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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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순자 荀子
기원전 298~기원전 238 (추정)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성은 순(荀)이며 이름은 황(況)이다. 조(趙)나라(지금의 山西省 安澤縣)에서 태어나 일찍이 공부를 시작, 어려서부터 수재로 이름이 났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순경(荀卿)이라고도 부르고 한나라 때에는 선제의 이름을 휘(諱)하여 손경자(孫卿子)라 부르기도 했다.
장년이 되자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는 제나라 직하(稷下, 지금의 山東省 臨淄縣 북쪽)로 유학가서 학술계의 우두머리 격이 되어 존경받는 좨주(祭酒) 벼슬을 하고 대부(大夫)가 되었다. 후에 모함으로 제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는데 재상인 춘신군이 그를 난릉(蘭陵, 지금의 山東省 蒼山縣)의 수령(守令)으로 임명하였다. 춘신군이 암살당하자(BC 238)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 문인교육과 저술에 전념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순자의 학문적 성취가 진정으로 구현된 것은 그의 사후 수십 년이 흐른 뒤 한나라에 와서 유학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뒤라고 평가된다. 그는 격동의 전국시대에 제자백가의 모든 학설을 섭렵하는 치열한 학문적 노력으로 초기 유가 사상의 학문적 체계를 <순자>를 통해 집대성했다.
순자는 공자의 유학(儒學)을 발전시킨 사상가로 맹자(孟子)와 쌍벽을 이룬다. 그는 평생을 학문에 매달려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고, 중국 통일의 기운을 몸으로 느끼며 현실 정치에 접목할 수 있는 유학의 새로운 틀을 구성해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통일 제국의 이념적 토대가 된 것은 오히려 그의 제자로서 법가를 기치로 내건 한비자와 이사의 학문이었다.
순자의 사상은 공자(孔子)와 자궁(子弓)을 스승으로 하고 유가(儒家)의 실천 도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들보다 한층 합리적이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의 사상사적(思想史的) 위치는 서양철학사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교되기도 한다. 유학 사상이 2000년 이상 전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순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후대의 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보는 그의 염세주의적 관점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이룩한 많은 지적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다.
<순자>에서도 제자들은 “손자(즉 순자)는 성인이 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일부러 미친 사람 같은 행색을 하고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중략) 이것이 그의 명성이 드러나지 않고 제자들이 많지 않으며, 빛이 널리 비추이지 못한 까닭이다. (1024)”라고 그의 스승을 감싸고 있다.
유가철학의 발전에서 순자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의 주요저작인 《순자》의 역사적인 영향력에서 볼 수 있다. 전체 32장인 《순자》는 대부분 그 자신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천론(天論)'•'예론(禮論)'•'성악(性惡)' 등의 여러 편 외에 그의 제자나 그 밖의 관계되는 것이 들어 있다. 후대에 수정되거나 위조되지 않아서 원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순자》는 중국 철학 발전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즉, 초기 철학 서적들은 일화와 경구(警句)로 채워진 서술양식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의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더 이상 설득력 있게 전달해주지 못했으나 순자는 유가 철학자 가운데 최초로 스승의 말•대화를 기록한 제자들의 글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쓴 체계적인 논문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다. 또한 총론적인 설명, 연속적인 논증, 세부적인 상술, 명료성에 중점을 두는 엄격한 서술형태를 취했다.
현존하는 <순자> 20권 32편은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당시 있었던 322편을 편집하여 <손경신서(孫卿新書)> 32편으로 편찬한 것을, 당(唐)나라의 양량(楊倞)이 편(編)의 순서를 바꾸고 주(註)를 붙여 <손경자(孫卿子)>라 하였고, 후에 간단히 <순자>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손경부(孫卿賦)> 10편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김학주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대만 국립타이완대학 중문연구소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서울대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중국어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와 연세대학교 특별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논어 이야기>, <중국 문학의 이해>, <중국 고대의 가무희>, <중국 문학사>, <한대의 문인과 시>, <공자의 생애와 사상>, <노자와 도가 사상>이 있으며, 역서로는 <대학>, <중용>, <장자>, <노자>, <열자>, <논어> 등이 있다.
깔끔한 번역으로 수천 년 전의 고전을 술술 읽히는 데 도움을 주었던 듯하다. 그의 다른 번역서도 읽어보아야겠다.
내가 저자라면
사부님이 추천해주신 <순자>
지난주 <강의>를 읽고 <맹자>를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너는 <순자>를 읽는 게 좋겠다’고 해 주신 사부님의 말씀 덕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순자>를 주문했다. 한 권 가격이 3만원이 훌쩍 넘더니, 도착한 책은 역시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다.
사실 내가 맹자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중략)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서당에서는 『맹자』로써 문리를 틔운다고 합니다. (213)”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왔기에 논리적이고 문리를 틔운다는 말에 약했고, 거기에 넘어갔다.
<순자>를 추천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도덕성 기준이 순자의 ‘성악설’을 보면서 조금 더 다듬어져야 하는 필요에서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사부님의 추천 이유를 조금은 더 알 듯도 했다. 순자는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내 지금도 그 학문적 신선함이 뛰어나다. 그 때문에 정통 유가에서 배제되고 비주류로 대접받았으나, 그의 변형적 수용과 답습이 아닌 새로운 이론의 창출은 내가 하고 싶던 ‘바로 그 일’이었다. (그 때문에 정통 학문을 하는 곳에서 벌써부터 이단 취급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순자의 심정이 백분 이해된다.)
오해받고 있는 성악설은 알고 보면 뼛속까지 깊은 인간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늘의 뜻을 기다리기보다 인간이 노력해가면서 바꿀 수 있다는 점, 관상보다는 마음을 닦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이 사람이 정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런 것도 추천해 주신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애초에 <맹자>를 보고 싶게 만들었던 논리적인 것에 대한 갈구 역시 <순자>의 논리적 구성을 보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단, ‘성악’ 편에서는 조금 흥분한 듯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논리적이던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니 ‘엄청 흥분했군’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있기도 했다.)
결론은, 추천 덕분에 이 책을 읽은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는 것!
순자의 특징
번역자인 김학주 교수님의 설명이 잘 되어 있어 그의 설명을 추려 본다.
순자가 유가 이외의 다른 학파의 사상도 널리 공부해, 이들을 유가 사상 속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4~15)
이렇게 다른 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순자는 그들의 사상을 널리 공부하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학파의 현실적인 사상들이 반대로 순자에게 영향을 미쳐 정통적인 휴학과는 다른 독특한 사상 체계를 이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순자는 단순한 공자의 후계자가 아니라 고대의 중국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15)
혼란 속에서는 어짊과 의로움 같은 덕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에 민감한 순자로서는 불가피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순자는 공자의 이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려 하였던 것이다. (16)
순자의 사상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37)
순자의 가장 큰 공헌이 바로 이 예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새롭게 정의하였기 때문입니다. (419)
순자는 이미 사람은 예의와 분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매우 긍정적인 인간관을 피력해두고 있습니다. (421)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426)
성악설에 대한 오해
그가 말하는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지만 충분히 개선 여지가 있다는 매우 긍정적인 인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성품 및 지능은 군자와 소인이 똑같다. 영예를 좋아하고 치욕을 싫어하며,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것도 군자와 소인이 다 같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다. (125)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23)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이기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훌륭한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424~425)
여러분에게는 순자의 이와 같은 진보적이고 신선한 관점이 매우 놀라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논의와 비교해보더라도 그 선도가 떨어지는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충격인 것은 그에게 일관되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게서 훨씬 더 깊이 있는 인간주의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425)
성선설, 성악설에 대한 양비론
지난주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 지적했듯,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모두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김학주 교수 역시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맹자가 사람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동정심이나 사랑 등을 근거로 해 성선설을 주장한 것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775)”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주 <강의>에서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는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로 자연을 재단하는, 이른바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사회론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14)
거슬러 올라가면 이기적 인간 본성론은 근대사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 논리이고, 자본의 자기 증식 논리이고, 자본 축적 논리입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 담론이지요. (416)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17)
맹자와 순자, 정통과 이단아?
유가의 정통으로 인정받는 맹자에 비해 순자는 이단으로 취급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순자가 이미 같은 유가로서 맹자에 대해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는 ‘성악’ 편에서 맹자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으나 ~~~해서 그것은 거짓이다’는 것이 계속 이어진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매 문장 마무리마다 ‘이러이러해서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며,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거듭 같은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이, 기존까지 보이지 않던 흥분된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되시거든 누구든 성악 편은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 책의 홍보문구인 ‘순자를 읽어야 할 이유’를 읽어 보면 그가 왜 이 시대에 재조명되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밝혀진다.
“순자는 공자가 창시한 유학을 현실적•객관적 입장에서 체계화하고 이론적으로 재정립하여 경학(經學)과 경전(經傳)의 전수 면에서는 맹자(孟子)보다도 그 공이 훨씬 큰 전국 시대 최고의 사상가이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이단시되었지만 유가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은 순수한 유학자였다. 그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선왕, 성인 그리고 시•서•예 등의 경전을 존중하고 묵자(墨子)•양주(楊朱) 등 그 시대 다른 학파들을 비판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드러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 비판의 대상에는 공자의 정신주의를 계승한 자사와 맹자까지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맹자가 후세 유가들에 의해 정통으로 자리잡은 반면 순자는 "엄혹한 법치의 선구자(蘇軾)"라는 혹평을 받으면서 유가의 도통에서 배제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에게 '이단'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순자가 맹자처럼 시종 인의(仁義)와 왕도(王道)만을 철저히 떠받들지 않고 예의(禮儀)와 법도(法度)를 중시하고 패도(覇道)도 어느 정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순자가 인의•왕도 이외에도 예의•법도•패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약육강식의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전국(戰國)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순자의 현실 감각으로 볼 때 지금 흔히 논의되고 있는 유교의 현대화는 순자에 대한 재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김학주 교수의 맹자와 순자의 비교를 덧붙인다.
순자는 그다지 높은 벼슬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생애를 학문과 교육에 바쳤다. 맹자의 글이 열정적이고 격한 데 비해, 순자의 글은 냉정하고 논리적이라는 점도 그의 생활을 통해 얻어진 성격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19)
맹자가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4)
맹자는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억누르려는 패자의 정치를 완전히 배척하고 있지만, 순자는 현실적 실제적인 문제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253)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
그의 학문적 권위나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그가 유가의 이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404)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천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천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405)
순자와 묵자
또한 묵자와 순자를 비교하는 대목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묵자에 대해서는 맹자보다 더 지식이 없으므로, 김학주 교수의 비교를 권한다.
물건을 절약해서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순자는 묵자와 견해가 같다. (중략) 세상의 물자는 본시부터 풍부하여 절대로 부족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순자의 견해이다. (336)
독특한 하늘 사상 (天論)
<강의>에서 요점정리를 받은 것처럼, 순자가 유가의 ‘이단’이 된 것은 ‘하늘(天)’ 사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순자는 하늘(즉 자연)을 이용하자는 현대적 과학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주장은 일식이나 월식 등은 드물게 일어나는 불규칙한 자연현상일 뿐 불길한 징조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마음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힘을 부정한 그는 이어 일반 백성의 종교적인 의식과 미신에 대해서도 세련된 해석을 했다. 기우제와 같은 미신적인 의식은 단지 ‘인간의 감정을 좋게 해줄 뿐'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지식인은 그것을 감정의 꾸밈 정도로 여길 뿐 귀신의 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유가사상 속에서 과학적 사고와 일치하는 합리주의의 흐름을 처음으로 열었다. 순자가 신선하다고 하는 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행동과 사고를 통해 하늘을 많이 알아야 한다. 하늘을 잘 알아야 하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자의 이러한 사상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과학 정신과 완전히 합치된다. (24)
하늘에 대한 순자의 독특한 견해를 논하고 있다. 하늘은 지각도 의지도 없이 다만 영원 불변한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에게 화나 복을 내려 줄 수 없으며, 그것은 모두 사람 자신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자는 하늘과 사람의 분수를 완전히 분리하고 사람은 하늘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사람은 예의 법도를 만들어 하늘을 제어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하늘을 논하면서도 예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562)
(추가, 예를 중시하는 순자의 사상)
예는 순자 사상의 중심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특히 주의해 읽어야 한다. (중략) 다만 그의 제사에 대한 기본 태도는 죽은 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해석이 눈길을 끈다. (629)
순자는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중략) 순자의 예는 법의 의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를 법가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405)
<강의>에서의 내용을 복습!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입니다. (409)
인간의 적극 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409)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개정판을 내면서
순자는 어떤 학자보다도 중국 유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상가이다. (중략) 그러나 유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순자는 맹자 못지않게 중요시되어야 한다. 특히 유학의 현대화가 추구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현실 감각이 뛰어난 순자에 대한 연구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될 줄로 믿는다. (6)
옮긴이의 말
순자가 맹자처럼 시종 인의와 왕도만을 철저히 떠받들지 않고 예의와 법도를 중시하고 패도도 어느 정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7)
『순자』는 어떤 책인가?
1. 유가에서의 순자의 위치
공자의 사상은 맹자와 순자에 의해 더욱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다른 학파들을 압도하고 오랫동안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4)
맹자가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4)
순자가 유가 이외의 다른 학파의 사상도 널리 공부해, 이들을 유가 사상 속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4~15)
이렇게 다른 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순자는 그들의 사상을 널리 공부하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학파의 현실적인 사상들이 반대로 순자에게 영향을 미쳐 정통적인 휴학과는 다른 독특한 사상 체계를 이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순자는 단순한 공자의 후계자가 아니라 고대의 중국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15)
혼란 속에서는 어짊과 의로움 같은 덕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에 민감한 순자로서는 불가피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순자는 공자의 이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려 하였던 것이다. (16)
2. 순자의 생애
순자는 이곳에서 폭넓은 학문의 기틀을 잡았을 것이다. (17)
순자는 그다지 높은 벼슬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생애를 학문과 교육에 바쳤다. 맹자의 글이 열정적이고 격한 데 비해, 순자의 글은 냉정하고 논리적이라는 점도 그의 생활을 통해 얻어진 성격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19)
3. 순자의 저서
4. 순자의 사상
순자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분리시켰다.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고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2)
사람은 행동과 사고를 통해 하늘을 많이 알아야 한다. 하늘을 잘 알아야 하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자의 이러한 사상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과학 정신과 완전히 합치된다. (24)
성악설은 흔히 순자의 기본 사상이며 대표적인 사상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기본적인 관념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하다. (26)
순자의 성악설은 그 성격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26)
“배워서 행할 수 없고 노력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본성이라 한다. 배워서 행할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을 작위라 한다.” (28)
순자의 성악설은 단순히 “사람의 본성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개발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보려는 적극적인 뜻을 지닌 것이다. 순자는 “길거리의 사람 누구나가 성인이 될 수 있고, 소인이라도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본성과 감정을 다스려 보려 하였던 것이다. (28)
사물의 관찰이나 판단을 정확히 하자면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맑고 깨끗함에서 얻어진다. (29)
다시 말하면 마음의 욕망이나 잡된 생각을 없애고 텅 비우고 한 가지 일에 통일시킨 다음 고요히 사색하는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맑고 깨끗한 마음에서 제대로 지각이 작용해 올바른 인식이 얻어진다. (29~30)
순자는 또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주장을 하는 것은 마음 한 구석이 욕망이나 이익 같은 데 가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31)
순자가 생각하는 예의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회적인 계급 질서이다. 곧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 귀하고 천한 사람, 또는 어른과 아이의 분별을 올바르게 짓는 것이다. (33)
순자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무리를 이룬다”면서 인간의 사회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국가나 정치 제도도 모두 사람들을 잘 모여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35)
순자는 유가의 전통을 따라 이상적인 정치를 한 옛 임금의 이상을 받아들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오래 되어 잘 알 수 없는 옛 임금보다는 그 전통을 계승한 후왕, 즉 후세의 임금 또는 근세의 임금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36)
5. 순자의 중요성
순자의 사상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37)
유교의 정통이 만약 맹자가 아닌 순자로 이어졌더라면 유교가 지배해 온 중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 한(漢) 민족이 서양에 못지않은 과학 문명을 건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37)
순자는 그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의 사상도 참고하고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가나 명가 같은 다른 학파들의 사상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37~38)
중국 고대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순자>는 반드시 읽어야만 할 책이다. (38)
제1권
제1편 학문을 권함(勸學)
순자가 그의 사상을 서술함에 있어서 이처럼 학문에 대한 기본 태도부터 밝히고 있다는 것은 그의 학자로서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39)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계곡 가까이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 못하며, 옛 임금들이 남긴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40)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 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 동안 공부한 것만 못하였다. (42)
군자는 나면서부터 남과 달랐던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잘 이용할 줄 아는 것이다. (42)
태만하여 자신을 잊는다면 재앙이 닥칠 것이다. 강한 것은 스스로 떠받치고 서지만, 유약한 것은 스스로 묶이게 된다. (45)
행동은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중략) 선을 행하고 사악함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50)
학문이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방법에는 끝이 있지만, 그 뜻은 잠시라도 버려둘 수가 없다.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고, 학문을 버리면 짐승이 되는 것이다. (51)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근소근 말하고 점잖이 움직여 모두가 법도가 될 만하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밖에 안 되니, 어찌 일곱 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학문을 하였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그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하는 것을 시끄러움이라 하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얘기하는 것은 뽐냄이라 한다. (53~54)
학문은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더 편리한 것은 없다고 한 것이다. (55)
비루한 것을 묻는 자에게는 대답하지 말 것이며, 비루한 말을 하는 자에게는 묻지 말 것이며, 비루한 얘기를 하는 자의 말은 듣지 말 것이며, 다투려는 자와는 말다툼을 하지 말아야 한다. (58)
학문이란 본디 배운 것이 한결같아야 한다. 한 번은 잘하였다 한 번은 잘못하였다 하는 것은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이며, 잘하는 것은 적고 잘못하는 것은 많은 자는 걸주나 도척일 것이다. 배움을 온전히 하고 배움을 다한 연후에야 학자라 할 것이다. (60)
학문의 극치에 이르러 눈은 아름다운 빛깔보다도 이를 더 좋아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보다도 이를 더 좋아하며, 입은 달콤한 맛보다도 이를 더 좋아하고, 마음은 온 천하를 차지하는 것보다 이를 더 의롭게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권력과 이익으로도 그를 기울어뜨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도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며, 온 천하도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60)
제2편 자기 몸 닦는 법(修身)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기 몸을 닦아야 하는가를 논하고 있다. (63)
선함을 보면 마음을 가다듬고 반드시 스스로를 살펴보고, 선하지 않은 것을 보면 걱정스런 마음으로 반드시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64)
나를 비난하더라도 올바른 사람은 나의 스승이고, 나를 옳게 여기면서 올바른 사람은 나의 친구이고, 나에게 아첨하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이다. (64)
소인은 이와 반대로 심하게 난동을 부리면서도 남들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을 싫어하고, 매우 못났으면서도 남들이 자기를 어질다고 여겨주기 바란다. (64)
선함으로써 사람들을 인도해 주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고, 선함으로써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을 순조로움이라 한다. (68)
들은 것이 많은 것을 박식하다 하고, 들은 것이 적은 것을 천박하다고 한다. 본 것이 많은 것을 제대로 안다 하고, 본 것이 적은 것을 비루하다고 한다. (69)
그러므로 학문은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목표가 있어 내가 이룩하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에 나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니, 혹은 늦기도 하고 혹은 빠르기도 하며,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지기도 하지만, 어찌 그곳에 함께 도달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77)
생각이 민첩하고 총명해 막힘이 없는 것이 성인이다. (79)
제2권
제3편 구차한 짓을 하지 말라(不苟)
순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 교양 있는 이상적인 지식인인 군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논이 한창 유행하였다. 이 편에서는 그러한 시대 풍조를 따라 주로 군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논하고 있다. (87)
마음이 넓고 너그러워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 (91)
오직 정성이 있는 곳에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성을 지키면 일에 성공하지만, 정성을 내버리면 일에 실패한다. (102)
제4편 영예와 치욕(榮辱)
이 편의 앞부분에서는 영예와 치욕이 생기는 원인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뒷부분에서는 좀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그 원인들을 개괄적으로 논하고 있다. (112)
교만한 것은 사람들의 재앙이 된다. 공경스럽고 검소한 것은 모든 무기를 물리칠 수가 있다. 비록 창칼의 날카로움이라 하더라도 공경스럽고 검소한 것의 날카로움은 당해내지 못한다. (113)
잘 살펴 알면서도 상처를 받는 것은 남을 시샘하는 마음 때문이다. 널리 알면서도 궁지에 몰리는 것은 남을 욕하기 때문이다. 청렴하려 하면서도 더욱 더러워지는 것은 입으로만 떠들기 때문이다. (중략) 몸가짐을 곧게 하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보다 앞서려 하기 때문이다. 깨끗한데도 사람들이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용감한데도 남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신의가 있으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소인들이 힘쓰는 것이어서, 군자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114)
남과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여긴다. (중략) 그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다. (116)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중략) 자기가 실패했으면서도 남을 탓하는 것이 어찌 바보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120)
타고난 재능과 성품 및 지능은 군자와 소인이 똑같다. 영예를 좋아하고 치욕을 싫어하며,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것도 군자와 소인이 다 같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다. (125)
제3권
제5편 관상은 정확하지 않다(非相)
사람의 관상으로 운명을 판단함이 옳지 않음을 주장한 내용이다. 사람의 길흉은 그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타고난 겉모양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42)
형상이 비록 나쁘다 하더라도 마음과 행동 규범만 훌륭하다면 군자가 되는 데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 (143)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뜻을 논하고 그에 관해 쓴 글들을 견주어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만 키가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잘나고 못난 것을 분별하며 서로 망령되이 뽐내기만 할 것인가? (147)
천년 전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오늘 일부터 잘 살펴야 하며, 억만 가지 일을 알고자 한다면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일부터 살펴야 한다. (154)
천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사물의 실질만을 좋아하고 그 무늬인 이론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비루하고 범속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159)
먼저 생각하지도 않고 일찍이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말이 나오기만 하면 도리에 들어맞고, 무늬를 이루면서도 그 뜻이 어긋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움직이거나 변화를 따라 막히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이 성인의 이론이다. (167)
제6편 12명의 학자를 비판함(非十二子)
군자는 자신을 수양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만, 남들이 더럽게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신의가 없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만, 남들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능력이 없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만,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187)
제7편 공자의 가르침(仲尼)
매우 중요한 자리를 지키며 중대한 일을 맡아 잘 처리해 천자의 총애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절대로 후환이 없게 하는 술법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남들과 화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202)
지혜 있는 사람은 일을 할 때 가득 찼을 때에는 모자란 경우를 생각하고, 평탄할 때에는 험악한 경우를 생각하고, 편안할 때에는 위험한 경우를 생각한다. (202)
제4권
제8편 유학의 효험(儒效)
내용 구성이 짜임새 있고 문장에서 기세가 느껴진다. (208)
“선비가 조정에 있으면 곧 아름다운 정치를 하고, 아랫자리에 있으면 풍속을 아름답게 합니다.” (213)
내가 천하면서 귀해지려 하고, 어리석으면서 지혜롭게 되려 하고, 가난하면서 부유해지려 한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오직 학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배운 것을 행하면 선비라 불리고, 그것에 힘쓰면 군자가 되고, 그것에 통달하면 성인이 된다. (223)
능력은 적은데도 큰 일을 하려 하는 것은, 마치 힘은 적으면서도 무거운 것을 들려는 것과 같아서 그의 몸이 부서지고 뼈가 부러질 것이다. (227)
학문은 실천할 때에 이르러야 종착점에 다다른다. 실천해야만 분명해지며, 분명해지면 성인이 된다. (244)
타고나는 본성은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지만 교화시킬 수는 있다. (247)
제5권
제9편 올바른 정치 제도(王制)
맹자는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억누르려는 패자의 정치를 완전히 배척하고 있지만, 순자는 현실적 실제적인 문제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253)
순자가 현실적인 경제 정책을 힘주어 얘기하고 있는 것도, 그 시대의 어느 유가 사상가들보다도 순자가 현실에 대해 예민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81)
그러므로 한 가지 원칙과 한 가지 원리는 바로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이것을 행하면 성인이라 할 수 있다. (290)
제6권
제10편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법(富國)
나라를 풍족하게 하는 도리는 쓰는 것을 절약하여 백성들을 넉넉하게 해주고, 그 남는 것을 잘 저장하는 것이다. (319)
순자는 세상일의 모든 책임을 궁극적으로 임금에게로 돌리고 있다. (331)
물건을 절약해서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순자는 묵자와 견해가 같다. (중략) 세상의 물자는 본시부터 풍부하여 절대로 부족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순자의 견해이다. (336)
이것은 다름 아니라 근본적인 것과 말단적인 것, 원류가 되는 것과 말류가 되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355)
제7권
제11편 왕도와 패도(王覇)
패도의 인정이나 예의의 강조는 순자 사상의 특징을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365)
나라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그릇이요 무거운 짐이니, 위치를 잘 가린 다음 그것을 놓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375)
나라라는 것은 크게 다르시면 커지고, 작게 다스리면 작아진다. (378)
임금은 어린아이를 보육하듯이 백성들을 대해야 한다. (397)
순자에 의하면 유자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가 될 수 있다. 유자가 유가의 윤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부강해져서 왕자의 정치가 이룩된다는 것이다. (415)
제8권
제12편 임금의 도리(君道)
순자는 (중략)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임금이 자신의 몸을 잘 수양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416)
도량형기나 법칙 같은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말류의 수단이지, 다스림의 근원은 아니다. 군자가 다스림의 근원인 것이다. (420)
임금에게는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믿을 만한 측근이 있어야만 한다. 그들의 지혜는 사물을 판단하기에 충분하고, 그들의 바르고 성실함은 사물을 판정하기에 충분해야만 한다. (449)
제9권
제13편 신하의 도리(臣道)
명령을 따르면서 임금을 이롭게 하는 것을 순종이라 하고, 명령을 따르면서 임금을 불리하게 하는 것을 아첨이라 하고, 명령을 어기면서 임금을 이롭게 하는 것을 충성이라 하고, 명령을 어기면서 임금을 불리하게 하는 것을 찬탈이라 한다. (460)
어진 사람은 반드시 남을 공경한다. (470)
제14편 훌륭한 선비를 끌어들이는 법(致士)
그러므로 좋은 법이 있어도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경우는 있어도 군자가 있는데 나라가 어지러워졌다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479)
제10권
제15편 군사를 논함(議兵)
순자는 시종 군사와 용병의 근본은 백성들의 마음을 잡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용병의 근본도 덕을 가지고 백성들을 친근히 함에 있다는 것이다. 유가적인 군사론이라 할 수 있다. (489)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반드시 일을 공경히 한 데에 원인이 있고, 그 일이 실패하는 것은 반드시 일을 함부로 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507)
“지금 너는 근본적인 문제는 찾으려 하지 않고 말단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으니,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있는 까닭이다.” (517)
제11권
제16편 나라를 강하게 하는 법(彊國)
순자는 힘에 의한 정치를 배격하는 한편 예의를 바탕으로 하여 도의에 의한 정치를 해야만 나라가 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532)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고 나라의 목숨은 예의에 달려 있다. (533)
탕임금과 무왕은 바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부렸다. (549)
지금 세상에서 영토를 늘리는 일은 신의를 늘리는 일만큼 중요하지 않다. (551)
제17편 하늘에 대하여 논함(天論)
하늘에 대한 순자의 독특한 견해를 논하고 있다. 하늘은 지각도 의지도 없이 다만 영원 불변한 원리에 의해 운행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에게 화나 복을 내려 줄 수 없으며, 그것은 모두 사람 자신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자는 하늘과 사람의 분수를 완전히 분리하고 사람은 하늘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사람은 예의 법도를 만들어 하늘을 제어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하늘을 논하면서도 예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562)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들의 행동 방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563)
현대어로 하늘은 자연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이 자연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 (565)
작위를 가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추구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 이것을 하늘의 직무라 한다. (565)
오직 성인만은 하늘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566)
하늘에는 영원 불변하는 도가 있고, 땅에는 영원 불변하는 원리가 있고, 군자에게는 영원 불변하는 몸가짐이 있다. (572)
군자는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에 힘쓰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흠모하지 않기 때문에 날로 발전한다. 소인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은 버려 두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을 흠모하기 때문에 날로 퇴보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날로 발전하는 까닭과 소인이 날로 퇴보하는 까닭은 한 가지이다. (573)
사람에게는 예의보다 더 밝은 것이 없다. (579)
하늘을 위대하게 여기고 그 생성의 힘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과, 물건을 저축하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중략)
물건을 그대로 두고 그것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과 능력을 다해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중략) 그러므로 사람으로서의 입장을 버리고 하늘을 생각한다면 곧 만물의 실정을 잃게 될 것이다. (580)
제12권
제18편 올바른 이론(正論)
순자는 예의와 함께 상여와 형벌도 매우 중시하고 있다. (600)
제13권
제19편 예의에 대하여 논함(禮論)
여기에서는 예가 바로 나라를 흥하게 하는 요건이며, 개인도 예를 통해 올바른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략) 이 예는 순자 사상의 중심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특히 주의해 읽어야 한다. (중략) 다만 그의 제사에 대한 기본 태도는 죽은 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해석이 눈길을 끈다. (629)
돌아가신 뒤에야 필요한 것을 만들고 갖추고 하는 것이다. (653)
제14권
제20편 음악에 대하여 논함(樂論)
유가에서 음악은 예와 함께 그들 사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예로는 사람의 행동과 겉모양을 규제하고, 음악으로는 사람의 성정을 다스렸다. (중략) 음악은 천지 자연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물론, 음악이 그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683)
즐거우면 곧 그것이 목소리에 나타나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684)
노래와 음악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사람들을 매우 빠르게 변화시킨다. (690)
예의와 음악의 법통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한다. (695~696)
제15권
제21편 가려진 마음은 열어야 한다(解蔽)
이 편에서는 이처럼 가려진 것을 벗겨 주어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올바른 사고를 갖게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704)
마음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희고 검은 것이 바로 앞에 있다 하더라도 그의 눈은 보지를 못하고, 천둥소리 북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하더라도 그의 귀는 듣지를 못한다. (705)
마음이 텅 비고 한결같아지고 고요한 것을 크게 맑고 밝다고 하는 것이다. (719)
마음으로 참고하고 고증하면 만물은 아울러 알 수가 있게 된다. 몸으로 일에 대해 성의를 다하면 곧 아름다워진다. 모든 일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를 택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722)
사물에 정통한 사람은 사물들을 사물댈 잘 처리하고, 도에 정통한 사람은 사물들을 사물대로 아울러 잘 이해한다. (723)
본디 글을 좋아했던 사람은 많은데, 창힐의 이름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그가 글씨에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726)
탁한 밝음은 밖으로 빛을 발하고, 맑은 밝음은 안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728)
어진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공손하고, 성인이 생각하는 것은 즐겁다. (728)
대체로 사람의 본성을 알면 사물의 이치도 알 수가 있다. (734)
학문을 한다는 것은 본디 사물의 결말이 나는 기준을 배우는 것이다. (734)
임금이 일을 드러내 놓고 하면 곧은 말을 하게 되고 남을 모함하는 말은 되돌아가며, 군자들이 가까이 오고 소인들은 멀어지게 된다. (739)
제16권
제22편 올바른 명칭(正名)
명칭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올바른 사고와 논리를 세운다는 뜻이다. (741)
이익을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 의로움을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을 행위라 한다. 사람에게 지각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앎이라 하며 앎이 모여 있는 것을 지혜라 한다. 사람에게 지혜의 원인이 되는 것을 재능이라 하며 재능이 합쳐져 있는 것을 능력이라 한다. (742)
본디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알기가 쉽고, 그것을 실천해 보면 쉽고도 편안하며, 그것을 지키고 보면 자기 입장이 편안해진다.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그가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되고, 그가 싫어하는 일을 당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의 말은 이와 반대가 된다. (761)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욕망은 대단하다. (763)
밖으로 물건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안으로 걱정이 없는 자는 있을 수가 없다. (769)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곧 색깔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다 해도 천한 일꾼이라도 눈을 즐겁게 할 수가 있고, 소리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해도 귀를 즐겁게 할 수가 있으며, 거친 음식과 채소 국이라 하더라도 입을 맛있게 해줄 수가 있고, 거친 천의 옷을 입고 거친 짚신을 신었다 해도 몸을 편안히 해줄 수가 있으며, 좁은 집은 갈대발에 볏집 깔개와 초라한 책상과 대자리를 쓴다 해도 몸은 안락할 수가 있다. (770~771)
근거 없는 말과 남이 보지 않을 때의 행동과 남이 듣지 않을 때의 모의를 군자는 신중히 하는 것이다. (771)
제17권
제23편 사람의 본성은 악함(性惡)
순자의 정치 사상이나 예의 존중 같은 학설이 모두 이 성악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순자의 독특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중요한 편이다. (773)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지금 사람들이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며 충성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
(중략)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따른 교화와 예의의 교도가 있어야 하며, 그런 뒤에야 서로 사양하게 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갖게 되어 다스림으로 귀결될 것이다. (774)
이러한 주장은 맹자가 사람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동정심이나 사랑 등을 근거로 해 성선설을 주장한 것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775)
본성이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어서 배워서 행하게 될 수 없는 것이며,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의란 성인이 만들어 낸 것이어서 배우면 행할 수 있는 것이며,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배워서 행할 수 없고 노력해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본성이라 하고, 배우면 행할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을 작위라 한다. (777~778)
사람을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그의 질박함이 떠나고 그의 자질도 떠나버려 선한 것을 반드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778)
예의나 법도 같은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악하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이다. (783)
무릇 사람들이 선해지고자 하는 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중략) 진실로 자기에게 없는 것은 반드시 밖에서 구하려 한다. (중략) 이로써 본다면 사람이 선하게 되려고 하는 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784)
지금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하는데, 분별 있게 잘 들어맞거나 증거가 잘 들어맞는 일이 없고, 앉아서 말한 것을 일어나서는 바로 실천할 수가 없으며, 그것을 펴도 바로 시행할 수가 없으니, 어찌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788)
“자기 처자식이 생기면 어버이에 대한 효도가 시들고, 바라던 욕망이 채워지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시들고, 작위와 봉록이 차면 임금에 대한 충성이 시드는 법입니다. (중략)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그렇지 않습니다. (799)
사람에게 비록 아름다운 본성과 자질이 갖추어져 있고 지혜로운 마음과 분별력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현명한 스승을 구해 그를 섬기고 좋은 친구를 골라서 그를 벗해야 한다. (79~80)
제24편 훌륭한 군자(君子)
덕을 갖추었으면서도 뽐내지 않고 자기의 선함을 한결같이 추구한다면, 그를 성인이라 할 수 있다. 뽐내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는 그와 능력을 다투려는 이가 없고, 훌륭한 것을 받아들여 그가 하는 일에 응용하게 될 것이다.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니지 않은 듯 행동하기 때문에 천하의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814)
제18권
제25편 상(相) 가락의 노래(成相)
옛 악곡의 이름 (중략) 옛날에 절구질을 할 때 부르던 노동요 (중략) 따라서 이 편은 제26편 부와 함께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중략) 내용은 임금은 어진 사람을 잘 등용해야만 나라가 올바로 다스려진다든가, 성인의 도란 어떤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를 해설하고 있다. (816)
아아! 우리는 어찌된 셈이기에
좋은 시절 만나지 못하고
난세에 태어났는가?
충심으로 대하려 해도
내 말 따르지 않네. (836)
공로가 현저한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고
숨겨진 공로는 다시 현저히 드러나게 하면,
백성들은 성실함으로 돌아갈 것이네. (840)
제26편 부(賦)로 노래함(賦)
순자는 문학에 대한 조예 또한 깊었던 듯하다. (중략) 문학사에서도 중국 최초의 부로 중요한 기록이다. (845)
부는 본디 굴원이나 송옥 같은 초기의 작가들에게는, 격한 자기의 감정을 서술하는 수단이었다. (중략) 구름이나 누에 바늘 같은 물건을 읊은 순자의 방법은 한대 부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준 듯하다. 한대의 부는 주로 사물을 읊는 것이었으며, 뒤에는 왕실과 임금 행차의 화려함 등을 읊어 임금에게 아부하는 문학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859)
천 년이면 반드시 세상이 뒤바뀐다는 것은
옛날부터의 법도이니,
제자들이 학문에 힘쓰고 있으면
하늘은 그것을 잊지 않으리니,
성인께서 두 손 모아
기다리는 때가 곧 올 것이네. (861)
제19권
제27편 위대한 학문의 개략(大略)
순자의 대체적인 개략을 쓴 것은 아니다. 이 편은 순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이것저것 모은 것 (865)
임금은 어진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지혜는 어진 마음이 부리는 것이어야 하고, 예의는 어진 마음을 다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왕자는 어짐을 먼저 내세우고 예가 뒤를 따르게 한다. 하늘의 운행도 그러하다. (870)
빙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폐백이 너무 과하면 그 사람의 덕이 손상되고, 예물이 사치스러우면 예를 망치게 된다. 예의다, 예의다 하고 말하지만, 옥이나 비단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870~871)
군자는 자식을 대할 때, 그를 사랑하되 그것을 얼굴빛으로 나타내지는 말 것이며, 그를 부리되 겉으로 봐주는 기색은 보이지 말 것이며, 그를 올바른 도로 인도하되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876~877)
무릇 예의란 산 사람을 위할 때는 기쁨을 꾸며 주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는 슬픔을 꾸며 주고, 군대에서는 권위를 꾸며 주는 것이다. (878)
어짐 의로움 예의 음악은 그 목표가 모두 같은 것이다. (879)
“재난과 행복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힘쓰고 힘쓰십시오!” (883)
<역경>의 함괘는 부부의 관계를 보여 준다. 부부의 도는 올바르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 관계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889)
예에 들어맞으면서 잘 사색하는 것을 잘 생각한다고 한다. (893)
선비에게 투기하는 친구가 있으면 현명한 사람과 사귈 수가 없다. 임금에게 투기하는 신하가 있으면 현명한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895)
임금이 의로움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닦지만, 임금이 부유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죽음으로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909)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 못난 자가 있던 자리에 바꿔 앉히면, 점을 쳐볼 것도 없이 결과가 좋을 것임을 안다. (913)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매미가 껍질을 벗는 것처럼 훌렁훌렁 벗으며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길을 갈 때도 배우고, 서 있을 때도 배우고, 앉아 있을 때도 배우고, 그가 얼굴빛을 바로잡거나 말을 할 때도 배워야 한다. 선한 것은 남겨 놓지 말고 바로 행하며, 물어야 할 것은 묻어 두지 말고 바로 물어야 한다.
잘 공부하는 사람은 그 이치를 다 추구하고, 잘 실천하는 사람은 그 어려운 점도 다 추구한다.
(중략)
군자는 곤경에 처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수고롭고 지쳤다 하더라도 구차한 짓은 하지 않으며, 환난을 당했을 때도 평소의 말을 잊지 않아야 한다. (915 916)
덕이 지극한 사람은 얼굴빛이나 외모가 두루 윤택하게 되고, 실천을 다하는 사람은 명성이 먼 곳까지 전해진다. 소인들은 마음속에 성실함이 없이 밖으로 명성을 추구하려 한다. (917)
실천력이 부족한 사람은 말을 지나치게 하고, 신의가 부족한 사람은 말로만 성실한 체한다. (중략)
<시경>을 잘 아는 사람은 시를 해설하지 않고, <역경>을 잘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으며, <예경>을 잘 아는 사람은 의식을 돌보아주지 않는데, 그들의 의도는 다 같은 것이다. (918)
학문에 싫증을 내지 않고 올바른 선비를 좋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바로 자연의 보고를 얻는 것과 같다. (922)
많은 사람들을 알면서도 친한 사람은 없고, 널리 공부했으면서도 법도가 없으며, 많은 공부를 하기 좋아하면서도 자기의 정견이 없다면, 군자는 그런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
젊어서는 경전을 읽지 않고, 장년이 되어서는 남과 논의하지 않는다면, 비록 바탕은 괜찮다 하더라도 완성된 사람은 못 된다. (923)
자기의 행동이 불완전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지나치게 한다. (931)
어짐, 의로움, 예의, 선함은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마치 집안의 재물이나 곡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은 부유하고, 그것이 적은 사람은 가난하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곤궁하다. (935)
말에 신의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의심스러운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의심스러운 것은 말하지 말고, 물어서 확인하지 않은 것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 (937)
공자와 안연은 지혜로웠으나 세상에서 곤궁하게 살았다. (943)
네네 하면서 따르다가도 죽게 되는 것은 뒤로 물러나서는 욕을 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면서도 곤궁한 사람은 남을 비판하기 때문이며, 청렴해지려 하면서도 더욱 더러워지는 사람은 입 때문이다. (943~944)
군자는 남이 존귀하게 여길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존귀하게 여기도록 할 수는 없다. (945)
제20권
제28편 평상시의 교훈(宥坐)
이 편에서부터 마지막 편까지는 순자와 그의 제자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947)
“총명하고 신통한 지혜가 있으면 어리석음으로써 그것을 지키고,” (948)
“사람에게 악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도둑질도 그 속에는 끼지 않는다. 첫째는 마음이 만사에 통달하면서도 음험한 것, 둘째는 행실이 편벽되면서도 완고한 것, 셋째는 거짓말을 일삼으면서도 말을 잘하는 것, 넷째는 아는 것이 추잡하면서도 광범한 것, 다섯째는 그릇된 일을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윤택해 보이는 것이다.” (950)
“지금 그의 학문은 군살이나 혹 정도도 못되는데 만족하면서 남의 스승이 되려는 자들이 있다.” (960~961)
제29편 자식의 올바른 도리(子道)
“아마도 그의 몸가짐이 공경스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말씨가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얼굴빛이 온순치 않기 때문이 아닐까?”
(중략)
“군자는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곧 행실을 독실히 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현명한 사람을 벗하는 것이다.” (973)
“말에 요령이 있다면 지혜로운 것이고, 행동에 원칙이 있다면 어진 것이다. 지혜롭고 어질다면 또한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977)
“회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하고, 어진 사람은 어떠한고?”
안연이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알고, 어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979)
공자는 말할 것도 없이 자로보다는 자공이 한 수 위이고, 안연이 최고의 경지라 생각하였다. <노자> 제33장에서도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신을 아는 삶은 총명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980)
“군자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그가 얻으려는 뜻을 즐기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또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즐거움만 있고 하루도 걱정이 없다. 소인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곧 그가 얻지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또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걱정만 있고 하루도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981)
제30편 법도에 맞는 행동(法行)
“남을 원망하는 자는 궁해지고,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무식하다.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데도 그것을 남에게 미루는 것은 어찌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988)
“젊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무능해진다. 늙어서도 남을 가르치지 않으면 죽은 뒤에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 풍요한데도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곤궁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젊어서는 나이 먹은 뒤를 생각해 공부하고, 늙어서는 죽은 뒤를 생각해 남을 가르치고, 풍부할 때는 곤궁해질 때를 생각해 베푸는 것이다.” (991)
제31편 공자와 애공의 문답(哀公)
노나라 애공과 공자 사이의 문답 (993)
“욕망이 넘치는 자는 임용하지 마십시오. 억지를 쓰는 자는 임용하지 마십시오. 말이 많은 자는 임용하지 마십시오. 욕망이 넘치는 자는 탐욕스럽고, 억지를 쓰는 자는 어지럽히고, 말이 많은 자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1006)
“선비는 신의가 있고 성실한 다음에 지혜와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선비가 신의가 없고 성실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마치 승냥이나 이리와 같아서, 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1007)
제32편 요임금과 순임금의 대화(堯問)
끝부분에는 이 책 전체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자에 대한 그의 제자들의 칭송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는 순자가 공자에 못지 않은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1012)
“한결 같은 마음을 하늘이나 땅처럼 지니고, 미세한 일을 해와 달처럼 밝게 행하면, 충실함과 성의가 마음속에 가득해, 그것이 밖으로까지 퍼져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천하란 것이 한 모퉁이에 있는 물건입니까? 어찌 억지로 그것을 따라오도록 할 수가 있겠습니까?” (1013)
“’지금 나는 못났는데도 여러 신하들 중에는 나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으니, 우리 나라는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른 듯하오.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오.’” (1015)
현명한 사람을 친근히 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을 임용치 않았으므로, 그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하였던 것이다. (1023)
손자는 어지러운 세상에 몰렸고 엄한 형벌에 짓눌렸으며, 위로는 어진 임금이 없었고 아래로는 포악한 진나라가 있었다. 예의는 행해지지 않고 교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진 사람은 핍박을 당하고 온 세상이 어두웠으며, 행동이 온건한 사람도 중상을 당하고 제후들은 망해 가는 세상에 살았다.
이런 세상을 만나면 지혜로운 사람도 생각할 수가 없고 능력 있는 사람도 다스릴 수 없으며 현명한 사람도 벼슬할 수 없게 된다. (중략) 손자는 성인이 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일부러 미친 사람 같은 행색을 하고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중략) 이것이 그의 명성이 드러나지 않고 제자들이 많지 않으며, 빛이 널리 비추이지 못한 까닭이다. (1024)
그의 훌륭한 행동은 공자 못지않다. 세상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성인이 아니라고 하니 어쩔 것인가?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았음은 손자가 시대를 잘못 만난 때문이었다. 그의 덕은 요임금이나 우임금 같았는데 세상에는 그를 알아주는 이 적었고, 그의 학문은 쓰이지 않고 사람들의 의심을 받았다. 그의 지혜는 지극히 밝고, 올바른 도를 따라 바르게 행동하였으니, 충분히 세상의 규범이 될 만하다.
아아, 현명하도다! 마땅히 제왕이 될 분이었으나 온 세상이 알지 못하였다. (1024)
시대와 세상이 다른데 명예가 어떻게 생겨나겠는가? 정치를 할 수가 없는데 공을 어떻게 이룰 수가 있는가? 뜻을 닦았고 덕이 두터웠으니 누가 현명하지 않다고 말하는가?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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