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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알제리 이민 출신
1943년 알제리에서 유태인 보석상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남. 1956년 알제리아 전쟁으로 인해 파리로 이주했다. 천재적인 그의 나머지 쌍둥이 한 쪽은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식민지 알제리 출신에 유태인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았다.
프랑스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을 세 곳(에콜폴리테크닉-공학, 에콜 드 민-토목공학, 시앙스폴리티크-정치경제학 전공)이나 거치며 공학과 토목공학, 정치경제학을 섭렵한 것도 모자라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ENA -이곳도 그랑제콜인 것으로 아는데.. 에콜 드 민이 그랑제꼴이 아닌 것 같다.)까지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경제학과 정치학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정치로 세상을 바꾸려다
공부를 마친 후에는 국무원심의관으로 일하는 동시에 만 27세부터 파리공과대학, 파리 제9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32세 되던 1974년 프랑스 사회당 제1서기였던 경제고문으로 발탁돼 11년 동안 미테랑을 보좌하며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 이론과 사회주의론을 전개하여 일약 프랑스 사회당의 스타적 존재가 되었다. 이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는 대통령 특별 보좌관이 된다. 미테랑 사회당 정부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하던 당시 미테랑은 아탈리를 '개인용 컴퓨터(PC)'로 불릴만큼, 정확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1991년 동구권이 몰락하던 해에 정치를 떠났던 그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동구의 경제 재건을 위해 자신이 주도해 설립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로 임명되어 유럽연합의 실현을 위한 노력에 가했다. 때문에 미스터 유로뱅크(Mr. Eurobank)로 불리기도 했다.
현실의 정치세계를 떠났어도 그는 꾸준히 프랑스의 중도좌파의 실질적인 브레인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유럽과 세계에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즉, 21세기형 중도적 온건좌파의 새 모델을 제시한다. 현재 그는 프랑스 정부 국정 자문역 및 국제컨설팅 회사인 아탈리&아소시에(A&A)대표와 플래닛 파이낸스의 총재로 일하고 있다. 좌파로 분류되는 미테랑 대통령 보좌를 했으며, 마르크스의 평전을 써낸 그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정부가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에 그를 임명한 것으로도 그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을 돕는 데 관심을 쏟다
1997년 그는 제3세계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구호기구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 를 만들고 이후 이름을 ‘플래닛 뱅크’로 변경한 뒤 이 곳의 총재로 일하고 있다.
그가 플래닛 파이낸스를 세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상당부분을 ‘기술이 지구적 경제불평등에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아탈리는 1988년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은행 총재로 일하고 있던 무하마드 유누스를 처음 만났다. 유누스를 만나고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탈리는 그 후 가난을 퇴치하는 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1991년 유럽개발은행(EBRD)을 설립한 것도 동유럽 경제를 살리고 동서 유럽간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아탈리가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을 본뜬 '플래닛 뱅크(PlaNet Bank)'를 세운 것은 1997년으로, 플래닛 뱅크는 유럽지역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였다. 1년 후 은행 이름을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로 바꾸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한 아탈리는 오랜 친구인 유누스를 이 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했다. 은행은 점점 커져 현재 전 세계 60여 개국에 지점을 두고 무담보 대출을 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유누스 총재가 빈곤퇴치의 일환으로 1983년 법인으로 설립한 방글라데시의 은행으로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제공하여 빈곤퇴치에 이바지한 공으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소위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으로도 잘 알려진 이 사업은 당시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유누스가 1972년 20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어인 그라민은 '시골'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유누스 센터 홈페이지(http://www.muhammadyunus.org )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그는 1980년 기아구제기구 창립, 1984년 유럽신기술 개발프로그램 EUREKA 창설, 1989년 방글라데시 구호기구 설립, 유럽 고등교육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그가 알제리 출신, 유태인이라는 소수자 출신이면서도 프랑스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고 젊은 나이에 대통령을 특별보좌하는 등 세상의 꼭대기에 서 보았다. 하지만 결국 아탈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가 진정한 ‘소수자’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해 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그는 경영 경제, 현대사회에 대한 조망과 미래를 예시하는 저서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영화, 희곡, 어린이를 위한 콩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출간했다. ‘영원한 삶’등의 소설을 써서 90년에 프랑스문화작가 협회상을 받기도 했으며, ‘복제인간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단편소설과 샹송가사도 썼다고 한다.
음악에도 상당한 애정을 쏟는 그는 직접 지휘를 하기도 하는데, “지휘할 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파돼 음악으로 솟아나면서 느끼는 기쁨은 형언하기 힘든 것입니다. 평소에는 피아노를 치면서 이런 기쁨을 느낍니다”라며 음악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앨빈 토플러 박사는 그를 '재기과 상상력 추진력으로 뭉친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성인"이라 평가했다.
주요 저서
<소리: 음악의 정치경제학 Bruits, conomie politique de la musique)>(1977)
음악의 역사와 음악만이 갖는 미학적 힘을 사회과학적 해석과 정치적 욕망으로 풀어헤친 미학과 음악이론의 걸작,
<지혜에 이르는 길-미로 Chemins de sagesse-Trait du labyrinthe>(1996)
베네치아의 골목길에서 인터넷까지 인류 문명이 남긴 모든 미로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추적한 경이로운 인문서,
<축약 보고Ⅰ,Ⅱ,Ⅲ Verbatim Ⅰ,II,III>(1993~1996)
미테랑 전 대통령 특별 보좌관으로서 재직하면서 경험한 당시 국제 정치 상황에 대한 비망록이자 회고록,
<영생 La Vie ternelle>(1989)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욕망을 그린 소설,
<카니발의 질서-의학의 정치경제학 La Nouvelle conomie fran aise)>(1978)
등 다양한 장르의 40여 권의 저서를 냈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책은 세계적으로 600만 부 이상 팔렸다. 국내에는 10여 권이 소개되어 있다.
한국과의 인연
2007년 한국을 찾은 아탈리는 한국이 2030년에도 여전히 10대 주요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미래 기술 측면에서 선두적 입지를 갖고 있는데다 뛰어난 잠재력과 인적 자원, 기업의 높은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미래의 물결> 한국판에 한국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넣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으며, 한국 사회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통찰을 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최근에는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아탈리는 머지않아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오는 9월 15일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리는 ‘2009 아시아태평양 도시정상회의(APCS)’에서 ‘창조적 문화와 다양성’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라는 그의 입에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보아야겠다.
내가 저자라면
“이번 위기는 모두에게 구원의 기회이며,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세계화가 촉발할 수 있는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울리는 경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크 아탈리
지난주 읽은 앨빈 토플러의 <불황을 넘어서>가 1929년의 대공황 상황에 비추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경제 위기 상황을 풀어내는 과거형이었다면, 이번주의 <위기 그리고 그 이후>는 2007년 이후 불거진 미국발 금융 위기의 본질과 원인을 샅샅이 훑고 있는 현재형 분석서다.
금융위기 이후 원인 분석과 극복 방안은 연일 쏟아진다. 영미권 석학들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오만'이나 '일방적 세계화의 비극' 등 미국 중심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자크 아탈리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또 새로운 은행업을 수십년째 실행하고 있는 개혁가의 입장에서 미국의 불공정한 부의 분배와 일부 ‘정보선점자’들에 의한 이번 사태의 본질을 무섭도록 차분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파헤친 뒤 미국과 유럽, 국제통화기금 등 각 주체들을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명석한 두뇌 순으로 프랑스의 대통령을 뽑는다면 첫 번째로 꼽힐 것이라는 그의 천재성은 책에서 곳곳에 묻어난다. 우선, 서문에 책 한 권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는데, 처음에는 단 몇 줄로, 그리고 두세 페이지에 걸쳐 핵심만을 잘 추려놓았다. 프랑스인들 특유의 만연체가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개인적으로는 언어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확실히 짧고 힘있다. 확실한 자기주장은 유머감각까지 갖춘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철저한 논리를 뒤집을 자 있는가? 하는 자신감이 절로 묻어 나온다.
그의 목적대로 단순 명료한 이 책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이 수수께끼를 해명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일들을 예견해봄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불상사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
시간이 없다면 서문만 읽어보아도 그의 핵심을 알 수 있지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장은 1, 2장과 5, 6장이다. 논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각 절에서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기에 읽기 부담스럽지 않기에 권한다.
이 책의 장점은 자본주의 이후 지난 금융 위기에 대해 매우 짧고 핵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1장과 현재 위기의 시작부터를 다큐멘터리처럼 훑어주는 2장에 있다. 또한 아직 위기 중임을 감안할 때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았을 텐데, 5장에서는 위기와 위기 해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6장에서는 각 주체들을 위한 긴급 대책을 조목조목 처방하고 있다.
그의 현재 위기상황 진단
그는 자본주의가 태동된 12세기부터의 사례를 들며 ‘위기는 역사상 늘 있었다’고 전한다. 다만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1929년의 대공황은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지고 나서야 끝났지만 17세기에 발생한 네덜란드의 '튤립공황'은 이후 150년 동안 네덜란드 부흥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아탈리는 책의 전반부에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젊은 시절의 성장통'으로 본다고 정의한다. 1971~1982년 어두운 시대를 거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했던 것 같은 과도기적 동요로 취급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다. 하지만 125페이지에서 그는 솔직한 속내를 보이는 것 같다. 이 상황은 1000년 동안의 혼돈을 야기한 로마제국 멸망기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사에 확실한 그 역시 희망과 절망적인 상황을 동시에 보고 있음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듯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막대한 공적자금을 퍼부어 일단 급한 불을 끈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은 향후 이와 비슷하지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다. 어쩌면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2년,5년,심하면 10년까지 불황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원인 1. 부의 편중을 가리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중산층을 빚잔치로 끌어들인 미국
그는 부가 지나치게 최상부에 편중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유효 수요를 만들 수 있는 중산층과 그 이하 층이 구매력을 갖지 못한 것이 이번 금융 위기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중산층은 1979년보다 못한 월급을 받고 있어 구매력이 줄어드는데, 경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신용카드와 주택자금대출 등을 통해 돈을 빌려 소비하도록 조장하는 체제를 만들고, 이를 유지시키기 위해 금리를 계속 내린다. 이 점이 금융위기의 뿌리 가운데 하나다.
“현재의 위기를 몰아온 일련의 사건들 저변에는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가에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하여 수요가 제대로 창출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사건들은 미국 사회가 정당한 소득분배의 대체물로 새로운 금융체제를 선택했으며, 이를 유지시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원인2. 비도덕적인 정보선점자들, 현재 은행 체제의 두 가지 딜레마
또 다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현재의 은행 체제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현행 은행제도가 가진 두 가지의 결정적인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첫째, 금융기관들이 수익성은 매우 좋지만 그 대신 위험이 매우 높은 투자에 대해 인위적인 붐을 조장한 다음, 고객들에게 빚을 내서라도 이 투자에 참가하도록 부추기는 일이다.
둘째는 첫 번째 경우와는 반대로,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이 얻은 좋은 투자 정보를 고객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자기들만 독점하는 일이다.
두 경우 모두 금융기관은 정보를 이용해서 본래의 기능, 즉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돈을 대주는 일에서 이탈해서 자신들만을 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금융업으로 돈을 번(아니, 벌 수밖에 없었다는) 유태인 출신이다. 그런 그가 금융업의 폐해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새로운 형태의 은행업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닉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아탈리에게 분노의 대상은 분명하다. 그들은 바로 은행가, 애널리스트, 민간투자자들로 이루어진 ‘정보선점자들’이란 중개인 집단이다. 그는 이들의 행태를 강도짓과 비교한다. 그는 정보선점자들이 시장의 위험을 잘 알면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면서, “그것은 은행금고에서 최대한 많은 금괴를 빼내기 위해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범죄 현장을 떠나지 않는 강도들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까지 빗댄다. 137페이지에서 ‘그들의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며, 어떤 가치 판단도 배제한다’던 아탈리는 종국에 가서는 (138페이지) ‘모든 일은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특히 5장 전반에서 그는 정보선점자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 장은 특별히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읽으며 노트한 내용 가운데 ‘정보선점자들을 위한 도덕 교과서’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러나 과연 그들이 이 책을 읽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해결책
앨빈 토플러의 <불황을 넘어서>에서 '뉴딜 정책은 더 이상 해법이 될 수 없다'던 경고와 그의 견해는 일치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내놓은 뉴딜정책을 다시 사용한다면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이유로 그는 ‘오늘날은 경제의 간섭 현상이 광범위해졌으며, 분업도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재화와 노동력의 시장까지 빈틈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위기의 근원인 '시장과 법치성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힘을 통해 금융시장의 권력을 법의 권위 밑에 두고 '정보선점자'들의 권력을 시민의 권리 밑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정보를 선점해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반사 이익을 챙기는 정보선점자들이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보를 공평하게 분배하고 이를 감독할 수 있는 공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덧붙인다. 특히 글로벌 규제 체제 정비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변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 감독 권한을 IMF로 모아 IMF를 글로벌 규제기구 설립의 인큐베이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히 유럽인인 아탈리는 ‘세계정부’의 필요성까지 내비친다. 선진 8개국 모임(G8)을 G20으로 확대하고 G20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합해 경제적 힘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공용 통화의 신설 필요성에 있어서는 공감하는 그이지만 아직은 이를 실현하기에 시기상조이며, 일단 엔화와 유로화까지 아우르는 기축통화의 다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유토피아적이라고?”라고 독자들에게 장난스레 묻는 아탈리. 그는 "그래도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전작 <미래의 물결>도 읽어야 할 이유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작 <미래의 물결>에 나오는 개념들이 이 책의 상당 부분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트랜스 휴먼’이라는 개념. 아탈리는 자신뿐 아니라 동시대인과 그 후손의 운명에 대해 깊은 이해심을 갖고 고심하는 ‘이타적인 시민’을 트랜스 휴먼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 시장경제의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고 민주주의의 지속이 가능해진다는 것. 그는 176페이지 마지막 해결책에 ‘너무 자주 잊고 지내는 소박한 진리 네 가지’ 중 하나로 “각자가 타인의 이익을 고려할 때, 비로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의 오랜 주장을 편다.
또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탈리가 주장하는 위기 해결책은 궁극적으로 그가 <미래의 물결>에서주장한 ‘하이퍼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국가로 기능하면서, 시장만이 지나치게 앞서가는 절름발이 식 세계화가 아닌 온전한 의미의 ‘지구촌’, ‘지구는 하나’를 실현에 옮기는 그의 이상이 이 책에도 녹아 있었다.
이 두 개념을 더 잘 이해하고 그의 논리 도출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물결>을 더불어 읽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 남겨지는 또 하나의 숙제가 되겠다. 이번 주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기에 이 역시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과 같이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도록 격려하는 이 책이 그래서 고맙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책 원전에는 숫자로 장절이 나뉘어 있지 않으나 편의를 위해 번호를 매겼습니다.)
서문 - 위기 분석과 미래 예측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6)
겉보기에는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그저 주택 대출을 제때에 갚지 못한 몇몇 미국 가정이 있었을 뿐. (6~7)
이 책의 목적은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이 수수께끼를 해명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일들을 예견해봄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불상사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해봐야 한다. (7)
모든 일은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일단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몇 줄 정도로 요약하고, 그런 다음 여남은 쪽 정도로 간추려볼까 한다. (7)
세계화 이후 최초로 맞게 된 이번 금융 위기는, 상당 부분 미국 사회가 중산층에게 적절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미국 사회는 이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주택을 구입할 때 빚을 얻으라고 부추김으로써 자산 가치를 높이고 생산을 독려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이와 같은 방식을 적극 권장하는 금융기관과 ‘정보선점자들’은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의 대부분을 독식했으며, 이 과정에는 아무런 위험도 따르지 않았다. (7)
이를 위해서는 특히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지닌 권력을 통해 시장 권력과의 균형을 도모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 중에서도 우선 금융시장의 권력을 법의 권위 밑에 두어야 하며, ‘정보선점자들’의 권력을 시민의 권리 밑에 두어야 한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산사태를 미리 예고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일단 시작된 사태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8)
내가 보기에,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시장은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가장 나은 기제이기는 하나, 자력으로는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법치성을 만들어낸다거나 생산수단을 완전가동하는 데 필요한 수요를 창출해내는 능력은 지니고 있지 못하다.
(중략)
보다 공정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미국에서는 적어도 20년 전부터 봉급생활자들의 빚을 통해 수요가 유지되었고, 이 빚도 대출을 통해 구입한 자산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채무 구조가 그런대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꾸준히 금리를 내려야 했으며, 금리인하는 빚을 지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9)
이런 식으로 금융시장과 정보시장에 군림해온 대표 주자가 바로 미국이다. 국내 예금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였으나 달러 가격 하락으로 국내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되팔지도 못하는 중국과, 역내 예금이 유럽 은행들에 의해서 증권화되거나 보험화되어 곤경에 처한 유럽은, 점점 더 분수에 넘치게 생활수준을 높여가는 미국에 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0)
결국 금융 위기는 터지고 말았다. 이 금융 위기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체제가 전반적으로 부패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잘못된 체제를 유지해오고, 이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보너스를 지불해야 하는 체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12)
2년, 5년, 아니 어쩌면 10년에 걸쳐 불황이 계속될 수도 있다. 서구 국가들의 빚을 다 청산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3)
지금이라도 우리들을 이와 같은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은행가들에게 보너스를 지불하기 위하여 또다시 우리의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무계획적이고 소모적으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번 위기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기회임을 깨달아야 할 때다. (14~15)
하지만 이 점만은 분명하다. 1637년에 발생한 ‘튤립공황’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7주 연합이 이후 150년간 막강한 성장 가도를 달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브프라인 위기는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안정적인 수요가 확보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최저 임금 제도가 마련되고, 국가 주권 행사의 주요 도구인 화폐 기능의 핵심을 공유화하고, 법의 지배에 기초한 시장을 마련해야 할 필요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 요컨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적절한 시기에 세계 정보가 창립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렇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1세기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에 무수히 많은 전쟁의 위협도 발생할 것이다. (16)
1장 지나간 위기가 주는 교훈
특히 자본주의가 권좌에 오른 이후로는, 위기가 아예 정상적인 상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
현재 전 세계를 불안에 몰아넣고 있는 금융 위기는, 그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인류 최초의 위기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번처럼 전 세계적인 규모의 위기는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중략) 이번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늘 그렇듯이, 과거에 겪었던 위기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20)
<자본주의 시작 이후 금융의 중심지 요약> -by 예원
브루게(12C) --->제노바(1620) à 암스테르담 à런던(1720) à보스턴, 월스트리트 (1890~1907)
미국식 자본주의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나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24)
금융에 거품이 있을 때면 늘 그렇듯이, 일하지 않고도 엄청난 돈을 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중산층은 가진 돈도 없으면서 빚을 얻어 점점 더 소비에 열을 올렸다. (25~26)
미국인들의 부채(경제 주체 모두 포함)가 300퍼센트에 이를 때까지도 위기를 인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29년, 6개월 동안 345개의 미국 은행이 문을 닫았을 때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26)
무역 거래가 점차 동일한 화폐를 사용하는 특정 지역 혹은 특정 국가 간으로 제한되자,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불거졌다. (27~28)
(1944년) 예정대로 3개의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화이트를 우두머리로 하는 기금 관련 위원회(국제통화기금, IMF), 케인즈를 대표로 하는 개발은행 관련 위원회(국제부흥개발은행, IBRD), 멕시코 출신 수아레스가 지휘하는 세 번째 위원회는 그 외 금융 부문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32~33)
7월 12일, 영국 대표의 요청에 따라 ‘금으로 교환 가능한 화폐’는 ‘금 또는 미국 달러로 교환 가능한 화폐’로 수정되었다. 이는 달러본위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문제의 영국 대표는 케인즈의 지시를 어기고 이와 같은 제안을 한 것이었다. (33)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한 위안화의 재평가를 우려하던 중국은 적극적으로 달러를 사들였다. 이로써 미국의 경제 성장과 재정 적자는 점점 더 생산의 상당 비율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의 예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세계는 중국과 미국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희한한 커플에 의해 경영되는 듯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42)
당시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헤지펀드 운영자들의 총아였던 하이먼 민스키처럼, 심각한 금융 위기가 곧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민스키는 금융 위기가 다섯 단계에 걸쳐서 진행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수익성 높은 혁신(또는 경제 정책의 변화), 경제 호황, 낙관주의 팽배, 이익의 유출,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스키 모멘트’라고 하는 패닉 상태…… 그는 ‘민스키 모멘트’를 2009년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5)
2장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과거에 일어났던 금융 위기는, 앞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당시의 경제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이거나, 시행중인 경제체제의 역량을 시험해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49)
내 생각에는 이번 위기가 젊은 시절의 성장통에 가까워 보인다. (50)
미국에서 일어난 위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과 보험회사, 투자은행 등을 통해 전 지구적인 위기로 확산되었다. 이번 위기는 출발에 있어서는 1929년 위기와 매우 유사해 보이는 반면, 규모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50)
1. 불충분한 수요
미국 시민의 평균 연봉은 1979년에 비해서 오히려 줄어들었으며, 최빈층의 경우에는 무려 20퍼센트나 줄어들었다. (51)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와 같은 부의 이동은 수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봉급이 충분하지 못한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은 생산되는 상품들을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인구의 노령화(미국에서는 이민을 통해 약간 늦추었다) 현상도 수요에 작용하는 중요한 변수로 대두된다. 일반적으로 5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서는 수요가 감소한다. (52)
2. 부채를 이용한 수요 창출
부의 분배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수요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중산층이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1980년대 초부터 소비재 구입용 각종 신용카드 발급, 주택 구입을 위한 특별 담보 대출 등을 통해 미국 사회가 기능해온 방식이다. (52)
1980년대에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금융기관들이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게 대출하기를 주저하자, 다양한 지역공동체들과 협력관계에 있던 각종 압력단체들은 공공주택 확대 사업 동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은행들의 합병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다양한 주택 담보 대출 상품 판매가 활성화되었다. 부유한 고객들에게는 프라임(Prime) 대출을, 중산층에게는 알트에이(Alt-A) 대출을, 그리고 가난하고 대출상환 가능성이 낮은 고객들에게는 서브프라임(Subprime) 대출을 권하는 식이었다. (54)
3. 금리인하, 지렛대 효과, 부의 효과
늘어만 가는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멍에가 되지 않으려면, 금리가 내려가야 한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2003년부터 꾸준히 금리 인하 정책을 펼쳐왔다. 그린스펀이 내린 이 중차대한 결정은 상당 기간 동안 박수를 받아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재앙을 불러왔다. (56)
요컨대. 300테라(Tera: 기호는 T, 1조에 해당하는 산술 단위) 달러를 웃도는 세계 자산의 상당 부분이 빚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산더미 같은 빚더미 아닌가. 빚더미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57)
4. 예금 끌어모으기 경쟁 : 증권화와 파생상품
은행들은 우선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부동산 채권인 서브프라임 채권을 위험 순위에 따라 떼어낸 다음, 이를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RMBS), 일부 중개인들이 ‘잃어버린 돈loss money’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장 위험이 높은 지분저당(equity), 중간 정도의 위험을 안고 있는 메자닌(mezzanine), AAA 등급인 시니어(senior) 혹은 수퍼시니어(super-senior) 등으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이것들을 증권인 것처럼 금융시장에서 판매했다. 이것이 바로 ‘증권화titrisation’로, 신기술과 새로운 수학적 모델, 인터넷 등으로 활용 가능해진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상품 구입자들에게 매우 높은 수익률을 보장했으므로, 단시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58)
심지어는 소위 ’파생상품’이라고 하는 상품들에도 증권화 방식이 적용되었다. (59)
나날이 복잡해지는 쪽으로 변해가는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이러한 상품들의 기제는, 정작 이것들을 취급하는 은행의 경영진마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하다.
금융기관들은 고객들에게 이런 부류의 상품들을 권유하면서, 은행 간부들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가득 적혀 있는 150쪽짜리 설명서를 나누어주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60)
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상품의 근본이나 투명도에 대해서는 밝혀낼 도리가 없었다.
은행과 헤지펀드들 중에서 몇몇은 이러한 상품이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런 자들조차도 고수익이라는 미끼 때문에 아무런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 (61)
5. 자본 모집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신용부도스와프(CDS)와 모노라인을 고안한 보험회사들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위기는 차츰 쌓여갔다. 전 세계의 예금자들은 점점 더 알쏭달쏭해져가는 금융 상품들을 사는 데 주저하기 시작했다. (62)
그러니 어느 누구도 누가 무엇에 대해서 누구의 보험을 들어주고 있는지, 보험 액수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상품의 실질적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가 없다. (64~65)
6. 무분별한 평가기관
원칙적으로 ‘평가자’라고 하면 독립적이어서 부패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 (65)
현재 활동중인 곳은 모두 민간 기업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3개 신용평가 기업인 S&P, 무디스, 피치가 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가하는 기업들로부터 봉급을 받는다! (66)
이번 위기에 관여한 모든 출연진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평가기관도 고객들, 즉 기업들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내는 일에만 골몰한 나머지, 다시 말해 어디에서 오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부의 향연에서 한몫 챙기기 위해서, 지나치게 너그러운 점수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는 화근 정도가 아니라, 거의 범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RMBS나 CDO, CDS 등의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을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그토록 엄청난 액수의 이익을 안겨주는 기업을 감히 어떻게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66~67)
7. 폭발적으로 증가한 글로벌 채무
이처럼 사회 전반에 만연한 ‘공동체 의식’ 속에서 채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67)
국채를 줄인 예외적인 나라는 캐나다와 칠레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또한 위기임을 시사해주는 지표다. 하지만 여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68)
8. 위기를 예고한 사람들
미국 재무부 장관 폴슨(클린턴 대통령 재임시절, 전임자인 루빈 장관과 마찬가지로 골드만삭스 총재직을 역임)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어야 마땅했지만,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국제통화기금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각국의 재무장관들 또한 입을 모아 “세간의 지나친 비관주의는 근거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68)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채무는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중략) 2004년 12월 21일, 뉴욕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누리엘 루비니는 2005년, 늦어도 2006년이 되면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거물급 예언자로 추앙받게 된다. (69)
하지만, 국채가 아닌 민간 부채가 문제 될 것이라고 짚어낸 전문가들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최하위 빈민층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얻은 대출금이 위기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걸 예측한 사람은 더더구나 없었다. (69)
9. 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면, 잔칫상을 물리기란 점점 더 곤란해진다. (73)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붐비는 장내에서 춤은 추면서도 슬슬 출구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경찰이 금방 들이닥치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금고가 있는 방을 떠나지 못하는 강도들의 심정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74)
10. 서브프라임 시장의 급변, 패닉의 경제학
11. 사건의 경과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여전히 고민중이었다. 민간은행을 도와야 하는가? 반면에, 새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된 벤 버냉키는 주저하지 않았다. ‘1929년의 대공황’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버냉키는 “중앙은행은 우선적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경제 성장이므로,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드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78~79)
폴슨 장관은, 연방정부의 예산은 월스트리트가 저질러놓은 파렴치한 행각의 뒷감당을 위한 것이 아님을 천명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리먼의 파산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84)
3장 자본주의가 사라질 뻔한 날
2008년 9월이 다가오도록 해결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91)
10월 24일 금요일, 월스트리트는 추락 79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다시 한 번 암흑의 날을 맞았다. (102)
하지만 안심은 잠시뿐이었다.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독약’은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소비는 침체했으며, 부채 청산은 계속되었다. 자산 가치 또한 하락했다. 이번엔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까지 자동차업계가 파산에 직면했다. (103)
런던의 시티에서는 며칠 사이에 일어난 몇몇 비극적 사건들의 여파로, 금요일엔 해고 통지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금요일에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들 중, 주말 동안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105)
이쯤에서 일단 한번 정리를 해두자. 전 세계 은행들의 보유 자산 총액인 4테라 달러에 대해서, 현재 국제통화기금은 1.4테라 달러, 루비니 교수는 2테라 달러 정도의 손실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미국 내의 손실에만 국한된 수치이다. (105)
신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돈은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그럴 경우, 그나마 유지되는 거의 명목뿐인 성장마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 재정을 통해서? 이 경우, 미국 국채와 달러는 머지않아 더 이상 상대해서는 안 될 기피 품목으로 전락할 것이다. (105~106)
4장 앞으로 닥칠 위협
봉급생활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상황이 1년 전보다 확연히 나빠졌다고는 할 수 없다. 실업이 아직 크게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급박한 위기는 넘겼으며, 각국 정부들이 투입한 막대한 자금과 인구 팽창, 기술 혁신,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어우러지면서 금 간 곳이 메워지면 단시일 내에 고도성장과 완전고용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낙관할 법도 하다 (109~110)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금융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실물 경제 위기의 위세에 눌려 진압된(사실은 진압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적인 차원의 대대적인 계획안이 신속하게 나와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실물 경제 위기는 대부분의 기업과 소비자, 근로자, 예금자, 대출자, 국가들을 모조리 곤경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실물 경제 위기가 사회 불안과 정치 불안의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원래 문제가 생기면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우선 희생양을 찾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110)
현재 우리에게 몰아닥친 위기의 진정한 본질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전 세계가 순식간에 금융 자산 디플레이션에서 심각한 불황으로 빠져들어, 결국 세계대전을 치르고서야 끝장을 본 1929년의 위기 같은 것일까? 아니면, 1971년에서 1982년까지의 기간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길고도 심란스러운 과도기에 해당되는 것일까? (110)
두 경우 모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일련의 새로운 재앙들이 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신들의 장래가 불안한 나머지,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적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점점 더 꺼리게 되면, 기업들은 줄도산하게 될 것이다. (중략)
너무 심한 시나리오라고? 나도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시나리오가 벌써 시작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111)
1. 금융체제의 새로운 도전
현재 온갖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하는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112)
2. 경기 침체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가계는 더욱 더 소비를 줄이고 예금 계좌에 현금을 비축해두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택이나 자동차 구입은 줄어들 것이며, 따라서 주택 대출금 상환도 줄어들 것이다. (115)
결국, 금융 위기 훨씬 전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과 더불어 시작된 경제 둔화 현상은 적어도 2009년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보험회사, 은행, 건설, 자동차산업, 항공 산업, 고가 물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는 공공부문마저 파산의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실업자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116)
따라서 각국은 기업의 국유화나 지원금 지급 등, 저마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책들을 내놓게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의 중심이 개별적인 국가의 내부로 옮아가는 회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29년 대공황 당시의 사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재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116)
3. 불황
이렇게 될 경우, 적어도 두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소비를 줄일수록 기업의 매출은 떨어지며,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수록 일자리는 줄어든다.
즉, 신중함이 지나치면 경기 침체가 불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118)
4. 인플레이션
5. 전통적 대국들의 몰락과 '시메리크' 커플의 미래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의 금융 위기란, 빚을 갚아야 하는 미국과 미국인들의 의무감에 대한 세계의 신뢰 상실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120)
분명한 건, 앞으로도 오래도록 미국이 세계 제1위의 경제대국, 군사대국, 연구대국으로 기능하리라는 점이다. (121)
달러를 대대적으로 약화시키게 될 외환 위기는, 이 같은 미국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 상실이 빚어낸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122)
6. 외환 위기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달러 가치의 하락은 아주 임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122)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채무의 증가와 세계적인 예금 고갈 사태로 인하여 달러는 점점 더 유일한 글로벌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123)
확실히, 유로화는 이번 금융 위기에서 유로그룹에 속한 국가들을 비교적 안정되게 보호했다. 앞으로는 우선적으로 이 회원국들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124)
이 모든 사정을 감안할 때, 우리는 반드시 통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고해보아야 하며,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단일 화폐를 제정하는 문제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124)
7.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적.이념적.정치적 위기
현재의 상황은 규모를 비롯한 모든 차이를 감안할 때, 로마제국 멸망기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잘 알다시피 3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1천년 가까운 기간 동안 혼돈이 이어졌다. (125)
이번 위기가 반란의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면서, 계급 간에 증오를 부활시키며 이와 더불어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격렬한 정치적 폭력을 야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땠거나 이번 위기가 마르크스의 분석, 즉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투지에 불타 국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로 확산되다가, 급기야는 스스로를 자살로 몰아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유효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니겠는가? (126)
이번 위기는 또한 실질적인 새로운 부를 생산해내지도 않는 소수 집단이, 어떻게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남이 만들어낸 부의 상당 부분을 가로챌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똑 같은 집단이 어떻게 남의 부는 부대로 가로채고, 자신들의 텅 빈 금고를 채우기 위하여, 국가로 하여금 단 며칠 만에 이들보다 형편이 훨씬 어려운 저개발 국가나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들에게는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던 액수의 천 배에 해당되는 돈을 만들어내라고 억지를 쓰는지도 똑똑히 볼 수 있는 기회였다. (126)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합법적이라면, 그 같은 부조리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127)
5장 위기와 위기 해법의 이론적 토대 : 서로 모순되는 민주주의와 시장의 요구
이번 위기를 단순히 시장 규제의 부재나 몇몇 투기꾼들의 파렴치함 때문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또한, 서로 다른 사회 계층 간의 대립이라는 개념만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중략)
현재의 위기를 몰아온 일련의 사건들의 저변에는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가에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하여 수요가 제대로 창출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사건들은 미국 사회가 정당한 소득분배의 대체물로 새로운 금융체제를 택했으며, 이를 유지시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132)
거듭 말하지만, 이번 위기의 원인은 훨씬 그 뿌리가 깊다.
이번 위기는 우선 은행 체제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133)
그렇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감독 기능이 중요하다. 이 기능은 다른 기관에 위임되어서도 안 되고, 축소되어서도 안 되며, 금융이 지닌 엄청난 정치권력이 휘두르는 압력에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 (134)
금융은, 어느 경우에도 상관없이, 실제적인 재화를 생산하지 않고도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34)
내 생각에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 즉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가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135)
1. 시장, 민주주의, 정보선점자들
민주주의란 원칙적으로 다수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며, 이때의 다수란 가변적이다. 다수가 (중략) 특히 소유한 정보에 의해 자본을 획득하는 자, (중략), 내가 이 책에서 ‘정보선점자들’이라고 명명한 은행가, 애널리스트, 민간투자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여기에서 ‘정보선점자’라고 하는 용어는 그 어떤 가치 판단도 배제한다. 이들이 맡고 있는 기능은 유효하다. (136~137)
만약 민주주의가 완벽하고,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모두에게 부과할 수만 있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똑같이 정보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선점자’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누구나 정보선점자가 될 것이다. (137)
시장에서 활약하는 거래인들에게 정보의 분배가 공평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가는 모두에게 공정성과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는 원칙을 부과하고 정보선점자들의 행동을 제어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보선점자와 나머지 사람들 간에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37)
새로운 금융 수단을 만들어내는 정보선점자들은 특히 그 수단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중략) 그들은 늘 이익만을 취한다. 이들은 봉급생활자도 아니고 투자자도 아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각종 거래의 중개인이다. (138)
이들은 한시적으로나마 일정한 수입(정보)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어낸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대부분 미국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정보선점자들은 본질적으로 세계 시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금융’이라는 세계의 시민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모든 일은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되었다. (138)
2. 금융업자들의 불성실함과 자기본위
태생적으로 ‘시장’과 ‘민주주의’라는 커플은 조화롭지 못하다. (중략) 이 커플은 모든 부문에 있어서 오로지 개인의 자유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중략) 그러므로 모든 일은 번복 가능하고 일시적이다. (139)
정보를 소유한 정보선점자들은 그 정보를 남과 공유하지 않는다. 아니, 독점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전에는 공유하지 않는다. (139)
3. 법치성의 소멸
4. 금융 자본주의의 승리
자, 이제는 어떤 상황으로 인해 현재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정보는 점점 더 차별적으로 분배된다. (142)
정보선점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최대 수혜자들로, 이들은 최빈층 대출자들과 최고 부유층인 전주들을 매혹할 수 있는 금융 수단을 고안해 낸다. (143)
정보선점자들은 ‘투자’와 ‘대출’이라는 두 기제는 최대한 복잡해지고,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최대한 보호될 수 있도록 금융상품을 고안한다. (143)
5. 위기의 촉발
정보선점자 외의 누군가가 부채와 자산 사이에 이처럼 참을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면, 정보선점자는 자신들의 금융상품이 가치를 잃기 시작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체제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144)
6. 해결책 : 법치를 통해 시장의 균형 되찾기
첫 번째 해결책은 1929년에 이미 실시되었고,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도 잘 알려졌다. 만일 같은 방법을 다시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훨씬 더 끔찍할 것이 확실하다. 그만큼 경제의 간섭 현상이 광범위해졌으며, 분업도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 재화와 노동력의 시장까지도 빈틈없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145)
두 번째 해결책은 시장, 적어도 금융시장은 효율적인 법치에 의해 균형을 잡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특히 정보가 공평하게 분배되며, 이와 같은 분배가 모두에게 동시에 이루어지는지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제가 확보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일부 사람들이 특혜적으로 누리는 정보 접근성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대폭 축소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첫째, 남에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기는 자는 자신 역시도 의무적으로 자기 몫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둘째 요구되는 유동성의 행방을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146)
한걸음 더 나아가, 신용평가 같은 감독 기능의 사회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보복적인 조치라기보다, 시장에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146)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반 규칙을 어기는 자들을 감독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경찰과 사법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몇몇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어오던 사업들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실시해야 한다. (중략) 특히 최대한 많은 경제인들에게 현재 논의중이거나 실행중인 모든 사항을 알려주고 ‘정보선점’을 보편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망을 개발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유토피아적이라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146~147)
6장 긴급 대책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금융체제를 이끌 수 있는 보다 강력하고 깐깐한 ‘지배구조governance의 정비’라는 주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관료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성부터 들이댈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인간이 만든 조직은 어쨌거나 관료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152)
금융 자본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힘으로 도덕적이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52)
하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이들은 언제 그랬나 싶게 또다시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남들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재개할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금융 감독은 공적 기능이어야 하며, 부분적으로라도 민간에게 이양되어서는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153)
이번 위기는 모두에게 구원의 기회이며,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세계화가 촉발할 수 있는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울리는 경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153)
우선 이 모든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경제부터 시작하자. 그런 다음 초국가적인 규제와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이어서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대규모 사업을 벌이자. (중략) 이 순서는 유감스럽게도 가장 긴급한 조치부터 늘어놓은 순서이기도 하다. (154)
1. 각국 경제의 질서 되찾기
2. 유럽 차원의 조정 강화
유럽연합의 회원국, 아니 적어도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그룹 회원국들만이라도 유럽 금융업계 전반에서 활약하는 모든 업자들을 감시하고, 이들 금융기관들에게 역외 금융 거점이나 유럽연합 외부에 존재하는 조세 천국들과의 거래를 금지시키며,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관성 있는 개념을 마련하여 유럽연합 내부, 특히 런던의 시티에서 이러저러한 관행만큼은 금지시킬 수 있는 기관을 출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여력이 있다면, 유럽중앙은행도 (중략) 마지막 보루로서의 유럽대부기관을 출범시킬 필요가 있다. (159)
3. 글로벌 규제체제의 정비
현 상태에서는 세계 단일 통화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활용한다는 방안은 시기상조다. (중략) 오히려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는 감독 권한을 국제통화기금으로 모아주고, 이를 현격하게 강화시켜야 한다. (160)
이러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을 때, 국제통화기금은 비로소 케인즈가 구상했던 방코르 같은 세계 단일 통화에 대해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163)
4. 글로벌 지배구조
우선 소박한 수준의 글로벌 지배구조를 정비하는 정도로 시작해 보다. (164)
5. 전 세계적인 차원의 대규모 사업
하지만 위에 열거한 정책들 중에서 (거의) 아무것도 실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도 원치 않는 끔찍한 재앙이 몰아쳐서 뒤늦게 가슴을 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특히 미국은 더더구나, 초국가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166)
7장 최후의 경고, 미래의 약속
그러 약간의 땜질식 처방으로 긴 경기 침체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하더라도, 향후 2~3년 안에 우기가 끝나고 예전의 우월한 지위를 되찾은 미국이 금융시장을 다시금 좌지우지하게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169)
기술 발전은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놀라운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도면, 우리는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비굴하게도 위기의 순간에 구상했던 모든 새로운 도전 따위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거품이 새로운 수입원이 되어 주며, 급기야 다시금 새로운 금융 위기, 새로운 실물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169)
1. 앞으로 닥쳐올 금융 위기
임기응변식으로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넘기고 나면 불평등은 한층 심화되고,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예금을 유혹할 것이며, 자연히 빚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또다시 새로운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170)
인터넷뿐만 아니라, 휴대폰 기술의 발달도 금융업의 향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략)
6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략) 입출금계좌는 물론 정기예금 계좌 관리, 주식거래 서비스 등을 이용하게 될 것이며, 상당히 복잡한 금융상품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그렇게 되면, 정보선점자라는 개념은 질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171)
어쨌거나 앞으로 20년 안에 이처럼 매우 특별하고 새로운 금융체제로 인하여 새로운 위기가 닥칠 것이다. (172)
2. 또 다른 어려움 : 복합계complex system의 미래
두 경우 모두 우리는 복합계, 바꿔 말하면 스스로는 어떠한 의도나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아무런 도덕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까닭에 인간에게 봉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을 파괴시킬 수도 있는 골렘 같은 존재와 맞서야 하는 입장이다. 골렘과 맞선 상황에서라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분별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175)
그러기 위해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우리가 너무 자주 잊고 있는 소박한 네 가지 진리를 상기해보자. (176)
● 각자가 타인의 이익을 고려할 때, 비로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다. (176)
● 시간만이 유일한 희귀 재화이며,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가용 시간을 연장시켜주고, 충만함을 더해주는 사람은 특별히 높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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