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書元
  • 조회 수 4162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1월 17일 21시 27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박경철은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외과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서울과 대전의 종합병원에서 외과전문의로 근무하기도 했던 정통 의사이다. 또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주식 투자 전문가이기도 하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인기를 얻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같은 전방위적인 역량의 바탕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이에대해 그는 ‘어릴 때 반강제적으로 서당에 끌려가 사자소학(四字小學)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웠다. 어릴 때의 한문 공부가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같은 바탕아래 그만의 집중력과 끈기로서 주전공인 의학외 여러분야에 관심을 보인끝에 위와같이 타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직 의사라는 닉네임아래 경제전문가라는 평을 받고있기도 하다. 증권가에서도 그만큼 풍부한 인문학적 안목과 시장에 대한 통찰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안목과 필력은 이미 유명하다. 그가 진행하는 방송이나 강의, 칼럼은 수만 명의 골수팬을 양산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저자는 의사로서의 생활도, 경제전문가로서의 일도 모두 세상과 소통하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시절, 정부의 '빈곤층에 대한 진료제한 정책'에 18개 시민단체와 함께 반대투쟁을 벌였다. 이 시절에 박경철은 ‘병원을 팔아서라도 극빈자에게선 진료비를 받지 말자’는 주장을 하여 의사협회의 일부로부터 '좌파세력의 주구', '트로이의 목마'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성분명 처방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입장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들로부터 의사협회 대변인이 되니 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복제 약을 쓸 우려가 있게 되는데, 이것의 안정성이 문제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대 성명은 본인의 소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의사협회 내부 갈등으로 박경철은 2007년 10월 1일 대변인 자리에서 3개월 만에 사퇴하였다.

 

저서로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2005),’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2007)‘,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2006)‘, ’만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2007)‘,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 통찰편(2008)‘,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2 : 분석편(2008)‘가 있다.

현재는 친구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약속대로 40세가 되던 해에 낙향해서 지금은 경북 안동에서 신세계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의사짓을 제대로 한다는 일

“평생에 걸쳐 나 때문에 죽은 환자가 한 명이라면, 나 때문에 산 환자가 백명쯤 되어야 그래도 의사짓 제대로 했다고 할 만하다.”(p11)

 

2. 고귀한 희생

사람은 대개 일생 동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서 얼굴에 그에 맞는 나이테가 그려지게 된다.(23)

 

3.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수술의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지만, 수술 후 회복한 환자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대부분 그 힘듦이 상쇄되곤 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피마르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리라.(50)

-. 그러고 보면 그녀에게 있어 나에 대한 기억은 반드시 잊어버려야만 하는 커다란 상처중 일부이기도 했던 셈이다.(59)

 

4.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 나는 입이 마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이 떨린다는 것은 외과 의사가 본능적으로 환자를 놓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 나를 추슬러야 한다. 외과의사가 무너지면 환자는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버리게 되는 것이다.(72)

-. 정말 울고 싶었다. 이미 환자는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고, 출혈량과 수혈량이 늘어나는 만큼 환자의 생명시계는 점점 0을 향해 째깍거리고 있었다.(73)

-. 만약 다른 의사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 역시 포기하라는 조언을 했을 테지만, 이 상황의 당사자가 된 이상 내게는 이 상황을 종료시킬 권한이 없었다.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곧 사망할 것이 분명한데,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이 환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한은 허락되어 있지 않았다.(74)

-. 수술대에서 물러난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무려 열세 시간 만에 수술대에서 물러났던 것이다.(75)

 

5. 참혹한, 너무도 참혹한

-. 나는 의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과정을 지면이 허락하는 한 많이 풀어놓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일반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이면 속에서 어떻게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87)

-. 나는 글을 쓸 때 특별히 미화하거나, 덧붙이는 과정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환자를 돌보는 일이니 더러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그 내용들을 감추거나 미화시킨다면 글을 쓰는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좀더 폭넓은 시각을 갖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찾아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87)

-.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은 다 경험하게 되는 곳이다.(88)

-. 아마 그 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끔찍했을 것이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평생을 겪어야 할 그 잔인하고 끔찍한 고통은 어떠했을까.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부디 가족이 해체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 더러는 이렇게 대책 없이 참혹하다는 것이다.(90)

 

6.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 고 오길영 상사 부인 유서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마음에만 담고 있자니 터져버릴 것 같아서.....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욕심 내본 게 없어요. 돈 따위 다 필요 없어요. 오늘을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세요. 내일은 아무도 모르거든요. 오늘만 죽을 힘을 다해 행복해지세요. 오늘만......”(92)

-. 유서를 남기고 떠나간 분들의 간절함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혹은 우리는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이 혹시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돌아보면 온 세상은 사랑인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힘들게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가는 것일까.(102)

 

7. 이 진짜 문둥이들아

나는 진우 씨를 보면서 인생을 배웠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당당하게 맞선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륜이 무너진 시대에 정말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당당하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을 향해 이렇게 소리친 것이다.

“그래 나는 문둥이 아들이다! 이 진짜 문둥이들아!”(154)

 

8. 비정한 모성

-.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자살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것은 자살을 선택해야 할 정도의 절망을 겪어보지 않는 자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세 치 혓바닥으로 그들 앞에서 삶과 죽음을 감히 이야기하기가 송구스럽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그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죄의식과 공범의식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163)

-. 세상에는 정말 삶에 찌들어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화살을 겨누지않는 분들이 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시련도 모두 세상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세상이 나를 죽였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쳐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서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166~167)

-. 생활에 찌들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병원비라는 올가미에 다시 걸리는 셈이다. 대개 자살자들은 전혀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데, 이분들은 병원에서 생명을 건지면 건지는 대로 다시 주변 사람들(입원 보증을 한 주위 분)이나 본인이 다시 어마어마한 치료비로 고통을 받는다. 돈이 없어 죽으려 한 사람이 병원비의 채무자가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되는 것이다.(168)

-.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며, 만약 내게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자문해보곤 한다. 희생 가능성이 젼혀 없는데, 단지 환자라는 이유로 중환자실에서 무리하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제적으로 쪼들려서 농약을 마신 40대 장애인이 홀어머니에게 엄청난 병원비를 빚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는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있을까? 이럴 때 의료의 윤리 기준은 무엇일까? 의사는 환자의 형편에 관계없이 무조건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형편을 따져 어차피 죽어가는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얼마 전 보라매병원에서 보호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뇌사 환자를 퇴원시킨 전공의 두 명이 살인죄로 기소되어 면허가 최소되었다. 이제 갓 가운을 입고 의사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환자들 앞에 섰던 젊은 의사가 살인죄라는 엄청난 죄를 지은 전과자로 낙인찍혀버린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이 아직 사회 경험이 적은 한 치기어린 검사의 객기 때문에 그렇게 났다고 생각한다. 그 검사는 환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또 남은 자와 떠나는 자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중환자실에 하염없이 누워 있는 뇌사자에게, 가족의 요청까지 거부하면서 마지막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소위 ‘치료행위’를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수천만 원의 병원비를 빚으로 안고 남겨지는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169~170)

 

9. 그녀의 미니스커트

-. 세상의 어떤 의사가 20대 후반 여성의 다리를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함부로 절단하겠는가. 하지만 차량이 전파되면서 환자만 후송된 탓에 신원 확인이 늦어져 수술 동의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환자는 쇼크 상태였고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복부 시티촬영상 복부의 출혈은 보이지 않았지만, 장파열이 확실한 상황에서 수술시간을 늦추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자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정형외과와 외과 팀은 다 같이 난감해하면서 선뜻 먼저 수술을 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전체 의료진이 연대 서명하고 수술을 감행하기로 했다.(179~180)

-. 자동차가 전파되고 다리가 압착손상을 입고 장파열이 된 환자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사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다. 그녀가 어느 순간 자신의 귀중한 다리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였다.(182)

-. 자신의 사회적 위치만큼이나 그녀의 절망도 컸을 것이다. 그녀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동의 없이 자신의 다리를 절단한 우리를 향해 끊임없는 원망을 쏟아냈고 교통사고를 일으킨 상대방 운전자를 저주했으며 자신의 처지를 심각하게 비관했다. 아울러 한동안 치료까지 완강하게 거부해서 의료진의 속을 엄청나게 태우기도 했다. 우리는 그녀가 이해되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녀는 무려 한 달간을 팬텀현상(유령현상)에 시달렸다. 인간에게 바디이미지란 무서운 것이다. 인간의 뇌의 기억 단위 안에 스스로의 바디이미지를 치밀하게 저장하고 있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일부가 사라져버리게 되어도 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182)

-. 그녀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태가 돋보이는 고운 왼쪽다리는 스커트 아래에서 길게 뻗어 땅을 디디고 있었지만, 사라진 오른쪽 다리는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사라진 오른쪽 다리가 다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착각이 될 정도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느꼈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름다운 숙녀의 미니스커트. 나는 그것으로 그녀가 드디어 가혹한 운명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이긴 것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어 그녀의 한쪽 다리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줄것이며, 어떤 강인한 자가 있어 그녀의 승리보다 더 단단한 승리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인주 씨의 미니스커트. 그것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나약해지고 무력하게 무너지고 마는 우리들에게 웅변보다 더 큰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188)

 

10. 우식이의 꿈

히포크라테스는 늘 내게 묻는 것 같다. “너는 왜 의사가 되었는가?”라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을 볼 때면 그 물음은 따끔한 회초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정말 왜 의사가 되었을까?(203)

 

11.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

-. 나는 육이오 전쟁 때 상처에서 구더기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직접 내 눈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2월의 날씨인데도 어떤 곤충이 알을 낳는 것인지, 무릎 주변이 썩어버린 정문이의 몸에는 가느다란 실지렁이 같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애벌레들이 수백 마리씩 들끓었다.(206)

-. 그렇게 반대하던 엄마와 아빠도, 주치의인 나도, 정형와과 스테프도,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아이를 방치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정문이의 몸에서 나는 그 지독한 악취와, 살을 파먹고 살아가는 그 끔찍한 구더기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207)

 

12. 아름다운 라뽀

-. 친구가 인턴 시절 흉부외과(심장혈관외과)를 지원한다고 주임교수방을 찾아갔을 때, 주임교수는 두 가지를 질문.

첫 번째는 집이 부자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클래스 커플이냐는 질문. 주임교수의 질문은 개업도 못하는 춥고 고달픈 흉부외과를 지원하면 일생 동안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견딜 자신이 있냐는 뜻. 즉 집안이 빵빵해서 돈 걱정을 안 해도 되거나 아내가 의사라서 다른 벌이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다시 해보라는 뜻이었다.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없이(?) 굶어 죽어도 심장수술은 배우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고행이 시작. 사실 흉뷰외과의 레지던트 생활은 가히 살인적.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량은 상상을 초월(212~213)

-. 의사와 환자가 서로 아름답게 교유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를 프랑스어로 ‘라뽀’라고 한다.(215)

 

13. 업장을 쌓는 일

-.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평생 동안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양은 일반인들의 백 배, 천 배, 아니 만 배쯤 된다고 생각. 그러다가 그런 것들에 너무 둔감해지거나 민감해지면, 스스로 의사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그래서 의사란 그러한 감정들에 적당히 느슨해지다가도 가끔은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당겨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것에 실패한 사람.(238)

-. 방송국에서도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그것이 누군가의 마지막 희망과 삶을 빼앗는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날 출연했던 대학 교수도 자신이 한 이야기가 연기緣起의 사슬이 되어 누군가의 생목숨을 빼앗을 것이라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뜻 없이 행한 일들, 이런 것들이 나도 모르게 연기의 사슬로 이어져 두고두고 업장을 쌓아나가는 일임을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240)

 

14. 밥벌이의 고통

그런 그에게 나와 동료들은 일을 그만둘 것을 권해야 했다. 간염이 동반된 간경화 환자가 과로를 한다는 것은 매일 독약을 들이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것은 네 식구더러 그대로 굶어 죽으라는 소리와 같은 이야기였다.(245)

 

15. 나는 지금 부끄럽다

-. 미진이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 후, 혈액배양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역시 포도상구균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일을 감당하기 벅찼다. 어린 생명을 앗아간 제도에 분노하고, 하루를 망설이면서 시간을 보낸 나의 비겁함에 분노하고, 사악한 세균에 분노했다.

그때부터 나는 의료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그때마다 의사로서의 소신과 제도에 복종해야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규범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결국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스스로 옷을 벗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당장 최소한 일주일에 한 명씩 내 환자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던 끔찍한 상황이 없어졌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피를 말리는 상황도 없다. 또 피고름이 묻은 속옷을 버리고 매일 속옷을 사 입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상황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우리 동기중 누군가는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오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당직실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방금 전에 눈을 감은 환자를 떠나보내고 밤하늘에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있거나, 천장으로 솟구치는 피를 덮어쓰면서 누군가의 배와 가슴, 그리고 머리를 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부끄럽다. 그들과 같이 밤을 새우지도 않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응급실 중환자실을 뛰어다니지도 않으면서 그냥 이렇게 하루종일 농담 같은 삶을 살고 있어서 그들에게 한없이 부끄럽다.(256~257)

 

16. 애달픈 내 딸아

-. 그렇게 말하는 마음이 어디 본심이겠는가. 더욱이 구실을 못하는 둘째 딸에게 오죽 한이 맺혔으면 저러시겠는가. 그동안 그 마음은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며, 그 속이 어디 한군데라도 성한 데가 있겠는가. 사람이 고통이 극한에 이르면 오히려 건조해진다는데, 최간호사의 어머니는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메말라버린듯했다. ...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일어서며 내게 인사까지 차리신다. 이러한 모습이 여기에 사는 분들의 특징. 좋은 일은 전부 남 탓이고, 나쁜 일은 전부 자기 탓인 것. 그런데 고통은 왜 이토록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비껴가지 못하는가.

최 간호사 어머니는 둘째 딸 손을 잡고 나가면서도 혼잣말처럼 중얼 거리신다.

“내 죽을 때 되마 야도 같이 죽어야지. 우짤 도리가 있니껴......”(278)

 

17. 행복의 총량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표정이 심각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병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찬 가을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근사한 카페에서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표정들이 대개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골목에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돼지 막창을 굽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282)

 

18. 봉정사 세 스님들

“차는 기분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차 마시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고 마셔야지, 차로 마음을 다스리려 들면 안 됩니다.”(309)

 

■ 에필로그 아침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며

나는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다만, 그것이 늘 불분명하기에 여러 가지 현상의 돋보기들을 잠시 빌려쓰고 있는 것뿐이다. 그나마 그것을 통해서야만 커튼 속에 가려진 세상의 속살을 겨우 살짝 훔쳐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내가 들고 있는 돋보기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을 통해 보이는 세상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주식투자를 하건, 강의를 하건, 책을 읽건, 혹은 책을 쓰건 그 어느 한 가지도 내 삶이 목적이 아닌데도 말이다.(315)

 

 

Ⅲ. ‘내가 저자라면’

 

책을 덮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병사가 전쟁터에서 총을 쏜다는 것과 의사가 수술대에서 집도를 하는것과 같다. 포기하면 안된다. 내가 포기하면 동료와 환자의 생명이 달아나는 것처럼, 글도 생명을 잃는다.’

 

박경철님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 지난주 토요일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시 자신이 써나갈 첫책에 대한 방향성 발표이후 실의에 빠진 나에게 1기 오병곤 선배님이 추천한 도서이다.

이책은 저자가 언급한대로 의업에 몸담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이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과정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배경으로 엮은 내용들이다. 그렇기에 웃음보다는 슬픔, 비애, 통탄, 안타까움 등의 가슴을 메이게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첵터의 한부분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께 손자를 잠시 맡겨두고 며느리가 시장에 다녀왔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낮에는 정상적으로 돌아오시곤 했던탓에 안심을 하였던 것인데, 돌아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곰국을 끓여 놓았으니 식기전에 먹으라’는 말을 건넨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며느리는 솥뚜껑을 들어 올리자마자 혼절을 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이 펄펄 긇는 가마솥에 삶겨져 있던 것이다.

 

금주 현장을 다니던중 거래처 한곳에서 위의 이야기를 꺼내놓자 듣고있던 주부 영업조직원들의 반응이 급변화 되었다. 어떤분은 ‘그얘기 진짜예요?’라는 질문을 하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내가 이얘기를 현장에서 했던 이유는 직업적인 의무감(?)에 투철했던 탓이다. 그만큼 치매가 무서운 병이며 그렇기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건강관리 및 건강식품 복용이 필수라는 멘트를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저자가 이런 용도로 책의 내용을 풀어 놓은건 아니겠지만, 내가 부르짖는 지론이 사람은 밥값을 하자였기에 충격적 요법으로 이사례를 꺼내놓았던 것이다. 끌끌끌. 나도 현실적 속물이 다되었나 보다.

아마도 선배님이 나에게 이책을 권유한 것은 감동적인 내용을 바탕으로한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글의 내용 방향이 이처럼 사람 냄새가 폴폴 묻어 나오는 것들을 추구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배워나간 것은 현상에 대한 똑같은 사실을 기재하면서도 저자가 그것을 어떻게 어떤식으로 어떤 문체에 의해 어떤 감정톤으로 문장을 꾸려가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독자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들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예제의 사실적 내용에 대한 저자의 감정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아마 그 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끔찍했을 것이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평생을 겪어야 할 그 잔인하고 끔찍한 고통은 어떠했을까.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부디 가족이 해체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 더러는 이렇게 대책 없이 참혹하다는 것이다.‘

 

이런 예제뿐만 아니라 그외 슬프고도 아름다운 많은 이야기들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다리를 절단한 20대 후반의 여자 이야기, 문둥이를 부모로둔 탓에 미감아라는 호칭을 듣지만 그럼에도 당당하게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사내의 이야기 등등.

저자는 의료정책의 문제성에서 갈등하며 의사는 환자의 형편에 관계없이 무조건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형편을 따져 어차피 죽어가는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라는 끝없는 고민들속에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고백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은 끝까지 의사로 남겠노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힘은 무엇일까? 박경철이라는 존재를 버티게 하는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히포크라테스가 ‘너는 왜 의사가 되었는가’라고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항상 고민하고, 그렇게 살기위해 인간적인 의사로 남기위한 노력을 그가 나날이 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에게도 이질문은 똑같이 통용이된다. 한때긴 하였지만 20대 중반시절 ‘너는 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화두의 답을 찾기위해 치열하게 고민을 했던 것처럼,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너는 왜 글을 쓰기를 원하는가’라는 화두일 것이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통해 이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은 다 경험하게 되는외과 의사가 수술중 손이 떨린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환자를 놓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란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다짐을 한다.

‘무엇보다 나를 추슬러야 한다. 외과의사가 무너지면 환자는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IP *.117.112.30

프로필 이미지
2010.01.17 23:41:30 *.168.23.196
인상적인 리뷰네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너는 왜 글을 쓰기를 원하는가’라는 화두일 것이다"
저 역시 그 생각을 이번 주 북리뷰 도서인 '롱테일 경제학'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답을 막연하게나마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좀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단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자면
오빠만이 세상에 내지를 수 있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어딘가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책을 낸다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돈을 버는 방법, 명성을 얻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긴다면 오빠의 그 질문의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해요. 가장 복잡할 땐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에 집중하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혁산
2010.01.18 06:50:40 *.126.231.229
승호형의 글도 그렇지만, 숙인의 코멘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누구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 즉 메시지가 있는데
다른 복잡한 것들이 엄습해 오니 자꾸 메시지가 움츠려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 달인들은 복잡한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달인이라고 생각되거든~
생각의 달인이 되려면 칠것 치고 뺄것 빼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인가봐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이자만 붙어! 시간만 가는거지.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2 3-27. 불임극복 식이요법 콩두 2015.03.02 4170
671 햄릿/리어왕/맥베드-윌리엄 셰익스피어 file 학이시습 2012.06.12 4171
670 48. 가끔은 제정신 – 허태균 file 미나 2012.03.26 4172
669 [39] 재무상담가를 위한 스토리 셀링 - 스콧 웨스트 거암 2009.02.08 4175
668 13. 난중일기 - 두번 읽기 file [2] 미나 2011.06.26 4177
667 [리뷰7] 열정과 기질_하워드 가드너 file 양경수 2011.05.17 4182
666 난중일기-이순신 [1] id: 깔리여신 2012.09.24 4190
665 40. 회복 탄력성_김주환 [1] [3] 미선 2012.01.29 4193
664 철학이야기 - 윌 듀란트 루미 2012.01.23 4196
663 #4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돌베개) 땟쑤나무 2014.03.17 4205
662 붓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file 용용^^ 2013.02.04 4206
661 [7]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10] 홍승완 2005.05.15 4207
660 장자 -장주- (김학주 역해) file 장재용 2012.12.17 4211
659 49.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알랭드 보통 file 미나 2012.04.03 4212
658 인지과학과 무의식 [3] 백산 2009.12.07 4214
657 햄릿, 리어왕, 맥베스 -William Shakespeare- file [1] [12] 장재용 2012.06.12 4214
656 시간의 심리학-사라노게이트 id: 깔리여신 2013.01.21 4220
655 일리아스 - 호메로스 콩두 2013.01.28 4222
654 2번째읽기 :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을유문화사 [2] 연주 2010.10.31 4223
653 제 3의 물결 -엘빈 토플러 이은미 2008.08.11 4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