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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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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일 12시 56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기원전 145? ~ 기원전 86? )은 약 2000 여 년 전 사람이다. 참고로 공자보다는 약 300년 후의 인물이었다. <사기> 의 저자 사마천은 섬서성 용문시 하양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사마담으로 사마천이 7세 때 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 이후 무릉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다. 아버지 사마담의 이와 같은 노력과 유언에 따라 중국 최초, 최대의 역사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기>우경열전중 역자 해설을 읽다보면사마천은 구차한 삶을 감추고 발분하여 글을 지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그의 불우한 인생을 잠시 엿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의 불우함은 평소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정직성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저술에 전념할 때 임안이란 친구에게 자신의 심정을 술회한 편지 내용을 보면 그의 강직한 인품이 느껴진다. “저도 사람인지라 목숨이 아깝습니다만 적어도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침에 문밖을 출입할 때 누가 저를 보는 것 같아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두렵고, 그럴 때마다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죽고 싶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제가 죽음으로 인해 이 문장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쓰고 있습니다.” 

<사기> 탄생 경로

사마천이 20세가  되던  낭중 (황제의 시종)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 산둥, 허난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2년이 지나  사마천은 무제의 태사령이 되었데, 그 이후 태산 봉선(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에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요서,지방을 여행한다. 이 여행이 사마천에게 견문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하는데, 그 후 그는 태사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한다. BC 104(무제 태초 원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 99년 그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 당시 사회 풍조로는 궁형을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을 받아 들였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BC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비록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지만 그는 환관 신분이어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침내 <사기> 를 완성했다. 

<사기> 완성  추측 연대

기원  91  사마천의 친구 임안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서한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서한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궁형에 처한 경위와 그에 더욱 분발하여 사기를 저술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은 심경을 고백하였다. 이 편지보임안서의 내용으로 보아 <사기> 는 기원 전 91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편찬되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사기중에서 61< 백이 열전>에서부터 130 <태사공자서>에 이르는 열전70편을 상하로 나누어 완역한 책의 상편이다. 

사마천이  존경한 인물

사마천은  평소 공자를 무척이나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숭배한 인물 가운데는 노자가 있었다그는 공자가 쓴 책을 읽어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상상했다. 또 노나라에 갔을 때 공자를 모신 묘당에 올라가 그의 유품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남긴내 마음속에 공자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선뜻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라는 문자에서 그가 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기록에는 공자와 노자를 존경하고 숭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마천이 가장 존경한 인물은 아버지 사마담이 아니였을까? 짐작해 보았다. 그 이유는 기원 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 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모든 치욕을 무릎쓰고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 낸 것을 보면 말이다.
사마천은 <사기> 가 완성된 2년 후에 사망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이 쓴 저서를 <태사공서> 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사기> 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기열전> – 사마천  지음 / 민음사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해제 

『사기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 시대를  거스른 ,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24]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양자택일의  기로에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24]  

개인적으로  기록한 역사 『사기』가 후대에 24사史의  필두로 거론되게  것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무제까지 이르는 유일한 통사체 역사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이다. 또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의 정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사기』가 문학서로서의 색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27]  

1. 백이열전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하나라 때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

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이들은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노래로  미루어 본다면 원망한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64]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65]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는 제자 일흔 명 중에서 안연顔淵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65]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다 흐려졋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66] 

2. . 안열전 

 “내가 가난하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 소홀召忽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72] 

내가 자그만한  일에는 부그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72]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찬미하였다.[72]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있는 일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다.[73]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게 정치의 비책이다.’[74]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합니다.[75] 

오늘날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77] 

3.노자. 한비 열전 

이러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흔히 도가 사상 또는  노장 사상이라고 한다. 도가 사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정  권력과  지위 다툼으로부터 벗어나 은둔과 도피를  일삼는 철학이다. 그래서 도가 사상은  군주 권력의 전제정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저항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79]  

공자가 주나라에   머무를  노자에게 예를 묻자  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려는 그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81] 

새는 잘 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다리는 짐승은 그들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하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82]                    

                

노자는 하지 않는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83]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여   주장을  마음에  들어맞게  하는  있다.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아는 것이다.[87]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으면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유세자가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89]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91]  

태사공은 말한다.“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虛無이고, 자연을 따르며 무위無爲 속에서도 다양하게 변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그가 지은 책은 말이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다.장자는 노자가 말한 도덕의 의미를 미루어 풀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는데,그 요지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신불해는 손쉽게 도덕을 형명과 법술에 적용시켰고, 한비는 먹줄을 친 것처럼 법규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일을 결단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였지만 너무나 가혹하여 덕망이 부족했다. 이들의 학설은 모두 도덕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 가운데 노자의 학설이 가장 깊다.”[92]  

5.손자  오기 열전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때도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111] 

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대에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가지고  다니는등 병사들과 고통을 나누었다.[116]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121] 

6. 오자서 열전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나라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속셈이 있어, 아직은 나라 밖의 일을 이야기할 때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 광에게 전제專諸라는 사람을 추천하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지었다.[131]  

태사공은 말한다.”원한 맺힌 사람이 끼치는 해독은 정녕 무섭구나! 임금이라고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 오서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슨 차이가 있었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뜻이 참으로  비장하구나! 오자서는 장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고, 또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어찌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잠깐인들 잊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초를 참고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143]  

7. 중니 제자 열전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는 주나라의 노자,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늬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이 있다. 그리고  공자는 장문중, 유하해, 동제백화, 개산자연등을  자주 칭찬했다. 그러나 뒤의  명은  모두 공자보다  시대 사람들이어서  세대를 같이 하지는 않았다.[147]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바른 예禮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148]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자들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희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없습니다.”[149]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제물로 쓰지 않으려고 하여도 어찌 산천의 신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151]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실천해야 한다.”

자로가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 계신데 어찌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하겠느냐?”

자화子華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152]  

군자는 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153]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자로는 갓끈을 다시 맨 뒤 죽었다.[156] 

부모의 상을 삼 년이나 치르는 것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삼 년간 예를 닦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삼 년동안 음악을 팽개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햇곡식이 익고, 나무를 비벼 얻던 불씨도 한 해에 한 번씩 바꿉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도 일 년이면 됩니다.”[157]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157]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158]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160]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자유가 말했다.”전에 저는 선생님께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기 쉽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169]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171]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172]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남의 말을  듣고 표정을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173]  

나는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174]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앗습니다.[176] 

번수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智란  어떤 것인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184]  

8.상군  열전 

효공은 위앙을 등용했지만, 위앙이 법을 바꾸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할까 봐 매우 걱정이 되었다. 위앙이 말했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엣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좇지 않았습니다.”

효공이 대답했다. “옳은 말이오.”

그러나 신하  감룡甘龍은 이렇게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성인은 백성의 풍속을 고지치 않고 교화시키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고치지 않고 다스립니다. 백성의 풍속에 따라서 교화시키면 애쓰지 않고도 공을 이룰 수 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에  따라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할 것입니다.”

위앙이 말했다.

감룡의 의견은  속된 생각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옛 풍속에 안주하고 학자들은 자기가 배운 것에만 몰두합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관직에 있으면서 법을 지키게 할 수는 있지만 법 이외의 문제(변법)를 더불어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 , 주 삼대는 예악 제도가 서로 다르지만 천하에서 왕노릇을 하였고 오백五伯(춘추오패)은 종법 제도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두지가 말했다.“ 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고쳐서는 안되며,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그릇을바꿔서는  됩니다. 옛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사악함이 없습니다.”

위앙이 말했다.“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나라에 편하면 옛날 법을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옛 법을 따르니 않았지만 제왕의 일을 이루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법을 바꾸지 않았지만 멸망했습니다. 옛날 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비난할 것도 아니고 옛날 예법을 따른다고 하여 칭찬할 것도 못 됩니다.”

효공이 말했다.“좋소.”효공은  마침내  법을 바꾸어 새로운 법을  정하도록 하였다.[200]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은 자에게 십근을 주겠다.” 그러나 백성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다시 이렇게 말했다.”이것을 옮기는 자에게는 오십금을 주겠다.” 오던 사람이 이것을 옮겨 놓자 즉시 그에게 오십금을 주어 나라에서 백성을 속이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고 나서 새 법령을 널리 알렸다.[202] 

공자는어진 이를 추천하여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불러 모아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 라고 말하였습니다.[206]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순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207] 

천마리의 양가죽은 영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 합니다.”[207]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은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합니다.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207]  

상군이 말했다.“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208]  

『시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라고  했습니다..... 『시경』에서는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처지는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데도 아직 목숨을 연장하여 오래 살기를 바라십니까?[210]  

9.소진 열전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함께 진나라에 맞서면 진나라  군대는 틀림없이 감히 함곡관으로 나와 신동을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226]  

싹이 돋아날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229] 

첩은 술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주모主母가 내쫓길까 두렵고  말을  하자니 주인을 죽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질렀습니다. 주인은 몹시 화를 내며 그녀에게 채찍을 쉰 대나 쳤습니다. 첩은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어서 위로는 주인을 살리고 아래로는 주모를 쫓겨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 맞는 것만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충성스럽고 신실하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신의 허물은 불행하게도 이러한 것과 비슷합니다.”[244]  

태사공은 말한다. “소진의 형제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날렸으며, 그들의 술수(종횡책)는 권모와 변화에 뛰어난 것이었다. 소진이 제나라에서 반간反間(첩자를 이용하여 적의 내부를 이간시켜 자기 쪽이 승리하게 하는 것)의 혐의를 받고 죽으니 천하 사람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 술수를 배우기 꺼려했다. 그러나 세상에 퍼진 소진의 사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많은데, 그것은 시대를 달리하는 사적을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덧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진이 보통 사람의 집에서 일어나 여섯 나라를 연합시켜 합종을 맺게 한 것은 그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시대 순서에 따라 그의 경력과 사적을 서술하여 유독 그만이 나쁜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였다.”[260]  

10. 장의 열전 

장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혓바닥이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주시오.”

장의의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붙어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265]  

나라를 잘살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따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며,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덕정을 널리 펼치는  일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270]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 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목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살펴서  계책과 의논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276] 

일찍이 왕께  변장자卞莊子라는 이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일을 들려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하자,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것과 같은 일입니다.[303]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가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305] 

14. 맹자. 순경 열전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고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 라고 했던 것이다.[363] 

시대를 살필  때도 먼저 현재부터 시작하여 태고의  황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였는데, 이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365]

하늘을 말하는 추연, 용을 아로새긴 듯 문장을 꾸미는 추석, 곡과를 지지는 순우곤!” 이라고 노래했다.[370] 

15. 맹상군 열전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잇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이 아버지를 이어  따의  영주가 되니,  사람이 바로 맹상군이다.[380] 

맹상군이  짐의 재산을 기울여서 그들을 정성껏  대우하자 천하의 인물이 거의   모여들어 빈객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촌함을 가리자  않고 한결같이 자신과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먕상군은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병풍 뒤에 시사를 두어  손님의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내용을 적어 주도록 했다.손님이 나가면  맹상군은 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친척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선물을  주곤 했다.[381] 

오늘 아침 저는 밖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나무 인형이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라고 말하자 흑ㄹ이 인형이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미 허물어지면 흣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382]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397]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객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398] 

18. 춘신군 열전 

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들리는 말로는 대왕께서 초나라를  치려고 한다는데 이것은 호랑이   마리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호랑이  마리가 서로 싸우면 힘이  약한 개가  기회를 틈타 이익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  낫습니다. 신이   까닭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신은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라고 들었습니다.[446]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 온다.’[459] 

20. 악의 열전 

신이 듣건대  “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516]  

태사공은  말한다. 일찍이 제나라의 괴통과 주보연은  악의가 연나라 왕에게 보낸 ,보연왕서>  읽을  마다 책을 덮고 누누물을  머금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학문을 배웟다. 그의  스승은 하상장인이라는 인물인데,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없다. 하상장인은  안기생을 가르쳤으며, 악하공은 악신공을  가르쳤고, 악신공은 갑공을 가르쳤으며, 갑공은  제나라의 고밀과 교서일대에서 가르쳐  조상국의 스승이 되었다.[519] 

21. 염파, 인상여 열전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사람이 있기 때문이도. 만일 지금 호랑이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532]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자체가 어려운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사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545]  

24. 굴원. 가생 열전 

전국시대  이래 문학작품에는 당시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문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와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 영원  불면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583] 

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 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586] 

『역경』에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마음이 슬프구나.  물을  길어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목이 있겠는가![590]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591]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것이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 쓰겠소!”[592] 

물은 부딪히면 빨라지고 화살은 힘을 받으면 멀리 가는구나. 만물은 돌고 돌아 서로 부딪치고 진동하며 변하네.’[603] 

26. 자객 열전 

,사기> 130  중에서 인물을 묘사한 것이 112편이고, 그중  쉰일곱편이 비극적인 인물을 그린 것인데   편은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  된다.[623]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은 대부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라는 보은 사상이 투철했다.[623] 

환공이 화를  내며  약속을 어기려고 하니 관중이  이렇게 말했다.

약속을 어기면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시는 편이 낫습니다.”[626]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얻겠습니까!”[628]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에 죽겠다.”[630]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어렵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가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631]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632]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라고 합니다. 전날 군왕께서 신을  너그럽게 용서한 일로 천하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신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633]  

제게는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십니다. 집이 비록 가난하고 타향살이를 하느라 개나 돼지 잡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봉양할 음식은 직접 마련할 수 있으니 당신이 주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634] 

사람이 많으면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길  잇고,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기면 말이  새어 나갈 것이며, 말이 새어 나가면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여길  텐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636]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 놓는  것과 갗은 일입니다. 반드시  재앙을  피할  없습니다.[642]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 사귄 친구 한 명과 사귐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 나라의 커다란 피해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원한을 쌓고 재앙을 만드는 일입니다.[642]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아야 성공한다.’[643] 

27. 이사 열전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있다.[661]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려을 뿐이구나.”[661] 

저는 때를 얻으면 꾸물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만승의 제후들이 바야흐로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는 대여서 유세가들이 정치를 도맡고 잇습니다. 또 진나라 왕은 천하를 집어삼키고 제라고 일컬으며 다스리려 합니다. 이는 지위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칠 때이며 유세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비천한 자리에 았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느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존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662] 

편안한 것을 위험으로 돋릴 수도 잇고 위험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위험한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숭상을 성인의 지혜를 가진 분으로 존중하겠습니까?[675]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이제 황제로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리고, 종묘를 편안히 하고 많은 백성을 즐겁게 하여 천하를 길이 소유하고, 타고난 내 수명을 누리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679] 

옛날에는 천하가 흩어지고 어지러워도 아무도 이를 통일할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이 나란히 일어났고, 말하는 것마다 옛것을 끌어내어 지금의 것을 해롭게 하고, 헛된 말을 꾸며서 실제를 어지럽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배운 것을 옳다고 여기고 조정에서 세운 제도를 비난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려 천하에 오직 황제  분만이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사로이 학문하는 자들은 서로 모여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허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칙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으면 각자 자기가 배운 학설에 근거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집으로 들어가서는 마음속으로 헐뜯고 밖으로 나와서는 길거리에서 논의합니다. 그들은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이루어질 테니 금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城旦(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는 일을 하는 죄수)으로 삼으십시오. 의약, 점복占卜, 농사, 원예에 관한 책은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배우고 싶은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됩니다.

시황제는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669]  

한비자는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684]  

태사공은 말한다.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고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698]  

28. 몽염 열전 

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없고,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707]  

태사공은 말한다.“나는 북쪽 변방 지역에 갔다가 지름길로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악을 깍고 계곡을 메워 지름길을 통하게 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것이 분명하다. 진나라가 처음 제후를 멸망시켰을 때 천하의 민심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전쟁의 상처도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711]  

30. 위표. 팽월 열전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소. 지금 한나라 왕은 오만하여 다른 사람들 업신여기고, 제후와 신하들을 노예처럼 꾸짖고 욕하며 위아래의 예절이 조금도 없소. 나는 그러한 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소.”[745]  

31. 경포 열전 

태사공은 말한다. “영포의 조상은 『춘추』에 ‘초나라가  영英과 육六을 멸망시켰다.’라고 되어 있는 영씨로서, 고요皐瑤(순 임금 때 형옥刑獄을 맡은 관리)의 후예가 아닐까? 몸에 형벌을 받고서도 어떻게 빨리 일어났을까?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770]  

32. 회음후 열전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있다는 말이 있잖소?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것과 같으니, 그 형세가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텐데 어떻게 이들을   있겠소?”[788]  

군사를   쓰는 사람은 이쪽의 단점을 가지고 적의 장점을 치지 않고, 이쪽의 장점을 가지고 적의 단점을 칩니다.”[790]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802]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회음에 갔을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한신은 평민일  때에도  뜻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었을  가난해서  장례도 치를  없었지만 [결국] 높고  넓은 땅에 무덤을 만들어  주위에 집이 1만 호나 들어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내가 그 어머니의 무덤을 보니 정말로 그러했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망太公望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하였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811] 

 

내가  저자라면 

책을  읽고 나서 

<사기 열전>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혼자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람 뒤에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에게서 구하였다. 즉 왕과 충신의 관계처럼 말이다. <사기>가 만들어진 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사기를 읽으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기>가 역사적 이야기를 다룬 책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야기의 생생함 덕분에 인간을 탐구하는 인간학의 백과사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사기>는 격동기에 살다간 다양한 인간들과 그들간의 인간 관계를 설명한 책으로서, 그 속에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많은 자료가 들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고, 또한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사는 방법과 지혜를 그 인물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현재 조직의 경영, 인간의 처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내용을 담고있는 <사기>야말로 인재 경영의 최고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사기열전>의 특성과 구성

1.고대  사학의 확립

사마천은  중국 고대의 앞서가는 사학가 중에서도  최고였다. 후대의 진보적 사학가에 자양분을  공급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기>의 출현은 중국 학술 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대사건으로서 고대 사학의 확립과 발전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2.기전체 

편년체, 기전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찾아보았다.  

편년체(編年體)는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책을 쓸 때 사용되는 체제이다. 역사적 사실을 연, , 일순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다. 현전하는 편년체 사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역사를 쓴 《춘추(春秋)》이다.

한자 문화권에  한정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순서대로  기록한 책을 가리켜 연대기(年代記)라고  부른다. 

기전체(紀傳體)는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책을 쓸 때 사용되는 체제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본기(本紀)〉의 기()와 〈열전(列傳)〉의 전()을 따서 기전체라 부른다. 인물을 기술하는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체제를 겸비해서 용량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사회의 기본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서문에 이어지는 해제가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이 책에는 독자의 읽기를 배려한 여러 장치들이 있다. 훌륭한 역자의 해저는 물론 사마천(저자에 대하여)인물에 대하여도 잘 설명 되어 있다. 시작 전 꼭지제목들 ‘ 천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깃털도 쌓으면 베를 가라앉힐 수 있다.’ 들이 아주 흥미롭고, 마음에 와 닿았다. 어려운 단어와 인물, 상황, 용어들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일러두기’주요 색인을 책 맨 뒤에 두어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객관적 사료

사마천은 도서, 문서, 그리고 견문 가운데서 많은 사료를 광범히 수집해서 그 중 좋은 것들을 가려 선택했으며, 자신의 현지 조사를 통하여 사료를 대비해 문헌을 검토함으로써 기록상 혹은 전해들은 비중에 착오를 바로잡음으로써 저술의 신빙성을 드높였다.  

<사기>의 규모 

본기(本紀) 12. 연표(年表) 10, () 8, 세가(世家) 30, 열전(列傳)70  모구 130 52 6 5백자에 이른다고 한다. <사기> 중에서 61 ‘백이열전에서부터 130 ’태사공자서‘   이르는 열전 70 상하로 완역한  책의 상편이 우리가 이번에 접한 책이었다. 

  농축 <사기열전>

  <사기열전>의 엑기스를 먼저 맛보았다. 다름 아닌 선생님의사람에게서 구하라에서 였다. 역사와 문화는 기원이 어디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잘 활용하여 빛내는 사람들이 곧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자유로운 가치관과 다이내믹한 모색의 정신을 현대 서구적 경영의 기술과 성취에 연결하여 한국인들이 정서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리더쉽과 인재경영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구본형- 

이런 생각이  선생님을 흥분 시켰고 이 책은 그래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열전의 인물들의 지혜의 메시지들을 찾아 건져 올려 현실에 접목시킨 리더들을 위한 지혜 경영서이기도 하다.

 신화를 비롯해  동양고전은 나에겐 황무지와 같은 분야였다. 이제 막 아기가 첫 발을 떼듯 비틀거리며 읽고 있는 중이여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며 읽어야 했다. 다음은 삼국유사이다. 기대가 된다.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느낌 때문에 외면했던 관심 밖의 영역도 이제 나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나 보다. 나의 독서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들만 읽다가 이제사 넓게 읽기 시작하니 마치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기분이다. 두꺼운 책을 덮을 때마다 책 내용의 이해 여부를 떠나 내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쁘다. 메마르고 버려졌던 황무지를 개척하며 일구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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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5.02 20:50:22 *.129.207.200
저도, 동양고전은 황무지지지요. 걸음마 단계.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고전도 그래요. 연구원활동 아니면, 읽을 기회가 없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합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연구원들의 북리뷰를 보면, 알기 쉬워요. 정리 잘해주셔서 감사. 

누나 얼굴 못뵌지 꽤 되었네요.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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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3 07:34:46 *.219.109.113
저저저저저정말이지?  * ^^ *   인건이 뿐이 없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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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4 11:22:14 *.236.3.241
'사기'를 읽다 보니 주제에 맞는 글의 형식을 갖추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삼국유사를 읽을 때는 사기와 비교해 인물과 사건을 어떤
형식으로 다뤘는지 눈여겨 봐야겠어요~~

발빠른 웨버는 이미 절반쯤은 읽었겠죠 ㅎㅎ
tip 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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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4 16:15:42 *.219.109.113
팁? 얼마면 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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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5.05 20:24:29 *.160.33.180

21 번은 그렇게 읽으면 안된다.   사기열전 최고의 장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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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5 21:17:44 *.219.109.113
다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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