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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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넌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했고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이말은 그의 자서전중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헤메가 바라본 그를 바라보는 시각중 하나이다.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는 자세.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하는 태도. 어쩌면 조금은 타협적이지 않으면서 시류에 얽메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만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구절이라 할수있다.
경영학을 “인간을 잘 살도록 만드는 학문”이라고 정의하며 연구대상을 ‘효율성’보다는 그 주체인 ‘사람’으로 삼았던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09년 11월 19일 스트리아 빈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양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프로이트, 슘페터, 폰 미제스, 토마스 만 등 많은 지식인들을 만난 것이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런던의 국제 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1933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에 근무했다.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동료 편집자였던 헨슈에 대한 기억을 모티브로 드러커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간하였다.
1943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의 의뢰로 2년간 경제 분석가로 일하게 되었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법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로써 학문적 분.과로서의 경영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다. 그 후 드러커는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시티코프, IBM, 인텔 등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 정부 부처, 국내외의 비영리 단체를 위해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다. 1950년과 1971년 사이에는 뉴욕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를 역임했고,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으며, 미국과 벨기에, 일본, 스위스, 스페인, 체코 등지의 대학에서 다양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는 클레어몬트 대학의 포모나 칼리지에서 극동 지역 예술을 가르쳤다.
현대 경영학을 발명한 사람으로 불려지는 저명한 경영학 교수, 저술가, 컨설턴트이자 비영리 재단인 ‘피터 드러커 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히 벌여왔던 피터 드러커. 그는 특히 지식경영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미래에 조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주로 해왔다.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비롯한 많은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정기 기고자로도 활동 하였다. 지금까지 《Next Society》《21세기 리더의 선택》《21세기 지식경영》《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단절의 시대》《피터 드러커 자서전》《경영의 실제》 등 30여 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 책들은 모두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그의 많은 저서들이 번역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으며, 경영학 계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경영의 구루'로 칭송받았던 피터 드러커는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역자 서문 드러커 안의 드러커 들여다보기
1. 그는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 드러커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비범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1939년 <경제인의 종말>이래 출간된 수십 권의 드러커 저서는 경영자, 경영, 기업 등 하나같이 난해한,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의 핵심이 된 개념들을 다루고 있었다. 따라서 드러커의 책을 학자들이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이며 그의 책이 경영학의 원전이기 때문(p5)
2. 드러커의 또 다른 강점은 뛰어난 문필력.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이라고 명명된 이 책은 앞서 설명한 그의 두 가지 강점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형식의 책
우선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통상적인 자서전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서술. 통상적인 자서전이 자신의 얘기를 직접 혹은 제3자가 기술하는 방식인 데 반해, 이 책은 드러커가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커 자신을 비추는 톡특한 형식으로 전개(6)
3. 공적인 일에는 연속성이 필요. 따라서 진정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을 육성해야 한다. 드러커의 소위 ‘위대한 사람 패러독스’는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경영 승계나 리더 육성 등의 주제로 다뤄지는 중요한 대목(7~8)
4. 인간은 사회적 존재. 이것은 정작 드러커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결론적으로 드러커의 자서전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러커의 눈으로 직접 관찰한 인물들을 통해,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우리는 또 다른 각도에서 드러커 자신을 만날 수 있다.(9)
5. 드러커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9)
■ 개정판을 내며
1.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11)
2. 이 책은 자신만의 다양성을 가진 개인을 그려나갈것. 나는 인간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가지며,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독창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내 모든 책속에 내재돼 있는 핵심은 바로 이런 신념.(12)
3. 나는 언제나 실제 인물을 내 주장에 대한 사례와 증명자료로 삼았고, 이런 개별적인 인물들은 아직도 내가 제시하는 개념에 대한 예시와 실증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는 인간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구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15~16)
4.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은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19)
5. 다시 강조하지만, 그들이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합치면, 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날것(20)
■ 프롤로그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1.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21)
2. 나는 웅덩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그 웅덩이는 그런 식으로 건너지 않았다. 당시 나는 군중들에 의해 원치 않는 방식을 강요당했던 것. 즉 거대한 인간집단의 압력이자 집단운동의 물리적 위협이 나를 압도.... 깃발을 넘겨버리고 그리고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27)
...
“어디가 좋지않니?”
“제 생애에서 최고로 기분이 좋아요. 단지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그 차갑고 떠들썩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26~27)
3. 구경꾼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봄(31)
■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1.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람
-. 언젠가 할머니가 먼 교외로 긴 여행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찾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그러겠어?”(41)
-.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했다.(41)
-.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42)
-.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저 아가씨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잖니.”(51)
-.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할머니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 오래된 라틴 경구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도 바보와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62)
-. 할머니의 영리한 조카들과 손자들, 사위들이 그녀가 푼수라는 증거로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할머니가 근본적인 가치라고 믿고 실천한 것들이었다.(65)
2. 헤메와 게니아 /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헤메는 사물의 핵심을 궤뚫어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재정황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게니아는 여학생의 입학을 거부하는 오스트리아의 대학제도를 타파하고자 직접 학교를 설립한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 전략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능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고 할 일을 지시하라’는 게니아의 좌우명은 훗날 드러커의 경영이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71)
-.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72)
-. 헤메
: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넌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했고 대중에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76~77)
-. 게니아
: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119)
-. 1950~1960년대에 나는 게니아의 방법을 적용해 볼 기회를 잡게 됐다. 당시 나는 뉴욕 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영학 교수직 맡고 있었다.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중년 장교들이 조언이나 도움을 얻기 위해 나를 찾아오기 시작.
나는 게니아의 방식을 그대로 써먹었다. 나는 그들 각자에게 군대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능력들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이 정확한지 확인. 확인절차가 끝나면 내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어떤 일에 적합한지를 생각. 그리고 수화기를 든 다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기에 대고 한 말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전화...”
어쨌든 그녀의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나역시 대부분의 장교들에게 새 직장을 찾아주었고, 그것도 대부분 첫 번째 통화에서 성공(121~122)
-. 내가 보기에는 살롱이 고대의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제공했던 것과 같은 기능을 한 것 같다.(125)
-. 내가 공연을 끝냈을 때 헤메가 특유의 목소리로 뱉아낸 말은 내 생애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된 교훈이 됐다.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 마.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계수치는 의심해 봐야 해. 내가 직접 경험해 본 일이야. 난 거의 12년 동안 오스트라이의 수출현황에 대한 통계를 담당하고 있어.”(140)
-. 헤메와 게니아는 세계대전 이전의 시절을 자신의 집에 복구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살롱은 아틀란티스 대륙. 옛날에 침몰한 도시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죽음의 도시. 바로 거거에 그들 부부의 매력이 존재했던것.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불가사의하면서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느껴졌던것(149~150)
-. ‘대공황 이전’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표준이자 잣대. 반면 뉴딜의 미국은 미래를 지향.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대공황 이전’ 증후군이 미국인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마비시키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154)
3. 엘자와 소피 /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 “그럼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하자꾸나. 그래야 너하고 내가 네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 자, 여기 네가 ‘쓸 학습장들이 있다. 너는 여기에 학습진도표를 한 달 동안에 채워야 한다.(161~162)
-. 미스 엘자가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을 완벽하게 적용했다면, 미스 소피는 선禪의 달인이었다. 하지만 내게 부족한 점이자 그들도 내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들은 결국 가르치지 못했다. 내 글씨체는 결코 읽을 수 있는 수준에 오르지 못했고 공구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흉내를 낼수 있는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174)
-. 지적 수준은 그들이 가르쳤던 과목이 오히려 더 낮았다. 하지만 미스 엘자는 결코 그것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도 흥미롭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181)
-.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내 자신을 연마하는 데 게을러졌을지도 모른다.(181)
-. 나는 그녀(미스 소피) 덕분에 장인정신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하게 됐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작업의 기쁨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어떤 것인지 일생 동안 지속되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182)
-.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내게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교훈. 그 두 노처녀는 표준을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183)
-. 나는 음악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잘 들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가 언제나 성과를 통해 학습을 해왔으며, 효과가 있거나 성과를 거두는 사람을 찾아 그것을 배우는 것이 내게 알맞은 학습방법이란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었다.(186)
-. ‘선생 관찰’을 통해 처음에 도달했던 결론에 따르면, 선생들은 어떤 유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방법에 있어서도 유일하게 옳은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치는 능력은 재능이고, 좋은 선생은 그 재능을 타고났다. 그것은 베토벤이나 루벤스, 이인슈타인이 자신만의 재능을 타고 났던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가르치는 능력은 일종의 개성이지 기술이나 숙련이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다른 종류의 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학습을 하게 만드는 선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방법을 사용해 가르침을 전수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녁이던 시절 미스 엘자가 썼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개개의 학생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장점을 개발하기 위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 이 작업을 끝낸 뒤에 비로소 그들은 학생들의 단점에 신경을 쓰기 시작. 그들은 학생들의 성취에 항상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가게 한다.
이런 선생들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사용. 그들은 효과적 학습을 계획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학생을 만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193~194)
-. 가르침의 최종산물은 결국 선생에게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두 방식이 모두 학습효과를 초래(194)
-.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선생은 타고난다. 그리고 타고난 선생은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좋은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다.(198)
-. 미스 소파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습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다.(198)
-. 소크라테스 그는 ‘교육자’, 즉 학습을 위한 안내자였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학습’ 방법이었던 것(198)
-. 선생에 해당하는 인도어는 ‘구루guru'이며 구루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는 영혼이 부여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 서양 전통에서는 기술로서의 가르침에 집중한 나머지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가르침은 재능이고 학습이 기술이다.(199)
-. 우리는 모든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가 ‘학습하는 유기체’이며, 이들 유기체는 학습을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것(200)
-. 가르침과 학습은 인지적이며 동시에 행동적. 하지만 그들은 뭔가 특별한 요소를 더 갖고 있다. 그들은 또한 열정이기도 하기 때문.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200)
-. 가르침과 학습은 플라톤의 에로스, 즉 그가 <향연>에서 언급한 참된 실재를 향한 갈망.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것(201)
-.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201)
4. 프로이트 /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 공식적인 허상속의 프로이트는 올림포스의 제우스나 구약성서의 야훼처럼 근엄한 유일신이다. 하지만 자신의 ‘프로이트적 실언’에서 그는 고통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다. 고전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 프로이트의 저서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인 데는 이유가 있었던것(208)
-. 프로이트 그는 의학을 ‘장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빈 의학계를 괴롭혔던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서 감정적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프로이트는 의사가 동정심(실제로는 환자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회복과 치료가 더뎌질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는 고통을 받는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것.
하지만 그것은 의사를 치료사에서 기계공으로 강등시키는 것과 같았다.(212~213)
-. 서구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19세기의 체계(마르크스, 프로이트, 케인스)는 모두 과학과 마법을 통합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231)
-. 프로이트가 다루었던 현상은 전혀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방법들로 인해 장애물에 부딪치고 있다.(232)
-.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만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233)
5. 트라운 트라우네크 /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 트라우네크
: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했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버렸어.(265)
■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1. 폴라니 가家 /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카를의 아내인 일로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예요. 우리는 논리적인 사람들이죠. ... 빈은 헝가리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지만 카를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카를의 월급은 다른 헝가리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나가서 필요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죠.”(286~287)
2. 크레머 /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크레머는 키신저의 친구, 개인교사, 고문의 3역을 맡았다.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외무장관이 된 키신저는 세 가지 정치철학, 즉 외교정책의 우선원칙, 외교정책에서 힘의 우선원칙, 천재 외무장관의 필요성이라는 원칙을 키신저 정책의 3대 핵심으로 삼았다. 크레머는 드러커 자신이 정치적으로 이단자임과 드러커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312)
-. 자신은 인생에 딱 두 가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모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크레머, 네가 직접 참모본부장이나 외무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크레머의 대답은 단호. “전혀 없어, 나는 내가 사색가이지 행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연설을 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야.”(324)
-. 헨리 키신저는 크레머가 만든 거나 다름없이 때문. 크레머는 키신저를 발견하고 키웠다. 사실상 그는 크레머의 작품이나 마찬가지(329)
-. 어떤 토론이든 크레머의 주장은 딱 세가지로 요약. 이 세 가지 주장이 그의 정치철학을 형성했고, 나아가 키신저의 정치철학을 형성
첫째, 외교정책이 국내정책을 우선한다는 것. 그러나 당시(현재는 더욱더 그렇다) 나는 외교정책이 절대적으로 언제나 우선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주장은 대외문제에서는 힘이 우선이라는것. 여기서 힘이란 정치적인 힘, 궁극적으로은 군사적인 힘을 의미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지적인 감정에서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거부. 외무장관은 위대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332~336)
-.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 따라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리슐리와나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 같은 ‘천재 외무장관’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프리츠 크레머가 발견해서 가르친 헨리 키신저가 되고자 했던 것은 ‘천재 외무장관’이었다.(339)
-. 키신저는 크레머에게 부족한 능력, 즉 저술가와 연설가로서의 능력과 재사와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다.(340)
-. 키신저의 경험이 뭔가를 증명한다면 그것은 ‘천재 외무장관’이라는 원칙이 오류라는 것, 사실은 비어 있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영리함이나 기교가 아니라 단순함과 정직함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342)
3. 헨슈와 셰퍼 /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헨슈는 동료 편집자. 이후 포악한 나치의 앞잡이 역할을 도맡아 ‘괴물’로 불렸다. 헨슈에 대한 기억은 드러커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집필하도록 만들었다.
‘어린 양’으로 표현한 셰펴는 나치의 권력에 이용만 당하다가 숙청되고 만 비운의 인물(343)
-. 그러나 그 책은 내 입장을 분명히 해주었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던것(349)
-. 셰퍼는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나치는 나와 <베를리너 타게블라트>가 필요할 것입니다.”
-->나치는 곧바로 그를 이용하기 시작. ‘고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서 평화에 대한 히틀러의 강력한 의지를 기사화하는 것도 셰퍼의 몫(361~363)
-.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이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363)
-.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짓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364)
-.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는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364)
4. 브레일스포드 /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 브레일스포드의 마음과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완벽하게 간파한 공산주의자들은 브레일스포드를 능란하면서도 신중하게 조종(388)
-. 브레일스포드의 힘은 언제나 그가 양심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언제나 반대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원상복귀시키는 것 역시 반대자의 힘이라는 것을 브레인스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그는 양심을 환경에 맞추었다.(390)
-. 나치가 승리하고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호된 시련을 겪는 동안 그들을 지지하기로 마음 먹었다.(396)
-.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397)
5. 프리트베르크 / 19세기의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 “재미있군. 루이스를 불러다가 그 제안서를 읽혀보게.”
프리트베르크의 말에 내가 항의. “하지만 사장님, 루이스는 부기부서에서도 가장 어린 직원 아닙니까? 그리고 며칠 전에 보셨다시피 좀 멍청해요.”
“바로 그거야.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412)
-. 프리트베르크
: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다음 주 화요일까지 자네의 계획표를 서면으로 제출하게. 자네에게 맡겨진 일을 더 잘해나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란 말이야.”(416)
-. 일단 상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효과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하급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해결방안은 아주 간단(417)
-. 프리트베르그가 나를 불렀다. “자네는 너무 많은 시간을 책하고만 씨름하는 것 같아. 책을 통해 경제전문가가 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은행업이란 사람을 다루는 일이야. 앞으로는 사람을 관찰해 보게. 내가 관찰해 볼 만한 몇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417)
-. 헨리 아저씨
: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야.”(424)
-. 헨리 아저씨는 미국 소매업계의 중요한 혁신자. 그는 시어스 로빅보다 훨씬 먼저 업계 최초로 “고객의 만족을 보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방침을 채택(425)
-. 헨리 아저씨는 말했다. “고객의 불만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해.”(426)
-.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베른하임 백화점은 미국의 다른 소매점들과 마찬가지로 종업원 좀도둑이 기승을 부렸다. “다른 상점들은 수사기관, 양방향 거울, 경호원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어. 하지만 그런 방법은 직원들을 화나게 만들었지. 대신 베른하임 백화점에서는 어느 정도의 감소량이 정상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네. 그러고는 6개월마다 시행되는 재고조사에서 정상적인 감소량보다 상품이 적게 줄어든 매장의 직원들에게는 후한 보너스를 지급했지.”(426)
-. 우리는 지금 서양에서 체계적인 분석과 사고가 막 시작됐을 때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즉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 파이드로스와의 대화를 담은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가 죽는날 아침에 나눈 대화를 담은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왔다. 그 두 개의 대화편은 우리에게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는 경험은 ‘웅변’이 아니라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라고 가르친다.(431)
-. “아마 할 일은 없을 거요. 다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당신이 있어주길 바라오.”
나는 그 제안을 거절.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자기만을 위해 일해 주길(그보다는 일하지 않길) 분명히 밝혔기 때문(444)
-. 40년 전에 프리트베르크사에서 얻었던 수많은 즐거움은 내가 거의 사라져 가는 인종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데 있었다.(4450
-. 새뮤얼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 존슨 박사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가 되는 일을 가장 적게 한다는 말이었다.(448)
6. 로베르트와 파르크하슨 / 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친 영향
■ 3부 순수의 절정기
1. 헨리 루스 /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왕국의 제왕
타임, 포춘, 라이프 등을 창간한 미국 잡지계의 대부 헨리 루스는 저널리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루스의 집단 저널리즘은 개개의 기사를 기계적으로 통일시켰고, 이는 신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466)
-. 나는 루스 스타일의 ‘집단 저널리즘’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타임>의 운영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470)
-. 우리는 매카시 시절 할리우드의 ‘반공 블랙리스트’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것은 정말로 창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학계, 언론계, 방송계 전체에 블랙리스트를 도입해서 지지자들 사이에서 효력을 갖게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카시는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썼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474)
-.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474)
-. 나는 루스가 권모술수가가 아니라 훨씬 더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그는 중국인에 가까웠다. 그는 중국의 고대 한나라부터 내려온 조직운영방식을 적용. 헨리 루스가 잡지를 운영하는 방식대로 마오쩌둥은 정권과 당을 운영(489)
-. 루스의 인간관계, 관리방식, 통제 시스템은 중국의 통치자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489)
-. 그 무렵에 나는 어떤 종류의 출판물이든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재무예측이 아니라 편집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출판물의 편집방향이 타당한가? 그렇다면 그 계획입안자들이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다음에야 비로소 재무적인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491)
-. 지식인은 이제 더 이상 여러 분야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식의 영역과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전문가다.(493)
-. 텔레비전에 추월당한 <라이프>가 선두의 자리를 되찾는 길은 설명이 있는 사진잡지에서 삽화가 있는 기사잡지로 바뀌는 것뿐(495)
-. 편집자와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일뿐, 전달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다.(496)
-. 전자전송은 엄청난 경제적인 이익과 함께 융통성, 다양성, 편집의 개성에 있어 엄청난 이익을 제공할 것이다.(497)
-. 루스가 만든 잡지는 구시대의 마지막 주자였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주자이기도 했기 때문(498)
-. 만일 언젠가 전자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잡지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헨리 루스가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504)
2. 풀러와 맥루안 /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예언자
풀러는 전쟁 시기에도 기하학적인 곡선 하나로 세계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측했으며, 맥루안은 기술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으로 보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텔레비전의 출현을 예고(506)
-. 초월주의자인 버키의 세계는 인간이 보편적인 기술과 동일화할수록 자기 자신의 신성에 가까워진다는 범신론의 세계였다.
그와 반대로 마셜 맥루안은 기술을 인간적인 것, 인간의 연장으로. 맥루안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 가는 수단. 다시 말하면,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것(508~509)
-. 사실상 기술이 인류학의 핵심이며 인간의 자기인식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세대에게 이 두 예언자는 새로운 현실을 희미하게 보여준 사람(510)
-. 버키 풀루 그 기하학적 곡선들은 에너지가 유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구곡선과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그려졌다.(513)
-. 텔레비전의 예언자였다는 점이 맥루안을 1960년대 상류 지식층 인물로 만든 이유(523)
-. 드러커-->전자기기는 미래의 ‘인쇄매체’가 될 것이다. 제록스 복사기는 모든 사람을 구텐베르크로 만들 것(523)
-.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이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확장’이라고 본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주인’이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524)
-. 그들은 기술을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다루는 것이었다.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선구자, 예언자, 그리고 선각자로 기억돼야 한다.(526)
-.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내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례로 보여준 사람들.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수 있다.(526)
-. 맥루안은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해서 마침내 비전이 그를 붙잡았다. 그 역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526)
-.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사명 대신 다양한 관심을 지닌 나머지 우리는 분명히 실패하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버크민스터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선각자의 성공은 바로 실패라는 선각자의 패러독스를 보여준 시례이기도 하다.(526~527)
-. 자기 시대를 맞이한 예언자는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그래서 탤런트의 신세로 전락하는것(527)
3. 앨프레드 슬론 /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그는 ‘전문경영자’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제시해 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
슬론은 공공복리를 위한 기업의 책임에는 소홀하고 GM의 전문성 확보에만 매진(528)
-. 나는 <산업인의 미래>를 저술. 나는 그 책에서 기업이 산업사회의 기초조직이 됐으며, 그 조직 속에서 지배원칙이 실현돼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위와 기능도 그것을 통해 인식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529)
-. 이 책은 경영학(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던)이라는 학문분야를 세우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의 개념>이 지난 30년 동안 지속됐던 ‘경영학 선풍’을 일으킨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런 시류의 선구자격인 사람이 됐다. 어쨌든 경영학이라는 학문의 주요한 관심사인 조직과 사회적 책임, 개인과 조직의 관계, 최고경영자의 기능과 정책결정 과정, 관리자의 양성, 노사관계, 집단관계, 소비자관계(심지어는 환경까지도) 등이 모두 <기업의 개념>에서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제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43)
한 세대가 흘러간 오늘날 우리는 내가 이 책을 처음 쓰게 된 동기를 제공했던 전제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544)
-. <기업의 개념>은 종종 분권화 또는 일본이나 유럽인들이 일컫는 사업부제의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주체라는 평을 듣곤 한다. 분권화를 통해 자체조직을 재정비한 최초의 기업은 바로 포드였고, 그곳에서 <기업의 개념>은 공식적인 교과서였다.(552)
-. 드레이스타는 이 예상치 못한 현상을 조사하면서 캐딜락은 부유한 흑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성공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드레이스타는 대공황의 깊은 수렁에서 흑인시장을 개발함으로써 캐딜락을 살리는 계획에 착수했고, 그 결과 1934년에 캐딜락의 판매 대수는 드디어 오랫동안 진행됐던 적자의 행진에서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증가(556)
-. 슬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연구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 들었을지도 모르겠군요. ... 당신의 역량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578)
-. 슬론. “나는 내가 벌거벗은 임금님은 아닌지 알고 싶지만, GM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 점에 대해 내게 말해줄 수 있을것 같지 않군요.”(580)
-. 슬론은 결정을 내릴 때 사람 수를 세거나 투표를 통해서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해를 통해서 결정을 내렸다.(595)
-. 슬론이 말했다. “만약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면,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당연하죠. 그 정도의 시간도 할애할 수 없는 사항이라면 우리는 당장 때려치울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적은 수의 결정을 내립니다. 드러커 씨, 누구도 수많은 결정을, 그것도 옳게 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결정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죠.”(596)
-. 1953년 즈음, 그는 MIT에 슬론 경영대학원을 설립하기 위해 재산을 기부하려는 계획에 대해서 내게 자문을 구했다.(596)
-. 디트로이트 밖에서 내 책은 전반적으로 GM에게 호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GM 이사들은 내가 자기들을 혹평했다고 판단하거나 내가 적대적이라고 불평. 나는 GM의 노동정책과 직공들에 대한 처우, 그리고 시보레와 피여 바디 같은 커다란 디비전에 있어 권한분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비평. 나는 감히 25년이 지난 후에 GM의 기본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역죄였던것(597)
-. GM의 약점은(기업의 경영까지 통틀어) 슬론이 주장했던 신중하고 정확하고 엄격한 경영의 ‘책임’ 구조라고 정확하게 주장할 수 있다. GM은 어는 면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시장점유율이나 이득, 자동차 판매 대수, 기타 등등의 기준으로, 즉 슬론식으로 성공을 측정한다면 말이다. GM은 또한 대중의 평가, 정치적 수용력, 그리고 일반적인 면에서 보면 커다란 실패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다른 전문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미국 의학, 법, 또는 교육 등).606
그들은 항상 ‘공적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전문적’인 것에만 제한하려는 고집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조직들은(그리고 그 조직을 관리하는 ‘전문인들’까지도) 반드시 공공복리를 위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문경영자밖에 없다. (606~607)
4. 그 밖의 사람들 /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대공황 극복을 위해 시행되었던 뉴딜정책의 핵심 쟁점이 정책의 정당성 여부가 아닌 미국적이냐 아니냐였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가치관임을 역설(608)
-. 대공황 속의 미국은 서로가 용기를 주고 서로를 응원하며 도왔다. 누구든 어디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반대로 누구든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빈자리를 찾아 나섰다.(613)
-. 예절에서 격의 없는 태도는 대공황 시기에 더욱 심화됐던 특징이지만, 이와 달리 상호의존과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는 적극적 자세는 대공황 시대 미국만의 독특한 특성(621)
-. 서로가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세는 대공황에 대한 미국인만의 대처법(621)
-. 대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방식은 자연재해를 극복할때와 똑같은 방식. 지진이나 홍수,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듯이, 공동체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됐다.(621)
-. 경제적으로 경기침체는 ‘재앙’이 아니라 일종의 ‘새로운 정상상태’다. 하지만 “중심을 유지하지 못하겠다”고 느꼈던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중심’을 유지(6260
-. 대공황은 또한 공동체는 물론 그 구성원의 공감대, 인생의 기쁨을 위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전적인 생존자들에게 자연재해가 일종의 축복인 것과 전혀 다를게 없다. 나는 이것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진정 놀랍고 진정 역사적인 성취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따라서 그의 경제정책이 형편없는 실패작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627)
-. 미국 백인들이 노예제도의 굴레에서 진정으로 해방되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대공황 시절이었을것. 매리엔 앤더슨이 워싱턴의 콘스티튜션 홀 공연을 거부당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의 딸들, 심지어 지독하게 편협한 사람조차 충격을 받았던 순간 말이다. 매리엔 앤더슨과 그녀의 목소리, 즉 그것이 지닌 아름답고 전적으로 영적인 힘은 편안함을 뛰어넘고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내 백성을 보내주세요”라고 노래했을 때 바로 그 목소리가 미국 백인의 모든 거실에 순식간에 전달됐던 것. 미국 백인들이 ‘흑인’문제는 결국 흑인의 권리보다는 백인의 양심과 훨씬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장본인의 목소리 말이다.(647)
-. 그것은 뉴딜이 미국의 독창성과 특이함, 미국다움의 의식적인 재확인이었기 때문. 무엇보다 뉴딜은 미국인의 근본믿음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하나의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뉴딜 정책에 대한 논쟁의 핵심쟁점은 이런 또는 저런 정책이 옳은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국적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었다.(674)
-. 드러커의 강연이 끝난뒤 나이 지긋한 목사는 아직도 스웨덴 억양을 간직하고 있는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진정 끔찍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에 나오시는 모든 분들의 선조들이 끊임없는 전쟁과 광기 어린 증오, 원죄에 가까운 유럽의 자만심을 피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선조들께서 한겨울의 눈보라와 한여름의 모래폭풍을 견뎌가며 황량한 광야에 농장을 세우셨을 때, 거기에는 국가의 명예를 위한다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군사적 영광이란 허울 좋은 정부의 독재에서 해방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삶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 선조는 한 인간보다 법에 복종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기도합시다. 선조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미국이 마지막 최선의 희망으로 여전히 남기를, 그리고 길고도 헛된 제국의 명단에 또 다른 항목으로 등록되지 않기를 말입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이전에, 그리고 그 뒤로도 아메리칸 드림을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고 감동적으로 요약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694)
Ⅲ. ‘내가 저자라면’
작금의 경기불황의 여파에 따라 세계 최대의 기업중 하나인 GM의 몰락으로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오래전 피터 드러커가 당시 컨설팅 과정을 통하여 GM의 기본정책은 제고돼야 한다고 제안한 그의 선견(先見)이 떠오른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라고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 그는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을 인간에 대한 책이며 자신을 위해 쓴책으로 분류함에 따라, 역시 차별화된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자서전과는 다른 형식의 내용으로 엮어나간다. 즉 그자신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된 것처럼, 성장과정에서 그가 만나고 마주쳤던 사람들의 군상들중에 각인된 여러 인물들의 삶의 스펙트럼과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자서전을 통해 바라본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내용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수 있다. “‘매리엔 앤더슨과 그녀의 목소리, 즉 그것이 지닌 아름답고 전적으로 영적인 힘은 편안함을 뛰어넘고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내 백성을 보내주세요라고 노래했을 때 바로 그 목소리가 미국 백인의 모든 거실에 순식간에 전달됐던 것. 미국 백인들이 ‘흑인’문제는 결국 흑인의 권리보다는 백인의 양심과 훨씬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장본인의 목소리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그의 내면의 관심과 가치관을 잘 엿볼수 있다.
이런 그의 사상관은 앞서 예를 들었던 당시 GM에서의 정책과 구조를 진단한 자신의 의견에서도 나온다. 즉, 기업의 전문성은 인정하되 공공복리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는 GM의 태도를 지적한 것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1930년대말 미국의 대공황 시기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보여준 뉴딜정책시 이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기위한 대공황에 대한 미국인만의 대처법에서 많은 감명을 받는다. 그과정을 통하여 얻게되는 잇점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대공황은 공동체는 물론 그 구성원의 공감대, 인생의 기쁨을 위한 축복이라고까지 언급을 하는 것이다. 그자신 경제, 경영을 다루는 학자인 입장이면서도 결국은 이모든것의 원동력인 사람에게서 모든 해답의 원천을 찾고있는 것이다.
이같은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피터 드러커를 성장시킨 여러 인물들의 모습들을 통해 찾아볼수 있다. 그를 그답게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내게해준 인물과 그에따른 궤적들을 살펴 보노라면 그의 두 번째 특성을 알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물과 인간을 궤뚫어보는 통찰력이다. 한사람 한사람에게서의 그만의 세세한 관찰력과 심리적 배경을 토대로 묘사되어진 글을 읽고 있노라면, 상대방의 모습을 마주보며 대화를 듣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이같은 시각을 형성할수 있게된 바탕으로는 그자신을 ‘구경꾼’의 입장으로 표명을 한데서 찾아볼수 있다. 즉,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인 3자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을 내리는 형태로 설명을 해나가기에 위와같은 시각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구경꾼적인 입장에서 그를 형성시켜 나간 몇몇 인물들을 들여다보자.
1. 할머니의 영리한 조카들과 손자들, 사위들이 그녀가 푼수라는 증거로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할머니가 근본적인 가치라고 믿고 실천한 것들이었다.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그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이같은 할머니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2. 사물의 핵심을 궤뚫어보는 힘을 헤메에게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고 할 일을 지시하라’는 게니아의 좌우명을 통해 드러커는 자신의 경영이론의 기초를 형성해 나아갔다.
3. 미스 엘자와 소피를 통하여 가르침의 최종산물을 선생보다는 학생의 학습에서 일어난다고 하여, 사람들 각자의 피동적이 아닌 자신의 주체적인 책임을 강조한다.
4. 그는 의사는 고통을 받은 환자를 형제가 아닌 사물로 대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인간관을 반박 하였다. 이는 다양성과 개별성의 입장을 견지하는 드러커의 입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5. 타임, 포춘, 라이프 등을 창간한 미국 잡지계의 대부 헨리 루스의 집단 저널리즘은 개개의 기사를 기계적으로 통일시켰고, 이는 신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헨리 루스의 시각에 대한 이런 그의 입장으로 그는 좋은 조건에서도 그와 파트너가 되어 일을 하지 않았다. 이런 드러커의 행위의 당위성은 그가 열네 번째 생일을 맞기 직전 행진에 참석하여 집단 운동의 물리적 위협에 반발후,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모습이 함께하는 것에서 연유한다.
6. 피터 드러커가 생각하는 지도자론에서 우리는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그의 목소리를 다시금 확인할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가벼운 내용으로 여겨 빨리 읽힐것 같았지만 쉽사리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기질 못하였다. 까닭은 저자의 얘기대로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합치면, 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날것이라는 명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퍼즐놀이를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즉 하나 하나의 분리된 조각들을 전체 그림을 생각하며 짜맞추어 나가듯이, 책에서 소개된 그들의 모습에서 피터 드러커란 인물의 생성에 대한 수수께기에 대한 해답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유쾌한 그와의 산책이었다.
p.s
: 한주전 칼리 피오리나의 자서전을 읽을때 그녀의 약력중 MIT의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이력이 나온다. 한데 그 슬론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 했었는데, 마침 피터 드러커 자서전에서 소개된 인물중 하나인 GM의 전문경영자였던 앨프레드 슬론에게서 연유 하였다는 내용을 찾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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