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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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라면
새해 첫 아침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마음과 몸을 바로 하고, 내 뜻을 다시 따져보고, 지나간 과거를 정리하고, 올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2010년에 사부님을 처음 대면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나를 살펴보게 되었고 그래서 조금 더 깊게 기쁨의 원천을 느끼게 되었다.
올 해는 나의 3650일 프로젝트의 공식적인 첫 해이다. 약 2달간 새벽 3시에 기상하는 것을 시도해 보았는데, 반은 성공했고 그 나머지 반은 실망적이기도 하였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담배와 술이었는데, 나의 생활습관을 전환하지 않는 한 그 의지와는 다르게 쉽게 실패함을 경험하였다. 새벽 3시에 기상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첫번째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담배를 이길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더 가뿐해짐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올 한해는 술을 가급적 입에 대지 않으려 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어떻게 사업을 일으킬 수 있냐?라는 현실적 우려의 말씀을 해주시곤 하는데 불가피할 경우에는 와인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도록 하고 가급적 이른 아침시간때 브런치나 점심식사때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남을 갖는 것으로 생활패턴을 바꿔보면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제 내 책을 써야 한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방식을 조금 달리해 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감상하는 차원에서의 북리뷰에서 조금 더 분석적으로 저자의 설득의 방법에 유념해서 읽어가는 글쓰기로 전환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물론 애당초 북리뷰의 목적이 앞으로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저자들의 설득의 방법과 글의 구성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데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간에 쫓겨 글을 채우는데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세세히 ‘저자의 의도’에 집중하여 책을 접해보고자 한다.
왜 사부님은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책의 제목으로 하였을까?
사부님의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마치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를 보는 기분이 든다. 그 상관관계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하나의 교훈을 가져다 주기에 여기에 서술해 본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 책은 사부님의 첫 책이다. 첫 책은 더더욱 ‘자기의 삶’을 담아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느껴지는 제목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할 때 최초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일 것이다.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그 두려움은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다. 삶의 패턴이다. 그 패턴은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는데 분명 유용한 삶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삶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가족의 미래가 두려웠을 것이다. 대부분 그런 두려움으로 자신의 뜻을 헛된 욕망으로 치부하며 슬며시 거둬버릴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밀려오는 저항감은 그 무엇인가? 외국계 안정된 직장에서 남이 보기에도 부족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43살에 찾아온 어느 봄날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사부님은 그 저항감으로 책을 쓰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 저항감은 익숙한 것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익숙함 어찌보면 사회적 안정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가 요구하는 데로 살아온 삶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벽을 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니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게만 느껴질 것이었다.
사부님은 하나의 모범사례가 되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켜왔던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이 상식적이고 지극히 개인을 자극하는 제목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부님의 몸소 체험한 사회적 문제들 그 익숙한 것들에 대한 저항으로 스스로에게 더 강한 믿음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직장인들을 더 나아가 비슷한 하나의 개인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사부님은 그들 중 하나였고, 그들도 사부님과 같은 입장일 것이다. 책이 개개인에게 매력을 주는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니 누구나가 대면하게 되는 그 첫번째 상황을 통해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변화의 관문중 첫번째 관문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개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더군다나 IMF라는 시련을 겪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책의 제목이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당시의 독자들은 회사에서 짜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입장이었다. 대부분은 아니라도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이 새로운 생동감을 일으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생동감은 생존의 문제이다. 그만큼 절실함이 사회의 개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은 정말 짜릿한 제목이다. 익숙함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결별이란 단어도 개인적인 판단에서 쓰이는 단어이지 않는가! 변화를 얘기하면서 이렇게 조근조근 개인적인 목소리로 들려오는 책의 제목이 이 책의 성공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성공은 새로운 실천적 자신감이 되었다. 사부님은 “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직장을 나왔고, 변화경영사상가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는 사회의 목소리가 주였다면, 이 책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개인적인 목소리가 명료해진다. 실천을 통해 얻게 된 지혜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더욱 더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그래서 그럴까?
책의 첫 표지를 넘기는 순간 보게 되는 문구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자아쪽을 향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는 사회의 벽이 느껴졌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자아의 욕망과의 대면이 느껴진다.
“자신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이렇게 이 책은 시작된다.
초판 서문에서 사부님이 추구하는 ‘변화’의 기준이 더 명확해 진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는다.”
연구원 과정중에 개인의 꿈과 욕망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기를 알아간다는 것은 “낯선 곳을 탐험”하는 것과 같다. 자기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것이 아니다. 자기것이라고 할 수 있을 때 그때 제대로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자기것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재능과 욕망을 깊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하다! 기쁘다!”라는 신호를 준다. 그 기쁨은 악하지 않다. 나누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스스로를 깨달을 때 얻게 되는 교훈중 하나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저자와의 환경에 따라 그 적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부님은 스스로와 사회의 개인들을 동일하게 인식해 보며 글을 써내려간다.
“나와 그들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가 변화에 성공하면 그들도 그렇게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단 내가 먼저 몸소 실천하여 타의 모범이 되어 보는 것이다.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의 의지가 느껴진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는 첫 사랑의 설레임이 들어있다. 그만큼 조심스럽다. 그것에 비해 “낯설은 곳에서의 아침”은 개인일기를 쓰듯이 가볍고 경쾌하다. 그래서 개인적이며 소소한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제 2장 역사 속의 개혁과 혁명”은 사부님이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쌓아온 ‘역사’와 ‘혁명사’의 관점들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는 현재의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룰 뿐이다. 그러면서 사부님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장이라 하겠다. 그래서 책이 더 생동감을 갖게 한다. 자신이 스스로 전문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을 통해 관점을 이끌어 내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내 스스로도 내 책이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내 경험과 내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여한 함을 느껴보게 된다.
제 3장에서는 역시 개개인들이 접할 수 있는 일상의 관점들을 저자의 눈으로 해석하는 부분이다. 주변의 식물, 잘 가는 횟집, 소소한 취미, 여행등을 통해 일상을 억누르고 있던 고정관념을 조금씩 부스러트린다. 일상의 얘기는 공감을 이루어내기에 매우 좋은 소재이다. 그 일상의 얘기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의 설득의 방법 중 탁월함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변화해 보고자 할 때 나는 명강의를 통해서 자극을 받기 보단 사소한 술자리에서 일상을 얘기하다 듣게 되는 친구의 이야기에 매료되곤 한다.
역시 책에서는 마음을 나누는 방법이 매우 섬세해야 함을 느껴본다. 이것이 설득의 묘미일 것이다. 친구처럼 다정다감하게 다가와서 조용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생동감을 이끌어 낸다. 명심할 부분이다.
항상 그렇지만 사부님은 책의 말미를 강하게 장식한다. 이전까지의 목소리는 조근조근 친근체였다면 마지막은 강렬하게 자신의 의도와 해법을 제시한다.
광고를 첫 직업으로 삼고 배워왔던 나에겐 사실 조금 불안정한 설득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였다. 01초의 강렬함! 어찌보면 무수히 많은 제품속에서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강렬함은 필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삶에 대입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강렬함만을 주려 하다 보니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드러내지 않는 드러냄”이라고 명하고 싶다. 사실 책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여하튼 친근하게 스승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로서 설득해 나간다.
연구원 과정을 하면서 겪게 된 사부님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나 ‘낯선 곳에서의 아침’ 과 매우 일치한다.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 조용하게 조근조근 밀려오는 목소리,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등을 직접 들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 책을 읽으면 같이 북한산을 등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든다. 내 앞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스스로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책의 말미는 그가 직접 체험한 그러면서 변화를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실천적 방법으로 ‘포도 단식’을 제시한다. 어쩌면 책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포도 단식’은 조금 위험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서 느낀 건 ‘변화’라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이고, 현실적인 문제이니, 그 방법 또한 지극히 현실적일수록 생생해 질 것이다. 사부님은 몸소 한달 간의 단식 경험을 살려 독자들에게 다가가본다.
상당히 재미있었고, 나 역시도 단식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보다 정신의 기름기를 조금 빼고 싶었다. 개인이 변화를 하는 데 있어서 주저하는 이유는 그 변화가 혁명처럼 과격하거나 파격적일 때 일 것이다. 점진적 개선은 변경에서 얻은 나의 재산이다.
그것은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천천히 오래오래 꾸준히! 이것이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 핵심 요인이다. ‘포도 단식’을 통해 개개인이 스스로와 깊이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변화의 시작을 위한 솔루션으로서 좋은 것 같다. 그렇기에 조금 위험해 보일지 모를 ‘단식’이라는 경험담을 일반화시켜 보여 주셨을 것이다.
아무튼 책이 살아있기 위해선 개인에 맞는 솔루션이 제공되어야 한다. 나도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분이 들어주어야 한다. 사부님의 설득의 방법이 조금 더 리얼리티를 찾은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수없이 다르고, 삶을 이해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조금 더 얻게 된 지혜는 자신의 경험에서 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첫 책은 내 일에서부터 내가 경험해온 조금 더 나은 능력을 인문적인 가치와 접목하여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관점에서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첫 책은 자기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셨었나 보다.
내 책이 나를 이끌도록 힘써봐야 겠다. 다시 기획하자.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시인이며 명상가인 틱 낫 한은 차를 천천히 마시라고 말한다. 이 세상이 어려운 것은 일을 당장에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치우는 것’이 중요하다 보면 일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삶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13]
우리의 욕망이 선택한대로 아름다운 빛 하나를 세상에 더해 가는 것이 삶이기를 바란다.[13]
자발적이든 환경에 의해서든 아름다움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욕망을 억제하는 사람들을 나는 경계한다.그들의 억제된 욕망이 언제 흉악한 모습으로 터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14]
이 책은 ‘변화’를 주제로 쓴 에세이적 입문서이다. 나는 ‘다양성과 균형’을 이 담론의 가운데에 두었다.[14]
‘다양성’이란 규칙과 관행을 떠나 원칙이 지배하는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사회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이다.[14]
나는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얽매고 있는 관행과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커다란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일상 속에 담아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의 일단을 제공하려고 애썼다. 삶은 일상속에서 이루어진다.그리고 일상은 바로 하루하루 속에 있다.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하루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인생 전체 속에서 ‘현재’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다.[15]
자기혁명은 하루 속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시간을 넓혀가는 것이다. 하루의 10%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다. 하루 속에서 잃어버린 두 시간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돌려주자.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15]
시처럼 인생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행간의 비약과 절제, 한꺼번에 건져지는 깨달음을 일상의 삶 속에서 끌고 들어온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이처럼 좋을 수가 없다.[15]
아직 미완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 나의 미래는 뻔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있고 싶은 곳으로 가서 낯선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흥분과 긴장이 있는 곳, 불안과 더불어 떠나왔다는 해방감과 자유가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나와 마주하고 싶다. 오랫동안 그리워한 일이다. 노회하고 원숙하지만 곳곳에서 아직 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16]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을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1년 전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1년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어제와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난24시간은 당신에게 있어 죽어 있던 시간이다.[21]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은 것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22]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 세월이 기만 육탈이 되어 뼈만 남게 된다. 죽은 것을 바뀌게 하는 것은 내부의 힘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다. 바람과 비와 세월과 미생물들이다. 그로므로 우리가 외부의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23]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함께 모이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일단 모이게 되면 그들의 대화는 항상 소비자들을 우롱할 술수나 가격 상승 결의 따위로 끝맺는다.”[37]
성급하고 사소한 일로 쉽게 상처를 주는 분노의 에너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에너지 수준은 ‘자존심의’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자존심은 좋은 덕목으로 사회적으로 권장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매우 불안정한 에너지 수준이다. 자존심은 방어적이고 오만하고 부정적이다. 그리고 비난에 약하다. 그래서 아주 쉽게 ‘수치심’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40]
참된 내면의 잠재력을 통해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 수준은 ‘용기’의 단계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인생은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자극적인 것이 된다.[40]
‘행복한 일상적 삶’이야말로 자기 혁명이 추구하는 비전이다.[46]
혁명을 규정하는 정의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패러다임이 바뀌기 위한 전제는 ‘정상’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파괴와 단절을 가정한다.[44]
나에게 있어 개인혁명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첫째는 이원적 시각을 교정함으로써 세상에게 원래의 색깔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내면의 자신을 신뢰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믿고 있으므로, 쉽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47]
개인혁명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또 하나의 목표는 자발성이다. 자발성이란 인생 속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저항을 뿌리치고 기꺼이 삶에 참여하는 마음이다.[49]
이제 우리는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빛깔이 되어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49]
저항이 없다는 것은 변화 자체가 껍데기뿐이거나 철저하게 실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60]
죽은 인간들은 아름다움에도 눈이 멀어 있다.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걸어 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들이다.[63]
에스파니아에는 ‘물과 불의 싸움에서 지는 것은 언제나 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불은 타오름이며 정열이다. 젊은 남자의 기백이며, 열광이다. 모든 것을 태우는 파괴이며, 광기다. 그러나 물은 지루함이며, 서글픔이며, 맥 빠지는 예속이다.[71]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놓여 있다. 균형을 잃고 중풍 맞은 사람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쓰러질 듯 간신히 그렇게 서 있다.[104]
세상은 많은 색깔로 칠해져 있다. 너무 많은 색깔로 되어 있어 아무리 많은 크레파스로도 다 칠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두 가지 색으로 본다. 흙과 백, 우리는 색맹인 것이다.[109
보고 싶은 것과 보기 싫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우리 편 아니면 적, 하고 싶은 것과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자유와 통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지배와 피지배, 부자와 가난한 자, 우리의 뷰 파인더는 흑백이다. 간혹 회색이기도 하다.[109]
‘백스터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클리브 백스터라는 사람이 식물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밝혀진 사실이다. 식물이 인간의 마음을 알아낸다는 것은 ‘초감각적 인지’에 대한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110]
초감각적 인지란 인간의 오감,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혹각 등을 초월한 어떤 감각을 의미한다.[110]
실제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린왕자]속에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은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것을 그렇게 애써서 설득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11]
작은 도토리 속에는 커다란 참나무의 그림이 들어 있다. 그것을 심으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커다란 참나무가 한 그루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커다란 참나무는 작은 도토리의 꿈이다.[115]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 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자.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욕망을 찾아 떠나라.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밥 한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114]
중요한 것을 미루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바쁘다는 것 속에 모든 것을 묻어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금’ 마음의 밭을 파헤쳐 잊고 있었던 욕망이라는 작은 도토리를 찾아내라. 주눅들고, 삶에 지쳐 피곤한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 빼빼 말라 시든 꿈의 원형을 찾아내라.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심어라. 그리고 농부처럼 키워라. 언젠가 또한 스스로 농부가 키운 훌륭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115]
식물은 1년에 한번 죽는 연습을 한다. 어떻게 어려운 시절을 견뎌야 하는지 알고 있다. 견딘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그들은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하는지 항상 수련한다. 그리고 그 수련은 언제나 실제상황이다. 목숨을 건다.[116]
어린이들에게 책에 실린 지식을 강요하는 것보다 건강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 습득을 강요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자발적인 행위, 즉 노는 것을 잃게 합니다. 아이들은 고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쁨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123]
우리의 의식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의식은 그러므로 쉽게 ‘빛의 장벽’을 넘어 우리의 세계와 거울처럼 반대되는 반우주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130]
꿈은, 아주 끝없이 긴 꿈도 단지 몇 초 안에 꾸어진다. 꿈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우리가 잘 때 의식은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혼자 시간도 공감도 없는 어딘가에서 혼자 놀다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잠시 들킨 것이 꿈으로 되어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132]
사람들은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상력은 현실만큼이나 중요한 현실이다. 개념이 존재하면 인간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창조는 상상력의 구현이다.[146]
21세기는 상상력의 세기이다. 상상력이 없이 만화는 그려질 수 없다.[163]
무협소설은 어른들의 동화와 같은 것이다. 그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에 지지 않는다.[172]
나는 숨도 쉬고, 오줌도 누고, 차도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마음이 바쁘면 안 된다.[172]
문화는 정신적 틀이다. 틀을 벗어나는 문제아들에 의해 문화의 영역은 넓어진다.[174]
정신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용감해져야 한다. 낙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178]
뱀의 상징성 중에서 가장 유용한 개념은 성장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다는 것이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뱀은 죽는다.[184]
여행은 어딘가를 찾아 해매는 것이다. 도착한 그곳의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새로운 것 속에 또 그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190]
인류를 위해 한순간의 빛조차 된 적이 없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삶의 길을 걸어오다가 ‘나’에게 이르러,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매료되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었던 것인가? 미치지 못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미친 것이다.[192]
만일 우리가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시작하지 마라. 그대는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202]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쥐고 있는 개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은 변명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203]
당신이 스스로의 변화에 대하여 관대한 이유는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휴전과 휴식에 만족하기 때문이다.[202]
당신에게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당신에게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 변화 전문가들은 그래서 즐겨 ‘대안을 주지 말고 몰아붙일 것’을 충고한다.[203]
개인 명함의 뒷면에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전문 분야가 없다는 것은 당신은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은 지식사회를 맞이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212]
변화는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갈 때 성공한다.[218]
변화에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는 것이다. 어려운 때에 자기를 믿어주는 것이다.[219]
욕망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힘이다.[222]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분야의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명함에 전문가라고 찍어 가지고 다닌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227]
자신에게 시간을 내지 못하면 하고 싶은 욕망을 이룰 수 없다.욕망은 오직 꿈과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하루에 자신만을 위해 적어도 두 시간은 써라. 그렇지 않고는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베끼고 모방해야 한다. 대가들을 통째로 삼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토해 내야 한다.[228]
변화의 결과는 일상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생활을 바꾸지 못한 변화는 실패한 변화이다. 하루를 이해하는 방법이 바뀌고 하루를 쓰는 방법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구이다.[229]
일상 속에 하루를 깨지 못하면 일상을 바꿀 수 없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일상의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231]
자신을 바꾸게 될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고 가기 위해서는 자신에 몰두해 있어야 한다.[232]
자기 혁명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습관들의 결탁을 와해시키는 것이다.[234]
건강한 정신은 건강함 몸을 만든다.[236]
단식이 주는 세번째의 가장 실용적인 혜택은 이를 통해 자신의 하루를 개편하는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238]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라. 당신이 왜 변화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292]
이 책을 마무리하며
특색이 있어야 해요….평범함 속에서 남과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오만입니다….난 보면 알아요. 추하고 못난 사람도 특별날 수 있어야. 자신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해요…긴장감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신감이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노래는 음표가 아닙니다. 느낌이에요. 칼로 찌르는 느낌이 나와야 해요….침묵하면 고통이 덜할지 몰라요. 내 선생이 그렇게 말했죠…관객은 적입니다. 이겨내야 해요. 그들에게 호의를 구걸하지 마세요.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들을 감동으로 몰아세워야 합니다…나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모든 것을 주었다는 것이 예술입니다. 그 일만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당신은 내게 이름을 말해 주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사람들은 무관심해서 문제에요. 언제나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어요…가수란 작곡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르디와 세익스피어와 직선적 끝이 닿아 있다는 말입니다….예술은 협동입니다. 협동과 지배예요… 노래를 부를 때 상상을 해야 해요. 그가 되어야 하고 그녀가 되어야 합니다. 봄날 아침 10시예요. 그 느낌이 와야 해요. 느낌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분노밖에 할 수 없습니다….등장이 중요해요. 퇴장도 그렇고 그 사이에 무대가 있고 예술이 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마리아 칼라스
칼라스의 말처럼, 오페라가 없어도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예술가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좋은 예술가들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왔다. 휠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일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당신의 인생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생을 살며, 누군가가 당신이 함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해 준다면,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다.[295]
우리는 지금 자신감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당신이 아직 학생이라면, 용맹 정진하는 선사들이 그러하듯이, 선생의 전부를 삼키고 다시 게워내야 한다. 당신이 지금 직장인이라면, 경영자와 상사의 호의를 구걸하지 마라. 허리를 펴고 당신의 등뼈로 서라. 당신은 직장 속에서 전문적인 1인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가 빨리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미 직장을 잃어버렸다면, 지금이 바로 그 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실업이란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업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함으로써 자유롭게 종속될 수 있다. 그 일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웃고 울 수 있다. 인생을 거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미쳐야 한다. 적어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미쳐야 한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게 할 수 없다면 그 분야를 떠나야 한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정신 나게 하는 말이다.[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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