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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 11시 13분 등록

FritjofCapra2.jpg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

홈페이지 http://www.fritjofcapra.net/


1939년 2월 1일 생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1966년 비엔나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68년까지 파리 대학에서 연구를 한 뒤 1968~1970년 캘리포니아대학(U.C.) 산타크루즈 캠퍼스에서, 1970년 스탠퍼드에서, 1971~1974년 런던 대학에서, 1975~1988년까지는 U.C. 버클리의 연구소에서 등 유럽과 미국을 드나들며 연구를 해 왔다. U.C. 산타크루즈와 U.C.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가르쳤다. 영어와 독일어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 유창하다고 한다.

그는 ‘서양과학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뒤흔든 물리학자’로 불린다. 카프라는 오랫동안 홀대받던 동양철학을 서양과학과 결합하여 '신과학 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 동양인들이 떠드는 괴상망측한 헛소리쯤으로 치부되면서 무시당하던 동양철학을 재발견하고 높이 평가한 것은 서양의 물리학자 카프라였다.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과학 사이에 본질적인 공통점, 조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카프라는 동양사상이 현대과학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1975년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 담아 냈다. 처음엔 자비를 들여 작은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에서 그는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기반으로 현대 물리학에서 나타난 세계관의 변화가 동양의 고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비교한 뒤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바꾸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그 이후 전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영국 BBC방송의 ‘뷰티풀 마인드’ 다큐멘터리 시리즈(2002) 첫 회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저서로는
1975, The Tao of Physics
1982, The Turning Point: Science, Society, and the Rising Culture
1984, Green Politics, with Charlene Spretnak.
1988, Uncommon Wisdom
1991, Belonging to the Universe: Explorations on the Frontiers of Science and Spirituality, coauthored with David Steindl-Rast and Thomas Matus
1997, The Web of Life
2002, The Hidden Connections: A Science for Sustainable Living
2007, The Science of Leonardo: Inside the Mind of the Great Genius of the Renaissance
등이 있다.

자신이 이미 출간한 베스트셀러에 갇히지 않고 최근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를 계속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느껴진다.

1990년에는 동생인 베른트 초프라가 만든 영화 <Mindwalk>의 각본—그의 책 <The Turning Point>를 토대로 한 내용이라고 한다—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버클리에 부인과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카프라 박사는 국제적인 생태문제 연구 조직인 엘름우드 연구소를 창설, 새로운 생태과학의 이론을 정립하여 오늘날 사회 경제 및 환경 문제에 응용하고 있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역자인 이성범 선생은 ‘카프라 박사의 세 번째 저서인 <Uncommon Wisdom>은 <탁월한 지혜>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이는 카프라 박사의 사상 성장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함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9)’고 했는데, 정작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느라 아직 이 책을 소장한 대학도서관에 아직 찾아가지 못했다. 이 책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내가 저자라면

프리초프 카프라, 그는
20여 년 전에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쓰기로 경정했을 때, 나는 직업적으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428)
고 고백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책을 쓸 능력도 (아직은) 없고,
능력이 갖춰지더라도 용기가 없어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학계에서 ‘이단아’로 불리며 험난한 길을 걸을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자신의 소명으로 다가온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라고 묻는 이들에게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번역자의 말로)
이 책은 현대 물리학에서 일어난 새로운 자연관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며, 그 새로운 세계관이 동양의 고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비교하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 (7)
저자는 이 책 속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물리학의 개요와 그 물질관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동양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일치해 가고 있는가를 평이하면서도 치밀하게 설명한다. (10)


내년에 다시, 거듭거듭 읽어야 할 책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리뷰를 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이렇게나마 부족한 상태에서 받아들인 정도를 솔직하게 올리는 것도 나의 또 다른 시도라는 생각에 리뷰를 올리게 되었다. (거듭거듭 읽을 때마다 이 리뷰를 읽고 ‘이것 밖에 못 썼니’하고 자책할 것만 같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노자의 이 말에 용기를 내기로 했다.

참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참 알고 있지 않다.

어차피 내가 말하는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연구원을 하면서 도전적인 책들도 꽤 만났지만, 이 책만큼 신선한 충격은 또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연구원 과제 도서가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책인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지.

연구원 과제도서 목록 중에 유독 사부님은 이 책에만 ‘읽는 사람에 따라 난도가 높을 수 있으니 미리 읽어둘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을 달아 두셨는데, 역시나 일주일 만에 읽어치우기에는 무척 버거운 책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고 싶으나 일주일은 정말 짧았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좁은 세계에 갇혀 있던 나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독서의 효용에 감사했다. 이 책에 나오듯, ‘우리가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킬 때마다 우리 정신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고 우리는 어떤 개념들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방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215)’는데, 이 책을 읽은 나는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훌륭한 구성

1부에서는 현대 물리학을 설명하고, 2부에서는 동양 신비주의를 사상 별로 짚어본 뒤, 3부에서 현대 물리학과 동양 신비주의의 대비를 시도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1, 2부가 더 어려울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3부 대비가 가장 읽기 힘들었다. 1부 현대 물리학보다 더 많은 전문개념과 그림이 나온다. 2부의 동양 사상 정리를 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서양인으로서 이런 개념들을 어렵게 공부해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동양인인 우리도 이 정도로 정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리학자인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3부에서는 9가지 주제를 잘 잡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읽기는 그리 녹록치 않지만 말이다.

친절한 장별 설명

‘이번 장에서는 어떤 내용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장에서 이런 내용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이 무척 친절하게 잘 되어 있다. 내용이 난해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고, 워낙 잘 가르치는 사람이라 배우는 사람의 머리 속에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럴 수고 있겠다. 친절한 설명은 정리를 도와주지만, 앞서 말했듯 3부에 가면 이 마저도 쉽지만은 않아 진다.

(예시)

다음의 장은 동양적 세계관의 기본적 요소가 현대 물리학에 나타나는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며 동양적 사상,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비적 사상이 오늘의 과학 이론에 일관성 있고 적절한 철학적 배경을 마련해 준다는 사실을 암시하려 한다. (43)

본장은 금세기 초에 현대 물리학의 근본적인 두 이론인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에 관해 더욱 미묘하고 전일적이며 유기적인 견해를 채택하도록 하였으며, 고전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이 어떻게 버려지게 되었는가를 보여 줄 것이며, 이 새로운 세계관의 첫 모습을 고전 물리학의 배경과 대조시키면서 설명할 것이다. (81)

이 장에서는 관찰의 과정을 주의 깊게 분석함으로써 원자적 현상에 관한 이론인 양자론에서 자연의 기본적 상호 연결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논해 보려고 한다. (177)

일반인을 위한 책이라지만

이 책은 물리학을 꼭 알지 않아도 되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진 일반 독자를 위해 쓰인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을 수식 없이, 또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서술하려 했으나 일반인들이 처음 읽어 난해한 구절도 몇 군데는 나올 것이다. (25~26)

일반인인 나에게는 어려웠다는 말씀이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제2판 역자 서문

우리나라에 처음 출판된 것은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79년 3월이었으며 그것은 범양사가 신설되어 첫 번째로 펴낸 책이었다. (7)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이 책은 현대 물리학에서 일어난 새로운 자연관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며, 그 새로운 세계관이 동양의 고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비교하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 (7)

카프라 박사의 세 번째 저서인 <Uncommon Wisdom>은 <탁월한 지혜>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이는 카프라 박사의 사상 성장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함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9)


제1판 역자 서문

저자는 이 책 속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물리학의 개요와 그 물질관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동양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일치해 가고 있는가를 평이하면서도 치밀하게 설명한다. (10)

독자는 이 책에 일관되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친화감과 그 예술적 자태에 감명을 받을 것이다. (14)

철학과 물리학을 다 같이 전공한 김용정 박사가 이 책의 공역을 수락해 준 데 많이 감사드린다. (17)

 

제2판 저자 머리말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이 책과 물리학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19)

내가 물리학자의 세계관과 신비주의자의 세계관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는, 그런 유사성이 그 전에 암시된 적은 있었으나 철저히 탐색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분명한 것이었고 미래에 상식이 될 것이라고 굳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집필하면서도 때로는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는 나를 통하여 글이 쓰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19)


제1판 저자 머리말

나는 이론 물리학의 분야에서 오랜 수련 기간을 가졌고, 수년간 그 연구에 종사하였다. 그와 동시에 동양의 신비주의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현대 물리학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양자 이론의 불가사의를 연상시키는 선의 불가사의함에 특히 이끌렸다. 그러나 처음 이 두 가지를 관련시키는 일은 순전히 지적인 연습 같은 것이었다. (25)

이 책은 물리학을 꼭 알지 않아도 되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흥미를 가진 일반 독자를 위해 쓰인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을 수식 없이, 또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서술하려 했으나 일반인들이 처음 읽어 난해한 구절도 몇 군데는 나올 것이다. (25~26)

 

제1부: 물리학의 길

1. 현대 물리학 - 마음을 담은 길?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것이다. (33)

이 책의 목적은 현대 물리학의 제 개념과 극동의 철학적 종교적 전통 속에 들어 있는 기본 이데아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이다. (35)

모든 종교 속에는 신비적 전통이 담겨 있으며 서양 철학의 많은 학파 가운데에서도 신비적 요소는 찾아질 수 있다. (36)

신비주의가 서양에서는 언제나 방계적인 역할을 한 데 불과하지만 동양에 있어서는 철학적 종교적 사상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는 데 동서양 신비주의의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편의상 ‘동양적 세계관’에 관해서 논할 것이며, 오직 특별한 경우에만 신비적 사상의 다른 원천을 말할 것이다. (36)

그러나 최근에 와서 서구 과학은 이러한 관점을 극복하고 다시 초기 그리스나 동양 철학의 관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37)

모든 서양 철학이 다 그런 것처럼 물리학도 그 근원은 기원전 6세기의 초기 그리스 철학, 곧 과학과 종교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문화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37)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은 정신과 물질을 명확히 구분했으며, 물질은 몇 개의 ‘기본적 구성체’로 만들어져 있다고 보았다. (39)

이러한 사고는 그 이후 서양 사상의 기본 요소가 되는 마음과 물질,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원론을 이루게 된다. (39)

정신과 물질의 구분이라는 아이디어에 일단 접하게 되자, 철학자들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세계, 즉 인간의 영혼과 윤리의 문제에 그들의 관심을 돌리게 된다. (39)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서양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전체적 유기체로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과 동일시하게 이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적인 분할의 결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육체 속에 내제하는 고립된 자아로서 인식하게 되었다. (40)

다음의 장은 동양적 세계관의 기본적 요소가 현대 물리학에 나타나는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며 동양적 사상,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비적 사상이 오늘의 과학 이론에 일관성 있고 적절한 철학적 배경을 마련해 준다는 사실을 암시하려 한다. (43)

 

2. 아는 것과 보는 것

서양에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편애 때문에 직관적이고 종교적인 형태의 지식이 자주 평가절하되었고, 반면에 동양의 전통적인 태도는 일반적으로 이와는 정반대이다. (46)

이 개념적 지식의 한계나 상대성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48)

동양의 신비 사상가들은 궁극적인 실재는 추론, 즉 드러낼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듭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나 개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써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이다. (49)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직관적 통찰은 보통 지극히 짧은 순간에 한한다. 동양적 신비주의에서는 그렇지 않고 그것이 긴 기간으로 연장되어서 궁극적으로 부단한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60)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도와 중국과 일본의 오랜 문화사는 엄청나게 다양한 기예와 의식과 예술 형식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것들은 모두 말의 가장 넓은 뜻에서 명상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60)

노자는 학구와 명상을 대조시켜 이렇게 말한다.

학문을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준다. (61~62)


3. 언어를 초월하여

우리의 내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범상한 사고방식을 그처럼 당혹시키는 모순이 생겨나는 것이다. (69)

우리가 자연의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는 일상 언어의 이미지와 개념을 더욱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77)

 

4. 새로운 물리학

사물들을 경험하고, 보고, 인식하고, 접촉하는 넓고도 싶은 새로운 방식이 있는 것이다. (81)

본장은 금세기 초에 현대 물리학의 근본적인 두 이론인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에 관해 더욱 미묘하고 전일적이며 유기적인 견해를 채택하도록 하였으며, 고전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이 어떻게 버려지게 되었는가를 보여 줄 것이며, 이 새로운 세계관의 첫 모습을 고전 물리학의 배경과 대조시키면서 설명할 것이다. (81)

그리하여 20세기 초에 물리학자들은 상이한 현상들에 적용되는 두 개의 성공적인 이론을 갖게 되었으니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기 역학이 그것이었다. 이리하여 뉴턴적 모델은 더 이상 모든 물리학의 기초가 되지는 못하게 되었다. (89)

현대 물리학의 초기에 비범한 지적인 업적을 세운 사람이 곧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90)

완전한 양ㅈ론은 25년 후에 물리학자들의 전체 팀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의 경우엔 거의 전적으로 아인슈타인 자신에 의하여 완전한 형태로 수립되었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논문들은 20세기 초에 세워진 당당한 지적 기념비—현대 문명의 피라미드였다. (90)

빈 공간과 견고한 물질적 실체라는 양 개념은 우리의 사고 습성에 깊이 뿌리 박혀 그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물리적 실재를 상상하기란 우리로선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우리가 중간 차원을 넘어설 때 현대 물리학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분명히 강요하는 바로 그것이다. (93)

방사능의 현상은 방사능 물질의 원자가 다양한 형태의 방사선을 방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완전히 다른 물질의 원자로 변형되는 것도 보여 줌으로써 원자의 복합적 성질에 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다. (93)

양자론은 이렇게 견고한 물체와 엄격한 결정론적인 자연 법칙이라는 고전적인 개념들을 말소시켰다. (97)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를 포함한다. (98)

나와 세계,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데카르트적 구분은 원자적 물질을 다룰 때에는 성립할 수가 없다. 원자 물리학에서는 우리 자신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고서는 자연에 과해서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98)

거대한 우주와 우리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해 주는 태양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에너지의 유출이 무한히 작은 세계의 현상인 핵반응의 결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현대 물리학이 거둔 위대한 승리 중의 하나다. (105)

고전적인 사고의 습관이 여전히 존속되었으므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그 ‘기본적 구성체’로서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고전적인 사유 경향은 오늘날까지도 실로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다. (105)

그러므로 핵 세계의 완전한 이해를 위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시킨 이론이다. 그러한 이론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직까지는 핵의 완전한 이론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106)

물론 입자 세계의 몇몇 성질을 매우 잘 설명해 주는 ‘양자-상대론적’ 모델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입자 세계의 완전한 이론을 위하여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융합하는 일은 여전히 현대 기초 물리학의 중요 문제며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다. (106)

그리하여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는 본질적으로 항상 관찰자를 포함하는 역동적이며 불가분의 전체로서 체험된다. 이러한 체험에서 공간과 시간, 독립된 대상, 원인과 결과라는 식의 전통적 개념들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은 동양 신비가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 유사성은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에서 분명해지며 이 두 이론이 통합된 아원자적 물리학의 ‘양자-상대론적’ 모델에서는 한층 더 강하게 되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비주의에서 가장 놀랄 만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113)

 

 

제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

5. 힌두교

앞으로 서술될 (동양)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양 철학은 실재에 대한 직접적이고 신비적인 체험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고, 이런 체험은 본래 종교적인 까닭에 그것은 종교로부터 따로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117)

힌두교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불릴 수도 없고, 또한 잘 정의된 종교도 아니다. (117)

힌두교는 그 정신적 원천을 <베다 경전>에 두고 이쓴데, 이것은 소위 베다의 ‘예언자들’인 무명의 현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고대의 성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118)

<우파니샤드>라고 불리는 마지막 부분은 베다의 철학적 실천적 내용을 완성한 것이다. (!18)

‘마야’는 그러므로 흔히 잘못 말해지듯이 이 세계가 화상이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형상들과 구조들, 사물들과 사건들이 우리의 이리저리 재고 간추리는 마음이 낳은 개념일 뿐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자연의 실재라고 생각하는 한, 단지 그러한 과점 속에 우리의 환상이 자리를 잡는 것일 뿐이다. (121)

마야의 주술에서 해방되는 것, 카르마의 속박을 부서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는 모든 현상이 다 같은 실재의 부분이라는 것을 뜻한다. (123)

힌두교에서는 대부분의 서양 종교와는 대조적으로 감각적인 쾌락을 억압하지 않았다. 그것은 육체가 인간 존재의 불가분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고 신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언제나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124)

힌두교도들이 이처럼 수많은 신들에 어떻게 다 대처하는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모든 신들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다 동일하다는 힌두교의 기본적 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125)

 

6. 불교

힌두교가 신화적이고 의식적인 풍미를 띠고 있다면 불교는 분명히 심리학적 취향을 띤다. 부처는 이 세계의 기운이나 신의 본성, 혹은 이와 유사한 문제에 관한 인간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인간 존재와 고뇌와 좌절 등 인간적 상황에 관심을 쏟았다. (127)

그는(부처) 유명한 사성제의 형태로써 그의 핵심적인 교리를 밀도 있게 표현하였는데, (중략)
제1성제는 인간 상황의 두드러진 특성인 ‘두카’, 즉 고뇌 또는 좌절이다. (중략)
제2성제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인 ‘트리슈나’, 즉 집착 또는 탐욕을 다루고 있다. (중략)
제3성제는 괴로움과 좌절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중략)
제4성제는 일체고를 여의는 부처의 처방으로 불성의 경지로 이끌어 주는 자기 계발의 팔정도다. (129~131)

스즈키 다이세쓰가 불교라는 거대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라고 불렀던 것은 초월적인 지혜 혹은 직관적 지성인 프라주나와, 사랑 혹은 자비인 카루나다. (133)

대승 불교가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될 때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의 마음을 고취시킨 경전은 무엇보다도 이 <화엄경>이었다. 중국인과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을 한편으로 하고 인도인을 다른 한편으로 한 대조는 너무나 커서 가히 인간 정신의 두 극점을 나타낸다고 말해질 정도다. 전자는 실제적 실용적 사회적인 정신인 반면에 후자는 상상적 형이상학적 초월적이다. (135)

아바탐사카의 중심 주제는 모든 사물과 물건의 통일과 상호 작용으로서 이 개념은 동양적 세계관의 핵심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에 나타나는 세계관의 기본 요소의 하나를 이루기도 한다. (135)

 

7. 중국 사상

기원전 6세기 동안 중국 철학의 이 두 측면은 유교와 도교라는 뚜렷한 구 철학 유파로 발전되었다. (138)

유교는 대체로 사회 생활에 꼭 필요한 규율과 관습을 익혀야만 하는 아동 교육에서 강조되었고, 반면에 도교는 사회적 관습에 짓눌려 파괴되어 버린 원래의 자발성을 회복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년층에 의해서 추구되었다. 11, 12세기에 와서 신유학자들이 유교, 불교, 도교의 종합을 꾀했는데, 이것은 중국의 모든 사상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의 하나인 주희의 철학에서 절정에 달한다. (138)

유교란 명칭은 공부자에서 유해하였다. (139)

중국에서는 그것이 대체로 그냥 <노자>라고 불리는데 서양에서는 <도덕경>, 즉 <길과 힘의 경전>이라는 후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대개 알려져 있다. (139)

공자의 어록인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은 중국적 사유 방식의 전형이라 할 간결하고 암시적인 스타일로 쓰여 있다. (140)

중국의 철학자들은 그네들의 사유 방식에 아주 잘 어울리는 언어 속에 자신들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들의 저술과 말들은 간결할 수가 있었고, (말의 끊어지고 이어지는) 마디가 분명치 않아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암시적인 이미지는 풍부했다. (140)

<역경>에 의탁하는 목적은 단순히 앞날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의 소인을 찾아 적절한 행동을 취하려는 것이다. (148)

실제에 있어서도 <역경>이 지혜의 책으로서 쓰이는 바가 예언서로 쓰이는 것보다 그 중요성이 훨씬 더 크다. (148)


8. 도교

중국 사상의 두 가지 주요 경향인 유교와 도교 가운데에서 후자는 신비적인 데로 나아가 우리가 현대 물리학과 비교하는 데 보다 적절한 바가 있다. 힌두교나 불교와 마찬가지로 도교는 추론적인 지식보다 직관적인 지혜에 보다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155)

도가세어는 논리적 추론을 사회적 예절 및 도덕적 규범과 아울러 작위적인 인간 세계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중략) 이리하여 그들은 본질적으로 과학적인 태도를 계발시켰으나 분석적 방법에 대한 그네들의 깊은 불신이라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적절한 과학적 이론들을 수립하지는 못했다. (156)

이것은 높은 관점에, 즉 모든 대립자들의 상대성과 극관계가 명료하게 지각되는 어떤 조망에 도달한 현자의 생활 방식이다. (159)

노자와 그를 따랐던 자들이 그들의 세계관을 펴 나갔던 바로 그 시대에 이 도가의 관점과 본질적으로 모습을 같이하는 것이 그리스에서도 또한 사람에 의해 가르쳐졌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중략) 이 그리스의 ‘도가’는 에페수스의 헤라클레이토스였다. (159)

그는 도가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대립하는 쌍도 하나의 통일체로 보았고, 이러한 모든 개념들의 상대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160)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이 두 현자의 세계관 사이에 보이는 이 커다란 유사성이 일반적으로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놀랍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현대 물리학과 연관해서는 자주 언급되지만 도교와 연관해서는 좀체 얘기되지 않고 있다. (160)

우리가 도가의 변화 개념을 두고 얘기할 때, 그 변화가 어떤 힘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상황 속에 내재하는 경향으로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161)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그것이 자연스럽게 하는 바대로 허용해 주라. 그러면 그 본성은 충족될 것이다. (161~162)

 

9. 선

선은 이처럼 상이한 세 문화의 철학과 특질이 독특하게 융합된 것이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일본적인 하나의 생활 방식이지만 여전히 인도의 신비주의, 도가의 자연성과 자발성에 대한 사랑, 유교 정신의 철저한 실용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165~166)

선의 체험은 따라서 깨달음의 체험이며, 이러한 체험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고 범주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은 어떠한 추상화나 개념화에도 흥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특별한 교리나 철학, 형식적 강령이나 독단적 교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모든 고착된 신조로부터의 해방이 진실로 정신적이게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 (166)

그러므로 선의 완성은 일상 생활을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사는 데 있다. 백장이 선을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배고플 때 먹고 피곤할 때 잠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69)

깨달음은 나날의 범사에 나타나 보인다는 선문의 주장은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의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71)



제3부: 대비

10. 만물의 통일성

동양적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그 본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통일성과 공동의 상호 관계에 대한 깨달음, 곧 세계의 모든 현상을 기본적인 전일성의 현시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175~176)

이 장에서는 관찰의 과정을 주의 깊게 분석함으로써 원자적 현상에 관한 이론인 양자론에서 자연의 기본적 상호 연결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논해 보려고 한다. (177)

이처럼 원자론은 우주의 본질적인 상호 연결성을 드러내 준다. 이는 세계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183~184)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185)


11. 대립의 세계를 넘어서

어떤 하나의 개념에 주의를 집중하는 바로 그 우리의 행위 때문에 그 개념의 대립자가 생겨난다. (193)

노자의 말에 의하면 완전히 깨달은 인간이란 “남성적인 것을 알고서도 여전히 여성적인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197)

불확정성 원리가 지닌 근본적인 중요성은 그것이 정확한 수학적 공식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 개념의 한계성을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다. (210)

사실상 상보성의 개념은 이미 2500년 전에 지극히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바 있다. 상보성의 개념은, 그 대립 개념과 상호간의 극성의—상보적인—관계에 놓여 있다는 통찰에 기반을 두고 있어던 고대 중국 사상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다했다. (211)


12. 공간 - 시간

현대 물리학은 동양의 신비주의의 기본이 되는 사상의 하나를 가장 극적으로 확증시켰다. 그것은 곧 우리가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모든 개념들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실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킬 때마다 우리 정신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고 우리는 어떤 개념들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방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215)

어떠한 물리 법칙도 그 법칙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 (215)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리를 따르는 3차원의 절대적 공간과, 이와는 별개의 차원으로서 물질적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일률적으로 흐르고 있는 절대적 시간이란 두 개념은 고전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216)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동양 철학은 항상 공간과 시간이 마음의 구성물이라는 것을 주장해 왔다. (217)

이처럼 고대 동양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의 기본 태도와 같은 태도를 이미 취하고 있었다. –즉 우리의 기하학적 개념은 자연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특성이 아니라 지성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218~219)

시간의 상대성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뉴턴의 절대 공간 개념을 방기할 것을 강요한다. (221)

공간과 시간 개념은 자연 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기본적 요소며, 그것들이 수정되면, 우리가 물리학에서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구조 체계가 뒤바뀌게 된다. (225)

과거 수백만 전에 걸쳐 일어났던 갖가지 현상들이 실제로 하늘의 어느 곳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 (225~226)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어떤 사람의 그림자의 실제 길이가 얼마나 도는가를 묻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한 물체의 ‘진정한’ 길이를 묻는 거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27)

동양의 신비가들은 일상 생활의 3차원적 세계에서 초월하여 보다 고차적이고 다원적인 실재를 체험할 수 있는 비범한 의식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9)

동양의 신비주의에는 그 어느 곳에나 실재의 ‘시공 특성’에 관한 강한 직관력이 일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과 시간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중략) ‘공간과 시간의 상호 관통’을 깨닫는 것—시공을 설명하는 완전한 표현—이 그 경전에 누누히 강조되어 있으며, 그것은 마음의 깨달은 경지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간주되고 있다. (229)

시공간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상호 관통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주의가 갖는 세계관은 둘 다 시간과 변화를 그 본질적 요소로서 함유하는 본래적으로 역동적인 관점이다. (230)

영원한 현재의 체험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영원’, ‘현재’, ‘순간’등과 같은 모든 단어들은 인습적인 시간 개념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39)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은 흐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간은 현재 있는 그곳에 머물러 있다. 지나간다고 하는 이 생각이 아마도 시간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지나가는 것으로만 보기 때문이며,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시간이 바로 지금 존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247)



13. 역동적인 우주

동양 신비주의의 중요한 목적은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동일한 궁극적인 실재가 현현하는 것으로서 경험하려는 것이다. (249)

멕시코의 야키 신비주의자인 돈환(Don Juan)은 ‘질주하는 세계’에 관하여 언급하는 가운데 “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볍고 유동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50)

힌두교도, 불교도, 도교도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경전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들 모두에 있어서 세계는 운동, 유동과 변화에 의해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253~254)

이 우주적 수준에 있어서도 역시 우주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것은 현대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다. (258)

동양의 신비가들은 그들의 비상한 의식 상태에서 거시적 수준에서의 공간과 시간의 상호 관통을 깨닫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리학자들의 아원자적 소립자에 관한 개념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거시적 대상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268)

 


14. 공과 형상

물리적 대상들은 주위 공간의 구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주위 환경에 의해 본질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273)

특히 아인슈타인은 그의 말년을 그러한 통일장을 탐구하는 데 바쳤다. (276)



15. 우주적 무도

그리하여 전우주는 끊임없이 운동과 활동을, 즉 에너지의 지속적인 우주적 무도를 하고 있다.
이 춤은 모형들의 엄청난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그것들은 몇몇의 뚜렷한 범주들로 묶이게 된다. (291)

비록 아직 그 이유는 모르지만, 다행히도 이러한 모든 상호 작용들은 뚜렷이 서로 다른 강도의 상호 작용을 지닌 네 가지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강한 상호 작용들
전자기적 상호 작용들
약한 상호 작용들
중력 상호 작용들 (295)

동양의 신비가들은 현대 물리학과 유사한 역동적인 우주관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 역시 자연에 대한 그들의 직관을 전달하기 위해서 무도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309)

시바 신은 악마의 몸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이 악마는 해탈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인간의 무지를 상징한다.
시바의 무도는 –쿠마라스와미의 말을 빌리면—“어느 예술이나 종교가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신의 행위에 관한 가장 명확한 이미지다.” (중략)
시바의 무도는 춤추는 우주, 즉 서로서로 용해되는 모형들의 무한한 다양성을 거쳐가는 에너지의 끊임없는 흐름이다. (313)

 

 

16. 쿼크 대칭들 - 하나의 새로운 공안

실험적인 면에서 볼 때 지난 10여 년 동안 맹렬한 ‘쿼크 탐색’이 있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325)

잇단 실패는 쿼크의 실재를 극히 회의적인 것으로 만들어 왔다. (325)

입자 세계에 있어서의 대칭적 모형들의 발견은 많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모형들이 자연의 기본 법칙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게 하였다. 지난 15년 동안에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입자들을 통합하고, 물질의 구조를 ‘설명할’ 궁극적인 ‘기본적 대칭’을 탐색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이 경주되어 왔다. (326~327)

대칭에 대한 동양 철학의 태도는 고대 그리스 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중략)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자연의 속성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소산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동양의 예술 형식들은 비대칭을 현저하게 편애하였으며 완전히 규칙적이거나 기하학적 형상은 종종 기피되고 있다. (327)



17. 변역의 모형

입자 세계에 있어서의 대칭을 역동적인 모델, 즉 입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써 기술하는 것은 현대 물리학에 있어서 중요한 당면 과제 중의 하나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어떻게 동시에 고려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329)

S행렬 이론에 있어서 중요한 새로운 개념은 강조점을 대상물로부터 사건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그 기본 관심이 입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반응에 있다는 것이다. 대상물로부터 사건으로의 그러한 전이는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 둘 모두에 의하여 요구되고 있다. (332)

우리가 사물들의 진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변화의 끊임없는 연속에서 떼내어진 소산물들을 마치 영원하고 실재적인 것인 양 숭배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생은 사물도 아니요, 사물의 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이요, 변화다. (349)

변화와 변역에 의하여 생성되는 그 역동적인 모형들의 개념으로 인하여 <역경>은 어쩌면 동양사상에서는 S행렬 이론에 가장 가까운 비유가 된다. (353)

 

18. 상호 관통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에 의해 제시되어 온 세계관에 관한 우리의 탐구는 물질의 ‘기본적 구성체’라는 생각이 이미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보여 주었다. (357)

부트스트랩 철학은 현대 물리학에 있어서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하여 최종적인 반론을 제기하였다. (358)

부트스트랩 가설은 물질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법칙이나 등식, 원리 등의 근본적 실체들을 모두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수백 년 동안 자연 과학의 본질적 요소가 되어 왔던 또 다른 개념을 파기한다. 자연의 근본적인 법칙들이라는 개념은 유대-그리스 도교적 전통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신성한 입법자라는 신앙에서 유래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영원한 법칙, 즉 이성이 신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나니. (359)

현대 물리학에서는 현재 매우 다른 태도가 전개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그들이 기술하는 ‘법칙들’을 포함하여 자연 현상에 관한 그들의 이론 모두가 인간 마음의 소산, 즉 실재 그 자체라기보다 실재에 관한 우리의 개념도의 속성들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360)

우주의 모든 현상들이 상호 자체 조화에 의하여 독특하게 결정된다는, 자연에 대해 전적으로 부트스트랩적인 견해가 동양적인 세계관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는 것은 분명하다. (362)

동양적 견지에서는 현대 물리학의 견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관련되어 있어 그중의 어느 부분도 근본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364)

그러나 동양의 신비가들은 근사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인생 전체의 이해를 위한 ‘절대적’ 지식에 관심을 갖는다. 우주의 본질적인 상호 연관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어떻게 다른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라고 깨닫고 있다. 이러한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양의 신비가들은 단일한(개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64~365)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본성은 이름지어질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어떤 언어의 형식으로도 적절하게 표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양의 현인들은 대체로 사물을 설명하는 데 흥미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물의 통일성에 관한 직접적이고 비지성적인 경험을 체득하는 데에 더욱 흥미를 두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인생의 의미, 세계의 기원, 열반의 세계에 관한 모든 질문에 대해 ‘고귀한 침묵’으로 대답을 해주었던 부처의 태도다. (중략) 즉 모든 것이 다른 것의 결과라는 것, 또 자연을 ‘설명’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의 통일성을 보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뜻한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설명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365)

말과 설명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이 동양 신비주의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다. 도교도와 불교도들은 모두 ‘말의 그물’ 또는 ‘개념들의 그물’에 관해 언급하여 상호 연결된 망이란 생각을 지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우리가 사물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한 우리는 업에 의해 속박된다. 우리의 개념의 그물이란 덫에 걸리게 된다. 말과 설명을 넘어서는 것이 곧 업의 속박을 깨뜨리고 해방을 얻는 길이다. (366)

불가분의 전체며 그 안에서 모든 형상들이 유동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 안에는 어떤 고정된 근본적 실체가 있을 수 없다. (366)

따라서 동양 신비주의의 주요 학파들은 우주한 하나의 상호 연관된 전체고, 그 안의 어느 부분도 다른 부분보다 결코 더 근본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의 속성은 다른 모든 부분의 속성으로부터 결정된다는 부트스트랩 철학의 견해와 일치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모든 부분들은 다른 모든 부분들을 ‘포함’하며 상호 구현에 대한 투시가 진실로 자연에 관한 신비적 체험의 특성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367)

<화엄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방대한 경전은 지금까지 어떠한 서구의 언어로도 번역된 일이 없는데, “개체라고 하는 완고한 테두리가 녹아 없어지고 유한성의 느낌이 더 이상 우리를 압박하지 않을 때” 깨달은 의식 상태에서 세계가 어떻게 파악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367~368)

깨달은 경지에서의 상호 관통 체험은 우주 안의 모든 현상들이 조화롭게 상호 관계하는 완전한 ‘부트스트랩’ 상황에 대한 신비적 수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한 의식의 경지는 모든 사물과 사건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직접적 경험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지성의 영역은 초월되며 인과적 설명도 불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상호 관통이라는 불교적 개념은 어떠한 과학적인 부트스트랩 이론보다도 훨씬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트스트랩 가설에 입각한 현대 물리학의 아원자적 입자 모형들은 대승 불교의 견해와 가장 인상 깊은 유사성을 보여 준다. (369)

강입자 부트스트랩 이론이 완성되기에는 아직 멀었으며 그 형성에 수반하는 난점도 아직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은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입자에 대한 기술을 넘어서 자체 조화의 연구법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377)

앞으로의 강입자 부트스트랩 작용에 관한 확장은 그것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시공과 인간 의식의 ‘부트스트랩 작용’과 더불어 당연히 과학의 전통적 체계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전대 미문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378~379)

그러면 부트스트랩 아이디어는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물론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궁극적 운명에 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매혹적인 일이다. 우리는 꾸준히 증가되는 정밀성을 가지고 자연 현상의 끊임없이 증대되는 영역을 총망라하는 미래 이론들의 조직 체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379)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이론은 더 이상 그 결과를 말로 혹은 합리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과학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관한 부트스트랩 ‘이론’ 대신에 사고와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자연에 대한 부트스트랩 직관이 될 것이다. 과학을 넘어서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아친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직관에 포함되어 있는 앎은 완전한 것이지만 말로 소통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2000여 년 전에 노자가 아래와 같이 말하였을 때 마음속에 품었던 앎일 것이다.

참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참 알고 있지 않다. (379~380)

 

 

 

맺음말

제2판 후기: 다시 찾은 신물리학

제3판 후기: 신물리학의 미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쓰게 된 동기는 1969년 여름에 산타크루스에 있는 한 해변에서 내가 겪은 인상적인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405)

1970년 늦가을 어느 날 나는 임페리얼 대학교 근처에 있는 나의 아파트에 앉아서 그 그림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분명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주의의 유사점은 언젠가 상식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유사점들을 철저하게 탐구하고 그것들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405)

과거 15년 이상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406)

나는 현대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주의의 유사점을 깨닫는 것은 보다 폭넓은 운동, 즉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나 과학과 사회의 패러다임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들은 지금 심각한 문화적 변형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형, 즉 의식의 중대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 2,30년 동안 느껴 왔던 것이며, 이것이 바로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이다. (407)

지금부터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 대해 지난 15년 동안 가장 빈번하게 가해진 몇몇 비판들을 살펴보겠다. (중략)
나의 기본 주장에 대한 비판에서 특히 많이 들어 온 2개의 주장이 있다. 첫 번째 것은 오늘날의 과학적 사실들은 내일의 연구로 무효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422)

내가 자주 들어 온 두 번째 비판은 물리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2개의 다른 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423)

마지막으로 나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과한 나의 견해를 몇 마디 덧붙이고 싶다. 물론 이것은 지난 15년을 거쳐 오면서 다소 변해 왔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주의 사이에서 도출해 낸 유사점을 서양의 신비주의적 전통으로부터도 분명히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427)

20여 년 전에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쓰기로 경정했을 때, 나는 직업적으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428)

우리는 내가 이른바 ‘떠오르는 문화’라고 불러온 것에 대한 복합적인 대안 조직들을 갖추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사회 변화를 가져올 강력한 힘을 결집해 나가고 있다. (428)

 

 

해설

카프라 교수는 미국의 물리학 잡지에 수차 현대 소립자 물리학과 동양철학의 비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로스앤젤레스의 선 센터에서 직접 선을 공부하기도 한 동양통의 물리학자다.
카프라 교수가 본문 서두에서 제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오늘의 과학 문명을 주도해 온 현대 물리학은 인류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45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시적인 천체의 세계로부터 미시적인 소립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물질의 근본 주고를 밝히려는 물리학이 지금 어느 시점에 와 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하여 그토록 인류 사회에 그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452)

하지만 카프라 교수는 본 저서에서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을 수식이나 전문 기호를 쓰지 않고 일반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452)

 

발사 –미당 서정주 선생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종전의 철학, 형이상학, 종교, 문학 등과 자연 과학 사이가 서먹서먹했던 것, 또 사양과 동양이 쓸데없이 반자세를 가졌던 것 등이 많이 해소되고 잘 융화되어 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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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7:44:46 *.210.3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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