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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일 21시 48분 등록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서문

1. 미국을 현재의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것은 미국인들이 애지중지했고 한때 세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그 자체다. 아메리칸 드림은 성공하기 위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기회를 강조한다. 미국인들에게 성공이란 주로 물질적인 부를 의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물질적 출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리스크, 다양성,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맞은 더 넓은 사회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개척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은 케케묵은 꿈으로 오래전에 폐기돼야 했다. 그에 따라 ”미국의 정신“이 과거에 사로잡혀 쇠퇴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 태동하고 있다. 그것은 차세대 인류 여정에 훨씬 적합한 꿈으로, 점점 서로 연결되고 가까워져 가는 상황에 알맞은 세계화 의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퍼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deep play"(완전한 몰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활동)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p11~12)

2. 자가당착에 빠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바로 유러피언 드림. 유러피언 드림의 기본은 구식 서양 이념의 명예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내재적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장된 세계화 의식을 인류가 포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역사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 이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초월해 인류를 세계화 시대로 이끌어 주는 꿈이다. 요컨대 유러피안 드림은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16)

3.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시사하기 때문. 개인의 무제한적인 부 축적보다는 삶의 질에 기초한 문명에서는 현대의 발전을 가져온 물질적 바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평형상태와 안정을 유지하는 세계 경제라는 것은 사실 매우 급진적인 제안이다. 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전통적 방식을 거부할 뿐 아니라 역사를 꾸준한 물질적 발전으로 보는 사고방식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 평형 상태를 이루는 세계 경제의 목표는 재순환을 통해 자원을 채워 줄 수 있는 자연의 능력과 인간의 생산 및 소비 사이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높은 질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는 것이다. 이런 지속 가능하고 평형을 이룬 경제는 무한한 물질적 진보만으로 규정되는 역사의 진정한 종말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하나의 역사가 종식됨을 뜻하는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 미래에 대한 유럽인들의 새로운 비전에서는 개인의 부 축적보다 개인적인 변혁이 더 중요. 이 새로운 꿈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고양에 초점을 맞춘다. 유러피언 드림은 영토보다는 인간적인 공감대의 확장을 추구. 이 꿈은 18세기 합리주의 계몽 운동 아래 물질주의의 족쇄에 갇힌 인간성을 해방시켜 이상적인 새로운 미래로 이끈다.(17)

4. 나는 본능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인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매료되어 왔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나는 사회적 집단 책임과 세계화 의식을 강조하는 유러피언 드림 쪽에 끌리고 있다.(17~18)

5. 태동하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인류 최선의 노력이라고 나는 어느 정도 장담할 수 있다.(18)


“구세계”에서 얻는 새로운 교훈

1.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

(1) 꿈꾸는 사람들의 나라

-. 역사가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미국의 서사시’라는 책을 펴내면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것(23)

-. 유러피언 드림은 아메리칸 드림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대조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둘은 기본적으로 ‘자유freedom'와 ’안전security'에 대한 개념에서 판이한 시각을 보인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움의 의미에 대해 부정적인 개념을 견지.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자유를 ‘자율autonomy'과 연관지어 생각해 왔다. 자율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영역 밖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더욱 독립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자주적이고 스스로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됨으로써 자유로워진다고 믿는다. 부에서 배타성이 생겨나고, 배타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자유와 안전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해 그와는 다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유럽인들은 자유가 자율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embeddedness'으로 인해 보장받는다고 생각. 자유롭다는 것을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 더 많은 공동체에 소속될수록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상호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포괄성으로 안전이 보장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지만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메리칸 드림이 근로 윤리를 높이 사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여가 활동과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선호.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종교 전통 및 굳건한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철저히 종교와 분리되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동화주의를 표방. 미국인들은 이전의 문화 관계를 탈피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자주적 행위자free agent'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미국인들은 중요한 국익으로 인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세계 어디든 병력을 파견하려 한다. 유럽인들은 군사력 사용을 꺼리며, 주로 외교와 경제 원조를 통해 분쟁을 피하려 하고, 치안 확립보다는 평화 유지 작전을 선호한다. 미국인들은 대개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럽에서는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사람들에서부터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한 부류가 뒤섞여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철저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복리에 관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복리를 좀더 중시하게 된다.(24~25)

-. 아메리칸 드림의 으뜸가는 미덕으로 여겨졌던 것이 점점 더 약점으로 비치고 있고 심지어 인류의 염원을 성취하는 데 장애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현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부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옛 비전의 미흡한 점이 바로 새 비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27)

-. 지금의 글로벌화된 세계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다.(29)

(2) 선택받은 사람들

-.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미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가 공유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식될 수 있는 꿈이 아니었다. 그 힘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배타주의에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땅에서만 추구될 수 있는 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적인 맥락에서만 적용된다는 점이 그것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었으며, 미국이 성공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그런 배타성 때문에 시대에 뒤지게 되고 외면받게 된 것이다.(29~30)

-.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개념은 미국 역사를 통해 계속 이어져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 사상이 됐다.(31)

-. 미국인 대다수의 경우 종교적 가치관이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 문제에 대한 대응에 영향을 미친다.(34)

-. 미국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종교적 확신을 갖기 때문에 이 세계를 선과 악이 끊임없이 싸우는 전장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악에 대한 선의 견제 수단으로 실행되어 온 것도 바로 그때문.(35)

-.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다. 미국이 종교적 용어로 국제적 갈등을 규정하는 데 대해 유럽인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백악관의 그런 수사에 박수를 친다.(35~36)

-. 많은 유럽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계인들 모두가 미국적 생활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믿는다는 점이다.(36)

-.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화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범국가적 꿈이다. 유럽에서 국가적 긍지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보다 더 넓고 깊이 있는 상호 의존성을 포용하기 위해 국가 경계선을 초월한 정체성과 소속 의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37)

(3) 미국적 근로 윤리의 쇠퇴

-. 존 윈스롭이 아메리칸 드림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거기에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한 사람은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미국에 대한 프랭클린의 비전은 물질주의, 실용주의, 시장에서의 개인 이익을 강조한 유럽의 합리주의적 계몽 운동에서부터 나왔다.(39)

-. 프랭클린은 행복이 끊임없는 개인적 진보, 즉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뤄 내는 것에 의해 얻어진다고 믿었다.

  종교적 열정과 현실적 실용주의의 독특한 결합은 미국의 황무지 개척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고, 나아가 나중에는 고도로 발달한 산업 사회, 도시 사회, 교외 사회 건설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아메리칸 드림이 그토록 오랫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구 두 가지, 즉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을 추구했기 때문(40)

(4) 미국인들의 공공의식

-. 모순인 듯하지만 미국인들의 공공의식은 개인의 자유라는 뿌리 깊은 믿음을 반영하고 잇다. 처음부터 미국인들은 개인의 부 축적을 극대화하고 재산 운용에 대한 개인의 자율권을 보장받기 위해 세금을 적게 내고 지역 사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로 여겨졌다.(50~51)

-.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시민사회연구센터 소장 레스터 샐러몬

: 미국의 독특한 시민사회 전통이 개인주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51)

-. 미국인들의 공공의식을 유발하는 요인 가운데 많은 부분이 개인주의와 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대다수 유럽 국가의 시민사회는 훨씬 세속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개인의 자선”이라는 기독교 개념보다는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 책임”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52~53)

2. 새로운 기회의 땅

(1) 사회 경제적 신분 상승

  어느 때보다 점점 더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 대신 유럽을 택하고 있다.(57)

(2)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라”

-. 어떻게 기회의 땅인 미국이 소득 불균형과 빈곤 측면에서 선진국 가운데서 꼴찌일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보다 한참 아래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비즈니스와 상업 활동에 대해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태도를 취한다. 미국은 언제나 ’기회 균등‘의 나라였지 ’결과 균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격언처럼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야 한다.”(Sink or swim)는 것이다.(59)

-. 믿음과 현실 사이에 왜 이토록 큰 괴리가 있는 것일까? 그것 역시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개념. 다시 말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특히 정부의 간섭이 지나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기의 꿈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강인한 개척 정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60)

-.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가난이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 때문에 찾아온다고 믿는 경향이 유럽에서 강한 이유는 최근까지 유럽의 빈자들이 인종적으로 소수가 아니라 백인들이었고,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포에게 닥친 불운이 내게도 닥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의 곤경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61)

(3) 일하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일하느냐

-.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일하기 위해 사는 반면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의 37퍼센트는 주 50시간 이상 일하며 남자 근로자의 80퍼센트는 주 40시간 이상 일한다. 또 많은 미국인들의 경우 근로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반면 유럽에서는 근로 시간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74)

-. 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근로 시간 증가는 미국인들의 건강에 큰 타격을 준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심장마비, 뇌줄중, 암 등 스트레스 관련 질병이 증가 추세다.(74)

(4) 일자리

  희안하게도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적을 무시한다.(80)

3. 소리 없는 경제 기적

(1) 새로운 경제 수퍼파워의 탄생

  EU의 잠재력 대부분은 능률적이고 통합된 내부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자체의 능력에 달려 있다. 대륙 전체를 잇는 운송 네트워크, 통합 전기 및 에너지 공급 네트워크, 공동 통신 네트워크의 구축, 그리고 단일 금융 서비스 시장, 상거래에 관한 통합 규정 마련 등이 현재 초기 단계에 있다. EU는 운송, 에너지, 통신 부문에서 유럽 전체를 단일 첨단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트랜스 유러피언 네트워크”(TE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범유럽 교육 프로그램도 구상. EU는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청소년”이라는 세 가지 교육 프로그램 시행하고 있다.(86~87)

(2) 성공 측정 잣대의 신뢰성

-. EU가 2010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지식 기반 경제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목표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EU는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진척도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유럽 혁신 스코어보드(EIS)' 보고서를 매년 발표. 열일곱 가지 주요 경제 지표에 대한 EU의 상황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 지표는 혁신을 위한 인적 자원, 신지식 개발, 지식의 전수와 응용, 금융.생산.시장의 혁신 등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97)

-. GDP가 진정한 경제 상황을 말해 주지 않음. GDP는 1830년대 대공황의 절정기에 미국 상무부가 만들어 처음에는 미국의 경제 회복을 측정하는 잣대로 사용되었고, 그 다음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전시 물자 생산 능력 측정에 사용되었다. GDP의 단점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경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경제 활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99)

-. 미국의 GDP와 매년의 증가치 가운데 너무도 많은 부분이 미국인들의 복지를 확실히 증진시키지 않는 경제 활동으로 이뤄져 있는것(100)

-. 유럽에서는 누가 얼마나 가졌느냐보다는 삶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 대다수 유럽인들은 이 점에서는 매우 확실하다.(104)

-.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유럽과 미국에서 경험하는 ‘삶의 질’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것(104)

-. GDP에 대한 비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대체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나는 객관적인 관찰자라면 누구에게나 다음 사실이 분명할 것으로 믿는다. “유럽 합중국”은 아직 유아기에 있지만 여러 면에서 이미 미국을 능가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슈퍼파워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104)

(3) 삶의 질

-. 선진국 가운데서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다. 현재 미국인 4600만 명 이상이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자신의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OECD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개인당 의료비 지출이 높다.(2001년 개인당 4900달러였다.)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는 액수의 대부분은 높은 행정 및 관리 비용과 영리 의료보험 회사의 마진이 차지(109)

-. 미국의 비만율은 거의 전염병 수준이다. 미국인의 30퍼센트 이상이 만성 비만으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3억명 이상이 비만으로 분류된다. 허리 치수 증가의 주범은 미국에서 장려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정크 푸드(열량만 높고

영양가 없는 음식)와 스낵 문화다. 비만은 제2형 당뇨, 심혈과 질환, 암 발병의 주요 원인이다.(110)

-. EU 인구의 ‘진정한’ 경제 진보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좀더 정확한 도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유럽 사회 조사 및 복지 측정 시스템“ 개발에 착수.

  “삶의 질” 개념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 그들은 삶의 질을 “건강, 사회적 관계, 자연 환경의 질 같은 비물질적 생활 상황”으로 규정. 또 삶의 질에는 “실질적인 생활 조건”뿐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복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최초 연구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한 인사는 말했다.(112)

-. 미국인들은 경제적인 성장이 삶의 질을 보장해 준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적 성장 그 자체는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112)

-. 옛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누구나 가난을 딛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새 유러피언 드림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삶의 질 증진을 강조. 아메리칸 드림이 개인의 기회를 중시한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113)

-. 더 나은 내일을 찾는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유럽이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 유럽이 삶의 질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 성장과 개인 부의 축적에만 치중한 옛 미국식 모델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원대한 비전보다 사적인 이야기에 편안함을 느끼는 요즘 세상에서 유러피언 드림은 대담하게도 새로운 ‘합synthesis'을 만들어 냈다. 다원적인 시각 및 다문화주의에 대한 포스트모던적인 감수성에다 인류 전체의 새로운 비전을 통합한것. 새 유러피언 드림은 인류를 세계화 시대로 이끄는 꿈이다.

  유럽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깊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럽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과거에 대한 부인(否認)이라기보다 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의미. 꿈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뒤에 무엇을 남겨 두고 떠나는지 올바로 알아야 한다. 모든 여정에는 목적지뿐만 아니라 출발점도 반드시 있다. 유러피언 드림의 경우 그 출발점은 2000년대의  시작도 2차 대전 이후의 시대도 아니다. 그 출발점은 중세 말과 현대 초 사이의 여명기로 계몽 운동, 현대 과학의 태동, 개인주의의 개화, 개인 재산 개념의 확립, 시장 자본주의의 형성, 민족국가의 탄생 등 “현대 modernity"라는 제목이 붙는 사상과 관념이 확립되기 시작했을 때였다.(114~115)

-. 완벽하게 구현된 아메리칸 드림은 중세 말에 유럽 대륙을 뒤흔들어 현대를 앞당긴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라는 이 초기 두 세력이 혼재하는 형태다. 더욱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다음 미국 땅으로 옮겨 와 미국의 독특한 상황에 맞도록 개조된것(115~116)


“현대”의 형성

4. 공간, 시간, 그리고 모더니티

(1) 화성에서 온 미국인, 금성에서 온 유럽인

-. 휴대폰 기술이 유럽에서 먼저 성공했다는 것은 많은 사실을 시사. 휴대폰은 개인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휴대폰은 또 지리적인 제한에서 벗어나 공간적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면서도 시간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여기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인들은 독립적인 공간을 갈망. 각자가 자조, 자립을 추구하는것. 미국인들이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유럽인들은 포괄적인 공간을 추구. 가족, 친척, 종족 등으로 구성된 넓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것. 따라서 유럽인들에는 프라이버시가 서로 관계를 맺는 것보다 덜 중요. 또 미국인들에게는 시간이 미래 지향적이며 새 기회를 탐구하는 도구로 간주. 반면 유럽인들에게는 시간이 과거 및 현재 지향적이며 서로간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돈독히 하는 데 사용(121)

-. 오늘날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안전에 대한 이런 판이한 태도는 시장, 시민사회, 정부 등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인들은 빈민 구제를 위해며 사회민주주의와 공동 참여를 선호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자립의 미덕을 강조하며 시장 자본주의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유럽인들은 아직도 카를 마르크스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받는다.”는 말에 공감. 반면 미국인들은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논리를 신봉(123)

-. 세계화 시대의 공간과 시간적 현실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 옛 아메리칸 드림보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이 훨씬 적합한 것 같다.(123)

(2) 시공(時j空)에 대한 유럽의 집착

-. 글을 쓰고 읽은 것은 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인쇄술은 공동체 내부의 유대를 무너뜨리고 서로 먼 거리에 떨여져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을 혁신적으로 개선.

  또 인쇄된 책은 모든 가정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알려 주는 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대상을 확장(126)

-. 공간과 시간 인식의 변화는 중세 말 유럽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유럽인들의 삶을 바꿔 놓은 극적인 시공 의식의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편협하고 굼뜬 것으로 판명된 교회, 봉건 경제, 왕국은 서서히 근대 과학, 시장 경제, 민족국가로 대체되어 갔다.(127)

(3) 자연의 개척과 이용

-. 원근법을 통해 사람들은 주체/객체 관계의 새로운 공간 개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세상에 대한 각성”의 시발점이었다.(130)

-. 원근법은 인간의 의식을 수평적으로 바꿔 현세를 중시하고 각자가 속세의 삶에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131)

-. 자연이 수학적으로 파악되고 자원의 보고로 간주된 것은 중세에서 근세로 옮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133)

-.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경제에 적용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철학적 근거를 마련. 애덤 스미스는 데카르트의 은유법을 차용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을 통치한다며 경제는 저절로 올바른 기능을 찾아간다고 주장(136)

(4) 시간의 비신성화

-. 공간이 신성한 영역에서 실용적인 영역으로, 신의 창조물에서 자원의 보고로 바뀌면서 시간에 대해서도 유사한 비신성화 현상이 일어났다. 시간은 단 몇 세기 동안 완전히 세속화해 공간 활용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과학적 기준에 맞추었다. 계절의 변화, 느긋한 일일 리듬, 영구 구원을 위한 긴 기도 시간을 중시했던 중세인들의 시간관은 객관성, 합리성, 수학적 계산, 초연함, 활용도에 기초해 철저히 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했다. 시간의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과학화된 것이다.(137)

-. 중세 역사가 자크 르 고프는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 위대한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교회의 시간과 상인들의 시간이 충돌한 것은 당시의 정신적 역사에서 주요 사건 가운데 하나”라 고 요약했다.

  결국 시간 문제에 관해 굴복한 쪽은 교회였다. 상인이 승리함으로써 돈을 기반으로 한 경제가 태동. ‘공정가격’은 ‘시장가격’으로 교체되었고, 시장 자본주의가 부상했고 교회의 권력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

  시간의 개념은 중세 말과 근대 초 사이에 또 다른 방향으로도 변했다. 13세기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에 의한 근대적 시계의 발명과 ‘스케줄’의 도입은 인류의 시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아 시장 경제와 민족국가 통치로 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을 제공.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에서 인간사를 지배한 것은 달력이었다. 달력은 기간, 순서, 리듬,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문화적인 면에서 집단 행동을 일치시킴으로써 사회 통제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달력은 과거 지향적이며 특정 사건의 기념이 주요 목적. 달력 문화는 신화, 전설, 역사적 사건, 신들의 영웅적 업적, 위인들의 삶, 천문학적인 현상의 주기적 변화 등을 기념. 달력 문화에서는 미래가 과거에서 의미를 얻는다. 인간은 과거 경험을 끊임없이 되살리고 존중함으로써 미래를 구상한다.

  물론 현대 문화에서도 달력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중요성은 스케줄의 등장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스케줄은 시간 할당에서 달력보다 훨씬 큰 통제력을 갖는다. 달력은 1년 전체에 걸친 ‘매크로’ 시간을 규제하는 반면 스케줄은 초, 분, 시간 등 ‘마이크로’ 시간을 통제. 스케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다.(139~140)

-. 현대 달력은 종교의 색채를 띠지 않지만 역사 대부분에서 달력의 사회적 의미는 종교적 의미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전통적 달력 문화에서 중요한 날짜는 성스러운 날이었으며 그날은 특정 성일로 지켜졌다. 반면 스케줄은 생산성과 관련이 있다. 스케줄을 짜는 데 있어서는 종교적 역할이 거의, 아니면 전혀 없다. 중세가 끝나면서 시간은 생산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시간에는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순전히 실용적 의미만 남았다.

  조지 우드콕은 “한 문화나 문명이 무엇인가를 고안했다가 나중에 그것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시간의 개념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시간 개념이 생긴 데는 다른 어떤 단일 요인보다 스케줄의 영향이 컸다.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스케줄이 영구 구원을 준비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좀 더 잘 활용하는 데 이용되기를 원했을뿐 그 외 다른 목적으론 쓰여지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특히 스케줄이 현대 상업의 으뜸가는 도구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140~141)

-.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이 처음 도입한 ‘스케줄’은 단순히 새로운 시간 개념인 것만이 아니었다. 에비아타 제루바벨은 특정 활동을 위한 시간을 정하고 그것을 철저히 따르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사에 기계의 규칙적이고 집단적 리듬을 주입했다.”고 지적. 정치학자 라인하드 벤딕스는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을 “서양 문명의 최초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렀다.(142)

-. 15세기 후반 수도원에서 시계가 도난당하면서 곧 도시 곳곳에 시계가 등장. 거대한 시계는 도시 생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도시의 광장 중앙에 세워진 시계들은 교회의 종을 대신해 도시인들의 복잡한 삶을 인도했다.(143)

-. 초기 시계에는 문자반(文字盤)이 없었고 단지 시간마다 종이 울렸다. 시계를 의미하는 영어 단위의 ‘clock'도 ’종‘을 뜻하는 중세 네덜란드어 'clocke'에서 나왔다.(143)

-. “시계는 그 속성상 시간을 인간사에서 분리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루이스 멈퍼드는 말했다. 또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자 데이비드 랜즈는 시계가 “인간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말했다. 늘 생명체 및 물리적 현상, 해의 뜨고 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측정되던 시간이 순전히 기계적으로만 기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간 개념은 질을 양으로 대체했고, 자연 세계의 리듬을 기계적 자동 작용으로 바꿔 놓았다.(144)

-. 산업 현장의 리듬은 시계의 리듬을 그대로 따랐다. 근로자들은 자기 시간을 공장의 리듬에 일임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기계가 정한 속도로 일하며,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야 했다. 공장에서는 주관적인 시간 개념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객관적 시간, 다시 말해 기계적 시간이 최고였다.(145)

-. 이 새로운 산업 시대에는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정확한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시계가 없었다면 산업 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계로 인해 사람들은 시간을 외부적이고, 자율적이며, 연속적이고, 정확하며, 수량으로 측정 가능하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런 시간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생산 및 제조 방식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자연이 신의 창조물에서 인간의 자원으로 변하고, 고리대금업 법규가 달라지고, 돈 경제의 탄생과 함께 공정가격이 시장가격으로 대체되고, 스케줄과 시계가 도입됨으로써 유럽인들의 공간 및 시간 개념은 큰 변화를 겪었다.(146)

(5) 공간과 시간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여

-. 미국인들은 공간과 시간을 제어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개발했다. ‘효울성’에 대한 개념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현대식 효율성은 19세기 미국 땅에서 생겨나 곧 전 세계로 전파되어 인류의 일상생활방식을 바꿔 놓았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지는 수천 년이 넘었지만 19세기 들어 석탄과 증기를 이용한 동력원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공간과 시간의 지배자로 부상했다. 그로써 인간은 역사상 최초로 자연이 만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물질적 발전을 위해 공간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146)

-. 현대 미국의 특징을 형성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현대식 효율성 개념이었다.(147)

-. 효율성은 최소한의 시간, 노동, 에너지, 자본을 들여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생산량을 의미하게 되었다.(147)

-. 열정적 신자들이 거대한 미국 대룩에서 부딪힌 난관은 길들여 지지 않은 야생 환경이라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거기서는 현실적 생존이 영구 구원만큼이나 중요햇다, 그들은 끊임없는 생산을 강조한 칼뱅의 교리에다 계몽주의에서 강조된 합리적 행동, 기술적 우수성, 실용주의를 혼합함으로써 어려운 상황 아래서도 생존을 유지하는 동시에 신앙도 실천할 수 있었다.(149)

-. 비효율적인 것은 나태로 간주. 나태는 7대 죄악 가운데 하나. 바로 그런 구원적 의미 때문에 미국인들은 현대식 효율성 개념을 최초로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내내 효율성을 가장 열렬히 주창할 수 있었다.(150)

-. 미국인들은 효율성을 새로운 지침으로 삼고 복음주의자의 열정으로 공간과 시간의 재조정에 나섰다. 프레더릭 W.테일러는 현대 효율성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과학적 원리”원칙은 19세기 말 미국 산업계에 가장 먼저 채택되었고, 곧 이어 미국 사회 전반으로 퍼졌으며, 효울성 정신의 기초가 되어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150)

-. 테일러 시대 이후 행동은 언제나 거의 효울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효율성은 물질적 부와 경제 발전을 위해 천연자원과 인적 자원 둘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최상의 도구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효울성을 높이기 위한 생산 요인으로 변했다. 미국인들은 스스로 기계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자신을 재조정하면서 사실상 인간 활동의 모든 면에 엄격한 효울성 기준을 적용했다.(152)

-. 미국에서는 효율성이 행동의 주된 특징인 반면 유럽에서는 효울성이 하나의 중요한 보조적 특질로만 간주. 유럽인들이 개인 생활에 효율성 도입을 혐오하는 이유는 효율성이 본질적으로 보조적인 가치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효울성으로 따지면 기계든 인간이든 모든 활동은 생산을 최대화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그럴 경우 인간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154)

-. 이 모든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근본적 차이로 귀결.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미국인들에게 행복이란 개인적 성취, 물질적 성공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행복은 서로간의 돈독한 관계 및 공동체 유대감과 결부.

  미국인들은 공간 및 시간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효율성인 한 결코 유럽인들처럼 양질의 삶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약속의 땅이 높은 삶의 질을 상징한다면 ‘스톱워치’라는 길잡이만 갖고서는 그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155)

5. 개인주의의 발달

  중세 사람들의 삶을 현대인의 삶과 비교해 보면 15세대에 조금 못미치는 기간 동안 경천동지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적 가치는 대부분 물질적 가치로 대체되었다. 신학은 이념에 밀려났고, 신앙은 이성에 자리를 내주었다.(158)

(1) 프라이버시의 탄생

-.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사상 최초로 가족이 자녀 중심이 되었다.”고 설명. 19세기에 이르자 중세의 공동 가족 생활은 개인 가족 제도로 완전히 대체(165)

-. 의자의 개념은 명실공히 혁명적이었다. 그것은 막 생겨난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서 싹튼 자율적, 독립적 존재로서의 ‘개인’ 의식을 상징. 역사학자 존 루카치는 “집안의 가구와 함께 ‘마음의 가구(교양)도 발달했다.”고 표현. 의자가 유럽 전역에 널리 도입되면서 근대의 자율적 개인이 실제로 도래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것.(166)

(2) 부르주아 계급의 탄생

-. 개인 행동의 변화는 인간의 의식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옴(169)

-.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제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초연하고, 근면한 생활방식을 취했다.(170)

-. 미국인들은 겉보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생활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하나는 존 윈스럽이 설파한 종교적 열의와 영구 구원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강조한 실용적 세속주의, 합리적 행동, 물질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다. 개혁신학과 계몽주의 철학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했기 때문(172)

-. 미국인들의 자율적 개인 개념을 통해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일수 있고, 신앙 지향적이면서 합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상반되는 세계를 동시에 사는 것은 삶의 목적에 혼란을 줄수 있다. 종교 개혁적 측면은 영원한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고통을 경험할 것을 강조하지만, 계몽주의의 실용적, 합리적 측면은 바로 이 세상에서 인류 발전의 이름으로 행복을 추구하라고 유혹하기 때문(172)

6. 사유 재산 개념의 발달

-. 중세 말에서 근대 초 사이의 사유 재산제 발달과 법제화는 무한한 물질적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의 이상적 비전을 추구하는 데 기본 바탕이 되었다. 사유 재산권은 개인을 집단뿐만 아니라 자연과 분리하는 법적 근거 역할을 했다.

  사유 재산 제도의 확립은 유럽이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을 만하다.

  현대적인 시장과 민족국가의 개념은 사유 재산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174~175)

-. 유럽인들은 사유 재산권 개념을 자신들이 처음 만들어 냈지만 사회주의 개혁을 위해  그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유 재산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과 민족국가의 탄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미국과 유럽이 그 제도를 어떻게 달리 수용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 지금 유럽은 근현대의 양 기둥인 시장과 국가 개념을 초월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 경제 속에서 최초의 범대륙적 통치 체제로 옮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175)

(1) 중세의 재산 개념

-. 영토의 변화는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유럽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사람들이 땅에 예속된 지 약 1,000년이 지난 뒤 “인클로저”(공유지의 사유지화 법령)라는 새로운 법령이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역전시켰다. 그 이후 땅은 사람에게 예속되었고, 시장에서 사유 재산의 형태로 교환될 수 있었다.(177)

(2) 재산과 종교 혁명

-. 종교 개혁은 사유 재산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179)

-. 봉건 질서의 붕괴는 상인, 무역업자, 가게 주인 등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확립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

 루터는 직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calling'으로 파악함으로써 재산에 대한 자연법의 기초를 놓았고, 산업 시대를 낳은 자본과 부의 축적에 대한 정신적 버팀목을 제공

  루터는 성직자들의 엘리트주의적 고행을 비판하고, 신도들은 어떤 직업이든 지상에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의 관리인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주장(179~180)

-. 신교 윤리는 유럽 땅에서 생겨났지만 그것을 가장 철저히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미국으로 이주. 그들은 미국 땅에서 칼벵의 종교적 비전을 과학, 사유 재산권,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계몽주의 개념에 접목시켜 유일무이한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어 냈다.(181)

(3) 사유재산의 정당화

-. 헤겔은 재산을 욕구 충족의 수단 이상으로 간주. 더 깊은 차원에서 살펴보면 재산은 개인의 자유의 표현. 사람은 재산을 확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인격을 확장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넓혀감. 다시 말해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넓히는 것(186)

-. 인격과 재산의 긴밀한 관계를 일찌감치 간파한 마케팅 전문가들은 재산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수세대에 걸쳐 소비자들에게 주입시켜 왔다.(188)

(4) 내 것 vs. 네 것

-. 재산의 속성에 관한 사고의 변화는 유럽 대륙을 봉건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왕권 통치에서 민족국가로 이끈 다른 많은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재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유럽인들이 공간 및 시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수단이었다.(188)

-. 사유 재산 개념의 발달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개척하는 데 필수적인 정신적 도구 역할을 했다.(188)

-. 사유 재산권의 신성함에 기초한 사회라는 개념은 유럽 특유의 산물. 사유 재산권 주창자들은 재산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 그러나 나중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는커녕 자유를 얻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주장(189)

-. 복지국가 개념은 한쪽에는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귀족들이, 다른 한쪽에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양쪽을 모두 달랠 수 있는 타협의 길. 시장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부 가눈데 일부를 재분배하는 대신 사유 재산 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 핵심(194)

(5) 사유 재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착

-. 인구 밀도의 차이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197)

-. 미국인들에게 자유는 자율과 이동성 둘 다를 의미. 따라서 전체 가구의 25-35퍼센트가 5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1)

(6) 사유 재산권과 민주주의의 충돌

-. 사유 재산을 자유와 동격시하는 유럽의 계몽 사상을 가장 순수하게 따른 사람들이 결국 미국인들(206)

-. 사유 재산 제도에 대한 애착이 줄어든 것은 유럽의 경제와 정치 미래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208)

-. 재산의 개념이 소유에서 접근성으로 바뀌는 것은 민족국가의 통치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208)

-. 봉건주의 질서가 중세를 규정했듯이 자본주의 시장과 민족국가는 근대와 현대를 정의하는 핵심 패러다임. 근대 직전의 새로운 공간적, 시간적 변화가 중세의 종언을 불렀듯이 지금의 또 다른 극적인 시공 변화는 기존의 시장 경제와 민족국가 체제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적인 상업 네크워크와 EU 같은 대륙적인 정치 영역의 부상을 가속화하고 있다.(209)

7. 자본주의 시장과 민족국가의 확립

-. 대다수의 경제 활동은 전통적으로 집안에 기초를 두었다. ‘경제’의 영어 단어 ‘economy'의 어원도 ’집‘을 뜻하는 라틴어 ’ecos'다.(210)

-. 현대 시장이 굴러갈려면 토지, 노동, 기술 등 상품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이 전통적인 집안 배경에서 떨어져 나와 합리화, 추상화, 수량화될 수 있는 형태로 변환되어야 하고, 또 시장에서 가격 흥정이 가능한 재산이 되어야 한다.(210~211)

-. 이제 미국인들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순수 자본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애덤 스미스가 제시했듯이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신의 재산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속박 없는 시장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는 주된 무대. 자본주의 무대가 손상되면 아메리칸 드림이 타격을 받는다. 미국인들이 자본주의 이론의 원칙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자본주의 이론은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서 핵심을 이루며, 그것이 없었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을것.(211)

(1) 민족국가의 부상

-. 근대 이래 모든 민족국가들은 국가 기원에 대한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는 주로 영웅담과 시련담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전설은 종종 정성들인 의식을 통해 기념되기도 한다. 민족국가는 점점 미몽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세계에서 강력한 새 국민상을 확립해야 했다. 숭고한 과거를 공유하고 위대한 미래를 함께 누릴 운명을 같이 타고났다는 것이 바로 그 국민상(217)

-. 효울적이고 고른 범국가적 시장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문화적 다양성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것. 단일한 국가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수세기 동안 존재했던 다양한 향토 신화와 전통을 가차 없이 없애거나 억눌려야 했다.(218)

-. 모든 국민이 새로운 나랏말을 말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라마다 국가적 교육 체제가 필요. 그런 국가별 단일 교육 시스템이 생기자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에 관한 믿을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만들어졌다. 이 전례 없이 새로운 현상인 국가 표준 교육은 국민들이 국가 의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각 세대의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같은 언어로, 같은 방식으로 배우게 되자 국민들은 곧 자신들이 국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경험과 운명을 공유한다고 믿게 되었다.(219~220)

-. 국가 표준 교육은 공통의 언어와 공통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것 외에 더욱 미묘한 효과도 가져왔다. 국가가 획일적으로 시행하는 공립 교육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공간 및 시간 의식을 불어넣었다.(220)

-. ‘생산적인 국민’을 만드는 것이 모든 근대 국가에서 공립 교육의 주요 목표(220)

(2) 세력 강화

-. 국민 대표들은 루이 16세에 반기를 들고 따로 ‘국민의회’를 만들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 줄 헌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해 8월 급진파들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

  국민과 국가가 사상 최초로 하나의 통치 실체가 된 것이었다. 비로소 정부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에는 미국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으로 미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정치 실험을 했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실험이었다.(226)

-. 근대 민족국가로의 전환을 촉구한 요인들 가운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철도와 전신의 도입. 이 두 가지 기술은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에 유럽인들을 상대적으로 서로 격리시켜 온구시대의 공간적, 시간적 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렸다.(227)

(3) 최후의 진정한 신봉자

-. 미국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자본주의자들이며 가장 애국심이 투철한 국민이 된 것은 자유 시장 경제와 정부가 아메리칸 드림의 보증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 (230)

-. 아메리칸 드림이 없다면 미국인들의 국민 정서에서 그들의 결속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사라질것.(231)


■ 다가오는 글로벌 시대

8. 세계화된 경제의 네트워크 상거래

-. 네트워크 상거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전 세계를 포괄하기 때문에 국경에 의해 속박될 수 없다.(236)

-.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최선봉에서 위치한 것은 유럽 사회다. 새로운 미래를 배우는 세계의 교실이 바로 유럽인셈

  이 모든 제도적, 체제적 변화를 이끄는 것은 통신 혁명(236)

(1)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탄생

-. 새 통신 기술은 1차원적, 즉 직선적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을 바탕으로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연속적인 행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238)

-.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마누엘 카스텔스는 네트워크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 첫 번째는 디자인에서부터 부품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풋을 하청 받는 공급업체 네트워크. 두 번째는 생산 설비, 자금, 인적 자원을 공유해 제공하는 상품과 용역의 품목수를 늘이고, 시장을 넓히며, 리스크 비용을 줄이는 회사들로 구성된 생산업체 네트워크. 세 번째는 제조업체, 유통업체, 마케팅 채널, 최종 사용자를 연결하는 고객 네트워크. 네 번째는 업계 선두가 확립한 기술 표준에 맞추기 위해 특정 분야에서 가능한 많은 업체들을 끌어 모으는 표준 제휴 네트워크.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제품 라인의 연구 및 개발 분야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협력 네트워크(243)

(2) 협동 시스템

-. 네트워크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호 호혜와 신뢰가 필수적(243)

-. 네트워크 시스템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공식적인 협력만큼이나 비공식적인 관계가 중요(244)

-. 네트워크 시스템은 공유하는 다양한 전문 지식과 기술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골라낼 수 있기 때문에 창의력과 혁신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247)

(3) 재산 소유보다 소속 의식이 중요하다

-.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힘이 자유라면 그 잠재력은 영역의 한계에 둘러싸여 다른 사람과 단절됨으로써 발휘될 수 있는가 아니면 공동 영역에서 다른 사람과의 협력 관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가? 이 자유의 두 가지 정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옳으냐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임종’ 테스트다. 재산을 모으고 자율을 추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과 평생 서로간의 관계와 친밀함을 추구한 사람이 임종을 앞두었을 때를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자기 존재의 잠재력을 충분히 경험함으로써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네트워크 시스템은 비즈니스 모델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250~251)

-. 네트워크를 기초로 한 협력적 경제 모델을 일으킨 바로 그 조건이 정치 무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조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서는 민족국가가 더 이상 독자적으로 존림할 수 없다. 다국적 기업처럼 국가들도, 리스크 높은 세계화 사회의 현실을 더 잘수용하기 위해 협력 네트워크로 서서히 뭉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럽연합(EU)이 새로운 초국가적 통치 모델의 가장 진전된 사례다.(255~256)

9. 유럽 “합중국”

  EU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통치 체제다.

(1) 유럽이란 무엇인가?

-. EU는 자체적인 영토권이 없다. EU는 영토 범위를 벗어난 통치 체제다. 바로 이 점이 EU의 특성이다.(258)

-. EU는 영토에 속박받진 않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EU 가입 기준은 지리적인 조건보다는 실질적 가치에 근거(259)

-. EU는 진정한 프스트모던 통치 체제로서는 처음이다. EU의 형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260)

(2) 연합체 형성

-. 유럽 국가들은 2차 대전 후의 경제난으로 연합체 구성을 박차를 가했다. 거기에는 미국이 주된 자극을 제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태동시킨 브레턴우즈 협정은 미국이 자국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적 시장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미국은 자유 무역을 장려하는 보편적인 규칙을 세계에 부과하기 위해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를 확립(265)

-. 유럽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경제적 자원과 브레인을 공유해야만 어느 정도의 경제적 독립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266)

-. 경제적인 관점의 이면에는 유럽 국가들이 서로 뭉침으로써 수세기에 걸친 내부 전쟁을 마침내 종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다.(267)

-. 처음 유럽 공동체가 생겨난 계기는 2차 대전 후 유럽의 동/서 블록화와 그에 따른 냉전이었다. 따라서 그 원래의 임무는 소련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방호벽을 건설하는 것이었다.(268)

-.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실제적인 유럽연합(EU)이 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EU가 공동 시장을 훨씬 넘어서는 기구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EU는 세 기둥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회원국들은 1999년 1월까지 단일 통화 ‘유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둘째, 회원국들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포함해 정부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 셋째, 회원국들은 모든 회원국 국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간 사법 협력을 증진하고, 연합 전체의 이민 및 난민 정책을 통일하기 위해 법무 및 내무 규정을 확립하기로 합의. 또 회원국 수를 늘리기로 하고 중유럽, 동유럽, 지중해권 유럽 국가들의 회원 가입 신청을 받기 시작(268~269)

-. EU는 영토에 근거한 각 회원국의 권한을 초월하는 강력한 규제력을 가진 사상 최초의 범국가적 정부라고 볼 수 있다. 이 사실 하나만 해도 통치론의 새로운 장이 되기에 충분. EU의 정통성은 영토의 지배나 과세 권한, 또는 경찰 및 군 동원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기반으로 규정과 법령, 그리고 지방, 지역, 국가, 국제, 세계 차원의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과정에 의해 움직이는 행동 규범에 있다.(271)

(3) 새로운 EU 헌법

  EU 헌법은 그 초점이 국민이나 영토, 국가보다는 인류 전체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보편주의를 지향. EU 헌법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괄성을 증진하며, 인권과 자연의 귄리를 옹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 ‘심오한 놀이’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키며,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세계적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U 헌법 전체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이런 가치와 목표는 태동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기초를 상징(277)

10. 중심 없는 정부

(1) 피드백 혁명

-. 공산 정권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만드는 세계적인 정보 및 통신 기술의 힘에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종말을 맞았다.(282)

-. 소련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존재했던 중앙집권 통치 방식은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원칙을 모델로 했다. 제4장에서 살펴본 대로 테일러는 20세기 초 미국 산업계에 합리적이고 계층화된 지시-통제 메커니즘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었다. 곧 세계의 대다수 정부들은 그가 창안한 과학적 관리 모델을 통치 시스템에 채택(282)

-. 피드백 회로를 갖춘 ‘인텔리전트’ 정보 및 통신 기기가 개발됨으로써 기술의 속성이 변하면서 통치 체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283)

-.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 ‘사이버네틱스’는 ‘키잡이’을 뜻하는 그리스어 ‘키베르네티에스’에서 나온 용어. 사이버네틱스에 따르면 의도적인 행동은 두 개의 요소, 즉 정보와 피드백으로 나뉘며, 모든 과정이 그둘의 증폭과 복잡화로 이해될 수 있다.(284)

-.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따르면 모든 행동을 조절하는 ‘제어 메커니즘’이 피드백이다.(285)

(2) 과정의 정치

-. 새로운 통신 기술로 세계 곳곳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모두의 상호 의존성이 크게 높아졋다. 그에 따라 생성되는 인적 교류와 상호 작용의 양과 흐름을 기존의 민족국가 통치 체제로서는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없다.(289)

(3) 네트워크 통치

-. EU의 일상적인 통치 활동 가운데 점점 더 많은 부분이 매년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로 이관되고 있다. 그리하여 정부의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다. 합리적인 목표와 지시/통제 메커니즘을 가진 중앙 집권식 상의하달 통치 모델은 수평으로 조직된 네트워크에 적합한 ‘과정 지향적’ 통치 모델에 의해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이 경제에서 이미 그랬듯이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고 있는 것이다.(291)

-. EU는 우리가 지역적인 단계에서 글로벌 무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실험적인 통치 체제다. EU는 영토 내부의 재산 관계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계속 변하는 인적 활동을 관리. EU 안에서는 전통적인 정부와 대조되는 ‘다중심’ 통치치에 관한 이야기도 유행(292)

-. EU가 계속 변하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외적 성격이 주변의 변하는 활동 패턴에 적응해 계속 새롭게 재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멜레온처럼 스스로 계속 변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EU의 장점이다.(293)

-. EU 헌법의 비공식 별명이 “다양성 속의 조화”(293)

-. EU는 서로 다투는 세력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 순전히 규제만을 목적으로 하는 최초의 통치 기구(295)

-. EU는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EU는 무대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며 쇼를 감독하는 교섭 정부”. 그렇다면 EU는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297)

-. EU의 정치적 특징은 다양한 활동과 이해 관계의 흐름을 촉진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다.(297)

11. 시민사회에 대한 구애

  민족국가 시대의 정치는 시장과 정부라는 두 개의 중심 축을 따라 움직인다. 그와 대조적으로 EU의 정치는 상거래, 정부, 시민사회라는 세 개의 축 사이에서 이루어진다.(303)

(1) 잊혀진 부문

-. 문화 의식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각 집단의 사고방식에 적합한 새로운 발견이 나온다는 의미

-. 역사 전체를 볼 때 인간의 현실 경험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며, 그 이야기가 모든 진화적 변화를 위한 기본적인 문화 DNA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요점은 문화란 과거나 현재나 시장과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과 정부가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과 정부는 부차적인 존재다.(306)

-. 신세대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시민사회기구’(CSO:civil society organization)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306)

-. 시장 자본주의는 개인의 사리 추구로 공동선이 증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지만 시민사회는 정반대의 전제에서 출발. 즉,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더 큰 공동 사회의 선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복지가 증진한다는 개념을 기초로 한다.(308)

-. 시민사회의 모토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309)

-. CSO는 더욱 조밀해지고 상호 연결되니 세계에서 인류가 부닥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이상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309)

(2) 새로운 정치 파트너

-. 정부가 시장에서 분리되면서 국가의 힘이 계속 약해지고 있다. EU가 시민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 시대에서 통치 체제의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시도다.(310)

(3) 보편적 인권과 지역 문화 정체성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정치적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 과정에서 시민사회 부문의 참여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에는 넓게 분류해서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는 종교, 교육, 예술을 촉진하고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락, 스포츠, 놀이를 조성하는 조직들이다. 둘째는 목표가 훨씬 정치적이며 활동도 대부분 국경을 초월하며 보편적인 관심사를 다루는 권익 단체들. 셋째는 지역사회의 문화와 민족 소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로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관을 보존하고 생존과 성장을 위해 국내 및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것.(311)

  이런 시민사회 운동은 국경을 초월한다. 그들의 비전은 인류 보편적이며 그들의 목표는 세계적이다. 그들은 인간 의식 자체의 변화를 추구. 모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지구의 모든 생명체 집단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아이디어다. EU는 정치를 초월해 이런 운동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311)

-. 유러피언 드림이 흥미진진하면서도 문제가 많은 이유는 하나의 지붕 아래 보편적 인권과 편협한 문화의 권리 둘 다를 수용하려 하기 때문(314)

-. 유러피언 드림의 성공은 문화의 정체성, 보편적 인권, 통치 체제라는 이 3자 사이의 관계를 대립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12. 이민 딜레마

-. 유럽은 문화 다양성의 만화경(萬華鏡)이다. EU 주민들은 100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와 방언을 합해 여든일곱 가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유럽은 세계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다양한 지역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319)

-. 신세대 포스트모던 학자들은 글로벌 시장의 힘과 비인간적인 정치 기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다문화적 시각과 지방 토속 문화의 구체화가 그에 대한 교정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320)

(1) 이민과 EU, 그 허와 실

-.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럽의 문화는 수천 년 동안 같은 지역에 머물러 온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이 외국 출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 들어 유럽에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직후였다.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자 노동력이 부족해져서 남부 유럽에서 북아프리카에서 값싼 노동력을 수입(323)

  그러다가 1973년 석유수출기구(OPEC)의 석유 수출 제한으로 세계적인 불황이 기세를 떨치며 유럽 전역에 실업자 수가 늘어 갔다. 실업의 두려움은 정치적 국수주의에 불을 붙여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반이민 운동을 태동시켰다.

  베를린 장벽과 소련 제국의 붕괴 여파로 이민이 다시 증가(324)

-.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결혼은 두 가지 상반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듯하다. 하나는 독일 문화의 위축감을 심화시켜 국수주의를 부추기고 외국인에 대한 보복이 심해지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문화 전통의 융화로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새로운 대화 채널이 열려 적어도 혼합 결혼 세대의 2세들 사이에서 문화 장벽이 줄어드는 경우다.(325)

(2) ‘구세계’ 유럽의 인구 문제

-. 이민에 대한 유럽인들이 반발은 유럽의 장기적 복지 자체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글픈 사실은 향후 수십 년 안에 비EU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지 않으면 유럽은 비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고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326)

-. 문제의 핵심은 유럽의 매우 낮은 출산율이다. 유럽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출산율이 낮다.(327)

-. 회원국 수가 늘어나 인구가 증가한다고 해도 고령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327)

-. 유럽은 인구 고령화로 21세기 중반까지 경제적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경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젊은 근로자들은 자칭 “세대 정의generational justice" 구현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6년이 되면 노동력에 새로 유입되는 인구보다 은퇴하는 인구가 더 많아질 것이다.(328)

-. 어떤 식으로 대처하든 유럽의 인구 고령화는 유럽 경제에 점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329)

-. 유러피언 드림의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민 문제가 될것. 문화의 다양성과 표용성을 말로 부르짖기는 쉽지만 외부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자신들의 공간과 부를 나눠 갖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까지는 유럽인들이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느낀다. 다음 수십 년 동안 대규모 이민 유입이 없다면 유럽의 인구 고령화는 더욱 심화되어 ‘대(大)유럽 건설’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 경제가 세계 무대에서 버틸 수 있도록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인다면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정부 복지 예산과 문화 정체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330)

-. 집행 위원회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유럽의 노동 시장에서 특정한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유럽의 인구 고령화를 막거나 역전시킬수는 없다. 진정한 효과를 보려면 활발한 이민 유입에다 출산율의 대폭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330)

-. 유러피언 드림에서는 신앙보다는 인내심이 요구. 그 목표는 주도권 차지가 아니라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개인의 변화라는 겸허한 꿈을 이룰 기회를 갖는 미래 세계를 추구하는 꿈이다. 한마디로 말해 유러피언 드림을 이끄는 것은 젊음의 혈기가 아니라 노련하고 성숙한 지혜다.

-. 유러피언 드림의 성패는 주로 유럽의 현세대가 출산율과 이민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31)

(3) 이질적인 문화와 다양성의 존중

-. ‘과거를 털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이민 역학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이민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문화에 동화되려는 의지가 약하다.(332)

-. 동포 간의 세계적인 교류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문화는 더 이상 지리적 여건에 구속되지 않고 영토를 초월해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개인의 존재 의식은 장소보다는 사고를 기초로 하게 되었다. 문화도 경제와 정치 활동처럼 국경을 초월해 세계화되고 있다.(334)

-. 이슬람의 영향력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교가 스스로를 인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신앙으로 간주하기 때문. 이슬람 신앙은 다른 문화 또는 정치 체제에 대한 믿음을 대체.(338)

-. 점더 넒은 시각에서 보면 이런 문화 집단의 확산은 국가라는 틀안의 제한된 시스템으로서 ‘공공영역’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 다시 말해 국경 내부와 외부에 공히 존재하며 영토에 구속되지 않는 다양한 문화 집단들로 구성되는 진정한 글로벌 공공 영역이 구축되고 있다는 의미.

  예일 대학교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서로 다른 문화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 사태의 대부분이 통치 체제를 영토 및 국가와 결부시키는 기존의 정치 논리에서 탈피하지못한 결과라고 주장(340)

-. 공통의 영토도 없고, 애국심도 없고, 공통의 이념도 없다면 그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세계화된 세계에서 정치적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수정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다.(341)

(4) 다중 공간과 심원한 시간에서 살아가는 법

-. EU는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EU 국경을 경비하고 불법 이민 유입을 막기 위해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내용의 쉰겐 협정이 회원국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시행. 사실 그것은 분명히 모순. EU는 영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정치와 글로벌 공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343)

-. 영토를 초월하는 정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서로 경쟁하는 세력들을 공통의 목표 의식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것.(344)

-. 새로운 공간적 현실이 계몽주의 시대의 단순한 기하학보다 훨씬 복잡하다면 그에 수반되는 시간적 개념의 변화 역시 그만큼 복잡하다. 아메리칸 드림의 시간적 개념이 오직 미래 지향적이었던 반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시간적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의 시간 영역 전체를 단일 형태로 통합.(344)

-. 미국인들의 현실적인 생각은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뿐이었다.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였다. 미국에 정착한 대다수 이민자들은 미래의 보상을 위해 과거를 잊고 현재를 희생.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그보다 훨씬 야심적. 유럽인들은 자신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현재 이 순간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가까운 미래에 존속 가능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싶어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포용성,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의 꿈을 똑같이 존중하는 것에 기초한 정치 체제의 구축까지도 원한다. 그것은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펴더라도 보통 어려운 도전이 아니다.

  아무튼 현재 급진적으로 새로운 공간 및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태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거기서 결여된 것은 4억 5500만 명의 인구를 공동의 목표 의식 아래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다. 유러피언 드림이 실현되려면 그 접착제는 영토와 국가를 바탕으로 국민들을 결속시키고 있는 기존의 사회적 접착제보다 훨씬 강력해야 한다.(344)

13. 다양성 속의 조화

  유러피언 드림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며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인다. 문제는 과연 어떤 새로운 유대 고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해묵은 관념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유러피언 드림을 실현 가능한 보편적인 꿈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영토를 기초로한 의무와 재산권에서 탈피해 세계 전체의 집단 참여에 기초한 의무와 보편적인 인권에 애착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345)

(1) 공통 취약성과 세계화 의식

  인류의 공동 취약성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사상 처음으로 진지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347)

(2) 이성의 시대에서 공감의 시대로

-. 중세에 기독교적 영구 구원의 꿈을 활성화시킨 사회적 접착제는 신앙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물질적 진보를 위해 누구나 추구한 것이 이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는 공통된 취약성을 보호하고 세계화 의식을 갖기 위한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경험을 깊이 나누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공감은 언어처럼 생물학적으로 저절로 얻어질 수 있지만.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사 소통의 궁극적 표현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더 넓고 포괄적인 영역으로 공감을 확대하는 과정이라는 사실. 첫 단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공감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요인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주로 생물학적인 요인에 의해 이끌린다. 그러나 그 다음의 모든 단계에서는 인내심 있는 훈련이 필요. 공감은 우리가 특정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을 경험한 경우 그런 수용성이 가장 높다.(350)

-. 공감은 새로운 사회의 접착체이며, 보편적 인권은 세계화 의식을 증진하는 새로운 행동 규범. 그렇다고 해서 영구 구원과 물질적 진보를 이끈 신앙과 이성이라는 과거의 사회적 접착제가 지금은 쓸모가 없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온전한 세계화 의식은 이 세 가지 사회적 접착제를 특정한 순위 없이 전부 수용한다. 신앙, 이성, 공감은 전부 성숙한 인간 의식에 필수적인 요소다. 각각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13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 즉 ‘미묘한 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대의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신앙, 이성, 공감, 이 세 가지를 상호 보완적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합’을 만들어 내는 것.(351~352)

(3) 보편적 인권의 실천

-. 국적(시민권)의 개념은 세계화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크게 변하고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T,H.마셜은 1950년에 발표한 논문 ‘시민권과 사회 계급’에서 시민권,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발달해 온 과정을 세 단계로 분류. 시민권이 18세기에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19세기에는 정치적 권리를, 20세기에는 사회적 권리를 제공했다고 적었다.(353)

-. 각 시민권은 나름대로 국가의 영토 개념을 침해한다. 새로운 시민권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영토의 개념에서 탈피해 그 성격과 범위에서 명실공히 보편화된 귄리들이다.(354)

-. ‘시민 citizen' 이라는 용어 자체도 세계화된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에 적절치 않다. ’citizen'의 어원은 라틴어 'civis'로 ‘한 도시의 구성원’을 의미.(354)

-. 2차 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을 관장한 국제군사재판(IMT)의 조례는 주권 국가를 초월하는 도덕적 공동체에서 권리와 의무를 인정한 최초의 다자간 협정이었다.(355)

-. 1948년 UN 총회는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 그것은 모든 인류에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특정 권리와 자유를 세세히 나열한 최초의 국제 협약(355)

-. EU는 25개 회원국의 4억 5500만 인구에게 EU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각 국가 영토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아울러 유럽 인권 협약이 유럽인권법원과 유럽법원을 통해 모든 ‘EU 시민’에게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며, 그 인권은 전통적 국가가 부여하는 정치적 권리보다 우위에 선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EU의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학자 야세민 소이살은 “현재 유럽은 탈영토화한 인권 개념에 바탕을 둔 회원국 제도의 새로운 모델로 옮아가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358)

-. 보편적 인권은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을 법제화한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과 보편적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다. 꿈은 염원을 담고 있으며, 보편적 인권은 유럽인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한 행동 규범을 제시(359)

-.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보편적 인권, 네트워크, 다단계 통치 체제를 융합한 것. 인권은 네트워크의 활동을 감독하는 규범이고, EU는 그 규제 장치로서 권위와 도덕적 정통성을 바탕으로 세계화 의식의 꿈을 이루기 위해 관련자들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유도(360)

-. 재산권이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보편적 인권은 상호 관계에 포함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보편적 인권이란 개인의 존재가 무시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보증(361)

-. 만약 모든 개인과 그룹이 독특한 정체성과 상호 충돌하는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면, 인정받고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이나 그룹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다시 말해 연약성과 취약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투쟁을 인정하는것(361)

(4) 공감의 정치

-. 공감은 타고난 선천적인 성향일 뿐 아니라 학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후천적인 성향이기도 하다. 공감을 하려면 늘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 체제에 대한 다단계 네트워크 접근법이 중요한것.(362)

-. 다단계 통치 체제에서 다른 구성원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각자는 존중받고 인정받으려는 다른 구성원의 투쟁을 인식하게 된다. 다단계 통치 네트워크는 공감을 탐구하는 거대한 실험실인셈. 이 새로운 형태의 통치 체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꿈과 곤경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타협하려면 무엇보다 누구나 인정받기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것을 법제화한 것이 보편적 인권이다. 보편적 인권이란 여성이든, 소수민족이든, 다른 문화이든, 어린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든, 모든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선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363)

-. 유러피언 드림은 더 심한 분화와 더 깊은 통합의 욕구 사이에서 중용(中庸)을 찾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것(363)

-.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인류 발달사의 분화와 통합 과정에서 앞으로 닥칠 단계를 상징. 분화와 통합의 새로운 힘은 안으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양한 정체성으로, 밖으로는 경제의 세계화로 인간 의식을 이끌고 있다. EU는 그 사이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최초의 통치 체제 실험이다. 세계화하는 사회에서 수억의 유럽 인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가운데 인권을 둘러싼 투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364)

14.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

(1) 사형 제도

-. 외교 정책 수행에서 미국과 EU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은 사형 제도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이를 분석하는것(366)

-. 사형 제도보다 유럽인들을 더 긴밀히 결속시키는 이슈는 없다. 유럽인들이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19세기 미국의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이 노예 제도에 반대했던 것과 같은 철저한 믿음에서 비롯(366)

-. 2002년 유럽위원회는 전시나 임박한 전쟁 위협이 있는 경우까지 포함해 무조건 사형을 전면 금하도록 프로토콜6을 수정(367)

-. 미국인들 가운데도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며 그들도 유럽처럼 사형 제도의 폐지를 부르짖늦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국인들(세명 가운데 두 명 꼴)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대량 학살을 범한 자는 인류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유럽인들은 사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봄(368)

-. 독실한 기독교인인 미국인들은 용서에 인색. 범죄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는 본질상 보복적(370)

-. 미국인들의 사형 지지 성향은 개척 시대에서 비롯된 구약성서 식의 단호한 전통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선과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종말론적 비전도 반영. 많은 미국인들은 종말에 가서는 선이 악을 이기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국가의 정의로운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371)

-. 사형 제도 폐지에 대한 유럽의 열정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꿈과 밀접하게 연관. 과거 계몽 시대의 꿈이 문명화된 행동 기준을 확립하려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범세계적인 꿈은 공감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 행위의 규제에 그 목적이 있다.(372)

(2) 일방주의

-. 유럽인들이 미국 외교 정책의 뿌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자율에 관한 미국인들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에서 말하는 자유란 적대적이고 예측 불가한 세계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는것.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게 의지하거나 신세를 지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이 건국 초기부터 미국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의 중심 사상(372~373)

-. 미국 개척 시대를 다룬 모든 소설과 영화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칭송. 악에 맞서 싸우고, 자율과 독립으로 규정되는 자유를 추구하는 단순하고 친절한 사람...... 바로 그것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376)

(3) 판이한 세계관

-. EU 국가들은 국가 주권보다는 국제법을 최고의 귄위로 간주하며, 그 아래서 상호 협력하는 쪽으로 점진적으로 이동. 유러피언 드림은 자율이 아니라 포괄성을 추구(379)

-. 미국 정부가 주변의 모든 상황과 상충되는 주권 개념을 강화한다는 것은 기이한 패러독스. 그러나 거기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함. 미국인들의 독립 독행과 자율에 대한 의식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381)

-. 유럽 국가들은 점점 더 많은 주권을 EU와 국제 기구에 넘겨 주고 있지만 미국은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런 경향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 유럽인들은 서로간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거기에 깊숙이 포함됨으로써 자유가 신장된다고 느끼는 반면 미국인들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국제 협약과 기관에 주권을 양도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383)

(4) 영구 평화를 꿈꾸는 유럽

-.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수세기 전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95년 ‘영구 평화론’이라는 논문을 발표. 유럽의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거의 ‘성전(聖典)’으로 간주(384~385)

-.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며, 공감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럽의 지도자들이 최후 통첩보다는 협상을, 비난보다는 화해를, 경쟁보다는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EU의 목표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강대 체제를 유럽 대륙에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디를 비롯한 EU 지도자들은 주권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협력 관계를 확대하는 데서 초강대 체제를 추구. 이런 새로운 체제의 특징은 무력이 아니라 협상 기술, 대화를 위한 열린 마음, 그리고 분쟁 해결에 있다. 유럽의 새로운 정치에서 ’과정‘이 그토록 중시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유러피언 드림의 정수는 무력을 억제하고 도덕적 양심을 확립함으로써 인간 활동을 관리하는 데 있다.

  새로운 유럽은 순진함이나 극단적 낙천주의의 환상에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형제에게 가할 수 있는 잔혹한 행위에 대한 혐오감에서 태동(385~386)

-. 오늘날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대부분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기 시작. 그 첫 계기는 베트남 전쟁. 그때부터 세계인들은 미국적 모델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 9.11 사태 이후에는 세계의 여론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등을 돌렸다. 미국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오만한 ‘골목 대장’으로 본다.(389~390)

(5) 새로운 형태의 군

-. 유럽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은 두 개의 축에 의존. 하나는 기존의 국가 영토 방위에서 벗어나 초국가적 평화 유지와 인도적 개입으로 군사 전략을 재정립하는것.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국가들 간의 더욱 긴밀한 협력을 위해 경제 원조를 외교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것(391)

-. 2003년 선진국들의 개발 원조가 개도국의 경제 및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느냐 해를 끼치느냐를 기준으로 선진국의 순위를 매긴 결과를 발표. 거기서 고안된 것이 개발기여지수(CDI). CDI 기준으로 판단하면 미국의 순위는 선진국 가운데 거의 바닥권(393~394)

-. 좀더 온건한 사람들은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접근법 둘 다가 필요하며, 서로 보완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역할 분담 시나리오는 세계 도처의 분쟁 지역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실연(實演)되고 있다. “미국이 전투를 수행하고 유럽이 그 후의 평화 재건을 담당하는것”(399)

15. 제2의 계몽주의

(1) 입증 책임

-. 유럽인들은 GMO(유전자 변형 미생물)도입이 유러피언 드림의 기초가 되는 여러 기본 개념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414)

-. 또 유럽인들은 GM(유전자 변형)식품이 문화 정체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음식이 문화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럽인들의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음식은 언어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언어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414)

-. 리스크 예방에 관한 유럽인들의 이런 관심은 지구의 자원을 지속 가능하도록 개발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418)

-. EU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정치적 비전의 핵심으로 강조한 사상 최초의 통치 체제(418)

(2) 예방 원칙

-. 상업적 개발을 포기하더라도 자연을 지키는 것이 유럽인들의 사고방식. 유럽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질에서 자연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428)

-. 유럽인들의 심리는 언제나 ‘연결성’을 중시(429)

(3) 시스템적 사고방식

-. 20세기 들어 과학은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는 옛 개념은 사라지고, 그 대신 각 요소를 알려면 먼저 그 요소와 전체와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은 ‘시스템 이론’이라고 불렀다.(432)

-. 이 새로운 시스템적 사고방식은 새로 등장한 생태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어의 ‘ecolog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oikos'(가구)에서 나왔다. 생태학이라는 생물학의 새로운 분야를 처음 규정한 사람은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었다. 그는 생태학을 “유기체와 그 주변 세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과학”이라고 불렀다. 다윈의 진화론 모델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려는 개체들 사이의 투쟁에 중점을 두었지만 생태학은 그 개념을 반박. 생태학의 모델에 따르면 자연은 수많은 공생 관계로 이루어지며, 각 유기체의 운명은 경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433)

-. 지구가 살아 있는 온전한 유기체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지구 전체의 리스크와취약성, 안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435)

-. EU가 ‘예방 원칙’을 도입한 것은 상업적 개발을 포기한다거나 특정 경제 활동을 중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체를 유지하는 생물권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제1의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는 증거다.(436)

-. 신과학 운동은 상호 관계와 피드백을 중시. 따라서 그것은 상업 분야와 통치 체제에 스며들기 시작한 네트워크 사고방식과 흡사. 생태학과 자체 조절되는 생물권의 개념은 전부 상호 관계와 네트워크를 전제로 한다.(437)

-. 지금 우리 세계에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그 신과학 운동을 ‘제2의 계몽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과학의 원칙과 가정은 네트워크적 사고방식과 더 잘 어울린다.  신과학의 특성은 참여, 보충, 통합,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438)

-. EU는 지구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살아 있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비전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상 최초의 정치 기구인 것이 분명(439)

(4) 이상을 실천하는 유럽

-. 2003년 6월 EU는 21세기 중반까지 청정 수소 경제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발표. 수소는 추출 원천에 따라 환경에 유해한 ‘검은’ 수소와 환경 친화적인 ‘푸른’ 수소로 나뉜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다. 유럽은 ‘푸른’ 수소의 미래를 만들려고 하는 반면 미국 백악관의 계획은 수소를 얻은 주요 출처로 석탄과 원자력을 사용하는 ‘검은’ 수소로 미래를 장려하는것(441)

-. 프로디 위원장은 유럽의 수소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그것이 단일통화 유로의 도입 다음으로 유럽 통합에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소 프로젝트를 1960~1970년대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에 비유(442)

-. 농업의 미래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접근 방식이 이처럼 다른 것은 기존의 계몽주의 과학관과 생물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각 사이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는 이미 전체 농지의 절반 이상이 유전자 변형(GM)농산물 생산에 할애되고 있다.(443)

-. 유기농은 기존의 농업과는 완전히 다른 원칙에서 출발. 현지 환경과 융합되는 농사법을 사용하는 것이 유기농. 목표는 자율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는 것이다. 융합을 위해 농민들은 시스템적으로 접근한다. 작물, 곤충, 새, 미생물, 토양 사이의 공생 및 상호 보완적 관계를 확립하는것(444)

-. 유기농의 과학은 기존의 계몽주의 과학관의 모든 면을 거부. 그들은 환경과의 관계를 재확립하고 자연과 일치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과학을 이용(444)

(5) 동물의 권리

-. 1997년 EU 회원국들이 체결한 암스테르담 조약에 첨부된 동물 복지 규약의 두 단어. EU 회원국들은 “자각적 존재로서 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데 합의.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이 “자각적 존재sentient beings"라는 두 단어. 2002년 3월 독일 하원은 동물의 귄리를 헌법으로 보장한 세계 최초의 의회가 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446)

-. 독일 정부는 돼지 사육 농민들에게 모든 돼지를 하루 20초씩 손으로 만져 주고, 서로 싸우지 않도록 두세 개의 장난감을 우리에 넣어 주도록 권장(447)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 대학교의 행동과학자 스티븐 시비이는 인간과 동물이 뇌 구조와 뇌 화학적 반응에서 유사점이 많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물었다.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믿는다면 어떻게 감정이 인간 단계에서 느닷없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다른 많은 과학자들도 시비아의 그런 질문에 공감(449~450)

-. 우리의 공동 생물권을 이루는 모든 공동체 네트워크들이 수많은 공생 관계로 연결되고 얽혀 있다면 한 종에 대한 위험은 인간을 포함해 다른 모든 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가축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우병이 발생한 것은 농민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축의 사채를 사료로 사용했기 때문. 소를 소에게 먹인 것이 광우병 소동을 부른 원인. 결국 그 쇠고기를 먹은 인간들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생명을 잃었다.(451)

-. 동물에서 인간으로 질병이 퍼지는 문제를 보면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진다. EU의 새로운 동물 보호 법령 대부분은 동물이 우리 손에 의해 건강상의 문제에 시달린다면 그 효과가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동물과 인간 사이의 고결한 사이클을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452)

-. EU는 “동물 실험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령을 발표한 세계 최초의 통치 체제다.(453)

-. 동물의 권리를 증진하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좀더 균형 잡힌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이런 대담한 조치들을 도입하는 데는 그만 한 대가도 따른다. EU는 그런 조치를 취함으로써 동물 보호법이 허약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는 동물 보호와 동물의 권리 보호를 무역 상대국들에게 권유하고 있다.(453~454)

-. 동물의 권리를 고려하는 데까지 인간의 공감을 확대하는 것은 통치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다. 모든 존재가 생물권 내부 깊숙이 분리될 수 없는 생명체의 조직망에 연결되어 있다면,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진정한 세계화 의식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전체론적인 과학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조직망을 인식하고 보호하는 것이 필수적(454)

(6) 생태계의 재결합

-. 자연을 분리할 수 없는 생명체의 조직망으로 인식하는 것은 세계전역에서, 특히 유럽에서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는 급진적인 개념인 ‘초(超)국경 평화 공원’의 조성 운동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455)

-. 초국경 평화 공원들은 자연의 경계가 국경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경계를 초월하며, 하나의 온전한 시스템으로서 재결합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각국 정부들이 인정한다는 증거(456)

-. 자연 생태계가 통합된 일체로서 관리될 필요가 있으며, 임의적으로 정한 정치적 경계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시스템적 사고방식과 분석법이 과학 분야와 공공정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네트워크를 재결합해야만 지구의 자연 환경은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보존될 수 있다.(457)

-. 초국경 공원이 환경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평화 유지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폴란드와 벨로루시의 국경을 만들고 있는 두 국립공원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458)

-. 생태계의 재결합은 혁명적인 발상이다. 특히 자연과 경계를 국가간의 경계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울러 초국경 평화 공원은 근현대의 또 다른 기본적인 관념, 즉 사유 재산의 신성함도 거부한다. 평화 공원이 들어서면 ‘내 것 vs. 네 것’의 개념은 ‘우리의 것’으로 교체된다. 또 자연에 대한 소유권보다 접근권이 더 중요해진다.(459)

-. 보편적 인권 개념을 확장해 거기에 자연의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초국경 평화 공원(460)

-. 과연 EU가 각종 규제에 도입한 신과학 운동 개념을 구식 과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시장의 현실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신과학 시대로의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업계 자체가 연구 및 개발에 예방 윈칙과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처음부터 생태계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신기술과 제품,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460)

16. 유러피언 드림의 보편화

-. 유럽은 새로운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 품었던 이상적 세계관을 상징하던 표현]가 되었다,

-.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세대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지속 가능성, 심오한 놀이,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언 드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유럽 ‘합중국’이 얼마나 잘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이 효력을 잃고 정체성이 다층화하고 규모 면에서 세계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앞으로 사반세기 후에는 어떤 국가도 독립적으로 독행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유럽은 세계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세계의 현실을 가장 먼저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461)

(1) EU 모델의 수출

-. EU의 모델을 따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역은 동아시아 공동체다.(463)

-.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데 따르는 이점에 관한한 모두 한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적인 이익을 넘어, 장기적으로 정치 통합까지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공동의 유대감이 충분하냐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지난 2,000년 동안 끊임없는 반목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민족 간 또는 국가 간에 공유하는 철학적, 신학적, 문화적 유대감이 있었다. 그리스 과학, 로마법, 기독교, 문예 부흥과 종교 개혁, 계몽주의 과학, 그리고 1.2차 산업 혁명이 그 예다.(466)

-. 유교, 도교, 불교는 부분보다는 전체에 초점을 맞춘다. 서양인들은 그것을 시스템적 접근법이라고 부른다.(467)

-. 아시아인들의 사고방식은 상호 관계, 포괄성, 합의, 조화, 맥락적 사고를 강조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네트워크 세계와 글로벌 사회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 아시아적 사고방식은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개인적 책임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적 방식은 반드시 개인의 번영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전체를 위해 완전히 희생당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전체의 복지를 위해 개인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 억제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의 생각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다윈의 적자생존과 생존 경쟁 개념에 집착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아시아인들의 생각도 ‘집단 사고’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글로벌 세계에서는 아시아적 사고방식이나 미국적 사고방식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나 개인적으로는 유럽이 미국의 극단적 개인화와 아시아의 극단적 집단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그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유럽인들은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책임 둘 다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다. 유럽의 비전이 미국과 아시아의 세계관 가운데서 최상의 자질들을 융합할 수 있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서양과 동양 전부가 동경할 수 있는 이상적인 꿈이 될 것이다.(469~470)

(2) ‘직접적인’ 나쁜 행동과 보편적 윤리

-. 현재의 식품 생산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자들이 곡물로 사육한 기름진 육류를 무절제하게 섭취함으로써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암 등 소위 ‘부자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 반면, 제3세계의 빈민들은 가족을 먹여 살릴 식용 곡류를 재배할 땅을 확보하지 못해 ‘가난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년 20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관련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473~474)

-. 중요한 것은 파괴적인 인간 행동의 시스템적 결과를 다루는 그런 도덕적 캠페인이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현상이라는 사실. 시스템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도덕성을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더욱 극적이고 큰 재난을 가져오는 사건들이 발생해야만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도덕적 행위에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475)

-. 결국 인간의 반응은 다음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특정 활동이 가져오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해로운 결과가 인간 서로간 또는 지구에 대한 취약성과 책임의 공동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재앙이 불러오는 두려움으로 피포위(被包圍) 의식과 생존 전쟁에서 자신만 보호하려는 사고방식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인류와 세계 전체에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광대하고 포괄적인 새로운 도덕성을 우리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그 도덕성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 및 사물’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외양으로 나타나는 간접적 나쁜 행위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적 윤리관을 우리가 과연 확립할 수 있을까? 직접적인 이웃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속되어 있는 지구 공동체의 관계에서 과연 우리가 도덕의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글로벌 의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476)

(3) 인간 의식의 세 번째 단계

-. 인류는 자신의 기억 속 깊은 곳에 깊이 남아 있는 ‘바다 같은 일체감’을 되찾고 죽음을 속이기 위해 거대한 피라미드, 대성당, 장대한 마천루를 만들어 냈다.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우리의 집착이 그토록 강한 것은 우리가 유아 시절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경험한 풍요로움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479~480)

-. 계몽주의 과학, 시장 경제, 민족국가 통치 체제는 모두 인간이 자연 세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개인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더욱 자율적이 됨으로서 안전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적인 환상이었다. 이제 죽음 본능, 즉 자연을 정복하려는 공격적인 욕구가 기후 변화, 핵 확산, 빈곤 확대, 사회 혼란 같은 세계적인 위협의 형태로 돌아와 우리에게 재앙을 주고 있다. (480)

-. 바필드는 인간 의식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눈다. 그는 인간이 역사 대부분에 걸쳐 수렵 채취로 살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다가 농경 생활이 정착되면서 인간 의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야생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자연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아의식도 서서히 싹텄고 자율성 의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자아의식과 개인의 정체성이 등장함으로써 자연 세계와의 친밀한 교류는 더욱 멀어져 갔다. 세 번째 단계는 인간이 자유 의지로서 자연과 재결합하는 단계다. 바로 이 점에서 바필드의 아이디어는 유럽의 지식인, 과학자, 미래학자들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들은 세계를 존중되고 보호될 가치가 있는 생명체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인간 의식의 제3단계는 인류의 연계성을 ‘지상권geosphere'에서 ’생물권biosphere'으로 전환시킨다.(482)

-. 그러나 자아의식과 개성은 우리 존재의 한계와 죽음을 더욱 의식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비롯되는 불안이 또다시 우리 주변의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려는 공격적인 욕구에 불을 붙인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부풀리고 불가피한 죽음을 피해 보려는 노력이다.

  그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생명 본능과 죽음 본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해야 한다. 20세기 초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하나의 단서를 던져 준다. 그는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찬양하는 사람은 삶을 확대할 수 있다.”고 적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죽음과 화해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죽음을 막아보려는 의도로 자연(인간성 포함)을 지배하고 제어하고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다시 말해 죽음 본능을 떨려 버리겠다고 자의식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능하다. 죽음 본능을 발휘하는 대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재결합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아에서 다른 사람으로 관계를 확대하고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다양한 관계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482~483)

-. 자유 의지로서 자연과 재결합하는 것이 인간 의식의 제3단계가 그 이전의 단계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자유 의지로 자연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리는 생물권과 ‘바다 같은 일체’를 형성하는 동시에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483)

(4) 글로벌 인격체

-. 개인의 정체성이 수많은 ‘하부 정체성sub-identity'과 ’거대 정체성meta-identity'으로 분열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생물권과 재통합하는 것이 인간이 개인으로서 의지할 곳을 잃지 않고 ‘비존재nonbeing'로 전락하지 않을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484)

-. 다행스러운 것은 인류의 연결성이 증가하면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에 대한 개인적 인식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글로벌 연결의 시대에는 고정되고 독립적인 의 식대신 자신이 관계를 맺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사건에 플롯과 내용이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편의 이야기로서 자아를 파악하려는 새로운 의식이 필요하다. 거겐은 “자아가 관련성의 무대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야 우리는 포스트모던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486)

-. ‘간접적 나쁜 행위’를 막고 지구의 생명 유지 체제를 구성하는 많은 네트워크 관계를 조화시키는 새로운 글로벌 윤리에 시스템적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 의식의 제3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돋움의 성공 여부는 재참여와 재결합의 깊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자연과의 재결합은 기술적 장애물 없이 실시간으로 친밀하게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필드가 말하는 재참여는 깊은 공감 속에서 ‘다른 존재’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가리킨다.(487)

-. 우리가 행하는 모든 파괴적 행위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죽음에 둘러싸여 죽음에 대한 생각만 한다면 어떻게 생명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자연과의 깊이있는 재참여를 선택하고, 생명을 증진하는 관계들을 보호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약속하는 환경으로 주변을 채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모든 공감적 경험에 의해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계속 명심하게 된다.

(5)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죽음 본능에 갇혀 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488)

-. 미국인들은 소비와 죽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소비consumption'란 단어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졌으며 영어와 프랑스어 둘 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원래 ’consume'이라는 동사의 뜻은 파괴하고, 약탈하고, 정복하고, 소진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런 폭력의 의미를 담고 있는 ‘consumption'은 20세기 이전만 해도 부정적 의미만 갖고 '있었다.(489)

-. 미국에는 다른 면도 있다. 미국은 새로 오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삶의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또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책임을 진다. 미국인들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미덕이 개인주의의 바로 그런 다른 면이다. 그런 책임 의식이 죽음 본능을 떨치고 나와 생명 본능을 감싸 안는다면 미국은 또다시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490)

-. 인류의 미완성 임무는 지구를 구성하는 더 큰 생명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책임 의식의 확립이다. 미국인들이 확고한 책임 의식을 개인적인 부의 축적이라는 좁은 목표에서 세계 윤리 증진이라는 대의로 확대 적용한다면 아메리칸 드림도 태동하는 유러피언 드림과 양립할 수 있는 꿈으로 개조될 수 있을 것이다.(490)

-. 유러피언 드림은 인간 의식의 제3단계를 향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도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확실. 유럽인들은 새로운 약속의 땅, 즉 생명 본능과 지구의 일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한 청사진을 만들었다. (493)

-. 아울러 유럽인들은 문화 및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율과 독립에서가 아니라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높은 삶의 질이란 후손들을 위해 지구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것까지 포함된다. (493~494)

-. 유럽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 일한다. 유럽인들은 직업 경력보다 심오한 놀이,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결집을 중시(494)

-. 나는 유러피언 드림이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495)

-. 마지막으로 개인적 책임 의식이라는 문제가 있다. 개인적 책임 의식은 미국의 강점이지만 유럽에는 약점이다. 새로운 여정에 필히 수반되는 폭풍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개인적 책임 의식이 강하지 않다면 , 그런 법령과 행정적 조치나 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유러피언 드림은 좌초하고 말 것이다.(495)

-. 지금 내가 갖는 가장 큰 우려는 유럽인들의 희망이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지탱하기에 충분한지 여부다. 꿈에는 낙관론이 필요하다. 자신의 희망이 성취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희망과 낙관론에 넘치지만 유럽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EU라는 새로운 연합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낙관론을 편다. 유럽인들이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순진한 낙관주의를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모두 내 말을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양쪽 다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인들은 인류와 지구를 위해 집단 책임 의식을 좀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한다. 유럽인들은 개인의 행위와 관련해 개인적 책임감을 좀더 가져야 한다. 미국인들은 좀더 신중하고 조절된 전망을 가져야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좀더 희망적이고 낙관적이 되어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양쪽 꿈의 정수를 공유하면 우리는 서로 손 잡고 인간 의식의 제3단계로 활기 차게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496~497)

-. 유러피언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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