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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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1장.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 1830년의 세대>
19세기의 토대:
ü 19세기 혹은 ‘19세기’라는 말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시대는 1830년경에 시작한다. 19세기의 토대와 윤곽이 형성된 것은 겨우 7월 왕정 (시민 왕정이라고도 함. 1830년의 7월 혁명 이후 1848년까지 루이 필리쁘 재위 시기) 기간 중이다 (14).
ü 스땅달과 발자끄의 소설은 우리 자신의 생활, 즉 우리 자신의 인생 문제, 과거의 세대들은 알지 못했던 도덕적 어려움과 갈등을 다룬 최초의 책들이다 (14).
ü 1830년대의 스땅달에서 1910년대의 프루스트까지의 정신적 전개가 하나의 유기적인 동질성을 유지했음을 우리는 증언할 수 있다 (14).
ü 19세기의 모든 특징들은 이미 1830년경에 드러난다 (15).
ü 시민 계급의 해방이 완수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이미 정치참여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도 시작된다 (15).
ü 이제부터 예술지상주의는 고전주의의 이상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부르즈와적’ 및 ‘사회적’ 예술의 공리주의에 대해서도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5).
ü 낭만주의와의 … 싸움이 향후 100년간의 역사를 꽉 채우게 된다 (16).
ü 이 시대의 가장 특징적 산물이며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 형태인 자연주의 소설은… 새로운 세대의 비낭만주의적 정신을 표현한다 (16).
ü 이들 소설가들의 관찰대상과 시점은 부르즈와지의 야심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물인 자연주의 소설은 완전한 사회의 지배를 달성하려는, 이 상승하는 계급의 열망에 대해 일종의 교과서로 쓰인다 (16).
작가와 독자층:
ü 18세기까지는 작가란 단지 자기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17).
ü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독자층은 서로 다른 두 진영으로 분리되고 예술은 서로 대립하는 두 경향으로 나누어진다 (17).
자본의 지배:
ü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사회의 정치화는 7월 왕정하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20).
ü … 자유주의는 지반을 확보하고, 서구 민주주의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20).
ü 7월 왕정은 한마디로 절충주의의 시기요 타협과 중도주의의 시기다 (20).
ü 겉으로 보면 절제와 관용의 시대이지만, 속으로는 가장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이며 영국의 패턴에 따른 완만한 정치적 진보와 경제적 보수주의의 시기이다 (21).
ü 7월 왕정은 상공업의 융성기이며 개화기이다 (21).
ü 이제 모든 권리나 힘, 모든 능력은 갑자기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게 된다 (21).
ü 자본가는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지위를 획득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 재산만으로는 안되고 어떤 이데올로기적 후광이 필요했었다. …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21~2).
ü 사람이 만든 체제가 이제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로부터 독립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매커니즘으로 변한다 (23).
ü 그리하여 회의와 비관주의가 세상을 풍미하게 되고 목조르는 듯한 생활의 불안감이 생겨난다. 그것은 발자끄의 세계에 가득 차 있으며 자본주의 시대 문학의 지배적 특징으로 남아 있다 (23).
사회주의 이론의 대두:
ü 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이 부르즈와 경제의 계급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전개된다 (24).
ü … 프롤레타리아적 운동과 그에 상응하는 계급 의식은 산업 혁명의 승리와 대규모적인 기계공장의 도입 뒤에야 비로소 명확하게 나타난다 (24).
저널리즘과 문학:
ü 1830년부터 1848년 사이에 생활의 정치화가 진행됨에 따라 문학에서의 정치적 경향도 강화되었다 (25).
ü 다음 세대에 이르면 작가들은 이미 아무런 정치적 야심이 없으며 정치가들 또한 정신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25).
ü 그러나 2월 혁명 (루이 필립쁘의 7월 왕정이 끝나고 공화정치가 시작됨)까지는 당시의 모든 정신적 활동이 정치 생활에 흡수되었다. 재산이 없어서 징치에의 출구가 막힌 유능한 청년들은 저널리즘에 투신하는데, 바야흐로 이것이 문필업의 관례적 시작이며 전형적 형태가 된다 (26).
ü 그러나 문필활동은 … 관여자들에게 하나의 ‘산업’으로 변한다. 그것은 단순히 광고와 구독자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26).
ü 문학과 일간 신문의 결합은… 문화적 생산의 모든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 (26).
신문소설:
ü 신문은…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연재 소설이었다 (27).
ü 문학 작품은 이제 문자 그대로 ‘상품’이 된 것이다 (28).
ü 연재 소설은 문학이 유례없는 대중화, 독자대중의 거의 완전한 평준화를 의미한다 (30).
낭만주의의 변모:
ü 1848년까지는 대부분의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이 행동주의적인 방향을 취했고, 그 이후엔 정적주의로 변모한다. 스땅달의 환멸은 그래도 공격적, 외향적, 무정부주의적이지만 플로베르의 체념은 수동적, 자아중심적, 허무주의적인 것이다 (31).
ü 낭만주의가 계속되기는 하지만 변모하고 새롭게 해석된다. 왕정복고의 마지막 무렵 눈에 띄는 반교회적이며 반정통파적인 경향은 하나의 혁명적 세계관을 발전한다. 대다수 낭만파들은 ‘순수예술’을 등지고 쌩씨몽주의자나 푸리에주의자로 전향한다 (31).
ü 지도적 인사들- 빅토르 위고, 라마르띤느, 조르주 쌍드 등-은 예술적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요구한 ‘대중적’ 예술을 위해서 투신한다. 민중은 승리했고,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혁명적 전환이 문제가 된다 (31).
ü 물론 이러한 사태는 곧 끝난다. … 마침내 사회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단 한 사람의 중요한 문학가도 남지 않으며, ‘대중적 예술’이라는 것도 사라진 듯이 보인다. 낭만주의 예술은 잠잠히 가라앉고 순해지며 부르즈와화된다 (31).
ü … 한편으로는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낭만파가,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쌀롱 낭만주의가 성립한다 (31).
ü 그러나 어떤 독자층에게는 낭만주의가 여전히 너무 거칠고 자의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냉정하고 철저히 부르즈와적인 새로운 고전주의, 이른바 ‘양식파’와 미학적 ‘중용’의 예술이 대신 나타나게 된다 (32).
ü 부르즈와지는 예술에서 감동이 아니라 즐거움을 기대하며, 문학자에게서 ‘예언자’가 아니라 ‘위안물’을 찾는다 (32).
“예술을 위한 예술”:
ü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구호는 낭만주의에서 유래했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한 수단을 대변한다. … 모든 외적 제약에 대한 저항으로, 모든 비예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가치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것으로 되었다 (33).
ü 1830년 이후 부르즈와지는 예술가를 불신하게 되고 이전의 동맹 대신에 냉담한 중립을 택한다 (33).
ü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미학상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이룬다. 미학적 입장에 내재하는 이원적 속성을 그처럼 날카롭게 나타내는 것은 없다.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인가, 아니면 어떤 목적에 이르는 수단일 따름인가? (34).
ü 가장 위대한 작품이란 그 자체로서 완결된 미학적 세계의 기만적인 환각주의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멀리 손짓한다. 그것은 자기 시대의 커다란 인생문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언제나 ‘인간 존재에서 어떻게 하나의 의미를 얻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의미에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해답을 추구하는 것이다 (34~5).
ü 예술작품의 가장 불가사의한 역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또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에, 그리고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제약을 받는 구체적인 감상자층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도대체 대중을 안중에 두려고 하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는 데에 있다 (35).
ü 모든 예술 창작은 작자가 아무런 실제적 목적을 갖지 않고 쓴 작품이더라도 사회적 인과관계의 표현이고 그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35).
1830년경의 자연주의:
ü 1830년경의 예술적 주류들 – ‘사회적 예술’, ‘양식파’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은 복합적이고 흔히 모순된 상호관계로 얽혀 있다 (35).
ü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제 4의 경향, 즉 스땅달과 발자끄의 자연주의가 성립된다 (36).
ü 자연주의는 낭만주의의 연장이며 그 해체이고, 스땅달과 발자끄는 낭만파의 가장 정통적 상속자이면서 가장 강경한 반대자이기도 한 것이다 (36).
ü 자연주의는 … 수시로 변모하면서 그 때마다 일정한 목적과 구체적 과제를 지향하는, 그때그때 특별한 현상에 초점을 두는 인생해석이다 (36).
ü 1830년대 세대의 사회의식, 자신들의 사회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현상에 대한 민감성, 사회변화와 가치전도에 대한 그들의 통찰이 이 작가들로 하여금 사회소설과 근대 자연주의를 창조하도록 만든 것이다 (37).
근대적 사회소설의 형성:
ü 소설의 역사는 중세기 기사들에 관한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37).
ü 소설 형태의 단일화, 단순화를 향한 결정적 전환은 프랑스 고전주의에 의해서 비로소 이룩된다 (38).
ü 18세기의 소설 문학도 대부분 아직 산만하고 삐까레스끄적인 장르에 속한다 (39).
ü 연극적 원리는 소설에서 승리하며,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과 똘스또이의 <안나 까레리나>같은 작품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될 하나의 발전이 시작된다. 이제 스토리의 심리적 움직임에 주의가 집중되고, 외부적 사건들은 그것이 정신적 반응을 일으키는 한에서만 문제가 된다 (39).
ü 소설의 이러한 심리화는 그 시대의 문화가 경험한 내면화, 주관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거다 (39).
ü 발전의 다음 단계를 나타내는, … 교양소설에서 내면화의 경향은 한층 강력하게 표현된다. 주인공의 발전사는 그리하여 한 세계의 형성사가 된다 (39).
ü 개인적 교양이 문화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는 시대만이 이러한 소설 형태를 낳을 수 있는데, 그것은 공동체 문화가 깊이 뿌리박지 못한 독일 같은 나라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39~40).
ü … 엄격한 의미에서 최초의 교양 소설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고 보아야 한다 (40).
ü 소설은 18세기의 주도적 문학장르가 되는데, 그것은 소설이 그 시대의 문화적 문제, 즉 개인주의와 사회 사이의 대립을 가장 포괄적으로 깊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40).
ü 괴테는 이 작품에서 (빌헬름~) 낭만주의적 현실 도피가 완전히 헛된 것임을 지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교훈인 것이다. 사람은 내면적으로 세계와 결합해 있을 때에만 그 세계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는 세계 속에 뛰어듦으로써만 세계를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을 괴테는 강조한다. 그는 결코 내적 정신과 외적 세계, 영적인 자아와 인습적 현실 사이의 부조화를 감추거나 얼버무리는 일이 없이 낭만주의의 세계 모멸이 진정한 문제로부터의 회피라는 것을 인식하고 증명한다 (40).
ü 스땅달과 발자크는 괴테보다 팽배한 긴장을 훨씬 더 날카롭게 보았고, 더욱 현실감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통찰이 기록된 그들의 사회소설은 낭만주의의 환멸소설뿐 아니라 괴테의 교양소설도 한 발 넘어선 것이다 (41).
ü 사회문제의 해결 가능성에 관해서 일체의 환상을 허락치 않는 냉철한 현실 사회 분석에서 그들의 비관주의가 생겨난다 (41).
사회소설:
ü … 스땅달과 발자끄에 이르러 사회소설은 본격적인 근대 소설의 면모를 갖춘다. 이제 인물을 사회에서 분리시켜 묘사하고 그를 일정한 사회 환경 바깥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사회 생활의 여러 사실들이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이닥치며, 이제 그것을 제외하지 못하게 된다. 스땅달, 발자끄, 플로베르, 디킨즈, 똘스또이 및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 같은 19세기의 위대한 문학적 창조들은 설령 어떤 다른 범주에 편입될 수 있다 하더라도 사회소설인 것이다 (41~2).
ü 이러한 사회학적 인간 개념이야말로 1830년 세대의 작가들이 소설을 위해서 발견했던 것이며, 맑스 같은 사상가가 발자끄의 작품에서 흥미를 느꼈던 점이다 (42).
ü 역사의 진보에 바치는 예술가의 봉사란, 그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확신하고 어디에 동조하느냐 하는 데 있다기보다 오히려 사회적 현실의 문제와 모순을 얼마나 힘차게 제시하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이처럼 뚜렷이 부각시킨 것은 예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42).
ü 발자끄는… 학문, 예술, 도덕이 그때그때 존재하는 형태란 정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현실의 여러 기능이며,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로 규정되는 부르즈와 문화란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43).
스땅달의 정치적 연대기:
ü 스땅달의 여러 소설은 정치적 연대기들이다. <적과 흑1830>은 왕정복고 기간 중의 프랑스 사회의 역사이고, <빠르므 수도원 1839>은 신성동맹 체제하의 유럽상이며, <뤼씨앵 뢰뱅 1834>은 7월 왕정의 사회사적 분석이다 (43).
ü 스땅달 이전에는 아무도 바로 자기 시대의 정치 체제를 소설의 본격적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43).
ü 스땅달의 모든 위대한 소설들은 위선의 문제와 처세의 비밀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것들은 모두 정치적 현실주의의 교과서요, 정치적 비도덕주의의 학습무대 같은 성질을 띠고 있다 (44).
ü 자본주의 체제란 그에게 있어 정치적 개조의 결과인 것이다 (44).
ü …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의 개척자라고 하는 대혁명의 원리는 효력을 잃고 있었다 (45).
계급 투쟁의 이념:
ü 이제 의식적인 계급 투쟁이 문학 속에 들어온다 (46).
ü 스땅달에게 계급 투쟁만이 문제된 것은 아니다. … 그가 동정한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재주있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회의 서자들, 냉혹한 지배계급의 희생자들이다 (46~7).
‘분기한 평민’:
ü (스땅달은) 감정적으로는 개인주의자요, 어떠한 군중 심리와도 거리가 먼 귀족이다 (48).
스땅달의 정치적 변모:
ü 스땅달의 정치관은 그의 생활 태도와 꼭 마찬가지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 (49).
ü 편안하게 잘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는 사회적 평준화의 적대자가 되지만, 그의 가난과 실패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일깨워서 그가 반동과 타협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렇게 모순되는 두 경향은 스땅달의 사상에 항상 존재하면서, 그때그때의 생활환경에 따라 그 중 어느 하나가 전면으로 부각하는 것이다 (49).
낭만주의와의 투쟁:
ü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의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 여기에서도 그이 정치관의 분열이 반영된다. 스땅달은 엄격한 합리주의자요 실증주의자이다 (51).
ü 그의 눈에 최고의 목표란 볼떼르와 르끄레띠우스의 이상, 즉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51).
스땅달의 낭만적 경향:
ü … 그는 심정적으로는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52).
ü 사랑이야말로 스땅달에게는 이성과 대립되어 평형을 이루는 위대한 힘이며, 그의 작품에서 가장 순수한 시정신의 원천이요 가장 깊은 마력의 샘이다. 그러나 그의 낭만주의가 반드시 순수한 문학, 깨끗하고 티없는 예술로만 나타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문학은 오히려 모험소설적이고 환상적이며 병적이고 무시무시한 특징들로 가득 차 있다 (52).
ü ‘벨리슴 (Beylisme, 여러 낭만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스땅달의 생활신조)은 힘과 아름다움의 종교일 뿐 아니라 향학의 숭배요 폭력의 복음이며, 한 마디로 낭만적 악마주의의 한 변형인 것이다 (52~3).
ü 스땅달의 체념 역시 여러 낭만적 특성을 지니며, 발자끄의 차갑고 냉정한 비관주의보다 낭만파의 환멸소설과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러나 스땅달의 소설들은 발자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행하게 끝난다. 차이는 체념의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에 있다 (53).
ü 릴케는 사자 우리 앞에서 물은 적이 있다. “누가 아는가,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울타리 앞에 있는지 혹은 뒤에 있는지?”- 이것은 정말 스땅달적 물음이며 지극히 낭만적인 물음이다 (54).
ü 스땅달의 소설들은, 무엇보다 마음의 움직임과 감정의 메커니즘과 작자의 정신 활동을 포착하려고 하는 일기장과 스케티들의 집합 같은 느낌을 준다 (55).
ü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현대의 모든 예술관은 예술 작품의 가장 가치 있는 요소가 우연한 착상, 번뜩이는 환상, 한 마디로 신비스런 영감의 선물이라는 신앙에, 그리고 예술가는 자신의 독창력에 끌려가도록 몸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앙에 근거를 둔다 (55).
ü 베토벤의 작품부터가 그의 선배들 것에 비하여 즉흥적이다 (55).
ü 과거 대가들의 작품이 잘 균형 잡히고 잘 구성된 작곡가 깔끔하고 잘 마무리된 멜로디임에 비하여, 베토벤과 그후의 작곡가들의 창작은 괴로운 가슴의 심연에서 터져나오는 부르짖음이며 읊조림인 것이다 (55).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의 심리학과 현대적 심리학:
ü 스땅달 예술의 심리적 수법의 핵심은 독자를 움직여서 작가의 관찰과 분석에 적극 참여하도록 자극할 것을 꾀하는 데 있다 (56).
ü ‘자잘한 진실들’을 나열하는 스땅달적 수법은… 인간성이란 변덕스럽고 정의될 수 없으며 본성을 바꾸고 통일성을 깨드리기 쉬운 무수한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57).
ü 스땅달은 자기의 정신생활의 내성적 성격이 자신의 최대 행복이자 최대 불행의 원천임을 알았다 (57).
발자끄의 사회학:
ü 발자끄의 인물들은 스땅달의 인물들에 비하면 더 수미일관하고 덜 모순되며 문제성이 적다 (58).
ü … 스땅달의 인물들보다 더욱 높은 정도의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우리는 여기서 발자끄 예술의 하나의 신비와 마주서게 되는데, 그것은 전혀 고르지 않은 가치의 구성요소로써 그처럼 압도적 효과를 얻는다는 점에서 예술사에서 가장 불가해한 현상 중의 하나인 것이다 (58).
ü 그들은 확실히 스땅달의 주인공보다 덜 복잡하고 덜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그러나 더 생생하고 뚜렷하며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준다 (59).
ü 그러나 그가 원초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심리학적 국면이 아니다. 그의 작품 세계의 원천을 해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의 사회학에 눈을 돌리고 그의 정신적 우주의 물질적 전제를 알 것을 요구받는다 (59).
ü 그에게 한 인물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적 그룹의 대표자로서, 상반된 계급적 이해관계 사이의 갈등의 대변자로서야 비로소 흥미가 있고 중요성을 띤다 (59).
ü 어쨌든 그는 사회 소설의 대가가 되었는데, … ‘개인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새로운 인간 개념의 창설자로서 그런 것이다 (59).
ü … 모든 것은 거대한 전체적 사회 과정의 표현이요 증거라고 말한다. 이 사회적 인과 관계, 빠져나갈 수 없는 법칙성 앞에서 그는 도취의 황홀감에 사로잡히는데, 우리는 그 인과관계의 법칙을 통해서만 당대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의 전작품의 증심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 (59~60).
자본주의 병리학:
ü 발자끄는 18세기 후반 이래 주제가 되어온 자전적 기록이라든가 단순한 심리 묘사의 한계에서 서사 문학을 해방시켰다 (60).
ü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익추구와 권력추구의 이상발달로 진단하고, 그 시대의 이기주의와 무신앙에서 악의 근원을 찾는다. … 발자끄는 놀랍도록 날카롭게…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하는 숙명적인 모순을 투시한다 (61).
ü 발자끄의 스노비즘 (snobbism, 귀족 숭배, 속물근성)은 확실히 독자들에게 난처한 것이지만, 그의 정치적 탈선행위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그의 귀족주의는 사변적 관념의 산물이지 가슴에서 우러난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니다 (62).
사고의 이데올로기성:
ü 발자끄는 모든 자연스러운 생활감정이 자기 계급에 뿌리박고 있는 철두철미 부르즈와적인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르즈와지의 가장 성공적인 변호자로서, 이 계급의 업벅에 대한 감탄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63).
ü 발자끄에 의하면 평등이란 한갓 망상으로서, 일찍이 세계 어디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다 (63).
ü 그러나 발자끄와 맑스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인간극>의 작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여타의 계급 투쟁과 똑같이, 즉 이익과 특권을 위한 투쟁으로 판단한 데 있다. 맑스는 이와 달리, 권력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싸움과 그 승리에서 세계사의 신기원의 시작을, 궁극적 이상의 실현을 본다 (64).
ü 그는 <고기 낚는 여인>에서 “덕은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며, <잃어버린 환상>에서 보트랭은 사람은 바람직한 지위와 그에 어울리는 재산을 얻을 때에야 비로서 “정직 따위의 사치”를 부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64).
ü “혁명은 무엇보다 먼저 물질계와 이해관계에서 일어나며, 다음에 관념으로 확대되고, 마지막으로 원칙이 된다 (64).”
‘리얼리즘의 승리’
ü 발자끄의 세계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관찰하는 리얼리즘이다 (65).
ü 그리하여 그는 보수적 안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근대 부르즈와, 자본주의 사회가 인도하는 발전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기술 문명을 판단하는 데에서 드러난 이상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 편견에 결코 빠지지 않았다. 세계를 통일하는 새로운 힘으로서의 근대 산업에 대한 그의 태도는 철저히 긍정적이다 (65).
ü 발자끄는 근대 대도시에 대해서 열렬히 말하는 최초의 작가이며, 산업시설에서 기쁨을 발견한 최초의 작가이다 (65).
ü 그는 귀족의 장단점을 판단하는 것과 똑 같은 객관성으로 일반 대중의 선악을 판단한다 (66).
ü 빅토르 위고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발자끄는 혁명적 작가의 한 사람이며, 그의 작품은 순수한 민주주의자의 마음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66).
ü 엥겔스는… (67)
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깊이 동정한 남녀들, 즉 바로 이들 귀족들을 서술할 때보다 그의 풍자가 더 예리해지고 아이러니가 더 신랄해진 적은 없습니다. … 이처럼 발자끄가.. 그가 좋아하는 귀족들이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을 이렇게 몰락해 마땅한 인물로 묘사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미래의 참다운 인간들을 당시 현실에서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계급에서 보았다는 것- 이것을 나는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하나로, 그리고 발자끄이 가장 위대한 특징 중의 하나로 여기는 바입니다.
연작 형식의 재흥:
ü 모든 예술작품은 가장 자연주의적인 것조차도 현실의 이상화이며, 하나의 전설, 일종의 유토피아이다 (68).
ü 그의 작품 세계가 실감을 주는 것은… 그의 소설 세계의 소우주적 전체성을 통해서이다 (69).
ü 이 소우주의 개개 요소들이 불가분의 통일체로 결합해 있기 때문에, 즉 인물과 환경, 성격과 신체적 조건, 신체와 주의의 사물들이 서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밀착된 현실 앞에 마주서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69).
발자끄 예술의 비밀:
ü 발자끄는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 문학의 순수 예술성에서 플로베르와 보들레르의 심미주의에 이르는 발전 사이에 끼인 일시적인 현상을, 예술이 눈앞의 생활 문제에 완전히 흡수된 짧은 시간을 대변한다. 19세기 작가 중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발자끄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예술적 순수주의와 관계가 더 적은 작가는 없다 (72).
발자끄의 미래상:
ü 발자끄는 관찰보다 비전이 더 강했던 문학적 예언자의 한 사람이다 (74).
ü 발자끄는 19세기 예술의 운명을 예견하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생활과 대중으로부터 예술이 소외된 결과를 인식했으며, 예술을 위협하는 심미주의와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의 위험을 가장 학식 있고 날카로운 동시대인보다도 더욱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 제2 제정하의 무서운 현실로 될 것이었다 (75).
<2. 제 2 제정기의 문화>
ü 낭만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 이래 작가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고 비우호적인 대중으로부터의 피난처를 개인주의에서 구했다 (76).
ü 고전주의 시대의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오락이나 교훈을 제공하거나 인생의 어떤 문제에 관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었다. 그에 반해 낭만주의 이래로 문학은 작가와 독자 간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작가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예찬하는 행위로 변했다 (76).
1848년의 혁명과 그 결과:
ü 1848년과 그 결과는 참다운 예술가들을 완전히 독자층으로부터 소외시켰다 (76).
ü 반동의 승리는 전례 없는 지적 단순화와 취미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77).
ü 프랑스는 눈에 안 보이는 기본 조건뿐만 아니라 문화의 외양에서도 자본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 그리하여 … 무엇보다도 사치품에 대한 수요와 오락에 대한 갈증이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더 커지고 널리 퍼지게 된다 (78).
새로운 지배계급의 생활 태도와 취미:
ü 부르즈와지는 자신만만하고 까다롭고 거만해졌으며… 번들거리고 싶을 만큼 재산은 있지만 요란하지 않게 빛을 낼만한 관록은 아직 없는 신흥부자들은 비싸고 화려한 것이라면 무작정 환영했다 (78~9).
ü 빠리는 다시 유럽의 수도가 되지만 전처럼 예술과 문하의 중심지가 아니라 쾌락의 수도로서, 즉 오페라와 오페레타 (희가극), 무도회, 식당, 백화점, 세계 박람회 그리고 값싼 기성품 오락의 도시로서 그렇게 된다 (79).
ü … 예술적으로 중요한 경향들이 이때처럼 당대인들에게 괄시받은 적은 없고… (80).
ü 제2제정기의 예술생활을 지배한 것은 물질적으로 안락하고 정신적으로 태만한 부르즈와지의 구미에 맞는 안이하고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80).
ü 저급하고 불확실하고 쉽게 만족되는 취미가 유행의 주도권을 잡은 반면, 진정한 예술은 예술가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을 해줄 능력이 없는 소수 전문가계층의 소유물이 되었다 (80).
자연주의의 개념:
ü 이 시기의 자연주의는 차후의 여러 발전 형태들의 싹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을 낳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끝내 재야파 예술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80).
ü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이다 (81).
ü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 과학의 원칙을 적용한 데에 있다 (81).
ü 자연주의적 입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1848년 세대의 정치적 경험이다 (82).
ü … 자연주의자들은 애초부터 대중들을 위해 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자연주의 문학 자체 내에도 두 가지 다른 경향이 있다 (82).
ü 보헤미안들은 모든 전통주의를 증오한 반면, 플로베르와 그의 벗들은 대중의 호감을 사려는 모든 작가들을 의혹의 눈으로 본 것이다 (83).
꾸르베와 자연주의 미술:
ü 자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가의 운동에서 시작한다. 그 첫 대가는 꾸르베인데, 그는 서민대중 출신이며 부르즈와적 범절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는 예술가다 (83).
ü 이제 꾸르베의 주위에 새로운 서클, 말하자면 제2의 보헤미안파가 형성된다 (83).
ü 보헤미아니즘은 낭만파와 심미주의적 경향의 후계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84).
ü 보수주의적 평론가들이 정말 꺼린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연주의가 현실을 얼마나 모방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현실을 모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86).
ü 여기서 주제 선택이 예술적인 배려보다 정치적 배려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86).
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성격:
ü 풍경화조차도 기존 사회의 문화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 된다 (86).
ü 자연주의 풍경화는 얼마 가지 않아 낭만주의 풍경화에 못지 않게 인습적이 된다. 낭만주의자들이 성스러운 숲의 시를 그렸다면 자연주의자들은 시골 생활의 산문을 그린 셈이다 (87).
ü 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성격은 화가들 자신이 좀 더 긴밀히 뭉치고 예술가촌을 만들고 생활 양식 면에서 서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88).
ü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예술가 단체나 집단적 거주지역들, 19세기의 여러 공동적 개혁 운동이나 아방가르드 집단들은 모두 이러한 연맹과 협동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88).
기분전환으로서의 예술:
ü 그러나 자연주의자들은 정말 당시의 세계를 대표하였는가? … 다수를 대표한 것은 아니었다 (91).
ü 현대 예술은 실향민 신세가 되고 모든 실제적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91).
ü 단지 극소수의 문인과 지식인들만이 이러한 작품들을 충분히 감상할 능력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학도 모든 진보적 미술처럼 ‘화실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예술가, 감식가 등 전문가들을 위한 예술인 것이다 (92).
ü 낭만주의는 아직도 사회의 넓은 계층에 호소할 수 있는 대중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는데 반해, 자연주의는 적어도 그 가장 중요한 작품들에서는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끌 요소가 전혀 없게 된다. 발자끄의 죽음 (1850)과 더불어 낭만주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92).
ü “예술을 위한 예술”에 대한 부르즈와지의 태도는… 애초의 거부의 자세에서 도덕적으로 중립인 ‘순수’예술의 인정으로 나왔다가 이제 다시 가차없는 적대의식으로 변한 것이다 (94).
ü 자연주의의 대표자들은 1860년경까지 비평가들의 적의와 싸워야 했으며… (94).
자연주의의 승리:
ü 플로베르의 피소사건과 쎈세이션을 일으킨 <보바리 부인>의 성공은 자연주의를 둘러싼 싸움을 이 새 조류의 승리로 끝맺는다 (95).
ü 반정부적인 사회비평은 모든 자연주의 문학에 공통된 것이며 플로베르, 모빠상, 졸라, 브들레르 및 공꾸르 형제는 각자 정치적 입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비순응주의에서는 모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95).
ü 엥겔스가 말한 ‘리얼리즘의 승리’가 여기서 다시 한번 이루어지며 그 대표자들은 모두 기존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데 기여한다 (95).
플로베르와 낭만주의:
ü 플로베르는 비낭만적인 18세기의 마지막 유물인 합리주의에 집착한다 (96).
ü 플로베르에 있어 유미주의는… 이미 참을 수 없게 된 현실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인 것이다 (97).
ü 그는 자기가 얼마나… 자연주의를 싫어하며 자연주의 이론 일체의 ‘유치함’을 경멸하는지를 되풀이하여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초의 진정한 자연주의 작가, 처음으로 그 작품이 자연주의 이론과 맞는 현실상을 그려준 작가이다 (97).
ü 졸라는 자신의 모든 자연주의 이론을 플로베르의 작품에서 가져오며 <보바리 부인>과 ,감정 교육>의 작가를 현대 소설의 창시자라고 불렀다 (98).
ü 플로베르의 비정함은 단순한 하나의 수법상의 원칙이 아니라 예술가의 새로운 도덕 관념, 새로운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98).
플로베르와 시민 계급:
ü 부르즈와지에 대한 그의 혐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워천이며 그의 자연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100).
ü 낭만주의에 대한 플로베르의 반감은 하나의 인간형으로서의 ‘예술가’에 대한 반발심, 무책임한 몽상가와 이상주의자에 대한 그의 혐오감과 직결되어 있다 (101).
유미주의적 허무주의:
ü 그러나 플로베르의 유미주의 같은 입장은 결코 단순명백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항상 그 방향을 바꾸며 스스로를 의문해보는 변증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102).
ü … 플로베르가 종국에 도달한 심미주의는 반사회적이고 삶을 적대시하는 허무주의, 물질적인 기반 위에 사는 우리 인간들의 실제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 행위를 대표하게 된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이요, 부정인 것이다. “삶이란 너무나 추악해서 그것을 피함으로써만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라고 플로베르는 신음한다 (103).
ü 낭만주의자는 삶 혹은 삶에 대한 동경과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 … 그에 반해 플로베르의 예술가는 이제 삶과 아무런 직접적 관련도 갖기 않게 된다 (103).
보봐리주의:
ü ‘보봐리주의’에서, 플로베르는 건드리는 것마다 왜곡하고 마는 현대적 주관성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다. 우리가 현실을 하나의 왜곡된 변형을 통해서만 체험하며 우리들 사고작용의 주관적 형식 속에 갇혀 살고 있다는 느낌은 <보봐리 부인>에서 처음으로 그 완벽한 예술적 표현을 얻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프루스트의 환각주의까지는 거의 직코스인 셈이다 (106).
플로베르의 시간관:
ü 플로베르의 말대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큰 재난이 아리나 작은 재난들이다”라는,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생애의 가장 거창하고 충격적인 좌절들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야심이 시들면서 함께 시들어간다는 인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서글픈 사실이다 (107).
졸라:
ü 졸라의 작품은 우울한 어조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의 새로운 희망을 나타내며 낙관론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빠쌍은 마찬가지로 침통하면서도 플로베르보다 한결 경박하고 냉소적인데, 이념적으로 보아 그의 소설들은 부르주와지의 오락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 (108).
ü 자연주의 특유의 과학주의는 졸라에 와서 절정에 이르며 이후 점차 후퇴하기 시작한다 (109).
ü 예술가는 계획이나 체계 없이 세상을 체험하고, 말하자면 스쳐지나가면서 경험의 재료라든가 생할의 특징들과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저절로 자라고 성숙하도록 내버려두다가, 어느 날엔가 이 창고에서 예기치 않은 미지의 보물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학자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하나의 문제와 더불어, 즉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실이나 또는 자기가 정말 알고 싶은 바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자료의 수집과 취사 선택, 즉 취급하려는 인생 부문과 가깝게 친숙해지는 일을 문제설정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다. 학자는 체험을 통해서 문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체험에 이른다 (110).
ü 아무튼 뽈 알렉씨는 <나나 1880>의 집필 경위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이 소설을 위해 졸라가 얼마나 열심히 매음굴과 극장가를 실지 답사했는지 … (111).
부르즈와지의 ‘이상주의’
ü 대부르즈와지와 고도 자본주의가 판을 친 이 시기에 냉정하고 비낭만적인 것은 실상 자연주의가 아니라 부르즈와지의 이상주의적인 오락문학이다 (112).
ü 부르즈와지에게 ‘이상적’ 대상이란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고통을 잊게 하는 그러한 것을 뜻한다. 문학이 부여받은 임무는 불행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달래고 그들에게 실제 현실을 감추어, 지금도 그렇지 못하고 장차도 불가능한 생활에 한몫 끼일 수 있다는 환각을 던져주는 데 있다.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독자의 계몽이 아니라 속임수인 것이다 (112).
ü 대중이 알면서도 일부러 자기의 수준 밑으로 내려간 ‘휴식’으로서의 예술, ‘기분전환’으로서의 예술은 이 시기의 발명인데, 그것은 모든 창작 형태를 지배하지만 특히 가장 거침없고 과감한 대중 예술인 연극에서 그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113).
새로운 연극관객:
ü 소설과 회화에서는 그래도 부르즈와지의 취미에 맞는 경향과 더불어 자연주의가 번성하지만, 연극에서는 부르즈와지의 흥미와 생각에 반대되는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14).
ü 19세기 중엽 이래 극작가의 노력은 집권층의 의도에 발맞춰 부르즈와지의 세계관, 즉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및 도덕적 원리를 위한 선전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된다 (114).
가정의 우상화:
ü 시민 계급의 삶을 이상화하는 작업의 기초로서 결혼과 가족이란 제도만큼 적합한 것은 없었다. 그것이 과거의 봉건적 속박이 풀어진 이래 사유재산의 안정과 영속을 여전히 보장해주는 유일한 제도였던 것도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116).
ü 어쨌든 가정의 이념은 외부의 위험한 침입자와 내부의 파괴적 요소에 대한 부르즈와 사회의 방파제로서 연극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것은 사랑의 모티프와 직접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기능에 알맞았다 (116).
ü 낭만주의는 어떤 장애도 물리치고 얽매임 없이 나아가는 반항적 사랑을 이해하고 용서했다. … 이와 달리 부르즈와 연극에서는 사랑의 의미와 가치가 그 지속성에 있고, 일상적 결혼생활의 시험을 견뎌낸다는데 있다 (116).
잘 만들어진 각본:
ü 제2제정기는 낭만주의 시대와 반대로 합리주의와 반성과 분석의 시기이다. … 모든 장르에서 비평적 지성이 번창한다 (118).
ü 관객이란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도 가볍고 골치 아프지 않은 오락을 원하며, 결코 애매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나 심원한 깊이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120).
ü … ‘잘 만들어진 각본’의 효과는 오로지 술수와 충격적인 효과의 연속에만 의존한다 (120).
오페레타:
ü 제2 제정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여러모로 가장 의미심장한 예술적 창작은 오페레타이다 (122).
ü 무미건조한 부르즈와 취미를 따르는 순응주의적 경향과 자연주의적 반항의 예술 틈에서 오페레타는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하나의 중간 왕국을 형성한다 (123).
ü 오페레타가 19세기에서 갖는 의미는 전원극이 18세기에서 가졌던 의미와 마찬가지이다. 그 내용의 허구성, 갈등과 결말의 상투성은 현실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순수한 유희 형태인 것이다 (123).
ü 오페레타에 심취한 사람들은 일종의 자기암시에 빠져든 것으로서 그들 스스로가 잠재적으로 그러한 도취상태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125).
ü 오페레타의 성장은 음악에 대한 저널리즘 (시사성)의 침투를 뜻한다. … 그러나 오페레타의 시사성은… 장르 전체가 말하자면 상류 사회의 스캔들 이야기로 채워진 가십란 같은 것이다 (126).
ü 오페레타는 1855년과 1867년의 두 세계 박람회 사이의 기간에 성황을 누렸다. 1860년대 말의 정치적 불안 이후에는 그렇게 근심없는 혹은 근심없고 안전하다고 믿으려는 관중이 사라졌다. 제2 제정기와 더불어 오페레타의 황금 시대는 종말에 이른다 (128).
그랜드 오페라:
ü 써커스와 버라이어티 쇼와 르뷔 (원래는 프랑스식 시사풍자극이나 보통 노래, 춤, 음악을 엮어서 구성한 경쾌한 희극)가 본격적인 연극을 밀어내리라는 공꾸르 형제의 예언은 옳았다. 그 회화적 성격과 화려하고 전시적인 면에서 이 세가지 쇼 형식과 동렬에 서는 영화를 여기에 덧붙인다면 공꾸르 형제의 예언은 완벽해지는 셈이다 (128).
ü 겉치레를 위하여, 화려한 장면과 배경을 위하여, 효과의 누적과 고조를 위하여 다른 어느 예술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오페라는 부르즈와지가 애호하는 장르가 되었다 (129).
리하르트 바그너의 예술:
ü 바그너의 관능주의는 단순한 장식 취미보다 더 기본적일뿐더러, ‘피와 죽음과 육욕’을 신비화한 당시의 사조보다 더 근원적이요 본질적이다. 19세기의 가장 민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이 예술의 정수를, 즉 음악의 의미와 배후 원리를 최초로 드러낸 범례를 뜻했던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그것은 분명히 낭만주의의 최후이자 아마 최대의 개화였고,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유일한 형태의 낭만주의인 것이다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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