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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일 11시 57분 등록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지음

마음산책

Ⅰ. 저자에 대하여

시인 김승희는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시를 쓴 한국의 시인 · 소설가이다.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70년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강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1979년 서강대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상의 시 《절벽》을 읽고 ‘인간이라는 모순과 인생이라는 절망을 자기 언어로 노래한다’는 것에 매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상과 니체의 실존적 고뇌에 대해 철학적 관심을 가졌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그림 속의 물》이 당선, 등단했다. 서강대학 국문학과 강사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한국학과 전임강사로 있다가 2001년 현재 서강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당선, 소설가로도 데뷔했으며 현재 시와 소설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첫 시집 《태양미사》(고려원, 1979)는 희랍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이국적 정취가 돋보이는데 현대인이 잃어버린 꿈을 그리스신화에 담긴 용기로써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혈육의 죽음을 본 그녀는 그 고통과 절망을 담아 《왼손을 위한 협주곡》(문학사상사, 1983)을 펴냈다. 이 시집에는 광기와 신들림, 죽음이 가득 차 있다.

1987년 펴낸 《미완성의 연가》는 이전의 주관적 경향에서 벗어나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문명을 비판했다. 《달걀 속의 생》(1989)은 차갑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기도를 담은 시집이다.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1992)도 자아성찰을 통해 기존의 제도와 질서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원초적인 여성상을 희구한 내용과 외국 체험에서 비롯된 이국적 정열을 담은 소설 《산타페로 가는 사람》(1997) 은 묵직하고 선이 굵으면서도 서정적이다.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으로 불리는 김승희는 동시대의 다른 여성 시인들과 달리 사변적 시나 페미니즘적 시를 쓰지 않았다. 그녀는 현실과 문명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 시를 썼으며, 제도와 인습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시적 아이러니를 통해 ‘당연과 물론의 세계’를 거부하는 진정한 인간성 해방을 노래했다. 그녀는 뜻밖의 낱말, 엉뚱한 표현, 당돌하고 거침없는 비유, 상상치 못했던 형상들을 통해 ‘꿈을 찾기 위한 현실과 절망에 도전’하는 여성 전사와도 같다.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지적이고 재치 있으며, 날카로운 현실 분석은 현대시사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1994년 이후 발표된 그녀의 소설도 이러한 시적 경향을 산문의 영역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그 밖의 저서로 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세계사, 1996), 산문집 《벼랑의 노래》(동문선, 1984), 《넝마로 만든 푸른 꽃》(세계사, 1990), 장편소설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열림원, 1999), 이상 평전 《제13의 아해도 위독하오》(문학세계, 1982) 등이 있다.


Ⅱ.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여성시에는 왜 이렇게 광기와 타나토스가 많은 것일까?

여성 문학은 소수문학이다. 여성문학은 탈주의 선(線)을 찾는 문학이다. 여성문학은 아버지의 이름에 구멍을 내는 문학이다. 구멍을 내고 또 그것을 꿰매기도 하는 이중적 문학이다. 여성문학은 가부장제 사회가 내미는 거울을 수납하지 않는 문학이다. p.6

그 거울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질서(상징계)가 여성들에게 부여한 젠더(Gender)를 해부하고 뒤집고 그것을 전유하여 전복시키기를 꿈꾸는 푸른 힘의 문학이다. p.7

웃음의 문학이며

하얀 젖의 문학이며

틈새를 내는 균열의 문학이며

혐오의 문학이며

자기가 ‘곰’으로 호명된 ‘호랑이’라는 것을 아는 지성의 문학이며

곰과 호랑이 사이에 있는 분열에 대한 고통을 발하는 신경증의 문학이며

그 둘 사이에 있는 금(禁)을 횡단하는 ‘가로지르기’의 문학이며 때로 좋은 유방의 문학이며

때로는 나쁜 유방의 문학이며

재생산을 위한 자궁의 문학이며

자기 쾌락적인 클리스토리스의 문학이며

낙태의 문학이며

싸움의 문학이며

도망치면서 생존하는 리좀(Rhizome, 포복성 줄기)의 문학이며

야간 비행의 문학이다. p.7-8

가부장제 사회(문화)가 제공하는 여성 정체성과 그 환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자아-영상의 허구와 ‘세계/나’ 사이의 틈새를 인식하고 ‘자의식의 갑작스러운 분열’(버지니아 울프)을 느끼며 거울과 상징 질서의 허구성을 꿰뚫어 보는가, 하는 ‘주체’의 문제가 여성적 문학과 여성주의적 문학의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8

도도한 남성중심주의 문학사에서 절대 주체가 ‘열지 말라’고 명했던 ‘여성주의’ 문학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그 이후 많은 젊은 여성 시인들이 열어왔고 지금도 계속 젊은 ‘판도라 여성들’이 주체와 형식으로서의 금제의 뚜껑을 열어오고 있다. p.9

호명되는 주체에의 거절, 즉 여성적 타자로부터 여성주의적 주체로의 전환적 인식을 선포한 선언적 작품. 아버지의 이름으로 형성된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여성은 어쩔 수 없는 변방이며 검은 변두리이며 비천한 존재이며 무이며 ‘더럽고 부적절한 존재’이며 메스꺼운 것들의 총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 p.18

부모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의 주요 부분을 부여받는 유교주의적 핏줄의 한 시니피앙이기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질서 바깥으로 이미 추방된 ‘어둠 · 악마 · 뱀 · 비천함’ 쪽으로의 이 현기증 나는 이동. p.18

'모든 아방가르드 문학은 상징계의 기호화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언어 속의 쥬이상스(Jouissance, 희열)의 흐름을 보여준다. 상징은 끝없이 코라(Khora, 오이디푸스 단계에 진입하기 이전의 영역, 남녀양성적인 것이 혼재하며 이질적인 모순의 충돌들이 들끊고 있는 잡종적 영역)를 억압하고 그것의 귀환을 막는데, 그래도 검은 코라는 간헐적으로나마 돌아온다. p.19

여성에 관하여

최승자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

새들의 고향은 거기.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새들이 최초의 알을 까고 나온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 있다.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p.20

'모태인 어머니의 몸을 부정하고 모태와의 경험적 관계에서 이탈하여 하늘로 올라가 사색하면서 세상을 초월하는 이데아에 대한 남성의 환타지를 밝혀낸다. 이 환타지를 통해 남성 주체는 태양처럼 중심적인 위치에 서서 대상을, 여성의 몸을 경멸하며 배제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p.21

그런데 자연, 물질, 세상으로부터 태양을 향해 수직적으로 비상하는 초월을 꿈꾸는 남성주체를 동굴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한다. 이 동굴이 환기하는 것은 여성 · 어머니의 몸(자궁)이다. p.21

출산하는 몸으로서 죽음과 재생의 드라마를 겪으며 여성의 계보를 발견하는 시.

남성중심 문화는 아버지/아들의 관계만을 중시 여김으로써 모계를 파괴하여 왔다. 그래서 어머니와 딸, 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이어지는 여성의 계보는 적대감과 분리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p.28

그러나 산방에서 산고를 겪으며 여성 화자는 ‘남근의 주술’에 걸려 있는 이 수직적 현실의 상징 질서를 떠나며 상징계 이전에 있는 ‘거울 단계’로 갔다가 그것을 또 깨고 (거울은 나르시스트적 환상의 원형, 자아의 허구를 만드는 마술 도구), 어머니와 외가쪽 여인들의 고대적 몸과 하나가 된다. ‘상징계의 기호화, 또는 아버지의 이름을 벗어나 어머니의 몸으로 돌아가기’의 욕망(크리스테바)이 표현의 예술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p.28

또 하나의 타이타닉 호

김혜순

내가 씻은 쌀은 도대체 몇 톤이나 돌까. 새벽에 일어나 쌀을 씻고, 식탁을 차리고, 다시 쌀을 씻고, 솥을 닦고, 숟가락을 닦고, 화장실을 닦고, 다시 쌀을 씻는다. 닭의 뱃속에 붙은 기름을 긁어내고, 쌀을 씻고, 생선의 내장을 꺼내고, 파를 다진다. 다시 쌀을 씻는다. 망망대해를 떠가는 배, ‘또 하나의 타이타닉’ 표 압력 밥솥, 과연 이것이 나의 항해인가.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우리 집에 정박한 한국식 압력 밥솥 ‘또 하나의 타이타닉 호’ 불쌍해라. 부엌을 벗어난 적이 없다. p.30

소설가 김지원의 작품 중에 저녁이 오면 밥상을 부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구절이 있었지. 노을이 내릴 무렵 밥솥을 들고 쌀을 씻는 여서들에게 밥솥의 무게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과 맞먹는 그런 침몰의 무게가 될 수도 있으리라. p.32

여성적 일상은 위대한 제로, 즉 결핍도 아니고 위대한 생산, 허여(許與)도 아니다. 뒷면이 없는 하나의 띠, 단지 빙빙 돌 뿐 안도 밖도, 출구도 입구도 없는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 무한히 꼬아지며 이어지고 있기에 탈출할 수도 없는, 가라앉기만 하는 이 회색 지대. p.32

아빠

실비아 플라스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p.37

파시스트적인 권력의 대명사 아버지. 물론 실제적 아버지와 상징적 아버지는 다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라는 구절만큼 한국 현대 여성시에 큰 영향을 미친 시구는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적 아버지에 의해 부정에서 솟구쳐 나온 이 절박한 비어의 발설은 중심 해체와 로고스 남근 중심주의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와 합쳐져 한국 여성시의 의식과 표현에 큰 변화를 미쳤다. 자신의 증오를 표현하는 용감성도. p.38

그것은 선/악, 나(자아)/그것(타자), 상/하, 남/녀라는 철저한 이분법에 기초한 (성서 중심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뱀처럼 어둠을 틈타서 그 경계를 넘어가는 언어이다. p.43

라캉은 사회적 언어(상징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위험성을 ‘비사회화된 채 정신병적이며 자폐증이 되고 만다’라고 지적한다. 한 어린아이, 즉 주체가 나/너 합일적인 꿈같은 ‘거울단계’를 지나 상징계에 진입하여 언어 체계를 획득하면서 자신을 규정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성, 젠더를 확고하게 부여받는데 그것을 통해 결국 ‘나’라는 자아의 허구를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캉조차도 ‘아버지의 이름 속에서 살기’에서만 건강을 본다. p.44

남근은 지배적 기표이며 그런 라캉의 언어관 속에서 여성성은 영원한 결여로 정의될 수 있을 뿐이다. 여성은 틈이며 침묵이며 비가시적이고 비청취적이며 무의식 속에 억압된 것이 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언어와 주체성이 형성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주체는 쪼개어지고 표현될 수 없는 상상계적인 것, 여성적인 것은 무의식 속에서 억업된다. 그곳에서부터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의 라캉에 대한 비판이 전개된다. p.44

그 억압된 것들을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기호계(The Semiotic), 기호적인 것, 코라’라고 부르면서 여성적인 것들은 기호적인 것 속에 남아 있으며 가부장적 담론 속에서 모순과 역설, 통사론적 골절상, 무의미한 횡성수설, 침묵의 지점에서 접근될 수 있다고 본다.

만일 상징적인 것이 아버지의 법이라면 기호적인 것, 코라는 그 안에서부터 질서를 부수는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시인의 언어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여성적인 것은 아주 가까운 것이라고 크리스테바는 본다. 따라서 여성들의 언어가 왜 마녀들의 언엉 가까운가, 하는 것을 크리스테바의 코라 기호학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적 읽기에서 아방가르드 남성 예술가와 여성들의 글쓰기는 차이를 내지 못한다는 흠도 있다. p.44-45

땅의 사람들 8

-어머니, 나의 어머니

고정희

그녀는 여성시의 영역을 드넓게 확장시켰으며 모든 여성현실을 담론화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치열한 노력을 바쳤다. ‘부친 통치’의 파워 리얼리티에 깊은 균열을 파놓은 아마조네스. p.47

사임당이 허난설헌에게

고정희

대저 일부일처체란 무엇이니까

여자를 소유로 보자는 내막이외다

정실부인이란 무엇이니까

소실과 첩을 엄중히 처단하잔 여자율법이외다

소실과 첩이란 무엇이니까

기둥서방 문화의 희생물이외다

무릇 남자의 성기 밑에

여자의 자궁을 예속시키자는

영원무궁한 음모이외다

그러므로 정실부인의 반열에 든 여자들은

여자가 여자 자신의 적이다. 이 말을

거의 선진적으로 깨우쳐

스스로 만든 장벽 넘어가지 않는다면

탄하노니

여자 절개의 무게 태산과 같고

여자 목숨의 무게 깃털과 같다 한들

오천년 피눈물이 부족하단 뜻이니까

저승 여자들이 줄지어 곡하외다 p.49-50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두 분 다 가부장제 안에서 생성된 어떤 ‘여성 신화’를 대표하는 여성들임에는 틀림없다. 신사임당은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최고의 여성으로 떠받드는 ‘모성 신화(이율곡의 어머니이면서 살아있는 작품을 남긴 여성 예술가)의 상징이며 허난설헌은 그 가부장제의 인사이더로 살 수밖에 없었던 당대 여성들의 질곡과 여성 자아의 뜨거운 분노, 희생물-자아로서의 고통들, 자유와 해방에 대한 한없는 비극적 갈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여성 신화‘의 상징이 되었다. p.51

난설헌은 유교주의적 결혼과 인습 안에 살았으면서도 그 위계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인사이드 아웃사이더’로서, 사임당에 비해 비극과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정희의 이 시에서 ‘여성 신화’의 상징인 사임당이 오히려 정실부인을 ‘기둥서방 문화의 희생물’이라 통렬하게 비판하며 ‘정실부인’ ‘현모양처’가 남성중심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p.51

Personal Computer

최영미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잔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업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꾾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꺽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테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철하게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빡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20세기 후반에 우리 모두는 키메라이자 기계와 유기체가 이론화되고 가공되어진 혼합물인 사이보그이다. 왜냐하면 사이보그가 우리에게 정치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영미의 저 놀라운 욕망 선언,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은 가부장 중심 시나리오 혹은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불평등한 정체성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남성/여성이라는 기표로서의 거짓 존재를 벗어나 ‘인간/동물의 혼합적 존재인 키메라가 혹은 기계/유기체의 혼합물인 사이보그가 되어 젠더간의 차이를 붕괴시키자’라는 처절한 외침을 연상시킨다. p.73

은여우

엄승화

아름다움이란 여성이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성 권력이라는 우악스런 담론이 있는가 하면, 엄승화 시인의 예민한 눈은 그것에서 부서지기 쉬운, 유약한, 파괴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서 있는 위험스러운 한 줌의 숙명을 읽어낸다.

'은여우‘는 아름답고도 영리한, 신비롭고도 외로운, 고결하면서도 피해입기 쉬운 매혹적인 어린 여성의 은유가 된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가까스로 ’땅위의 섬‘에 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하면서도 위험스런 존재. 안전지대는 주어지지 않는다. p.86

흰 백합꽃

이연주

이연주의 ‘흰 백합꽃’은 순결하고 어린 여성 육체의 상징이다. 이 시인은 여성 육체가 자본주의의 시장에서 한낱 푸줏간에 걸린 살코기와도 같은 물질임을 여러 차례 노래한 적이 있다. 성의 매매시장이 있고 낙태의 시장이 있으며 거기엔 낙태 전문의가 있고 늙은 독재자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은 다 남근 권력자에 의해 경영되는 것이다. p.90

어떤 사람들
준 조단

어떤 사람들은 나를 무시한다
왜냐하면 내가 비너스의 둔덕을 가졌기 때문에
남근이 아니고
말이
올바른 것으로 들리니
너에게? p.95

비너스의 언덕과 자궁이 여성 운명의 전부라고?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가? 준 조단은 그렇게 묻는다. p.97

립스틱과 매니큐어
신현림

가을에 슬픔으로 충만했으니

겨울엔 기쁨이 너를 원하므로

비누처럼 거품을 물고 즐거워하라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바꾸고

‘사랑을 할 거야’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열심히 꽃 바치고

해 지고 술 고프면

한 번쯤은 치사량에 가까운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다

왠만하면 좌석버스로 시내나 돌며

정신차리고 돌아와 밝은 방에서

책 읽는 게 최고의 희열

올 겨울엔 나도

빠랫줄에 간신히 매달린 흰 치마 같은

금욕의 처절함을 해제하고

이글이글한 정사를 치러볼 것이다 p.102

'립스틱과 매니큐어‘는 그런 인형의 성, 타자화된, 식민화된 섹슈얼리티, 계통발생론적(문화적)인 성의 차원을 부수고 ’이글이글한 정사를 치러볼‘ 개체발생론적인(개인적) ’창조적 주체-자아‘로 나아가려는 리비도적 에로티시즘의 환생물들이 된다. p.105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김선우

들짐승 날짐승들 꺼려할지 몰라

찹쌀가루 섞어주면 그네들 적당히 잡순 후에

나머진 바람에 실려 천 ․ 지 ․ 사 ․ 방 ․ 훨 ․ 훨

가볍게 날으고 싶다는 p.112

한평생 식구들을 ‘먹이는’ 존재였던 한 여자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제 들짐승, 날짐승들까지, 천지사방에 있는 자연계의 동식물까지 ‘먹여주는’ 거대한 어머니로 변신을 이루려는 욕망을 보여주는 텍스트. p.114

‘시루봉’은 죽음을 통해 자기 몸을 우주적 음식으로 변화시키려는 그녀의 변신 욕구의 환유적 이름이다. 우주적 음식이 되어 넓디넓은 우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부장적 선산이 거부되어야 하고 어머니는 ‘몸’아라는 집을 떠나야 한다. p.115

幻身의 고백

김소연

순정한 전통적 여성 자아에서 시작하여 점점 사랑의 실패가 진행될수록 정체성 분열을 보여주며 아니무스적 아마조네스가 헛것을 물리치며 제 속에서 도드라져 나오는 것. 여성 내면의 이중분열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무제는 자아의 이중분열을 표현하기 위해 이중초점화와 이중목소리를 내포하여 난해성을 만드는 텍스트의 솜씨에 그녀 시의 재미는 놓인다. p.145

햇빛 속에 호랑이

최정례

잠시 단군신화를 사색해본다. 창조적 오독, 단군신화속의 곰‘호랑이는 여성 내면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의 심리적 요소였다. 유교적 남성중심주의가 여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호랑이를 추방해버리고 수동적이고 인내심 깊은 곰만을 여성의 정체성으로 허용한 것이다. p.166

그러한 ‘아버지의 이름’의 작용에 의해 자연 여자의 내면속에 깃들여져 있던 본래적 양성성(아니무스+아니마)은 곰/호랑이 둘로 쪼개졌고 호랑이는 부적절한 것으로 격하되고 추방되어 여성의 무의식 ‘그림자’속으로 침몰하게 되었으며 곰은 조선조 여성의 ‘사회적 얼굴(페르소나)’이자 여성 정체성으로 형성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 여인의 심리 속에는 그림자로서의 호랑이가 한 마리씩 들어 있는 것이다. p.166


Ⅲ. 내가 저자라면

‘남자들은 모른다’는 형식상 여성시선집이고 시평론집이다. 하지만 내용은 ‘남―여’‘상―하’라는 철저한 이분법과 이 질서를 유지하려는 남성적 로고스에 대한 연속적인 증오와 경계 넘나들기, 장벽 파괴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실린 시들을 분석하고 감상을 덧붙이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남자들은 모른다’에 실린 44편의 시들의 공통점은 페미니즘의 깃발을 높이 든 ‘여성전사’들의 시란 것이다. 저자는 시들을 텍스트 안에서 읽지 않고 작가가 여성들이라는 것, 그래서 절망하든 저항하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본질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지배하는 상징계(남성 위주의 현실세상) 속에서 왜곡된 자기 정체성의 희생자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킨다. 저자는 여성 자신들이 실재라고 믿고 있었던 세상이 실은 남성(아버지)들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환상의 세계이고 조그마한 우리에 갇혀 묶인 신세임을 깨닫는 ‘매트릭스’의 이탈자들이라고 한다.

여성 시인들의 언어를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상징하는 남성위주의 현실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분노는 여성들에게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된 30명의 여성시인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시인들의 자살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63년 자살했다. 그리고 몇 해 뒤 실비아 플라스의 ‘정신적 자매’인 고백파 시인 앤 섹스턴도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이 두 외국 시인도 이 책으로 불러들였다. 기구한 인생 못지 않게 우리나라 현대 여성시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란다. 파시스트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아빠’를 남긴 실비아 플라스의 극적인 인생은 여성시인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

책 머리말에서 김 교수는 이들의 시를 뽑고 나서 한숨을 지었다고 말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한숨이 나왔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시인의 시에는 왜 이렇게 광기와 타나토스의 충동이 많은 것일까”라고 한 저자의 한숨에는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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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은 모른다 효인 2010.02.01 3602
951 『전환 시대의 논리』를 읽고 [7] 이희석 2007.05.14 3605
950 [리뷰1] 신화와 인생_조지프캠벨 양경수 2011.04.03 3605
949 # 35. 미래의 물결 - 자크 아탈리 file 샐리올리브 2012.12.31 3606
948 쉼표 북 둘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file 재키 제동 2012.04.09 3607
947 (22) 미래경영 - 피터 F. 드러커 [4] [1] 時田 김도윤 2007.09.11 3608
946 [리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양경수 2011.06.13 3608
945 19.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file 강훈 2011.09.06 3609
944 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2] 김나경 2008.03.24 3610
943 [31] <주역강의> - 인용문 수희향 2009.11.24 3613
942 김구 백범일지 에움길~ 2014.09.15 3614
941 [리뷰] <How to Live 갈림길에서 길을 묻다>_윌리엄 브리지스 file 양경수 2011.10.02 3615
940 북리뷰 77: 프라하의 이방인 카프카 범해 좌경숙 2011.09.19 3617
939 (No.14) 하워드 가드너[열정과 기질]북스넷-9기 서은경 file 서은경 2013.07.15 3617
938 칭기스칸,잠든 유럽을 깨우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2] 香仁 이은남 2007.07.01 3619
937 42.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file [3] 미나 2012.02.13 3620
936 북리뷰 48 : 생각의 탄생 범해 좌경숙 2010.10.07 3621
935 북리뷰 42 :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 윌리엄 브리지스 범해 좌경숙 2010.02.03 3623
934 [리뷰] <사진철학의 풍경들> _ 진동선 양갱 2012.01.16 3623
933 [40]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 - 정진홍 [2] 정산 2009.02.24 3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