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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3일 11시 44분 등록

오쇼의 장자 강의 - 삶의 길 흰구름의 길

오쇼 지음 Ⅰ 류시화 옮김

청아출판사

Ⅰ. 저자에 대하여

본명은 장주(莊周). 그가 쓴 〈장자〉는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 道德經〉보다 더 분명하며 이해하기 쉽다. 장자의 사상은 중국불교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詩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본 장자의 생애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뛰어난 장자 연구가로 평가한 서진(西晉)의 곽상(郭象)은 장자의 저작에 처음으로 주석을 달았고, 장자의 위치를 도가사상의 원류로 끌어올렸다. 불교, 특히 선(禪) 불교의 학자들도 장자의 책을 많이 인용했다. 이러한 장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한대(漢代)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사기〉 열전(列傳)에서 장자의 생애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蒙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상추 현[商邱縣])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주(周)이며, 고향에서 칠원(漆園)의 하급 관리를 지냈다. 그는 초(楚)나라 위왕(威王) 시대에 활동했으므로,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유교사상가인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의 가르침은 주로 노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장자가 다룬 주제가 훨씬 광범위하다고 한다. 장자는 자신의 문학적·철학의 천부적재능을 발휘하여 유가와 묵가(墨家 : 謙愛說을 주장한 묵자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했다. 또한 유가의 가르침을 반박한 어부(漁父)·도척 · 거협 등을 썼으며, 상상으로 지어낸 〈외루허 畏累虛〉·〈항상자 亢桑子〉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장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저서 〈장자〉(〈남화진경 南華眞經〉이라고도 함)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장자〉는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4세기에 읽히던 〈장자〉는 5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그 이후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며 〈장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때문에 본래의 내용이 불분명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장자〉 내편(內篇 : 1~7권)의 7편은 대부분 장자 자신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외편(外篇 : 8~22편)과 잡편(雜篇 : 23~33편)은 그 자신이 쓴 것도 일부 있는 듯하나 대부분 위작(僞作)으로 보인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일화로 본 장자의 인품

장자는 이 일화 속에서 개인의 안락함이나 대중의 존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인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떨어져나가지 않게 끈으로 발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장자의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고 있었다. 이것을 들은 장자는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연벽(連璧)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弔喪客)이니 모든 것이 다 구비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하면서 그 의논을 즉시 중단하게 했다. 이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 매장을 소홀히 하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속의 벌레와 개미의 밥이 된다.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위와 같은 장자의 기괴한 언동은 그의 숙명론에 대한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다. 장자에 의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 즉 도(道)로 통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장자의 도관(道觀)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사물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며 사람들은 이 상태가 저 상태보다 낫다는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관리생활의 번잡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의 재상직을 거절했다. 그의 인식에 대한 철저한 상대성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에 잘 나타나 있다.

"언젠가 나 장주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깨고 나니 나는 분명희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은 틀림없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의 변환이라 한다. "

〈장자〉에서 모든 경험이나 지각의 상대성은 '만물의 통일성'(萬物齊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장자는 도가 없는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받자 장자는 개구리와 개미, 또는 그보다 더 비천한 풀이나 기와 조각, 더 나아가서 오줌이나 똥에도 도가 깃들어 있다고 단정했다. 도가 어디에나 있다는 단정은 그뒤에 중국불교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와 유사한 예를 들어 아무리 미천한 것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장자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도를 깨친 위대한 사상가였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치면

그가 비론 나쁜 기질의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에게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안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p.11

마음은 미래에 살 수 있지만 현재에는 살 수 없다. 현재의 그대는 다만 희망하고 꿈꿀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대가 불행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만일 지금 이 순간에, 지금 이곳에 살기 시작한다면 고통은 사라진다. p.26

과거는 현재와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 속으로 움직여 간다. 그러나 그 둘은 죽은 것이다. 둘 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는 곧 살아 있음이다. 미래는 현재를 만날 수 없고, 과거 역시 그렇다. 그대의 에고, 그대의 그 ‘어느 누구’, 이것들은 전부 그대의 과거다. 비어 있지 않고서는 그대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지 않고서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p.27

그러므로 요 임금은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거나

다른 이로부터 영향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다른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에 깨어 있어야 한다. 에고는 그 둘 다 할 수 있지만 중간에 머물지는 못한다. 에고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고 노력하며, 그때 비로소 즐거움과 지배감을 느낀다. 그러나 잊지 말라. 에고는 남의 지배 아래 있는 것 역시 좋아한다는 것을. 주인은 많은 노예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노예들 역시 지배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p.31

구함과 이름 얻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사람의 무리 속으로 내려와 사라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도와 함께 흘러 다닌다.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는 삶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간다.

집도 없고 이름도 없이.

아무 구별함 없이 그는 단순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어리석다.

그의 발걸음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는 아무 힘이 없다.

무엇을 이룸도 없다.

그는 이름을 얻지도 않는다.

또한 누구를 판단함이 없기에

아무도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가 완전한 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p.45

그 배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더라도 물속에 집어던지라. 모두 던져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대 자신까지 던져지고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전 존재가 비어 있음 그 자체가 될 때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비워지는 일이다. 일단 비워지면 그대는 채워질 것이다. 비어 있을 때 존재 전체가 그대에게로 내릴 것이다. 비어 있음만이 전체를 받을 수 있다. 그때 그대는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전체를 받기 위해서는 비어 있어야 한다. 무한히 비어 있어야 한다. p.55

비어 있음이 모든 길, 목적, 모든 것이 될 것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때부터 그대 마음속에서 찾아내는 것은 무엇이든 비워 버리라. 그대의 비참함, 분노, 에고, 질투, 고통, 즐거움들까지도. 어떤 구분도 없이, 선택도 없이 그대를 비우라. 완전히 비게 되는 그 순간, 갑자기 그대는 전체를, 전부를 볼 것이다. 비어 있음을 통해 전체가 얻어진다. p.56

둘째날 아침: 도의 사람

도의 사람은 장애물이 없이 행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남을 상처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알지 못한다.

그는 재물을 모으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청빈의 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는 남에게 의존함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또한 홀로 걸어감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도의 사람은 알려짐 없이 머물러 있다.

완전한 덕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자아가 사라진 것이 진정한 자아.

가장 위대한 자는 아무도 아닌 자다. p.60

어느 곳으론가 움직여 가기 위한 반동력을 모으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그대는 지금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무엇을 하든 균형을 이루기 위해 그 반대의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행위는 결코 균형이 아니다. p.63

마음에 대해 이해해야 할 두 번째 것은 마음은 늘 거리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결코 가까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가까워지면 권태로워지고 싫증을 느낀다. 거리를 가지면 꿈과 희망들을, 즐거움의 가능성들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은 늘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p.64

마음은 반대되는 것에 자력을 느낀다. 진정한 이해를 통해 그것을 초월하지 않고서는 마음은 언제나 한 극에서 다른 극으로 계속 이동한다. 또다시 멀리 있는 것이 마음을 끌면, 그대는 다시금 순례의 길을 떠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 이제는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이 다시 그대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것은 반짝이는 별들처럼 보이고, 가치 있는 그 무엇처럼 보인다. p.65

마음은 변증법적이다. 마음은 언제나 되풀이해서 그대를 반대편으로 움직여 가게 한다. 그 끝없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대가 그것을 떨쳐 버리지 않으면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대가 문득 마음의 속임수를 깨달을 때, 그래서 한가운데서 정지할 때, 그 과정은 끝이 난다. 한가운데 머무는 것이 곧 명상이다. p.66

마음은 양극단을 고집하기 때문에 결코 전체가 될 수 없다. p.66

마음은 언제나 그 안에 반대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것은 무의식 속에 묻혀 있으면서 솟아나올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히 관찰하면 매 순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67

그리고 무엇을 느낄 때마다 눈을 감고 자신 속으로 들어가 그 반대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보라. 그것이 그대에게 균형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면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진실하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와 나와의 관계는 사랑과 미움의 관계다. p.68

이 끝없는 절반만의 움직임과 다른 절반의 움직이지 않음이 바로 그대 삶의 고통이고, 불안이다. 왜 그대는 그토록 많은 번민 속에 있는가? 무엇이 그대 속에 그토록 많은 불안을 만드는가? 그대가 무엇을 하든, 왜 환희가 그 일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가? 환희는 오직 전체적일 때만 일어난다. 부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장애물 없이 전체가 움직일 때 바로 그 순간이 행복이고 축복이다. p.73

마음이 분리되어 있으면 그대 안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있다. 그리고 그대는 언제나 분리되어 있다. 절반의 움직임, 절반의 억제, 절반의 찬성, 절반의 반대, 절반의 사람과 절반의 미움, 그대는 분단된 국가다. 그대는 무엇을 말하지만 결코 그 자체의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반대쪽이 방해하면서, 장애물을 만들면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p.73

도의 사람은 알려짐 없이 머물러 있다.

완전한 덕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자아가 사라진 것이 진정한 자아.

가장 위대한 자는 아무도 아닌 자다. p.99

이것이 도인적인 삶의 근본이다. 완전한 덕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완전한 덕을 갖추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한 덕을 갖추고 있을 때 어떤 욕구도, 동기도 없다. 자체로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다. 오직 불완전만이 무엇인가를 생산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완전한 예술가는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p.101

혜자는 양나라의 제상이었다.

그는 장자가 자신의 지위를 탐내 그를 몰아내고

대신 들어앉을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비밀 정보를 믿게 되었다.

장자가 양나라를 방문하러 왔을 때

혜자는 경찰을 풀어 그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사흘 낮과 밤을 수소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 기간이 지난 뒤 장자는 스스로의 뜻에 따라

혜자 앞에 모습을 나타내 말했다.

“그대는 저 남쪽 나라에 사는

한 마리 신비로운 새, 영원히 늙지 않는

불사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불멸의 불사조는

남쪽 바다에서 날아올라 저 북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신성한 나무 위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

가장 고결하고 희귀한 열매가 아니면 입 대지 않으며

오로지 가장 정결한 샘에서만 물을 마신다.

한번은 부엉이 한 마리가

이미 반쯤 썩은 쥐를 뜯어 먹고 있다가

비상해 가는 이 불사조를 보았다.

부엉이는 그를 올려다보고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두려워하고 당황하며

죽은 쥐를 꽉 움켜잡았다.

재상이여, 그대는 왜 그토록 광적으로

그대의 재상직에 매달리며

나를 보고는 놀라 비명을 지르는가. p.110-111

종교적인 마음은 근본으로 욕망이 없는 마음이다. 내적으로 우월한 자만이 종교적으로 될 수 있다. 욕망은 곧 그 안에 열등감을 담고 있다. 마음의 본성이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가 아닌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삶을 낭비하고 마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때 모든 탐구는 헛된 것이 된다. 욕망은 결코 신에게로 인도할 수 없다. 오직 욕망이 없는 마음만이 문이 될 수 있다. p.112

그대 안의 욕망이 곧 그대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다. 그대는 자신의 마음을 통해 다른 이들을 본다. 내부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투영한다. p.122

세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과학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과학의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면 분석을 통해, 수학과 논리를 통해 보는 것이다. 아테네, 그리스 마음은 세상에 과학을 가져다주었다. 소크라테스적인 분석과 논리의 방법, 회의를 심어 주었다. 종교는 이와는 전적으로 다르게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것은 시를 통해, 신화를 통해, 사랑을 통해 세상을 본다. 물론 그것은 낭만적이다. 그것이 그대에게 사실을 주지 못한다. 다만 허구를 줄 뿐이다. 그러나 그 허구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그것들은 그대에게 가장 깊은 핵심을 보여 준다. 외부 세계에 대해선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p.128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이 변한다. 영원 속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역사는 시간에 속하고, 신화는 영원에 속한다. 과학은 시간에 속하고, 종교는 시간을 초월한 것, 영원성에 속한다. 그대에게는 시간성과 영원성, 두 가지가 다 존재한다. p.131

만일 어떤 이가 시장에서 낯선 사람의 발을 밟으면

공손하게 사과를 하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곳이 너무 혼잡하군요.’

만일 형이 동생의 발을 밟으면

형은 간단히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일 부모가 자식의 발을 밟으면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

가장 훌륭한 예의는 모든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

완전한 행위는 관계로부터 자유롭다.

완전한 지혜는 계획함이 없다.

완전한 지혜는 증명함이 없다.

완전한 진실성은 보증함이 없다. p.144

아침에 세 개란 무엇인가.

사실 그 두 배열은 같았다.

밤의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한 경우에는 불쾌해 하고

다른 경우에는 만족해 했다.

조련사는 기꺼이

그 객관적인 상황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배열을 바꾸었다.

그로 인해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진실로 지혜로운 이는

치우침 없이 문제의 양쪽을 고려해

올바른 도의 빛 안에서 그 둘 다를 본다.

이것을 동시에 두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칭한다. p.185

진리와 바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야 한다,

쉬운 것이란 곧 자연스러운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쉬운 것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쉬운 것이 바르다는 말은 곧 자연스러운 것이 바르다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는 상태가 바르며 에고 없는 상태가 바르다는 말이다.

바른 것에서 시작하라, 그러면 쉬워진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그러면 바르게 된다.

바름과 쉬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바른 삶에서 시작했는데도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른 게 아니었던 것이다,

바른 것에서 시작하면 삶은 점점 쉬워진다,

내맡김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 삶의 강물과 하나 되어 흐른다.

삶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어렵지만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삶에서 가장 쉬운 것,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선택하면 그대는 바르게 될 것이다,

혹은 먼저 바른 것을 택하여 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바름이 쉬움과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그러면 바르게 된다.

어려운 것은 에고를 강화할 뿐이다,

에고는 그대를 눈멀게 하고 귀먹게 하고 가슴이 열리지 못하게 한다,

에고는 사랑하고 춤추고 노래하지 못하게 한다, 이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삶 전체가 쉬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 때 에고를 만들지 않고 자연스런 존재가 된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

장자에게나 나에게는 평범함이 가장 큰 비범함이다,

비범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빗나가고 만다,

그러므로 평범하게 살라.

Ⅲ. 내가 저자라면

지혜로운 자는 순간순간을 산다. 그의 삶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처럼 자유롭다. 목적을 향해 가지도 않고, 어느 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삶의 진정성은 목적지에 있지 않다. 진정한 것은 그 과정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것은 여행 그 자체다. 모든 것은 여행이며, 흰구름의 길이다. 그는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는 자유인이다.

구함과 얻음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의 무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도와 함께 흘러 다닌다.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는 삶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간다. 집도 없고 이름도 없이. 그의 발걸음은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또한 누구를 판단함이 없기에 아무도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를 비운 이의 아름다움이다.

지금은 논쟁과 싸움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편을 갈라 상대편을 누르고 이기려고 한다. 논쟁은 현대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 항상 문제가 된다. 상대편을 쓰러뜨려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편과의 건전한 합의점을 찾아 상생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일 것이다.

이 책은 ‘인도를 바꾼 열 사람 중 한 사람’이자 지성인이자 구도자인 오쇼가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자 도가의 대표주자인 장자의 강의를 해석한 책이다.

이를테면 아래의 <빈배>라는 글에서처럼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기보다는 자신의 성찰을 먼저 강조한다. 장자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그에 대한 오쇼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약간 어렵고 무거워질 수 있는 글을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해 지루하지 않다.

“구함과 이름 얻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사람의 무리 속으로 내려와 사라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완전한 사람, 진정한 현자, 도의 사람은 다른 이에게 의존함이 없이 그의 길을 간다. 홀로 걸으라. 그러나 그 일에 자부심을 갖지 말라. 그때 그대는 세상의 한 부분이 아닌 채로 세상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소유물에 소유되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소유할 수 있다. 그때 세상은 밖에 있고 안에 있지 않다. 그때 그대는 그곳에 있으나 세상에 의해 물들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홀로 있음이다.”

IP *.112.151.16

프로필 이미지
수희향
2009.11.23 16:08:56 *.250.117.172
고대의 걸출한 인물인 장자를 현대의 걸출한 인물인 오쇼가 풀었구나.
이 책. 언젠가는 나도 읽어야지 했던 책인데...
너의 리뷰로 일단 맛보기를 하니 좋다.

네가 너를 찾는데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네..
친구야, 계속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9.11.24 20:22:40 *.160.33.244

오호라 여인마케팅을 하더니 오쇼를 읽는구나
장자는 여인을 낚는 어부에게  딱 좋은 책이니 
그 놈이 쓴 책을 그 놈이 주하고 그 놈이 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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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북 No. 3 –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file [2] 유재경 2011.04.17 3397
1104 4-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콩두 2015.06.26 3399
1103 #45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file [1] 샐리올리브 2013.03.11 3400
1102 #18. 러셀자서전 / 러셀 file 쭌영 2013.09.16 3401
1101 (30) 당신은 누구인가? _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3] 時田 김도윤 2007.11.06 3404
1100 두 글자의 철학-나의 글자여행2 [2] 도명수 2006.09.19 3409
1099 국화와 칼_저자, 구성 맑은 김인건 2010.12.06 3410
1098 [21] 아니타로딕: 영적인 비즈니스 file 2008.09.16 3412
1097 <열정과 기질>/하워드 가드너 file jeiwai 2013.07.15 3414
1096 율리시스_제임스 조이스 file [4] 콩두 2012.05.21 3415
1095 11th Review-기억꿈사상-카를융지음/조성기옮김/김영사 file 사샤 2011.06.14 3416
1094 제가 잘못했습니다. 레몬 2012.04.19 3416
1093 우리 속에 있는 지헤의 여신들 file [4] id: 깔리여신 2013.02.04 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