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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11시 3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나카무라 요시후미 (Nakamura Yoshifumi)

1948년 지바현 출생.


1972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요시무라 준조 건축 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1981년에는 자신의 디자인 사무실 ‘레밍하우스’를 창립했다.


‘미타니 씨의 집’으로 제1회 요시오카상 수상, ‘일련의 주택 작품’으로 제18회 요시다 이소야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본대학 생산공학부 주거공간디자인 코스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주택순례>, <평범한 주택 예술>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rolouge 들어가는 말을 대신해서

사람이 사는 집과 그 속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껴 주택설계라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7)


집과 생활을 둘러싼 사소한 일상과 작지만 소중한 삶의 이치를 사랑하는 저는 주택전문가라는 수식어를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7)


주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점, 즉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이라는 측면에서 ‘집이란 무엇인가?’ ‘집을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이 책의목적이기 때문이지요. (8)


‘일상생화의 내면’이라는 말 속에 ‘마음의 내면’이라는 뜻을 더하고 싶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지 물리적으로 생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물론, 그와 더불어 편안하고 풍족한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하는 장소가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집의 참 모습입니다. (8)


제1장 풍경 -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

집을 둘러싼 자연과 거리의 풍경,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건축가의 따뜻한 시선과 그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건축 철학일 것입니다. (25)


풍토에 맞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빛과 바람을 충분히 즐기고 향유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주변 풍경을 존중하고 고려해 그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을 짓고 싶습니다. 그와 더불어 세월이 흐를수록 정취를 더해가며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집을 짓고 싶다는 욕심을 내보기도 합이다. (28)


제2장 원룸 -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

“건축가는 원룸 구조로 설계한 건축물로 기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가 에리히 멘델존이 남긴 명언입니다. (30)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지은 집이 바로 원룸입니다. 즉 원룸은 ‘먹고 자는 곳’이라는 주택의 기본 정의에 가장 충실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택 내에 있으면 편리하지만 실제로는 필요 없는 비실용적인 공간을 하나씩 신중히 삭제해나가다 보면, 더 이상 들어낼 수 없는 미지노선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기에 주택의 원형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31)


멘델존의 “건축가는 원룸 구조로 설계한 건축물로 기억 된다.”라는 명언이 나타내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31)


집을 설계하고 지으면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커다랗게 하나로 개방된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집을 문으로 차단된 상자, 즉 방의 집합체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집이란 모름지기 하나의 지붕 아래에 있는 하나의 공간, 열린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32)


쓸데없는 것은 던져 버릴 것, 단지 꼭 필요한 물건만 실어 생활의 보트를 가볍게 할 것. 간소한 가정, 소박한 즐거움, 한두 명의 친한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 즐겨 피우는 파이프 하나 혹은 두 개, 필요한 만큼의 옷과 식료품, 그리고 필요한 것보다 약간 더 많은 양의 술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제롬K제롬 <보트 위의 세 남자> - (33)


가구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만으로 거실과 식당, 주방, 침실, 서재와 같은 서로 다른 용도의 공감을 훌륭하게 만들어냅니다. (34)


“소년은 나무 위의 집을 가지고 소녀는 인형의 집을 가진다.”

제가 집에 대해 생각할 때 머릿속에 제일 떠오르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집에 대한 꿈과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부풀려주기도 합니다. (37)


제3장 편안함 -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매일매일 생활하는 집 어딘가에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 것, 혹은 그런 장소를 찾아내고자 시도하는 것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 중에서도 꽤나 큰 의미를 차지합니다. (46)


건축가는 지혜를 짜내고 아이디어를 보태서 그 집에 살게 될 사람이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과 설비를 만들고, 전체의 일관된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배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계를 하는 동안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을 늘 염두에 두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생활을 편리하게 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집을 소유하게 될 사람의 감성이나 개성을 고려하여 실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편안한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융통성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46)


집이라는 공간에는 지나치게 세련되지도 지나치게 둔감하지도 않은 적당히 애매한 공간을 남겨두고 실제 거주자가 살면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46)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락방은 몽상을 키우고 몽상가는 다락방에 숨어둔다.”

집 안 어딘가에는 자신의 꿈을 키우고 혼자서 마음껏 이런저런 몽상에 빠져 들 수 있는 공간, 적당히 어둡고 구석진 특별한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47)


휴일 오후,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속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툇마루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처럼 다소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일지라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 건축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1)


‘고코치심지’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스미고코치(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살면서 드는 느낌)’나 ‘스와리고코치(의자나 바닥 등 어딘가에 앉았을 때의 느낌)’라는 말에는 다른 말로 바꿀 수 없는 특별한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또 ‘유메메고코치(꿈결 같은 느낌)’라는 말도 있구요. 이와 같이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고코치’ 이외의 단어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52)


‘고코치’가 붙은 말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이고고치(머물렀을 때의 느낌)’입니다. 머물기 좋은 곳을 찾고 싶다는 저의 욕망은 머물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구와 강하게 연결되었고, 그 결과 이렇게 집을 만드는 건축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52)


공학적인 전문지식을 배우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논리적이고 건축적인 사고를 축적하고 심화하는 것으로 건축물의 기본적인 설계는 기능합니다. 그러나 머무르기 좋은 장소나 기분 좋은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이론적인 공부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동물적인 감각뿐이지요. 훌륭한 이론도 그것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합니다. (52)


제 4장 불 -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오랜 옛날부터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불은 음식을 조리하는 데 필요한 설비 중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불이 있는 곳이 곧 부엌이 되고 식당이 되기도 하며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거실이 되기도 합니다. 즉 불이 있는 곳이 바로 사람이 사는 집인 것입니다. (55)


난로 혹은 벽난로는 영어로 불이 있는 장소를 뜻하는 fireplace가 주로 쓰이지만 같은 뜻을 가진 health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health는 기본적으로 난로 혹은 주변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고, 그 이외에 가정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55)


난로 혹은 벽난로는 난방이라는 본래 목적 이외에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간접 조명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벽난로 앞에 압ㅈ아 은은한 불빛을 받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건강하게 빛이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60)


제5장 재미 - 재미와 여유, 그리고 집

재미를 추구하는 것 또한 집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소양 중 하나입니다. 집이란 물론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면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유가 없고 엄격한 틀로 짜여진 사각의 상자를 집이라고 한다면 실용이라는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어딘가 모르게 지루하지 않을까요?


그 집의 포인트가 될 만한 유쾌한 아이디어와 특수하게 고안된 장치가 불러일으키는 제미는 흡사 딱딱한 주제의 대화 속에 적절히 섞인 유머와도 같아서 일상생활에 윤활유가 되고 웃음을 줍니다. 이로 인해 집 전체가 온화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바뀔 것입니다. (62)


쓸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유쾌한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것은 건축가가 자신의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좋은 시험 무대입니다. 또 어떤 면에서 본다면 건축가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부수적인 재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62)


건축설계나 가구디자인을 하는 경우 ‘여유’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너무 딱 맞게 만들지 말고 약간 여유를 두자.”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건축의 경우는 나무문이나 창호를 만들 때, 가구 디자인은 서랍 같은 부분을 제작할 때 주로 쓰입니다. 열고 닫는 등 움직임이 많은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동적인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실제 느낌을 명확하게 잡아낸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모든 요소가 뒤죽박죽 섞인 서랍이라고 비유하는 저 역시 여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여유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의 여유입니다. (70)


제6장 주방과 식탁 -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보기 좋게 어질러져 있거나 다소 어수선해도 그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주방의 모습입니다. 요리를 하는 데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솜씨 있게 절차와 순서를 따라가야 합니다. 요리는 흐름을 놓쳐선 안 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72)


주부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템을 적재적소에 탑재하여 보기 좋고 깔끔한 시스템키친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계한 집에는 시스템 키친을 들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구석구석까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여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비인간적일 정도로 정리정돈 되어 있는 시스템키친은 사진으로만 봐도 어쩐지 너무 조심스러운 느낌이 들어 음식을 만들 기분이 싹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주방은 단지 겉모습만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라 웃는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쾌하게 요리를 만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73)


주방을 설계할 때는 싱크대는 물론 문의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기를 특별 제작합니다. 그 집의 식생활과 실제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려하여 각자의 집에 딱 맞는 주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73)


주방이라는 곳은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성역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비단 주부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서서 요리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73)


냄비와 솥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조리 도구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주방은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방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는 시각을 약간만 바꾸면 활기 넘치는 주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4)


화가나 조각가의 작업 현장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아틀리에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온 힘을 다한 창작활동 과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곳 특유의 어수선함 때문입니다. (74)


주방을 일종의 창작 공간 혹은 자신만의 아뜰리에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생명력 넘치는 창조의 분위기로 가득한 주방에서 더 훌륭한 요리가 탄생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은 단지 주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집이란 모름지기 사람살이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74)


요리가 완성되면 식탁에 둘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합니다. 해가 어둑어둑해지고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이 무르익으면 어김없이 술이 등장합니다. 허물없는 친구들 혹은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탁의 분위기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단란하다’라는 말 외에 적합한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81)


사회 변화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관계 또한 상당한 변화가 있었으므로 가족으로만 규정하던 집의 정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82)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먹는 공간이라면 그곳을 집이라고 정의해도 좋지 않을 까요? (82)


먹고 자는 곳이 집이라는 단순한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 말은 먹고 자는 것을 함께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을 단순한 의미에서 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요? 동물의 보금자리처럼 말입니다.


먹이를 발견한 동물들은 먹이를 입에 물고 나무 그늘과 같은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마음 편하게 먹이를 먹은 후, 배가 부르면 잠이 듭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을 때 만날 수 있는 집의 원초적인 형태 또한 동물의 보금자리와 유사했을 것입니다. (82/83)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실제 가족과 함께 있는 듯, 밥을 먹는 사람들 주면으로 모여드는 뭉클한 감정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불현듯 지금 이곳에 모두가 편히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83)


제7장 아이들 -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집이 떠오르나요? 저는 반짝반짝 빛나는 화려한 이미지 대신 어릴 때 살던 집과 그 주변의 빛바랜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88)


그 허술했던 집이 제 마음속에 창조성과 호기심을 키워주었고,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기 싫을 만큼 안락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손끝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고, 온몸으로 체험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 건축가에게 필요한 이러한 밑바탕(더 큰 의미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밑바탕)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집과 그곳을 둘러싼 자연환경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 모든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9)


건축가들은 주로 집의 합리성이나 기능성, 편리함과 쾌적함 혹은 경제성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거주자의 경우에는 쓰기 편하고 살기 좋고 보기에 좋은 집을 우선시하지요. 하지만 집을 판단하는 기준 속에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집’을 우선시하지요. 하지만 집을 판단하는 기준 속에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집인가?’ ‘아이의 심성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집인가?’라는 내용을 추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에 이 소중한 항목을 덧붙인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꿈을 키워가는 보금자리로 집의 의미가 한층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89)


제8장 감촉 - 손에서 자라나는 애착

애착은 손에 닿는 감촉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촉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는 무언가를 접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일단 만지고 쓰다듬고 잡아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가진 제 2의 천성이나 오래된 습성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호주머니 속 동전지갑이나 몸에 걸치는 옷, 사무실이나 집에서 사용하는 식기나 가구에 이르기까지 일단은 손으로 촉감을 느껴본 다음에 구입하며, 그렇게 구입한 물건은 오랫동안 매우 소중하게 사용합니다. (98)


애착이라는 감정은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확인하고 그것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즉 지성과 이성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촉각이라는 원시적인 감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손에 닿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집을 설계할 때 어딘가에 촉감을 중시한 부분을 만들어 두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손으로 직접 집의 감촉을 느끼고 또 그 감정을 쌓아가며 집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98)


손에 닿는 느낌이 만족스러운 집은 호화주택과 견주어도 부럽지 않습니다. 좋은 촉감은 천장이 높은 거실,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통창, 난방 시설이 완비된 대리석 바닥, 화려한 상들리에가 반짝이는 실내 풍경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화려하지도 이목을 끌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다른 의미의 호화로움이 존재합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만큼 더 은근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99)


모든 부분이 다 그렇지만 손에 닿는 느낌을 더욱 중시하며 작업한 곳은 바로 계단의 난간입니다. 가족 모두가 일상적으로 잡고 만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씁니다. 어쩌면 계단 난간을 통해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0)


멋진 건축물에 들어가면 우선 계단의 난간부터 만져봅니다. 매력적인 난간을 잡아보면 그 곳을 설계한 위대한 건축가와 이름 없는 수많은 직공들과 직접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친밀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집의 촉감에 그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는 아마 그러한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100)


좋은 집이란 눈을 감고도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잊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해봅니다.

당신이 사는 집, 손으로 만져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100)


걸작이라 불리는 건축물에는 어디든 예외 없이 주옥같은 솜씨로 마감한 세부가 숨어 있습니다. 건축가의 진정한 역량과 감각은 사소해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끌어내는 장인정신을 통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103)


제9장 장식 - 적당한 격식, 효과적인 장식

집안 적절한 자리에 적당히 격식을 갖춘 도코노마(일본의 전통적인 장식 공간. 주로 객실의 다다미 방 벽에 붙여 만들었으며 바닥보다 약간 높게 계단을 설치한 뒤 바닥에는 꽃을 꽂은 화병이나 도자기로, 벽에는 족자를 걸어 장식적인 효과를 맨다) 같은 공간을 만들면 방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106)


사람 사는 집에는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코노마 같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기분에 맞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맞추어 가며 자신의 취향대로 공간을 구미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느새 그 공간은 가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기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도코노마의 풍경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7)


일본 전통 다실(다도를 즐기기 위해 만든 방 또는 건물. 원래는 차를 마시며 정원의 모습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정원 안에 별도 건물을 만들어 다실로 이용했다)의 좁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의 도코노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집주인의 숨결과 취향, 면모 등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107)


제 10장 가구 - 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집

가구와 함께 살아간다는 친밀한 기분을 이해하는지 여부가 사람과 가구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116)


가구 만들기의 기본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비용이 적게 들 것, 지금 내가 가진 목공 도구로 만들 수 있을 것,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일 것, 결합과 조립에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것, 그리고 아름다울 것. (116)


식탁 주변으로는 여러 가지 디자인의 의자가 둘러싸고 있어요. 테이블과 의자를 세트로 구입하는 것도 무난한 느낌으로 좋겠지만, 저는 세트로 일관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디자이너가 만든 다양한 모양의 의자와 제가 디자인하고 만든 의자를 섞어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우러져 있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118)


저희 집에 있는 의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모은 것입니다. 각각의 의자마다 서로 다른 개성이 있어 목적에 따라 선택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기에 좋은 의자. 술 한 잔 즐기기에 좋은 의자, 편지를 슬 때 좋은 의자, 무릎에 올라앉은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의자 등 단순한 의자 하나가 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새겨보게 하는 또 다른 시점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118)


무엇을 골라야 하지 판단이 어려울 때에는 모던한 의자 중 평판이 좋은 의자를 골라 직접 앉아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가격대는 꽤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가구 선택에 있어서는 잘 들어맞는 비유이므로 비용에 인색해지면 안 됩니다. (118)


의자뿐 아니라 모든 가구는 잘 쓰기만 하면 일생동안 혹은 몇 세대에 걸쳐서 물려가며 쓸 수 있는 것이니 전통적이고 품격이 있으며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119)


가구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합니다. 가족의 일원처럼 아끼며 사이좋게 살기를 바랍니다. (121)


제가 디자인하는 가구는 매일매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형태가 재미있는 가구나 색채가 뛰어난 가구, 소재의 결합이 특별한 가구 등 오브제적인 매력에 집중하는 가구도 다수 있지만 어쩐지 저는 그쪽 방면의 가구와는 별로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드는 가구의 대부분은 목재로 만들고, 마감도 오일스킨스테인을 가볍게 바르는 정도입니다. 재료 본래의 색과 느낌을 그대로 살려 오랫동안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가구가 제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124)


가구를 디자인하게 된 계기 역시 일상생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삼단 계단식으로 발판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입니다. 저에게 '필요‘는 새로운 디자인을 낳는 어머니인 셈입니다. (124)


11장 세월 -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집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 어짜피 지을 집이라면 그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긴 안목으로 장수할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집의 물리적인 수명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에서 말입니다. (126)


오래도록 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집의 모양입니다. 내 집을 짓는다는 의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충분한 검토 없이 겉만 그럴듯한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짓는다거나, 건축가를 잘못 만나 주변 환경과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기묘한 외관의 집을 짓는다면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유행이나 패션에만 치중해 지은 집의 수명은 길게 보았자 10년 정도이고, 만약 10년 이상 건재한다고 해도 그 집에 대한 나쁜 평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로 그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다른 것에 시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하는 것도 주택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공을 들인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재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멋이 깊어지는 재료를 우선시합니다. 고가의 재료가 아니어도 좋고, 말쑥한 재료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애정이 깊어질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 천천히 음미해가며 작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30)


간단한 손질만으로도 그 효과가 드러나는 소재로 지은 집은 사는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쾌적함을 선사하고, 또 어딘가 모르게 예스러운 정취마저 풍깁니다. 이런 감정들이 쌓여 오래도록 한 집에서 살고 싶게 만드는 애정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131)


오랫동안 애정을 쏟으며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어떤 집을 짓느냐 하는 것이지만, 집과 어울리는 가구를 찾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가구 또한 어떻게 만들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세월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134)


제 12장 빛 - 두 가지 의미의 빛

자연광을 빛이라고 하고 촛불이나 인공조명은 불빛이라고 말합니다. 둘 다 어둠을 밝힌다는 점은 같지만, 건축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139)


빛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와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빛과 불빛이 바로 그것입니다. 빛은 자연광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고 불빛은 인공적인 조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 빛 모두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147)


자연광을 자연스럽게 실내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설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창의 개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창호를 많이 낼수록 밝은 실내라는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창의 위치와 크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설치할 벽과의 균형입니다. 귀한 손님을 정중하게 실내로 안내하는 것이 그 집의 주인이 해야 할 역할이라면, 실내에 자연광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것은 설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147)


또 하나의 빛인 불빛, 즉 조명에 관한 생각입니다. 바로 조명이라는 말입니다. lighting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명’이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을 떨ㅕ버릴 수가 없습니다. 즉 영어의  lighting이 단순히 ‘밝음’, ‘불을 밝힘’이라는 뉘앙스로 풀이되어 있는 탓에 바의 구석구석까지 빛을 밝혀 한 치의 어둠도 없어야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점등点燈’이라는 말로 그 풀이를 대신했다면 불빛에 대한 느낌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적어도 ‘등화燈火’의 ‘등燈’이라는 글자만이라도 lighting의 풀이에 남겨 두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50)


불빛은 어둠 혹은 그늘과 함께해야만 그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150)



3. 내가 저자라면


<집을 생각한다>이 책은 집을 재산축적의 용도로 생각하거나 트렌드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집의 모습에 관해 살펴보는 책이 아니다.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을 말하는 것일까?

좋은 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중요하지만 쉽게 간과하며 살게 되는 집에 대한 생각,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이라는 측면에서 집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주택전문건축가라고 한다. 30년 넘게 주택을 전문으로 만들어온 건축가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장 풍경 -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

제2장 원룸 -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

제3장 편안함 -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제4장 불 -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제5장 재미 - 재미와 여유, 그리고 집

제6장 주방과 식탁 -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제7장 아이들 -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제8장 감촉 - 손에서 자라나는 애착

제9장 장식 - 적당한 격식, 효과적인 장식

제10장 가구 - 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집

제11장 세월 -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란 주변 환경과 적절히 어우러진 모습으로 지어진 집 안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꿈을 키우고, 집 안 어딘가에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안락한 공간이 존재하는 곳. 주방은 다소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불과 친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빛과 조명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집 안 구석구석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가족 구성원 모두와 하나가 되고, 설계단계부터 긴 안목을 발휘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이 깃들여져 있는 공간,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공간이다.


이 책에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나 거리의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건축가의 따뜻한 시선과 그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려는 저자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진정으로 집을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집에 대한, 집 꾸밈에 대한 나의 생각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직업이 무어냐고 물어오면 나는 집 꾸며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한다.


그렇다. 나는 집에 대한 일, 그 집을 꾸미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잘 꾸며 놓은 집이나 멋지게 장식된 공간에 대해서 정말 잘 꾸며놨네, 정말 예쁘다, 분위기 있다, 멋진데 등의 표현을 쓴다.


장식이나 꾸밈, 모두 그 뜻은 매 한가진데 나는 장식이라는 말보다는 ‘꾸밈’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 장식은 왠지 서양의 것, 인위적인 요소, 겉치레가 강한 느낌이 들고 꾸밈이라는 말에는 왠지 우리의 정서, 친숙함, 솜씨가 스며든 향이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나의 첫 책을 준비하면서 나의 일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고 다시금 점검하게 되면서 꾸민다는 말, 꾸밈의 참 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집을 꾸민다는 것은 뭔가의 작업에 의해서 치장을 하고 디자인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집, 각 공간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해하고 사랑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집이라는 것은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편의가 우선시되어야 하고 집주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입장이 되었을 때도 좋은 집 꾸밈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가장 멋있고 행복하게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꾸밈이라는 것도 단순히 겉을 치장한다는 뜻으로 정의될 수도 있지만 꾸며지는 대상, 즉 사람과 공간에 대한 콘셉트를 명확히 하고 그 속에 제대로 된 콘텐츠를 담아 꾸며질 때 비로소 진정한 꾸밈이 탄생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고객의 집을 꾸밀 때 내 집을 꾸민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나의 가장 기본적인 일에 대한 태도이자 가장 일이 잘 되게끔 하기 위한 자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나와 취향이 너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경우, 솔직히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일을 해놓고서도 나는 이런 집에선 못 살거야라는 생각을 할 때도 더러 있다.


차가운 바닥재, 숨어있는 가구, 조명 등 겉보기에는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이지만 그런 식의 멋진 공간보다는 채움이 아닌 조금은 빈 듯한 여유 있는 공간, 조금 더 인간미 넘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완벽한 기능을 갖춘 공간은 아니더라도 사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고 집주인의 푸근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애착이라는 감정은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확인하고 그것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손에 닿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집을 설계할 때 어딘가에 촉감을 중시한 부분을 만들어 두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손으로 직접 집의 감촉을 느끼고 또 그 감정을 쌓아가며 집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P98)

 

건축가의 진정한 역량과 감각은 사소해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끌어내는 장인정신을 통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P103)


집 꾸밈에 대한 나의 생각,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집 꾸밈에 대한 나의 취향은 내 집 꾸밈이나 타인의 집 꾸밈이나 추구하는 바는 같다.


그 취향을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깊이감이라고 해야 할까. 콘텐츠, 즉 내용의 깊이가 있는 것, 속이 알찬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을 내세우기보다는 안으로 깊이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내 집이라면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내 맘에 드는 것이 우선이고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편하고 내가 좋으면 그만인데 집 꾸미는 일이 직업이 되다보면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에 대한 평가를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하여 발품을 팔고 손때를 묻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게끔 설득하여 애착을 품게 만들고 결국에는 편안한 소박함으로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말하는 집에 대한 깊이는 집주인의 관심과 애정을 담은 소박한 멋이 살아 있고, 적당한 격식과 품위가 느껴지고, 손의 애착이 묻어나는 역사가 있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처음이라도 새것이라 해도 조금은 시간이 지난 듯한 편안함과 익숙함이 묻어나는 것이 좋고, 치장을 아무리 해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어울리지 않는 것, 조화롭지 못한 것, 메이드한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형태나 너무 튀는 컬러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가장 차분한 컬러와 오랫동안 보고 만져도 질리지 않는 것이 좋다.


물건을 살 때도 오래도록 사용해야 하는 것은 하나를 사더라도 기다림을 각오하고 마음에 쏙 들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이러저러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그만큼 정말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추억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깊이감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안다. 표면에 나타나는 것,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더더욱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표면에 나타나는 것을 숨길 수는 없다. 나는 늘, 그리고 언젠가는 표면에 가장 나다운 모습이 그려지길 바란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보여져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내면의 깊이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꾸밈이 외모로 표현 될 때 사람이든 집이든 가장 그것답고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깊이, 바로 이 깊이가 언제나 문제다.   


나는 오늘도 집에 대한 깊이를 위해 노트북 하얀색 화면에 글을 쓰고 나의 머릿속 하얀 도화지에 디자인을 구상하며 살고 있다. 나는 나의 머리와 가슴, 손의 감각을 한데 모아, 내 손 끝을 타고 그려지고 만들어지는 집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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