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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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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11시 31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 박병규 옮김 , 민음사

 

* 저자에 대하여 *

내 이름은 파블로 새

깃털 하나뿐인 새

해맑은 그림자와

어지러운 빛 더불어 날아오른다.....

날아오르지만, 날지 못하고, 노래 부른다.

나는 고요한 폭풍 속

성난 한 마리 새.

- 「‘나’라는 새」 파블로 네루다 - 

숱한 세상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고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은 극히 드물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그런 사람이다. 네루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작품의 아름다움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과 삶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오늘날에도 살아 숨쉰다.

1971년 네루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연인들은 세상 곳곳에서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의 시구들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박한 것들에게 바치는 송가>의 우아하고 감동적인 수수함, <지상의 거처>의 난해한 아름다움, <모두의 노래>의 서사시적 장대함, <에스뜨라바가리오>의 근사한 해학적 자조(自嘲) 그리고 이후의 연애시의 강렬한 서정을 통해 황홀경에 빠졌다.

네루다의 정치적 신념 - 1956년 이후로는 사건들에 연루되어 점차 더 큰 곤란을 겪게 되었지만, 그는 오랫동안 스탈린주의자였다- 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탄생 100주년이 지난 지금, 그의 근원적인 휴머니즘은 여전히 현대적 의미를 지닌다.

네루다는 20세기의 지구를 가득채웠고, 가르시아 로르까, 피카소, 엘뤼아르, 아라공, 에렌부르크를 비롯한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이고 영향력있는 명사들과 가깝게 교우했다.

그의 삶의 이야기는 경이롭다. 네루다는 단지 한 사람의 시인, 외교관, 정치가가 아니었다. 그의 포도주, 여자 그리고 노래를 뜨겁게 사랑했다. 내전이 한창이던 마드리드에서는 용기 있게 공화파를 지지하다 외교관직을 박탈당했고, 2000명의 공화파 난민들을 낡은 어선 위니펙 호에 실어 칠레로 수송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조국의 압제자를 피해 은신하던 세월과 말을 타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탈출한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탈출 과정이나 그 이후에 그가 종종 시의 힘과 살아 있다는 더없는 기쁨을 통해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적(政敵)들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3년간의 유럽 망명 중에는 이탈리아 당국을 성공적으로 따돌리고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로 들어가디도 했다. 칠레로 돌아간 뒤에는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살바도르 아옌데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네루다는 그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가르시아 로르까는 인상적으로 그를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시인으로 불렀다.

네루다는 또한 대단히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파블로 네루다......나의 가장 불충한 적”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모순을 인정했다.

네루다는 고통스러운 지병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기쁨을 느꼈다. 네루다는 인간-특히, 작가들-에게는 삶을 끌어안고 사회정의의 추구에 매진할 책무가 있다고 느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는 인간적 연대에 대한 네루다의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호소력이 강하다.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어느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의 한계에 갇힌 저의 시 안에서는 늘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 칠레의 시인을 휘감았던 이러한 숙명적 변방 의식에도 불구하고, 탄생 백주년이 막 지난 지금까지도 네루다는 “(마추픽추의) 죽은 왕국이 살아 있다”는 그의 시구처럼 수많은 현대인의 영혼 속에서 살아 노래하고 있다. 네루다는 그토록 고통스럽게 씌어진 자신의 시가 숱한 사람들을 행복의 길로 인도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적이라고 말한다.

 

<참고서적>

「Pablo Neruda 빠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 지음.

 

*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p14.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이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p16. 칠레의 숲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삶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p17. 유년 시절 얘기를 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남반구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가 쏟아진다. 마치 케이프혼이라는 하늘에서 개척지라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

p24. 나이가 들면서 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버팔로 빌의 무용담이나 살가리의 모험담을 읽으면서 내 정신은 꿈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p25. 이런 기억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여러 가지 일이 뒤섞여 혼동을 일으킨다. 내 첫 연애 사건도 이상하게 자연과 뒤섞여 있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p29. 어디선가 애절하게 흐느끼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신비로운 바다를 향해 산자락을 끼고 미지의 넓은 강을 항해하는 것보다 더 열 다섯 살 소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었다.

p30. 나라는 하찮은 존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담쟁이덩굴과 인동덩굴과 내 詩心만이 무성하게 자라는 이적막한 정원을 찾지 않았다.

p30. 난생처음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바다는 커다란 일케 언덕과 마울레 언덕 사이에서 한참 격노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도가 수미터 상공으로 치솟았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심장이 고동치고 우주가 박동하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p32. 테무코에서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 해안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성장했고 책을 읽었고 사랑에 빠졌고 또 글을 썼다.

p33. 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p35.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어둠과 비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었다. 나 혼자였다. 수학 공책에 시를 썼다.

p35. 광활하고 무서운 개척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년 시인은 무척이나 고독했다. 나는 삶과 책을 통해 조금씩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로 나아갔다.

p36-37. 어쨌거나 나는 지식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고독한 항해사처럼 서적이라는 강줄기를 따라 좌충우돌하면서 전진했다. 내 독서열은 밤이나 낮이나 식을 줄 몰랐다.....나는 타조처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집어삼켰다.

p38. 정말 끝도 없이 무한하게 펼쳐진 해변이었다. 칠레를 감싸고 있는 해변은 행성을 두른 띠 같고 남극해의 포효에 시달리는 반지 같으며 칠레 해안을 돌아 남극 너머로 뻗어가는 경주로 같다.

p39 문득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숲과 밤이 이제는 나를 위협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p40. 나는 고뇌하는 영혼처럼 좁은 길을 따라갔다. 방금 깎은 손톱같은 하얀 초승달이 떠올랐다.

p43. 세 자마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요리솜씨였다. 그 여자들에게 식탁이란 신성한 문화유산의 보존이었다. 세월이 가로막고 거대한 바다가 가로막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프랑스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p44.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 있다. 죽음과 망각. 어쩌면 밀림이 세 자매의 생명과 그날 밤 나를 반겨 준 그 집을 삼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일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꿈이라는 투명한 호수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고독하고 거친 삶 속에서 아무런 실용적인 목적도 없이 옛날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던 우수에 찬 세 자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여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접근하기도 힘든 산중에서 조상이 일군 우아한 문화를 소중하게 지키고 있었다.

p45. 나는 오랫동안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밀짚으로 얼굴과 팔을 덮고 있었다. 맑고 차갑고 시린 밤이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금방 비로 씻어 낸 것 같았는데, 모두들 깊이 잠든 저 하늘에서 나만을 위해 반짝였다.

p47 아름다운 그 여자가 슬쩍 웃으며 은근한 눈짓을 주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이 점점 커지고 깊어져서, 내 몸 안에서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p56. 여자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고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에 못 본 척, 관심 없는 척 그냥 지나쳤다. 그렇다고 정말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여자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은밀하게 타오르는 저 불길에 타 죽고 싶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우물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불이든 물이든 간에 나 자신을 던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등을 떠밀 사람이 없던 탓에 웃음은커녕 쳐다보지도 못하고 매혹의 언저리를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p56. 수줍음이란 마음이 병이며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또, 한 사람이 두 겹이 껍질을 가진 것처럼 고통을 겪는다. 겉껍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속껍질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삶에서 움츠러든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이러한 특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p66.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성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정의의 근간인 이성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 칠레를 매우 사랑한 우나무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이성 또는 힘으로’라니. ‘이성으로, 항상 이성으로.’ 이렇게 말해야지.”

p72. 나에게는 그런 장소나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네. 솔직하게 말해서 저 아름다운 그림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내가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잘 알지도 못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거라네. 저 감자 때문에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 세상에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라네.

p72. 나는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내 시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더니만 이제는 나를 공격하고, 내 눈을 빼먹으려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분파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내 침묵을 받을 만한 가치는 있다. 나는 적들과 다니면서 내 자신이 오염될까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민중의 적만이 내 적이기 때문이다.

p78.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빳빳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낸 저 순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가는 듯한 저 황홀한 도취의 순간,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꽃봉오리를 응시하는 그런 환희의 순간은 시인의 일생에서도 단 한 번밖에 없다. 첫 시집에 실린 작품 가운데 한 편이 저 미숙한 책을 박차고 나와 홀로 자신의 길을 가는 것같다. 이 시가 바로 <작별>이다.

p78. 우리 시인들은 작품 가운데 단 한 편만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알레르기가 돋는다. 이러한 알레르기는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반응이다. 앞서 말한 독자들의 애착은 시인을 특정 순간에서 못 빠져나오게 만든다. 창작이란 부단한 연찬을 통해, 비록 참신성과 자발성은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p79. 침대에 눕기 전에 창문을 열었다. 하늘을 보고 넋을 잃었다. 하늘을 뒤덮은 별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세수를 끝낸 듯한 밤. 남극의 별이 머리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별을 보고 도취했다. 우주적, 천상적 도취였다. 그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마치 누군가 불러 주는 말을 받아 적은 것같았다.

p80. 내가 제대로 천착할 수 없는 웅대한 시와는 담을 쌓았다. 의도적으로 문체와 표현을 낮추었다. 한결 소박한 표현과 내 고유의 조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면서 연애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이다.....이 시집에는 고뇌에 찬 청년시절의 정열과 칠레 남부지방의 거친 자연이 혼합되어 있다. 번뜩이는 우수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기쁨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내가 아끼는 시집이기도 하다.

p83. 그 시절부터, 간혹 공백도 있었지만,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p84. 사랑스러운 말은 색 독처럼 빛납니다. 은빛 물고기처럼 뛰어오릅니다. 말은 거품이고 실이고 금속이고 이슬입니다.

p85. 지금 그 빛나는 말이 여기 남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패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였습니다. 저들은 황금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황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져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p89 갑자기 이상하고 매혹적인 무언가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숲의 향기였다. 어릴 때는 늘 함께했으나 소란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린 풀잎 냄새, 초목 냄새였다. 나는 대지의 자장가에 파묻혀 아득한 꿈결을 헤매고 있었다.

p94 자신만의 무한한 세계, 자신만의 바다 한 조각을 상자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망각이 안개처럼 밀려오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고유한 무기로 이 세계를 수호하고 있었다.

p98. 그때 발파라이소가 밝아 왔다. 처음에는 짙은 황금빛이더니, 이내 바닷가 오렌지나무로 변하고, 잎이 무성해지고, 그늘을 드리우고, 눈부신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다.

p99. 이곳 언덕의 이름은 모두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언덕들만 둘러본다 해도 끝없는 여행이 된다. 발파라이소 여행은 땅이나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99-100 발파라이소가 얼마나 광대한 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오른쪽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깔과 왼쪽에서 싹트는 불길한 맹아, 산꼭대기와 심연을 한꺼번에 다 보여 줄 수는 없다. 나는 다만 종소리와 굽이치는 기복과 이름을 따라갈 뿐이다. 특히 이름을 따라간다. 이름에는 큰 뿌리와 잔뿌리가 있고, 공기와 기름기가 있고, 역사와 오페라가 있으며, 그 음절에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p113. 1928년 당시 인력거를 쓰는 중국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뛰어다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이방인들의 코에 빗물이 튀지 않도록 수레 앞을 방수포로 가렸다. ‘이사람들은 참 사려가 깊네. 이천 년 문화가 헛된 게 아니군.’ 알바로와 나는 각자 달리는 의자에 앉아 이렇게 생각했다.

p117. 랭군에 입항할 때 보디 쉐다공 파야라는 거대한 파고다의 황금색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부둣가에 환영 나온 수많은 인파는 마치 떼를 지어 서로 격돌하는 것 같았다. 넓고 더러운 강이 마르타반 만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이 강은 세계의 어느 강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다. 이라와디 강. 이 강과 함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p118. 어디를 가든 내 꿈은 식물처럼 사는 것이다. 한 곳에 눌러앉아 그 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에....

p119. 알바로의 순발력, 비판력, 오렌지, 정기적인 연락, 뉴욕의 아지트, 너무나 명쾌하게 보이는 혼란스러운 글, 너마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명쾌한 글....., 그런데 고대하던 작품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어쩌면 작품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너무 바쁘고 항상 너무 한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알바로는 모르는 게 없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둟어 보는 당돌한 푸른 눈, 셈세한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으니....

p126. 누가 이 많은 뱀을 여기에 갖다 놓았을까? 어떻게 뱀을 길들였을까? 이렇게 묻자 입가에 웃음을 띤 사람이 이렇게 대답한다. “뱀은 제 발로 왔고 또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납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뱀의 앞길을 가로막는 창살이나 유리창은 전혀 없답니다.”

p127.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p129 소곤거리는 잎사귀 사이에 창백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와불들이 밀림의 한구석에서, 원형 좌대 위에서 불쑥 나타난다. 이런 와불은 수백, 수천, 수만년 동안 그곳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온화하다. ‘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저 유명한 불가의 말을 체현한 탓이리라. 불상들은 단단하고 영구적인 돌임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는 위엄과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이 피로 물든 땅에 누운 와불은 누구에게 저렇게 미소를 짓는 것일까?

p.130 돌까지도 평화롭다. 조각가들은 고행하는 부처님이라는 기존 관념을 깨뜨려 버렸다. 巨神의 발을 지닌 이 거대한 불상들은 인간적이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고난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리고 이 불상들은 거미줄이 걸린 祭衣房의 숨 막히는 냄새가 아니라 초목 냄새를 풍긴다. 밀림의 깃털과 나뭇잎과 꽃가루가 흩날리는 바람 냄새를 풍긴다.

p131. 동양은 불행에 시달리는 거대한 인간 가족처럼 느껴져서 내 양심상 동양의 신이나 의식에만 몰두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창작한 시는 폭력적이고 낯선 세계에 이식된 이방인의 고독을 반영하고 있을 따름이다.

p134. 거리가 내 종교였다.

p135. 나는 잠시 들렀다가는 식민지 관리와 함께 살려고 동양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오랜 정신을 경험하고 불행한 인간 가족과 함께 살려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p137. 아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편을 경험하고 그 맛을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없이 아편을 피워 댔고,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속이 텅 비고 온 몸이 나른해졌다.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도(이를테면, 팔꿈치나 목을 움직인다든지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 소리, 경적 소리, 길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라든지) 한데 어우러져 느긋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

p137-138. 아편굴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에는 수를 놓은 방석과 같은 부유한 티가 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반짝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편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반쯤 감긴 눈에서도 반짝이는 빛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쉬고 있는 것일까, 자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아편굴은 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 확실했다.....몽롱한 침묵은 아편굴이라는 물웅덩이에 가라앉은 부서진 꿈의 침전물이다....그 이후 다시는 아편굴을 찾지 않았다. 이제 아편이 뭔지 알았으니까. 나는 연기 속에서 아른거리는 그 무엇을, 손에 쥘 수 없는 그 무엇을 만져 보았다.

p139. 매일 저녁 턱시도를 차려입은 영국인들과 내가 범접할 수도 없는 광대한 세계를 형성한 힌두교도 사이에서 나의 선택지는 고독뿐이었기에 그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p139.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

p141-142. 이 공책에는 오래전에, 1918년과 1919년 사이에 쓴 시가 적혀 있었다. 그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청소년기의 우울을 보고, 다시 말해서 내 젊은 시절의 모든 작품들에서 발산하는 문학적 고독을 보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젊은 작가는 이런 몸서리치는 고독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설령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는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p143. 영국인 식민 지배자들과 방대한 아시아 세계 사이의 엄격한 분리는 결코 예전의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분리는 비인간적인 고립을 의미하며 아시아인들의 삶과 가치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를 의미한다.

p.144 도무지 뚫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껍질에 균열이 생기면서 친구가 몇 명 생겼다.

p149. 이처럼 허공에 뜬 내 삶의 이야기가 이 시집(<지상의 거처>)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표현되어 있다. 잉크보다는 피를 가까이하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내 문체는 한결 정제되었고, 반복되는 광적인 우수를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진리와 수사법(이러한 밀가루로 시라는 빵을 만든다.)을 고려할 때 씁쓸한 문체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고유의 문체를 체계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문체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체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대기가 스며들지 않는 시는 죽은 시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

p179. 에르난데스는 종종 동물과 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치 다듬지 않은 돌처럼, 순수한 숲과 굽이치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에서 솟아나온 작가였다. 잠든 암염소의 배에 귀를 대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지도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젖통으로 젖이 흘러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인데, 저 염소 시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일 것이다.

p186. 로르카는 사방에 빛을 뿌리는 요정이었다. 가슴에 모아 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 로르카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로르카는 또 다른 교살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스페인 내전은 한 시인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내 시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p188. 시란 정태적인 물건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를 창작한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시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로 형성됩니다.

p195.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의 시를 요동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

p209.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러한 선택이었으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극적인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p210. 시는 언제나 평화적인 행위이다. 밀가루가 있어야 빵을 만들 수 있듯이, 평화가 있어야 시인도 있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

p214.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p215.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는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글라네그라에의 거친 해변과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p228.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것, 가장 근원적인 것, 가장 강렬한 것, 가장 소중한 것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을 뿐이다.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도시를 바라보았으니 텅 빈 도시만 눈에 들어왔다. 비참한 모습의 공장을 둘러보았으나 지붕 밑에서,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다.

p228.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서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 했다.

p229. 우리는 그 어떤 신비도 찾지 않는다. 우리들이 바로 신비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 속 깊은 곳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

p251. 역사는 정복자들이나 정복을 향유하는 자들이 쓴다.

p254. 멕시코는 지금도 내 몸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길 잃은 작은 독수리처럼 핏줄을 타고 온몸을 순환한다. 이 독수리는 내가 죽은 다음에야 심장 위에서 날개를 접을 것이다.

p256. 나는 돌로 만든 세계의 배꼽,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도 속해 있는 세계의 배꼽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나 자신이 초라한 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득한 옛날 내가 여기에 살면서 밭이랑을 갈고 돌을 다듬은 것만 같았다.

p259.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 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

p262.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월계관이자, 척박한 광산 지역에 형성된 삶의 여유 공간이다. 이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칠레의 바람과 밤과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아픔을 생각해주는 시인이 있어.”

p263.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나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p290. 내 인생도 긴 순례였다. 항상 돌고 돌아 칠레 남부의 숲으로 무성한 밀림으로 되돌아왔다.

p291. 이렇게 지상에서 상처 입고 불에 탄 뿌리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이런 뿌리는 오솔길을 가로막고 우리에게 나무가 자라는 땅 속의 비밀을 들려주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질 수 있는 신비를 보여 주며, 식물 왕국을 일으켜 세운 근육을 자랑한다. 무성한 이끼에 덮여 비극적인 생을 마치는 뿌리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 낸 조각품,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

p296. 주지하듯이, 생명은 계율보다 강인하다. 혁명은 생명이나, 계율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p298. 문학에서 새로운 형식, 즉 기존 형식의 혁신은 관습적인 틀을 넘어서거나 깨뜨려야 한다. 하지만 문학이 어떻게 철저하고 광범위한 혁명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민중들이 경험한 승리, 갈등, 인간적인 문제, 풍요, 진보, 성장을 핵심적인 주제에서 제외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잔인한 침략자들에게 짓밟히고 집요한 식민주의자들과 온갖 종류의 우민화를 자행하는 세력에게 포위된 저 소련의 민중들과 연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문학이나 예술이 이처럼 본질적인 사안을 외면하고 공허한 자율성만을 고집해도 된다는 말인가?

p300. 작가의 작업도 저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p341.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p342. 나는 지금까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p.342 내가 경험한 황당한 일이나 이제는 얘기조차 못 하게 된 사람들이 겪은 수많은 고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류애라는 숭고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이 폭탄이 터지면 지구상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내 희망을 꺼지는 못한다. 이 위기의 순간에도, 이 전멸의 위협 속에서도 사태를 직시하면 서광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 어떤 시련도 이런 희망을 꺾을 수 없다.

p349.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바위 꼭대기에는 신선의 도포 자락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동양화의 거장들이 즐겨 그린 그림이고 날아가는 새였다. 심오한 시는 이런 장엄한 자연에서 흘러나온다. 새의 날갯짓 같고, 고여 있는 듯이 흐르는 시냇물의 반짝거림 같은 간결하고 투명한 시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p354. 스탈린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며 우리들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땅도 하늘도 광대한 이 혁명 중국에서, 그것도 대낮에, 한 인간을 신화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혁명적 의식을 독점하게 만드는 신화, 즉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를 한 사람이 손아귀에 맡겨 버리는 신화였다. 나는 이처럼 쓰디 쓴 약을 두 번씩이나 삼킬 수는 없었다.

p377.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며 내 목소리가 깊은 우물과 같은 침묵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또 저 노동자들의 검은 눈동자와 눈썹이 점차 내 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제야 진정한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운율에 취하고 또 버려진 영혼들이 시에 젖어 들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계속 시를 낭독했다.

p386.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p386. 시는 이미 독자와의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p387.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 당겨 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를 다루었다. 구어도 색다른 맛이 있으나 문어 또한 예상 외로 맛깔스러운 면이 있다.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

p388-389.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했다.

p391. 우리 시인들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단, 우리가 민중과 강고한 유대를 맺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단서가 붙을 대만.

p391.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p391 시인의 생활 수준으로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질책하는 비평가들을 한번 초대하고 싶다. 그리하여 시집이 출판되어 팔리고 비평가들이 관심을 사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시인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보여주고 싶다. 또 저작권료를 받으며, 적어도 몇몇 작들은 신성한 노동으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다. 비평가는 이런 시인의 자부심을 널리 알려야 한다. 다된 밥에 재만 뿌리고 다녀서는 안 된다.

p392.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

p392 행동하는 시인으로서 나는 자기도취와 싸웠다. 따라서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갈등은 나라는 존재 내부에서 해결되었다.

p393.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삐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시를 존중하게 되었다. 시뿐만 아니라 시인도 존경하게 되었다. 모든 시와 모든 시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p394.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비합리주의적인 시인은 자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오로지 합리주의만을 추구하는 시인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심한 일이다. 이런 방정식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이나 악마가 제시한 해법도 없다.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 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

p395.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p395.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p396. 시는 감정보다 한층 본질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통제된 자발성을 믿는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이를테면 긴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용품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품목은 단어, 음성, 비유에 대한 형식적, 실제적 정보이다. 이런 것들은 벌처럼 귓가를 휙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재빨리 낚아채서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한다. 나는 이런 면에서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나 좋은 충고인 것만은 틀림없다. 마야코프스키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품목도 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종이 앞에서 그 의식을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감정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p399.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

p403. 내 수집품 가운데 으뜸은 조개껍데기이다. 그 절묘한 생김새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마음이 흐믓해진다. 저마다 특이한 형태와 촉감과 기능을 자랑하는 도자기를 감상하는 듯하다.

p405. 수집품을 기증한 지도 20년이 지났는데, 그 이후로 내 장서와 조개껍데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책방과 바다로 되돌아가 버린 모양이다.

p406. <사랑의 소네트 100편>에서 아내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 어쩌면 그 시집은 아내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정의일지도 모른다. 삶과 땅이 우리를 만나게 했다.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칠레의 한적한 해변에서 긴 세월을 함께 보냈다.......아내는 힘찬 소리로 내 노래를 부른다. 내가 쓴 것,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아내에게 바친 것이다. 많지는 않으나 아내는 행복해한다.

p412. 매일 생각나는 친구였으며, 따뜻한 우정은 내가 일용하는 양식의 일부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 누구도 그가 가져가 버린 것을 내게 줄 수는 없다. 그의 우정은 내 삶의 소중한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p419. 나는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내 고향 아라우카니아의 나뭇잎으로 만든 향기로운 왕관을 드높이 쳐들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보낸다. 바람과 생명이 이 왕관을 살바토레 콰지모토의 이마 위에 내려놓기를 기원하면서. 그러나 이 왕관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초상화에서 흔히 보는 아폴로 신의 월계관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칠레의 숲 속에서 아직은 이름이 없는 나뭇잎, 남극 오로라의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다.

p423. 나는 당신과 함께 진리와 본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진리와 본질은 우리들의 목소리와 우리들의 행동 덕분에 소중히 간직될 것입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이 대양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조국에서 고이 잠들어 살고 싸우고 노래하고 창조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의 고귀한 이마에 입맞춤하고, 당신의 원대한 시에 경의를 표합니다.

p434. 시의 분자란, 꽃가루처럼 가볍든 납덩이처럼 무겁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다가 밭고랑이나 사람 머리 위에 떨어진다. 이러한 씨앗들이 봄기운을 만나면 꽃이 되고, 천장에서는 탄환이 된다.

p436. 시의 영예란 거리에 나가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 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씨앗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며, 모든 생각은 이국적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며, 인간 질서의 변혁을 열렬하게 고대한다. 봄은 반역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p441. 세월이 흘러간다. 사람은 소진되거나 꽃을 피우고, 고통을 당하거나 환호성을 올린다. 세월은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하고 새 생명을 보내 주기도 한다. 이병이 좀 더 잦아지고 친구들이 수감되었다가 출감하기도 하고 유럽을 다녀오기도 하며 그냥 죽기도 한다.

p446. 사실, 이 땅에서, 이 땅이 부르는 노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피와 이름 모를 꽃이다.

p458. 날이 저물 때라 웅장한 황혼이 나를 반겼다.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구름을 헤집어 놓고 있었고, 강물처럼 흐르는 푸른 하늘이 대지와 하늘 사이에 걸린 커다란 구름 덩어리를 에워싸고 있었다.....하늘은 고운 비단과 금속을 석양을 만들고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노란색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순순한 공간에 떠 있는 거대한 새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갑자기 변해, 고래 입이 되었다가 사나운 표범이 되었다가 끝내는 추상화가 되었다.

p493. 태양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이 낡은 체제를 제외한 모든 것이 변화하려고 몸부림친다. 이 낡은 체제는 중세의 거대한 거미줄에서 태어났다. 쇠보다 단단한 거미줄에서. 그러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쟁취하고, 변화를 꽃피운 사람들이 있다……. 제기랄! 속절없이 봄이 와 버렸네!

p495.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 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p496.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

p496.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고독 속에서 내 삶은 풍부해졌다.

p496. 나는 군중이란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p.506 조국 땅에서 멀리 떨어져 살 때는 칠레의 겨울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눈앞에 안 보이기 때문에 겨울철의 고단한 삶, 방치된 시골 마음, 맨발로 추위를 견디는 어린애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초록색 시골 풍경, 노란색과 빨간색 꽃, 국가에 등장하는 푸른 하늘만 기억했다. 이번에는 먼 이국 땅에서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계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식물이 도시의 담벼락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증오의 이끼였다.

p534. 인연은 세월의 바람에 흩어지고 추억만 낙엽처럼 쌓인다고 했던가. 네루다의 회고는 공정하지도 않고 포괄적이지도 않다. 서문에서 네루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네루다의 기록은 듬성듬성하다....네루다는 이런 망각의 어둠을 배경 삼아 반짝이는 삶의 편린들로 시, 사랑, 혁명을 찬연하게 아로새기고 있다.

p534.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

p534. 거의 모든 비평가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듯이, 대자연이다. 산과 숲, 벌판과 꽃, 식물과 동물, 하늘과 땅, 비와 바람이다.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시에서는 물론이고, 끈끈한 고독이 묻어나는 시, 분노와 함성이 메아리치는 시,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의 소박한 정취를 노래한 시에서도 항상 텁텁한 흙냄새가 나고 신선한 초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기에 네루다 또한 이렇게 고백한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p535. 이 회고록에서 네루다가 특별히 강조하는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에 대한 사랑이다.

p537. 그렇지만 우리가 회고록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식적인 견해 보다는 저자의 숨결과 맥박이 스며든 견해를 알고 싶고, 또 그런 견해와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온몸으로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려고 했던 한 인간의 진정성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통로이다.

 

* 내가 저자라면 *
파블로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의 삶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삶의 장면을 기술하고 있다.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데, 개인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네루다 스스로 자신의 회고가 듬성듬성하다고 말하지만, 70년의 자신의 행적을 기억에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정도의 회고의 장면들만으로도 나는 감탄스럽다. 그의 회고록 속에는 네루다를 네루다답게 만든 다양한 세상의 소재들이 기록되어 있어 읽는 내내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해볼 수 있었다. 네루다 스스로도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유년시절 자연을 소재로 배웠고, 청소년기에는 책을 소재로 배웠으며, 청년기, 장년기에는 사랑과 세상을 통해서 배웠다. 네루다의 삶은 자신의 경험을 통한 실천적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인생의 각 시기마다 자신이 경험하고 체득한 것들이 그의 삶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경험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우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나 자연에서 얻는 풍요와 영감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네루다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는 그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유년시절에 자연을 사랑했고, 청소년 시절에 책을 사랑했으며, 청․장년기에는 친구를 여인을 그리고 민중을 사랑했다. 어찌 보면 그가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하는 것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네루다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매순간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관심과 열정의 표현이고 현실에 충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네루다의 연인들에게 그의 삶의 장면 그 순간에서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권이었기에 가능한 네루다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나의 짧은 소견과 편협된 시각으로 시와 시인라고 하면 현실속에서 소재를 얻지만 뭔가 현실을 벗어난 세계에서 존재하는 언어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네루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와 시인이라는 것은 삶 속에서 경험을 통한 내면의 울림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순수하게 정제된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루다는 회고록조차도 시인답게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네루다가 들려주는 장편의 노래를 듣는 듯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안에 있었어도 시인의 시선은 보통사람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마져 들게 했다. 그의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된 삶의 기억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의 기억이 대상이든 사람이든 내가 그것들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네루다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이라 자신에 대한 비판적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도 그런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을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도 아름다운 언어를 추구하는 시인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며, 세상의 비판에 대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매순간에 충실한 현재 진행형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네루다 자서전을 리뷰하면서 6월 오프수업에서 들은 “자신의 길에 대한 동경을 보여줄 수가 있다면 정말 훌륭한 선생일 것이다.”라는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네루다는 나처럼 시에 대한 문외한도 시를 읽고 싶고, 시를 써보고 싶게 만들었다. 나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꿈꿔볼 수 있도록 한 네루다는 진정 훌륭한 시인이고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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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6.15 18:42:52 *.212.98.176

내 이름은 연주 새

깃털은 하나지만 오직 초록으로 물들인 새

수줍은 미소 뒤에
뜨거운 성정을 주체 못하는 불새

지금은 다만 날아오르고 날지 못하고 퍼득거린다

폭우 뒤 무지개 비칠 때 놓치면 안될 것

성난 불새 또는 거대한 알바트로스의 비상

- 「‘연주’라는 새」 김연주를 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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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6.17 16:29:51 *.203.200.146
오호~ 오빠에게 이런 시적 감성이~
<연주라는 새>....감사해요
오빠에게 제 수를 다 읽힌듯한 느낌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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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20 09:56:17 *.34.224.87
10년 뒤에는
니가 교직에 있다는 것이
많이 자랑스러울 거야....예지력 발동!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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