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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8일 18시 09분 등록

 

북리뷰 29  삶의 기술 - 안셀름 그륀 지음. 이은화번역. 분도출판사. 2006
                    원제: Buch der Lebenskunst . Anselm Grun. 2003.

*** 저자에 대하여

안셀름 그륀( Anselm  Grun, Grun 의 u위에 점 두 개, 움라우트 표시가 있어야 한다.)은 1945년 1월 14일 뢴의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났다. 1964년 뷔르츠불그에서 김나지움을 마치고 바로 성 베네딕트 수도회의 뮌스터 슈바르작으로 들어갔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에 있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현대적 이해에 끼친 칼 라너의 공헌>이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3년동안 뉘른베르크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1970년부터 각종 영성 강좌와 심리학 강좌를 두루 섭렵하면서 C.G.Jung의 분석심리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75년부터는 수도승 전통의 원류를 심도있게 구명하며 이를 융의 심리학과 비교하는 작업에 몰두했는데, 무엇보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요하네스 카시아누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1976년 이래로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영성 강좌와 강연뿐 아니라 저술에도 힘을 쏟아 지금까지 단숨에 다 셀 수 없는 분량의 책을 썼다. 1991년부터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영적 지도신부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에 한국 베네딕트 수도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왜관과 부산 서울에서 영성강의를 했고 그 전에도 해마다 한국을 다녀갈 만큼 그의 영성강좌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250여권을 저술하였고 그 책은  28개국어로 번역되었으며 1400만부가 팔려나갔다.


***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행복 _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는 것
여유 _ 그날그날을 마음껏 즐겨라
일     _  그 의미와 균형에 대하여
관계 _ 너에게 머무르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
친구 _ 네 마음의 공명
사랑 _ 마음으로 보라
변신 _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라
동경 _ 동경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삶     _  살기로 결정하라

서문

9.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파울 첼란(1920-1970, 독일의 시인)의 말이다. 이것은 실질적 기술이다. 양극을 유지한 채 균형을 이루는 기술이다. 영적인 가치와 실생활을 동시에 아우르는 기술이다. 그리고 필요없는 짐을 버리는 것이다. 뿌리를 땅에 단단히 박고 하늘로 향하는 것이다.

10. 그륀 신부는 이를 통틀어 “땅이 된 영성” 이라 부른다.

행복과 불행의 뿌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12.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은 타인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외부의 억압에 의해 스스로를 결정 짓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나”가 아닌 내 안의 심오한 중심과 일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자신과의 조화를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조화를 다시 밖으로 발산할 수 있게 된다. 우정과 사랑 안에서 깊은 관계를 추구하고 그것을 선물로 여겨야 한다. 어떤 사랑이든 그 사랑의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13.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고 싶다면 “평온”의 공간이 필요하다. 영혼이 숨 쉬도록 해야 한다. 실패했다고 해서 절망으로 자신을 짓누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거워 질수록 가벼워진다.”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다. 버리기와 채우기, 하늘과 땅, 시간과 영원,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방법은 양쪽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과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기술이 어려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삶의 기술은 결국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즐거움이 아닐까?

“춤을 배워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천사들이 너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좋은 것은 가볍다. 모든 신적인 것은 부드러운 발로 걷는다.” - 니체

가벼움과 즐거움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 안에 머물기- 이것이야 말로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일 것이다.

행복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는 것

21. “행복의 핵심은, 네가 지금의 너 자신이기를 원하는 것이다.”-데시데리우스 에라스므스

지금 앉아서 숨을 들이 마시고 내 쉬면서 삶을 느끼고 오직 하나뿐인 나를 느낀다. 또 삶과 행복의 맛을 즐긴다. 그 어떤 것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는다.

23. “네가 추구하는 것과 동경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바로 네 안에 있다.”-앤소니 드 멜로

우리가 동경하는 성공, 사랑, 타인의 인정, 평화, 고향 등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 인생의 심오한 비밀이 내 안에 살고 있다면 나의 고향은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26. “암자에 머무르며 너 자신과 노동에 집중하여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큼 너의 성장에 이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31. “삶에는 파괴적인 것이 세 가지가 있다. 화, 탐욕, 그리고 자만이 그것이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자는 자신의 주위만을 겉돌게 되며 결국은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자만은 언젠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것이다.

36. “너 자신을 만나라.”

이것은 내적 자아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환상에서 해방된다. 그리하여 명료하고 얽매이지 않은 시선으로 전혀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다. 감정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고 관찰하여 감정 안에 숨어있는 긍정적인 힘이 내면의 삶을 위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감정, 즉 열정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에 너그러워질 수 있을 때에만 삶은 ‘흐를 수’ 있다.

38.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근원이 되도록 하여라.

40. 우리는 누구나 그늘진 부분을 가지고 있다. 어떤 “용”이 너를 들판으로 내몰려고 하고 있는가? 어떤 부정적인 힘이 너를 먹어치우겠다고 위협하고 있는가?

네 안에는 힘이 있다. 자신을 방어한다는 것이 싸움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네 안에 서 있는 것, 네 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다치지 않으려면 공격성이 필요하다. 너의 내면에 힘이 있으면 그 누구도 너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43. 실망은 삶의 한 요소다. 가족이 나를 실망시키고, 직업이 나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 자신과 남들에 대한 망상을 심어 주었다.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런 아픈 인식을 애써 피한다. 그렇다. 내가 나 자신을 꼭 만족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45. 삶의 기본 원칙은 이렇다.

다른 사람이 너의 인생을 결정하게 하지 마라. 너의 길을 가라. 너 자신이 되어라. 하느님이 네게 주신 때 묻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라. 네 안에 그 모습을 간직하라.”

46. 불안에도 의미가 있으며 유익한 무엇이 있다.

완벽주의가 불안을 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완벽주의의 배경에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심각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많은 일을 성취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한 번의 칭찬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일을 하지만 내적인 만족을 얻지는 못한다.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또 자존심이 있다. 불안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겸손해 질 수 있다. 나의 한계나 약점, 실수들과 화해하고 “웃음거리가 되어도 좋다.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47. 그리고 실존에 대한 불안들도 있다. 고독, 상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럴수록 더욱 더 불안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것이다.”

불안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것과 화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깊은 만족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51.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있다.” -융

융은 깨어남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발전 시켰다. 그에 의하면 깨어남이란 안을 보는 것, 영혼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꿈을 주시하는 자, 꿈속에서 자기 영혼의 본질을 주시하는 자는 내면을 향한다. 그는 마음의 울림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53. 자신의 그늘을 알아보고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너의 과잉 반응을 직시한다면, 너는 스스로의 그늘을 인식하게 되고 너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네 안의 억압된 것의 역할을 잘 관찰해 보아라. 네가 누구에 대하여 그리고 어떤 실수에 대하여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난하기를 좋아하는지.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도 않는다.”- 헤르만 헤세

우선 그늘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때 비로소 그늘은 너를 도와 편협함으로부터 너를 해방시켜 준다. 네가 품는 그늘은 너에게 봉사하고 너의 삶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54. “너에게 잘하라”는 말은 곧, “나 자신과 함께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안의 상처입은 아이에게 다가가 내면의 상처를 상냥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진심어린 연민과 애정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의 약점에 화내지 않고, 약점을 사랑으로 대하고, 약점과 같이 느낀다는 것을 뜻한다. 약점의 초라함은 오직 따뜻한 시선에 의해서만 변하게 된다.

자신에게 잘한다는 것은, 내 안의 불행하고 고독한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내 안의 보잘 것 없음과 사이좋게 지내는 기술을 배운다면, 바로 이 보잘 것 없음은 축복의 근원, 아니 보다 깊은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 자신에게 자비로워라.

여유

그날그날을 마음껏 즐겨라

59. “너희에게는 시계가 있지만 ,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리스 인들은 크노로스와 카이로스를 구분한다.

‘크노로스’는 측량할 수 있는 시간, 즉 세월이다. 크노로스의 신은 폭군이다.

‘카이로스’는 좋은 순간, 환영받는 때를 말한다. 크노로스가 양적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특별한 질을 가리킨다. 내가 나에게 몰입하는 순간, 완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이다.

내가 완전한 ‘순간’에 존재하게 되면 그때 시간은 멈춘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바로 멈추어야 할 가장 적절한 때, 또는 일해야 할 때, 생명을 번성해야 할 때,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늘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코헬 3, 1-4)

62. “모든 사람이 시간을 죽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우리의 시간을 들여다 본다. 죽음은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에 대한 본질적인 경계선이다. 우리는 죽음을 대면하느니 차라리 시간을 죽인다.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성공 재산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는 단지 빈손을 뻗어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길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산다면, 우리는 사물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죽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현세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생이란 결국 선물이라는 사실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우리의 업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생명의 시간은 죽음을 인지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죽음이 억압당하면 시간은 죽게 된다.

72. “밤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낮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이태리 격언

옛 수도승들은 밤을 신성하게 생각했다. 밤은 하느님이 나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 하시는 침묵의 공간이다. 하느님은 꿈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는 내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보여 주신다.

73. 낮과 밤의 리듬을 뒤섞는 사람의 영혼은 혼란스럽다. 그는 안정을 잃고, 삶의 리듬에 들어가는 길을 잃어 버린다.

74.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누리는 대신, 오직 앞날을 준비하기만 한다. 삶은 매순간 계속되고 있는데 말이다. 순간에 충실한 사람은 “지금, 이미”살고 있는 것이다.

76. “절망에 빠지는 이유는 대개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81. 아주 일상적인 일들은 건강한 생활문화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균형을 위한 건강한 전례가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아침에 나는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위하는 일을 한다. 하루의 첫시간은 나에게 속한다. 내가 선물로 받은 이 하루가 온전한 나의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잇도록, 나는 오늘 하루를 내 방식대로 계획한다.

86. 죽음의 명상 meditatio mortis , 즉 의도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응시하는 연습은, 우리가 시간의 가치를 분명하게 느끼고 매 순간을 의식하며 살도록 도와준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매일 죽음을 눈앞에 보도록 제자들을 가르치셨기에 수도승들은 매 순간을 거룩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92. 묵상은 시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묵상을 하는 순간에는 과거와 미래가 하나가 된다. 묵상은 현재의 순간일 뿐이다. 묵상은 한마디로 ‘하나 되는’경험이다. 나는 정해진 그 무엇을 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내 안의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에서 많은 것이 어긋나 버렸고 지금도 내 안에서 혼돈을 느끼고 있지만, 저 깊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좋고 만족스럽다.

95. “세 가지 시간이 있는데,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현재이다. 오직 영혼에만 이 세가지 시간이 있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관조이고, 미래의 현재는 기대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99. 정상 경험의 한가지는 우리가 완전히 혼자라는 것이다. ‘혼자’allein 라는 단어는 모든 것과 하나all-sein가 되고 또 자기 자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것은 초기 수도승 생활에서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수도승은 자기 자신과 하나인 동시에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것과 하나인 사람, 즉 완전히 ‘하나’인 사람이다.

103. 아브라함 매슬로는 시간과 영원이 하나인 순간에 대한 경험을 ‘정상 경험’ 이라 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정상 경험을 이미 한 바 있다.

104. 봄날 혼자서 들판에 나갔을 때, 친구와 함께 산 정상에 서 있을 때, 음악회의 무대 한가운데 서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이러한 정상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그저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그냥 압도당했다. 완전히 그곳에 있었다. 완전히 그곳에 없었다.”

정상 경험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108. 정신분석학자 융은, 축제란 현재를 역사적, 신화적 과거와 결합하는 것이라고 한다.

축제는 일이나 이윤 추구, 계산 등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축제에는 목적이 없다. 우리는 축제 동안, 정신없는 일상과 하던 일로부터 벗어난다. 축제는 ‘가벼움’을 상징한다. 이 세상에 대해 ‘그래’라고 긍정할 때에만 , 일상을 중단하고 본질적인 것에 참여하도록 나를 이끌어 주는 축제를 즐길 수 있다.

플라톤은 말한다. 신은 인간을 불쌍히 여겨, 인간이 힘든 일을 하다가 “숨을 돌릴 수 잇도록 매년 축제의 날을 주었으며, 축제의 친구로 뮤즈와 그의 동반자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주었다.”

111. 우리가 이러한 축제들의 내적인 활기에 자신을 내맡길 때, 상처받은 영혼은 치유된다.

그 의미와 균형에 대하여

115. “평온으로 가득한 한 손이 노고와 바람 잡는 일로 가득한 두 손보다 낫다.” -코헬 4,6

열린 손의 반대는 주먹이다. 주먹을 쥐고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억지로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다. 주먹은 전쟁을 일으키며 항상 누군가와 대적한다. 그러나 그 많은 주먹들이 잡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116. 인색한 사람은 벌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영원히 살기라도 할 듯이 일한다. -데모크리투스

노력은 이와 다른 모습이다. 그곳에는 일이 ‘흐른다’. 그곳에서의 일은 즐겁다. 반면에 인색한 사람은 이를 악물고 일한다. 그는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중단하지 못한다. 인색함은 탐욕이다. 절약이 아니라, 부에 대한 탐욕이다. 이러한 탐욕에 떠밀려가는 사람은 계속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 사람은 쉬면서 즐기지 못한다. 즐기면 재산이 줄어들 테니까.

119. 삶의 마지막 날에 대해 깊이 묵상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질이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을 다르게 이해하고 체험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매일 깨어있는 의식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120.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즉시 출발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과제를 완성하겠다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 과제를 의미있게 해낼 수 있는 방법과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121.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이 그 그늘에 앉지도 못할 나무를 심는 것에 있다.”-넬슨 핸더슨

위대한 사람들은 결코 단기적인 성과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무를 심었지만 그 나무의 실제 자란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를 바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 올 다른 이들에게 열매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123. 자기 자신을 혹사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은 남들을 향한 마음까지도 경직될 위험이 있다.

128. 끈임없이 자신의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일과 전혀 융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종종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분위기도 만든다. 내 주위에 건강한 작업환경이 형성되면 내 일은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내 일이 다른 사람들의 일뿐만 아니라 삶에까지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즐거운 사람은 가정에서도 기쁨을 만든다.

131. “지도자는 자기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여라.”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영혼에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이 과중한 업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불만, 내적인 저항, 불안, 무감각, 불쾌감 등의 신호를 듣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도록 자신을 강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적으로 텅 비게 되었다.

137. “정원사가 봄을 기다리듯, 기적을 기다려라.”- 생텍쥐베리

기적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정원사처럼 기다리는 사람만이 꽃이 피는 걸 지켜볼 수 있다. 정원사의 일은 봄의 길을 준비해 주는 것일 뿐, 봄을 빨리 오게 할 수는 없다. 봄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온다. 정원사는 그냥 서서 기다릴 따름이다.

140.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명성이 필요한 사람이다. 첫 그룹에 속하도록 노력하라. 그곳에서 하는 투쟁이 덜 사악하다.” - 인디라 간디

145.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 그 즉시 나는 속박 당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일은 더 이상 나에게서 흘러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나보다 빠른지 알아보기 위해서 오로지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는 동안 내가 일로부터 버림받아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149. “네가 저녁에 수확한 것으로 하루를 판단하지 마라. 네가 뿌린 씨로 하루를 판단하라.”-로버트 루이 스티븐슨

151. “돈이 세계를 지배한다” 는 말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늘날에 적합하다. 돈을 가진 자는 권력자나 영향력 있는 사람에 속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고, 남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모두가 이런 돈의 위력을 알고 있다. 돈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돈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도 있다. “돈이란 그것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한 공동체 내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돈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다. 돈은 약속에 의한 것이므로 공동체 밖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종잇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권력을 부여했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므로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돈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152. 부자들은 돈으로 자신의 가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만, 돈을 나누는 사람은 자신의 가면을 벗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154. 융에 의하면, 우리의 인생 중반부터는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가야 한다. 외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 중단해야 한다. 융에게 있어 늙는다는 것은 침묵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성스러운 과정이다. 그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고독은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치유의 샘입니다. 대화는 자주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종종 말의 하찮음으로부터 나를 치유해 줄 침묵이 필요하곤 합니다. 나는 이제 막 행군을 시작하기 위해서 준비할 일이 없는지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이 여행은 그 자체로 이미 커다란 모험이지만, 사람들이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휴식은 침묵하는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지면 이러한 통찰이 매일매일 더욱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노년기의 성직자들 역시 삶고 죽음의 비밀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요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노년을 오로지 일만 하면서 보내는 사람은 성숙해질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156. “들에 핀 나라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마태 6.28-29

무신론 철학자인 에른스트 블로호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경제적 낭만주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경제적인 상관 관계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삶과 일을 동일시하지 않으신다. 삶은 일하는 것 이상이다. 삶은 들판에서, 나의 영혼의 밭에서 성장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음식과 옷에 대해 걱정한다. 이것은 사람이 일을 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 동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과 옷을 사기 위해 일을 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옷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아름다움을 좀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 뿐, 못생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꽃의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도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165. “잘못을 발견하려는 자는 낙원에서도 오류를 발견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자기 자신과 깊이 불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칭찬하고 감탄하면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사람들과 만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과 경계를 긋고,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들이 나에게 불화의 기운을 전염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경계를 긋고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며 그냥 내버려 둔다.

171. 우리가 공격적이 되었다는 것은 남들과 지금보다 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살다가 갑자기 비관적이 되어 파멸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이 오랜시간 자신의 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를 오래 품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178. 루카복음 13장의 등 굽은 여자의 치유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한 아주 훌륭한 비유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좌절하거나, 다른 사람 또는 자신의 문제로 억압 당할 때 이 비유를 읽어보라.

등은 민감한 부분이다. 억압된 정서나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종종 등의 통증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몽땅 등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예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병에서 풀려났다”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녀를 고립으로부터 불러내고 그녀에게 명예를 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은 그녀 안에 있는 선한 것에 말을 건네신다.

“부인, 당신에게는 더렵혀지지 않은 위엄이 있습니다. 당신은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은 착합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시며 자신의 말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 순간 그녀는 일어선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애정을 통해서 일어선다면, 하느님이 각자에게 선물하신 더렵혀지지 않은 위엄을 깨닫는다면, 자신들이 일에 대한 성과만 올리는 사람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해방을 느낀다.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고 느낄 때, 이 비유에서의 기적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충만한 삶’이 펼쳐진다.

182. “약한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는 강한 자에게 부여된 특성이다.” - 마하트마 간디

나는 내적으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둘 때, 비로서 그를 용서할 수 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을 내 안에서 몰아낼 수 있는 내적인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용서의 첫걸음이다.

용서의 둘째 걸음은 나의 상처를 다른 사람 안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용서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 그것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던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의 셋째걸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내가 그를 이해하면, 용서는 더 이상 예수님의 계명을 따르기 위해 지워진 힘겨운 의무가 아니라 해방의 실천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한, 나는 그 사람에게 묶여 있는 것이다. 용서는 나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용서는 나를 내적으로 강하게 하며 자유롭게 한다.

187. “축복해 주는 이는 자기도 흡족해지고 마실 물을 주는 이는 자신도 흠뻑 마시게 된다.” -잠언 11.25

191. 자기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해 너무 많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나는 항상 말한다. “너희 자신의 평안을 먼저 걱정하라.”

잘 산다는 것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주변에서만 맴도는 사람은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일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의 보답을 받는다.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도와주었던 사람은, 도움을 받았던 사람의 행복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친구

네 마음의 공명

201. 영혼이 상처입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우정이다. 자신이 직접 철학자 그룹을 이끌었던 피타고라스는 우정을 ‘덕의 어머니’라 부른다. 그래서 자기 내면에 좋은 열매를 품고 있는 사람들만 우정을 맺을 수 있다. 그저 제 주변만 맴도는 사람은 자신 안에 갇혀 있고,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진정한 우정이 성립되기 위한 모든 인간적인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이 서로를 발견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말한다. “하느님이 친구를 만들고, 그를 또 다른 친구에게 데려간다.”

202.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세 종류를 이야기 한다. 유용성을 위한 우정, 즐거움을 위한 우정, 선행을 위한 우정이 그것이다. 앞의 두 우정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대부분 오래가지 않는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와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정에 대해 말한 것을 좀 더 넓게 해석한다. 그들에게 우정은 좋은 의지와 애정이 결합된, 모든 신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의 합일이다. 키케로에게는 ‘같은 것을 원하고, 또 같은 것을 원치 않는 것’, 이것이 우정의 속성이다.

204. “친한 친구는 같은 것에 대해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5. 심오한 경험을 말 대신 침묵하면서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우정이다. 친구는 상대가 비밀을 간직하도록 허락하고 상대를 위해 고요한 공간을 마련해 준다. 친구가 나에게 마련해주는 고요는, 외로움속의 침묵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206. “친구란 너의 마음에서 울리는 멜로디를 듣고, 언젠가 네가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 멜로디를 너에게 다시 일깨워주는 네 마음의 공명(共鳴)이다.”

207.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집회 6, 10-12

210.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은 표현을 원한다. 편지는 우정의 지속적인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친구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쓴 편지를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생전에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편지들은 두 사람의 우정을 살아 있게 했다.

211. 우정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인생과 사랑의 비밀을 끌어낸다.

212. 우리는 우정을 통해 고향을 경험한다. 친구가 있는 바로 그곳이 고향이다. 라이너 마리라 릴케는 말한다. “나에게 고향은,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친구들 안에 있다.”

214. “새를 날게 하는 힘과 같은 것이 우정이다. 우정은 친구를 흙먼지로부터 일으켜 세워준다.”

친구와의 대화는 문제를 상대화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그러면 문제들은 더 이상 내게 위협적이지 않다. 친구가 가까이 있으면, 나를 자극하는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일상의 온갖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217. 친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친구에게, 그가 우정을 물질로 얻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 선물을 받은 친구는 감정을 억압하게 된다. 그리고 억압된 감정은 내면에서 적개심이 되고 결국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은 더 이상 우정을 느끼지 못한다. 우정은 친구 사이의 평등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정은 위태로워 진다.

224. 자유와 사랑의 조화는 중요하다. 내가 친구를 좋아하면 그에 따라 의존과 소유욕이 생길 수 있다. 그때 나의 이러한 마음을 의식하게 되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친구를 의식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진정한 우정은 내적인 자유를 통해 돋보인다. 나는 아무런 계산없이 느낀대로 말한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을 자유로이 가도 된다. 나는 자유롭게 숨쉬면서 또한 친구에게도 자유를 선사하는 것이다.

사랑

마음으로 보라

227. 여우가 말했다. “안녕, 여기 내 비밀이 있어. 그건 간단해. 마음의 눈으로 보면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본질적인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눈은 표면을 본다. 눈은 다른 사람의 얼굴 윤곽과 불만, 분노, 근심, 고통만 본다. 그러나 마음은 더 깊이 본다. 마음은 사람의 얼굴 이면과 그의 마음을 본다.

228. 삶의 기술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볼 때에만 꽃에서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만나고, 나무를 보면서 나무처럼 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싶은 나의 동경을 만난다. 나는 나무처럼 울창하게 자라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그늘에서 보호받고 위로받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229. “사랑은 계속해서 나눌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행복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른 사람과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이야말로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한다.” -토마스 머튼

사랑에는 흐르려는 의지가 있다. 그리고 사랑이 흐를 때에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을 상자 안에 가두어두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썩게 될 것이다.

232.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한다.” -이태리 격언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의 시간이 무르익을 때까지 내버려둔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상대에 대한 특정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가 문젯거리를 가지고 가면 상대는 이를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급함은 사랑을 죽인다.

인내심이 없는 사랑은 상대가 당장에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당장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것이다. 성급함 뒤에는 기능만을 중시하는 옹졸한 인간상이 숨어있다. 무엇이든 당장 바꾸어야만 하고 성장하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유일무이한 인간의 고유함은 거부당한다.

234.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예레 31,3

이 말씀을 내 마음에 담으면, 마음이 내 실존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예수님의 치유기적을 묵상하고 나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관찰하면, 나는 이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238. “우리는 사랑과 동경을 심장 언저리에 함께 둔다. 즉 사랑과 동경을 앓는 사람들이 손을 올리고 지긋이 누르는 바로 그곳이다.”

동경은 사랑의 가치를 더해주고 사랑을 끝없이 깊게 해준다. 보다 큰 사랑의 행복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동경의 고통은 나란히 놓여있다. 사랑은 항상 높은 곳을 가리킨다.

240. 용감히 사랑하라. 네가 여자든 남자든 과감히 친구들을 사랑하라. 모든 사랑에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모습이 있다. 너의 마음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만나도록 하라.

241. 사랑의 온기는 굳어있는 모든 것을 녹인다. 스스로를 가두어 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위로받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모든 편협함에서 풀려난다. 그러니 불안에 매달리지 말고 그것을 뚫고 지나가라. 그러면 네 마음 깊은 곳에서 너를 받아주고, 불안의 위협적이고도 억압적인 성질을 녹이는 부드러운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242. “나는 네 안에서 사랑에 대한 동경을 본다. 네 안에 있는 사랑을 믿기 바란다.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용기를 내라. 사랑에 매혹당하도록 너를 내버려 두어라. 사랑이 너를, 너의 진정한 동경을 만족시켜 주는 보다 깊은 사랑의 비밀로 데리고 가게 하라.”

문제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더 이상 소유욕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랑, 흐르는 사랑, 사람들을 매혹하는 사랑, 삶의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나는 사랑이 얼지 않고 흘러 넘치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을 이기는 사랑을 바란다.

변신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

247. 안팎으로 나있는 우리 인생길에는 직선 도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가끔 우회도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된 듯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도로는 사실 나선형의 도로이다.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만 할 뿐, 사실은 새로운 힘을 얻어 중심을 향해, 본디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갈 수 있다.

방향을 바꾸는 것, 줄곧 걸어온 삶에 전환점을 주는 것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겉으로 보기에 잘못된 길은 그래서 진정한 변신을 위한 기회가 된다. 겉으로의 퇴보 역시 긍정적인 효력을 지닌다. 그것은 우리를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250. “항구에 머무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윌리엄 쉐드

너무 완벽히 안전하면 그 무엇도 흐르거나 성장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 모든 위험이 완전히 차단되면,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안전만을 원한다면 나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

자기 성장의 길을 걷는 사람은 반드시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기 마련이다. 그는 영혼의 심연, 암흑, 고독, 위협 등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

252.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

모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하지만 모험이 없다면 영혼이 위험에 빠진다는 것은 놀라운 말이다.

‘모험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무엇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독일어로는 무엇인가 ‘감행한다’ wagen 고 한다. 감행이란 무게가 불확실한 무엇인가를 저울에 올려놓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모험을 감행한다. 지금 내가 시작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는채 나 자신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스스로를 드러내려 시도한다. 무언가를 결정하긴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 언제나 조심스러운 사람은 인생을 놓치게 된다.

253.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이 상처들을 값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상처를 받은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이 상처들을 잘 이해한다. 나는 아주 강하고, 건강하고, 완벽하다는 환상을 버린다. 나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다. 내가 상처를 받은 그곳에는 나의 보물도 있다.

254. 영적인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비판, 거절, 무시에 민감하다. 그럴때 나는 상처받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 어머니처럼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네 곁에 있다. 강해지려 너무 애쓰지 마라.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 너는 나에게 소중하다. 그런 너를 나는 사랑한다.”

255. 위기는 우리에게 자신의 그림자와 맞서라고 그리고 그것을 마주 보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자신과 주변을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면, 우리는 이 그림자를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가족, 직장, 동네, 사회를 어둡게 만들 것이다.

257. 인생은 항상 매끄럽게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위기가 우리를 헤집고 관통해 지나간다. ‘관통해 간다’는 것은 위기에 대한 비유일 뿐만 아니라 좌절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위기는 비록 힘들지만 그 끝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좌절은 무엇인가 부숴졌음을 의미한다. 좌절하게 되면 그동안의 인생계획과 이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계힉이 좌초되었다고 해서 나 자신이 좌초한 것은 아니다. 위기 안에서는 항상 에고의 한 부분이 죽는다.

261. 요하네스 타울러는, 위기의 고통은 단지 하느님이 인간에게서 탄생함으로 겪는 출산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다. 우리 안에 새로운 것이 탄생하려고 하는 것이다.

264. 영성은 항상 우리를 넓은 곳으로, 자유로 인도한다. 진리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나 불안, 편협함 등은 영성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성은 경험이다. 영성은 인간을 내적인 자유의 경험으로 인도하고자 한다.

융에 따르면 인생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자학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고통을 관통하는 것이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68. 노화 (老化)의 과정을 영혼 안에서 받아들일 때, 노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성장곡선은 중년부터 하향한다. 그러나 내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나의 심리적인 성장 곡선은 위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젊음을 유지하고자 생물학적인 곡선과 반대로 산다면, 나의 심리적인 성숙은 중단되고 말 것이다.

270. 노화는 죽음에 대한 준비다. 죽음을 피하는 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피하는 것이다. 융은 노인들이 휴식 없이 분주하게 활동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현실을 신경질 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휴식없이 일하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로나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 대할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이 무의미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72. 언제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이나 그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쓸쓸한 노년을 무척 불안해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에 줄곧 의존해야 한다면, 즉 정신적으로 혼미해지고 더 이상 온전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에 크게 손상을 입는 일이다.

273.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무엇이 너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하고. 그리고 깨닫는다. 그 어떤 사람도, 병마도, 혼미함도 내 안에 있는 위엄을 훼손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 이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오로지 그분의 손안에 나를 놓아 드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할 뿐이다.

274. 고통은 삶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짊어지는 길을 발견할 때에만 우리의 삶은 성장한다. 융은 말한다. 고통을 피하는 사람은 자주 노이로제를 앓게 된다고. 그는 노이로제를 실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고통의 대용품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병과 자신에게 부과된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노이로제에 걸린다. 노이로제는 그의 잘못된 인생관을 포기해야만 치유될 수 있다.

277. 너의 상처는 무엇인가? 네가 비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에서 너의 상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상처를 바라보고 그것과 화해하라. 상처는 너를 열어 진정한 자아를 보도록 한다. 상처는 너의 생명을 유지해 준다. 상처는 계속해서 너 자신을 탐구하라고, 성장하라고 강요한다. 상처는 너의 영혼을 위한 진실한 의견을 제시해 준다.

너의 상처를 바라보고, 네 안에서 흐르는 삶을 발견하라.

280. 그리스 인들은 자기 수련에 대해서 말한다. 자기 수련은 연습이고 훈련이다. 운동선수는 목적에 이르기 위해 훈련하고, 철학자는 내적인 자유를 얻으려고 훈련한다.

자기 수련 없이는 변화할 수 없다. 자기 수련은 단순히 포기가 아니라, 내적인 자유로 가려는 의식적인 훈련이다. 거기에 포기도 포함된다. 자신의 욕구를 당장에 만족 시켜야만 하는 사람은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결핍을 참아야 한다. 그러면 내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자기 수련은 내가 단순히 교육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자기 수련은 사는 즐거움을 만든다.

282. 아픔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픔 그 자체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라. 너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라. 너를 고통 안에 묻어버리지 말고, 한사람에게 또는 하느님에게 털러놓아라. 그러면 너는 아픔 속에서도 위로와 확신, 희망과 신뢰를 경험할 것이다.

284. 우리의 삶은 진행 중이다. 우리는 자신을 얽매고 잡아 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걸어 나간다. 계속 걷는다. 멈추지 않는다. 매 발걸음마다 방향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면 걷는 속도나 방향은 변화할 수 있다. 노발리스는 말한다. “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 항상 집으로 갑니다.”

걸어가면서 네가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내적인 길을 걷고 있는지, 너의 길이 정말로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인지 주의 깊게 탐색해 보아라.

286. 고요를 찾아라. 변화를 원하는 사람,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평온의 공간이 필요하다. “성장은 소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끈임없이 우리를 몰두하게 하는 것- 생각, 소망, 우리를 결정 짓는 모든 것에서 손을 놓는다. 우리가 경직된 상태로 꼭 붙들고 있는 것들을 손에서 놓는다. 침묵은 또 다른 근원을 발견하기 위해 손을 놓는 기술이다.

288. 노년이 되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많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느낀다. 내 안에 있는 가난한 것과 장애가 되는 것, 다치고 상처 입은 것, 길가에 누워있는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이 그것을 변화시키도록 한다.

289. 너의 모성을 인식하라. 네가 너 자신에게 어머니가 되어라. 너자신을 사랑스럽게 팔로 안아라. 그리고 너에게, 네 안에 있는 상처입고 홀로된 아이가 필요로 하는 보호를 선물하라. 네 안에는 모성이 충분하다. 너는 하느님의 모성적인 사랑과 능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경

동경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297. 규율은 나를 삶으로 데리고 간다. 나에게 삶 자체를 손안에 받아 들이라고, 자신에게 분명한 질서를 주라고 가르친다. 규율은 능동적인 것이다. 나는 삶은 손에 받아든다. 나는 그것을 잘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로 잘 살려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살려면 그것을 어떻게 잘게 나누어야 할지 숙고한다.

303. 과감히 동경하라. 마음이 넓어질 것이다.

동경은 네가 에고의 한계를 넘어서고, 너 자신과 치고받고 있는 문제들을 상대화 시켜준다. 동경은 모든 아름다운 것과 즐거운 것을 꼭 붙들어야 하는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너를 해방 시켜준다. 그 무엇도 동경을 확신하는 너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 과감히 동경하라. 그 안에서 너는 밝음과 평온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304.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분명한 규칙을 엄격히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중독의 밑바닥에서 심오한 동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건강한 방식으로 동경과 만나지 않는 한, 중독은 치유되지 않는다.

309. 인간이 제각각 다른 목적의 소망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영원한 고향, 잃어버린 낙원, 따뜻한 보살핌에 대한 갈망은 어쩔 수가 없다.

312. 동경은 사람을 경건하게 한다. 자신의 동경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간의 걱정과 병, 상처들이 상대화된다. 그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모든 것들이 동경을 자극하고 이끌어 냈음을 느낀다. 동경을 간직하게 되면 우리는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 한가운데서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다.

살기로 결정하라

317.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살아라” -톨스토이

320.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는 선행과 뜨거운 목욕이 최고라고 한다. 슬픈 사람은 목욕을 하라. 욕탕은 자궁과 비슷하다. 우리는 따뜻한 욕탕에 들어가 있을 때,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 우리는 모태 안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다시 느끼게 되며 그것은 우리의 슬픔을 달래준다. 목욕은 안전함을 제공하지만 선행은 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간다. 내가 선행을 통해 활기를 얻게되면 나의 우울함은 사라진다. 우울함은 삶의 결핍 상태이기 때문이다.

322. 심리학자 베레나 카스트는 기쁨을 고양된 감정이라고 한다. 기쁨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에 있는 어떤 것을 움직이게 한다. 기쁨은 육체의 긴장을 풀어주고, 그를 통해 저항력을 높인다. 기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기쁨보다 더 건강한 것도 없다.

323. 기쁨은 어둠속에서 점화되는 빛과 같다. 초가 아주 작다할지라도 촛불은 그 공간의 어둠을 몰아내고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쁨은 어둠의 벽에 박힌 쐐기와 같다. 쐐기는 벽을 두 동강 낸다. 그러면 인생이 다른 사람 속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생긴다.

324. 춤을 추면 나 자신을 잊는다. 그때 나는 완전히 내 안에 있으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기쁨을 느낀다. 춤을 추면서 나는 자유와 편안함, 신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다.

325.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는 즐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말했다. “단식할 때는 단식하고 닭고기가 있으면 먹어라.”

331. “인생을 웃으면서 살든 울면서 살든 수명은 같다.” - 일본 격언

상황에 대한 반응은 우리 안에 있다. 울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는데 머무르고만 있으면 평생 울면서 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결정이다. 그의 수명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

335. 건강한 삶의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관점은 치유하는 전례이다. 전례는 일정을 정하고, 우리에게 잠시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와 더불어 삶의 본디 모습을 묵상할 수 잇는 기회를 준다. 전례는 우리의 회색빛 일상위에 하늘을 열어 준다. 전례는 언제나 “초를 들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다. 전례는 삶에 질서를 준다.

337. 우리는 생각과 감정, 욕구와 열정의 소리뿐 아니라, 꿈과 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꿈은 때때로 우리를 영혼에 어울리는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꿈은 우리의 내적 상태를 보여주기도 하고 위험에 미리 대처하도록 암시를 주기도 한다. 또 우리의 병을 보여 주고 동시에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몸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

344. “오늘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4

오늘을 잘 극복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을 위한 도전이다.


*** 내가 만일 저자라면

오랜만에 아름다운 생각과 말들은 만났다. 더불어 내속에 있는 영혼도 맞서고 있는 일과 이성이라는 두꺼운 벽, 낭떠러지를 두려움 없이 건너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미 250권에 달하는 영성 관련 책을 발간해 낸 이 시대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의 글에서 삶의 지혜가 될 만한 글들을 뽑아 Anton Lichtennauer가 재배열 한 것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안셀름 그륀의 책을 흐르는 융기안 분석가로서의 관점들이 바탕에 흐르고 있다.

그는 ‘내 나이 마흔’ 이라는 책에서 중년의 위기에 처해 수도원을 떠나가는 많은 수도승들의 영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심리 분석을 해두고 있다. 그 기본은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기 속에 있는 실수와 나약함과 허물을 껴안고 함께 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 앞에서 항상 고결하고 선하며 닿을 수 없는 신에게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기 때문에 지치고 위로 받지 못하고 끝내 사랑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 속 깊이 울고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어머니처럼 품어주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나는 오래 전에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묵상회”라는 피정에 참가했고 그때 내 눈에 띄었던 “아래로 부터의 영성”이라는 안셀름 그륀의 책에서 모태신앙의 일대 전환을 맞이 했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 는 수련지침을 따라 일과 노동을 하는 사이에 멈추어 서서 기도를 하는 수련 규칙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인연이 깊게 닿아있는 수도회여서 신앙생활 굽이굽이에 도와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래서 항상 더 높은 곳을 향한 도달할 수 없는 한계점을 보고 사는 긴장과 죄의식에서 해방되었고,  오늘 하루 잘 살고 있음을 기뻐 춤추게 하는 축제의 신앙으로 바꾸어 가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륀의 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금은 예수회 신부님들이 융의 분석심리학을 많이 공부하고 돌아왔고 뛰어난 영성서적들을 많이 펴냈다. 서강대학을 중심으로 빼어난 영성가들이 많이 있다.

이 책에 씌여진 주옥같은 생각들을 옮겨 적으면서, 시(poem)처럼, 전례처럼 한 구절씩 읽어가면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하루의 기운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는 위로도 컸고, 내게 도움을 청해 오는 사람들에게도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구성을 8가지 주제로 설정했다.

행복, 여유, 일, 관계, 친구, 사랑, 변신, 동경, 삶

이중에서 일인 마케터가 되어서 세상 속으로 항해를 하려는 사람을 잘 준비하게 할 수 있는 비법들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분석을 시작하는 데, 먼저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부분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때로는 알기를 원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때로는 꼭 알아야하지만 벽에 갇힌 중요한 감정들도 있다.
대부분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스스로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본인의 어두운 갇혀있는 그림자는 도움이 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일은 우리가 하데스의 땅, 동토에서 살아나와 새싹을 틔워내는 과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위기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륀은 결론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두려움이요, 고뇌이다. 그러면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자기 훈련과 전례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완곡한 표현으로...

세 번째, 친구와 사랑의 중요함이다.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클라이언트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다보면 탈진하게 되는 곳 까지 갈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친구들이 바로 그 일을 해 줄 수 있다. 친구는 매우 소중한데 우리는 이 최고의 가치를 가꾸는 일에 소흘하다.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된 현대인의 불행한 모습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벗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가야한다.

네 번째, 동경이다.

이 말은 우리가 늘 쓰는 열정에 목표를 더한 말이다. 그래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고 싶은지, 우리의 피를 솟구쳐 일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보아야 한다.
수도자는 하늘, 하느님 안에서 찾을 수 있겠고, 우리는 세속의 가치를 초월하는 어떤 매력일텐데...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시 맨 처음으로 들어가서 침묵과 고독 속에서 자기의 인생을 관조하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대강 내가 이해한 것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토마스 머튼 이후로 영혼을 새롭게 정화시켜준 책을 리뷰하며...

이제 밖으로 나가서 한판 춤을 신나게 추면서 돌아다녀나 볼까? 노래를 불러 볼까?
돼지 멱을 따는 소리로라도 말이다.

아, 행복한 저녁이다!!

*내 책을 위한 구상

안셀름 그륀은 이어서 <죽음의 기술>이라는 책도 내어 놓았다. 아직 구하지 못했으나, 당연히 필독서 목록에 추가 될 것이다.

최근에 윌리엄 브리지스의 책을 보니 그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그의 생각을 나란히 전개하고 있어서 한번 손에 든 책을 놓기 싫은데 방해인자들이 자꾸 생겨서 안타까웠던 일이 있었다.

이 책에서 안셀름 그륀은 그가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승이기에 많은 사건들을 다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 단어 하나에 비슷한 사건들을 엮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 하다.

만남- 첫 만남, 계기, 변화....
사랑- 관계의 핵심이니 변화해 가는 과정을 말해볼 수도 있겠다.
파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생의 위기. 큰 파도. 버티고 선 바위. 까마귀...
항구- 폭풍우 후의 고요함. 낡은 집. 흔적. 귀환.

매일 아침에 새로운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러주는 종달새처럼,
뮤즈가 되어 떠돌아다닐까 보다.

The End.

IP *.248.91.49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9.11.15 22:38:49 *.160.33.244

천천히, 천천히,
평화로운, 주먹이 없는  빈손으로... 목적이 없는 축제처럼.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09.11.16 20:47:01 *.248.91.49
선생님께서
제 글, 긴 글을  다 읽어 주셨군요..

한 줄로 요약하고 복을 빌어주시니, ,,,, 오늘 하루도 축제일 입니다..

빈손으로 보살수행 시작하렵니다.
어제 길상사에서 반야 바라밀에 관한 법문을 들었어요.

내 딛는 걸음 걸음 마다 놓인 복을 주워
꽃으로 만들어.... 오시는 길에 뿌리오리다.
"함께 사는 아름다움" 이 세상에서 이미 이룬 부처세계라고 ....
그래서 빈손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더군요.

선생님께도 평화로운,  주먹이 없는 빈손으로, 목적없는 축제를....

근데 혹시 선상님께 신내리신거 아니여유?
쪽집게 과외를 해주시다니.... 유치 오기  비구니.....일배!     나무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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