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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5일 11시 18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20세기의 탁월한 구경꾼, 피터 드러커

 

20세기는 그 어느 시대보다 흥미로운 시대였다. 20세기의 100년의 시작과 끝은 그 이전의 그 어느 세기의 100년보다 시작점과 끝점보다 간극이 컸다. 19세기 말 열강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제국주의는 수백년간 은둔을 하며 자급자족 사회를 영위해왔던 아시아, 아프리카를 문명사회로의 이전이라는 명분으로 세계질서의 한 귀퉁이로 편입시켰다.

 

두 차례의 전쟁이 남긴 시련과 재기, 기술의 급격한 진보와 지구환경의 파괴, 블록형 경제체제의 발달과 양극화되는 세계경제… 20세기는 그 어느 시대보다 이성적이고 정의를 추구하려 한 듯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시대보다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기술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20세기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세계 질서의 이동이 대전제로 깔려있다. 그렇다. 세계무대를 주름 잡던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화 (Pax Britanica)는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신생국가 미국의 영광(Pax Americana) 으로 이동하며 세계질서는 바뀌게 된다. 이 점이 20세기의 변화를 읽는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이 된다.

 

20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피터드러커 (1909 ~ 2005)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거점을 따라 움직이며 구경꾼의 역할을 했다. 청년시절 유럽 전역에 퍼졌던 공산주의에 대한 이상과 그 소멸을 지켜보았고, 나치즘이 어떻게 권력을 잡고 소멸되었는지를 관찰하였다. 또한 금융이 세계 자본 시장을 움직이는 원리 역시 살펴볼 수 있었다.

 

유럽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로 옮겨갈 때 그 역시 미국으로 옮겨 갔으며,  세계 질서가 정부가 아닌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될 때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들을 관찰했다. 재미난 점은 그는 평생 동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중심에서 활동하려 하지 않고 곁에서 관찰하기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가령 그는 책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Times 의 편집장을 수행하는 것이나 GE 와 같은 기업의 간부로 일하는 것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 그들을 관찰할 수 있는 컨설턴트로서의 삶을 만족스러워했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내가 아는 한 피터 드러커는 20세기를 가장 잘 관찰한 구경꾼이다. 그는 20세기를 움직인 중심에서 배우로 활약하는 것 보다 멀리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구경꾼으로 활약하는 것을 즐겼다.

 

피터,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어린 시절 크란츠에 대한 옹호 발언으로 친구 아버지에게 들은 쓴 소리였지만 훗날 드러커는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이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구경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듯 하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중고등학교 시절 병적으로 ~~의 아버지 시리즈를 외웠던 적이 있었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수학의 아버지는 피타고라스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아버지라 불리울 만큼 후세 사람들이 기리는 것을 알고 있을까?

 

피터 드러커는 잘 알려졌다시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번 책을 통해 구경꾼 피터 드러커를 이해했다면 다음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서의 피터 드러커를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분권화(Decentralization), 민영화(Privatization), 권한위양(Empowerment),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 목표관리(MBO), 수평조직(Flat Organization) 등 오늘날 일상화되어 있는 경영용어들이 모두 드러커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활동하던 초기만 해도 아직 경영학의 학문적 기반은 부족했으며 테일러, 포드 등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드러커는 유럽에서 정통 학문을 배운 지식인으로서 경영이 단순히 장사꾼만의 관심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이라는 점을 밝히고 경영학의 이론적 기초를 닦는 중요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버몬트의 베닝턴 칼리지에서 정치학과 철학 그리고 경제학을 강의했는데 이때경제인의 종말 -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산업인간의 미래 - Future of Industrial Man’(1942)라는 초기 저작을 내놓았다.그의 저작은 학계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기업이란 영리추구 집단에 불과하며 학문이 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경영학이 사회적으로 누리고 있는 인기를 생각할 때 격세지감이 있으며, 경영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드러커의 선견지명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는 GM에 대한 광범위한 사례 연구를 통해 기업경영의 성공요인으로 분권화를 제시하였다. 이는 당시 중앙집권적인 피라밋 구조를 채택하고 있던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충격적인 메시지였다. 포드, 제러럴 일렉트릭 등 당시의 거대기업들은 드러커의 조언을 신속하게 도입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드러커는 또한 당시를 풍미하는 어셈블리 라인의 개념을 통박하고 종업원이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자율적 조직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종업원에 대한 인간존중 자세가 단순히 윤리적 명제가 아니라 생산성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드러커가 평생 견지해 온 사상으로 그는 이것을 후기에지식근로자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하게 된다.

 

드러커는 특히 목표관리, 전략경영, 비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경영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1954년에 펴낸경영의 실천-The Practice of Management’이란 저서에서 그는 기업의 장기전략은 단기적 목표로 분해되어 종업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기업 전체의 목표가 아무리 거창해도 이것이 라인의 말단 근로자에게까지 구체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과업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얘기다. 목표관리란 결국 종업원 개인이 상사와 함께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수행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이것에 근거하여 평가를 받는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통제적이고 심지어는 그가 처음에 주장했던분권화개념과 모순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목표관리란 결코 개개인을 조직의 틀에 가두어서 통제하고자 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의해서만 평가를 받는, 오히려 자율적인 경영을 지지하는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드러커 자신도 목표관리와 분권화는 결코 상호모순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개념이라고 강조하고 양자가 연결되기 위해서는비전의 공유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즉 비전이 명확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상사가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개인과 조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조직구성원들을 다단계의 피라밋 조직을 통해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일하도록 고취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비전형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드러커가 최초로 던진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80년대 이후 지식기반사회와 학습조직이라는 키워드를 유행시켰으며 지식근로자를 자본주의 미래의 핵심적 주체로서 강조하고 있다. 지식사회의 도래는 그의 마지막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선진사회가상품의 경제에서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개념적으로 포착한 인물로, 경영자들은 종업원의 손과 육체가 아니라 머리와 마음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고자료 : 네이버 오픈사전>

 

내가 저자라면

 

명제 하나 : 이것은 자서전이 아니다

 

자서전에는 본인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만 <피터드러커 자서전>에는 피터 드러커 자신에 관한 내용이 없다. 이 책에서는 피터 드러커가 살아온 삶의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결코 그 자신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의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p.21)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 Other Lives and My Times’ 은 그의 의도를 잘 나타내며 이 책의 원제 역시 구경꾼의 모험 Adventure of a Bystander’이다.


 

명제 둘 : 이것은 자서전이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의 시대의 역사도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대단히 주관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다루는 사람이나 사건들은 피터 드러커에게 강한 느낌을 주었으며 여전히 그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검토하고 재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주변세계와 내면의 세계를 보았다.


 

<피터드러커 자서전>은 자서전일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흔히 발생하는 일처럼 우리나라 번역본의 이름을 붙일 때 조금 더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러한 제목을 붙였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제 1,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를 읽고 나자 이 책은 자서전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단 자서전의 틀을 깬 자서전이다. 그의 자서전이 흥미로운 이유는 다음의 두가지이다.

 

첫째. 자서전에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도입이다.

 

자서전이란 무엇인가? 본인이 혹은 제 3자가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전기 형식의 글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자서전은 흔히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 옹호적인 글로 흘러가기 쉽다. 일인칭으로 대변되는 자서전을 읽다 보면, 과연 작가가 묘사하는 상황이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주장일지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많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의 경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 매우 독특하다. 그 역시 일인칭 시점에서 글을 썼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피터드러커 자서전>에서 묘사되는 피터 드러커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기 때문에 타인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피터드러커인 것이다. 즉 독자는 피터 드러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묘사한 여런 인물들의 입에서 나온 피터 드러커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재미난 형식이다. 통상의 자서전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반면에 이 책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기 보다는 독자의 판단력에 선택권을 주었다.

 

둘째. 나는 무엇의 총합인가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반드시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이 내 진정한 자아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타인의 행동과 삶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1년간의 연구원 과제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고된 작업은 뭐니뭐니해도 50페이지 개인사 작성일 것이다. 당시 나는 지난 30년을 어떻게 정리를 할까 하고 꽤 오랜기간 구상의 시간을 가졌는데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중대한 결심을 하고 생각의 체계 자체를 바꿨던 시점에는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한 인물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일부는 적극적으로 내 삶에 개입해 나를 변화시키기를 원했었고 또 다른 일부는 온전히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해줌으로써 내가 알아서 느끼기를 원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총합은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들의 사고체계와 행동방식 중 나와 주파수가 맞는 것들을 모아 만든 조립물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가르침이라는 형태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점점 나라는 사람의 형체가 굳어지면서 나와 다른 것은 가지치기를 하고 나와 맞는 것은 수용하는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말이다.

 

피터 드러커는 타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타인의 삶과 행동, 철학을 피터드러커라는 프리즘을 통해 수용하고 이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타인이야말로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거울임에 틀림없다. 단 기존관념과 세상의 질서에 너무 닳은 나머지 평면이 된 거울은 비춰지는 그대로 따라하는 따라쟁이일 뿐이다. 나만의 굴곡이 있는 거울은 무지개색 빛이 되어 세상을 반사한다.



<
피터 드러커 자서전> = 20세기 사회 초상화

 

앞서 나는 <저자에 대하여>에서 피터드러커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구경꾼이었음을 주장한 바 있다. <피터드러커 자서전>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러한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크게 3등분했다. 첫째 과거의 영화가 남아있지만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 있었던 유럽에서의 성장기. 둘째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이상향과 좌절의 부침이 반복되던 청년기. 셋째 새로운 세계질서를 일구기 시작하는 미국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장년기 이후가 그것이다.

 

1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에서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인도해줄 삶의 철학와 지혜(할머니)를 배우고 소신과 경영방식(헤메와 게니아)를 배웠으며 교육의 방법(엘자와 소피)에 대해 배웠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아틀란티스에 대한 꿈의 회상 부분이다. 시민들의 탐욕과 자만심, 거만함 때문에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 제국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쟁 이전의 팍스 브리태니카로 상징지워지는 유럽의 패권이 아니었을까? 전쟁 이전의 사회가 기준이 되던 시기에 성장한 타고난 구경꾼, 피터 드러커는 떠나야할 시점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수 있다.

 

반면 2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에서는 전쟁 전후의 유럽의 극심한 정신적 혼란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치즘의 등장, 공산주의의 대두, 금융업의 확산,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꿈꿨으나 실패한 가족이야기 등과 같이 말이다. 피터 드러커는 청년기에 만나고 경험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3 <순수의 절정기>는 미국으로 세계질서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타임>, <포춘>, <라이프>로 대변되는 미디어의 발전, GM으로 대표되는 대량 생산 기업구조 이를 통해 피터드러커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 <피터 드러커 자서전>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이며, 이는 곧 20세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이 책을 통해 사회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내 마음의 글귀

 

개정판을 내며

 

[11] 이 세상에는 약 3 5,000종의 파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파리만 존재한다. 그들에게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이다. 창조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다양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 어떠한 피조물도 두 발로 걷는 인간들보다 더 큰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13] 정부와 거대 기업을 유일한 형태의 단체이자 하나의현대 사회와 맞먹을 수 있는 세력으로 간주하는 접근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는 비영리나 공익단체, 3섹터의 중요성과 핵심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이런 비영리나 공익 단체들은 독립성과 다양성을 키우는 요람을 제공하고, 가치관의 수호자 역할을 하며, 공동체에 지도력과 참여 정신을 공급하는 원천이 된다. 나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회가 비영리적이고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의 단체들에 의해 조직되고 채워지는지도 지적해 왔다.

 

[15] 지금 우리가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지식사회는 조직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직들의 사회 (조직이 여러 개라는 점에 주목하자)는 다양하게 분산된 다중적인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조직 안에서는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구조를 탈피하게 될 것이다

 

[15] 나는 언제나 개념보다는 인간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인간보다는 개념을 다룬 책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의 부제목인 내 생애의 다른 사람들 Other Lives and My Times’이라는 말에 나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17] 훌륭한 컬러 사진이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초원의 경험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통계수치로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지 표현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사회초상화만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 초상화는 사회를 개인들 속에 반사하기도 하고 개인들을 통해 사회를 굴절시키기도 한다.

 

[19] 이 책에 기술한 인물들은 내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 그들이 내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내게 반사하거나 굴절시켜 보여주었던 방식 때문이었다

 

프롤로그 : 한 사람의 구경꾼, 탄생하다

 

[21]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구경꾼은 사건을 재현하지만 그것은 거울에 나타나듯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빛이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처럼 여과된 뒤에 나타나는 상이다. 이런 과정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굴절시킨다.

 

[21]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나의 시대역사도 아니다. 여기서는 주로 내가 살아온 삶의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결코 나 자신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내 경험과 삶, 연구성과들은 단지 부속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은 대단히 주관적인 작품이다. 일급 사진가가 항상 주관적이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27] 그 차갑고 떠들썩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

 

[31] 크란츠에 대한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좀 특이한 사람이란 것도 확실한 사실이야. 그리고 조금 더 눈치가 있고 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지.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별난 생각을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행동은 절대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이것은 구경꾼이 언제나 듣게 되는 충고다. 그들은 언제나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충고는 적절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그 충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다

 

1: 사라진 제국 아틀란티스

 

할머니 -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준 유쾌한 사람

 

[42] 너희는 언제나 그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옮기는 끔찍한 성병만 걱정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나 역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

 

[45] 물론 화가 났지. 하지만 내가 정부를 두지 않는 남자를 만나려고 했다면 결코 결혼하지 못했을 거야. 그런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거든

 

[45]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는 늘 집에 돌아왔단다. 나는 그저 멍청한 늙은 여편네에 불과했지만 남자에게는 위장이 성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

 

[60] 누군가의 종교를 비웃는 행위는 누군가의 여드름을 비웃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행동이야. 너도 누가 너를 여드름쟁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거야, 안 그래?”

 

[62] 하지만 나는 나치당과 여러 해 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증거, 통계수치, 논리적 주장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먹혀들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는 양심에 호소했고 성과가 있었다.

 

[62]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할머니가 지식이나 영리함, 지능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할머니가 웃기는 분이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할머니의 행동이 옳은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녀를 웃긴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63]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직관적으로 20세기를 이해했다.

 

[65] 규칙을 만드는 쪽은 남자였고,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런 규칙들을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67]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창녀는 동정의 대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하는 존재였다. 자신의 몸을 배역과 인긴, 결국 돈 많은 남편을 얻는 데 사용한 젊은 여배우는 오직 경멸의 대상일 뿐이며 결코영광을 얻을 수는 없었다. 자기 직업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서 일을 잘하지 못했던 여종업원은 불행해질 것이 뻔했다. 그녀가 예절을 배워야만 하는 것은 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였다. 나치의 만자 표시에 대한 할머니의 접근방식이 아무리 우습더라도 그 속에는 지혜가 녹아 있다. 개인과 그의 신념, 판단,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결국 가스실로 이어지는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행위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저 지방색이 강하고 독선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늙은 여편네는 공동체란 것이 단지 수입이나 서비스나 현대의학의 기적을 분배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동체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었다

 

[69] 젊은이, 당신은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를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구려. 하지만 대신 앰뷸런스를 불러주시는 게 좋겠소. 당신 차에 낯선 여자가 타고 있으면 당신의 명예가 손상될 지도 모른다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거든.

 

[70] 그 칠순 노파가 살아 있다면 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겠지. 하지만 낯선 노파가 그의 차 안에서 죽었다면 그 운전사는 그것을 어떻게 해명해야 했을 것인가?

 

헤메와 게니아 - 경영의 귀감으로 삼은 괴짜 부부

 

[72] 나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관념이란 철학자들이 범주화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내게 흥미롭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엇인가로 바뀐다

 

[76] 헤메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넌 언제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고 했고 대중과 영합하기를 거부했었지 난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빈을 떠나 외국에서 삶을 개척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바로 빈을 떠났을 때도 역시 자랑스러웠지. 지금 네가 빈을 떠나겠다는 것도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이곳은 과거 속에 있고 이미 끝난 도시니깐. 하지만 피터, 일단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 해. 떠날 사람은 작별인사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게니아에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라.” 그러더니 나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집으로 가서 짐을 싸. 런던으로 가는 기차는 내일 정오에 출발한다. 너는 그 기차를 타야 해.” 그는 거칠게 나를 문 밖으로 끌어내더니 계단 밑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외쳤다. “직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는 직장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네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자리도 많아. 나중에 직장을 잡거든 엽서나 한 장 보내다오. 우리를 완전히 잊지는 말란 말이야.”

나는 다음날 정오 기차로 빈을 떠났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여섯 시간 만에 직장을 구했다.

 

[78] 나도 그에게 따듯한 안부의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감상적이 됐다고 그가 비웃을까 두려워 감히 편지를 쓰지 못했다. 나는 그랬던 나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고, 다시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78] 어른들은 그를 꺼렸다. 그의 신랄하고 매서운 혀에서 나오는 말들을 참기 어려웠고,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거칠게 대했다. 저말 그는 어린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똑 같은 방법으로 대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마 아이들이 그를 잘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85] 그런 해외 무역부에 들어갔다는 말은, 특히 재무부에 갈 수도 있는 사람이 그쪽으로 갔다는 것은 단지 그가 괴짜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 다른 모든 사람의 뺨을 후려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92] 그는 유대인을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가진 부르주아적 근성과 탐욕적이고 유물론적인 정신은 사회를 오염시킨다고 여겼다. 그에게 유대인이란 종교나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정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최대한 비유대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93] 헤메에게는 돈은 물론 가족을 통한 연줄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사고력만 있었을 뿐이었다.

 

[96]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다루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러니까 누군가 겁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 그건 전부 헤메의 일이 됐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했어. 그는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기꺼이 불쾌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배짱도 있었으니까.”

 

[99] 노망한 황제부터 시작해서, 정치계든 군사분야든 적절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오스트리아가 결국 붕괴될 때까지 효과적으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헤메의 역할이 가장 컸다. 왜냐하면 4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의 전비 지불 능력을 유지해낸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116] 게니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언제나 최고위 인사들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기를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마라. 항상 그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라.” 이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됐거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지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보다는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125] 살롱은 여성에 의해 운영 및 관리됐고 여성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들이 주도권을 쥘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살롱이 고대의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제공했던 것과 같은 기능을 한 것 같다.

 

[139]게니아의 살롱에서는 누구라도 스타가 될 기회를 갖고 있었다.

 

[140] 헤메 왈, “통계치를 다룰 때는 명심해. 절대로 그것을 신뢰하지만. 그 통계를 집계한 사람이 네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계 수치는 의심해봐야 해

 

[140] 그 주제에 대해 아무도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했니? 그러면 넌 네 연구를 반드시 발표해야 해.

 

[142] 게니아는 감수성이 적었는데, 사실 그녀의 무감수성은 위대한 자질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런 특성 때문에 그녀는 어떤 조롱이나 비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144] 그녀는 단지 교육의 중요성을 믿었고, 그 믿음을 굳건하게 지켰을 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학교는 여성의 평등으로 향하는 약간의 전진에 불과했다

 

[146] 게니아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것이 인간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원칙이란 내게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야.” 이는 절대주의의 세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이단이다. 교육과 심리, 환경, 경제, 정치, 심지어 인종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이상적인 미래나절대 다수를 위한 선이라는 망상을 위해 인간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148] 아틀란티스 꿈 이야기 -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안식이 없이 영원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153] 전쟁 이전 현상은 모든 곳에 스며 들어 모든 사람을 마비시키는 유독 스모그와 같은 존재로, 모든 사고기능과 상상력의 숨통을 조였다. 전쟁 이전에 대한 집착은 나치당이 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찰스 린드버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과거를 향한 물결이 되고자 기를 쓰고 있을 때, 나치즘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향한 물결이었던 것이다

 

[153] 젊은 시절에 나는 본능적으로전쟁 이전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능한 빨리 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라고 나는 확신한다

 

[154] 미국에서조차이전증후군은 존재했다. 대공황 이전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표준이자 잣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대공황 이전증후군이 미국인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마비시키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그럼으로써 유럽의전쟁 이전증후군이 유럽인의 의지와 상상력을 장악하고 마비시켰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미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155] 그들이 품고 있던전쟁 이전의 환영에서는 천박하게 경제적 실체를 따지지 않았다. 실제로 게니아의 살롱에는 경제계의 인물들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부각됐을 정도였다. 그 곳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이 함께 살면서 완벽한 우정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엘자와 소피: 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158] 선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르치는 재능이 포함돼 있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에게 학습을 프로그램해서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161] 그럼 지금까지 합의된 내용을 기록하자꾸나. 그래야 너하고 내가 네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

 

[166] 그녀는 전체적으로 칭찬에 인색했고, 설사 하더라도 대단히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었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수의 천사처럼 우리를 사정없이 야단쳤다. 우리가 특별히 잠재력을 가진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나의 경우는 작문이 거기에 해당됐다

 

[166] 그녀는 조금도아동중심적이지 않았다. 사실 아동이란 개념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아동의 학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167]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녀를 숭배했다. 50년 뒤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내 머릿 속에는 신이 미스 엘자를 대단히 많이 닮았을 거란 생각이(검은 봄바진과 코안경,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 등 모든 것이) 들었던 것이다.

 

[174] 미스 엘자가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을 완벽하게 적응했다면, 미스 소피는 선의 달인이었다

 

[180]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 때문에 나는 가르치는 일이 똑 같은 일이나 반복하고 있는 평범한 교사들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불쌍한 사람들(일반적인 교사)은 스스로 수업을 끔찍하고 지루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182] 나는 그녀 (소피) 덕분에 장인정신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하게 됐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작업의 기쁨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어떤 것인지 일생 동안 지속되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182).

 

[185] 사랑스런 릴리, 너도 느꼈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그 두 작품을 정말 잘 연주했다. 하지만 너는 네 귀에 들리는 대로 연주하지 않더구나. 단지 네 귀에 이렇게 들려야 한다는 식으로 연주했지. 그건 진실한 연주가 아니란다

 

[187] "신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지르게끔 만드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뭔가를 올바로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마르틴 부버

 

[198] 미스 소피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미스 엘자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미스 소피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미스 엘자는 기술을 제공했다. 미스 소피는 비전을 전달했고, 미스 엘자는 학습을 이끌었다. 미스 소피가 선생이었다면 미스 엘자는 교육자였다.

 

[199] 서양 전통에서는 기술로서의 가르침에 집중한 나머지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200] 가르침과 학습은 인지적이며 동시에 행동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특별한 요소를 더 갖고 있다. 그들은 또한 열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열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깨달음에 같이 도취됨으로써 열정을 얻는다. 학생의 얼굴에 떠오르는 깨달음의 미소는 어떤 마약이나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201]가르침과 학습은 플라톤의 에로스, 즉 그가 <향연>에서 언급한 참된 실재를 향한 갈망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플라톤의 페가수스가 내재해 있고, 그 고귀한 준마는 제 짝을 찾는데, 그 일은 오직 가르침과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선생의 열정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교육자의 열정은 학생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가르침과 학습은 언제나 열정이고, 그 열정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열정에 자신이 중독되는 것이다선생과 교육자가 공유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학생의 실패를 언제나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한다.

 

[201]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프로이트 -프로이트에 대한 프로이트적 분석

 

[204] 내가 프로이트에게 소개된 것은 여덟살인가 아홉살 때였다

내가 그를 만난 건 그때 뿐이다. ‘오늘 일은 잊어선 안된다. 넌 방금 오스트리아에서, 아니 아마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난 거야라는 말을 부모님이 내게 했기 때문에 이 때의 일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인가요?” “그래,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야.”

 

[205]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가지사실을 거의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첫째, 프로이트가 평생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며 거의 빈곤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것. 둘째, 반유대주의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셋째, 빈에서 살던 시절에 빈 의학계가 프로이트를 무시하고 경시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사실은 모두 완전한 허상이다

 

[211]당시에도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돈을 추구하는 의사들은 많이 있었다. 당시 이런 이들은칼 쓰는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하지만칼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경멸감이 담겨 있었다. 아주 악명 높은칼 쓰는 사람조차도 병원의 원장이나 대학 임상학과의 부서장이 되어 빈곤한 환자들을 돌보곤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탐욕 때문에 바라는 것 없이 베푼다는 치료사로서의 전통적 윤리를 어긴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윤리를 경멸한 프로이트는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중요시되는 치료사라는 유대인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의학을장사로 만들었다

 

[219] 토마스 만은 프로이트이 여든 살 생일축하 자리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분석은 소설이라는 예술에 그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219] 프로이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정신분석이 치료라는 것을 주장하려 했고, 대부분의 빈 의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주장이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이학문이라기보다는라고 평가되는 데 아주 예민했다

 

[224] 프로이트가 주장한 억압과 신경증을 일으키는 성적 욕구는 문화나 사회적 관습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들은 특정 사회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인과 아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224] 프로이트의 저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가 성적불안, 성적 불만, 성기능 장애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19세기 말 빈(실제로는 19세기 말의 유럽)의 다른 모든 기록에서 강조됐던 한 가지 신경증이 빠져있다. 바로금전 신경증이다. 프로이트 시대 빈에서 억압의 대상이 됐던 것은 성이 아니라 돈이었다. 돈이 이미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상태였지만, 동시에 언급돼서는 안될 대상이기도 했다.

 

[230]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인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내면의 경험이라는 두 세계를 하나의 종합이론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그것은 계몽시대가 낳은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프로이트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꿈꾸는 몽상가이지 시인인 프로이트를 한 개체에 담으려는 거대한 시도였던 것이다.

 

[233] 현실의 프로이트는 전통적인 허상에 등장하는 프로이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다. 허상보다는 현실에서 더욱 위대한 그는 비극적 영웅이기도 하다. 불편한 모든 질문을 무시해 버림으로써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세계와 영혼의 암흑 세계 사이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프로이트의 이론은 종국에는 무너져버리고 말 약한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 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트라운 트라우네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의 고백

 

[235] 그건 내가 늘 꿈궈오던 자리였고, 게다가 나는 그 일을 맡을 준비도 되어 있었지.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맡을 수 없었어. 나는 단지 내 어린 시절 친구들, 그리고 같은 이상을 갖고 있던 동지들의 죽음을 대가로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던 거야

 

[254] 내가 보기에 요점은 형벌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 설명이 필요한 것은 범죄의 존재였고,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크게 초월하는 분야였다

 

[262] 네 아버지나 헤메 슈바르츠발트처럼 나이든 사람은 여전히 자유주의자였지. 하지만 아직 20대 전후의 젊은 세대들은 자유주의가 다음에 벌어질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에 의지하기로 했지. 그 힘이 조직과 헌신, 그리고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사회주의였지.

 

[265]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피해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을 파괴횃다는 게 아니야. 그건 전쟁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다는 거야. 전쟁으로 한 세대의 지배계층이 사라져 버렸어.

 

[268] 사회주의는 19148월의 총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사회주의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열광적으로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동지들 간의 상장인 전쟁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의 끝이 아니었다 신학은 신앙보다 더 질겼다. 그것은 또한 정치세력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의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으로서 사회주의의 종말이었다. 비록 영원히 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세대 전체에 관한 한 말이다.

 

[269] 2차 세계대전 이후 부활한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 독재와 오래된 구호 뒤에 숨어 있는 노골적인 권력 투쟁에 불과하다

 

[271] 영국이 가장 큰 손상을 입었던 이유는 분명,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의 지도층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지도층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데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이전의 앙시앵 레짐과 나폴레옹 재위 및 부르주아 정권들의 지도층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자신의 지도자를 단지 한 계층에서만 찾지 않아도 됐다. 독일에서도 두 계층이 지도력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2: 명멸하는 시대의 사람들

 

폴라니 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286]그들은 19세기를 극복하려 했다. 자유를 추구하되 부르주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번영을 이루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되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다섯 형제는 각자 독자적인 길을 걸었지만 결국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똑같은 성배를 찾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선 원탁의 기사를 떠올렸다.

 

[290] 협동조합국가란 나라를 위해 공통적으로 헌신하는 여러 계급이 결속하고, 그 때문에 묶은 나뭇가지, 즉 영광스러운 로마 공화정의 유물인 속간처럼 부러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의미한다.

 

[291] 아돌프가 브라질에 매료됐던 것은 유럽의타락해 가는 자본주의와는 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인디언이 섞여서 현대적이면서도 부족적인, 자유로우면서도 개인주의적이지는 않은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 내는 다인종 사회를 기대했던 것이다

 

[296] 무지가 공적인 생활을 한 몇 년 동안 쏟아낸 팸플릿과 잡지, 기사, 연설 역시 20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사회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키부츠의 탄생에 한 역할을 했다

 

[305] 카를이 경제사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선사시대로, 원시경제로, 고전고대와 고전기 이전의 고대로 파고들면 들수록 시장이 없는 좋은 사회는 더욱 더 찾기 어려워졌다. 

 

[309] 그러나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이상과 실패 때문이었다. 폴라니 가의 사람들은 각자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모두 사회의 구원에 의한 구원을 믿었다. 하지만 그 후에 사회에 대해 단념하고 절망했다.

 

[311]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크레머: 키신저를 만든 외교 정치 고문

 

[322] 크레머는추한 독일인을 증오하고선한 독일인을 존경했지만, ‘선한 독일인추한 독일인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324] 그는 자신은 인생에 딱 두가 야망만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는 육군 참모총장의 정치자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외무장관의 정치적 멘토가 되는 것이었다

 

[331]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가 추구하는 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똑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도 금세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용해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게끔 만들었다.

 

[331] 내가 정치적인 이단자로서의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 크레머는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내 관심사는 그의 관심사와 같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나 자신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336] 외무장관은 위대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대외문제의 처리는 최고의 정치수단을 요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천재가 필요했다

 

[337] 역사 서적을 읽어갈수록 나는 천재적인 외무 장관이 나라에 큰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프랑스는 리슐리외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메테르니히 때문에, 독일은 비스마르크 때문에 사멸했다

 

[338] 위대한 인물이 지니는 패러독스 :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공적인 일에서는 개인적인 성취 외에도 연속성이 필요하다. 공적인 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위대함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대한 사람은 자기 뒤에 공백 상태를 남긴다

 

[339] 진정으로위대한 사람이자 진짜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헨슈와 셰퍼: 나치즘이 불러온 개인의 비극

 

[363]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아렌트는 스스로위대한 죄인이라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이아고(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악한), 엄청난 죄를 짓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맥베스 부인(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여주인공으로 권력욕이 강한 여인)이 있다. 악은 극악무도하고 사람은 평범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악은 헨슈나 셰퍼같은 사람을 통해 작용한다.

 

[364]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364]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랜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브레일스포드: 영국의 마지막 반체제자

 

[367]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절대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그는 딱 한 번 하원의원에 입후보한 적이 있었지만 완전하게 패배했다. 그래서 오히려 구제될 수 있었다. 정치가가 됐다면 그는 6개월도 안 돼 파멸했을 것이다. ..그는 영국의 마지막반대자였으며, 그 때문에 중요한 사람이 됐다.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375] 그의 사회주의는 역사의 과학적 법칙보다는 신앙과 도덕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머리나 재력의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가슴의 사회주의였다. 따라서 그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그는 오래된 영국의 전통을 대표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결속 보다는 동정심에 호소하는 전통, 부자에 대한 보복보다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전통, 정부의 행동보다는 개인적 변화, 그리고 번영보다는 존엄성의 전통, 힘보다는 양심의 전통이었다. 근본적인 소수의견과 전통이었다. 브레일스포드는 기인이나 괴짜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395] 찰스 디킨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하고 어두운 소설인어려운 시절(1854)’의 주인공이자 반대자인 스티븐 블랙풀은 자신이 양심이 권력과 야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의심받고 추방당해 파멸에 이른다. 그의 죽음조차도 실패였다. 그가 죽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디킨스의 19세기형 반대자는 순교자조차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상가였을 뿐이다.

 

[397] 20세기 현실의 반대자인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효과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권력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프리트베르크: 19세기의 탁월한 개인 금융업자

 

[412] 그가 자네의 제안서를 이해하면 그대로 할 걸세. 그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자네 제안서가 너무 복잡하다는 뜻이야. 어떤 일이든 반드시 멍청한 사람이 다룰 수 있어야 해. 결국 일은 늘 멍청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거든

 

[417] 상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효과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하급자로서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고 나자 해결 방안은 아주 간단했다

 

[424] "소매에는 오직 두 가지 원칙만 있네. 첫 번째 원칙은 '2센트 에누리에 안 넘어오는 고객은 없다' 이고, 두 번째 원칙은 '진열해 놓지 못한 상품은 팔 수 없다'는 거지. 나머지는 모두 노력이야.  또는 어리석은 고객은 없어. 상인이 게으른거지" -헨리 베른하임

 

[428]나는 좋은 예술가나 좋은 과학자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좋은 상인의 마음은 헨리 아저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식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화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438]바로 그 점 때문에 부탁드리지 않은 겁니다. 전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444] 난 내가 그 회사를 위해 기여하고 뭔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소.

 

[447] 실업은 더 이상 인간의 상황이 아니라 목표수치일 뿐이다. 상징을 조작함으로써 현실이 만들어지고, '미디어 이벤트'를 실행함으로써 역사가 만들어진다.

 

3: 순수의 절정기

 

헨리 루스: <타임>, <포춘>, <라이프> 잡지 왕국의 제왕

 

 

[470] 내가 아는 최고의 편집자는 모두 자신의 출판물에 들어가는 것은 한 자도 빠짐없이 읽고 손질하고 다시 쓴다. 좋은 편집자는 관대하지 않다. 그들은 동료가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신문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든다.

 

[471] 루스의 집단 저널리즘은 개개의 기사를 기계적으로 통일시켜서 신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그런 방법이 편견과 부정확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474]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내는 것은 공격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475] 루스는 타임, 라이프, 포춘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고용했다. 그러나 일단 직원이 되고 나면 대부분이 일생동안, 심지어는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호사를 시킨 루스의 친절이 그들을 망쳐버린 것이다.

 

[493] 지식인은 더 이상 여러 분야의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식의 영역과 결부시킬 능력이 있는 전문가다.

 

[495] 20세기 초반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잡지로 만든 호레이스 로리머는, 잡지 수입은 광고에서 나오며 구독은 기본적으로 광고 수입을 얻기 위한 판촉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위험한 헛소리이다. 구독에서 (그리고 가두 판매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 잡지는 소멸하게 마련이다

 

[496] 맥루안이인쇄된 말은 죽었다고 한 말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죽은 것은 우편으로 배달되는 말이다. 편집자와 독자에게 중요한 건 메시지일 뿐 전달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다.

 

[497] 나는 누구보다 잡지를 높게 평가한다. 잡지는 현대문명의 중요한 업적이다. 특히 무한한 개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504] <포춘>을 창간했을 때 루스는 친기업적인지 반기업적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업의 중요성과 가시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 그는 피카소와 독일 바우하우스의 그래픽 모두를 망라하는 완전히 새로운 그래픽을 통해서 기업이 중심 주제가 되는 새로운 형태를 이해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포춘>은 미국 잡지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적인 미술 감독을 두었다 (504).

 

플러와 맥루안: 테크놀러지의 위대한 예언자

 

[508] “의도적으로 비유기적으로 진화를 할 수 있는 건 인간 뿐이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

 

[508] 맥루안에게 기술이란 인간의 자기 완성이며,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완성해 가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이 자연적인 진화를 통해 특정 기관을 새롭게 발달시켜 다른 동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516] 버키에게 인정이나 돈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청중이었으며 청중은 많을수록 좋았다.

 

[524] 맥루안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기술이단순한 수단이 아니라인간의 확장이라고 본 것이다. 기술은인간의 주인은 아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킨 바로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526]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은 내게 한 가지 목표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례로 보여 준 사람들이다.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즐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 하지만 풀러나 맥루안 같은 사람은 사명을 수행한다. 어떤 일이 달성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사명감을 갖고 한 가지에 정진하는 사람들이 해낸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도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헌신했다. 맥루안은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해서 마침내 비전이 그를 붙잡았다. 그 역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

 

 

앨프레드 슬론: 절대적 권위로 GM을 이끈 전문 경영자

 

[541]일반 대중들은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지만, 경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561] 드레이스타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 인생에서 처음으로 괜찮은 월급을 받으며 쾌적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자기들의 권리라는 것도 일부 갖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자부심이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한 번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모욕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구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570]우리는 20년 후에 월터 루서 같은 조합의 리더를 볼 수 없게 될 겁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대학에 가서 회계사와 관리자가 될 것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만 남아서 조합을 이어나가게 되겠죠.” 불행하게도 이런 예언의 시대가 오고 말았다

 

[582] 우리가 사람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자리에 임명하는 사안에 대해 네 시간씩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의 실수를 처리하느라 400시간을 소비해야 할 거고,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요

 

[583]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을 적소에 잘 배치시키는 것이 전부에요. 그게 회사의 역할이에요

 

[599] 그는 전문가에 의해 경영되는 첫 번째 거대조직을 세운 사람, 진정한 전문 관리자 1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헨리 포드는 여전히 소유주의 위치에 있었다. 슬론은 그것이 바로 헨리의 회사가 혜성처럼 떠오르다가 그의 인생 마지막 20년 동안 급속하게 내리막길을 치달았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602] 그에게 전문가란 관심사가 없고, 신념도 없고, 사생활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문가란 자신의 관심사와 신념과 사생활을 공적인 업무와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을 뜻했다

 

 

그 밖의 사람들: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

 

[621] 대공황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방식은 자연재해를 극복할 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이 지나간 뒤에 그렇듯이, 공동체는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마치 자연재해를 회상한 듯 이야기 했다. 그럴 때마다 장황한 개인적 사연이 등장하는데 보통내가 어떤 식으로 극복했냐 하면또는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냐 하면으로 시작하지만, 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이랬다. “당신도 봤지? 내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어

 

[621] 예절에서 격의 없는 태도는 대공황 시기에 더욱 심화됐던 특징이지만, 이와 달리 상호의존과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는 적극적 자세는 대공황 시대 미국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637] 대공황 때 종족주의가 정점에 도달했던 이유는 분명 당시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도덕하고 심각한 해약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차별은 순수한 동기로 이루어졌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종족주의가 대공황 시기 미국인의 삶과 상상력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637).

 

[638] “미국에는 두 개의 도가니가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아주 천천히 끓고 있죠. 하지만 그 도가니 속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3세대가 지난 후에는 앵글로색슨 족으로 변합니다. 다른 하나는 매우 빨리 끓어서 무엇이든 그 속에 들어가면,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는 것 가운데 상당수가 흰색을 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과 아홉 달 뒤에는 흑인과 흑백혼혈이 되어 나옵니다” - 모데카이 존슨

 

[644] 모데카이 존슨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흑인 노예들이 해방될 것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흑인은 이미 해방됐죠. 단지 문제는 백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입니다

 

[651] 1930년대는 사고의 시기이자, 도전의 시기이며, 감동과 혁신의 시대였다

 

[674] 뉴딜은 미국인의 근본 믿음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하나의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677] 미국의 가치관은 링컨의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기도 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유럽인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던 요인이 그 미국의 가치관이었다. 유럽인들이 얼마나 깊이 거기에 매료됐던지,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더 이상 유럽인이기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682] ‘팍스 아메리카나아래서 미국의 비전은대서양 공동체로 확대되고, 결국 그것은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자는 누가 됐든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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