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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30일 04시 11분 등록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마리아 릴케 이동민 역

 

저자에 대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875 12 4일 보헤미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회사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고급관리 집안 태생이다. 릴케의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을 못 잊어 릴케가 5세 때까지 여자이이처럼 키웠다. 여자옷을 입히고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붙이기까지 했다. 이처럼 어머니의 잘못된 사고로 말미암아 어린 릴케는 심한 좌절감에 빠졌으며 건강도 좋지 않았다.

릴케가 9살이 되었을 때 성격이 극단적으로 달랐던 그의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른다. 군인이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아버지 요제프는 1886년 아들을 장크트펠텐의 육국실과학교에 입학시켰다. 릴케는 1890년 장크트펠텐의 육국실과학교를 마치고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의 육군고등실과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시적 감성이 풍부한데다 병약했던 그는 군사학교에 즉응하지 못하고 1891년 신병을 이유로 중퇴했다. 그해 9월 린츠고등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연애사건을 일으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 변호사인 백부의 도움으로 개인교수를 받으며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했다.

20세 때인 1895년 프라하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문학수업을 하였고, 뮌헨으로 옮겨간 이듬해인 1897년에는 니체의 약혼녀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알게 되어 그녀의 영향을 받게 된다. 릴케보다 14세 연상이었던 살로메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인으로 평가되며, 릴케가 외부 세계와 접촉을 하는 데 있어서 참다운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1899년과 1900 2회에 걸쳐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를 여행한 것이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러시아 여행중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과의 만남은 메말랐던 릴케의 정서에 변화를 주었다. 1900 8월 말 두 번째의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 북부 독일의 브레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화가인 친구를 찾아갔다가 여류조각가 C.베스토프를 알게 되었고,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1902 8, 파리로 건너간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어 한 집에 기거하면서 로댕의 예술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 그의 창작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19 6월 스위스 문학 단체의 초청으로 스위스에 갔다가 거기에 영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년에는 셰르 근처의 산중에 있는 뮈조트의 성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1926년 가을, 그를 찾아온 이집트의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꺽다가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패혈증으로 고생하다가 그해12 29 51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라롱묘지에 묻혔다.

 

시인으로서 릴케의 생애는 4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고향인 프라하에서 시인으로서 출발한 때로 인생과 소곡,가신봉패,꿈의 관,강림절 1913년에 1시집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엮어 펴낸다.

2기는 릴케가 자신의 개성에 눈을 뜬 시기로 러시아 여행이 그의 작품에 깊은 종교성을 가미했다. 나의 축제에는 새로운 생의 개화와 그에 대한 불안을 노래한 것으로,이것은 1909년에 구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증보개정되어 간행되었다. 1902년에 출간된 형상시집 1905년에 출간된 시도시집에서는 그의 개성이 한층 더 아름답게 전개되었다.

3기는 파리 시절로서 조각품처럼 그 자체가 독립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사물로서의 시를 창작하려고 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집은 1907,1908년에 펴낸 신시집신시집 별권이다.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로 그는 인간 실존의 궁극적인 모습에 눈뜨게 되었다.1910년에 출간된 말테의 수기는 이런 내적 묵상의 기록으로 로댕의 조각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4기는 10년이나 걸려 완성한 대작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드리는 소네트로 대변되는 시기이다. 이 두 작품은 인간 존재의 긍정을 희구하는 예술정신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보를레르 이래 내면화의 길을 걸어온 서구시의 정점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내가 저자라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1929년에 출간된 릴케의 서한집으로, 릴케가 시인 프란트 크사버 카프스에게 보낸 열 통 남짓의 편지를 묶은 것이고,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여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이다.

예술과 삶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한 젊은 장교에게 띄운 편지들에는 존재의 근본문제, , 사랑, 죽음, 예술, 구체적인 미적,시적 물음 등에 대한 릴케 자신의 사상이 펼쳐져 있다. 여기에 전개된 많은 사상들은 그의 시 작품에서 완성된 표현과 고도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고독의 모티프는 형상시집신시집에 등장하며, 이는 말테의 수기의 전제조건이 되기도 했다. 어려운 것을 고수해야 한다는 권고는 그의 작품곳곳에 철학적 기조로 자리잡고 있다.

편지가 가지고 있는 표현방법은 릴케의 성향이나 내면의 세계관과 들어맞았다. 편지는 외로운 그에게 인간적인 대화를 가능케 했으며, 파리에서의 문학수업 시절 예술가인 그에게 습작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고, 1912년에서 1922년에 걸친 길고도 힘들었던 침묵의 기간에 마음을 다잡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는데 드디어 릴케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로댕이라는 조각가를 좋아하는데 릴케의 로댕이란 책을 통해 릴케의 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제 많은 것을 내 안에서 끄집어 내어 창작품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에서 내 스스로도 고독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해야 하는 운명적 순간이 왔음을 느끼고 있다.

힘들 때 외로울 때 다시 이 책을 펼쳐 보게 될 것 같다.

자 이것으로 50권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잘 활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내야 할 시기이다. 시작해보자.

 

 

 

 

 

 

 

 

1903 2 17일 파리에서

나는 당신의 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비평적인 어떤 견해도 중요하게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10]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으냐고 내게 묻고 있습니다. 전에 다른 사람에게도 물었겠지요. 잡지사에 보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와 비교도 했을 겁니다. 충고를 해도 좋다고 했으므로 감히 말하는데, 제발 그런 일은 이제 그만두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밖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충고를 해주거나 당신을 도와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업습니다. 단 한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 가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에게 쓰라고 명령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리고 그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뻗어 나오고 있다면, 만일 쓰는 일을 그만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어버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는 마음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만일 그 대답이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릴 수 있거든, 당신은 당신의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 생활의 하찮은 순간까지도 그 절박한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런 다음,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을 모방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11]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평범한 형태를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훌륭하고 빛나는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숱하게 많은 형편에, 독자적인 것을 나타내자면 보다 힘차고 성숙한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즐겨 택하는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 자신의 평범한 생활에서 얻는 주제를 택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십시오. 그러한 모든 것이 마음에서 울려 나오도록 은근하고 겸손하게 묘사하십시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물들, 당신 꿈의 영상, 추억의 대상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생활이 비록 빈약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을 탓하지 말고 평범한 생활이 갖는 풍요로움을 끌어낼 수 있는 시인이 못 되는 자신을 탓하십시오. 창조하는 자에게는 가난이 없으며, 그냥 지나쳐 버려도 좋을 하찮은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당신이 감옥에 갇혀서 바깥 세상의 소리조차 당신에게 전해지지 않는 경우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귀중하고도 풍요한 추억의 보물창고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지나가 버린 아득한 과거의 가라앉은 감동을 다시 캐내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더욱 굳어지고 고독은 넓어져서 어둠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움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안으로부터, 가라앉은 자기 세계로부터 시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그 시가 좋으냐고 누구에게 물어 볼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또한 잡지사에게 보내 그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저 당신은 자기 작품 속에서 보물처럼 자랑스럽고도 자연스런 한 조각 생명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내부로부터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예술 작품은 훌륭합니다. 시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파고들어서 당신 생명의 그 깊은 근원을 느끼도록 하십시오.[13]

 

1903 4 5일 이탈리아의 피사 근교 비아렛지요에서 (1)

우리들은 가장 깊고도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움을 주자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비록 단 한번의 운 좋은 결말을 맺기 위해서도 사물과의 완전한 어우러짐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15]

 

사물의 밑바닥을 추구하도록 하십시오. 아이러니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보다 큰 것의 가장자리에라도 닿게 되거든, 거기에서 얻은 생각이 당신 존재의 필연성에서 나온 것인지를 즉시 살펴보십시오.[16]

 

가능한한 미학적이고 비평적인 글은 읽지 마십시오. 그런 글들은 어느 한쪽만을 편드는, 생명력이 없는 의견으로 굳어져서 무의미하게 되거나, 교활한 언어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오늘은 이 견해가 이기는가 하면 내일은 다시 뒤집혀지기 마련입니다. 예술 작품이야말로 끝없는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평으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것입니다.[19]

 

어쨌든 당신이 자기 자신의 감정이 옳다고 믿는다면 거기에 따르면서 모든 시비나 비평이나 해설서들은 무시하십시오.[19]

 

모든 것은 안에서 잉태되었다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감정의 싹이 자신이ㅡ 마음속이나 어둠 속, 무의식 속 그리고 이성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불가사의 속에서 완성되도록 하고, 겸허한 마음과 끈기로 분명함이 새로운 태어날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술적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20]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계산을 하지도, 햇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무처럼 자라도록 하십시오.[20]

 

창작가는 언제나 자기의 가장 훌륭한 덕성조차 느끼거나 의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가 가진 자연스러움과 독자적인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입니다.[21]

 

1903 7 16일 브레멘 근교 보릅스베데에서

육감적인 쾌락은 관능적인 체험이며 순수한 느낌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는 것과 같은 순수한 감정,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나큰 경험이며 세계를 아는 인식이고 모든 지식의 충만함과 빛입니다.[24]

 

고독한 사람은 동물이나 식물의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의 은밀하고도 지속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사람은 식물을 보듯 동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25]

 

사실 정신적인 창조란 육체에서 비롯되고 본질적으로 육체적인 창조와 같은 것이며, 더욱 은밀하고 황홀하며 영원한 육체적인 쾌락의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조자로서 생산하고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얻어지는 영원하고도 큰 확증과 현실화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25]

 

당신은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당신께 부딪쳐 오는 고통을 아름다운 음조로 참고 견디십시오. 당신 말에 의하면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고 했는데, 그것은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이웃이 멀어진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별자리에까지 이르도록 넓어지고 커진 것입니다.[27]

 

그리고 뒤에 처진 사람들에게는 아량으로 대하고 그들 앞에서 확고하고 침착한 태도를 가지십시오. 당신의 회의로 그들을 괴롭히거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믿음이나 즐거움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설사 완전하게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꼭 변화해야 할 것까지는 없으며 그들과 더불어 단순하고 소박하게 서로의 공통점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들의 다른 형태의 삶을 사랑하고,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베풀며, 그 고독에 대해서는 신뢰감을 갖도록 하십시오. 언제나 어린이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팽팽히 맞서 있는, 연극의 소재를 제공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27]

 

1904 8 12일 스웨덴의 브레비 고르 프레디에서

우리들은 생의 한가운데 놓여 있어서 대개는 거기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천 년에 걸친 적응 생활을 통해서 우리들은 이 삶과 너무나 닮아 벌려서 조용히 버티기만 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다행스런 보호색 때문에 우리들은 에워싼 다른 것들과 구별될 리가 없습니다.[48]

 

언제나 어려움을 택한다는 원칙에 따라 우리의 생활을 이루어 간다면, 지금까지는 낯선 것으로 보이던 것도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거나 귀중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민족의 초창기에 생겨났던 신화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에 공주님들로 변하는 용의 전설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우리 생활의 모든 용들은, 언젠가 우리들이 아름답고 용기있게 보일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공주일지도 모릅니다.[48]

 

1904 11 4일 스웨덴의 후른보리 욘세레트에서

언제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 내부의 인내력을 발견하여 참으며 단순한 믿음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당신이 고독에 대해서 더 많은 신뢰감을 지니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삶이 자기 길을 가도록 그냥 맡겨 두십시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것입니다.[52]

 

감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감정은 순수한 것이지만, 당신 존재의 일면만을 부여잡고 당신을 일그러뜨리는 감정이라면 불순합니다.[53]

 

우리들에게는 무엇인가 발전이 일어나도록 하고, 위대하고 자연스런 사물과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입니다. 예술도 역시 삶의 한 방법이고,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예술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됩니다. 현실 속에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반예술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것보다는 휠씬 예술에 가깝습니다.[55]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젊은 아가씨에게

1904 11 20

 

아가씨에게 삶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문이 하나하나 열리듯이 그 속에서 당신이 삶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삶 가운데서도 바로 어려움을 믿도록 하십시오. 젊은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것만은 말하여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흔들림 없이 확신하고 있는 하나는,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그 어려운 쪽이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들은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 삶이 우리 것이 되고 우리의 무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57]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려움을 사랑하고 그것과 친해지고 배우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일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은 친구와 행복과 꿈을 찾아야 합니다. 깊은 내면속에서만 그들은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들은 어려움 속에서 비로소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됩니다. 어려움이 갖는 어둠 속에서만 우리들의 미소는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며 그 미소는 꿈 같은 불빛으로 빛나다가 일순간 밝아집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적과 보물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내가 충고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58]

 

파리에서는 위대한 로댕의 영향 밑에서,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을 앞에 두고 자연을 이해하며 자연을 모방하면서 창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로댕은 나로 하여금 값싼 감상적 감정에서 빠져 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61]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1903 8 8일 근교 오버노이란트에서

 

내가 처음으로 로댕을 찾아가 뫼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을 때입니다. 나는 낯모르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그분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건 집이라기보다 겨우 비나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초라한 헛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집에 대해 아무런 근심걱정도 하지 않고 지냈으며 고독과 정신 집중에도 하등의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가슴속에다 집이 갖는 아늑함과 고요함을 깊이 간직하고 계셨으며,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어서 그분 자신이 바로 하늘이었고 주위의 숲을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 그 노인은 얼마나 고독한 분입니까! 노인은 완전히 자신 속에 가라앉아, 가을날의 고목처럼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가슴에다 깊고도 깊은 고독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 심장의 고동 소리는 먼 산맥의 중심부에서 들여 오는 듯합니다. 그분의 상상 속을 거닐면 장중함과 감미로움이 넘치고 결코 피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제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무디고 딱닥해져서 늙은 껍질로 둘러싸인 듯이 사람들 속에 의연하게 서 계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활짝 열어 젖히고, 사물과 동물과 인간들이 마치 그분의 것인 듯, 그분을 조용히 두드려 오면 언제나 그분은 마음을 열어 놓으십니다. 그분이 바로 아름다움을배우는 분이고 모든 것을 올바로 보는 분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잠자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방심하거나 의식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주의력이 깊은 사람이며, 항상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시간을 셈하거나 다음 것을 바랄 생각은 하지 않는 인내심이 강한 분입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그가 바라보는 것과 그 바라보는 것으로 인해 생기는 주의의 현상들이 있을 뿐이며,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입니다. 만일 그분이 손 하나를 조각하면 그 손만이 공간 속에 존재할 뿐이며 그 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손 하나만을 만드셨고, 그 손 주위에다 물을 부었으며 거기다 하늘을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모두 끝나자 그 위에서 쉬셨습니다. 그것이 영광이었고 하나의 손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이 바로 일꾼으로서 그것을 얻었기에 확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자기 예술의 비물질적이면서도 소박한 요소를 얻었을 때, 공정성이나 어떤 명목으로도 동요되지 않는 이 세계에 대한 균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 안에서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물을 만들 가능성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위대한 예술의 본질입니다. 이제 어떤 움직임도 그를 혼란시키지 못합니다. 그분은 고요한 평면의 굴곡에도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평면만을 보면서도 정확하고 분명한 평면의 체계를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앞에 있는 어떤 사물도 불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분이 예술 작품을 창조할 때는 그 사물들을 보다 진지하고 확고하게 수천 배 넓은 공간에 배열하여 어떤 사람이 잡아 흔들어도 아무런 동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입니다. 사물은 규정되어 있지만 예술작품은 보다 확고하게 규저유하여 모든 우연과 불투명에서 벗어나서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 배열하고 영원에 닿도록 해야 합니다. 모델은 겉모습뿐이지만 예술 작품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 작품은 모델을 초월한 발전이며, 자연의 모든 것으로부터 솟아나서 존재하려는 소망의 조용하고 끈질긴 실현입니다. 그렇게 되어 예술을 자기 멋과 허영에 찬 작업으로 취급하려는 잘못이 사라집니다. 예술이야말로 가장 겸손한 봉사이며 완전히 법칙에 의해 운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창조자와 예술들은 잘못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가 그 잘못에 분연히 대항해서 일어서야 합니다.창조하는 사람은 말을 하기보다는 사물에 대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분의 예술은 처음부터 현실화였습니다. 그러나 일상 생활은 가볍게 흘러가 버리는 모습으로 변해서 오히려 더욱 비현실화하는 음악의 경우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가난하고 천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로댕, 그분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사물이 지닌 모든 아름다움은 시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는 시간은 순간이며, 젊음이란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을 불안하게 한 것은 그가 필연적으로 훌륭하게 여기는 것들의 외형이었습니다. 구분은 아름다움이 존재하기를 바랐으며, 사물들을(사물들은 영원하기 때문에)조용하고 영원한 세계 속에다 배열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모든 순리의 법칙을 적용함으로써 작품이 유기적으로 발전하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분은 외형을 목표로 해서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분에게는 후회라는 것이 없었고 오로지 형성되어 가는 것에 대한 친근감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특성이 마음속에서 너무나 강렬해져서, 이제는 사물의 외형이 그분에게는 무관해졌다고 해야 옳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사물들의 존재와 현실, 불확실성으로부터 해방과 완성, 그리고 독자성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위대한 작품은 손으로 이루어졌으며 언제나 보다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겸손한 소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은 어떤 의도나 소재에 구애됨이 없이 순수하게 가장 단순 소박한 사람으로 그의 성장된 사물 속에 서 계십니다.

위대한 사상이나 숭고한 영감이 선한 것과 완성된 것에서 이루어지듯이 그분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상은 그분이 불러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그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면서, 대지를 만들고 수백의 떠돌이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음성들은 살아 있으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꾸미지 않는다는 점이 그 작품에 대해 감동시키는 솔직함과 순수성을 갖게 합니다. 무수한 형상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해서 아직 구상에 불과할 때는 그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구상은 많은 것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형상은 그와 다르며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그들에게서 하나의 새로운 것이 자라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관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법칙에 맞도록 되었던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관념에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사물들이 서로 저절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그것을 만든 작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영감이 부정될 수가 있습니다. 영감은 작가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감은 밤낮으로 그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으며 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의 손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 따뜻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이 자라날수록 그분에게 미치는 방해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분을 애워싼 온갖 현실로부터 모든 소리가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그분을 보호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숲속에서 사는 것처럼 자기 작품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이 심은 것들이 이제는 거대한 삼림으로 자랐기에, 그분의 삶은 틀임없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물 속을 거닐며 날마다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날이 갈수록 완성되어 가는 사물들 속에서 사실 겁니다. 그의 집과 온갖 소리들은 하찮은 것이 되며 꿈속에서처럼 그 집을 바라보면서 희미한 추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생활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빠져 나올 수 없는 텅 빈 동굴 속에 있듯 거기에 그냥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는 슬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으려는 큰 강줄기의 웅장한 물소리를 그것과 함께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여! 그것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루여, 내가 완성시킨 시에는 내가 느끼는 어떤 관계나 애정 이상으로 더욱 현실적인 것이 있습니다. 창조할 때 나는 진실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의 기초를 무한히 단순하고 소박한 기쁨 위에 두고 싶습니다. 로댕에게 갔을 때 나는 이미 그것을 찾아냈습니다. 수년 전부터 그분의 작품에서 무한한 본보기를 예감으로 찾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에게서 떠나 온 지금, 나는 내 작품의 완성만을 요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나의 집이 있고 나에게 진정으로 가까운 모습들과 내게 필요한 여자들이 있고, 거기에서 자라나고 오랫동안 살게 될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요? 나의 예술의 작업장은 어디며,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시작해야 할, 그 가장 심오하고도 보잘것없는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그런 출발점에 이르기까지 뒷걸음칠 것이며,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손님들이 지나간 문지방을 비로 쓰는 일보다 더욱 하찮은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나의 가슴속에 수백 년을 기다릴 참을성을 가지고 나의 짧은 시간을 영원인 듯이 살겠습니다. 산만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겠으며, 성급하게 무엇을 활용하기보다는 내 것을 다시 불러와서 그것들을 저축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게 호의를 가진 목소리와 내게 가까이 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내 문들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찾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나에게 조언을 할 수가 없으며 나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나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사물들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옵니다. 로댕의 사물들, 고딕식 대성당의 사물들, 완전한 사물들만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물들은 내개 본보기를 보여 주고 움직이고 생명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사물을 소박하게 보도록 가르쳐 줍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꽃들 속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존재하고, 동물들로부터는 낯선 충동이 내게 전해집니다. 인간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큰 정직함을 갖고 조용히 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수련이 부족합니다. 오래 전부터 갈구하던 일 할 수 있는 능력과 일을 해야 하는 사명감이 부족합니다. 내게 힘이 부족한가요? 나의 의지가 병든 건가요? 모든 활동을 방해하는 꿈이 내 속에 있는 건가요? 세월은 흘러가고 있으며 나는 때때로 삶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내 주위에는 실제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산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며 위대해지고 싶습니다. 루여!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 큰 강과 같이 되어 운하로 흘러가고 버드나무 숲으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들은 한 군데로 합쳐져서 소리를 내며 흘러가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긴 해도 우리가 아주 늙게 되면 언젠가 종말에 가서는 넓게 펴져서 삼각주로 흘러가기를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루여![69]

 

19111228일 두이노 성에서

 

나는 맑은 정신으로 순수하게 일만 하면서 거기에 보답하려 했었습니다. 누가 감히 말할 수 가 있었겠습니까! 내게 이런 병이 재발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에 깨어나면 등골이 오싹하고 무엇인가 나를 흔들어 주는 손이라도 확 붙잡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이제 마음의 준비도 갖추고 표현할 재간도 갖고 있는데 어찌하여 부르는 소리가 들여 오지 않습니까? 내 마음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습니다.[75]

 

예술이 무섭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일 겁니다. 예술에 정진하면 정진할수록 보다 영원한 것,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76]

 

리자 하이제 부인에게

 

1919 8 2일 스위스 그라우분덴 쏘리오에서

 

예술 작품을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만들어지면 예술은 인간에 대해 자연과 마찬가지로 대립적이 되며, 분수처럼 자기 자신 속에 가득 차서 자신에게만 전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기다 이름을 붙이자면 무관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억제된 예술과 자연은 결국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졌으며 고통과 기쁨의 절정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 속에 나타나는 위안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를 가진 고독한 사람만이 그 보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입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어떤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몇 년이고 계속될지 모릅니다. 고독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 흔한 접촉을 맺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런 고독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다가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잘것없는 자연의 일부라도 자기에게 끌어당기고 싶으면, 인간 쪽에서 그 자연을 해석하고 관심을 고백해야 하며,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것으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고독한 사람은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뿐, 자기가 나서서 이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79]

 

예술작품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술 작품은 밖으로 변화하지 않고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인간적인 긴장감입니다. 즉 예술 작품의 내적 긴장도가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착각은 그 자체로서 노력이고 요구이고 구애이고 사랑이며, 격동이고 사명입니다. 인간과 예술 작품 사이의 이와 같은 속임수는 태초로부터 신적인 것이 요구되어 온 승려들의 속임수와 같은 것입니다.[79]

 

1919 8 30일 쏘리오에서

 

우리들의 마음이 조급하게 굴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자연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 우리들을 포용해 주지만, 고독한 사람의 고통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은 완전한 것이기에 고독합니다. 자연은 어떤 상태의 경계선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고독의 훈훈하고 완성된 중앙 지대에 있습니다.[82]

 

그런 저녁들은 내면적으로 우리들을 가장 촉진시키는 저녁이면서도,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

가장 많이 빼앗아 가는 전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빠져 나오자면 창조하는 길 이외

에 다른 출구는 없습니다.마나 오랫동안 나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쓸데없는 일 때문에 그런

밤들을 갖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84]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에게

 

1903 4 11일 이탈리아 피사 근교 비아렛지요 플로렌스 호텔에서

 

여기에서 또다시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소. 바다 위를 휩쓰는 연이은 폭풍과 번개, 숲속의 밤, 세상을 뒤덮은 소음, 나는 오전 내내 숲속에 있었소. 4,5일간 햇볕이 계속해서 쨍쨍 내리쬐더니 이제는 숲속의 어둠과 바람이 상쾌하구려. 당신은 이 숲을 대단히 울창한 숲으로 연상해도 될 거요. 쭉쭉 뻗은 소나무 줄기들과 넓게 펼쳐진 가지들과 땅바닥은 침엽수들로 뒤덮여서 어두침침하지만 높이 자란 금잔화들이 만발해 있다오. 오늘은 금잔화의 노란색이 밤처럼 어둡고 선선한 숲속에서 빛나는 몸을 흔들며 윙크를 보내 주고 있구려. 숲은 아래쪽부터 밝아졌지만 매우 고요했다오. 나는 삼림욕을 하며 맨발로 몇 시간 동안 왔다갔다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소. 내가 기다리고 있던 당신의 편지와 거기에 담겨진 많은 아름다운 사연들도 생각했다오.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 일찍 쓴 당신의 편지를 말이오. 나로서는 많은 말 하고 싶지 않소. 당신이 모든 일에 옳은 판단을 하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 나로서야 그저 당신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되지 않겠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중심을 찾아야만 하며 거기서부터 힘껏 자라나가야 하오. 누구도 그럴 경우에 그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다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오. 자기 자신조차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결국 순수 같은 것이 문제가 되며, 그 자신으로부터 얻어진 사물을 깊이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거요. 마치 스케치할 때와 같이 눈길은 사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면서도 손만은 자기 길을 묵묵히 혼자서 가고 있는 것과 같은 거요. 가다가 불안을 느끼고 흔들리다가는 다시 고요해지고 기뻐하는가 하면 별처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빛을 내며 시야 속으로 깊이 사라져 가는 거요. 나는 항상 그렇게 내 작품을 만든 것 같소.눈으로는 멀리 있는 사물들을 바라보면서도 손은 혼자서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것과 같소.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할 거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나는 지금처럼 고독하게 있어야만 하오. 우선 나의 고독은 다시금 확고하고 안전한 것이 되어야만 하오. 원시의 숲처럼,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두려워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아야 하오. 그 고독은 모든 악센트를 잃어야 하고 어떤 예외적인 가치나 의무감도 잊어야만 하오. 그리하여 고독은 자연적이며 일상적인 것이 돼야 하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생각들이 아무리 잠깐이더라도, 아무도 없는 데서 나와 단둘이서만 만나야 하오. 그래야만 그 생각은 나를 믿으려 할 거요. 나를 고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보다 더 짜증스런 일은 없다오. 언제나 그랬었지. 그러므로 이제 나는 밤낮으로 힘든 길을 가야만 하며, 가다가는 잘못되어 다시 돌아오기도 해야 하오. 그리하여 내가 길을 잘못든 그 교차로에서 다시 되돌아오게 되면 나는 거기서 또다시 나의 길과 작업을 시작하겠소, 단순하고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다시 시작하는 거요. 이 점에 있어서 우리들이 서로 이해하고 뜻이 일치되면 나는 마음속으로 기쁨을 느끼게 된다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마치 두 사람 모두 무한한 발전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오. 우리들은 세계를 통해 발전하고, 세계는 다시 우리들을 통해서 발전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요.[111]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훌륭한 말들은 아껴 둬야만 하오. 언어가 바로 생명이 돼야 하기 때문이오. 그것이 바로 이 세계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113]

 

1907 10 9일 파리에서

오늘은 당신께 세잔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소. 작품에 관한한 그는 자기의 칠십 평생을 방랑자로 살아왔다고 주장했소. 그 사람은 피사로와 사귀고 나서부터 처음으로 그림에 대한 취미가 생겨났던 것 같소. 그리고 그 이후의 30년 간을 오로지 창작에 바쳤던 거요. 아무런 즐거움도 없이, 자기 작품 한 점 한 점과의 무서운 갈등과 분노 속에서 살아갔소. 그의 작품은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햇다오. 작품이란 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무엇이 되어야 한도고 여겼던 거요. 그는 그것을 사실화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을 루브르 미술관에서 보았던 베네치아 학파에서 찾아냈소. 그 이후로도 그는 여러 번 그 작품들을 보고 또 보았다오. 이해가 가도록 사물화하며 자기의 독특한 체험을 통해 파괴할 수 없이 높아진 현실,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작품의 질이었던 것이오. 그 사람은 늙고 병들어서도 매일 규칙적인 일과를 지켰고 밤마다 실신할 정도로 기진맥진했소. 일에 몰두하다가는 새벽 6시에야 정신없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을 자기 시작했던 거요. 악의와 의심에 차서 자기의 화실로 갈 때마다 스스로를 조소하고 확대했다는 거요. 그러나 일요일 하루만은 조용히 쉬면서 어린애처럼 미사와 만종을 들었고, 가정부 브레몽 부인에게 좀더 입에 맞는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기도 했다오. 그러면서도 그는 날마다 자기가 본질적이라고 느끼고 있는 성공을 바랐을 거요. 그 사람은 자기의 작업을 고집스럽게 끌고 갔소. 자연이나 풍경을 묘사할 때도 그 대상을 복잡한 우화로 받아들였던 거요. 푸른 사과들이 뒹구는 자기 화실에서 우왕좌왕하거나 정말에 휩싸여 공원에 앉아 사방을 둘어보기도 했소. 그의 눈앞에는 그 작은 도시의 교회들이 무심하게 펼쳐지고 있었소. 그 도시는 얌전하고 착한 시민들의 도시였고, 그와 같은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도시였소. 그는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모자 만드는 장인이었으나 자기는 다른 사람이 도리라는 것 끝내는 보헤미안이 도리라는 사실을 자기나 자기 아버지도 믿고 있었다오. 어느 곳에나 정착할 수 없는 예술가의 신세가 비참하다는 것도, 그러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일생을 마치리라는 사실도 그의 아버지는아고 있었소.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하고 금융업자로 직업을 바꿨던 거요. 세잔느 자신의 말처럼, 그 아버지는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분에게 돈을 맡겼다오. 세잔느가 처음부터 아무 걱정 없이 조용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버지의 배려 때문이었소. 그는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러 돌아왔으나 바로 떠나고 말았소.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오.

그는 파리에서 유명해졌고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갔소. 그러나 자신이 애써서 얻으려고 하지 않은 그런 출세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었다오. 출세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시켜주는 게 아니겠소? 그의 추억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고향 친구였던 졸라에 대한 영상이 떠올랐소. 졸라는 모르고 있었지만 발자크는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거요. 그 화가에게서 지금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어떤 위대한 걸작이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말이오.

밤새 갈등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노화가는 아침이 되면 다시 정신을 차려 여섯시면 일어나 화실로 가서 ㅇ려시까지 일을 하다가 다시 식사하러 돌아오고, 식사가 끝나면 화실로 되돌아가곤 했다오. 어떤 때는 화실을 지나서 30분 정도쯤 더 걷기도 했소. 성 빅토리아 산이 우뚝 솟은 계곡에 앉아 여러 시간 동안 주제를 찾느라 고심하기도 했다오. 그의 말투에는 때때로 로댕을 기억나게 하는 점이 많다오. 그의 옛 도시가 파괴되고 일그러진다고 투덜거릴 때는 특히 그러했소. 로댕이 자기를 어떤 객관적인 강건함으로 이끌어간반면, 병들고 고독한 그 노인에겐 분노만 덮쳐왔다는 것이 다를 뿐이오. 밤이면 화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도시가 변화된 데 격분했고 그런 분노로 지쳐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다짐했다오, 집에 있겠다, 일만 하겠다하고 말이오.

그 작은 도시에서 그런 변화 때문에 결국 그것을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소. 점점 더해 가는 세상의 불분명한 변화와 무관심과 비웃음과 무서움에 떨면서도, 이 노인은 갑자기 일에 파묻혀서 40년 전 파리에서 그렸던 예날 스케치에 의해 나체화를 그렸다오. 그 소도시 엑스에서는 모델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대문이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소. 기껏해야 50대의 모델이나 구할 수 있겠지. 이 도시에선 내가 찾는 모델은 절대로 얻을 수 없어. 그래서 그는 옛날에 그려 놓은 스케치에 따라서 그렸던 거요. 가장부 브레몽 부인이 어느 날엔가 잊고 그냥 두었던 사과 한 알이 침대 위에 높여지고 그가 방금 찾아낸 포도주 술병 한 개가 그 사이에 세워졌소. 반 고흐의 천사상을 그런 물건으로부터 만드는 거요. 그리고 그것들을 정복해서 온 세계와 모든 영광을 의미하도록 아름답게 그려내는 거요.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자기를 위하게 될지는 모르고 있다오. 그리곤 그 늙은 개, 일에 굶주린 그 늙은 개는 정원에 나와 앉는 거요. 일이 다시금 그 개를 불러내서 때리고 굶주리게 할 때까지 말이오. 그리곤 그 늙은 개, 일에 굶주린 그 늙은 개는 정원에 나와 앉는 거요. 일이 다시금 그 개를 불러내서 때리고 굶주리게 할 때까지 말이오. 그런데도 이 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쳤다오. 그 주인은 일요일에야 겨우 옛날 주인처럼 하나님에게 잠시 동안 보냈다가 다시금 끌고 가는 거요. 밖에선 사람들이 세잔느를 부르고 멀리 파리에서는 친구들이 그의 이름을 쓰면서 자랑을 하고 있다오. 나는 이 모든 얘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소. 그것은 여러가지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며 공통점이 수백 가지도 넘기 때문이오. 밖에서는 전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오. 내일은 다시 내 소식을 쓰겠소. 내가 오늘도 내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당신을 알고 있겠지…….[121]

 

M백작 부인에게

 

1921 3 10일 스위스 베르크 성에서

 

누구나 결국은 살아가면서 갈들을 경험한느 법입니다. 그 갈등은 언제나 달느 모습으로 엉뚱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갈등은 순수한 의미에서 일과 생활과의 화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일이 문제시된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 이 두 개의 방향, 일과 생활이란 방향이 서로 나뉘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을 가볍게 받아들여서 스스로 도움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생활이란 손으로부터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빼앗거나, 생활의 가치를 술 취한 상태로 만들어서 그 몽롱한 영감을 재빨리 예술 속으로 옮기면서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활로부터 몸을 돌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욕망을 누르는 방법이죠. 이 수단은 생활이 예술에 유리하도록 탐욕스런 사람들이 쓰는 술 취함의 수단보다는 휠씬 순수하고 진실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나의 창작품은 삶에 대한 직접적인 감탄과 그것에 대한 일상적이고 무한한 놀라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언제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어떻게 작품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도 결국은 예술 속에서 엄격하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술이란 비록 숨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거절을 통해 많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오는 거을 거부하고 삶에 대해서 불신과 겁먹은 태도를 갖는다면, 예술이란 이 민감한 영역에서 누가 마음을 터놓고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생활이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로댕은 일생 동안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가끔 아침 5시에 그분이 정원에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세느 강의 가을 안개 위로 돌출한 언덕들을 생각에 잠겨서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지금 이것을 한탄하는가? 이 아침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일 년 뒤에도 그분은 그것을 몰랐고 알 도리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정신적 수준에 휠씬 미달하는 영향과 운명이 온갖 혼란으로 그분을 애워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훌륭한 것도 설명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침묵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지당신의 우의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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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3.30 08:04:49 *.67.223.107
바로 이 맛인 것 같아,  철아!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이...

이미 여러번 읽었다고 생각하는 이 책이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는 것은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기때문인 것 같아.

밤을 꼬박 새우면서 글을 썼구나...
그래 그 열정....쭈-욱 갖고가자. 
요즈음 특별히 시에 꽂혀서 시집에서 봄을 찾아 열심히 꺼내보는데.... 재미있게 읽었어.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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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10.03.30 12:52:01 *.52.96.30
50권의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문학이라는 것이 나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설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선생님의 연두빛 길따라 봄내음 맡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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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 11th Review-기억꿈사상-카를융지음/조성기옮김/김영사 file 사샤 2011.06.14 3417
1094 제가 잘못했습니다. 레몬 2012.04.19 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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