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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5일 10시 01분 등록

피터 드러커 Peter Ferdinand Drucker
(오스트리아식 표기는 페터 드루커)

피터 드러커 홈페이지 (오스트리아의 누군가가 운영) http://www.peterdrucker.at (영어, 독일어)
국내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
http://www.pdsociety.or.kr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드러커는 (지난 2005년 11월 11일 타계했지만)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부모와 성장배경
그는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를 둔 꽤나 명망 있는 집의 장남이었다. 아래로 남동생 하나를 뒀으며, 남동생은 훗날 의사가 되어 미국에 건너온다. 책을 살펴보면 오스트리아 프리메이슨의 수장이었지만 그 사실을 숨긴 아버지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내고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재작했다), 여성 의사 1세대쯤 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맺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어머니는 프로이트의 강의를 듣고, 얼마 팔리지 않은 희귀본인 <꿈의 해석> 초판을 소장하고 있는 등 남다른 면모를 가졌다. 게다가 할머니는 또 어떤가. 이 책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면도 많이 묘사되어 있지만 그녀는 클라라 슈만의 제자였던 데다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 아래 마지막 연주를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공무원과 법률가, 의사들의 집안이었’다고, ‘내 주위에는 온통 대학교수들 천지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훌륭한 집안 환경이 그의 다양한 경험에 톡톡히 한 몫을 한 듯 하다.

‘대학 안 나온 사람’의 신화?
그가 유명한 것은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견습생으로, 신문기자로 시작해 성공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틱한 사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 보니, 당시에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불명예가 된다거나 경력에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훌륭한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전통이 아직 살아 있을 때라 그는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대학 교육을 받기를 거부하고 현장에 뛰어든다. 이유는 빈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쟁 전’의 망령이 뒤덮고 있는 빈에서 그는 빨리 탈출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간다면 다른 선택 없이 명문 ‘빈 대학교’에 진학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김나지움만 졸업하고 서둘러 빈을 떠나지만 훗날 직장생활과 병행해 박사학위를 두 개나 따내고 교수가 된다.

유대인 출신이면서 성공회 신자였던
그는 오스트리아에 사는 유대인이었고, ‘드러커’라는 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의 조상은 16~17세기 네덜란드에서 종교서적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629페이지 마지막 부분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영국에 머물 때 성공회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평신도 강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422페이지)

윗 세대의 공백으로 인한 기회
그는 겸손하게도 자신이 전쟁으로 인한 윗 세대의 공백으로 상당한 혜택을 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지도층이 심각하게 제거되어 자신의 바로 윗 세대는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 젊은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돌아왔다는 얘기다. 이런 시대를 타고난 것도 그의 행운일 듯하다.

화려한 직장생활, 젊은 날
1927년 그는 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그 해에 독일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일했다. 1929년 드러커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이적한 뒤 재학 중 독일의 한 은행의 증권 애널리스트로 취업하기도 했으나,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그의 짧은 경력은 마무리된다. 대공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더 오를 것’이라는 분석 자료를 펴냈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인간적이다. 이후 애널리스트 경험을 살려 <프랑크푸르트 게네랄 안짜이거>의 금융기자로 일하게 됐다. 1931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신문기자와 대학의 시간강사로 계속 일한다. 나치가 득세하기 직전인 1933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보험회사와 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런던에서는 독일 대학에서 만났던 도리스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우연히 재회해 결혼에 이르게 되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 시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유명 잡지사와 신문사에 무작정 찾아가 유럽발 기사를 송고하는 자유기고가가 되어 오랜 시간 활동하게 된다. 또한 사라 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등 동부의 사립대학에서 강의한다. 아내 도리스 역시 베닝턴 대학(여자대학이었다)에서 수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하고 훗날 전자공학 등의 특허수속을 대행하는 회사를 차릴 초석을 다지게 된다. 그들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제2의 고향’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경영대학을 만들다
그는 특히 1950년 뉴욕대학교(NYU)의 경영학과를 설립하다시피 하고(미국에서는 하버드와 MIT 이후 세 번째로 경영학 과정을 만든 것이라고) 21년 동안 재직하며 토대를 튼튼히 했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주 남부 클레어몬트대학교의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옮겨 타계할 때까지 강의하고 재직했다. (옮긴 이유는 동부의 고약한 날씨를 피해 온화한 캘리포니아로 간 것이라고) 하버드에서는 경영대학에서 두 번, 케네디 스쿨에서 한 번 등 총 네 번에 걸쳐 교수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일주일에 3일 이상을 기업 조사 활동에 쓸 수 없다는 하버드의 학칙 때문에 포기했다고 그는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기업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실제 기업을 알지 못한다면 죽은 학문이 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경영학을 발명(!)한 ‘경영학의 아버지’
드러커는 194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GM을 2년 동안 관찰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기업의 개념>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때까지 전혀 생소했던 경영(management)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 책은 경영학(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던)이라는 학문분야를 세우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의 개념>이 지난 30년 동안 지속됐던 ‘경영학 선풍’을 일으킨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런 시류의 선구자격인 사람이 됐다. 어쨌든 경영학이라는 학문의 주요한 관심사인 조직과 사회적 책임, 개인과 조직의 관계, 최고경영자의 기능과 정책결정 과정, 관리자의 양성, 노사관계, 집단관계, 소비자관계(심지어는 환경까지도) 등이 모두 <기업의 개념>에서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제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43)

이 책을 썼을 때의 정황
자서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책이 쓰여진 건 1995년, 드러커의 나이 86세 때다. 20년을 준비해서 썼다고는 하지만 상당 부분이 젊은 시절 만났던 이들이니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잘은 모르지만 이 책은 노년에 들어가기 시작한 드러커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여러 사람들에 대해 기록해둔 것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추측해야 할 것 같다.

이 밖의 저작들
그는 모두 39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그 중 두 권은 소설, 한 권은(이 책) 자서전이다. 또한 일본 회화에 대한 책을 공저하기도 했다.

그가 저술한 책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국내에서는 대구대학교 이재규 전 총장
이 드러커의 책을 상당수 번역했다.

Friedrich Julius Stahl: konservative Staatslehre und geschichtliche Entwicklung (1932)
The End of Economic Ma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39) Google Booksearch Preview
The Future of Industrial Man (1942)
Concept of the Corporation (1945) (A study of General Motors)
The New Society (1950)
The Practice of Management (1954)
America's Next 20 Years (1957)
Landmarks of Tomorrow: A Report on the New 'Post-Modern' World (1959)
Power and Democracy in America (1961)
Managing for Results: Economic Tasks and Risk-Taking Decisions (1964)
The Effective Executive (1966)
The Age of Discontinuity (1968)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 (1970)
Men, Ideas and Politics (1971)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and Practices (1973)
The Unseen Revolution: How Pension Fund Socialism Came to America (1976)
An Introductory View of Management (1977)
Adventures of a Bystander (1979) (Autobiography)
Song of the Brush: Japanese Paintings from the Sanso Collection (1979)
Managing in Turbulent Times (1980)
Toward the Next Economics and Other Essays (1981)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 (1982)
The Last of All Possible Worlds (1982)
The Temptation to Do Good (1984)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Practice and Principles (1985)
The Discipline of Innovation, Harvard Business Review, 1985
The Frontiers of Management (1986)
The New Realities (1989)
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 Practices and Principles (1990)
Managing for the Future: The 1990s and Beyond (1992)
The Post-Capitalist Society (1993)
The Ecological Vision: Reflections on the American Condition (1993)
The Theory of the Business, Harvard Business Review, September-October 1994
Managing in a Time of Great Change (1995)
Drucker on Asia: A Dialogue between Peter Drucker and Isao Nakauchi (1997)
Peter Drucker on the Profession of Management (1998)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Managing Oneself, Harvard Business Review, March-April 1999
The Essential Drucker: The Best of Sixty Years of Peter Drucker's Essential Writings on Management (2001)
Leading in a Time of Change: What it Will Take to Lead Tomorrow (2001; with Peter Senge)
The Effective Executive Revised (2002)
They're Not Employees, They're People, Harvard Business Review, February 2002
Managing in the Next Society (2002)
A Functioning Society (2003)
The Daily Drucker: 366 Days of Insight and Motivation for Getting the Right Things Done (2004)
What Makes An Effective Executive, Harvard Business Review, June 2004.
The Effective Executive in Action (2005)
Classic Drucker (2006)


옮긴이 이동현
이 책을 읽으며 역자의 노고도 함께 생각하게 됐다. 각 장 앞머리에 역자 나름대로 요약을 해 놓아 이해를 쉽게 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를 공동으로 저술하였으며, 번역서로는 <초우량기업의 조건>, <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 <꿀벌과 게릴라> 등이 있다.


 

내가 저자라면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학문의 아버지 격인 사람이 내놓은 자서전에 대해서 어떻게 한 개인이 가타부타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독특한 그의 자서전 서술방식과 더불어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거, 자서전 맞아?

 

이 책의 영어 제목은 <Adventures of a Bystander 구경꾼의 모험 (또는 시대)>이다. 영국에서는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 Other Lives and My Times’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자신의 집필 의도를 잘 살렸다며 드러커가 만족스러워 했다. 게다가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을 일종의 자서전이라 칭했으니, 자서전은 자서전이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느 자서전과 확연히 다르다. 일단 책을 펴 보면, 목차에서부터 다른 사람들 이름 밖에 없다. 어라, 내용을 봐도 그들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건 보통 자서전 형식이 아니다. 통상적인 자서전이라 함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혹은 제3자가 기술하는 방식이다. 거기다가 연대순으로 자신의 삶을 짚어보게 되어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어릴 적부터 연대순에 따르기는 했지만,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은 순서 없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 책은 드러커가 영향을 받은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커 자신을 비추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읽어 보면 소설가를 꿈꾸던 사람답게 각 인물의 입체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에 슬쩍 지나가기만 하는 등장 인물도 마사 그레이엄, 토마스 만, 에리히 프롬 등 면면이 화려하다. 인물들 사이에 숨어 있는 드러커에 대한 상을 맞추어나가는 것이 마치 추리소설에서 하나씩 범인에 대한 상을 만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 이 사람, 이런 방식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시대와 사람들 속에 녹아 있는 자신을 묘사하는 것이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이었을까.

 

내용이나 제목을 보자면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My Personal History>가 훨씬 자서전답다. (이 책도 더불어 읽었는데, 이 자서전이 출간된 뒤 요약된 내용을 일본의 한 신문에 연재하면서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인터뷰한 일본 기자의 논평이 절반에 달한다. 한 권을 고른다면 당연히 <피터 드러커 자서전>을 권한다.)

 

아마도 이런 혼돈은 드러커 자신의 정체성에서 오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구경꾼이라 생각했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구경꾼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여과된 상으로서 재현된다. 여기서는 내가 살아온 시대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면 당시의 사회가 구성된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은 없다.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구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 20년에 걸쳐 나는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과 함께 살았고, 꿈속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잠을 깼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빠른 속도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원고가 완성됐다. (중략) 하지만 내가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 (15~16)

 

그도 이 책이 자서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때문에 이런 설명을 붙이고 있다.

이 책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고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 초상화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를 통해 나는 어떤 본질과 분위기, 느낌 등을 포착해서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 내용은 현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될 것이다. (16~17)

 

등장인물에 대한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그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위대하거나 유명해서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런 인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뿐이다. (중략)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을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19)

 

그는 결국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다시 구성해서 현대의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합치면, 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20) 이것은 결코 나 자신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22)

 

 

비판


이 책의 세부적인 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안드레아 가보는 <자본주의 철학자들 The Capitalist Philosophers>에서 드러커의 회상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의도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몰라도 사실과 다른 점이 꽤 있다고 지적한다. 세부 사항에 대한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이라 영 마뜩찮기는 했다.

 

우선 드러커가 하버드, 컬럼비아 등 유명 대학에서 교수 임용을 제의해 왔으나 거절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고 그는 평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런 대학과는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두 번째는 드러커가 유대인 혈통임에도 어느 곳에서도 이 사실을 표나게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저자 조사에 나 역시 추가한 바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웬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629페이지 내용을 읽고 아 이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임용에 불이익을 받았나 보구나하고 생각할 만 하던데.)

 

세 번째는 헨리 루스의 <타임>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다. 드러커는 <경제인의 종말>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협력을 예측하는 바람에 타임 내부의 공산당 조직이 자신의 입사를 방해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러나 가보에 의하면 그 정도의 위력을 지닌 공산주의자들이 타임 편집부에 있었던 증거가 약하다고 한다.

 

또한 GM의 캐딜락 사업부문에 대한 이야기에서 드러커는 GM2000명의 매춘부 출신 여성들을 고용해 생산성을 높인 적이 있지만 종전 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으나, 어디에서도 이를 입증할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보의 이와 같은 지적이 타당하더라도 <피터 드러커 자서전>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주관적 실체를 서술하기 때문에. 그리고 드러커가 거의 100년을 살았기에 주위에 살아남아 당시 상황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증언해줄 사람도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칼럼에서 이어지겠지만, 오래 살아 자신의 기억을 남기는 것이 가지는 힘은 참 위대하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역자 서문 –드러커 안의 드러커 들여다보기

드러커는 전 세계적으로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경영학자들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5)

드러커의 책을 학자들이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이며 그의 책이 경영학의 원전이기 때문이다. (5)

드러커의 문필력 덕분에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경영학은 비교적 쉽게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6)

드러커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 (9)


개정판을 내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1)

거대정부나 거대기업에 의한 통제를 설파하는 학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는 권한분산과 실험정신, 그리고 공동체 창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정부와 거대기업을 유일한 형태의 단체이자 하나의 ‘현대사회’와 맞먹을 수 있는 세력으로 간주하는 접근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는 비영리나 공익단체, 즉 ‘제3섹터’의 중요성과 핵심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13)

물론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도 ‘큰 것이 최고다’라는 말만큼이나 숨이 막히게 만드는 독선이다. 게다가 똑같이 멍청한 생각이다. (14)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는 인간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 Other Lives and My Times’이라는 말에 나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내 책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구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없다. 20년에 걸쳐 나는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과 함께 살았고, 꿈속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잠을 깼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빠른 속도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원고가 완성됐다. (중략) 하지만 내가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 (15~16)

이 책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고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 초상화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를 통해 나는 어떤 본질과 분위기, 느낌 등을 포착해서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 내용은 현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될 것이다. (16~17)

이런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떠올랐던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재임시기였다. (17)

그러나 내가 어떤 인물에 대해 보도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위대하거나 유명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런 인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뿐이다. (중략)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을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19)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합치면, 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20)

 

프롤로그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21)

이것은 결코 ‘나 자신’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22)

“제 생애에서 최고로 기분이 좋아요. 단지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그 차갑고 떠들썩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 (27~28)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여졌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31)

 

1부.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 유쾌한 사람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했다. 똑같이 친근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똑같이 구식 예절에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41)

“나는 그저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했지만, 남자에게는 위장이 성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 (45)

그녀의 마지막 연주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봉을 잡은 공연 때였는데, 당시 말러는 1896년 빈 오페라의 지휘자로 취임해서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46)

“음악을 연주하지 말고 음표를 연주해라. 만약 작곡이 잘 됐다면, 음표가 음악을 만들어주는 거다.” (46)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 (51)

“하지만 아무도…… 여권을 네 개나 가질 수는 없어요.” (57)

“누군가의 종교를 비웃는 행위는 누군가의 여드름을 비웃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행동이야. 너도 누가 너를 여드름쟁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거야, 안 그래?” (60)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할머니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라틴 경구에서 말했듯이, 하느님도 바보와 싸워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62)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할머니가 지식이나 영리함, 지능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62)

우리는 할머니가 화폐가치와 인플레이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했다. 하지만 훗날 우리는 그 누구도 화폐와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은 아마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63)

 


●헤메와 게니아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은 것은 헤메와 게니아의 덕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글 쓰는 데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내가 가진 유일한 자질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글쓰기는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72)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중략)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72)

내가 소설을 썼더라면 분명 그들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73)

이미 열네 살 때부터 그렇다고 빈에서 살지 않을 것이며,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로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75)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77)

헤메에게는 돈은 물론 가족을 통한 연줄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사고력만 있었을 뿐이었다. (93)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96)

1909년은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이 세계의 경제학계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었다. (131)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 ‘전쟁 이전’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153)

 

●엘자와 소피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사실 너 같은 책벌레는 따로 읽기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단다. 그래서 나도 네게 더 이상 읽기 공부를 시킬 생각은 없단다. 이제 네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 하렴. 피터, 너무 어두운 데서 책을 읽다가 눈을 버리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는 내가 안 보고 있는 줄 알고 책상 밑에서 책을 읽더구나. 항상 책상 위에서 읽어라. 다음부터는 네 자리를 창가 쪽으로 옮겨 밝은 곳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해 주마. (159)

“너는 작문에도 능해. 하지만 별로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160)

어쩌면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밑에서 지도를 받은 일년 동안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179)

사실 지금까지 어떤 과목도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나의 흥미를 끌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180)

미스 엘자의 학습장을 다시 꺼내서는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했다. (183)

 

●프로이트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프로이트는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다. (203)

의대생이었던 어머니는 정신의학에 관심이 있었고, (중략) 어머니는 결혼하기 한참 전인 젊은 시절에 프로이트의 책을 사기도 했었다. (203)

내가 프로이트에게 직접 소개된 것은 여덟인가 아홉 살 때였다. (중략) 가난했던 빈 시절에 프로이트와 그의 가족은 때때로 그곳에서 점심을 먹곤 했으며, 그건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프로이트의 식구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프로이트가 부모님을 알아보면서 나는 프로이트와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하게 됐다.
내가 프로이트를 직접 만난 건 이때뿐이다. (204)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는 연구를 위해 파리에서 3, 4년을 머무는 동안 경제적 지원을 받아가며 상당히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중략)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는 책을 사고 오페라나 극장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용돈이 넉넉했다. (209)

프로이트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되는 비판은 그가 치료사로서의 기본적인 ‘유대인 윤리’를 어겼다는 점으로, 이는 정신분석학을 신봉하는 사람조차도 제기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료 환자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신분석학자에게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지 말아야 하며, 환자가 상당한 진료비를 지불할 때만 진료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빈의 의사 대다수가 따르던 유대인 전통에서 보면 대단히 ‘비윤리적인’ 것이었다. (211)

하지만 이보다 더 빈 의학계를 괴롭혔던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서 감정적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212)

빈곤 신경증은 끝내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나 수입이 충분치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걱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는 자신이나 가족, 이웃의 사회적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돈에 대해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227)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233)

 

●트라운 트라우네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나는 우리 부모님이 마리아 뮐러에게는 깊은 애정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에게 매혹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트라운 트라우네크 백작에게는 거의 복종에 가까운 존경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244)

당시는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불명예가 된다거나 경력에 해가 되는 시절도 아니었다. (246)

그 당시에는 ‘훌륭한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전통이 아직 살아 있었다. (247)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시험 몇 달 전부터 졸업고사 전문학원에 다녔다. (249)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엇보다 우리는 공무원과 법률가, 의사들의 집안이었으니 말이다. (중략) 결국 나를 대학교수로 만들려는 압력이 가해졌다. 내 주위에는 온통 대학교수들 천지였다. (250)

하지만 교수가 된다는 것은 결국 빈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251)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학자나 연구자로서 일류가 돼야만 했다. 내게 글쓰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과연 내게 연구나 학문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251~252)

그 무렵 나는 논리적 사고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고된 독서를 통해 이들 위대한 사상가들이 엉뚱한 문제게 집착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254)

만약 유럽의 지도층이 전멸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달라졌을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심각하게 유럽의 지도층을 제거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에는 거의 없다). (269)

“자신이 오스트리아 프리메이슨의 수장이란 사실을 네 아버지가 말해 줬는지 모르겠구나.”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스스로 밝혔던 것은 아니다. (274)

 


2부.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폴라니 가(家)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히틀러의 국가사회당이 독일 정권을 장악하게 될 위험에 대해서 다뤄보는 것은 어떨까요?” (283)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요. 월급을 자신을 위해 쓰다니! 우리는 그런 소린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285)

카를 폴라니는 자신처럼 특이한 부모 밑에서 다섯 형제의 넷째로 태어났다. 폴라니 가는(아버지와 네 자녀) 내가 아는 한에서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며 영향력을 가진 가장 성공한 가족이었다. (286)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놓은 성으로 보내졌다. (중략) 아이들은 오로지 가정교사만 상대했다. 영어교사 한 사람, 스위스-프랑스어 교사 한 사람, 스위스-독일어 교사 한 사람, 헝가리어 교사 한 사람. 이렇게 네 명의 교사가 각각 일주일에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가르쳤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회의 위선과 부패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놓을 것을 요구한 루소의 저서 <에밀>의 가르침에 따라 자녀를 양육했다. (289)

카를은 예순 살이 다 된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자신의 창조성을 꽃피우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96)

그는 초기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원시적인 경제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문화인류학과 경제선사학에서 카를 폴라니는 권위자가 됐다.
그러나 카를 자신은 크게 절망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사학과 문화인류학은 존속 가능한 대안,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좋은 사회에 대한 탐구에 뒤따르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가 경제사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었다. (305)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311)

 

●크레머 -키신저를 만든 외교정치 고문

크레머는 그저 명석하고 박식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중략)
그는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빈틈없이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315)

자신은 인생에 딱 두 가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모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중략) “하지만 크레머, 네가 직접 참모본부장이나 외무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크레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혀 없어. 나는 내가 사색가이지 행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세간의 주목을 받거나 연설을 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야.” (324)

프리츠 자신도 이런 야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프리츠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까이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자기 목표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어냈다. (325)

내가 정치적인 이단자로서의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 크레머는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331)

공적인 일에서는 개인적인 성취 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상태를 남긴다. (337~338)

 


●헨슈와 셰퍼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당신은 쉽게 그렇게 말하겠죠. 언어도 통하고 외국에서도 살아봤으니까. 하지만 난 프랑크푸르트를 떠나본 적이 없소. 심지어 베를린에도 못 가봤죠. 게다가 내 아버진 장인이라 난 아무런 연줄도 없소.” (355)

“난 권력과 돈을 갖고 싶은 거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그래서 4, 5년 전 나치가 처음 시작했을 때 일찌감치 합류한 거요.” (356)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아렌트는 스스로 ‘위대한 죄인’이라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버렸다. (중략)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 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363)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괴물일까, 어린 양일까? 그리고 권력을 탐한 헨슈의 죄와 셰퍼의 자기과신과 오만의 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쁜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죄는 아마도 이 두 가지 고전적인 죄가 아닐 것이다.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364)

 


●브레일스포드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브레일스포드와 내가 만났을 때, 나는 아직 스물다섯 살도 안 됐고, 그는 나보다 서른여섯 살이나 많았다. (383)

나는 기질적으로 구경꾼이었고 그는 활동가였다. (383)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397)

 


●프리트베르크 -19세기의 탁월한 개인금융업자

나는 프리트베르크사에서 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출근하는 일이 기다려졌다. 직원들과 고객들 모두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401)

내가 보기에 자네는 너무 많은 시간을 책하고만 씨름하는 것 같아. 책을 통해 경제전문가가 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 하지만 은행업이란 사람을 다루는 일이야. 앞으로는 사람을 관찰해 보게. (417)

그때 나는 시티 교구의 교회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수요일에 평신도 강론을 하고 있었다. (422)

헨리 아저씨는 백네 살까지 살았다. (중략) 간호사가 말리자 그가 말했다. “놔둬. 어차피 죽을 것 아닌가.” 한 시간 후에 돌아온 그는 베른하임 백화점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쟁사에서 스타킹을 더 싼 가격에 팔고 있다고 마구 호통을 쳤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봤지? 이 나이에도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러고는 벽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432)

우리 집안이 16~17세기 네덜란드에서 종교서적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렇다고 했다. (440)

 

 

●로베르트와 파르크하슨 -사업가에게 여성이 미친 영향

그는 결코 충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통찰력은 여러 주나 여러 달 동안 조용히 사색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연구와 분석을 몹시 싫어했다. (453)

5, 6년 후에는 로베르트가 공동경영자가 되는 조건으로 그녀를 인계했다. (454)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나도 그녀를 사랑했어요.” (457)

 


3부. 순수의 절정기

●헨리 루스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왕국의 제왕

그러나 루스는 근본적으로 내 책이 아니라 내게 관심이 있었다. (469)

그는 가방에서 하나는 두툼하고 하나는 얄팍한 서류철을 두 개 꺼냈다. 두툼한 서류철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이건 당신이 미국에 온 뒤로 영국 신문에 실은 당신의 기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놓은 것입니다.” (중략) “이건 당신이 미국에 온 이후로 미국 잡지에 실은 당신의 기사를 모두 모은 겁니다.” (470)

내가 아는 최고의 편집자는 모두 자신의 출판물에 들어가는 것은 한 자도 빠짐없이 읽고 손질하고 다시 쓴다. (470)

루스는 <타임>, <라이프>, <포춘>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고용했다. 그러나 일단 직원이 되고 나면 대부분이 일생 동안, 심지어는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그들을 망쳐버린 것이다. (475)

글을 상당히 잘 쓰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루스는 길고 여유가 있는 <포춘> 스타일의 에세이를 선호했다. (476)

그러나 IBM 이야기를 쓴 그 젊은이는 독자적인 조사보도가 흠집 내기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480)

<포춘>을 창간했을 때 루스는 친기업적인지 반기업적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업의 중요성과 가시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 그는 피카소와 독일 바우하우스의 그래픽 모두를 망라하는 완전히 새로운 그래픽을 통해서 기업이 중심 주제가 되는 새로운 형태를 이해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504)

 

●풀러와 맥루안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예언자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유명해지기 오래전부터 내 친구였다. 나는 두 사람을 1940년 무렵에 처음 만났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507)

현재 버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미국 인명사전에 가장 길게 기재된 인물로, 관련설명이 75줄이나 된다. 그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가장 많은 명예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명예박사학위가 37개나 된다. (511)

그는 20년 동안 집요하게 연구해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은 그의 아내가 비서로 일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511)

버키에게 인정이나 돈보다 더욱 필요했던 것은 청중이었으며, 청중은 많을수록 좋았다. (516)

버키 풀러는 자신을 기하학자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는 선각자였다. (517)

인간이 뭔가를 행하고 만드는 방식, 즉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사는 방식,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식,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525)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매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례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즐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 하지만 풀러나 맥루안 같은 사람은 ‘사명’을 수행한다. (526)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도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헌신했다. 맥루안은 비전을 찾는 데 25년을 소비해서 마침내 비전이 그를 붙잡았다. 그 역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길도 없는 황무지에 자신의 하얀 뼈만 남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명 대신 다양한 관심을 지닌 나머지 우리는 분명히 실패하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526~527)

 

●앨프레드 슬론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경영자

1943년까지 주로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던 나는 (530)

사실 대부분의 경영인들은 자신들이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일반 대중들은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지만, 경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541)

책이 출간됐을 때,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이 책의 요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양쪽 모두 나를 짙은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542)

그러나 이 책은 경영학(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던)이라는 학문분야를 세우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의 개념>이 지난 30년 동안 지속됐던 ‘경영학 선풍’을 일으킨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런 시류의 선구자격인 사람이 됐다. 어쨌든 경영학이라는 학문의 주요한 관심사인 조직과 사회적 책임, 개인과 조직의 관계, 최고경영자의 기능과 정책결정 과정, 관리자의 양성, 노사관계, 집단관계, 소비자관계(심지어는 환경까지도) 등이 모두 <기업의 개념>에서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제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다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43)

그는 책에 우호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을 발행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슬론은 그때 일흔여덟 살이었으며,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전 동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대신 출판을 하기까지 10년을 더 기다렸다. (585)

 


●그 밖의 사람들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예절에서 격의 없는 태도는 대공황 시기에 더욱 심화됐던 특징이지만, 이와 달리 상호의존과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는 적극적 자세는 대공황 시대 미국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621)

20년 뒤 내가 뉴욕 대학 학과장으로 임명됐을 때 이 ‘현명한 처사’의 여파에 따라야만 했다. (629)

대학들은 미국 유대인들을 자신의 학부에 고용하지 않고, 학생정원에는 일정한 제한을 두면서, 동시에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에 대해서는 마음은 물론 돈지갑과 학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630)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는 출입제한이라는 말이 ‘유대인 출입금지’를 의미했지만, 미니애폴리스와 애틀랜타에서는 ‘가톨릭 출입금지’를, 피츠버그에서는 ‘헝가리인과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출입금지’를 의미했다. (630)

공황기의 미국이 집단을 나누고 뿌리와 기원을 따지며, 어떤 인간의 출신이 어딘지를 강조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종족주의에 빠져 있었다. (636~637)

물론 나는 영국에 있을 때부터 ‘미국의 흑인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미국에 와서 그 실체를 직접 겪어 보니, 그것은 전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638)

뉴딜 정책이 집행되던 시절을 흑인의 개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그때 미국 흑인들은 처음으로 우수한 능력을 지닌 인재, 비전을 가진 인물, 진정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무더기로 배출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공황 시기 미국의 흑인 학자와 목사들은 대단히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던 요인은 단순히 그들이 지적으로 뛰어났거나 학위가 있다거나 불굴의 위엄을 갖고 있다는 데 있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고결함에서 비롯됐다. (645)

“연구성과를 발표하라, 아니면 그만둬라”라는 개념이 대공황 시절에도 당연히 존재하기는 했다. (중략) 하지만 대규모 ‘연구중심’ 대학인 하버드와 컬럼비아, 시카고 대학에서도 최우선 문제는 ‘그가 무슨 연구를 발표했는가?”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또는 그녀가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는가?”였던 것이다. (655)

당시에는 대학이 사회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대한 관심도 대단히 높았다. (중략) 그 문제는 독일에 ‘현대적’ 대학인 베를린 대학이 설립됐던 18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미 오래 전에 결론이 난 문제였다. (655)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당시에는 소규모 대학들이 거대한 종합대학보다 훨씬 장래성이 많았다.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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