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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일 22시 4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제레미 리프킨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1945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을 시카고에서 지낸 후 1967년 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학위 취득하고 터프스 대학의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 취득하였다. 1977년부터 'Foundation of Economic Trends (경제조류재단)'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이사장으로 있으며, 1993년부터 'Beyond Beef Coalition'을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워튼 스쿨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레미 리프킨과 그의 저서들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책은 <엔트로피>.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 개념이었다. 그 후 그는<노동의 종말>을 통해 정보화 사회가 창조한 세상에서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미아가 될 것이라 경고하는가 하면, <소유의 종말> 통해서는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한편 리프킨의 문명비판에는 환경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문명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육식의 종말>을 통해 육식을 비판하며 <생명권 정치학>, <바이오테크 시대>을 통해 생명 현상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생명공학이 21세기에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도 이런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

 

제리미 리프킨은 운동가로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그는 반전시위를 주동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운동 경험으로 인생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돈 버는 길을 버린 채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결성한 조직은 1971년에 만든새로운 아메리카 운동(New American Movement)’이었으며, 이 조직은 다음해에 ‘200주년 국민위원회(People’s Bicentennial Commission)’를 출범시켰다.

 

200주년 국민위원회 1975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포드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0주년 개시 행사에 4만 명의 시위 군중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원래 목표했던대중혁명운동까지 일으키진 못했다. 그는 ‘200주년이라고 하는 이슈가 사그러들자, ‘국민기업위원회(People’s Business Commission)’를 조직하여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기존 경제 시스템의 민주적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을 시작한다. 이 운동은 제법 성과를 거둬 리프킨은 일부 평자들로부터급진적 사상의 대중화에 가장 재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얻었다.

 

리프킨은 77년에,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웠다. 그가 처음에 주로 다룬 이슈는 노동문제였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그 해 3,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돔형 구조물로 이루어진 초현대식 강당에 정부관리, 기업가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유전자를 조작한 생물체의 향후 전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토론이 있었다. 당시 수백명의 시위대는 “우리는 복제되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be cloned!)”라고 외치며 반대 시위를 했는데 이 운동은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이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물공학의 반대자 중 한 사람으로서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리프킨은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곡물에서 유전자 특허, 나아가 생물학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생물공학적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리프킨의 운동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우선 탁월한 저술가다. 그의 저서는 이미 16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서 읽히고 있다. 게다가 그는 탁월한 연설가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솜씨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5년 간 10여 개국, 300개 이상의 대학에서 강연했다고 한다. 그는 TV 출연도 활발하게 한다. 그뿐인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시위를 주동하기도 한다

 

제레미 리프킨을 바라보는 비판의 시선

 

제레미 리프킨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논쟁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그가 내세우는 주장은 꽤나 자극적이고 강한 메시지였다. 특히 현대사회의 인간의 위대한 성취를 자랑스러워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가슴 쓰린 메시지였으리라

 

리프킨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리프킨이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만을 받았을 뿐 과학에 대해선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물고 늘어지면서 리프킨을 선동가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리프킨의 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미국의 언론인, 로널드 베일리이다. 그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본질적으로 리프킨은 자연을 신격화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우리는 사악한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한다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을 유입하는 것은 생명을 회복 불가능하게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공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사칭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연에 혜택을 준다는 관념은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20세기 말의 도시민들에게나 통용되는 낭만적인 환상이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단 2년 간 유럽 인구의 1/4을 사망케 한 흑사병을 전파시켰고, 지금은 에이즈라는 현대 전염병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 문명은 기아, 질병, 홍수, 그리고 가뭄으로 가득찬 변덕스런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생물공학에 반대하는 그의 열정은 현재의 과학은 이른바감성적 과학즉 소외된 인간이우리 환경과 참여적 관계를 갖게 되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그의 광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미래의 과학적 발견과 기술진보는 새로운 위험을 야기하고 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을 대하려면 이런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또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인간능력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낙관론자들은 리프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리프킨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능인 지적 탐구를 포기하고 그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 인간형인 미지의 우주에 조용히 안주하는 겁 많은 인간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만큼이나 그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거침없으며 타협을 모른다. 그런 그의 태도로 인해 이 시대의 저명한 물리학자, 생명공학자 들은 그를 감상적이며 인류를 나약하게 만드는 사이비 선동가라고 비하하지만, 그의 현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단순한 선동그 이상이 있음이 분명하다. 저엔트로피 사회를 지향하는 그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지친 서구문명에 동양의 자연친화적인 철학을 현대로 다시 불러와 재겹합시켰다. 그리고 과거의 세계관과 현대의 세계관을 넘나들며 우리가 앞으로 삶의 본으로 삼아야 할 세계관을 새롭게 그려냈다.

나는 그를 서양과 동양의 사상,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세계의 극적인 화해의 랑데뷰를 만드는 행동철학가라고 일컫고 싶다.

 

참고자료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시사인물사전 12: 환경주의자들』(인물과사상사, 2001 2)

제레미 리프킨: 운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 강준만

 

 

2. 내가 저자라면

 

<엔트로피>는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책이다. 지금까지 기계적 세계관 속에 살았던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오는 세계는 지금까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세계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에서 그는 최근 400여 년간 인류의 걸어왔던 행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을 하며, 더 이상 베이컨과 데카르트, 뉴턴의 망령에서부터 벗어나 저엔트로피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2법칙)’

 

저자는 물리학의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을 한 줄로 정리한 이 명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명제는 단지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경계 안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라고 설명한다. 엔트로피 이론을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음의 구성을 통해 꽤 설득력 있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세계관의 변화 -> 엔트로피 법칙 -> 새로운 역사관의 틀 : 엔트로피 ->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분수령 -> 엔트로피와 산업시대 -> 새로운 세계관 : 엔트로피 

 

1. <세계관의 변화>에서 저자는 인류의 세계관의 흐름을 짚어주고 있다. 17세기 이후 400여년이 그 전의 어느 시대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엔트로피의 증가를 촉진시켰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2. <엔트로피 법칙>에서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인 엔트로피 이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엔트로피 이론이 우주의 생성과 어떠한 연관이 있으며 우리가 왜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부연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류는 엔트로피의 방향은 바꿀 수는 없지만 속도는 바꿀 수 있음을 언급하며 후반부에 나올 현 인류에게 부여된 숙제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3. <새로운 역사관의 틀 엔트로피> 에서는 역사란 제2법칙의 반영이라는 명제를 전제로 인류의 역사를 엔트로피 세계관의 시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란 한 에너지의 최정점의 엔트로피를 거쳐(엔트로피 분수령) 낮은 엔트로피의 다른 에너지로 옮겨가는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인류의 경우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석탄, 석유, 기타 광물)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오래지 않아 모두 소진될 것이기 때문에 저엔트로피 에너지로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현대 인류의 엔트로피 분수령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여러 징후들은 기술, 외부비용, 기술의 수확체감 등의 단면과 함께 제시된다.

 

4.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분수령>에서 저자는 현 인류의 생존 위험성에 대해 한층 더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기계적 세계관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모두 바꿔놓았으며 현대인들은 에너지의 소비에 중독되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5. <엔트로피와 산업시대>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경제학, 농업, 수송, 교육, 보건 등 각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산업별로 설명하고 있다. 각 산업별로 제시한 내용은 대부분이 타당하고 설득적이지만, 일부 내용의 경우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 다소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채 제시된 경우도 있었다. 가령 ‘270칼로리 짜리 옥수수 깡통 하나를 만들기 위해 농부는 무려 2,790칼로리를 소비한다 (183 p).’ 의 경우와 같이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부분에 대한 근거자료는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6. <새로운 세계관 : 엔트로피>에서 저자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시대의 종말이 다가옴에 따라 다른 형태의 산업모델과 가치관을 추구하지 않으면 인류는 낭떠러지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저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와 제도, 종교, 과학과 교육의 개혁은 우리에게 부여된 당면과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저자는 <엔트로피 세계관>의 이해를 통해 절망에 빠진 세계를 희망의 공간으로 바꾸자고 말하고 있다. 비록 중간 중간에 논리적 근거가 취약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이야기를 풀어놓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역시 탁월한 문장가이자 사상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는 흐름을 읽고 분모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가령 1<세계관의 변화>’ 를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인류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리스인의 시선, 기독교인의 시선, 현대인의 시선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한다면 그리스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의 경우, 엔트로피의 법칙을 직감적으로 이해하는 시대였으나, 17세기 이후는 이성중심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신이 지배하는 세계관을 한판승으로 누르며, ‘역사는 끊임 없이 진보한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저자의 역사, 철학, 종교, 사회 등의 해박한 지식과 각각의 시대로부터 그 기저에 흐르는 공통적인 시민의식(세계관)을 끄집어 내는 능력에 매우 감탄했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창시자들로 소개된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존 로크, 아담 스미스는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때까지 나를 가르쳤던 익숙한 이름의 스승들이 아니던가. 나는 그동안 철학과 물리학, 정치학, 경제학에서 만난 그들의 이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지 그 이론의 깊은 뿌리에는 공통된 세계관이 흐르고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탁월한 저술가에게는 개별적인 객체들간의 숨겨진 연결을 파악하는 능력과 더불어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나의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며, 나의 입으로 세상을 말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시대의 경계를 넘어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능력 때문일까

초판이 발행 된지 30년이 된 책이지만 여전히 <엔트로피>는 현대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3. 내 마음의 글귀

 

프롤로그

 

[13]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이 책은 희망에 관한 책이다. 잘못된 환상을 깨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진리를 세움으로써 얻는 희망!

우리 문명은 미래는 물리적 제약 없이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며, 물질적 한계는 없다라는 모더니즘적 사고에 의해 성장해 왔다. 따라서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 문명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엔트로피 법칙은 인간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궁극적인 물리적 한계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세계관의 변화

 

[19] 세계관이란 것은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만큼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철저히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지식과 기술이 축적됨에 따라 세계는 더욱 가치있는 방향으로 전진해간다고 믿는다. 우리는 또한 개인은 독립된 완결체로서 존재하며,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과학적 관찰은 객관적이며, 인간은 항상 사유재산을 추구해왔고, 개인가나 경쟁은 항상 있어왔다고 믿는다

 

[20] 현대의 세계관이 형성된 것은 약 400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17세기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20] 아인슈타인은 엔트로피를 모든 과학에 있어 제 1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아서 에딩턴 경은 이 법칙이 전 우주를 통틀어 최상의 형이상학적 법칙이라고 말했다

 

[20] 열역학 제 1법칙-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 없다

열역학 제 2법칙 -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는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23] 엔트로피 법칙이 물질적 세계(모든 것이 유한하고 모든 생물체가 삶의 과정을 마치면 그 존재가 종식되는 세계)만을 다룬다는 것은 중요하다.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과 공간의 수평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정신적 차원은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철칙에 의해 지배되는 차원이 아니다

 

[24] 어떤 문명이 물질적 세계에 덜 집착할수록 인간은 물질세계의 속박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심오한 정신적 본질과 하나가 될 수 있다.

 

[25]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은 역사를 지속적인 쇠락의 과정으로 보았다.

로마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세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25] 그리스 신화에서 역사는 다섯 단계로 구분되는데, 각 단계는 앞선 단계보다 쇠퇴해 있고 살기도 힘들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시오도스는 이 단계를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 - 풍요와 만족의 시대인 황금시대가 가장 좋은 시기이다 - 로 구분하고 있다.

 

[26] 우리 현대인들은 일주일에 40시간 일하고 1년에 2~3주 정도 가지는 휴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렵채취인들에게 있어 이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27]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완벽하기는 하지만 영원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했다. 창조된 순간부터 쇠락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28] 결국 우주는 궁극적인 혼돈을 향해 가고, 이때 신들이 다시 나타나 태초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시킨다. 그러면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따라서 역사는 완벽을 향한 발전이 아니라 질서에서 혼돈으로 움직여가는 사이클의 영원한 반복인 것이다.

 

[2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좋은 사회질서는 변화가 가장 적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적인 상태는 이러한 쇠락의 과정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변화로부터 최대한 보호된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30] 중세 전반에 걸쳐 서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적 역사관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과정으로 생각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리스적인 순환의 개념은 버렸지만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역사는 분명한 시작과 과정, 종말을 가지고 있다. 창조, 구원, 최후의 심판이 그것이다. 역사는 계속해서 악의 힘이 혼돈과 해체의 씨앗을 지상에 뿌리는 것으로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원죄개념이다. 원죄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여지조차 박탈당한다. 인간이 역사에 뭔가 변화를 가하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중세사람들은 신이 모든 사건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완벽하게 질서정연한 구조물로 세상을 파악했다 기독교에서 신은 삶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신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목표도 없었고, 진보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뭔가를 남기려는 열망도 없었다. 신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역사가 존 랜들이 지적한 것처럼 중세의 기독교인에게 있어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순례자적 삶과 연관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목적은 신의 계획 실현에 봉사하는 목적과 연관지어졌다.

 

[31] 이 거대한 신학적 접대성 속에 개인의 자리란 없었다. 중세적 삶의 역사적 틀을 유지시켜준 것은 자유와 권리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였다.  인간의 목표는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사회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유기체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사회는 신이 이끄는 일종의 도덕적 생물체이고 그 안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32] 소르본 대학의 자크 튀르고는 1750년 어느 날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역사의 순환과 지속적인 쇠락을 거부했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이며, 각 단계는 앞선 단계보다 진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축적의 산물임과 동시에 진보하는 것이다. “ 튀르고는 끊임없는 변화와 움직임의 미덕을 역사에 도입했다.

 

[34] 기계는 우리의 생활방식이며, 우리의 세계관은 기계에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우주를 까마득한 옛날에 위대한 기술자()가 시동을 걸어놓은 기계로 생각한다.

 

[35] 현대인에게 있어 역사는 기술발달의 과정이다. 지구는 거대한 부품상점이다.

진보란 완벽한 기계를 만드는 일에 맞물려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 패러다임인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설정한 틀에 따라 산다.

 

[37] 18세기 중엽이 되자 기계 패러다임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설계로 통합되었다. 기계시대의 스위치를 켤 준비가 된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 세 사람의 공동작품이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들이 만든 사상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38] 그리스인들에게 과학이란 사물의 형이상학적인 를 탐구하는 것이었지만 베이컨은 학문이란 사물의 어떻게를 연구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올바른 과학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의 삶에 새로운 발견과 힘을 선물하는 것외에 아무 것도 없다. “

 

[40] 데카르트는 자연을 단순히 움직이는 물체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모든 질적인 것을 양적인 것으로 대치했고 중요한 것은 오직 공간과 위치이다라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저마다 자리가 있고 상호간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는 정밀한 것이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신념에 비춰볼 때 역사를 혼돈과 쇠락 과정의 전개로 파악하는 그리스적 세계관은 수학적이 아니므로 옳지 않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보다는 조금 낫다. 그러나 하나의 신이 삶의 모든 일에 끊임없이 참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의 질서가 하는 일을 정밀하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기계론이 세계관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자연의 법칙을 바꿔버리는 신 같은 것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데카르트는 신을 교묘한 방법으로 은퇴시켰던 것이다. 데카르트 이래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힘에 도취되었고, 이에 따라 신은 결국 잊혀졌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세계의 진리를 알아내고 그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그러자 뉴턴이 나타나 그 신념을 실현할 도구를 제공했다. 뉴턴은 기계적 운동을 설명할 수학적 방법론을 찾아낸 것이다.

 

[41] 기계론적 세계관은 운동하는 물체만을 다루었다. 왜냐하면 운동하는 물체만이 수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계관은 기계를 위한 것이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42]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기계론은 운동하는 물체의 시간과 공간관계만을 다룬다는 사실에 착안한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른바 시간, 공간 안의 일정한 장소가 확정되기만 하면 여러분은 특정 물체와 시간, 공간 사이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거기, 그 장소에 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위치에 관한 한, 이 문제에 대해 더 할 이야기는 없다. “

 

[42] 기계론적 세계관

Q 왜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활동이 뒤엉키고 혼돈스러운 것처럼 보이는가?

A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을 사회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 -> 자연의 법칙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조직에 적용되는가를 알아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

 

[43] 인간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얻었다. 사후세계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중세의 목표는 이제 사라지고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목표가 그 자리를 채웠다.

역사는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에서 뉴턴의 기계론이 대변하는 질서 있고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상태로의 지속적인 진전으로 정의되었다.

 

[43] 우주의 법칙과 사회의 기능원리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기계 패러다임 안으로 끌어들인 존 로크와 경제를 기계론 안으로 끌어드린 애덤 스미스였다.

 

왜 인간의 활동은 이처럼 혼돈스러운가?’ 그는 사회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사회의 자연적기반을 찾아 나섰다. 그는 신이 그 본질상 불가지하므로 종교는 사회의 기반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어떻게 통치의 적절한 기초가 된단 말이가.’ 로크는 말했다

각 개인이 종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합당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가 공공활동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된다.’

 

베이컨이 신을 자연에서 밀어낸 것처럼 로크는 신을 인간사에서 제거해버렸다.

 

[44] 사회는 단 한 가지의 목표만을 갖게 된다. 구성원의 재산축적을 보호하고 허용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로크에 따르면 순수한 자기 이익의 추구가 사회 구성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는 유물론적이고 개인적으로 흐르게 된다.

로크에게 있어 정부의 목적은 사람들이 새로 얻은 힘을 자연에 적용하여 부를 창출할 자유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45] 로크는 무한정한 확장과 물질적 풍요의 철학자가 된 것이다.

세계는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이다. 사람은 부를 창출할 의무가 있다

자연은 인간의 노동과 합쳐져 생산성을 가져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46] 트리클다운 이론 (Trickle-down)

개인적 생산물이 많을수록 사회 전체의 부는 커진다

 

[47] 철저하게 생산지향적이고 유물론적이었기에 로크는 미국 인디언들을 가차없이 매도한다

광대하고 풍요한 영토에 사는 왕의 먹고, 입고, 사는 모습은 영국 노동자만도 못하다.”

 

[47] 계몽시대 이래 개인의 생존 의미와 목표는 오직 생산과 소비로 전락해버렸다. 인간의 필요와 열망, 꿈과 소망은 모두 물질적 이익의 추구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47] 애덤 스미스에게 있어 효율성은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모든 인간활동의 기본은 물질적 자기 이익의 추구라고 믿었다. 각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따라 부의 희소성은 부의 잉여로 바뀔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존 로크가 사회적 관계에서 도덕성을 제거해버린 것처럼 경제에서 도덕성을 제거해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도덕성을 강제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의 법칙이 깨질 뿐이다.

 

[49] 이들이 주장한 기본 가설

첫째. 우주에는 정밀한 수학적 질서가 있고 이 질서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도출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자연의 것들을 잘 배열하여 우주의 질서와 같은 질서를 창출해내느냐? 그 답은 역학의 과학적 법칙을 이용하여 인간의 물질적 자기 이익이 증대되는데 가장 적합하도록 자연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더 많은 물질적 부가 축적될수록 세계는 더욱 질서있게 된다. 진보는 물질적 풍요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 되며, 이 물질적 풍요는 결국 질서있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이를 실천하는 도구이다.

 

[50] 기계론적 세계관이 최대의 승리를 누린 것은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후부터다. 다윈의 이론은 뉴턴이 제창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부록이 되고 말았다. 다윈 이론의 좀 더 피상적인 부분 몇 개가 채택되어 기계론적 세계관을 더욱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하버트 스펜서 같은 사회 철학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세계는 진보한다는 주장의 증거로 삼았다. 스펜서와 이른바 사회학적 다윈주의자들은 자연도태의 개념을 적자생존의 개념으로 변형했다.

 

[51] 적자생존

자연상태에서 각 개체는 다른 모든 생물체와 무자비한 전쟁상태에 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개체들은 스스로의 물질적 이익을 가장 잘 지킨 개체들이다.”

 

[51] 진보

기계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진보라는 개념이다. 가장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압축하면 진보란 덜 질서있는자연적 세계가 인간에 의해 이용되어 더 질서있는 물질적 환경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자연에 존재했던 최초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자연으로부터 창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51] 기계론적 세계관, 수학, 과학, 기술의 세계관, 유물론과 진보의 세계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관들은 이제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세계관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에너지 환경이 빈사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는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지난 400년간을 역사책에서 읽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 것이다.

 

2. 엔트로피 법칙

 

엔트로피 법칙

 

[55] 인류학자 막스 글루크만 Max Gluckman은 말했다.

과학이란 우리 세대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조차 지난 세대의 천재보다 앞서갈 수 있는 학문을 말한다.”

 

[56]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2법칙)

 

[57]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여기에 성공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에너지를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꾸는 일 뿐이다.

 

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여기서 벌금은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 Entropy이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58] 오염이란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된 유용한 에너지의 총량을 의미한다. 오염이란 엔트로피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59] 평형상태는 엔트로피가 극대점에 달한 상태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엔트로피(무용한 에너지의 총량)는 극대점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60] 지구상에는 두 가지의 유용한 에너지원이 있다. 하나는 지구 자체에 있는 에너지원이고 또 하나는 태양에서 흘러들어오는 에너지원이다

-> 전자는 양이 한정되어 있고, 후자는 총량에 있어서는 무한하지만 지구에 도달하는 비율과 형태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61] 재생이라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원을 희생하고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을 증대시키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62] 에너지 수준과 엔트로피를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집중도이다.

어떤 장소에 많은 양의 에너지가 있고 인접한 장소에는 매우 적은 에너지가 있을 경우 에너지는 항상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평형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동한다. 이 현상을 민주화를 향한 경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버트란트 러셀

 

[65] 과학계는 엔트로피 법칙이 지구상의 과학, 철학, 생명에 대해 갖는 의미를 시인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67] 한 곳에서 엔트로피 증가를 역행시키려면 다른 곳에서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에 결국 주변환경의 전체 엔트로피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주론과 제2법칙

 

[70] 대폭발 이론 - 조르주 르메르트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원이 폭발함과 동시에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주장

이 에너지가 계속 확장되어 분산된 형태가 됨에 따라 질서는 점점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엔트로피 극대점에 도달하여 열죽음이라는 최종 평형상태가 된다. 대폭발 이론은 제 1법칙과 제 2법칙에 잘 맞아 떨어진다. 우주는 완벽한 질서상태에서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해온 것.

고대 그리스와 중세 기독교도들이 역사를 보는 시각은 오늘날 우주론자들이 우주의 역사를 보는 시각과 공통점이 많다.

 

[70] 우주는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해서 쇠락과 혼돈을 향해서 움직여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지구의 역사는 그와는 정반대로 전개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그러니깐 지구의 역사는 혼돈상태에서 시작해서 점차 질서있는 세계로 진보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71] 대폭발이론과 제 2법칙, 그리고 우주의 엔트로피는 극대값을 향해 움직여간다는 사실, 열죽음 등이 재확인되었던 것이다.

 

시간, 형이상학, 엔트로피

 

[73] 고전물리학에서 시간은 과거, 미래 양방향으로 모두 갈 수 있다. 뉴턴적 의미에서 시간은 + - 부호를 모두 가질 수 있다.

 

[74]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비가역적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한 방향, 즉 앞으로만 흘러간다. 이 방향은 또한 엔트로피 변화의 함수이기도 하다.

 

엔트로피는 시간의 화살이다

 

[75] 시간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에만 존재한다. 소비된 시간의 양은 소비된 에너지의 양에 비례한다. 이것은 사용 가능한 실제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열죽음이라는 최후의 평형에 도달하면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76] 엔트로피는 우리에게 시간의 방향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속도를 알려주지는 못한다. 사실 엔트로피 과정은 시계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엔트로피 과정은 끊임없이 속도를 바꾼다.

 

[77] 역사는 예정되어 있는가, 또는 전개과정에서 사건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인간은 끊임없이 토론을 해왔다. 인간이 발견한 어떤 개념보다도 먼 길을 걸어 엔트로피 법틱은 이 의문에 대한 답에 접근한다. 시간의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제 2법칙은 우리가 하는 일의 한계를 설정한다.

우리는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엔트로피 과정이 발생하는 속도를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행하는 모든 활동은 엔트로피 과정을 가속화하거나 늦춘다. 우리가 삶의 방식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지구상의 유용한 에너지를 얼마나 빨리 혹은 얼마나 천천히 소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과학은 형이상학 및 윤리학과 만나게 된다.

 

생명과 제 2법칙

 

[78] “생명체의 성장에 따른 부분적인 소량의 엔트로피 감소는 우주에서의 보다 큰 엔트로피의 증가를 수반한다.” - 해롤드 블럼

 

[79] 생명체들은 주변환경에서 자유 에너지를 흡수하여 엔트로피 과정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여갈 수 있다. 이러한 자유 에너지의 궁극적인 원천은 태양이다. 즉 모든 식물과 동물은 태양에 의존하고 있다.

생명체는 주변환경의 질서를 파괴하여 자기 몸에 흡수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생명체는 평형을 향해 나아간다. 계속 소비만 하면 결국 평형상태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곧 죽음이다. 이것을 피하려면 우리는 주변의 넓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유에너지(마이너스 엔트로피)를 흡수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생명체와 제2법칙을 조화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평형 열역학이 폐쇄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폐쇄계는 주변환경과 에너지를 교환하지만 물질을 교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체는 개방계이다. 개방계는 주변환경과 에너지뿐만 아니라 물질도 교환한다.

 

생명체는 살아 있는 동안 결코 평형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평형상태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체는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평형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생명체의 주요 관심사는 엔트로피가 아니라 자유에너지의 흐름이다. -> 비평형 열역학

 

모든 생명체는 주변환경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변화시켜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자들이다.” - 버트란트 러셀

 

[80] 1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 2법칙에 따라 가용에너지는 먹이사슬이 한 단계 진행할 때마다 쓸모없는 에너지로 전환되며, 이에 따라 전체환경에는 더욱 큰 무질서가 발생한다. - 타일러 밀러

 

[81] 사람 하나가 생명체로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2,700만 마리의 메뚜기나 1,000톤의 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는 주변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창조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모든 종의 생물이 서로 다른 타입의 변환자로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 알프레드 로트카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은 어떤 생태계의 발전 초기, 그러니까 유용한 에너지가 아직 남아돌 때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주어진 생태계를 다양한 종의 생물들이 채우기 시작하면 이들은 에너지 흐름을 좀더 효율화함으로써 환경이 갖는 용량의 한계에 적응한다. 에너지 흐름이 극대점을 유지하는 초기 단계는 일반적으로 식민화 단계라고 불리며, 뒤에 오는 극소 에너지 흐름 단계를 절정 단계라고 부른다.

 

[83] 우리는 제 2법칙이 생명과 진화의 진정한 기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기 전에는 오늘날의 식민화 단계에서 절정단계로 옮겨가지 못할 것이다.

 

[86] 고대 그리스인이나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도 제2법칙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직관을 통해 제2법칙을 이해했고, 그 핵심진리를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도입했다.

 

역사와 엔트로피 분수령

[91] 행복한 사람은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 프랑스 속담

 

[92] 개인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행복은 공백상태를 남기고 위기는 발명의 시대를 남긴다.

 

[94] 역사란 제2법칙의 반영이라는 사실이다. 축적된 엔트로피로 인해 사회가 에너지원 자체에 대한 질적 변화를 꾀하는 때가 이른바 역사의 분수령이라는 시점이다. 바로 이 전환의 시기에 낡은 방식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회의 엔트로피 총량은 너무나 커져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방식의 기술이 태어나며 새로운 사회, 경제, 정치체제가 형성된다

 

[95] 에너지 흐름이 가속화됨에 따라 각 엔트로피 분수령 사이의 시간도 짧아졌다. 수백 년 밖에 지나지 않은 현대인들은 자원(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을 다 소진해버리고 이제 또 하나의 엔트로피 분수령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1인당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효율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을 줄이는 것으로 정의된다면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이란 간단히 말해서 유용한 에너지를 써버리는 것이다.

 

[97] 기계 패러다임은 끊임없는 성장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어 있다. 한계라는 것은 패배의 조짐이다. 우리 시대의 정신은 팽창과 정복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부딪히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새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점점 커지는 이 목소리는 한계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있어서 식민화 단계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98] 지구라는 폐쇄계에 내재하는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구할 수 있는 길이다.

 

[99] 식민화 단계에서 절정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야말로 생물종으로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가장 심오한 변화이다. 이제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최후의 에너지 분수령

 

[100] 13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서유럽은 엔트로피 분수령을 거쳤다. 중세의 에너지 기반이었던 나무는 점점 구하기 힘들어졌고 그 대안으로 석탄을 발견했다. 즉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경제기반의 변화야말로 중세에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산업혁명의 첫 장을 연 것이다.

 

[106] “경제발전 과정에서 인간은 원료와 그 원료의 추출방법을 끊임없이 바꿔야만 했다. 구하기 쉬운 원료에서 어려운 원료로 넘어감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복잡한 처리 및 생산기술을 이용해야 했다가장 광범위한 생택학적 맥락에서 경제발전이란 좀더 집중적으로 자연환경을 착취하는 방법의 발전을 의미한다.” - 리처드 윌킨슨

 

[106] 사실 이른바 더 나은 방법이란 에너지를 추출하기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다른 방법일 뿐이다. 새로운 방법은 궁극적으로 앞선 단계보다 더 많은 일 또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108] 환경의 변화는 항상 덜 유용하고 캐기 힘든 에너지원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111] 기술이 복잡해지고 그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우리는 점점 기술을 자연과는 독립된 것으로 인식한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또는 어떤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기존의 에너지원에 뭔가를 더해서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것처럼 기술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이다 사실, 기술은 에너지를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기존의 유용한 에너지를 소비할 뿐이다.

 

외부비용

 

[114] 외부비용은 엔트로피 법칙의 결말을 피해 가려는 손쉬운 방패일 뿐이다.

 

[116] 산업혁명 이전의 문명에서 기술은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에 한정되어 있었다.즉 기술은 도구에 불가했지 생활방식을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계 패러다임 안에서는 기술이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결정한다.

 

[117] 과학자 유진 슈워츠는 그의 저서 <기술 과잉>에서 기술사회를 창조하는 우리의 노력을 거대한 다람쥐 쳇바퀴에 비유하고 있다.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은 결국 문제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 모든 과정은 지수함수적으로 진행된다.

 

기술의 수확체감

 

[120] 파생기술의 단위 비용은 그 기술이 개선되어감에 따라 점점 싸진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계속 전파되어가면서 전체 시스템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은 늘어나고, 엔트로피 값은 극대점을 향해 나아가며, 에너지 흐름의 전과정에서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122] 에너지 흐름이 엔트로피 분수령에 도달하고 새로운 에너지 환경이 창출되면 과거의 에너지 흐름에 사용되던 낡은 형태의 기술은 급격한 변화를 겪거나 아니면 에너지원이 고갈됨에 따라 쓸모없게 된다.

 

제도의 발달

 

[125] 무질서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에너지를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무질서, 둘째. 개인과 집단 간 에너지 교환에서 발생하는 무질서, 셋째, 에너지 폐기물에 의한 무질서다

 

[128] 절정 상태에서는 작고 분권화된 기구가 선호되며, 식민화 상태에서는 크고 중앙집중적인 기구가 선택되는 것이다.

 

전문화

 

[129] 전문화는 증가하는 복잡성 및 집중화와 나란히 진행된다. 기술사회에서 인간을 위시한 모든 것은 확장되는 사회 메커니즘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131]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지나친 전문화는 종의 멸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어떤 종이 특정한 생태계 내에서 지나치게 전문화되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즉 전환에 대비할 수 있는 융통성과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관과 에너지 환경

 

[135]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을 손에 넣자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기댈 필요가 없으며, 자기 마음대로 세계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패러다임은 도전에 직면해 있고 곧 포기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인간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을 떠나 다시 한번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옮겨 가려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4.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분수령

 

[139] 미국인들의 에너지 소비행태를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 뿐이다. 그것은 중독이다.

 

[163] 편의를 위한 도구로 등장한 에어컨은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에너지 흐름이 유래없는 속도로 증가하는 가운데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에서 캘리포니아의 홀리데이 인 호텔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지역에 세워진 건물들은 창문이 열리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5. 엔트로피와 산업시대

 

[168] 오늘날의 인플레가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으로부터 유용한 에너지원을 끌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따라서 많은 비용이 요구됨에 따라 에너지 흐름 전 과정을 통해 변화, 폐기와 관련된 비용이 계속 상승한다. 그 결과 생산자의 입장에서든 소비자의 입장에서든 가격은 끝없이 상승한다.

 

[173] 세계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고전경제이론이 해결할 수 없음은 이제 명백하다. 200년 전 애덤 스미스가 현대 경제이론의 주춧돌을 놓았던 것처럼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통적인 기계 패러다임을 따르는 경제모델을 택하고 있다. 모든 경제정책의 배후에는 뉴턴, 데카르트, 베이컨, 로크, 스미스의 망령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179] 소비consumption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소비되는 consumed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은 보통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사용된 후 버려진다.

 

[180] 지구상에 미국이 또 하나 있다면 지구는 지탱할 수 없다. 중류층의 미국인 한 사람은 200명의 인간노예가 생산하는 것만큼의 일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벅민스터 풀러는 인간을 재생불가능한 자원으로 움직이는 200명의 에너지 노예의 주인으로 묘사했다.

 

농업

 

[183] 미국 농업은 인간이 고안해낸 영농방식 중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다. 소 한 마리에 쟁기를 매서 밭을 가는 농부는 기계화된 현대 미국의 대형 농장주보다 투입된 단위 에너지당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한다. .. 농부의 체력 이외에 여기에 투입된 모든 에너지를 합산하면 이것은 엄청난 환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185] 퍼거슨은 또한 이 모든 생물체가 토양의 지력과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 을 한다고 지적한다. 농약은 이러한 생물 자체를 죽일 뿐만 아니라 작지만 복잡한 이들의 생태계를 파괴하여 토양의 엔트로피 과정을 마구 가속화한다.

 

수송

 

[189] 우리의 주요 수송수단은 모두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로 가동된다.

 

[190] 오늘날 미국인 6명 중 1명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자동차산업에 고용되어 있다. 자동차는 화석연료 문화의 핵심적 부분이다

 

[191] ‘시간

자동차의 역할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여주는데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미국인들은 점점 더 멀리 있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석유위기가 닥친 후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낭비하고 있다.

 

[192] 고속도로와 자동차의 무서운 결합에서 발생하는 환경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도시화

 

[204] 도시가 팽창한다는 것은 에너지의 흐름이 커지고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무질서가 축적됨에 따라 도시의 통치기구는 늘어나는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비대해진다.

군대

 

[214] 결국 전쟁준비는 인간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미사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뿐이다. 파괴를 위해 사용하거나 고물이 될 때까지 보관하다가 폐기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미사일을 마드는 데 들어간 지구의 자원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는 꼴이다.

 

교육

[218] 우리의 직관이나 본능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진실과 좀더 주파수가 잘 맞는다.

 

[223] 입수가능한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은 적어진다는 것이다.결정을 내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 보인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정보 과부하라고 부른다.

 

[227]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이 메시지를 보내기보다는 메시지를 받고 듣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대를 키워낸 것 같다.

 

보건

 

[230] 치료를 통해 어떤 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건강문제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32] 오늘날 치료의학은 죽음에 이르는 주요 질병을 제거하는 데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고, 늘어난 평균수명에 대해 생색을 낼 근거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과거 150년간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주로 기여한 요소는 개선된 위생상태와 영양공급이다.

 

[236] 대부분의 질병은 환경에서 비롯된다. 질병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엔트로피가 증대함에 따라 축적된 폐기물로 인해 발생한다.

 

6. 새로운 세계관 - 엔트로피

 

새로운 경제이론을 향하여

 

[242]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에너지를 얻으려는 절박한 상태의 인간들이 전국을 채울 것이다

 

[243]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시대의 종말은 산업사회의 종언을 예고하는 것이다.

 

3세계의 발견

 

[244]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의 대부분은 빈곤한 제 3세계 국가에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자원이야말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좀더 균등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시켜줄 마지막 카드이다.

 

[245] 에너지와 물질의 소비를 극적으로 줄이거나, 군사개입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탈취하는 것이다.

 

[246] 미국이 전세계 자원의 2/3를 계속 소비하는 한 제3세계 사람들은 결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생활수준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248] 불행히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자원수출로 얻은 부를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화하는데 쏟아붓고 있다. 전세계의 재생불가능한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오늘날, 재생불가능한 자원을 급속히 소비하는 경제의 인프라를 개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서양식 발전개념이 제3세계에 도입되면 대부분 개발 이전보다 더 못살게 될 것이다.

 

[249] 고에너지 소비기술이 제3세계로 수출됨에 따라 이를 지배하는 사상도 함께 들어갔다. 3세계 국가들이 서양과는 다른 형태의 개발모델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의 재분배

 

[252]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 전체의 에너지 중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독점하면 이들의 축적된 부와 권력 때문에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용한 에너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 시대의 새로운 인프라

 

[255] 태양 에너지 시대로 옮겨가려면 사회 모든 측면에서의 경제활동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집중적이고 정체적인 개념(화석연료)에서 분산된 흐름의 개념(태양에너지)으로 에너지 기반이 바꾸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면 기존의 산업구조가 태양 에너지 시대와는 전혀 걸맞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57] 태양에너지에만 의존하는 체제로 전환하려면 우리의 기술과 경제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곧 검약과 탈집중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260] 우리의 미래 에너지원은 태양이며,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기술집약적이며, 자원 집약적인 태양 에너지 시설을 건설하려는 헛된 노력에 계속 매달려 자원의 고갈을 촉진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와 자원의 흐름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려는 에너지 기반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263] 태양 에너지 시대가 되면 우리는 더욱 더 고대세계의 생활리듬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와 제도

 

[266] 1977년 미국 순회강연에서 E.F. 슈마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형이상학의 재건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에 대한 우리의 깊은 신념을 분명히 밝히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큰 의문들은 우리를 기다리는 저엔트로피 시대에 부활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저엔트로피 환경에서는 인생의 목표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엔트로피 세계관의 윤리적 기준은 에너지의 흐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는 주장은 한 때의 슬로건이 아닌 최고의 진리가 될 것이다.

 

[268]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믿었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있다.’

 

[268]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절제, 단순함, 자발적인 가난, 한계의 인정 같은 것들이다.

 

[270] 산업사회는 생산의 목적이 소비에 있고 노동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지만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노동이야말로 의식의 계몽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우리는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아는 데 도움을 주는 활동으로 신성시된다. 저엔트로피 문화에서 노동은 수면, 명상, 놀이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된다. 노동없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273] 생태계 제 1법칙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284] 어떤 의미에서 45억이나 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를 엄청나게 변화시킨 결과 태어난 사람들이다.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의존한 산업시대는 인류역사의 0.02%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증가의 80%가 이 기간 중에 이루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85] 중요한 것은 현재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수뿐만 아니라 각 개인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개혁

 

[293] “세계를 자동기계로 보는 고전 물리학을 버리고 우리는 세계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는 그리스적 패러다임으로 회귀하고 있다.” - 프리고긴

 

교육의 개혁

 

[298] 교육은 측정보다도 과정을 중시하게 될 것이다. 세계는 고립된 인과관계의 연속체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운동과 변화의 시나리오를 품고 있는 상호연관된 현상의 그물로 파악될 것이다.

 

[299] 학문이란 조각가가 작업을 하듯 세상이란 재료를 깍아서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서 물려받고 또 그 안에 속해 있는 이 세계의 한계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2의 종교개혁

 

[301] 과거 미국인들은 두 번에 걸쳐 종교적 각성을 겪은 바 있다.

첫번째 1740년대 : 영국왕권에 대항하는 정치적 운동

두번째 1840년대 : 노예제도 폐지운동, 남북전쟁으로 가는 길

그리고 지금이 세번째로 대오각성하는 초기단계임

 

[303]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 접근방식은 생태계 파괴의 주요인이 되었다. 내세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재의 물리적 세계는 무시당했고 착취당하기까지 했다. 이 세계는 내세로 가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303] 오늘날 형성되기 시작한 창세기의 새로운 해석은 이렇다. 신은 하늘과 땅과 지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에 피조물들은 모두 중요하다. 죄악이란 신의 피조물을 신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을 말한다. 다른 방법으로 대한다는 거은 창조의 기본 취지와는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하고 착취한다는 뜻이다.

 

[304] 인간은 지상에서 신의 시중꾼으로 일해야 하며, 모든 피조물은 보전하고 보호해야 한다.

 

[305] 시중꾼 이론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한다. “왜 내가 자연의 질서를 돌보고 보전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신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신은 자연을 창조했고 인간에게 그것을 관리할 책임을 위탁했다.

 

엔트로피 위기

 

[312] 기존의 세계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대략 세 가지 유형의 반응

첫째. 낙관주의자

둘째. 실용주의자

셋째. 향락주의자

 

절망에서 희망으로

[328] 엔트로피 법칙은 아주 아름다운 것이다.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지배하는 달콤하고도 씁쓸한 최고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며,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을 알게 된다. 동시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얻는다.

 

[330] 엔트로피 법칙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는 저마다 독특하고 일회적인 것이라고 가르친다. 바로 이런 일회성 때문에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지구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구의 유한성과 함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한성도 깨닫는다. 지구의 취약함이 우리 자신의 취약함을 일깨워주는 것이고, 지구의 연약함이 우리의 연약함도 알려주는 것이다.

 

[332] 깨달음이란 뭔가를 경험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몸부림친다.

 

[334] 우리에게 남겨진 자원을 최대한 보전하고, 생성과정을 지배하는 자연의 리듬을 최대한 존중하는 길은 우리보다 앞서간 모든 생명과 우리 뒤에 올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 식민화 단계에서 절정 단계로 옮겨가는 첫 발자국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중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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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2009.08.02 19:01:14 *.205.179.252
숙인님 글을 보고 있으니 제 자신이 엔트로픽 책 한권을 보았다는 건방진 느낌까지 들정도로 글속에 빠져들었네요.

이렇게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엔트로피라는 책을 읽고 저또한 정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네요.   토머스 프리드먼 코드그린이라는 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 제레미레프킨 이라는 큰 산이 있었기에 코드그린이 세상의 화두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는 늘  과거의 지혜를 가진분들의 도움으로 늘 공존을 하지 않는가? 결국   과거의 역사적 인식과 그리고 통찰로 글을 적었던 분들의 글을 수천년이 흘러도 결국 살아서 꿈틀대고 그 영감을  후대에 받아서 또  한사람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 지식릴에이 향연
그 향연이 이곳 구본형 연구소에  향기가 가득하네요.

이곳에 들려서  그 향기를 맡을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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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8:42:14 *.246.196.63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책읽는 습관이 변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읽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하여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쓰게 되니
책 속의 내용이 제 언어로 바뀌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엔트로피> 책을 실제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제가 정리한 부분 이외에도 생각할 꺼리를 많이 제공해주는 책이더라구요.
<소유의 종말>도 함께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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