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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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병음 Zhuāngz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자로서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고 성은 장(莊)이며 이름은 주(周)이다. 송(宋)의 몽읍(蒙邑:河南省商邱縣 근처) 출생했는데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사기’에 따르면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편에 따르면, 초나라 위왕(威王)이 사람을 보내 정치를 보좌해 주길 청했으나, 장자는 거절하였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부르기도 하며,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부른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선인이 바로 남화노선(장자)이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장자는 이처럼 상식적인 사고 방식에 의문을 품고 유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 따위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과 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장자는 이 일화 속에서 개인의 안락함이나 대중의 존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인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떨어져나가지 않게 끈으로 발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친한 친구인 혜자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송(宋) ·명(明)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전통적으로 장자 자신이 이 책의 내편을 썼다고 본다. 내편 각 편의 제목들은 모두 소요유逍遙遊처럼 세 글자로 된 것이 특색이다. 내편에 비해, 외편과 잡편은 거의 모두 장자의 후학들이나 그 사상에 공명한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으로 계속 글을 지어서 일종의 ‘장자 시리즈’가 되어 나온 것이라 보는 것이 보통이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장자’를 읽기 전에
-. 유교와 도교는 동양 사상사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는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양陽이라 한다면, 좀더 신비한 내면을 강조하는 도교의 가르침을 음陰이라 할 수 있다.(p17)
-. 도교(道敎, Taoism)라 하는 것은, 엄격하게 따져, ‘도가 사상’과 ‘도교 신앙’으로 양분할 수 있다. 도가 사상의 근간은 노자老子와 장자壯子의 사상이다. 노자의 사상은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장자의 사상은 ‘장자’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17)
-. 장자의 도가 사상이 중국 철학사에서 문학,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당대唐代에 와서 그것은 선禪 불교를 꽃피우는 직접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선승禪僧들, 특히 9세기 임제야말로 장자의 진정한 계승이라 여겨질 정도이다.(18)
-. 기원후 4세기 노장 사상이 전성기를 맞은 당시 북송北宋의 곽상(기원후, 312년 사망)이라는 사람이 그 때까지 돌아다니던 여러 가지 사본들을 정리하여 65,000여 자, 33편으로 줄여서 편집하고, 거기에다 자기 나름으로 주注를 달았다. 이렇게 곽상이 편집한 ‘장자’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장자’라는 책.
곽상은 ‘장자’를 33편으로 하고 이를 내편內篇 7편, 외편外篇 15편, 잡편雜篇 11편으로 나눔. 이 중 내편 7편은 곽상이 편집하기 전부터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이 내편 7편을 대체적으로 장자 자신의 저술로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데 많은 학자가 동의.
내편 각 편의 제목들은 모두 소요유逍遙遊처럼 세 글자로 된 것이 특색. 내편에 비해, 외편과 잡편은 거의 모두 장자의 후학들이나 그 사상에 공명한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으로 계속 글을 지어서 일종의 ‘장자 시리즈’가 되어 나온 것이라 보는 것이 보통(19~20)
-. 도道를 포함하는 몇 가지 중심 사상에서 노자와 장자 둘은 보는 눈이 서로 같았겠지만,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다음 새로운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한 장자는 마땅히 자기 나름의 형식으로 접근.
노자와 장자 둘 사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기본적 차이점들은 무엇인가?
첫째, 노자의 ‘도덕경’이 주로 간략한 어록이나 시詩나 아름다운 산문 형식인 데 반하여, ‘장자’는 주로 이야기 형식이다.
둘째, 노자의 ‘도덕경’은 어느 면에서 정치 지도자를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 참여를 염두에 두었다. 장자의 일차적 관심은 무엇보다 개인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깨닫기 위해 힘쓸 것을 강조한 것. 노자가 도가적 ‘정치’ 실현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장자는 도가적 ‘삶’의 완성에 초점을 맞춘셈
셋째, 노자가 도道를 주로 생성 변화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궁극적인 귀착점이라고 강조한 데 반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그 변화에 몸을 맡겨 함께 흐르거나 그대로 변하기를 더욱 강조. ‘도덕경’은 주로 도의 ‘생’生하는 측면을 말하였는데, ‘장자’는 도의 ‘화’化하는 기능을 부각
넷째, 노자는 대체로 자기의 생각을 홀로 개진한데 반하여, 장자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사상들, 특히 이론학파들과 부단히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첨예하게 전개. 따라서 ‘장자’에는 풍자와 해학과 비유는 물론 여기저기서 예리한 이론의 칼날이 번쩍임(21~22)
-. 장자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려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우리가 떠받드는 상식적인 고정관념, 이분법적 사고방식, 거기에 기초를 둔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을 우리에게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서 이런 것들의 내재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발견해 없애도록 도와 줄 뿐. 좀 어렵게 말하면 ‘장자’는 한가지 체계적인 ‘인식 내용’을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일깨움’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23)
■ 제 1편 자유롭게 노닐다(逍遙遊)
‘장자’ 제1편은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다’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 문헌에서는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맨 앞에 두는 것이 보통. 그런 의미에서 이 편에서 말하는 절대 ‘자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변화變化’와 ‘초월超越’, 이것이 ‘장자’ 전체의 주제이며 가르침의 궁극 목표라 할 수 있다.(25)
1.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고
-. 장자의 주제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실현(26)
-. 장자 첫머리는 인간이 생래적으로 지닌 실존적 한계를 초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 이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선언(27)
2. 매미와 새끼 비둘기
여름 한철 사는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짧은 삶’(32)
3. 다른 이야기 하나
장자가 신화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것은 몇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장자에서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무엇에 관한 이야기라는뜻.
둘째, 장자라는 책이 ‘문자로’ 이해할 자료가 아니라는 점. 장자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문자적 진리’를 안겨다 주려는 책이 아니라 ‘상징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37)
셋째, 이렇게 ‘상징’을 넘어서 ‘상징이 가리키는 바’를 바라볼 때 우리는 ‘변해서’ 새로운 실재에 동참한다는것. 그러므로 붕새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은 붕새의 날개가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몇 킬로미터냐, 그런 큰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이 기체역학상 가능하냐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붕새의 변화와 초월과 자유에서 우리가 가진 실존의 한계를 초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고, 우리 스스로 변혁變革의 날개를 펴는것(36~37)
4. 큰 박과 손 트는데 쓰는 약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고,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밖에 못했으니, 똑같은 것을 가지고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52)
5. 쓸모 없는 나무
혜자는 위나라 재상을 지낸 사람. 장자에서 장자의 호적수로 등장.
혜자는 “박은 본질적으로 반드시 물을 담는데 쓰는 것”이란 고정 관념으로 박을 본 것. 이렇게 자기가 이미 설정한 ‘쓸모’라는 관념으로 박을 보았기 때문에 박을 ‘물에 띄울’ 생각을 못한것.(54)
-->궁극 변화, 초월, 절대 자유, 해방을 말하는 장자의 가르침이 논 갈고, 길쌈하고, 아기 기저귀 갈고, 장사하고, 돈벌고, 출세하는 일에는 분명 쓸모가 없겠지만, 그것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현상계의 실상을 궁구하고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궤뚫어 보게 해줄뿐만 아니라, “주고받기와 시비와 깔고앉음과 깔리움밖에” 있을 수 없는 인간의 정황, 이 숙명적 실존의 한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풍요하고 자유롭고 싱그럽게 사는 일에 쓸모가 있다면, 이 어찌 저 자질구레한 일들의 쓰임새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57)
■ 제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齊物論)
-. 이 편篇의 주제는 우리가 우리의 실존적 한계성을 초월하여 궁극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립對立의 세계에서 대립을 초월超越한 ‘하나’의 세계, 실재實在의 세계를 꿰뚫어 보야야 한다는것(59)
-. 이 편은 많은 주석가가 ‘중국 철학사의 최고봉’으로 여길 만큼 유명, 그리고 장자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가 어렵고, 철학적으로도 가장 많이 논의하는 편(59)
1.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오상아吾喪我’는 장자의 핵심 개념에 속함. 내가 나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 내가 진정한 내가 되었다는 이야기(62)
2. 하늘의 퉁소 소리
우주의 온갖 사물은 각각의 모양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67)
-->여기서 땅의 소리를 묘사한 장자의 문장은 중국 문학사에서 최고의 명문名文으로 알려져 있음(67_
-->하늘 소리는 그 자체로 독립된 소리가 아니라 인간과 대지가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내도록 해주는 바로 그것, 그 자체로는 들리지 않지만 모든 소리들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것, 바람 혹은 기氣 그 자체, 바람이나 기의 근본인 道와 도가 발휘하는 힘을 의미(67)
-->우리는 이런 사람의 소리와 땅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것. 하늘의 소리는 우리 몸의 귀로 들을 수 없다. 그것은 남곽자기처럼 바로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열리는 영적인 귀로만 들을 수 있으므로,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어 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우리 자신을 잃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닐까?(68)
3. 지적知的활동과 감정의 작용
-->남곽자기는 여기서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는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지적활동과 감정이라 했다.(71)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걱정하고 뉘우치고 변덕을 부리고 고집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퉁소에서 나오는 갖가지 노랫소리라는 것. 이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기는 지만, 이런 것들이 나의 현실적 삶의 바탕을 이뤄 지금의 실존적 ‘나, ’잃어버려야 할 나‘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런 것들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내가 있을 수 없다는 것(72)
4. 참주인
-. 우리가 그 실체를 알든 모르든 그 참모습에는 보탤 것도 뺄것도 없다.(73)
-. 일단 온전한 몸을 받았으면, 우리는 그것을 일부러 망치지 말고, 저절로 쇠잔해질 때까지 기다린다.(74)
5. 조삼모사朝三暮四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의 양극을 조화시킨다.(91)
6. 털끝과 태산
-. 부산하게 좇아 다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받아들이자.(101)
-. 갓나서 죽은 아이도 무한히 짧은 순간에 비하면 무한히 오래 산 것이고,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도 무한히 긴 시간에 비하면 무한히 짧게 산 셈이다. 따라서 나자마자 죽은 아기가 팽조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할 수도 있고, 팽조가 그 아기보다 짧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물을 양쪽 관점에서 동시에 보기 때문(102)
7. 도道에는 경계도 이름도 없다
-. 도道가 훤히 들여다보이면 도가 아니고 말도 변론만을 위한 것이라면 부족하다. 인仁이 융통성 없이 굳으면 두루 퍼질 수 없다. 겸손도 드러나게 하면 믿기지 못하며 용기가 사람을 해치는 것이라면 될 성부른 것이 못 된다.(106)
-. 도道는 마음에 간직하거나 체험으로 알아야지 사변이나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따지면 영원히 절대타자(絶對他者, the wholly other)일 수밖에 없다.(108)
8. 사람과 미꾸라지
내가 보기에 인의仁義의 시작이나 시비是非의 길 따위의 것은 [결국 이처럼 주관적 판단 기준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하고 혼란한데 내 어찌 이런 것이나 따지고 앉아 있겠는가?‘(114)
9. 성인聖人의 경지
-. 해와 달과 어깨동무,
우주를 끼어 차고,
모두와 하나된다.
모든 것 혼잡한 대로 그냥 두고,
낮은 자리 높은 자리 무관하다.
사람들 빠릇빠릇,
성인은 어리숙.
만년 세월 온갖 일.
오로지 완벽의 순박함 그대로.
모든 것들이 모두 그러함 그대로.
그리하여 서로가 감싸안는다.(118~119)
-. 성인이란 언뜻 보기에 대립이나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들의 ‘그러한 그대로의’ 실상實相을 꿰뚫어 보고 모두 하나로 포용包容한다는것.(120)
10. 여희麗姬의 후회
-. 장자는 중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이름을 우화적으로 쓴 작품(121)
-.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시기 직전,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간다. 나는 죽음의 길, 너희들은 삶의 길. 어느 길이 더 좋은 것인가 신神만이 알 것”(122)
-. 장자는 삶과 죽음은 사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변화 과정일 뿐이므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슬퍼할 것이 없듯이 ‘삶’에서 ‘죽음’으로 변화하는 것에 야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122)
11. 꿈에 술을 마시며
-.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의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항상 깨어 있는 줄 알고, 주제넘게도 그러함을 분명히 아는 체하지.(126)
-. 장자는 삶이 꿈이지만 그 속에 그나름의 실재성(實在性)이 있다는 것을 시사(127)
12. 논쟁이 되지 않음은
-.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자네도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딴 사람들은 더울 깜깜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탁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129)
-.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견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른바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뜻. 여러 번 지적한 대로 ‘시각주의’의 ‘입장없는 입장’을 말한다.(131)
13. 나비의 꿈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物化)’라 한다.“(134)
-->‘나비의 꿈’ 이야기는 ‘장자’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이 이야기 때문에 옛날부터 장자를 ‘몽접주인夢蝶主人’이라고 했다.(134)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물화物化’이다. 이 단어가 결국은 제2편 ‘제물론’의 마지막 결어結語인 셈. 그러면 ‘물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이것과 저것으로 갈려 독립한 개물의 세계는 아니다.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 서로 어울려 있는 관계, 꿈에서 보는 세계와 같이 서로가 서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서로에게 나오기도 하는 ‘꿈 같은 세계“이다. 이런 세계는 개물이 제각기 독특한 정체성正體性과 함께 ’하나‘라는 전체안에서 서로가 서로가 될 수 있는 불이성不二性이 병존하는 세계(135~136)
■ 제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養生主)
이 편篇은 신나는 삶, 활기찬 삶, 풍성한 삶이 어떤 것인지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한다.(139)
1. 삶에는 끝이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착하다는 일 하더라도
이름이 날 정도로는 하지 말고,
나쁘다는 일 하더라도
벌받을 정도로는 하지 마십시오.
오직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공양할 수 있고,
주어진 나이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141~142)
-->여기서 ‘앎’이니 ‘지식’이니 하는 것은 제2편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저런 것을 끝없이 따지는 ‘분별지分別智’를 말한다. 이런 분별지는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 ‘도덕경’ 제48장에서도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도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이나 단견 같은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의식意識으로 얻은 지식을 하나하나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런 것을 더 얻지 못해 안달하며 쏘다니면 이야말로 위험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뜻. 동서를 막론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앎을 버림(unknowing), 혹은 ’배운 것을 버림(unlearning)'에 이를 때, 비로소 ‘하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여기서도 결국 지식이 아닌 직관直觀으로 실재의 세계를 궤뚫어 볼 수 있음을 말한셈(143)
2. 포정의 소 각뜨기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포정이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세 단계를 거쳤다는것. 처음에는, 눈에 소밖에 안 보이던 단계. 다음에는, 소가 소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단계이고, 나중에는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神으로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것(149)
3. 못가의 꿩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158)
4. 노자의 죽음
노자老子가 죽었을 때 진실秦失이 문상하러 갔는데, 곡을 세 번만 하고는 나와 버렸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그분의 친구분이신데도 그런 식으로 문상하셔도 되는 것입니까?”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어쩌다가 세상을 떠난 것도 순리이기 때문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른다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여들 틈이 없지. 옛날 사람들은 이를 일러 ‘하늘님의 매닮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했네.”(160)
5. 장작과 불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할 뿐, 불이 전해지면 그 불은 꺼짐을 모릅니다.(163)
■ 제 4편 사람 사는 세상(人間世)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물론 ‘마음을 굶기는 것’으로, 사회나 정치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비우고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라는 것이다. 이 편은 장자가 세상과 완전히 무관하게 사는 은둔주의나 도피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 참여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진정 건설적이고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을 고치고 차원 높은 방도를 터득해야 함을 강조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67)
1. 심재心齋할 때
-->몸은 앉아 있으나 마음이 쏘다니는 상태를 ‘좌치坐馳’라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좌망坐忘’과 맞서는 개념. 좌망이 마음의 구심求心운동이라면, 좌치는 마음의 원심遠心운동인 셈(185)
2. 거백옥의 충고
태자가 어린애가 되거든 당신도 어린애가 되고, 멋대로 행동하거든 당신도 멋대로 행동하십시오. 엉터리같이 굴거든 당신도 함께 엉터리같이 구십시오. 그 사람을 잘 인도해서 흠 잡을 데 없는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199)
3. 세 가지 비유
-. 당신은 사마귀라는 벌레를 이시지요? 화를 내어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수레에 맞섭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짓은 제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조심하고 신중하십시오. 스스로의 훌륭함을 자랑하여 거스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202)
-. 당신은 호랑이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림.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 호랑이가 살기殺氣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202)
4. 장석匠石과 사당祠堂 나무
-. 석이 말했다. “재목이 못 돼. 아무짝에도 못 써. 그러니까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거야.”
목수 석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당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려는고, 저좋다는 나무들에다 비기는가? 아가위나무, 참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 따위? 열매가 익으면 뜯기고 욕을 당하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기고, 그런 나무들은 자기들의 [열매 맺는] 재능 때문에 삶이 비참하지. 하늘이 준 나이를 다 못 살고 도중에서 죽는 법이니, 스스로 세상살이에서 희생을 자초한 셈이라. 모든 것이 다 이와 같은 것이지.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 없기를 바랐네.(206)
5. 나무들의 재난과 점박이 소의 행복
-. 개오동나무, 잣나무, 뽕나무는 사람들에 의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 이것은 스스로 재목감이 됨으로 당한 재난.
이마에 흰 점이 박힌 소나 코가 젖혀진 돼지, 치질 앓는 사람은 황하 신의 재물로 바칠 수가 없습니다. 무당들은 이것들을 상서祥瑞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지만, 신인神人들은 오히려 이를 크게 상서로운 것으로 여김(212)
-->지금 당장 누구의 주관적 ‘쓸모’의 기준에 따라 쓰이지 않더라도, 심지어 요즘 많이 논의되듯 ‘명예퇴직’을 당하더라도,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 천박하게 이해한 실용주의나 실리주의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어느 의미에서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길 일이라는것. 긴 안목으로 볼 때, 이런 일을 통해서 이제까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실현自己實現을 이루어 낼 수도 있기 때문.(213)
6. 곱추의 특권
이처럼 외모가 온전하지 못한 곱추도 몸을 보존하고 천수를 다하는데, 하물며 그 덕이 곱추인 사람이겠습니까?
-->노자 같은 성인이 ‘덕이 곱추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덕경’ 제20장에서 자기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합니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 않는 바람 같습니다.“
이렇게 덕이 ‘곱추인 사람’ 노자야말로 얼마나 자유스러운 사람이었던가!(214,216)
■ 제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德充符)
이 편의 제목 덕충부德充符는 ‘덕德이 가득해서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는 표시’라는 뜻(223)
1.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성인은 자유롭습니다. 성인에게는 앎이 화근으로, 규약도 아교풀로, 얻음도 사람 사귐으로, 솜씨 부림도 장사하는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성인은 꾀하는 일이 없으니 앎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쪼개지 않으니 아교풀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잃음이 없으니 얻음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물건을 돈 될것으로 보지 않으니 장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 네가지 함이 없어도 하늘이 죽粥을 줍니다. 하늘이 주는 죽이란 하늘의 음식, 하늘에서 음식을 받으니 인위적인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252~253)
■ 제 6편 큰 스승
여기서는 진인眞人을 새롭게 등장시켜 이런 ‘참사람’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라 했다. 그러나 이런 진인도 결국 도道를 대표하는 사람이므로 궁극적으로 도道야 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 혹은 스승 중의 스승이라는것(261)
1. 진정한 앎
하늘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하늘과 함께 살아가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그의 ‘앎이 안는것’으로 그의 ‘앎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완합니다. 이리하여 하늘이 내린 수명을 다하여 중도에 죽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이 앎의 완성입니다.(262)
2. 진인眞人
그러므로 진인(眞人, 참사람)이 있어야만 참된 앎이 있습니다. 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옛날의 진인은 모자란다고 억지 부리지 않고, 이루어도 우쭐거리지 않고, 무엇을 하려고 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실수를 해도 후회하지 않고, 일이 잘되어도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사람의 앎이 높이 올라 도道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264)
3. 옛날의 진인은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 이것이 바로 진인眞人의 경지.
-->진인은 한마디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는 즉, ‘양극의 조화’를 터득한 경지가 진인이 다다른 경지임을 말한셈.(271)
4. 죽고 사는 것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밤낮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 모든 사물의 참모습입니다.(272)
5. 여우女偊가 가르치는 득도得道의 단계
삶을 죽이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삶을 살리는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사물을 대할 때, 보내지 않는 것이 없고,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으며, 허물어뜨리지 않는 것이 없고, 이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를 일러 어지러움 속의 평온이라 합니다. 어지러움 속에 평온이란 어지러움이 지난 다음에는 온전한 이름이 있다는 뜻입니다.“(288)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우리 인간이 도를 들을 수 있는 최초의 창구는 역시 ‘글’이라는 지적.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손가락을 달로 오해하면 곤란하지만 손가락이 우리에게 달을 보게 해주는 한, 없어서는 안 될 수단.
글을 읽되 거기에 메이지 말고 읽어라.9290)
6. 사생존망이 일체임을 터득한 네 벗
“내 왼팔이 점점 변하여 닭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벽을 깨우겠네. 내 오른팔이 차츰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를 잡아 구워 먹겠네. 내 뒤가 점점 변하여 수레바퀴가 되고 내 정신이 변하여 말馬이 되면, 나는 그것을 탈 터이니 다시 무슨 탈것이 필요하겠나. 무릇 우리가 삶을 얻은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우리가 삶을 잃는 것도 순리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르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여들 틈이 없지.(294~295)
■ 제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
1. 혼돈에 일곱 구멍
“사람에겐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 줍시다.” 했습니다.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주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습니다.(347)
-->서양에서는 혼돈을 ‘카오스(chaos)'라 하여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질서가 생기기 이전이나 질서가 무너진, 무질서의 상태로 보기 때문. 이에 반하여 동양, 특히 도가에서는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 모든 가능성의 총체로서 긍정적인것.
-->여기 혼돈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은 원초적 비이분법적 의식 상태가 이분법적 의식 상태로 변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348)
■ 부록 / 외편.잡편에서 중요한 구절들
-. 장자 학자들은 외.잡편外雜篇을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가진 장자 후학後學들이 ‘장자’ 내편 이후 계속 확대 부연하거나 자기들 나름으로 새로운 생각을 덧붙인 것이라고 본다.(351)
-. 그러면 외.잡편은 내편과 어떻게 다른가? 첫째, 내편의 각 편들이 ‘소요유逍遙遊’처럼 그 편의 기본 내용을 요약한 석 자를 골라 제목을 붙인 데 반하여, 외편.잡편은 각편 초두의 두 자나 석 자를 따서 제목을 삼았다.
둘째, 내편에서는 장자에 대해 언급할 때 ‘장주莊周’라는 본명을 썼는데, 외.잡편에서는 ‘장자莊子’라는 존칭을 썼다.
셋째, 내편에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없는데, 외.접편에는 그런 것이 많다.
넷째, 내편에는 도道, 덕德, 성性, 명命, 정精, 신神 등의 글자를 따로따로 썼는데, 외.자편에는 도덕道德, 성명性命, 정신精神등 복합어가 많다. 이것은 외.잡편이 내편보다 뒤에 씌었으리라고 추측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섯째, 표현과 내용이 내편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352~353)
1. 오리 다리, 학의 다리
그러므로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늘여 주어도 괴로움이 따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 주어도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며, 본래 짧은 것은 늘일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인의仁義가 사람들의 본래 적 특성일 수 있겠습니까? 저 인仁을 갖춘 사람들, 괴로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354)
2. 우물 안의 개구리
북해약北海若이 대답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곳에 갇혀 살기 때문이오... 지금 당신은 좁은 강에서 나와 큰바다를 보고 비로소 당신이 미미함을 알게 되었소. 이제 당신에게 큰 이理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려.”(359)
-->바로 이 문단이 그 유명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의 출전出典. 여기서 우물안 개구리는 앎의 한계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빗댄것(359)
3. 장자 아내의 죽음
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자가 문상을 갔습니다. 그 때 장자는 두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연스런 변화의 일부로 본다. 죽음을 계절의 변화와 같이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죽음을 극복한다는 이야기. 순명順命이요, 안명安命이요, ‘아모르 파티(amor fati)'이다.(372)
4. 바다새의 행.불행
“새를 새 되게 하라”는것. 각자에게는 천부의 본성이 있는 것. 이를 무시하고 새를 사람으로 대접하면 곤란. 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 그대로 살고, 본성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373~374)
5. 내기 활
“기왓장을 놓고 내기 활을 쏘면 잘 맞고, 허리띠 고리를 놓고 쏘면 주저하게 되고, 황금을 놓고 쏘면 마음이 혼란해진다. 기술은 마찬가지인데, 뭔가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있어서 그 외면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무릇 외면적인 것을 중시하면 내면적인 것에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377)
-->이런 외적 조건에 좌우되어 흔들리는 것은 ‘기술’의 단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377)
6. 싸움 닭 기르기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길렀습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습니다. “닭이 되었느냐?”
“아직 안 되었습니다. 지금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습니다.”
......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상대하지 못하고 돌아서 달아나 버립니다.”(379)
7. 신과 허리띠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입니다.(383)
8. 쓸모 없음과 쓸모 있음
-->궁극적으로는 쓸모가 있거나 없거나 어느 한쪽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 쓸모 있고 없고를 떠나 허심, 무심의 경지,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경지, 자유자재한 경지가 궁극의 자리라는것(387)
9. 빈 배
......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에는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행하겠습니까?“
-->이 ‘빈 배’ 이야기는 시남자라는 사람이 노나라 임금에게 한 충고(388~389)
10. 의연한 손숙오
...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그저 의연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려 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 데 마음을 쓰겠습니까?...
-->집착이 없이 ‘허허로운’ 모습이다. 집착을 버리는 일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데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법구경’에는 “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데서 벗어나야 정말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394~395)
11. 장자의 죽음
장자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이를 듣고 말했습니다. “... 내 장례를 위해 이처럼 모든 것이 갖추어져 모자라는 것이 없거늘 이에 무엇을 더 한다는 말인가?”...
-->장자 제32장의 마지막 구절(415~416)
■ 후기
지금껏 ‘장자’의 맛을 조금은 본 셈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언젠가는 ‘장자’도 모두 잊어야 합니다.
물고기 잡는 틀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 물고기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 토끼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말言은 뜻을 전하기 위한 것. 뜻을 전했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나도 자기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外物 26:13). 417
Ⅲ. ‘내가 저자라면’
‘장자’에서 그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제1편 ‘소요유’逍遙遊이다. 소요유는 말그대로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장자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자에는 인간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무엇이 있다.
장자는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우리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장자는 우리를 각성과 변화에로의 초대를 권한다.
이런 장자의 세계로 몇가지의 내용을 통해 빠져보자.
1. 장자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려 하는가?
언급한대로 장자를 읽다보면 사람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 내용들이 있어 나의 인내를 시험하기도 한다.
장자는 공자의 유교사상과 같은 사람으로써의 도리와 철학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마땅히 살아가야할 인생에 있어서의 진리들을 쉬운 말로써 친절하게 풀이해 주지도않는다.
다만 장자는 우리에게 삶의 깨달음로의 세계로 초대하고 그 열매를 각자가 거두어갈수 있도록 불친절한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
2. 성인聖人의 경지
장자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성인의 경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해와 달과 어깨동무, 우주를 끼어 차고, 모두와 하나된다.
모든 것 혼잡한 대로 그냥 두고, 낮은 자리 높은 자리 무관하다.
사람들 빠릇빠릇, 성인은 어리숙. 만년 세월 온갖 일.
오로지 완벽의 순박함 그대로. 모든 것들이 모두 그러함 그대로.
그리하여 서로가 감싸안는다.
모든 것들을 감싸안는 포용력의 경지가 성인의 경지이다.‘
아, 어렵다!
3.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프로이트와 융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세계의 미지의 너머의 탐구세계의 한부분에는 꿈이라는 요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꿈이 현실세계에서의 부분의 표현이라느니, 내재된 욕망의 표출이라느니, 이룰수 없는 현실속에서의 대리만족이라느니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산다.
장주莊周는 일찍이 ‘나비의 꿈’을 통해 ‘몽접주인夢蝶主人’이라고 불리었다. 그는 여기에서 서양에서의 현실과 꿈의 이분법적인 시각과는 달리,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라는 구절을 통해 서로 어울려 있는 관계성을 일찍이 얘기 하였다.
‘내가 꾸는 꿈이 현실이고 바로 지금 그 현실이 내가 취한 꿈이다.
꿈의 세계, 현실의 세계 당신은 그것을 구별할수 있는가?‘
4. 토론의 세계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과 나의 의견이 다름에도 그것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적절한 결론으로 표출되게끔 하는 도출 과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얼마전 MBC에서 방영되었던 100분토론 이라는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론 프로그램으로써 그 화제의 중심에서는 손석희라는 사회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멘트와 진행방식의 시시비비를 떠나 그가 8년동안 정들었던 프로를 떠나면서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는 방법중에 하나는 토론’이라고.
이같은 중요성에 힘입어 일찍이 장자는 나와 상대방의 논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놓았다.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자네도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딴 사람들은 더울 깜깜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탁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
5. 중용의 길
남성들의 조직체 내에서 회자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앞에 서지도 말고 그렇다고 뒤에 처지지도 말고 적당히 중간만 가라는.
중용의 길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많은 않다. 가정, 모임, 직장 등 모든 관계의 장에서는 중간의 위치보다는 타인들보다 더욱 잘나 보이고 때론 튀고싶을 때가 있다. 가만히 있는다는것, 모른다는 것에대한 뒤처지고 있다는 강박관념이 들 때도 있다.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착하다는 일 하더라도 이름이 날 정도로는 하지 말고, 나쁘다는 일 하더라도 벌받을 정도로는 하지 마십시오. 오직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공양할 수 있고, 주어진 나이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6. 해석의 의미
동양고전중 특히 노자, 장자와 같은 조금은 현학적인 내용들의 글들에서는 역자들의 풀이가 뒤따라옴을 알수 있다. 한자의 어려운 용어탓도 있지만 좀체 내용을 알수 없는 내용에서는 친절하게 그들의 해석이 되어있다. 학창시절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전과를 보면서 정답을 알아내듯이.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역자의 시각 또는 정형화된 틀의 정답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림작품을 감상시 그 그림의 밑에는 저자 이름과 제목만 명시되어 있고 그림에 대한 해석이 기재되어 있지 않듯이, 어찌보면 고전이라는 것도 저마다의 시각으로써 그 향기를 풀어내는 것이 순리가 아닐지.
장자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의 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할 뿐, 불이 전해지면 그 불은 꺼짐을 모릅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떤 내용으로 와닿는가? 이런 구절에 역자의 친절한 해석이 필요할 것인가? 글을 통해 구름에 달가듯이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든, 나도 손가락과 같이 불을 지피는 역할로써의 다짐을 하든 그건 읽는 독자의 몫에 맡기는 여백의 미도 필요하겠지.
7. 상대방이 된다는것
모든 대화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공감이 필요하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오롯이 타인의 얘기를 듣기 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관철시키기 위해 주장을 한다. 이같은 대화법에 있어 장자는 ‘거백옥의 충고’라는 단락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명쾌한 하나의 명제를 제시한다.
‘태자가 어린애가 되거든 당신도 어린애가 되고, 멋대로 행동하거든 당신도 멋대로 행동하십시오. 엉터리같이 굴거든 당신도 함께 엉터리같이 구십시오. 그 사람을 잘 인도해서 흠 잡을 데 없는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인의 경지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마찬가지이다. 전적으로 그상대방이 된다는것. 그 경지의 끝은 어디일까?
8. 만용의 끝
영업부 재직시절. 만만찮은 나의 성격이 부서장과의 언쟁 끝에 폭팔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인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표쓰면 되잖아요.“
이말을 하고 뒤를 돌아 나오는 순간,
‘야, 거기 안서.’ 라는 멘트와 함께 전화기가 날아왔다.
‘......’
잘난것도 없으면서 무어그리 성질을 냈는지. 다행히 아무 일이없이 무마가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놈의 성질을 죽여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장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더욱 나의 마음에 와닿는다. 하지만 본성이 바뀌긴 힘든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씩 어떤 상황에 대해 울컥하는 마음이 있으니.
‘당신은 사마귀라는 벌레를 이시지요? 화를 내어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수레에 맞섭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짓은 제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조심하고 신중하십시오. 스스로의 훌륭함을 자랑하여 거스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9. 쓸모없음과 쓸모없음
세상에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사람이 나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면 쓸모가 없는 사람일까? 혹시 이같은 생각을 그사람도 똑같이 하고있지 않을까? 결국 오십보 백보가 아닐까?
장자는 ‘장석匠石과 사당祠堂 나무’의 글 등을 통해 인간의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에 이만 그살아남에 대한 의미의 반전을 이야기함으로, 어느 한쪽의 치우침에 대한 경고를 심어준다.
10. 나는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는가?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길렀습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습니다. “닭이 되었느냐?”
“아직 안 되었습니다. 지금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습니다.”
......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상대하지 못하고 돌아서 달아나 버립니다.”
나는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는가?
11. 비움의 의미
“재윤아, 이책 네가 읽었니?“
“예.”
“삼촌 책에다가 이렇게 낙서를 해놓으면 어떻게 하냐.”
최근에 조카와의 대화담이다. 연구원 덕택에 읽지않던 두꺼운 책을 읽는게 조카의 눈에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일주일동안 손때를 묻혀가며 정성스럽게 읽어 놓았던 책을 책장에 꽃아 놓으면 조카는 곧잘 그것을 펼쳐보곤 했었다. 그런데 펼쳐 보는건 좋은데 본인도 나의 방식을 모방해서인지 연필로 줄을 죽죽 그어놓는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이다. 나름 책을 아끼는 입장인지라 조카이지만 그렇게 책을 읽어 나가는 모습에 대견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먼저 나의 책에 흠집을 내는것 같아 조금은 아까운(?) 마음이 먼저 드니.
비워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비워져 있어야 채워 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역자 오강남은 책의 후기에서 언젠가는 ‘장자’도 모두 잊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장자의 책에서 소개된 시남자가 노나라 임금에게 ‘빈 배’라는 글로한 충고는 나에게 이 비움의 의미를 절실히 호소하고 있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에는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
항상 차있는 나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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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 | 주역강의 -서대원 | 혁산 | 2009.11.23 | 4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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