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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1일 10시 32분 등록

바디샵의 영적인 비즈니스 (Business as Unusual)

제 생각에, 그녀가 일구었던 바디샵은 껍데기만 남았으므로 (제 글 뒤에 보시면 나옵니다)
제목을 좀 바꾸어 보았습니다.



저자에 대하여

아니타 로딕
Dame Anita Roddick (결혼전 이름 Anita Lucia Perilli)
Dame은 200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영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기사 작위(Dame Commander)를 수여받으면서 붙음

1942년 10월 23일 출생, 2007년 9월 10일 별세

홈페이지 http://www.anitaroddick.com/


이탈리아계 영국인
그녀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영국으로 이민 왔다. 영국 석세스 주 리틀햄프턴이라는 블루칼라 마을에 자리잡은 그녀의 가족은 마을에서 유일한 이탈리아계였다. 아니타 로딕은 이런 사실이 ‘나에게 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78)’고 회고한다. 이탈리아계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내보이는 그녀는 ‘나의 넘치는 에너지는 내가 이탈리아인이며 이탈리아인들은 토마토를 많이 먹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78)’라고도 말한다.

가족의 카페
그녀의 부모는 마을에서 클리프턴 카페라는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녀를 비롯한 4남매는 주말에도, 저녁에도, 일요일에도 카페에서 일했다. 카페는 집의 연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니타 로딕은 그곳에서 일터에 애정을 쏟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기업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것은 바로 그 클리프턴 카페에서였다(54)’.

아버지의 상실
아니타 로딕이 9살 되던 해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어머니는 전남편의 사촌인 Henry와 재혼하지만 몇 년 후 그마저도 사망한다. 아니타와 남동생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새아버지 Henry였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녀가 19세가 되기 전에 밝힌다.
그녀가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그녀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65)’.

특이함이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준 어머니
엄마는 항상 “특별해라, 평범은 거부해라! Never be mediocre!”라고 하셨지요. (2006년 5월 행복이 가득한 집과의 인터뷰 중에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녀의 어머니는 화끈한 이탈리아 남부 여성의 기질을 그대로 영국까지 가지고 온듯하다. 자식들을 가톨릭 학교에 보내기는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동네 신부님을 혐오할 정도였다. 주일미사에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녀들의 옷자락에 마늘물을 발라주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떤 제도에서든,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고 아니타 로딕은 고백한다.


교육
출신학교
St Amy's Convent
Maude Allen Secondary Modern School
Bath College
그녀는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수도회 여학교에 다녔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범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아니타 로딕이 공동체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통해서였다. 장학금을 받아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찾은 키부츠에서 그녀는 노동도 훌륭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생산적 분노의 시작
그녀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자질은 사실 10대 때부터 계발되었던 것 같다. 열 살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이 실린 책을 보고 도덕적 분노를 처음 느낀 그녀는 그때부터 10대 운동가로 각종 시위에 참가해 구호를 외쳤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런 열정을 억누르려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

커리어
그녀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수업에 드라마와 음악을 도입해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 중세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할 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고,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강의를 할 때에는 전쟁시를 낭송하는 식이었다.
교사 생활은 즐거웠지만 방랑벽이 있던 그녀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한동안 히피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제네바에 있는 UN(국제연합) 사무실에 취직해 일하기도 한다.

남편과의 만남
2년 간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바 <엘 쿠바나>의 손님 중의 하나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했다. 고든 로딕과 만난지 나흘 만에 그녀는 고든과 동거를 시작했고, 첫아이 저스틴을 낳고 둘째 사만다(샘)를 임신한 채로 1970년 순간적인 충동으로 르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와의 시작이 너무도 ‘우연’해서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사업의 시작
남과 달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그녀는 1960년대에 ‘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의외다.
두 아이를 낳고 나서 이들 부부는 진지하게 사업을 구상했다. 조건은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으면서 아이들을 돌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업이어야 했다. 어떤 가게를 하고 싶은지는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구상되어 있었다. 바로 피부 관리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화장품은 비싸고 고급스럽기만 했지, 자연 성분으로 된 것은 없었다. 그런 사실이 그녀를 자극했다.
아니타 로딕은 대학 교육 덕택에 연구 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를 조사해야 하고, 어떻게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화장품 회사를 만들기 위해 ‘20세기 초부터 그때까지 나온 약전(藥典)이란 약전은 거의 빠짐없이 다 읽었다(59)’는 부분에서 나는 그녀의 열정에 반했다.
25파운드에 로고를 만들고, 친구들을 동원해 병에 화장품을 넣고 손으로 라벨을 쓰게 했다. 매장은 곰팡이 자국을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한 녹색으로 칠했다. 그렇게 바디샵은 1976년 3월 영국 브라이튼에 처음 문을 열었다. 그녀가 바디샵을 시작했을 때, 일은 가정과 주방의 연장선상에 있는 호구지책(86)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전쟁 중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듯이 뭐든지 재활용하고, 재사용하고, 리필하며 가게를 꾸려나갔다. 그것이 성공의 요인이 될 줄은 기대도 하지 못한 채.

주류에 안착한 아웃사이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의 소유자 같은 그녀도, 비즈니스에서 최소한 지켜야 하는 것들은 영리하게 잘 간파하고 있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비즈니스상의 약속 장소에는 평상시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옷차림으로 나가라. 조금이라도 전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말라(69)’는 그녀의 말은 아웃사이더가 주류 사회에서 최초의 배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그녀가 1984년 일찍이 기업공개(거래소 상장을 의미, IPO)한 것도 그렇고, 전세계적으로 발을 넓히며 자신의 브랜드를 프랜차이즈화 한 것도 내게는 주류에 아주 잘 적응한 경우로 보인다. 남편과 그녀는 기업 공개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바디샵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29)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좋은 일을 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상장으로 인해 엄청난 평가이익을 보게 되어 그 돈으로 사회운동을 할 기반이 되어서?

영혼의 기업을 거대 공룡에 팔다
아니타 로딕이 세상에 가장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그녀가 그토록 저주하던 기존 화장품 산업의 거대기업(화장품 업계 세계 1위) 로레알에 2006년 3월 바디샵을 매각한 것. ‘내가 떠난 다름에는 반드시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바디샵을 경영해주길 바란다’던 그녀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회사의 경영을 맡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그녀가 왜 굳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랑콤, 비오템 등 25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로레알 그룹은 동물실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며 로레알 지분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네슬레는 제3세계 어린이들을 착취한다는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창립자 아니타 로딕이 고문으로 활동하며 고유의 경영철학을 지켜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는 로레알의 인수 1년 6개월 후에 세상을 뜨고 만다. 매각 당시 그녀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좀 더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세상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유가 더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이 책에서도 종종 언급한 미국의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Ben & Jerry's) 역시 경영 악화로 2000년 영국계 생활용품 거대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되고 말았다. 기존에 회사 수익의 약 10%를 지역사회에 기부해 왔던 이 회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회기부를 못 하고 있다.

사회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경영과 기업을 영속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영 사이에서 창립자들은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경영 악화에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의 사회적 기업은 이런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둔 경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미 하나의 ‘브랜드’로서 거대기업에 팔리고, 영혼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며 바디샵의 Mission Statement(320페이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하는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추가로 하나 더,
그녀가 로레알에 바디샵을 넘긴 인수 가액은 6억5200만 파운드(약 1조2785억원)라고 AP통신이 보도했으나, 그녀의 사후 로딕재단에 남겨진 그녀의 전재산은 5100만 파운드(약 1000억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상장기업이었기에 100% 모두 그녀의 지분은 아니었겠지만 상당 부분이었을 나머지 금액은 다 어디 갔나? 다른 곳의 활동 기금으로 쾌척했나? 무척 궁금해진다.


저서로는

The Body Shop Book (1985),
Mamatoto: the Body Shop Celebration of Birth (1991),
Body and soul (1991, 공저),
Take it personally: How globalization affects you and powerful ways to challenge it (2004),
Troubled Water: Saints, Sinners, Truth and Lies about the Global Water Crisis (2004),
Business as Unusual (2005)
등이 있다.

2004년 이후 펴낸 세 권의 책은 Anita Roddick Books라는 그녀의 출판사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다. (김영사에서 2001년 펴낸 이 책이 절판된 이유도 저작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간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바디샵이 로레알 인수 후 초기 의도와는 달리 변질된 것도 한 가지 이유일 듯하고.)

 

 

 


내가 저자라면

산만한 구성과 편집
출판사(김영사)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산만한 구성과 편집이 독자들을 혼란케 한다. 원저자 측에서 이런 편집을 그대로 살리라고 요구했으리라 생각해 보지만, 중간중간 이탤릭체와 볼드체, 인용문구가 한 페이지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등 산만한 편집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구성 또한 종잡을 수 없이 산발적으로 쓰여 있었는데, 출판업 진출을 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던 아니타 로딕이 이 쪽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지, 아니면 자신의 책이라 너무 욕심을 내어 갈피를 못 잡았던 것인지 의아하다.
번역자도 훌륭한 경력을 자랑하는 분이던데 의역이 필요한 부분에는 직역이 들어가 어색하고, 또 어느 곳에는 아니타 로딕이 들어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사자성어를 배치하는 등 번역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 삼성에 대한 극찬
그녀가 삼성이 해외에서 벌이는 기부 사업에 극찬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40~41페이지)
이 부분을 보며 ‘제대로 모르고 쓰셨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국내 기업 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가장 선도적으로 해나가고 있는 곳이 삼성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규모에서도, 방법에서도 단연 앞서기에 이쪽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빼놓을 수 없는 케이스다. 하지만 이 같은 막대한 금액 기부가 무언가 찜찜한 가족승계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한 것임은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은 알고 있다. 의도가 불순한 기부에 대해 오히려 반감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위의 두 문장,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한동우 교수 연구조사 결과)
그런 내부 사정을 모른 채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활동 등만 보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녀가 참으로 의외였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
20년 CEO 생활을 하면서 저지른 자신의 실수를 한두 가지로 제시한 잭 웰치와는 달리 아니타 로딕은 곳곳에 '내 실수는 이것이다'라고 고백한다. 내가 이것도, 저것도 잘못했다.고 말하는데 솔직한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뒤따라올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결점과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원인과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의 바디샵
이 책에 따르면 바디샵이 필사의 회생 노력을 하던 1990년대 말 국내에 상륙했다. 국내법인이 1996년 12월27일 설립된 뒤 1997년 본걱적으로 매장을 열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까지 획기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이는 아니타 로딕이 지적한 자신들의 회사의 장점에 기인한 듯하다. ‘새로운 지역에 매장을 열면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도 비즈니스가 썩 잘되었다. (340)’

하지만 2006년 바디샵의 로레알 그룹 인수 후 변화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감지될 정도였다. 우선 가격이 슬그머니 올랐다. 매장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느꼈다). 예전엔 만들면 바로 적립해주었던 포인트적립 제도의 한도도 30만원 이상 구매 실적이 있는 회원들에게로 상향되는 등 상업화되었다. 시즌별로 한정상품을 만들어 프로모션하는 것도 기존 화장품 산업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유행을 만들어내고 소비를 창출하고 다음 계절이 돌아오면 또 다른 제품을 내놓는 것은 기존의 바디샵이 하던 일들이 아니다. 지금의 바디샵은 로고와 매장의 진한 녹색만(즉, 껍데기만) 바디샵이다. 영혼은 빠졌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라는 긴박한 사회적 요구에 더욱 열정을 가지게끔 하는 색다른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뢰밭 사이로의 여행이었으며, 지뢰가 터질 때마다 –마치 그것이 필요하기라도 했던 것처럼—우리가 세운 목표가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상기할 수 있었다.
그 여행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10)

나는 언제나 내가 미지의 땅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땅은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때로는 내가 친구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나의 적이었고,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했다. (11)

우리는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11)

이 책에는 또 한 가지의 주제가 있다. 이 책은 바디샵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내가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핵심—어떻게 간직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1)

그러므로 이 책은 바디샵의 연대기 이상이며, 급진적인 비즈니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약된 설명서 이상의 의미가 있다. (12)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제약과 삶의 전반적인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즈니스의 한계를 넓히고, 비즈니스의 언어를 바꾸며, 비즈니스를 긍정적인 변화의 힘이 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것이다. (12)

 


1. 비즈니스란 무엇인가?

언젠가 한 재계 인사가 나를 ‘제정신이 아닌 독선적인 사람’이라고 공식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 (중략) 나는 기업가라면 유목민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환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비즈니스뿐만 아니라 현대 생활에서—나의 경우에서처럼 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내가 하는 여행은 비즈니스를 위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진실을 위한 것이다. (16)

NGO는 기업 세계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좌파의 의심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라고 위협한다는 이유로 우파의 의심을 받고 있다. (20)

전형적인 경영 서적을 보면 리더십, 팀빌딩, 기업 문화, 고객 서비스라는 단어들은 흔히 볼 수 있지만, 공동체나 경제적 빈곤, 사회 정의, 윤리, 사랑, 관심, 영성(靈性)이라는 단어들은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은 옷장 깊숙이 숨겨놓았단 말인가! (20)

바디샵은 나를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부자로 만들어줄 만큼 충분히 성공적이었지만, 나는 기업의 탐욕심에 저항했다. 그냥 돈 많은 여성 기업인으로 편안하게 살면 쉽겠지만, 뭔가를 위해 싸우지 않는 살은 죽음의 냄새가 나서 싫다. (23)

자유 무역은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다. 세계 시장이 정말 자유로운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자유로운지 자문해보라. (26)

문제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부당함을 보지 못하는 세계 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시스템이 여기저기 간섭하지 않는 데는 WTO(세계무역기구)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6)

WTO는 세계 정부인 동시에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눈먼 정부이기도 하다. (26)

힘과 영향력 면에서 본다면, 교회나 정치는 기업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보다 더 힘있는 조직은 없다. 오늘날에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기업이 도덕적 리더십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의 리더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새로운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략) 기업은 손익 계산서에만 신경을 쓰느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망각했다. (31)

법적인 골격과 제약이 없으면, 기업은 항상 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있다. (31)

규제가 없는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양심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32)

소비자들은 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하며, 기업은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32)

모든 인간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의 도덕적 질서를—윤리적 네트워크—창조해내는 것이며, 모든 기업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피터 코에스텐바움 (33)

윤리적인 비즈니스를 향한 이런 움직임은 나 같은 기업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늘날 사회에서 기업이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고, 그런 여론이 고조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36~37)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의 전체적인 영향에 대해서—종업원을 대우하는 방법, 안전 조치를 취하는 방법, 기업이 사회적 물리적 정치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책임을 져야 한다. (40)

누구나 삼성처럼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은 최소한 고문 정권과 독재자와의 거래를 거부할 책임이 있다. (41)

기업이 할 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공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42)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내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경우에도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 (43)

인생에는 영적 차원이 있으며,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나에게 영성은 조직적인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아주 단순한 태도다. 그것은 인생은 신성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44)

인간 조직과 대기업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영성을 체험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크리슈나무르티에 따르면, 우리는 제도만 바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제도는 그것이 교육적이든 정치적이든, 신기하게도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때 변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개인이다. 개인이 자신의 전체적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어떤 제도도—그것이 좌파든 우파든—이 세상에 질서와 평화를 주지 못한다.’ (45)

미래의 경영 교육 프로그램은 국제적인 것이든 국제적인 것이든 사회 정의, 인권, 지역 사회 경제, 윤리적인 언어와 행동을 가르쳐야 하며, 인간 정신의 생산성을 가르쳐야 한다. (46)

‘경외심’과 ‘영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세계화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이비 종교다. (46~47)

기업은 변화에 대해 애써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열고 책임 의식을 가지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쿠프 은행이 윤리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지 생각해보라. (47)

나는 평범한 비즈니스에는 관심이 없다. 나를 자극하는 것은 남다른 비즈니스다. (49)

기업가가 꿈꾸는 것은 제정신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일 때가 종종 있으며, 그만큼 고독한 것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스쿨 강연 노트 중에서 (51)

 


2. 누가 기업가가 될수 있는가?

나는 노예 노동이나 다름없는 노동 윤리를 가진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자랐다. 나의 부모님은 영국 남부 해안의 리틀햄프턴에서 클리프턴 카페라는 가게를 운영하셨다. (중략)
우리는 모두 4남매였는데 주말에도 카페에서 일하고, 저녁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했다. (중략) 카페는 우리 집의 연장이었다. 우리 카페에서는 로맨스가 꽃피고 우정이 싹텄다. 우리는 그곳을 통해 일터에 애정을 쏟는 것이 가능하다는 중요한 비즈니스 교훈을 얻었다. (53)

그것은 나에게 사업을 하는 데에는 극적인 효과가 얼마나 중요하며,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54)

내가 모든 기업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것은 바로 그 클리프턴 카페에서였다. (54)

어머니는 늘 “특별해라. 평범을 거부해라”고 말씀하셨다. (54)

어머니는 동네 신부님을 싫어하셨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셨다. (54)

그런 어머니 밑에서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떤 제도에서든,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55)

나 역시 무슨 일을 하든지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 나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될 수 있으면 내 수업에 드라마와 음악을 도입했다. 중세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할 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고,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강의를 할 때에는 전쟁시를 낭송했다.
교사 생활은 즐거웠지만 방랑벽이 있던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한동안 히피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제네바에 있는 UN(국제연합) 사무실에 취직했다. (56)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을 질리게 하거나 매혹시킨다. 다행히도 나는 UN을 매혹시켰다. (56)

2년 동안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엘 쿠바나의 손님 가운데 한 분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바로 고든 로딕이었다. 나흘 뒤에 나는 고든과 동거를 시작했다. (56)

우리는 ‘사업 기회’를 찾고 있어야 할 마당에 그저 놀기만 하고 있었다. (56)

순간적인 충동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57)

1971년 7월 사만사가 태어난 뒤, 우리는 진지하게 사업을 구상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으면서 아이들을 돌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57)

어떤 가게를 하고 싶은지는 이미 머릿속에 구상되어 있었다. 피부 관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58)

나는 역사 교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으므로 연구 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를 조사해야 하고, 어떻게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58)

20세기 초부터 그때까지 나온 약전(藥典)이란 약전은 거의 빠짐없이 다 읽었다. (59)

화장품들이 모두 비싸고 고급스럽기만 하고, 자연 성분으로 된 것이 없었다. 이것이 나를 자극했다. (59)

그렇게 해서 바디샵은 1976년 3월 브라이튼에 처음 문을 열었다. 디자이너를 고용해 25파운드에 로고를 만들고, 친구들을 동원해 병에 화장품을 넣고 손으로 라벨을 쓰게 했다. 나는 매장을 전부 진한 녹색으로 칠했다. (60)

우리 성공의 모든 요인은 사실은 내게 돈이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듯이—뭐든지 재활용하고, 재사용하고, 리필하는 것—가게를 꾸려나갔다. (60)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나의 사고방식은 1960년대에 형성되었다. 그 당시 나는 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60)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며, 심지어는 작년의 나와도 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61)

과연 기업가 정신이란 것이 학과목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기업가 정신을 추진하는 힘은 집념인데 어떻게 집념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미 아웃사이더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아웃사이더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본능적으로 전체의 일원에 속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북소리에 맞춰 행진할 수 있겠는가? (61~62)

나는 사반 세기 동안 비즈니스를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천부적인 기업가가 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할 정도의 강한 믿음
2. 광기
3.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띌 수 있는 능력
4. 요술 램프 속에서 요정이 튀어나오듯이 창의적 긴장감 속에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분출해낼 수 있는 능력
5. 병적인 낙천성
6.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은밀한 이해
7. 사회 개혁 의지. 내가 만나본 기업가들은 대개 천부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보겠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8. 창의력
9. 이 모든 특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 (중략)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선택의 여지를 찾아 문을 두드려보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묵묵히 혼자 일해야 한다. (중략)
10. 마지막으로, 기업가들은 모두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62~64)

기업가는 ‘다른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을 주류의 일원으로 보지 않는다. 기업가는 본질적으로 아웃사이더이며,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기업가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말이다. (64)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창의력이 생긴다. (64)

놀랍게도 많은 기업가들은 궁핍을 경험했다. 그들의 삶에는 상실이 있었다. (중략) 나의 경우 아버지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65)

아이디어는 자신의 인격의 연장이며, 자신이 손수 만든 기업에는 자신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연장이다. 바디샵이 내 생명의 일부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바디샵은 또 다른 나다. (65)

여성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일이나 열성을 보이는 일에 균형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저급한 기술을 요하는 비즈니스로 바꾸어 자기 집 식당이나 주방이나 차고에서 작업하면서도 만족할 줄 안다. (68)

여성들은 복잡한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이 남성들보다 뛰어나다. 그들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를 해낸다. (68)

여성은 외모가 아름다워도 탈이고, 아름답지 못해도 탈이다. (69)

오늘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비즈니스상의 약속 장소에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평상시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옷차림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조금이라도 전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69)

나는 기업가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고 싶다.
첫째,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둘째, 아이디어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72)

문제가 생기면 보통 사람들은 그냥 고민만 하는데, 기업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좋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하고 문제 해결책을 강구한다. (73)

내가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기업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제리를 창업한 벤과 제리다. (중략) 그들은 한번 신나게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20달러를 내고 아이스크림 제조 과정 강의를 들은 다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를 만들었다. 그들이 경영대학원에 다녔더라면 아마 숨막혀 죽었을 것이다. (75)

리틀햄프턴과 같은 블루칼라 마을에서 유일한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이란 사실은, 나에게 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76~78)

나의 넘치는 에너지는 내가 이탈리아인이며 이탈리아인들은 토마토를 많이 먹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78)

 

3. 우리가 고용한것은 종업원이 아니라 사람

내가 리틀햄프턴의 우리 집 카페말고 공동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통해서였다. 나는 교육학 논문을 위해 아이들을 연구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받았다.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정말 유익한 경험이었다. (중략)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노동도 훌륭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1)

나는 히피들의 공동체에서 한 번도 생활해보지 않았던 것이 늘 후회스럽다. (82)

나는 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성공적인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책임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84)

적어도 세 가지 차원의 공동체가—회사 내부의 사내 공동체, 회사가 책임져야 할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공동체, 회사의 거래 파트너와의 공동체—형성되어야 한다. (85)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여러 모로 인간미를 상실시키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내 영혼을 보호해준 것이 무엇인지 종종 생각해본다. (85)

우리는 순진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86)

내가 바디샵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일은 곧 호구지책이었다. 일은 나의 가정과 주방의 연장이었다. (86)

나는 머지않아 기업이란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라고 생각하는 낡은 사고방식이, 기업이란 책임 있는 자만이 지도할 수 있는 공동체라고 보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기업의 가치관이 예고되고, 기업의 마음이 올바른 곳에 가 있고, 기업의 감정이 인정되고, 기업의 정신이 활동한다면, 우리 모두를 위한 족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87)

요즘에는 종업원들이 단순히 밥벌이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들은 더 큰 꿈을 꾼다. (88)

현재 바디샵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 책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점점 그 힘을 얻어가고 있는 활발한 운동으로, 이상주의를 다시 비즈니스 의제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의 역사는 영국에서는 로버트 오웬과 초기 협동조합 운동, 퀘이커 교도로 거슬러올라간다. 미국에서는 암만파 교도와 셰이커 교도를 비롯해 많은 종교 집단이 수십 년 동안 이것을 주요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 (90)

기업의 사회 책임 운동은 1960년대의 반체제 문화와 행동주의 운동,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진보적인 비즈니스 관행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지금 상공회의소 관습에 성공적으로 도전하고 있으며, 상공회의소 대신 ‘사회적 책임을 위한 비즈니스’라는 기관에 의지하고 있다. 우리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서로 좋은 관행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다. (90)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의 실질적인 정의를 알고 싶다면 기꺼이 알려주겠다. 그것은 간신히 살아남는 것, 내외적인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가치관을 지키는 것, 그러면서도 더 크고 더 용감한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90)

기업의 사회 책임 운동은 복잡하고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정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존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종업원 대우를 잘 해주고, 자기가 속한 지역 사회를 돌보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재무 관계에 투명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기업의 사회 책임 운동은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기도 해야 한다. (91)

그러나 한쪽 끝에는 윤리적으로 완벽한 회사가 있고, 반대쪽 끝에는 구식 주주 자본가가 있는 흑백의 세계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 중간 지대 어디쯤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다. (91)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영혼 속에 들어 있는 것과의 교류를 끊지 않는 것이며, 먼저 자신이 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92)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기업 간부들에게 만일 종업원들이 용변을 가리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면 현금으로 얼마나 들겠느냐고 즐겨 묻는다. 그는 기업이 지역 사회, 부모, 네트워크, 교사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96)

기업이 어떻게 사회적인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단순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기업 책임감을 통해서 갚을 수 있다. (96)

기업인들은 비즈니스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며, 지역 사회에 투자하고 지속적인 시장을 건설해야 한다. (중략) 불행하게도 기업의 책임감은 아직도 금전적인 이익 이외의 것은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발상이다. (96)

사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기업이 편협하게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중략) 엘리자베스 1세는 초기의 무역 회사들에게 설립 허가를 내주면서 지역 사회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의무를 비즈니스의 주목적으로 삼도록 했다. (97)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고려해봐야 할 의문이 있다. 자신의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된다면,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99)

우리는 우리가 공언한 가치관에 대한 우리 회사의 성과를 독자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윤리적 감사를 시작했으며, 1995년에 최초의 ‘가치관 백서(Values Report)’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종업원, 주주, 납품업체, 지역 사회를 비롯한 우리의 모든 이해 당사자들과의 심층 인터뷰와 대대적인 조사 결과가 들어 있었다. (100)

 

 


4. 설득력 있는 열정

아무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 관심을 전달할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109)

많은 경우에, 기업은 창업 정신을 망각할 때 원동력을 잃는다. (109)

기업 리더들은 세계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서두르는 한편,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이 왜 비즈니스를 시작했으며, 지금 무엇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해 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10)

나는 새 천년이 될 때까지 우리 회사가 커뮤니케이션 부서를 가진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화장품 부서를 가진 커뮤니케이션 회사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아직 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110)

리더는 그 무엇보다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116)

나는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의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자 진실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116)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키느냐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통찰력을 주었던가? –피터 드러커 (123)

‘바디샵 헌장’을 완성하는 데에는 18개월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28)

 

 


5. 미용산업의 횡포

우리는 미용 산업이 제시하는 여성다움의 개념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아 존중심과 문화적 물리적 다양함을 장려하고, 우리들 각자를 지금의 우리로 만들어주는 독특한 개성을 찬미한다. (143)

신기하게도, 외모가 아름다움을 정의하게 된 것은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147)

아름다움은 행동, 발랄함, 용기, 에너지, 연민의 정을 비롯해 여성이 찬미받아야 할 모든 것에 관한 것이다. (147)

“외모가 아닌 다른 요소로 나를 판단하라. 나의 지혜와 유머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아는 나의 이해력으로 나를 판단하라”고 말한다. (148)

자아 존중심, 유머 감각, 지혜, 지성이 모두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었다. (151)

 

 

6. 여성으로 일하기

그러나 우습게도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을—이른바 ‘여성적인’ 힘—더 많이 필요로 할 것 같다. (159)

그러나 여성들이 한 일은 대개 비금전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경제 체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161)

이중고를 짊어지는 사람은 아직도 여성들이다. 서구 사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걱정하고, 아이가 아플 때에는 모든 걸 다 포기할 책임을 지고 있다. (165)

더구나 여성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는 일도 해야 하는데, 이 일은 여성들에게서 기운을 빼앗아가고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166)

사실 여성들은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남성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 모든 것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감성과 자상함, 감수성, 직관을 직장에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한다는 진부한 남성적 사고를 반영한다. 그러나 기업의 발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여성적 가치관들이다. (168)

다만 인간미, 사랑, 창의력, 연민의 정, 이해와 같은 단어들이 비즈니스 어휘록에 수록되도록 비즈니스의 언어를 바꾸자는 것뿐이다. (170)

나는 자영업을 하거나 중소기업을 시작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172)

윤리적 투자의 성서라고 할 수 있는 <부의 도전(Challenges of Wealth)>의 저자이자 변호사인 에이미 도미니도 이런 여성의 또 다른 예가 된다. (173)

나는 그녀(큰딸 저스틴)에게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몇 년 동안이므로, 그때까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했었다. (173~174)

그러므로 일하는 어머니는 일을 해도 욕을 먹고, 일을 하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 여성들에게 익숙한 좌절감을 안겨주는 상황이다. (174)

바디샵은 1990년 리틀햄프턴의 본사에 ‘아동 개발 센터’를 마련함으로써 이 문제 해결을 향한 혁신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약 1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지은 아동 개발 센터는 3개월에서 5세 사이의 아동들을 돌보는 보육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주일에 240명의 아동을 수용할 수 있다. (175)

여성은 힘을 가지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페트라 켈리 (179)

 


7. 미국에서의 실패

바디샵도 미국에서 거의 매장될 뻔했다. 우리는 오만함과 순진함 때문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187)

그러나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187)

우리는 당장 500여 개의 유사품 매장과 경쟁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0)

우리는 곧 우리가 기발하고, 색다르고, 재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미국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91)

우리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우리가 광고를 하지 않는 회사라는 점이었다. (193)

사실, 계속 부적절한 사람을 고용하는 우리의 바보짓은 경영 대학원생의 케이스 스터디감이었다. (194)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녀는 말한다. “그 어떤 것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변화는 당신과 내가 매일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

우리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중심에 본사를 만들었어야 할 시점에 아름다운 은둔지에다 본사를 만들었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202)

거래의 윤리적인 기준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빨리 시장에 신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회사들과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203)

그래도 우리를 차별화시켜주는 것은 창의력이다. (205)

우습게도 미국에서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은 경쟁자들에게 길을 가르쳐준 것이었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유사품들이 쏟아져나왔다. (206)

우리는 미국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207)

우리는 오만했으며,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207)

미국인들은 뭐든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지금 당장 그것을 원한다. 그들은 제도를 방해하는 윤리적이고 감정적인 부담 없이 즉각적인 만족을 원한다. (207)

우리는 처음부터 차별화했어야 했다. (208)

우리는 18개월에 걸쳐 조직을 완전히 새로 정비하고 재충전했다. (209)

나는 이익에서는 아니더라도 아이디어와 기업 이념에서는 항상 리더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10)

 

 

8. 바디삽의 캠페인

왜 화장품 회사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일까? (중략) 가장 큰 이유는—적어도 나에게는—샴푸와 비누를 파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24)

전세계 어디를 가나, 가치관이 없거나 정치성이 없는 행동은 없다. (226)

바디샵은 이미 오래 전에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기엔 정치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226)

정치적 캠페인은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자들 중에서 우리를 따라하는 회사는 한 군데도 없다. (227)

그러나 그것(바디샵의 사회 활동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인식할 수 있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227)


내가 도덕적 분노를 처음 느낀 것은 열 살 때 어떤 책을 보고 나서였다. (중략)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이 6쪽에 걸쳐 실려 있었는데, 그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 지금도 그 사진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228)

그때부터 나는 10대 운동가로 각종 시위에 참가해 구호를 외쳤다. (중략) 운 좋게도 나는 그 열정을 억누르려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 (228)

다행히 남편 고든 역시 사회적 양심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다. 고든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리틀햄프턴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고 있었다. (229)

내가 1976년에 바디샵의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우리가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돈 버는 데 관심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고든과 나는 1984년에 기업 공개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바디샵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29)

나에게 캠페인은 가치가 없는 기업에 가치를 부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230)

바디샵에서 일하는 것은 단순히 비누나 샴푸를 파는 것 이상이라는 깨달음은 엄청난 자부심과 책임 의식을 준다. (239)

책임 의식을 가진 인정 많은 시민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마라. 실제로 지금까지 세상을 변화시켜왔던 유일한 힘은 바로 그런 집단이다. –마거릿 미드(인류학자) (241)

모든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45)

 

 

9. 비젼을 가진 상인

모이스처라이저와 같이 가치 없는 제품을—정말 무가치하다—생산하는 회사가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제품의 성분을 구입함으로써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256)

바디샵은 거래는 윤리적인 행위여야 한다고 믿는다. (263)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열대우림 자체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도 말고 보지도 말자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비즈니스 모델보다 더 나은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희망한다. (278~279)

 

10. 바디삽에 대한 비방

우리는 확고한 사회 의식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받기 쉬운 처지였다. 우리는 노골적으로 제도에 도전했고, 기업의 역할에 도전했다. 우리는 캠페인을 벌였고, 큰 소리로 시위했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큰 이익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285)

나는 누군가의 눈에 우리가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285)

내가 항상 말했듯이 바디샵은 곧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위선적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잘 안다. (285)

나는 세상사가 너무 역설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정직하게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문제는 비윤리적인 기업보다 타락한 천사나 위선자가 더 큰 뉴스거리가 된다는 현실이었다. (286)

우리는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우리의 모든 명예가 걸린 일이었으므로 그것은 정말 중요했다. 우리는 전세계의 직원들이—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언론의 오보를 모니터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24시간 가동하는 커뮤니케이션 본부를 설치했다. (288)

27일간의 재판 끝에 우리는 완전히 무죄라는 판결을 받았다. (290)

나는 비평가들이 나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공격을 기꺼이 개인화하는 것에 놀랐다. 나는 만일 내가 남자 경영자였더라면 그렇게까지 세밀한 공격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299)

그 일을 당했을 때 내 반응은 돼지처럼 자꾸 먹는 것이었다. 나는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먹었다. 아침부터 초콜릿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군것질을 하고 물을 많이 마셨다. (301)

 


11. 바디삽의 조직 개편

나는 바디샵에 대해서 매우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바디샵을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305)


1990년대 들어서서 바디샵이 커지면서 조직 개편을 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해졌다. (306)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외부인이 내 인생을 꾸려나가는 법을 지시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306)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결혼 생활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돌아갈 때에는 환상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는 정말 비참해진다. (306)

감축 인원은 25명에 불과했지만, 그 조치는 직원들에게 엄청난 불신과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307)

새로 온 전문 경영인은 5개의 서로 다은 판매 본부를 만들어 사내 경쟁 체계를 도입했다. 그것은 우리 직원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 의식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307)

나는 곧 새로 온 전문 경영인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조직에 효율성을 심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에게는 그 효율성이라는 것이 특혜와 권력이 난무하는 긴장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보였다. (308)

그 사람으로서는 나의 지위에 도전한 이상 우리 회사를 떠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308)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경영 컨설턴트의 손에 맡긴 것은 최악의 실수였으며, 우리의 잘못이었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 (319)

그가 떠난 뒤 가진 일련의 회의를 통해서,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외부인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우리의 핵심 가치관을 뒤엎어놓는 일을 막기 위해서 임무 성명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임무 성명서를 만들 때 외부의 홍보 기관에 의뢰하지 않고, 전세계 각지의 우리 직원들에게 제안서를 작성해서 보내게 했다. 그 과정은 미국 독립 선언문의 기초가 된 수많은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비슷했다. (319~320)

우리는 심한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략)
우리가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324)

우리는 마케팅과 제품에서 덜 과학적일 필요가 있었으며, 보다 도전적이고 보다 창의적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보다 기회를 잘 포착하고 보다 발 빠른 회사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비대해져서 움직이기 힘든 거인이 되고 말았다. (326)

우리가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깨달은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중략) 우리는 자신을 재창조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매장과 제품에 몇 년째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328)

우리 회사의 가치관은 기업보다는 교화나 절과 같은 종교 기관의 가치관과 닮은 점이 더 많다. (328)

우리가 현재의 경영인을 찾기까지는 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는 사실 우리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329)

우리는 여전히 기업의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고자 하며, 우리가 취할 다음 조치 가운데 하나는 경영학 교육을—그것은 안타깝게도 빈곤, 윤리, 창의력과 같이 우리의 생활에 정말 중요한 이슈와 단절되어 있다—도덕적 목적 의식이나 창의력과 결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일에 착수해서, 1994년 배스 대학의 ‘직업적 실천에 관한 행동 연구 센터’와 함께 ‘뉴 비즈니스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322)

 

 

12. 바디삽의 재창조

생존을 위한 재창조. 1990년대 말 우리의 주문(呪文)은 그것이었다. (335)

감원이라는 교묘하고 고약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그 회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335~336)

우리는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10년 안에 망하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재창조해서 앞으로 20년을 준비하든지 양자 선택을 해야 했다. (338)

새로운 지역에 매장을 열면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도 비즈니스가 썩 잘되었다. (340)

나는 직판에도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3년째 바디샵 디렉트가 영업중에 있다. 이것은 타파웨어 타임의 예를 따라 파티를 이용하여 판매하는 오래된 판매 방식을 사용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중략) 나는 바디샵 디렉트가 엄청나게 확대되어 결국에는 전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 (344)

인간미를 상실하면 우리 자신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비즈니스의 선두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 때문이며, 우리의 목표는 회사를 20배 더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의 인도를 받음으로써 더 나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348)

나는 미래에는 빈곤이—상상력의 빈곤, 정신적 빈곤, 경제적 빈곤—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재앙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믿는다. (348)

나는 비즈니스 규제를 줄일 것이 아니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상을 받아야 한다. 나는 모든 기업이 엄격한 사회적 환경적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규제는 혁신과 신뢰를 낳는다. (349)

우리는 기존의 화장품 산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매일매일, 전세계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사회적 환경적 변화를 통합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기업을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단호했다. (350)

바디샵은 그런 사고와는 정반대되는 방향을 지향하면서 정반대로 행동해왔다. 그것은 지도상에도 나와 있지 않은 미지의 길만을 끊임없이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발전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50~351)

다만 바디샵이 숨막힐 정도로 흥분되는 최고의 회사, 비즈니스하는 방법을 바꾸어놓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 (351)

우리 모두 개인적인 성장과 발견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351)

기업의 영성은 비밀스럽거나 종교적이거나 우주론적인 덧없는 발상에 과한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진정한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351)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지만, 그 대답은 나의 역할이 선동자의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53)

고든과 나는 우리의 두 딸이 사업에 참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린 자식들이 있어서 그렇다지만, 그 전에도 우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두 딸이 자랑스럽다. (355)

둘째 딸 샘은 내가 만나본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회 운동가이지만, 지금은 오샤-블루벨의 엄마로서 사회적인 분노를 삭이고 있다. (356)

과거에는 바디샵을 가족에게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회사의 경영을 맡는 것을 원하지 않듯이, 나의 딸들이 그들이 창업하지 않은 사업을 맡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떠난 다름에는 반드시 나의 가족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바디샵을 경영해주길 바란다. 나는 그것이 그를 ‘가족’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누가 바디샵의 경영을 맡게 되든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356)

월트 휘트먼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것이 그대가 할 일이다. 지구와 태양과 동물을 사랑하고, 부자를 경멸하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어리석은 자와 미친 자를 옹호하고, 남을 위해 소득과 수고를 바치고, 독재자를 증오하고, 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에 논쟁하고, 사람들에 대해 인내심과 관대함을 가지고,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사물이나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과 젊은이들, 가정의 어머니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책에서 배운 것을 재검토하고, 자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그러면 그대의 육체는 위대한 시가 될 것이며, 그 어휘에서뿐만 아니라 입술과 얼굴의 말없는 주름에서, 속눈썹 사이에서, 육체의 모든 관절과 움직임에서 가장 풍요로운 유창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휘트먼은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메시지를 잘 전달해주기 때문에 나는 오래 전에 그의 시를 가슴속에 새겨 두었다. (중략) 그리고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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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21 11:58:01 *.66.16.246
책을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내가 어쩌다 한 템포씩 늦게 가게 되어 좀 아쉽다.

그치만, 예원이 지적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어째서 바디숍이 로레알에 팔릴 수 밖에 없었는지
칼럼에써 쓴 기업에게 있어 과연 이상과 현실은 어디까지 조화로울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볼께..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해본적 있어...?
혹시 말이야. 스타벅스도 그러하고 바디숍도 그러하고.
차라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말이야.

소매업들은 전부 브랜드가 성공하면 반드시 프랜차이징해야 할까?
규모의 경쟁. 난 이걸 꼭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거든.

스스로 판매하는 제품을 생산, 제조하는 업체라면
꼭 규모의 경쟁을 하지 않고도 일정 수준의 수익성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히려 글로벌화하면서 불러들이는 경영 악화 요지도 많을텐데 하는 생각 말이야.

ㅋ. 내가 소매업에 갖고 있는 의문을 여기다 다 적었넹.
좋은 생각거리를 준 리뷰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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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2009.09.21 12:58:42 *.71.99.41
1999년이면 제가 (재수해서) 대학 1학년 땐데,
(역시 김영사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초판이 나왔었어요.
그 책을 구해 읽고 그 초기 정신에 무척 감동을 받아서
1999년 이대 앞에 첫 스타벅스 점포가 오픈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커피를 마셔 보았었는데..
어느덧 이게 10년 전 이야기네요 ^^

암웨이도 초반에는 성공적인 사례로 안착하는 것 같더니..
요즘은 일부 판매자가 본인의 판매지수를 높이려고
책정된 가격보다 낮추어 인터넷(G마켓이나 옥션)에 내다 파는 식으로 변질되었더라고요.

아무래도 한국 현실에서는 '인터넷 최저가'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기준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게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규모를 이길 수 있는 힘? 어찌보면 기회가 되기도 하겠죠.

비오는 날 언니랑의 토론 즐거워요~
블랙, 먼저 보셔서 아쉬워요~ 저도 보고 싶은데 신종플루가 무셔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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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21 12:44:49 *.66.16.246

그니까 말이야. 만약 스타벅스랑 바디숍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책들을 썼으면 전 세계적으로 읽히지 않았겠지...?
즉, 우리는 그리고 이 세상은 여전히 규모의 성장= 성공이란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니타 로딕 스스로도 주류에 안착하는 몇가지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는 거겠지.

아? 정말? 세상에. 나 한국 스타벅스가 직영인 거 몰랐어.
그렇겠지. 직영과 프랜차이즈는 사실 외향적으로 성장하는 면에서는 비슷해도
기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엄청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

직판같은 경우 서구사회는 한국의 다단계보다는 조금은 더 시스템화되어 있는 것 같아.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암웨이인데, 유독 한국에선 이 직판 시스템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
나름 온라인 시대 이전에 실질적인 점포를 오픈하지 않고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품질 개선을 위한 판매 시스템으로 개발되었던 것 같은데...

그러게. 앞으로는 규모의 성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리스크 혹은 손실 부분이
나름 지금까지보다는 상충하지 않을까 싶은데...

크큭. 비오는 날 아침 예원이랑 이렇게 토론하니까 좋당.
마치 우리 둘이 세상 리테일/ 프랜차이즈 흐름을 논하는냥 말이지~ ㅎㅎㅎ

예원아. 우리 계속 이야기하자. 담 책도, 그 담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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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2009.09.21 12:24:21 *.71.99.41
네 언니~
곧 올라올 언니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단순히 생각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이 멀리 한국의 일개 소비자에까지 이런 의식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겠죠.

그런 점에서 아니타 로딕도 이 책을 냈을 것이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근데 이 사람은 창립자가 아니고 인수해서 전세계적으로 확대한 사람이죠)도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라는 책을 냈겠죠.
초창기에 작은 가게가 어떤 영혼을 담고 있었는지를 소비자들에게 책을 통해 알리고,
전세계에 퍼진 지점에 가서 그 이미지를 사도록 유도하고..^^

이 책 읽으면서 저도 스타벅스 생각도 했었는데, 연결시키지는 못했어요. 
일단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100% 직영으로 운영되는 것인지를 좀 더 알아보고 연구해봐야겠어요
(한국에서는 신세계에서 모든 곳을 직영으로 운영해서..)
제생각에 개인이 소정의 가맹비를 내고 점포를 내는 프랜차이즈랑 직영으로 확대하는 거랑은 큰 차이가 있어서요..^^ 한국이랑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가맹비 꽤 받고 인테리어 비용 강요하고, 경영악화는 가맹점주에게 떠넘긴다는 인식이 아직은 있어서요. 사실 좀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프랜차이즈 안 한 것 같던데 영국에선 그래서요..
게다가 책을 읽으면 보시겠지만, 영국에서는 우리나라 화장품 방문판매 조직처럼 직판(바디샵 디렉트)하는 방법도 썼던 걸로 나와요. 매장제품과 가격이나 제품 라인이 얼마나 달랐는지는 안 나오지만 말이죠.. 아니타 로딕은 결국 이 직판 방식이 가장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언니 말대로
일단,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했던 매장개설비, 임대료, 유통단계에 따른 마진 등이 더 드니까
소비자들이 같은 제품에도 내야 하는 돈이 더 높아지겠죠.
그게 생각했던 대로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아마도 경영난이 악화된 것일 테고요..

(별로 상관 없는 것 같지만) 지난해 금융위기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스타벅스가 집중된 곳이 가장 거품이 많이 낀 곳이었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대안으로 온라인 직판, 점조직을 이용한 방문판매 등으로 성공한 기업이 있는지도 좀 더 살펴봐야 하겠구요.
(우리나라 화장품회사는 -심지어 태평양, LG생활건강 조차도- 거의 100% 방문판매를 병행하죠.. 방문판매만 하는 Nuskin, Mary Kay 등의 외국회사가 들어와서 약간 네트워크 영업 식으로 활동하기도 하구요. 다들 장단점이 조금씩 있는 듯해요)

점점 더 공부해볼 범위가 늘어나는데요? ^^
그래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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