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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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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13시 52분 등록

 

1부 저자에 대하여

신화의 아버지, 죠셉 캠벨:

연구원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죠셉 캠벨이란 학자의 존재조차 몰랐다. 난 어느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걸까?

 

맨 처음 책장을 넘기며 만나게 된 그의 말, “우주와 공명하라는 내 가슴을 치고, 내 심장을 뚫고 들어와 정수리에 박혀 버렸다. 지금까진 난 어디서 무얼하며 헤메고 살았었던건지.

 

우드스탁.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도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바다 속에 나를 한 번쯤은 그 자리에 세워 놓고,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수많은 모래알이 아닌 존재의 의미가 무언지, 적어도 이번 생에 왜 지구별에 이 시간대에 와서 살고 있는지, 난 도대체 남은 삶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건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고 내 안에서 찾고 싶었다.

 

사부님께서 소개해주신 캠벨은 내게 그렇게 깊은 스승으로 다가오셨다.

 

연구원이 끝날 즈음 다시 집어든 그의 책 <신화의 세계>를 읽으며 난 지난 한 해 내 안의 신화를 얼마나 그려냈는지, 나는 과연 내 안의 보물을 찾았는지, 내 삶의 의미를 찾았는지 등을 돌아볼 수 있는 훌륭한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죠셉 캠벨.

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마 오래도록 두고두고 그의 다른 책들 책장도 넘기게 될 것 같다.

 

3부 내가 저자라면

가장 큰 깨달음: “내 안에 신 있다

<신화의 힘>으로 시작한 뒤 겨울까지 여러 권의 통찰 관련 책을 읽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번에 <신화의 세계>를 읽으며 난 정말이지 내 나름의 종교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종교를 버리는 것으로.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구와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는 그 나름의 신성이 깃들어 있다.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일을 증명하고자 과학적인 방법으로까지 접근하려 하고 있으나, 사실 이러한 사실들은 오래 전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때로는 주술사에 의해서, 때로는 철학자들에 의해서, 때로는 깨달은 자들에 의해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다만.

 

칼 융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의식 세계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의식할 수 있을 뿐이고 거대한 세계는 무의식이란 이름의 세계 저 편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가장 잘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다름아닌 신화라고 한다.

 

신화란 그러니까, 내 안의 신성, 내 안의 우주를 그 어떤 과학적 방식이나 현대인에게 익숙한 이성적 사고에 의함이 아닌 본능적 깨달음 혹은 체험에 의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표현인 것이다.

 

그것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동굴 벽화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성당 벽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이다.

 

그렇다며 나의 신화는? 샤먼이고 싶은 나의 신화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4월 오프라인 과제가 나의 신화 만들기였다. 뼈대는 거기 그 곳에 씨앗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그 모습이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서서히..

 

나의 신화, <먼별이를 찾아서> 기획 의도: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기계처럼 일어나야 하는 일상의 삶. 하루 일과는 정해진 일과에 의해, 정해진데로 흘러가는데 마음은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죽음 자체보다, 시도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이 너무 클 것 같다는 어지러움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즈음 필연 같은 우연으로 변경영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아주 작은 구멍으로라도 한 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둠은 걷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빛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사부님께서 이끄시는데로 따라가며 제 원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두려웠습니다. 때론 현실을 핑계대고 물러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꾸는대로 살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진실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간절함을 품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외부 세계도 아니고, 내가 처한 상황도 아니고, 그저 내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데 무척이나 오랜 길을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제가 진작 사부님을 만났더라면, 제가 진작 사부님께서 인도해주는 그런 책 속의 스승들을 만났더라면, 을 수없이 되뇌였지만, 아마 지금이 바로 저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연구원을 지원하게 되었는지, 지난 1년간 어떤 스승을 만나 어떤 과정을 통해 제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제 새로운 삶에 접어들기 전에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정리가 이 땅 위 누군가, 아직 답답한 호흡 속에 고통 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줄기 바람이 되길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1. 서론- 인간과 신화의 기원>

u       신화는 우리의 삶, 우리의 육체 그리고 우리의 환경을 소재로 한다 (5).

u       우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것, 이것이 신화의 주요한 기능이다. 사회가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발전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이런 신비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다 (5).

u       유니섹스 운동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차이는 처음부터 참으로 크다 (5).

u       그렇다, 남성 사냥 팀, 남성 스포츠 팀, 남성 클럽- 이런 것들은 예부터 있어온 조직이다 (7).

u       그렇다면 남자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둘러 앉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발명했다. … 덕분에 남자들에게 할 일이 생겼다. … 남자란 뭔가 진지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동물인 것이다 (7).

u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사회에서 이런저런 놀이들을 발명한다. … 남성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계급이고 서열이며, 제인 구달이 알파 수컷이라 부른 것이다 (8).

u       천둥 소리는 인간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최초의 암시이다 (9).

u       여성은 육체적으로 약점이 있다. 게다가 여성은 전쟁의 승자가 획득하는 전리품이다. 따라서 남성의 과제 중의 하나는 공동체에 속한 여성을 유괴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신화는 당연히 이 사실을 다루며,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은 모든 신화에서 저마다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다 (10).

u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매우 실제적인 동물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신성한 잉여로서의 아름다움의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다 (12).

u       대뇌가 일정한 크기에 이르고 의식에 어떤 변혁이 일어난 결과, 이 단계 (호모 사피엔스)에서 신화적 사고의 최초의 징후가 출현한다.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13).

n        그 하나는 매장이다. … 주검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모체의 자궁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잉여로서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신비의 첫 체험이다.

n        최초의 매장이 행해진 것은 이 네안데르탈인 시대이다.

n        둘째는 동굴곰의 두개골 숭배이다.

n        수렵 민족은 1년 내내 동물을 잡아먹으면서도, 현대의 우리들과는 달리, 그것들을 하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 수렵 문화의 기본적인 신화 주제는 동물을 자발적인 희생자라는 것이다.

n        그러나 동물은 다음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죽일 것. 내년이 또  다시 찾차오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어머니라는 원천으로 되돌려 보내어 소생시키는 제의를 행할 것.

u       동물계와 인간 사회 사이에는 자연의 신비를 존중한다는 계약이 있었던 것 같다. 자연의 신비란 생명을 죽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다. … 잡아먹는 쪽도, 잡아먹히는 쪽도 실은 하나의 생명이다 (16).

u       (크로마뇽인 시대로 넘어와서) 가장 초기의 이미지들 가운데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 입상들로 불리는 것들이 있다. … 여기에는 여체의 기적이 있다. 그것들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영양을 주는 여성의 육체의 신비를 본떠서 만들어졌다 (18).

u       여기에 암시되어 있는 것은 월경의 주기와 달의 주기 사이의 공통점의 발견이다. 천상의 생명주기와 지상의 생명주기 사이에 대응관계가 있음을 발견한 최초의 암시를 여기에서 엿보게 된다 (19).

u       소년이 배워야 할 것은 용기였다. 그들은 죽음과 부활의 제의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의존적인 유년기를 마감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고 적극적이며 약자를 보호하는 남자로서의 성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렵의 기술만이 아니라 수렵의 제의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21~2).

u       우리는 언제나 신을 일종의 사실로서 생각한다. 신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이란 단지 초월과 신비를 상징하는 우리들 자신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신비이며,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로 나타난다 (23).

u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우리의 어머니인 교회, 모체 그 자체인 대성당에서 당신은 다시 마법의 왕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상상하는 것은 꿈의 심상, 신화의 심상, 초월과 관련된 어떤 것의 심상이다 (26).

u       실제로 결혼에서 주도권을 쥐는 쪽은 여성이다. 여성은 자연과 그것의 본성에 더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단지 계시를 찾아서 올 뿐이다 (27).

u       마치 달이 그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뱀은 허물을 벗음으로써 재생한다. 따라서 뱀은 달과 마찬가지로 태음의식의 상징이다 (28).

u       사자는 태양과 관련이 있다. 사자는 태양의 동물이다. … 태양은 언제나 시간과 탄생과 죽음과 무관하며, 따라서 완전한 생명이다 (29).

u       한 마리 뱀이 청년의 미간을 물어서 내면적 이상의 눈을 뜨게 한다. 그 눈은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넘어서 심원한 것을 보는 눈이다. 두 번째 뱀이 귀 밑을 물고 있는 것은 하늘의 노래, 음악, 우주의 소리를 듣는 귀를 열어주기 위함이다. 세 번째 뱀은 발뒤꿈치, 즉 아킬레스건을 물고 있는데, 이것은 죽음을 가져온다. 사람은 자기의 작은 자아를 버리고 초월에 대한 지식을 옮기는 수레가 되며, 초월성에 대해서 투명해진다. 우리가 해석해온 입문식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29).

u       오늘날 우리의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최초의 출발점에서 선악의 문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29).

 

<2. 전설 속에 사는 사람들: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u       보름달은 사람의 서른 다섯 살에 해당한다. 예이츠가 이 책 (비전 A vision)에서 사용한 용어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초월적인 신비로부터 태어나고, 사회는 곧바로 우리들에게 각인을 시작한다. 우리가 써야 하는 가면은 사회가 씌워준 것이다. 예이츠는 이것을 원초적 가면 (primary mask)이라고 부른다 (33).

u       성숙에는 두 종류가 있다. 먼저 전통 사회의 성숙이다. 전통사회에서 개인은 이제까지 존재해 온 사회의 권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 원초적 가면의 역할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편, 우리의 문화 세계에는 보다 개방적인 견해도 있다. 이 경우에 개인은 사회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 자신만의 운명과 막중한 과업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서부터 분리가 시작된다 (33).

u       개인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발견하게 되면, 이른바 원초적 가면의 억압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을 왼손의 길 (left-hand path)이라고 부른다. 오른손의 길은 자신이 사는 마을의 울타리, 곧 이데올로기와 가면 체계에 갇혀 살아가는 길이다. 왼손의 길은 개인적인 탐구의 길이다 (33~4).

u       우리 현대인은 원시 사회나 전통 사회의 사람들처럼 쉽게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우리는 더욱 복잡한 탄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34).

u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의식인가, 아니면 의식을 나르는 수레인가? 나는 빛, 태양의 빛을 나르는 육체인가, 아니면 빛 그 자체인가? 나는 언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대학 예비학교 학생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부처 의식 또는 그리스도 의식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에서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서 천장을 쳐다보다가 그것을 찾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천장을 보세요. 여러 개의 전등이 켜져 있지요.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불이 켜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요. 같은 것을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한 가지 방식은 전구 하나하나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방식은 그 빛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 (35).

u       중요한 것은 빛을 나르는 수단이 아니라 빛이다 (35).

u       만일 당신이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한다면, 그것을 옮겨준 수레에는 감사의 마음으로 작별을 고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의식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만물과 하나가 되고, 따라서 지지무게라고, 곧 개별 존재와 전체 사이에는 어떠한 장벽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궁극적인 신비체험이다 (35).

u       그것은 중대한 전환기이다. 상현달이 뜨는 밤의 죽음과 부활은 유치한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성숙의 탄생을 의미한다. … 그 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 살아가는 육체를 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36).

u       중대한 전환기의 결정적인 순간을 시사하는 표상이 있다. 유혹, 곧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잔이다. 이것은곧 사회가 정해주는 결혼이 아니라 눈과 눈의 만남의 자각, 곧 개인의 운명과 그 실현의 자각을 상징하고 있다 (36).

u       땅이란 신성한 곳이다. 딴 곳의 땅이 아니라 당신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 말이다. … 여러분은 성지를 찾아서 어느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전혀 없다 (38).

u       (만다라의) 중심은 어둠, 칠흑 같은 어둠인데 만물은 그 곳에서 나와 그 곳으로 돌아간다. … 부처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런 종류의 만다라는 모두 동쪽이 열려 있다.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빛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39~40).

u       우리는 신비, 곧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나오는, 무한하고 처음도 끝도 없고 영속하는 신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40).

u       모든 생명은 신비로운 생명에 의해서 유지된다.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당신 자신의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려고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생명이다 (41).

u       북쪽은 인생의 새로운 소재를 얻는 유일한 방향이다. …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네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길을 간다. 이것은 전형적인 영웅 탐구 신화이다 (47~8).

u       제의는 방금 말했던 것, 그들 자신의 인생 역정이라는 제의였다 (56).

u       자신이 자란 세계의 경계를 넘어 아직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초월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없었던 것을 얻고 그 전리품과 함께 돌아온다. 여기에서는 이런 종류의 신화체계가 가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57).

u       그리스어로 된 원본을 라틴어로 옮긴 <24인의 철학자들의 책>이라는 12세기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은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이다.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결국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의나 신화의 기능은, 아주 먼 옛날의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58).

u       나는 신비적인 차원과 그것에 대한 깨달음, 곧 신비주의와 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생각한다 (58).

u       신화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실제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59).

u       <Foreign Affairs>사회적 신화의 보호와 복구 (Care & Repair of Public Myths)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 기사의 요지는 사회는 그것을 떠받치고 그것에 통일성을 주는 신화를 필요로 하며, 그런 신화를 가지지 못한 사회는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59).

u       신화는개인을 이끌어가는 길을 제시한다. … 신화는 살이 있는 인간을 그의 생활주기와 조화시키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화시키고, 이미 그 자체가 환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와 조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59).

 

<3.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서 무기를 씻었다: 신석기 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u       다음의 큰 무대는 도시 문명의 출현, 곧 역사적 과정의 시작이다. … 문명은 역사와 더불어 출현한다. 청춘, 성숙 그리고 노년의 과정이다. 이것을 표현한 중요한 문헌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다 (61).

u       농업과 목축이 시작된 모체로 인정되는 세 개의 중심 지역이 있다. 먼저 현재 가장 초기의 중심 지역으로 인정되는 곳은 동남아시아이다. 두 번째는 서남아시아, 소아시아 및 동남 유럽에 걸친 지역이다. 세 번째는 물론 중앙 아메리카의 멕시코 및 페루이다 (61).

u       기원전 6천년의 여신상은 몇 가지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 그 하나는 아주 긴 목이다. 이것은 세계의 중심축이다. 여신의 수레의 바퀴축이다 (65).

u       대략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혹은 기원전 2500년까지의 크레타 섬의 발굴 자료를 보면, … 초기의 여신 신앙은 크레타 섬에서 간신히 살아 남았다 (67).

u       고대 문화 가운데 크레타 섬처럼 여성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 곳은 달리 발견되지 않는다. 초기의 여신 신앙 체계에서 차지했던 여성의 역할이 그 곳에서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69).

u       여성이 뚜렷한 역할을 하는 종교적인 제의에서는 대체로 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보다는 종교적인 체험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69).

u       최초의 도시는 근동에서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전혀 새로운 요소가 있었다. 작은 공동체나 유목민의 문화 생활은 대체로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구성원 전부가 공유할 수 있다. 평등한 성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세대간의 차이, 남녀의 차이, 그리고 보통 사람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샤먼 기질의 몽상가의 차이 정도였다. 그러나 농업의 정착과 가축의 사육에 이어 나타난 공동체의 확대와 함께 직업의 차별이 생기기 시작한다. … 그리하여 사람들간의 차별과 함께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71).

u       문자에 의한 기록, 수학 그리고 천체에 대한 정확한 관찰 덕분에, 행성은 수학적으로 결정 가능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결론이 얻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학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우주의 질서라는 이념이 생겼다. 그것은 문화의 전면적인 변화이며,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요소가 들어온 것이다 (72).

u       이제 우주적 질서라는 관념이 생기고, 예외는 환영받기는커녕 배척된다. 예외는 이상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관이 생기게 되었다 (72).

u       세계 최초의 도시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나타났다. 이 지방에 많은 사람들이 흘러 들어온 것은 기원전 4천년 무렵이다. 거의 같은 시대에 나일 강 유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나일강은 사방이 사막으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일종의 오아시스이지만,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지역은 전혀 다르다. 동서남북 사방이 터져 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 쉽다. 따라서 이집트에서는 매우 안정된 문화가 순조롭게 진화한 반면에, 티그리스- 유프라세트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변화와 역사적인 발전이 있었다 (72).

u       만자 모양은 나침반의 네 방향을, 지구의 교차하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73).

u       인도에서는 신이 자진해서 춤을 추며 세계에 들어온다. 세계는 유희이며 놀이이다. 그것이 이 신화들의 기본적인 분위기이다. 적어도 그것은 즐거운 것이며 유머러스한 것이다. 세계의 신화 가운데서 구약 성서의 신화만큼 음울한 것은 없다 (77).

u       모성 신앙을 생각할 때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번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신의 중요한 힘은 아니다. … 그 가장 큰 특징은 정신적인 면의 강조에 있다 (78).

u       기원전 2400년 무렵부터 우리 세계의 특징, 곧 우리 문명의 특징이 된 전쟁, 용서 없이 몰살하는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80).

u       집단 매장, 곧 궁정 전체의 순장은 근동에서는 극히 최근까지도 이어져왔다. 초기 이집트의 왕조사는 이런 사례로 가득하다.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 시대까지 이어졌는데, 두 사람 다 그것을 잔인한 제도, 계속되어서는 안 될 제로라고 말했다 (82).

u       저승으로 내려간 두무체는 그의 아내인 여신을 향하여 이곳으로 와서 당신과 자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달라고 노래한다. 여신은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으로 내려가 자신과 남편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이것이 순사의 사상이다. 부부는 한몸이다. 남편이 죽거나 희생되었다면 아내는 그를 따라야 한다. 아내의 영웅적인 행위에 의해서만 두 사람이 함께 영원으로 인도된다 (83~4).

u       또한 이 시대부터 동물 우화의 최초의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84).

u       다음에는 기원전 1750년 무렵으로 가보자. 이것은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이다. 영웅 길가메시의 위대한 서사시는 이 시대를 노래한 것이다 (84).

 

<4. 파라오의 지배: 이집트, 출애굽 그리고 오시리스 신화>

u       인종은 다르지만, 문화는 같다. … 이것을 창조적인 중심으로부터의 전파라고 부른다. 새로운 이념과 함께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신들이나 에너지의 상징들도 퍼져나간다 (90).

u       아크나톤의 이른바 일신교와 모세의 일신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아크나톤은 태양원반으로 상징되는 신비가 근동 전역의 모든 신들과 신화들에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나타나고, 저기에서는 저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야훼 신앙의 일신교는 이 세상에는 야훼 이외의 신은 없다. 다른 신들은 모두 악마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이 명확한 차이를 충분히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101).

u       나는 이집트의 상징과 인도의 신비 철학 사이에는 아주 큰 유사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이 세 개의 상자와 석관 안에 있는 두 개의 장식관은 인도에서 다섯 개의 칼집이라고 부르는 것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다섯 개의 칼집은 아트만 (atman: 인도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의 하나, 인간 존재의 정신적, 영구적 실체), 내적 자아, 초월적인 신비를 내포한다 (103).

u       첫번째 칼집은 아나마야코샤, 곧 양식이다. 우리의 몸은 그것으로 만들어진다. 두 번째 칼집은 프라나마야코샤, 곧 호흡이다. 호흡의 칼집이 양식을 점화시키고 산화와 연소를 일으켜서 열과 체온과 생명을 준다. 세번째 칼집은 마나마야코샤, 곧 정신이다. … 다음의 칼집은 자나마야코샤, 곧 지혜이다. … 몸의 지혜는 정신이 의지하는 자발행동적인 것, 정신이 알아야 하는 자발행동적인 것이다. …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 지혜의 몸 아래에 있는 것은 아난다마야코샤, 곧 축복이다. 생명의 환희의 표현이다 (103~4).

u       정신의 칼집은 윤리, 곧 선과 악, 밝음과 어둠, 기쁨과 고통에 관계한다. 지혜의 칼집은 그런 분별 이전에 무엇이 있는가를 안다. 그것은 환희이다. 따라서 그것이 당신의 본디 모습이다. 당신은 환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 만일, 환희의 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만 한다면, 이 현실이야말로 인생의 환희임을 깨달을 수 있다. 고통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영웅적인 신화에는 이런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104).

u       구약성서의 영웅은 민중이다. 민중은 하나의 단위로서 간주되며, 개인은 그 일원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강조되는 것은 집단, 집단, 집단이다 (109).

 

<5. 성스러운 원천: 영구불변의 동양 철학>

u       먼저 두 개의 단순한 관념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관념은 이미 여러 번 말한 것이지만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아돌프 바스티안 (1826~1905)의 생각이다. 세계의 신화와 종교 체계를 조사한 바스티안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은 이미지와 같은 주제가 되풀이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그것을 원소적 관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또 그것들은 발생할 때마다 환경에의 적응이나 해석에 차이가 있으며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런 지역적인 차이를 민속적 관념또는 민족적 관념이라고 불렀다 (113).

u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관념이란 다음과 같다. 기원전 9~8세기 무렵에 특히 동양에서 강조점의 변화가 나타났다. 단지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화를 상징하는 상과 신화를 생활에 받아들게 해주는 제의를 통해서 신화의 형식에서 선명하고도 생생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동양철학은 실제로 원소적 관념을 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13~4).

u       신화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계속성은 철학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신화는 꿈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 나더러 말하라면 그 영역을 지혜의 몸이라고 부르겠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몸이 말하기 시작한다.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인다. 에너지가 지혜의 몸을 지배한다. 에너지는 거대한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온다. 그곳에 있는 에너지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의식의 양태이다 (114).

u       꿈의 지혜, 환상의 지혜는 영구불변의 철학의 지혜이다. 꿈을 꾸다가 깨어난 당신의 의식은 그 꿈을 이해할 수 없다 (114).

u       상징의 주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상징에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신화에서 중요한 것, 신비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속뜻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속뜻은 언제나 정신적이다 (115).

u       우리 서양인이 상징을 다룰 때의 주요 문제점들의 하나는 상징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 예를 들면, 우리는 신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115~6).

u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이런 훌륭한 말을 했다. “시를 쓰는 것은 말 뒤에 숨어 있는 원초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세상만물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변화하는 것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거울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실체는 공이다 (116).

u       우리 서양인이 이런 것을 해석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성적 사고에 치우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 상징에 나타나는 민족적 요소를 성서의 틀에 끼워맞추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를 사실과 이성적 인식의 세계에 묶어 둔다. 그러나 동양적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초월되어야 한다 (118).

u       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례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명상하고, 참된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118).

u       고도의 문명이란, 문자가 있고, 수학이 발달하고, 별자리의 행성의 주기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 문명을 말한다 (122).

u       별자리의 행성들의 주기 운동은 이 시대의 의식 변혁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요소이다. 문자와 수학 덕분에 별자리의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122).

u       신화는 분석과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으며, 원인을 과학적으로 발견할 필요도 없다. 신화는 인간을 그를 둘러싼 환경에 결합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행성의 위대한 움직임을 발견하기 전에는 인간의 환경은 주로 동물과 식물의 세계였다 (122).

u       그러나 그 뒤, 천체의 위대한 주기가 발견되자 사회의 전 조직을 이 주기운동에 연관시키려는 강한 관심이 생긴다. 그곳에서는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가 매우 중요시된다. 이 축제는 자연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연은 풍부한 혜택을 준다. 이것은 현재 우리들의 의식에 싹트고 있는 것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23).

u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계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123).

u       인도- 유럽인들이 온 뒤, 인도에는 큰 정신적 전환기가 찾아왔다. 이 때는 신화가 철학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인도의 기본적인 성전은 찬가를 모은 베다로 알려져 있다. 베다라는 말은 지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의 어근 비드에서 나왔다. 베다는 지식의 표현이며, 그 지식은 독특한 지식이다. 그것은 스루티라고 하는데, “들리는 말을 의미한다. 성자들은 베다의 찬가를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 그들은 찬가를 들었던 사람들이다. 당신은 글을 쓸 때면 의도해서 쓰기도 하지만, 영감에 사로잡혀 쓰기도 한다. 영감이 샘솟으며 말이 터져나오는 일이 있다 (124).

u       베다는 제의의 본질을 이룬다. 그 제의에 의해서 신격화된 자연의 힘들이 아리안 사회가 지향하는 것을 떠받치기 위해서 불려나온다. 신들을 불러오는 것은 자신의 의사를 실현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 부족들에서 특징적인 지도자는 둘이다. 하나는 전사의 우두머리이며, 다른 하나는 신들을 불러내는 성자, 곧 주술사이다. 따라서 두 종류의 힘이 작용한다 (124).

u       히브리족은 방주를 가지고 있었다. 문화인류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것은 신성한 힘을 옮기는 주물이다 (125).

u       브라만은 중성 명사로서 브르르르르곧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신성한 에너지다. 브라만은 신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브라만의 의인화이다. 당신도 그러하고, 이 세계도 그러하다. 브라만은 브라만의 에너지와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사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126).

u       브라만은 희생을 통해서 신들을 조종한다. 그들은 마치 큰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처럼 희생을 다룬다 (126).

u       세계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이며, 그 속으로 무진장한 제물이 던져진다.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우리는 모두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제물이다. 부처가 최초로 한 설교, 곧 베나레스의 정원에서 한 설교는 불의 가르침이라고 부른다 (127).

u       감각의 욕망은 타오르는 불이다. … 그 불을 꺼야 한다. (127).

u       생명이란 끊임없이 타고 있는 불이다 (127).

u       죽음에서 삶이 나온다. 그리하여 죽음을 통해서 삶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생겼다 (128).

u       이제 우리는 신화에서 철학으로 이행하는 시기로 왔다. 세계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이다. 그 불을 더욱 더 지펴야 한다. 사제들은 희생을 바침으로써 불을 지핀다. 그런데 지금 이 철학화의 과정에서 우파니샤드라는 제 2 단계에 도달했다 (128).

u       베다가 기원전 1000년 무렵의 것이었다면, 브라마나는 기원전 900~800년 무렵의 것이다. 같은 시대에 우파니샤드도 시작된다 (128).

u       신들의 근원은 당신 마음 속에 있다. 발자취를 더듬어 중심으로 가서, 신들을 낳는 근원은 당신 자신임을 알라. 이것은 이미 이집트에도 있었던 생각이다. 그것이 영구불변의 철학의 기본적인 관념이다 (129).

u       신들은 바로 당신 자신의 에너지의 상징적인 의인화이다. 당신 자신의 에너지는 우주의 에너지이다. 따라서 신은 저곳에도 있고 이곳에도 있다. 그렇다, 천국은 당신 안에 있다. 그렇지만 또 어디에나 있다. 이것이 영구불변의 철학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129).

u       그렇다면 이제 자기 내부의 불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은 심리학적인 구별 작업이다. 그것은 실재의 육체적이고 가변적인 면과 영속적인 불꽃을 구별하는 작업이다. 젋음과 늙음, 삶과 죽음은 그 불꽃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129).

u       구루는 자신과 그 불이 하나임을 발견하고 자각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구루는 불의 소리로 말한다. 그로부터 500~600년 뒤에 예수도 같은 말을 한다 (129).

u       그런데 이 시대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이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인 것이다. 그 무렵에 페르시아에는 조로아스터 또는 자라투스트라라고 부르는 위대한 스승이 나타난다. … 조로아스터는 희생의 관념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130).

u       열반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다. 열반이란 괴로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심리적인 태도를 말한다. 당신의 인생을 괴로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불안이다 (131).

u       이 욕망과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마하수카, 곧 큰 기쁨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열을 경험하게 된다. 법열을 경험하게 되면 고통이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하게 된다.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가며, 기쁨이 흘러넘치게 된다. 당신이 중심에 들어가면 이미 무엇을 얻는다든지 잃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 (132).

u       부처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열반에 대해서 말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집단으로는 자이나 교도가 있었다. … 자이나교의 기본적인 사상은 이렇다. 살아 있는 개체, 지바라는 영혼은 카르마라는 행위에 의해서 더럽혀진다. 카르마는 본디 빛났던 지바를 검게 하고 무겁게 만든다. … 그들이 하는 요가의 목적은 그 검정을 씻어내고 그 행위를 정화하는 것이다 (132).

u       죽여야 할 것은 심리적 차원의 온갖 욕망과 불안이다. 그 때 비로소,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생명은 긍정적인 것이 된다 (133).

 

<6. 정각에 이르는 길: 불교>

u       부처가 살았던 기간은 기원전 563~483이다. … (부처가 열반에 든지) 500년 뒤에 불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최초의 불교와는 다른 불교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135).

u       최초의 불교는 매우 강한 수도원적 색채를 띠었다. … 그러나 1세기에 북서 인도에서 이 관념이 바뀌었다. 또 다른 불교가 태어난 것이다. 1세기는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기독교에도 최초의 세기였다 (135).

u       부처는 연꽃 위에 앉아 있다. 이것은 부처의 내적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 연꽃은, 갠지스 강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세계로 흘러들어오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상징한다. 그것은 중세의 기독교 전통에서 장미가 상징하는 것과 같다 (136).

u       연꽃이나 장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 꽃이 나타내는 에너지를 의인화한 것이다 (138).

u       불성의 핵심은 자신이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주된 이유는 사회가 집요하게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140).

u       부처가 되려는 사람은 부동지라고 부르는 세계의 중심축곧 우주의 중심에 있는 나무에 다다르게 되면 그 곳에서 좌선에 들어간다. 우주의 중심에 앉는 것은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조건이다 (140).

u       그 곳은 어떤 곳인가? 욕망과 불안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곳이다 (140).

u       언제나 사회가 의무라고 말하는 것만을 행한다면, 어떻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141).

u       불교는 부처의 정각에로 당신을 데려가는 탈 것’, 특히 나룻배이다. 불교는 우리를 피안으로 건네주는 나룻배이다. 피안이란 괴로움과 즐거움, 얻음과 잃음, 불안과 공포, 너와 나를 초월한 장소이다. 그것은 우주적인 일원성 또는 우주만물의 불변성을 자각함으로써 이원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143).

u       핵심이 되는 말은 무아이다. 삼라만상에는 자아가 없다. 우리 모두는 그런 초월성의 표현이다. 삼라만상에는 자아가 없다. 우리 모두는 그런 초월성의 표현이다. 우리를 타인과 구별하는 것이 바로 자아의 관념이다. 그것을 없애라. 두려워하지 말고 상대에게 양보하라. 타자의 먹이가 되라. 그럴 때 당신은 완성자가 된다. 그때의 경지를 극락이라고 부른다 (145).

u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이 최선의 교훈, 최고의 규칙일까? 최고의 규칙은 벗들과 즐겁게 지내고, 즐겁게 식사하는 것이다. 당신의 놀이가 무엇인지 깨달으라. 그 놀이, 인생의 놀이에 참여하라. 이것이 바로 극락, 곧 마하수카이다 (145).

u       파티는 존재를 자각하기 위한 제의이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위대한 불교이다 (145).

u       대승불교는 인도의 북서 지역에서 발달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시기는 주로 기원 후 처음 2세기 동안으로 기독교가 발달한 시기와 겹친다. 보살이란 초월성을 자각한 사람이 현실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가형을 받는, 스스로 나서서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사상이다 (145).

u       당신이 그리스도를 부처와 똑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훌륭한 대화가 생긴다. 기독교와 불교는 동일한 원소적 관념이 두 개의 민속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146).

u       두 개의 불교가 있다. 금욕의 고행을 장려하는 불교와 기꺼이 참여하는 불교, 곧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이다 (146).

u       동양의 전통에서는 또 다른 기회를 얻으려고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자아가 완전히 비워질 때가지 몇 번이나 환생한다. 그러나 환생과 환생 사이에는 천상계로 가거나 지옥으로 가는데, 그것은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달려 있다 (`147).

u       당신이 간 천상계는 당신의 상태에 꼭 들어맞는 곳이다. .. 일종의 특수한 중력을 가지고 있는 당신 자신의 정신이 당신을 천상계의 가장 적당한 곳으로 옮겨 준다. … 당신이 즐길 천상계는 당신의 준비에 걸맞는 곳일 것이다. 천상계에는 단계가 있다. 낮은 천상계는 얼마간의 에로틱한 기쁨을 준다. 그 위는 철학적 관조와 같은 종류의 기쁨을 준다. 그보다 더 위는 초월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명상의 세계이며, 그곳에서 마침내 당신은 해탈한다 (148).

u       결국 당신의 미래의 모습은 단지 지금 이 세상의 당신의 성격과 존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148).

u       부처와 공자는 기원전 500년이라는 중요한 연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가 열반과 부동지를 탐구한 데에 비해서, 공자는 사회적 참여를 증시한다. .. .공자의 뒤에는 또 다른 인물, 노자가 있다. … 노자는 자신을 도, 곧 일종의 불멸의 존재와 동일시한 늙은 현자였다 (148).

u       중국에는 유교와 도교라는 두 가지 심오한 태도가 존재한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사회적 관례에 따라서 사회에 참여하는 유교적인 분위기가 우세를 차지한다. … 그러나 사회가 광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그 때는 사람들이 우주와의 합일, 우주의 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도교에 기울게 된다 (149).

u       어쨌든 중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흐름에 참여하는 태도가 인도에서보다도 훨씬 중요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나 매우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 중국에는 이처럼 훌륭한 참여의 정신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149).

u       같은 무렵, 그리스에서는 피타고라스가 활약하고 있었다. … 피타고라스 사상 가운데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온다. 오비디우스는 신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 속으로 신들과 매우 친했던 사모스의 현인에 대해서 말한다. 이 현인은 무엇을 가르쳤던가? “만물은 변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이다. 한 덩어리의 밀랍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50).

u       5세기의 그리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출현과 더불어 다른 요소, 곧 합리적인 철학 그리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보는 휴머니즘의 전통이 추가되었다. 휴머니즘이란 인간을 신들에게 예속되지 않은, 만물의 중심으로 보는 인간관이다. 신들은 메아리로서만 존재할 뿐, 인간의 다양한 힘의 표현에 불과하다 (151).

u       서양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성서라는 두 가지 유산을 계승했다 (151).

u       그런 영향 아래 인도에서 태어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소카였다. 그는 기원전 3세기 중반 또는 기원전 250년 전후에 살았다. 아소카는 불교도가 된 최초의 왕이었다 (152).

u       아소카 왕은 최초의 불교도 왕으로서 실론 (오늘날의 스리랑카)에 선교사를 파견했는데그는 또 마케도니아, 키프로스, 이집트에도 선교사를 파견했는데따라서 기원전 250년 무렵의 근동에는 불교의 선교사가 있었고, 같은 시기에 신플라톤 학파의 철학도 그 곳으로 찾아 왔다 (154).

u       불교는 어디로 가건 너희의 신들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가 가는 곳마다 참으로 간단하게 종교의 융합이 이루어진다. … 보다 온건한 불교의 특징은 먼저 살고 있던 신들 역시 그 땅의 생명력이며, 불성의 표현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신들은 자신들의 불성을 드러내는 데 참여한다 (154).

 

<7. 이드에서 자아로: 쿤달리니 요가 (1)>

u       요가의 이념은 요가라는 말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어떤 것과 묶다, 결합하다라는 뜻을 가진 유즈라는 어근에서 유래한다. 결합되는 것은 우리의 자아의식과 의식의 근원이다 (155).

u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양사상에 적합한 말로 표현한다면, 신들은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155).

u       인도의 마야 개념이 감성의 형상이나 논리의 범주에 관한 칸트의 개념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은 쇼펜하우어였다 (157).

u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서양 사상을 동양 사상의 용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양자는 거기에서 훌륭하게 통합되어 있다. 니체 역시 이것을 채택하여 서양의 주류 철학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큰 영향을 미쳤다 (158).

u       융은 상징이라는 말과 기호라는 말을 구별했다. … 상징이란 본디 신화적인 상징인데, 그 한 쪽 발은 이곳에 놓여 있지만, 다른 한쪽 발은 무한성에 놓여 있다. 그것은 초월성을 향하고 있다. 기호는 이곳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 신은 상징이 아니라 기호이다 (158).

u       알기 쉽게 말하면, 이미지를 구체화하거나 상징을 구상화하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종교 전체가 우상숭배 체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우상숭배를 찾아내어 파괴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158).

u       두뇌의 생리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신경, 단백질이고, 다른 하나는 신경계 안에 살아 있는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계시를 전한다 (159).

u       거친 덩어리 (연금술의 용어로서 제1원질과 같다)는 산스크리트로 스툴라라고 하며, 영묘체, 곧 내적 에너지 또는 활성화의 원리는 수크슈마라고 한다 (159).

u       두뇌 안에 있는 영묘체는 어떤 모양을 취하여 감각을 자극한다. … 어떤 소리를 듣는 것, 그 밖의 것들도 같은 원리에 의한 것이다 (159).

u       요가의 목표는 정신을 정지시키는 데에 있다 (159).

u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한 의식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요가의 목표이다 (160).

u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것으로 가득 차 있다 (160).

u       만일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에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차적인 경험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때때로 다른 자각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따라서 요가의 기능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161).

u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요가는 4~5세기에 개발된, 나중 시대의 특정한 요가이다. 그것은 쿤달리니 요가라고 부르는데, 동양의 모든 종교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에서 이것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161).

u       쿤달리니서리다라는 뜻의 쿤달린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말하자면 척추의 아랫부분, 육체의 밑바탕에 서려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가리킨다. 에너지가 그곳에 서려 있는 동안에는 정신적 생명이 아직 빈약하다. 정신적 에너지를 축적한 기관은 골반 언저리에 있다. 요가의 목표는 서려 있는 에너지를 깨어나게 해서 등골을 통해서 위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것은 뱀, 작은 암뱀의 형상으로 표상된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에너지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161).

u       상승 과정에서 뱀은 일곱 개의 중심 (생명 에너지가 집중된 곳으로서 차크라라고 한다)을 통과한다. 밑의 중심은 물라다라로서 근저를 의미한다. 정수리의 중심은 사하스라라로서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을 의미한다. 이 둘 사이에 다섯 개의 다른 중심이 있다. 뱀의 힘이 차례로 이어지는 이 중심들의 영역을 통과하면서 개인의 심리 전체가 변화한다 (162).

u       쿤달리니 요가는 참으로 심오한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연마된 철학적 사고인데, 융은 <티베트 사자의 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우리는 겨우 차크라 3에 이르렀을 뿐이다나라면 융 자신은 차크라 4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싶다 (162).

u       인간의 몸과 우주의 몸은 대등하기 때문에, 우리의 등골은 세계의 중추에 해당한다 (162).

u       먼저 호흡의 조절에서 시작한다. … 여기에는 정서, 감정 그리고 정신 상태는 모두 호흡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있다. 쉬고 있을 대 호흡은 평온한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어떤 충격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호흡은 흐트러진다. 반대로 호흡을 바꾸면 정신 상태도 바뀐다. 천천히 호흡함으로써 연못의 잔물결을 잠재우는 것이다 (163).

u       육체의 기관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이 충동체계의 충돌에서 나온다 (164).

u       동양에는 전통적으로 다섯 개의 원소가 있다. 서양에는 네 개의 원소가 있다. … 동양에서는 제5의 원소를 아카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보통 에테르를 의미한다. 그 밖의 원소는 흙, , , 바람이다. … 다섯 원소의 하나하나에 관계하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다. 중심의 부처와 동서남북의 부처가 있다 (165).

u       북쪽은 말하자면 지하세계인데, 그곳에서 악귀, 병마, 위험 그리고 포악한 힘이 나온다. … 그래서 소년들은 북쪽으로 간다. 사회의 규칙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북쪽으로 가는 것이며, 그것은 규칙을 깨는 것이다. 그 곳에는 사회가 그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돌아오면 그것이 구원하는 힘, 확장된 힘이 된다 (165~6).

u       부처란 깨우친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다 (166).

u       영적인 것을 쉽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 자신의 영적인 생명이 육체로부터 자신을 해탈시킨다고 느낄 때, 우리는 상승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도중의 어떤 단계에서 큰 실망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가 아직도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울경험이라고 한다. 애써 자신을 영묘체에 동화시켰건만 여전히 비천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 불멸의 존재가 되려고 했건만 여전히 지상의 존재에 불과하다 (169).

u       당신은 육체의 빛, 당신의 육체의 의식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불멸의 의식의 반영이다. 의식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당신이 있다. 당신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특정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의식의 표현이다 (170).

u       유한한 자기 존재의 변천 속에서 자기의 영원성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목적의 전부이다 (170).

u       부라만은 정적인 에너지이고 마야는 동적인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은 또다시 이원론에 빠지는 것이다. 초월계는 어디까지나 초월계이다. 그것은 모든 사고를 초월한다 (173).

u       얀트라란 우리가 명상하는 것을 도와주는 장치, 곧 명상의 보조자이다 (176).

u       우주는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 전세계,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 기독교는 환멸에 대한 명상으로부터 생겼다.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에 걸쳐서 모든 유태 민족은 세계의 종말이 온다며 흥분했다 (178~9).

u       우리의 문화에서 환멸의 명상에 잠기는 것은, 1000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179).

 

<8. 심리학에서 영적인 것으로: 쿤달리니 요가 (2)>

u       종은 아홉 번 울린 다음 다시 아홉 번 울렸다 (우리나라 절에서도 백팔번뇌를 지우려고 열여덟 번 범종을 울린다). … 시간의 영역에 무한의 에너지가 흘러들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것이 삼종 기도 종소리의 참된 의미이다. 여신이 108개의 이름을 가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것은 모두 같은 이야기이다 (181).

u       뱀은 달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뱀은 허물을 벗고, 달은 그 그림자를 버린다 (182).

u       연꽃은 여성, 곧 여신 자체이다 (183).

u       호흡은 언제나 당신의 참된 실재는 우주에 생기를 불어넣는 신비한 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184).

u       이번에는 차크라 2, … 이것은 성기이다. 이 차크라에서는 사람의 심리가 바뀐다. 이미 행동주의가 아니라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가까워진다. 모든 것이 흥분 상태에 빠진다. 성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비친다. … 여기서는 성적 욕구불만도 인정된다. 욕구불만이 계속되면 인간은 어떤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 때 문명이 나타난다. 그것이 승화라는 것이다 (185).

u       달은 생명의 조수의 지배자이다. 모든 성적인 것은 생명의 조수이다. 보름이 되면 사람들은 미친 듯이 성을 찾는다 (185).

u       갠지스 강물의 흐름은 이 에너지, 생명과 흥분과 세계 내 존재의 성애의 원천이다 (185).

u       사랑에는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처음의 가장 단순한 사랑은 주로 사랑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사랑이다. 그것은 주인과 노예간의 사랑, 특히 주인에 대한 노예의 사랑이다. … 이 사랑은 종교적인 사색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다. 그들은 자신이 숭배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신명기등이 실려 있는 구약 성서에는 이런 율법의 수여라는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율법, 오로지 율법에 의해서 신은 당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188).

u       사랑의 두 번째 형태는 친구들간의 사랑이다. 상대가 친구들이라면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진다. … 즉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청년들과 크리슈나의 사랑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들간의 사랑이다. 그들은 서로 친밀하며, 무엇이든 물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끔찍이 생각하며, 마침내 깨달음에 이른다 (188).

u       사랑의 세 번째 형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 여기서 숭배의 대상은 아기이다. … 아기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마음 속에 정신적 생명이 탄생했음을 상징한다 (188~9).

u       인간의 활동 속에서 신성한 것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힌두교, 탄트라교, 불교의 훌륭한 점이다 (189).

u       도는 관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서 실현된다 (189).

u       다음으로 사랑의 네 번째 형태는 배우자끼리의 만남, 결혼이다. 힌두교도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보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원리는 이렇다. 결혼 생활, 곧 두 사람의 공동생활, 그것은 제의의 장이다 (189).

u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는 사랑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적극적인, 금지된, 세상의 관습을 무시한 사랑이며 초월계의 돌파구를 여는 사랑이다. 그것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누군가를 돕는 경험과 비슷하다. 정열과 충동이 너무나 강렬하여 세계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궁정연애의 이념이다 (189).

u       여기에서 배꼽의 단계에 있는 차크라 3, 즉 마니푸라로 옮겨가자. 마니푸라란 빛나는 보석의 도시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너지는 공격적이다. 정복하고, 불태워 없애고,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는 아들러의 심리학과 완전한 변신이 있다. … 프로이트에게 근원적인 에너지는 성이었다. 아들러에게 근원적인 에너지는 권력에의 의지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에의 의지가 근원적인 에너지이다. … 우리는 모두 그 양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한쪽은 열성이고 다른 쪽은 우성이다. 그래서 융은 에난티오드로미아 (서로 반대쪽에 있는 것들간의 반발과 상호 의존이라는 긴장 관계를 가리킨다)라는 이원론적인 심리학을 세웠다. … 우리의 인생에서 그것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차크라 3은 기본적으로는 권력이 지배하는 차크라이다 (191).

u       만자는 운동, 에너지, 폭력을 의미한다 (191).

u       차크라 1,2,3의 단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동물의 단계에 살고 있다. 동물들 역시 생에 매달린다 (191).

u       따라서 이런 단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법, 곧 다르마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한다. 민중 종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사람들은 건강, , 자식, 승리를 얻으려고 기도한다. 신들은 당신의 동물적 본성에 봉사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것이 민중 종교이다 (193).

u       우리는 차크라 4에 도달할 때까지는 참된 종교생활, 즉 정신적 탄생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차크라 4는 심장의 단계, 예수의 성스러운 심장의 단계이다 (194).

u       차크라 4는 아나하타이다. 아나는 없다, 하타는 부딪히다, 라는 뜻이다. 곧 아나하타란 두 개의 사물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서 나는 소리를 의미한다. 나의 목소리, 당신이 듣는 어떤 소리도 두 개의 사물이 서로 부딪쳐서 나는 소리이다. … 두 개의 사물이 충돌하지 않고 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그것이 옴이다. 삼라만상으로 나타나는 우주의 에너지의 소리이다. E= MC2, 곧 에너지는 모든 형상의 바탕에 있는데 그 에너지의 소리를 옴이라고 부른다 (194).

u       인도인은 언제나 침묵, 무한, 초월, 허공 속에 존재하는 바탕을 인정한다 (194).

u       따라서 모든 말은 의 조각들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의 쪼개진 형상들, 곧 모든 이미지들이 형상들의 형상의 조각들인 것처럼, 모든 말은 옴의 조각들이다. 옴은 신의 영광의 소리이다 (195).

u       매우 흥미로운 두 쪽짜리 <만두키아 우파니샤드>는 옴의 네 가지 요소와 의식의 네 단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는 깨어 있는 의식, … 우는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다.  꿈은 신화의 개인적인 모습이다. 꿈과 신화는 같은 종류의 것이다. 둘 다 우의 단계, 곧 꿈꾸는 의식의 상태에 있다 (195).

u       당신과 당신의 꿈이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과 당신의 신은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려고 하지 말라.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와 의식을 가지고 있다 (195).

u       세 번째 단계는 음이다. 그것은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잠든 상태이다. 의식은 있다. 심장은 뛰고 있다. 몸은 더위와 추위에 반응한다 (195).

u       요가의 목표는 당신의 깨어 있는 의식을 깨어 있는 상태로 음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 때 깨어 있는 의식이 경험하는 것은 차별이 없는 의식이다. 그 때 깨어 있는 의식이 경험하는 것은 차별이 없는 의식이다 (196).

u       산스크리트에서 이것을 대표하는 신은 춤추는 시바이다. … 요컨대 시바의 상을 보고 있는 동안, 당신은 영광의 소리인 옴을 듣고 있는 것이다 (196).

u       시바는 당신이 시바를 통과하는 것을 돕는다. 당신이 시바와 함께 머물 필요는 없다 (197).

u       이미 지적한 것처럼,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그 핑갈라즉 통로까지 올라가게 되면 부차적인 지위로 굴러떨어진 육체를 완전히 거부한다. 문제는 육체를 통해서 이 깨달음에 이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신 생활이 실현되는 것은 바로 육체 안에서이다 (198).

u       , 그것은 내면을 향한 명상의 느낌이다 (198).

u       그 다음의 차크라는 비슈다이다. 이것은 단순히 동물적인, 육체적인 몸을 씻어내는 정화를 의미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씻어낸다기보다는 승화시키고 계발하는 경험을 통해서 초월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차크라 5는 목 부위에 있다. … 여기에 모든 비밀이 있는데, 지금까지 타자를 정복하기 위해서 밖으로 향했던 에너지가 이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이것을 샤크티의 대역전이라고 부른다. 당신의 에너지, 곧 샤크티도 이미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고 있다 (198).

u       우리의 최고의 신은 우리의 가장 큰 장애이다. … 당신은 그것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200).

u       마침내 꾸준한 정진을 통해서 신의 이상인 차크라 6, 아즈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권위 또는 힘을 의미한다. 영혼이 그 객체를 바라본다 (200).

u       마지막이 차크라 7, 곧 사하스라라이다. 영혼은 신을 본다. 그러나 신비주의자의 목적은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201).

u       돌파구를 열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부딪는 것, 이것이 요가 수행자의 필요 조건이다. … 한 순간에 나방은 목적을 이루고 불꽃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순간이다. 그것이 곧 장벽을 돌파하는 것이 여기서의 목적이다 (202).

u       사하스라라는 천의 꽃잎을 가진이란 뜻이다 (203).

u       이제 우리는 마지막 문제에 도달했다. 차크라 6과 차크라 7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차크라 6에서는 브라만에서 풀잎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대립물들고 이루어진다. 이것이 마야이다 (203).

u       지옥에는 어떻게 해서 떨어질까? 자신의 자아를 완고하게 닫아버리는 사람은 그것에 사로잡혀버린다. 지옥이란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천국에는 어떻게 해서 오를까? 마음을 열면 마침내 모든 것이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203).

 

<9. 천상계로의 하강- 티베트 사자의 서>

u       불교는 비교적 늦게 8~9세기에 걸쳐서 티베트에 전해졌다 (205).

u       1001년에 북쪽에서 이슬람 세력이 침략해옴으로써 인도의 불교는 사라지고 말았다 (205).

u       그 뒤, 1959년에 티베트의 불교도 중국의 침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중간기에 티베트에서는, … 가장 고도의, 가장 세련된 밀교 형태의 불교가 보존되었다 (205).

u       죽음과 삶의 신화는 곧 환생의 신화이다. 동양의 환생은 서양의 연옥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재생의 기회, 당신이 광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기회이다 (205).

u       죽음의 순간부터 두 번째 수태까지는 7일의 일곱 배인 49일이 걸린다. 그 사이에 당신은 앞 장에서 소개한 차크라의 모든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방향은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죽음의 순간에 당신은 눈부신 빛을 체험한다 (206).

u       도대체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더듬어가는 여행을 가르쳐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사람은 한순간에 완전히 죽는가? … 분명히 육체는 한순간에 죽지 않는다. 그래서 생전에 스승이었던 분의 냉정한 목소리가 꺼져가는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어 사후의 여행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겼다 (206).

u       당신의 임종 때 라마승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는 이제 근원의 빛을 체험하고 있다. 그대의 의식과 우주의 의식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없다. 그 상태에 머물려고 노력하라…” (206).

u       (그러나) 당신은 그 곳에 머물지 못한 채 정수리에서 하강을 시작하여 먼저 차크라 6, 곧 아즈냐에 이른다. 라마승은 이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가 일생 동안 숭배해 온 신의 형상을 마음에 떠올리려고 노력하라” (207).

u       그곳에 머물 수 없을 경우에는 다음의 차크라 5에서 잇따라 매우 재미있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 단계가 있다. 당신의 자아가 굳어지기 전에, 아래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중심과 동서남북을 대표하는 다섯 명의 부처의 광명을 보게 된다. … 만일 이 광명들의 어느 것도 당신을 붙잡을 수 없고, 당신이 그들 모두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 자신의 자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경우에 이 다섯 명의 부처는 분노의 얼굴로 바뀌는데, 참으로 무서워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이 부처들은 그곳에서 공포로써 당신의 자아를 분쇄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에 차크라 5의 또 하나의 단계로 이행한다. 그곳에서는 이 신격자들의 지적 파악이 행해진다 (207).

u       이 지점에 내려올 때까지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해 있다. 그곳은 심장 부위의 차크라, 곧 차크라 4이다. 그리고 당신은 선택과 결단의 장소, 여섯 꼭지의 별 모양으로 겹쳐진 두 삼각형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라마승은 당신이 지금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줄 것이다. 이곳에서 당신은 해체되고 있으며, 당신은 또 다른 탄생 (, 환생. 하강의 과정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누군가의 자궁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난다)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줄 깨달음을 얻고자 애쓰고 있다 (208).

u       우리는 마침내 차크라 3으로 내려왔다. 이제부터 죽음의 공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죽음은 생명의 장식품이었다. 실제로 그렇다. … 생명이란 당신의 내적인 죽음의 과정, 연소의 과정이다. 이 곳에 이르기까지 죽음은 축복되어왔다. … 그런데 심장 부위에서는 만사가 변한다. 이것은 결단의 순간, 거대한 공포의 시간이다. 라마승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를 갈기갈기 찢는 이 힘들은 그대 자신의 상상력 속의 허깨비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시간의 영역 안에 있으며, 허깨비들이다. 붙잡으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꼼짝 말고 부동지에 머물라.” 그러나 당신은 그것도 놓치고 만다. … 당신은 지금 마지막 세 개의 차크라를 내려간다 (208).

u       우리는 목구멍 부위에 위치한 차크라 5로 내려간다. 그곳에서는 자비로운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부처의 표현과 만나게 된다. 먼저, 가운데서 행복을 베푸는 부처인 비로자나불 (Vairochana), 태양의 부처가 나타나는데, 그는 광명의 부동지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있다. 그 행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212~3).

u       지옥이란 자기의 개별적 존재, 개별적 존재가 자신에게 의미하는 것, 자기의 인격, 자기의 소망, 선악의 관념 따위에 관해서 완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따라서 그것이 당신의 미덕이자 당신의 악덕이다 (214).

u       당신이 광명의 번갯불을 붙잡고 비로자나불의 가르침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환생을 피할 수 없는데, 그 경우에는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만일 자기의 완고함에 사로잡히게 되면 지옥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14).

u       살아가는 동안에 아미타불에게 귀의한 사람은 누구나 또 다른 생을 강제당하지 않고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극락세계의 호수의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 (216).

u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을 섬기는 부처인데 관세음보살이 지상에 환생한 것이 달라이 라마이다 (217).

u       누구나 야마 안타가, 즉 자기 내면에 있는 죽음의 공포를 죽이는 힘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219).

u       아직도 죽음의 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최초의 세 개의 차크라, 무지와 정욕과 악의의 세계이다 (225).

u       결국 우리는 추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세 개의 차크라에 머물고 있다. 차크라 3에서는 서로 껴안고 있는 짝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당신 곁에 있는 라마승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프로이트의 단계에까지 찾아 왔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이미 그들 사이에 들어가서 남자 또는 여자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25).

u       이제 라마승이 마지막으로 할 일은 당신이 또 한 번의 생을 살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225).

u       마침내 당신은 방금 산도를 힘들여 통과한, 두려움에 떠는 갓난아기로서 태어난다. 그리고 눈을 떠서 만물의 표면을 본다. 당신은 모든 내면적인 신비를 경험하고서도 그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225).

u       경전에 인도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되면, 그토록 무섭게 느껴졌던 세계가 불성의 세계, 어디에나 부처가 있는 세계로 바뀐다. 경전은 우리를 그 곳으로 이끈다 (226).

u       나는 독서와 경전의 신인 판카크사라를 으뜸으로 꼽는다. 그것이 나의 이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독서에서 얻었다 (226).

u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신, 곧 이스타데바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신에게 충실하라. 그것이 당신의 길이다. 당신의 신이 어떤 신이건 간에 그 신을 통해서 부처의 전 세계가 당신의 지식이 될 것이다 (226).

u       자신이 선택한 신을 자신의 길라잡이로 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세련된 관념이다 (226).

 

<10. 어둠에서 광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

u       고전 시대의 그리스에서 신비 종교가 추구한 것은 영적 경험이었다 (229).

u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327년에 로마 제국이 공인하는 종교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229).

u       헬레니즘 시대에는 많은 고대 신비주의 이교들이 나타났다 (229).

u       사실 우리는 그리스 신비 종교에 대해서 아주 조금 밖에 모른다. 그리스 신비주의자들이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기 때문이다 (230).

u       월계수는 경계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죄를 씻는 힘을 가지고 있다 (232).

u       제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의 내용이다 (234).

u       초기 기독교 전통의 제의는 이미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던 제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해서 어떻게 제의와 신화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발달해왔는가를 알 수 있다. 다만 새로운 해석, 새로운 표현 형식, 새로운 세련미가 도입되었다 (236).

u       내 견해로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에 과한 최고의 논문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그들을 고전예술의 세계와 관련지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디오니소스란 만물을 꿰뚫는 시간의 힘이며, 낡은 형식을 파괴하고 자신이 차이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부른 것에 의해서 새로운 형식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240).

u       디오니소스이 힘은 생명력으로 가득한 격정을 몰고 온다 (240).

u       마지막 입문식의 뜻은 우리는 성적 대립을 뛰어넘는 양성을 갖춘 존재라는 데에 있다. 또한 내가 앞서 달의 의식과 태양의 의식의 결합에 대해서 말했듯이, 우리의 죽어야 할 운명과 불멸성이 하나임을 깨닫는 데에 있다 (244).

u       <신곡>의 첫머리에서 단테가 위험한 숲속에서 길을 잃자 세 마리 짐승이 그를 위협한다. 첫번째 동물 사자는 자만심, 자아에 대한 집착,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두 번째 동물 표범은 욕망을 상징한다. … 세번째 동물 이리는 공포, 과거를 상징하며, 당신이 가진 것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이것은 부처가 받은 유혹과 같다. … 우리는 욕망과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된다 (248).

u       우리가 자아와 공포와 욕망에 집착하는 한,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주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착을 버려야 한다 (248).

u       선의 과제 중의 하나는 경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의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에 의미는 없다. 꽃에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찾는 것은 경험을 쌓는 것,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의 모든 경험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고, 분류하느라 경험에서 멀어져 버린다. … 그러므로 머리를 사자 입 속에 집어 넣고 이렇게 말하라. “에이, 될 대로 돼라그러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다 (249).

 

<11. 길은 없었다: 아서 왕 전설과 서양의 길>

u       신화의 보편적인 주제로부터, 우리가 이어받은 특수한 유럽적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를 끌어내기에 적합한 이야깃거리는 성배이다 (255).

u       아서 왕과 성배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1150년에서 1250년 사이이다. 그것은 서양문화의 두 번째 대단계의 서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대단계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더불어 시작된 그리스-로마 시대였다 (255).

u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의 유럽에는 절정에 이른 네 개의 강력한 신화의 전통이 있었다. 고전 그리스, 고전 이탈리아 또는 로마의 신화의 전통이 있었고, 켈트족의 신화의 전통이 있었고 그리고 게르만족의 신화의 전통이 있었다 (255).

u       사회의 구성원은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사상은 그리스에서 생겼다 (257).

u       중세 유럽에서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개인의 길이라는 생각이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이다 (257).

u       성배 이야기에는 유럽의 두 가지 전통이 흐르고 있다. 그 하나는 고대 게르만- 켈트족의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의 고유한 영웅적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근동에서 들어온 기독교적 전통이다 (257).

u       우리의 의도, 우리의 여행, 우리의 목표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 곧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259).

u       궁정연애의 온전한 의미는 사랑의 아픔에 있었다. …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부처는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살아 있음의 고통의 경험이다. 고통이 있는 곳에 당신의 인생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찾으라 (261).

u       성배의 주제는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 황무지는 진실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규범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262).

u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거부하는 태도는 3세기, 4세기, 5세기에 유럽에서 활동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보여준 잔인함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266).

u       금은 태양의 색이다. 뱀은 달의 동물이다. … 신은 그 두 세계의 결함을 상징한다 (267~8).

u       다함이 없는 생명력이 그릇, 성배이다. 성배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샘이며, 그곳으로부터 영원한 에너지가 시간의 세계로 흘러들어온다.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과 똑 같은 에너지이다 (269).

u       곰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숭배된 신이다. 그리고 서양에는 네안데르탈인 시대, 즉 아마도 기원전 10만 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곰 사당이 있다 (271).

u       하나의 힘이 시간의 영역에서 작용할 때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라는 두 개의 양상이 나타난다 (272).

 

<12. 고상한 마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 연애>

u       서머셋 몸의 <면도날>이라는 소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주제는 <카나 우파니샤드>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여행하는 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실제로 그렇다. 그 길을 여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특히 자신만의 희열, 자신만의 열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균형을 잃고 열망의 급류로 떠내려가기 십상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교훈이다 (288).

u       중세 이야기의 특징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해석하는 것, 곧 그 시대의 조건에 맞게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290).

u       사랑의 신성한 맹세는 성교이다. 그래서 성교는 신성하다 (295).

u       중세 유럽에서 결혼은 집안간에 결정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귀족 사회는 이것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의 주제를 찬미했던 것이다. 이 양자를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성배를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배 전설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이야말로 중세 최고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단테는 천국에서 이야기를 끝냈지만, 고트프리트는 이 지상에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에 의해서, 참으로 멋지게 해결된다 (298).

 

<13. 성배를 찾아서: 파르치팔 전설>

u       볼프람의 성배 이야기에 따르면, 성배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돌그릇이다 (302).

u       성배를 하늘에서 운반해온 것은 중립적인 천사들이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302).

u       선과 악의 대립물 속에 있는 한 당신은 윤리의 영역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 자연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302).

u       파르치팔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저 주어지는 여자와 결혼하지는 않겠다. 내 아내는 내 손으로 고르겠다.” 그것이 결혼과 사랑의 최초의 결합이다. 결혼과 사랑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초의 답인 것이다 (308).

u       답은 이것이다. 결혼은 사랑의 확인이며, 성애는 결혼의 상징이다. 그것이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만든다 (310).

u       볼프람은 결혼이란 정신에서 시작되고 육체에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310).

u       삶의 성취는정신의 완성에 있다 (310).

u       황무지를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고상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고상한 마음은 자만이 아닌 사랑에서 나오며, 그것도 성적인 사랑이 아닌 동정심에 의한 사랑에서 나온다. 그것이 성배가 던지는 문제이다 (312).

u       자신의 사회적인 체면을 존중했기 때문에, 고상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성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사회가 가르쳐준 방식에 따라서 행동함으로써 황무지의 원리를 지속시켰던 것이다 (313).

u       우리 안에 있는 신은 율법을 주지만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신은 어디까지나 우리 안에 있는 신이다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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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1 13:54:35 *.98.147.104
따부님~ 졸업여행에서 발모아 ㅋㅋ 허락하신데로
45+레이스 4권= 49번째 책임니다용~!!

따부님 다시 한 번 감사용~!!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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