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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9일 10시 32분 등록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집 한 권

혹은 신동엽의 시집,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집 한 권

 



생일.JPG 

 

<생일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1> 또는

<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자에 대하여

 

장영희 쓰고 김점선 그림

 

올해 봄(각각 3월과 5) 세상을 뜬 유명한 두 사람의 결합이라 책을 집어들면서부터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런 아름다운 책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거니까. (이들은 서문에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을 만들자는 취지로 임했다고 밝히고 있다.) 두 분 다 투병생활 속에서도 끝까지 작품활동(과 강의)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고, 꽃 피는 봄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장영희

1952 9 14~2009 5 9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번역가, 영어교과서 집필자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여성학사회(AAUW)에서 주는 국제여성지도자 연수자로 뽑혀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한국 문학 번역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월간샘터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수필집내 생애 단 한번을 펴냈고 이 책으로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추모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냈다.

 

이 책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다시 엮어 낸 일종의 편집 시집인데, 저자는 투병 중에도 이 칼럼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름다운 영미시를 발굴해 소개하는 이 작업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고백한다.

“<생일>은 제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책입니다. 2004 9월 초 척추암이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했던 저는 당시 쓰고 있던 신문과 잡지 칼럼 네 개 중 세 개를 포기했지만, 그 중 영미시 칼럼만은 남겨두었습니다. 알코올중독자가 갑자기 술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오듯, 글을 쓰고 책을 읽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일을 안 하면 아마도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 당시 제게 영미시 산책칼럼은 흰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였습니다. 나만 버려두고 자꾸자꾸 앞으로 가버리는 세상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단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읽은 시들은 대학에서, 또는 그후 문학을 전공하면서 읽었던 그 어떤 시들보다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북돋아주듯, 정말이지 영혼의 생일을 새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생일> 저자 서문에서)

 

 

김점선

1946 4 24~2009 3 22

서양화가

이화여대 시청각교육과(현 교육공학과) 졸업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원에 입학하던 1972년 여름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참가자를 뽑기 위한 앙데팡당 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렸는데 김점선은 관념예술에 속하는 작품을 출품해 파리 비엔날레 참가 후보로 뽑혔다. 화려하게 화단에 등단했지만 곧 관념미술에 염증을 느끼고 미련 없이 찬란한 무대에서 내려와 이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 나갔다.

1983년 첫 개인전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개인전을 열고 있다. 1987, 1988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뽑혔다.

‘나, 김점선’ ‘김점선 스타일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김점선의 그림이 있는 노트’ ‘기쁨’ ‘숨은 신’ ‘앙괭이가 온다’ ‘큰엄마’ ‘10cm 예술등의 책을 냈다.

 

 

 

내가 저자라면

 

불과 몇 년 전,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손 끝이 신문잉크로 까맣게 되도록 열 가지가 넘는 신문을 헤집어봐야 하는 나날이 있었다. 내가 놓친(소위 물먹은) 기사는 없는지, 기사는 도대체 어떻게 쓰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같은 기사를 어떻게 달리 표현했는지 보기 위해서 그냥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항상 집에 오는 길에도 남은 신문 꾸러미를 낑낑대며 품에 안고 오던 날들이었다.

 

아마도 초년병이어서 더욱 팍팍했을 그 시절, 내 가슴을 적셔주던 거의 유일한 코너가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었다. 그 작은 코너를 보는 동안은 영문학을 공부했던 문학소녀의 감수성이 되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이 시집에서 그때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던 시와 문장들을 기억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이리라.

 

한층 깊어진 가을이다. 그래서였을까? 사부님은 시집을 읽으라고 하신다. 처음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시-그 일탈의 미학>라는 책을 골랐다. 하지만 영문학자의 상세한 해설이 시집을 읽으라는 사부님의 취지에 괜히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와 시인에 대한 분석적 공부라면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지겹도록 해왔다. 그런 공부가 라면 거부감부터 느끼는 풍조에 일조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시라면 좀 닭살 돋아 하는, 그런 부류였다.

 

이 가을, 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시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집, <생일>로 방향을 틀었다. 생존, 즉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점관리 하느라 달달 외우기만 했던 시인들의 이름과 유명한 시가 나왔지만 그때 보았던 시와 지금의 시는 같지 않았다. 이제 자유로이 날개를 단 시들은 있는 그대로 춤추기 시작했다. 어머 웬일이래. 어떤 시에서는 찔끔,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특히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그랬다. 옛날엔 몰랐는데 왜 이렇게 빼어난 거야.) 운율에 맞춰, 감정을 잡고, 아름다운 또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시를 낭독해 주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이제 학교에 가도 찾아 뵐 수 없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뵐 수 없는 그 교수님이기에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옆에 있는 사람을 귀찮게 했다. 깊어가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시집을 읽어야 한다며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져 거리를 가득 메운 곳을 찾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야 말았다. 공대 출신은 듣도보도 못했을 영시를 읽어주며(영어가 더 유창했던 그 교수님만큼 멋지지는 못했겠지만) ‘아름답지? 어쩜 이렇게 썼을까~’하고 감탄했다. 김점선 화백의 그림들도 참 예쁘기 그지없었다. 뱃속의 생명도 특이한 발음과 운율의 아름다움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는지 보통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의도치 않게 영시로 태교 하는 극성 엄마가 됐다. 어느새 옆에 심드렁히 있던 사람도 흉내 내며 함께 영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가을이 가기 전에 멋진 추억을 하나 만든 것 아닌가?

 

 

 

책의 제목이 <생일>인 이유

 

(저자의 서문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대부분 모 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것입니다. 처음에 여름 기획 코너로 두 달만 쓰기로 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조금씩 연장하다가 결국 1년 동안 연재하게 된 칼럼입니다. 신문에 영시를 소개한다는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고 할까요. 어쩌면 모두의 마음속에 잠재한 시를 읽고 싶은 욕망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칼럼에 쓴 시들을 모아보니 도합 120편가량 되었고, 주제별로 크게 사랑과 희망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 중 사랑에 관한 시 49편을 골라 담고 <생일: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생일>이라는 시의 제목과 주제에서 따온 것이지요. 육체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도 중요하지만, 사랑에 눈떠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부여받는 생일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시의 원문을 참고하고 싶은 독자들은 www.yahoo.com이나 www.google.com의 검색창에 영문 제목과 시인의 이름을 넣거나 www.poetry4u.net에 가면 많은 시와 좋은 우리말 번역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열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간직한 이 책의 비밀 제목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입니다. 그래, 맞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을 만들자! 이것은 물론 저의 소망이기도 하고, 저의 의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책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책입니다. 영미문학사에서 빛나는 기라성 같은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에 아름다운 그림들을 엮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수록된 시들은 읽으면 단단한 껍질에 꽁꽁 싸여 있던 내 마음이 갑자기 속살을 드러낸 듯 속절없이 진한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무채색인 내 세상에 무지개가 뜨듯 생경하면서도 황홀한 느낌이 들고, 잊혀진 꿈처럼 나도 희로애락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란 게 있었구나 새삼 뻐근한 감동이 오고, 갑자기 이 혼잡하고 험한 세상에서 남에게 해 안 끼치고 꿋꿋이 살아있는 내 존재가 마냥 기특한 느낌이 들고, 문득이봐요, 여기 내가 있잖아요하고 옆 사람 툭 치고 눈 맞추고 이야기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러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시인은 바람에 색깔을 칠하는 사람입니다. 분명 거기에 있는데, 분명 무언가 있는 것을 느끼는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우리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입니다. 정제된 감정을 집중하고, 고르고 골라 가장 순수하고 구체적인 이미지와 진실된 언어로 우리 대신 말해줍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머리가 완전히 폭발해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목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면, 그것은 시를 쓰라는 신호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이라도 지독한 사랑을 느낄 때의 감정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들은 그래서 모두 자신이 느끼는 사랑을 말로 옮긴 사람들입니다. 남녀간의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이웃 사랑, 나라 사랑, 한 마디로 뭉뚱그려 모두 삶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정시인 새러 티즈데일은 말합니다. “나의 노래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심장입니다(It is my heart that makes my songs, not I.” 즉 자기의 심장으로 우리를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입니다.

 

이 책은 대부분 모 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것입니다. 처음에 여름 기획 코너로 두 달만 쓰기로 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조금씩 연장하다가 결국 1년 동안 연재하게 된 칼럼입니다. 신문에 영시를 소개한다는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고 할까요. 어쩌면 모두의 마음속에 잠재한 시를 읽고 싶은 욕망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중략)

 

칼럼에 쓴 시들을 모아보니 도합 120편가량 되었고, 주제별로 크게 사랑과 희망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 중 사랑에 관한 시 49편을 골라 담고 <생일: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생일>이라는 시의 제목과 주제에서 따온 것이지요. 육체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도 중요하지만, 사랑에 눈떠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부여받는 생일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생일>은 제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책입니다. 2004 9월 초 척추암이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했던 저는 당시 쓰고 있던 신문과 잡지 칼럼 네 개 중 세 개를 포기했지만, 그 중 영미시 칼럼만은 남겨두었습니다. 알코올중독자가 갑자기 술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오듯, 글을 쓰고 책을 읽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일을 안 하면 아마도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 당시 제게 영미시 산책칼럼은 흰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였습니다. 나만 버려두고 자꾸자꾸 앞으로 가버리는 세상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단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읽은 시들은 대학에서, 또는 그후 문학을 전공하면서 읽었던 그 어떤 시들보다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북돋아주듯, 정말이지 영혼의 생일을 새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중략)

 

시인들의 고뇌와 사랑, 의지, 인내, 희망을 함께 나누며 언어와 정서,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국 시는 우리 모두의 삶 자체라는 것, 시는 아프고 작은 것도 다 보듬어 안아서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시집 한 권을 읽는 따듯한 여유가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문학자가 아니라 저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제 개인적인 감상문을 짤막하게 달았을 뿐입니다.

 

(중략)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을 보고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면, 아마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겁니다.

 

2006년 봄

장영희

 

 

 

 

어른과 아이 (The Man and the Child)

 

앤 머로 린드버그

 

일하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어른

밥벌이를 하고 내일을 계획하려

근심스럽게 저녁 하늘을 훑어보고

걸을 때 서두르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어른

이웃을 의심하고 가면을 쓰고

갑옷입고 행동하며 눈물을 감추는 것은 어른.

 

노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아이

미래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기쁨으로 노래하고, 경이로워하며 울 줄도 알고

가면 없이 솔직하고 변명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잘 믿고 가식도 전혀 없이,

사랑하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아이.

 

 

아침마다 우리는 가면 쓰고 갑옷 입고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나갑니다. 내 안의 순수한 마음, 남을 믿는 마음,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을 억누르고 무관심과 무감각의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다음, 삶이라는 커다란 용과 싸우러 나갑니다.

밥벌이를 위해 서둘러 걷고, 남을 의심하고 또 미워하고, 내가 한 발짝이라도 더 올라서기 위해 남을 무시하고 짓밟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오늘의 싸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내일의 전투 계획을 짭니다.

오늘의 행복은 미래를 위해 접어두고, 가끔씩 왠지 사는 게 서글퍼져 눈물이 날라치면 매몰차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딱딱한 갑옷 입고 총알 쏟아지는 적진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가면 없이 솔직하고, 기쁨으로 노래하고 사랑하기 좋아하는 내 안의 아이는 참 살기가 힘듭니다. (24~26)

 

 

 

3 (March)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Dear March, come in!

How glad I am!

I looked for you before.

Put down your hat—

You must have walked—

How out of breath you are!

Dear March, how are you?

And the rest?

Did you leave Nature well?

Oh, March, come right upstairs with me,

I have so much to tell.

 

3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오셨나 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님,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어요?

, 3월님, 저랑 바로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29~30)

 

 

 

무명인 (I’m Nobody)

 

에밀리 디킨슨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Nobody—too?

Then there’s a pair of us!

Don’t tell!

They’d banish us—you know!

 

How dreary—to be—Somebody!

How public—like a frog—

To tell your name—

The livelong June—

To an admiring bog!

 

난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36~37)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If Thou Must Love Me)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다른 아무것도 아닌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녀의 미소와 외모와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 연민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마음으로도 사랑하지 마세요.

당신 위로 오래 받으면 우는 걸 잊고

그래서 당신 사랑까지 잃으면 어떡해요.

그저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있도록.

 

측은한 마음이나 연민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는 사랑,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달라는 시인-영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로맨스의 주인공 입니다. 장애인이자 시한부 인생이었던 엘리자베스 배릿이 주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여섯 살 연하 젊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들이며 쓴 시입니다.

또 다른 유명한 시에서신이 허락하신다면 죽은 뒤에 당신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인, 이승의 시간이 부족해서 죽은 뒤에까지 사랑하겠다는 시인에게 신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지상에서의 시간을 허락하셔서, 둘은 15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오직 사랑만을 위한 사랑의 힘이 생명의 힘까지 북돋운 것이지요. (48~51)

 

 

 

다름 아니라 (This is Just to Say)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내가 먹어버렸다오

 

아마 당신이

아침식사 때

내놓으려고

남겨둔 것일 텐데

 

용서해요. 한데

아주 맛있었소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65)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Which Are You?)

 

엘러 휠러 윌콕스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부자와 빈자는 아니에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 같은 세월

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Are the people who lift, and the people who lean….)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집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먼저 양심과 건강 상태를 알아야 한다. 짧은 인생 혼자 거들먹거리며 사는 이는 제대로 된 이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인의 지혜가 새삼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짐을 들어주는 자와 남에게 짐을 지우고 기대는 자.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고리가 아닌가요. 때로는 짐을 지우기도 하고, 또 때로는 대신 짐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아도 남에게 기대서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은 서로 비스듬히 기대서 받쳐주며 함께 걷는 모습이라고 하지요. (72~74)

 

 

 

그대와 나 (You and I)

 

헨리 엘포드

 

우리는 함께여야 합니다. 그대와 나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원합니다. 꿈과 희망,

계획하고 보고 이루어내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동반자여, 위안자여, 친구이자 내 삶의 안내자

사랑이 사랑을 부르는 만큼 생각이 생각을 부릅니다.

인생은 너무 짧고, 쓸쓸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그대와 나, 우리는 함께여야 합니다.

 

장가가는 제자에게 선물로 준 시입니다.

어렸을 적 옆집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삼신할머니는 아주 가느다란 보이지 않는 실 한쪽 끝은 남자아기 새끼발가락에, 또 다른 쪽은 여자아기 새끼발가락에 매어놓는단다.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지구 끝에 산다 해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사랑을 하게 된단다.”

그 사람과 나, 꼭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꿈을 갖는 것도 희망을 갖는 것도 그 사람과 함께여야 합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꼭 그 사람이어야 합니다. 함께 손잡은 두 사람, 이제 서로에게 삶의 안내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102~105)

 

 

 

내가 좋아하는 요리법 (A Favorite Recipe)

 

헬렌 스타이너 라이스

 

한 잔의 친절에

사랑을 부어 잘 섞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많은 인내를 첨가하고

기쁨과 감사와 격려를

넉넉하게 뿌립니다.

그러면 1년 내내 포식할

천사의 양식이 됩니다.

 

영성시로 유명한 시인은 물론 육신보다는 영혼의 음식 조리법을 말하고 있지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가슴에 사랑 믿음 인내를 지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면, 그것이야말로 살아갈 힘을 주는 천사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에 천사의 양식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작자 미상의 사랑차 조리법이 있습니다.

 

1. 불평과 화는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2.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말린다.

3.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송송 썰어 넓은 마음으로 절여둔다.

4. 실망과 미움은 씨를 잘 빼낸 후 용서를 푼 물에 데친다.

5. 위의 모든 재료를 주전자에 담고 인내와 기도를 첨가하여 쓴맛이 없어질 때까지 충분히 달인다.

6. 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 몇 개를 예쁘게 띄운 후,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따뜻할 때 마신다.

 

오늘처럼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햇살 눈부신 날, 창가에 앉아 사랑차를 곁들여 천사의 양식을 먹으면 세상이 더 환해지겠지요? (134~137)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Love Is Anterior to Life)

 

에밀리 디킨슨

 

사랑은생명 이전이고

죽음이후이며

천지창조의 근원이고

지구의 해석자

 

마침표 하나 없이 주저주저 속삭이듯 말하지만, 시인은 우주를 흔드는 거대한 사랑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만물의 알파요 오메가, 생명과 죽음을 관통하는 영겁의 힘, 천지창조의 시작,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의미이며 힘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유명한 코린토1 13장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내는 마음이라고 알려줍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다 해도, 아무리 서로 헐뜯고 짓밟는다 해도,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 사랑이 있는 한 이 세상은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주를 움직이는 에너지, 생명의 근원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달랑 자동차 한 대, 공장 하나 움직이는 에너지는 끔찍이 여기면서도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하찮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146~148)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Love Quietly Comes)

 

글로리아 밴더빌트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 나서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은

밀처럼 사랑은….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씨앗이 싹트듯

달이 커지듯 천천히 (180~181)

 

 

 

그럼에도 불구하고 (Paradoxical Commandments)

 

켄트 M. 키스

 

사람들은 때로 변덕스럽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네가 친절을 베풀면

이기적이고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정직하고 솔직하면

사람들은 너를 속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네가 오랫동안 이룩한 것을

누군가 하룻밤새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 이룩하라.

네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면

그들은 질투할지 모른다.

그래도 행복하라.

네가 오늘 행한 선을 사람들은 내일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네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세상에 내줘도

부족하다 할지 모른다.

그래도 네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인도 캘커타의 어린이집에 새겨져 있는 말로서 마더 테레사의 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른 이의 글입니다. 하지만 누가 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아도 다른 이들이 날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힘주어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누가 뭐래도 꿋꿋이 내 갈 길을 가며 내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내놓아도 세상은 묵묵부답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세상도 내게 최상의 것을 주겠지요. (184~188)

 

 

 

당신의 아이들은 (Children)

 

칼릴 지브란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은 그 집을

결코, 꿈속에서도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이란 뒷걸음쳐 가는 법이 없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라는 책에서 지브란은,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아이들은 내 소유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아이들의 세계가 따로 있고, 어른들은 꿈속에서도 그 세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부모들은 단지 활일뿐, 아이들은 그 활에서 발사되어 날아가는 화살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침범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닮은꼴이 있다는 것은 겁나지만 아주 신기한 일입니다. 죽도록 고생해도 그래도 기쁘게 사는 건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인데 내 사랑뿐만 아니라 내 생각도 좀 주면 안 될까요. 나도 어제의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들과 함께 내일의 집을 좀 넘보면 안 될까요.

그 어떤 이론도 통하지 않는 게 자식 키우는 일이 아닌지요. (206~208)

 

 

 

기도 (A Prayer)

 

새러 티즈데일

 

나 죽어갈 때 말해주소서.

채찍처럼 살 속을 파고들어도

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

그 아픔을 기쁘고 착한

미소로 받아들이려 애썼다고.

심장이 찢어진다 해도

내 영혼 닿는 데까지 깊숙이

혼신을 다 바쳐 사랑했노라고.

삶을 삶 자체로 사랑하며

모든 것에 곡조 붙여

아이들처럼 노래했노라고.

 

 

시인은 기도합니다.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죽을 때 혼신을 다 바쳐 사랑하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삶 그 자체로 사랑하며 기쁘게 살다 간다고 깨닫게 해달라고.

나도 시인처럼심장이 찢어지는아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새삼 생각해봅니다. 때로 온 마음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겁나는 일입니다. 휘날리는 눈은 맞으면 차가울까봐 사랑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에 찔릴까봐 사랑하지 못합니다. 버림받을까봐 사랑하지 못하고, 상처받을까봐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영부영 살아가다가 정작 떠나야 할 날이 올 때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하고 떠난다는 회한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면 어떡하지요? (2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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