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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8일 20시 45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1844년 독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4세에 슐포르타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명문 포르타 공립학교에 다녔으며,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철학자의 입장이면서도 몇몇의 음악을 작곡 하였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에 입문했다. 1879년 건강 문제로 교수직을 사임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스물여덟 살에 완성한 처녀작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한 작품이여, 『반시대적 고찰』은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 전환을 말하고 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아침놀』(1881)과 『즐거운 학문』(1882)이 차례로 출간되었고, 1883년과 1885년 사이에는 그의 저작 중 영향력이 가장 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1884년부터 1888년 사이에는 그의 미완의 역작 『힘에의 의지』가 집필되었다

  니체의 작품 세계에서 대표작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위치는 특히나 각별하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관념적인 절대적 진리를 부정했으며, 힘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의 가치전환을 시도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초인, 영원회귀 등의 사상을 제시하면서 근대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 작품으로 근대 철학의 전복자로서 자리 매김한다. 이 작품은 그의 집필 활동의 정점에 씌여진 것으로, 그의 활동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크리스트교를 비판한 것은 유럽을 비판한 것으로, 키에르케고르와 더불어 실존주의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책은 니체 철학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이전의 사상 모두를 받아들여 통합하고 이후의 사상적 전개에 토대와 방향을 제공한 책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철학의 전부라고도 일컫는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재까지도 그의 유고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 유고들은 니체연구 학자들에 의해 현재 독일에서 니체전집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다. 근대 문명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20세기 이후 프로이트, 마르크스와 함께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병권. 

서울대 화학과 졸업.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수유연구소+연구공간 '너머'> 회원.

주요 논문으로 [니체 사상의 정치사회학적 함의에 대한 연구], [니체-혁명의 변이 혹은 변이의 혁명], [들뢰즈의 니체-헤겔 제국을 침략하는 노마드], [노동거부의 정치학-새로운 구성을 향한 투쟁],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니체}(푸른숲, 2001),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그린비, 2001) 등이 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책머리에

1. 니체는 사물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사상가다. 그는 사물들의 기원에 감추어져 있는 천 개의 주름을 본다.(p3)

2.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위대한 철학자는 하나의 비명 속에서도 여러 개의 목소리를 구별해내는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이다.(4)

3. “자기가 심오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명료함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고 매년 봄마다 새 껍질을 입으며 계속해서 젊어지고 미래로 채워지며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5)

4. 당신은 지금 “어떤 사막도 옥토로 바꿀 수 있을 만큼” 풍성한가, 아니면 “어떤 옥토도 사막으로 바꾸어 버릴 만큼” 메말라 있는가?

  진리의 식물은 토양에 따라 달라진다.(6)

5. 철학자는 먼저 “꿀을 많이 모은 꿀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철학을 하려거든 행복해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7)

6.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7)


■ 서장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1. 천 개의 눈

  아주 많은 진리들이 있고, 따라서 어떤 진리도 없다.(17)

2. 천 개의 길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건강과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있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으로서의 카오스! 그런데 반듯한 길이 사라지고 미로뿐이라고? 덕분에 길은 여행자들에게 나누어줄 기쁨을 숨겨둘 수 있었지.(18)

8. 천 개의 이야기

  다이버 니체가 말하는 인간이 가보지 못한 심연으로 잠수하는 법-길게 숨을 쉬고 나서 잠수하라. 그래야만 깊은 바닥까지 볼 수 있으리라.(21)


■ 제1부

제1장 아모르 파티;삶을 사랑하는 철학/니체와 철학 사이에서

1. 삶에 대한 철학의 공과(功過)

-. 니체의 철학은 철학의 영토에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철학, 혹은 철학 외부에 위치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철학 바깥에서 철학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는 철학자다.(25)

-. 철학의 공과를 달아보고자 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지반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철학자가 철학의 지반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26)

-. 니체의 철학은 어떻게 철학의 외부에 설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체를 보려는 철학적 시각의 편협성을 읽었기 때문이고, 보편성을 주장하는 철학적 의지의 특수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철학은 진리를 문제삼기보다는 진리를 찾으려는 욕망을 문제삼는다.(27)

-. 건강과 생명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니체는 분명히 삶의 철학자이고 생의 철학자이다.(29)

-. 니체 철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삶과 건강이며, 그가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과 질병. 그에게서 철학은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의 대결 구도 속에 놓여 있다.(29)

-. 니체가 철학자들을 죽음의 설교자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이 세계 속에서의 삶을 평가절하하고, 어떤 생성도 없는 영원불멸의 세계을 염원하고 있기 때문(29)

-. 서구 사상의 또 다른 뿌리인 기독교도 ‘죽음의 설교’인 것은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계’는 죄로 가득한 세계이며 천국은 ‘저 세계’에만 있다. 기독교인들은 삶을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며, 그 괴로운 이유를 우리의 ‘죄’와 연관. 삶이 불행하다는 느낌이 클수록 우리가 지은 죄는 커진다.(30)

-. 철학을 ‘죽음을 위한 준비’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와 달리 니체는 철학이 죽음을 위해서 쓰일 게 아니라 바로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31)

-. 삶을 긍정하는 철학, 삶을 사랑하는 철학은 가능할까? 불행히도 서구 사유의 기원에는 두 사람의 시체가 놓여 있다.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라는 두 스승의 죽음.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 내고 삶 안에서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냐고 묻는다.(31)

2. 거인들의 웃음소리와 신들의 한탄

-.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삶’때문이 아니다. 고통은 오히려 ‘삶으로부터의 이탈’, 곧 죽음 때문에 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나쁜 것은 곧 죽은 것이고, 다음으로 나쁜 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삶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고통은 그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37)

3. 세 개의 죽음-디오니소스와 그리스도, 소크라테스의 경우

-. 세상에 존재하는 차이들은 고통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놀이의 대상이었다.(41)

-.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긍정의 신으로 이해함으로써 삶을 부정하는 기독교의 신과 대비(41)

4. 비극이 상연되는 극장과 심판의 법정

-. 극장은 삶을 연극으로 만드는 장소이고, 법원은 삶의 죄를 추궁하는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44)

-. 심판은 삶으로부터 사랑의 요소를 완전히 박탈해 버렸다. 무엇보다도 신 자신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49)

5. 미래의 철학자

-. 삶을 실천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신앙은 극복되지 않는다.(50)

-. 아픈 광인은 병원에 갇힌 환자지만 건강한 광인은 자유 정신을 지닌 전사로 등장(52)

-. 미래란 ‘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53)

-. 비판(Kritik)의 어원이 된 희랍어 크리네인(krinein)은 ‘구분하다’, ‘판단하다’, ‘법정에 세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55)

6. 사랑의 의미

-. 니체가 철학에 보내는 권고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는 것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본래부터 사랑의 학문이다. 필로-소포스(Philo-sophos). '지혜에 대한 사랑‘, 그것이 철학이다.(56)

-. 철학자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다. 그가 구했던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친구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구한다. 시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짐승의 무리나  신도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새로운 표에 새로운 가치를 써넣을, 함께 창조하는 자를 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구속으로 변질되는 일이다. 미래의 철학자는 철학에 들어 있는 사랑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즉 그것이 구속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57)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전하려고 했던 복음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 ‘회개’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59)

제2장 강한 자와 선한 자/니체의 계보학

2. 계보학 2-탐사

-. 니체는 도덕에 대한 탐사 작업을 계보학(Genealogie)이라고 불렀다. 계보학자는 돋보기나 현미경을 들고 있는 탐사자이다.

  니체의 계보학은 도덕적 가치의 유래와 발생을 묻는 작업(64~65)

3. 도덕의 자연사(natural history)

-. 니체는 도덕을 화폐위조에 비교하곤 했다. 화폐의 위조란 가치를 조작하는 행위다. 가치의 위계를 역전시켜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도덕에서의 화폐 위조 행위다.(69)

-. 유래와 혈통을 밝혀주는 것, 고급과 저급, 강함과 약함, 거인과 소인의 위계를 세워주는 것이 계보학(72)

4. 강한 자와 선한 자

-.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77)

5. 약자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 약자는 자신의 약함을 하나의 공적이자 소양이라고 생각(80)

6. 도덕이라는 동물원

-. 니체는 노동이야말로 충동을 억누르는 훌륭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에 사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생활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계획표대로만 생활한다. “완전한 자기 망각, 단호히 고정된 생활 양식, 완전히 짜여진 시간, 그리고 그것을 위한 훈련.”(86)

제3장 투시주의와 광학의지/니체의 해석학과 니체에 대한 해석학

1. 헤르메스가 전하는 메시지

-.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자(使者)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었다. 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필요할 경우 주석을 달아 이해하기 쉽게 바꾸는 ‘해석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자들의 소통자이자 매개자인 헤르메스 해석학이 시.공간상으로 분리되어 있는 서로 다른 사상들을 이해하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헤르메스의 일은 분명히 해석학의 어떤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92)

2. 진리의 해석학

-. 자신과 거리를 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보다 ‘차이(거리)’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서 니체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95)

3. 스핑크스의 눈

-. 니체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불쑥 내던졌다.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도 없다.”(103,109)

-->니체에게 절대적이고 보편적인-그것이 상대주의의 절대성이라고 해도-진리, 모든 해석을 수렴시킬 수 있는 매듭은 없다. 그 이유는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진리가 있기 때문. 진리의 과잉은 진리의 소멸을 의미. 그러나 그 소멸은 부재나 결핍이 아니라 넘침과 과잉이다. 카오스나 미로야말로 니체에겐 즐거움의 대상이다.

-. “너는 이러이러해야만 한다”(Du sollst)는 것은 다양한 시선을 특정 방향에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니체는 이것을 ‘광학의지(Wille zu einer Optik)'라고 부른다.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눈은 조작되고 훈련받는다. 우리의 눈은 더 이상 여럿이 아니다. 특정한 방향으로만 보도록 강제하는 일종의 시각 체제 속에서 우리의 눈은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사고와 판단, 지각의 활동은 “동등의 것으로 조작하는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모든 새로운 것들, 모든 차이적 존재들을 하나의 틀에 끼워 넣는 동일화의 의지. 그 동일화의 의지는 “모든 사건의 근본적 위조”가 행해지고, 시선에 대한 광학적 훈련이 수행된 뒤에 목표를 달성한다.(107)

4. 가치의 발명

-. 진리가 해석 위에서 논의된다면 길은 누구도 다 막아낼 수 없을 만큼 과잉적인 것으로 돌변한다.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109)

-. 사실 어떤 것이 진리로 주장되는 것은 진리 자체가 힘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힘의 편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진리는 더 이상 해석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기준이기는커녕 힘을 자기편으로 만들지 못할 때 소멸해 버리는 것이 진리. 니체의 해석학은 진리의 족쇄로부터 해석을 구하는것(110)

-. 니체가 절대주의나 상대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허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창조와 생성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 절대주의가 시선의 훈련을 통해 다른 눈의 생성을 막는다면, 상대주의는 다른 눈을 떠보았자 별 거 없다고 설득한다.(112)

-. 니체에게 과거와 전통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니체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라는 글에서 밝힌 역사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은 지금까지 해석학이 밟아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 번째 관점은 역사를 기념비적 방식으로 보는것. 기념비적 방식은 과거의 고전적인 것이 다시 한 번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태도.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 두 번째는 골동품적 역사관. 이러한 관점에서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려고만 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 세 번째 관점은 비판적 방식. 인간이 살기 위해서 과거를 파괴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생각.(113)

-. 니체의 해석이란 바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차이의 생성(115)

5. 니체에 대한 해석학-방법과 스타일의 문제

  해석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창조와 생성(115)

제4장 우상의 몰락과 위대한 정치/니체의 근대정치체제에 대한 비판

1. 작은 정치의 시대

-. 사회주의의 실패는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한 증명이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실패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른다.(122)

-. 한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커다란 위기. 교육의 목표가 미래 주체를 양성하는 것에 있다면 정치의 목표는 그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있기 때문. 니체가 미래를 낳을 능력을 상실한  근대 유럽 문명을 ‘허무주의(nihilism)'라고 명명했을 때, 그것은 철학적 용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용어(123)

2.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 1-근대 국가와 전쟁

-. 우리는 니체의 근대 정치에 대한 비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치의 형이상학화(125)

-. 기존의 가치를 추구하고 내면화하는 행위는 수동적인 주체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가치 창조와 평가를 봉쇄했던 것이 근대 정치의 첫 번째 문제였다면, 두 번째 문제는 허무주의적인 인간형을 산출하는 점에 있다. 정치는 강한 인간을 육성하기보다는 우매한 대중을 양산. 더욱이 이 과정에는 잔인한 ‘길들이기’와 ‘길러내기’가 개입. 니체가 저작의 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쓰고 있는 ‘길들이기’와 ‘길러내기’라는 표현은 가치의 습속화를 통한 근대적 정치 주제의 생산을 분석함에 있어 매우 유용.

  그런데 니체의 근대 정치 비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빠져셔는 안될 하나의 요소가 더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두 측면을 매개해 주는 새로운 우상, 즉 국가에 대한 설명이다. 국가는 근대의 정치적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는곳.

  니체는 국가라는 잔인한 도구가 전쟁에서 왔다고 말한다.(127~128)

-. 국가는 바로 “모두를 두렵게 만드는 공통의 힘”으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실체다.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로 안전을 위해 인위적인 계약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계약은 다시 국가에 의해 보증된다. 이것이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이동이며, 정의와 법의 탄생이다.(129)

3.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 2-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 니체에게는 국가란 항상 “거짓 신일 뿐”이다.(137)

-. 민주주의야말로 근대 정치체제의 허무주의적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138)

4. 길들이기와 길러내기

-. 정치에 연관된 말 중에서 신체에 대한 비유가 많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터너에 따르면 특히 ‘다이어트(diet)'라는 단어만큼 좋은 예가 없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체중감량을 위한 식이요법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나, 원래 이 말은 그리스어 ’diaita'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삶의 총체적인 양식’이었다. 그리스 의학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는 크게 네 가지의 체액의 균형 체제인데, 다이어트는 이것들의 균형을 맞추라는 의학적 처방이었다. 네 가지 체액은 각각 운동, 섹스, 수면, 사회적 관계에 관여하는 것으로, 병이 생기는 것은 운동이나 섹스, 수면, 사회적 관계가 과도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다이어트의 라틴어 어원은 ‘dies'인데, 이것은 영어의 ’day'에 해당. 이는 다이어트가 시간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140)

제5장 권력의지와 영원회귀(1)/자연학+윤리학

2. 왜 원자가 아니라 힘인가

-. 힘의 두 번째 속성은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서 힘은 자신의 힘을 숨길 수 없다. 왜냐하면 표현되는 것만이 힘이기 때문이다.(159)

3. 힘의 질-능동과 반동

-. 니체가 힘을 분석함에 있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질적인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의지(165)

-. 니체에게 강함은 어떤 것이었는가?

  강함은 무엇보다도 ‘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넘치는 것’,  ‘선사하는 것’, ‘공격하는 것’ 등으로 그려진다. 약함은 ‘귄리를 양도하는 것’, ‘무리 짓는 것’, ‘보편적인 것에 대한 추구’, ‘결여된 것’, ‘적응하는 것’, ‘외적인 것에 대한 비난과 원한’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강함과 약함, 즉 힘을 측정하는 니체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166)

-. 반동적 힘의 작동방식에 드러난 의지는 어떤 것인가? 능동적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것이 반동적 힘의 내적의지. 우리는 힘의 질적인 차이가 그 내면의 의지, 즉 권력의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능동적인 힘과 반동적인 힘은 그 내면의지들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167)

-. 결국 우리는 힘들의 질적인 차이가 그 내면에 있는 의지나 의도, 다시 말해서 ‘권력의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권력의지의 차이이다.(169)

4. 권력의지에 대한 오해

-. 니체는 힘들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내면의지가 바로 권력의지라고 말하고 있다.(169)

-. ‘권력(Macht)'이라는 말.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그것은 ’능력‘이나 ’가능성‘이다. 불어로는 ’puissance'가 번역어로 쓰이고 있다.(170)

-. 들뢰즈와 가타리는 ‘인타 오이디푸스’에서 욕망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정의를 구분. 첫 번째 정의는 욕망을 ‘획득’과 관련시켜 보는것. 욕망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있는데, 그것은 욕망을 ‘생산’으로 정의하는것. 이때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넘침’(172)

5. 권력의지의 윤리학과 권력 느낌

-. 니체가 권력의지의 질적인 차이를 표현하는 용어들은 다양. 무엇보다 중요한 표현은 ‘긍정과 부정’. 긍정은 디오니소스의 정신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수이고, 예수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 반대로 부정은 삶을 비난하는 노예의 것이고, 심판을 불러오는 사제의 것이며, 역사를 하나의 체제로 포섭하려는 변증법의 것(175~176)

-. 좋은 해석이나 가치 평가란 긍정의 권력의지다. 긍정의 권력의지야말로 좋은 지배방식.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 육체는 긍정의 권력의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니체는 그것이 권력 느낌(Gefuhl, 감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177~178)

제6장 권력의지와 영원회귀(2)/두 가지 반복과 두 번의 긍정

2.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익숙한 오해

-. 니체는 아주 일찍부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세계’를 하나의 ‘놀이’로서 이해해 왔다. 세계란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놀이다. 니체는 이것을 ‘주사위 놀이를 하는 세계’로 그리기도 한다.(188~189)

3. 반복의 두 경우-병에 걸린 차라투스트라와 회복된 차라투스트라

-. 차라투스트라는 과거를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 과거를 생성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을 발견하기 시작(196)

-. 순간들을 통해 볼 때 미래는 과거나 현재 다음에 오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순간들 속에 다른 시간과 공존하며 경쟁하고 있는 시간이다.(197)

-. 니체는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미래를 사유함으로써, 그리고 미래를 건축함으로써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197)

-. 영원회귀는 두 개의 권력의지를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긍정의 권력의지와 부정의 권력의지. 더 할 것인가, 그만할 것인가?. 영원회귀를 이해한 뒤의 차라투스트라는 완전히 긍정적으로 돌변. “나는 어느 심연으로라도 축복하는 예(Ja)라는 말을 가져갈 것이다. 나는 축복하는 자, 예라고 말하는 자가 되었고, 그러기 위하여 오랫동안 씨름을 했고, 씨름꾼이 되었다.”(199)

-.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럼 변하게 하면 된다! 세상이 영원회귀하지 않는다고? 그럼 영원회귀하게 만들면 된다!(199)

-. 해석자들이 세계를 해석하는 동안 차라투스트라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영원회귀는 세계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실천이다.(200)

4. 긍정을 부르는 긍정

-. 긍정은 부정보다 강력. 차라투스트라는 난쟁이보다 강력. “친구여! 그대들 속에 숨겨져 있는 저 ‘긍정’은 그대들의 시대적 병인 저 모든 ‘부정’보다 더 강력하다.”(203)

5. 차이의 놀이와 회귀의 비밀

-. 주사위 놀이야말로 영원회귀에 대한 최고의 비유.

  떨어지는 주사위는 새로운 느낌을 만들고, 던져지는 주사위는 새로운 힘을 표현. 결국 주사위 놀이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놀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놀이! 놀이가 만들어 내는 차이! 긍정은 차이의 생성을 멈추려하지 않는다.(206,207)

-. 긍정의 권력의지가 벌이는 차이의 놀이를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다수성이다. 다수성은 하나와 다른 하나의 차이이다. 두 번째 차원은 자신의 생성(Werden)이다. 이때 생성은 자기와 자기의 차이다. 세 번째 차원은 우연이다. 우연이란 차이가 모든 것 속에 분포된 상황이다.(207~208)

-. 영원회귀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유혹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즐거움”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 아이들은 왜 그렇게 영원회귀를 멈추지 않는가? 그것은 즐겁기 때문(209)

-. 즐거움이 새로운 순환의 원인. 즐거움이 새로운 순환을 불러온다.(209)

제7장 인간/원숭이와 초인 사이에 걸려 있는 밧줄

2. 진화와 변신

-. 니체는 그 운명의 날에 등장하게 될 존재의 이름도 정해두었다. 바로 초인(위버멘쉬, Ubermensch)이다. 초인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 인간의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다.(216)

-. 니체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자랑스럽게 ‘진화’해 왔지만 곧이어 자신의 죽음인 초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란 결국 “짐승과 초인 사이에 매어진 하나의 밧줄”에 불과. ‘차라투스트라’에 등장하는 시장에서 만난 줄을 타는 광대의 위험이 바로 인간의 위험.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초극할 것인가? “위대한 조수의 썰물이 되길 원하는가”, 밀물이 되길 원하는가?(217)

-.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결과라면, 초인은 인간의 철저한 몰락으로부터만 출현. 초인은 결코 인간이 진화한 종이 아니다. (217)

-. 인간이 진화를 주장한다면 초인은 변신과 변용을 주장.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제1부를 이 ‘변용’에 대한 가르침으로 시작. “내가 너희에게 세 가지 변용을 들겠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 변용을.”

  낙타는 잘 견디는 정신의 표상. 주어진 가치를 묵묵히 수행만 하는 낙타. 사자는 거대한 부정의 정신. 낙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사자는 이해. 사자는 자유를 획득하고 자신의 터전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사자 역시 긍정을 알지 못했다. 사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어린아이가 한다. 어린아이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고,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다.(219)

-. 어린아이는 하나의 웃음으로도 낙타보다 강한 긍정과 사자보다 강한 부정을 행할 수 있다.(220)

-. 인간이 진화를 통해서라면 초인은 변신을 통해서 태어난다. 초인으로 번역된 ‘위버멘쉬’는 새로운 ‘인간’혹은 새로운 ‘종’에 대한 표현이기보다는 ‘넘어섬’, ‘지나감’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220)

3. 신의 죽음과 인간의 몰락

-. 인간이 몰락하고 초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은 “신이 죽었다”는 복음의 형태로 전달. 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광인이다.

  그런데 니체는 왜 신의 죽음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신앙의 대상인 신이 죽었으므로 신앙도 죽을 것이고, 따라서 좋은 삶을 위한 실천과 행동이 신앙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복음이 사실상 신의 죽음과 통한다고 본 것 같다. 더 이상  이 세계를 검열하는 심판이 사라졌으며, 저 세계에서 죄를 묻는 일은 없다는 것. 천국이란 믿음의 문제이기는커녕 새로운 삶의 방식이고 실천이라는 것. 니체는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그렇게 요약. 신들이 죽었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삶을 창조할 초인이 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니체는 신이 죽은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222)

-.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동굴 벽에는 신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신은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방식이다. 신은 인간 이전에 존재해서 인간을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과 동시에 탄생한 것, 혹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인간보다도 늦게 창조된 것인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이 가진 두 측면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223)

-. 하지만 광인은 신이 죽은 후에도 새로운 삶을 목격하지 못한다. 그는 신의 죽음이라는 이 기쁜 소식에 춤추는 단 한 명의 인간도 만나지 못한다.(223)

-. 신이 시체로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도 새로운 삶의 생성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니체는 이런 유의 인간을 ‘최후의 인간’이라고 불렀다. 최후의 인간은 신앙이 사라진 시대에 ‘무신앙’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다.(224)

-. 정말로 신을 철저히 죽이고자 하는 자는 웃는다. 그는 신을 분노로써가 아니라 웃음으로써 죽이는 것이다. 신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신의 존재가 웃음거리인 것을......(225)

4. 보다 높은 인간들

-. 긍정이란 어떤 것인가? 영원회귀란 어떤 것인가? 초인이란 어떤 것인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자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한번 더”라고 말하는 것.(231)

5. 놀이와 웃음, 그리고 춤

-. 왜 보다 높은 인간들은 변신에 실패했을까? 그들에게는 초인과 영원회귀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에게 의존하려 했다. 그들은 초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즉 놀이와 웃음과 춤을 몰랐다.

  그들은 아이들의 놀이를 모른다. 그들은 웃는 법을 모른다. 웃음은 초인의 중요한 특징. 그들은 춤추는 법도 모른다.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춤은 중력의 표시에 대한 승리의 표시.(232)

제8장 N개의 얼굴, N개의 철학/니체는 자신을 어떻게 변신시켰는가

1. 가면의 철학

-. 이름은 신체의 변신을 이해함에 있어 큰 방해물. 이름은 사람들을 개별화시키고 고착화. ‘이름 부르기(호명)’를 통해 계급이 재생산된다는 알튀세의 지적(236)

-. 니체가 권하는 독서법이란 걷는 법이나 춤추는 법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책 사이에서, 책에 의한 자극을 통해 비로소 사상을 더듬어 가는 일당에 속해 있지 않다.” “허리를 내리고 배를 압박하며 머리를 종이에 처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사이를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자, 문 밖에서 생각하는 자”가 독자로 적당하다.(239)

4. 모든 가치의 전환

-. 병균 속에서도 치료의 백신을 찾아내듯 니체는 상처로부터 치료의 힘을 발견. 다음은 나의 오랜 좌우명이다. ‘상처에 의해 정신이 강해지고 힘이 회복된다.’(247)

5. 다시 떠나는 여행자

-. 니체 그에게 가장 적합한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자이다. 누구보다도 차라투스트라가 여행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여행 기록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제2권에 등장하는 “방랑자”가 바로 그 자신이다.

  니체는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아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프리드리히 니체” 그의서명이 붙어 있는 편지가  전하는 메시지도 이제 “니체씨로부터 떠나라”는 것이다. 여행객은 항상 그 사회의 이방인이고 외부자이다. 니체는 그 자신을 독일 안에 있는 이방인이라고 소개한다.(250~251)

-. 니체의 사상은 ‘유목적 사상’이다. 유목민이란 여행자이며 외부자이다. 그러나 니체의 여행자가 “떠난다”고 했을때, 그는 공간적으로 떠나는 게 아니다. 그가 떠나는 것은 지배적인 질서이며 지배자의 코드이다,(252)

-. 이제 이 책의 첫장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금지된 것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아니던가. 니체의 멋진 정의처럼 “철학이란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괴이하고 의심스러운 것들, 도덕이 금지해 온 모든 것들을 찾아내면 살아간다.” 그것이 생존이고, 그것이 철학적 삶이다. 금지의 영역에는 새로운 것들이 널려 있다. Nitimur in vetitum! 철학자는 금단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다.

  모든 것들이 다 익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도다!


■ 제2부

베버-근대 허무주의 비판의 딜레마

1. 근대라는 탈주술화된 주술

-. 근대가 시작되는 공간은 절대신의 무덤 속과도 같다. 니체의 말대로 엄했든 자상했든 절대신은 죽었고 그 시체가 눈앞에 놓여 있다. 그동안 그를 떠받들어 왔던 신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막스 베버를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물음들 속에서다. 그는 무덤으로부터 ‘새로운 시대’의 인간들, 다시 말해 근대인들이 탄생했음을 보았다. 베버는 근대인들이 주술로부터 벗어나 과학의 시대로 이행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탈주술화야말로 무덤에서 나온 또 다른 신의 주술이라는 것을 포착. 그러나 그것은 이전의 주술과는 분명한 차이. 보편적 종교의 주술적 힘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제는 구체적인 계산을 통해서 측정 가능한 힘들만이 적합한 형태로 인정.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베버는 ‘합리화’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탈주술화’와 ‘계산가능성의 증대’를 의미.

  합리성이라고 부르는 이 탈주술화된 주술은 근대인의 모든 생활 질서 속에서 나타난다. “신들 상호간의 영원한 투쟁, 그리고 삶에 대한 궁극적 불일치성과 중재 불가능성”의 긴장 속에서 서구인들은 독특한 합리성을 자신들의 신으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258~260)

2. 근대인의 탄생

-. 베버는 자본주의를 자본이나 기술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적 인간의 탄생과 관련시켜 이해. 베버가 보기에 자본주의적 인간(근대인)은 전혀 새로운 종의 인간.(260)

-. 중세의 도시 한복판에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던 교회는 이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는 없어진 게 아니라 각자 가정으로 그리고 각자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262)

-. 구원의 표지를 찾는 것이란 스스로 구원의 표지를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구원받았음을 믿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많은 재화를 벌어들인다면 그것은 신이 돕기 때문. 이 놀라운 전환이 부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은 뒤집어졌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재화를 쌓는 것이야말로 신을 영광되게 하는일(263)

3. 관료제 기계

-.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부른 근대의 에토스는 독특한 생활방법론과 상응(264)

-. 프로테스탄트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계획표(시간표)의 도입. 원래 시간표는 중세의 수도원에서 생겨난것(265)

-. 시간표는 사람들의 삶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주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꿈꾸던 철저한 자기 관리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시간표였던것(266)

-. 합리적인 시스템이 개인들의 일상 생활의 수준을 넘어서 조직이나 제도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 관료제. 베버는 관료제를 기계라고 불렀다. 관료제란 개인적 수준에서는 책상 앞에 붙여놓은 계획표일 것이고. 사회적 수준에서는 거대한 행정체계 및 사회제도들을 의미(266)

4. 신체 길들이기, 신체 길러내기

-. ‘훈육(discipline)'. 훈육은 근대인들의 신체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개념(269)

-. ‘체제(體制, regime)'. 글자 그대로 신체에 대한 통제 양식을 의미.

  ‘다이어트(diet)’의 어원인 그리스의 ‘diaita'는 환자들에게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체액들의 균형을 맞추라는 의학적 처방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균형을 이루라는 정치적 처방이기도 했다.(269)

-. 베버는 종교와 전쟁을 목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훈련시키고 길들이며 철저한 규율 아래 관리했던 수도원과 군대의 방법을 고대의 플랜테이션이나 자본주의적 공장의 이상형으로 보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른바 ‘과학적 경영’이라고 불리는 것이 수도원과 군대의 합리적 훈육이 발전된 형태임을 의심하지 않았다.(271)

-. 적어도 신체를 부품화하는 훈육 작업은 두 단계에 걸쳐 일어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신체를 길들이는 작업으로 신체가 이전의 습관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도록 강제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신체를 길러내는 작업으로 신체가 능동적으로 이 과정을 의욕하고 여기에 참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272)

5. 베버의 정치학

  베버의 정치학은 합리적 훈육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고, 개인의 도구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형 창출을 목표로 한다.(276)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논쟁을 중심으로

1. 문제제기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서구 사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혁명적 상황은 좌파와 우파에게 모두 큰 충격-->68 혁명(288)

2. 근대 국가의 두 얼굴-리바이어던과 인륜적 실체

-. 영속화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 계약 역시 영속적으로 보증되어야 한다. 바로 계약의 보증자, 공동의 권력이 필요한 것.

  이것이 바로 국가, 리바이어던(leviathan)의 탄생. 그것은 사람들의 상호 계약에 의해 평화와 공동 방위를 위해 모든 힘과 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인격이다.(297)

-. 사람들은 국가를 통해서만 파편화된 개별자로부터 훌륭한 시민으로 이행할 수 있다. 국가는 시민들의 합의체라기보다는 시민들을 길러내는 생산적 실체다.(301)

-. 가족은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인륜적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국가에 대한 제1의 윤리적 기초이다. 그러나 근대 시민사회의 탄생은 자연적인 욕구의 의존과 만족의 체계인 가족의 체계를 분열시키면서 상대적 입장으로 이행시킨다. 사람들은 독립적인 개별자로서 ‘시민사회라는 더 큰 가족의 자식’으로 결합하고, 각자의 욕구의 만족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시민사회는 욕구들의 전면적인 상호의존체계라고 할 수 있다.(302)

5. 차이의 아상블라주를 향한 전망-정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 생태계의 어떤 것들도 자신의 특이성을 전개함에 있어 다른 것과 대립하지 않으며, 종들의 다양성과 특이성이야말로 생태계 건강의 징표다.(319)

-. 우리가 생태적이고 미적인 패러다임을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에 대한 어떤 생태적 신비화나 심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발견해야 할 정치적 주체들과 그들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상식과 보편성을 발견하기보다 차이와 특수성을 발견해내는 것은 결코 정치에 생소한 것이 아니다. 낯선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에 정치가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겐 정치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그것만큼 멀리 떨어진 것도 없다.(319~320)




Ⅲ. ‘내가 저자라면’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자가 있다. 이 책은 그의 15년에 걸친 인도여행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인물들에 대한 고찰을 해놓았는데. 그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사람 각자의 보석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별 여행자의 한사람인 니체. 니체에 대한 해설서-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의 저자 고병권은 니체를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명한다. 그리고 니체의 입을 통해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는 작업을 하라고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 나를 떠나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조망으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의 본모습을 볼수 있을때 그때가 바로 나의 제대로된 모습을 찾는 순간이겠지.

  ‘니체씨로부터 떠나라’. 이말은 임제 의현선사가 언급했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그가 부모일지라도 죽이고, 친척권속이라해도 죽여라.’라는 말과 그뜻을 같이한다고 볼수 있다. (오경웅 ‘禪의 황금시대’ p238~239)

  진정한 통찰을 얻고자 한다면 절대로 외부의 다른 것, 다른 사람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말. 그에 동참하여 나도 오늘 여행을 떠난다. 니체와 함께. 아니 궁극적으로 니체를 벗어난 여행을. 그런데 내가 가는 이길이 구본형 싸부님의 흔적을 밞아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1. 철학자의 태도

  책에서는 철학이란 용어를 “모든 금지된 것들을 찾아 나서는”여행으로 규정을 해놓았다. 우리가 당연시하게 생각되는 것들, 인간의 상식으로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들. 그런것들에 대한 도전의 여정. 그래서 니체는 철학자는 금단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라는 말을 한다.

①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위대한 철학자는 하나의 비명 속에서도 여러 개의 목소리를 구별해내는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이다.

② 당신은 지금 “어떤 사막도 옥토로 바꿀 수 있을 만큼” 풍성한가, 아니면 “어떤 옥토도 사막으로 바꾸어 버릴 만큼” 메말라 있는가?

  진리의 식물은 토양에 따라 달라진다.

  나의 토양은?

③ 철학자는 먼저 “꿀을 많이 모은 꿀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철학을 하려거든 행복해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나는 어떻게 웃고 있는가? 나는 어떤 춤을 추고 있는가?


2. 내가 가야할 길

  책의 첫머리에 니체는 사물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사상가이고, 그는 사물들의 기원에 감추어져 있는 천 개의 주름을 보는 존재로 묘사가 되어있다. 하나의 사물을 보되 그 사물에서의 단편적인 시각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수들을 뽑아낼수 있는 참나인 존재 니체. 그는 우리게에 이렇게 이야기를 건넨다.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건강과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있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으로서의 카오스! 그런데 반듯한 길이 사라지고 미로뿐이라고? 덕분에 길은 여행자들에게 나누어줄 기쁨을 숨겨둘 수 있었지.

  아직도 나는 나의 길을 찾고 있다. 그길의 도착점은 니체가 말하듯 길게 숨을 쉬고 나서 잠수해야만 심연의 깊은 바닥까지 볼 수 있는 곳이겠지.

  조금더 길게 숨을 쉬자.


3. 니체 철학의 특징

  니체의 철학은 진리를 문제삼기보다는 진리를 찾으려는 욕망을 문제삼는다. 그의 가장큰 특징은 그가 삶의 철학자이고 생의 철학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가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삶과 건강으로 이에 그가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과 질병이다.

  이같은 사상에 힘입어 우리가 당연시하게 여기었던 서구의 기독교에 대해 그는 하나의 대결구도를 표방한다. 즉, 기독교인들은 ‘이 세계’는 죄로 가득한 세계이며 천국은 ‘저 세계’에만 있다는 논리를 표방하기에 이는 그가 강조하는 생의 철학에 위배되는 것이다. 니체는 궁극적으로 철학이 죽음을 위해서 쓰일게 아니라 바로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철학에 보내는 권고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는 것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라고


4. 창조적 소수인 우리에게 전하는말

  구본형 선생님도 창조적 소수 그들의 모임 집합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다.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철학자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다. 그가 구했던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친구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구한다. 시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짐승의 무리나  신도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새로운 표에 새로운 가치를 써넣을, 함께 창조하는 자를 구한다.”

  함께 창조하는 자들의 모임. 그것이 창조적 소수가 해야할 몫중의 하나이다.


5. 진리의 다양성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이요 섬기는 신은 하느님이다. 불교의 진리는 자비요 받드는 대상은 부처이다. 이런 당연한 말에 철학자인 니체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주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도 없다.”

  

6. 초인

  니체 曰. ‘신은 죽었다.’

  신 曰, ‘니체도 죽었다.’

  학창시절 농담으로 즐겨 받았던 이야기이다. 신은 죽었다고 하는 니체.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궁극적 존재인 초인(위버멘쉬, Ubermensch)을 강조한다. 그는 이 초인을 인간을 넘어선 존재, 인간의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 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을 ‘짐승과 초인 사이에 매어진 하나의 밧줄’에 불과한 존재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그는 초인의 출현을 희망하는데 이 초인은 변신을 통해서 태어난다고 한다. 단순한 진화를 통한 결과가 아닌 또다른 변신이 있어야만 새롭게 태어난다는 초인. 아마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변화된 존재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신에게 의존하여 구원과 복음을 구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배격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할 초인으로 살기를 기대한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니체는 우리에게 여전히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자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번 더”라고 말한다.

  나는 한번 더 변화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가?


7. 니체가 권하는 독서법

  매주 정해진 책을 읽으며 주말이면 연구원 과제 작성에 힘을 쏟고있다. 그러면서 최근에 문득 떠오른 하나의 생각 ‘나는 지금 어떤 자세로 책을 읽고있나?’ 과제의 목적을 위한 독서인지 아니면 나자신의 삶을 위한 책읽기인지. 그런 의문에 니체는 다음과 같이 옳은 독서법에 대한 소개를 한다.

  니체가 권하는 독서법이란 걷는 법이나 춤추는 법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책 사이에서, 책에 의한 자극을 통해 비로소 사상을 더듬어 가는 일당에 속해 있지 않다.” “허리를 내리고 배를 압박하며 머리를 종이에 처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사이를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자, 문 밖에서 생각하는 자”가 독자로 적당하다.

  그의 이말은 초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즉 놀이와 웃음과 춤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지금 책읽는 것이 즐거운가?


8. 계획된 삶은 모두에게 좋은 것인가?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에서 ‘10대 풍광’을 발표하고온 다음날. 나는 내나이 마흔살에 정성을 들여 작성해 벽에 붙여 놓았던 ‘보물지도’를 떼내어 버렸다. 남들 보기 좋으라고 붙여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자신에 대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에 대한 실망감이라고나 할까.

  나의 스타일은 멀리 내다보고 몇 년후에 어떻게 무엇을 하며 어떤 삶으로 살겠다는 공포를 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한다는것 보다는, 좁은 시각일지언정 현재의 주어진 삶에 충실히 한발 한발 전진을 하며 나아가는 스타일이다. 10년후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겠다는 꿈을 꾸기 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연구원 과제에 어떡하든지 충실을 해야겠다는 스타일인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계획표(시간표)의 도입이라고 했던가. 합리적이고 계량적인 자기 관리의 시각에서 보면 어찌보면 나과 같은 스타일은 그렇게 모범생의 입장은 아닐것이다. 그래서인지 선물 받았던 시간 관리 다이어리도 현재는 꼼꼼히 사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내스타일대로 사는것 같다. 멀리는 아니지만 가까움의 충실함에서 비롯되는 나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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