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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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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09시 49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 박병규 옮김)


* 저자에 대하여

** 파블로 네루다의 일생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칠레의 파랄 지방에서 가난한 철도 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어머니는 폐병으로 네루다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곧 친어머니만큼 사랑했던 계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생 자연에 대한 애정을 심어준 고향 테무코에서 자란다.

  네루다의 원래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였으나, 그의 창작활동을 반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13살에 일간지에 ‘열광과 인고’라는 첫 시를 발표할 때부터 필명을 사용했고, 16살인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교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뜻대로 사범대학에 입학하지만 시 창작을 계속하고, 아버지가 송금을 끊어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시 창작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1923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첫 시집<황혼의 일기>을 내고 그 다음해에 스페인어판만으로도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판하며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다.

  경제적인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관의 길을 택하고 버마와 실론, 싱가포르, 자카르타 등에 근무하면서 동양적 풍광과 고독에 매료되어 <지상의 거처>를 집필한다.

  자카르타에서 결혼한 첫 부인과 칠레로 돌아왔다가 스페인 영사로 발령을 받아 그 곳에서 첫딸을 낳고 또 두 번째 부인이 된 델리아를 만난다. 이때부터 공개적으로 공화파를 지지하면서 영사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파시즘에 대항하기 시작하며 이 시기에 쓰여진 시집이 <가슴 속의 스페인>이다. 이 시집에서 초기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시에서 시작해서 서정적인 고독을 노래한 시를 쓰고, 어느 순간 시인의 표현대로 ‘거리와 전투 속에서 민중의 삶’을 노래한 새로운 시를 써가는 시인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그 후 브라질 정부와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결국 영사직을 영원히 그만두게 되지만 남미 대륙 전체에서 시인의 명성은 점차 더 드높아졌다. 그 후 본격적인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고 공산당에 입당, 칠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공산당과의 협약을 파기한 대통령을 비난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상원에서 한 후 체포를 피해 은신생활을 하고 험난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탈출한다. 그후 파리와 멕시코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시집 <모두의 노래>를 출판한다. 망명생활 3년여 만에 칠레 정부가 체포영장을 철회하자 칠레로 귀국하고 델리아와 이혼하고 세 번째 부인 마띨테와 결혼하였다. 이후 자신의 전집을 발간하고 외교관으로서, 또 시인으로서 소련과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를 방문하며 정치적 활동과 시 집필을 계속한다.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전국을 누비며 선거활동을 하다가 아옌테 후보를 인민전선의 단일 후보로 추대하고 사퇴한 후 아옌태 지지활동에 전념한다. 아옌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파리 대사 등을 역임하며 칠레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헌신한다. 오랫동안 거론만 되던 노벨 문학상을 1971년 수상한다.

  그 후 전립선암으로 대사직을 사임하고 칠레로 귀국하여 투병생활을 하지만 피노체트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인민전선 정부가 전복되고 아옌테 대통력이 피살된 것을 알고 마음으로 통곡한다. 그 후 열흘 정도 지나 네루다도 사망하고 그의 자택이 약탈되고 파괴된다.

  죽기 전에 출간된 그의 전집에는 3,522페이지에 달하는 시와, 희곡과 산문이 실려 있으며, 사후에도 6권의 유고시집과 자서전이 발간되었다.

** 파블로 네루다의 결혼 생활

네루다는 평생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 결혼은 스물 여섯 살에 동양의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네덜란드 혈통의 마루까와 했다. 그들 사이에 유일한 딸인 말바 마리나가 태어났을 때 네루다는 이미 첫 부인에게 실망하고 있었고, 부인 마루까가 조산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못했던 갓난아이의 병수발에 몰두하는 동안 델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부인과 딸을 병원에 보낸 후, 20년 연상의 델리아와 동거를 시작하고 첫 부인에게 일방적인 이혼을 통보한다. 그 후 첫 부인과 딸을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네루다의 사상이나 시 창작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던 첫번째 부인과는 달리,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델리아는 네루다가 공산주의에 깊게 빠져드는 데 영향을 주었고 네루다는 자신의 작품을 제일 먼저 델리아에게 보여주고 그녀의 조언을 받아 글을 수정할 만큼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20여 년 동안 동반자였던 그들의 관계는 네루다가 45세가 되던 해, 37세이던 마띨데를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네루다는 두 명의 여인과 이중생활을 한다. 3년이 지난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된 델리아는 엄청난 상처를 받고, 정신적, 지적 동반자였던 델리아와 감정적, 열정적 동반자인 마띨데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없었다는 네루다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으면 결혼도 없는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 곁을 떠난다. 그 후 네루다는 마띨데와 20여년의 결혼 생활을 하며 그녀에게 바치는 많은 시를 썼고 그녀의 품에서 사망한다. 마띨데는 12년 후 사망했다.    

* 네루다 사후의 칠레

  1973년 9월 11일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은 피살되고 1974년 6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부가 수립된 후 16년 간 군정이 실시되었다. 1978년 신헌법을 제정하였으며, 1988년 군사정권 연장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지지획득에 실패해 1989년 12월에 대통령 및 상하원 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1990년에 민주선거를 통한 민정이양이 실시되었다. 기독교 민주당(DC) 및 사회당(PS) 등으로 구성된 중도좌파연립(Concertacion)정부는  아일윈(Patricio Aylwin, 1990~1994), 프레이(Eduardo Frei, 1994~2000), 라고스(Ricardo Lagos, 2001~2006), 바첼렛(Michelle Bachelet, 2006~) 대통령 등 1990년 피노체트 군정종식 이후 4번째 연속 집권에 성공하여 20년 간의 집권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두산 백과사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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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파블로 네루다

- 마틸데에게 바치는 시 -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밤이 되어 나 잠드는 동안

세상은 더욱 푸르고 더욱 지상의 것이었으니

당신의 작은 두 손에서 그것은 거대하였어라.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먼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시골소년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13]


이 식물 왕국을 지배하는 법칙은 침묵뿐이다. 멀리서 놀란 동물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들려 온다. 어디선지 새 한 마리가 날카로운 울음으로 화답한다. 그러나 땅의 음악을 요란하게 울리는 폭풍이 닥칠 때까지 이 식물 왕국은 소곤거리는 소리초자 내지 않는다. [16]


이런 기억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여러 가지 일이 뒤섞여 혼동을 일으킨다.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25]


그 후로도 우리 식구들은 똑같은 부산을 떨며 이곳으로 와서 여름철을 보냈다. 테무코에서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 해안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성장했고 책을 읽었고 사랑에 빠졌고 또 글을 썼다. [32]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 때 시작된 교류, 그 때 얻은 깨달음, 그 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33]


아버지는 건성으로 받아들고 대충 훑어본 후에 되돌려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어디서 베꼈니?”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낮춰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했다. 내 기억으로 첫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무책임한 문학 비평의 쓴맛을 보았다. [36]


세 자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요리 솜씨였다. 그 여자들에게 식탁이란 신성한 문화유산의 보존이었다. 세월이 가로막고 거대한 바다가 가로막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프랑스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세 자매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나에게 흥미 있는 방명록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늙은 마니아들이죠.” 막내가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외딴집에 들린 사람은 모두 스물일곱 명이었다. 사업 때문에 온 사람도 있고 호기심으로 들른 사람도 있고 또 나처럼 우연히 지나가다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개인 신상기록 카드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카드에는 방문한 날짜와 제공한 메뉴가 적혀 있었다. “우리가 메뉴를 보관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똑같은 요리를 내놓지 않으려는 거예요.” [43]


2. 도시의 방랑자

그 집을 찾지 못하면 낯설고 거대한 도시에서 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번지수가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50]


“빌어먹을 시인들아, 당장 집어치워! 어디서 축제를 망치고 있어.” [51]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조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등을 떠밀 사람이 없던 탓에 웃음은커녕 쳐다보지도 못하고 매혹의 언저리를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56]


수줍음이란 마음의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의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56]


로하스 히메네스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난 것인데 광기와 시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성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정의의 근간인 이성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칠레를 매우 사랑한 우나무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이성 또는 힘으로’라니. ‘이성으로, 항상 이성으로.’ 이렇게 말해야지.” [66]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장소나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네. 솔직하게 말해서 저 아름다운 그림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내가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잘 알지도 못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거라네. 저 감자 때문에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 세상에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라네. [72]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72]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 그러나 어떤 장인도 시인처럼 자신의 손으로 처음 창조한 대상에서 이러한 도취의 감정이나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환희를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은 결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판을 거듭할수록 더욱 완전하고 아름다운 책이 되고, 시인의 언어는 향기를 품고 노래하는 포도주처럼 다른 언어라는 술잔에 옮겨져 지구 곳곳을 누비겠지만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뻣뻣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낸 저 순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가는 듯한 저 황홀한 도취의 순간,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꽃봉오리를 응시하는 그런 환희의 순간은 시인의 일생에서도 단 한 번밖에 없다. [77-78]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78]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83]


3. 세계의 길  

이곳 사람들은 모두 지진을 기억하고 있다. 지진은 도시의 심장에 붙어 있는 공포의 꽃잎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영웅이다. 항구의 기억 속에 천재지변, 흔들리는 땅의 전율,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포효 소리가, 마치 바다 밑 도시나 땅 밑 도시가 요란스럽게 경종을 울리며 인간에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알려 주는 듯한 소리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과 지붕이 무너지고 먼지와 화염이 치솟고 비명과 침묵이 감돌 때, 이제 모든 것이 죽어버려 완전한 정적이 감돌 때,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공포처럼 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나타난다. 거대한 푸른 손이 복수의 탑처럼 하는 높이 솟구쳐 남아 있는 생명을 모두 휩쓸어 버린다.

처음에는 막연한 진동이 느껴진다. 그러면 자던 사람들은 벌떡 일어난다. 아직 잠이 덜 깬 사람들은 땅 속 깊은 곳, 땅의 뿌리와 연락을 해본다. 항상 언제쯤 지진이 닥쳐올지 알고 싶었는데 드디어 알게 된다. 이윽고 거대한 진동이 다가오면 피할 곳도 없다. 신들은 도망가 버렸고 허영의 성당은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는 성난 황소가 달려들거나 칼로 위협받거나 물에 빠졌을 때 느끼는 그런 공포가 아니다. 우주적인 공포다. 한순간에 전 우주가 무너져서 산산조각 나는 그런 공포다. 그 사이에 땅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가옥이 무너질 때 치솟았던 먼지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러면 우리 곁에 남은 거라고는 시신뿐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막막해진다. [94-95]

 

4. 빛나는 고독

이 시대는 보편성을 지닌 시의 황금기다. 새로운 노래가 총부리에 쫓길 때, 봄베이 변두리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밤마다 도로 옆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자고 태어나고 죽는다. 집도 빵도 약도 없다. 문명국이라고 자부하는 영국이 식민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식민지 신민들에게 학교, 공장, 주택, 병원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오직 감옥과 빈 위스키 병만 산더미처럼 남겨 놓고 떠난 것이다. [123-124]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127]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입는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139]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142]


이런 고독은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독이 아니라 감옥의 벽처럼 단단한 고독이었다. 아무리 벽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고함을 치고, 아무리 울어도 달려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142]


빈제르는 업무 처리에 능숙했다. 멀리 떨어진 사원들을 찾아다니며 천년도 더 된 거대한 석조 불상을 대영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해 공무 수행 트럭으로 반출하면서도 승려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고대 유물의 대체물로 일본에서 만든 조잡한 셀룰로이드 부처 그림을 받아 든 승려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볼 만했다. 승려들은 경건한 자세로 셀룰로이드 그림을 받아, 수세기 동안 벽옥이나 화강암으로 만든 불상이 미소를 띠고 있던 자리에 안치했다.

빈제르는 대영제국의 탁월한 산물이었다. 즉, 우아한 철면피였다. [147]


5. 가슴 속의 스페인

“에르난데스, 드디어 직업이 생겼어. 자작이 자네에게 한자리 주겠대. 이제 아주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거야. 원하는 자리가 뭔지 말해 봐. 그래야 임명을 하지.”

에르난데스는 생각에 잠겼다. 때 이른 주름살이 깊이 파인 얼굴에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몇 시간이 지난 오후에야 그는 대답을 주었다.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은 사람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마드리드 근처에서 염소 떼를 키울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을까?” [179]


“음,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를 창작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어쨌거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나는 청색이 제일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색은 하늘처럼 자유와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적인 공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로르카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어떤 자리든 얼굴만 내밀어도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질문하신 내 시구는 아마 그런 가르시아 로르카의 마술적인 힘에 영향을 받아 병원마저도, 슬픔이 감도는 병원마저도 아름다운 청색 건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188-189]


프랑스 문학의 두 거장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과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유쾌한 인물과 진지한 인물의 전형으로서 프랑스 문단이라는 숲에서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두 사람은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양심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만큼 성격이 판이한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는 폴 엘뤼아르와 함께 시간을 허비하는 미학적 즐거움을 여러 차례 누렸다. 시인들이 앙케트 조사에 솔직하게 대답한다면 금방 비밀이 들통 날 것이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비밀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데도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다. 폴 엘뤼아르하고 같이 있으면 낮과 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얘기가 중요한지 어떤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라공은 지성과 학식, 독설과 능변을 두루 갖춘 전자제품 같은 사람이었다. 엘뤼아르 집을 나설 때는 까닭을 모르겠으나 나는 항상 빙그레 웃고 있었다. 반면에 아라공 집에서 몇 시간 있다 나오면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생각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희한한 사람이었다. [193]


6.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공산주의자들은 반파시즘 투쟁과 저항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힘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209]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 [210]


순수한 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베르티는 세계적인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나.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애정,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212]


창작에 전력투구하기로 다짐했다.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덕분에 나는 훨씬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이제 우울한 시는 쓸 수 없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우수에 찬 주관주의나 <지상의 거처>에 담긴 고통스러운 애상은 막을 내렸다. 두 시집을 형성하는 광맥은 지하 암반에서 캐낸 것이 아니라 온갖 책갈피 속에서 찾은 것처럼 보였다.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유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의 노래>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214]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슬라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215]


그들은 어부, 농부, 노동자, 지식인들로서 힘과 영웅심과 노동의 표본이었다. 나의 시는 투쟁을 통해 그들에게 조국을 찾아주는 데 성공했다. 한없는 자부심을 느꼈다.  [226]


7.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라틴아메리카의 몇몇 국가는 여러 민족이 혼합된 혼혈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인종주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는 과거 식민 시대의 잔재물이다. 모두들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하지만, 이 정상이란 극소수의 백인 속물들만이 순수 아리안 족이나 위선적인 관광객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뽐내며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곳이다. 다행히도 이런 편견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고, 국제연합은 흑인과 몽골족 대표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 종족이라는 나무에 지성이라는 수액이 타고 올라감으로써 다양한 색깔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

마침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어느 날 총영사직을 영원히 사임했다. [251]


8. 암담한 조국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뿌리 뽑힌 사람이 맛보는 좌절감은 어떤 형태로든 영혼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향 땅이 아니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발을 딛고, 내 땅을 만지고, 내 땅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의 물소리와 그림자를 느끼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자양분을 흡수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칠레로 돌아가기 전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내 시는 한 층 더 두터워졌다. [255]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이 결단으로 인해 영광스러운 순간도 맛보았고 핍박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어떤 시인이 그런 일을 후회하겠는가. [257]


이처럼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발도 없는 사람들이 1945년 3월 4일 나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했다. 구리와 초석을 생산하는 대규모 광산 지역, 칠레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수많은 주민들로부터 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도보로 사막을 돌아다닌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반세기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그 지역 광부들의 얼굴을 사막을 닮았다. 피부는 햇볕에 검게 그을렸고, 검고 강렬한 눈동자에는 고독과 소외감이 서려 있었다. 사막에서 산악 지대로 올라가고, 가난한 집을 방문하고, 등골이 휘어지게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궁벽한 사람들의 희원을 안다고 해서 내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시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시 덕분에 고단한 삶을 사는 동포들과 한데 어울릴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둘도 없는 형제처럼 받아 주었다. [257]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간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세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서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 주는 시인이 있어.”

1945년 7월 15일, 나는 칠레 공산당에 가입했다. [262-263]


우리 시인들은 본래부터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연기를 내뿜는 불길이다. 이러한 불길로 나는 창작에 전념했다. [266]


그곳의 거대한 나무는 수령이 700년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쓰러지거나, 폭풍에 뿌리가 뽑히거나, 눈에 부러지거나, 아니면 산불로 소실되었다. 나는 깊은 숲 속에서 타이탄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떡갈나무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진 것이었다. 마치 거인이 자기를 땅에 묻어 달라고 거대한 손으로 지구의 문을 두들기는 듯했다.

그러나 나무뿌리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간과 습기와 이끼와 부단한 소멸의 과정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런 뿌리는 오솔길을 가로막고 우리에게 나무가 자라는 땅 속의 비밀을 들려주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질 수 있는 신비를 보여주며, 식물 왕국을 일으켜 세운 근육을 자랑한다. 무성한 이끼에 덮여 비극적인 생을 마치는 뿌리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조각품,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 [291]

 

9. 망명의 시작과 끝

생명은 계율보다 강인하다. 혁명은 생명이나, 계율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296]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00]


10. 여행과 귀환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341]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내시와 경찰 사이의 거듭되는 대결에도 불구하고, 앞서 얘기했듯이 내가 경험한 황당한 일이나 이제는 얘기조차 못하게 된 사람들이 겪은 수많은 고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류애라는 숭고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이 폭탄이 터지면 지구상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내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이 위기의 순간에도, 이 전멸의 위협 속에서도 사태를 직시하면 서광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 어떤 시련도 이런 희망을 꺾을 수 없다. [342]


아이칭은 중국에서는 훌륭한 요리를 가늠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첫째가 맛이요, 둘째가 향이며, 셋째가 색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맛은 훌륭해야 하고, 향기는 감미로워야 하며, 색깔은 입맛을 돋우고 조화로워야 한다. [355]


11. 시는 직업이다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389]

     

우리 시인들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 우리가 민중과 강고한 유대를 맺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때만. [391]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데, 이것도 물론 이해한다. 그러나 진실을 만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391]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 [394]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시인들 가운데는 한 국가나 한 언어권이나 전 세계의 계관시인으로 등극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선거인단이나 찾아다니며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을 음해하기 일쑤이니, 제대로 된 시가 나올 리 없다. 그러므로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95]


내 경우에는 나만의 고유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이 어조도 차츰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주지하듯이, 내 초기 시집에서는 감정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인이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나 애정을 노래하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나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나는 이런 면에서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나 좋은 충고인 것만은 틀림없다. 마야코프스키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396]

  

나는 집에다가 크고 작은 장난감을 많이 모아두었다. 모두 내가 애지중지 여기는 수집품이다.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

모두 내 장난감이다. 혼자서 즐기겠다는, 무척이나 과학적 목적으로 평생 동안 모은 장난감이다. [399]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역하고 있었고, 고대 운율에 맞춰 긴 사랑의 노래를 집필하고 있었다.

사랑의 노래여! 산산조각 난 유리를 헤치고 일어나라. 노래할 시간이 왔도다.

사랑의 노래여! 균형감각을 회복하고, 고통을 노래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다오.

진정 이 세계는 전쟁을 쓸어 낼 수 없고 피를 씻어 낼 수 없고 증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의 거울에 폭력이 비치고 있으나 누가 봐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리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406]


어쩌면 시인은 유사 이래 항상 이런 의무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의 영예란 거리에 나가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 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씨앗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며, 모든 생각이 이국적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며, 인간질서의 변혁을 열렬하게 고대한다. 봄은 반역이다. [436]


그 기자의 다른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나는 365일 안에 새 책을 출판하겠다. 확실하다. 매일 그 책을 쓰다듬고 그 책을 못살게 굴고 그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입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내 책은 항상 똑같은 것을 다룬다. 언제나 똑같은 책을 쓴다. 친구들이여,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이 순간, 새 날로 가득한 새해에 나는 그대들에게, 시 언제나 동일한 시밖에 줄 것이 없다. [440-441]


나는 천천히 시를 읽었는데, 한행을 마칠 때마다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이러한 박수는 내 시에 깊은 반향을 남겼다. 13만 청중 앞에서 자기 시를 낭송한 경험이 있는 시인은 이미 예전의 시인이 아니며, 이전과 똑같은 생각으로 시를 쓸 수도 없다. [465]


현대 시인은 침몰하는 선박에서 탈출구를 찾아 헤맨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주의로, 이성의 꿈으로 도피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젊은이의 자발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에 매료되어 즉흥주의자가 되었다. 현재의 냉전 체제에서 이러한 탈출구는 탄압과 무익한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우리 당, 칠레 공산당에서 소박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인적인 허영심이라든가 폭압적인 권력이라든가 물질적인 욕망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나는 이처럼 공공의 선, 즉,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의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우리 당과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다. 칠레 공산당은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칠레 민중을 위해 큰 승리를 일궈 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도 동지들만큼 순박하고, 동지들만큼 불굴의 정신을 발휘하기를 소원한다.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 [474]


12. 희망과 고난의 조국

사회 변혁의 위험은 개인주의적 반항이 아니라 조직적인 대중과 광범위한 계급 의식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487]


나는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494]


사람들이 항상 묻는 말이 있다. 특히 기자들이 그러는데, 지금 무슨 작품을 쓰느냐 또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왜 사람들은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항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시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95]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한는 기본 의무이다. 고독 속에서 내 삶은 풍부해졌다. 칠레 해안에서 바위와 전투를 벌이는 파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바다, 완벽한 편대를 이룬 철새, 그리고 눈부시게 부서지는 포말에 사로잡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군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 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496]


나는 지금 이 회고록의 몇 줄을 위대한 동지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후에 서둘러 쓰고 있다.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미망인만이 불멸의 육신을 동행할 수 있었다. 공격자들의 말로는, 대통령 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자살의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견해는 다르다. 공중 폭격 직후, 수많은 탱크들이 작전에 돌입했다. 단 한 사람, 칠레 공화국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노린 대담한 작전이었다. 아옌테는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집무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철대 사임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관총을 난사해야 했다.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은 오직 한 여인, 전 세계인의 애도를 한 몸에 안은 여인이었다. 시신을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516-517]


옮긴이의 말

성찰의 거울은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향하고 있다. 복잡한 사생활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인물을 회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마치 네루다라는 창을 통해 20세기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534]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에 눈을 뜬 네루다는 한평생 사회적 약자들, 버려진 영혼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하고 투쟁했다. [535]


“시와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인본주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536]


우리가 회고록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식적인 견해보다는 저자의 숨결과 맥박이 스며든 견해를 알고 싶고, 또 그런 견해와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온몸으로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려고 했던 한 인간의 진정성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통로이다. [537]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네루다 자서전은 자연과 인간에게 평생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은 시인 네루다의 삶과 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 전체에 작은 도토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서부터 거대한 나무의 뿌리에 대한 웅장한 묘사와 상상력, 지진을 맞이한 사람들의 심리 등 평생 그를 따라다닌 남미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 대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 또한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어린 소년시절부터 고독 속에서 보낸 동양에서의 시절과 평생 교류하고 벗한 친구와 동지, 그리고 적과 주변인물에 대해서 아주 자세한 기록과 평가를 적고 있다. 인도의 네루 수상과 소련의 스탈린에 대한 묘사까지 네루다의 경험을 통한 짤막한 글들은 새로운 정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접하는 자연과 만나는 사람과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삶과 인간에 대한 치열한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거리와 전장에서 지배계급에게 착취당하고 시름하는 칠레 민중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마음에서 상원의원과 대통령 후보라는 새로운 길을 걷기도 한다.

  결국 그가 평생에 거쳐 추구했던 칠레민중의 완전한 독립과 행복은 그의 투병생활 중 아옌테 대통령 피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좌절된다. 자서전 말미의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라는 표현은 아마도 가슴 찢어지는 서술이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자신과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이 겹쳐지면서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은 그다지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네루다처럼 자신의 온 생애를 쏟아 민중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시를 쓰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상을 표출하고 민중을 위로한 작가가 있고, 또한 광부와 어부와 농민조차 네루다의 시를 읽고 외우고 느끼며 사랑하는 나라의 앞날이 밝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도 들었다. 

  네루다는 인간 특히, 작가들에게는 삶을 끌어안고 사회정의의 추구에 매진할 책무가 있다고 느꼈다. 오랜 스탈린주의자였던 그의 정치적 신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그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그의 시와 삶을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역자의 표현대로 네루다의 성찰의 거울은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향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건과 사생활을 세밀하게 떠올리지 않는 점에서 칼 융의 자서전과도 유사한 점이 있으나, 칼 융이 시종일관 주변의 외부 상황 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향한 성찰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루다의 자서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위대한 시인이 자신의 내면만을 들여다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를 통해 사회와 사람과 함께 호흡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 기뻤다.   

  네루다 자서전은 시인 특유의 몽환적 표현으로 객관적인 자신을 둘러싼 사실보다는 그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중간중간 네루다의 일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런 점에서 책 말미에 있는 연보는 시인의 일생에 대한 정리를 차분히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고, 또한 도서관에서 애덤 펜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를 찾아 참조를 할 수 있어서 네루다의 일생과 외부의 시각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책의 구성은 우선 책 표지에 네루다의 일생에 대한 정리가 있어서 책을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칠레를 포함한 남미 역사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네루다는 감미로운 사랑의 시를 노래한 시인이며 자연을 벗하고 이웃과 벗이 된 소박한 인간이이기도 했지만 민중을 위해 투쟁한 투사이며 외교관이요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네루다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시인의 삶과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목차 구성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시와 사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외적인 상황들에 대해 정리가 좀 안 되는 느낌이 있었고 특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시인과 교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낯설고 걷도는 느낌도 있었다.

  ‘시는 직업이다’편에 시와 언어에 대한 시인의 생각들을 정리해 놓은 부분은 위대한 시인의 머리 한 쪽을 살짝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페인어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는 네루다의 시를 이전에는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시는커녕 시인의 이름도 연구원 과제를 통해 처음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관심이 가는 영역이 아니면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게 되어버린 나의 좁은 시각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번 책을 통해 일 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쁨을 한껏 누리며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했다.


***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83]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389]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데, 이것도 물론 이해한다. 그러나 진실을 만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391]


*** 습관에 도움이 되는 장절

그  해와 마찬가지로 나는 365일 안에 새 책을 출판하겠다. 확실하다. 매일 그 책을 쓰다듬고 그 책을 못살게 굴고 그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440]


나는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494]


사람들이 항상 묻는 말이 있다. 특히 기자들이 그러는데, 지금 무슨 작품을 쓰느냐 또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왜 사람들은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항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시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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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6.16 11:06:26 *.236.3.241
나도 네루다를 읽으며 '민중에 대한 사랑'과 '개인에 대한 사랑'이 계속
오버랩되더구나.

민중이란 실체이긴 하지만 살 부대끼는 존재는 아니잖아. 사람마다 차지하는
비중은 제각각이겠지만 휴대폰 처럼 잠시 꺼두고 홀로의 시간으로 잠수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중은  실체이면서 관념이기도 한거지

그에 비해 몸과 몸이 만나는 개인은 그럴 수 없어. 원하지 않더라도 희로애락을
나눠야하지. 관념 이상의 절대적인 수용이 필요하고 그러지 못하면 지속될 수
없는 게 개인에 대한 사랑인 것 같아.

네루다가 관념의 지배에는 성공했지만 현실의 여인들과  아름다운 결론을
 맺지 못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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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12:11:03 *.145.204.123
"네루다는 두 명의 여인과 이중생활을 한다. 3년이 지난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된 델리아는 엄청난 상처를 받고, 정신적, 지적 동반자였던 델리아와 감정적, 열정적 동반자인 마띨데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없었다는 네루다의 눈물어린 호소.............."
아무래도 시인은 피가 뜨거운것 같아
그 뜨거움에 자신도 죽곤하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여인들의 사랑을 찾아내는것을 보니 선형에겐 사랑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느낌이 들어
그들의 습관을 채집하는것은 좋은 습관인듯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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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6.16 13:04:10 *.53.82.120
시인은 이상주의자!
'생노병사' 라는 자연의 사이클을 받아들이기엔
그는 너무나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의 관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생노병사를 그는 견딜 수가 없었겠죠.
민중이라는 '관념'을 영원한 연인으로 삼았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피할 수 없는 현실속의 관계에서도 그는 집요하게 '生'만을 추구합니다.
습관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나이든 여배우처럼말이죠.

마지막 순간까지 만인의 연인이고 싶어하는 여배우의 심정이 이해될 듯하면도
안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그녀의 거울이 충분히 그를 만족시켰기를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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