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이승호
- 조회 수 479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루스 베니딕트(Ruth Benedict, 1887년 ~ 1948년)는 미국 뉴욕출생의 인류학자이다. 결혼 전 이름은 루스 풀턴(Ruth Fulton)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동종 요법 의사와 외과 의사로서, 그녀의 어머니는 도시에서 교사로 일했다.
1905년 바사대학에 입학, 졸업 후 몇 년간 캘리포니아의 한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영어를 가르친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자이자 친구, 동료, 한때의 애인이었던 마거릿 미드는 젊은 시절 수줍음을 많이 타 보수적인 가문과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요구사항으로부터 심한 소외감을 느낀 베네딕트가 결국 인류학이라는 분야에 헌신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했고,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현대의 정치적ㆍ윤리적 문제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었다. 32살이 되던 1919년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 입학하여 새로이 인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 절대적 스승 프란츠 보아즈 교수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인류학 공부에 전념한다.
1923년 3학기 만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인〈북아메리카 수호 신령의 개념〉으로 학위를 받으며, 보아즈 교수의 지도 아래 뛰어난 연구 업적을 거두며 미국 인류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컬럼비아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녀는 지성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학자였고 1930년대에는 활발하게 반(反) 파시즘 운동을 벌였다. 1934년 자신의 대표적인 저작인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여 문화상대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강화해 나갔고, 1940년에는 <종족(Race:Science and Politics)>을 발표하여 국내에서 대단한 반응을 일으키며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미국 전시정보국 해외정보부 문화연구기초분석 책임자로 부임한다. 그리고 1944년 해외전의분석과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는데,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말기로 접어들 무렵으로 일본과의 심리전을 위해 일본인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던 때였다. 1946년 그녀는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했고, 책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48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서문-이안 부루마
-. 루스 베네딕트가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록 눈에 거슬리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냉철한 지식이 요구(p6)
-. 다른 나라의 문화가 가진 관점이 비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6)
-. 연합군 수장들이 일본이 패전 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베네틱트는 이런 불합리한 견해들을 헤쳐나가야 했다.(7)
-. 그녀 자신의 말처럼, 일본 전문가도 아니고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베네딕트는 오직 문서 자료와 영화, 일본계 미국인들과의 인터뷰에만 의존(8)
-. 베네딕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인종적.문화적 편견에 철저히 저항했다는 점. 그녀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에 임했다.(8)
-. 만약 국가적 나르시즘에 입각했다면 그녀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 대신 베네틱트는 진정으로 ‘타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에게는 그 타자의 윤곽과 특성이 의도했던 것만큼 명확히 드러나는가가 중요한 문제.(9)
-.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향후 행동을 미국 정부가 예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했다.(10)
-. 베네딕트의 지적은 적절. 국가적 서열의 정점에 위치한 천황은 국가의 종교적 이상을 대변하는 인물.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들은 천황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던 것.
1945년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베네딕트는 대중의 태도가 얼마나 쉽게 변화할 수 있는지는 예측하지 못했다.(11)
■ 역자 서문
-.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본 문화의 틀型을 탐구하고 있다.(14)
-.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思考의 틀(Pattern)을 탐구하는 것이다.(14)
-. 만년의 명작인 <국화와 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 그러나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부분적 체험은 전체적 방법론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15)
■ 제1장 연구과제-일본
-. 나는 전시에 일본인이 보여준 행동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로서 이용하도록 노력. 나는 그들의 전쟁 수행 방식을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로 바라보았다.(24)
-. 그러나 두 나라가 교전 중이라는 사실은 연구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 그것은 문화인류학자의 가장 중요한 연구방법인 현지조사를 단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24)
-. 미국에는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실을 묻고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알아내어, 연구의 많은 결함을 그들의 설명으로 보충.(25)
-. 실제로 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탐구하는 편이 더 만족스러운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25)
-. 문화인류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몇 가지 특별한 능력을 훈련해왔으므로, 연구자나 관찰자의 풍부한 성과에 독자적인 공헌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28)
-.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민족 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만큼 인류학자에게 유익한 일은 없다.(29)
-. 20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에 관해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33)
-. 차이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 그들은 차이를 존중.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도 미국은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다울 수 있는 세계이다.(35)
-. 국민적 차이의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신념과 함께 어느 정도의 관용이 필요.(36)
-. 이 책은 일본에서 예기되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습관에 대해 기술. 일본인은 어떤 경우에 예의를 지키고 또 지키지 않는가, 어떤 경우에 수치를 느끼고, 어떤 경우에 당혹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가 등에 관해 기술.(37)
-. 일본인이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흔히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의 많은 행동적 모순은 이미 모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40)
■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까지도 일본은 대동아의 이상이 도덕적으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45)
-. 그리고 이런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계층제도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신뢰. 그것은 평등을 사랑하는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층제도가 일본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그제도에 어떠한 장점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45)
-. 그들의 군대용 교과서 첫머리에는 큰 활자로 ‘필독필승’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소형 비행기로 미군의 군함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조종사들은 물질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교훈이 되었다. 이 조종사들을 가미카제 특공대라 한다. 가미카제는 13세기에 칭기즈 칸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그 수송선을 전복시켜 일본을 구한 성스러운 바람을 가리킨다.(48)
-. 일본인의 병력 소모 이론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이르게 한 것은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 후에 도저히 대적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항복.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을 본국으로 통보해주기를 원함.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음.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상황을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65)
■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과, 자유와 평등을 신뢰하는 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계층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는 인간 상호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서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가족, 국가, 종교, 경제생활 등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71)
■ 제4장 메이지유신
-. 19세기 전반에 겨우 중세에서 벗어난 일본은, 오늘날로 따지면 태국 정도의 약소국이었다. 그런 일본이 어느 나라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필요로 하는, 더군다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메이지유신이라는 대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능력을 가진 많은 지도자를 배출. 그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전통적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박힌 것. 그 성격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책의 주된 목적.(113)
-.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122)
-.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체계가, 다른 곳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국가에는 그런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이었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체계를 이해해야 한다.(134~135)
■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에게 뜻밖의 은혜를 입는 것을 일본인은 가장 불쾌하게 생각한다. 일본인은 이웃 사람이나 예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 온恩 받는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아는 사람이거나, 자신과 대등한 사람인 경우에는 온을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 그들은 가능한 한 온의 결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한다.
일본의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 그 사람에게 온恩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 메이지 이전의 유명한 법령중에는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 분명한 권한도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 받는다.(145)
■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 일본에서 천황은 전 국민을 통일하여 반감 없이 국가에 봉사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필요. 단순히 천황을 국민의 아버지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가정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의무를 다해 은혜를 갚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 천황은 일체의 세속적 상황에서 떠난 신성한 수장이어야 했다. 일본인 최고의 덕목인 천황에 대한 충절, 즉 주忠는 속세와의 접촉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하나의 환상적인 ‘선량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받들어야 한다.(172~173)
-. 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179)
-.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세계는 주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목격. 일본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많은 서양인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전쟁중 일본인은 어떠한 대담한 일이라도 태연히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들은 호전적인 국민이었다.
일본을 이렇게 분석한 미국인은 주를 계산에 넣지 않은 것.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179~180)
-.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남아 있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 패전에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181)
■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 기리는 인류학자가 세계 문화 속에서 찾아낸 여러 가지 별난 도덕적 의무의 범주에서도 가장 드문 것에 속한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 기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어떤 일본어 사전의 설명-내가 번역한-에 의하면, 기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쫓아야만 할 길,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이다.
기무란 그것이 아무리 곤란한 요구라 하더라도 가까운 혈육이나 조국, 생활양식, 애국심의 상징인 천황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 그것은 출생과 동시에 맺어지는 강력한 고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
따라서 기리는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하고, 기무는 직계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183~185)
-. 일본에서 결혼은 가문과 가문사이의 계약. 따라서 평생 상대 가문에 대해 계약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기리를 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리는 이 계약을 맺은 세대-어버이-에 대한 기리가 가장 무겁다.(185)
-. 기리의 규칙은 엄밀히 말해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192)
■ 제8장 오명을 씻는다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필수적인 일. 이 목적을 위해 쓰이는 수단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일 뿐. 일본인은 태도의 변경을 서양인처럼 도덕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231)
■ 제9장 인정의 세계
-.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 ‘단련’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뛰어난 감별법이다.(245)
-. 그들은 아내에 속하는 영역과 성적 향락에 속하는 영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두 영역은 모두 공공연히 인정됨. 양자의 구별은 미국인의 생활처럼, 한쪽은 사람들에게 공인받은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발을 들여놓는 영역이 아니다. 이 둘은 한쪽이 인간의 주요한 의무의 세계에 속하는 데 반해, 다른 한쪽은 사소한 기분 전환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구별. 이처럼 저마다의 영역의 ‘알맞은 위치’를 정해두는 습관은 가정의 이상적인 아버지나 한량도 마찬가지여서, 두 영역을 다른 세계로 본다.(247~248)
-. 일본인의 ‘인정’관은 몇 가지 중요한 귀결을 수반.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힘이 각자의 생활에서 패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253)
-.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다투는 선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니기타마)과 ‘거친’ 영혼(아라타마)이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은 지옥으로, 다른 한쪽의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영혼은 각각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모두 선하다.(254)
-. 그들은 끊임없이 조금도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 쾌락을 단념한다. 거기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강함이야말로 일본인이 가장 칭송하는 미덕이다.
이와 같은 일본인의 견해를 반영하듯, 일본의 소설이나 연극은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이 극히 드물다.(257)
■ 제10장 덕의 딜레마
-. 일본인은 ‘인간의 의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몇 개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생각. 그들은 인생이 ‘주忠의 세계’, ‘고孝의 세계’, ‘기리義理의 세계’, ‘진 仁의 세계’, ‘인정人情의 세계’, 그밖의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 저마다의 세계는 각각 특유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법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을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로 판단하지 않고, ‘고를 모른다’, ‘기리를 모른다’ 등의 말로 판단. 그들은 미국인처럼 어떤 사람을 부정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사람이 해야할 의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거나 불친절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 사람이 위반한 법도의 특정한 영역을 명시한다.(261~262)
-. 일본의 참다운 국민적 서사시는 <47 로닌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만큼 일본인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것도 없다. <47 로닌 이야기>의 주제는 주군에 대한 기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최후에 그들은 자살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주에 바친다.(266~267)
-.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를 논의하는 일본인은 끊임없이 우리와는 다른 의미를 찾아낸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든지, 어떤 개인적인 소망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동정. 그러나 그들은 그런 감정에 방해를 받아 자신의 기무 또는 기리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약자라고 비난한다. 서양인은 대개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얻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로는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강인함은 반복이 아니라 복종으로 증명된다고 생각. 따라서 그들의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는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일이 많다.
일본인이 자신의 생활이나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의 생활에 대해 판단할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들은 의무와 법도를 져버리고 개인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약자로 판단.(277)
-. 일본인은 치욕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道標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 발생할 우연을 예견할 수가 없는 것 등이 치욕(하지)이다. 그들은 수치는 덕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수치를 느끼기 쉬운 사람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 따라서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사람은 사후세계에서 벌을 받는 일이 없다. 일본인은-인도 경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승려를 제외하고-이 세상에서 쌓은 공과功過에 따라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사상을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은-충분히 교의를 이해한 뒤에 기독교로 귀의한 사람을 제외하면-사후의 상벌이나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모두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 그들은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를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행동방침을 정한다.(297)
-. 일본인이 가장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은, 그들의 덕을 일본 특유의 선행 도표가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외국에 적용하려고 시도했을 때였다. 그들은 ‘선의’에 의거한 ‘대동아’의 사명에 실패했다. 그들에 대한 중국인이나 필리핀인의 태도에 많은 일본인이 분노를 느낀 것은 거짓 없는 감정이었다.(298)
-. 그들은 때때로 일본인은 미국의 생활에 맞추는 것이 매우 곤란한데 비해, 중국인이나 태국인은 그렇게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 동기를 인정해 줄 것이라는 안도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이런 예절을 일체 무시하는 것을 보고 일본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298)
■ 제11장 자기 수양
-. 일본인의 타인에 대한 봉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은 물론 이런 상호의무이다. 그것은 남에게서 받은 만큼 같은 양을 변제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계층적 관계에 선 사람끼리 서로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기희생의 도덕적 지위는 미국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308)
-. 일본에서 ‘능력’을 기르는 자기 훈련의 근거는, 그것이 처세 태도를 개선한다는 점에 있다.(310)
-. 일본의 장례식이나 출생 의식은 윤회 사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윤회설은 일본적 사상의 틀이 아니다.(315)
-. 어린아이 때부터 일본인은 자기의 행위를 관찰하고, 타인이 무슨 말을 할까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철저히 훈련받는다.(328)
-. 육아법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어떤 나라의 국민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일본의 육아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성인에 국한한 분석의 많은 부분이 더욱 분명해질것.(333)
■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 일본의 생활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자유는 최저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해 몇십 년 동안 계속된다. 그후 곡선은 다시 점차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 곡선이 정반대이다.(336)
-. 미국에서는 장년기에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그런데 일본인은 이 시기에 개인에게 가해진 속박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이 시기에 인간은 체력이나 돈 버는 능력이 정점에 달하지만, 일본인은 자신의 생활을 취향대로 누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속박은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이고, 자유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굳게 믿는다. 이처럼 일본인은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기에 도달한 남녀에게 최대의 속박을 가하는데, 이것은 속박이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가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년기와 노년기는 ‘자유로운 영역’이다.(337)
-. 일본인이 아이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서다. 만일 대가 끊기면 그들은 인생의 실패자가 된다. 모든 일본 남자는 아들을 얻어야 한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매일 불단의 위패 앞에서 명복을 빌어줄 자식을 필요로 한다.(337)
-. 뿌리 깊은 연속성의 의식 때문에 성인이 된 자식이 아버지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미국에 비해 훨씬 오래 계속되어도, 서양 여러 나라에서와 같이 부끄러운 일, 면목 없는 일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338)
-. 어머니들은 용변 가리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차없이 가르친다. 이와 같은 가차 없는 훈련을 통해 갓난아이는 성인이 된 다음에도 일본 문화의 보다 복잡 미묘한 강제에 따를 소지를 만든다.(342)
-. 일본인은 대개 그들이 잘못했을 때 최초로 그들을 조롱한 사람은 학교 친구지 교사나 양친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 이 시기에 어른이 하는 일은 아이를 조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한다는 사실과 세상에 대한 기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서서히 연결해나가는 것이다.(359)
-. 징집병이 군대 훈련을 받고 나오면 완전히 변해 ‘진짜 저돌적인 국가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변화는 그들이 전체주의적 국가 이론을 배웠거나 천황에 대한 주가 주입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굴욕적인 기합을 당한 경험이다.(364)
-. 남자는 결혼 후 공공연히 밖에서 성적 쾌락에 빠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조금도 아내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결혼생활의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와 동등한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의 의무는 남편에게 정숙해야 한다는 것이다.(372~373)
-. 음주와 같은 ‘자유로운 영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은 절대로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생활의 중요한 면에서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말은, ‘바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일본인이 사용하는 가장 심한 악담이다.
종래 모든 서양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적 모순은 일본인이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의 인생관에 이원성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한 경험에 의해, 그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천국을 가지고 있다. ... 유아기의 경험은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든가, 인간은 누구든 죽음과 동시에 가미神가 된다는 극단적 윤리 해석의 바탕이 된다. 그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내세우게 하고 자신감을 부여한다.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어려운 일인 경우에도, 앞장서서 부딪혀나가는 태도의 기초가 된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자국 정부에게 반대 입장을 취해 싸우고, 자살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는 태도의 기초가 된다. 때로 그것은 그들에게 집단적 과대망상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부여한다.
예닐곱 살이 지나서부터 차츰 주의 깊은 행동과 ‘부끄러움을 아는’ 책임이 부과된다. 그것은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에게 배척받는다는 강력한 강제성이 따른다.(375~376)
-. 유년 시절의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친구에게 인정받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함. ... 그의 일생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폭력보다 무서운 일.(375,376)
-. 일본인이 사용하는 두세 개의 상징적인 물건은 자녀 훈육의 불연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들의 양면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장 빠른 시기에 형성된 측면은 ‘부끄러움 없는 자아’이다. 그들은 그 ‘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본다.(377)
-. 자기희생은 일본인이 때때로 공격해온 기독교적 개념의 하나이다. 그들은 자기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도 일본인은 주나 고, 기리의 부채를 갚기 위해 ‘자진해서’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자기희생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 죽음으로써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379)
-. 이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이원성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른이 된 후 로맨틱한 연애에 빠지는가 하면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듯 가족의 의견에 무조건 복종한다.(381)
-.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를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한다.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포기한다.
......
그러나 이와 같은 긴장은 개인에게는 무거운 부담. 그는 실패하지 않도록, 또한 많은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일련의 행위를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383,384)
-. 일본에서 자기책임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런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고도 훌륭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비유이다.(387~388))
-. 오늘날 일본은 서양적 의미에서 ‘칼을 버리고 항복할’ 것을 제의했다. 그런데 일본적 의미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어법에 의하면,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이다.(388)
■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 그들은 일본인이 흔히 말하듯이 ‘훈련을 위해서’, ‘연습을 위해서’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즉, 아버지는 현실의 인격을 떠난 계층제와 올바른 처세의 상징이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와 접한 경험으로 배운 이런 태도는 일본사회의 모든 면에 통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계층적 지위에서 최고의 경의를 받는 사람조차도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또한 계층제의 수뇌부를 차지하는 관리가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특성이다. 천황을 위시하여 아래에 이르기까지 조언자나 숨겨진 세력이 배후에서 그것을 조종한다.(195)
-. 일본이 평화 국가로 재출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방침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일본인은 양자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쟁으로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은 이제 그 방침을 포기할 수가 있다. 여태껏 받아온 일체의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에 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399)
-. 일본인은 일정한 행동방침을 취하고 그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 그는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나면 실패한 주장을 버린다. 실패로 끝난 주장을 집요하게 계속 고수하지는 않는다.(400)
-. 1945년 8월 14일에 일본의 최고 지상인 천황이 그들에게 패전을 알렸다. 그들은 패전한 사실이 의미하는 일체의 일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미군의 진주를 의미. 그들은 자진하여 전쟁을 포기하는 헌법의 입안에 착수.(401)
-. 그 독특한 윤리 덕분에 일본인은 장부에서 일체의 숙원 기록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미국의 정책과 함께 맥아더 장군의 점령 정책은 모처럼 깨끗해진 새로운 장부에 새롭게 모욕을 기입하는 일을 피하고, 단지 일본인의 눈에 패전의 ‘당연한 결과’로 비춰지는 일만 이행하도록 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것은 효과적이었다.
천황제의 보존은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었다.(406)
-.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나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413)
Ⅲ. ‘내가 저자라면’
책을 통해 얻을수 있는 이익중의 하나가 그 내용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나와는 다른 문화의 수용의 폭을 넓히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선 보면 루스 베네틱트의 <국화와 칼>은 더할수없이 좋은 책이라고 볼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저자의 저서. 그녀의 말처럼, 일본 전문가도 아니고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베네틱트가 오직 문서 자료와 영화, 일본계 미국인들과의 인터뷰에만 의존하여 써내려간 <국화와 칼>. 이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수 있는 것은 현장경험과 실전적인 체험만이 모든 것의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물과 환경을 바라볼시 얼마나 객관적인 자세와 태도를 견지 하는냐는 점일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써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 철저히 저항한 베네틱트. 무엇보다 <국화와 칼>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이런 점들일 것이다.
대학교 시절 인류학 개론 시간에 레포트 제출을 위해 만났었던 <국화와 칼>을 시간이 지난후 오늘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덕분에 일본인이라는 민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게해 주는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일본 민족에 대해 내릴수 있는 특성으로는 각자의 위치, 의무, 책임의 세가지로 나타낼수 있을 것같다. 이에대해 다음과 같은 예제로써 일본이라는 나라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1. 부산 실내 사격장 화재 사건시 보여준 일본 유가족들의 태도
최근 부산에서 실내 사격장 화재 사건이 있었다. 그로인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안전 불감증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이일로 인해 몇몇의 일본인들이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과, 이들의 장례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유가족들의 태도였다.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우리들의 절규하는 가족들의 태도와는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그들의 침착한 태도, 정숙한 모습들이 뉴스에 보도되는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본 국민의 침착성, 예의바름,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등등. 하지만 이런 그들의 행동에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훈련받은 성향이 몸에 배여 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
‘일본이 평화 국가로 재출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방침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일본인은 양자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쟁으로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은 이제 그 방침을 포기할 수가 있다. 여태껏 받아온 일체의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에 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죽은자들에 대해 울분과 격한 감정으로 그들의 느낌을 토로해 보았자 이제는 돌이킬수 없는 상황임을, 그들은 훈련된 생활양식으로 학습 되었기에 우리로 보아서는 이해가 되지않을 정도의 냉정한 모습을 보일수가 있었던 것이다.
2. 일본 공직자들의 자살 VS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뉴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일본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심심찮게 자살을 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왜저렇게 자살을 많이 하는 것일까?’ ‘일본이란 나라는 역시 대단해. 저렇게 청렴을 부르짖다니. 그런면에서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멀었어.’
<국화와 칼>을 읽다보면 그들의 죽음이 자신의 양심에 빗대어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했다고 여기기 보다는,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결과라고 파악할수 있다. 이런 결과가 공공연하게 나올수 있게된 배경으로 저자는 일본 특유의 육아법을 제시한다. 그들에게는 예닐곱 살이 지나서부터 차츰 주의 깊은 행동과 ‘부끄러움을 아는’ 책임이 부과된다. 그것은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가족 나아가 사회로부터 배척받는다는 강력한 강제성이 따르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배척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어떤식으로 해석될수 있을까? 일본인의 문화의 시각에서 바라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스스로의 선택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죽음으로써 당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무언으로써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우리 민족이 쌓아온 우리들만의 정서와도 어느정도는 매치가 되는 점일 것이다.
3. 고 이수현 사건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같은 일본인들이 지켜봄에도 타국에서 타인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졌던 고 이수현씨를 통해 그들은 여러 느낌이 들었었던 모양이다. 같은 일본인인 자신들이 나서지 못했다는 자성과 함께, 외국인이 그것도 대한민국 젊은이가 일본인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 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더크게 와닿았던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도 일본인 특유의 성향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수 있다. 이점에 대해 베네틱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일본의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 그 사람에게 온恩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 이전의 유명한 법령중에는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 분명한 권한도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 받는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는 일본의 좌우명답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일본인 그들이었기에, 그런 위급상황에서도 훈련된 그들은 나서질 못했다.
4. 2002년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의 월드컵 응원
아마도 2002년 월드컵에서만큼 일본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족성을 확연히 드러내게한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 광장에 안면부지顔面不知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일어나 경기내용에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고 밤을 새며 응원하는 우리의 민족성. 일본인인 그들의 시각으로써는 좀체 이해가 되지 않았을 장면같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만 충실한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성향의 일본인들의 눈에서는 더욱 그러했을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이런 민족성을 통해 한때 일본을 추종하여 모방하기에 급급했었던 삼성이라는 기업이, 오히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게된 결과로써 파생이 될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일본을 일본답게 만들어 주었던 그들의 ‘칼’이란 문화. 이성적이고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문명인을 만들게 해주었던 그들의 문화가, 이제는 오히려 일본인 그들의 숨통을 죄는 ‘칼’로써 돌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을 해봄직한 시대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 書元 이승호 | 2009.12.06 | 4790 |
2151 |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틀 | 예원 | 2009.12.06 | 3319 |
2150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프리초프 카프라 | 혜향 | 2009.11.30 | 3252 |
2149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2] | 숙인 | 2009.11.30 | 4303 |
2148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혁산 | 2009.11.30 | 2766 |
2147 |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 프리초프 카프라 | 희산 | 2009.11.30 | 2789 |
2146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 예원 | 2009.11.30 | 4412 |
2145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2] | 書元 이승호 | 2009.11.30 | 4506 |
2144 |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 정야 | 2009.11.30 | 3295 |
2143 | 북리뷰 32 : 생의 수레바퀴 - 퀴블러 로스 [2] | 범해 좌경숙 | 2009.11.30 | 3080 |
2142 |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 백산 | 2009.11.30 | 2975 |
2141 |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 효인 | 2009.11.30 | 2834 |
2140 | [32]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인용문 3부 | 수희향 | 2009.11.28 | 2646 |
2139 | [32]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인용문 1 & 2부 | 수희향 | 2009.11.28 | 2894 |
2138 | [32]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1] | 수희향 | 2009.11.28 | 2792 |
2137 | 주역강의 - 서대원 | 혜향 | 2009.11.24 | 3496 |
2136 | [31] <주역강의> - 인용문 | 수희향 | 2009.11.24 | 4034 |
2135 | [31] <주역강의>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 수희향 | 2009.11.24 | 2853 |
2134 | 주역강의-서대원 | 정야 | 2009.11.24 | 4097 |
2133 | '주역 강의' - 서대원 | 희산 | 2009.11.24 | 3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