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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일 19시 02분 등록

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자신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현실과 정신 세계의 중간 쯤에서

풍요로운 삶을 원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세계를 탐색하는 자유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하여 불협화음 속에서도 저마다 한 가닥의 진리를 끌어안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핏줄을 타고 몸속으로 흐르는

주어진 재능에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드립니다.

그리하여 평생 그것만을 위해 울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햇빛을 뼛속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사람들,

그리하여 노동과 놀이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바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자신을 만나지 못한 것은

찾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듯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개정판 서문: 경계를 넘지 않으면 탐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u       오늘은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날이다. …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갈 때 원하는 것을 품고 매일 애쓰는 것은 좋은 삶이다. 호라티우스의 <송가> 11편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일을 믿지 말고 오늘의 열매를 따는 데나는 몰두한다 (7).

u       길게 볼 때 인생은 매우 솔직하여 애를 쓴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 …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으니 세월보다 무섭게 살을 헤집어드는 사나운 채찍은 없다.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자신을 보는 것은 추운 일이다. 세월이 지나 어떤 것에도 마음을 쏟지 못한 자신처럼 미운 것은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쓸데없는 것들에 연연하여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던 그 많은 시간보다 통탄에 젖게 하는 것은 없다 (7~8).

u       글 쓰는 사람의 비유로 인생을 말한다면 삶이란 한 권의 책과 같다. ‘자신이라는 이름의 책을 펼칠 때 차마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감동이 없다면 그 삶이 좋았다 말하기 어렵다 (8).

u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의 이야기를 만들어라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8).

u       경계를 넘지 않으면 탐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탐험이 없는 인생이 줄 수 있는 새로움은 없다. 나를 실험하고 싶었고 나를 누르는 세상 이야기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8).

u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기로 했다 (9).

u       나의 머리를 통제하던 시지프의 신화는 파괴되었다. 더 이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지옥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굴리던 커다란 바위를 정상에 올려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밟고 올라 그 동안 넘어온 산들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삼았다 (10).

u       10년 후가 될지, 죽을 때에 이르러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윽고 변화 경영의 시인으로 변화할 것이다. 시야말로 행간마다 변화를 이루어 낸 글이다. 글을 쓰면서 한 줄을 바꾸어 쓸 때마다 생각의 도약이 이루어지는 글쓰기가 바로 시인인 것이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 커다란 텅 빈 공간이 자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시라 부른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무수한 버전의 이야기들이 가능한 그 텅 빈 공간이 바로 창조적인 공간인 것이다 (11).

u       밥벌이에 지지 말자.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두려워 말자. 꿈을 꾸자. 삶의 어디에서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보이자. 현실과 꿈 사이를 일상의 좋은 감촉으로 채워 넣자. 기쁨으로 시작한 삶이 지혜로 끝나게 하자. 그리하여 시처럼 인생을 살자 (11).

 

<초판 서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

u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몇 사람이라도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이에는 서로 자기에게만 속한 무엇인가가 있어,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 세상 또한 그렇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변화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화는 인간과 세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11).

u       그러나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산다는 것은 무난한 일인지 모르지만 비겁한 일이다. 세상은 또한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인간은 자신의 일상적 삶을 통해서 세상에 참여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세상의 일부를 만들어 간다. 변화란 세상과 자신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변화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삶 자체이다 (11~12).

u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삶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나이를 먹어 삶을 마감하기 위해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다. 해뜰녘, 아침, 점심, 한낮, 해질녘, 저녁…. 시간마다 달라지는 햇빛처럼 그렇게 변해 가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그러므로 시간마다 독특한 아름다운 빛깔로 변해 간다는 것을 말한다 (12).

u       일상은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변화는 일상 속에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욕망이 흘러가는 곳으로 깊이 침잠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아주 멀리 그것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욕망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선택한 대로 아름다운 빛 하나를 세상에 더해 가는 것이 삶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개인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만큼 장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14).

u       자발적이든 환경에 의해서든 아름다움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욕망을 억제하는 사람들을 나는 경계한다. 그들의 억제된 욕망이 언제 흉악한 모습으로 터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14).

u       나는 다양성과 균형을 이 담론의 가운데에 두었다. … ‘다양성이란 규칙과 관행을 떠나 원칙이 지배하는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사회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의 가운데에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는 핵심적 가치와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는다. … 변화의 정체는 다양성을 기초로 세상과 자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의 위치를 잡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는 언제나 현재적이다. 바로 지금일어나야 하는 새로운 균형을 향한 역동적인 조율이다 (14).

u       나는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얽매고 있는 관행과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커다란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일상 속에 담아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의 일단을 제공하려고 애썼다 (14).

u       살면서 얻은 깨달음과 공감이 일상적 삶 속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것은 하루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를 개편하지 않고는 일상적 삶을 바꿀 수 없다. 물리적 현실을 개편하지 못하는 정신은 허망할 꿈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 혁명은 하루 속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시간을 넓혀가는 것이다 (15).

u       아직 미완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 나의 미래는 뻔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있고 싶은 곳으로 가서 낯선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흥분과 긴장이 있는 곳, 불안과 더불어 떠나왔다는 해방감과 자유가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나와 마주하고 싶다. 오랫동안 그리워한 일이다. 노회하고 원숙하지만 곳곳에서 아직 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16).

u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다. 그대 또한 함께 (16).

 

<1: 변화- 살아 있다는 것>

변화란 무엇인가?

u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22).

u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은 것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단지 상황이 그것을 바뀌게 할 뿐이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다. 그저 썩어가는 것이다 (22).

u       그러므로 우리가 외부의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단지 상황과 환경의 희생자일 뿐이다 (23).

u       남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23).

u       빠르다는 것은 생활을 급급하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전에 이미 화살처럼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 늘 바쁜 일만 하며 평생을 산다. 중요한 일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소중한 사람과 보낸 시간은 언제나 모자란다 (24).

u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언제나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과거의 원칙과 지나간 추억에 매달려 산다 (24).

u       그들에게 인생은 언제나 같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언제나 우연히 선택당하며 세상을 산다. 그들은 상황의 희생자들이다. 상황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쓸데없이 복잡하고 바쁘기만 한 세상이다. … 그들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만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두움이라는 동질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어두움 속에서 조금 덜 어두워 보이는 곳에 자리를 깔고 웅크리고 앉아 스스로를 위로한다. …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원망한다 (26).

u       어떤 사람은 변화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자신이 선택한 길로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걸어간다. …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 그들은 산이 시간마다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27).

u       결국 계절과 날씨와 하루의 시각에 따라 그 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선택하여 바로 그 때 그 자리에 있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산행은 아름다워진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도 이것과 같다 (27).

u       인생이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가보지 못하는 여정으로 남는다. 한 길을 가며, 다른 길의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차 안이고, 거리며, 만난 사람들이며, 골목 속의 주점이며, 산이며 바다이다. 선택한 여정을 따라 보고 느끼며 그 때 그 장소의 숨결이 되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몇 사람이라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27).

u       떠나지 않고 여행할 수 없다.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때 그 장소의 그 사람이 되어 서로 이웃이 되지 못하면 그 문화를 느끼지 못한다. 이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곳은 가지가지의 색과 빛깔들이 어울려 있는 곳이다 (28).

u       밝고 빛나는 곳을 향해 한 걸음만 옮겨라. 그리하여 스스로 밝고 빛나는 하나의 빛이 되라. 변화는 바로 빛이 되는 과정이다 (28).

 

변화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u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지 않고는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을 빌려 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해야 한다 (29).

u       데이비드 호킨스는 <내부 잠재력과 외부로부터의 억지력> (개정판은 의식혁명)에서인간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음과 비슷한 에너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수준의 에너지 장에 있다는 것은 파괴적인 삶을 의미한다 (29).

u       그에 따르면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의 에너지 수준은 우리가 수치심에 싸여 있을 때라고 한다. … 죽고 싶지만 차마 죽을 수 없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바로 수치심의 수준이다 (30).

u       본인에게 치명적이고, 주위 사람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는 에너지 수준이 무기력이다. 빈곤, 절망, 자포자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버틸 수 없다. 살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 공급을 필요로 한다. … 그러나도움은 결국 도움이 되지 못한다 (30).

u       무기력보다 낫지만 여전히 낮은 에너지 수준에 속하는 것이 슬픔이다. 이 에너지 수준에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은 비탄과 공허, 후회와 우울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슬프다. 그들은 하나를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 사랑 자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31).

u       두려움슬픔보다 더 광범위한 일반적 현상이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건강한 반응이다. … 이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은 위협과 함정으로 가득 차 보인다. … 두려움은 인간의 상상력을 타고 끝이 없이 확산된다 (31).

u       무인들은 검을 배울 때 사계를 들어 마음의 동요를 경계한다. 이 사계 중 두 가지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두려움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있다. … 이를 경이라 한다. 경은 훈련과 연습에 의해 극복된다 (32).

u       또 다른 두려움으로 구를 든다. 이것은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두려움이다. 자신도 그 두려움의 원인을 모른다. 까닭 없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이 두려움은 경보다 상대하기 훨씬 힘들다. … 그래서 무인의 가장 기본적인 제일의 자질이 바로 담이다. 담이 크지 않고는 구를 극복하기 어렵다 (32).

u       두려움의 치명적 약점은 창조력을 죽인다는 점이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은 육체적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불안을 잊는다. 고도의 정신적 작업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자율이 주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유롭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32).

u       죽음의 에너지 수준을 0이라고 한다면, 수치심, 무기력, 슬픔, 두려움은 순서대로 조금씩 에너지 수준을 높여 가기는 하지만 그 상태에 놓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에너지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빌려와야 한다. 이 수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33).

u       수치심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긴 어렵다. 그들은 좋은 의도를 왜곡한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살피기도 어렵다. 그들은 어떤 도움을 받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 슬픔 속에 젖어 있는 사람은 도움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으로 느끼고 있을 때,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은 감히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다. 그저 외부적인 힘에 굴복할 뿐이다 (35).

u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가장 기초적인 상태는 욕망의 에너지 수준이다. 욕망은 본능적이다. 그리고 광범위한 동기이다. … 이것만큼 강력하고 전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힘은 없다. … 욕망을 되찾세 되면, 무기력과 슬픔을 이기고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원하는 마음을 가진 다음에야 비로서 인간은 성취로 가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되찾는 작업이 변화의 시작점이다.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35).

u       자본주의의 토대는 이기적 욕망이다. 애덤 스미스는 오늘의 자유시장경제의 이론과 원리의 대부라고 불린다 (35).

u       그의 위대함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을 이상화시키지도 않았고 미화시키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허물과 이기심을 그대로 끌어 안았다 (36).

u       애덤 스미스는 모든 행성 가운데 태양이 있듯이 사람들은 세상의 한가운데 자기 자신을 두고 산다고 믿었다. … 결국 자기 자신을 도움으로써 타인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본 것은 이기적 욕망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사실이었다 (36).

u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고귀한 심성에만 사회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자산이다 (36~7).

u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메커니즘이 바로 시장 경제이다. 그래서 이 단순한 시스템은 기타의 시도들이 실패할 때에도 살아 남았고 이제는 인류의 유일한 경제 시스템이 되었다 (37).

u       그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 잡혀지는 자유방임시장 경제체제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않은 것 같다 (37).

u       애덤 스미스의 우려대로 지금까지 한국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와 거리가 멀었다 (38).

u       이기적 욕망은 축적이나 탐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욕망은 또한 집착이다. 그래서 욕망은 인생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고 말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제적 번영은 욕망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된다 (39).

u       애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때, 공익을 위해 봉사할 때 보다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공익 사업치고 진정하게 사회를 발전시킨 경우를 단 한 건도 본적이 없다 (39).”

u       그러나 욕망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좌절을 낳고 좌절은 분노를 유발한다. 분노는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39).

u       분노는 그렇지만 자칫하면 보복으로 흐를 수 있고 폭발적이며 거칠다. 성급하고 조급하다. … 쉽게 증오로 변질되기 쉽다 (40).

u       자신도 곧 그 천박하고 성급함에 전염되어 똑같이 그 짓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세련을 잃어간다. 자신에 대한 존엄을 잃어간다 (40).

u       자존심은 좋은 덕목으로 사회적으로 권장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불안전한 에너지 수준이다. 자존심은 방어적이고 오만하고 부정적이다. 그리고 비난에 약하다. 그래서 아주 쉽게 수치심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40~41).

u       자존심은 분열과 파벌주의를 초래한다. … 자존심에 가득 찬 사람은 의식의 성장을 차단한다. 자신의 성품과 기질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정함으로써 등을 돌린다. 자존심은 진실한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과 오류를 인정할 만한 용기를 지니지 못하는 자존심은 덕목이 아니다. 이 수준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저 외부의 강제력과 내부의 잠재력 사이의 경계선에 간신히 서 있는 한없이 피곤한 사람들이다 (41).

u       참된 내면의 잠재력을 통해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 수준은 용기의 단계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인생은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자극적인 것이 된다. 용기는 우리에게 기꺼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해준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새로운 삶으로 전환시켜 준다. 성장이 목표가 된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 하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부여함으로써 항상 새롭게 되려 한다. 이 수준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나 두려움을 볼 수 있고 인정한다. 그러나 두려움과 결함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장애물을 만나면 오히려 자극을 받는다. … 그들은 성취를 통해 고무받고,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격려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20년 전부터 인류는 평균적으로 이 정도의 에너지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41~2).

u       그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멋있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43).

u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용기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계량화 수치에 따르면 용기는 에너지 수준 200 정도로서 인류 보편적인 의식 수준이다 (그는 예수나 부처의 에너지 수준을 1,000 으로 보고 있다. 위대한 정치 지도자나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등은 에너지 수준이 400대 정도로 나타난다고 한다 43).

u       우리가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수준에 있을 때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단지 변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수치심, 무기력, 슬픔, 두려움의 에너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외부적 힘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 힘은 주어진 상황이다. 이 때 우리는 상황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때 우리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43).

u       변화를 시작하는 최초의 출발점은 내부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 욕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욕망은 그러나 좌절할 수 있다. 좌절의 순간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다시 시작하게 한다. 다행스럽게 욕망과 용기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기이며 힘이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제력이 아니다. 이 힘의 근원은 우리의 내부로부터 온다 (43).

 

개인의 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삶 자체이다:

u       변화를 만들어 가는 가장 강력하고 극단적인 방법은 혁명이다. 혁명을 규정하는 여러 정의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패러다임이 바뀌기 위한 전제는 정상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파괴와 단절을 가정한다 (45).

u       삶은 그러므로바로 탄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한다. 살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우리는 죽어야 한다. … ‘죽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혁명의 요체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거듭난다고 말한다 (46).

u       자기 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하는 것은삶 자체이다. 삶은 일상이다. 좋은 삶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일상을 통해 자기 삶을 살면서 기꺼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빛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일상적 삶이야말로 자기 혁명이 추구하는 비전이다 (46).

u       일상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의식의 에너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의 삶을 만들어 왔던 조건들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의식의 함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46).

u       나에게 있어 개인혁명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47).

n        그 첫째는 이원적 시각을 교정함으로써 세상에게 원래의 색깔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내면의 자신을 신뢰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믿고 있으므로, 쉽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을 하지도 않는다. … 그들은 세상에 대해 편안함을 느낀다. …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자신의 일상이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유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므로 다른 사람의 자유 역시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은 잔잔하고 조용하여 참으로 일상적이다. 간디가 한 말을 기억하게 한다. “그대에게 잘못이 없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만일 그대가 잘못했다면 화를 낼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화를 내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다 (47).

n        개인혁명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또 하나의 목표는 자발성이다. 자발성이란 인생 속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저항을 뿌리치고 기꺼이 삶에 참여하는 마음이다. 어려움으로부터 회복하는 능력과 시련을 통해 배운 바에 따라 자신의 등뼈로 스스로를 바로 세울 줄 아는 수준의 사람들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성장이 빠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48).

u       인생은 관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스스로 우리는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빛깔이 되어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49).

u       다른 색깔의 희생을 통해 빛나는 불완전한 돋보임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 되어야 한다 (49).

 

우리는 왜 변화에 저항하는가?

u        인간이 변화에 저항하게 된 33가지 가정 (<변화를 이끌어 가기: 가치 중심의 리더십을 위한 논쟁> 제임스 오툴): 52

n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체내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 변화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n        기존의 상황은 이미 정당화되어 있다. 변화가 일어나면 또 정당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담스럽다.

n        불활성: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이 들어간다 (따라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n        만족: 지금 이대로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변화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상대적 불만족을 두려워하고 있다).

n        시기 부적당: 변화의 조건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더 기다리자 (이 경우에는 이미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기 때문이다).

n        공포: 미지에 대한 불안.

n        기득권: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줄지 모르지만 나에게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언제나 얻는 것만큼 잃을 수도 있다. 살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나마 그것조차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변화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보다는 관망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훨씬 많다).

n        자신감의 부족: 새로운 도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n        미래 쇼크: 변화에 압도당하여 두려워한다 (변화의 내용, 방향 뿐 아니라 변화의 스피드에서도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따라갈 수 없을 때 포기하고 스스로 문을 닫아건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폐쇄적이 된다).

n        헛된 노력: 변화가 표피적이고, 껍데기만 덧칠하고, 기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 또 해야 하는가? (실패한 개혁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이다. 하나라도 철저히 실행하고 그 결과를 보아 수정해 가는 자세보다는 잡지에 새로운 개혁 프로그램이 소개될 때마다 도입하여 구성원을 변화에서 변화로 끌고 다니는 조직 속의 사람들이 느끼기 쉬운 감정이다).

n        지식의 부족: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n        인간본성: (좀 더 나은 사회, 조직을 위한) 변화에 필요한 이타심이 결여된 채 태어났다.

n        냉소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의 동기에 대해 의심한다.

n        왜곡: 변화를 환영한다. 그러나 원치 않은 나쁜 결과가 나타날까 봐 우려한다.

n        천재와 대중: 대중은 천재가 보는 변화 속의 지혜를 예견할 수 없다.

n        자아: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n        단기적 사고: 사람은 편안하고 좋아하는 것을 바꾸지 않는다.

n        근시안: 변화란 결국 자신의 이해와 종국적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외면한다.

n        몽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n        설맹: 동아리, 사회적 동질성이 변화를 가로막는다.

n        집단 환상: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대신 미리 인식된 사회적 의미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의 행복은 그들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세네카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사람은 가치 있는 일을 해서 칭송받는 것이 아니다. 칭송받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u       제임스 오툴의 33가지 가정들 중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요한 저항의 이유를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56).

n        첫째, 사람들은 변화가 가지고 올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두려워한다. 변화는 현재의 상태를 파괴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득권은 보호되지 않는다. 변화는 자유를 제한할지도 모른다.

n        개인적으로도 변화는 희생을 강요한다.

n        기득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변화를 성공시킬 수 없다. … 저항의 핵심 속에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불안이 깊이 숨어 있다.

n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심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결국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n        둘째, 변화는 습관의 일부를 깨뜨림으로써 불균형을 가져온다. 우리의 일상은 여러 가지 익숙한 습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습관들은 서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 변화는 사람이 그 동안 체득하여 익숙해진 매일 매일의 생활과 습관 중 일부를 공격함으로써, 상호 연관된 나머지 다른 일상적 요소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n        셋째, 변화에 대한 충분한 설득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에 저항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변화는 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 변화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u       하나의 생명이 물리적으로 죽기 전에 그것은 눈부신 변신을 해내고 만다 (61).

u       죽은 인간들은 아름다움에도 눈이 멀어 있다. 여자를 볼 때에도 추잡한 것밖에 볼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며, 나무를 볼 때도 목재나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걸어 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들이다 (63).

u       인간은 정신이 죽으면 무력한 존재이다.자신이 왜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으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고는 겨울 속으로 떠나가지 못한다. …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 (63).

 

세 사람의 죽음:

u       파인만은 죽을 때도 장난처럼 죽었다. 그의 삶처럼 유쾌하게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66).

n        두 번 죽고 싶지는 않아. 너무 지루해 (I hate to die twice. It’s so boring).”

u       여기 나의 희망이 있다. 힌두의 무사처럼 살아 있는 동안 힘껏 노를 저을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죽기 전에 수없이 죽어보고 싶다. 죽는 것은 지루할지 모르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빛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늘로 변할 때마다 밝은 곳을 향해 걸어 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햇빛 속의 빛 알갱이 하나가 되고 싶다 (66).

u       그늘은 휴식이다. 밤은 그러므로 쉬는 것이다. 슬픔과 불행과 불안은 벗어나옴으로써 자랑이 된다. 죽음이 없이 또한 삶도 없다. 그리고 죽음 또한 산 사람들의 문제이다. 죽은 사람에게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밤과 낮, 어두움과 빛은 하루를 구성하고 있는 서로 의존하는 짝이다. 우리는 오직 하루 속에서 인생을 산다. 하루하루가 모여 평생이 된다 (66).

u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 그는 바람이고 비며, 나뭇잎이며 바다다. 그리고 햇빛이다. 모든 자연 속에 그의 마음이 있다. …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때 그 역시 우리와 함께 있다 (67).

u       어두움 속에서 신과 우주의 모습으로 우리가 만들어졌으니, 우리는 날 때부터 한 움큼의 빛이었다. 60억이 하나하나 모두 빛나는 부처였다 (67).

u       인간이 만든 무언가가 문명의 이름으로 빛을 가릴 때, 그리하여 지금 서 있는 곳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한 걸음을 걸어 나와 빛을 향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빛이 되는 것이다. 빛이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다 (68).

u       산다는 것은 그러므로 시간마다 독특한 빛깔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 어두움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살아 있지만 어두움 속의 죽음을 보고 있다. 밝은 곳을 보지 않는다. … 우리가 빛이라는 믿음은 시선을 자신의 속으로 돌릴 때 확인된다. 삶이 빛인 것은 축복이다 (69).

 

<2. 역사 속의 개혁과 혁명>

물과 불의 싸움: 물의 승리

u       남명 조식 선생의 시에 <우연히 읊조림>이라는 시가 있다 (77).

n        누구나 옳은 사람 사랑하기를 / 호랑이 가죽을 좋아함과 같네 / 살았을 땐 죽이려고 애태우고 / 죽은 뒤엔 입을 모아 칭찬한다네.

u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죄를 짓는다. … 그러나 우리는 가진 것도 없이 일상에 매인다 (77).

 

물과 불의 싸움: 불의 승리

u       변화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서서도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80).

u       분명한 것은 피가 없는 혁명은 없다는 것이다. 희생이 없는 개혁 또한 없다 (82).

u       개혁과 혁명처럼 마음 뛰는 것이 없는가 하면 또 그것처럼 무섭고 몸서리쳐지는 것도 없다. 희망이며 또한 절망이다. 파괴이며 또한 창조이다 (82).

 

스승은 나를 구하고, 나는 스승을 구하리다

u       고려는 한국의 역사를 통해 가장 주체적이고 민족의식이 강한 시대였다. 어느 시대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려 역시 고려인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88).

u       공민왕은 결국 서로를 구해 주겠다던 신돈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저항 세력은 집요하게 노회한 반격을 가해 옴으로써 개혁 세력을 분열시켰다. 결국 고려는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을 마지막으로 자체적인 개혁에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멸망하게 되었다. 권문세족 역시 가진 자의 희생과 양보를 거부함으로서 고려의 멸망과 함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91).

u       조선조의 건국과 함께 기득권층이었던 고려의 권문세족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목숨 역시 잃고 말았다. 그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개혁에 반대했던가? 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의무 역시 가지고 있다. … 그들이 죽으면 자신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득권자들은 언제나 그렇다. 불리한 개혁에 찬성하지 않는다. 아직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개혁에 저항한다. 그들이 포기할 때는 이미 늦는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다음이기 때문이다 (92).

 

노블레스 오블리주

u       소설은 허구를 통해 감동적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95).

u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루스벨트 대통령)가 믿고 있는 믿음이었다 (95).

u       그는 완강했다. 어려운 시절에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임이 무엇이며, 지금 무엇을 바꾸고 개혁해야 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공은 기득권자들이 양보와 보상을 통해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97).

u       평화는싸움과 파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꿈을 잃은 마음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98).

u       미국의 가장 정직한 대통령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루스벨트는 개혁은 저항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 현명한 것은 그가 저항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98).

 

역사로부터의 배운 교훈

u       개혁이 필요한 사회가 가진 자들에 의해 그 개혁을 지연시킬 때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 오히려 기득권자일 수 있다 (100).

u       기존의 권리는 눈을 멀게 한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은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보다 더 절박하다. 그러나 상실의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탐욕은 개혁이 필요한 시대에는 스스로를 죽이는 독약과 같다 (101).

u       일상 속에 개인적 꿈을 심어주지 못하는 사회는 어떠한 모습의 외형을 가지고 있든 훌륭한 사회가 아니다 (102).

u       보수주의가 개혁주의보다 나쁜 것은 아니다. 또 그 반대도 아니다. 보수와 개혁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 중립적이다. 필요에 따라 선택될 뿐이다 (102).

u       개인적으로 나는 보수주의자도 개혁주의자도 아니다. 보수와 개혁 역시 양극단 사이의 어디엔가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밖에는 없다. 결국 그들은 빼앗긴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잃는다. 그들은 그토록 삶을 내리누르는 물질적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삶조차 빼앗기고 만다.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104).

u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놓여 있다. … 중산층은 궤멸되어 가고 부는 양극으로 나뉘어 가는 빈곤한 나라의 전형적인 현상인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으로 접근하고 있다 (104).

u       한국 사회의 특징이었던 활력과 에너지는 방향을 잃고 급격히 감소되었다. 지금 우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미래를 위한 조율이 필요한 때이다 (104).

u       그렇다면 우리에게 던져진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 <극단의 시대>의 저자이며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 봄은 극단 사이의 균형 21세기 인류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 균형은 정부 주도적인 통제 경제와 극단적 자유시장 체제 사이의 새로운 균형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이 두가지 요소의 균형을 다시 맞추어 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특정 국가 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국제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105).

u       자유주의 시장경제만을 가지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국민의 참여와 무관심 사이에서 국민의 의사가 존중된 결정을 어떻게 내릴 것이냐의 과제가 남아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정부와 기업으로 대별되는 조직과 개인의 역할상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주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 지식 사회라는 본질을 가지고 이미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는 미래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원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105).

u       그러나 제도와 체제의 변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제와 내각제 사이의 우열은 없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완벽한 제도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체제 속에 숨어 이를 움직이는 정신이다. 어떤 제도든 정신이 죽으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제도는 장점으로 기대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단점만 부각되고 확대되어 무력한 시스템으로 남게 된다 (106).

u       새로운 균형을 위해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개인혁명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이 터져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106).

u       만일 우리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면, 정부는 반대로 우리로부터 모든 개인적인 것들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106).

u       정부는 모든 것을 해줄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시민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개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과 개인 사이의 새로운 균형이 또한 요구된다는 뜻이다 (107).

u       나는 개인의 힘을 믿고 있다. … 깨어 있는 사회는 깨어 있는 개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그 분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감동은 글 속에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오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수행을 업으로 하는 스님들에게도 어려운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은 무너지기 쉽다. 법정 스님은 혼자 있을 때를 경계하여 대나무 가지를 다듬을 때가 있다고 한다. 깨어 있고 싶어서이다. 어떤 분야에 깨어 있는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면, 나는 많은 위로를 받는다. 정신이 죽으면 인간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07).

u       자기 안에 자기를 움직이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개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이다. … 현명하다는 것은 실천적 개념이다. 실천의 어려움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 돈은 한 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과 같다. 위에서 한 번 쏟아버렸다면 밑에서 다시 퍼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사회에는 사업 역시 죽는다. 꿈이 없는 사회의 일상은 춥고 어둡다. 미래를 믿지 않는 사회에는 어떠한 기다림과 자제도 없다. 참고 기다림 없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회란 어디에도 없다 (108).

 

<3. 상식과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몇 가지 이야기>

식물은 눈이 없어도 더 잘 볼 수 있다

u       백스터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클리브 백스터라는 사람이 식물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밝혀진 사실이다 (110).

u       식물이 인간의 마음을 알아낸다는 것은 초감각적 인지에 대한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 초감각적 인지란 인간의 오감, 즉 시각,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을 초월한 어떤 감각을 의미한다 (110).

u       실제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린 왕자> 속에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은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볼 것을 그렇게 애써서 설득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11).

u       자연의 모든 것에는 생명이 숨쉬고 있다. 인간이 만일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줄 것이다 (112).

u       우리가 동화라고 부정한 것 속에 자연의 참모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연의 한 식구로 태어나 자연의 언어를 알고 있다가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격리시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12).

u       인디언들은 자신이 힘들고 피곤해지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친구인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웅장한 나무로부터 원기를 되돌려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다. 산에 가면 나는 힘이 난다. 산의 정기를 느낀다. 산이 살아 있고 나무들 또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이라고 불리는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14).

u       삶은 그저 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 밖에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일상은 현실과 허구가 시처럼 얽혀 있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 (114).

u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 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라.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욕망을 찾아 떠나라 (114).

u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을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선택된 욕망에 모든 것을 내주어라. 사랑해 줘라.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 자연스러움에 마음을 내주어라. 그것이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114~5).

u       중요한 것을 미루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바쁘다는 것 속에 모든 것을 묻어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금마음의 밭을 파헤쳐 잊고 있었던 욕망이라는 작은 도토리를 찾아내라. 주눅들고, 삶에 지쳐 피곤한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 빼빼 말라 시든 꿈의 원형을 찾아내라.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심어라. 그리고 농부처럼 키워라. 언젠가 또한 스스로 농부가 키운 훌륭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15).

 

식물은 1년에 한 번 죽는 연습을 한다

u       식물은 1년에 한 번 죽는 연습을 한다. … 그들은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하는지 항상 수련한다. 그리고 그 수련은 언제나 실제 상황이다 (116).

u       우리는 식물에게 생명과 사랑, 성을 돌려주기 위해 위대한 시인 괴테를 기다려야 했다. … 파두아의 거대한 식물원에서 그는 식물들과의 대화에 몰두한다. 그리고 시인의 직관과 영감과 상상력을 통해, 과학자들이 죽여 놓은 식물 표본 속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119).

u       괴테는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자연의 보고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파두아의 식물원에서 나무들의 생장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 깨달음이란 하나씩 쌓여 있던 생각들이 한 순간에 하나의 체계로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식물의 변태에 대해서>라는 소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인이 과학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 그가 경이로움 속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119).

u       식물은 외관상 여러 형태로 변모해 가지만, 내적으로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 (120).

u       식물이 스스로의 힘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해 갈 수 있는 힘과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가장 잘 증명해 준 사람은 루터 버뱅크이다 (121).

u       식물들을 독특하게 기르고자 할 때, 나는 무릎을 꿇고 식물에게 말을 건넵니다. 식물에게는 스무 가지도 넘는 지각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각 능력과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잘 알지 못할 뿐입니다 (121).”

u       그는 실험을 해 나가는 동안 식물과의 신뢰를 쌓고, 식물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자신이 그들에게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품고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을 안심시켰다 (123).

u       그는 또한 이러한 육종의 개념을 사람에게도 적용하였다. “… 아이들은 고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쁨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후일 살아가는 데 있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놀이라든가 자연과의 유대를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 나는 어른이 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랬으면 합니다 (123).”

u       “… 편견을 버려라. 자연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진리를 보여준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비로소 우주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124).”

 

시간과 그 뒤편에 감추어진 이야기

u       (외계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개념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즉 시간을 빨리 가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늦게 가게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시간을 멈출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란 단지 우리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1분이 한 시간일 수도 있고 하루가 영원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잘못된 시간 개념을 정립시켜 갔던 것입니다 (126).”

u       이상의 이야기는 언스트 메켈버그가 지은 <타임 터널> 속의 한 장면을 인용한 것이다. 시간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외계인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7).

u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 이 우주에서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시간이 빨라지기도 하고 늦어지기도 한다 (127).

u       만일 우리가 빛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시간의 연속 선상에서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게 된다. 초광속은 우리가 빛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설명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 초공간을 움직일 때 가능한 것이다 (128).

u       미래에서부터 와서 과거로 흐르는 이런 입자의 존재가 의미하는 것은 시간이 현재로부터 미래로 흐르고 있다는 가정을 심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128).

u       반입자들이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입자들로만 구성되어진 우주, 즉 반우주에 대한 존재를 추론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반대의 전기를 띠고 있고 시간 방향이 반대인 세계-를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우주의 바깥쪽 머나먼 곳에 있다고 믿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우리 주위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29).

u       물리학자들의 과학적 추론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진 플라톤은 이미 <폴리티코스>라는 작품에서 우리의 발전이 한 사이클을 지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추측하고 있다. 거꾸로 시간이 흐르는 우주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은 이들은 부활하고 점점 더 젊어지게 된다. 성장 과정을 거슬러 점점 어려지다가 자궁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세계에서는 탄생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부활이 된다. 이러한 추론은 우리의 의식이 비물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130).

u       우리의 의식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의식은 그러므로 쉽게 빛의 장벽을 넘어 우리의 세계와 거울처럼 반대되는 반우주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의 의식이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거꾸로 흐르고 있는 초광속의 입자인 타키온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미래나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타키온과의 만남은 꿈 속의 체험이라는 형태로 무의식에 의해 끌려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점차 의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래의 사건에 대한 인지나 예언의 가능성은 이런 과정을 거쳐, 물리학적인 법칙과 인과율에 위배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30).

u       우리가 매력적인 일에 흠뻑 빠져 있을 때 시간은 우리에게만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 … 반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시간은 천천히 지루하기 짝이 없이 흐르는 듯하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주관적인 시간 의식은 시계가 만들어 준 외부적인 절대적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131).

u       만일 레이먼드 시어러가 만난 우주인처럼 빠른 우주선 안에서 여행함으로써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시계 속의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의식 속의 시간이 더 중요하고 확실한 시간의 개념이 아닐까? (132).

u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하고 진정한세계로 느껴지는 이 세계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꿈인지도 모른다 (132).

u       칼텍의 우주 물리학자들은 물질은 원자를 거쳐 원자 이하의 소립자로 녹아내리고, 이것들은 다시 정의할 수 없는 쿼크로 변한다고 한다. 쿼크는 다시 녹아내려 결국 에너지 장을 거쳐서 순순한 의식의 덩어리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물질의 세계가 결국 비물질적인 의식의 덩어리로 귀착된다면, 지금 우리는 만지고 느끼는 구체적인 이 세상은 실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134).

 

공간에서 공간으로

u       인간은 어떤 균형 속에서 사는 것 같다. 과학적 증거와 정신적 믿음 사이의 어디엔가에서 균형을 이루어가며 인생을 살아간다 (137).

u       데이비드 브린은 <시간의 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마치 같은 강줄기의 다른 부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흐름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흘러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급류에 휘말려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강기슭에 가까운 흐름을 따라 천천히 떠다니기도 한다. (…)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융통성 없고 독선적이었는가. (…) 이제는 이 거대한 강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찾고 싶다 (142).

u       만일 우리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다 (142).

u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편집 <픽션들>에 수록한 단편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함께 존재할 수 없어요. 어떤 시간들에는 당신은 존재하고 나는 존재하지 않아요. 또 다른 시간들에는 나는 존재하나 당신은 존재하지 않아요. 또 다른 경우의 시간에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존재하지 않아요 (142).”

u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과 같다. “는 존재하나 당신이 없거나 당신은 존재하나 는 없다 (143).

u       어쩌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우리는 다른 시간대 속에 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143).

 

별과 인생

u       별과 관련하여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의 하나는 아마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일 것이다. 목동과 아름다운 스테파테트 아가씨그들은 모두 잠시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머물다 간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별들 중 가장 아름답고 밝은 별들일 것이다 (146).

u       사람들은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상력은 현실만큼 중요한 현실이다. …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창조는 상상력의 구현이다. 그리고 자연은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 중에서 별은 밤에 자기를 들여다보는 인간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직 상상력을 가진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명멸하는 그 곳 그 소우주에서 일어난 하염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146).

u       내 삶을 이대로 놓아 둘 수 없다. 그저 되는 대로 살다 다시 이 어리석음이 행성의 공전처럼 반복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아하여 여러 번 읽게 되는 책처럼 2 500만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오게 될 반복된 인생을 기다릴 수 있도록 내 인생은 아름다워져야 하는 것이다. 내 삶을 돌려놓아야 한다. 아름답고 다시 기다려지는 삶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생 또한 그 세상 속의 하나의 빛깔이 되는 것이다. 익어가며 달라지는 고운 빛이 되어가는 것이다 (149).

 

정동진, 환선굴과 백마횟집을 다녀오는데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u       하루는 긴 시간이다. 언제나 일상 속에서 가장 손쉽게 지나가 버리는, 그리하여 가장 짧은 시간 단위가 되어버린 하루는 사실 매우 긴 시간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느새 1년을 쓰게 되고 다시 1년을 보탠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몇 번 반복하여 늙고 만다. 하루가 짧으면 인생도 짧다. 좋은 하루를 자주 만들어 가질수록 인생도 그만큼 길고 풍요해진다. 기차가 따라 달리던 길게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산 인생은 그 주위에 풍부한 사색과 정감과 기억을 남긴다. 중복된 하루밖에 가지지 못할 때 우리는 펼쳐볼 자신의 삶을 가질 수 없다 (156).

 

고전과 고우영의 만화

u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누구나 읽었기를 바라지만 읽기는 싫은 책이라고 말했다. … 읽었어야 했던 것이지만 지금 이 나이에 읽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157).

u       그는 또한 아이들에게 쓰기를 권유했다. 무엇이든 마음에 차오르는 것이면 써보라고 격려했다. 작가의 펜은 쓸수록 날카로워지는 것이며, 경지에 이르면 바늘 끝과 같이 정교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항상 자신의 지적 한계를 넓혀 가도록 격려했다. 마치 산 위로 높이 오를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비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158).

u       상상력은 정신의 유연성 속에서 나온다. 정신적 자유로움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자신처럼 복종해 주기를 요구한다.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고 약한 자에게는 야비한 인간들의 대부분은 이 부류에 속한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권위주의자들은 머리가 나쁘다 (162).

u       한국 사회는 일제 36년간 이런 자들에게 시달렸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이런 자들의 계승자인 군부의 독재자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다. 그들의 해악 중 가장 커다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신적 경직성을 온 국민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162).

u       21세기는 상상력의 세기이다. 과학의 발달과 기술력의 증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개념화할 수 있고 따라서 현실화시킬 수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은 오직 상상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상상력은 힘이고 국가적 자산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잃은 것은 바로 이 상상력이다. 독재자 박정희는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금방 와 하고 추앙받는 사람이 돼 버렸다. 그가 물려준 지독한 독소, 바로 경직된 사고와 빈곤한 상상력이라는 극약에 중독된 소아병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63).

u       상상력이 없이 만화는 그려질 수 없다. 좋은 만화가 태부족인 것은 그 때문이다. … 좋은 만화 역시 오래 남는 고전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한 시대를 흔들고, 격랑과 폭풍 속으로 사람을 끌고 갈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163).

 

무협의 세계

u       나는 일에 지치거나 시간에 맞추어 무슨 일을 끝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면, 언제나 무협 소설이 보고 싶어진다 (165).

u       무협 소설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다 (166).

u       김용이 만든 여인들은 하나하나 모두 개성이 강하고 독특하다. 하나도 그저 그런 여인들이 없다. 그녀들 역시 남자들처럼 강호를 누비고 사랑하고 복수하고 원한을 품고 또 일가를 이룬다. 그녀들은 종속적이지 않다. 무술에서도 지지 않고 지혜에서는 모든 남자들을 오히려 능가한다. 그녀들은 수동적이지 않다. 그러면서 아름답다 (171).

u       무협소설은 어른들의 동화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에 지지 않는다. 기연의 도움을 받아 불굴의 투지로 영웅이 되고 여인의 사랑을 얻고 그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상황의 희생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현실적 스트레스로부터 끄집어내 준다.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 않는다. 쉽고 스피디하고 빨리 읽힌다.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어 잘 쉬게 만들어 준다 (172).

u       우리는 가끔 아주 한가하게 실리를 따짐 없이 시간의 낭비를 즐길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은 실용적인 것이 아니다. 바쁘다는 것이 늘 좋은 것도 아니다. 나는 바쁜 것이 싫다. 바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나를 바쁘게 몰아치는 것에 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숨도 쉬고, 오줌도 누고, 차도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마음이 바쁘면 안 된다 (172).

 

문화와 자유

u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별로 쓸 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174).

u       문화가 다르면 담배 맛이 달라지듯 삶도 달라진다 (175).

u       문화는 정신적 틀이다. 틀을 벗어나는 문제아들에 의해 문화의 영역은 넓어진다. 오염되기도 하고 고양되기도 한다. 짙어지기도 하고 구름처럼 옅게 흩어지기도 한다. 보수적인 나라는 틀을 유지하는 강철로 된 문화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 틀의 원형이 깨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들은 젊은이들에 의해 문화가 주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그 사회가 받아들이기에는 언제나 너무 급진적이다. 오래 전부터 끌고 내려온 유산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175).

u       그러나 진보적인 나라는 그 틀의 경계가 유연하다. 그들은 문화의 원천이 어디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 문화가 가장 번창한 곳이 바로 그 문화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그 문화에 대한 종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것에 남의 것을 더한다. 혹은 버린다. 그리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정신적 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언제나 지속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틀 자체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은 문화가 부드러운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76).

u       문화에 대한 정의는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다. 나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간단하고 명쾌한 것이 좋다. 그래서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가정을 좋아한다. 그것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장 간단한 것이 답이라는 가정이다. 나는 문화란 한 집단이 공유하는 삶의 방식이고 인생을 보는 시각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문화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다. 그러므로 집단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공유하는 문화의 내용은 달라진다 (177).

u       다양한 문화적 분류가 가능한 것은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177).

u       자연은 반문화적이다. 동양의 정신세계는 자연 친화적이다. 예컨대 불교도의 생활은 자연과 투쟁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연과 더불어 일체가 되고자 한다. 말하자면 반문화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 문화적 위기상황이 생겨났을 때 반문화는 권위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문화가 스스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한다. 비근한 예로 인간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때, 장자의 철학과 불교로부터 위안을 받는 이유가 이 곳에 있다 (178).

u       인간은 문화적이며 또 반문화적이다. 의식적이며 또한 무의식적이다. … 인간은 자연을 극복한 유일한 승리자이지만 또한 낙원에서 쫓겨난 유일한 패배자로서 돌아갈 곳을 잃은 방랑자이기도 하다 (178).

u       정신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용감해져야 한다. 낙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다양성 속에 개인은 많은 선택의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178).

u       그러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역시 살면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178).

u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사는 한 우리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관계와 의존이 단절된 곳에 진정한 자기 진인이 있는 것이다 (179).

u       무위라 함은 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 바로 존재하지 않음과 같다. 결국 임제가 말하는 무위란 시뻘건 고기 덩어리를 말한다. 불도 없고, 법도 없고, 수도 없고 증도 없다. 선은 궁극적으로 깨달음도 있어서는 안 되고 닦음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무오무수! (179).

u       삼천 배를 해도 오로지 아무개를 만나겠다는 세속적 일념이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 배를 해도 불심은 스치는 바람에도 실리는 법! 계율의 엄격이 나의 허세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악연을 더해 갈 뿐이다 (179).

u       T.S. 엘리엇은 56세 때 <사중주>라는 시를 썼다: (179)

n        나는 나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도 그릇된 사랑에 대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신앙이 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잇는 것

u       수동적이고 포용적이며 그래서 소극적인 것 같은 동양정신 속에서 임제는 다시 소리친다 : 사방에서 중놈들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나는 여기다 산 채로 묻어라 (180)

u       우리는 지금까지의 를 이 자리에 묻어야 한다. 신체적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바람 속에 지금의 를 육탈시켜야 한다. 그릇된 희망과 그릇된 사랑과 그릇된 기도와 신앙을 버리고 죽어야 한다. ‘를 여기다 산 채로 묻어라 (180).

 

u       종과 종 사이에서 가장 악의적인 것은 역시 사람이다 (184).

u       뱀의 상징성 중에서 가장 유용한 개념은 성장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다는 것이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뱀은 죽는다. 일생을 통해 여러 번의 허물 벗기를 통해 이들은 커 간다. 성장은 긍정적 변화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뱀들에게 탈피라는 변화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 탈피하지 못하면 죽고 마는 것이다. 뱀은 탈피를 생존의 비중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온갖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움의 상징이 되었다 (184).

 

상어, 가오리 그리고 말: 어떤 짧은 여행

u       말에게 말을 걸어 보아라. 그들은 알아 듣는다. 감정을 느끼고 이해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타기 전에 말의 이름을 먼저 알아두어 계속 불러주면 당신의 마음이 아주 편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말과 당신 사이의 거리가 없어지고, 따라서 말이 당신을 떨어뜨리고 뒷발로 찰지 모른다는 상상 대신, 말과 하나가 되어 초원을 달리고 있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188).

u       살아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무엇인가가 되어 간다. 깊어질 수 있다면 무엇이 되어도 좋다 (191).

u       그러나 몰입하지 못한다면 바보라 불려야 한다. 그것은 마치 다녀온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여행자와 같다.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되돌아온다면, 살지 않은 삶과 같다. 여행은 어딘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도착한 그 곳의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191).

u       깊고 자세함 속에 디테일이 있다. 디테일 속에 비로소 고유한 삶이 담길 수 있다.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저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깊이, 자신의 뱃속으로 침잠하여 들어가야 한다 (191).

u       우리는 그저 청중이나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음악회나 축구 경기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구경하는 증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은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면 슬픈 일이다. 인류를 위해 한순간의 빛조차 된 적이 없다면, ‘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삶의 길을 걸어오다가 에게 이르러,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매료되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었던 것인가? 미치지 못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192).

 

자유와 통제의 사이

u       싱가포르인들에게 개발이란 자연을 더욱 자연답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지역에 야행성 동물을 몰고 옴으로써 긴장과 모험이 있는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다. 철조망과 인위적 울타리 대신 언덕과 계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안전장치들로 이들을 서로 격리시켜 놓았다. 관람객들은 시계를 가리는 아무런 격리 구조물 없이 동물들을 볼 수 있다 (196).

u       싱가포르는 인위적인 도시다. … 그러나 또한 그들은 모든 인위의 뒤에 자연을 자연으로 놓아두고 더욱 자연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도 열심이었던 것 같다 (196).

u       그들은 완강하다. 그들은 엘리트 정부 관료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된 일괄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개방적이다. 그들의 사고가 매우 자유롭고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또 하나의 예가 바로 나이트 사파리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통제, 자연과 인위, 강력한 정부에 의한 통제 속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존중하는 그들은 극단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세계적인 노력에 의미 있는 예를 제공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197).

u       잔인하고 냉혹한 자유시장 경제체제와 전면적인 사회주의 체제, 지금 우리는 그 사이의 어딘가에 새로운 균형점을 만들어 낼 것을 요구받고 있다 (197).

u       복지국가는 한 때 인류가 향해 가는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국가 재정의 부담, 근로 의욕의 감소, 국가 경쟁력의 약화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관료 집단과 비판적인 시민사회 기능의 약화는 결국 유럽식 복지국가의 이상을 파괴해 가고 있다 (199).

u       중산층은 두 가지 중요한 요구를 가지고 있다. 우선 사회적으로 보다 많은 자유를 바란다. 성적 자유, 시민의 자유, 소비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종교 문제 등에 대해 보다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정부의 긴축 재정, 세율 인하, 복지부담의 축소 등을 요구한다. 중산층은 결국 자신들을 사회적 자유주의자이며 동시에 경제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해 가고 있는 것 같다 (199).

u       우리는 유럽이 향해 가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의 뿌리로부터 뻗어 나온 3의 길이 과연 이러한 중산층의 새로운 요구를 맞추어 갈 수 있을지 그 실천적 결과의 추이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사회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보수주의의 요구를 가지고 지식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중산층은 지금 정부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 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주기를 희망한다. 개인 역시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갈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199).

 

<4. 자기 혁명은 저항과의 싸움이다 필승의 방법>

저항의 극복 첫 번째 조건: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확신

u       루스벨트는 공황에 가장 합당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는 그것을 생존 전쟁이라고 불렀다 (202).

u       ‘Fry or Jump’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대안이 없었다.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만이 확실한 죽음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살았다 (202).

u       만일 우리가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면 시작하지 마라. 그래는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가 꼭 최상은 아니다. 싸움 자체가 장엄할 때도 있다 (202~3).

u       그러나 당신에게 힘이 있는데도 싸움에 진다는 것은 수치이다. …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쥐고 있는 개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은 변명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203).

u       당신이 스스로의 변화에 대하여 관대한 이유는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휴전과 휴식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에게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만한 여유가 없을 때 당신은 초조해질 것이다. 그 때가 기회이다. 당신도 그 싸움에 스스로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 싸움을 생존과의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당신은 스스로 변화할 준비가 비로소 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당신에게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 변화 전문가들은 그래서 즐겨 대안을 주지 말고 몰아붙일 것을 충고한다 (204).

u       변화에서의 승리 가능성은 생존의 문제로 접근할수록 높아진다. 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대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205).

u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205).

u       어떤 사람은 변화가 휩쓸고 지나갔는데도 무엇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 또 어떤 사람은 변화가 지나갈 길목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그들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205).

u       이름과 함께 개인의 역사는 시작된다 (206).

u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앞의 연락처로 당신을 찾아올 때, 당신만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사랑, 신뢰, 열정, 혹은 우정그런 고귀한 것들은 말고. 이런 것들은 명함에 써넣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때때로 표현되지 않은 채 (207).

u       지금 우리는 회사의 명함 말고 자신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인 명함을 만들어 보는 중이다. 비즈니스 카드는 표현할 수 있는 것만을 담아야 한다. 분명하고 명쾌해야 한다. 간혹 모호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모호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7).

u       회사의 명함 말고 당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개인 명함을 만들어 보는 이유는 이제 회사가 당신의 울타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7).

u       명함의 뒷면 백지 위로 다시 생각을 집중하라. … 무엇이든 자신있는 전문 분야를 적어 보라. 만일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적어 넣을 수 있다면 당신은 경제적으로 불안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당신이 어떤 일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라면 미래는 아주 밝다. 미래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생산수단, 즉 전문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8).

u       한국 사회는 특별나지 않은 그만그만한 평균적 인력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 평균적 삶을 사는 산업 사회의 인력을 만들어 왔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전문 분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209).

u       그러나 산업 사회는 이미 그 끝이 보이고 있다. 이미 미래는 오래 전에 와 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오래된 미래 속에 살고 있다. … 미래 사회는 시간의 체감률이 심한 사회이다. 변화의 방향 못지 않게 그 스피드 또한 우리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앨빈 토플러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9).

u       충성심을 대신하는 기업과 직원의 관계는 계약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정립되어 가고 있다. ‘한국형 연봉제라는 떨떠름한 이름으로 불리는 제도의 확산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대변한다. 나는 한국형 연봉제라는 말에 강한 반발을 느낀다. 사회과학이 발전하려면 그 개념이 명쾌해야 한다 (210).

u       한국형 연봉제는 연봉제가 아니다. 한국형 민주주의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니듯이 한국형 연봉제는 전혀 연봉제가 아니다. 연봉제는 적어도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210).

n        하나는 계약에 의해 유효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따라서 노동의 유연성이 매우 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n        또 다른 하나는 감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 한국의 경우에는 특별히 정한 경우가 아니면 법적으로 감봉이 가능하지 않게 되어 있다.

u       계약 관계는 앞으로 지식 사회의 공적인 관계소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조직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인 고용 관계에서부터 수평적이고 대등한 계약 관계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211).

u       지식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과 전문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나 실업 상태에 남아 있게 된다 (213).

u       개인 명함의 뒷면에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전문 분야가 없다는 것은 당신은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은 지식 사회를 맞이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회의 부를 나누어 가질 가장 강력한 생산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당신은 그러므로 지금 위험한 곳에 서 있다. 바로 생존의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213).

u       단순한 위로를 구하지 마라. 아무도 속지 않을 낙관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지 마라. … 반대로 사실을 받아 들이고, 대담한 변화를 모색하라 (213).

u       실업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가 아니다. 진정한 실업은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214).

u       저항을 이기고 자기 혁명에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스스로에게 위기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 이곳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분명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는 사람은 결코 떠날 수 없다 (214).

 

저항의 극복 두 번째 조건: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라

u       (링컨) 역시 위대해지기 전에는 나나 당신과 다르지 않았다 (215).

u       그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에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우리의 생각에 따라 행동했듯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의 과거와 비교할 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216).

u       매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하고 싶은 일이란 그 반대의 것이다. 바로 나는 정말 하고 싶어. 누가 말려도 하고 말 거야의 의미이다. 욕망처럼 커다란 자기 격려는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우리는 유일한 자기가 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다짐이 없이도, 우리를 늦게까지 깨어 있게 하고, 새벽에 일어나게 한다. 그 일을 위해서는 다른 일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것은 떠나 있으면 그리워지는 그런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216).

u       “… 하기 싫어도 해야만 겨우 먹고 사는데.” 얼마 전까지 이 말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 그러나 지금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217).

u       이것은 아이러니가 결코 아니다. 이미 와 있는 미래의 모습은 하기 싫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적은 사회이다. 반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회와 부가 주어질 것이다 (217).

u       인간의 정신적인 작업은 욕망이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면 몰입할 수 없다. 노예는 창조적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지시와 통제 그리고 자유를 판 대가로 밥이 주어질 뿐이다. 창조적일 이유도 없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노예에게는 언제나 주인이 있다. 그 주인의 이름은 상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포도청이라고 불리는 목구멍이기도 하다. … 무어라 불리던 그 주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218).

u       최고의 전문가는 자신의 내적 욕망을 따르는 사람이다. 전문가의 길은 학벌과 경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 가 있을 수 있다. 오직 바라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그는 그 일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에 기여한다 (218).

u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냥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웃으며 가는 것이다. 그것에 자신을 전부 내주어야 한다. 인생을 모두 걸어보는 것이다 (218).

u       변화는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갈 때 성공한다. 그것은 마음이 움직여 가는 대로 생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변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인생의 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 그 길이 자신이 가는 길임을 믿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해 가는 것이다. 점점 더 마음을 여는 것이다. 점점 더 스스로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점점 더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218).

u       자기 혁명을 위해 익숙한 과거와의 생존 전쟁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싸움에서 이겨내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에너지는 사랑함으로써 배가 된다. 사랑할수록 우리는 위대해진다. 변화는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시작하며, 에너지가 생겨날수록 자신의 마음에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마음을 열지 않고는 자신을 위해 춤출 수 없다 (219).

u       무용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포즈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이다. 우리는 춤추면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다. 오직 자신에게 열린 마음과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219).

u       변화에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는 것이다. 어려운 때에 자기를 믿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믿어주기를 바라지 마라. 스스로 믿어주어야 한다. 가장 무능력해 보일 때, 자신에게 말하라. ‘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욕망 깊숙한 곳에 있으며, 신이 가 태어날 때, ‘속에 심어 두었다는 것을 믿어라. 욕망은 바로 에너지이다. 지치지 않는 자연적 힘이다. 욕망을 따라 멀리 떠나라. 아주 멀리 가라. 당신만이 다다를 수 있는 그 끝으로 가라. 그리고 그 길이 의 길이었다고 말하라 (219~220).

 

저항의 극복 세 번째 조건: 시간을 쓰지 않으면 욕망은 그저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u       욕망은 밖으로 나오기를 싫어한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가장 매료되는 말이지만 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221).

u       욕망은 부패로 이어지는 탐욕이 아니다. 욕망은 그저 욕망일 뿐이다. 그것은 태양과 같아서 그저 그곳에서 불타고 있는 그런 것이다. … 그러나 태양이 없이는 지구도 존재할 수 없다. 욕망은 바로 그런 에너지이다. 죽을 때까지 고갈되지 않는 자연적 에너지이다. 욕망의 모습은 태양처럼 불길이 사방팔방으로 날름거리는 불덩어리와 같다 (222).

u       욕망은 또한 불덩어리 자체가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다. 우리가 무기력해질 때도 있고 매사가 귀찮을 때도 있는 것과 같다. … 그러나 비 오는 날에도 가려진 뒤편에 태양은 있다. 그것은 거기에 늘 존재한다 (222).

u       욕망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힘이다. … 신으로부터 받은 자연적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개인의 책임이다 (222).

u       우리가 자신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은 욕망이라는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말이다. 욕망의 특성은 시간적 일관성을 부여받지 못하면 형상화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222).

u       인생에서 이 커다란 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소중한 사람이거나 중요한 일들이다 (223).

u       그들에게 바다는 마지막 욕망이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는 듯이 살았다. 마지막 남은 시간을 모두 자신에게 주었다. … 그들은 바닷가에서 죽었다. 그들은 자신이 바라던 욕망 속에 묻혔다 (225).

u       시간을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존재 양태가 바로 각 개인의 삶이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인생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가며 사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만이 오직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에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라 (227).

u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분야의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명함에 전문가라고 찍어 가지고 다닌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좋아하지 않고서는 늘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일에 어울리는 재능을 가지지 않고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재능은 성취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227).

u       자신에게 시간을 내지 못하면 하고 싶은 욕망을 이룰 수 없다. 욕망은 오직 꿈과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227).

u       다른 사람을 베끼고 모방해야 한다. 대가들을 통째로 삼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토해 내야 한다. 개인적 체험과 깨달음을 자신의 체액 속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228).

u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없다면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바로 죽었다는 뜻이다.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말라.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228).

 

저항의 극복 네 번째 조건: 전면전의 첫 번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라 - 7일간의 개혁

u       싸움에는 승리가 필요하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무작정 시작하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장교하고 단호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229).

u       변화의 결과는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생활을 바꾸지 못한 변화는 실패한 변화이다. 하루를 이해하는 방법이 바뀌고 하루를 쓰는 방법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구이다. 하루라는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꿈은 꿈일 뿐이다. 현실의 매력은 그것이 가시적이며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구체성과 재생력에 있다 (229).

u       일상 속의 하루를 깨지 못하면 일상을 바꿀 수 없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일상의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 일상은 무엇인가? 반은 먹고 자는 것이다. 먹고 자는 것은 일상을 이루는 바탕이다 (230).

u       의식은 시간적으로 자유롭다. 우리의 의식 속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공존시킬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 (230).

u       의식은 또한 공간적으로 자유롭다. 의식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230).

u       인간의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232).

u       무엇인가를 배워 가면서 갑자기 모든 관련된 질문들이 한꺼번에 하나의 체계로 꿰맞추어지는 순간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신이 두고 있는 장기판의 룰 중의 하나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우리의 정신은 고양된다. ‘깨달음을 체험한 것이다 (233).

u       깨달음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불현듯 깨닫게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 오래도록 어떤 일에 몰두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갑작스런 선물일 뿐이다. 연습과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233).

u       자신을 바꾸게 될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고 가기 위해서는 자신에 몰두해 있어야 한다. 자신에 몰두하지 못하고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33).

u       한 분야에서 지평을 넓혀가는 개인을 많이 가질수록 그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회이다 (235).

u       자기 혁명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 습관의 한 부분을 공격해서 점령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복구할 수 없이 완전히 궤멸시키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싸움은 전면전이다 (235).

u       변화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먹이사슬 같은 연결성 때문이다. 견딜 때는 산과 같아야 한다. 견디다 보면 하루가 가고 1주일이 간다. 그러나 1주일이 갔다고 여기지 마라. 그저 또 하루가 지나간다고 생각하라. 성철 스님도 도를 닦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몇 년이 흐른다고 했다. 종종 우리의 의지는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다. 1주일을 참았으니 나도 참 괜찮은 인물이야,라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어렵다. 참으로 사소한 마음의 틈 사이로 실패는 기어든다(235).

u       자기와의 전면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쳐야 한다. 인간은 상징적인 동물이다. 정신은 살아 있기 위해 활력을 필요로 한다. 하루를 구성하고 있는 먹고 자는 일상에 강력한 충격을 줌으로써 첫 번째 서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하루를 구성하는 인프라스트럭처를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식이다 (235).

u       단식은 신체적으로 동물이 되어 자연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자연의 원리를 따른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체적으로 동물이다. 단식은 몸 속의 노폐물을 제거함으로써 동물적 기능을 도와준다 (236).

u       건강은 정신에서 나온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을 만들어 낸다. 병은 정신의 피폐에서 온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암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237).

u       1972, 시베리아의 오브 강변에 위치한 노보시비르스크 임상 실험 의학연구소에서는 놀라운 발견이 행해졌다. 이 연구소의 시추린은 세포들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특정한 전가기파 형태로 부호화하여, 서로 의사전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238).

u       하루를 중요한 시간 단위로 삼는 것은 매우 요긴한 생각이다. 하루는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다 (239).

u       24시간은 적당히 그리고 충분히 긴 시간이다. 마치 인생의 작은 축소판과 같다. 하루를 잘 살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239).

u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개인은 성공할 수 없다. 시간은 우리가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239).

u       포도 단식 요법에 대하여 요한나 브란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42).

n        의학이 실패한 곳에서 자연은 성공하고 있다. 오직 한 가지 질병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혈액 질환이다. 우리의 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호흡하는 것, 그리고 음식물에 따라 좌우된다. 생야채와 과일 식사 요법은 혈액의 질환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 중 가장 신속한 치료법은 포도요법이다. 포도는 다른 유효한 성분과 함께 어떤 소화과정도 거치지 않고 즉시 순환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242).

u       오염 속에서 키워 놓은 소나 돼지 혹은 닭은 양육되는 과정에서 많은 항생제를 고기 속에 포함하고 있다. 또 도살되는 과정에서 많은 항생제를 고기 속에 포함하고 있다. 도 도살되는 과정에서 공포에 질린 동물들이 화학적 작용을 통해 변질시켜 놓은 독소가 그대로 섭취되기도 한다 (247).

u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만약이라는 시 속에 나오듯 연장을 들고 다시 인생 앞에 서라 (259).

n        네 인생을 바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서도 / 낡은 연장을 집어들고 다시 세울 수 있다면 (…)

n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정말 어른이 되리라.

u       우리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동안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상황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267).

u       우리는 선택한다는 것보다는 선택당한다는 수동성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이 일회적이며 유일한 삶이라는 가정에 비추어 보면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268).

u       만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타고난 운명을 발견해야 한다. 나는 운명을 만들어 간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운명은 발견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 갈무리되어 있다. 욕망의 이름으로, 그리고 타고난 재능의 이름으로 날 때부터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우리의 욕망은 그러나 자라면서 사회와 문명의 틀 속에 다듬어지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우리도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게 되었다. 교육은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는 대신, 부족한 재능을 메워가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평준화되어 갔다. 자라면서 우리는 유일하고 특별나며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268).

u       사회가 만들어낸 가치에 대한 욕망, 즉 돈, 명예, 권력 등은 우리를 왜곡시킨다.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68).

u       우리는 충무공을 위인으로만 생각한다. 그를 살아 있는 한 개인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 하루라도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부패와 아첨과 파벌 속에서 자신을 버텨 올 수 있었겠는가? 충무공은 47세에야 겨우 벼슬다운 벼슬에 올랐다 (269).

u       훌륭한 개인이 아니고서 좋은 사회인이 될 수 없다. 그는 23 23전승의 신화를 만들었다. … 그를 가르친 것은 조선 사회였다.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 대부분이 하는 짓을 따라했다면 그는 타락했어야 한다. 세상이 그를 만들어 갔다면 그가 백의종군을 왜 했겠는가? 그는 자기 안에서 만난 자신을 따라 나선 것이다. 군무에 바쁜 속에서도 언제나 일기를 통해 자신과 만났다. 조선의 역사가 수치를 견디는 것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념을 만들고 개념은 인간의 삶에 의해 구체화된다 (270).

u       프리드리히 니체는 한 민족이 어떤 위인을 낳았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위인을 인식하고 존경하는 양식에 따라 그 민족의 특유성이 결정된다는 말은 지당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충무공의 일기는 400여년 전에 살았던 한 위대한 개인의 내면 세계를 보게 해준다. … 한 인간의 삶이 참으로 장엄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271).

u       삶이 목구멍과 똥구멍 이상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라. 그리고 하늘이 그대에게 선물한 자신의 재능 목록을 꼼꼼히 기록하라. … 잠시 평범한 한 인간으로부터 어렸을 적의 자유로운 아이로 돌아가라. 많은 가능성 속에서 갈래길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길을 골라 가는 한 아이를 상상해 보라. 때때로 울고 있지만 한 길을 따라 애써 가고 있는 한 아이를 상상해 보라. 그게 당신이다.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남을 따라하지 마라. 시키는 대로 하지 마라 (272).

u       눈을 감고 자신이 일생을 바치고 싶은 관심 분야를 적어보라. 아직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앞으로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익혀 언젠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그런 분야를 찾아 적어보라. 지금 그 분야와 관련 있는 일에 종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당신의 욕망이 흐르는 곳을 따라 가보아라. 아주 멀리 가보아라. 당신의 재능이 부르는 곳으로 가라. 취미와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72).

u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변화를 자신의 친구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의 하나이다.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이 바로 성공과 행복의 첩경이다. 개인 명함을 만들어 본 이유는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줄 수 있고, 그 보상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273).

u       다른 사람들이 돈벌이가 된다고 말하는 것들은 언제나 가변적이다. … 시장이 새롭게 창출되지 않는 한,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몫이 줄어드는 것은 시장 경제의 분명한 원리이다 (273).

u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마라. 그저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따라 걷는 것에 불과하다. 대열 속에 낀다는 것은 평준화된 사회에서는 안심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막 살아가기 시작한 지식 사회에서는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공유하고 있는 특별하지 못한 노동력에 불과한 것이다 (273).

u       나는 변화 관리라는 분야에서만 16년을 일해 왔다. 외로운 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나가는 분야에서 승승장구할 때, 나는 한 구석에서 일하고 있었다 (274).

u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환영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면 저항하게 되어 있다. … 기업 내의 변화 전문가가 이들의 저항을 이기고 변화에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오직 최고 경영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 주체의 힘을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변화 경영 전문가들은 이 힘에 기술적인 지원을 더하는 것이다. 이 분야가 주로 외부 컨설턴트들의 영역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75).

u       요즈음 나는 조직 문화의 재창조라는 해묵은 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76).

u       인간의 정신적 작업이 주도하는 사회로 우리는 이행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지식 사회에서 인간이 서로 관계하는 전형적인 관계 패턴이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간 관계, 그리고 새로운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조직의 문화는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의 변화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조직 문화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과제는 개인의 자기 혁명이다. 개인이 하나의 핵이 되지 못할 때, 네트워크는 작동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인을 일으키지 못하고는 네트워크에 기초한 조직 문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276).

u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다. 10년쯤 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혹시 이 분야에 아주 가치 있는 기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 20년쯤 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분야에 들어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가다가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잠시 경이로움을 줄 수 있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는 하나의 일가를 이루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34년의 몰입이라…. 그거 괜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277).

u       관심 분야가 전문 분야로 바뀌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심지어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시작한 사람은 소요된 시간만큼 자신의 비전에 접근하게 된다. 지금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목줄을 다른 사람이 쥐게 하는 수치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279).

u       변화경영이라는 것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연구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으며, 사회와 기업을 위해서도 매우 실용적 가치를 제공하는 요긴한 학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대학의 경영학과가 관심을 가지고 체계적 연구를 하기 시작해야 할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은 나를 발견하고 내 운명을 느껴가는 시간이다. 나에게 시간을 씀으로써 비로소 나는 좀 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280).

u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재능을 되찾아오는 여행을 떠나 있었다. 어른이 되어 떠난 아주드문 모험이었다. 과감하게 일상의 먹고 자는 패턴에 도전했었다. 우리가 아주 조금 먹고도 씩씩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81).

u       인간은 정신이 죽으면 끝장이다. 자신의 욕망과 재능을 잘 들여다봄에 따라 우리가 세상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세상은다양한 색깔로 채색된 컬러플한 일상이다 (281).

u       자발적으로 세상을 이루는 거의 무한정한 여러 색채 중에서 하나의 색깔이 되어 이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운 색깔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281).

u       당신이 되고 싶은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다. 스스로 좋아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그리고 무엇을 하든 행복한 사람만이 사회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282).

 

저항의 극복 다섯 번째 조건: 끊임없이 대화하라

u       구조조정 과정 중에서 좀 더 좋은 방법을 강구했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 중에서 한 가지만을 들라고 주문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압도적으로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힘들었고 비효율적이었다고 토로했다 (287).

u       자기 혁명을 실천하는 개인에게도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어쩌면 자기 암시와 같은 것이다 (287).

u       동양의 경우 상상력을 통한 자기 암시는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칼 구스타프 융에 이르러 이것을 심적 에너지라는 보편적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288).

u       마르셀 보겔은 인간의 사랑 혹은 무관심이 키우는 식물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288).

u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 하나도 외부와 교신을 하고, 우호적인 이웃에 의해 생명을 연장한다. 자기 암시와 정신적 에너지에 의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몇 그루의 나무를 베란다에서 키우면서, 그 나무들을 가장 잘 키우는 방법은 그것들을 예뻐해 주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288).

u       마르셀 보겔은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89).

n        식물이 인간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식물은 우주에 뿌리를 둔 감정이 있는 생명체입니다. … 나는 그들이 인간의 감정을 알 수 있는 대단히 예민한 생명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유익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 에너지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에너지를 받았다가 다시 식물에게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289).

u       그리고 보겔은 그 예로 미국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기운이 떨어지면 숲 속으로 들어가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나무로부터 힘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289).

u       인간의 건강은 매우 정신적이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병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 의사가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바로 스스로 치료 의지를 갖지 않는 사람이다. 변화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많은 심적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 변화하고 싶다면 자신과 마주서야 한다. 그리고 자기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에 모든 마음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작은 깨달음들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커다란 깨달음 하나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매일 매일의 일기일 수도 있다 (290).

u       충무공의 일기는 국보 제 76호이다. 이 일기 속에는 모든 일상이 그대로 들어 있다. 그는 이 일기를 우리들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였고 세상을 보는 그의 시각이었다. 그래서 그 속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솔직히 들어 있다. 그가 여러 번의 파직과 백의종군, 그리고 국문을 받는 동안 이 일기가 없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90).

u       1597년 정유년 5 6일의 일기는 차마 볼 수가 없다 (간첩 요시라를 동원한 일본의 계략과 원균의 모함에 빠진 조선 조정이 공을 함거에 실어 서울로 압송한 것이 이 해 2 26일이었다. 그리고 4 1일에 석방하였다). …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무치고 슬픈 마음에, 눈물은 엉기어 피가 되었건만 아득한 저 하늘은 어찌 내 사정을 살펴주지 않는고. 왜 빨리 죽지 않는가라고 적고 있다. 공에게 만일 일기가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292).

u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라. 당신이 왜 변화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 슬픔이 있다면 적어라. 또 기쁨이 있다면 그것도 놓치지 마라. 바라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한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아라. 후회가 있고 통한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원망이 있고 억울한 것이 또한 인생이다. 그러나 도움이 있고 정이 있고 애정이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늘 자신이 유일무이한 삶을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마음이 깨어 있는 한, 그리고 처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저항에 굴복할 수 없다. 욕망이 흐르는 대로 마음의 길을 따라 껍데기를 벗고 그렇게 가라 (292).

 

<이 책을 마무리하며>

u       특색이 있어야 해요. … 노래는 음표가 아닙니다. 느낌이에요. 칼로 찌르는 느낌이 나와야 해요. … 나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모든 것을 주었다는 것이 예술입니다.  사람들은 무관심해서 문제예요. 언제나 디테일이 결여되어 있어요. … 가수란 작곡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르디와 셰익스피어와 직선적 끝이 서로 닿아 있다는 말입니다. … 예술은 협동입니다. 협동과 지배예요. … 노래를 부를 때 상상을 해야 해요. 그가 되어야 되고 그녀가 되어야 합니다. … 그 느낌이 와야 해요. 느낌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분노밖에 줄 수 없습니다. … 등장이 중요해요. 퇴장도 그렇고. 그 사이에 무대가 있고 예술이 있어요.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294).

u       그녀는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고 더듬는 적도 없었다. 준비와 몰입의 무서운 점이다 (295).

u       칼라스의 말처럼, 오페라가 없어도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예술가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좋은 예술가들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왔다.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일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당신의 인생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생을 살며, 누군가가 당신이 함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해 준다면,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다 (295).

u       우리에게는 지금 자신감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당신이 아직 학생이라면, 용맹정진하는 선사들이 그러하듯, 선생의 전부를 삼키고 다시 게워내야 한다. 당신이 지금 직장인이라면, 경영자와 상사의 호의를 구걸하지 마라. 허리를 펴고 당신의 등뼈로 서라. 당신은 직장 속에서 전문적인 1인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가 빨리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미 직장을 잃어버렸다면, 지금이 바로 그 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실업이란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업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함으로써 자유롭게 종속될 수 있다. 그 일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웃고 울 수 있다. 인생을 거는 것이다 (296).

u       우리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미쳐야 한다. 적어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미쳐야 한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분야를 떠나야 한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정신 나게 하는 말이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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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10.01.05 03:02:53 *.12.20.43
데이비드 호킨스의 <내부 자재력과 외부로부터의 억지력>이 <의식혁명>이구나. 이 책 사 놓고 못 읽고 있었는데. 하하~ 친절한 수희향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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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0.01.05 08:11:19 *.140.110.157
여전히 나의 인용문을 읽고 있다니 너도 참 대단타!
데이비드 호킨스 찾아봤는데, 나중에 카프라와 함께 읽으면 아주 좋을 저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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