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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4일 11시 24분 등록

 

1부 저자에 대하여

초아 서 대원, 알듯 모르는 저자:

나는 이 책의 저자 초아 선생님을 안다. 얼굴을 뵙고, 인사를 나눈 정도를 안다고 할 수 있다면 안다고 말해야 한다. 더군다나 초아 선생님은 나의 호까지 지어주신 은헤 아닌 은혜를 주신 분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초아 선생님을 모른다. 관계라는 것이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는 거라 정의한다면, 사실 난 초아 선생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그 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선생님의 주역 강의를 덮은 지금 난 이제 그 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 분이 왜 주역을 일생 함께 하게 되었는지, 그 분이 생각하는 주역이란 어떤 책인지, 우린 또 어떤 관점으로 주역으로 바라보기를 희망하시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업 시간에 발표했던 나의 10대 풍광이 떠올랐다. 그 때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던 내가 의욕이 많이 저하된 상태에서 수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10대 풍광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 때 내 마음에 그득했던 생각이 바로 천지인삼재였다. 위로는 하늘을 잘 모시고, 밑으로는 땅(자연)을 섬기며, 마음에는 사람을 품고 살겠다고 10대 풍광의 기초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주역에서도 얘기하듯, 사람들은 힘이 들면 그제야 하늘 무서운 걸, 즉 내가 얼마나 보잘것 없이 나약한 존재인지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내 생활을 리드하고 있던 여러 생각들이 정리되면 나도 모르게 나만의 철학이 그 형상을 드러낸 것 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 그 철학을 한 번 세상에 끄집어 내는 것도 나로서는 나름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3부 내가 저자라면

11월이 통찰의 달이어서 그럴까…? 유난히 심연 깊은 곳이 일렁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만의 생활 철학이 내 안에서 그 형상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주역>의 가장 기본 사상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하늘의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역의 기본 사상은 천지인의 삼재를 잘 살펴서, 거기에 맞춰 내 삶을 살면 길하면 더욱 길할 것이요, 어려움을 만나도 무탈히 넘어갈 것이라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 하늘이다. 인간이 모든 일을 행할 때는 하늘의 때인 천시를 잘 살펴서 행해야 한다고 한다. 제 아무리 잘났다고 여기는 인간도 천시가 무르익지 않으면 소축도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 땅 혹은 자연이다. 근대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자연을 상생하는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주역에 따르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른다. 그래놓고 애당초 있지도 않은 단어인 자연재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그러나 내 숨결을 태동했던 어머니 대지인 가이아, 지구. 그 자연과 함께 상생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 사람. 하늘에 이어 또 한가지, 주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에의 중요성이다. 매사, 모든 일에 있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느 괘를 봐도 한 번쯤은 언급이 나오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 설명을 들으며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는 뭘까? 아마 오만했던 내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치며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움과 한탄이 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자기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타인의 도움없이도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내 생을 잘 살수 있다는 오만불손한 생각. 그런 오만함이 결국은 자연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천시도 무시하는 무한 경쟁의 삶을 양산한 것이겠지.

 

주역에서는 어려운 시기가 지나갈 때의 징후로서 조력자의 출현을 든다. 인생에서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 줄 사람이 나타나야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들어선다는 말이겠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으뜸의 조력자 혹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관계는 과연 누구일까?

 

나는 스승이라 생각한다.

 

비록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그 본성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다름아닌 스승이다. 부모가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는 무조건의 사랑은 줄 수 있을지언정, 바로 그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자식의 본성을 자연과 연결시키기에는 무한한 어려움을 지니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한 인생이 자신의 꽃을 제대로 피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언제 올바른 스승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는데, 아쉽게도 정규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스승을 만나기가 진정 어려운 것이 오늘날 교육 제도의 어려움 중의 최고 어려움이라 하겠다.

 

나 역시, 한참을 달리다 어느 순간부터 삶 그 자체가 막힌 것과 같은 시기를 맞아 2~3년은 족히 헤맸던 것 같다. 물론 그 전부터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야 늘 있었지만, 가장 최근의 2~3년은 뭐랄까, 새벽이 오기 전 어둠이 더 깊은 그런 상태였다고나 할까. 무언가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으로 미치도록 갑갑했고, 길을 찾고자 내 나름 모진 노력을 기울인 시간들인 것 같다. 그야말로 마음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올 길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맨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였다고 믿는다. 어느 날 변경연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단박에 이 길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게 꿈벗을 달려갔고, 거기서 연구원 지원도 바로 결심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스승을 만나기까지도 지난한 시간이 걸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캠벨에서 주역강의까지. 그래서 내 안에 형성된 나의 철학은 무엇인가?

 

나를 바로 알기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첫 걸음이고, 가장 본질적인 일인데, 이 화두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영혼들도 부지기수라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물론 내가 나를 다 알았다는 자만에 빠지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제는 내 삶의 출발선을 외적인 잣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울려 나오는 우주와의 공명에 주파수를 맞추게는 되었다는 의미이다.

 

인생에서 첫 단추 단 하나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 모든 일이 뒤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도 이러저러한 다양한 이유로 인해 어지간해서는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되는 때가 있다.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이처럼 원치 않는 삶을 사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다 (419).

 

난 이제라도 새로이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 무한히 감사하고 기쁘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그저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 정성스럽게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싶을 뿐이다.

 

바로 사랑하기

내겐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과 일 중에서 일이 우선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그 사람에는 내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삶조차도 사회적 관점에서 더 우위를 두는 일에 우선순위를 내주는 사람의 삶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일보다 먼저일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시간들,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려는 나의 본성과 그 본성을 누르고 외면하려는 치열한 싸움에 때론 지치고 때론 패배인지 승리인지 알 수 없는 결과조차 불분명한 전쟁을 치르며 여기까지 왔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결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겐 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머물렀고, 동시에 단절의 연속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던 점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라와 나라를 오고 갔던 일도, 회사에서 회사를 옮긴 것도 결국은 세상 목표를 우선하는 내 삶의 방식에 따른 결과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절의 시간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20년을 넘게 때론 뚜렷하게 때론 약간 희미하게 존재하는데 다름아닌 여고 때의 친구 하나이다. 내게 그 애는 뭐랄까. 내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였다. 남자 친구들과 짧은 만남만을 이어가는 내 삶도 내가 원인이 아닌 그네들이 잘못이라 치부할 수 있고, 계속 단절되는 인간 관계들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어갈 수 있지만 난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존재라고나 할까.

 

그러나 난 결국 그 애와 일을 도모하다 멀어지게 되었다.

 

멀어지는 순간에도 그 애를 잃는 아픔보다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부인해야 하는 것이 더 아팠다. 그 애와 나 사이의 우정. 내가 원하면 나 역시 좋은 관계를 오래 가져갈 수 있다라는 믿음 아닌 믿음을 부인해야 하는 것을 무엇보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2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말이다.

 

그 사건은 아빠의 죽음 이후 또 한번 내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고, 이 역시 오랜 시간 상처가 되어 내 삶에 남았었다.

 

그런데 우습지 않나? 내가 아파했던 이유를 심연 깊숙이 들여다보면 내 자존심,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것에 대한 아픔이었지 상대를 잃은 슬픔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지만 내가 이 정도로까지 이기적인 사실을 깨닫고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해졌다는 표현 외에는 할말이 없었다.

 

? 어째서?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삭막한 인간이 되었을까?

 

이 문제는 최근의 2~3년간 나를 엄청 괴롭혔던 문제 중의 하나였고, 연구원에 와서야 비로서 그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도 세월이 무서운건지,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우리는 작년 말부터 다시 연락을 시작했다. 그런데 만나면 어딘지 예전 같지가 않았다. 할 말도 빙빙 돌면서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땐, 일을 하다 틀어졌었으니 어색함이 남아 있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한 두 번 전화도 주고받고, -메일도 가끔씩 주고 받았는데

 

연구원이 시작되고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서 그 애와 뭐가 문제인지를 서서히 더 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름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 나의 삶에 대해서는 그 애와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이었다.

 

친구는 여전히 내가 글을 쓰기보다는 자기와 비즈니스 하기를 원했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나보다는 경영학에 능력이 있는 나이기를 바랬다. 그러고보니까 내 친구의 꿈은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돈이었고, 나 역시도 무언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늘 일에 빠져서 살았었고, 일을 하다보면 돈은 따라 들어오니까, 일이나 돈이나 그 어떤 것이 목표가 되던 그건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분명 고등학교 때의 우리는 이렇지 않았다. 그 때의 우리는 현실적 목표가 아닌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난다. 20년이 넘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외국에서 지낸 시간이 워낙 길어서 사실 우리가 깊이 있게 교류한 시간은 성인이 되면서는 오히려 짧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관계였다. 그 사이 우린 각자의 삶은 치열하게 살았고, 친구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내가 한국에 돌아왔고, 몇 년의 직장 생활 끝에 우린 함께 일을 도모했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이상도 달랐고, 재능도 달랐고, 무엇보다 가치관이 엄청 달랐다. 나는 그 때 이미 일을 하기보다는 내 자신을 찾는 길에 들어섰어야 했던 시기였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하늘의 때가 오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어가고자 했다.

 

내가 조그만 성숙했어도 처음부터 함께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되는 관계였고, 시기였다. 위에서 말한 나를 바로알지 못한 체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상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그때 당시 10년이 넘는 물리적 시간에 모든 걸 빗대어 해결하려했던 무모하고 무지한 결정이었다.

 

올해의 늦은 봄부터였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이 메일로 나에 대해, 나에 꿈에 대해 친구에게 아주 진솔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진정 그 애를 친구로 존중한다면, 긴 세월의 인연을 존중한다면, 솔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친구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친구가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한다. 글쎄변화는 변화지만, 내겐 나를 찾아가는, 본래의 내 모습으로의 회귀인데, 그 친구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포기하거나 적당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가 깨달은만큼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건 친구와 갈등 아닌 갈등을 겪고 있는 비슷한 시기에, 연수를 다녀왔을 때 예전에 함께 일하던 분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는 명함 없는 생활을 하는 내게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명함에의 유혹을 던졌다.

 

흔들렸다. 나를 실패자로 바라보는, 그래서 내겐 당신의 모든 걸 희생하신 엄마의 침울한 눈빛도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지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 때 난 내 스승에게 이 메일을 보냈었고, 그 분은 나를 다시 잡아 일으켜 주셨다. 스승님이 계시다는건 정말 한없이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나를 믿었다. 스승님이 믿어주시는 나를 믿고, 다시 일어섰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리고 예전의 상사들과 동료들에게도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또 내가 얼마나 간절히 이 길을 가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네들의 몫이라 여긴다.

 

이제 난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사랑을 쌓아가고 싶은지 알 것 같다.

 

난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세상에 맞춰 적당히 나를 포장하고, 혹시 포장지 어딘가가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며 마음 졸이며 나를 늘 점검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난 나의 꿈과 이상에 대해 희망을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세상에서 정해준 내 꿈이 아닌,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내 본성이 가고자 하는 그 길 말이다.

 

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면서도 일이 우선해야 해서 관계를 정리하거나 청산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없으면 내 일도 아무 의미없는 관계 속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난 그런 그들을 소중히 아끼며 함께 가고 싶다. 일은 이 일을 해도 되고, 저 일을 해도 된다. 나의 꿈이란 이 길을 통해서도 갈 수도 있고, 저 길을 통해서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다. 내게 한번 인연으로 다가오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이젠 좀 알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 때론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하다. 아끼고 또 아끼며 오래도록 함께 가고 싶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구속이 아닌 조화여야 한다. 사랑할수록, 아낄수록 내 사랑이 행여 구속으로 소유욕으로 변질되지는 않는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아니다, 경계가 아니라, 상대를 더 깊게 이해하고, 더 많이 배려한다면, 자연스레 보다 성숙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나와 다른 점까지 끌어안고, 오히려 그러한 요인들을 존중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며 그러면서도 뿌리는 하나라는 것에 감사하는 관계. 천지인, 삼재의 조화를 이룬 관계를 이루어 나가고 싶다..

 

그런 후, 세상과 올바르게 만나고 싶다

이제 세상과 비로소 마주하고 싶다. 이제.

 

허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내 삶의 현장으로서, 결과가 되어야 할 성과를 목표로 두는 머리와 발이 거꾸로 달린 희안한 삶이 아닌 가슴이 제대로 뛰는 열정적인 삶을 이제는 한 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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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그늘 아래 나를 내려 놓고

그 말씀에, 그 향기에 뒤틀린 내 삶을 바로 잡아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그 오랜 수수께끼를 풀게 되니

이제 난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 마음으로, 그 깨달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그 곳에 또한 나의 분신같기도 하고

스승님의 그림자같기도 한 인연들이 있으니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으니

세상을 향한 문이 저절로 열리며 그 모습을 내 앞에 드러낸다.

굳이 길을 찾지 않았고, 열려 하지 않았으나

세상이 내게 먼저 길을 내주며 오라 손짓한다.

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첫 단추를 다시 끼우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 지난한 세월을 거쳐왔지만

다시 채우고 나니 그 또한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비로소 볼 수 있다.

 

하늘의 섭리에 나를 맞추고자 노력하고

땅의 이치에 귀기울이자 애쓰며

사람을 중심을 놓고자 매일 나를 갈고 닦는다면

천지인 삼재가 나를 도와

어긋났던, 뒤틀렸던 내 삶이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주의 순환 법칙인 것을..

 

그 궤도에서 이탈한 삶은 살아도 살아도 피곤하기만 하니

이것이 다름아닌 앞서 깨달은 현자들이 설파하고 또 설파했던 이야기.

마음의 귀가 뚫려 그 소리 듣고

멀었던 눈에 다시 광명이 스며들어

이제는 우주의 순환 궤도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않기만을

천지인 삼재에 두고 오직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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