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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일 10시 2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 1943, 1, 26 -)

미국의 경제학자, 사회 비평가로 1943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경영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법과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과학기술이 폭주하는 사회에 대항하는 활동가이며, 그는 사회운동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또 기업계, 노동계, 시민운동 분야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도 자주 강연을 한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20여 나라의 500여 대학에서 강연을 했으며, 1994년부터는 워튼 경영 대학원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인과 고위 경영자를 상대로 과학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이것이 세계 경제, 환경, 문화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강의하고 있다.


이 밖에도 비영리 조직인 워싱턴 경제동향연구재단 (Foundation on Economic Trend/FOET)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으로서 미국 및 국제적 공공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의 공공 영역을 수호하기 위해 활발한 계몽운동과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히 집필 작업을 해 왔다. 15권의 책을 지었으며, 그의 책들은 16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리프킨은 직선적인 세계관을 거부하며 <엔트로피>, 생명권을 중심으로 놓는 정치학을 주장하며 <생명권 정치학>, 생명공학 기술의 폭주적인 발전과 그 성과를 기업과 국가가 독점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바이오테크 시대>, 육식의 팽배가 얼마나 생명권을 파괴하는지를 고발하며 <육식의 종말>, 또한 정보화의 진행에 의해서 기존의 노동 양식은 종말할 것이라며 <노동의 종말>, 소유에서 접속 중심의 자본주의의 재편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소유의 종말>을 저술했다. 이 모든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인간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의 전체상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무서운 이윤 추구 논리를 비판한 학자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구체적, 실증적으로 비판하기 때문이다. 리프킨이 글을 쓰는 방식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 쓰는 빌 게이츠, 앨빈 토플러, 존 네스빗 같은 저자의 미래 전망서 들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는 단편적인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며 사회적 전망과 문명을 거시적으로 통찰한다.


이러한 사회 운동에 참여하다 보니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치열한 반대운동을 벌여 식품업계로부터 식품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타임‘지로부터는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로 불리며 비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리프킨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와 폐혜가 벌어지기 전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자꾸 나와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을 벌여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자신의 소신을 감추지 않는 이 시대의 보기 드문 현자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잇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데 쓰이기 시작한다. (9)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 (10)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 (10)


시장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11)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11)


반면 지적 자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11)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12)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사용자는 이런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중요한 아이디어, 지식, 기술에 접속할 수 있다. (11/12).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13)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14)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14)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 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 하는 것이다. 놀이의 내용과 접속권을 놓고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은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이다. (15)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체험'이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15)


이제 상업 영역은 서비스 중심에서 체험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강조점이 바뀌는 중요한 변환기에 있다. 문화 생산은 더 많은 인간의 활동을 상업 부문으로 끌어 들이는 것을 핵심적 사명으로 삼아온 자본주의 생활 방식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16)


문화적 시간은 기울고 인류는 영리적 고리를 통해서만 문명을 지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탈근대 사회의 위기이다. (19)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 하는 것이다. (19)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21)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21/22)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핵심은 연결성이다. 전자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국경선과 장벽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2)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집단의 힘을 이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 자기 회사를 단단히 박아두어야만 각 기업은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업계에서 말하는 윈윈 전략이다. (33)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제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며 제품 수명이 짧아지는 상황에서 대기업은 위에서 자금과 배급망만 장악하고 유형자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부담은 소기업에게 떠넘긴다. (44)


전자 상거래가 주도하는 급변하는 세계에서 기업은 변신에 능해야 한다. (46)

접속의 시대에 기업의 가장 큰 불안은 경제적 기회를 낳는 거미줄 같은 상거래망에 끼여들지 못하는 것이다. (46)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46)


우리는 시간과 정신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상품으로 판매되는 지적 자본주의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47)


경제 활동의 중심부에서는 인간의 경험이 판매되고 구입될 것이다. (47)


3. 무게 없는 경제

자본주의 체제의 모든 영역, 모든 단계에서 재산 형태의 물리적 자산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 재고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업은 원자재를 쌓아두기 위해 거대한 창고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소매점에서 판매되면 즉시 재주문 정보가 공급자에게 온라인으로 입력되고, 제조업자는 몇 시간에서 길어야 2,3일 안에 물건을 소매점에 공급한다. 창고는 불필요하다. (52)


많은 소매점들은, 재고나 부동산 같은 물리적 자산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어 총경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가상 점포와 경쟁하는 데 점점 애를 먹고 있다. 무게 없는 상거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온갖 유형의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많은 소매점에 점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53/54)


부동산이 일부 업종에서는 짐이 되고 줄이거나 없애야 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하는 추세의 중요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56)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돈도 물질성을 잃어버린다. (56)


새로운 사이버스페이스의 경제에서는 돈의 탈물질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56)


재산과 돈의 탈물질화,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재고를 없애고 부동산을 털어내려는 안간힘, 개인 저축의 소멸, 이런 것들과 함께 나타나는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의 형태이며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자본 자체가 많은 산업에서 부차적 지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63)


기업들이 구입보다 리스를 선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장 상황의 변화에, 그리고 기존의 설비가 쓸모없어졌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67)


모든 분야, 모든 업종의 기업이 자신의 핵심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자산을 앞다투어 과감하게 처분하고 있다. (69)


아웃 소싱 연구소에 따르면 아웃 소싱은 '기업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독자적이며 울타리로 둘러 쌓인 낡은 기업 관념은 복수의 파트너들이 업무적으로 깊숙이 얽히고 공식, 비공식의 상호 관계를 맺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70)


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71)


첫째, 아웃 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71)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 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73)


아웃 소싱 열풍은 새로운 유형의 기업이 전문 틈새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75)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사업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경제 활동의 공유라고 할 수 있다. (77)


이 새로운 논리를 네트워크 경제에서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다른 첨단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도 무형자산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78)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사들이는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선의, 아이디어, 재능, 경험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에 있다는 점이다. 작가이며 언론인인 프레드 무디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공장 자산은 직원들의 상상력이다’라는 말로 핵심을 찔렀다. (78)


유형 자산에서 무형 자산으로 가치가 이동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78)


21세기의 경제는 정보과학과 생명과학, 즉 컴퓨터와 유전자가 함께 이끌어나갈 것이다. (81)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산업 시대의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데 빠져들어 있었다면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84).


산업 시대가 우리의 물질적 생활을 키워주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양식을 준다. (84)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84)


4. 지적 재산의 독점

자본주의는 시장을 등지고 네트워크 형태로 스스로를 개조하고 있다. (86)


사업 방식의 체인화는 비교적 역사가 짧다. 여기서 체인으로 묶이는 것은 사업 개념이다. 모기업은 자신이 보유한 개념과 상표 같은 무형의 자산이 산하 체인점의 공장, 시설, 기계, 원료 같은 유형 자산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특히 서비스업체는 자신의 영업술과 상표를 하나로 묶어 지역 사업가에게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89)


지방 점포 하나하나는 본사의 판박이처럼 운영된다. 모든 지역에서 본사와 똑 같은 이미지로 포장되고 운영된다. 체인에 가입한 점포는 본사에 보통 1만 2천 달러에서 10만 달러의 라이선스료를 내다. 본사는 별도의 돈을 받고 해당 점포에게 설비, 교육,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한다. 건물 임대료, 시설비, 보험료와 각종 공과금, 인건비는 모두 가맹점이 부담해야 한다. 체인 가맹점은 또 총매출의 5-12퍼센트를 모기업에 내야 한다. (89)


체인화가 시작되면서 대기업은 소기업을 지역의 대리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 업체가 되었고 서로가 합의한 계약 내용에 따라 엄격하게 정의된 네트워크 안에 묶이게 되었다. 지방의 소기업은 대기업의 경쟁력이 뛰어난 분야에 참여하는 대가로 자율성을 포기했다. (90)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체인화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체인은 20세기 초엽 현대적 주식회사가 등장한 이후 새로 등장한 가장 중요한 사업 조직 형태가 되었다 (90)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소유주들은 프티 부르주아 즉 소규모 자영업자와 매니저 사이의 모순된 지위에 있다. 그들은 독립 자영 생산자로서의 자격 요건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거대 자본주의 기업의 일개 직원처럼 되어 버렸다. (92)


체인 가맹점은 사업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사업체에 단기간 접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데 불과하다. (92)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이다. (93)


체인 관계는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조직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인망은 뿔뿔이 흩어진 독립 소기업을 강한 흡인력으로 꾸준히 모아들여, 막강한 공급자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편입시킨 후 접속만을 공유하는, 독립성을 상실한 임차인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종래의 독립 자영업자가 누리던 자율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94)


유형자산보다는 무형 자산이 중시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노하우, 개념, 아이디어, 두뇌, 운영 기술을 가진 사람이 실질적 소유권자다. (96)


체인점이라는 새로운 사업 형태는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난 혼성체라 할 수 있다. (96)


5. 서비스

자동차가 사람의 생활 방식, 경제, 자의식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시대에, 자동차를 가지는 것에서 빌리는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 관계의 구조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조짐이다. (111)


자동차를 대하는 우리의 의식이 제품 구입에서 서비스 접속으로 바뀌는 것은, 상품 생산에서 서비스 수행과 경험 창출 경제로 변모하는 더욱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구조 변화의 일부분이다. 소유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집착은 느슨해지고 있다. (114)


앞으로 경제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이 될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115)


재산이라는 것은 개인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복속 관계가 소유 관계로 바뀌면서 인간 관계 자체도 달라졌다. (120)


상속은 소유를 세대에서 세대로 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소유의 교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켰다. 상속이 일반화되면서 소유는 계급을 가르고 유지하는 데 요긴한 역할을 하는 권력의 한 형태가 되었다. (121)


어떤 물건이 재산인가?

자기가 배타적으로 점유하거나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재산이다. (121)


시장에서는 양도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122)


서비스 산업은 이미 제조업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북미와 유럽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부상했다. '서비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건설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 다시 말해서 그 자리에서 생산되면서 소비되는 것, 무형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125).


산업의 중심축이 상품에서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기업이나 개인도 소유를 예전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126)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과 사람의 접속도 점점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로 바뀐다. (127)


인간 관계의 구조가 소유물의 생산과 상업적 교환에서 상품화된 서비스의 관계로 탈바꿈하는 것은 본질적 변화라 할 수 있다. (127)


한 산업 분야에 너무 많은 공급자들이 있어 한정된 숫자의 고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가격은 떨어지고 이익도 덩달아 줄어든다. 제품의 질도 기업간에 큰 차이가 없고 동일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해야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방법은 판매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라고 많은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137)


공급자는 고객에게 제품을 거저 제공해야 다가설 수 있다.

고객의 사업을 공동으로 경영하여 실적과 수익을 개선시키고 거기서 남는 차익을 공유하는 길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급자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고객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식견을 빌려줄 뿐이다. 고객은 사실상 클라이언트, 파트너가 된다. (137)


점점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제품을 그냥 주고, 제품의 유지, 보수, 업그레이드에서 돈을 벌어 들인다. (140)


가치라는 것은 처음 개발한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만 창출될 수 있다. (142)


세상 만사가 서비스화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교환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에서 경험 영역에 접속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씬 중요하다. (143)


이제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점점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143)


6. 인간 관계의 상품화

접속의 시대는 한 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145)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의 상품화다. (145)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한 종류의 제품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고객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제품을 평생에 걸쳐서 최대한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146)


기업들이 한번에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것을 포기하고 개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곧 개인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잠재성에 주목함을 뜻한다. (147)


중요한 것은 평생 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147)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상업적 관계의 장기적 구축으로 기업의 관심이 이동하면서 마케팅이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마케팅이 중심에 오며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 상업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152)


소비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비자가 갖는 생활 경험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153)


가장 큰 자산은 고객에 접속할 수 있는 힘, 최종 사용자와 장기적으로 상업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 마케팅 관점이 제조 방식보다 우위에 올라서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156/157)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 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 마케팅은 제품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특이한 사업 기능이다.

모든 사업을 최종 결과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고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마케팅에 대한 관심과 소명이 모든 사업 부분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158)


요컨대 주문 생산은 서비스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되었다. (161)


이미 마케팅 세계에서는 특정한 분야에 대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영 전문가와 마케팅 전문가는 이른바 <취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고객의 관심을 끌어 평생토록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61/162)


물건의 판매에서 관계의 상품화, 공동체의 구축으로 상거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사업 방식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165)


앞으로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 되는 시대가 온다. (165)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168)


7. 삶으로의 접속

'CID (common-interest developments 공동 관심 단지)'라는 주거 공동체가 미국 전역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런 주거 단지는 보통 담과 울타리, 대문이 있고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171)


CID는 전적으로 상품화된 생활 공간이다.

CID에서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사람들이 CID를 선호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72)


CID는 단순히 집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을 파는 것이다. 집 그 자체는 독특한 생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네트워크 안에 끼어 넣어져 있는 것이다. (172)


많은 사람들이 CID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CID가 제공하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화된 생활 경험을 얻는 대신 소유권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176)


CID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치관, 감수성, 라이프 스타일이 엇비슷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끼여드는 대가로 개인 재산의 권리 일부를 기꺼이 포기한다. (179)


CID는… 공동체 전체가 상업적 영역으로 변질되다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182)


이제 공동체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의 가치관이 미국인의 가정 생활 안으로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시사한다. (182)


CID는 재산 투자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생활 경험의 상품화가 주는 매력을 내세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CID는 과도기적 주거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183)


어느 모로 보나 재고가 가장 부족한 상품은 시간이다. (185)


최근 노동 시장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사람들이 한 집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동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임대나 구입의 결정 시점이 그만큼 자주 돌아온다는 뜻이다.

구입보다는 임대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187)


일부 회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특정한 부동산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팔기 시작했다. 점수는 일종의 시간 공유 화폐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단위가 대체 가능한 화폐로 바뀌는 추세는 자원의 희소성보다는 시간에, 소유보다는 접속에 중점을 두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의미한다. 고객은 점수를 산다. 점수는 시간 단위를 나타낸다. (191)


렌트, 시간 공유 콘도 구입, 점수 구입은 모두 ‘시간화’사업의 다양한 방식이다. (191)


요컨대 사람은 세계 안에서 자기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니 소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별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유의 자부심’이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193)


접속의 시대에는 공간이 시간에게 밀려나며, 기업들이 더 많이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것은 물리적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다. (194)


우리의 더욱 원초적인 본능은 시간성뿐 아니라 지리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영토는 단순한 사회적 관습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존재의 상태이기도 하다.

집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장소에, 영토에, 우리의 기원에 맞닿아 있다는 원초적 감정을 경험한다. (196)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이 심오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생활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가져다주는 좀 더 편리한 시간적 가치가 그 자리를 메운다. (197)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지난 수백 년 동안 물리적 자원을 소유권이 부여되는 상품으로 전환하는 데 역점을 두어온 우리는 이제 유료로 제공되는 개인적 경험과 오락으로 문화적 자원이 전환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01)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강력한 쌍두마차이다. (202)


상업화된 전자 통신 기기와 온갖 종류의 문화 생산과 상품에 의해 점점 지배당하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경험 세계에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3)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말대로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 언어, 미술, 음악, 무용,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리 데이어는 말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인간 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인간 문화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문화를 매일매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며 알고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 자체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문화는 소통>이라고 작고한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말했다. (203)


구조주의자는 언어, 신화 같은 상징 체계가 공동의 사회적 경험에 의미를 불어 넣는 데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표현하고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을 표현한다는 말이 성립한다. (204)


인류학자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나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5)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는 1930년대에 독일의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릌하이머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이 문화 산업이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5)


문화 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사람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든지 배제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공동체가 공유해 온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에서 자꾸만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면서 접속권도 자연히 사회적 영역에서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한다. (206)


문화는 물질적 가치만이 팽배한 세태를 경고하던 비판자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도피처로서의 구실을 한동안은 했다. 낭만주의자들과 뒤이어 나타난 보헤미안들은 자연과 예술 속에서 자기 실현을 꿈꾸었다. 그들은 물질로 오염되지 않은 진보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208)


처음에는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보였던 소비 윤리와 자기 실현의 윤리가 20세기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서서히 공동의 토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업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흥미 깊은 사건이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두 가치를 하나로 묶은 힘은 문화적 기준을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208)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정교한 수단으로 문화의 가장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예술은 경제나 정치라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보다 인간 정신의 심층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사회적 경험을 조직하고 전달한다. (208)


예술가는 저항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낭만주의 시대부터였다. (209)


과거의 생산 지향 자본주의가 창조성, 자기 충족, 쾌락과 유희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루기에 급급했다면 새로운 소비 지향 자본주의는 이 억눌린 심리적 욕구를 예술이라는 분출구로 해방시켜 거대한 소비 문화를 창출한다. 새로운 소비자 지향의 시장은 예술을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고 나왔다. (210)


앞으로 경제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이 될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115)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빼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 이런 문화적 고사 상태의 의미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211)


자본주의는 완전한 문화적 자본주의를 향한 최후의 변신을 시도한다.

미래의 기업은 사람의 생활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점점 더 떠맡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미래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212)


살아 있는 체험은 상품 구체화의 최종 단계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체험은… 자본 순환에서 최종 상품이 되었다. (212)


‘관광Tourist‘은 원래 19세기 초반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전에 견문을 넓히기 위해 3년 동안 유럽을 유람하던 영국의 젊은 귀족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215/216)


관광을 어엿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은 토머스 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쿡은 관광을 패키지로 만들고 여행을 유료 체험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216)


쿡이 문화 체험을 패키지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과 수송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216)


쿡은 헨리 포드가 50년 뒤에 자동차 생산에 도입한 방법처럼 표준화와 대형화를 통해 관광을 중산층과 서민층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218)


쿡은 체험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단순한 서비스의 판매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문화 생산의 아버지로서, 체험 자본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실천가로서 당연히 인정받을 만하다. (218)


쿡의 관광은 시장을 문화에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문화가 시장에 도입되고 있다. (218).


살아 있는 체험을 상품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지역 사회와 나라의 자연 유산과 문화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산업 생산을 위해 두 세기가 넘도록 자연 자원을 착취해 온 나라들이, 이제 적어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은 자연 경관을 약탈하는 것보다는 체험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자연으로부터 물건을 만드는 데서 자연 자체를 즐기는 쪽을 바뀌었다. (224)


공공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활동은 쇼핑몰 안으로 흡수되었고 판매를 위한 상품이 되었다. 쇼핑몰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새로운 건축 공간을 창조했다. 그 상업화된 세계에서 문화는 상품화된 체험의 형태로 존재한다. 쇼핑몰은 이런 점에서 현대의 관광 산업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많다. (227)


몰은 문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상업화된 형태로 모사하여 재현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몰은 인공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첨단의 전자 기술을 총동원한다. (228)


게르메지온은 자신의 사업은 문화의 모방물이 아니라 문화의 대용물이라고 주장한다. 몰은 '일종의 지역 사회라 할 수 있고, 사교, 오락, 놀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232/233)


미래의 새로운 몰은 '궁극의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불린다. (233)


접속의 시대에는 메가몰과 테마가 있는 대형 오락 센터가 상품화된 새로운 문화의 문지기 노릇을 한다. (234)


문화는 체험의 고유다. 서로 비슷한 가치 아래 사람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문화 상품은 문화를 잘게 토막내어 분할하는 것이고 상업화된 오락물로 개별 판매하는 것이다. (236).


많은 역사가들은 19세기 후반 그래픽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을 오락 경제의 시발점으로 본다. (237)


다색 석판 인쇄가 대중 문화 생산의 초석을 깔았다면 얼마 뒤에 등장한 영화는 문화 생산을 자본주의 시장의 무시 못할 주역으로 정착시켰고 상업적 오락물을 미국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영화와 함께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는 '소비 문화'로 변모했고 문화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239)


즐겁고 의미 있는 체험을 유료로 만끽하는 것은 특히 전 세계의 중산층에게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241)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41)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문화 사업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창조성과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기업이 조직 환경을 재구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243)


문화 생산은 21세기의 고부가 가치 산업을 선도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문화 생산은 경제 생활의 제1열로 부상하고 정보와 서비스는 2열로, 제조업은 3열로, 농업을 4열로 내려 간다. 이 네 개의 열은 소유 관계에 바탕을 둔 체제를 접속에 바탕을 둔 체제로 꾸준히 탈바꿈시킬 것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통합한 네트워크 관계 안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다. (246)


9. 문화의 광백을 찾아서

우리는 가상의 전자 미디어에 에워싸여 있다. 우리의 체험이 인공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247)


이제 대부분의 선진국 국민이 미디어에 소비하는 시간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 다음으로 많다. (248)


전자 통신은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 현실을 모사한 미디어 환경이다. 전화,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은 모두 감각을 기만하고 우롱하려고 한다. (248)


이 막강하고 새로운 통신 수단은 문화적 체험에서 알짜배기 상징을 뽑아내서 감쪽같이 디지털 이미지와 형태로 변형시킨다. (248)


포스트 모던 철학자와 미디어 컨설턴트는 사이버 스페이스안의 이런 의사 체험을 하이퍼 현실 체험이라고 부른다. (249)


책과 라디오는 말한다. 무대와 영화는 보여준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육화한다.

극작가와 감독이 어떤 체험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사이버 스페이스 연출가는 체험 그 자체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사이버 스페이스 연출가는 관객이 그 안에서 직접 연기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한다. 관객은 흥미로운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고 단순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직접 체험한다. (250)


사이버 스페이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화 상품이 앞으로 공연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무대이다. (251)


인공 환경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상품으로 바뀐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삶을 만들어주고 우리는 그것을 구입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소비자가 되어 버린다. (251)


마케팅은 문화라는 공공재로부터 가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캐낸 다음 예술적 조직을 거쳐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화된 체험으로 변형시키는 수단이다. (252)


마케팅은 문화적 규준, 관습, 활동을 상품 형태로 번역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술이다. 예술과 의사 소통 전략을 동원하여 마케팅 전문가는 상품, 서비스, 체험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의 구매 행위에 문화적 의미를 불어 넣는다. (252)


마케팅의 기능은 그 동안 많이 달라졌다. 제품을 파는 것에서 “체험”을 파는 것으로 강조점이 달라진 것이다. (253)


이제 마케팅 산업에서 문화 노동자의 일차적 임무는 대중 문화로부터 의미의 단편을 뽑아내고 음악, 영화, 디자인, 광고 같은 예술의 힘을 빌려 특정한 문화적 범주에 어울리는 정서적 반응을 소비자에게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제품을 포장하는 것이다. (254)


점점 확대되는 마케팅의 새로운 역할은 문화 상품의 기획자로서의 역할이다. 마케팅 전문가는 현대 문화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끌어온 조각들을 짜맞추어 정교한 환상과 허구를 창조하고 그것을 체험으로 판매한다. 마케팅은 하이퍼 현실을 제조한다. 마케팅의 성패는 현실을 대체하거나 능가하는 인공의 세계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254/255)


저항 문화는 마케팅 전문가가 특히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환경 문제, 여성 문제, 인권 문제, 빈부 문제, 이 모든 것이 이미 마케팅에 동원되었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에 상품과 서비스를 동화시킴으로써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에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픈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대의에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도록 유도한다. (256) 


마케팅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서민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파고드는 행사나 활동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59)


광고주는 이제 대중을 단순한 제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징의 소비자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자연히 광고는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광고는 개인이 스스로 떠올리는 삶의 줄거리를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좀 더 원대한 줄거리로 끊임없이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 (260)


광고는 소비자에게 문화에 대해서 한 수 가르쳐주고 무엇을 사야만 그럴듯한 문화적 함의와 체험을 누릴 수 있는지를 일러준다. 따라서 고도 자본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제품의 생산도 아니고 서비스의 수행도 아니고 정보의 교환도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문화 상품의 창조다. (261)


접속 관계는 안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을 구별한다. 접속 관계는 그 사람이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의 수라고 하는 양적 조건과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가라고 하는 질적 조건으로 측정된다. (262)


접속의 시대에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모든 사회 활동의 전제 조건이다.

네트워크 안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무한히 열리지만 네트워크 밖에서는 점차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몰린다. (264)


접속을 통한 체험이 재산의 소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새로운 문화의 중개자는 개인과 문화 체험 사이에서 문지기 노릇을 한다. (268)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정의하자면 그들은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중 문화에서 새로운 경험을 추려내서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의 형태로 가공한다. (269)


1990년대 중반 새로운 문화 중개자 집단이 탄생했다. '유행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로 젊은 남녀들로 젊은이 문화의 샛길을 배회하면서 포장하고 가공하여 상업 시장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유행을 찾아다닌다. (269)


문화 상품의 세계 무역 규모가 불과 10년 만에 3배로 늘어나면서 지구 문화의 동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동질화 과정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언어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있으며, 그 빈 자리에 영어가 새로운 문화 상품의 표준어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 (272)


새로운 시대에는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접속의 문제, 상업화된 형태로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둘러싼 지정학적 쟁탈전이 점점 전면으로 부각된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문화 중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속이 체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지기의 노릇을 하게 된다. (273)


10. 탈근대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리프턴은 이 새로운 세대를 '변화 무쌍한' 인간이라 부른다. (274)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며 삶은 공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단계단계마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과감히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끊임없이 바꾸어나간다. 이 변화 무쌍한 남녀를 끌어당기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스타일과 패션이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도모한다. 정신없이 바뀌는 이들의 생활 공간에 습속, 관행, 전통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276)


이 새로운 남녀는 이제 막 소유 세계의 바깥으로 첫 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변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들의 세계는 점점 가상의 행사와 순간적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것은 네트워크와 문지기와 연결의 세계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들은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가 말한 대로 탈근대 세계를 처음으로 살아가는 세대다. (276)


탈근대와 근대가 이토록 다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간, 문화, 실체험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탈근대와 맞물려 있는 반면, 근대의 자본주의는 토지와 자원의 상품화, 노동력의 고용, 제품 생산, 기본적 서비스의 제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276)


근대인이 가졌던 믿음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 세계는 인간이 알아낼 수 있고 인간 생활을 개선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근대인은 신앙을 버리고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277)


근대인은 진보의 관념을 받아들였다.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278)


탈근대가 현실을 보는 눈은 다르다. 근대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 가정은 소유에 대한 근대인의 가정을 허물어 뜨리고 인간 관계를 접속 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 (281)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283)


새로운 물리학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식이고 에너지는 순수 활동이다. '공간 관계의 정지된 틀' 안에 존재하는 딱딱한 실체라고 하는 양적 관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283)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불변의 법칙에 바탕을 둔 현실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어어지는 창조적 행위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을 모든 고비에서 드러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 (284)


물리학, 화학, 수학에서 나온 새로운 관념이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분야는 인문학이다. 고정되고 인식 가능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고 그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개별적으로 현실들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현실을 모두 포괄하는 관점, 저 높이 우뚝 솟은 곳에서 현실을 내려다보는 관점은 존재할 수가 없다. 탈근대론자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의 구성물이다. (284/285)


과학적 탐구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이 노출시킨 자연이다. 물리학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진 언어로 자연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설명하고 묘사하고 현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이 된다. 햄릿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은 '말, 말, 말'이다. (285/286)


탈근대 세계에서 이야기와 공연은 사실과 수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는 상징과 기호를 연구하는 기호학에 열광한다.

진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집념은 더 이상 학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제 학자를 움직이는 힘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 탐구이다. 의미를 캐는 열쇠는 언어가 쥐고 있다. 우리가 생각과 느낌을 남과 주고받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버그퀴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탈근대 세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생활 영역의 으뜸가는 현실이 되었다.' (286)


탈근대 사회과학자도 인간의 행동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근대의 노력은 계급론, 인종주의, 식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탈근대 사회학은 다원주의와 이중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구나 열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 체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타당성을 모두 갖는 수많은 문화적 실험이 있을 뿐이다. (288)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다.

유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는 공연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문화적 접속에 대한 상업적 접속이 인간 활동의 목표가 된다. (288)


탈근대론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 가장 강력한 경험으로 다가오느냐이다.

우리는 도처에서 이미 현실의 ‘미학적’ 환각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292)


탈근대 학자와 사회 비평가는 '닷컴세대'라는 말을 곧잘 한다. 닷컴 세대는 상업화된 가공의 세계에서 자라나는 첫 세대이다. (292)


양식은 무엇보다도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라는 관념을 연상시켰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동 윤리에 담긴 정신을 세속화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유 재산 체제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생산자 정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말이었다. (295)


매력 있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동원되는 단어는 양식 있는 인간을 묘사하는데 쓰이던 단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 자신이 되자', '나의 개성을 표현하자', '자기 확신을 가지자' 같은 구호가 시대를 풍미했다. 이런 구호는 저축과 생산 중심의 사회를 지출과 소비 중심의 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고안된 마케팅 기법과 국가 차원의 선전을 위한 심리적 재료가 되었다. (296)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서 체험의 소비로 다시 한 번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는 오늘날, 인간의 본성도 다시금 변화를 겪고 있다. (297)


지난 세대의 사람은 자신을 '양식 있는 인간'으로, '매력 있는 인간'으로 여겼다. 거기에는 생산 중심의 가치관, 소비 중심의 가치관이 각각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문화라는 장터를 이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하면서 각본과 무대 사이를 경쾌하게 옮겨다니는 “창조적 공연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297)


사람과 사람의 소통 방식이 질적으로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환경, 새로운 상황, 시시각각 바뀌는 기대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인간이 필요해졌다. (298)


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 (299)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소유 관계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똑같이 믿었고 개개인의 인간은 거대한 역사극 안에서 일역을 맡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299)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역사 의식은 쇠락하고 심리 치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훨씬 비중 있게 생각했다. (300)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은 데 기여한 요인의 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 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 (301)


근대의 여명기에 구두 문화와 필사 문화가 인쇄 문화로 바뀐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인간 의식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변했다. (301)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국민 국가가 성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인쇄였다. (303)


책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책은 완전하다. 하이퍼 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다. (306)


하이퍼 텍스트는 인쇄 문화의 중요한 특성 하나를 잠식한다. 그것은 바로 책에 씌여진 생각이나 단어는 개별 저자의 소유라는 발상이다. (306)


새로운 자아는 섬처럼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는 자아이다. (307)


요즘 세대를 지배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308)


우리는 무수히 많은 관계에 둘러싸여 있다. 그 중에는 현실적 관계도 있지만 가상 공간 속의 관계도 있다. (309)


우리는 서로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붙들어 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309)


탈근대 시대가 낳은 처음 세대에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 인격'을 가진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312)


리프턴에 따르면 복수의 인격을 가지는 것은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이다. 하이퍼 현실, 탈근대 사회의 점증하는 요구 앞에서 영혼이 대처하는 방식이다. (313)


'변화 무쌍함은 한편으로는 외부 상황에 맞추어 자기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응집하고 강화하는 노력'이라고 리프턴은 말한다. (314)


문화 상품과 체험을 파는 데 골몰하는 경제에서 개개의 영혼이 복수의 인격으로 파편화된다는 것은 문화 시장의 수가 앞으로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할 따름이다. 사람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체험의 양이 곧 문화 상품의 시장 규모를 의미한다면 개개인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316)


접속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연극성이다. (316)


마사 스튜어트는 인물 조형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아마 가장 성공을 거둔 사람일 것이다. (318)


자아는 실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소통이 야기하는 “일종의 허구적이고 구성적이며 교감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는 특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들에게 접속하여 관계와 관계로 얽힌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었을 때만 사람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20)


각자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현실이라는 생각을 찬양할 것이고 각 개인이 입장권을 내고 들어올 수 있는 가상 체계를 창조할 것이다. (322)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을 가진 평생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322)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322)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벌써 20년 전에 다니엘 벨은 앞으로 나타날 시대의 성격을 이렇게 진단했다. '통신 서비스에 대한 지배가 권력의 원천이 되고 통신에 대한 접속이 자유의 조건이 된다.' (324)


수많은 사람들이 교류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신 인프라를 지배하는 것은 물론 포털과 관문에 대한 접속권까지 움켜쥐고, 나아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문화 콘텐츠까지 거머쥔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전무후무한 권력을 누리게 된다. (330)


세계 통신, 방송망의 규제 완화와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국민 국가는 자국 영토 안에서 통신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331)


전문직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지리적 공간보다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리적 주소보다 가상 공간의 주소를 더 많이 쓴다. (331)


경제와 사회에서 비중 있는 활동이 상품화된 문화 체험의 형태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세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주파수와 통신 채널에 대한 관리권을 포기할 경우 정부의 역할은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 (336)


전자 네트워크 세계에 접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될 것이라고 <타임>은 내다보고 있다. (343)


케이블 방송이 탄생했을 때도 접속의 문제가 또다시 제기되었다. (345)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매체를 통해야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같은 인간끼리 연락을 주고받고 거래를 맺고 관심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새로운 전자 통신의 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346)


앞으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 생활의 상당 부분은 전자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된다. (346)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는 시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의 활발한 전개 덕분에 최근 몇 십 년 동안 상당한 입지를 확보했다. (351)


소유는 물질이 희소하던 세계에서 인간 관계를 구조화하는 요긴한 장치였다는 사실을 맥퍼슨은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351)


오늘날 전세계의 인구 가운데 최소한 1/5은 물질적으로 쪼들리는 단계를 넘어섰고 이들에게 '소유는 ‘비물질적’ 수입원, 다시 말해서 삶의 질을 만끽할 수 있는 원천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되어버렸다고 보아야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생각은 17세기를 지배하던 소유 관념보다 전통적 소유 관념에 더 가깝다.' (352)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로서의 소유는 비중이 줄어들게 마련이라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물질의 희소성을 극복한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자기 실현과 자기 변신에 사람들의 관심 쏠린다. 그런 사회에서는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야말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유의 가치가 된다. (352)


전통적 관계는 친족, 민족, 지리, 고유하는 정서로부터 탄생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356)


반면에 상품화된 관계의 핵심은 그것이 도구적이라는 데 있다. 이런 관계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결속력은 쌍방이 합의한 거래 가격이다. (356)


여기서 사회적 계약과 상업적 계약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계약은 더 오랜 시간적 지평을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관습에 의해 또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내리는 평결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다.

전통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은 개인의 행동에 제약을 가져온다. (356)


상품화된 관계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돈을 교환하는 것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쌍방이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357)


이제는 도대체 우리가 추구하는 접속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차례이다.

인간 활동의 대부분이 상업 영역으로 옮겨짐에 따라 잃는 것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접속은 그저 상업 영역 안에 끼여드는 행위로 협소하게 정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탈근대가 그토록 찬미하는 자기 실현이라는 목표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 이유를 알려면 공동체 영역과 경제 영역의 판이하게 다른 기능과 두 영역의 역사적 관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358)


한 사회의 문화 기구- 교회, 세속 기관, 민간 단체, 상조회, 스포츠 클럽, 예술 집단, 비정부 기구-는 사회적 신뢰의 샘물이다. (359)


문화 기구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시장이 가능하다. (360)


문화는 인간 문명이 원할하게 기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또다른 가치의 산실이 된다. 리프턴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362)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364)


결국 상업 영역은 깊은 공동체 의식과 개인적 변신으로 나아가는 관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자기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집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364)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365)


경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파생적이다. 문화 생산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문화 생산이 상업 영역에서 시작되는 법은 절대로 없다. (365)


식품과 요리는 현재 문화와 상업의 대결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371)


문화와 상업이 생태학적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되찾으려면 시장에 나와 있는 문화 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 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71)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까닭은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소생하면 시장도 분명히 득을 보겠지만 문화가 단순히 시장의 원료로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372)


철저한 가공과 순수한 시간성이 지배하는 네트워크 세계에서 지리는 더욱 각별한 뜻을 갖는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컴퓨터 전송과 수신, 컴퓨터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깊은 인간의 교류는 언제나 지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373)


모든 현실 문화는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를 소생시키고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사이버 스페이스에 쏟아 붓는 만큼의 관심을 지리적 공간에도 보여야 하고 채팅방에 들이는 만큼의 정성을 현실 공동체에도 기울여야 한다. (373)


미국에서 몇 년 전부터 시민 사회와 저변 문화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데 목적을 둔 풀뿌리 교육 혁명이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시민 교육은 학생이 살아가는 동네와 지역 사회에서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374)


인터넷에서 해당 정보를 클릭하는 것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실의 시공간에서 남들과 살을 맞대고 어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배움의 일부분이다. (375)


교육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문화가 문명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학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376)


시민 교육은 문화와 상업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핵심적 도구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문화가 예전에 차지하던 높은 자리를 되찾으려면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377)


접속의 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하는 정치가 내재 가치와 효용 가치가 갈등을 빚는 새로운 사회 구도에 흡수된다. 내재 가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문화적 정체성을 뜻한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절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379)


문화는 대체로 생명을 긍정한다. 문화는 자연에 우리가 진 빚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이끈다. 이런 생명의 긍정이 바로 내재 가치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화는 모든 현상이 효용성으로 환원되고 편의와 징발이 행동의 표준으로 수용되는 상업 영역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380)


근본주의운동은 늘 지리적 공간과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 영토 수호는 사실상 모든 근본주의 신조에 면면히 흐르는 구호이다. (382)


근본주의 운동의 이런 정서는 대다수 시민 사회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과 충돌한다. 시민 사회 조직은 지역 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의식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국지적으로'라는 말은 너무나 남용된 나머지 상투적 구호로 변질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전세계의 제3부문 조직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을 잘 대변한다. (382/283)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384)


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 고독하게 혼자서 즐기는 놀이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어울리는 놀이가 훨씬 많다.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6)


놀이는 일상 생활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상황에서 펼쳐진다.

놀이가 그치면 놀이 공간은 내재 가치를 상실한다. 놀이 공간은 사람이 보유하거나 소유하는 영토가 아니라 일시적으로만 공유하는 무대이다. 따라서 놀이는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공간 차원에서 벌어진다. 놀이는 세속적 차원과 탈속적 차원을 동시에 갖는다.

놀이를 하는 사람은 '놀이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놀이에 빠진다. 놀이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즐거움과 삶의 본능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놀이는 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387)


산업 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 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생산되는 놀이는 문화 영역에서 생산되는 놀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389)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 형식이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795년에 쓴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운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라고 썼다. 문화 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우리는 남과 어울리고 싶어서 놀이를 한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깊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집단적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놀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잠시 동안 경계심을 접어두고 자기를 내던지면서 남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경험한다. 진정한 놀이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놀이도 희열도 결국은 경험의 공유이다. (389/390)


따라서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사람은 문화 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390)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390)


성숙한 놀이는 수동적 오락과는 달리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일어난다.

사회적 교류는 사회적 신뢰의 섬을 곳곳에 만들고 풍성한 사회 자본을 끌어낸다.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 교류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390/391)


수천 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392)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392)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노동의 종말>, <바이오테크 시대>, <엔트로피>, <유러피안 드림> 등을 통해 과학과 기술, 사회, 경제를 넘나들며 현 사회와 문명, 미래의 기술과 환경, 그리고 인류의 미래상에 대한 거시적 흐름을 읽는 리프킨의 깊은 통찰을 제시한 책이다.


리프킨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인 접속을 새로운 시대를 정의하는 키워드로 내세워 접속은 소유의 반대이고 사람들은 소유에 따르는 비용과 책임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항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접속하려 한다고 말한다. 산업 시대에는 소유의 시대였지만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시대에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재산의 소유, 상품화와 함께 시작되었던 자본주의의 여정이 ‘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정보는 물론 자동차, 주택, 전자제품, 공장, 체인점과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 그리고 서비스화 되는 경험 영역에 이르기까지 세상만사가 접속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기술의 발달로 제품들은 점차 첨단화, 소형화되어 가고 있으며 전자상거래의 보편화로 서류가 사라지고 모든 영역에서 온라인 상점화가 보편화, 활성화되어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들은 핵심기술과 경영 외에 관리하기 부담되는 교육, 컨설팅, 부동산 등을 아웃소싱을 통해 제공받고 기업의 핵심역량 강화에 더욱 힘쓰고 있다. 고수익이 되는 영화, 게임, 관광 등의 컨텐츠와 서비스 사업들은 매년 하루가 다르게 고성장을 이루고 있다.


보편적인 물질적 가치보다 아이디어, 특허, 기술 등의 무형가치가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독점 사업이 있었지만 이제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적재산의 독점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각 사업 영역에서 지적 재산권을 독점한 기업들은 무너뜨릴 수 없는 막강한 권력으로 등장하고. 상표권, 저작권, 특허를 독점하면서 수십, 수백 개의 점포를 네트워크 방식으로 보편화하며 그들만의 성을 구축하고 있다. 지적 재산권이 발전하면서 그 영역도 종자, 유전자로까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농산물을 먹으면서, 병을 치료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서비스 외에 거대 다국적 기업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생산보다 마케팅이 중요해졌고 광고시장의 규모도 실로 엄청나다. 모든 정보가 교환되는 통신 네트워크에서는 다국적 통신 사업자, 인터넷 포탈 등이 이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어쩌면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이고 그에 따라 우리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나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거대한 그들의 의도대로 조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리프킨은 물질의 지속 가능성 이외에 한 단계 앞서 나가는 문화의 지속성을 이야기한다. 문화, 그 고유의 가치가 퇴색해 버린 채 다양성이 무너지고 상업성 있는 것들만 보편화되면서 우리의 정신적 가치는 퇴보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실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 말한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는 결론짓는다.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도 결국에는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모든 사람이 컴맹에서 벗어나고 사이버 스페이스를 제약 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시민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지는 세대를 길러내야 우리가 이러한 접속시대에 적절히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지만 8년여가 흘렀다.  

그가 제시한 변화가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가 인류 문명에 초래할 수 있는 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 변화의 내부에 숨어있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과 사회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속의 시대의 편안함을 즐기며 때로는 그 효율성과 재미에 빠져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는 과연 우리의 지속 가능성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탈물질화, 무게 없는 경제로 이동하면서 자원의 효율성이 조금씩 높아져 가고 있는 반면 기업간의 극심한 경쟁으로 공짜상품이 남발하는 등 불필요한 재화가 생산되고 또 낭비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은 철저하게 지속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함께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지역과 사회를 위해 책임 경영을 하고, 소비자는 건전한 소비문화로 친환경 경제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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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92 미래의 물결 - 자크 아탈리 혜향 2009.08.31 2265
1991 북리뷰 19 미래의 물결 - 자크 아탈리 범해 좌경숙 2009.08.31 2302
1990 [19] 자크 아탈리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인용문 먼별이 2009.08.31 2561
1989 [19] 자크 아탈리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저자 및 내가 저자라면 [1] 먼별이 2009.08.31 2480
1988 자크 아탈리 - 미래의 물결 [1] 효인 김홍영 2009.08.30 4572
1987 위기 그리고 그 이후 - 자크 아탈리 書元 이승호 2009.08.30 2435
1986 [18]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인용문 먼별이 2009.08.24 2483
1985 [18]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저자 및 내가 저자라면 먼별이 2009.08.24 2695
1984 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혜향 2009.08.24 2828
1983 북리뷰 18 - <부의 미래> 앨빈 토플러 [1] 범해 좌경숙 2009.08.24 3982
1982 제3의 물결 - 앨빈 토플러 [1] 숙인 2009.08.24 3233
1981 불황을 넘어서 (The Eco-Spasm Report, 1975) [2] 예원 2009.08.24 2842
1980 앨빈 토플러 - 부의 미래 [1] 혁산 2009.08.24 3949
1979 부의 미래 書元 이승호 2009.08.24 2711
1978 소유의 종말-제러미 리프킨 [1] 曉仁 2009.08.03 2739
» 소유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 혜향 2009.08.03 2301
1976 소유의 종말 _제러미 리프킨 예원 2009.08.03 2205
1975 소유의 종말을 읽고 혁산 2009.08.03 2664
1974 소유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file 정야 2009.08.03 2145
1973 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 [1] 희산 2009.08.03 6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