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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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찰스 핸디
Charles Handy
아내가 찍어준 사진인 듯.
(내 경험으로) 해바라기 옆에서 사진 찍어 예쁘게 나오기 힘든데, 재미있는 사진이다.
1932년 생 (우리나이로 78세)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인 에이레 킬데어 주 샐린스 마을, 성 마이클 사제관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그곳에서 자랐다.
가족과 출신배경의 영향
성직자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가톨릭이 대부분인 아일랜드에서 소수인 영국계 지배층 출신 성공회 신부였다. 교구에서도 권력과는 먼 자리인 시골 사목활동에 관심을 쏟았다.
지긋지긋한 가난은 찰스 핸디를 사제관에서 떠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죽음 직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설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다. 그의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의 본보기, 가치관은 그렇게 그의 생각과 저서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책 곳곳에서 종교적인 내용까지도 열심히 밝히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서양 저자에게서 이런 종교적 표현을 많이 보지 못했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책 속 그의 목소리 (앞으로 밑줄)
내 삶과 일이 누구한테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아버지가 깊이 영향을 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바쁜 일상과 소위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146)
나의 경우,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내 삶을 바꾸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53)
20년 전 내가 살던 아일랜드 사제관을 떠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맹세했다.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가난하게 살지 않으리라고. (중략) 과거는 때로 불편하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155~156)
이렇게 현금이 부족한 생활에 시달렸던 결과, 나는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217)
다름, 정체성의 고민
아일랜드의 영국계라는 사실은 그가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다름을 바탕으로 이런 포트폴리오 생활을 개척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자란 유년시절 나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나 아일랜드의 길고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대로 내가 왠지 모르게 다르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32)
내 과거를 돌아보며 사람의 유년기 환경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믿으며 성장하고, 이를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운가도 깨닫기 시작했다. (중략) 뒤늦게야 나는 고정관념을 넘어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했다. (39)
나는 도대체 뭔가? 영국인인가, 아일랜드인인가? (42)
교육
그의 부모님은 아일랜드 내 영국인들이 그렇게 하듯, 그를 본향인 영국에 보내 교육시킨다.
영국의 기숙학교를 거쳐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다.
옥스퍼드 오리엘 칼리지에서 그리스, 로마 어문학과 역사를 전공했으며, 우등 졸업한다.
당시 옥스퍼드 졸업생답지 않게 그는 셸이라는 거대 석유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하는데, 이곳에 들어가는 데도 옥스퍼드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옥스퍼드에서 배우는 방식을 제대로 훈련 받았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짐작 덕분이었다. 이는 칼리 피오리나가 스탠포드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해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는 훗날 미국 상황과 비교하면 굉장히 앞서간 생각이다. 미국이 지나치게 실용적인 학문을 중시하는 경향을 엿볼 수도 있는 듯하다.
셸 생활
그는 셸에 들어가 동남아시아와 런던 등지에서 근무하며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게 되기도 한다. 상사가 써준 대로 셸의 간부가 되기 위한 커리어 패스를 따라가려 노력했던 20대를 그러나 그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며 후회한다.
20대를 온통 석유회사 중역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보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349)
런던경영대학 설립
피터 드러커가 뉴욕대학에서 경영대학원 설립을 주도했듯, 그 역시 1966년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런던경영대학 설립을 위한 준비팀으로 나선다. 1966년 그와 아내 엘리자베스는 태어난지 갓 6주 된 장녀를 데리고 보스턴으로 날아가 MIT 슬론 스쿨에서 1년 동안 경영학을 공부한다. 당시 영국에는 제대로 된 경영학 과정이 없었기에 직접 체험해보고자 한 것인데, 그는 1년 동안 공부한 뒤 결국 ‘내가 다 아는 것이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다. 미국에서 보낸 1년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꿔놓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1972년부터 런던경영대학 정교수로 재직하게 된 그는 관리 심리학(managerial psychology)을 가르친다.
1966년 우리 부부는 6주 된 딸애와 함께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당시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미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97)
미국이 마음에 들었다. 딱한 처지의 부부를 도와주고가 법망을 우회할 창조적 해법을 제시하는 남자가 있는 땅이었다. (99)
(도와주는 미국인을 만난 것, 피터 드러커의 체험과 정말 많이 흡사하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충분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창의력 활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나는 해마다 미국에 가서 특유의 활력과 낙관주의를 보충하곤 했다. 미국에서 보낸 1년은 삶에 대한 내 태도를 바꿔놓았다. (104)
윈저성 학장 생활
1977년부터 윈저성 안에 있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학장이 되어 사회와 윤리적 가치 문제를 다루는 일을 맡는다. 잘 나가던 교수직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된 것은, 그가 아버지의 임종 이후 가치관을 바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야망 없어 보이는 아버지의 삶에 그는 회의적이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그가 추구한 세속적 성공을 하찮아 보이게 만든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성공회 사제는 결혼할 수 있으므로 당시 결혼생활을 하던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상담한 주교는 그에게 ‘당장 성직자로 들어오는 것보다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며 윈저성 학장 자리를 제의한다.
나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학장이 되어 1977년 9월 윈저성에 도착했다. (중략)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종의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직무가 주는 인상은 맘에 들었다. (157)
내가 어떤 신부님에게 들었던 것과 매우 흡사한 말을 그 역시 듣는다.
나한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지 말라고 충고하던 주교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정확하고도 옳은 말씀이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하는 일을 하게. 자네는 사제들이 결코 만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위치를 활용해서 옳은 일을 하게. 자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351)
이 밖에도
그는 영국 왕립예술협회에서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잠시 회장으로 일한다.
무엇 하는 사람인가? 지금 그의 정체성
사회철학자 (social philosopher)
그는 자신을 사회철학자로 규정한다.
현재 나는 스스로를 사회철학자라 규정한다. 사회철학자란 새로운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당면한 문제들이 점점 많은 사람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리라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226)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좋은 문장과 단어를 고민하면서 글을 다루는 예술가가 되는 일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보다 훨씬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컴퓨터와의 씨름에 다름 아니었다. (214)
그렇다면, 그에게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에 대한 그의 생각
그동안 포기했던 ‘스스로 생각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점점 세속화되는 세상에서 교회의 새로운 역할은 철학을 가르치는 기관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행동하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199)
상대주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절박한 위험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을 강화하거나 비세속적인 절대적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교육을 통해 대처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그런 교육을 통해서.
이것은 철학의 임무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어느 날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철학 말이다. (200)
포트폴리오 생활자
1981년 7월 25일, 나이 49세에 그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사진작가인 아내와 집에 꾸며진 각자의 작업실에서 일을 한다. 그의 생활은 책에서 아주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는데, 어찌나 정교하게 정리되어 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철저한 계획과 생활의 절제는 흐트러지기 쉬운 벼룩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 부부는 150일을 순전하게 창조적인 작업, 구체적으로는 집필과 사진 촬영, 거기에 수반되는 독서와 조사들을 겸하는 작업에 할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로 해외 강연회로 이루어진 기업경영 관련 업무에 100일을 할당했다. 그리고 일종의 십일조처럼 30일을 자원봉사활동에 할당했다. 그래도 1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쉬고 이따금 뜻밖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85일이 남아 있다. 휴일의 전체적인 숫자는 지키지만 어느 요일에 쉬느냐는 우리 마음이다. 우리는 보통 금요일을 휴일로 정해 이런저런 여가활동을 즐기고, 전화가 없어 조용한 일요일에는 대부분 일을 한다. 이런 날짜 배분을 지키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 가령 강연회 등 일하는 날을 늘리고 싶은 유혹은 항상 있다. 날짜를 늘리면 곧 돈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집필과 사진 촬영에 투자하지 않으면 일도 곧 없어지리라는 걸 잘 안다. 이는 우리 삶의 R&D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261)
하지만 그는 포트폴리오 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충고한다. 7년 정도는 일감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것을 각오하라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생활자가 되는 것이 이론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더구나 첫 시도일 때는. (206)
근본적으로 내 인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시, 외부에서 나한테 기대하는 바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외부에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중략)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없고, 답신해줘야 하는 전화도 없고, 지켜야 할 약속도, 목표도, 평가도 없었다. 다이어리는 텅 비어 있었다. 너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당해보니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206)
나, 이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이 할아버지가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처럼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내가 저자라면
<코끼리와 벼룩>이 아닌 <포트폴리오 인생>을 읽은 이유
가장 최근에 나온 그의 저서이다.
2006년 봄 영국에서 출간되고, 한국에선 2008년 3월 처음 나왔다.
<코끼리와 벼룩>은 2001년 초판이 나오고 2005년 개정판이 나왔기에 최근의 그의 핵심을 읽고 싶었다.
연구원 생활 초기, <코끼리와 벼룩>을 읽었다. 이번에 <포트폴리오 인생>을 펼쳤는데,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 등은 거의 <코끼리와 벼룩>에서 보았던 것으로 ‘이 두 책 간의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거지? 비슷한 내용으로 재탕을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코끼리와 벼룩>과 달리 명확한 부, 장절 구분도 없이 18개 장을 늘어놓고 있어서 정돈되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자신의 삶의 철학과 사상을 깊이 드러내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으려 노력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감동적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책에 이런 평가를 했다고 한다.
“핸디의 저서 중에 최고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고 사려 깊고 진지하다.”
<코끼리와 벼룩>을 통해 그의 삶에 매료되었다면, 이 책도 추가로 읽어보시길 권한다.
두고두고 보아야 할 책
줄을 많이도 그었다. 이틀, 사흘을 꼬박 정리하고 보니 A4용지로 서른 장이 나왔다. 오랜만이다. 소나기처럼 좋은 내용이 내 몸을 흠뻑 적셨다. 그런데 갑작스런 폭우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일 주일 안에 모두 내 것으로 소화하기는 벅찰 것 같다. 계속 곁에 두고 보아야겠다.
할아버지의 통찰력
11월부터는 연구원 커리큘럼 중에서도 part3, ‘통찰’로 넘어간다.
철학과 사상 책들을 눈앞에 두고 살짝 긴장해 있는데, 그의 따뜻한 말을 들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오랜 시간 깊은 성찰을 통해 성숙한 그의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나의 종교적 탐구과정을 살펴본다는 취지하에 내 삶의 여정을 반추하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 옥스퍼드, 싱가포르, 미국, 윈저성, 토스카나 등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있던 당시에는 그곳이 어떠했는지, 내가 거기서 신과 인생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를 성찰하기 위해서. 이는 좀체 주어지지 않는 매혹적인 기회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과거의 장소들을 걸어보고 떠난 사이 어떻게 변했나를 살펴보는 이런 기회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소중한 기회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부끄럽게도 젊은 시절 내가 얼마나 미숙했으며, 시간을 허비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으며, 마침내 나만 보던 사람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성숙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하는 점이었다. (329~330)
임종훈련은 내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항상 결심한 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결심을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야망이 시들해지고, 겉보기에 나보다 성공한 것 같은 타인에 대한 시샘도 마찬가지로 시들해진다. (348)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을 유혹의 사다리에 비유했다. 순서대로 한발 한발 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인데 단계마다의 유혹을 깨부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349)
침대에 누워 있는 생일 아침 삶을 돌아보며 어찌 후회가 없겠는가. 없었더라면 혹은 달랐더라면 싶은 것들도 물론 있다. 20대를 온통 석유회사 중역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보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349)
침대에 누운 채로 나는 새삼 생각했다.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우리의 주제넘은 안간힘은 또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얼마나 소중한가. (358)
그리고 결국에는 볼테르의 철학소설 <캉디드 Candide>의 주인공 캉디드처럼,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리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 그렇다. 이제 나는 침대에 편안히 누웠다. 흡족한 마음으로. (358~359)
젊은이들을 위한 자신의 뼈아픈 반성과 충고
이 정도 위치가 되면 좀 뻐길 만도 한데, 그는 털어놓기 쉽지 않은 자신의 젊은날의 실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드러내기 쉽지 않은 내용을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사람.
이기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궂은일에 손을 담그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와 함께 뭔가를 도모하지 않고 그저 그들에 대한 글만 썼다는 것이 아쉽다. (350)
고상한 활동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다소 허접한 일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이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174)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싶기도 하다. 귀중했던 젊은 날에 별로 한 일이 없다. (중략) 반면 따분한 나날들이다 보니 많은 독서를 했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 글을 쓸 무렵에는 과거에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한 것보다 독서를 했던 것이 훨씬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350)
우리는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유전자가 어느 정도는 우리를 규정한다. (351)
내 안의 ‘꼬마 철학자’를 깨우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에게서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꼬마 철학자 기질을 깨워내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다.
지난 9월 수업을 전후로 해서 철학 공부를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사부님께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 추천도 받았지만 사놓고 아직 제대로 독파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찰스 핸디는 나에게 철학을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깊어가는 가을, 나 철학과 한번 사랑에 빠져 보아야겠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면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한테 맞춰 돌아가게 할 수 있는데도,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헤매거나 익숙한 예전 방법과 습관을 따르고 만다.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확실한 기준이 없으면 그 많은 시리얼 중에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인생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기준이 없으면 선택가능성은 스트레스만 더할 뿐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이 도움을 줄 수 믿고 바랐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역할이 될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의 선택이 긴박해지고 있었으므로, 먼저 스스로에게 원칙을 적용하면서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226~227)
오랫동안 서구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종교가 힘을 잃고 상대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결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중략) 말하자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282)
내가 그리는 철학교과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저서를 요약해서 외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대학에서 경험한 철학수업에 가깝다. 철학 지도교수는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던지고 에세이를 쓰도록 시켰다. 그렇다고 꼭 에세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제에 대한 집단 토론이 그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된다. (282)
철학적인 질문들이 대개 그렇듯이 옳은 답은 없다. 문제를 탐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하려는 도전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본인의 주관이 없다면 남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려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매사에 줏대 없니 자유방임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283)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등등. 철학에서 중요한 해답은 스스로 풀어낸 해답뿐이다. (284)
우리의 가치관에 미치는 가정의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뿐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임무도 가정의 몫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84)
참 멋진 아내를 둔 찰스 핸디
정말 멋진 노부부의 모습이다!
나와 남편에게 훌륭한 부부의 역할모델이 되어준다. 사진을 찍는 남편과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나와의 결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결혼에 관한 책을 쓸 때 이들 부부의 오랜 세월 살아온 예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좋은 가르침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끔찍이 싫어했던 학교 생활과 좋은 성적만을 내 자식에게는 강요하지 않으리, 그리고 친구 같은 부모 되기.
그의 책을 보다 보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아내 엘리자베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끼리와 벼룩>에서 유명한 두 장면.
‘이제 회사 생활을 청산할 때예요.’
‘그럼 뭘 하지.”
‘당신은 글쓰기를 좋아하잖아요. 당신 첫 책도 반응이 괜찮았어요. 작가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책을 써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
‘왜 부자가 되려고 하죠. 우리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요.’
‘그건 너무 리스크가 많아.’
‘어차피 인생은 리스크예요. 난 피곤에 찌든 직장인과 함께 사는 게 지겨워졌어요.’
“여보,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랑스러워요?”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물었다.
“좋아, 그런대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요, 특별한 사람들이에요?”
“좋아, 그런대로.”
“그럼 당신 회사 셸은 좋은 일을 하는 좋은 회사인가요?”
“응, 좋아. 그런대로.”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좋아, 그런대로’의 태도를 가진 사람과 한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나 이런 아내를 둔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나 스스로 이런 아내가 되어야겠다.
내 능력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믿음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믿음이 어찌나 강한지 때로는 겁이 나고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94)
결혼생활은 부부가 각자 별도의 공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부부로 결속되어 있을 때 가장 잘 돌아간다. 나와 아내는 밀접하게 지내면서도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299)
항상 함께하는 생활을 모든 부부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생활을 사랑한다. (294)
우리는 늘 함께하지만 지나치게 가깝지는 않다. (300)
그들의 공동작업
공저로 두 권의 책도 펴냈다고 한다. 언젠가 이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엘리자베스와 나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현대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 (중략) 이들 ‘연금술사’들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생 초반에 존경하는 인물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입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이들은 과감히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해 ‘연금술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95)
엘리자베스와 내가 함께 만든 <다시 시작하는 삶 Reinvented Lives>이라는 책이 있다. 스물여덟 명의 여성이 자신들의 60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354)
오! 나의 스승님!
나 수년 동안 헤매다가 길을 찾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의 고견이 놀랍다.
아참, 그 역시 조직행동(Organizational Behavior, 내가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management, 인사조직의 세부분야) 학자로 분류되지.
그의 이 책은 논문 백 편을 찾아 읽은 것보다 더 많은 통찰을 준다.
물론 그가 실천적이고 독특한 경영사상가이기에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누가 나에게 이 사람을 소개만 시켜 주었어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수많은 글을 보았지만 그처럼 명확하게, 또 철학적으로 기반이 탄탄하게 쉽게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관련된 부분은 모조리 외우고 싶은 마음이었고, 따로 표시를 해 놓고 싶어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나답지 않게) 책 모퉁이를 접어두기까지 했다.
박애는 시간과 돈을 유익하게 쓴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세련된 방식이었다. (102)
미국인들은 박애를 단순한 자선을 보지 않고,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영국인들은 개인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에 충분한 기여를 한 셈이며, 사회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정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가 사업이 이기적인 직업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부추겼다. (103)
철학과 윤리를 논하는 집단토의 시간의 첫 작품으로 <안티고네>가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127)
당시 기업에서는 수단이 원칙적으로 합법이기만 하면 –혹은 불법이라도 들키지만 않으면—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상이 대두하기 전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부정을 비롯한 각종 추문도 발생하기 전이었다. (128)
모든 도덕적 결정을 정부에 위임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부가 원치도 않고, 그럴 자격도 없는 책임감을 억지로 지우는 격이다. (130)
하지만 학생들이 원치 않아도 나는 윤리를 공부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결국은 포기했으니 나는 겁쟁이에 스스로를 배신한 사람은 아닐까? (139)
돈과 이윤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돈과 이윤만이 유일한—혹은 주요한—목적이 되면 외부에 이기적으로 비칠 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기업의 책무,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는다. (163)
완전한 영리 목적의 사업을 벌이려면 자선단체에도 어느 정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 (164)
워렌 버핏은 수수하게 생활하고 돈도 거의 쓰지 않는다. 그의 부는 자신의 사업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일 뿐이다. “돈은 일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겁니다. 저는 돈을 애써 찾아다니지도 않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221)
기부도 돈을 쓰는 방법이다. 실제로 점점 많은 부자들이 그렇게 한다. (221)
이들 박애주의자들은 이제 돈을 버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미 필요 이상으로 가졌으므로 잉여분을 뭔가 유용하게 쓰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돈이 많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부자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덕분에 얻은 잉여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21)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23)
이렇게 보면 필요한 것보다 혹은 원하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의무라고 볼 수도 있다. 묘한 세상이다. (223)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삶이 훨씬 간소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액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면—그리고 규정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진정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자유롭게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대신에 자발적으로 고용주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우선순위에 복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223)
사회철학자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농부가 아닌— 기업의 소유권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소유권은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소유자의 야망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소유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소유자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집단의 이익을 존중하고 지키려면, 그럴듯한 말과 선한 의지로는 불충분하다. 앞서 법률을 제정해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을 제한한 것처럼 관련 법률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말은 무성하지만 효과적인 강제수단이 없다. 상황이 안 좋으면 선의는 사라지게 마련이므로 기업의 자발적인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234)
이는 못 믿을 개인의 도덕성이나 막대한 비자금을 관리하는 일부 불량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기업문화 전체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한 세대 동안 미국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문화다. 시장이 왕이라고 주장했던 문화, 어떤 경우에도 주주가 우선이라고, 기업 활동이 사회발전의 핵심 동력이므로 어떤 정치적 판단에서도 기업계의 요구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문화. (236~237)
이런 미국의 문화가 대처 정부 시절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기업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분명 공격적인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켰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의 쇠퇴와 건강, 교육, 교통 등 영리활동과 무관한 영역에 대한 관심과 자금 지원을 감소시키는 결과는 낳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무관심의 여파가 뒤늦게 들어온 영국 정부를 유령처럼 괴롭히고 있다. (237)
이런 주장을 공연한 말장난이나 궤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도덕에 관련된 문제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게 되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일찍이 이를 가장 큰 죄악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심층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에 쏟아지는 비난은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그런 측면에서 부도덕하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기업들이 자신들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38~239)
2005년 여름, 영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법인이 탄생했는데, 그것은 기업에 대한 시각변화를 반영하는 바람직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공동체이익기업 community interest company, 약어로 CIC다. 사회적 편익을 창출하는 기업, 즉 사회적 기업에 검증절차를 거쳐 ‘공동체이익기업’이라는 인증을 준 다음, 공공자산—학교, 양로원, 수영장 등—의 소유나 활용을 원활하게 해주되, 동시에 ‘공동체이익기업’ 내의 자산과 이윤이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만 쓰일 수 있게 보장하는 제도다. 공동체 이익기업은 유한책임회사 형태를 띠고 있으며 외부 투자자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할 수 있고, 투자자들의 주식매매를 가능하게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국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에 하나다. (240)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빅이슈나 그리니치 레저 등을 들 수 있다. (241)
사회적 기업들은 이윤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윤보다 목적에 강조점을 둔다. 전통적인 기업들도 언젠가 이런 시각으로 상황을 보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41)
이런 변화를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소유주(주주)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리라고 본다. 하지만 미래에는 주주에게 법적 책임을 강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241)
고객과 직원을 회사의 최우선순위로 놓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지혜로운 기업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존슨 앤 존슨은 이런 회사 가치선언에서 항상 모범이 되고 있다. (242)
회사란 주인(주주)의 이윤증대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는 오래된 생각은 기업이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발상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243)
요즘 상황을 보고 판단하건대 자본주의는 자체 추진력으로 이기심을 택한 모양이다. 이기심은 자칫하면 탐욕으로 변질될 수 있는 그런 속성이다. (323)
사람들은 대부분 이타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뭔가를 얻고 싶은 만큼 세상에 공헌하고 싶어 한다. (324)
기업이 수단을 목적으로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부의 지원 하게 사회가 기업의 목적을 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재정의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세금만 내고 나머지는 정부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기업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의 주장은 내 가치관의 반영이다. 나는 조직보다는 개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직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일 뿐이니까. 나는 조직들이 개인—사실상 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조직의 목표달성이 한결 수월해지리라 믿는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조직은 사회를 위한 봉사자라고 본다. 기업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물건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조직에 의존한다. 원칙적으로 조직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는 일치해야 한다. 조직이 목표를 단순한 생존 이상의 가치로 정의하면 가장 번창할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개인과 조직은 결국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최악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결코 만족하는 법도 없고, 좀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남겨줄 유산도 없을 테니까.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정의 또한 난해한 문제다. 선택의 폭이 좁았을 때가 오히려 쉬웠다. 지금 우리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선택을 위한 좋은 기준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기업 중역들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325~326)
진정한 구루, 연관성 찾아봐 놀이
책 내용 중에 그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경영대학 관리자과정에 도입한 얘기가 나온다. <안티고네>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정답! 칼리 피오리나!
지난달 살펴본 칼리 피오리나의 책에서 그녀가 MIT로 돌아가 관리자들을 위한 집중수업을 받을 때 <안티고네>를 접했던 이야기를 읽었다. 대학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그녀는 이 책을 꼽았다. 그 후로도 매년 그녀는 이 책에 나온 내용처럼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검토한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좀 희한하지 않은가? 칼리 피오리나가 그 책을 접한 MIT 슬론 스쿨은 찰스 핸디가 영국에도 경영대학을 만들어 보겠다며 ‘벤치마킹’하러 1년 동안 가서 머물렀던 바로 그 곳이다. 찰스 핸디라는 사람이 영국의 윤리적 기준, 사상 등을 미국에 전해준 것은 아닐지? 그곳에서 경영이 무엇인지 배웠던 찰스 핸디에 의해 MIT 슬론 스쿨로 ‘역수출’된 예를 보는 것 같아 혼자 재미있었다.
그리하여 첫째 주 집단토의 자료로 문학작품인 <안티고네>를 택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일종의 ‘명저’ 체험으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식 사고’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보았다. (126)
철학과 윤리를 논하는 집단토의 시간의 첫 작품으로 <안티고네>가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127)
책을 내려고 하는 나,
더 나아가 연구원 선후배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예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훌륭하게 번역해준 제임스 오툴이 들려준 존 제롬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 (중략) 그의 책은 생전에 대중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중략) 제롬은 한때 책이 대중적인 인기도 못 얻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꽤나 괴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필의 목적이 집필활동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중략) 양자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자 집필 주제를 그야말로 순수한 주제로 마음껏 바꿨습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었죠.” (356)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을 주는 유머를 구사
책을 읽는 도중에 슬며시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었는데, 그만큼 그는 따뜻한 유머를 구사한다.
진정으로 원치 않는 뭔가를 제안하지 마라. 그리고 칭찬이나 확인을 에둘러 유도하지 마라. 얻는 것이 없으리니. (203)
신선한 책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내심 영국에 있는 누구도 그 책을 몰랐으면 하고 바랐다. 그 책에 나온 일부 표현을 강의에서 ‘도용’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304)
임종훈련은 내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항상 결심한 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결심을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야망이 시들해지고, 겉보기에 나보다 성공한 것 같은 타인에 대한 시샘도 마찬가지로 시들해진다. (348)
사부님의 역할모델
우리의 사부님,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이 찰스 핸디를 역할모델로 삼고 계신다.
“찰스 핸디는 오랫동안 내 역할 모델이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의 표현에 따르면 '뚱뚱하고 키가 작고 대머리'인 그의 외모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내 모델이 되기에 족하다. 관심사항과 경력도 나와 비슷하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학자와 작가와 강연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나의 경력과 90퍼센트 일치한다. 내 길을 걸어오면서 그와 같은 사람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삶은 이 유사한 경로와 깊이 때문에 내게 더욱 커다란 이례적인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나 나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가장 잘하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그 일을 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은 이 책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매우 즐거울 것이다.” -변화경영연구소장, 구본형
그리고 2008년 4월 4일 구본형 칼럼에서 이 사람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해 주신다.
참고
http://www.bhgoo.com/zbxe/36992
“찰스 핸디와 윌리엄 브리지스, 이 두 사람은 내가 10년 전에 자유로운 1인 기업가로 탄생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먼저 이 길로 들어 선 선배들이었고 이 길 속에서 때로 웃고 때로 울면서 이 길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올해 이 두 사람의 한국어 번역 신간을 거의 동시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 우연한 조우가 신기하다.”
“사실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에 반한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삶에 깊이 공감하기 시작했었다. 10년 전 나는 이 두 사람의 불완전한 등불의 힘을 빌려 내 길을 더듬어 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10년이 지난 올해 공교롭게도 다시 이 두 사람의 책과 마주치게 되었다. 인연치고는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이 두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은 더 행복해 졌을까? 그들이 말 한대로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삶의 전환에 성공하여 전문적 프리랜서로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사는데 성공 했을까? “
“두 책 모두 내게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삶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치 백신을 주사하듯 주사한다. 그리고 그 효과를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실험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운명이 자신의 삶을 끌고 갈 때 그 속에 삶을 던져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한 사람들이고 좀 모자라는 인간들이고, 아닌 듯 하지만 끈질기고 짚불처럼 은근하지만 못 말리는 골통들이다. 불꽃이 감추어진 불같은 사람들이다.”
비판
이전 저서에서 설명되었던 그의 삶의 궤적이 중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삶이 실천적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 늘상 새로운 에피소드만은 찾을 수 없을 터. 이런 부분은 조금 너그럽게 이해해주어야 할 것도 같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아내이자 동업자인 엘리자베스는 항상 나보다도 굳게 내 작품을 믿어준 사람이다. 엘리자베스의 믿음이 나한테는 엄청난 힘의 근원이었다. 아내한테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인생 전체에 대한 아내의 도움에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가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9)
그들이 없었다면 내 삶이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으리라. (9)
1. 정말입니까?
지금의 찰스 핸디는 60대에 들어서야 분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13)
조하리의 창 (Johari window)
조와 해리는 모두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A영역을 늘릴수록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4)
회사를 비롯한 여러 조직에서 일하던 시절 나의 생활도 떠올렸다. 나도 소속 조직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복장은 물론 몸가짐까지 바꾸곤 했다. (중략) 이렇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16)
사적인 영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행동을 업무 영역에서 태연히 자행하고 어떻게 이를 정당화하는가, 거기서 야기되는 혼란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는 윤리학 분야에서 풀리지 않는 난문 중에 하나다. (19)
그때 이후 나는 친구 밑에서 또는 친구와 함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친구와 한 집에 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20)
우리의 최선은 조하리의 창에서 A부분을 가능한 많이 개방하고 미지의 영역인 C를 탐험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어찌 보면 거짓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던 탓이다. (21)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이런 성향을 좀 더 그럴듯하게 범주화한다. 말콤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메이븐Maven, 커넥터Connector, 세일즈맨Salesman 성향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있다. 아주 단순화하여 말하면 메이븐은 머리가 좋고 지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 커넥터는 사교적이어서 사람들과 교류가 활발한 사람, 세일즈맨은 설득에 능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세 가지 성향이 혼재되어 있지만 보통은 어느 한 성향이 다른 성향보다 강하다는 것이 말콤의 주장이다. (22~23)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됨됨이지 외모는 아니에요.” (22)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말콤 글래드웰의 표현을 빌자면—메이븐 기질이 강해서 아이디어와 지식에 관심이 많았으나 실제로는 커넥터의 삶을 갈망하고 세일즈맨을 꿈꾸며 못내 아쉬워했던 것 같다. (25)
아내는 훌륭한 커넥터와 세일즈우먼의 기질을 타고난 데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중략) 그런 사람과 결혼한 것은 내게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중략) 배우자의 재능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스스로의 재능을 개발하지 않고 도태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경우 배우자가 떠나면 무력감을 느끼고 당황하게 된다. (25)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는 서른아홉 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방법을 알아보았다. (중략) 조사결과, 아이바라 교수는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주장했다.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26~27)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7)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다리의 마지막 계단은 자신보다 큰 무엇을 향한 기여의 단계, 불멸을 위한 노력의 단계이다. (28)
우리네 인간이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 거대한 세상에서 의미를 가지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쩌면 교만일 것이다. (29)
지금 쓰고 있는 이 책 자체가 나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다. (29)
2. 아일랜드에서의 시작
우선 주소에는 내가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남부 아일랜드에 사는 개신교도였다는 사실이 나와 있다. (31)
17세기 영국에서 건너와 소수인데도 다수의 가톨릭에 대해 법적 우위를 차지했던 이들은 보통 ‘지배세력Ascendancy’이라고 불렸는데, 토착 아일랜드 사람들이 좋아할 그런 신분은 아니었다. (32)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자란 유년시절 나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나 아일랜드의 길고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대로 내가 왠지 모르게 다르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32)
점점 쇠락해가는 소수집단의 구성원이다 보면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마련인 모양이다. (중략) 당시 대부분의 영국계 아일랜드 사람에게 교회는 종교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친목회였으며, 아마 지금까지도 그럴 것이다. (33)
당시에는 우리 부모님뿐 아니라 많은 영국계 아일랜드 부모들이 자녀를 영국에서 교육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결정은 토착 아일랜드인과의 분리를 더욱 강화하고 영속화하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그렇게 영국에서 교육받은 많은 아이들이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았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37)
나는 우리가 백인이고 가톨릭교도들이 흑인이라고 느꼈다는 사실만 빼놓고는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38)
우리는 강한 유대로 똘똘 뭉친 우리만의 세계, 영국계 아일랜드 사람들의 소규모 공동체에 살았고, 우리와 그들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구별하여 말하면서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39)
내 과거를 돌아보며 사람의 유년기 환경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믿으며 성장하고, 이를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운가도 깨닫기 시작했다. (중략) 뒤늦게야 나는 고정관념을 넘어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했다. (39)
나는 도대체 뭔가? 영국인인가, 아일랜드인인가? (42)
하지만 아일랜드 여권을 가지고 있어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나는 영국인이다. (43)
필요한 온갖 것들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한 가지 일을 ‘충분히’ ‘잘’해야 한다. (46)
3. 그리스인의 지혜
내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철학을 배우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49)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이후 내 삶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를 깨달았다. (50)
열두살 때 친구가 그리스어를 함께 배우자고 한 것이 계기였다. (중략) 당시에는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나는 금세 눈에 띄는 특이한 존재가 되었고 ‘고전학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며 마침내 옥스퍼드에서 두 언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50)
역사적 사실들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물, 정황, 사건 사이의 얽히고 설킨 연결 관계를 드러내려 애쓰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커졌다. 예부터 역사가들은 삶이란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사고방식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에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 내가 혼자서 터득한 이런 사고방식이 알고 보니 ‘시스템 사고’라는 것이었다. (51)
철학 지도교수가 다음 주 에세이 주제로 제시한 과제를 붙잡고 항상 고생을 했고 번번이 기가 꺾이는 경험을 해야 했다. (51)
진리에 대한 에세이는 많은 것의 시작이었다. 나는 서서히 그리스 철학자들이 우리가 사는 현시대의 많은 문제들을 이미 예견했고, 심지어 일부에 대해서는 도움까지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3)
기업 근무를 직업으로 택한 나는 옥스퍼드 동기들 중에서도 별종이었다. (5)
훗날 나는 ‘왜?’라는 질문을 서너 번 계속하면 결국 상대방의 동기—상대방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동기까지 포함하여—를 밝혀낼 수 있다던 말을 떠올렸다. (55)
런던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 아내와 나는 아침식사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한다. 우리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때 우리는 조언을 하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가능한 많이 던진다. 조언을 하는 것보다 그런 방법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다. 물론 소크라테스한테서 배운 방법이다. (56)
전공 덕분에 나는 언어와 논쟁을 좋아하게 되었다. (57)
내가 토론이나 논쟁에서 반대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데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기술한 저서들을 많이 읽은 탓도 크다. (58)
그리스어 원문으로 읽자면 플라톤의 철학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비하면 그건 약과였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많은 부분에서 플라톤과는 견해를 달리했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려웠던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워낙 박식한 데다 그의 작품이 과학에서 윤리, 예술, 정치까지 인간 활동의 워낙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59)
그렇다면 돈이 유용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는 ‘보다 값진 것’이란 무엇인가?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내 사고에 오래도록 누구보다 강한 영향을 미쳤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좋은 삶이란 바로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에 다름 아니었다. 이 복잡한 그리스어는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한테는 다른 의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었다. (60)
제자 알렉산더가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무시했듯이 나도 옥스퍼드에 다니던 젊은이 시절에는 그리했다. 아마도 인생에는 활력, 모험, 야망을 위한 시기가 있고, 성찰과 지혜를 위한 시기가 훗날 따로 있는 모양이다. (61)
교육은 사회화 수단, 즉, 젊은이들이 연장자들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처럼 되어라 그러면 괜찮을 것이다.’ 이것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교육기관이 우리에게 보내는 암묵적인 메시지다. (62)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지금도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과거 방법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62)
나처럼 거기서 공부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와 철학의 세세한 내용을 잊어버려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옥스퍼드 인문학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표현하고, 자신의 추론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니까. (64)
교육으로 인한 실질적인 효과는 그 순간이 아니라 훨씬 뒤에 드러난다. (중략) 재학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옥스퍼드는 나름대로 내가 삶을 준비하도록 해주었다. 이 책은 어찌 보면 내가 옥스퍼드에서 배운 것으로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라 볼 수도 있다. (65)
4. 보르네오에서 얻은 교훈
내가 도대체 어떤 세상에 온 것인가, 과연 어떻게 여기서 버텨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시키면 무조건 한다.”는 무식한 군인정신만이 유일한 해답인 것 같았다. (70)
이런 판단이 서자 쿠칭에 있는 휘하 직원들에게 실수를 죄다 털어놓고, 다른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달라고 부탁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했다. (75)
내가 권위를 편안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회사에서 출세하고 싶다면, 그런 점을 고쳐야 할 걸세.” (76)
문득, 학위란 계속해서 배우라는 일종의 증서, 즉 배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79)
그때 나는 또 하나의 귀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라는 것이다. (80)
그때 이후로 나는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일이 굴러가게 하는 핵심인물이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데 신경을 쓴다. (81)
“있잖아, 사람만 제대로 고르면 된다는 걸 깨달았어.” (81)
5. 황금의 씨앗
요즘만 해도 사직서 제출이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직원들 중에 셸을 떠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91)
“경영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중략)
“재무, 마케팅, 경제학 등을 가르칠 겁니다. 말하자면 경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지요.”
(중략)
“좋습니다. 그렇다면 논리학을 가르치면 되겠네요.” (92)
내 능력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믿음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믿음이 어찌나 강한지 때로는 겁이 나고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94)
런던경영대학원의 짐 볼 학장님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모하다 싶은 상황이었지만 내 잠재력을 믿고 나를 정교수로 임명해주셨다. (중략) 누군가 자신의 잠재력을 그렇게 믿어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믿음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94)
엘리자베스와 나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현대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 (중략) 이들 ‘연금술사’들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생 초반에 존경하는 인물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입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이들은 과감히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해 ‘연금술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95)
감사를 받든 못 받든, 행동이나 말을 통해 황금의 씨앗을 심는 일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는 그런 씨앗이 부족하다. (96)
황금의 씨앗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것이어야 하며, 때로는 익명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96)
1966년 우리 부부는 6주 된 딸애와 함께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당시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미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97)
미국이 마음에 들었다. 딱한 처지의 부부를 도와주고가 법망을 우회할 창조적 해법을 제시하는 남자가 있는 땅이었다. (99)
무엇보다 나의 출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영국에서는 어떤 자리에서 내가 말을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집안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100)
그들은 자신들이 만나서 알고 느낀 대로 나를 대했다. 마침내 과거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아마 많은 이민자들이 그런 해방감을 맛볼 것이다. (101)
박애는 시간과 돈을 유익하게 쓴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세련된 방식이었다. (102)
미국인들은 박애를 단순한 자선을 보지 않고,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영국인들은 개인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에 충분한 기여를 한 셈이며, 사회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정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가 사업이 이기적인 직업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부추겼다. (103)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충분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창의력 활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나는 해마다 미국에 가서 특유의 활력과 낙관주의를 보충하곤 했다. 미국에서 보낸 1년은 삶에 대한 내 태도를 바꿔놓았다. (104)
6. 경영을 가르치는 학교
그나마 읽어볼 만한 책인 <기업의 인간적 측면>은 1960년에 출간되었다. (107)
당시 관리자들이 말하듯이 경영과 관리는 ‘인생대학’을 통해 실전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08)
경영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두 곳의 예외 영역이 있었다. 바로 군대와 회계사였다. 군대는 관리를 진지하게 취급했다. (108)
당시에 기업 관리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과정은 회계사 자격증을 얻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109)
나는 그저 대학에 사업과 조직의 특징, 운영에 관한 모든 비결을 가르치는 분야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잔뜩 흥분했을 뿐이었다. (110)
무엇보다 경영학이 학문으로 존재한다면 아마도 학문적인 법칙과 규칙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심히 실망하게 되었다. 사람과 조직의 행동방식을 설명하느라 온갖 가설들을 끝도 없이 읽었지만 명확하게 검증된 것은 없었다. (중략) 기업을 비롯한 조직 운영이 응용과학보다는 실용적인 기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략) 상황이 매번 달랐다. 인물, 동기, 자원, 제약 등이 똑같은 상황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런 깨달음은 뜻밖에도 심적인 안도로 이어졌다. 이는 개인의 독창성, 상상력, 특성 등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였다. (112)
나는 경영대학원에 다니는 시간을 즐겼다. 다시 공부를 한다는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하면서 나와 가족들 말고는 누구한테도 책임을 느끼지 않고 보내는, 순전히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114~115)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바로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수업과정이 끝나갈 무렵부터 나는 그동안 공부한 것들의 중요한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115)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실은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115)
자신감은 내 교육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교육의 목적이란 결국 사람들에게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116)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음에 들었고 미국적인 삶의 방식에 매료되었다. (117)
평균나이가 대략 서른다섯이었던 ‘젊은’ 우리는 영국의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느꼈다. 미국 체험에서 알짜배기만을 골라 이를 영국에 맞게 변형시켜 적용했다. (117)
회계 교과과정 자체는 경영을 배우는 데 부적합할 수도 있다. (118)
이는 특정 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 전문단과대학 교육과정의 핵심인, 교실과 직장의 결합과도 같은 것이다. (118)
결국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은 대부분 은행과 컨설팅 회사라는 한정된 영역으로만 진출했고, 이를 제외한 영국 비즈니스 업계 대부분에는 우리 노력의 결과가 미치지 못했다. (119)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해럴드 리빗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생각해내기도 힘들 것 같은 참으로 요상한 경영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천해왔다. 피교육자들을 한쪽으로 치우친 두뇌,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 움츠린 영혼을 가진 괴상한 생물체로 일그러뜨리는 그런 교육을.” (120)
나는 옥스퍼드에서 배운 철학적 사유를 경영대학원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방안을 찾고 싶었다. (123)
7. 안티고네의 도전
기원전 5세기에 소포클레스가 쓴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였다. (124~125)
나는 그들이 사유하는 기업인이 되기를 바랐다. (중략)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일상생활에서나 직장에서나 스스로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고, 고용주의 지시대로 따르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싶었다. 내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 지원해주면, 이들은 소위 ‘철학자 겸 관리자’가 될 터였다. 옥스퍼드에서의 경험은 내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첫째 주 집단토의 자료로 문학작품인 <안티고네>를 택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일종의 ‘명저’ 체험으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식 사고’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보았다. (126)
철학과 윤리를 논하는 집단토의 시간의 첫 작품으로 <안티고네>가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127)
당시 기업에서는 수단이 원칙적으로 합법이기만 하면 –혹은 불법이라도 들키지만 않으면—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상이 대두하기 전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부정을 비롯한 각종 추문도 발생하기 전이었다. (128)
모든 도덕적 결정을 정부에 위임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부가 원치도 않고, 그럴 자격도 없는 책임감을 억지로 지우는 격이다. (130)
하지만 생각뿐, 현실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불행에 그렇게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133)
외부의 압력이 거세질 때 우리는 과연 얼마나 굳세게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도 (134)
세상은 용감하게 진실을 밝히는 사람을 존경과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아무도 그들을 고용하려하지는 않는다. (134)
그레이엄 박사는 언론사에 찾아가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자신의 도덕적일 의무라고 판단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가톨릭 신앙이 큰 역할을 했다. (135)
하지만 학생들이 원치 않아도 나는 윤리를 공부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결국은 포기했으니 나는 겁쟁이에 스스로를 배신한 사람은 아닐까? (139)
관리자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첫 시간에 <안티고네>를 교재로 택할 때만 해도, <안티고네>가 내 삶에 이렇게 철저하게 침투하여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40)
경험, 그중에서도 특히 실수한 경험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된다. 경험을 곱씹어보는 일은 유년시절부터 계속되는 가장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141)
8.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는 은둔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144)
아버지는 도대체 야망이라곤 없는 사람 같았다. (144)
내 삶과 일이 누구한테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아버지가 깊이 영향을 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바쁜 일상과 소위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146)
나는 바쁜 일상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가치관과 야망을 결정하는 대신, 남의 가치관과 야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147)
하지만 삶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별 볼일 없는 삶이 될 것이 뻔해도 그냥 익숙한 생활에 머무는 편이 훨씬 편하다. 삶을 바꾸려면 새로운 사다리의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147)
하지만 A지점임을 짐작케 하는 실마리들은 있다. 편안함도 그 중에 하나다. (중략) 그러므로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업에서든. (151)
나의 경우,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내 삶을 바꾸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53)
윈저성에 있는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 자리가 현재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154)
“응석받이로 자란 부자들이 더 큰 부자가 되게 도와주는 일일 뿐이에요. 당신은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다고요.” (155)
20년 전 내가 살던 아일랜드 사제관을 떠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맹세했다.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가난하게 살지 않으리라고. (중략) 과거는 때로 불편하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155~156)
훗날 이는 최선의 결정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선택을 통해 나는 다른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156)
9. 윈저성을 집 삼아
나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학장이 되어 1977년 9월 윈저성에 도착했다. (중략)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종의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직무가 주는 인상은 맘에 들었다. (157)
돈과 이윤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돈과 이윤만이 유일한—혹은 주요한—목적이 되면 외부에 이기적으로 비칠 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기업의 책무,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는다. (163)
완전한 영리 목적의 사업을 벌이려면 자선단체에도 어느 정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 (164)
진정 옳다고 믿는 일을 도모하고자 자리를 교활하게 배치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리더십일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166)
비영리자선단체는 법에 의해 명확하게 규정된 ‘사회적 목적’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영리조직은 그렇지 않다. 영리조직은 법적으로 조직의 소유주에 대한 의무, 기타 투자자에 대한 의무만 갖는다. 그것으로 족한 것인가, 아니면 기업을 비롯한 영리조직도 명확한 사회적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양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물론 여기에는 영국과 미국이 둘 다 포함되었다—의 감독 하에 진행된 독일의 재건 과정에서는 영리조직의 사회적 책무가 필수사항으로 규정되었다. (167)
토양이 맞으면 우리가 뿌린 씨앗은 정말로 발아하기도 한다. (169)
나는 학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직업의 미래’를 논하는 장기적인 협의회를 조직하는 개인적인 책임을 맡았다. (169)
내가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비유를 생각해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점점 많은 노동자가 반강제로 소속 조직이 없는 독립 노동자로 내몰리거나, 자의로 그 길을 택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이었다. (170)
현재 직원 없이 사주만 있는 기업—1인 기업—이 영국에 거의 3백만 개나 된다. (170)
나는 이런 현상을 ‘벼룩 경제’라고 부른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각종 소규모 기업과 자유로운 개인, 즉 프리랜서들로 이루어진 경제다. (중략) 소규모 기업, 독립된 개인들이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사회다. (171)
프리랜서는 대체로 급여나 임금 대신 수수료를 받지만, 양자의 차이는 중요하다. 수수료를 한 일에 대해서 지급되는 돈이고, 급여나 임금은 시간당으로 지급되는 돈이다 수수료는 일한 사람이 계산하여 청구하는 돈이고, 급여는 고용주가 계산하여 지급하는 돈이다. (173)
‘공부’도 일종의 일이다. 점점 많은 성숙한 학생들이 공부가 사실은 진지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어 다행이다. (173)
훌륭한 일 포트폴리오에는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유형의 일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73)
고상한 활동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다소 허접한 일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이는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174)
내가 보기에는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일과 생활이 별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174)
런던 근교에 있는 집에서 집필 작업을 할 때, 나는 실제 집필—대가를 받는 일—을 하는 시간과 자료를 읽고 연구하는 일—공부하는 일—, 적당한 집안일—쇼핑, 요리, 저녁식사 등—을 적절히 섞는 계획을 세운다. 모두 일종의 일이지만 다른 유형의 일들을 섞어 놓으면 일하기기 즐거워진다. 또한 휴식과 기분전환 시간도 꼼꼼하게 챙긴다. 식사 후의 낮잠, 가벼운 테니스, 산책 등.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포트폴리오 노동자다. (중략)
나는 생각을 거듭할수록 독립적인 포트폴리오 생활의 가능성에 점점 매료되었다. 주말을 뺀 나머지 5일을 전일제로 일하며 죄수처럼 갇혀 지내는 나한테 포트폴리오 생활은 자유와 같은 의미였다. (174~175)
10. 성 미카엘과 성 조지
죽음은 삶이 우리보다 오래 남을 뭔가를 창조할 짧은 기회임을 상기시키는 유일한 데드라인이다. 우리는 데드라인이 있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181)
진실인즉슨 나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문화적 기독교인’, 즉 기독교 문화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183)
기독교 신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글자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85)
이야기는 내가 쓰는 용어로 말하면 ‘낮은 수준으로 정의된’ 개념을 전달한다. (187)
성서 자체는 위대한 인간 지혜의 산물로 열심히 공부하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187~188)
나의 경우,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모든 시련을 견디고 일어나 다시 산다면, 너도 그럴 수 있다.”고. (188)
“용기를 갖고 지금 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그리스도 상은 나에게 말한다. (189)
나는 신을 선한 본능, 양심, 이타적 유전자 등으로 간주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영성을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정의하려 했는데, (중략)
“나는 영성이라는 개념을 강렬한 융화의 경험과 같은 것으로 본다. 유기체가 가장 완벽하게 제 기능을 다하는 느낌. 이런 경험은 타인에게 다정하고 관대하게 행동하고 싶은 욕망과 함께 명확히 드러난다.” (191)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신은 생활이다.” 우리는 바로 생활 속에서 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192)
그날 아침 사람들이 일터로 가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자는 것이 기본 목표였다. (193)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운다는 논리에 따라 나는 ‘오늘의 사색’을 진행하는 20년 동안 신앙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194)
‘선량한 신이 왜 인간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게 하는가?’라는 어려운 주제를 고민해보라는 신호일까? (중략)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었다. (중략)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수 있다. (194)
기도, 예배, 명상… 뭐라고 부르든 이들은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손을 떼고 이면의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는 방법이다. (196)
아내와 나는 아침식사 전에 40분 동안 집 맞은편 들판을 산책한다. 하루 계획을 미리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걷는다, 편안한 침묵 상태로. (196)
나의 신앙은 내가 직접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삶의 목적과 도리, 미래에 대한 나의 판단에 의지한다. (197)
이런 태도는 자칫 잘못하면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현시대의 크나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던 ‘세속적 상대주의 secular relativism’, 즉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혼합하는 선택적 기독교 신앙 pick-and-mix Christianity을 유발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인이 자기 기준대로 기독교 신앙 중에 마음에 드는 것, 옳다고 믿고 싶은 것, 그르다고 믿고 싶은 것 등을 선택하는 것이다. (197)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신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윤리적 지침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도 신앙을 받아들이면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가 한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지식인들이 죽음을 앞두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197)
그동안 포기했던 ‘스스로 생각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점점 세속화되는 세상에서 교회의 새로운 역할은 철학을 가르치는 기관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행동하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199)
상대주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절박한 위험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을 강화하거나 비세속적인 절대적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교육을 통해 대처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그런 교육을 통해서.
이것은 철학의 임무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어느 날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철학 말이다. (200)
나는 기독교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기독교가 전하는 메시지는 시대와 공간에 맞게, 요즘 하는 일에 맞게 해석되고 번역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중략) 4년간의 윈저성 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주임사제가 사제서품을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201)
11. 포트폴리오 인생
진정으로 원치 않는 뭔가를 제안하지 마라. 그리고 칭찬이나 확인을 에둘러 유도하지 마라. 얻는 것이 없으리니. (203)
“프리랜서, 그러니까 독립 생활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전일제 직장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으로 삶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사는 사람 말입니다. 물론 집필을 중심에 두면서 말입니다.” (205)
포트폴리오 생활자가 되는 것이 이론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더구나 첫 시도일 때는. (206)
근본적으로 내 인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시, 외부에서 나한테 기대하는 바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외부에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중략)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없고, 답신해줘야 하는 전화도 없고, 지켜야 할 약속도, 목표도, 평가도 없었다. 다이어리는 텅 비어 있었다. 너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당해보니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206)
명확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다. 이 새로운 찰스 핸디는 누구인가? (중략)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206)
마침내 모든 조직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지자 나를 그냥 찰스 핸디라고 소개했다. (207)
하지만 처음에는 묘하게도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교수라는 직함에 집착했다. (207)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말조심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208)
이제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은 무소속의 찰스 핸디로서 내 처신에 따라 해를 입을 수 있는 대상도, 내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도 오직 나뿐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믿는 바를 말하고 글로 쓰고, 원하는 사람이 되고, 좋아하는 곳에 가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일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제 나는 경영전문가가 아닌 사회철학자로 나를 생각했다. (208)
언젠가 출판업자에게 기존 저서를 사장시키지 않고 계속 파는 최선의 방법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저자한테 새 책을 쓰게 하는 겁니다.” 그의 대답이었다.
작가로서 경력을 쌓는 작업에 돌입하면 긴장을 풀고 느슨해질 새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9)
책은 일종의 판촉보조물이었다. 나라는 사람과 나의 아이디어를 홍보할 가장 점잖은 방법이었다. 무소속의 독립 생활자들은 누구나 자기 선전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자신 또는 내가 만든 제품을 선전하고 판매해야 하는 현실을 싫어했다. 암만 해도 점잖지 못한 행동 같았다. (210)
요즘 나는 포트폴리오 노동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일감이 안정적으로 들어올 때까지 7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211)
내 저작권 대리인은 포장하고 광고하기를 싫어했지만, 내 곁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포트폴리오 인생을 시작하고 3년이 흐른 뒤에 아내 엘리자베스는 내 생활을 보고 절망했다. (212)
문제는 과거에 내가 만찬이나 연수에서 무료로 많은 강연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업무의 연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프리랜서가 되면 이런 일에도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212)
그럼에도 포트폴리오 인생을 시작한 초기 7년은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머릿속에 몇 가지 근심이 있었다. 가장 절박했던 것은 거주할 집이었고, 수입 관리, 물리적인 생활공간의 관리, 특히 10대인 아이들의 교육 등등. 하지만 어떤 것도 ‘무엇에 초점을 두고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13)
서서히 사업적인 성공보다 자신만의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자유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면 삶의 목적과 우선순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는 물리적인 생활공간을 정리하고 시간을 배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로 생활에서 ‘철학’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또는 언제 그것을 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213)
그전까지는 동료가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함께 토론할 사람이 없을 때는 프로젝트도 그렇게 신나지가 않는다. 함께 축하해줄 사람이 없으면 성공도 공허하게 느껴지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으면 실패도 몇 배는 힘들게 느껴진다. (214)
내가 하는 집필과 강연은 다른 사람과 연합하기에는 너무 특이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공간을 함께 쓰는 방법을 택한다. 일은 따로 해도 함께 커피를 마시며 세금징수원이나 회계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시간은 가질 수 있도록. 나는 우리 집 말고 다른 어떤 곳에서 일을 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중략)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생각만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좋은 문장과 단어를 고민하면서 글을 다루는 예술가가 되는 일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보다 훨씬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컴퓨터와의 씨름에 다름 아니었다. (214)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 즉 재정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직장에 고용되어 있을 때 내가 사실상 나의 모든 시간을 조직에 팔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진하여 노예가 된 셈이었지만 후한 보수를 받는 노예이긴 했다. (215)
이렇게 현금이 부족한 생활에 시달렸던 결과, 나는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217)
초창기 돈에 대한 욕심을 생각하면 내가 해가 갈수록 급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의외다. 석유회사에서 학계로, 이어서 사실상 공식적인 빈곤선보다도 낮은 급료를 받는 교회로, 그리고 마침내는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위치까지. (218)
아버지는 사람은 보수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218)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의 생활이 한결 편해진다는 점에서는 경제성장이 분명 좋은 것이지만,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성장이 이루어지면 온갖 불필요한 물건이 넘쳐나는 부작용이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의 쇼핑몰을 보면 그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19)
워렌 버핏은 수수하게 생활하고 돈도 거의 쓰지 않는다. 그의 부는 자신의 사업적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일 뿐이다. “돈은 일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겁니다. 저는 돈을 애써 찾아다니지도 않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221)
기부도 돈을 쓰는 방법이다. 실제로 점점 많은 부자들이 그렇게 한다. (221)
이들 박애주의자들은 이제 돈을 버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미 필요 이상으로 가졌으므로 잉여분을 뭔가 유용하게 쓰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돈이 많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부자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덕분에 얻은 잉여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21)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23)
이렇게 보면 필요한 것보다 혹은 원하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의무라고 볼 수도 있다. 묘한 세상이다. (223)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삶이 훨씬 간소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액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면—그리고 규정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진정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자유롭게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대신에 자발적으로 고용주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우선순위에 복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223)
전면적인 증여경제 gift economy는 일주일 이상 지속되기 힘들겠지만,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정신에 기초한 증여경제는 지속성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정직해질 것이다. (225)
매년 엘리자베스와 필요한 돈과 예상소득을 차분히 계산해본다. (226)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을 때 내가 직면한 진정 절박한 질문은 ‘작가로서 무엇을 쓸 것인가’ 였다. (226)
현재 나는 스스로를 사회철학자라 규정한다. 사회철학자란 새로운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당면한 문제들이 점점 많은 사람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리라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226)
끊임없이 질문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면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한테 맞춰 돌아가게 할 수 있는데도,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헤매거나 익숙한 예전 방법과 습관을 따르고 만다.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확실한 기준이 없으면 그 많은 시리얼 중에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인생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기준이 없으면 선택가능성은 스트레스만 더할 뿐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이 도움을 줄 수 믿고 바랐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역할이 될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의 선택이 긴박해지고 있었으므로, 먼저 스스로에게 원칙을 적용하면서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226~227)
12. 부동산과 소유권
엘리자베스는 달랐다. 부모님을 따라 세계 각지를 떠돌며 살았던 탓에 오히려 자기 집을 갖고 싶어 했다. (230)
1만 달러—거기에 약간의 수리비용이 들어가긴 했다—가 10년 뒤에 거의 100배로 뻥튀기가 되었다. (231)
나는 19세기 무정부주의자였던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재산이란 도둑질한 물건이다.”라는 선언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232)
엘리자베스는 나처럼 소유에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소유는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뭔가를 소유하면, 거기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고 더욱 발전시킬 유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233)
사회철학자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농부가 아닌— 기업의 소유권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소유권은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소유자의 야망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소유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소유자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집단의 이익을 존중하고 지키려면, 그럴듯한 말과 선한 의지로는 불충분하다. 앞서 법률을 제정해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을 제한한 것처럼 관련 법률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말은 무성하지만 효과적인 강제수단이 없다. 상황이 안 좋으면 선의는 사라지게 마련이므로 기업의 자발적인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234)
이는 못 믿을 개인의 도덕성이나 막대한 비자금을 관리하는 일부 불량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기업문화 전체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한 세대 동안 미국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문화다. 시장이 왕이라고 주장했던 문화, 어떤 경우에도 주주가 우선이라고, 기업 활동이 사회발전의 핵심 동력이므로 어떤 정치적 판단에서도 기업계의 요구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문화. (236~237)
이런 미국의 문화가 대처 정부 시절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기업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분명 공격적인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켰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의 쇠퇴와 건강, 교육, 교통 등 영리활동과 무관한 영역에 대한 관심과 자금 지원을 감소시키는 결과는 낳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무관심의 여파가 뒤늦게 들어온 영국 정부를 유령처럼 괴롭히고 있다. (237)
바꿔 말하면 비즈니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더욱 큰일 또는 더욱 훌륭한 ‘뭔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이유, 즉 목적은 바로 ‘뭔가’에 있다. 주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238)
이런 주장을 공연한 말장난이나 궤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도덕에 관련된 문제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게 되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일찍이 이를 가장 큰 죄악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심층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에 쏟아지는 비난은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그런 측면에서 부도덕하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기업들이 자신들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38~239)
전직 영국석유회사 회장인 존 브라운은 2004년 회사의 엄청난 이윤을 정당화하면서 상호성mutuality이 훌륭한 기업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상호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기업과 관련된 모든 주체가 기업이윤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고객, 직원, 세금을 걷는 정부, 환경, 그리고 물론 주주까지. 건전한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이윤이라면,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상호성은 새로 대두된 개념이 아니라 조직에서 이미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239)
존 브라운이 특정 대기업의 특성을 표현하는 데 ‘상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흥미롭고 유용한 의미 확장이라고 본다.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240)
2005년 여름, 영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법인이 탄생했는데, 그것은 기업에 대한 시각변화를 반영하는 바람직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공동체이익기업 community interest company, 약어로 CIC다. 사회적 편익을 창출하는 기업, 즉 사회적 기업에 검증절차를 거쳐 ‘공동체이익기업’이라는 인증을 준 다음, 공공자산—학교, 양로원, 수영장 등—의 소유나 활용을 원활하게 해주되, 동시에 ‘공동체이익기업’ 내의 자산과 이윤이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만 쓰일 수 있게 보장하는 제도다. 공동체 이익기업은 유한책임회사 형태를 띠고 있으며 외부 투자자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할 수 있고, 투자자들의 주식매매를 가능하게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국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에 하나다. (240)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빅이슈나 그리니치 레저 등을 들 수 있다. (241)
사회적 기업들은 이윤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윤보다 목적에 강조점을 둔다. 전통적인 기업들도 언젠가 이런 시각으로 상황을 보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41)
이런 변화를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소유주(주주)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리라고 본다. 하지만 미래에는 주주에게 법적 책임을 강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241)
고객과 직원을 회사의 최우선순위로 놓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지혜로운 기업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존슨 앤 존슨은 이런 회사 가치선언에서 항상 모범이 되고 있다. (242)
회사란 주인(주주)의 이윤증대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는 오래된 생각은 기업이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발상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243)
깊이 생각할수록 과연 소유권이라는 단어가 현대 기업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강해진다. 회사는 공동체다. 글자그대로 동료들의 집단 말이다. (243)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중략) 우리가 토지나 회사 등을 소유하지 않고, 사회와 사회 구성원, 그리고 미래 세대를 대신해 빌려 쓴다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이기적이고, 마냥 단기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신중하게 남을 배려할 것이다. (243~244)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필요한 체제다.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사회의 성장엔진이라고 인정했다. (244)
첫 단계는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야만 체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때쯤에는 기업이 미래의 수탁자로 간주될 것이다. 그런 훌륭한 사례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244)
13. 주방과 서재
윈저성에 돌아와서 우리는 차고를 주방으로 개조했다. 부부가 둘 다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본채에 두 개의 서재 겸 작업실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46)
하지만 원칙은 중요하다. 우리는 공간을 우리의 필요에 맞춰 사용하려 했다. 공간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246)
우리 주방은 집에서 가장 잘 꾸며지고 햇볕도 잘 드는 방이다. 요리하고 식사하는 공간은 물론 정찬과 휴식을 위한 공간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단순한 주방이 아니라 거실이고, 우리 가족 공동체의 중심 공간이었다. (247~248)
우리 집 전면에 위치한 두 개의 멋진 방은 이제 우리 부부의 개인 서재로 변모했다. 집을 찾는 방문자들은 물론 가족들한테도 출입이 금지된 사적인 공간이다. 부부가 모두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공동공간인 주방 못지않게 각자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업공간이니만큼 그곳은 다른 공간보다 좋아야 했다. (249)
고전적인 의미의 가족 공간인 거실, 응접실, 식당 등은 현대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집에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249)
집에서처럼 우리는 과거 세대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252)
개인 공간을 잃어 속상해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한다. 아내와 나는 둘 다 개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 (255)
우리는 둘 다 어느 정도 고립이 필요한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각자의 작업공간이 꼭 필요하다. 반면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공동공간이 효과적이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의할 때 대안을 끌어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256)
일부 기업은 창조적 사고, 독서, 글쓰기 등을 위한 공간을 따로 할당한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방, 쾌적하게 꾸며져 있지만 고립된 방,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방이다. (256)
우리 부부는 상황에 따른 공간 활용이라는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킨 형태로 실행했다. 창조적 작업에 필요한 고립을 맛보기에는 런던이 너무 번잡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56)
가까울수록 급한 문제, 기회, 초대 등에 응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커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258)
어떤 이들은 창조적인 작업을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 틈바구니에 우겨 넣고 훌륭하게 해내기도 한다. 아이들이 떠드는 거실 또는 일터로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교외에 고립되어 지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우리한테는 멀리 떨어진 공간이 효과적인 자기통제 방법이었다. (258)
젊음을 부러워하고 질투해봐야 부질없고 어리석을 뿐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는 편이 훨씬 현명한 처사이리라. (259)
공간과 시간이 별개가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259)
우리 부부는 150일을 순전하게 창조적인 작업, 구체적으로는 집필과 사진 촬영, 거기에 수반되는 독서와 조사들을 겸하는 작업에 할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로 해외 강연회로 이루어진 기업경영 관련 업무에 100일을 할당했다. 그리고 일종의 십일조처럼 30일을 자원봉사활동에 할당했다. 그래도 1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쉬고 이따금 뜻밖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85일이 남아 있다. 휴일의 전체적인 숫자는 지키지만 어느 요일에 쉬느냐는 우리 마음이다. 우리는 보통 금요일을 휴일로 정해 이런저런 여가활동을 즐기고, 전화가 없어 조용한 일요일에는 대부분 일을 한다. 이런 날짜 배분을 지키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 가령 강연회 등 일하는 날을 늘리고 싶은 유혹은 항상 있다. 날짜를 늘리면 곧 돈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집필과 사진 촬영에 투자하지 않으면 일도 곧 없어지리라는 걸 잘 안다. 이는 우리 삶의 R&D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261)
우리한테는 일에 맞춰 시간과 공간을 조정하지 않고,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욕구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 대부분이 누리지 못했던 기회다. 그러므로 조직이든 개인이든 과거 패턴에 얽매여 지낼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 시간과 공간 활용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스스로 통제하는 좀 더 주체적인 삶에 한층 다가갈 수 있다. (262)
14. 어린이 사육장
“당신들 영국인은 이상합니다. 개는 집에 두면서 자식은 사육장에 맡겨서 키우다니 말입니다.”
언젠가 독일인 친구가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사육장이란 기숙제로 운영되는 중고등학교를 가리킨다. (263)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딸과 아들, 둘 다 십대의 한때를 이런 기숙제 학교에서 보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했을까? 우리가 그렇게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 친구들처럼 우리도 이들 기관이 제일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한테 명문학교를 졸업했다는 특권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264)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한테 비슷한 경험을 강요하기 전에, 내 개인적인 경험을 깊이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264)
나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항상 ‘비상근’ 구성원이었던 셈이다. (중략) 내가 필요로 할 때 부모님은 옆에 계시지 않았다. (264)
게다가 나는 학교 교육을 싫어했다. 나는 늘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맞기도 했다. 사생활이 존중되지 않는 것도 싫었다. (264)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무척 외로웠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어머니한테 말하자 어머니는 경악하셨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잖니.”
“그야 안 했죠. 그래야 될 것 같아서요.” (265)
부모님은 나에게 학교란 인생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게 인생이라면 앞으로 영 재미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친김에 살펴보자면 학교는 인생을 그렇게 많이 준비시켜주지도 않았다. (중략)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리라. 중요한 것들은 모두 훗날 인생학교를 다시 배워야 했다. (265~266)
당연히 명확하게 설명되거나 글로 기록되는 일은 좀체 없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암묵적 메시지를 접하고 배우게 된다. (중략)
권력이란 무엇이며, 권력을 잡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배우게 되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또한 인간관계의 즐거움과 더불어 인간관계로 인한 위험, 누구를 믿고 누구를 멀리 할 것인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무엇이 성공으로 간주되는가 등도 모두 학교에서 배우는 암묵적인 가르침이다. (중략) 문제는 이런 암묵적인 메시지가 그릇된 생각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66)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을 잊지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아하!’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268)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받은 사람이란 박식한 개인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지식은 많으면 그만인 것이고 실행과는 무관한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는 이해하는 법만 배웠을 뿐, 실행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개인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269)
영국학교협회의 요청대로 학교라는 조직으로 들여다보니 학생들은 공장의 생산물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조직 차원에서 처리중인 원료로 취급되었다. 수업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작업장을 거치면서 이들은 검사를 받고 시험을 보고 등급을 부여받은 다음 외부로 발송되었다. 이런 처리과정은 통상 5년에서 7년 정도 걸렸으며, 애초 원료가 좋으면 마지막에 좋은 등급을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272)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배운다는 사고방식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중략)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학교의 목적 자체가 인간 본성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충분히 원하면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믿음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이 우리의 흥미나 학습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학교 공부를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라는 식이다. (273)
“사회에서는 참으로 많은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대부분이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274)
조사결과는 하나같이 학교의 종류나 수준보다 가정환경이 성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적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간의 유대가 돈독할수록 아이들이 성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긴밀한 가족관계가 미치는 영향은 성적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276)
부모의 태도와 기대가 연금술사를 만드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린아이에게 맞는 책임감을 부여하고, 실험을 통해 본인의 호기심을 시험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실수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변화가 흥미롭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이런 것들이 모두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던 초기 씨앗들이었다. 이런 것들을 장려하지 않고 억누르면 어린아이의 창조적 본능까지 질식시킬 위험이 있다. (276)
우리 아이들이 둘 다 부모를 따라 독립 생활자의 길을 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 아래서 일하는 건 싫어요.”
딸아이의 말이다. 우리 부부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을 보며 자란 두 아이는 이제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우리처럼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278)
가족은 직업과 관심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가치관이 아이한테서 엿보일 때, 때로는 정신이 번쩍 나기도 하고, 때로는 흐뭇하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늘 돈보다는 일에 대한 흥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계를 해결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은 돈보다 일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같은 태도를 보이자 기쁘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정말 그만하면 충분하다 싶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279)
항상 말보다는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279)
참으로 많은 부모가 아이의 성장과 교육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탁아소로 놀이방으로 학교로 아이들을 떠나보낸다. (280)
가족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모든 가족이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81)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도 공동체 연장자도 권위를 상실했고, 모든 규범이 혼란에 빠져 있다. 쉽게들 잊어버리지만 우리 사회에 종교적 전통은 생각보다 뿌리깊고 그만큼 미치는 영향도 컸다. (281)
오랫동안 서구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종교가 힘을 잃고 상대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결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중략) 말하자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282)
내가 그리는 철학교과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저서를 요약해서 외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대학에서 경험한 철학수업에 가깝다. 철학 지도교수는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던지고 에세이를 쓰도록 시켰다. 그렇다고 꼭 에세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제에 대한 집단 토론이 그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된다. (282)
철학적인 질문들이 대개 그렇듯이 옳은 답은 없다. 문제를 탐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하려는 도전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본인의 주관이 없다면 남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려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매사에 줏대 없니 자유방임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283)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등등. 철학에서 중요한 해답은 스스로 풀어낸 해답뿐이다. (284)
우리의 가치관에 미치는 가정의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뿐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임무도 가정의 몫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84)
15. 소중한 가족
“명심해라. 너는 평생 사랑할 배우자하고만 결혼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가족 전체와 결혼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처신해야 한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285)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낯선 타국에 가서 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방식과 관습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일원이 될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288)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가족 안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다. 영원히 머물러도 좋다는 영주권을 얻은 이방인. (289)
우리는 누구나 벗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상대를 알았다 싶을 때까지는 자신을 보호하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누군가 나한테 보여주는 최고의 경의는 나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소개시켜주는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290)
가족이라고 항상 편안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항상 특별한 존재가 가족이다. 우리가 힘들 때 함께해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가족이다. (291)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나도 이따금 아들을 붙잡고 아들이 원치고 않는 충고를 늘어놓는다. 장기적인 이성관계를 고려할 때 열정이나 육체적인 매력에 휘둘리지 말고 언젠가는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그런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는 식이다. (292)
지금 아내는 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대리인 역할을 하고, 약속을 정하고, 업무차 가는 모든 여행에 동행한다. 나는 아내의 사진과 책에 글을 써주고 최선을 다해 아내의 사진촬영을 돕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항상 함께하고 일심동체로 지난다. (294)
항상 함께하는 생활을 모든 부부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생활을 사랑한다. (294)
우리는 그런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감을 발견했다. 열정보다는 상호 신뢰에 의해 유지되는 그런 친밀감이었다. (294)
간호사가 갓 태어난 딸을 들어 올리자, “저 녀석 때문에 앞으로 20년 동안은 꼼짝없이 일을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집을 사는 것도 구속이긴 했다. 그래도 집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딸은 불가능했다. 자식이라는 굴레로부터는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바꿀 수도 팔 수도 없으니까.
정확히 30분 뒤에 나는 모든 것을 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맛보며 사람들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중략) 당시의 느낌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타주의와도 달랐다.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이랄까? (295)
당황스럽게도 아이가 생기면 자연히 부모답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295)
아이들이 참여할 세상은 내가 그 나이쯤에 알았던 세상과는 영 딴판이라는 사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과거의 나보다 훨씬 확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297)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힘든 교육기간을 잘 견디고 살아남는다. (중략) 그리고 서서히 엄청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진정한 자녀교육은 집에서, 부모가 바삐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 다음, 나중에 반대로 할까, 모방할까를 결심한다. (298~299)
결혼생활은 부부가 각자 별도의 공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부부로 결속되어 있을 때 가장 잘 돌아간다. 나와 아내는 밀접하게 지내면서도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299)
우리는 늘 함께하지만 지나치게 가깝지는 않다. (300)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단순히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동무 같고 심지어 스승 같기도 하다. (중략) 아이들이 친구처럼 느껴질 즈음이면 우리 가족이 괜찮구나 생각해도 좋다. (301)
하지만 가족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가끔 가꾸고 다져주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는 것이 가족이다. 과거 많은 이들이 가족의 쇠퇴를 예언했지만 틀렸음이 밝혀졌다. 형태가 변할 수는 있지만 가족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소중하며, 그만큼 자양분이 필요하다. 가족을 가꾸는 자양분의 핵심은 대화다. (중략) 우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가 가족임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301)
가족은 그야말로 나한테 일어난 최고의 행운이다. (302)
16. 경영 구루가 되어
신선한 책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내심 영국에 있는 누구도 그 책을 몰랐으면 하고 바랐다. 그 책에 나온 일부 표현을 강의에서 ‘도용’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304)
피터스와 워터맨의 공로는 경영이론을 대학 교실에서 대중적인 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304)
톰은 진정한 대중강연자로 탈바꿈한 최초의 경영학자였다. (305)
피터 드러커가 피터스보다 활동한 기간도 길고, 책도 많이 냈으며 아마도 가장 박식했겠지만, 피터 드러커는 자신을 즐겨 작가라고 표현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피터 드러커는 연단에서는 그리 유능하거나 돋보이는 편이 아니었다. (305)
피터 드러커는 기자들이 ‘허풍쟁이 charlatan’란 단어가 표제로 쓰기에는 너무 길어서 구루란 단어를 생각해낸 것이라고 비꼬아 말한 적이 있다. (305~306)
엘리자베스는 공적으로 사용될 나의 사진을 누구에게도 찍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308)
나는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쓰는 법을 옥스퍼드에서 배웠다. 교수님 앞에서 소리 내어 에세이를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309)
살면서 항상 그랬듯이 나는 늦게 발동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동년배들이 은퇴를 고려할 무렵 나는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구루업계에서는 나이는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구두발표 실력이다. 지식정보 사회의 대두에 따라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직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310)
이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재능에는 연령제한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으며, 장애자도 개의치 않는다. (311)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아이디어 중에 독창적인 것은 거의 없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내가 이를 표현하는 언어다. (중략) 조직에 대해 이미 알려진 연구결과를 언어로 정리하여, 학생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자는 것이 나의 취지였다. (311)
경영 분야에서 이런 과장된 언어 사용이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상투적인 문구 아니면 너무 난해해서 극소수 비법 전수자 이외에는 해독조차 불가능한 그런 언어다. (중략) 이런 허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중략) 모든 조직이 직원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떠들면서 동시에 직원을 뭉텅이로 해고한다. 모든 기업이 전략적인 발전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개 단순한 희망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기업이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매달리지만 조사결과를 보면 꿈을 이루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이런 말이 현실에서는 또 하나의 상투적 문구일 뿐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다. (312)
이런 사이비 전문용어는 모든 경영문제에 기술적 또는 전문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환상을 만들어낸다. (313)
말하자면 관리되는 대상이다. 경영학의 모든 표현에서 사람은 관리되는 사물이지 사람이 아니다. (313)
사실 ‘manage’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혼란스러운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313~314)
나는 대다수 사람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이를 일깨워주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맡은 일에 적용할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일이다. 런던경영대학원의 고 수만트라 고셜 교수는 언젠가 피터 드러커를 ‘상식의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315)
조직은 보통사람의 집합이므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통해 필요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319)
토끼풀, 도넛, 조정경기, 포트폴리오 등은 개념으로 된 아이디어를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도 표현하려는 나의 노력의 일부다. 이들은 말하자면 앞서도 언급한 ‘낮은 수준으로 정의된’ 개념들이다. (중략) 비유와 이미지들은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자극하려는 목적에서 쓰이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사람들을 대신해 세상을 해석해주는 것이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322)
요즘 상황을 보고 판단하건대 자본주의는 자체 추진력으로 이기심을 택한 모양이다. 이기심은 자칫하면 탐욕으로 변질될 수 있는 그런 속성이다. (323)
사람들은 대부분 이타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뭔가를 얻고 싶은 만큼 세상에 공헌하고 싶어 한다. (324)
기업이 수단을 목적으로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부의 지원 하게 사회가 기업의 목적을 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재정의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세금만 내고 나머지는 정부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기업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의 주장은 내 가치관의 반영이다. 나는 조직보다는 개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직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일 뿐이니까. 나는 조직들이 개인—사실상 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조직의 목표달성이 한결 수월해지리라 믿는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조직은 사회를 위한 봉사자라고 본다. 기업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물건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조직에 의존한다. 원칙적으로 조직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는 일치해야 한다. 조직이 목표를 단순한 생존 이상의 가치로 정의하면 가장 번창할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개인과 조직은 결국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최악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결코 만족하는 법도 없고, 좀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남겨줄 유산도 없을 테니까.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성공의 정의 또한 난해한 문제다. 선택의 폭이 좁았을 때가 오히려 쉬웠다. 지금 우리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선택을 위한 좋은 기준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기업 중역들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325~326)
17. 일을 겸한 여행
우리는 초정자가 인맥과 영향력은 있으나 돈이 없는 경우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똑 같은 계약을 맺었다. 주최 측에서 정치인이나 시민 지도자들과 함께하는 오찬이나 만찬을 마련해줄 때도 있었고, 현지의 기업, 학교,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등을 방문해 운영자를 만나보기도 했다. 덕분에 나의 강연이나 세미나가 현지 문제와 밀착될 수 있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배우고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는 재미난 방식이었다. (328)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사회학적인 시각을 가진 여행자라 할 수 있다. 나는 해당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생활하고 일하는 모습은 어떤지를 보고 싶어 하고 가능하면 직접 그들을 만나려 한다. (328)
삶의 의미에 대한 나의 종교적 탐구과정을 살펴본다는 취지하에 내 삶의 여정을 반추하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 옥스퍼드, 싱가포르, 미국, 윈저성, 토스카나 등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있던 당시에는 그곳이 어떠했는지, 내가 거기서 신과 인생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를 성찰하기 위해서. 이는 좀체 주어지지 않는 매혹적인 기회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과거의 장소들을 걸어보고 떠난 사이 어떻게 변했나를 살펴보는 이런 기회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소중한 기회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부끄럽게도 젊은 시절 내가 얼마나 미숙했으며, 시간을 허비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으며, 마침내 나만 보던 사람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성숙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하는 점이었다. (329~330)
나는 일간신문을 끼고 사는 일종의 뉴스중독자다. 이처럼 뉴스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눈에 보이는 지평선 너머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여행은 우리에게 세상에는 수많은 중심이 있으며, 각각이 거기 사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중요하며, 관심사는 우리와 별다를 바가 없지만 –그들도 생활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환경은 우리와 무척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331)
참 놀라운 일이다. 시장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한 힘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 도망치기도, 경쟁을 피하기도 힘들다. (332)
내가 조국 아일랜드처럼 인구수가 작은 나라들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다름 때문이다. (중략) 나는 그런 나라들을 벼룩경제라고 부른다. (333)
경제성장은 무자비하게 돌아가는 러닝머신 같은 것이다. 누구도 거기서 함부로 내릴 수 없다. (336)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은 잠시도 멈추는 법 없이 끊임없이 내달린다. 이런 곳에서는 현상유지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336)
특이한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과거 정권을 비난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과거 정권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선은 확고하게 미래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략)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면서도 죄책감을 없애도록 만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보며 나는 국가가 과거를 인정하고 청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진실에 정면으로 맞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과거가 앞으로 나가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법이니까. (중략) 이는 나라뿐 아니라 개인한테도 적용되는 것이며, 나라 차원에서도 까다로운 문제이듯 개인한테도 쉽지 않은 문제다. (340)
18. 일흔 살 생일
아리스토텔레스는 ‘임종시험’이라는 걸 해보라고 충고한다. 죽을 날이 되었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344)
나도 오십 대에 이런 연습을 해보았다. 당시 경험으로 남들한테 인상 깊은 이력서를 만들고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에는 시간낭비일 뿐임을 깨달았다. (345)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개인적인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345)
책 안의 사상이 가치가 있다면 그즈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뭔가가 될 수 있으리라. (346)
그럼 경력 따윈 잊자. 수십 년 동안 그렇게나 집착해온 것이지만. 책도 잊자. 땅 속에서 썩어갈 육신도 잊자. (346)
개인으로서 나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 즉 가족과 몇몇 절친한 친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이리라. 어떤 식으로든 불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타인의 마음과 가슴속에 있다. (346~347)
타인에게 어떻게 살라고 지시하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 주제넘은 행동이라 생각되지만, 나도 죽은 뒤에 열어보라고 아내와 두 아이에게 써놓은 편지가 있다. 편지에는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삶의 지침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함께 각각에게 내가 바라는 바가 상세히 적혀 있다. 매년 편지 내용을 보충하면서 새로 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과정은 가족들보다 나한테 더 많은 도움이 된다. 많은 것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347)
가족들은 내가 너무 죽음에 집착한다고 놀리곤 한다. (347)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예상하면서 남은 시간을 내가 상상하는 송덕문에 부합하게 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347)
임종훈련은 내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항상 결심한 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결심을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야망이 시들해지고, 겉보기에 나보다 성공한 것 같은 타인에 대한 시샘도 마찬가지로 시들해진다. (348)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을 유혹의 사다리에 비유했다. 순서대로 한발 한발 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인데 단계마다의 유혹을 깨부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349)
침대에 누워 있는 생일 아침 삶을 돌아보며 어찌 후회가 없겠는가. 없었더라면 혹은 달랐더라면 싶은 것들도 물론 있다. 20대를 온통 석유회사 중역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보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349)
오래전 말레이시아로 떠날 때 어머니의 작별인사가 기억난다.
“걱정마라, 얘야. 네 책에 좋은 소재가 될 거다.”
“책이요?”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전 석유회사 직원이 되려고 가는 거예요, 작가가 아니고요.”
때로 어머니들은 자식을 너무 잘 안다. 자식이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도. 그랬다. 돌아보면 어머니가 옳았다. 그러니 나는 그 시절을 후회하면 안 된다. (349)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싶기도 하다. 귀중했던 젊은 날에 별로 한 일이 없다. (중략) 반면 따분한 나날들이다 보니 많은 독서를 했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 글을 쓸 무렵에는 과거에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한 것보다 독서를 했던 것이 훨씬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350)
이기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궂은일에 손을 담그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와 함께 뭔가를 도모하지 않고 그저 그들에 대한 글만 썼다는 것이 아쉽다. (350)
나한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지 말라고 충고하던 주교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정확하고도 옳은 말씀이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하는 일을 하게. 자네는 사제들이 결코 만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위치를 활용해서 옳은 일을 하게. 자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351)
아리스토텔레스도 주교님의 말씀에 동의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351)
우리는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유전자가 어느 정도는 우리를 규정한다. (351)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352)
엘리자베스와 내가 함께 만든 <다시 시작하는 삶 Reinvented Lives>이라는 책이 있다. 스물여덟 명의 여성이 자신들의 60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354)
이들에게 과거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가벼운 어깻짓으로 흘려버린다. 한때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과거일 뿐이니까. 지금의 새로운 삶이 중요하니까. (355)
아리스토텔레스를 훌륭하게 번역해준 제임스 오툴이 들려준 존 제롬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 (중략) 그의 책은 생전에 대중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중략) 제롬은 한때 책이 대중적인 인기도 못 얻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꽤나 괴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필의 목적이 집필활동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중략) 양자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자 집필 주제를 그야말로 순수한 주제로 마음껏 바꿨습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었죠.” (356)
나는 이미 오래전에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분을 받아들여 “어쨌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한 바 있다. (357)
침대에 누운 채로 나는 새삼 생각했다.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우리의 주제넘은 안간힘은 또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얼마나 소중한가. (358)
프로이드 이후 위대한 심리학자로 꼽히는 에리히 프롬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존재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그리고 유일한 해답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358)
그리고 결국에는 볼테르의 철학소설 <캉디드 Candide>의 주인공 캉디드처럼,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리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 그렇다. 이제 나는 침대에 편안히 누웠다. 흡족한 마음으로. (358~359)

요새 언니가 이것저것 많이 바빠서 말이야...^^
찰스 핸디의 책에서 많은 것을 흡수한 것 같아 보기 좋은데.
30페이지 인용문이라면 정말 통찰의 비라도 맞은 것 같다는 표현이 맞겠다 ㅎㅎ
그러면서 우리에겐 찰스 핸디의 사상을 몸소 일상 생활에서 실현해 보여주시는
사부님께서 스승님으로 계시니, 우린 참 행운아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 이 길 오래도록 함께 가면서 배우고 익히고, 또 나를 성장시키며 살자.
언니는 요즘 그런 삶이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다 같이 성장하는 삶.
바빠서 긴 이야기 나누지는 못하지만, 늘 네 글은 유심히 읽고 있어.
예비 엄마로서도, 동료 연구원으로서도 홧팅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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