여 밤이 되면 떨어지는 하루 꽃, 아주 새로운 하나의 유혹 (354).

ü  그러나 또한 나는 움직이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의 균형 능력을 증진시키고 싶었다. 날개와 함께 뿌리도 지니는 멋진 변종을 조합해내고 싶었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였다 (354).

ü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최선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운을 시험하고, 필사적 노력을 시험하며,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시험한다. 푸른 그곳이야말로 삶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354).

ü  하루는 그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354).

ü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내게는 팔아야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고 적어도 두 시간은 쓴다. 나는 정신적 여행이다 (355).

ü  이것이 내가 책을 보는 이유이다. 나는 정신적 방랑자이고 내 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뜨겁다 (355~6).

ü  나는 이 여행을 늘 글로 옮겨 적는다. 그것이 바로 일 년에 한 권 정도 출간되는 내 책들이다. … 글을 쓸 때 나는 고통과 무료함과 분노와 초라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흥분이고 노래고 춤이다 (356).

ü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56).

ü  한 곳에서 살던 짐을 꾸리고, 다른 곳에서의 삶을 위해 다시 짐을 푸는 시기가 내겐 바로 마흔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닫히면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위대한 시기였다 (357).

ü  나는 피폐한 시선을 미워한다. 우리의 세대가 끝난 것처럼 조로한 시선을 미워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끝을 예견하는 참담한 현실주의를 증오한다.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358).

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 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360).

ü  나는 바쁜 것이 싫다. 후회도 싫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늘을 새로 받은 또 한 번의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360).

ü  나는 사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다. 내 인생은 다른 것이다. 나는 무엇을 크게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이룸에 대한 집착이 내 삶을 깨는 것을 보곤 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즐거움의 결과였다. 내 생각들을 내 언어로 옮기고 정리한 것들이 내 책이다. 그러니까 하루의 흔적이다 (361).

ü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361).

ü  좋은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그저 좀 지루하긴 하지만 게으른 생각을 즐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생각이 적절한 깊이의 표현을 만나면 흥분한다. 홀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으면 입이 벌어진다. 운 좋은 날이다. 느닷없는 이런 날이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준다 (362).

ü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산 속을 거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고, 내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강연하는 것을 즐긴다 (362).

ü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시간을 돈벌이에 더 많이 쏟아붓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363).

ü  나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일을 가지고, 내 일의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 스스로 삶을 불지를 수 있도록 잠시 쏘시개 불꽃역할을 할 수 있다. 1인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기업은 반드시 먼저 본업으로 고객을 도와야 한다. 돈만 추구하는 기업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내놓았다고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범죄를 위한 사소한 속죄의 형식일 뿐이다.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363~4).

ü  언젠가 한 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364).

 

<평설>

ü  개인적으로 나를 잘 모르는 유명인들의 평가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내 책에 대해 어떻게 읽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 연구원들에게 이 책에 대한 평설을 실어 달라 했다. 그들은 객관적일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애정이 있는 객관성나는 이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366).

ü  너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두 시간을 써라. 그 두 시간 동안 온전히 너 자신을 위해 집중하라. 10권의 책을 너의 이론으로 정리하고, 10명의 사우를 만들어라. 너의 책을 써라. 무엇을 알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배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책을 통해 지금의 너를 구원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라. 10년 후 너의 생업이 되게 하라 (375)

 

IP *.12.130.7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72 [17]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인용문 수희향 2009.08.03 2279
1971 [17]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저자 및 내가 저자라면 수희향 2009.08.03 2299
1970 유러피언 드림 - 저자에 대하여 & 내가 저자라면 [1] 書元 이승호 2009.08.02 2960
1969 유러피언 드림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書元 이승호 2009.08.02 2239
1968 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 [2] [1] 숙인 2009.08.01 6425
1967 북리뷰 17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2] 범해 좌경숙 2009.07.31 3031
1966 북리뷰 16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3] 범해 좌경숙 2009.07.20 2393
1965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예원 2009.07.20 2311
1964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曉仁 김홍영 2009.07.20 2417
196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5] 혜향 2009.07.20 2087
1962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희산 2009.07.20 1702
1961 [15]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정야 2009.07.20 2290
1960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 백산 2009.07.20 2111
» [16]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인용문 수희향 2009.07.20 2024
1958 [16]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저자와 내가 저자라면 [1] 수희향 2009.07.20 2269
1957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6] 숙인 2009.07.19 1836
1956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4] 書元 이승호 2009.07.19 2062
1955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4] 혁산 2009.07.19 2053
1954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라 - 리처드 N. 볼스 [1] 혜향 2009.07.14 2326
1953 [15] <나를 명품으로 만들어라> 수희향 2009.07.14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