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曉仁
- 조회 수 308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소유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Ⅰ. 저자에 대하여
1) 그는 누구인가?
제러미 리프킨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전 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히 집필 작업을 해 왔다.
여러 분야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를 사람들은 미국의 경제학자, 미래학자, 환경학자, 운동가, 저술가로 부른다.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반면 제러미 리프킨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항상 극단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리프킨을 폭넓은 시야로 지구적 구조와 미래를 바라보는 탁월한 사상가이자 활동가로 추앙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 받는 인물'이라는「타임」지의 표현처럼 사이비 저술가, 영향력 있는 선동가로 보고 있다.
리프킨에 대한 이런 엇갈린 평가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리프킨의 30여 년간의 활동은 언제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77년 '경제조류재단'을 창설한 이후 리프킨은 십 수권의 논쟁작을 썼고, 전 세계 20개국 500여개 대학에서 강연했으며, 미국정부의 각종 환경 ․ 경제정책의 방향에 입김을 넣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을 다루고 있으며, 현 시대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비판의 편에 서서 강력한 주장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환경 파괴 위험과 테크놀로지의 재앙적 남용을 경고하며 유전자 조작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보다 한층 더 심도 깊은 것은 것이다. 그는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과학적 탐구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경제 활동의 개념까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단체나 사람은 제법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프킨의 경우가 그런 단체나 사람들과 차별화가 되는 이유는 그가 활발한 저술가이자 미래학자이며, ‘현대의 이단아’라 불릴 정도로 활발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상당히 급진적인 운동가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 속에서 주목해야 할 그의 공헌은 극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다 끝날 수도 있었던 이슈들을 대중화시켜 살아 있는 공공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공학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일부 전문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중요한 과학기술의 결정에 이해 당사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과학기술의 주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조직해낸 과정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2) 리프킨의 주요 관심사들
리프킨이 가장 천착하는 문제는 기술이 환경 및 제반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환경과 경제가 일정하게 통합된 구조임을 역설한 <엔트로피>는 그의 초기 대표작이자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논쟁작 중 하나이다. 이후 리프킨은 광범한 현실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노동의 종말>에서는 정보화로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인간의 노동이 서서히 제거되어 나갈 것이라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이오테크 시대>에서는 산업시대와 비견될 만큼 중요한 '유전자의 시대'가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을, <소유의 종말>에서는 문화마저 자본에 잠식되어 모든 경험과 시간이 상품화되는 '접속 시대'의 그림을 펼쳤다. 또한 부인 캐롤 그룬왈드 리프킨과 함께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는 채식운동과 녹색생활운동도 그의 활동 궤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9월에는 수소에너지의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분석하고 지지하는 <수소 경제(The Hydrogen Economy)>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 시대에는 매우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많다. 그러나 행동하는 양심은 많지 않다.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하며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투신하는 열렬한 행동주의자는 드물다. 모든 세대에는 양심의 진화에 보탬이 되는 한 줌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책이 진짜 힘을 갖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자꾸 나와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은 이 시대의 정신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 리프킨의 주요약력과 저서
1967년 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학위 취득
터프스 대학의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 취득
1977년-현재 'Foundation of Economic Trends (경제조류재단)'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이사장으로 있음
1993년-현재 'Beyond Beef Coalition'을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음
1994년-현재 와튼 스쿨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 중
The End of Work (1995) 『노동의 종말』
The Biotech Century (1998) 『바이오테크 시대』
The Age of Access(2000) 『소유의 종말』
The Hydrogen Economy(2002) 『수소 혁명』
The European Dream (2004) 『유러피안 드림』 等
Ⅱ.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p.12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상품과 서비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p.13
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이다. 사람들은 물적 자산이나 재산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하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소유를 한다. p.13
온갖 유형의 온라인 오락은 문화적 경험에 대한 접속권을 거래하는 하이퍼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의식이 유희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 하는 것이다. 놀이의 내용과 접속권을 놓고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은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이다. p.15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기업가는 이 새로운 개념을 고객의 평생가치(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p.15
제품 생산이 경제 활동의 가장 중요한 형태였던 산업 시대에는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중요했다. 문화 생산이 경제 활동의 지배적 형태로 뿌리내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사람의 정신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문화적 자원과 체험에 가급적 많이 접속하는 것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p.16
공간과 재료의 상품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여정은 인간의 경험과 생활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끝난다. 돈을 주어야만 접할 수 있는 인간 활동의 형태로 문화를 파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금전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가 전통적 사회관계를 밀어낸다. 가족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실상의 모든 인간 활동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계를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런 세계에서는 믿음, 공감, 연대의 감정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상호 의무와 기대가 회원, 등록, 입회, 수임료, 요금에 기반을 둔 계약관계로 바뀐다. p.18
공급자는 소비자와의 상품화된 관계를 선호한다. p.19
문화적 시간은 기울고 인류는 영리적 고리를 통해서만 문명을 지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탈근대 사회의 위기이다. p.19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 하는 것이다. p.19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다. p.24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도 크지만 연결된 사람과 연결되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욱 크다. 세계는 사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으로 급속히 갈라지고 있다. p.24
접속은 결국 구별과 분리의 문제이다.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p.27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제품 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소비자의 주의 집중 기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p.37
이 새로운 영화는 영화 산업을 대량 생산에서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극장 체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데 주안점을 둔 주문 제작 체제로 전환시켰다. p.42
오늘날 대형 영화사들은 자체 제작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주 노릇을 하면서 독립 제작사들에 종자돈을 대주고 그 대가로 완성된 작품을 극장에 까는 배급권과 텔레비전, 비디오 판권을 확보한다. p.43
제작사는 수많은 전문 기업들의 지식을 종합하여 특정한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정확하게 끌어 모은다. p.43
접속의 시대에 기업의 가장 큰 불안은 경제적 기회를 낳은 거미줄 같은 상거래망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산업 시대에 중요했던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동맹관계가 끝없이 변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네트워크로부터 탈락한다는 것은 곧 낙오를 의미한다. p.46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p.47
3. 무게 없는 경제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장 거래와 금융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쓰였던 돈은, 순수한 정보의 형태로 광속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전자 비트로 변해 가면서 빠르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있다. p.58
돈의 탈물질화가 진행되면서 저축은 감소하고 개인 부채는 증가한다. p.58
사유 재산 체재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 저축은 많은 소비자가 신용 카드를 믿고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계속하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p.61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한, 사람들은 굳이 수입을 저축이라는 형태의 재산으로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p.62
다양한 형태를 띤 재산의 보유보다 상거래 기회에 대한 단기적 접속권리의 확보가 더 중요해지는 새로운 사회에서 실제로 저축은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p.63
신용카드 회사와 은행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재산 형태의 저축보다는 신용 대출이라는 단기적 접속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만큼 신용 카드 사용도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p.63
재산과 돈의 탈물질화,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재고를 없애고 부동산을 털어내려는 안간힘, 개인 저축의 소멸, 이런 것들과 함께 나타나는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p.63
아웃소싱은 지금까지 자체적으로 처리해 온 기능이나 서비스를 위탁 계약을 맺고 외부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p.69
일반인들은 나이키를 운동화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옳다. p.73
물질적 가치만이 재산으로 인정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시대에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었다. 물질적 재산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여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부풀리는 것은 재산을 가진 모든 인간의 갈망이었다. p.84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원형의 세계다. 개념의 세계, 픽션의 세계다. 산업 시대의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데 빠져들어 있었다면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사업의 성패를 아이디어가 좌우하는 접속과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다.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확장하여 보편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p.84
우리는 빵과 포도주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와 사고도 중요하다. 산업 시대가 우리의 물질적 생활을 키워주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양식을 준다. 상품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 흘러간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다가올 접속의 시대의 특징은 개념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개념을 거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사람들도 이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물리적 구현물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점점 많이 사게 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p.84
4. 지적 재산의 독점
이제까지 사회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무섭고 위험한 힘을 가진 새로운 형태의 제도적 힘이 등장하고 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네트워크가 시장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해야 한다. p.86
판매자와 구매자의 협상에 의한 재산의 양도 행위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구입해서 장기적으로 소유하는 것보다는 잠시 접속을 즐기는 것이 더 유행한다. 접속을 통해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 이것이 곧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상업 활동의 핵심이다. p.87
사업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 더 새로운 분야는 이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방식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서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p.88
모기업은 자신이 보유한 개념과 상표 같은 무형의 자산이 산하 체인점의 공장, 시설, 기계,원료 같은 유형자산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특히 서비스업체는 자신의 영업술과 상표를 하나로 묶어 지역 사업가에게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p.89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p.93
체인 관계는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조직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인망은 뿔뿔이 흩어진 독립 소기업을 강한 흡인력으로 꾸준히 모아들여, 막강한 공급자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편입시킨 후 접속만을 공유하는, 독립성을 상실한 임차인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p.94
종자 생식 세포에 대한 세계적인 지배와 특허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석기 시대의 농업 혁명 이후 지금까지 농부들이 항상 자신의 종자를 소유해 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p.101
농부와 연구자는 동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를 받은 복제 동물에 대한 접속권을 구입하는 셈이며 새끼가 태어날 때마다 로열티의 형태로 추가 접속료를 물어야 한다. p.105
5. 서비스 세상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과 사람의 접속도 점점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로 바뀐다.
인간관계의 구조가 소유물의 생산과 상업적 교환에서 상품화된 서비스의 관계로 탈바꿈하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p.127
독창성, 기민성, 순발력만으로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기술의 원가가 제로로 곤두박질치는 경제에서 가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머지않아 이런 급락은 거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똥값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라는 것은 처음 개발한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만 창출될 수 있다. p.142
6. 인간관계의 상품화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p.145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의 상품화이다. p.145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불연속적 시장 거래로부터 시간 위에 무한히 펼쳐진 관계를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상업 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점점 이해득실과 타산의 노예가 된다. p.145
앞으로 생산중심에서 마케팅중심으로, 판매중심에서 관계구축중심으로 궤도 수정을 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마케팅 전문가와 경영 컨설턴트, 경제학자, 미래학자가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p.145
당신이 만든 모든 제품은 뜬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 믿을 건 당신의 고객밖에 없다. p.146
새로운 마케팅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한 종류의 제품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고객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제품을 평생에 걸쳐서 최대한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p.146
개인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잠재성에 주목함을 뜻한다. p.147
중요한 것은 평생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p.147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해 나간다면 세월이 흘러도 인형이나 로봇, 교복, 학용품, 가족을 위한 휴가 상품, 비디오 게임, 콤팩트디스크를 팔 수 있고 심지어는 대학교에 들어갈 때에 대비한 금융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 p.148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상업적 관계의 장기적 구축으로 기업의 관심이 이동하면서 마케팅이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p.152
스톱워치와 조립라인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과학적 수단을 제공했다면 사이버스페이스의 피드백 고리와 바코드는 소비자를 관리하는 과학적 수단을 제공한다. 새로운 세기에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은 지난 세기에 생산을 조직하던 것만큼 중요하다. p.153
소비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비자가 갖는 생활 경험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p.153
다시금 우리는 접속의 시대에서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이 제품을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제품이라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p.155
가장 큰 자산은 고객에 접속할 수 있는 힘, 최종 사용자와 장기적으로 상업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 p.156
소비자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생산 공정의 혁신으로 시장으로 새로운 상품이 수없이 쏟아졌다. p.157
이제 문제는 시장에 물건을 얼마나 신속하게 공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여 충실한 고객으로 만드느냐였다. p.158
판매자가 주도하던 시장이 구매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면서 생산보다 마케팅이 우위에 서게 되었고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정보 기술은 고객과 평생에 걸친 상업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p.159
공급자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이것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이제 소비자는 개인적 욕구를 공급자에게 알려주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개성화된 제품을 제공받는 추세로 나아간다. p.159
경영 전문가와 마케팅 전문가는 이른바 취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고객의 관심을 끌어 평생토록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업은 이 새로운 공동체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고객이 사교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준다. p.162
관심사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결국 고객이 모일 수 있는 행사나 집회,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홀리데이 인의 프라이어리티 클럽은 투숙 횟수가 가장 많은 5백 명에서 1천명 사이의 최우수 고객을 1년에 두 번 리조트로 초대하여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면서 호텔 경영 전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p.163
물건의 판매에서 관계의 상품화, 공동체의 구축으로 상거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사업 방식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p.165
21세기의 인간은 하루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경제라는 영역 안에서 보내게 된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관계망, 취향의 공동체에 상업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다. 소속된다는 것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 되는 시대가 온다. p.165
마케팅 전문가와 기업이 이른바 고객 친밀감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짜내고 깊은 공동체적 결속을 확립할 수 있는 수단과 장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한 사실이다. p.167
7. 삶으로서의 접속
CID는 단순히 집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을 파는 것이다. 집 그 자체는 독특한 생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네트워크 안에 끼워 넣어져 있는 것이다. p.172
엄격한 사유 재산 체제에 수반되는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품화된 관계를 구입하는 데 수반되는 상호 의존성을 선택한다. p.180
CID는 재산 투자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생활 경험의 상품화가 주는 매력을 내세운다. p.183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소유에 수반되는 개인적 자부심, 책임감, 의무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기 충족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p.194
집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장소에, 영토에, 우리의 기원에 맞닿아 있다는 원초적 감정을 경험한다. p.196
CID에는 전통이 살아 있는 공동체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p.197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이 심오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생활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가져다주는 좀 더 편리한 시간적 가치가 그 자리를 메운다. p.197
시간적 네트워크 안에 편입하는 것은 장소에 뿌리를 둔 삶의 충분하고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p.198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언어, 미술, 음악, 무용,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p.203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 자체의 핵심임을 일깨워준다. p.203
문화는 소통이라고 작고한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말했다. p.203
문화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공동체의 경험이다. p.205
웅변, 무용, 연극, 의식, 음악, 시각 예술, 조형 예술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인간 경험의 핵심적이고 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p.205
문화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p.206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이다. 문화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실현과 자기고양이다. p.207
민주주의적 참여와 개인적 권리라는 관념은 소비자 주권과 소비자 권리로 변신하여 시장에서 다시 태어났다.
예술가는 계몽주의 철학에 의해 억눌리고 산업 시장의 요구에 짓눌려온 감정과 욕망을 표현했다. 효율성, 유용성, 객관성, 초연성 위주로 짜이고 물질적 가치와 재산의 축적에 집착하는 세계에서 예술가는 인간 경험의 다른 차원, 다시 말해서 산업 시대의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욕망을 전달했다. p.209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맡아왔던 예술은, 이제 광고사회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양식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 p.210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p.211
체험 산업의 성장은 산업 혁명이 생산한 물건의 효용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p.213
체험 산업은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모든 내용을 거래하는 것이다. p.213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p.213
안전하면서도 흥미진진하며 드라마틱한 곳에서 이색적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이런 관광지를 찾는다. p.220
소유해서 사용하느냐 아니면 접속해서 즐기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기업들 사이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p.226
몰은 문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상업화된 형태로 모사하여 재현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p.228
TV와 몰은 시청자와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여 제품이나 서비스, 아니면 길이 기억될 만한 사건 같은 상품화된 체험을 팔기 위해 정교하게 연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매체라고 할 수 있다. p.231
문화는 체험의 공유이다. 서로 비슷한 가치 아래 사람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문화 상품은 문화를 잘게 토막 내어 분할하는 것이고 상업화된 오락물로 개별 판매하는 것이다. p.236
다색 석판 인쇄가 대중문화 생산의 초석을 깔았다면 얼마 뒤에 등장한 영화는 문화 생산을 자본주의 시장의 무시 못 할 주역으로 정착시켰고 상업적 오락물을 미국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영화와 함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소비문화로 변모했고 문화자본주의가 탄생했다. p.239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p.241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산출량이 중요하지만 문화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연기가 중요하다.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모든 사람이 연예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말해도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사업의 성패는 고객의 머리에 감동적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집어 넣느냐에 좌우된다고 조언한다. p.243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문화사업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과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기업이 조직 환경을 재구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p.243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화 상품이 앞으로 공연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무대이다. p.251
마케팅은 문화라는 공공재로부터 가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캐낸 다음 예술적 조작을 거쳐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화된 체험으로 변형시키는 수단이다. p.252
고급 상표가 붙은 제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그 디자이너가 창조한 가치와 의미의 세계에 자기도 끼여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p.253
마케팅 기능은 그 동안 많이 달라졌다. 제품을 파는 것에서 체험을 파는 것으로 강조점이 달라진 것이다. p.253
새로운 마케팅 시대에는 이미지가 제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강조한다. p.254
마케팅 전문가는 정서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 문화의 숲을 누비고 다닌다. p.255
라이프스타일 행사 마케팅의 목표는, 기업이 문화의 적극적인 후원자이며 주역이라는 인식을 지역 사회와 소비자 단체에 심어주어 우호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쌓아나가는 데 있다. p.259
생활과 밀착된 행사를 통한 마케팅은 기존 제품의 인지도를 넓히고 신제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한다. p.259
접속의 시대에는 돈을 내고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과 체험의 형태로 문화를 상품화하고 우려먹고 재포장하는 가상 또는 현실의 네트워크와 대중문화의 입구에 버티고 서서 출입을 통제하는 문지기가 실권을 휘두른다. p.261
문화의 중개자로 불리는 이 새로운 계급의 실력은 지식과 창조성,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 전문가적 식견과 마케팅 안목 같은 무형 자산에서 발휘된다. p.268
접속을 통한 체험이 재산의 소유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새로운 문화의 중개자는 개인과 문화 체험 사이에서 문지기 노릇을 한다. p.269
10. 탈근대
21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산업 시대를 살았던 부모세대와 완전 다른, 접속의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세대의 젊은 남녀들은 이제 막 소유 세계의 바깥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변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들의 세계는 점점 가상의 행사와 순간적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것은 네트워크와 문지기와 연결의 세계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이들은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가 말한 대로 탈근대 세계를 처음으로 살아가는 세대다. p.276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자연의 비밀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베이컨이 주장한 과학 방법론의 핵심 전제-는, 한마디로 있을 수 없다. p.281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초연하기는 커녕 경기자로서 참여자로서 자신이 조작하고 입김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p.281
새로운 물리학은 존재와 운동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사물은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p.283
과학적 탐구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이 노출시킨 자연이다. 물리학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진 언어로 자연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설명하고 묘사하고 현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이 된다. 햄릿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은 <말, 말, 말>이다. p.285-286
근대가 목적을 추구했다면 탈근대는 유희를 추구한다.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아무튼 질서라는 것은 무조건 답답한 것, 숨 막히는 것이라고 요즘 사람들은 생각한다. 반면에 창조적 무질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권장하는 쪽에 가깝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질서는 자발성이다. p.286
탈근대 사회과학자도 인간의 행동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근대의 노력은 계급론, 인종주의, 식민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탈근대 사회학은 다원주의와 이중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구나 열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상적 사회 체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타당성을 모두 갖는 수많은 문화적 실험이 있을 뿐이다. p.289
지난 세대의 사람은 자신을 <양식 있는 인간>으로, <매력 있는 인간>으로 여겼다. 거기에는 생산 중심의 가치관, 소비 중심의 가치관이 각각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문화라는 장터를 이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하면서 각본과 무대 사이를 경쾌하게 옮겨 다니는 <창조적 공연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p.297
드라마의 종착점은 세속의 유토피아라고 믿었다. 자본가에게 역사의 종말은 지구의 광대한 황무지를 완전히 점유하여 사람들 손에 재산을 배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역사의 종말은 사유 재산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물질 자원과 자본을 집단이 소유하는 사회를 세우는 것을 의미했다. p.299
인쇄가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관념이 싹트는 것을 도왔던 것처럼 컴퓨터는 관계를 중시하는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북돋운다. p.308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p.309
우리는 더 이상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복수 네트워크들의 단말기>로서 존재한다. p.312
인간은 끝없는 변신의 과정을 밟는다. 자꾸만 존재의 상태를 바꾸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 다른 누군가가 된다. 문화 행사가 벌어지는 자리, 교제의 장, 사업 환경에서 인간은 의혹을 접고 기꺼이 하나의 역할을 맡는다.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 <persona>는 원래 가면을 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p.317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 《타임》운 사이버스페이스 특집호에서 이런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들려준다. 전자 네트워크 세계에 접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될 것이라고 《타임》은 내다보고 있다. p.343
개인과 기업의 통신은 점차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매체를 통해야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p.346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p.348
물질의 희소성을 극복한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자기실현과 자기변신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 사회에서는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야말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유의 가치가 된다. 새로운 시대에 소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하는 역학 관계의 체제에 참여하는 권리로 성격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토론토대학의 크리스토퍼 맥퍼슨 교수는 결론짓는다. p.353
네트워크 세계에서 자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반면,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 p.354
새로운 시대의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일 것이다. p.356
제3부분의 조직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떠맡는다. 이들은 제도적으로 자행되는 권력 남용에 도전하고 사회적 불만을 표출시키는 피뢰침이다. 제3부문의 종교, 상담 조직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잡이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고 닦는 곳이다. 문화가 풍성하게 유지되는 놀이의 장이다. p.361
문화는 인간 문명이 원활하게 기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가치의 산실이 된다. 리프턴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 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친밀함과 예의 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노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p.362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 p.364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 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p.364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시장과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다. p.365
토착음악을 현대 음악과 결합하여 만든 <퓨전 음악> 또는 <하이브리드 음악>은 현지에서는 문화 자본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한 민족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사적 유산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고유 음악은 어떤 인간 집단이 처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대변하고 정신적 열망이나 정치적 갈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은 사회적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문화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 가슴속 깊이 파묻혀 있던 감정을 움직인다. p.366
새로운 상업 네트워크는 새로운 문화 네트워크와, 새로운 가상 체험은 새로운 실생활 체험과, 새로운 상업적 오락은 새로운 문화적 의식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p.372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p.372
접속의 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하는 정치가 내재 가치와 효용 가치가 갈등을 빚는 새로운 사회 구도에 흡수된다. 내재 가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문화적 정체성을 뜻한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절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문화 자원, 의식(儀式), 활동은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다. p.379
문화는 자연을 이루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한결같은 외경과 헌신에서 탄생했다. 문화는 대체로 생명을 긍정한다. 문화는 자연에 우리가 진 빚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이끈다. 이런 생명의 긍정이 바로 내재 가치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화는 모든 현상이 효용성으로 환원되고 편의와 징발이 행동의 표준으로 수용되는 상업 영역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p.380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는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놀이는 또 일보다 친밀감을 주고 더 많은 몸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한껏 발현할 수 있다. 또한 일과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결국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p.386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 형식이다. 1795년에 쓴 『인간의 미적교육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라고 썼다. 문화 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p.389
놀이도 희열도 결국은 경험의 공유이다. 숲을 혼자 거닐 때 느끼는 잔잔한 희열도 나를 둘러싼 생명과 혼연 일체가 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다.
따라서 자유와 놀이는 토대가 같다. 사람은 문화 영역에서 순수한 놀이를 경험하는 동안 마음을 열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두려워하여 자유를 쓰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하는 것이 놀이다>라고 말했다. p.390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p.390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392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원제목은 'The Age of Access'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소유의 종말'로 소개됐다. 저자가 '노동의 종말'이나 '육식의 종말'처럼 다양한 '종말론'을 펼쳤던 것이 책 제목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소유의 종말'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산업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소유'라는 개념이 어떻게 더욱 치밀하게, 그리고 더욱 은밀하게 우리의 삶을 파고 들어오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경제, 노동, 사회, 환경 그리고 문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소유의 종말'은 리프킨의 방대한 지식과 거시적인 안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산업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생산 시대가 오고 있으며 앞으로 각광받을 사업은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산업도 기업과 소비자 간에 소유권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해당 상품이 갖는 기능을 서비스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약간의 혼동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소유’와 ‘접속’의 개념이 서로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자는 '옮긴이 후기'에서 '접속의 반대는 소유'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접속의 반대는 소유가 아니고 비접속이며, 소유의 반대 역시 접속이 아닌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소유의 개념이 사라져 버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사회에서 통용되던 '물질적인 소유'의 개념이 더욱 지능화되고, 더욱 발전된 형태인 '정신적인 소유'의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국내에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 )',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 '육식의 종말( Beyond Beef )' 등의 제목으로 3개의 책이 하나의 시리즈로 묶여 있는 것 같이 소개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는 '문화 상품'이라는 개념이다. 리프킨은 우리의 삶의 근본을 이루는 '문화'가 어떻게 급속하게 상업화되고 오락화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산업 생산이 자연에서 나오는 원료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 생산은 문화 영역이 제공하는 재료에 의존한다. 산업 생산이든 문화 생산이든 기본적으로 뽑아서 쓰는 것이다.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 캐내면 고갈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의 경험, 문화까지도 상업화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에게 기존의 산업사회에서의 물질적인 소유가 아닌 접속의 개념을 강요한다. 소유가 배타적이고 항구적인 성격의 재산권이라면 접속은 일정기간 동안의 이용권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변화과정 속에서도 소유의 개념은 유효하다. 단지 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자본이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여기서 리프킨은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변화해온 수많은 현상들을 체인점, 디즈니 랜드, 유전자 조작 농산물, 쇼핑몰, CID, 콘도미니엄, 여행, 음악, 영화 등 사회 전 영역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리프킨은 6년 동안 '350권의 책과 1천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회전반적인 변화과정을 설득력있게 말하고 있지만, 약점도 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정보 속에서 과연 저자가 올바르게 정보들을 인용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수많은 정보들과 수많은 철학자들과 이론들이 이 책 속에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한 권의 책 속에 담아보려는 저자의 욕심이 오히려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032 | #3 떠남과 만남(장성한) | 뚱냥이 | 2017.04.24 | 2092 |
5031 | #21 파우스트1 (이정학) | 모닝 | 2017.08.29 | 2093 |
5030 | #3 떠남과 만남 (윤정욱) | 윤정욱 | 2017.04.23 | 2132 |
5029 | #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_이수정 [2] | 알로하 | 2017.04.17 | 2144 |
5028 | #3 떠남과 만남(이정학) | 모닝 | 2017.04.23 | 2156 |
5027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수정 중 | 종종 | 2015.01.05 | 2176 |
5026 | #7-열정과 기질 | 왕참치 | 2014.05.26 | 2179 |
5025 | #12 철학이야기 1_이수정 | 알로하 | 2017.06.26 | 2183 |
5024 | #25 -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 이동희 | 희동이 | 2014.10.14 | 2189 |
5023 | #40 대통령의 글쓰기 (윤정욱) [1] | 윤정욱 | 2018.01.16 | 2192 |
5022 | #23 사기열전1_1 [1] | 뚱냥이 | 2017.09.10 | 2201 |
5021 | 떠남과 만남 [2] | 박혜홍 | 2018.09.18 | 2202 |
5020 | #1 익숙한 것과의 결별(장성한) [3] | 뚱냥이 | 2017.04.11 | 2203 |
5019 |
#45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윤정욱) ![]() | 윤정욱 | 2018.02.19 | 2203 |
5018 |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박혜홍 | 2018.08.05 | 2203 |
5017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앨리스 | 2015.01.05 | 2205 |
5016 | #13 철학이야기 2/2 (정승훈) | 정승훈 | 2017.07.02 | 2205 |
5015 | [구본형 다시읽기] 신화읽는 시간 [1] | -창- | 2013.09.08 | 2208 |
5014 | #16 삼국유사 1/2 (윤정욱) | 윤정욱 | 2017.07.24 | 2208 |
5013 |
(No.28-1) 두번읽기/ 아니타 로딕 [영적인 비즈니스] 김영사 -서은경 ![]() | 서은경 | 2013.12.16 | 2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