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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7일 09시 58분 등록

국화와 칼-일본 문화의 틀

   - 루스 베네딕트 지음 / 김윤식, 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저자에 대하여

루스 베네딕트(1887~ 1948)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1921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절대적인 스승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 Race: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등이 있다.

 

만년이 역작인 <국화와 칼> 1944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적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베네딕트는 『문화의 패턴』이라는 저서를 통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베네딕트는 근대적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문화의 인과론적 우위를 증명하였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베네딕트는 미국 사회와는 크게 다른 이 세 사회의 성격을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생활을 통제하던 빅토리아풍의 엄격한 관습의 힘을 약화시켰다.

베네딕트는'문화와 인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개인이란 탄생시에는 매우 다양한 인선으로 주조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각 사회는 문화화(文化化)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상적인 성인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어떤 특정한 문화에서 문화적인 정상성이 곧 보편적인 정상성은 아니며, 비정상이란 단지 어떤 개인이 자신이 속한 문화의 고유한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베네딕트는 인성의 유형에 대한 연구를 진행, 각 사회의 이상적인 인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그녀는 미국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47년에는 컬럼비아대학에 현대문화연구소를 설치, 대규모 연구 과제를 추진하다 61세가 되는 이듬해 사망하였다.

 

▣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이안 브루마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베네딕트가 말한 이른 바 어느 정도의 관대함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지닌 관점이 비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런 나름의 가치를 잦고 있다는 사실을 일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6]

 

베네딕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런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 철저히 저항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에 임했다.[8]

 

문화 분석의 위험성은, 그것이 세계를 너무나 정적이고 단일한 것으로 가정한다는 점이다.[9]

 

일본 사회는 서구 사회보다 절대적인 윤리 기준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좋은 행위에 대한 외부의 인정에 더 의존한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의견에 매우 민감하다고 베네딕트는 말한다.[10]

 

수치심이란 실화적인 의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죄책감은 발각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 느끼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여 생긴다.[10]

 

유일신 종교가 제시하는 윤리적 절대 기준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윤리나 삶의 목적 등 모든 것은 생황의존적일 뿐이다. 따라서 그렇게 호전적이던 민족이 쉽사리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12]

 

일본인 대다수는 평화주의적 이상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다.[12]

 

베네딕트는 난해한 용어를 쓰지 않고 복잡한 사상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문체는 그이 사람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훌륭한 인간성과 영혼의 관대함을 지닌 작가였다.[13]


역자 서문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의 생동과 사고의 틀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지(수치, 부끄러움)’의 인식에 놓인 문화다.[14]

 

1944 6월 미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15]


1장 연구 과제일본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아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쓴 저작에는, 일찍이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쓰인 적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20]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쓰면서, 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는 사실을 기술한 또 다른 책으로 그 국민의 성격을 보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20]

 

그렇지만 이런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그러한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이다. 일본인을 최고도의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인다.[21]

 

종교적 교리와 경제적 관습과 정치는 결코 명료하게 격리된 작은 연못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넘어 흘러간다. 그래서 그 물은 서로 섞여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합쳐진다. 이 사실은 항상 진리이므로 연구자는 그 연구가 경제, 성생활, 종교 또는 어린아이 양육 등 여러 가지 사실 속에 분산된 것처럼 보일수록,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더욱 잘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33]

 

이 책은 일본인의 보편적 특성을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검토한 책이다.[33]

 

덕과 악덕인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고 유교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40]

 

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44]

 

일본은 승리의 가능성을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바탕 위에 놓고 있었다. 정신력이 반드시 물질력을 이긴다고 부르짖었다.[45]

 

일본인이 전쟁 중 끊임없이 되풀이한 또 하나의 주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매우 잘 나타내준다. 그들은 계속 세계의 눈이 우리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문구를 입에 올렸다. 따라서 일본인은 일본 정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54]

 

그들에게 천황은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생각할 수 없다.” “일본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이며, 국민의 종교 생활의 중심이다. 천황은 초종교적 대상이다.” 설령 일본이 전쟁에 패하였다 하더라도 패전의 책임은 천황에게 없다. “국민은 천황이 전쟁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패전이 되더라도 책임은 내각과 군 지휘관이 져야 하며,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설령 일본이 지더라도 일본인은 열명이면 열명 다 천황을 계속 숭배할 것이다.”[58]

 

일본인의 병력 소모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이르게 한 것은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65]


많은 미국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또 그 웃음이 교도관을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포로란 치욕을 입은 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66]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미국에서는 가족에게는 형식적 예의를 벗어 버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예의범절을 배우고 세심하게 이행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77]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게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이다.[78]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데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되다. 일본인은 극단적인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어떤 일이난형난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의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실제 일본인의 사고로는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남은 맏형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81]

 

일본에는 세대와 성별과 연령에서 오는 특권이 이처럼 크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멋대로 하는 독재자로서가 아니라 중대한 책무를 위탁 받은 사람들은 멋대로 하는 독재자로서가 아니라 중대한 책무를 위탁 받은 인간으로서 행동한다.[84]

 

일본인은 가정 생활에서 전제적인 권력을 존중하도록 배우지 않는다. 도한 쉽사리 권위에 굴복하는 습성을 기르지도 않는다. 가족의 의사에 복종하는 것은, 그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가족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명분으로 요구한다. ,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85]

 

일본인은 누구나 우선 가정 내부에서 계층 제도의 습관을 배우고 그것을 경제활동이나 정치 생활 등 넓은 영역에 적용한다. 그가 실제로 집단 속에서 지배력을 가진 인물이든 아니든, 자기보다 위의분수에 맞는 위치를 갖는 자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경의를 표하도록 배운다.[85]

 

일본의 봉건사회는 복잡한 계층으로 나눠지고, 각자의 신분은 세습적으로 정해졌다. 도쿠가와는 이 제도를 고정시켜 각 스타마다의 일상 행동을 세밀히 규정하였다……황실과 궁정 귀족 밑에 신분 순으로 무사, 농민, 상인의 네 가지가 일본의 카스트였다.[91]

 

상인계급은 천민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미국인은 이런 사실이 의외라고 느끼겠지만 봉건사회의 실정에는 매우 적합한 일이었다. 상인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실업자가 존경받고 번영하면 봉건제도는 쇠퇴한다.[92]

 

사무라이와 다른 세 계급, 즉 농, , 상인과의 사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 세 계급은서민이었지만, 사무라이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그들의 특권으로서, 또 그 카스타의 표시로서 허리에 찬 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시대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서민에 대해 칼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94]

 

일본에서 이중통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2세게 이래 대원수(쇼군)가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99]

 

부유한 상인이 하층 사무라이 계급에 합류했다. 이 사실은 서양과 일본의 현저한 차이점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봉건제도가 붕괴한 것은 점점 발달하고 우세해진 중산계급의 압력이 그 원인이었다. 중산계급이 근대 산업 시대를 지배한 것이다. 일본에는 그런 강대한 중산계급은 발생하지 않았다.[105]


4장 메이지 유신

일본 근대화 초기의 구호는 손노조이 즉 ‘왕정을 복고하고 오랑캐를 추방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세에 짓밟히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천황과 쇼군의 ‘이중통치’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109]


메이지 유신의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했다. 그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113]


일본의 정치 형태와 이와 유사한 서양의 사례의 차이는, 형식에 있지 않고 기능적인 면에 있다. 일본인은 과거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 냈고, 그들이 윤리 체계와 예절 속에 격식화되어 있는 낡은 복종의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는각하들이알맞은 위치에 있어 직분을 다하며 반드시 그의 특권이 존중해 준다. 그것은 해당 정책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 것 자체가 괘씸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상층에서는 국민의 여론은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따름이다.[121]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122]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정치에서는 국가의 기능이 미치는 영역을, 종교에서는 국가신토의 영역을 신중히 구획했다.[127]

 

가정이나 개인간의 관계에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 등이 알맞은 행동을 지정한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는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자기들의 특권의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받는다.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동안은 일본인은 불만 없이 잘 살아간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33]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일본의 도덕체계가, 다른 곳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국가에는 그런 도덕률이 없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이었다.[134]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온의 여러 용법을 모두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윗사람이 아니거나, 적어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게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를 베푼 사람을 온진이라고 부른다.[139]

 

최우선이자 최대의 채무인 천황의 온을 일컫는 경우, 온은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된다.[141]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서 부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이자가 붙는 것처럼 더욱 불어난다. 어떤 사람에게도 온을 받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143]

 

이처럼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온의 부담을 가볍고 지기 쉬운 것으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 감정을 상하지 않고 온을입은 것은 행복한 경우이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사람에게 온을 베푼다는 말을 한다.[144]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자신에게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도움을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145]

 

사람은 끊임없이 상반된 감정을 품으면서 온을 입는다. 일반적으로 인정된 관계구조에서, 온이 내포하는 커다란 채무는 때로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전력을 다해 은혜를 갚게 만든다.[148]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 받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157]

 

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채무에 대한 끝이 없는 변제는 ‘기무 ’ 라고 불린다. 이에 관해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 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무’는 부모에 대한 보은인 ‘고 孝’와, 천왕에 대한 보은인 ‘주 忠’라는, 두 종류의 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161]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이 효행 속에 포함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부모에게 받은 채무에 대해 자식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보은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개인의 정당한 행복에 대한 외부의 간섭의 사례이다. 일본인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앞서기 때문에 이것을 외부의 간섭으로 보지 않는다.[169]

 

일본 효행의 특징은 가족 구성원간에 뚜렷한 원한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효행과 거의 동등하고 중대한 기무인 천황에 대한 충절에는 원한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천황을 신성한 수장으로 받들고, 세속적 생활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한 것은 정말로 타당한 조처였다. 일본에서 천황은 전 국민을 통일하여 반감 없이 국가에 봉사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필요했다.[172]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쳤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 온 나라였다.[175]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지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177]

 

일본인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지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 대신 일본인은 무엇보다 높이 평가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즉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181]


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기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인은 누구나 행위의 동기나 명성, 혹은 본국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리를 입에 담는다.[184]

 

기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세상에 대한 기리’-글자 그대로는 기리를 갚는 것’-는 동년배에게 온溫을 갚는 의무이다. 이름에 대한 기리’는 대체로 독일인의 ‘명예같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비난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다. 기무가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면,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185]

 

기리는 아주 괴로운 일이자 본의 아닌 일이다. 따라서 기리 때문이라는 표현은 일본인에게는 번거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이다.[187]

 

일본인은 복수의 주제를, 죽음을 건 충절과 마찬가지로 흔쾌히 찬양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기리였다. 충절은 주군에 대한 기리였고, 모욕에 대한 복수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기리였다. 일본에서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191]

 

기리의 규칙은 엄밀히 말해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다.[192]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기리는 기무와 구별된다. 기무는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완전하게는, 아니 완전에 가까운 정도까지는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리는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193]


8장 오명을 씻는다
사람이 기리를 지키고 오명을 씻는 한, 그것은 결코 침해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빚을 갚아 셈을 치르는 것일 뿐이다. 일본인은 모욕이나 비방이나 패배를 보복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말한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을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이 아니다.[201]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 즉 자제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203]


진정한 존엄성이란 항상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자기에게 알맞은 지위를 차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토크빌이라면 계급 차별은 그 자체로는 결코 굴욕적이지 않다는 일본인의 태도를 이해하였을 것이다.[205]

 

일본인에게는 자기방어가 대단히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면전에서 직업상의 과오를 지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예의이며 또한 현명한 태도라고 여긴다.[209]

 

직접적 경쟁은 최소한으로 억제하려는 이런 노력은 일본인의 생활 전반에 나타난다. 미국인의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게 생각되는 반면, 온에 입각한 윤리에서는 경쟁을 허용할 여지가 아주 적다.[211]

 

농부는 적당한 옷을 갈아입고 적당한 예의를 차리기까지는 손님을 아는체하지 않는다.[213]

 

이상과 같은 방법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여 일본인은 실패로 인해 치욕을 당하는 기회를 피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모욕 받는 오명을 씻는 의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사실이 그들이 모욕을 느낄 기회를 가능한 난 차단하도록 일을 처리한다.[214]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는 민족이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 보다는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223]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225]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쓰이는 수단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들일 뿐이다. 일본인은 태도의 변경을 서구인처럼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231]

 

상황에 따른 현실주의는 일본인의 이름에 대한 기리의 밝은 면이다. 달처럼 기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235]

 

기리는 모든 계급에 공통된 덕이었다. 일본이 다른 모든 의무나 규율과 마찬가지로 기리는 신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무거워지기는 하지만,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요구된다.[236]

 

9장 인정의 세계

일본의 도덕률은 뜻밖에도 그처럼 관대하게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239]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은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 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게 해두어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한 사항의 영역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239]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박한 육체적 쾌락의 하나는 온욕이다.[240]


잠 또한 일본인이 애호하는 즐거움이다. 그것은 일본인의 가장 완성된 기능의 하나이다.[243]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단련이 잘 되어 있는 가를 알 수 있는 뛰어난 감별 법이다. 따뜻함을 멀리하고 수면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식 또는 고난을 참고, 사무라이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으면서도) 이쑤시개를 입에 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다. [245]
어떤 잡지에서 현대의 한 일본인은 이렇게 말한다.“이 나라에서 결혼의 참다운 목적은 아이를 낳아 집안의 대를 잇는 데 있다. 이외의 목적은 모두 결혼의 참다운 의미를 왜곡할 뿐이다.[248]

 

완고한 전통적 일본인은 음주와 식사를 엄중히 구별한다. 술이 나오는 마을의 연회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미 술 마시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다른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두 개의세계를 확실히 구별된다. 집에서도 식후에 술을 마시는 일은 있지만, 술과 밥을 동시에 먹는 일은 없다. 차례로 어느 한 쪽의 즐거움에 전념한다.[253]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253]

 

10장 덕의 딜레마

일본인의 인생관은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에 나타난 바 그대로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몇 개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261]

 

그들은 생활을 어는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어는 하나의 행동 방침과 다른 행동 방침이라는 양자의 요구를 깊게 비교 고할 하루 필요가 있는 한편의 연극으로 본다.[246]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을 갈지 않으면 녹이 슨다. 그들이 곧잘 말하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은자신의 인격이 녹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번 갈아내기만 하면 된다.[265]

 

서양인은 대개 인습에 반가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얻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로는 강자란 개인적인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강인함은 반항이 아니라 복종으로 증명된다고 생각다.[277]

 

근대 일본인은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한가지 덕목을 들 때 보통 ‘성실’을 선택한다.[283]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관념이나 ‘일본 정신’에 의해 지도상에 그려진 ‘길’을 따르려는 열정을 말한다.[289]


11장 자기 수양

일본은 불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윤회와 열반 사상이 국민의 불교적 신앙의 일부분이 된  일이 없다.[314]

 

무가의 밑바탕에 있는 철학이 죽은 셈치고 산다는 태도의 밑바탕에도 숨어 있다. 이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일체의 자기 감시, 일체의 공포심과 경계심을 버린다. 그는 죽은 자, 즉 이미 올바른 행동방침에 대해 걱정할 필요를 초월한 사람이 된다.[331]

 

그는 숙달의 수행을 쌓아 하지의 자기 감시를 배제하려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그의 육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이다.[332]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336]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적 모순은 일본인이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인 일본인의 인생관에 이원성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해,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부끄러움을 몰랐던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375]

 

일본인이 사용하는 두세 개의 상징적 물건은 자녀 훈육의 불연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들의 양면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장 빠른 시기에 형성된부끄러움 없는 자아이다. 그들은 그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본다.[377]

 

그들은 자제에 의해 자아가 한층 가치 있는 것이 된다는 생각을 도덕률의 중요한 신조로 여겨왔다.[379]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많은 요구를 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여 비방을 받는 큰 위협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모처럼 맛을 알게 된 개인적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들은 인생의 중대사에서는 그러한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이와 같은 패턴을 위반하는 소수의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존경을 상실하는 위험에 빠진다.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이냐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한다.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하지)을 알고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384]

 

일본적 의미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 속에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어법에 따르면, 칼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이다.[388]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일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413]

▣ 내가 저자라면

전쟁시 효과적인 전략 전술을 위하여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연구 조사를 한 내용답지 않게 부드러운 문체에 쉽게 쓰여졌다. 그것도 인류학자로서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일본에 대한 자료 수집과 이민 온 일본인을 통해 연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치 내용이 오래 살면서 겪은 듯이 자세하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일본인의 비교 형식은 두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책의 구성은 산만하다. 일본인의 인생관인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에 따른 기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생관이 모든 생활면에 다 나타나다 보니 비용이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일본인의 생활 패턴에 따른 구성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이 책은 동양인 특히 일본인의 행동유형, 사상과 감정이 특성에 배어 있는 문화의 틀을 이해 하기 위해 미국인의 사고의 틀과 비교하며 쓰여졌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종교적, 사회 규범적인 윤리관이 명확한 서양인의 입장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동양의 사고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의 그러나 또한이라는 표현이 나타내는 모순을 이해 가기 위해서는 동양철학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저자도 국화와 칼의 모순 자체가 진실이라고 말한다. 문헌 만으로 이만큼 분석한 저자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있어 보인다.

 

일본의 사상과 문화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개인적인 삶보다 충, , 효를 중시하는 부분은 매우 흡사하다. 일부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 부사의 의리, 수치심에 대한 자기방어와 온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은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나머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비슷하다는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말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부끄럽게도 우리문화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우리의 의식구조 아래는 무엇이 내제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 그리고 일본과 비교하여 어떠한지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는 우리 동양의 문화도 나쁘지 않다고 보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몇 가지 고치고 싶은 것들은 있다. 개인의 행복보다 남을 의식하는 것,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 나도 모르게 누구와 비교하는 것 등은 나 자신부터 버리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러한 것에서 좀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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