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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0일 23시 42분 등록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북 리뷰

 

장성우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정민 지음/ 김영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jpg
 

저자에 대하여


정민 교수.jpg
 

정민 교수는 충북 영동 출생이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먼지 쌓인 고서적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미래를 열어 주는 힘 있는 말씀으로 바뀌는 힘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한양대 국문학도 시절엔 원고지를 끼고 다니던 시인 지망생이던 그는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문학평론 분야의 최종심까지 오른 실력파이다. 박목월 선생이 한양대에 계셨었는데, 문학의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의 결과 언어의 짜임에 방점을 두셨던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민 교수는 대학 4학년 2학기에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시(漢詩) 전부와 4개 장에 이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까지 줄줄 외던 그였지만 첫 시간에 《맹자》가 한 줄도 해석이 안 되는 자신의 실력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7년 동안 죽어라고 한문 공부를 했다고 한다. 고전문학자 중에는 고문(古文) '현대적 재해석'을 중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정민 교수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옛 시인의 마음속으로 제대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최우선시하기에 지금 내 얘기를 하기 위해 옛 글을 끌어오는 시도를 한 적은 전혀 없다. 정민 교수가 가장 좋아하고 또 영향을 많이 받은 이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연암은 인문 정신 그 자체입니다. 연암을 만난 뒤 공부의 목적도 바뀌었고, 제 정신의 힘과 급()도 달라졌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한시 미학을 쉽게 풀어 소개한 <한시미학산책>, 청소년을 위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냈다. 이후 조선 후기 산문에 관심을 두어 박지원의 문장을 꼼꼼히 읽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이덕무의 청언 소품을 감사한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18세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와 병적인 수집에 관한 책 <미쳐야 미친다>등 현재까지 30여 권의 고전 문학 관련 책을 출간했다.

 

그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이 경험했던 정보화 사회가 21세기 정보화 사회와 본질 면에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믿는다. 다산 선생의 지식 경영을 꼼꼼히 살핀 이 책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저술되었다.

 

정민 교수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남는다 : "고전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이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고전에 답이 다 있어요. 직접 읽으면 알게 될 겁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설

 

다산 정약용! 나는 그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인문학자라고 생각한다.[13]

 

그는 이론과 현장을 아우를 줄 알았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주자하고도 맞섰고, 실용에 맞지 않으면 임금 앞에서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스스로 따져보아 납득한 것만 믿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늘 합리적이었고 실천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공리공론이었다.[14]

 

나는 다산을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해낼 줄 알았던 전방위적 지식경영가라고 부르겠다.[14]

 

그의 작업진행과 일처리 방식은 명쾌하고 통쾌하다. 먼저 필요에 기초하여 목표를 세운다.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한다. 명확하게 판단해서 효과적으로 분류한다. 분류된 자료를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한다. 작업은 여럿이 역할을 분담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단언컨대 그는 우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탁월한 지식 편집가요, 전방위적 지식경영가였다.[15]

 

다산을 포함해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경영 방식은 오늘의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수집벽과 정리벽은 이 시기 지식인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표징이다. 이들은 무엇이든 흥미가 생기면 즉각 자료수집에 착수했다. 목차와 범례를 세워 놓고 단계를 밟아 진행했다. 이들의 작업과정을 들여다보면 토론과 돌려읽기 방식을 통해 정보를 확충하고 관점을 조정해 나갔음을 볼 수 있다. (…) 하지만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저술원리는 한 가지다. 널려 있는 정보를 수집/배열해서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이 점이 내가 이 시기 지식인들을 지식경영가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이것은 실학의 범주 구분을 넘어서는, 이 시기 지식 시장의 강력한 원리요 기본 원칙이었다.[16]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이를 버리겠느냐며, 이 작업을 하다가 저 작업에 착수하고, 저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작업을 벌였다. 연보를 통해 저술연대를 추정해 보면, 그는 언제가 동시에 7~8가지 이상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집체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경우 다산은 목표와 지침만 내렸다. 작업은 아들과 제자들이 다했다. 정리가 끝나면 다산은 그 내용을 감수하고 서문을 얹어 책으로 묶었다. 문제의 핵심은 지식을 편집하고 경영하는 안목에 있었다. 실무작업의 과정에서 스승은 지식경영의 실제를 가르쳤고, 제자들은 공부의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결국 제자들도 스스로 자신의 관심에 따라 독자적인 저술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산은 이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한 야전사령관이었다.[18]

 

다산의 위대성은 그의 작업량이 아니라 작업의 성격에서 발견된다. 그는 한 가지 편집원리로 경학과 경제의 핵심주제들을 관통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 저변에 깔리 정신은 위국애민 네 글자뿐이었다. 그는 경학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실제의 쓰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작업했다. 다산은 원리원칙을 벗어난 작업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또 많은 적을 만들었다.[19]

 

그의 성과는 대부분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의 고초 속에서 이룩된 것이다. 한 사람이 뜻을 세워 몰두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실천해 보였다. [19]

 

그는 냉철한 학자이기 이전에 유머를 아는 따뜻한 인간이었다. 차기만 하고 따뜻함이 없었다면 결코 이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늘 시대의 아우성에 먼저 귀를 기울였고, 민초들의 삶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20]

 

이 책의 모든 작업과정 또한 철저하게 다산의 방식을 활용하고 적용했다. 전체 목차를 먼저 세우고 갈래를 나눠 카드작업을 했다.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다산시문집>을 수십 버도 더 되풀이해 읽고 또 읽었다. 작업과정 내내, 다산식 지식경영법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 비슷비슷한 화제임에도 전체에 걸쳐 같은 지문을 중복 인용한 것이 거의 없다. 그만큼 그의 학문은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었다.[20]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는 이의 가슴을 쿵쾅대게 하고, 다산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 연암은 치고 빠지지만, 다산은 무릎에 앉혀놓고 알아들을 때까지 일깨워준다. 연암과 다산을 만나 내 학문이 풍요로워지고, 공부의 안목이 넓어지고, 삶의 눈길이 깊어진 것이 참 기쁘다.[21]

 

<1강 단계별로 학습하라>

 

1장  파 껍질을 벗겨내듯 문제를 드러내라

 

다산은 계속해서 껍질을 벗겨내다 보면, 다시 말해 하루도 끊임없이 궁구하고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버려야 할 껍질과 먹을 수 있는 속살이 구분되는 시점이 온다고 했다.[26]

 

먼저 핵심 개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갈라낼 수 있다. 핵심을 잡으려면 안목과 식견이 서야 한다. 안목과 식견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일단 옥석을 가리지 말고 따져보고 헤아려 보아야 한다.[27]

 

대게 논문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테마를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28]

 

정존은 조용히 따지고 살펴 그 깨달음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동찰은 이를 실제에 적용하여 맞는지 맞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면밀히 따져 관점을 세운 후, 비로소 실제에 적용한다. 이때 주경과 궁리의 태도가 요구된다. 주경이란 성심을 다해 주제에 몰입하는 것이다. 궁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탐색의 과정이다. (…) 항상 정존에서 동찰로 이어지고, 동찰이 다시 정존으로 환원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29]

 

석 자를 파면 축축한 흙이 나오고, 여섯 자를 파면 탁한 물이 나온다. 여기서 석 자를 더 파들어가야 달고 찬 샘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석 자만 파다 말면 고작해야 부뚜막 바르는 데나 쓸 수 있는 축축한 흙을 얻는 데 그칠 뿐이다. 바른 독서는 그저 글의 껍질만 읽어 축축한 흙을 얻은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달고 찬 샘물을 길어 올리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30]

 

다산은 독서에서 푹 젖어듦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의 껍질과 속살을 구분해 내려면 아홉 자 우물을 파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실마리를 잘 잡아야 한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단서를 잡아야 한다. 여기에는 거듭되는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32]

 

공부는 내 삶을 가치 있게 향상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32]

 

2장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다산은 촉류방통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연쇄적으로 가르쳐, 이것으로 미루어 저것까지 알게하는 학습법이다.[39]

 

이게 뭘까? 왜 그럴까? 어떻게 이해할까? 모든 의문은 대부분 이 세 범주 속에 놓인다.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라면, 우선 무슨 현상을 분석할 것인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하고,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따질 수가 있다.[44]

 

자료를 수집하고 생각의 갈래를 나누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생각이 정돈되면 글 쓰는 일은 대개 손가락 아래의 일이다. 하지만 생각이 정돈되지 못하면 자료를 다 모아놓고 몇 년이 지나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한다. [46]

 

다산은 말한다. 갈래를 나누고 종류별로 구분하라. 그렇게 해야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드러난다. 그런 다음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아내야 한다. 계통을 확립해야 한다. 산만해서는 안 되고 집중해야 한다.[47]

 

3장  기초를 확립하고 바탕을 다져라

 

터다지기를 굳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근사한 집을 지어도 단청이 채 마르기 전에 주춧돌이 먼저 내려앉는다. 공부도 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기초를 튼실히 닦아야 한다.[49]

 

공부보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얘기다. 인간은 인간성에 바탕한 근기를 갖출 때 비로소 목표가 생긴다.[49]

 

다산은 도처에서 바탕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54]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말미암은 것인가? 근기, 즉 바탕 공부의 차이 때문이다. 역경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순경에서 금방 교만해지게 마련이다.[57]

 

4장  길을 두고 뫼로 가랴 지름길을 찾아가라

 

바른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거두는 보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먼저 공부하는 머리가 트여야 한다.[59]

 

물은 가장 빠르고 신속한 길을 따라 흘러내려 도랑을 만든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최적, 최선의 길이 있다.[60]

 

다산이 말하는 지름길이란 남들이 보기에는 돌아가는 길이다. [62]

 

다산은 지름길로서 선경후사법을 제시했다. , 경전을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역사서를 읽는 방법이다. 경전공부는 나의 바탕을 다져 주고, 역사 공부는 득실치란의 변화를 이해하게 해 준다. 경전이 원리를 제시한다면, 역사는 그 원리의 적용과 변화를 이해시켜 준다.[65]

 

다산이 말하는 지름길은 바른 길이다. 바탕을 다지는 것이 질러가는 방법이다.[68]

 

5장  종합하고 분석하여 꼼꼼히 정리하라

 

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다. 고수들의 말은 쉬워 못 알아들을 것이 없다. 하수들은 말은 현란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70]

 

무릇 독서란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모름지기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차례차례 설명하여 글로 짓는 것을 날마다 일과로 삼아라. 이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곁으로 백 종류의 책을 함께 들여다복 될 뿐 아니라, 본래 읽던 책의 의미도 분명하게 꽤뚫어 알 수가 있다.[75]

 

이런 공부의 과정을 목차를 세워 작은 책자로 정리하면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된다.[76]

 

다산은 이렇게 작은 의문 하나를 발전시켜 계통을 갖춘 지식으로 나아가는 공부의 과정과 단계를 직접 예를 들어 보여주었다. 뿌리를 캐들어 가면서 방증이 될 만한 지엽적인 자료들을 수집하여 수렴과 확산의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문제의식이 심화되고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77]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익숙해지면 하루에 한 가지씩 이런 작은 책자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다산은 이것을 격물공부로 설명했다. 격물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물의 의미에 대해 끝장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격물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77]

 

 

<2강 정보를 조직하라>

 

6장  목차를 세우고 체재를 선정하라

 

어떤 일을 하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목차와 개요를 세우는 것이다. 목차를 세우려면 우선 머릿속에 전체 얼개가 짜여야 한다. 내 앞에 놓인 자료를 장악하지 않고 목차를 짜기란 불가능하다.[81]

 

전체의 계획을 세워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다산이 평생을 두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 일이었다.[82]

 

다산은 어떤 작업을 하든지 우선 목차와 범례를 확정하여 책의 목적과 목표, 전체 골격을 완전히 구성한 뒤에 착수했다.[87]

 

7장  전례를 참고하여 새 것을 만들어라

 

다산은 저술의 목표를 정하거나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때 결코 앞선 것을 그대로 따르는 법이 없었다. 상황이 같은가? 적용에 문제는 없는가? 무엇이 다른가? 어떤 점을 따로 고려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살펴 실천 가능하고 적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 혹 참고할 자료가 없으면 그 발상만 가져와 기본 정신의 바탕 위에서 새롭게 출발했다.[92]

 

다산은 언제나 관련 참고서적을 수집하는 일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목차를 검토하고 범례를 비교하여, 그 많은 정보를 당면과제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재배열 했다. 타당성과 현실성에 대한 검토없이 남의 것을 그저 가져다 쓰는 법은 결코 없었다.[95]

 

좋은 모범을 찾아라. 하지만 그대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 내가 옛것에서 배울 것은 생각하는 방법 뿐, 내용 그 자체는 아니다.[101]

 

8장  좋은 것을 가려 뽑아 남김없이 검토하라

 

취선논단은 여러 정보 가눙데 가치 있는 것만 추려내어, 다시 하나하나 타당성을 따져보고 검토하는 것이다. 다산이 <논어> 한 줄을 읽기 위해 책상 위에 참고도서를 줄줄이 펼쳐 놓고 이러저리 들춰보고 대조하고 메모하며 따져보던 그 몰두와 집중의 정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102]

 

유용한 자료를 취하고 쓸모없는 자료를 버릴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111]

 

문제는 나에게 있다. 자료에 있지 않다.[112]

 

9장  부분을 들어서 전체를 장악하라

 

거일삼반이란 한 모서리를 들어 나머지 세 모서리를 뒤집는 것이다. 툭 건드려 오성을 활짝 열어주는 방식이다.[113]

 

다산은 속인의 때를 벗고 달사의 식견을 지니려면 문심혜두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심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고, 혜두는 지혜의 구멍이다. 쉽게 말해 안목이 열리고 식견이 툭 터져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되는 상태다.[115]

 

교육의 목표는 지혜의 샘을 열어주는 데 있다. 샘물은 조금도 아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많이 퍼갈수록 더 많이 솟는다.[116]

 

다산은 끊임없이 자식과 제자들에게 읽고 공부한 것을 간추려서 정리해 둘 것을 요구했다. 정리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역량을 기르며,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자신도 초록하고 정리하고 메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119]

 

이렇듯 큰 학자는 우연히 얻은 반 권짜리 책의 한 귀퉁이에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을 건져 올린다. 도는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있다. 공연히 아득한 곳에서 있지도 않은 도리를 숭상하면서, 제가 딛고 선 자리는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다.[123]

 

다산은 말한다. 한 모서리를 들어 전체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를 들어 열을 아는 공부를 해라. 큰 공부를 하려면 안목이 열려야 한다. 식견이 툭 터져야 한다. 통째로 보고 핵심을 잡아야 한다. 삼라만상이 모두 책이다. 네 오성을 활짝 열어라.[123]

 

10장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아라

 

모든 작업은 방대한 자료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뒤죽박죽으로 섞인 정보를 갈래별로 나누면 비로소 흩어진 정보들이 하나의 방향을 지시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휘분이다. 갈래별로 쪼개어 나눈 정보는 다시 큰 묶음으로 모아 하나의 질서 속에 편입시켜야 한다. 그러면 계통이 서서 구획이 나누어진 전체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취다.[125]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육우의 <다경>이나 유득공의 <연경>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128]

 

복잡한 문제 앞에 기죽을 것 없다. 정보를 정돈해서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 먼저 모으고, 그 다음에 나눠라. 그런 뒤에 그룹별로 엮어 다시 하나로 묶어라. 공부는 복잡한 것을 갈래지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교통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135]

 

 

<3강 메모하고 따져보라>

 

11장             읽은 것을 초록하여 가늠하고 따져보라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내 학문이 먼저 주장하는 바가 있은 뒤라야 저울질 내 마음에 있어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139]

 

초서권형은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를 초록하며 정보의 가치를 저울질 하는 것이다. 순서로 보면 저울질이 먼저고 그 다음이 카드작업이다.[139]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발췌하려면 먼저 정보를 발췌하는 주체의 주견이 확립되어야 한다.[140]

 

옛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요긴한 대목과 만나면 곁에 쌓아둔 종이를 꺼내 옮겨 적었다. 이렇게 적은 쪽지들이 상자에 잔뜩 쌓인다. 그러면 어느 날 계기를 마련하여 상자를 열고 그 안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검토한다. 초록을 할 당시에 이미 주견이 서 있었으므로, 갈래별로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140]

 

독서에 메모의 습관을 들이면 그 핵심 내용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난다. 정보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된다.[142]

 

뜻을 먼저 정하는 것은 작업의 목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우는 것은 작업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다.[144]

 

필자의 경우도 지금 문목을 먼저 세워놓고 초서의 방식으로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시문집> 9책을 펼쳐 놓고 몇 차례 통독하여 대강의 문목을 세웠다. 그러고는 읽다가 요긴한 대목들을 발췌해서 그때그때 초록한다. 각 항목의 끝에는 해당 문목을 표시한다. 1차 초서작업이 끝난 뒤 문목에 따라 휘분류취하여 항목들을 재배열 한다. 내용이 빈약할 경우 다시 <다산시문집>을 펼쳐들어 그 항목에 뜻을 두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읽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 처음 이 책을 구상했을 땐 그저 추상적인 생각의 단편들만 있었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책상 앞에 따로 붙여둔 종이에 그때그때 메모해 둔 것이었다. (…) “또 그 방법은 10항목을 한도록 삼았습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통행하는 문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이 언급은 필자에게, 책에 좀 더 일관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기계적인 배치가 전체 구성을 더 일사불란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고려했다. 카드 작업이 계속되면서 항목들은 더 잘게 세분되었고, 생각도 점점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었다. [145]

 

다산에게 초록은 체질화되고 생활화된 습관이었다. 초록없이 기억력만으로 그 방대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란 불가능하다.[148]

 

주견을 먼저 세워라. 생각을 붙들어 세워라. 그런 뒤에 책을 읽어라. 손으로 읽어라. 부지런히 초록하고 쉴새없이 기록해라. 초록이 쌓여야 생각이 튼실해진다. 주견이 확립된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열심히 적어라. 무조건 적어라.[148]

 

12장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하라

 

수사차록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생각은 쉽게 달아난다. 붙들어두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생각을 붙들어 두는 방법으로 메모보다 좋은 것이 없다.[149]

 

다산에게 책을 읽는 행위는 중요한 부분을 초록하고, 의미가 맺히는 대목에는 자신의 생각을 메모해 가면서, 지적인 성장과 인간의 성숙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위였다.[152]

 

다산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메모하고 생각하고 정리했던 메모광이요 정리광이었다. 그 메모가 밑거름이 되어 수많은 저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154]

 

묘계질서라는 것인데 묘계는 번뜩하는 깨달음이요 질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즉각 메모하는 것이다.[155]

 

이 질서 정신의 핵심은 의문을 품는데 있다.[155]

 

부지런히 메모하라. 쉬지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다.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억해라.[159]

 

13장             되풀이해 검토하고 따져서 점검하라

 

반복참정은 되풀이해서 따져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161]

 

다산의 반복참정은 근거에 바탕하여 가설을 세워놓고, 그 가설을 입증할 증거들을 더 찾아내 선명한 구도가 드러날 때까지 되풀이해 살펴 보고 반복해서 상량하는 것이다.[163]

 

공부는 따지는 데서 시작해서 따지는 것을 끝난다. 비교해보고 대조해보고 견주어보고 흔들어보아라.[169]

 

14장             생각을 정돈하여 끊임없이 살펴보라

 

잠심완색은 마음을 온통 쏟아 음미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잠심은 마음을 그 속에 푹 담그는 것이다. 완색은 아이들이 완구를 가지고 놀 듯 항상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170]

 

잠심완색의 목적은 융회관흡에 있다. 전에는 하나도 모르던 것이 어느 것 하나 모를 것 없는 상태로 올라서는 것이 융회이고, 한 꿰미로 꿰어 속속들이 무젖어드는 것이 관흡이다.[173]

 

다산은 어제 확신한 것을 오늘 허무는 잠심완색을 거듭하고 있었다. 학해무변, 즉 배움의 바다는 가없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178]

 

공부에 끝이 있는가? 공부에는 끝이 없다. 마음을 푹 담가 한 우물을 들이파라. 이쯤하면 되겠지,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장벽을 만나거든 네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라. 잠시도 놓지말고 석연하게 투득하라. 그래야 네가 하는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180]

 

15장             기미를 분별하고 미루어 헤아려라

 

지기췌마는 기미를 미리 알아 미루어 헤아려 준비하는 것이다. 일이 닥친 뒤에 대처하면 너무 늦다. 미루어 짐작하고 헤아려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안 보이는 것까지 보아야 한다. 공부와 삶은 별개의 무엇이 아니다. 따로 놀면 안 된다.[181]

 

다산은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예방하며, 일이 생기면 합리적으로 처리해서 뒷말이 없게 했다.[183]

 

다산은 이렇게 합리적이고 명확한 일처리로 목민관의 바른 본을 보였다. 과정을 손금 보듯 장악하고, 허실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185]

 

다산은 정보를 장악하여 생각으로 미루어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187]

 

미리 헤아려 대비하라.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핵심을 찔러라. 맥락을 읽고 행간을 읽어라. 글을 읽지 말고 마음을 읽어라. 껍데기만 쫓지 말고 알맹이를 캐내라.[192]

 

 

<4강 토론하고 논쟁하라>

 

16장             질문하고 대답하며 논의를 수렴하라

 

질정수렴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논란이 있던 문제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 가는 것이다. 다산의 시문집에 수록된 많은 편지글들은 상당 부분 학문적 관심사에 대해 질정수렴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195]

 

초고를 쓰면 이것을 빈 공책에 정리해서 초본을 만들었다. 그 초본에 수정과 첨삭을 거듭한다. 잘못된 것은 지우고 새로운 생각은 여백에 채워넣고, 그래도 부족하면 별지를 덧붙였다. 너무 어지러워 지저분해지면 다시 중간본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질정하고 수렴해서 마지막 최종본을 만든다.[196]

 

성호는 서면토론의 유익한 점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문제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다. 쉽게 답하지 못 한다. 오래 기억할 수 있다.”[201]

 

메모하고 정리하라.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질문하고 토론하라. 공부는 토론을 통해서 발전한다. 남김없이 질문하고 가차없이 비판하라. 한쪽이 꺾일 때까지 토론하라. 승복할 때까지 논란하라.[204]

 

17장             끝까지 논란하여 시비를 판별하라

 

대부상송법은 두 사람의 견해가 팽팽히 맞설 때 제 3자에게 문제를 넘겨 시비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205]

 

서면토론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토론보다 진지하고 체계가 있지만, 막상 이견이 있을 경우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206]

 

이렇게 격렬한 논쟁을 주고 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만년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지켜갔다. 이 사실이 내게는 더 감동적이다.[210]

 

다산은 저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복수의 토론자에게 논평을 부탁하여, 토론자끼리도 서로 비교/대조해 가면서 지적한 논평을 받았다.[213]

 

잘못은 변명 없이 깨꿋이 수긍하라. 비판은 겸허히 받되,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214]

 

18장             생각을 일깨워서 각성을 유도하라

 

제시경발은 이끌어 일깨우고 경계하여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제시는 붙들고 하나하나 일깨워줌을 말한다.경발은 깨우쳐 오성을 열어주는 것이다.[215]

 

토론 중에 시비가 붙어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공부의 자리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그게 겁난다고 공부하는 사람이 토론을 꺼리거나 자기 의견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은 학자의 바른 자세일 수 없다.[220]

 

느닷없는 한 차례의 망치소리에 놀라 생긴 병은 백번 천번 거듭 들려주면 쉽게 낫는다. 공부하는 사람이 뜬금없는 비방에 놀라 주눅들고 위축된다면, 망치소리 듣고 병난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돌아 보아 과감히 고칠 일이요, 떳떳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굳세게 지켜 밀고 나갈 뿐이다.[222]

 

19장             단호하고 굳세게 잘못을 지적하라

 

공부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칭찬하는 법이 없다. 그가 잘못한 것을 드러내서 더 향상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225]

 

다산의 토론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이것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232]

 

중간에 그만둘 토론은 시작하지도 마라. 송두리째 의심하고, 남김없이 파헤쳐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마라.[234]

 

20장             근거에 바탕하여 논거를 확립하라

 

무징불신은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토론과 논쟁에서 가치 판단의 최종 근거는 확실한 증거나 논거다. 논거 없이 목소리만 높여서는 상대를 설득할 수가 없다. [235]

 

박지원은 글이란 소송을 거는 사람이 증거를 들이대고, 장사치가 물건을 직접 보여주며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245]

 

주장을 함부로 내세우지 마라. 증거 없이 말하지 마라. 논거가 없으면 논리도 없다. 학문의 일은 가설을 세우고 논거를 찾아 이를 입증하는 과정일 뿐이다. 학문도 다를 것이 없다.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증거를 들이대라. 막연한 추정이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은 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주장을 입증하려거든 증거를 찾아라. 논쟁에서 이기려거든 논거를 제시해라.[246]

 

 

<5강 설득력을 강화하라>

 

21장             유용한 정보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라

 

피차비대는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대조한다는 뜻이다. 의미가 모호하여 잘 드러나지 않을 때, 다른 것을 끌어와 비교하고 대조하여 논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다산은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경증경, 즉 경전의 내용을 다른 경전과 대비하여 밝히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경증경은 다산이 경전해석과 관련해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시한 접근방식이다.[249]

 

다산은 이렇게 분명한 근거를 끌어와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용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 그의 논리가 명쾌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256]

 

억지 부리지 말고 근거로 말하라. 증거로 설득력을 강화하라. 증거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259]

 

22장             갈래를 나눠서 논의를 전개하라

 

속사비사는 글을 엮을 때 적절한 예시를 함께 얹는 것이다. 오늘로 치면 인용법과 예시법에 해당한다. [260]

 

속사비사의 구체적인 방법은 조관류췌, 즉 조목조목이 서로 맥락으로 구슬 꿰듯 이어져, 주제별로 모이는 방식이다. 큰 주제를 서로 뒤섞지 않는 방식이다.[262]

 

다산은 압해 정씨의 가승을 핵심만 간추리면서 크게 세 가지 요점을 제시했다. , , 선이 그것이다. 근은 삼가는 것이다. 졸은 졸박함으로서 겉보기에는 겁쟁이 같지만 속은 실상 곧고 굳어서, 일체의 권력을 뺴앗고 떨쳐 펴는 자리에는 매번 몸을 사리고 움츠려 앞장서지 않는 것이다. 선은 착함이다. 여기에 다산은 이 세 가지를 묶어 퇴일보의 미학을 강조하면서 글을 맺었다.[268]

 

글을 쓸 때는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 적절한 예시와 알맞은 인용은 글의 설득력을 강화한다. 조목을 갖춰 실례를 얹어야 글에 힘이 붙는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핵심 개념을 잡아라. 덮어놓고 가지 말고 갈 길을 알고 가라.[270]

 

23장             선입견을 배제하고 주장을 펼쳐라

 

공심공안은 공정한 태도로 선입견을 배제한 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선입견을 일을 쉬이 그르친다.[271]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한 비판 정신과 합리적인 판단력이다. 순수하게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산은 공부에 있어 선입견을 배제한 공정한 태도를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러자면 먼저 바른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272]

 

다산은 공부 중에 맞닥뜨린 어려운 문제들을 학파적 견해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혼자 해결해 나갔다. 순수한 의심을 품어, 마음으로 납득이 될 때까지 반복참정해서 마침내 석연하게 풀릴 때까지 밀고나가는 방식이었다.[275]

 

백가의 말을 두루 인증하여 출처가 무궁하니, 실로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고서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조의 다산에 대한 인가가 이처럼 두터웠다.[276]

 

하지만 다산은 자신의 작업이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공심공안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277]

 

선입견을 버려라. 편견은 학문의 독이다.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객관적인 논거에 바탕해 주장해야지, 막무가내로 우기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선입견을 버리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거울처럼 비고 저울처럼 공평해야 한다. 아랫사람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라. 패거리지어서 짓밟으면 안 된다.[281]

 

24장             단계별로 차곡차곡 판단하고 분석하라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 곧 이로움과 해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으뜸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얻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282]

 

층체판석은 단계별로 하나하나 따져서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설득력을 강화하려면 문제를 단계별로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생각에도 단계가 있다. 증거를 아끼고 논리를 절제해서 꼭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써먹을 데 써먹어야 한다.[282]

 

다산은 늘 문제의 층위를 나누고 갈래를 구분하여, 복잡한 생각들을 교통정리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283]

 

다산의 저작은 그 목차만 보더라도 생각의 길과 방향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단계를 뒤섞는 법이 절대로 없다. 다루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 이것이 중요한가를 검토한 뒤에, ‘어떻게다룰 것인가를 점검했다. 그러고 나서도 예상 외의 상황을 상정하여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했다.[287]

 

다산이 복잡한 문제를 층체판석하기 위해 즐겨 활용한 방법은 문답법이다. 질문을 먼저 던져놓고 답변을 하고, 그 답변에서 다시 꼬투리를 잡아 다시 반론하고 또 답변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문제의 단계가 조금씩 심화되어, 끝에 가서는 예상되는 상대의 모든 반론을 격파한다.[291]

 

25장             핵심을 건드려 전체를 움직여라

 

본의본령은 작업을 함에 있어 핵심가치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작업에 바탕이 되는 뜻이 본의이고, 작업의 의미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본령이다. 다산의 그 많은 저술은 각각 나름의 핵심가치를 지향하고 있다.[292]

 

저술에서 다산이 생각한 본의와 본령은 삼엄한 건장궁의 천문만호를 일시에 열어젖혀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와 같은 것이었다. 이 열쇠가 없으면 아무리 해박한 식견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쓸모없는 책이 되고 만다.[300]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본령이 드러나지 않는다. 내 글과 남의 글을 뒤섞어도 안된다. 계통을 세워 알맹이로 채워라.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라. 눈 높이를 맞춰라.[301]

 

 

<6강 적용하고 실천하라>

 

26장             쓸모를 따지고 실용에 바탕하라

 

강구실용은 실제에 유용한 공부를 하라는 말이다. 실용을 강구한다는 말은, 무엇 때문에 이일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는 뜻이다.[305]

 

강구실용, 이 네 글자야말로 다산의 학문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는 실용의 가치를 높이 세워, 학무을 세상과는 무관한 별도의 가치쯤으로 여기는 시대풍조를 맹렬히 비판했다.[306]

 

다산은 나에게서 말미암은 공부가 미루어 남에게까지 확산될 때 비로소 그 학문이 보람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307]

 

쓸모를 따지는 일에서 공부를 시작하라. 나의 이 공부가 무엇에 소용될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이 공부를 하는지, 이 일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자주 점검해 보아야 한다.끊임없이 본령을 떠올려라. 쓸모를 강구해라.[314]

 

27장             실제에 적용하여 의미를 밝혀라

 

채적명리는 적합한 방법이나 적절한 예시를 채택하여 의미 또는 의의를 밝히는 것이다. 이치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315]

 

다산은 여러 글에서 반복하여 합리성과 실용성에 입각한 실사구시의 정신을 강조했다. 공리공담을 내 던지고 주어진 상황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역량을 갖추라고 주문했다.[326]

 

28장             자료를 참작하여 핵심을 뽑아내라

 

참작득수는 다양한 자료를 참작하여 정수만을 가려 뽑는다는 뜻이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관련 있는 정보를 망라하여, 쓸모에 맞게 꼭 필요한 핵심만을 간추려 내는 것이다. 다산은 여러 자료를 섭렵한 바탕 위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추려내 정리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328]

 

공부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하는 과정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고, 산만한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 남의 것을 빌려와 실정에 맞게 변화시켜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328]

 

꼼꼼히 따지고 폭넓게 검토하라. 실용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하라.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상을 바꿔라.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나름대로 하고, 되는 대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해결책은 이미 있는 것들 속에 숨어 있다.[338]

 

29장             좋은 것은 가리잖고 취해와서 배워라

 

득당이취는 남에게서 좋은 것을 얻어다가 내게로 옮겨 오는 것이다. 남의 좋은 점을 가져다가 내게 적용함으로써 나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다.[339]

 

좋은 것은 무조건 배워올 뿐 자존심은 필요가 없다. 나보다 나은 것은 꼼꼼히 살펴 옮겨와야지, 허세가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우리는 늘 반대로 하니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344]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뿐 네 것과 내 것은 없다. 부족한 것은 익히고 필요한 것은 배워라. 배우는 자리에서 체면을 따져서는 안 된다. 남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의 나쁜 것은 과감히 버려라. 하지만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실상에 맞게 바꿔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있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349]

 

30장             단계별로 다듬어 최선을 이룩하라

 

수정윤색은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어서 완성된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때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서슴없이 고치고 기꺼이 바꾸는 태도가 필요하다.[350]

 

큰 원칙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시행 세칙만큼은 현실에 적용해봐서 맞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수정, 윤색하여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351]

 

다산은 <마과회통>을 엮을 때도 새로운 자료를 손에 넣을 때마다 전체 내용을 손봐, 초고를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고쳤다. 생명을 다루는 내용이라 하나라도 잘못되면 자칫 인명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합리적인 지적이면 조금도 거리낌 없이 기쁘게 받아들였고, 납득되지 않으면 끝까지 고집하여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352]

 

이런 저술들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서 수십 년에 걸쳐 하나씩 모으고 다른 이에게 묻고 꼼꼼히 정리하여 완성한 것들이다.[353]

 

다산의 저작에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의 글을 시리즈로 남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 한 가지 문제 의식을 일과적으로 끝내지 않고, 다면적으로 접근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때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가 실용성의 강화에 있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356]

 

다산은 한 번 제기된 문제는 절대로 한 차례 논의로 그치는 법이 었었다. 총론을 제시하면 반드시 각론으로 나아갔고, 설명이 미진하면 형식을 바꿔서라도 재론했다. 직설법으로 주장하다가 미진하면 비유를 써서 풀이했다. 실례를 들어 보이고, 예외까지 상정해서 철저하게 논했다. 그래도 앞에서 한 논의가 되풀이되는 법 없이 보완 관계를 이루며 하나로 종합되었다.[360]

 

 

<7강 권위를 딛고 서라>

 

31장             발상을 뒤집어 깨달음에 도달하라

 

일반지도는 한 차례 생각을 돌이켜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이다.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바꾸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 역경과 위기에 쉽게 침몰하는 대신 이를 기회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363]

 

상식과 타성을 걷어내라. 나만의 눈으로 보아라. 생각의 각질을 걷어내고 나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듣고 나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미처 그런 줄 몰랐던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라.[373]

 

32장             권위를 극복하여 주체를 확립하라

 

불포견발은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나아가는 것이다. 옳다는 확신이 서면 어떤 권위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374]

 

실제로 다산의 글을 읽다보면 무모할 정도로 지나친 자기 확신과 고집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겉으로는 겸손해도, 고금의 학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끝까지 내세움으로써 선유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은 다산의 주특기였다.[380]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라. 권위에 압도되어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굳게 붙들어 뿌리를 뽑아라. 입장을 세우고 견해를 가져라. 목표를 정해서 그를 뛰어넘을 때까지 정진하고 정진하라. [383]

 

33장             도탑고도 엄정하게 관점을 정립하라

 

 

 

34장             다른 것에 비추어 시비를 판별하라

 

 

 

35장             속셈없이 공평하게 진실을 추구하라

 

 

<8강 과정을 단축하라>

 

36장             역할을 분담하여 효율성을 확대하라

 

분수득의는 역량에 따라 역할을 나누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역할분담의 중요성에 대해 다산은 여러 곳에서 강조했다.[423]

 

집체작업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구성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라 믿고 맡겨라. 중간중간 점검하고 체크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라. [432]

 

37장             목표량을 정해놓고 그대로 실천하라

 

정과실천은 매일 일정한 목표를 세워놓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전체의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소용되는 날짜를 계산한 후,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을 결정하는 것까지가 정과다.[433]

 

아침에 세수한 후 자세를 바로 하고 소리를 내서 편지 한 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전 내내 아침에 읽은 내용을 음미했다. 남들 낮잠 잘 시간에 편지글에 대한 자신의 독후감을 하나하나 메모했다. [434]

 

정과독서는 마음을 다잡고 무절제해지기 쉬운 생활에 긴장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439]

 

귀양온 뒤에는 다산도 일과를 정해 경학연구에 몰두했다. 그것은 하루의 작업 목표량을 정한 후, 날마다 이것을 누적해 가는 방식이었다. 다산의 방대한 저술은 하루하루 정과를 실천하고, 제자들의 집체작업에 의한 성실한 뒷받침이 있었던 결과이지, 다산 자신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440]

 

날마다 규칙적으로 초서하고, 목표를 정해 공부하던 습관과 정리벽이 낳은 결과였다.[444]

 

목표를 세워 전체 규모를 장악해야 한다. 목표는 하루단위로 쪼개 확실하게 실천해라. 이것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차질 없이 밀어 붙여야 한다.[444]

 

38장             생각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단련하라

 

포름부절은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 문제를 심화하고, 성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학문의 길에서 훌륭한 토론자의 지적과 일깨움은 정신의 고기요 쌀이다.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 문제가 더욱 선명해지고, 정리가 요령을 얻으며, 논리에 힘이 붙는다.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445]

 

다산의 위대성은 주변의 이런 숨은 조력자나 비판자들에 의해 더욱 굳건해질 수 있었다.[454]

 

바름을 따라 잘못을 기꺼이 고치는 데서 비로소 발전과 성장의 기틀이 마련된다.[454]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남에게 비판을 요구하라. 작업의 효율을 높이려면 중간중간 방향을 점검하라.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고, 확신이 서면 끝까지 물러서서는 안 된다. 매섭게 비판해도 인간에 대한 애정마저 망각하면 안 된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여럿이 낫다. 남의 말에 귀를 막고 있으면 발전은 없다.[454]

 

39장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내 눈을 거쳐간 정보들을 얼마나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어떻게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활용하느냐가 학문의 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다.[455]

 

이 때 중요한 것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잘 추슬러 창조적인 작업으로 연결짓는 역량이다.[457]

 

평소에 생각의 날을 벼리고 정리를 습관화해야 한다. 다산은 끊임없이 초서하고 틈만 나면 정리했다. 이런 정리의 습관이 그 복잡하고 방대한 자료를 취급하면서도 다산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일 없이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해낼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461]

 

정리는 체계적으로, 작업은 능률적으로 하라. 끊임없이 초서하고 쉬지 말고 정리하라. 작업의 목표를 수시로 점검하고, 계속해서 효율성을 제고하라.[465]

 

40장             조례를 먼저 정해 성격을 규정하라

 

조례최중은 일을 진행할 때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의 성격과 특성을 명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466]

 

다산 지식경영법의 기초는 카드작업, 즉 초서에 있었다. 다산의 편집서는 이렇듯 본격적인 저술을 위한 1차 작업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474]

 

작업에 앞서 반드시 밑그림을 그려라. 전체 설계 도면을 갖고 얼개를 짠 후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지금 하는 작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를 꼼꼼히 점검하라. 이 때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다. 그래야 공격 목표가 명확해진다. 처음에 터를 잘 다져놓고 출발하면 진행이 빠르다.[477]

 

 

<9강 정취를 깃들여라>

 

41장             정성으로 뜻을 세워 마음을 다잡아라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흘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하지만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482]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독서를 그만두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비록 이룩한 것은 없다 하나, 구멍을 뚫고 막힌 것을 툭 터지게 함을 삼가 지켰다고 말할 만하니, 또한 능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라는 세 글자를 받들어 따랐을 뿐이다.[492]

 

부지런히 노력해라. 성심으로 노력해라. 복사뼈가 세 번 구멍나고 벼루가 여러 개 밑창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묻지 마라.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책을 안 읽고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백 년도 못 되는 인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겠느냐?[495]

 

42장             아름다운 경관 속에 성품을 길러라

 

다산은 공부만 아는 골샌님이 아니었다. 풍류를 즐길 줄 알았고, 운치도 있었다.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훌쩍 길을 나서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496]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미리 깨어 준비한 자의 몫이다.[499]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사룸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천지 만물이 모두 책이다. 다산의 글에는 자연이라는 텍스트를 멋지게 읽어낸 글들이 적지 않다.[504]

 

43장             나날의 일상 속에 운치를 깃들여라

 

일상득취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린다는 말이다.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맑은 눈, 밝은 귀, 그리고 무엇보다 텅빈 마음이 있어야 한다.[508]

 

다산이 귀양지에서 그 긴 시간동안 올곧게 자신을 세워 뚝심 있게 공부를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일상득취의 묘를 잘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자신이 처한 공간을 정성껏 꾸몄다.[509]

 

일상의 공간에 마음을 쏟아라.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 마라. 내가 사는 공간에 정성을 쏟아 그곳에서 일상의 기쁨을 만끽해라. 생활 속에 운치를 깃들이는 일, 그를 통해 삶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은, 몸은 비록 티끌 세상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훨훨 자유로운 경계 속에 노닐게 하는 일이다.[520]

 

44장             한 마디 말에도 깨달음을 드러내라

 

보아 넘기지 말고 이치로 따져 음미하라. 가슴속에 금강석보다 빛나는 보석을 품어라. 문심혜두를 활짝 열어 촌철살인의 정신을 길러라. 하얗게 정신의 뼈대를 세워라.[531]

 

45장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

 

공부하는 사람은 생활에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현실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 따로 생활 따로는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말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증거다.[532]

 

다산은 공부를 핑계로 온 식구를 배곯리며 저 혼자 고고한 체하는 학문을 가장 혐오했다.[533]

 

선비가 제 공부를 핑계 삼아, 먹고사는 일에는 아는 체도 않으면서 부모와 처자를 굶기는 것은 인간이 덜된 것이요, 일종의 직무유기다. 거기서 무슨 고상한 학문이 나올 수 있겠는가?[535]

 

 

<10강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

 

46장             위국애민 그 마음을 한시도 놓지 말라

 

비민보세는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고 세상을 바로잡는데 보탬이 된다는 말이다. 다산의 삶과 학문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는 핵심가치의 첫번째 지향은 바로 비민보세에 놓인다.[545]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라. 이 마음이 없이는 학문도 문학도 아무 의미가 없다. 뜨거운 붉은 마음 없이는 소용이 없다. 제 몸만 아끼고 제 식솔만 챙기는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555]

 

47장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 말라

 

간난불최는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자는 태산처럼 늠연한 기상을 길러야 한다. 역경 앞에 담대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를 거듭해서는 큰 일을 성취할 수가 없다.[556]

 

다산은 임금의 사랑을 한 몸에 입어 한창 절정의 순간에 올랐다가 급전직하 나락의 수렁으로 떨어졌다. 셋째형은 참수형을 당해 죽고, 둘째형은 자신과 함께 귀양갔다. 한 집안의 풍운이 온통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다산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학문에 매진했다.[557]

 

사람의 도리를 다하였는데도 마침내 능히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운명일 따름이다. 마음을 편히 갖고 염려하지 마라. 잠시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합당한 도리인즉,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마라.[559]

 

다산의 위기 관리 능력은 탁월했다. 남 탓을 하는 대신 자신을 성찰했다.[562]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이렇게 각오를 다져 학문에 곧바로 몰입했다. 주막집 뒷방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생각은 담백하게, 외모는 장엄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한다는 네 가지 마땅함을 지키겠노라는 다짐을 세웠다.[563]

 

가난에 주눅들어 뜻을 잃지 말고, 근검의 정신으로 다잡아라.[566]

 

48장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지향하라

 

실사구시란 일을 실답게 하고 바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다산의 모든 작업의 밑바탕에 깔린 핵심가치의 세 번째 지향은 바로 이 실사구시 정신이다.[567]

 

실사구시란 쓰임새 있는 공부를 하고, 쓸모 있는 작업을 하자는 말이다. 다산은 선배들의 책을 평가할 때도 쓸모의 잣대로 논단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곤 했다. 그리고 나아가 그 문제점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576]

 

49장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라

 

오득천조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다산은 자신의 작업 뿐 아니라 제자를 육성하는 데서도 이 원칙을 견지했다. [579]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해서 기쁘고, 안 할 수 없고, 내가 다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라. 핵심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라. 그러자면 평소에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안목을 갈고 닦아야 한다.[590]

 

50장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하라

 

조선중화란 조선을 문화적 선진인 중화로 여긴다는 뜻이다.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을 지녀 남을 추종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591]

 

진짜가 되려면 내 목소리를 지녀야 한다. ‘지금 여기에 기초해야 한다.[593]

 

주체를 높이 세워 조선이 스스로 중화, 즉 문화의 중심이 되고, 이를 밑받침하는 문물은 밖의 것을 배워와 끊임없이 향상시켜나가는 것, 이것이 다산이 생각한 조선중화론의 핵심이다.[600]

 

정신의 주체를 굳건히 세워라. 그 바탕 위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이용후생을 강구하라.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변해서는 안 될 것까지 바꾸려 들면 주체가 무너진다. 주체가 무너지면 흉내만 남게 된다.[601]

 


 

내가 저자라면

 

책의 주제와 구성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을 통해 그가 험난했던 강진 귀양 18년 동안 약 500여 권에 달하는 그 엄청난 저술을 하게된 과정을 살피면서, 그가 저술 과정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유추되는 다양한 지식 경영 방법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10 50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 스스로가 다산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발견한 다산의 저술방법을 활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는 점이다. 10 50목 역시 이러한 원칙에 기반하여 스스로 세운 문목이다.

 

이 책의 모든 작업과정 또한 철저하게 다산의 방식을 활용하고 적용했다. 전체 목차를 먼저 세우고 갈래를 나눠 카드작업을 했다.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다산시문집>을 수십 번도 더 되풀이해 읽고 또 읽었다. 작업과정 내내, 다산식 지식경영법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 비슷비슷한 화제임에도 전체에 걸쳐 같은 지문을 중복 인용한 것이 거의 없다. 그만큼 그의 학문은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었다.[20]

 

필자의 경우도 지금 문목을 먼저 세워놓고 초서의 방식으로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산시문집> 9책을 펼쳐 놓고 몇 차례 통독하여 대강의 문목을 세웠다. 그러고는 읽다가 요긴한 대목들을 발췌해서 그때그때 초록한다. 각 항목의 끝에는 해당 문목을 표시한다. 1차 초서작업이 끝난 뒤 문목에 따라 휘분류취하여 항목들을 재배열 한다. 내용이 빈약할 경우 다시 <다산시문집>을 펼쳐들어 그 항목에 뜻을 두고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읽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 처음 이 책을 구상했을 땐 그저 추상적인 생각의 단편들만 있었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책상 앞에 따로 붙여둔 종이에 그때그때 메모해 둔 것이었다. (…) “또 그 방법은 10항목을 한도록 삼았습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통행하는 문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이 언급은 필자에게, 책에 좀 더 일관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기계적인 배치가 전체 구성을 더 일사불란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고려했다. 카드 작업이 계속되면서 항목들은 더 잘게 세분되었고, 생각도 점점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었다. [145]

 

저자가 언급한 이 저술 방식은 향후 나의 책을 쓸 때 꼭 짚어 보면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받은 긍정적 영향

 

이 책을 읽은 후에 내 자신의 책을 쓰고자 함에 있어 그리고 더 나아가 남은 평생 공부와 학문을 통해 나를 수련함에 있어 반드시 생각하고 고려하고 실행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원칙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원칙 1 : 깊이 들어가서 기초를 단단히 세울 것

 

가장 중요한 작업은 깊게 파서 기초를 세우는 것이다. 다산이 언급한 것처럼 건물을 지을 때 전체 건축 시간의 절반은 오로지 기초를 세우는 데에만 써야 그 단단한 기초 위에 오래가는 건물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자신의 인생을 가이드 할 중요한 경전으로 확립해야 한다. 아마도 그 경전은 철학서가 아닐까 싶다.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을 아우르면서 인간과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 기반 위에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전문 분야에 활용할 수 있어야 좋은 공부가 되고 당연히 이러한 토대 위에서 좋은 저술이 나올 것이다.

 

석 자를 파면 축축한 흙이 나오고, 여섯 자를 파면 탁한 물이 나온다. 여기서 석 자를 더 파들어가야 달고 찬 샘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석 자만 파다 말면 고작해야 부뚜막 바르는 데나 쓸 수 있는 축축한 흙을 얻는 데 그칠 뿐이다. 바른 독서는 그저 글의 껍질만 읽어 축축한 흙을 얻은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달고 찬 샘물을 길어 올리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30]

 

다산은 독서에서 푹 젖어듦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의 껍질과 속살을 구분해 내려면 아홉 자 우물을 파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실마리를 잘 잡아야 한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단서를 잡아야 한다. 여기에는 거듭되는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32]

 

터다지기를 굳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근사한 집을 지어도 단청이 채 마르기 전에 주춧돌이 먼저 내려앉는다. 공부도 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기초를 튼실히 닦아야 한다.[49]

 

공부보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얘기다. 인간은 인간성에 바탕한 근기를 갖출 때 비로소 목표가 생긴다.[49]

 

물은 가장 빠르고 신속한 길을 따라 흘러내려 도랑을 만든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최적, 최선의 길이 있다.[60]

 

다산이 말하는 지름길이란 남들이 보기에는 돌아가는 길이다. [62]

 

다산은 지름길로서 선경후사법을 제시했다. , 경전을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역사서를 읽는 방법이다. 경전공부는 나의 바탕을 다져 주고, 역사 공부는 득실치란의 변화를 이해하게 해 준다. 경전이 원리를 제시한다면, 역사는 그 원리의 적용과 변화를 이해시켜 준다.[65]

 

원칙 2 : 넓게 읽고 고증하고 뜻을 명확히 할 것

 

공부를 함에 있어 또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책을 읽는 중에 발견되는 참조 문헌을 충분히 수집하여 읽고 상호 연결하여 검토하면서 지식의 연결 고리를 넓혀 나가는 일이다. 향후 공부를 함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무릇 독서란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모름지기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차례차례 설명하여 글로 짓는 것을 날마다 일과로 삼아라. 이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곁으로 백 종류의 책을 함께 들여다복 될 뿐 아니라, 본래 읽던 책의 의미도 분명하게 꽤뚫어 알 수가 있다.[75]

 

다산은 언제나 관련 참고서적을 수집하는 일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목차를 검토하고 범례를 비교하여, 그 많은 정보를 당면과제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재배열 했다. 타당성과 현실성에 대한 검토없이 남의 것을 그저 가져다 쓰는 법은 결코 없었다.[95]

 

원칙 3 : 규칙적으로 요약하고 정리하고 메모할 것

 

나에게 가장 금과옥조가 되는 부분이다. 매일 일과를 정해 읽고 정리하고 메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을 작성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정과를 꾸준히 달성할 수 있을 때 책을 쓸 수 있는 토대가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다.

 

다산은 끊임없이 자식과 제자들에게 읽고 공부한 것을 간추려서 정리해 둘 것을 요구했다. 정리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역량을 기르며,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자신도 초록하고 정리하고 메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119]

 

복잡한 문제 앞에 기죽을 것 없다. 정보를 정돈해서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 먼저 모으고, 그 다음에 나눠라. 그런 뒤에 그룹별로 엮어 다시 하나로 묶어라. 공부는 복잡한 것을 갈래지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교통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135]

 

다산에게 책을 읽는 행위는 중요한 부분을 초록하고, 의미가 맺히는 대목에는 자신의 생각을 메모해 가면서, 지적인 성장과 인간의 성숙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위였다.[152]

 

다산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메모하고 생각하고 정리했던 메모광이요 정리광이었다. 그 메모가 밑거름이 되어 수많은 저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154]

 

원칙 4 : 다양한 방법으로 고찰하고 끝없이 공부할 것

 

공부에 끝이 있는가? 공부에는 끝이 없다. 마음을 푹 담가 한 우물을 들이파라. 이쯤하면 되겠지,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장벽을 만나거든 네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라. 잠시도 놓지말고 석연하게 투득하라. 그래야 네가 하는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180]

 

다산의 저작에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의 글을 시리즈로 남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 한 가지 문제 의식을 일과적으로 끝내지 않고, 다면적으로 접근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때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가 실용성의 강화에 있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356]

 

귀양온 뒤에는 다산도 일과를 정해 경학연구에 몰두했다. 그것은 하루의 작업 목표량을 정한 후, 날마다 이것을 누적해 가는 방식이었다. 다산의 방대한 저술은 하루하루 정과를 실천하고, 제자들의 집체작업에 의한 성실한 뒷받침이 있었던 결과이지, 다산 자신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440]

 

이러한 주요 원칙들 이외에 또한 책을 저술하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프로토타입을 볼 수 있었던 점 역시 좋았다.

 

그의 작업진행과 일처리 방식은 명쾌하고 통쾌하다. 먼저 필요에 기초하여 목표를 세운다.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한다. 명확하게 판단해서 효과적으로 분류한다. 분류된 자료를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한다. 작업은 여럿이 역할을 분담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단언컨대 그는 우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탁월한 지식 편집가요, 전방위적 지식경영가였다.[15]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이를 버리겠느냐며, 이 작업을 하다가 저 작업에 착수하고, 저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작업을 벌였다. 연보를 통해 저술연대를 추정해 보면, 그는 언제가 동시에 7~8가지 이상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집체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경우 다산은 목표와 지침만 내렸다. 작업은 아들과 제자들이 다했다. 정리가 끝나면 다산은 그 내용을 감수하고 서문을 얹어 책으로 묶었다. 문제의 핵심은 지식을 편집하고 경영하는 안목에 있었다. 실무작업의 과정에서 스승은 지식경영의 실제를 가르쳤고, 제자들은 공부의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결국 제자들도 스스로 자신의 관심에 따라 독자적인 저술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산은 이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한 야전사령관이었다.[18]

 

다산의 위대성은 그의 작업량이 아니라 작업의 성격에서 발견된다. 그는 한 가지 편집원리로 경학과 경제의 핵심주제들을 관통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 저변에 깔리 정신은 위국애민 네 글자뿐이었다. 그는 경학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실제의 쓰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작업했다. 다산은 원리원칙을 벗어난 작업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또 많은 적을 만들었다.[19]

 

비판적 시각과 교훈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10 20목이라는 목차는 약간 작위적인 느낌 혹은 일부러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형식화된 목차의 작성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적인 구조가 주는 안정감이 작위적인 구성의 느낌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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