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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00시 18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1875년 7월 26일에 스위스 케스빌에서 태어나 1961년 6월 6일 생을 마감한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ˈkarl ˈgʊstaf ˈjʊŋ]. 그는 의학, 고고학,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조적 사상가로 불리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성장을한 그는 어릴때부터 남다른 성장 경험-꿈,예시 등-을 겪은터에 일찍부터 조숙함과 그에따른 정신적인 경로를 거쳤다. 또한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철학적 사상에 일찍이 심취 하였고 그로인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두었다. 그의 이같은 철학적 사상을 통한 발전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태도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바젤대학교와 취리히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중 크라프트 에빙(Kraft -Ebing)의 책의 서문에서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고 일컫는 구절을 대한후 정신의학에의 길로 입문하였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비도덕적이며 금기시되는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의식적으로 제외된다. 그는 이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연구를 하기도 하여 그의 후계자로까지 불리우기도 하였지만, 프로이트가 유아 성욕론과 본능적 충동의 강조, 그리고 정신 내용을 개인적 경험에만 한정시킨 것 등에 비판하여 그와 결별하였다. 그후 융은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경험도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며, 성적 욕구보다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생각 등을 기초로 분석 심리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다. 원형의 이미지라는 융의 생각-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반복, 각인된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은 어떤 기본적인 인간 상황을 나타냄-심리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과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융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체화' 라는 자신의 신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간의 내면탐구에 전인생을 걸었던 그는 그 후 취리히 연방과학기술전문대학의 심리학 교수, 바젤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정신분석의 이론>, <심리학과 종교>, <영혼을 찾는 현대인>, <심리학적 유형>, <미발견의 자아>, <심리학과 연금술>,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p9)

 

■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옮긴이)실현의 역사다.(11)

-.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11)

-.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12)

-.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13)

-.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14)

-.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15)

 

■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1. 검은 옷을 입은 남자

-. 당시 어머니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친척아주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다.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26)

-. 이런 소녀(하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Anima)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훝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27)

-. 나는 ‘주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 예수는 크고 다정하고 자비로운 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검은 프록코트와 높은 모자에 광택나는 검정 구두를 신고 검은 상자를 나르는 음울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다.(30)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1.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 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순이 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59)

-.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66)

-.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66)

-.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67)

-.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67)

-.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67)

2. 너는 누구냐?

-. 등교길 이 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68)

-. 논쟁이 계속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78)

3. 두 인격의 어머니

-. 이러한 것들은 내 생애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나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그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95~96)

-.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110)

4. 악의 기원

-.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118)

-. 그 책을 읽고 나는 파우스트가 일종의 철학자였으며, 철학에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부터 진리를 위한 개방성을 분명히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으나, 새로운 희망이 내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해 숙고하고 나에게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철학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118)

5.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 나는 항온동물이면 모두 좋아하는 편. 내가 그 동물들을 좋아했던 것은 그것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혼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믿기로는 우리가 그 동물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130)

-.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133)

-. 철학적 발전은 열입곱 살부터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내가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 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또한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옷이 꾀죄죄한 소년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136)

-.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138)

 

■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1.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 몇 주 전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결정을 앞두고 갈등하고 있을 때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164)

-.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165)

-. 그 무렵 다소 충격적으로 깨달은 바지만, <파우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요한복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파우스트>속에는 내가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생동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나에게 낯설었는데,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구원자였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等價物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169)

-.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169)

-. 이 무렵 나를 놀라게 하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 뒤돌아보니 거대한 검은 형체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무서웠지만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의 작은 등불을 밤과 바람을 뚫고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 형체가 ‘브로켄의 유령(높은 산에서 비쳐오는 햇빛으로 관찰자의 그림자가 짙은 안개 속에 비쳐보이는 현상-옮긴이)’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것은 소용돌이치는 안개에 내가 들고 가는 불빛으로 비친 나 자신의 그림자였다. 나는 또한 그 작은 등불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과 그것이 내가 지닌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169~170)

-.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그 부분을 나의 개인적인 용어로 ‘제2의 인격(원서에는 ’Nr.2'로 표기되어 있음-옮긴이)‘이라고 일컬었다. 그것이 한낱 개인적인 흥밋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서양 종교에 의해 입증되었다.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런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충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175~176)

2.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 나는 반복해서 자문해보았다. “아버지가 꿈속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실재’처럼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사후死後의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186)

3.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193)

-.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197)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아주 강렬한 체험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199)

4.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 왜, 어떻게 해서 식탁이 갈라지고 칼이 파열된 것일까? 우연이라는 가설은 분명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206)

-. ‘조기 완성된 자’ 그녀(영매)가 죽어가는 최후 몇 달 동안 그녀의 성격들이 하나하나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결국은 두 살짜리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서 마지막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커다란 체험이었으며, 나의 이전 철학들을 모두 지양하고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어떤 객관적인 것을 경험했다.(208)

-. 크라프트 에빙(Kraft -Ebing)의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場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210)

-.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211)

-.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망상관념이나 환각이 정신병의 특이한 증상일뿐 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213)

-.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217)

 

■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1. 환자들

-.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222)

-.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궤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226)

-. 나는 환자들의 사례를 열심힌 살펴본 결과,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239)

-.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241)

2. 꿈의 분석

-.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교육분석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환자도 이를 배우지 못한다. 의사가 배워 알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환자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250~251)

-. 의사가 자가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치료자는 자기 자신이 환자와의 대결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수시로 해명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251~252)

-.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253)

3.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260)

-.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272)

 

■ 프로이트와의 만남

1. 이론적인 불화

-.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치료과정에서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다만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276)

-.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284)

2.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 돌이켜보면 프로이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두 가지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구해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두 가지 문제는 ‘고태적 잔재’와 ‘성性’이었다.(310)

-.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311)

 

■ 내 안의 여인 아니마

1. 신화와 환상

-.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에 나 자신을 스스로 내맡겼다. 자주 터무니없어 보이고 저항감을 느끼게 하는 환상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고상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마구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견뎌내려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다.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야 비로소 그 미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327)

2.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356)

 

■ 연금술을 발견하다

1.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나는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무의식과의 대면을 시도했다. 무의식에 관한 나의 작업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환상의 내용을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365)

-.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367)

-. 연금술에 대한 나의 작업에서 나는 괴테와의 내적인 관계를 보게 된다. 괴테의 비밀은 그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원형적 변환과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파우스트>를 필생의 역작 또는 신성한 작품으로 여겼다. ...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373~374)

2.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 밑바닥에 도달한 그 순간, 나는 학문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부딪혔다.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397)

-.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397)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1.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 나는 가장 깊은 생각과 나자신의 인식 들을 이를테면 돌에 표현하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 내가 손수 볼링겐에 지은 탑이 그 일의 시작이었다. 허무맹랑한 착상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는 실행에 옮겼고, 그것은 나에게 깊은 만족을 주었을 뿐 아니라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401)

-.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리 예감했던 것의 실현, 즉 개성화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청동보다도 오래갈 기억의 징표였다. 그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져 나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404)

-. 1950년 나는 돌로 일종의 기념비를 만들어 탑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표현하고자 했다.

첫 번째로 연금술사 아르날두스 드 빌라노바의 라틴어 시구절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돌에 새겨넣은 최초의 글이기도 하다.

여기 돌이 있네. 보잘것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곧 다른 무엇이 나타났다. ...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문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호수로 향한 세 번째 면에서는,

나는 고아, 혼자다. 그런데도 어디서나 발견된다. 나는 하나의 존재, 그러나 나 자신과 대립하는 존재다. 나는 젊은이인 동시에 노인이다.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물고기처럼 깊은 곳에서 끄집어올려야만 하므로, 아니면 하얀 돌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므로, 숲과 산에서 나는 두루 쏘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죽지만 시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늗다.

마침내 나는 아르날두스 드 빌라노바의 시구절 아래에 라틴어로 ‘1950년 C.G. 융의 75회 생일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만들고 여기게 세우다’라고 새겼다.(405~408)

2. 카르마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421)

 

■ 여행

1.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 나는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백인’을 그 고유의 환경 밖에서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428)

-.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434)

2.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 유럽인에게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유럽을 한번 바라보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이 없을 것 같다.(442)

-. 나는 타오스 푸에블로의 추장 옥비에비아노(산의 호수라는 뜻)에게 왜 백인이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443)

3.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491)

-.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491)

 

■ 환상들

1. 융합의 신비

-. 객관적 인식을 통해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526)

-.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527)

-.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527)

 

■ 사후의 삶에 관하여

1. 꿈과 예감

-.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것 없이 지내야 하는 어떤 그럴 듯한 이유도 제시할 수 없다.(533)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이성적으로 잘 살며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534)

-. 나의 가설은 무의식이 이를테면 꿈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암시의 도움으로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535)

-.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536)

2.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551)

3. 단일성과 무한성

-. 서양인의 신화에 대한 갈구는 ‘시작’과 ‘목표’를 지닌 진화론적 세계상을 요청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상은 시초와 단순한 ‘끝’을 가진 세계라든가 그 자체 안에 폐쇄된, 정적이고 영원한 순환과 정의 세계관을 배척한다. 이에 반해 동양인은 이런 관념을 허용할 수 있는 듯이 보인다.(559~560)

-. 심리학의 관점에서 ‘저승의 삶’은 노년 정신생활의 논리적 연장으로 여겨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위 관조, 성찰, 그리고 내적 이미지들이 당연히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노년에 인간은 그의 내면의 눈으로 추억들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적. 외적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저승 전단계거나 거기서 존재하기 위한 준비와도 같으며,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도 같다.

내적 이미지는 개인적인 회고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아준다.(564~565)

-.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572)

-.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574)

 

■ 만년의 사상

1.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철저한 자기인식, 즉 자신의 전체성에 대한 최선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582)

-. 우리는 오늘날 심리학을 우리의 본성상 필요로 하고 있다. 국가사회주의(나치즘)와 볼셰비즘의 현상 앞에서 우리는 당황하여 멍한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에 관해 알지 못하거나 단지 왜곡된 반쪽 관념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인식을 가졌더라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583)

-.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583)

-. 신화가 생동하지 않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으면 신화는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584)

-. 심리학적 관점에 한해서 보면, 신의 표상은 심적 토대에서 현시된 것이며 이제 심한 분열의 형태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열이 세계정치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벌써부터 이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원 모양으로 보이는 자발적인 통합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정신 내부의 대극의 합(合:Synthese)을 묘사하고 있다.(588)

-. 신은 인간의 현실로 들어서며 ‘인간’의 형상 속에서 인간과 함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육화를 통해 인간, 즉 그의 자아는 내부적으로 ‘신’으로 대체되며 신은 외부적으로 인간이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과 상응한다.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592)

-. 창조신의 표상에 내포된 필연적인 내적 대극은 ‘자기’의 통일성과 전체성 속에서 연금술의 대극융합이나 신비적 합일로서 화해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체험하는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신과 인간’의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표상에 내포되어 있는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에 대한 예배’, 즉 인간이 신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예배의 의미다. 빛이 어둠속에서 생겨나며 창조주가 그의 창조를 의식하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594)

-.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597)

2.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 그럴듯한 비밀의 필요성은 원시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600)

-. 비밀결사는 개성화에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다.(601)

-.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604)

3.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620)

 

■ 회고

1. 비밀로 가득 찬 세계

-.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라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끌어낼 수 없거나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배후의 과정에 대한 지식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를 일찍부터 미리 형성했다.(624)

-.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624)

2.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디에 실려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629)

-.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630)

-.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 A. 야페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精髓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635)

 

 

Ⅲ. '내가 저자라면'


카를 융의 저서를 읽다보니 저자처럼 내가 겪은 오묘한 체험담은 없는가를 잠시 돌아보게 되었고 오랜만에 그장면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된다.

 

1. 꿈의 사례

나는 밤마다 꿈을 꾼다. 그것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꿈을. 하지만 아쉬운 것은 융처럼 현시몽은 커녕 정작 내가 원하는 꿈을 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꿈에서라도 뵙고 싶다고 기일이 되면 소원을 빌어보지만 매년 공염불(空念佛)로만 남을뿐.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젖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꿈의 신비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우주와 바다를 미개척지로 삼는 인간에게 있어 인간 정신의 깊은 심연의 세계도 아직 처녀지(處女地)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에게 꿈은 의식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전조 또는 계시라는 점이라느니, 꿈은 현실에 대한 상징 체계라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아직도 인간의 과학으로써 풀수 없는 것중에 하나가 이 꿈의 세계이다. 그래서인지 저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환시를 보여주는 꿈에 대한 내용과 또 그에대한 융 자신의 해석을 들여다 보노라면 솔직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환상적인 꿈을 왜 그는 꾸었을까? 그런 꿈들이 왜 그에게 나타났을까? 꿈에 대한 해석은 자신의 자의적인 형태가 아닌가? 그것은 자신이 강조한 무의식의 현실적인 기대치의 발로가 나타난 것이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드는 그런 가운데 나도 생각해 보니 간접적인 꿈의 체험이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신학교 입학 시험을 치루고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이었다. 성당을 들어서는 순간 처음보는 자매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가브리엘 형제님 이시죠.’

‘네. 그런데요?’

‘형제님이 신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한 것을 제가 어제 꿈에서 보았어요. 축하 드려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합격 발표일이 아직도 남아있고 더구나 안면이 없던 자매님이 그런 말을 하기에 내심 기대는 하면서도 그냥 허투루 넘겼었다. 그런후 드디어 발표일이 되어 반가운 소식을 듣자 그 자매님의 얼굴과 음성이 자연히 오버랩(overlap)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던 천사였던가? 그래서인지 그후 그 자매님을 볼수는 없었다.

 

2. 앉아서 천리를 본다

신학교 시절 바깥으로의 외출이 없던터라 외부인들이 면회를 오면 정해진 면회장소에서 상대방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날 친했던 후배 한사람이 찾아왔다. 자리에 앉은 후배를 보자마자 갑자기 그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이 영상을 보듯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왜이럴까? 고개를 가로저어 보았다. 헛것이 보이는 건가?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현재의 영상이 보이자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혹시 이러저러한 것 때문에 어려운 일이 없느냐?’

그는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고 그렇지않아도 그일 때문에 많이 힘든데...’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 이었다. 신학교의 기도와 묵상의 훈련 덕분에 내의식이 깊숙이 침잠하여, 상대방의 모습을 명료히 볼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겁이 났다. 남과는 다르다는 것에 평소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 적잖이 당황이 되기까지 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신체적 정신적으로 남들과 비교가 되어져 심한 열등감을 가지며 성장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조금은 남과는 다른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것에 대해 나는 왜이렇게 생겨 먹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도 있었다.

남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왜이럴까?

남들은 그냥 지나가도 되는 상황을 나는 왜 그리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걸까?

이로인해 남들로부터 배척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졌었고 남과는 다른 생활-신학교-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였었다. 남과는 다르다는 것. 이것은 나에게는 심한 스트레스였다. 카를 융. 그도 남들과는 다른 경험으로써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너무나 예민했던 그의 성격과 꿈과 환상들에 뒤섞여 살았던 독특한 그의 인생경로. 그런 그는 꿈속에서 작은 등불을 보고 그의 의식이라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그가 지닌 유일한 빛이며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키워나갔다. 그결과 결국 그는 정신의학이라는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분야를 추구하였고 거기에서 독특한 일가를 형성하였다.

 

이런 융과는 달리 당시에도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반갑게 다가오지 많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드렸다.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고. 결국 기도 덕분인지 현재는 타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는 커녕 내모습도 잘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아쉽다. 쩝쩝~


3. 우연이라고 하기엔...

2003년 2월 18일. 대구쪽에 출장일정이 잡혀져 있어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을 하였다. 00거래처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는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소방차며 각종 앰블런스들의 싸이렌 소리와 황급히 움직이는 119 구조대원들의 모습들. 무슨일일까? 어떤 사고라도 났는건가? 꺼림칙한 마음에 택시로 이동을 하였고 그것이 어떤 사고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2010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일어난지 꼭 7년째를 맞이하였다. 당시 사고로 192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151명이 살아 남았다는데, 마침 TV 00프로그램에서 생존자들의 후유증에 대한 내역이 방송이 되고 있었다. 충격적인 사건이 현실처럼 되살아나는 현상인 '플래시백(Flashback)‘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현재에도 고통을 겪고있는 주부의 사례담은 나에게 묘한 느낌을 던져 주었다.

7년전 당시 만약에 내가 조금더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하게되어, 그래서 그 참혹한 현장의 지하철에 탑승을 하였더라면 나는 어떤 결과로 지금 오늘을 맞이할수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설사 살아 남았더라도 그녀와 같은 어떤 정신적인 후유증을 겪고 있었을 것인가?

 

오늘 책으로 만나게 된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라고 규정 지었던 사람.

환상적이고 남과는 다른 독특한 꿈이나 예시 등의 자신만의 경험으로 인해 무의식에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통해 평생을 인간 정신 세계의 연구에 몰두 하였던 사람.

죽기 2년전 평생에 걸친 신에 대한 작업 끝에 신을 안다고 하였던 사람.

그리고 존재 그 자체의 어둠 속에 빛을 밝히려고 끝까지 홀로 투쟁했던 사람.

 

신은 절망과 희망을 선택하는 자율성을 우리들에게 부여 하였다. 신에게 종속되어 지는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가는 형태의 우리들의 인생 여정. 그 여정에서 오늘 융을 만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나에게 나즈막히 속삭였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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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4 [17] 노동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 최지환 2008.08.04 3220
1283 두 번 읽은 파우스트 [1] 레몬 2012.06.25 3220
1282 20: 주역,하늘의 뜻을 묻다. 김귀자 2006.07.30 3221
1281 14. 백범일지_발췌 맑은 김인건 2010.06.07 3221
1280 [북리뷰] 맹자 이선형 2010.11.22 3221
1279 『미래생활사전』을 읽고 [5] [2] 賢雲 이희석 2007.04.23 3222
1278 북 No.47 -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 file 재키 제동 2012.03.18 3222
1277 [2-22] 별주부타령 file 타오 한정화 2013.12.01 3222
1276 [15]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2] [2] 현웅 2008.07.14 3224
1275 천만번 괜찮아 : 박미라 [1] 소현 2008.01.14 3225
1274 19th Review-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지음) file [3] 사샤 2011.09.06 3225
1273 주역 -서대원 역해- 장재용 2012.12.03 3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