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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8일 02시 52분 등록

가지 않은 길 ; 인문적 스포츠 교육론 서설

최의창 /무지개사 (2006)

 

저자소개

1964
년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스포츠 과학 연구원, 건국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에 재직중이다.

그와의 만남은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인 1995 년 이었다. 주로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스포츠 과학연구원에서 그의 인문학적인 연구는 내게 새롭고 참신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를 통해서 나의 뜬구름 잡기식의 사고에 변화가 있었다.그 때까지 나의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었고, 지식과 체험의 체계적인 틀을 마련하지 못했었다. 그의 질적 연구논문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당시에 나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을 동시에 코칭에 적용하려고 했었고 그러한 노력으로 운동학습과 제어(motor learning and control)   심리학을 적용하려고 했었다.  심리학을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보지 않고 철학 즉 인문학적 영역의 한 분야로 생각했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스포츠는 혹은 무예는 행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경험적이고 전통적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다.

전통적으로 무예의 대가들은 글에 대해 너무 엉성해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무용한 것으로 연구자나 학자들은 지나치게 불합리한 전통과 관습이라고 실제를 폄하하였다.

둘 다 잘못된 것임에 분명하지만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전통적인 무예의 수련에 있어서 분명하게 제시되는 두 개의 개념은 훈련과 수양이다. 훈련은 신체의 단련이며 수양은 정신의 고양임에 분명하다.

오늘날의 스포츠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로지 성적을 내기 위한 기계적인 메커니즘의 습득이다. 그래서 성과를 위한 경기스포츠가 강화되면 될수록 수양과 건강이라는 측면을 축소되었다.

저자의 인문학적 접근은 정량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신체활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인간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하나로 체육 수업 모형을 통한 현장 교육방법론은 이미 젊은 체육교사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수용되어지고 있다.

체육교육이 신체를 교육하는 것이 아나라 신체활동을 통한 교육으로 중요한 인간교육의의미가 있다.  신체와 정신을 일원론으로 하는 오늘날의 인간관으로 볼 때에도 타당하다. 물질문명으로 인한 부족한 신체활동은 관능적인 쾌락과 불안정한 심리적 태도의 건전한 함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서는 <인문적 체육교육>, <스포츠 교육학>, <체육의 역연금술>, <체육교육탐구>, 역서로 <학교를 개선하는 교사,마인드 스포츠>, <골프가 가르쳐준 9가지 삶의 즐거움>.<존우든의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 <베가벤스의 전설> 등이 있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들어온 글귀

 

p18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스포츠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포츠가 먹고 살만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잇는 사치품으로만 여겨진 시절이었다.

 

p20-21

주로 지식교육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제시되는 전인교육은 지식교육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절름발이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을 이루는 전 측면(,,)들이 골고루 균형적으로 발달되도록 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전인은 지덕체 모든 면이 조화를 이룬 상태에 놓인 사람이다. 이렇듯 균형 잡힌 심신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전인은 사람을 이루는 여러 측면들이 균등한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인은, 흔히 잘못 이해되듯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전인은 온전한 사람이다. 비유하자면, 전인은 슈퍼맨이라기보다는 젠틀맨이다.

 

p21-22

전인에 대한 첫 번째 규정을 기술적 정의, 두 번째 규정을 규범적 정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전자는 상태를 객관적으로 덤덤하게 기술하기만 할 뿐인 정의이고, 후자는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이 들어있는 규정이기 때문이다.

 

p22

전인교육은 인성교육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몰론 인성교육이 지식교육이나 신체교육을 등한시하며 덕성교육만을 중요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인성이란 덕성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체성과 덕성의 통합으로 드러나는 총체적인 사람됨을 말하기 때문이다.

 

whole person 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총체성, 전일성을 강조하는 그런 아이디어다.

 

p23

올바른 사람은 전체적으로 지덕체의 조화를 이루고 훌륭한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p24

신체의 철학자라 불리는 메를로 퐁티는 육체적인 것으로만 보이는 사람의 몸이 실은, 물질적 차원과 실존적 차원이 촘촘하게 서로 엮어져서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p25

whole sportwhole peson 이 전인이 된 것처럼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어느 한 용어를 딱 정할 수 없고 그 뜻을 다양한 표현들의 맥락에 맞춰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 개념에 대비되는 개념과 함께 살펴보면 더욱 이해가 빠르다. 그것은 스킬 스포츠 skill sport. 앞서도 말했듯이 기()의 스포ㅊ, 기법스포츠다. 이에 대응되는 표현은 심법(心法)스포츠다. 스포츠의 중요한 두 차원을 하나로 통합시켜 가진다고 해서하나 스포츠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기법 스포츠는 한 부분, 한 조각에 불과한 기능적 차원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기능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으며, 심법 스포츠는 내면 즉 사람으로치면 심성을 다룬다고 해서 심성스포츠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용어가 무엇이냐를 막론하고, 호울 스포츠의 핵심은 기능과 안목, 기법과 심법의 차원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서 통합된 상태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whole sport 전일불이(全一不二)의 특징을 띠며, 스킬 스포츠는 분이비일(分二非一) 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p29

스포츠 맨십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가 매우 주용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란 용기가 있어야 하며, 자제력이 있어야 하며, 공평무사해야 하며, 정직해야 하며,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겸손해야 하며, 현명해야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Craig Clifford & Randolph Feezell(1997)

 

p31

Whole sport 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스포츠가 추구하는 정신 즉 그 구체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그 심법적 차원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의 목적과 내용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농구의 정신은 무엇이며, 이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심법적 차원의 내용들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선별한 내용들을 제대로 습득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도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whole sport  가르치기의 핵심은 바로 이 같은 심법적 차원을 기법적 차원과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기법적 차원을 배우는 과정에 동시에 배우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그다지 없다.

 

그 순간부터 스포츠 가르치기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단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습을 시킬 것인지를 묻는 테크니컬한 문제해결이 아니라, 목적과 내용과 방법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동반하는 메타피지컬한 문제발견으로 대두되는 것이다.

 

p32

물론 어떤 경우이든 우리로서는 기와 도를 따로따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는 기의 이면이다. 도는 기의 안쪽에 들어있는 것이다. , 도는 기의 내면이며, 기는 도의 외양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기는 도의 드러난 양상이고, 도는 기의 숨겨진 실상이다. 그렇지만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수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기적 측면밖에 없다. 도는 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지 된다. 우리의 눈에는 스포츠의 기술적 차원만이 보인다.

 

p32-33

운동기능을 가르치면서 과학적 원리와 학문적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해시킴으로써 운동을 보다 더 잘하게 한다는 말이다.

 

p33

이 때 기()와 통합되는 측면은 정확하게 말해서 도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도보다는 학()의 측면이다. 기와 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와 학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와 학의 통합으로는 도에 이르기 어렵다. 기와 학의 종합으로는 인성이나 심성의 측면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이런 연유로 그 동안 학문적 지식을 아무리 통합시켜서 가르쳐도, 배우는 이는 whole sport 를 맛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p34

기를 통해서 그 안에 담겨진 도에 닿기 위해서는, 기술의 연마와 함께,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이 필요하다. 기능을 연습할 때 그 안에 담겨진 도적 차원의 내용들을 파악하고 습득하고 인지하는 방식으로 연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적, 예술적, 종교적, 역사적, 철학적 지혜와 체험을 함께 맛보아야 한다.

 

p35

가르치는 사람은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을 전달하면서 어휘, 말투, 억양, 유머 등과 같은 심법적 방식의 언어 사용과 몸짓, 표정, 용모 등의 행동 양식을 활용한다.

 

p36

과학과 이론은 스포츠의 도적 차원이 아닌 기적 차원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도적 차원은 과학적 지식과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의 권역에 거주한다.

 

p38

배우는 사람에게 기능을 연습하고 발휘하는 과정에서 희로애락과 인의예지를 맛보도록 함으로써 운동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p42

겉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그에 걸맞게 속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다 한들, 우리 삶과 자아의 내면이 황폐해지고 병들어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운동을 통해 아무리 신체적으로 강건해진다 한들, 자기 심령과 삶의 지평이 황량해진다면 도대체 운동은 무엇을 위하여 배우는가?

 

운동의 인문적 효과  ; 자기 성찰과 삶의 통찰

 

p41

우리가 운동을 배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운동을 통하여 직접적 효과는 물론 간접적 효과도 얻는 것이다. 물론, 운동을 배우면 우리는 항상 이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는다. 몸의 변화는 물론 마음의 변화가 항상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몸의 변화와는 다르게  마음의 변화는 크게 오거나 오래 가거나 하지 않는다.

 

p41-42

마음의 변화가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육신의 변화가 갖는 가치를 결정지어주는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그에 걸맞게 속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다 한들, 우리 삶과 자아의 내면이 황폐해지고 병들어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운동을 통해 아무리 신체적으로 강건해진다 한들, 자기 심령과 삶의 지평이 황량해진다면 도대체 운동은 무엇을 위하여 배우는가?

 

p43

운동을 하게 되면 인내심 협동심 침착성 등등 다양한 마음의 능력들이 증진된다. 이것은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마음변화의 측면은 이런 차원보다는 한 걸음 더 안쪽의 차원을 말한다. 심리학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정신의 차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마음의 변화를 말한다.

 

신비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두 겹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중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음은 바깥쪽과 안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마음의 바깥쪽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걸러 내어질 수 있는 측면으로서, 스포츠 심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연구되어 왔다. 마음의 안쪽은, 잘 안보이면서 객관적으로 파악되기도 어려운 측면으로서, 사람들로부터, 특히 체육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p44

신체적 기량을 향상시키는 일에는, 기술만이 아니라, 행위 당사자의 인격적 변화를 가져다 주는 힘이 있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기술이나 기예의 목적이 기량의 숙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성의 정련에 있음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특정한 기술을 훈련시키는 활동의 핵심은 기술의 향상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다. 물론 기량의 향상이 즉각적인 목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습득하는 사람이 그 훈련을 올바른 방식으로 완성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온전하게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이 경우 연습 혹은 훈련이 의미하는 바는 기량 자체를 이야기할 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올바른 마음을 지니고 행하는 훈련은 그 사람을 완전히 변모시켜주면서 도에 들어서는 한 가지 길이요, 통로가 된다. 이러한 전인적 변모는 그 사람의 기량적 변화를 완성시키는 일에 없어서는 않되는 필요충분 조건으로 여겨진다.

- Karlfried Durckheim(1987)-

 

p45

이런 철학(제자는 스승의 전인적 존재를 총체적으로 전수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다양한 기예들을 통달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기예는 동양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기예란 사람의 성품을 발달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내면의 자아를 완성에 가깝도록 만들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사람이 완전하게 성숙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Horst Hammitzsch(1988)-

 

p47

운동을 매개로 하여 자기 자신이나 인간의 본성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세계의 본질에 대하여 깨달아내는 통찰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통합적으로 시각적인 비유를 들어 안목이라고 말한다.

 

p48

자아 완성의 최종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기 성찰력과 삶의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운동은  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첫째, 운동안이 깊어짐으로써 우리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 안에서, 혹은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 세계를 더욱 깊은 수준에서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참모습을 더욱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는 무엇인지, 나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의 역할은 어떠해야하는지, 나의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등등,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찾아낼 수가 있게 된다. 운동을 실천하고 그것에 대해서 숙고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에 대한 대답들이 보여지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성찰력이 깊어지는 것이다.

둘째 자신과 연결된 이 세상사람들과 세상의 모든 현상들에 대한 성찰력과 이해심이 생겨나게 된다. 왜 이런 사태와 문제들이 생겨나는지, 그것을 해결하는 좋은 접근방법은 무엇인지,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인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상황과 사람들의 이면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과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세상사와 세상사람들에 대한 지혜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근거로 하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구체화시킬 수가 있다.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 존재론적 근거와 기반에 대한 궁극적인 성찰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력이 트이는 것이다.

 

p49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 이런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삶에서 겪는 일들을 풀어내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골프코스에서도 쉽사리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떻게 보는가 하는 시각과 태도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삶의 신비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 수단으로 우리에게 친근하고 낮익은 현상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면, 그러한 신비로운 일들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가 흔히 하는 일은 우리의 이해력이 닿지 못하는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구체적 형상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시도 사랑의 신비로움을 모두 완벽하게 드러내주지는 못한다. 그렇기는 해도 그 시는 우리를 사랑의 문턱으로까지는 데려다 줄 수가 있는 것이다.

 -Mike Linder(1996)-

 

p50

운동이 운동수행자 자시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거나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개, 혹은 통로가 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동양 무예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매우 강조되는 것이다.

 

p50-51

오늘날 무도 수련자들은 자아의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로 무예를 수련한다. 무도수련자는 용기, 의무, 절제, 성실, 삶의 존중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무도의 덕목들을 중요시 여긴다. 삶에서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 대처하여 이겼다거나 혹은 졌다는 것으로만 자신의 노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최종적으로 신체적 단련을 넘어서서 자신의 영적 영역에서 내면의 자유를 일궈내려고 한다. 이 내면의 자유는 일상의 생활과 물질적 욕망을 초월하는 곳에 자리잡고 잇다. 무도수련자는 자기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수련하는 무예가 아주 오래 전의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건 다소 최근에 개발된 방식이건 간에 상관없이 그 결과는 동일하다. 그것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극히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다.

-F.J. Chu (2003).-

 

p53

운동은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표피적 차원을 꿰뚫고 그 안쪽에 들어있는 핵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슬의 기예를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삶과 우리 존재의 보다 큰 차원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p53-54

무예수련은 배우는 이로 하여금 우리 삶을 보다 크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물론, 무도수련자는 최종적 통과시험으로 생각과 행동의 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생각과 행동이 끝내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육체적이며 물리적 차원의 힘과 영적이며 도의적 차원의 힘이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참된 무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청난 신체적 수련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훌륭한 사회인,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하며,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동도 해야만 한다. 주먹이 강하고 발차기가 빠른 것은 중요하며 또 유용하기도 하다. 하지만 가치로운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수련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이것이 우선시 되어야만 무예수련자는 올바른 도를 단련할 수 있으며 폭력과 공격성의 도를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예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타인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증가시켜 준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성 전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연관을 지어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똑똑하고 힘이 세더라도 개인은 인류라는 사슬의 한 고리에 불과하며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존재에 대한 통제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존재성과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은 얻지 못하게 된다.

 

p54

신체적 기예의 숙달이 무도수련의 핵심이 아니고, 가치로운 삶을 사는 것이 궁극적 핵심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무도의 목적이다.

 

p55

무도 이외의 일반적인 스포츠 활동도 그것이 제대로만 실천된다면, 우리가 삶을 보다 지혜롭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에 소중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운동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운동하는가에 관해 곰곰이 살펴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유용한 지침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준다. 수영의 한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도 많은 어려움에 당면하게 된다. 삶 자체가 계속해서 헤엄치지 않으면 빠져 들어가 질식사하는 물수렁이나 바닷물같게 느껴진다. 인생이라는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 혹은 두려움 그 자체다. 하지만 물의 여러 특성과 마찬가지로, 인생 자체도 우리를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긍정적 힘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부정적 힘만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 힘을 신뢰하면서 그것을 활용해야만 한다.

 

p55-56

물이 지닌 힘을 신뢰하세요 라고 우리 딸이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내 딸과 나에게 있어서 그 동안 내적인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한 중요한 금언이 되어왔다. 믿음은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수영에 있어서)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것, 열심을 다해 수영하는 것, 입영하는 것,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냥 물에 떠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에 있어서 어두운 나날들에 믿음과 의심이 시소처럼 번갈아가며 올라왔다. 내려왔다하는 경험을 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잘 진행되어 나갈 때만 강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의 강도를 잴 수 있은 때는 고난의 한 가운데 있을 때이다. 나는 그 동안 흐르는 물을 거스르면서 흐름에 대항해서 수영을 하려고 힘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이 지닌 힘에 나 자신을 내어주어야만 하는 때가 되었던 것이다. 내 뼈와 근육과 세포조직과 몸뚱아리가 몰 수고에서 떠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 보이지 않는 물의 힘에 나를 맡겨버려야만 했다. 삶과 고통과 죽음과 초월이 하나로 엮어내는 신비스런 춤사위 속에 들어있는 영혼을 다독거리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떠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Penelope Niven(2004) -

 

인생의 고통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일에도 마찬가지로 삶 속에 원래부터 들어있는 뜨는 힘을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에 우리를 맡겨야만 하는 것이다.

 

p57

각자가 믿는 시앙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믿음의 수준이 어떠냐에 관계없이 날 때부터 타고나는 원초적인 생명력(영혼, 사랑, 희망)과 같은 부력이 우리의 의식 밑에서 떠받쳐주기 때문이다.

-Penelope Niven(2004) -

 

p58

운동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외면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직접적 효과와 내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간접적 효과다. 그 동안 우리는 직접적 효과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어 운동을 바라보고 홍보해왔다. 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직접적 효과의 근거는 모두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므로 과학적 효과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에는 간접적 효과도 있다. 간접적 효과는 운동하는 사람의 내면에 변모를 가져오며, 보다 온전한 모습의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한다. 운동은 심성적, 영혼적으로 우리를 보다 충실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사람을 더욱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운동의 효과는사람의 문야을 그려준다는 뜻에서, 인문적 효과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느 앞에서 운동안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하여 운동의 인문적 효과를 구체화시켜 보여주었다. 운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운동안이 보다 깊어지며 이를 통해서 자기 성찰과 삶의 통찰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다 가치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p59

운동안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운동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그 한 가지 방버븡로하나로 코칭이라는 방법을 제안하고 잇다. 하나로 코칭은 운동을 가르칠 때에 운동이 기법적 차원과 심법적 차원을 하나로 통합시켜 체험할 수 있도록 지도하려는 노력이다. 전자는 운동의 기술과 전술을 향상시키는 것이요, 후자는 정신과 안목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경기력 강화만이 아니라 운동안 심화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 기술을 지도하되 정신도 강조하는 것이다.

 

운동의 심법적 차원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그것은 운동의 기법적 차원 속에 들어있다. 도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기를 훈련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술만을 단련한다고 해서 정신이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현대와 같이 운동의 가르침과 배움이 상업화된 상황에서는 기의 습득과 도의 체득이 동시에 구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다른 조치가 필요로 된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운동의 인문적 차원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다. 운동의 사사적 측면에 대한 배움과 깨달음이다.

 

p60

운동안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운동안으로 자신과 삶을 성찰한 사례를 공부하고 맛보아야만 트여지게 된다. 먼저 운동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한 사례를 읽어보며 삶의 깊은 차원을 들여다 본 예시를 들어봄으로써 자신이 실행하는 운동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고 실행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하나로 코칭이란 바로 이 일을 체계적인 구조와 내용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스포츠지도 모형이다. 배우는 이로 하여금 운동의 심법적 차원을 다루는 문학, 예술, 종교, 역사, 철학적인 지식과 지혜를 접하고 맛보게 함으로써, 운동의 심법적 차원을 분별해내는 감식 능력을 키우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방법이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보다 깊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게 만들어준다.

 

p61

운동과 관련된 예술적(음악, 미술, 사진, 영화 등)자료와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함께 감상하고 음미하면서 운동 속에 들어있는 삶의 심미적 차원, 삶 속에 깃든 운동의 심법적 차원을 얽어낼 수 있게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운동의 질은 기술적 숙달에 기초한 게임능력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운동 속에서 스스로 어떠한 가치를 찾아내는가, 그리고 그것에 우리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많은 부분 의존한다.

 

p63

결국 칸트의 유명한 문구를 빌어 표현한다면, 기능없는 안목은 공허하며 안목없는 기능은 맹목이다. 운동의 효과에 있어서, 인문적 효과는 과학적 효과가 맹목으로 내치닫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밝은 눈의 역할을 한다.

 

코칭의 심법적 차원; 코치 교육에의 인문적 접근

 

p65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

 

p66

경기에서 이기려면 선수는 무엇이 필요한가?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전술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일 것이다. 코치는 선수가 이러한 것들을 가장 효과저그로 습득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코치는 선수가 다다를 수 잇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랴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이다. 코치는 선수가 다다를 수 잇는 가장 깊은 수준의 심리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이다. 무엇을 위해서 시합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 경기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려면, 코치(감독을 포함하는 의미)는 다양한 자질을 필요로 한다. 운동기능의 전 측면은 물론이고 심리적 기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최고 수준의 시합경험을 직접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이런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트레이닝 방법을 포함한 스포츠 과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론과  실기가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코치는 운동기능, 시합경험, 과학지식 등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다.

p68

나는 기존의 방식을 과학적 접근이라고 부르고, 다른 방식을 인문적 접근이라고 부른다. 코치교육은 인문적 접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코칭이라는 인간활동의 온전한 모습이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코치를 키우기 위한 교육은 과학적 접근과 인문적 접근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코치교육에의 인문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코칭(선수에게 스포츠를 지도하는 활동)이 그런 성격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은 단지 기술발휘와 게임방법만이 전달되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스포츠에 입문시키는 일이며, 스포츠에 입문한다는 것은 기술 습득을 훨씬 넘어서는 일들이 관여되는 활동이다. 그것에는 스포츠의 정신과 사람의 마음이 관여되며, 코칭은 이 측면까지를 포함하는 활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측면은 바로 인문적 접근이라는 방식으로 도달이 가능하다.

 

코칭은 스포츠 가르치기의 기법적 측면과 심법적 측면 모두를 아우르는 활동이다. 기법적 측면은 과학적 방식으로 접근가능하지만, 심법적 측면은 인문적 방식으로만 파악가능하다.

 

p70

코칭은 상대를 이기고 시합에서 우승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코칭은 선수로 하여금 스포츠의 전통과 정신을 내면화하는 일, 인간적 내면을 성숙시키는 일, 자아의 완성을 도와주는 일,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제자들은 선수로 남기보다는 사람으로 되는 것을 더욱 가치롭게 여긴다. 코칭은 바로 이런일이다.

 

코치가 하는 일은 훈련을 넘어서 교육까지 미치는 것이다. 훈련은 선수를 조련하는 일이요, 교육은 사람을 육성하는 일이다.

 

르 까프 LE CAF 란 말은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를 의미하는 Citius, Altius, Fortius 의 약어를 의미한다.

 

p73

동양적 스포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무도에서 진선미스포츠의 강조를 찾아볼 수 잇는 것이다. 태권도, 검도, 유도, 궁도 등 동양적 스포츠에서는 운동의 내면에 들어있는 참됨, 올바름,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내면화하여 참나를 발견하려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승리추구의 열망보다는 내면수양의 정신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는 진과 선과 미의 덕목을 통칭하는 최종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선미, 지인용, 지덕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궁극의 덕목이 바로 도이다.

 

p74

무도인에게 있어서 무예수련을 통해서 얻은 힘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상투적 차원의 힘이 아니다 그 힘은 당사자의 영혼, 심호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그런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삶의 질에 공헌하는 그러한 종류의 힘이다. 이 사실은 대중들에게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무도인과 무도 속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무술의 기계가 되는 것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다. 누구를 이기거나 다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것과는 달리, 무도인들은 보다 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을 추구한다. 신체적인 기술을 통해서 자신의 삶 속에 심혼의 차원을 드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무도는 우리 안에 심혼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다. 단 우리가 이 길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기술만을 세련화시키면 능숙한 테크니션이 될 뿐이다. 훌륭한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서 체득한 삶의 진리들을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도 옮겨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이 무도인의 온 마음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목적이다.

 

p75

기법이란 사람의 행동을 개발하는 것과 관련된 측면이자 원리이다. 선수의 기능과 지식의 측면을 다룬다. 심법이란 사람의 내면을 계발하는 것과 관련된 측면이며 원리이다. 사람의 내면 중에서도 감성과 덕성 (즉 심성)의 측면을 주로 말한다.

 

p76

코치는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중에서 대부분 기능에 보다 주목하게 되지만, 어느 누구도 심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코치되기 전에 선수였던 그이는 이미 본인의 경험을 통해서, 심법적 차원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와 대적해야만 하는 스포츠의 경쟁적 특성이 기법적 차원에 집착하도록 만든다.

 

농구는 그냥 게임에 불과하다. 그렇긴 해도, 내가 농구코치로서 내일을 잘  해내면, 우리 선수들로 하여금 각자의 삶을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각자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을 해내게 되면, 난 코치로서 정말로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 내게는 이것이 그동안 받은 우승 트로피나 상장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존우든 전 UCLA 남자농구팀 코치)

 -Jeff janssen & Grea Dale (2002)

 

p78

모든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인간관계로 귀착된다. 사람들을 리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을 보다 더 잘 아는 것이다. 난 우리 팀에 있는 모든 선수들과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마이크 크로지제우스키 듀크대학 남자 농구 코치)

 

p79

완전히 선수들을 쥐잡듯이 잡아서 우승을 하고 성공을 할 수 있다. 선수들과의 인간적 유대를 전혀 만들지 않고도 우승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성공은 내가 원하는 성공이 아니다. 성공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얼마나 많이 이겼는가 혹은 졌는가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뭔가 중요한 벼노하를 일구어내고, 선수들로 하여금 한 팀으로서 공도으이 목표를 성취하도록 돕는 것에 달려있다.(마티 쇼텐하이머, 생디에고 차져스 미식축구팀 코치)

 

p79-80

코치는 기법적 자질만이 아니라 심법적 자질까지도 갖추어야 한다. 기법적 자질에 덧붙여서 덤으로 가지면 좋은 정도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높이 지녀야 하는 필수적인 자질이라는 의미다.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더 좋다는 식이 아니다. 없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p80

선수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코치의 심법적 자질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스포츠의 도적 차원을 접하게 만드는 코치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

 

한 마디로, 스포츠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입문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선수는 자기가 하는 운동과 하나가 됨을 겪어야 한다. 운동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일치하는 방식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p81

코치의 심법적 자질을 키워 늘리기 위해서는 (예술을 포함한)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이 필수적이다.

 

인문적 재능과 서사적 태도가 심법적 측면을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엇인가?

 

인문적 능력은 서사적 태도를 통해서 얻어지고 가르쳐진다. 서사적 태도란 사물과 현상의 주관적, 감성적 측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분석보다는 종합, 논리보다는 통찰, 지성보다는 덕성, 이성보다는 감성,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욱 가까운 마음의 상태를 가르킨다.

 

p82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 코치교육의 프로그램 내에서 스포츠 문학을 읽혀야 하며, 스포츠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 스포츠 미술을 관람하고 스포츠 음악을 청취해야 한다. 종교적 믿음을 선수지도와 자기 성장에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기가 지도하는 운동의 역사성에 대한 깊은 안목을 키워야 한다. 자신의 삶과 스포츠 지도가 어떠한 깊은 연관을 맺을 수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스포츠 체험을 서사적으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p84

이제 스포츠에서 예술은 그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왔듯이, 스포츠는 예술적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포츠에술은 코치로 하여금 스포츠 경기가 단순히 시합의 수준이 아니라, 보기에 따라서는 공연의 수준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p88

휼륭한 코치를 만드는 데에는 인문적 자질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매우 낮설다. 코치교육은 당연히 스포츠 과학을 적용한 과학적 접근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장이다.

 

체육분야에서 생소한 이런 주장은 이미 다른 영역에서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중이다. 의학교육 분야가 그 중 한 곳이다.

 

p89

사실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오래된 그언을 생각하면 이것은 별로 새로운 발견도 노력도 아니다. 하지만 의술은 이제 과학이 되어 버렸고 과학인 것으로만 취급되고 있다. 과학적 지식만이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다양한 지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의술은 기술(技術)로만 이해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의술이 질병을 고치는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는 의학계의 이 같은 지각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의술을 인술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으로 바로 인문적 차원을 강조하는 의학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코칭도 인술이다. 코칭은 기술을 넘어선다. 코칭이 인술이 될 때, 그 코칭은 진선미 코칭이 된다. 진선미 코칭을 펼치려면 코치는 인문적 방식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진선미 코칭은 스포츠의 심법적 차원을 선수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스포츠의 심법적 차원은 전통, 안목, 정신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스포츠에의 직접참여와 함께) 인문적 지혜와 체험을 통하여 깨우치게 된다. 따라서 코치의 교육은 심법적 자질의 함양을 위한 언문적 접근(서사적 접근)을 포함해야 한다.

 

p90

코칭도 과학과 인문으로 되어있다. 코칭은 음과 양으로 하나가 되는 태극처럼, 기법과 심법으로 완전한 하나가 된다. 기법적 측면에 가리워진 심법적 측면의 전면배치가 요청된다.

 

p175

Janssen Dale 은 미국사람들로부터 받는 성공한 감독들의 특징들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장단점에 대하여 심층인터뷰를 한 후 률륭한 감독들의 특징을 C 자로 시작하는 7가지 단어로 요약하여 정리하였다.

인품(character-based), 실력(conpentent), 헌신(committed), 배려심(caring), 자신감(confidence-builder), 대화(communicator) 일관성(consistent) 을 지니고 있었다. 7가지 자질들이 대부분 진선미적 차원에 관계되는 자질들임을 알 수 있다.

 

가지 않은 길

p188

이제 우리 국민이 실천하는 체육의 수준과 국민들이 기대하는 체육의 수준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국민체육진흥이 본격화된 1980년대와 1990년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sodydd과 방식을 체험하고 있으며 바라고 있다.  우리 전문체육인은 이 새로운 기대를 간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체육진흥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새로운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p189

우리에게 두 길이 잇다. 가고 있는 길과 가지 않은 길,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두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길처럼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은 선택할 수 없는 갈림길은 아니다. 우리의 길은 두 개로 갈린 길이 아니라, 두 층으로 겹친 길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 길이 아니라, 안과 바깥으로 겹진 길이다. 하나의 길의 안쪽과 바깥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바깥으로만 눈을 돌리지 않고, 안쪽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대고 진흥의 길을 가면서도 진선미 진흥의 길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p194

공부와 학문은 (아주 엄격한 의미에서의) 과학적인 방식과 객관적인 방향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입해주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람들이 실증주의적 연구와 공부라고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하는 것이 이니었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방식에 불과했습니다. 이른 방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증적인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매우 다르긴 해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며 타당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p195

서사적 체육 공부는 학술지나 학술서적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전 서사적 체육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논문집만 읽거나 전공서적만 훑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주변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 그 모습을 찾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문학책을 읽고 사진을 감상합니다. 이 속에 서사적 체육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사적 체육 공부는 주로 문학과 예술과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전 서사적 양태를 취하는 소설과 시, 영화와 음악, 불교와 기독교 등에 드러난 체육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인간 황동의 이런 영역들, 인간 지식의 그런 분야들은 일반적으로 인문적 활동, 인문적 지혜라고 부릅니다. 인문적 활동과 지식 가운데에서도 그 성격이 서사적인 특징을 지닌 것들이 제가 관심을 갖는 공부의 내용입니다.

서사적 (narrative) 이란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닌 표현입니다. 전 간단히 이야기의 형식으로 쓰이고 들려지고,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theory 가 아니라 story 라는 말입니다. 논리와 합리 분석과 종합보다는 감성과 정리, 통찰과 직관이 관여된다는 의미입니다.

 

p196

근본적인 수준에 있어서 사람의 인식양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해냈습니다. 하나는 명제적 방식 The paradigmatic mode of thought 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적 방식 The narrative mode of thought 입니다.

 

제롬 부르너라는 알만한 이는 다 아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이십여 년 전에 구분한 방식입니다.  지금은 공부 좀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p198

(이야속에서 주어지는) 감동과 깨달음이 제가 서사적 체육 공부에 더욱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이 방식의 공부는 과학적 체육 공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 체육 공부는 체육현상을 예측하고 통제해서 개선하지는 못합니다. 물리적 현상을 변화시킬 수는 있어도 인간적 성품은 바꾸어 놓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p199

과학적 지식은 우리의 두뇌를 밝게 해주며 학문적 논리는 우리의 머리를 맑게 해줄 수 잇씁니다. 하지만 밝아진 두뇌와 맑아진 머리가 곧바로 훌륭한 성품이나 드높은 덕성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p200

자연과학적 방식으로만 교육받고 훈련 받는 의사와 간호사의 문제점이 크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혹은 보완책으로서 서사적, 인문적 접근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의술은 기술이면서 인술이며,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인 것입니다.

과학적 지식과 최첨단 기술로도 의사는 훌륭한 인성과 고귀한 덕성을 갖출 수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내가 저자라면

 

느낌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를 지난 10여년을 통해서 여실히 깨닫고 있다. 저자와 스포츠 과학연구소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 장자의 소잡는 백정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스포츠에 있어서 과학적인 방법론을 제공하는 연구원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다.

은유적인 표현들이 그냥 막연하고 추상적인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것이라고 지적할 수 없는 총체적이고 전일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는 것을 후일에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이 내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과학적인 방법론의 한계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과 그 대안으로서 인문학적인 접근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다.

오늘날의 한국 스포츠가 세계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문학적인 측면의 성장이 결여된 것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일등을 할 수는 있지만 일류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헝그리정신만으로는 일류가 되기 어렵다. 일등을 죽기아니면 살기로 몸부림을 치면 달성이 가능하겠지만 일류란 그렇게 되는 법이 아니다. 사상과 철학으로 무장한(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적인)정신과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가진) 효율적인 능력을 확보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와는 달리 스포츠를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포츠는 경쟁을 통한 성취감과 그로 인한 만족과 즐거움이 요구된다. 그것은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높여 변화된 자신의 능력을 자각할 때 생기는 것이다.

경영의 한계효용가치설처럼 스포츠의 성과도 그렇다. 이젠 어린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해방이 후 최초로 올림픽의 금메달은 딴 선수가 양정모 선수라는 것을 모른다. 박세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열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텔레비전 중계료를 지불해가며 본 박찬호에 대한 영웅적 숭배는 점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성과로부터 얻어지는 대리만족감이 아닌 자신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에 보탬이 되는 그런 감동이 필요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니듯이 세계를 제패해야만 가치 있는 승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기록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준비되어지고 기회와 도전을 통해서 완성되어 지는 것이다. 대중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일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통해서 완성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철학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구체적으로 느껴지거나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철학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문적인 접근이 공허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론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두 겹의 한 길은 몸과 마음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무예에서는 외공이 없이 내공은 무의미하다. 현장지식이 부족한 (나의 생각으로는 체험)화려한 개념적 지식이 무언가 결여된 것처럼, 몸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음이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구체적인 현실에 인문학적이고 서사적인 감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깊이있는 전문성과 적절한 시기와 표현의 중요성이 요구된다.  실예로 마음을 비워라는 이야기는 추상적이지만 실제에서 적용을 위해서는 생각에 쫓기거나 기억 속의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고 눈 앞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의 순간에 적응하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은(그 또한 추상적이지만) 생각하지마라, 생각하면 그 생각에 쫓긴다. 단지 긴장하라.라는 식의 표현일 것이다.

품성이나 감성의 고양이란 개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을 늘 그렇게 하더라도 자신의 실제행동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옳은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배우고 또 배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삶과 사회는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퇴보했다. 그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부분이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기본 중의 하나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올바른 경영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경영이념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파악과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계획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어렵지만 미래에는 가능한 도전과 희망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인 접근이며 힘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방법론인 하나로 코칭 수업모형에 대해서 그리고 사이언스맨 혹은 르네상스 맨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장이 분명한 것은 코칭은 기능과 지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감성과 덕성을 100만년 동안 훈련해 왔으며 유전적으로 물려왔다. 우리가 감성과 덕성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비록 지식과 기능은 그것들을 세련되게 보여 주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진짜 같은 가짜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고도로 훈련된 서비스 행동과도 같다. 진심이 결여된 서비스 행동이 주는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감성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옳은 사람은 있어도 옳은 수단 옳은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기는 것과 돈 많이 버는 것이 사는 것의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우리에게  진정한 인문학적 접근이 있었다면 망국적인 사교육이나 이방인을 불러들여 노동현장에 투입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즐거움과 쾌락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사회와 개인의 삶은 그것을 최종 목적지가 된 듯하다.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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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12.29 10:16:16 *.12.20.43
하하..."철학적이다." 오라버니가 말한대로 뭔가 집히는 것 있는데 표현가기 어려울 때, 아니 그보다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받았을때 모면하기 위해 많이 쓰죠.ㅋㅋ
갠적으로 올해 연구원 과제 수행하면서 인문학적 사고를 겸비한  생각하는 하는 힘, 그리고 표현하는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절실히 느끼는 해였어요.^^ 꾸준히 노력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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