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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11시 3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Diane Ackerman

교육자이자 시인이며 수필가.

다이앤 애커먼은 미국 일리노이 주 와키건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를 졸업한 후 코넬 대학에서 미술 전문 석사학위와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예술기금, 록펠러재단 기금, 국립인문학기금을 받았으며 뉴욕 대학, 리치먼드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을 거쳐 현재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문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애커먼은 예술, 역사, 신화, 고전문학 등 인문학 분야는 물론 자연과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정원 가꾸기, 심리학, 뇌신경,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녀의 글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우리 주변의 미세한 것들에 대한 진정 어린 관심과 시인다운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 예리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글은 특히 자연주의적 감수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책, <감각의 박물학>은 그런 그녀의 특징들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생명체를 다룸에 있어서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공감각 등 과학적이지만 자연과 맞닿아있는 인간의 감성들로 세상을 인식하도록 돕고 있다. 그녀의 자연주의적 감수성은 그녀가 가진 해박한 과학 지식과 만나 더욱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또한 그녀의 문체는 시인의 감성과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한다. 다이앤 애커먼은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사례를 제시함에 있어 결코 단조롭거나 딱딱하지 않다. 그녀가 택한 언어는 시인과 같이 부드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져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또한 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표면적이나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녀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글을 과학적이지만 감성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녀는 자연과 인성에 관한 섬세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에세이를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욕타임스>, <뉴요커>, <스미소니언> 등에 기고했다.


존 버로즈 자연문학상, 미국 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라반 시문학상, 오리온 북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감각의 박물학>, <미친 별 아래의 집>, <뇌의 문화지도>,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 <내가 만난 희귀동물> 등이 있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들어가는 글 - 사랑이라는 말

사랑은 어떤 상태의 꿈일까? 미친 듯 열광하다 차분해지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평온해지고, 녹초가 되었다가 기운을 차리며, 벌컥 화를 내다 수그러드는. 이처럼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랑이다. (8)


우리 눈에 보이는 ‘백색광’은 사실 좁은 공간에 여러 가지 다채로운 빛깔들이 합쳐져 있는 것이다. 프리즘은 합쳐져 있던 빛들을 분리해준다. 사랑은 감정의 백색광이다. (9)


예술은 사랑의 감정을 풀어헤치고, 하나 또는 몇 가지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흐름을 쫓아가는 프리즘이다. 예술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풀어내면, 사랑은 그 뼈대를 드러낸다. (9)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멋진 춤을 추게 만든다. (9)


사랑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황홀경이자 문명보다 더 오래된 욕망이며, 그 뿌리는 미개한 원시시대에까지 내리 뻗어 있다. (10)


사랑은 진실과 마찬가지로 공격의 여지를 차단하는 방패이다.

“사랑이 세상을 굴러가게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누구든, 사랑이 삶의 흐름 속에 깃들어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되는 과정을 생각했을 것이다. (10)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고양시켜주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10)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궁극적인 하나로 생각하지만, 얄궂게도 사랑은 한결같지도 늘 일정하지도 않다. 무늬와 색상이 각양각색인 바틱 원단처럼 사랑의 감정도 가지각색으로 변할 수 있다. (11)


사회라는 집단 안에서의 우리는 사랑을 당혹스러워한다. 사랑한다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발음을 더듬거리고 얼굴이 빨개진다. 그토록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끄러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12)


사랑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싸움과 죽음까지 불사하며 지키고자하는 열정인데도,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도록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보충 어휘를 쓰지 않고는 사랑에 관해 제대로 옳게 말하거나 생각할 수도 없다. (12)


love를 대체할 만한 동의어는 찾기 힘들다. (12)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사람이라도 사랑의 현상을 누구나 이해한다. 마치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리고 어떤 작곡가의 음악에는 본능적으로 끌리지만 다른 작곡가의 음악에는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음악이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음악의 매력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13)


사랑도 마찬가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가치관, 풍습, 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사랑의 위엄은 동일하다. (14)


연인과 결별할 때 가슴에서 엘리베이터가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이별은 달콤한 슬픔 이상의 것이다. 이별은 꼭 달라붙어 있던 두 사람을 떼어놓는다. 그것은 굶주림의 고통과 비슷하며, 그래서 우리는 이별의 고통을 말할 때나 굶주림의 고통을 말할 때 격통이라는 단어를 쓴다. 큐피트가 화살통을 메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도 사랑이 때로 가슴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14)


사랑은 유익한 폭력이다. 출산처럼 흔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진귀헤 보이고, 항상 사람들 앞에 불쑥 출현하며,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사막의 모래언덕 아래에 있는 잃어버린 도시, 쾌락이 최고의 법이고, 거리마다 화려한 비단쿠션이 늘어서 있으며, 해가 절대로 지지 않는, 그런 꿈의 대상인 것처럼 사랑을 추구한다. (14)


이처럼 훤히 드러나고 다들 좋아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랑에 관해 의문이 많았기 때문이고, 처음부터 그 해담을 찾아내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내가 들은 대로 믿었으므로, 사랑의 개념은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고 로맨틱한 사랑은 중세 때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통설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안다. 사랑에 관한 숱한 어휘와 연인들이 쓰는 비유적 표현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풍속, 문화, 그리고 취향은 변하지만, 사랑 그 자체 그 감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15)


20세기에 사는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에는 현대의 삶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먼 옛날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정서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16)


삶이 수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신비 중에서, 나는 사랑이 제일 좋다. (18)


1부. 오랜 욕망

이집트 : 감상적이고 로맨틱한 사랑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전설은 사실 그녀에 대해서보다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과 동경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알려준다. (21)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극적인 방식을 도입한, 몸으로 쓰는 상형문자, 즉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이었다. (23)


내 직감으로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자신들이 둘 다 신성한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여기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관계였던 것 같다. (27)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리를 무찌르고 이집트를 로마제국의 영토로 삼은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 나머지, 서기전27년에 자신을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라고 선언했으며 자신의 칭호 아우구스투스를 8월August의 명칭으로 삼았다. 최대 난적이었던 클레오파트라, 만세의 연인인 교활한 여왕과 싸워 승리한 때가 바로 8월이었기 때문이다. (27)


고대 이집트의 예술

역사는 합의에 따라 기록된 허구이다. (28)


한 민족의 내면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29)


예술은 물질을 변모시키고, 시간을 넘나들고, 죽음을 면하게 할 수 있었다. 예술에는 주술적 목적도 있었다. 우리는 이집트와 예술을 연관 지어 생각할 때 대체로 일종의 페티시즘을 떠올린다. 이집트에서는 아름다운 예술이 실용적인 예술이었다. 그런데 실용적이라는 의미는 진흙이 살이 되고, 그림물감이 밀 다발이 되고, 보석으로 만든 눈이 신의 보호를 일깨우는 것처럼 효용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30)


사랑(사랑하다는 동사까지 포함해서)을 뜻하는 이집트의 상형문자 단어는 땅을 가는데 쓰는 괭이, 사람의 입, 그리고 입에 손을 넣은 남자 형상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30)


‘사랑한다’를 나타내는 그 표시는 원래 ‘원하다, 선택하다 또는 욕망하다’는 의미였는데, 그 글자에는 지속의 개념, 즉 오래도록 내내 원한다, 말하자면 ‘사랑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31)


결혼은 두 씨족이 맺어지고, 두 집안이 인척관계를 이루며 토지를 합치게 한다는 점에서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32)


쓰인 지 3천 년도 더 지났지만 오늘날의 연애시에서 볼 수 있는 동일한 주제, 근심거리와 벅찬 기쁨 등이 어우러져 있다. 고대 이집트 연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아직까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35)


1. 사랑의 연금술, 즉 변화를 일으키는 사랑의 힘. (35)


우리 마음을 끄는 엄청나게 근사한 사람은 절대로 연약한 인물일 리가 없다. 그 사람은 미덕이 널리 퍼져나가도록 하는 존재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우리는 그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의 좋은 점들을 낱낱이 부각시킨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37)


2. 사랑하는 연인을 자연에서 빌려온 이미지로 이상화하기.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는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거나 신의 손길로 생겨난 것뿐이다. (37)


3. 노예를 자청하는 사랑.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기꺼이 포로가 된다. 사랑은 마니아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연인들은 시에다 자주 이렇게 뜬다. “사랑이 나에게 가라고 해서, 나는 그렇게 따랐노라”고. (39)


4. 사랑으로 인한 무기력함.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사랑은 힘을 북돋아주기도, 무기력에 빠뜨리기도 하는 감정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때때로 혼란스러워하고, 명확하게 사고하는 능력을 잃기도 하며, 위통을 겪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몇 시간씩 공상에 잠기기도 한다. 이집트의 연애시가 일깨워주는 것처럼 사랑은 예로부터 병으로 묘사되어 왔다. (39)


5. 부모에게 감추는 사랑.

사랑을 함으로써 가족과 멀어지게 된 것을 배신, 반역행위처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될 것이다. (39)


6. 감각을 강화시키는 사랑.

사랑은 공감각 현상을 일으킨다. 시각이라거나 청각이라고 하는 일상적인 구분은 흐릿해지고, 감각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세상을 새롭고 신선하게 경험하게 된다. 사랑을 하면, 속을 태울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 말하자면, 음식, 따뜻한 온기, 보살핌, 애정 등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보모님께 완전히 의존하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된다. (40)


나의 누이, 나의 신부

수십 세기 후 프로이트는 남자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에 대해 질투를 느끼는 한편, 어머니와 결합하고자 하는 요구를 느끼는 이론 (42)


진화는 혈통이 섞임으로써 이뤄지고, 그 결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후손이 태어나게 된다. 다양성은 그저 삶에 흥취를 더하는 양념이 아니라 진화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숱한 공포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꼭 필요하다. (42)


가족이란 각자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지고, 상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일종의 작은 도시국가와 흡사하다. (43)


오랜 욕망, 달콤한 재난

이집트인들은 사랑에 대해 감상적이면서 로맨틱하다. 사랑을 일컫는 이집트어 단어는 ‘오랜 욕망’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44)


사랑은 때로 달콤한 함정으로 여겨지는가 하면, 앓아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열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집트의 어떤 신도 연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거나 연인들의 믿음을 시험함으로써 연인들의 행로를 조종하지 않는다. 연인들은 사랑의 힘에 휩쓸려 좌초하더라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시는 한 민족의 심장이 뛰는 모습을 기록한다. (45)


그리스 :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랑

“선생님은 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름다움인가요? 아니면 진리인가요? ”

“둘은 같은 거야.”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앎다움이다. 이것이 그대들이 이 세상에서 아는 것 전부이고, 알아야 할 것은 이뿐이다.”  - 존 키츠 -(55)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 이 신화는 사람이란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한 감정이라는 것과 아울러, 믿음이 확고하다면 사랑의 힘으로 저승 깊숙이 들어갔던 사람도 다시 끌어내올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67)


로마 : 더욱 대범해지는 사랑의 힘

딸들의 악몽

경계선은 양측에 똑같지만, 자기한테서 가까운 곳은 탄생을 이를 때처럼 ‘시작’이라고 하고, 가장 먼 곳은 죽음을 이를 때처럼 ‘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에든 시작과 끝을 구분하는 이유는 시간과 인생이 일련의 과저을 거치며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67)


디도와 아이네아스

‘영원’이란 아주 오랜 기간일 뿐이며, 아이네아스는 디도가 거의 잊고 있었던 ‘왕년의 불꽃’을 다시 불붙이도록 ‘하늘이 점지한’ 남자처럼 보인다. (74)


왕년의 불꽃. 우리가 쓰는 사랑과 도발에 관한 많은 비유적 표현을 고대인들도 썼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74)


가족, 동반자로 만드는 사랑

아이들은 아버지를 ‘경칭sir'으로 불렀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반듯한 행실의 귀감이 되어야 했다. (78)


이집트인들이 하는 방식대로 인체를 절개해서 해부를 해보면 아주 섬세한 신경이 그 손가락에서 시작해 심장까지 이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을 제치고 결혼반지를 끼는 손가락으로 영광을 부여받은 이유는, 인체의 중심기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 막연한 추정 때문인 것 같다. (80)


결혼 예식 절차에 따라 신랑은 신부의 ‘손’을 넘겨받았고, 반지가 끼워진 손은 신부가 신랑에게 주는 신부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상징했다. 부부끼리 손을 접촉할 때마다 그들은 심장을 접촉하는 셈이다. (80)


결혼생활에 새로운 규범이 생겨났다. 남편과 아내가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싹텄던 것이다. (81)


중세 : 궁정풍 연애의 탄생

뾰쪽탑의 어원을 조사해보면 그 말이 꽃송이의 돌출 부분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편이 새순 모양의 작은 돌들로 빙 둘러져 있는 대성단의 석조첨탑은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른 봄에 나는 종종 그런 성단 근처를 걸어가다가 새순들이 돋아난 나뭇가지 틈새로 뾰족탑을 올려다본다. 중세에도 성당 앞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아미 그처럼 똑같이 첨탑을 올려다보면서 첨탑이 상징하는 바를 떠올리고 위안을 느꼈을 것이다. (93)


음유시인,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

무어인 작가들은 사랑이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힘이며, 여성들은 비범한 여신들이라고 노래했다. (101)


“영혼의 결합은 육체의 결합보다 천배는 더 아름답다”

- 안달루시아의 시인 이븐 하즘 <비둘기의 목걸이> -

사랑하는 사람과 일치되고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요구이며 모래알처럼 평범한 일이고 라듐처럼 강력히 작용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 영혼- 태초에 존재했던 동일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훗날 물리적 우주가 형성될 때 분리된 -의 재결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이의 영혼은 끊임없이 다른 한쪽의 영혼을 찾고 얻으려 애쓰며, 다시 해후하길 열망하고, 철이 자석에 이끌리듯 그 영혼에 이끌린다.” (102)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향이 같은 영혼을 찾아내려는 끈기가 필요하다. (102)


이븐 하즘에 따르면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변화되어 더욱 강인해지고 용감해지며 점잖아지고 너그러워진다. (103)


음유시인들 덕분에 연애사건은 시적인 모험담의 단골 주제가 되었고, 그 결과 러브 스토리가 유럽의 문학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영웅적 행동의 범주는 확대되었고 ‘커플’, 즉 둘로 이뤄진 한 쌍이라는 개념이 사회를 애태우기 시작했다. (105)


중세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일방적인 사랑에서 쌍방의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05)


궁정풍 연애가 사회에 번져가자 사랑에 대한 이런 새로운 개념이 자리 잡자 사람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106)


서구에서 쿠션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귀부인 앞에 무릎을 꿇는 시골 기사에게는 푹신한 바닥이 필요했고, 그런 기사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하는 귀부인은 항시 쿠션을 어느 정도 거리에 두는 게 효과적일지 헤아려보기도 했을 것이다. (109)


많은 소설과 시, 오페라, 노래 들이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랑을 소재로 삼는다. 사랑을 소재로 삼는 유행은 11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118)


궁정풍 연애는 여성과 많은 기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고, 개개인에게는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했으며, 남녀끼리 주고받는 애정을 촉진했고, 연인들이 다정하게 지내며 서로 존중하도록 유도했다. 연인들은 서로 상냥한 벗으로서 상대에 대한 친밀감과 존경심으로 뿌듯해했고, 자신들의 품성과 자질을 향상시키려고 애썼다. (119)


인간의 지성에는 오묘한 점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모든 일이 ‘운명 지워졌다’, 즉 인간은 운명의 포로라는 믿음은 아주 이상하면서도 널리 통용된다. (120)


사랑의 속성으로서 이탈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즉, 사랑은 가족, 과거, 친구, 심지어 이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작용하는 힘을 지녔다는 개념이다. 사랑을 일종의 광기로 여기는 것도 먼 옛날부터 있었던 생각이며, 사랑하는 연인이 걸친 옷가지가 되고 싶어 하는 페티시즘 성향 역시 십 수세기 전에 쓰인 고대 이집트 연애시의 “그녀의 손에 끼워진 징표, 그녀의 반지가 되고 싶어”라는 구절을 상기시킨다. (139)


셰익스피어는 왜 그 커플의 나이를 그토록 어리게 설정하고, 그들의 사랑이 그토록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것으로 설정했을까?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것은 대략 서른 살 전후였는데, 그가 쓴 절묘한 소네트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사랑의 쓴맛 단맛을 잘 알고 있었다. (139)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은 결혼을 작정했다는 뜻이다. 희곡은 결혼과 죽음, 또는 결혼 아니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이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연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연인들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그 사람이 없이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극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궁정풍 연애를 하지만, 한 가지 주요한 차이가 있다. 그들이 애타게 바라는 것은 상대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결혼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141)


이 시대 귀부인들은 멀리서 흠모만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재치 있고, 예절 바르고, 독서도 많이 하고, 정치와 시사 문제에 식견이 있는, 한마디로 유쾌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144)


18세기 들어 낭만적 감정 표현에 대한 반동으로 세련됨과 예의범절이 중시되는 신고전주의 사조가 퍼지면서 종교에 대한 확신은 약화된 반면, 이성, 과학, 진리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었다. (145/146)


카사노바는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상대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 존중, 가족, 소속감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를 허세와 혈기 방장함으로 위장했다. 그는 어머니 같은 용모에 끌린다는 사실, 그리고 부자와 귀족들을 갈취한 것은 가난한 아이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감추려 애썼다. (150)


자기 시대의 열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가장 뛰어났던 작곡가는 베토벤이었다. 그는 장엄하고, 전위적인 음악을 작곡한 격정적이고 반항적인 사나이였다. 전통 음악의 엄격한 틀 때문에 속박을 느꼈던 그는 자신의 분노와 번민과 치열한 몸부림을 음악에 담아냈다. (158)


우리는 베토벤에 대해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힘과 열정이 넘치며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음악을 창작한 영웅적 인물이자, 반항아이며 관념주의자라고 기억한다. 베토벤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고독하며, 자신이 이상화한 여인의 냉대에 괴로워하고 낙담하며, 거절과 무시를 못 견뎌하고, 삶의 감각에 조응하며, 고통스럽게 세상을 등진 침울한 몽상가라고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낭만주의는 이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영혼을 찬미했다. (161)


남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죄의식을 갖게 하는 팜므 파탈이라는 개념은 스윈번 (1837~1909, 영국의 시인, 비평가)이 ‘지옥에서 갓 나온 미녀’라고 풍미 있게 표현했듯이, 집에 있는 순종적인 여성, 즉 거룩한 모성의 본보기인 여성과는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169)


사랑과 관능을 억제하는 태도를 묘사할 때 우리는 청교도적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러나 여성들을 굴레에 가두어놓고 연인들의 한숨을 막아버린 장본인은 청교도들이기보다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꾸며낸 ‘행복한 가족’이라는 허구 속에서는 아버지가 집안을 다스리고, 매사에 감사하는 어머니가 안주인 노릇을 하는데,  그 같은 허상은 후에 영화산업에 도입됨으로써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아 20세기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169)


현대적 삶의 본질과 우리가 현재 누리는 삶을 가능하게 한 태도 면에서의 변화들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선택권, 프라이버시, 책을 떠올리게 된다. (171)


책들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거대한 새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고, 사랑의 판타지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독자들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해주었다.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172)


2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플라톤 : 완벽한 합일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고 융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하나로 온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아리스토파네스 - (174)


로맨틱한 사랑과 신비주의자들의 종교적 황홀경의 핵심 중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이다. (175)


사랑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고대 그리스 사상에 기원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연인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를 찾고 있는 퍼즐 조각의 불완전한 반쪽이다. 연인이란 두 약체가 하나로 뭉쳐 이뤄진 강체인 것이다. 어떤 시점에 이르면, 연인은 누구나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상대와 합쳐져 하나의 통일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주성을 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175/176)


향연의 참석자들은 그저 사랑을 찬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사랑의 풍랑 속으로 뛰어들어 사랑의 깊이를 면밀히 헤아려보기 위해 모였다.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중 하나는 사랑이란 보편적인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다. 즉 사랑이란 단지 상상력이 빚어낸 지고한 개념이 아니며, 일시적 변덕이나 광기도 아니고, 개개인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176)


우리 각자에게는 오직 하나뿐인 상대가 있고, 그를 만남으로써 우리가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완벽한 파트너라는 이 로맨틱한 이상형은 플라톤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그 개념이 감정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큰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그것을 믿었고, 요즘도 그렇게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178)


실제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태초의 인간은 성서 속의 아담만큼이나 외롭고, 아담과 마찬가지로 동반자를 청하며, 자기 몸에서 여자가 만들어지자 기뻐한다. (178)


스탕달의 연애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절대로 상대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는다. 정열적인 사랑에는 단계가 있어서 먼저 한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 (190)


스탕달에게 사랑의 본질은 환상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해낸 신이나 여신과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전혀 그들을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거침없이 빠져들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191)


두려움 역시 사랑에 결정적이다.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사랑을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정서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과 달리, 스탕달은 사랑이란 고독한 감정이며 상대의 응답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191)


비록 이루지 못한 짝사랑이었지만 사랑은 그에게 야망과 상상력, 활기를 보답으로 주었다. 사랑은 그의 공상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그의 끔찍한 악몽은 가능성의 장막 뒤로 감춰둠으로써 그에게 날마다 모험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191)


드니 드 루즈몽 : 사랑과 마법

신화의 원전에 따르면 사랑의 묘약이 효능을 발휘하는 기간은 3년이었고, 그 동안은 두 사람이 사랑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합되어 마음도, 영혼도, 육신도 결코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95)


드 루즈몽이 옳게 지적한 바와 같이 열정을 일컫는 영어 ‘passion’에는 원래 고통 또는 수난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열정은 본질적으로 재난인 것이다. (197)


우리는 죽어서야 비로소 고통과 투쟁 그리고 저항을 멈춘다. 죽어서야 이성의 훼방, 정치와 종교의 심리전, 인간적인 불안과 골칫거리들을 내던지고, 본질적이며 매우 유기적인 차원에서 삶의 일부가 된다. 사랑의 힘마저 증발해버린 그런 궁극적 상태에서 감각은 사라져갈 때 최고조에 달한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소멸의 순간에 우리는 감각을 활짝 열어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201)


열정과 죽음이 그토록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죽음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고 느낄 때, 살아 있음을 더없이 생생히 느끼고 의식이 또렷해지며 그것을 에로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02)


장애물이 없으면 정신은 날아오르지 않으며, 열정의 비상도 있을 수 없다. (204)


마르셀 프루스트와 기다림의 에로틱함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다. 그것도 열심히. 기다림의 본질은 기다림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열정이 생겨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자기 인생에 들어올 ‘이상적인 남자 또는 여자’, ‘오직 하나의 진정한 사랑’, ‘특별한 누구’, ‘소중한 반쪽’을 기다리는 것은 늘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사였고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207)


요즘은 남자나 여자 모두 ‘인연’, ‘운명’, ‘하늘의 뜻’을 기다리거나 또는 세속의 신이 적당한 배필을 보내주기를 기다린다. 큐피드의 화살이 아니라, 시간의 화살을 기다리는 셈이다. 그들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전설 같은 사건을 지배하는 마법의 힘을 여전히 믿고 있다. (208)


기다림의 본질은 미래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기다림의 스릴은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들을 허물어버린 것처럼 가장하는 데서 생긴다. 그것은 사후의 생에 내밀하게 관여하는 것과 같다. 기다림은 종종 사랑의 감미로운 전주곡이 되곤 한다. (209)


그녀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랑에 관한 프루스트의 요점이다. 즉 사랑이란, 사랑하는 실제 그 때의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기대하는 시간 또는 기억하는 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214)


사랑은 왜 소중할까?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음의 모든 양상들, 사람들과 사물들, 동물들과 도시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화자가 자연의 세계를 깊이 음미할 때,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도 갈망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함으로써 그는 그 둘 다에 대한 열정을 고조시킬 수 있다. (216)


엑스터시는 누구나 희구하는 것으로 사랑도 섹스도 아니며, 피가 뜨거워지고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몰입의 경지이다. 그 상태에서는 살아 있다는 것이 곧 기쁨이요, 떨림이 된다. 그런 도취감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216)


프루스트에게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보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삶의 모든 면으로 뻗어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을 이루는 행위이며, 온전한 정신에 의한 매우 창조적인 행위이다. (217)


사랑이 쑥쑥 커가기 위해서는 시련이 꼭 필요하고, 고통이 사랑의 동력원이니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사랑은 서로의 고문이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 고통이 우리를 주술사로 만들어 삶에 내재된 숭고한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219)


사랑에 관해 비관적 견해를 보였음에도 프루스트는 우리가 사랑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그는 주장한다. (222)


프로이트 : 욕망의 근원

프로이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퇴화하여 어렸을 때 부모를 이상화했던 것과 같은 식으로 상대를 이상화한다고 말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자존감은 상대의 손에 달려 있다. 상대방의 사랑을 얻게 되면 그는 애지중지 대접받던 어린 시절처럼 의기양양하고, 으쓱하고, 마음 든든한 기분이 되며, 날아오를 듯 지극한 행복에 휩싸인다. 이 이론은 본질상 실리적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가치를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 즉 자신이 이상적인 자아로 간주하는 사람에게 이입시킨다. 그러면 사랑받는 사람은 자신이 더욱 귀중하고, 고상하고, 훌륭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228)


프로이트에 앞서 니체는 “남자들은 모두 자기 어머니에게서 끌어온 여성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이미지에 따라 여성을 존중하거나 경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고 썼다. (229)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보살핌을 받았는지가 그의 애정 생활에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 어린 시절의 애칭으로 부릅니다. 남자는 사랑에 빠졌을 때 어린 아이처럼 유치해집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비이성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비이성적인 면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추적해보면, 유년기로 귀착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충동은 유아다운 것입니다. (235)


애착이론

보울비의 주장을 요약하면, 애정으로 강한 유대를 맺는 것이 소위 ‘사랑에 빠지는 것’이며, 그런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소위 ‘사랑하는 것’이며, 그런 유대가 깨지는 것 또는 어떤 식으로든 사랑의 파트너를 잃는 것의 결과가 이른바 ‘슬퍼하는 것’이다. (240)


갈등이란 삶의 다른 모든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맨스에서도 정상적인 것이다. 갈등을 잘 다스림으로써 사랑이 피어나고 가정과 사회가 형성된다. (241)


애착은 생존을 위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어린 시절에 가장 강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 때로 고용주나 선생님처럼 권한을 지닌 인물에게 애착을 갖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세상에 더 잘 대처할 것 같은 어떤 이를 애착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두렵거나, 아프거나 또는 외로울 때 그런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며,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본능이다. (242)


사람들은 홀딱 반하고, 심취하고, 사랑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유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다. 그들은 매력 있는 애착의 대상을 얻는 방식을 체득하며, 그런 상대의 힘을 뼛속 깊이 세세하게 느낀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생각이 그들의 사고를 온통 조종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한 헌신의 마음을 잃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상대편의 중력을 자양분으로 삼고서 정확한 궤도를 이루며 도는 두 개의 별과 같다. (244)


이상적인 것은 아이로 하여금 양친 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고, 옹호하고, 후원하며, 헌신적 사랑을 퍼붓고, 필요한 것을 조달해주며, 잘되기를 빌어주며, 존중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그런데 최소한도로 요구되는 것은 믿을 만한 수호천사 한 명이다. 수호천사가 반드시 부모일 필요는 없다. (246)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애착대상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것들 중 일부가 어린 시절 나쁜 경험들을 희석시켜줄 수도 있다. (246)


3부. 사랑, 마음의 불길

사랑이 굳건해지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곳은

화학적인 조화가 이워지는 심장 속..

- W. H. 오든 (1907~1973, 영국 태생의 시인) -  (261)


심장을 뜻하는 이집트 상형문자는 춤추는 형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거나 생각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사랑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모르면서도 우리는 그곳이 인체에서 가장 소음이 많고 수선스러운 부위, 즉 늑골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수다스러운 기관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의 내부 장기 중 하나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 좀 특이하지 않은가? (261)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를 뜻하는 ’심장들 중의 심장에서‘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심장 속에, 즉 감정의 미궁 속에 있는 가장 깊숙한 동굴 속에 마트료시카 인형(열어보면 작은 인형들이 자꾸 나오는 러시아 목각인형)을 만들어낸다.

심장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며, 공개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사랑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사랑은 폭군 같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므로 사랑에는 원천이 있음이 분명하다. (262)


아이는 뇌가 아직 발달 중인 상태에서 태어난다. 아기의 신경회로 대부분은 출생 후에 발달한다. 신경회로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는 아기가 태어난 후 첫 몇 해 동안 아기가 어떤 일을 겪는지에 달려 있다. 그 시기는 사랑을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포함하여 인간답게 살아가는 갈을 아기가 배우는 때이다. (263)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인 어린 시절에 이이들이 자기가치와 사랑스러움에 관해 전달되는 정보는 훗날 그들이 자라서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인지 혹은 가차 없는 존재인지 평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 안토니 월시 - (264)


사랑을 하려면 사랑을 받은 적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아주 낯설게 여기는 경우가 많고,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한 운명에 빠질 수도 있다. 너는 사랑스럽다 하는 메시지는 말로 전해지기보다는 만지거나 쓰다듬기 같은 비언어적 방식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265)


아이가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중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야 하는데, 그런 정보는 주로 껴안고 뽀뽀하는 등의 친밀한 신체접촉을 통해 전해진다. (266)


상처받은 기억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 그 기억들은 수상돌기 가지의 굵은 줄게에 기록되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268)


행동 패턴과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뇌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뇌를 변화시키는 것은 영혼을 뒤흔드는 과정일 수 있다. 뇌는 유연하므로 당연히 변화하지만, 어렸을 때 변화하기가 훨씬 쉽다. 사랑은 모든 유아들이 간절히 바라는 천연영양제이지만, 누군가가 그 아이들에게 먹여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268)


인간보다 더 놀랍고 경외감을 자아내는 존재는 없었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아주 다르거나 동떨어진 생명체가 아니다. 비록 우리는 인간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없애버릴 권리를 지닌 신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이 행성에서 꾸준히 진화해온 진기하고 비범한 생명체이다. 우리는 꿈과 물질이 합쳐져서 피어나온 굉장한 결합체이다. 우리는 자연의 경이이다. (270)


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 생존에 결정적인 요소로 ‘선택’됨으로써 인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생물학적 책무이다. (270)


진화는 한 개인의 인생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실제 짐을 짓는 일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집짓는 이들의 기술과 경험, 사회 규범과 법률, 재료의 특성과 품질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지는 생물학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지는 또한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272)


인간은 개인별 부족별로 각기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독자적인 전략, 정서, 신념, 습관, 취향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문화’와 ‘개성’이라고 일컬으며, 인간이 문화와 개성을 ‘현상’시킨다고 말한다. 문화와 개성은 더없이 자연스럽거나 더없이 동물적인 영역이다. 몹시 바쁘게 돌아가는 환경 속에서 생병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평가하고, 그 경험에 관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며, 그 결정에 따른 결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적응하고 변하는 능력은 인간이 타고난 비상한 재능이다. (273)


옛 말이 딱 들어맞는 아이러니다. (274)


남성과 여성의 대결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짝을 짓고, 아이를 낳도록 예정되어 있다면 남녀가 노상 싸우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들의 생물학적 어젠더가 다르기 때문이다. (280)


여성은 임신하게 되면 아홉 달 동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쇄약해지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이를 낳으면 젖을 먹이고 수년 동안 보살펴야 한다. 여성이 투자하는 것은 수년 동안의 자기희생이다.

여성의 최대 관심사는 곁에 머무르면서 자기 아기를 부양하는 것을 도와줄 누군가를 고르는 것이다. (281)


여자는 곁에 있어줄 남자를 원한다. 그런데 남자가 꼭 그렇게 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여자는 남자를 고르는 데 까다로워진다. 여자는 자산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부양해주고 신의를 지키는 적합한 남자와 서로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여자는 남자의 성실성을 시험해보고, 남자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그리고 자신을 위해 물이든 불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지를 꼬치고치 따져 묻는다. 그럴 대 여자는 ‘항상’ ‘영원히’ 같은 말을 쓰면서 확인한다. 여자는 질투도 느끼고 독점욕도 있지만, 의외의 성향도 보인다. 남자가 난잡한 생활을 하더러도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281/282)


여자가 신경 쓰는 것은 남자의 실제적인 신의, 즉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지 않고 곁에 머무르면서 자기와 아이의 생존을 지켜주는 것이다. (282)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생존을 위해 약간씩 다른 말을 쓰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문장을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뜻을 전할 때가 종종 있다. (283)


여자는 영원한 것들로 망을 짜고 그것을 든든하고 아늑하다고 여긴다. 여자는 생물학적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 안에서 더 큰 대가족을 이루고, 파티를 열고, 여러 가지 알들을 부부가 함께 해나가려고 노력한다. (284)


남자들은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284)


남자와 여자의 대결에서 사랑은 여러 가지 치유책을 제공한다. 남녀 양측에게 모두 안전한 중립지대, 경계를 넘나드는 전령, 의혹의 늪에 솟아난 더없는 기쁨의 샘이 바로 치유책이다. (285)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 자기 사랑의 한 형태이다. 엄마와 아기는 처음에 사랑하는 하나의 완전체, 즉 하나의 세계로 시작해서 때가 이르렀을 때 각각 독립된 개체가 된다. 반면 연인들은 독립된 두 개의 개체로 시작했다가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의 세계, 즉 하나의 완전체가 된다. (287)


그 무엇도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어머니의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거저 받은 선물이고, 괴로움을 겪는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품이다. (287)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고 종종 조건이 붙는다. (288)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양친이 다 있는 편이 아이의 자의식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강력히 시사되고 있다. (289)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여자는 남자가 자신 곁에 한참 동안 머무르면서 남자의 혈통을 물려받고 태어날 아이와 자신을 오래도록 보호해주기를 바란다. (292)


마음은 뇌에만 있지 않다. 마음은 각종 호르몬과 효소들을 타고 끝없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294)


생각과 감정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전신 건강과 신체 건강도 나뉘어 있지 않다.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이다. (294)


“두 개성의 만남은 두 가지 화학물질이 접촉하는 것과 같다. 뭔가 반응이 일어나면 둘 다 변화한다.” - 카를 융 - (295)


사랑은 이국적인 배경에서 잘 자란다. 스트레스, 색다른 분위기, 또는 두려움 때문에 감각이 고조될 때는 신비주의자가 되거나 엑스터시를 느끼거나 사랑에 빠지기 쉽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로맨스를 쉽게 받아들인다. (297)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혼돈 속의 평정 상태이다. 사랑으로 얻어지는 친밀함, 따뜻함, 공감, 신뢰, 그리고 경험의 공유는 마음의 위로제가 되는 엔도로핀의 분비를 촉진한다. 평온한 사랑은 사랑에 푹 빠지는 것에 비해 덜 격정적이지만, 좀 더 꾸준하며 지속적이다.

평온하게 지내고, 불안해하거나 안달할 필요가 없으며, 어린 시절 친구처럼 편안하고 형제자매처럼 때로 성가시면서 서로 속내를 다 알고 부모처럼 세심하고 깊은 애정을 쏟는 헌신적인 배우자, 즉 평생의 반려와 즐겁게 사는 것은 대단히 멋지다. (298)


뜨거운 우유와 에스프레소로 커피를 휘저어 거품이 풍부한 맛잇는 카푸치노 커피를 처음 만들어낸 이들은 독신생활을 하는 카푸치노수도회의 수도승들이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성적인 면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더욱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304)


4부. 꼭 필요한 열정

육체의 불길 : 섹스는 왜 진화했을까?

인간은 다른 영장류처럼 신체접촉과 애착에 집착한다. 우리는 가정이라든가, 우정, 공동체, 애정 깊은 파트너를 간절히 바라는 군집성 동물이다. (314)


인간에게는 친밀함이라는 마약이 강력한 최면제이자 진정제이다. (315)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욕망, 농작물을 키우는 일이나 사회 생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지구의 남정적 힘과 여성적 힘에 뒤엉켜 있다. 단어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습관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315)


딜런 토마스가 이해한대로 사랑은 남녀사이를 이어주고, 한 사람과 다수, 개인과 사회, 외로운 영혼과 삶의 광대한 다원성을 이어준다. 사랑은 전령이고, 참견장이이고, 정치가이며, 신탁이다. (317)


얼굴

눈을 감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라. 괜스레 미소를 짓기 시작하고,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눈이 가늘게 떠지고, 따스한 기운이 가슴을 꽉 채울 것이다. (320)


결국 얼굴은 평온한 웃음의 일생인지 아니면 고집스런 일생인지를 섬세한 주름살에 기록한다. 우리는 얼굴로 사람을 알아본다. (322)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이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언급한 것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323)


남자와 인어

인어들은 어떤 면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느끼는 갈등을 반영하는 것 같다. 여자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남자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생명체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또한 남자들을 취약하게 만들고, 이성을 잃게 하며, 광기에 사로잡히게 하는 감정들을 유발한다. 그들은 가장 강력한 남자들을 예속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정정당당하게 싸우지도 않는다. 여자들은 미모가 뛰어날수록 파워도 더 커지고,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 쌀쌀맞고 도도하게 굴 때면 여간 무서운 게 아니다. 비록 육신은 섬약하다 해도, 여자들은 남자를 파멸시킬 정도로 강하다.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여자라는 아주 오래된 개념은 숱한 신화와 예술작품을 낳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인어는 그런 공포심의 결정체이다. (366/367)


5부. 이상하고 신기한 통과의례

구애

상대에게 가능한 한 잘 보이려고 서로 애쓰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상처와 꿈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차츰 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서적 교감이 잘 이루어지자, 그들은 같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서로 상대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한다. (405)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나이, 직업, 음악에 대한 취향, 삶에 대한 태도 등에서. 그런데 무엇보다도 둘이 만난 타이밍이 딱 알맞다. 두 사람 모두 사랑을 감행할 태세가 된 결정적인 단계에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랑할 준비와 의지와 능력을 갖추게 되면, 바로 그 다음에 만난 적당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415)


내 살에서 나온 살 : 결혼

혼인을 앞둔 남녀가 약혼반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앵글로 색슨 시대의 기록에 나와 있는데, 약혼반지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집트 상형문자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그란 원이나 고리 모양은 늘 영원성을 상징했다. (421)


약혼반지를 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이었지만, 다이아몬드 반지를 특히 선호했던 이들은 중세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다이아몬드가 사랑의 불꽃으로 만들어졌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421)


서구에서 요즘도 전통으로 지켜지는 흰색 웨딩드레스는 1499년에 안 드 브르타뉴가 프랑스의 루이 12세와 결혼식을 오릴 때 처음 입었다. (423)


성경에서는 흰색이 아닌 파란색이 순결을 상징했고, 신랑신부 둘 다 결혼 예복의 허리 아래 부분에 파란 띠를 둘렀다. (423)


신부의 고운 용모를 직물의 장막으로 감춰버리는 신부의 베일은 정숙과 순종의 표시이다. 오직 남편만이 신부의 베일을 걷어 올린다. (423)


고대 로마인들은 소동맥 - 라틴어로는 베나 아모리스, 즉 사랑의 동맥 - 이 약손가락에서 심장 쪽으로 흐르고, 따라서 약손가락에 반지를 낌으로써 커플의 심장과 운명이 하나로 합쳐진다고 믿었다. (424)


어느 덧 세월이 흘러 로맨스가 시들어버린 지도 한참이 지났을 때, 부부의 결속을 유지시키는 것은 결혼 서약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공유해온 많은 습관과 관행 그리고 함께 겪었던 크고 작은 숱한 일들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들에게는 결혼이 그들 나름의 법체계와 신화와 일과를 갖춘 고국이 된다. (432)


6부. 사랑의 여러 갈래

이타적 사랑

사람들은 왜 자기 목숨을 걸고 낯선 이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 걸까? 사랑의 온갖 다채로운 양상 중에서 아마 이타적 사랑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타적 사랑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이기심과 상반되는 것 같다. (451)


종교적 사랑

더없이 영적이고 신비로운 경지에 이른 종교적 사랑은 에로틱한 사랑과 아주 흡사하게 들린다. (488)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이를 때 통상적으로 쓰는 말들이 ‘열정’, ‘엑스터시’, ‘결합’이다. (489)


만물에 활기를 불어넣는 생명의 근원

종교적인 사랑은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숭배하며 부모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어린 시절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한다. (495)


낙원에 대한 강렬한 욕망

가톨릭교회의 많은 의식과 상징(십자가, 묵주, 영성체, 성수 등)들은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숭배에서 차용한 것이다. (496)


낙원을 이르는 페르시아 말 ‘pairidaeza'의 원뜻은 생명의 나무가 자라는 정원이고, 낙원을 이르는 히브리말 ’pardes'의 원뜻은 한 남자의 순결한 신부가 순결을 바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정원이다. (496)


종교적인 사랑은 우리의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주며, 가족이 없는 아쉬움, 누군가의 눈에 특별한 존재가 되고, 보호받고, 용서받으며 귀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달래준다. 종교를 이르는 영어 단어 ‘religion'은 묶고 연결한다는 의미이며, 재결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497)


내 사랑 애완동물

애완동물들이 그렇듯 쉽게 가족의 일원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어린아이들을 생각나게 하고, 그것이 아기 양육에 대한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동물생태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인간 행동에 관한 유명한 연구에서 추론했듯이, 우리가 ‘귀엽다’고 하는 동물들의 특성은 인간의 아기에게서 똑같이 볼 수 있다. (514)


아무것도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애완동물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들은 내내 우리를 즐겁게 한다. (516)


나오는 말

가슴은 하나의 박물관이며, 그곳에는 평생의 사랑이라는 전시품둘이 가득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들이 얼어붙고, 멀리서 빛을 발하고, 때로 아주 부자연스러운 빛에 잡겼다가, 보다 아름다운 면을 더 잘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사랑들이 숨을 쉬고 우리를 껴안아줄 수 있을까? 아니다. 사랑이 진열장 안에 갇혀 있는 한, 그 사랑은 우리를 위협하지도,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없다. 진열장 안에 간직한 사랑은 기념품들이다. 가슴은 감정의 우표를 발행하듯, 그 사랑들을 발행한다. 그 사랑들은 엠블럼 같은 표상이다.

사랑의 수액을 찾아 우리 가슴속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면, 분명 그 수액의 꼭 알맞은 본보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525)


가슴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가슴속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무리 좁고 조명이 흐릿하다 해도,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순간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구조류(식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처럼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525)


옮긴이의 말 - 사랑이라는 보물!

저자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류의 최초 조상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속에 깃들어 세대를 이어오며 지속되어 왔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 남녀가 맺어져서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에게 사랑을 쏟으며 키우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 덕에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527)


사랑은 한 자락 넉넉한 마음만 있다면 사랑은 나약하고 힘없고 가난한 이도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 어떤 대상을 자신보다 더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사랑의 가치관, 풍습, 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사랑의 위엄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527)


저마다 사랑의 존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그리고 더 크고 넓게 더 많이 사랑하리라는 다짐을 새기게 되기를, 또한 혈육에만 한정되는 사랑을 넘어 어려운 이웃을 보듬어주고, 일으켜주고, 아픔을 달래주는 사랑의 일군이 되기를, 그리하여 가슴속 박물관을 사랑이라는 보물로 차곡차곡 채우시기를 소망합니다. (527)



3. 내가 저자라면


“삶이 수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신비 중에서, 나는 사랑이 제일 좋다.” (18P)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사랑에 관한 훌륭한 연구들을 찾아보았지만, 사랑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에 관한 연구가 이토록 빈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천개의 사랑>은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지만 더없이 불가사의한 것,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감정인 사랑, 대다수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들도, 저자 자신도 가장 의문이 많았던 이 사랑을 풀이하기 위해 역사, 신화, 문학, 철학, 과학, 그리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랑에 관해 탐구한다.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끈기 있게 매달리며 사랑이 만들어진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저자에 의하면 최초의 사랑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사랑에 관한 숱한 어휘와 연인들이 쓰는 비유적 표현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풍속, 문화, 취향은 변하지만, 사랑 자체 그 감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에는 현대인의 삶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랑의 역사에는 먼 옛날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아주 오래된 욕망,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사랑을 일컫는 ‘오래된 욕망’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이집트의 감상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피라미드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 고대에도 사랑이 한창이었다는 것, 이집트 시인들을 통해 오늘날의 연인들이 겪는 달콤한 재난을 그들도 똑같이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 그들의 사랑의 선율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랑을 갈망하는 그리스인들의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았으며, 오늘날까지도 계속 연주되고 있다.


로마시대, 그들은 누구나 사랑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이해하고 있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덕규범을 아무리 강화하려 했어도, 그들의 사랑은 성난 강줄기처럼 갖은 고초와 징벌, 또는 죽음마저 불사하게 하는, 더욱 대범해지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끼리 주고받는 애정, 서로 존중하며 자신들의 품성과 자질을 향상시키는데 애쓴, 사랑을 고귀한 열정으로 이해한 중세의 궁정풍 연애는 오늘 날 많은 소설과 시, 오페라, 노래 등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소재로 삼고 있는 로맨틱한 사랑의 양상들을 최초로 표현한 시작이었고, 그 사랑은 우리의 도덕과, 상상력, 또는 일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 변화를 가져 왔다.


저자가 사랑에 관해, 사랑을 둘러보는 방식은 비교적 꼼꼼하다. 신화, 역사 속 장면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역사를 살펴보고, 플라톤, 프로이트, 칼 융 등 여러 철학자, 심리학자들의 사랑에 관한 견해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열린 시각으로 조망하고, 그 의미를 자기 나름의 사유로 비교적 능숙하게 풀어낸다.


또 저자는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적절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성을 해치지 않는 정도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 얼굴과 외모에 대한 영향과 편견, 특이한 성적 취향, 키스에 심취하는 성향, 카사노바와 돈 후안 같은 만족을 모르는 호색한들의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한편, 음악이 사랑의 양식에 미치는 영향, 구애 장면, 결혼 의례와 같은 사랑의 풍속 등 그 의미와 유래를 살펴봄으로써 일반적인 지식을 넓히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로맨틱한 사랑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사랑 등 사랑의 다양한 양상과 함께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회 전체가 겪는 외상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류의 최초 조상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속에 깃들어 세대를 이어오며 지속되어 온 덕에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사랑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사랑의 가치관, 풍습, 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어떤 대상을 자신보다 더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의 위엄은 언제나 동일하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관심 때문인지 자연사박물관의 모습, 그 유물에 사로잡힌 저자는 “가슴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곳에는 평생의 사랑이라는 전시품들이 가득하다. 사랑의 수액을 찾아 우리 가슴속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면, 분명 그 수액의 꼭 알맞은 본보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속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무리 좁고 조명에 흐릿하다 해도,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순간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구조류처럼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고 말한다.


사부님께서도 지난 여행 오프 수업에서 조셉 켐밸의 말을 인용하여 “사랑에서 멀어져 있으면 삶에서도 멀어져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사랑하던 그 순간이 정말 보석과 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우리 더 이상 울지 말자. 아름다운 감동의 순간이었던 것만큼 기쁘게 얘기하자. 그 순간만큼은 내 삶의 가장 빛나고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하자.”


그 사람을 좋아할까, 말까를 망설이던 무렵, 그리고 많이 피곤했던 어느 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배려하고, 내가 보지 못할 때도 나를 보는 그를 느낀 순간, 그동안은 잘 보지 못했던 작은 배려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그때, 나는 그만 무장 해제가 되어버렸다.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 이후로 그 사람이 내 눈에, 내 가슴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렇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 그와 내가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그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제일 아름다웠다. 그와 이별하고 내게 주어진 감동의 순간들은 그가 곁에 없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가 아팠고, 때로는 내가 아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 그 순간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사랑 이야기,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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