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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4일 23시 30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금번 설과 같은 명절이 찾아오면 우리는 말그대로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한다. 어렵게 고향에 내려간 사람들은 함께 제사상을 차리고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리며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다. 시대가 바뀜에 따른 이런 모습들이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종교를 떠나 이런 제사의식을 통하여 조상들과의 유대의식을 형성하고 나아가 함께 존재하는 가족들과의 공동체성을 확인할수 있다.

 

의례를 통한 상징성은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의 저서 ‘신화의 힘’에서도 강조되는 키워드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그리고 DNA속에 내재되어온 유전자의 형질을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이런 모습들은 여러 민족들의 풍습을 통해서 또는 동양의 유교, 불교와 서양의 가톨릭 종교 등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상징성을 통해 앞서 얘기했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존재에 대한 유대감과 관계성을 지속시켜 나간다.

 

캠벨의 주 전공은 종교학, 그 중에서도 인도의 전통에 비중을 많이 둔 비교 종교학이다. 하지만 그를 종교학자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곤란할 것 같다. ‘신의 가면’, ‘신화와 함께하는 삶’, ‘신화의 이미지’, ‘세계 신화지도’ 등의 저서들을 통해 20세기 세계 최고의 신화학자로서도 이미 자리매김을한 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그의 일생의 화두로써 신화란 매개체에 사로잡히게된 계기는, 어릴적 <와일드 웨스트 쇼>라는 공연을 관람후 인디언에 매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그에게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가, 그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던 종교와 똑같은 모티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적인 신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의 저서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의 철학과 사상, 깊고 매력적인 문장들에 흠뻑 매혹당하곤 한다. ‘삶의 목표는 여러분의 심장의 박동을 우주의 박동에 맞추는 것이며, 여러분의 본성을 자연에 맞추는 것이다.’라는 그의 글귀에서는 나의 가슴속 희열이 넘쳐 흐름을 느낄수 있다. 삶을 모험으로 여기며 영웅의 거룩한 여정의 길을 강조했듯 자기 자신이 먼저 선험적인 모델링의 모습으로 살아간 그를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하지만 그의 깊이있는 사상의 내용에 100% 빠져들지 못하는 나자신의 모습이 어쩔수 없이 확인 되어지기도 한다. 그의 저서를 통해 편협한 민족주의의 우월성이 아닌 다문화 다민족에 따른 고유한 풍습 등에 대한 다양성의 이해도를 넓히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의 힌두교-불교 전통에 기반을둔 범신론의 입장은 받아들이기가 쉽지많은 않기에 말이다. 나자신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믿고 있기에 그가 경계하는 이원성의 한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과 거짓이 아닌 비(非)이원적인 자각을 하여야 할터인데 아직도 나의 사고의 편협성은 진행중이다.

 

작년 연구원 도전을 시작할시 그의 저서 ‘신화의 힘’을 읽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힘들게 읽어내렸던 저자와의 첫만남의 기억을 더듬으며 당시의 책을 들쳐보다 보니, 거기에는 책을 읽고난후 나의 이런 소감문의 하나가 씌여 있었다.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수 있게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필요하다. 용을 죽이는 또는 아더왕 등의 신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 삶을 헤쳐나간다. 여기서 신화는 우리의 메타포이자 모티브가 된다. 헤쳐나갈수 있는 힘과 함께.’

 

나도 나의 신화의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들어가는 말 - 캠벨 사상의 정수, 그 아름다운 내면과의 마주침

-.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 즉 “네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캠벨 철학의 근간이다. 물질이란 없다. 모든 것이 장이다. 그러한 구별과 제한은 단지 우리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다.(p7)

-. 조지프는 이 세미나를 마치면서 다들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을 운명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한 사람이 지닌 놀라운 힘의 장에서 우러난 진정한 인간성이야말로 그가 모두에게 준 선물이었다.(8)

-.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희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캠벨에 따르면 여기서 희열이란 우리의 가장 높은[종교적] 열광(enthusiasm)을 의미한다. ‘엔테오스(entheos)'라는 단어로 ’신으로 가득 찬‘이라는 뜻이다. 우리를 신성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즉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기 위해 모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애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부과한 제한을 넘어 나아가도록, 그리고 각자의 길로 나아가도록 해 줄 수 있다. 최종 목표는 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바깥으로 투사되었던 그 에너지를 안쪽으로 돌려 스스로를 바로잡는-스스로의 진로를 따라 나아가고, 여러 세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춤추는-바로 그 경지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충위(‘성스러운 삶과의 조우’)까지 성장해 나아가면,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환영[‘마야(maya)']의 차단막을 걷어 올리고 지상에 펼쳐져 있는 아버지의 왕국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마야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체의 리듬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 우주의 박동이 우리의 것이 된다.(10)

-. 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신들은 우리를 향해 열 걸음을 다가서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11)

-.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조지프는 종종 이렇게 묻고 나서 곧 스스로 답하곤 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죠.”(11)

-. 조지프는 우리가 환희 속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이라곤 의식의 전환 뿐이다.(12)

 

도입의 단계 -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 여러분의 지금 모습 그대로,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평생 누릴 특권이다.(19)

-.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20)

-.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20)

-.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21)

-.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27)

-.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30)

-.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31)

-. 여러분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보물이 묻혀 있다.

여러분이 차마 들어가기 겁내던 바로 그 동굴이, 여러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의 원천임이 밝혀진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그 무시무시하던 저주받은 것이 바로 그 중심이 된다.(33)

-. 스리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36)

-.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37)

 

의식의 첫 번째 단계 - 현세에서의 삶

-. 뱀-시간의 장(수많은 대입자들이 있는)에서 달(月)의 의식(意識)과 생명을 나타내는-은 이브를 보고는 그녀가 지루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 실제로도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밖에 나가 일하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십중팔구 누군가가 한 사람 나타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바로 작은 뱀 한 마리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42)

-. 기독교와 유대교는 귀양살이의 종교다. 인간은 동산에서 쫓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다.(43)

-.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우화

: 최초의 인간들은 남성-남성과 남성-여성 그리고 여성-여성의 세종류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운 힘을 가졌다. 그들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따라서 제우스는 그 인간들을 모두 두 동강 내기로 결심. 그래서 본래의 몸이 갈라졌을 때, 그 반쪽은 각각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 하였다. ... 이렇듯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그들 속에 깃들어 있는 것. 이는 본래의 몸뚱이 부분을 다시 한데 모아 둘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46)

-. [여성으로서의] 여러분 속에 있는 힘을 자각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 그 힘에 의해 가능한 행동이 여성으로서의 여러분보다는 오히려 남성에 의해 더 적절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곧 관계에 대한 진정한 인식(50)

-. 영혼의 어두운 밤이 지나야 곧이어 계시가 나타난다.(55)

-. 신화학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에너지의 신비를 깨닫게 해 준다. 그 안에 여러분의 영원이 놓여 있다.(57)

-. 신화학이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에서 인간 영혼의 경험, 행동, 성취에 관한 은유를 간직한 이미지들이 조합된 것이다.(56)

-. 인생의 전반기에 우리는 사회에 봉사한다. 이것은 종속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해방이다.(57)

-. 힌두교에서 비슈누 신에 대한 종교는 곧 사랑의 종교다. 비슈누 식으로 사랑을 분석해 보면, 사랑에는 다섯 가지의 단계와 함께 그 각각의 단계를 대표하는 모델이 하나씩 있다. 깨달음을 찾고 성위하는 모든 훈련은 이 경로의 에너지로부터 수행될 수 있다.

사랑의 첫 번째 단계는 주인에 대한 하인의 사랑으로,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랑이다.

두 번 째 단계는 친구와 친구의 관계로, ‘우리’가 [즉 서구인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세 번째의 사랑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이것은 친구 대 친구의 사랑에 비해 훨씬 친밀하고 강력한 사랑이다.

사랑의 네 번째 단계는 배우자 대 배우자의 관계로, 여기서는 자웅공동체의 또는 ‘다른 한쪽’의 발견이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다섯 번째 단계인 이것은 강박감에 사로잡힌, 억제하기 어려운 금지된 사랑으로, 여기에서는 오로지 사랑뿐이어서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된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게 된다.(60~63)

-. 내 생각에 결혼이란 상대방을 책임지고 사랑함으로써 상대방과 진정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을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것, 즉 여러분 혼자의 운명을 두 사람의 운명으로 전환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헌신이다.(69)

-. 배우자와의 관계가 여러분의 삶에서 최우선의 고려사항이 아닌 한, 내 생각에 여러분은 [결혼했어도] 결혼한 상태가 아니다. 반드시 그 관계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70)

-. 결혼은 여자가 주도하고 남자가 따라가는 것이다.(72)

-. 여자는 삶(생명)의 ‘샤크티(sakti)', 즉 에너지이다.(72)

-. 생존은 삶의 두 번째 법칙이다. 첫 번째 법칙은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77)

-.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겐 반드시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어머니는 자연을 표상하지만, 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사회적 관계로 인도한다.

여러분은 어머니로부터 여러분의 몸을 얻었다.

여러분은 아버지로부터 사회에서의 역할을 얻는다.(80)

-.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돈이 따라오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삶에 선사하는 것과 삶이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해하는 것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항상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돈이 있건 없건 간에,

돈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돈을 잃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83)

-. 삶의 에너지로서 경험되는 것은 실제로 명상이나 다름없으며, 그것을 축적하는 대신 흘려보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는 한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돈에 몰두한 삶으로부터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매우 놀라웠다.(83)

-. 열등감이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것986)

-. 나는 숲속으로 들어가 5년 동안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나는 박사학위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자유로웠고, 아무런 책임질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강요할 갖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들은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길 원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5년 동안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87~88)

-. 내 지론은,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90)

-.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라.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 그저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니까.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 버려야 희열이 온다.(99~100)

-. 영웅의 여정은 항상 부름으로 시작된다. 인도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아라, 너는 지금 ‘잠든 땅’에 있다. 깨어나라. 여행을 떠나라. 저곳에 너의 의식의, 또한 너의 존재의 온전한 측면이 있건만, 아직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그냥 머물 것이냐? 아니, 그렇게 하는 건 너에게 충분치가 않다.” 그렇게 해서 여정이 시작된다.(111)

-.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로부터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111)

-. 여러분의 모험은 여러분 자신의 내부에서 곧바로 솟아나야만 한다. 여러분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전까지는 문이라곤 없었던 곳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곳에서 여러분을 위한 문이 열릴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용기를 가져야 한다.(113)

-. 이 세계가 마치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을 때, 여러분 자신의 희열에 매달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아남는 삶이니.(118)

-. 일본 속담 중에 인간의 성장에 있어 다섯 단계를 설명. “열 살에는 짐승, 스무 살에는 미치광이, 서른 살에는 실패자, 마흔 살에는 사기꾼, 쉰 살에는 범죄자.” 나는 여기에 덧붙여, 사람이 예순 살에는 친구에게 충고하기 시작하고, 일흔 살에는(그동안 들은 것들이 모두 오해였음을 깨닫고) 침묵을 지키고 현자로 여겨진다고 말하고 싶다. 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든 살에 나는 나의 자리를 알고 굳게 섰다.”(120)

-. 융은 일생의 곡선이 딱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그 중 전반은 관계의 시간이며, 나머지 후반은 자기 안의 삶의 감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또는 힌두인들이 말하듯 “마르가(marga)'를 따라가서”-여기서 ‘마르가’란 길, 즉 여러분이 겪은 인간 경험이 발자취를 말한다. 여러분 자신의 내부를 향한 삶으로 가는 시기이다. 그러고 나서 완전한 해방이 찾아온다.(120)

-. 삶의 첫 4분의 1은 학생의 삶이며, 그다음 4분의 1은 순종. 그다음 4분의 1은 집주인의 삶.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성인의 삶의 책임 속으로 움직여 간 것이다.(121)

-. 전형적으로 중년은 달성의 기간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간이며, 또한 성취의 기간이 되어야 마땅하다.(122)

-. 변화하는 사람은 거의 누구든지 옛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123)

-. 출가는 말 그대로 죽음과 부활을 의미(124)

-. 노년은 만물이 생동하고 꽃피는 시기이다. 정말이지 아주, 아주 달콤한 시기가 아닐수 없다.

노인들은 어린이들을 돌보고 그들과 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므로 노인은 자신의 마음속만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는 영원성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된다.(126)

-. “허약해지면(늙음으로 허약해지든, 병으로 허약해지든)사람은 망고나 무화과나 딸기가 가지에서 놓여나듯, 그렇게 사지四肢에서 해방된다. 이제 그는 다시 근원의 문과 그 근원 자체를 경유하여 삶으로 되돌아온다.(127)

-. 여러분은 차라리 자신의 삶을 위한 의례를 갖추어야 한다. 의례의 기능이란 오로지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의 의미에 집중케 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결혼 의례는 여러분이 계속 한 개인으로 남는 대신, 이제 한 쌍의 반쪽이 되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내딛는 걸음에 관한 묵상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그런 절차를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의례다.

의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여러분에게 알려 준다.

식사 전에 드리는 감사기도는 지금 먹게 될 음식이 한때는

살아 있었던 것임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준다.(128)

-. 여러분이 취하는 동물의 생명을 돌려주는 방법은,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식탁에 둘러앉고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즉 여러분은 살기 위해 자신에게 제공된 또 다른 생명을 먹고 있는 것이다.(129)

-. 성찬 의례 역시 농경문화의 시작과 동시에 이 세상에 도입된 개념이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씨앗으로서 죽어야만 새싹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영혼과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이 두가지 실체는 우리 안에 사는 것이다-두 가지 종류의 음식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물질적인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음식-가령 우리가 먹는 식물과 동물-은 세속의 음식이지만, 우리는 또한 우리의 영적인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영적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성찬, 즉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행위는 그런 영적 영양분의 흡수를 상징하는 것이며, 또한 명상의 관념을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뭔가를 먹기 위해서는 그 뭔가를 죽여야만 하기 때문에, 또다시 우리는 이러한 희생의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또한 기꺼이 먹힐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도 음식 재료이기 때문이다.(130~131)

-. “천국에 올라가 그분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리라”라는 말은 여러분 자신의 공감을, 즉 여러분과 함께 있는 어떤 피조물 또는 어떤 사람에 대한 여러분의 참여를 깨달으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여정의 목표인 듯하다.(131)

-. 소년은 남자임을 ‘드러내야만’ 한다. 반면 소녀는 여자임을 ‘깨달아야만’ 한다.(134)

-. 일찍이 나 자신을 구속하던 것이 사라져 버림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포기한 보물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실제로 바꿔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집착 없이도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증대시킨 것이었다. 정말이지 놀라웠다.(138)

-. 종말이란 불타는 아마겟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자기만족이 끝난다는 뜻이다.(1390

-. (......)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140)

-. 육신이 전구라면, 그리고 전구가 나가 버린다면,

더 이상은 전기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일까?

에너지의 원천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육신을 내버리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바로 원천이기 때문이다.(141)

-.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죽는 것은 반드시 태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 모든 사람의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결코 죽지 않는다. (......) 그것은 무기로도 베지 못한다. 그것은 불로도 태우지 못한다. 그것은 물로도 적시지 못한다. 그것은 바람으로도 말리지 못한다.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자아는 영원히 한결같다. (......) 모든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죽을수 없다. 그러니 어떤 피조물을 위해 슬퍼하지 말라. - ‘바가바드 기타’(142)

-. 오직 탄생-낡은 것의 탄생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진정으로] 정복할 수 있다.(144)

-. 죽음에 대한 저항은 여러분이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150)

 

의식의 두 번째 단계 - 깨달음을 향한 길

-. 파탄잘리의 고전 요가 안내서의 첫 번째 경구는 책 전체를 향한 열쇠를 제공해 준다.

“요가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155)

-. 하나님의 형상, 붓다의 형상은 진실로 우리 자신의 깨달음의 형상이며, 요가의 목적은 그 깨달음과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이다.(156)

-. ‘차크라(chakra)'는 ’바퀴‘라는 뜻이다. ’차크라‘는 또한 ’연꽃‘이란 뜻의 ’파드마(padma)'로도 불린다.(157)

-. 잔잔한 연못이란 인도에서 흔히 요가라는 관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된다. 요가의 첫 번째 잠언은 다음과 같다. “요가는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지속적인 유동체로서,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연못의 수면과도 유사하다. ... 그 연못을 완전히 고요하게 만든다면, 즉 바람을 물러가게 하고 물을 맑게 한다면, 그러한 정지 상태에서 여러분은 그 모든 변화하는 형상 아래에 있는 완벽한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새끼 호랑이는 연못을 바라봄으로써 난생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큰 호랑이는 자기 얼굴을 그 옆에 갖다 대고는 말했다. “이것 봐, 네 얼굴도 내 얼굴이랑 비슷하지. 넌 염소가 아니야. 나하고 똑같은 호랑이라고. 그러니 나하고 똑같이 되어야지.”

이것이 구루가 하는 일이다. 내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나하고 똑같이 되거라. 이는 혼자 하는 수행과는 정반대의 방법인 것이다.(168~169)

-. 여러분의 꿈을 글로 적어 보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화다.(176)

-. 짐승들이 이처럼 내부에서 솟아나는 뭔가를 실행할 경우, 거기에는 정교한 의례적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의례란 개체 속에서 종의 원칙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180)

-. 자아가 타자를 ‘너’로 지칭하는 것은, 자아가 타자를 ‘그것’으로 지칭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여러분은 무엇이든 ‘너’로 바꿀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을 ‘너’로 만들 수 있다. ... 어떤 것을 가리켜 ‘그것’이라고 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원성을 지니게 된다. 반면 ‘나’와 ‘너’는 이원성이 아니다. 그것은 비非이원적인 자각이다.

그러한 자각을 가지고 일을 하면 온 세상은 삶과 기쁨으로 환해진다. 만물을 ‘너’로 파악하며, 그것들의 삶을 깨닫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종교적인 명상에 함축되어 있는 최고의 진술이다. 이것은 기계론적 과학자들이 거부하는 시각이다.(185)

-. 융은 영혼의 구조에 관한 분석에서, 우리를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심리학적 기능 네 가지를 구분한 바 있다. 바로 감각, 사고, 감정, 직관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감각이란 뭔가가 존재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능이다. 사고란 그게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기능이다. 감정이란 그 가치를 우리에게 평가해 알려 주는 기능이다. 직관이란 우리가 그 대상이나 그 상황에 내재된 가능성을 예측하게 해 주는 기능이다. 따라서 감정은 가치에 대한 내부의 안내자이다. 하지만 그 판단은 보통 외부적인, 경험적인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상징학이란 것이 놀라운 까닭은 융이 말한 그 네 가지 기능이 거기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융은 다섯 번째의 것, 즉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을 가리켜 ‘초월적 기능’이라고 지칭한다. 상징은 여러분이 바로 이 기능을 공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188~189)

-. 여러분의 악덕을 포기하지 마라. 그 악덕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게 하라.

여러분이 오만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오만을 없애지 마라.

그것을 여러분의 영적 탐구에 활용하라.(192)

-. 붓다와 예수는 동등하다. 예수 역시 동산의 문을 통과해 나무로 나아갔고, 결국 그 스스로가 나무의 열매가 되었다.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위협을 당할 때에는

자아를 놓아 버려라.

그리하여 기독교에서나 불교에서나 구원의 관념은 어딘가를 통과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205)

-. “시간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단 한 번의 삶을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안에서 에덴동산의 비밀을 찾아내야 한다.” - 로렌 아이슬리(206)

-. 마르틴 부버는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너’에게 이야기하는 자아는 ‘그것’에게 이야기하는 자아와는 다르다.(208)

-. 삶의 목표는

여러분의 심장의 박동을

우주의 박동에 맞추는 것이며,

여러분의 본성을 자연에 맞추는 것이다.(211)

-. 전사戰士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211)

-.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 여섯 개의 뾰족한 끌이 있는 별, 즉 유대교에서 말하는 다윗의 별은 인도에서 제4 차크라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기호이기도 하다.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진 이 상징에서, 위쪽으로 뾰족한 삼각형-여러분은 이걸 가리켜 ‘향상’ 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은 운동 원칙의 상징이다.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은 불활성이며, 이것은 그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표상한다.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은 장애로 경험되거나 또는 열린 문으로 경험되거나 둘 중 하나다. 여러분이 그 심리적 의미와 효과를 정신적 변화로서 인식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 장애물을 열린 문으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여러분은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을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는 장애물로, 또 하나는 여러분이 향상을 이루러 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따라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장애가 되는 듯 보였던 모든 것들은 변화될 수 있다. 그것이 여러분의 변이를 위한 수단임을 깨달음으로서 말이다.

인도에서 탄트라 철학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220)

-.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230)

-. 인간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혼자만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들은 숭배자들을 얻기 위해 매우 열심인 것이다. 신들을 숭배할 인간이 없다면 신들도 있을수 없다.

신을 선택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들은 무수히 많다. 여러분의 신을 선택하라.

여러분이 숭배하는 신이 여러분에게 어울리는 신이다.(231)

-. 부족에게 신들은 힘을 의인화한 것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그것들이 힘의 원천이 되었다.

이 세계의 모든 신들은 힘이 아니라 은유다.(232)

-. 융이 ‘욥에의 회답’에서 하는 말도 바로 이것이다. 즉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존재의 이미지에 투사된 것은 사실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는 사실상 그때그때 인간이 처한 조건이 반영된 거울 속 이미지라는 것이다.(237)

-.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신들이 ‘저 바깥’에서 활동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240)

-. 부활절 또는 부활에 있어서 항상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힘이다. 여러분이 부활을 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241)

-.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 그가 아버지에게 간 것, 성령,

이 모두는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일이었다.

영웅의 죽음과 부활은 오래된 삷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위한 모델이다.(243)

-.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미치 놀이를 하듯 하라.(259)

-.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하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매사가 그 순간의 것이기 때문이다.(259)

-.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하던 일,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고,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거기, 우리 삶에 깃든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260)

-.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긴장, 정직의 결여, 그리고 비현실적 감각은

여려분 삶의 잘못된 힘을 따름으로써 나타난다.(261)

-.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때.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262)

-. 성스러운 공간에서는 무슨 일을 하건간에

그 주위는 은유가 된다.(265)

-. 하늘나라 전체가 우리 안에 있지만, 그걸 찾기 위해서는

바깥에 있는 것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2740

-.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을 죽여야 한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274)

-. 여러분이 하는 일에는 무엇에나 정점이 있다.

여러분이 그런 정점에 있을 때,

여러분은 최대한도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286)

-. 하늘나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깨달음 속에 있다.

우리 이웃 속에, 적들 속에, 자신 속에

편재하는 신들의 현존에 관한 깨달음 속에.(296)

-.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을 경험하고 또 영과 의사소통한다.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 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영을 완전히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가 곧 죽음임을 안다.(297)

-. 나는 상황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욕망하고, 그런 욕망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예:당시 캠벨이 지닌 문제 가운데 하나는 아내인 진이 뭘 하든 항상 늑장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심리학적 변화란 이처럼 이전까지만 해도 애써 견뎌 내야 했던 것을 이제는 알고,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두려움과 욕망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분은 불멸로부터 스스로를 배제시키는 것이다.(298~299)

-. 여러분의 판단이 오는 곳에서부터,

여러분의 한계도 온다.(302)

-. 삶이란 항상 슬픔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304)

-. 남성 = 사회의 질서

여성 = 자연의 질서

남성의 일은 생명과 관계하는 것이다.

여성의 일은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남성의 주된 기능은 그 안에서 여성이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상황을 수립하는 것이며, 또한 여성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도록 그 장場을 조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전체다. 남성은 보호하는 인자이며, 여성의 힘의 대행자이다.(319)

-. 슈펭글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감명을 받았다. “남성은 역사를 만든다. 여성은 역사 자체다.” 여성은 그것 자체이고, 남성은 여성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 그 자체인 곳 안의 장을 꾸며 줄 뿐이다.

남성의 기능은 행동하는 것이다.

여성의 기능은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은 ‘그것’이다. 여성은 어머니 지구이다.(320)

-. 남성은 반드시 행해야만 한다.

남성은 반드시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은 곧 고통의 길이다.

여성은 그저 있기만 하면 된다.(329~330)

-. 여성에게 주어진 본성 속에는 여성이 다루어야 할 훨씬 더무거운 짐이 있다. 이는 소녀에게 생리가 일어나면서부터 시작되며, 그때부터 소녀는 여성이 된다.(330)

-. 남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 여러분은 분리를 겪는다.

여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둘이 아닌, 포용하는 특성이 존재한다.(334)

-. 아버지는 분리자이다.

어머니는 합체자이다.(338)

-. 우리 모두의 존재 기반이기도 한 보편적 공통성에 대한 포용성이 바로 공감이다. 자발적 감정을 인식하고, 포용하고, 나아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힘이다.(339)

-. 그 모두가 사랑일 때,

세상 모두는 반드시 사랑이어야만 한다.

무엇도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342)

 

의식의 세 번째 단계 -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 우주 기원의 본질이자 여성상과 개인성의 본질인 마야는 다음의 세 가지 힘을 지녔다고 한다.

① 차단하는 힘

② 투사하는 힘

③ 드러내 보이는 힘(346)

-. 삶의 목표는 환희다.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351)

-. 인도의 음악은 서양의 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여기에는 아무런 긴장도 해소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 그저 항상 거기에 있을 뿐이다.(357)

-. 예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랜 속담이 있다. “우선 모든 규칙을 배운 다음, 그 규칙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규칙들이 순수한 행동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372)

-. 책을 한 권 쓰는데 있어서 여러분은 우선 자신의 영감과 직관에서 출발한 다음, 곧이어 어려운 과정을, 즉 여러분이 여기서 저기까지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지역을 맞딱뜨리게 되고, 바로 거기서 멈춰 버리게 된다. 바로 그때가 여러분이 규칙을 끌어내야 할 때이다.(372)

-. 여러분이 아는 것에 근거하여 행동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단순히 자신의 지식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여러분은 그것을 움직임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예술에서는 이것이 전부다. 학생은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기술과 법칙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이 그가 반드시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그 모두에 통달한 다음에야 비로소 움직일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 행동은

뭔가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산출하는 것이다.(374)

-. 춤이란 생명 그 자체의

지고한 상징이다.(376)

-. 자연이 꾸밈없는 진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한다. “나처럼 되어라! 현상의 끊임없는 변화에서 영원히 창조적이고, 영원히 실존을 강요하며, 이 현상의 변화에 영원히 만족하는 원초적 어머니인 나를!” - 니체(376)

-. 예술은 우리를 스스로의 얽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한 쌍의 날개다.(377)

-. 신이 무용수이고, 여러분은 신을 예배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안에서 신을 찾기 위해 반드시 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바로 관객을 위한 춤과 신을 위한 춤이 지닌 함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379)

-. 신들의 힘은 자연 속에 있는, 그리고 여러분의 본성 속에 있는 힘이 의인화된 것이다. 여러분이 그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 여려분은 놀이를 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 작품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실 예배이기 때문이다.(379)

-. 운명의 수레바퀴에서는 지혜가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젊음은 가장자리를 가리킨다.(380)

-.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383)

-. 비판을 미루어 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놈을 죽여 버려라.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누가 과연 이런 걸 보려고 하겠어?’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면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 공감할 만한 사람을 떠올린 다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라.(예: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한 소녀를 위해 쓴 것이었다.)385

-. 흔히 말하는 작가의 슬럼프를 돌파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것은 내가 보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첫째는 우선 여러분이 말을 걸고 싶은 상대를 하나 찾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하루에 두 시간 동안은 말그대로 그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는 시간을 떼어 두라는 것이다.

작가의 슬럼프는 너무 머리가 많아서

생겨난 것일수도 있다. 여러분의 머리를 자르라.

페가수스, 곧 시詩는 메두사의 머리가

잘린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에는 무모해야만 한다.

여러분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 미쳐야 한다.

 

여러분이 어떤 유형을 지시하는 재료에 대한 감각을 지니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386)

-. 종교에서는 이른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분을 탁 가로막아 슬럼프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여러분을 계속 나아가게 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비판의 두려움 없이 계속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움직일 것이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387)

-. 예술가는

작품의 형태를 초월로 열어젖힌다.(392)

-. 내가 이해하는바, 예술은 마땅히 마야의 드러내 보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392)

-. 여러분이 만약 선과 악을 구분할 경우,

여러분은 예술을 잃는 셈이다.

예술은 도덕 너머로 나아간다.

여러분의 공감의 범위가 곧 여러분의 예술의 범위다.(402)

-. 신들의 현시는 편재하고 있건만,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아 못 볼 뿐이다.

상징은 우리의 눈을 열어 준다.(404)

-. “진정한 상징은 우리를 원의 중심으로 데려가며, 원주의 다른 지점으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상징을 통해서 인간은 효과적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 다른 사람들, 하나님과 접촉하게 된다.” - 토마스 머튼(404)

-. 때로는 상징조차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지 않고, 오히려 닫아 버린다.

우리가 상징을 구체화하면

우리는 거기 집착하게 된다.(405)

-. 이슬은

달에서 떨어진 암브로시아다.9408)

-. 신화의 신들은 우리 주위의 자연 속에 있는

에너지들을 의인화한 것이다.(409)

-.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413)

-.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은

여러분이 있는 장소를 신성화하는 것이다.(420)

-.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425)

-.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은 것처럼.(425)

 

옮긴이의 말

-. 이 책은 1983년에 에설린 연구소에서 조지프 캠벨의 강의를 들었던 다이앤 K. 오스본의 필기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다가 기존에 출간된 캠벨의 저서 가운데 관련된 부분의 인용문들을 발췌, 수록한 방식으로 꾸며진 일종의 선집이다. 원제는 ‘조지프 캠벨 편람’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캠벨의 강의록으로서 그의 사상에 대한 개론적인 성격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428)

-. 캠벨의 주 전공은 종교학, 그 중에서도 인도의 전통에 비중을 많이 둔 비교종교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 연구는 그러한 학문의 추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며, 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신화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의 의미, 다시 말해서 신화를 통해 캠벨이 가리키고자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캠벨을 ‘신화학자’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그 너머의 달을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캠벨의 사상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힌두교-불교 전통에 근거한 일종의 범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430)

-. 이 책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신화학자’로서의 캠벨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인간’ 캠벨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주고 있다. 여러 주제에 대한 그의 진솔한 고백은 평생을 신화와 종교와 은유의 해석에 바친 어느 노학자의 인생철학에 가깝다. 캠벨의 인생철학은 이른바 ‘희열을 좇으라’ 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430)

-. 캠벨은 인간의 인생을 영웅의 여정에 비유했다. 비록 사람마다 짧고 길고의 차이는 있지만, 그 하나하나는 태어남과 부름과 모험과 역경과 귀환과 노년으로 이루어지는 영웅의 여정인 것이다.(431)

 

 

Ⅲ. ‘내가 저자라면’


어릴적 벨기에의 문학자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고 하는 책을 읽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의 두 어린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모험의 이야기.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다가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게된다는 우화적 결말. 신이 인간에게 가까운 곳을 자세히 볼수 있게끔 눈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복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을 겪으면서 멀리만 찾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많은 풍랑과 인생의 고락을 겪고난 다음에야 우리의 참눈은 떠진다. 그때서야 인생의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제서야 깨달으면서.

조지프는 우리가 환희 속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저 바깥’이 아닌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라고 되뇌인다. 그는 바로 여기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 오로지 필요한 것이라곤 의식의 전환 뿐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의식의 전환! 어쩌면 ’신화와 인생‘의 저서에서 그가 우리에게 부르짖는 희열-신화의 힘의 저서에서는 천복으로 소개-을 좇는 영웅으로의 변신의 키워드는 바로 이것이리라.

 

옮긴이의 말대로 ‘신화와 인생’은 앞선 책과는 달리 저자의 살아온 인생철학의 백미를 풀어놓는 느낌의 말들로 가득하다. 내용은 세부분의 장절로 나누어지는데 의식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우리 인생의 생과 사를 이야기하는 현세에서의 삶을 풀어놓고 있다. 의식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깨달음을 향한 영웅의 여정을 소개한다. 이의 필요조건으로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존재론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그 존재론적인 관계가 형성이 될시 우리의 삶의 목표는 우주와 자연에 연계가 되어지며, 자기 자신을 찾는 영웅의 여정의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 더나은 전진을 위한 명제인 변화란 과제와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자신에게서의 단점, 개선점이 있기에 보다 나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자신을 찾는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 열등감에 약점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어떤 여정을 원하는 것인지? 그까닭인지 연구원 여정이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싸부님은 우리들에게 개인의 생긴 모습을 찾으라는 주문을 하셨었다. 이는 캠벨이 강조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다. 이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은 나의 말도, 나의 글도, 나의 행위도 내안의 무언가가 결집이 된다음 갈무리가 되어 나오는 법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고 무언가 배운다는 것은 그 본연의 형질에 갈무리의 색채를 입히는 행위일 것이다. 늦게나마 나는 내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진인眞人의 모습을 깨달을시 우리는 자연히 변해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막판에서야 불타 오르는 내자신이지만 그런 여정이 행복하다.

 

마지막 장절인 의식의 세 번째 단계에서는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를 예술과 글쓰기 등의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캠벨의 글쓰기라는 문장에서 나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나는 1월에 말그대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1년간의 연구원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나의 글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 없이, 타인들이 수많은 코멘트-애정어린 말들이었지만-속에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내가 그 과정동안 무엇을 하였던 것인지라는 자조적인 회의가 수없이 밀려왔다. 그런 가운데 박경철님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책을 권유받게 되었고, 읽어 나가면서 글의 내용에 대한 감동과 함께 현재의 나의 글에 대한 모티브를 발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캠벨이 얘기했던 작가의 슬럼프를 돌파하는 첫 번째의 방법을 활용 하였다. 말을 걸고 싶은 상대를 정하였던 것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대상자를 정해 그 한사람과의 관계의 여정을 테마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한사람의 화자를 대상으로 전개하는 내용. 그에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나의 글이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내가 추구하는 모토, 내가 추구하는 작품은 사람냄새가 폴폴 나는 따뜻한 내용의 글이었다. 기교만이 아닌 아니 기교에서는 느낄수 없는 나자신 살아오면서 관계를 맺어왔던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이것이 나만이 쓸수 있는 글이었다.

 

헨리 데이빗 쏘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월든 숲 속에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수년간의 은둔과 명상을 통한 끝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의 산물인 '월든 Walden'의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저자인 조지프 캠벨도 5년동안 뉴욕 주 우드스톡의 작은 오두막에 살면서 책에만 파고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당시의 그런 자신을 찾는 시간을 통한 책에의 몰두가 있었기에 깨달음의 현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리라. ‘산책’이라는 용어는 살아있는 책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한다. 1년간의 공식적인 연구원 기간을 마치고 나면 한달정도는 나도 묶여있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휴休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재충전의 시간이 지난후 나는 다시 영웅의 여정으로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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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 [44] 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file 양재우 2009.03.02 3072
1458 [51] <신의가면1-원시신화> 저자 & 저자라면 수희향 2010.04.17 3072
1457 경영의 미래 효인 2010.02.22 3073
1456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 完 [2] 오병곤 2005.06.01 3074
1455 9. 사기열전_저자, 구성 [2] 맑은 김인건 2010.05.03 3074
1454 핸드메이드 라이프 -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혜향 2010.03.23 3075
1453 #24.(북리뷰)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자크아탈리) [1] 땟쑤나무 2013.11.18 3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