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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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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08시 44분 등록

[북리뷰 15]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1. 저자에 대하여

 

파블로 네루다

사.노.투.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시인의 의무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 문을 연다/ (중략)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그들이 가을의 선고로 고통 받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하고/ 두 눈은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젊은 시절, 열정과 고뇌,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네루다. 열 살부터 시를 짓고, 평생을 열정적인 사랑으로 채웠던 그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의무’를 저렇게 말하고 있다. 바다. 바다를 보여주는 것, 그가 본 바다는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했던 그의 말처럼 해방의 공간이었으리라. 그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 나누어 가지는 것. 그것이 시인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그 성스러운 의무를 다 하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시인들은 스페인 민중의 편에 섰다. 그들은 저항시를 지었으며, 군복을 입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슴 속의 스페인』을 인쇄하였고, 식량이나 옷가지 보다 먼저 이 시집을 챙겨 넣었다. 비록 그들의 노력이 어떤 현실적인 성과를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시는 체 게바라를 비롯해 수많은 혁명가들과 이상주의자들 그리고 구리탄광의 막장인생들의 가슴에 늘 함께 했다. ‘군중으로 배웠다’는 그의 삶이 그러했듯이.

 

늘 자유를 갈망했던 가엾은 이상주의자, 꿈꾸는 공산주의자. 그는 일찍 죽기를 차라리 잘했다. 91년 8월, 소련이 연방을 해체하고,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순간, 레닌 동상이 무너지던 그 순간을 보지 않았던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 아옌데 대통령의 사망만으로도 쉽게 꺾여 버린 그의 목숨이 그 모진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차라리 덜 고통스러울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73년 9월 23일, 산티아고 데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죽었다. 아옌데 대통령이 피살된 며칠 후의 일이다. 그의 자서전도 여기서 끝이 난다. 구데타 직후 그의 자택과 시신이 안치된 자택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세상이 그를 배신했다.

 

조용히 글 쓸 곳을 찾다가 정착했던 ‘아슬라 네그라’,

늘 그리워하던 그 곳, 마침내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그는 누웠다.

 

 

2. 가슴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체 게바라는 밤마다 네루다를 읽었다.

 

1 시골소년

칠레의 숲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p16

 

하늘에서 줄줄이 떨어진 긴 유리 바늘은 지붕에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유리창까지 차오른 물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 집들은 겨울 바다에서 간신히 항구로 대피한 선박처럼 보였다. p17

 

진흙탕에 빠진 소달구지가 길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했다. 검은색 망토를 걸친 농부가 황소를 다그쳐 보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힘센 황소인들 어쩔 도리가 없다. p17

 

원주민들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가게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물건 모양의 간판을 내걸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톱, 가마솥만한 냄비, 문짝만 한 자물쇠, 삽만 한 순가락, 그 앞의 신발가게는 무지막지하게 큰 장화를 걸어 놓았다. p18

 

그동안 원주민을 무찌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아낌없이 동원했다. 기관총을 난사하고 마을을 불 지르고 나중에는 조금 온건한 방법을 사용하여 법률과 술을 동원했다. 변호사는 원주민의 땅을 사취하고 판사는 항의하는 원주민을 감방으로 보내고 신부는 지옥 불에 떨어질 거라고 위협했다. 마지막으로 술이 들어와 그토록 당당하던 아라우카 족을 전멸시키고 말았다. p18

 

굵직한 선 두 가닥이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는 수직으로 그어진 칼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새하얀 웃음이었다. p20

 

그때 복도를 걸어오는 아버지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새둥지가 박살났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카운터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예쁜 새알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p26

 

요즘도 장난감 가게 앞으로 지나칠 때면 진열장을 훔쳐본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인형을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p27

 

첫 번째 역은 라브란사였다. 이어 보로아 역과 란킬리코 역이 나타났다. 야생초 향기를 풍기는 이런 역 이름을 발음해 보고 맛깔스러운 음절에 매료되었다. 이런 아라우카 이름은 항상 감미로운 사물을 의미했다. p28

 

그 집, 울퉁불퉁한 길, 미지의 사물,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 이 모두가 내게는 신비였다. 집 안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 나라는 하찮은 존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담쟁이덩굴과 내 시심만이 무성하게 자라는 이 적막한 정원을 찾지 않았다. p30

 

한동안 꽃을 어루만져 보다가 책갈피에 화려한 비단 꽃잎을 넣어두었다. 이 꽃잎은 날지 못하는 거대한 나비의 날개였다. p30

 

파도라는 손가락이 우리를 낚아채 바다라는 깊은 산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p31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매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p33

 

너무 조용하게 있었다. 나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백조를 안았다. 그 순간 리본이 풀어지는 느낌, 검은색 팔이 내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백조의 긴 목이 축 처진 것이다. 그때 백조는 죽을 때 노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34

 

새 집에는 신기한 것이 많았다. 담장에 올라가서 이웃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장작더미를 들춰보았다. 작은 거미 몇 마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마당 외진 곳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화장실 옆 나무에는 쐐기가 살았다. 아몬드나무에는 하얀 껍질을 두른 아몬드 열매가 달려 있었다. .. 잠시 포로로 잡은 호박벌을 귀에 대 보았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p35

 

운율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p36

 

아버지는 건성으로 받아 들고 대충 훑어본 후에 되돌려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어디서 베꼈니?” p36

 

낯선 산길을 따라 혼자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신바람이 났다. 길을 잃으면 누군가 도와주겠지, 생각하고 말에 올랐다. p38

 

이런 외딴 시골에서 보들레르라는 이름을 듣다니, 아마 세상이 생긴 이후 처음일거야. 우리 집에 『악의 꽃』이 있는데 반경 500킬로미터 내에서 이 시집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들뿐이죠. p42

 

맑고 차갑고 시린 밤이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금방 비로 씻어낸 것 같았는데, 모두들 깊이 잠든 저 하늘에서 나만을 위해 반짝였다. p45

 

2 도시의 방랑자

 

이 번지수는 절대 잊지 못한다. 갖가지 날짜, 심지어는 연도까지도 망각하고 사는 사람인데도 513이라는 숫자는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집을 찾지 못하면 낯설고 거대한 도시에서 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번지수가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p50

 

“체념하라. 너는 우리와 가까이 지낼 수 없다. 너는 죽었다.”

“넉 달 전에 집사람 차리토가 죽었소. 지금이 죽은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요. 그래서 자기가 살던 곳을 계속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볼 수 없는데 그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따라서 이런 사실을 알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죽은 사람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서운하게 여기지 않지요. 그래서 집사람 보라고 여기저기에 저런 문구를 걸어 놓았답니다. 이제 자기는 죽은 몸이라는 것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p53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p56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의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p56

 

제가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선생님이 죽어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뛰어넘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입니다. 생전에 허락을 받고 죽은 다음에 뛰어 넘는 것입니다. 저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제 취미랍니다. ... 로하스 히메네스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이상한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 이 낯선 남자는 친구들의 예상을 뒤엎고 곧바로 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말 한마디 없이 비 내리는 밤거리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처럼 로하스 히메네스의 경이로운 삶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의식으로 막을 내렸다. p65

 

우리는 매년 발디비아를 공동묘지로 데려가는 의식을 치렀다. 11월 1일 전날 저녁, 가난한 학생이자 글쟁이인 우리는 빈약한 호주머니를 털어서 발디비아에게 푸짐한 저녁을 대접했다. 송장이 주빈 자리에 앉았다. 12시 정각이 되면 식탁을 치우고 신나게 떠들며 공동묘지로 줄지어 갔다. .. 고인을 위한 추도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각자 고인에게 근엄한 작별을 고한 다음, 공동묘지 문 앞에 발디비아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p67

 

몇 달 후, 새 책이 출판되었다. 제목은 『소와 나눈 대화』였다. 그 책 첫 페이지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독특한 헌사가 수록되어 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 “이 철학서를 2월 24일 밤 루나 공원에서 나에게 야유를 퍼붓고, 또 나를 죽이라고 고함치던 4만 명의 개자식들에게 바친다.” p69

 

“마흔 개 정도 될 때도 있고 100개가 넘을 수도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 뜰이나 발코니에 감자를 심는다고 생각해봐. 칠레 인구가 얼마지? 800만이야. 800만이 감자 하나씩만 심어도, 네 배 아니 백 배로 불어나는 거야. 굶주림도 끝나고 전쟁도 끝이야. 중국 인구가 얼마지? 5억, 맞지? 중국 사람들이 감자 하나씩만 심어도 개당 마흔 개를 수확하니까 5억 곱하기 40을 해봐.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거야.” p71

 

전쟁이 끝나고 지옥 같은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났을 때는 해골 같았다. 그 후에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지막 여행지는 칠레였다. 게바라는 마지막 입맞춤으로, 몽유병자 같은 입맞춤으로 조국과 작별하고 프랑스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 p71

 

그때 가죽상은 단호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불후의 명문을(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랬다.) 남겼다. “이런 가죽하고는 결혼할 수 없소.” 그리고 알바로가 건네준 귀한 시가를 입에 문 채 인사도 없이 나갔다. 백만장자가 되려는 우리의 꿈을 가차 없이 짓밟고 떠나 버렸다. p76

 

우리 시인들은 작품 가운데 단 한 편만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 이러한 알레르기는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반응이다. 앞서 말한 독자들의 애착은 시인을 특정 순간에서 못 빠져나오게 만든다.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p78

 

이렇게 훌륭하고 완성도가 높은 시는 좀처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건대, 당신의 시에는 사바트 에르카스티의 시다운 데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한밤중의 번갯불처럼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 다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실수를 한 것이다. 영감을 믿지 말아야 했다. 이성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좁을 길로 나아가야 했다. 겸손을 배워야 했다. 찢어 버린 원고도 많았고 다시 써야 하는 원고도 많았다. 이 원고는 10년 후에야 비로소 책으로 출판되었다. p80

 

흉포한 정복자들에게 물려받은 이 언어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 정복자들은 종교, 피라미드, 종족, 그리고 그들이 보따리에 담아 온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상을 모두 집어삼켰습니다. 가는 곳마다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 야만적인 정복자들의 장화 밑바닥에 박혀 있던 조약돌처럼 수염에서, 투구에서, 편자에서 떨어졌습니다. 지금 그 빛나는 말이 여기 남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패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였습니다. 저들은 황금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황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p85

 

3 세계의 길

노보아는 골수 자연주의자였고 골수채식주의자였다. 자기만이 알고 있는 자연 요법의 비결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 갑자기 이상하고 매혹적인 무언가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숲의 향기였다. 어릴 때는 늘 함께했으나 소란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린 풀잎 냄새, 초목 냄새였다. p89

 

그러자 탐험가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산발한 수염을 내 귀에 갖다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비밀을 털어놓았다. “저 여자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절대 눈치 채면 안되는데, 나도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네.” p92

 

이윽고 황량한 밤이 끝없이 펼쳐지고 빛줄기가 수없이 불어났다. 멀리서 알데바란이 고동치고, 카시오페이아가 옷을 벗어 하늘의 문에 걸쳐 놓았다. 남십자성이라는 조요한 전차는 은하수라는 밤하늘의 정액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p96

 

나는 다만 종소리와 굽이치는 기복과 이름을 따라갈 뿐이다. 특히 이름을 따라간다. 이름에는 큰 뿌리와 잔뿌리가 있고, 공기와 기름기가 있고, 역사와 오페라가 있으며, 그 음절에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p100

 

저 궁전이 보입니까? 예전에는 우리 집안 소유였습니다. 보시다시피 관료제에 둘러싸여 너저분하게 삽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인데 말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좋아하세요? p101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 어디를 가나 어부들로 만원이었고 활기가 넘쳐났다. 우리가 묵은 작은 호텔의 음식은 맛깔스러웠다. 식탁에는 과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쟁반이 놓여 있었다. 다채로운 색깔의 가옥, 아치문이 달린 옛 궁전, 이미 몇 세기 전에 하느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을 것만 같은 으스스한 성당이 즐비했다. 옛 궁전에는 ...가 들어서고, 거리의 사람들은 어린애와 같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실성한 브라간사 공작부인은 포도 위를 근엄하게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를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떼 지어 따라다녔다. 이것이 나를 맞이한 유럽이었다. p104-105

 

지금 당장 저 여자를 떼어 버리지 못하면 우리 여행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야.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바닥 없는 성의 성전에서 파멸하고 말 거야. 우리는 그녀에게 조그만 선물을 한 아름 안겨 주기로 작정했다. 꽃, 초콜릿, 그리고 수중의 돈 절반을 주었다. ... 우리는 같이 택시에 올랐다. 낯선 동네를 지나고 있을 때, 택시를 세워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키스로 작별 인사를 하고 그녀를 그곳에 내려 놓았다. 그녀는 당황한 빛이 역력한데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p111

 

머니! 머니! 우리들을 에워싼 일고여덟 명의 중국인들이 차분한 목소리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p113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쓸어 갔다. 그러나 상하이 도둑의 전통적인 예법에 따라 우리 서류와 여권은 건드리지 않았다. p114

 

알바로는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내 꿈은 식물처럼 사는 것이다. 한 곳에 눌러 앉아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에... ... 하지만 알바로는 모르는 게 없다. 지구상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어 보는 당돌한 푸른 눈, 섬세한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으니.... p119

 

4 빛나는 고독

인도 전역에서 만난 이 젊은 시인들의 근심 어린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방금 감옥에서 나왔는데 어쩌면 다음 날 다시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유는 비참한 현실과 억압적인 신을 뒤엎으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실상이다. 이 시대는 보편성을 지닌 시의 황금기다. 새로운 노래가 총부리에 쫓길 때, 봄베이 변두리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밤마다 도로 옆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자고 태어나고 죽는다. 집도 빵도 약도 없다. 문명국이라고 자부하는 영국이 식민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식민지 신민들에게 학교, 공장, 주택, 병원은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오직 감옥과 빈 위스키 병만 산더미처럼 남겨 놓고 떠난 것이다. p124

 

누가 이 많은 뱀을 여기에 갖다 놓았을까? 어떻게 뱀을 길들였을까? 이렇게 묻자 입가에 웃음을 띤 사람이 이렇게 대답한다. “뱀은 제 발로 왔고 또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납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뱀의 앞길을 가로막는 창살이나 유리창은 전혀 없답니다.” p125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면서 나를 곁눈질했다. 바로 그때 버스가 밀림 한가운데서 슬그머니 멈췄다. 나는 죽을 장소를 물색했다. ... 나는 여기서, 이 낡은 버스 좌석에서, 야채광주리와 닭장(공포의 순간에 의지할 만한 것은 이것뿐이었다.)을 실은 이 버스 안에서 죽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그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국 땅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렇게 혼자가 되었으니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이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생겼다. 내 사랑하는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내 책들, 그리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저 멀리에 놔두고 이 낯선 곳에서 죽게 생긴 것이다. 갑자기 불빛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길이 환하게 밝아졌다. 북소리가 들리고 귀청을 찢는 듯한 고음의 캄보디아 음악이 터져 나왔다. ... 어떤 남자가 버스에 올라오더니 영어로 설명했다... 해가 뜰 때까지 흥겨운 음악에 맘껏 젖어들었다.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p127

어느 한 순간, 불이 켜지고 ‘Surprise'를 외치며 튀쳐 나올 것이다. 내 장난스러운 친구들은 지금 나만 모른채, 나만 빼놓고서 자기들끼리 가장 극적인 순간이 오기를 바로 저편 어둠속에서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고통은 그렇게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무너지듯 허탈한 웃음과 함께 오줌을 누고 말 것이다. 제발... 제발... 내 긴긴 고통의 순간도 그렇게 반전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랬다.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위한 일본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긴 거예요.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그래서 부하들에게 뒤로 돌아 명령을 내리고 총부리를 영국군에게 겨누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일시적인 침략자이지만 영국은 영원한 침략자로 보였거든요.”

보세는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대역죄가 확정되어 인도의 영국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언도받았다. 독립운동 세력이 주도한 항의 집회가 대대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수차례에 걸친 법정투쟁에서 그의 변호사였던 네루는 사면을 쟁취할 수 있었다. p128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저 유명한 불가의 말을 ... 불상들은 단단하고 영구적인 돌임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는 위엄과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이 필로 물든 땅에 누운 와불은 누구에게 저렇게 미소를 짓는 것일까?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도망치는 시골 여자들, 전화에 휩싸인 남자들, 복면을 두른 게릴라들, 가짜 승려들, 탐욕스러운 관광객들이었다. 지금도 거대한 불상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인간적이고, 신이면서도 신이 아니고, 돌이면서 돌아 아닌 모순된 형상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p129

 

조각가들은 그리스도가 고통 받는 사람, 산모, 참수형을 당한 사람, 불구자, 탐욕적인 사람, 교회 내부 사람과 교회 주변 사람 등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 상에 소름끼치는 상처를 새겨 넣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죄지은 사람도 고통을 받지만 죄 없는 사람도 고통을 당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가르치는 고난의 종교로 변질되어 버렸다. p130

 

실제 동양에 가 보면 흔히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란 서구인이 직면한 불안, 노이로제, 혼란, 기회주의의 부산물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발생한 부산물인 것이다. 그 무렵 인도 사람들은 단전호흡이나 하며 명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야수와 같이 물질적인 욕구에 시달리고, 식민 지배는 철저한 굴종을 강요하고, 매일같이 수천 명이 콜레라, 천연두, 열병, 기아로 죽어 나가고, 거대한 인구와 빈약한 산업으로 혼란에 빠진 봉건적인 제도가 잔혹하게 삶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신비적인 명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p131

 

얼마 후 파워스는 사랑에 빠졌다. 첫 번째 여자는 파워스의 이론과 턱시도에 반한 혼혈아로, 빈혈증세가 있어 그녀의 눈만 봐도 아픈 사람 같았다. p132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일부다처제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죠?”

“다른 아내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주 좋아할 겁니다.” ...

어느 날 우리가 첫 번째 부인 집에 들렀을 때 혼혈 여자는 다 죽어 가고 있었다. 협탁 위에는 독극물과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모기장 안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무튀튀한 육신이 축 늘어져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약을 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파워스가 역겨웠지만 너무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곁에서 위로해 주었다. p133

 

장작불이 반쯤 타다가 꺼져 버려 몇 번이나 불을 다시 붙여야 했다. 강물은 강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흘러갔다. 동양의 영원한 푸른 하늘 또한 불쌍한 여자의 쓸쓸한 다비식을 완전한 평정심과 무한한 무관심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p133

 

거리가 내 종교였다. 버마의 거리, 노천극장, 종이로 제작한 용과 화려한 등불이 내걸린 차이나타운, 힌두교도의 거리, 특정 카스트의 사업체인 사원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원 밖 흙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가장 비천한 거리. 공작석 산처럼 빈랑나무 잎을 차곡차곡 포개 놓고 파는 시장. 야생 동물과 새를 파는 가게. 나긋나긋한 버마 여인들이 긴 시가를 물고 다니는 구불구불한 길. 나는 이런 풍물에 매료되었고 차츰 실생활의 주문에 홀리게 되었다. p134

 

한 대 피웠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희뿌옇고 따뜻하고 우유같은 연기일 뿐, 네 대를 연달아 피우고 닷새를 아팠다. 척추에서 올라와 뇌에서 쏟아지는 구토에 시달렸다. 햇빛이 싫었고, 살아 있다는 게 싫었다. 아편의 복수였다. p137

 

아편은 뜬소문처럼 이국 취향에 함몰된 사람들이 향유하는 천국이 아니었다. 착취 당하는 사람들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p137

 

아편굴은 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 확실했다. 거부와 식민지 지배자들의 아편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결국 식민지 피지배자들이었다. 아편을 피우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흡연 허가증을 맡겼다. ... 잠시나마 불행을 잊고 피곤을 떨쳐 버리려는 것이다. ... 나는 연기 속에서 아른거리는 그 무엇을, 손에 쥘 수 없는 그 무엇을 만져 보았다. p138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입는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p139

 

살모사는 똬리를 틀고 머리를 번쩍 쳐들더니 아가리를 벌리고 최면을 거는 듯한 눈빛으로 몽구스를 노려보았다. 몽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독사 입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다르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순간 몽구스는 펄쩍 뛰더니, 뱀과 관중을 뒷전에 남기 놓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나중에 보니 내 침실에 돌아와 있었다. p141

 

며칠 전 누이가 공책 한 권을 갖다 주었다. 이 공책에는 오래전에, 1918년과 1919년 사이에 쓴 시가 적혀 있었다. 그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청소년기의 우울을 보고, 다시 말해서 내 젊은 시절의 모든 작품들에서 발산하는 문학적 고독을 보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아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p142

 

이런 고독은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독이 아니라 감옥의 벽처럼 단단한 고독이었다. 아무리 벽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고함을 치고, 아무리 울어도 달려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p142

 

정장 차림의 영국인들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는 도중에 음악을 듣느라 늦었습니다.”

실론에서 25년을 지낸 그 사람들은 점잖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음악이라니요? 원주민들에게도 음악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p143

 

피렌체에서 자비로 출판된 『채털리부인의 연인』초판본도 있었다. 인간들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생생하게 포착한 이 작품은 마치 시와 같아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위대한 영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를 훈계하려 들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 성교육 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 그러나 성의 신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구, 쓸모없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이러한 탐구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45

 

나무에 묶인 코끼리는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사냥꾼은 코끼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굶도록 내버려두었다가 코끼리가 자유롭게 밀림을 돌아다닐 때 즐겨 먹던 식물의 순이나 여린 줄기를 코앞에 들이밀었다. 코끼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음식을 먹었다. 이제 길들여진 것이다. 지금부터는 고된 노동을 배우게 될 것이다. p146

 

‘문화재 및 고고학적 보물 보호자’

멀리 떨어진 사원들을 찾아다니며 천년도 더 된 거대한 석조 불상을 대영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해 공무 수행 트럭으로 반출하면서도 승려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고대 유물의 대체물로 일본에서 만든 조잡한 셀룰로이드 부처 그림을 받아 든 승려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볼 만했다. 승려들은 경건한 자세로 셀롤로이드 그림을 받아, 수세기 동안 벽옥이나 화강암으로 만든 불상이 미소를 띠고 있던 자리에 안치했다. 빈제르는 대영제국의 탁월한 산물이었다.. 즉, 우아한 철면피였다. p147

 

드디어 그녀는 떠나리라고 결심하고, 배타는 데까지만 바래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배가 닻을 올리고, 나는 배에서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 그러나 떠나지 말라는 얘기는 못했다. 이제 떠나면 영원히 못 만날테니 우리 함께 배에서 내리자는 말은 못 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도저히 그런 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가눌 길 없이 북받쳐 오르던 저 설움, 초크 가루로 뒤범벅된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처절한 눈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p148

 

잉크보다는 피를 가까이하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내 문체는 한결 정제되었고, 반복되는 광적인 우수를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진리와 수사법을(이러한 밀가룰 시라는 빵을 만든다) 고려할 때 씁쓸한 문체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고유의 문체를 체계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은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p149

 

프랑크 소나타의 그 악장은 장중한 음이 한동안 굽이치다가 갈수록 무거워져 마침내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든다. 마치 비탄으로 고딕 건축물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용돌이 무늬가 첨탑을 향해 쉼 없이 올라가는 리듬을 타고 반복적으로 굽이치는 그런 건물 말이다. p150

 

암울한 피아노 반주가 간헐적으로 그 소리의 죽음과 부활을 드러내는 동안에도 비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것처럼 보인다. 가슴 에이는 피아노 선율은 가끔씩 탄생의 순간을 드러내며, 끝내는 사랑과 고통이 하나 되어 힘겨운 승리를 얻는다. p151

 

그러나 매일 밤 나는 소나타를 들으며 살았다. 나를 휘감는 그 소나타의 영원한 슬픔, 그 장려한 우수에 몸을 내맡겼다. p151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들이 내 야전 침대에 들렀으나 육체적 번갯불 이외는 아무런 사연도 남기지 않았다. p152

 

“전축을 틀어 놓고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춤을 추었죠. 춤을 추다가 살짝 침실로 사라지는 거죠. 그렇게 해서 모두 다 만족했어요.” 그녀는 창녀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식민주의 산물이었다. 식민주의라는 나무에 열린 솔직하고 헤픈 열매였다. p152

 

나는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 그녀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 우리의 결합도 한 남자와 조각상의 결합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경멸하길 잘했다. 나는 다시는 그런 짓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니까. p154

 

엄청난 양의 차를 수입한다. 칠레 사람들은 하루에 네 번 차를 마시는데 국내에서는 차를 재배할 수가 없다. 한때는 이 이국적인 기호 식품의 공급 부족으로 인해 초석 광산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p155

 

5 가슴속의 스페인

툴리오 마케이라는 내가 뺄셈과 곱셈이 매우 서툴고 나누기도 모른다는 것을 이내 간파했다. ... “파블로, 당신은 마드리드에 가서 살아야겠어요. 그곳에 가야 시가 있습니다. 여기 바르셀로나에는 지겨운 곱셈과 나눗셈만 있어요. 그런 일은 나 혼자 처리해도 충분해요.” p178

 

젊은 시인들은 후안 라몬 히메네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수염을 곱게 기른 이 악마같은 사람은 매일 이 사람 저 사람을 겨누고 화살을 쏘아댔다. 일간지 《엘솔》일요일판에서는 밴댕이 속 같은 평론을 기고하여 매주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따위 일에 상관하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마디도 응수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비평에는 절대 대응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p183

 

《초록 말》6호는 제본도 못하고 비리아토 거리에 남겨두었다. ... 스페인 시인들이 쓴 원고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시들어 버렸다. 1936년 7월 19일이 발행 예정일이었으나 그날 거리는 화약 연기가 자욱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라는 무명의 장군이 아프리카 주둔군을 이끌고 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p185

 

나는 내전을 경험한 사람이다. 스페인 사람 백만 명이 죽었다. 백만 명은 망명했다. 저 피 묻은 가시는 인류의 양심에 영원히 박혀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무어인 경호대 앞에서 사열하는 저 청년들은 섬뜩한 역사의 진상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p186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를 창작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 나는 청색이 제일 아름다움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p188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 사건은 죽음의 예고, 믿을 수 없는 비극적인 죽음의 전조였다. 로르카는 처형된 게 아니라 암살당했다. 그가 살해되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어떤 스페인 시인보다 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던 사람이고 너무나 명랑해서 어린애 같던 사람인데, 그 어떤 괴물이 그런 사람을 고향 땅에서 죽이는 상상도 못할 범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p190

 

우리는 전쟁에서 지고 있었다. 시인들은 스페인 민중 편에 섰다. 로르카는 이미 그라나다에서 피살당했다. 에르난데스의 시는 저항시로 변모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최전방에서 시를 낭송하며 돌아다녔다. p191

 

아무튼 시집 인쇄와 제본이 끝나자마자 공화군의 패색이 짙어졌다. 스페인을 탈출하는 수십만의 피난민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스페인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 내 시집은 죽음을 무릅쓰고 만들어 낸 이 사람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p191

 

에르난데스는 칠레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칠레 대사관은 내전 기간 동안 4,000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프랑코 추종자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곳이다. 그러나... 에르난데스의 망명 요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 며칠 뒤, 에르난데스는 체포되어 감옥으로 갔고, 그로부터 3년 뒤 폐결핵에 걸려 옥사하고 말았다. 나이팅게일은 수감 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영사 생활도 끝이 났다. 칠레 정부는 공화군 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나를 해임했다. p192

 

그때부터 낸시는 박해당하는 흑인의 대의를 온몸으로 껴안았다. ... 내 친구 낸시 큐나드는 1969년 파리에서 죽었다. ... 호텔 로비 바닥에 쓰러진 낸시는 그 사랑스러운 하늘색 눈을 영영 감고 말았다. 임종시 그녀의 몸무게는 35kg밖에 되지 않았다. 해골이나 다름없었다. 자기 몸을 갉아먹으며 이 세계의 불의와 오랜 투쟁을 벌여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갈수록 깊어지는 외로움과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죽음뿐이었다. p197

 

마지막 잔치가 끝난 뒤... 사라진 가면과 더불어, 방바닥에 나뒹굴던 가면과 더불어,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한 저 병사들과 더불어, 내가 사랑하던 스페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p206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한 오스트리아 무정부주의자의 활약상에 대해 들은 적도 있다. ...

“가끔 머리가 아프지 않아요?” 이 오스트리아 사람은 희생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 물론 가끔 아파요.”

“그러면 좋은 진통제를 하나 주겠소.” 그러고 나서 희생자의 이마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고 한다.

이 같은 무리들이 마드리드 밤거리에서 준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이 세력을조직하고 군대를 창설하여 이탈리아인들, 독일인들, 무어인들, 팔랑헤 당원들과 대적하였다.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은 반파시즘 투쟁과 저항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힘이었다....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p209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 불장난을 좋아하고 전쟁을 즐기는 승냥이 같은 인간들은 시인을 태워 죽이고 찔러 죽이고 물어뜯어 죽인다. 어떤 칼잡이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푸슈킨을 음침한 공원에 처박아 놓았다. 페퇴피의 시신 위로는 화약을 실은 마차가 미친 듯이 질주했다. 바이런은 그리스에서 반전투쟁을 벌이다 죽었다. 스페인 파시스트들은 위대한 시인 로르카를 살해함으로써 내전을 개시했다. p210

 

다시 한 번 시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의해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 p210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의 노래』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p214

 

그러나 곧 이슬라네그라에서 나와야 했다. 세상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섬뜩한 소식이 칠레까지 전해졌다. 50만 명 이상의 남자와 여자, 전투원과 시민들이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p215

 

군복도 제대로 입을 줄 모르는 청년들이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p227

 

암울한 그 시절 나는 혁명과 같은 지각 변동은 두려워하면서도 전재이라는 치명적인 독소가 숨쉬는 공기와 먹는 빵에 스며들어도 수수방관하는 유럽인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익숙해졌다. p227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강렬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을 뿐이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았으니 텅 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비참한 모습의 공장을 둘러보았으나 지붕 밑에서,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대신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p228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멕시코, 백년초와 뱀의 땅. 꽃과 가시의 땅이자 가뭄과 폭풍우의 땅이며, 강렬한 그림과 색채의 땅이자 격렬한 분출과 창조의 땅인 멕시코는 마술적인 분위기와 눈부신 햇살로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몇 년 동안 시장을 돌아다녔다. 멕시코의 참모습은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에 나오는 걸걸한 노랫소리나 콧수염에 권총을 차고 다니는 가짜 인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멕시코는 진홍색과 번쩍이는 청록색이 어우러진 숄의 고장이다. 멕시코는 막사발과 항아리의 고장이고, 곤충이 갉아먹은 과일의 고장이다. 멕시코는 노란 가시와 강철처럼 파르스름한 잎을 자랑하는 용설란의 고장이다. p232

 

마치 번갯불에 타 버린 듯한 벼랑이 높이 치솟은 해안... 잔혹한 신들이 자기들보다는 덜 잔혹한 인간들 밑으로 들어가 살라고 명령했을 때 멕시코인에게 물려준 저 발음하기 어려운 지명들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왔다. 신비하고 장려한 음절로 이루어져 오로라 같은 소리를 내는 고장을 돌아다녔다. ...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붉은 피로 채찍질을 당한 저 바위들, 피와 이끼가 띠를 두르고 있는 저 바위들 사이로 떠돌아다니는 나 ... 칼로 끝을 잘라 놓은 듯이 여기저기 뭉툭하게 솟아 있는 언덕, 나무가 무성하고 뱀이 득시글거리며, 새와 전설이 지저귀는 방대한 열대우림 등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 곳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땅, 칠레와 멕시코만큼 아메리카에서 상이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33

 

수천 년 동안 원주민들의 종교와 침략자들의 종교는 이 신성한 세노테의 신비를 더욱 증폭시켰다. ... 꽃다발과 화관은 물 위로 떠올랐으나 황금 사슬에 묶인 처녀들은 웅덩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고독 속에 들어갈 때 황금이 아니라 수장된 처녀들의 비명을 찾았다. 새들의 기괴한 울음소리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처녀들의 비명 같았다. p234

 

나는 비둘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 어둠의 가장자리에 머물면서 태초의 세계, 피 묻은 고대 아메리카 세계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나의 침묵을 존중해 주던 그 비둘기는 이내 하늘 높이 아득히 사라졌다. p235

 

오로스코는 마치 물레에서 한쪽 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손으로 계속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도공처럼 인품이 온화한 사람이었다. p235

 

리베라는 항상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 전에 일리야 에렌부르크는 리베라의 행적과 일화를 담은 『훌리오 후레니토의 인생 역정』이라는 책을 파리에서 출판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에도 리베라는 대단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재담꾼이었다. 인육(人肉)이야말로 건강 식품이자 최고의 진미에 속하는 음식이라고 우겼다. 그리고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나이별로 사람들을 요리하는 조리법도 창안했다. 한때는 레즈비언 여애 이론을 대대적으로 설파한 적도 있었다. 자기가 직접 지휘한 발굴 작업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을 살펴볼 때 레즈비언만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p236

 

리베라는 비록 거짓말일지언정 설득력 있는 어조로 구체적인 사항까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는 창의력을 지닌 허풍쟁이였다. 이는 리베라를 만나 본 사람이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p237

 

몸이나 손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오로지 자유자재로 변하는 얼굴 표정만으로 공포, 고통, 기쁨, 애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p238

 

시케이로스는 내가 직접 여권에 찍어 준 비자를 들고 부인 안헬리카 아레날레스와 함께 칠레로 건너갔다. ... 시케이로스는 이 ‘멕시코 학교’에 아주 훌륭한 벽화를 그렸다. 이처럼 나는 우리나라 문화에 공헌을 했건만 그 보답으로 칠레 정부는 두 달간 영사 업무를 중지시켰다. p240

 

멕시코인은 생니를 뽑았으면 뽑았지 애지중지 여기는 총기는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p243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p254

 

8 암담한 조국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칠레 시인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칠레 시인이라면 파블로 네루다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아니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 편을 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p257

 

내 시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시 덕분에 고단한 삶을 사는 동포들과 한데 어울릴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둘도 없는 형제처럼 받아 주었다. p257

 

칠레에는 코끼리나 낙타가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칠레는 얼어붙은 남극에서 시작하여 북쪽에 이르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암염 산지와 사막이 펼쳐진 국가이니, 상상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p258

 

거대한 작업장의 바닥은 항상 물, 기름, 산이 고여 있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나는 웅덩이 위에 놓인 널빤지를 밟고 다녔다. “이 널빤지 하나 놓으려고 파업을 열다섯 번 하고, 8년 동안 줄기차게 회사와 씨름했습니다. 결국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p259

 

여기저기 수백 번도 넘게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 내 시를 낭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p261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고아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 p263

 

대대적인 공산주의 탄압을 시작하던 바로 그날 저녁 ... 만찬이 끝난 후, 대통령궁 계단 아래까지 배웅을 나온 곤살레스 비델라는 이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우는지 아시오? 당신들 체포령을 내렸기 때문이오. 정문을 나서면 바로 구금될 거요.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소.” p266

 

나는 이 도시에서 자랐다. 내 시 작품은 이곳 언덕과 강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의 빗소리를 담고 있고 이곳의 나무와 숲의 향기를 품고 있다. 그런데 자유를 찾아가는 도중 테무코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물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p271

 

나는 입을 열지 않으려고 자는 척했다. 칠레에서는 하찮은 돌맹이까지도 내 목소리를 알아먹기 때문이다. p272

 

내 시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낭송했다. 지적이면서도 굵직한 목소리로 낭송할 때는 내 시가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p275

 

나는 지금도 그 사람 편이다. 그 사람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로드리게스는 자유를 찾아가는 한 시인을 위해서 원시림에 6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뚫으라고 명령한 작은 황제이다. p276

 

나는 오솔길 양옆에서 사람의 손길을 보았다. 바로 오랜 풍상에 시달린 나뭇가지 더미였다. 이 길을 지나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친 제물이었다.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 눈 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어서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추모하는 나뭇가지 무덤이었다. ... 나도 이름 모를 나그네를 추념하는 뜻으로 잘라 낸 나뭇가지들을 올려 놓았다. p278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려고 했다. ... 기대하지 않은 환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했다. 우리를 접대한 것, 그뿐이다. ‘그뿐이다’라는 이 말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p281

 

그 오두막 벽에 “조국이여, 잘 있거라.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항상 너와 함께하리다.”라고 썼다. p281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 p286

 

피카소는 매우 진지하게 그림을 살펴보았다. 비상한 집중력으로 그림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얼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수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픙로 다가갔다 뒤로 물러섰다 하며 10분도 넘게 자기 작품을 감상했다. ... 피카소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그림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피카소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졌다. “괜찮은 작품이야.” p287

 

포옹만 한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도록 입술에 키스를 했다. 슬라브인들에게 남자끼리의 키스는 우정과 존경의 표시였으나 이런 관습에 익숙해지기까지 나는 퍽이나 곤혹스러웠다. p288

 

내 시를 읽고 또 번역하던 일리야 에렌부르크는 ‘뿌리’가 너무 많다고, 내 시에 뿌리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투덜거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뿌리’가 많아?” p290

 

9 망명의 시작과 끝

교조주의가 소련 예술계를 장기간 지배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소련 문단에서는 교조주의를 항상 결점으로 간주했으며, 교조주의와 정면 대결도 불사했다는 점 또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 주지하듯이, 생명은 계율보다 강인하다. 혁명은 생명이나, 계울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p296

 

“나는 시의 미래를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시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p298

 

하늘이 하얗다. 그러나 오후 4시에는 까맣게 변한다. 이 시각부터 도시는 어둠에 잠긴다.

모스크바는 겨울 도시다. 아름다운 겨울 도시다. ... 이런 풍경 때문에 우리는 모스크바가 어쩌면 살아 있는 듯이 보이고 어쩌면 환영처럼 보이는 이상한 장시품으로 가득찬 겨울 궁전이라고 상상한다. p298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내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p300

 

나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또 가시 돋친 말을 제 때에 쏘아붙이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평생에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p308

 

열차를 타고 갈 때 숨겨놓은 시 한 편을 나에게 낭송해 주었다. 프랑스를 사랑하는 여인에 빗대어 노래한 짧은 시였다. 내가 그 시를 숨겨 놓은 시라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에서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봐서는 안 될 꽃처럼 가슴 속에 숨기고 있었다. p301-311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구가 수확한 가장 귀한 쌀은 어린아이의 웃음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웃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노란색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농부들과 대다수 민중들은 이런 웃음을 짓는다. 다른 하나는 코 밑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웃음이다. 이는 관료들의 웃음이다. p314

 

여사의 손에 쥐고 있는 담뱃갑이 보이는 게 아닌가. 물론 찾고 있던 그 담뱃갑이었다. 여사는 웃음을 되찾았지만 나는 몇 년 동안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문화대혁명 때 그 아름다운 담뱃갑을 빼앗겼을지도 모르겠다. p316

 

이 시집이 익명으로 나온 이유는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 때문에 그 무렵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델리아 델 카릴이 상처를 받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델리아 델 카릴은 격동의 시기에 꿀처럼 달콤하고 강철처럼 강인한 실로 내 손을 묶어 놓은 상냥한 반려자였다. 지난 18년간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 p325

 

10 여행과 귀환

소년을 불쌍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가보라고 일러 줬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칠레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나 사물만 보면 나에게 무작정 떠맡기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나에게 책임을 둘러씌우고 싶은 모양이다. 참 이상한 풍조다. p335

 

나는 눈을 딱 감고, 누이에게 약을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장대구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p336

 

신부는 고슴도치처럼 발끈했다. “공산주의자를 대부로 삼는다고요? 절대 안됩니다. 네루다가 애를 안고 온다 해도 저 문 안으로는 발도 들여 놓지 못할 거요.” p340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p342

 

시대가 변했다. 모든 꽃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 꽃들이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만발했을 때, 공장이나 작업장, 대학과 사무실, 농장과 오두막에는 지도자와 관료들의 부정, 부패, 비를 고발하는 대자보가 수도 없이 나붙었다. p356

 

11 시는 직업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며 내 목소리가 깊은 우물과 같은 침묵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또 저 노동자들의 검은 눈동자와 눈썹이 점차 내 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제야 진정한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운율에 취하고 또 버려진 영혼들이 시에 젖어 들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계속 시를 낭독했다. p377

 

나도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죽은 동료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를 썼다. .. 다음 날 신문 일면에는 전날 예고한 선정적인 폭로기사 대신에 격노로 들끓는 내 시가 실려 있었다. 「티나 모도티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시이다. ... 그 이후, 멕시코 언론은 티나 모도티를 폄하하는 기사를 단 한 줄도 싣지 않았다. p380

 

나는 높은 연단 위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자들을 보았다. 잔잔한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난 듯 1만여 개의 모자가 일제히 파도를 일으키더니, 무언의 존경을 담은 검은색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사라졌다. p381

 

그런데 갑자기 춤이 중단되고, 탱고는 벽에 던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p381

 

건달은 좀 전의 그 자세로 여전히 시를 외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핏속에서 불타오를 생명으로 우리 삶을 묶어야만 할 것이다.” 건달은 시에 패배한 것이다. p384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세계는 책의 홍수에 잠겨 버렸다. ... 내 시의 주름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 재능도 뛰어나. 그림도 그리고 평론도 쓴다고. 나는 이런 독자를 잃고 싶지 않아. 희귀한 식물처럼 물을 주며 가꾸고 싶단 말이야. p385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달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그런데 시인을 위한 시집 출판은 나를 자극하거나 유혹하거나 도발하지도 못한다. 그럴 바에는 출판사고 책이고 모두 버리고 파도나 바위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다. p386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p386

 

시인은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하며, 절망적인 삶을 사아야 하며, 변함없이 절망적인 노래만 불러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일부 사회 계급의 견해였다. 많은 시인들이 묘비명이나 다를 바 없는 이런 관념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분위기가 시인을 가난한 골방에 처박았고, 해진 신발이나 신게 만들었으며, 병원과 영안실로 떠밀었다. 이래야 사람들은 만족했다. p390

 

그 비평가에 따르면 내 시의 약점은 바로 행복감이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고통을 처방했다. 이런 논리라면, 맹장염을 앓아야만 탁월한 산문을 쓸 수 있고, 복막염을 앓아야만 숭고한 시를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 p392

 

내 시의 길이를 재는 사람들도 있다. ...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 모든 결정권은 시를 쓰는 시인에게 있다. 피와 한숨 그리고 있는 지식과 없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결정한다. 이 모두가 시라는 빵에 들어가는 것이다. p394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 p394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 그러므로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p395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p396

 

신비한 영감이라든가 시인과 하느님 사이의 교감이란 사실은 불순한 의도를 지닌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위대한 창의력이 발현되는 순간에 창작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외적인 압력이나 이전의 독서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얼마간은 타인의 것이다. p396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리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p406

 

헝가리는 삶과 시, 역사와 시, 시간과 시인이 서로 얽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나라이다. p416

 

바예호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 파리에서 죽었다. 파리의 오염된 공기와 수많은 시체를 건져 올리는 더러운 강 때문에 죽었다. 굶주림과 답답함 때문에 죽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조국 페루로 데리고 갔더라면, 페루의 흙을 밟고 페루의 공기를 숨쉬게 했더라면, 아직 살아서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p420

 

빈곤한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 시인들은 헐벗고 굶주렸기 때문에 무자비한 새벽이 닥쳐오면 취객들의 토사물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남의 것을 훔쳐 먹고 살았다. p430

 

나도 이 삽화처럼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바닷가에 살면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벽난로 앞에서 그동안 힘들게 모은 책을 읽는 모습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p434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 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전장에서는 탄환이 된다. p435

 

시의 영예란 거리에 나가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 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 봄은 반역이다. p436

 

게바라는 미래를 예견한 듯이 일기장에 내 시 「볼리바르에게 바치는 노래」의 한 구절을 적어 놓았다. “용감한 대장의 왜소한 시신....” p443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했다. ... 카스트로의 연설은 일종의 계시 같았다.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라틴아메리카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p475

 

“전쟁, 전쟁.... 우리는 항상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데, 전쟁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전쟁 없이는 못살아. 날마다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지.” p479

 

이러한 희망은 실제로는 ‘천국의 약속’ 같은 것이고, 항상 변제 날짜를 뒤로 미루는 차용증 같은 것이다. p479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예전 무정부주의자들은 흔히(오늘날의 무정부주의자들도 미래에 그러겠지만) 무정부적 자본주의자라는 아주 안락한 도피처로 흘러들어 갔다. 이 도피처는 정치적 저격수, 사이비 좌파와 가짜 독립투사들이 모여 드는 곳이다. 억압적인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가장 위험한 적으로 여기며, 일단 조준하면 대부분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p487

 

물론 체 게바라의 경우처럼, 강력한 지도자의 자질을 겸비한 위대한 게릴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게릴라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용감하고 더 운이 더 좋고 사격 솜씨가 더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잘 이끌어 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p489

 

어딜 가나 공산주의자들은 매를 맞는다.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 얻어맞는다. ... 누구든지 출판할 수 있다. 단, 공산주의자는 예외다. ...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입장하지 못하게 주의하라. 문단속 잘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공산주의자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 p492

그는 숙청감이다. 공산주의자들이 그를 숙청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죽은 이후 많은 현실 공산주의자들의 선택과 역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면, 그의 숙청은 너무도 자명하게 예상된 일이다. 이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자는, 공산주의자는 시장주의자든 권력을 잡은 이들에게는 위험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그게 역사다.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쿠바와 칠레는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p493

 

이 낡은 체제는 중세의 거대한 거미줄에서 태어났다. 쇠보다 단단한 거미줄에서. 그러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쟁취하고, 변화를 꽃피운 사람들이 있다. .... 제기랄! 속절없이 봄이 와 버렸네! p493

 

 

정치활동은 늘 천둥처럼 느닷없이 다가왔다. 집필을 중단하고 군중 속으로 돌아갔다.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 p496

 

낯선 식물이 도시의 담벼락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증오의 이끼였다. 욕설과 거짓말로 뒤범벅된 반공 포스터, 쿠바를 비난하는 포스터, 소련을 반대하는 포스터, 인류와 평화를 적대시하는 포스터, .... 이것들이 도시의 담벼락을 망치고 있는 새로운 식물이었다. p507

 

칠레에서 배가 고파 닭을 훔친 사람은 참모총장 암살범보다 두 배나 많은 형을 언도 받는다. p507

 

나는 지금 이 회고록의 몇 줄을 위대한 동지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후에 서둘러 쓰고 있다.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p516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가는 길에 동행한 은 오직 한 여인,...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p517

 

 

3. 내가 저자라면

 

그의 자서전은 전체가 통째로 시집이다.

 

시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의 가슴을 통해 세상의 따뜻함을 느낀다.

시인이 있어 그들이 그려지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의 노래로 웃고, 웃을 수 있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밤늦은 시간까지 같이 마시고, 같이 울어주는 친구처럼, 때론 귓속말로 소곤대는 연인처럼 그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의무를 그렇게 말했고, 지금, 나의 시시한 몇 마디 시에 감동해주는 동료들의 가슴 뭉클함에 나 역시 그의 삶에 대해 쉽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언제가 고은 선생님이 ‘만인보’라는 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난 만 명의 이야기,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들의 눈동자에 비추어진 나를 찾을 수 있다면, 노 시인의 깨달음을 마디마디 새길 일이다. 네루다의 자서전에는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웃는지, 무슨 향기와 색깔을 가졌는지가 시인을 통해 비쳐진다. 그렇게 세상을 비추는 것 또한 시인의 삶일 터이다.

 

두툼하게 와 닿는 느낌,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투박하면서도 가벼운 페이지의 질감 그리고 흑백사진 속에 담긴 그의 큰 눈과 짙은 눈썹. 책이 시인을 닮았다.

 

시로 쓰는 자서전, 시로 그리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고, 무슨 색깔일까.

나를 통해 비쳐지는 세상의 모습은 또한 어떨까. 나의 책도 자유를 위한 전선에서 병사들의 배낭 속에 담길 수 있을까. 볼리비아의 어는 산중에서 혁명을 꿈꾸는 어느 게릴라의 죽음까지 동반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따라 12장으로 구성된 그의 인생이야기.

가끔씩 파란색 메모로 다 하지 못하는 울분을 따로 담기도 하고, 맨 뒤에는 그가 지은 시간의 궤적들이 따라 붙었다. 그는 시집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왜 단 한 편의 시 조차도 담지 않았을까. 왜 12장으로 구성했을까. 왜 파란 색이었을까.

 

내가 쓸 책의 제목을 정했다. “바람이었으니... 바람처럼”

 

 

IP *.221.2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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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11:43:17 *.106.7.10

시인이 쓰는 시인의 자서전 리뷰는 확실히 다르네요.
네루다 책을 읽으면 오빠 생각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오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도 네루다가 그 시점에 죽은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옌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때가 최상의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역사란 그래서 알 수 없는 것,
칠레의 역사를 찾아보니, 그 이후 네루다가 믿지 못하던 기독민주당이 오랫동안 집권을 했다더군요.
지금 칠레에서 네루다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민중시인' 이란 네루다가 가장 사랑했던 월계관은 계속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오빠의 책 제목, 마음에 와 닿습니다. 

“바람이었으니... 바람처럼”

저 또한 그 바람에 흠뻑 취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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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6.16 11:11:59 *.236.3.241
진철아,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예술가'와 '삶이 아름다운 생활인' 중에
넌 어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니.

우리가 그간 읽은 예술가들 중에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두 가지가 대립되는 건 아니지만 , 미묘한 방향의 차이가 관계에서는 상당한
Gap을 만들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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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11:44:10 *.145.204.123

"늘 자유를 갈망했던 가엾은 이상주의자, 꿈꾸는 공산주의자. 그는 일찍 죽기를 차라리 잘했다. 91년 8월, 소련이 연방을 해체하고,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순간, 레닌 동상이 무너지던 그 순간을 보지 않았던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 아옌데 대통령의 사망만으로도 쉽게 꺾여 버린 그의 목숨이 그 모진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차라리 덜 고통스러울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모처럼 신명난 해우를 한 모습이네
시인이 하는 시인의 책 리뷰 가슴을 울리는것 같아
“바람이었으니... 바람처럼”은 어떤 책이 될까? 미리 너무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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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16 13:38:15 *.30.254.28
“바람이었으니... 바람처럼”
아...워찌까...너의 책 제목을 읽는 순간,
머리속에 음표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
전주에 가서 바람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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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6.16 22:53:16 *.67.223.107
"사노투"가 다 뭐야
차라리" 랑래쟁 " 하지..... 우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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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2) 유형선 2014.03.03 2942
1642 목표 그 성취의 기술 더불어 2005.09.07 2943
1641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4] 한명석 2006.11.28 2943
1640 내 인생의 처 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혜향 2010.01.19 2943
1639 53.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4] 박미옥 2011.05.06 2944
1638 #8 북리뷰 - 신곡 _ 단테 file 터닝포인트 2012.05.28 2944
1637 #24_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1] 서연 2012.10.16 2944
1636 [50] <어린왕자+연금술사> [6] 수희향 2010.03.13 2947
1635 북리뷰 <사기열전 > -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7 [6] 낭만 연주 2010.05.03 2947
1634 신화의 힘-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file [1] [2] 세린 2012.04.09 2947
1633 블루오션전략 -김위찬, 르네 마보안(完) 손수일 2005.06.09 2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