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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1. 저자에 대하여
고혜경씨는 신화학 박사이며 꿈 분석가이다. 고혜경 박사는 1995년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환경단체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미국 창조영성대학원에서 열린 워크숍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세계꿈협회 초대회장인 제러미 테일러 교수(미국 버클리 신학대학원)를 만났고 미국 퍼시피카대학원(Pacifica Graduate Institute, Santa Barbara)에서 신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혜경씨는 제러미 테일러 교수의 수제자가 되어 꿈과 신화학을 공부했다. 단군신화를 여성학적 시각으로 다시 해석한 석사논문을 썼고, 남녀평등사회로 알려져있는 제주도를 제주 여신을 통해 재해석한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또한 미국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Institute of Culture and Creation Spirituality, Oakland)에서 영성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샌프란시스코 국제문화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고혜경 씨는 매일 꿈 일기를 적는다고 한다. 꿈의 배경과 등장인물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마음은 어땠는지를 상세히 기록한다. 꿈을 기록하다 보면 자신의 꿈에 대한 통찰이 생기고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반복되는 꿈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꿈을 분석하는 ‘꿈 분석가’이지만 꿈의 의미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녀는 꿈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통제가 안 되는 무의식 상태에서는 훨씬 큰 내가 존재합니다. 꿈은 내 안의 메시지를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자기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정확하게 나의 건강, 자아실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꿈이지요.”
그녀는 좋은 꿈, 나쁜 꿈이 따로 없다고 강조했다. 모든 꿈은 예지몽이기 때문에 단순한 꿈 풀이로 길흉화복을 점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 등장하는 꿈과 성관계를 하는 꿈은 둘 다 성장과 연결된 꿈이라고 한다. 어린아이일수록 죽는 꿈을 자주 꾸는데 이는 모두 성장과 변화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성관계를 하는 꿈은 ‘신과의 합일’을 뜻하며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꿈을 많이 꾼다고 한다.
현재 국내 대학과 대학원에서 꿈과 신화 강의를 하고, ‘신화와 꿈 연구회’ 회장으로 꿈 그룹투사작업과 워크숍 팀을 이끈다. 저서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가 있고, 번역서로 로버트 존슨의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제레미 테일러의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등이 있다.
Ⅱ.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대중매체, 민족주의, 운동 논리에 오염되어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고혜경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온전한 여성성’은 우리 여성들에게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삶의 무게에 찌들어버리는 여성성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힘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쟁취해 가는 여성성이 이 책의 곳곳에서 춤을 춘다. p.21
잘못된 남성성이 전 세계 곳곳에서 폭력, 테러, 전쟁을 일으키며 지구 어머니 가이아를 죽이는 지금, 온전한 여성성의 도래는 새로운 지구 문명을 여는 가이아의 코드가 될 것이다. p.22
'여성이란 이래야 한다‘는 집단의 태도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무의식 탐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역사적 문화적 필터로 걸러지지 않은 여성의 자생적인 힘과 진실을 알고 싶었다. 눈을 안으로 돌렸다. 꿈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여자로서 진실한 나의 힘과 아름다움을 맛보게 되었다. 그 느낌이 신비였다. p.25
진실한 답은 내면세계에서 찾을 수 있고, 진정한 힘은 자기 안에서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공허함 대신 이제는 문득문득 ‘참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삶이 자유롭고 충만하다. p.26
이 책은 상처와 치유에 관한 나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치유력을 믿기에, ‘내 손은 약손’을 노래하며 세상을 향해 이 이야기 책을 내민다. p.27
가부장을 치료하는 풍요로운 잔치 마당 : 심청
따라서 우리 개개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시간인 것이다. 옛날 옛적이 ‘영원한 현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들어도 새롭게 느끼는 비결이 아닐까? p.33
눈이 먼다는 표현은 빛이 투과되지 않는 완전한 어두움의 세계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빛이 없는 짙은 어두움은 우울함과 절망으로 채색된 마음의 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심 봉사는 눈이 심하게 먼,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빛이 투과하지 않는 어두움과 절망감을 대표하는 원형적 인물로 볼 수 있다. p.35
이 영화에서 거리의 악사가 겪어낸 무수한 세월과 인고의 나날들, 그리고 천 번 현을 끊을 만치의 필생의 노력이 바로 내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이다. 내면의 깊이를 탐색하는 데 결코 지름길이란 없으며, 심 봉사가 추구하는 인스턴트 해결책은 더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 p.41
자신의 내적인 감정과 차단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수천 년 남성성 우세의 역사 속에 살아왔고 그 동안 집단의 문화가 여성성의 특질인 필링의 가치를 중시하거나 격려하거나 존중하지 않았다. 우리 개개인과 집단 전체에 의해 여성성은 억압되고 무시되어 온 것이다. 원형적인 인물, 심 봉사가 여성성과 단절되어 암울함에 갖혀 있다는 이미지는 이야기가 묘사하는 극적으로 과장된 한 인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p.43
우리의 일상에서 남성성의 원리에 속하는 진보, 성장, 발전, 효율의 원리가 일방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대조적으로 여성성의 원리인 감정, 느낌, 무드, 의미, 가치는 훨씬 빈번하게 희생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로 물어볼 일이다. 목표달성, 혹은 생산량에 도달하기 위해 내면을 돌아보고 탐구하는 시간이 자주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는가? 외적인 가치를 주장할 때 내적인 감정들이 쉽게 묵살 당하지 않는가? 이런 공간, 이런 삶의 방식에서 청이의 희생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p.43
여성성이 억압되고 미발달한 공간은 심 봉사의 이미지처럼 외롭고 공허하고 암울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한 생명체로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과 차단된다. 삶의 경이나 신비는 찾아볼 수 없고 자연히 생명과 생기가 빠진 기계 같은 모습이 되어 간다. 현대에는 여성도 남성도 무의미, 무가치, 공허함을 느끼는 현대병에서 예외가 아니다. p.45
청이의 희생은 여성성이 억압된 가부장적인 남성 혹은 남성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성이 얼마나 쉽게 희생될 수 있고 또 취약한지 보여 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빠르게 달성하고 성취해야 하는 목표지향적인 사회일수록 개개인의 느낌이 쉽게 무시된다. 그러나 심청이의 이야기는 여성성이 무시된 결과 우리 각자가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심 봉사가 보여 주는 어두움, 외로움, 공허함임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p.47
삶이 충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저절로 풍겨 살맛이 전염되는 느낌이다. p.48
여자가 아름답다거나 여성적이라는 표현은 진정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표현이다. 그러나 여성 내면의 자생적인 힘이나 자부심, 자기 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문화가 이상적으로 그려낸 여성의 모델에 부합하려는 여성을 여자답다고 한다면 분명 이런 표현은 여성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p.49
희생은 선택권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더 큰 의식의 진화를 위해 작은 의식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을 희생이라 생각한다. p.49
모든 죽음은 단절의 아픔과 분해의 고통을 수반한다. 바다라는 생명의 원천이 심청에게는 무덤이고 또 동시에 자궁이다. 기존의 심청은 죽고 완전한 모습인 연꽃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p.51
먼저 죽음과 재탄생이라는 큰 변혁의 순간에 인당수에 분해되어 죽어가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선 내면화된 우울을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감정과 정서와 직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그저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준거나 가치 기준을 수용하고 따르려 한다. 그러나 일반적 준거나 도덕이 항상 개인의 성정이나 행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p. 51
자라면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이미지는 대부분 청이처럼 착하게 행동해야 착하고 바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야’라는 표현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주장이 이기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자신에게 진실하다면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요구를 거듭거듭 무시하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서 기쁨이 발견되지 않는 사람, 생명의 기운이 시들어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삶을 대한 소극적인 태도와 자신을 의심하는 태도는 분명 인당수에 분해되고 죽어야 한다. p.52
여성이 진정한 자신의 힘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곳이 내면세계이다. 오랫동안 남성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여성은 스스로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고 발견하지 못했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로 드러나는 현상 하나가 바로 우리 사회에 표출되고 있는 성형 붐과 같은 외모지상주의나 규격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들이 아닐까? p.54
연꽃의 미학은 진흙탕에 깊숙이 그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고 요동하는 물위로 줄기차게 생명의 힘을 솟아 올려 공기 위로 그 정제된 최고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데 있다. 혼탁한 진흙탕에 깊이 뿌리 내리지 않는 꽃의 아름다움은 감상적일 뿐이며, 세파와 연결되지 않는 천상적 숭고함은 추상적일 뿐이다. 연꽃은 흙과 물과 공기, 지하와 지상과 천상이라는 온 세상에 두루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의 결집이요, 완전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이다. p.55
연꽃으로 태어난 청이는 참 자신의 발견으로 자기 안에 만개한 생명의 힘을 마음껏 발하는, 기쁨과 신비로 충만한 완전한 여성의 탄생을 의미한다. p.55
청이 이야기는 현대인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삶의 우울함, 공허함, 외로움, 무의미, 무가치가 극단적인 남성성 위주 사회의 당연한 산물임을 보여 준다. 이런 오랜 눈멂에서 탈피하는 길은 청이라는 만개한 여성성을 다시 얼싸안는 이미지로 제공되었다. 바다 위로 떠오른 연꽃처럼 여성성을 꽃피워낼 때, 암울했던 회색의 땅은 잔치 마당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p.57
콩쥐팥쥐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에 접근할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보이고 더 깊은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p.63
여성성Ⅰ : 너름의 지혜
캐니언을 보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그랜드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랜드(광활함)는 사물을 보는 관점인데 이 관점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우리의 욕망들을 고요히 잠재운다. 발밑에 끝없이 펼쳐지는 진홍의 심연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내면의 리듬인 태곳적의 영성으로 고요히 몰입하게 되어 그저 응시하게만 되고 감동의 숨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마치 우리 존재는 너무나 미세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p.74
검은 소가 등장하게 만드는 콩쥐의 직접적인 행위는 통곡이다. 너무도 막막하고 거머쥘 지푸라기 하나 없이, 망망대해에 돛도 노도 없이 버려졌을 때, 뭇 생명 안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생존의 오열이었을 것이다. 굳이 종교적인 언어를 붙이자면 완전한 내맡김, 순수한 열림, 회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75
소의 등장을 기존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질 때 수천 년 굳게 질러 놓았던 빗장이 열리듯 심연의 내면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해석한다. p.75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고 산산이 부서지는 죽음의 모험을 강행하면서 자기의 의식세계를 넓혀 가는, 용감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고자 한다. 콩쥐는 이 광활한 밭을 가는 과제를 통과하면서 검은 소가 상징하는 비옥하고 풍요로운 대지의 어머니의 힘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p.76
여성성Ⅱ : 깊음의 지혜
물은 뭇 생명의 원천이다. 예로부터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안에 물을 간직하고 보존하는 역할은 여성의 관할이었다. 생명의 신비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여성이 생명의 원천수를 관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 생각된다. p.76
콩쥐의 두 번째 과제인 깊이로의 탐구는 죽음의 세계를 포함하는 깊이를 말한다. 두꺼비가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듯, 달이 이지러져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듯, 내면의 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죽음의 세계, 어두움의 세계, 지하의 세계로 들어간다(이 세계를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로 표현한다. 거듭되는 죽음을 통하여 견고한 자아의 틀을 깨고 넓혀 나가, 점점 더 본질적인 자기를 찾아 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 아닐까? p.80
여성성Ⅲ : 분별의 지혜
시야를 넓히고 내면 탐구를 하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혼자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결국 소중한 친구들과 수많은 스승들, 귀한 책들이 과정에 함께 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p.83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어느 날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오월의 신록이 드러내는 유혹처럼, 혀끝으로 전해지는 달콤한 꿀처럼, 재잘대며 울려 퍼지는 참새들의 노래처럼 온 숲 가득 사랑의 에너지가 전파되고 전염된다. 이런 가벼움은 설레는 유혹이고 생명의 본질적인 힘이다. p.84
참새의 가벼움이 두꺼비의 무거움 다음에 등장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가벼움은 달콤함과 여유로움으로 연결되지만 신중하지 않은 가벼움은 경박할 수 있다. p.85
옛이야기에서는 이런 완성된 여성이 완성된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공식적인 결말처럼 되어 있다. 서양 이야기에 나오는 왕이나 왕자, 우리 이야기의 원님, 또는 임금이 다 인간으로서의 완성 혹은 신적인 힘을 지닌 최고 의식의 단계에 이른 남성을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결혼은 최고의 여성과 최고의 남성이 이루는 완전한 결합을 뜻한다. p.86
신발은 사람과 땅을 연결해 준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과 충족감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검은 소가 준 신이 콩쥐의 발을 떠나서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검은 소와 두꺼비와 참새를 만났던 세계뿐 아니라 집안일로 거칠어진 손, 남루한 옷차림, 부엌 바닥과 구정물, 계모와 팥쥐의 시기와 질시의 세계에도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두 세계 모두 콩쥐의 의식에 구체적인 실체로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깨어 있는 세계와 꿈의 세계,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 모두에 굳게 발을 딛을 수 있기에 콩쥐의 꽃신이 양쪽 세계에서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p.87
자기 내면에서 치유의 힘과 비밀을 발견하는 과정은 대단히 고독하다. 여성 영웅의 뼈를 깍는 고독은 남성 영웅의 불굴의 모험과 동일한 것이다. 콩쥐가 영웅의 영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갑자기 처지가 격하하여 부엌 바닥과 구정물로 떨어지는, 예기치 않은 시련이다. 해결 불가능한 시련을 겪어 가면서 자신의 진정한 힘을 발견해 가는 콩쥐의 여정은 특별한 운명을 지닌 여성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초대이다. p.88
콩쥐 이야기가 옛이야기 중에서도 특별히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누구나 삶의 시련 앞에 수백 번 깨어지면서 영혼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콩쥐란 영웅은 초인적인 힘이나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 남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불가능한 과제를 성취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남보다 많은 시련을 겪으며 더 깊이 상처받고 더 많은 갈등을 하면서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감싸 안고도 꿈이나 비전을 항하여 나아가는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p.89
원형적 여성 콩쥐의 이야기는 영웅으로의 여정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먼저 체험하고 도달했던 세계의 영성적 지도를 제시해 준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 자기실현에 도달하여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도록 하는 초대장이다. 물론 콩쥐의 초대에 응하느냐 아니냐는 여러분의 몫이다. p.89
해님 달님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성장통
신화와 의례가 살아 있는 원주민 종족들은 일생 동안 수차례 통과의례를 치른다. 통과의례안 삶과 죽음의 드라마다. 이들의 일생은 수많은 탄생이 거듭되는데, 매 죽음의 순간마다 기존 세게는 파괴되고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열린다. 그러므로 죽음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듭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p.94
야생의 땅에서 오두막은 곧 어머니의 보호막을 뜻한다. 어머니가 자녀의 심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심리적인 자궁이다. 보편적인 어머니의 역할이란 자녀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이 양육과 보호가 어머니 원형의 두 주요한 특징이며 세계의 어머니 여신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이기도 하다. p.96
트릭스터의 세계, 즉 호랑이의 세계는 선과 악으로 구분되기 이전의 태고, 원시적 심리 영역에 속한다. 호랑이는 의식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심리, 즉 야성의 영역에 속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이 야성, 야생, 자연, 처녀림, 원시란 표현은 현대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다. 이곳은 산업화나 기계화, 정복이나 번영, 개발로 표현되는 현대인의 자아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세계이다. 그러나 처녀림이나 불모의 사막, 그리고 사철 눈으로 덮인 고산준령은 고독과 모험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다. 자발적으로 문명을 등지고 이곳으로 찾아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p.105
여성이 영원한 어머니라는 말은 어떤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진정한 어머니란 자녀를 위한 어머니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양육하고 돌볼 줄 아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p.111
제대로 된 통과의례가 없어 너무 오래 부모와 자식이 연결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도 부모도 다음 단계로의 성장이 멈춰진 데서 기인하는 기형적인 가족 문화를 재고해 볼 때이다. p.112
자녀에게 어머니의 역할이 덜 중요해질 때는 여성으로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탐구를 위해 쏟아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의무에 묶여 미루어 두었던 자유로운 삶을 시작할 시기이다. 아름다움과 경이와 신비를 향한 삶의 여정은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진정으로 성숙한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p.113
나무는 물이나 불만큼 중요한 종교의 상징으로, 지하 세계로부터 자양분을 힘차게 빨아올려 줄기와 잎을 풍성하게 꽃피우고 그 생명의 힘을 하늘로 뿜어내는 왕성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리고 지하, 지상, 하늘이라는 세 세계를 두루 점유하여 모든 세상을 연결하는 대상이며 지상에서 한 지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는 점에서 우주적 중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p.115
하나는 생명의 줄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줄이다. p.116
평생 자신의 소명을 찾아 헤매는 것이 문명화된 사회를 사는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이미 특별한 소명을 부여받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각자의 소명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실 우리로서는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을 원시인 혹은 미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무지하고 얼마나 편견이 강한지 고백하는 것이다. p.117
나무꾼과 선녀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여성들이 결혼을 둘러싸고 가장 빈번하게 고민하는, ‘친밀한 관계’와 ‘개인의 자유’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감정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 가능한지 숙고해 보려 한다. p.125
남성의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여성 아니마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들이 한결같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모의 소유자들이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아름다움은 마력을 지니고 있어서 한 번 보고 반하기도 하고 천상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p.127
건강한 남녀관계란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여성과 남성을 인식하고, 그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사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p.130
이런 상태로 장기간 머문 여성은 결국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깊은 내면을 삶의 동반자와 나눌 수 없게 되어 건강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p.134
자기 탐구에 게으르지 않은 깊은 영혼의 소유자들이 형성하는 관계는 아름답다. 개인의 영혼이 자유로울수록 친밀감도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p.144
공주와 바보이반
영원한 처녀가 되는 예술
두 대극적인 요소인 천상의 숭고함과 땅적인 비옥함, 성과 속, 야성과 문명, 영과 육이 한 몸에 통합된 여신이 아프로디테이다. p.168
'아름다움이 진실이다‘라는 워즈워드의 시구처럼 내게도 가장 소중한 진실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삶이 진실하고, 진실한 사람은 아름답다. 삶이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드러내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p.173
연이와 버들 소년
계모의 주술에서 벗어나라
흔히 우리는 질투에 ‘사랑하기에’라는 변명을 붙인다. 그러나 질투는 사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힘의 추구에서 비롯된다. 힘을 추구하는 관계란 상대를 통제하고 지배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흔히들 질투를 사랑의 필요악처럼 다루지만 엄밀히 말해서 힘과 사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p.197
“버들 버들 버들아”를 되뇌어 보자. 열려진 문 안으로 내가 진정으로 만나고 이해하고 발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면의 세계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p.201
Ⅲ. 내가 저자라면
고혜경의 ‘왜 선녀는 나무꾼을 떠났을까’는 다양한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심청이, 콩쥐와 팥쥐, 해님과 달님, 선녀, 무서운 계모, 그리고 호랑이가 잡아먹은 어머니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은 오랫동안 긍정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못해 왔다. 남성성 중심의 사회 안에서 우리의 여성성은 상처 입고 우리 안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 왔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침묵해 온 여성성을 우리의 옛이야기를 가지고 시공간을 넘어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통해 여성성을 재발견하고 있다. 심청, 콩쥐팥쥐, 해님달님, 나무꾼과 선녀, 공주와 바보 이반, 연이와 버들 소년, 머리 아홉 달린 괴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일곱 가지 옛이야기들을 통해 여성성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여성과 남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상징적-심리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원형을 통해서 작품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또한 작가 주변의 이야기와 더불어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은 옛이야기의 원형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서문에 “나는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긍심을 길러 가려는 노력의 연장으로 이 책을 쓴다.”라고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는 옛이야기를 통해 자신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옛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고, 통과의례의 한 가운데에서 아픔을 경험하며, 주인공과 같이 극복함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옛이야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결국 발견한 것은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의 태곳적 여성성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현대 사회에 아름다운 여성과 남성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는 황금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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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에드워드 윌슨 ![]() | 희산 | 2010.01.25 | 5850 |
2230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 - 박경철 [3] | 書元 | 2010.01.24 | 4168 |
2229 | 스무살 여행,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2] | 백산 | 2010.01.24 | 5829 |
2228 | 북리뷰 40 : 죽음 앞의 인간 - 필립 아리에스 [1] | 범해 좌경숙 | 2010.01.24 | 6139 |
2227 | 내 인생의 첫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 숙인 | 2010.01.23 | 2911 |
2226 | 내 인생의 처 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 혜향 | 2010.01.19 | 3301 |
2225 | 내 인생의 첫 책쓰기 -오병곤,홍승완 | 정야 | 2010.01.19 | 2884 |
2224 |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 제임스 맥클렐란 3세 & 해럴드 도른 ![]() | 희산 | 2010.01.18 | 6935 |
2223 |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인용문 | 수희향 | 2010.01.18 | 2733 |
2222 |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2] | 수희향 | 2010.01.18 | 3063 |
2221 | 신화와 인생 | 효인 | 2010.01.18 | 2993 |
2220 |
롱테일 경제학 - 크리스 앤더슨 ![]() | 숙인 | 2010.01.17 | 4409 |
2219 |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 [2] [1] | 백산 | 2010.01.17 | 4839 |
2218 | 번 슈미트의 미학적 마케팅 [5] | 혁산 | 2010.01.17 | 5232 |
2217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박경철) [2] | 書元 | 2010.01.17 | 4468 |
2216 | 뼛속까지 내려가서 서라 - 나탈리 골드버그 | 혜향 | 2010.01.12 | 2650 |
2215 | 아니마와 아니무스 | 효인 | 2010.01.12 | 6662 |
2214 | '선비답게 산다는 것' - 안대회 | 희산 | 2010.01.12 | 4083 |
2213 | 동화 쓰기 특강 -임정진 [1] | 정야 | 2010.01.12 | 45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