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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루스 베니딕트(Ruth Benedict, 1887년 ~ 1948년)는 미국 뉴욕출생의 인류학자이다. 결혼 전 이름은 루스 풀턴(Ruth Fulton)이다. 우연한 기회에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어 1921년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인종Race:Science and Politics』을 출간함으로써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1946년 만년의 역작인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네딕트가 두 살 무렵에 외과 의사이던 아버지가 급사하는 바람에 그녀는 뉴욕 주 섀턱 농장(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사와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하면서 힘겹게 두 딸을 키웠다. 그 때문에 베네딕트는 내면적으로 깊은 고뇌를 느끼며 성장했다. 신경질적인 발작증세가 있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내면적인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을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더군다나 그녀는 열별을 앓은 후 한쪽 귀의 청력을 잃기도 했다. 두 살 아래 여동생 마저리는 성격이 밝고 예쁘고 활달한 아이여서 그녀의 우울한 성격은 더욱 대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의 혼란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베네딕트는 1914년 여름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하지만 결혼 후에도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갈등을 빚었다. 더군다나 기다렸던 아이의 출생이 좌절되면서 베네딕트는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된다.
그녀는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학문과 연결시켜 그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바로 문화인류학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런 성격의 소유자인가?” “나는 왜 인생에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운명처럼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루스 베네딕트의 삶은 문화인류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증명이다.
절반쯤 청각장애인이 된 아이, 조울증 기질을 가진 소녀, 결혼에 실패하여 별거한 여자, 성 정체성에 심한 혼란과 갈등을 느낀 여자, 남성 주도의 대학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경쟁해야 하는 여성 학자 등 스스로의 정체성을 현실에서 찾기 어려웠던 한 인간이 ‘나란 존재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 바로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의 학문이었다.
주요저서로 《문화의 유형 Patterns of Culture》(1934) 《민족-과학과 정치성 Race: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1장 연구과제-일본
(10) 문호가 개방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씌어진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적이 없을 정도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1) 이러한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그러한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가 함께 한 그림의 일부분이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16) 일본인들은 그들의 세계 확장 계획은 물론 일상의 사소한 일에 관해서도 기록했다. 일본인들은 놀랄 만큼 솔직했다. 물론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전체모습을 그대로 기록하지는 않는다. 어느 민족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일본에 관해 연구하는 일본인은 그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흔하며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한 문제를 빠뜨리고 만다. 미국인이 미국에 관해 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자기를 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종족이다.
(21) 어떤 국민 생활의 사소한 인간적 일상 생활에 주의해야만, 비로소 어떤 미개 부족에도 또 어떤 문명국에도 인간의 행동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인류학자의 전제에 대한 중요한 의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3) 20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식의 결핍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난 경우라도 우리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23) 모든 나라의 문필가들은 그들 자신의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30) 나는 일본인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처음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어구나 관념들이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마침내는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에 걸친 감정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과 악덕인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고 유교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제2장 전쟁중의 일본인
(33)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 제도(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5) 그러나 군함이나 대포는 바로 불멸의 일본 정신에 대한 외면적 표시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무라이의 칼이 마치 용기의 상징이었듯이 그것들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40)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41) 미국인은 생활 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44) 일본에서 산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의 천황 숭배는, 나치스 당의 성쇠를 점치는 척도이며 파시즘적 계획의 모든 악과 결부된 하일 히틀러(Heil-Hitler) 숭배와는 함께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장했던 것이다.
(46) 그들에게 천황은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생각할 수 없다.” “일본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이며, 국민의 종교 생활의 중심이다. 천황은 초종교적 대상이다.” 설령 일본이 전쟁에 패하였다 하더라도 패전의 책임은 천황에게 없다. “국민은 천황이 전쟁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패전이 되더라도 책임은 내각과 군 지휘관이 져야 하며,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 “설령 일본이 지더라도 일본인은 열명이면 열명 다 천황을 계속 숭배할 것이다.
(50) 천황이 명령하는 한 일본인 ‘죽창을 들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만일 칙명이라면 그들은 조용히 패전과 점령을 감수할 수 있다는 포로들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53) 일본인의 병력 소모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이르게 한 것은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중과부적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로운 군인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이 본국으로 통지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도 모욕을 받지 아니한다.
(56) 서구 병사들과 일본 병사들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일본 병사들이 포로로 연합군에게 협력한 점이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생활규칙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명예를 잃은 자이며, 일본인으로서의 그들의 생명은 끝났던 것이다.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59)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 관계에 대한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61) 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자기 위치를 갖게 하는 데 대한 일본의 정부의 정책은 불변이다. 일본정부는 현사태의 영구화를 참을 수가 없다. 그것은 각국이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위치를 즐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64) 일본인 또한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그들의 신념을 표명한 것은 스스로의 사회적 체험에 의해서 그들 속에 깊이 뿌리내린 생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66)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게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이다.
(68) 어떤 사람의 고삐는 그의 영지에 매여 있었다.
(69) “부모에게 의견을 제출하고 싶어하는 자식은, 머리를 기르고 싶어하는 승려와 같다. 그 까닭은?” 이에 대한 답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70)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데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되다. 일보인은 극단적인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어떤 일이 “난형난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의 “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실제 일본인의 사고로는 마치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사람은 맏형으로서의 성격을 어디까지나 가져야 하는 것이다.
(72) 일본에는 세대와 성별과 연령에서 오는 특권이 이처럼 크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멋대로 하는 독재자로서가 아니라 중대한 책무를 위탁받은 인간으로서 행동한다.
(73) 일본인은 누구나 우선 가정 내부에서 계층 제도의 습관을 배우고 그것을 경제활동이나 정치 생활 등 넓은 영역에 적용한다. 그가 실제로 집단 속에서 지배력을 가진 인물이든 아니든, 자기보다 위의 ‘분수에 맞는 위치’를 갖는 자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경의를 표하도록 배운다.
(82) 사무라이와 다른 세 계급, 즉 농, 공, 상인과의 사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 세 계급은 ‘서민’이였지만, 사무라이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그들의 특권으로서, 또 그 카스타의 표시로서 허리에 찬 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시대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서민에 대해 칼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법령이 “사무라이에 대해 무례하게 군다든가, 그들의 상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서민은 즉석에서 참해도 좋다.” 고 규정한 것은 이전부터의 관습에 법적 효력을 부여한 것에 지니지 않는다.
(85) 동기의 정당함은 법을 어긴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89) 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 시대의 일본 계층 제도는 근대 일본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봉건 제도가 법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은 요컨대 겨우 75년전에 불과하다. 그 뿌리 깊은 국민적 습성이 겨우 인간의 일생에 불과한 75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소멸될 수 없는 일이다.
(94) 혁명을 싫어하던 일본이 갑자기 방침을 바꾸어 서양 여러 나라의 모범에 따르기로 하였고, 겨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서양 여러 나라가 본령으로 하는 분야에서 서양 여러 나라와 경쟁하게 되리라고는 실로 생각조차도 못한 일이었다.
제4장 메이지유신
(101)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
(101) 이들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또 그 단점까지도 전통적인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109) 국정의 최상층에서는 ‘국민의 여론’에 대한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따름이다. 국가가 그 권한의 영역을 지방 행정의 범위 내에 침범할 때에도 또한 그 지배권은 황송하게 받아들여진다. 갖가지 국내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는 미국에서 일반적을 느껴지고 있는 것처럼 불가피한 필요악이 아니다. 일본인의 안목으로 보면 국가는 더없이 존귀한 것이다.
(110) 일본인의 생활 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어른’에게는 서구 문화보다도 더 큰 존경-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을 주지만, 웃어른들도 그 지위를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14) 이와 같이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정치에서는 국가의 기능이 미치는 영역을 종교에서는 국가 신토의 영역을 신중히 구획하였다. 그들은 다른 영역을 국민의 영역에 맡겼다. 그렇지만 그들은 직접 국가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새로운 계층 제도의 최고 관리인인 그들 자신의 손에 지배권을 두려워했다.
(116) 그 후 이러한 산업에 대해 정부는 “조직을 정비하여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신장함에 따라”, 그것을 민간 회사에 불하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산업을 선택된 소수의 자본가, 특히 마쓰이나 미쓰비시 같은 저명한 재벌에게 ‘형편없이 싼값’에 팔아 넘겼다.
(117) 일본이 이룩한 것은 실수와 헛된 소모를 최소한도로 줄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119) 미국에서 누보리슈란 엄밀하게는 ‘새로 온 사람들(newcomers)’이란 뜻이다. 누보리슈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세련되지 못하고 또 알맞은 품위를 익힐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정적 측면은 그들이 통나무집에서 출세한 인간이며, 노새를 몰던 신세에서 몇백만 달러의 유전 경영자가 되었다는,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는 긍정적 측면에 의해 상쇄된다.
(120) 이와 같이 일본인은 끊임없이 계층 제도를 고려하면서 사회의 질서를 다듬어 나갔다. 가정이나 개인간의 관계에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 등이 알맞은 행동을 지정한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는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어,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자기들의 특권의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된다.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동안은 일본인은 불만 없이 잘 살아간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21)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체계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 질 수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다른 나라들에는 그러한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124) 더구나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의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 그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점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소중히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단순한 사실까지도 모두 세상의 덕이기 때문이다.
(125) 온恩의 여러 가지 용법 전부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129) 사람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하며,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서 부채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이자가 붙는 것처럼 더욱 불어난다. 어떤 사람에게도 온을 받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130)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37) 아무리 착잡한 감정을 가졌더라도 온진恩人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한, 즉 그 사람이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날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지워진 부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
(142) 우리는 일본인 사이에서 누가 누구에게 온을 입혔다고 말할 때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147) 일본인은 양에서나 기한에서나 무제한적인 온에 대한 보답과, 받은 분량과 똑같이 갚고 특정한 기한에 끝나는 보답을, 각기 다른 규익을 가진 별개의 범주로 나누고 있다.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義務’라고 불리는데, 이에 관해서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149) 일본인들은 이처럼 중국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은 완전히 달리 해석하여 그 지위를 저하시키고 말았다. 그 대신 일본에서 효행이란 기무가 조건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령 부모의 악덕이나 부정을 보고도 못본체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에도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경우에만 폐기할 수 있는 것으로, 부모가 존경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든가 자신의 행복을 깨드린다는 이유만으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153) 일본인은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람 이외의 조상에 대한 효행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 있는 자에게 집중한다.
(156) 메이지 초기의 정치가들은 서양 여러 나라를 시찰한 후, 이들 나라에서는 모든 역사가 지배자와 인민 사이의 투쟁에 의해 형성되어 있어, 이것은 일본 정신에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귀국 후 헌법에다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될 수 없는’ 존재로서 국무장관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항을 삽입하였다. 천황은 책임있는 국가의 원수로서가 아니라 일본 국민 통합의 최고의 상징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159) 일본은 유사 이래 서른 여섯이나 되는 왕조가 교체된 중국과는 달랐다.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쳐 왔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 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이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 왔던 나라였다.
(160) 주는 신하와 천황의 관계에 이중적 체계를 부여한다. 신하는 위를 향해서는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천황을 우러러본다. 그는 그의 행동에 의해 직접 개인적으로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는 데 신명을 바친다. 그러나 신하가 천황의 명령을 받을 때는 그 명령은 그와 천황 사이에 개재하는 여러 중간자의 손을 거쳐서 중계된 것을 귀에 담는다.
(163)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기 위해서 죽창이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167) 기리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종류로 나누어진다. 여기세서 ‘세상에 대한’ - 문자 그대로는 ‘기리를 갚는 것’-이라 부르는 것은 동년배에게 온(恩)을 갚는 의무이고, ‘이름에 대한 기리’라 부르는 것은 대체로 독일인의 명예die Ehre)와 같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어떤 비난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이다.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고 느껴지는 데 비하여,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67)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고 느껴지는 데 비하여,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75) 일본인은 어떤 사람이 기리를 갚을 수 없을 때, 그 사람은 파산하였다고 여긴다.
제8장 오명을 씻는다
(179) 이름名에 대한 기리義理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183)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 즉 자제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여자는 분만 할 때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고,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초연해야 한다. 홍수가 마을을 덮칠 때에도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필수품만을 챙겨서 높은 지대로 피난 간다. 그곳에는 아비규환이나 우왕좌왕, 낭패를 당한 기색이 없다. 추분 무렵 폭풍우가 엄습해 올 때에도 같은 자제가 요구된다.
(185) “진정한 존엄성이란 항상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자기에게 알맞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188) 본심은 그가 알고 있는 체하기보다는 정직하게 알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189) 일본의 어린이는 경쟁을 장난처럼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청년이나 성인인 경우에는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뚝 떨어진다…여기에서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에 전념하는 대신에 그들의 주의력을 자신과 공격자의 관계에 빼앗기는 것이다.
(197) 살인자-그는 타인의 육체를 살해한 인간이다. 조소자-그는 타인의 혼과 마음을 살해한 인간이다. 혼이나 마음은 육체보다 훨씬 귀한 것이다. 따라서 조소는 가장 큰 죄이다.
(204)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구실을 한다.
(205)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어떤 경우에 자살은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된다.
(210) 그 필연적 귀결로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대로 내맡기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목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될 테니 잠시 걸음을 멈추어 형세를 관망하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을 정말 쉬운 일이다. 무기력은 확산되어 간다.
(211)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214) 달과 같이 기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인 배척법안을 만들게 하고, 해군군축조약을 크나큰 국가적 치욕으로 느끼게 하고 마침내는 그처럼 불행한 전쟁 계획으로 내몰게 한 것은 그 어두운 면이었다. 1945년 항복의 여러 결과를 호의를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은 그 밝은 면이었다. 일본인 변함없이 일본 특유의 방법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215) 일본인은 자신이 속해 잇는 세계에서 존경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보답이 된다. 그래서 ‘기리를 모르는 인간’은 아직도 ‘비열한 놈’이 된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경멸을 받고 추방된다.
제9장 인정의 세계
(217)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은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게 해두어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한 사항의 영역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218)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마치 예술처럼 연마하고 나서 쾌락의 맛을 충분히 알게 되었을 때, 의무를 위해 그것을 희생한다.
(223)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 ‘단련’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아는 특히 뛰어난 감별법이다. 따뜻함을 멀리하고 수면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식 또한 고난을 참고, 사무라이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으면서도) 이쑤시개를 입에 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기회이다.
(231)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32)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니기타마)과 ‘거친’ 영혼(아라타마)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제10장 덕의 딜레마
(240) 사람은 ‘고를 위해’ 행동할 때와, ‘단순한 기리를 위해’, 혹은 ‘진의 세계에서’ 행동할 때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 서구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는데 – 행동한다. 또한 각각의 세계에서 법도는 그 ‘세계’ 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현저히 다른 행동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으로서 요구되도록 정해져 있다.
(243)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은 갈지 않으면 녹이 슨다. 그들이 곧잘 말하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인격이 녹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52) “그들은 기리를 위해 아내를 버리고, 자식과 헤어지고, 부모를 잃었다(죽였다).”
(254) 그는 죽음으로써 주와 기리를 둘 다 완수하였다. 죽음에서 양자는 일치한 것이다.
(255) 서구인은 우선 대개는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을 획득하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에 따르면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성격의 강함은 반항함으로써가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262) 의義는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266) ‘마코토노기리’는 ‘일시적인 기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그것은 ‘영구 불멸의 귀감이 되는 기리’이다.
(271) 일본어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강하게 말하는 방법은 “자중에 자중을 거듭한다”는 표현으로, 그것은 무한히 조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경솔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도 필요 이하의 노력도 소비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273) 오히려 반대로 나쁜 행위가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은 도리어 스스로 고민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조차도 고백한다는 습관은 없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은 있으나 속죄 의식은 없다.
(274)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치욕(하지)이다.
(275)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
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다만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는 것을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방침을 정한다. 모두가 같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여 서로가 지지하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은 쾌활하고 편하게 행동할 수 있다.
제11장 자기 수양
(285)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286)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93) 그들은 이 방법에 의하여 ‘육관’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상태에 달한다고 한다. 육관은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육관은 보통 훈련에 의하여 오관을 지배하게 되는데, 그러나 미각•촉각•시각•후각•청각도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 각각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303) 드디어 그들은 막다른 골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기무와 기리의 사이, 기리와 인정의 사이, 정의와 기리의 사이에도 역시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한 갈래의 길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무가’의 경지에 달한다. 그들의 ‘숙달’ 련은 훌륭하게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304) 그들이 습득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미를 명료하게 방해받지 않고 지각하는 것인데, 혹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꼭 알맞은 정도의 노력을 할 수가 있도록, 수단과 목적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306) 죽은 자는 이제 온恩을 갚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308) 일본인의 자기 훈련의 철학은 일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개개의 일본인의 생활체험에서 떼어 내어 고찰하는 한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그들이 ‘보는 나’로 귀속시키고 있는 이 ‘하지’의 의식이 얼마나 무겁게 일본인을 억누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지만, 그들이 정신통어 철학의 참된 의미는 일본의 어린아이 양육법을 설명하지 않은 한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310)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저변이 얕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와 제멋대로 구는 것이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바로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자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저선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하여 몇십 년 계속되는데, 그 후 곡선은 다시 점차로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거의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330) “아이들은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러나 점점 자람에 따라, 그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말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누구에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또 자기 자랑도 하지 않게 된다.”
(348)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적 모순은 일본인이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인 일본인의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하여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천국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은 본디 선하고 신들은 자애로우며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비할 바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들의 유년 시대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350) 아이는 점차로 많은 개인적 만족을 포기할 것을 요구당하는데, 약속되는 보상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요, 벌은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어린아이를 훈련하는 데 대부분의 문화가 의지하는 강제력이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리 유례가 없을 정도로 중요시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는, 이미 부모가 아이를 밖에 내다 버리겠다고 협박했을 때, 아이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의 일생을 통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배척되는 것은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다.
(350) 일본인이 사용하는 두세 개의 상징적 물건은 자녀 훈육의 불연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들의 양면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장 빠른 시기에 형성된 ‘부끄러움 없는 자아’이다. 그들은 그 ‘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본다. 그들은 “거울은 영원한 순결성을 비춘다.”고 말한다. 그것은 허영심을 기르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는 자아’를 비추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혼이 깊은 곳을 비춘다. 인간은 그곳에서 자신의 ‘부끄러움 없는 자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356)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하치)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커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360)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을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 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 지속성의 결여, 실패 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러한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 서가 아니며,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할을 한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368)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기 때문에 사리나 부정에 대해 반항하기는 하나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행한 것같이 제도 그 자체에는 조금도 비난을 퍼붓지 않고도 가장 철저한 변혁을 실현할 수가 있었다.
(371) 일본이 평화국가로 출발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 방침에 대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일본인은 양자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374) 그들의 윤리는 사람은 자기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떤 과오의 당연한 결과에 의해 그 행위의 잘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384)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해설 ; 죄의 문화와 수치 문화 – 이광규
(396)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399) 일본은 거기서부터 우리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백년 늦게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의 토착 신앙을 다 때려부수었고, 한문권에서 이탈하고, 차의 세계에서 이탈한다.
3. 내가 저자라면
<국화와 칼> 이라는 양극단의 서 있는 '국화'와 '칼'의 이미지는 일본인의 양면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양면성은 ‘무엇이 선이고 악이다’ 라고 판가름 해주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탈을 쓸 뿐이다.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선악구도가 명확한 슈퍼맨, 배트맨 등의 미국 애니메이션과는 달랐다. 습관처럼 누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만화를 보았던 나였건만 일본 애니메이션 안의 세상은 좋은 놈이 나쁜 놈이 되기도 하고, 나쁜 놈이 좋은 놈이 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세상’ 이었다.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안개처럼 뿌연 어려운 스토리 라인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일본인의 정신의 뿌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루스 베네딕트는 저자소개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다시피 ‘열등감’과 ‘주눅이 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것은 자기 보호로 이어져 그녀로 하여금 ‘가면’을 쓰고 세상에 나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혼란’과 ‘불안’을 선물해주었다. 그녀에게 ‘자아정체성을 찾는 일’은 그 어느 일보다 중요한 삶의 과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과 연결이 되었다.
‘나의 뿌리를 찾는 일’은 지금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녀의 ‘나’로부터 시작한 뿌리찾기 시도는 ‘너’로 이어지고 ‘개인’에서 ‘국가’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 <국화와 칼>은 일본연구서의 고전으로,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을 통해 일본문화의 원형을 탐구한 책이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를 시작하여 집필하였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일본인의 외면적인 행동의 묘사와, 행동의 배후에 있는 일본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분석으로부터 시작되며 분석 대상을 크게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누어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그녀는 이 책에서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라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렌즈’에 비유하였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이미 나에게는 ‘무의식적인 안경’이 씌어져 있어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볼 수 없으며, 심지어 그것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종 나의 눈보다 너의 눈이 때론 더 나에 대해 잘 알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변경연 연구소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 연구원들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더 평화롭게 스스로을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루스 베네딕트의 시도처럼 스스로를 끝없이 파헤치며 알고자 한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매달 오프모임마다의 서로의 코멘트를 주고 받는 것는 ‘나’의 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너’의 나안으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나’를 대상으로 한 ‘문화인류학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으로부터 통합된 자아를 성취한 개인은 그 어떤 긴장이나 구속, 수치심과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자유인’이 된다. 문화인류학은 베네딕트의 삶의 하나의 빛이었고, 그것의 확장은 ‘문화인류학의 빛’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나에게는 또 하나의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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