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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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 파블로 네루다 (1904~1973)
[약력]
1904년 칠레 중부의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난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고 만다.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1904년 7월 12일 칠레의 파랄에서 출생
1923년 첫 시집 <황혼의 노래> 출간
1924년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
1927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여러 작가들과 교우
1953년 스탈린 평화상 수상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73년 사망
작품 : 100편의 사랑 소네트, 추억,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시인, 외교관, 자연을 사랑한 보헤미안, 천진난만한 어른아이, 순수한 공산주의자 등
그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많지만 그는 시인이다. '사랑과 혁명의 시인'이고 '강의 시인'이다. 네루다의 생애와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사랑과 혁명이었으나, 또한 그는 강을 사랑한 시인이다. 네루다에게 전국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ción desesperada)의 창작 배경에 대한 설명에서도 “내가 이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심각한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실존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책을 쓰도록 도와준 것은 임페리알 강(el río Imperial)과 그 강의 어귀였다. 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장시의 형태와 풍부한 리듬을 사용하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를 대양의 시인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가 생각하는 시는 무엇인지? 그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오직 그의 시로 느낄 수 있을 뿐일지도...
■ 나는 (Yo soy)
내가 처음 본 것은
나무들, 아름다운 야생의 꽃들로 수놓아진 절벽들, 습한 대지, 불붙은 숲
그리고 세상의 저 편으로 범람하는 겨울이었다.
나의 유년은 젖은 신발, 밀림에 쓰러져
칡넝쿨과 딱정벌레에 먹히는
썩은 나무의 몸통, 귀리밭의 달콤한 날들,
장엄한 철길을 만들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황금빛 턱수염이다.
■ 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이 멀었어.
내 영혼 속으로 뭔가 두드렸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이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서 취해,
내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한 여자의 육체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별처럼 벼렸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흘러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 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끊임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내 검은 하상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중에서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3.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14. 우리는 듬성등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20. 나는 보로아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 한 번은 눈부신 딱정벌레를 가져왔다. 독자들 가운데 이 딱정벌레를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딱 한 번 보았다. 찬란한 무지갯빛 옷을 입고 있었다. 등껍질이 붉은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반짝거렸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손을 벗어나 밀림으로 날아가 버렸다. 몽해 아저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날아간 딱정벌레를 다시 잡아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눈부신 딱정벌레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몽헤 아저씨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아저씨가 죽었다고 했다. 기차에서 떨어져 낭떠러지 아래로 굴렀는데, 급히 기차를 세웠으나 남은 것은 뼈밖에 없었단다.
21. 우리 집은 임시 숙소 같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탐험 회사 같기도 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술통, 연장, 마구 등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항상 공사 중인 방도 있었고 공사를 반쯤 하다 중단한 계단도 있었다. 이러다간 한평생 공사만 하다가 말겠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의 대학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2. 아무튼 새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온화한 분이었다. 시골 사람 특유의 유머 감각도 있었고 또 언제 봐도 상냥했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당시 그 지역 여자들이 모두 그랬듯이 조용한 그림자로 변했다.
25.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29.우리가 묵을 집에서, 아니 그 전부터, 그러니까 낡은 부두에 정박한 작은 증기선에서 내렸을 때부터 묵직한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멀리서 으르렁거리는 바다였다. 파도가 몸 안으로 밀려왔다.
30. 난생처음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바다는 커다란 일케 언덕과 마울레 언덕 사이에서 한참 격노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도가 수미터 상공으로 치솟았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심장이 고동치고 우주가 박동하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바닷가에 식탁을 차렸다. 입안에 모래가 씹혔으나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우리에게 수영을 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던 것이다.
37. 그 사람은 내 독서열에 깜짝 놀랐다.”그걸 벌서 다 읽었니?”하고 되물으며 바르가스 빌라 [콜럼비아의 베스트 셀러 작가]와 입센의 작품,그리고 로캉볼 연재 소설을 건네주었다. 나는 타조처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집어 삼켰다.
44. 가장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 있다. 죽음의 망각. 어쩌면 밀림이 세 자매의 생명과 그날 밤 나를 반겨 준 그 집을 삼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일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마치 꿈이라는 투명한 호수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는 듯 하다. 고독하고 거친 삶 속에서 아무런 실용적인 목적도 없이 옛날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던 우수에 찬 세 자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여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접근하기도 힘든 산중에서 조상이 일군 우아한 문화를 소중하게 지키고 있었다.
46. 두려움은 점차 강렬한 쾌감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땋은 머리와 매끈한 이마와 양귀비꽃처험 부드러운 눈까풀을 쓰다듬었다. 이어 풍만하고 탄탄한 젖가슴, 둥근 엉덩이, 나를 휘감은 허벅지를 더듬어 보고, 산속 이끼처럼 촉촉한 사타구니에 손가락을 파묻었다.
49. 내가‘겉으로’라고 말한 이유는 머릿속이 온통 책과 꿈 그리고 벌 떼처럼 윙윙거리는 시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52. 이번 모험에서는 지금보다 더한 굶주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취 집 주인 여자는 몇 다리를 건너면 고향과 연줄이 닿았기 때문에 동정심에서 가끔식 감자나 양파를 갖다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삶, 사랑, 명성, 자유가 나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54.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환상적인 부부였다. 여자는 밀밭 같은 금발머리, 흠잡을 데 없는 몸매, 짙푸른 눈동자를 자랑하는 미인이었고, 남자는 건장하고 키도 훤칠한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분마성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나중에야 금발의 아내 또한 분마처럼 날뛰는 비너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니실린이 없던 시절이기는 하지만 건장한 남편이 두어 달 만에 쓰러진 데는 몸이 뜨거운 부인도 일조를 했으리라고 짐작했다.
64. 내가 만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었는데 종이학과 함께 비를 맞으며 하늘로 날아갔다.
77. 이 첫 시집이 바로 1923년에 출판된 ‘황혼일기’이다. 시집 발행 비용을 마련하느라 매일같이 단맛 쓴맛을 경험했다. 얼마 되지 않은 가구를 팔고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건네주신 시계, 손수 두 개의 작은 깃발을 엇갈리게 새겨 넣은 시계도 전당포에 맡겨야만 했다. 나중에는 검정색 시인 복장까지 전당포로 갔다. 인쇄소 사장은 피도 눈물도 없었다. 드디어 인쇄가 완료되고 표지 비용까지 지불했는데도 악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안 돼. 대금을 전부 결재하기 전에는 한 부도 가져갈 수 없어.” 결국 비평가 알로네가 보태 준 돈까지 집어삼킨 다음에야 나는 책을 짊어지고 인쇄소를 나올 수가 있었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뛸 듯이 기뻤다.
79. 나는 별을 보고 도취했다. 우주적, 천상적, 도취였다. 그 즉시 책상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마치 누군가 불러 주는 말을 받아 적는 것 같았다.
87. 한참 앞뒤 없이 살던 그 시절, 우리는 항상 갑자기, 항상 새벽에, 항상 밤을 꼬박 새웠을 때, 항상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을 때, 삼등 열차에 몸을 실었다. 스무 살 남짓한 시인이자 화가인 우리들은 어떻게든 발산시키고 폭발시켜야 할 객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
94. 저 위 산동네에서는 빈곤이 만발했다. 역청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덩달아 기쁨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동네였다. 해안을 뒤덮고 있는 기중기, 선창, 부두 노동은 덧없이 지나간 행복한 시절에 그려 놓은 마스카라 같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산동네오 올라오지도 않고 저 아래로 내려가 힘들 일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만의 무한한 세계, 자신만의 바다 한 조작을 상자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망각이 안개처럼 밀려오고 있는데도 자신들이 고유한 무기로 이 세계를 수호하고 있었다.
111. 열차는 마치 이국적인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처럼 농촌 아낙네와 선원 등 각양각생의 사람들을 싣고 달렸다.
112. 칠레라는 지구 변방 출신으로 돈은 없고 쓸데없는 호기심만 많은 삼등칸 여행객인 우리는 상하이의 밤거리로 빨려 들어갔다.
118. 어디를 가든 내 꿈은 식물처럼 사는 것이다. 한곳에 눌러 앉아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에……
123. 인도 전역에서 만난 이 젊은 시인들의 근심 어린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방금 감옥에서 나왔는데 어쩌면 다른 날 다시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엇다.
127. 시인은 민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은 내게 이런 경고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예가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제애가 있고 어둠 속에서 꽃피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교훈이었다.
131. 실제로 동양에 가 보면 흔히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가 서구인이 직면한 불안, 노이로제, 혼란, 기회주의의 부산물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발생한 부산물인 것이다. 그 무렵 인도 사람들은 단전호흡이나 하며 명상에 잠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명상 센터는 미국인과 라틴 아메리카인을 포함하여 대부분 서구 출신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싸구려 형이상학으로 포장한 이국적이 부적과 주물을 도매금으로 팔아 넘김으로써 값싼 시장을 착취했다. 이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다르마와 요가를 들먹였으며,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종교 수련에 열을 올렸다.
137. 어떻게든 이 메스꺼움을 이겨 내야만 했다. 아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편을 경험하고 그 맛을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없이 아편을 피워 댔고,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 속에 텅 비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편은 뜬소문처럼 이국 취향에 함몰된 사람들이 향유하는 천국이 아니었다.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아편굴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142. 이런 고독은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독이 아니라 감옥의 벽처럼 단단한 고독이었다. 아무리 벽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고함을 치고, 아무리 울어도 달려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152. 콜롬보에서 보낸 쓸쓸한 생활은 힘겨웠을 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까지 혼미하게 만들었다. 내가 살던 거리에는 친구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들이 내 야전 침대에 들렀으나 육체적 번갯불 이외는 아무런 사연도 남기지 않았다. 내 몸은 열대 해변에서 밤낮으로 타오르는 외로운 모닥불이었다. 친구 팻시가 여자들을 데리고 종종 찾아왔다. 보어인, 영국인, 드라지다 족의 거무튀티한 여자와 황금빛 여자들이었다.
244. 내가 열네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문학을 못 하게 막았다. 당신 아들이 시인이 되는 게 너무나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를 발표할 때 아버지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필명을 사용했다. 어떤 잡지에서 네루다라는 체코인의 이름을 보고 필명으로 사용한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그 사람이 체코인에게 존경 받는 위대한 작가로서 아름다운 발라드와 로망스를 창작하였으며, 프라하의 말라스트라나에 기념 동상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 뒤 체코 슬로바키아에 갔을 때, 구렛나룻을 기른 네루다 동상 앞에 꽃 한 송이를 바쳤다.
262.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런 상이란 나비 날개에 묻은 꽃가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제일 큰 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받기 어려운 그런 상이다.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266. 우리 시인들은 본래부터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연기를 내뿜는 불길이다. 이러한 불길로 나는 창작에 전념했다.
281. 그 오두막 벽에 “조국이여, 잘 있거라.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항상 너와 함께하리다”라고 썼다.
286. 문든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기자 양반, 이렇게 쓰세요. 나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다른 칠레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쓰고, 자유를 위해 싸우며, 이름 또한 파블로 네루다라고요."
290. 내 인생도 긴 순례였다. 항상 돌고 돌아 칠레 남부의 숲으로 무성한 밀림으로 되돌아왔다.
296. 주지하듯이, 생명은 계율보다 강인하다. 혁명은 생명이나, 계율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300.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명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싯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303.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몽둥이로 패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하라며 꽃다발을 건네준다.
313. 나는 꿈의 궁전에서 살듯이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았다. 싱가포르, 사마르칸드에 살 때는 지명의 발음을 음미하면서 살았다. 내 죽거들랑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어 주기 바란다. 지면을 말할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내 유골 위에서 되울렸으면.
325.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
341.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성당에 들어갈 수 있고, 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덕목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고갈되지 않도록 투쟁한다.
349. 이제 길거리는 중국인의 세련된 취향 덕분에 화려한 무지개로 변했다. 원래 중국인은 무엇이나 아름답게 만든다. 단순한 짚신 하나만 보더라도 마치 짚으로 만든 꽃송이 같다.
354p 스탈린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며, 우리들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도 땅도 하늘도 광대한 이 혁명 중국에서, 그것도 대낮에, 한 인간을 신화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혁명적 의식을 독점하게 만드는 신화, 즉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한 사람이 손 아귀에 맡겨 버리는 신화였다.
362. 맥을 보았을 때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예레반 동물원을 포함하여 극소수의 동물원만이 맥을 사육하고 있었다. 맥은 몸집은 황소 같고 코는 길고 눈은 조그마한 아마존 원산의 기이한 동물로, 솔직하게 말해서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므로 숨길 이유도 없다.
383. “저는 건달에 불과하지만 아까 나하고 싸운 사람을 코카인 밀수업자입니다. 우리들은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내게도 순수한 면은 있습니다. 그건 내 애인, 애인에 대한 사람입니다. 자, 보세요. 애인 사진입니다. 당신이 이 사진을 만져 봤다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너무 좋아할 거예요.” 건달은 웃고 있는 여자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나는 좋아하게 된 건 다 당신 때문입니다. 우리 당신 시를 함께 외웠거든요.”
그리고 곧바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처럼 생긴 슬픈 소년이 그대 안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를 바라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내 친구들이 단단히 무장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문 안을 들어오던 친구들은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방을 나왔다. 건달은 좀 전의 그 자세로 여전히 시를 외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핏속에서 불타오를 생명으로 우리 삶을 묶어야만 할 것이다.” 건달은 시에 패배한 것이다.
386.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 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임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387.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
388.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391.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
392.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준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
393.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 하나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함부로 비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은 후일 내 시에 공감하여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비뚤어진 사람은 점점 나를 두려워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시를 존중하게 되었다. 시뿐만 아니라 시인도 존경하게 되었다. 모든 시와 모든 시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395.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406. 나는 여전히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고통을 딛고 일어나, 피와 부서진 유리를 딛고 일어나 서로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410. 그는 지혜가 거주할 자리와 함께 슬픔이 거주할 자리도 항시 마련해 두고 있었다.
411. 엘뤼아르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이란 동방자가 필요해. 자질구레한 인생사까지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말이야.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 숨통을 조르는 것 같아.”
420. 나는 겨드랑이 밑에 이론을 끼고 다니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머리 위에 쏟아 부어 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 대개가 그렇듯이 월요일은 무엇이나 밝게 보이고, 화요일은 무엇이나 어둡게 보이는 사람이다. 올해는 명암이 엇갈리는 해다. 내년부터는 푸른색이 될 것이다.
435.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나에게는 리얼리즘이 맞지 않으며, 적어도 시를 논할 경우에는 리얼리즘을 혐오한다. 그리고 시가 리얼리즘 이상이거나 리얼리즘 이하일 필요도 없으나 반리얼리즘에 될 수는 있다. 내가 말하는 반리얼리즘이란 모든 합리성과 모든 비합리성, 다시 말해서 모든 시를 내포한다. / 창조의 영역을 이처럼 반반으로 나누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심장은 반 토막 나 버려 더 이상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436.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 내 시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종종 시와 더불어 나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경험하고 영광을 찬양했다.
441. 세월이 흘러간다. 사람은 소진되거나 꽃을 피우고, 고통을 당하거나 환호성을 올린다. 세월은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하고 새 생명을 보내 주기도 한다. 이병이 좀 더 잦아지고 친구들이 수감되었다가 출감하기도 하고 유럽을 다녀오기도 하며 그냥 죽기도 한다.
445. 우리 집에 있는 늙은 용설란은 자살하고 싶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458. 날이 저물 때라 웅장한 황혼이 나를 반겼다. 끊임없이 부는 바람이 구름을 헤집어 놓고 있었고, 강물처럼 흐르는 푸른 하늘이 대지와 하늘 사이에 걸린 커다란 구름 덩어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 하늘은 고운 비단과 금속을 석양을 만들고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노란색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순순한 공간에 떠 있는 거대한 새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갑자기 변해, 고래 입이 되었다가 사나운 표범이 되었다가 끝내는 추상화가 되었다.
474. 나는 우리 당, 칠레 공산당에서 소박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인적이 허영심이라든가 폭압적인 권력이라든가 물질적이 욕망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나는 이처럼 공공의 선, 즉, 정의를 위해 투장하는 의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 겸손에서 배울 점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회의주의에 안주하여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만심에서는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다.
478. 체는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전쟁, 전쟁……우리는 항상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데, 전쟁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전쟁 없이는 못살아. 날마다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지.”
혼잣말인데 나 들으라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 말에 경악했다. 전쟁은 위협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날 헤어진 이후로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뒤, 체는 볼리비아 산악 지대에서 전투를 벌였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체를 생각한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이면서도 무기 곁에 시집 놓을 자리를 마련해 둔 명상의 사나이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495.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사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496. 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501. 부의 흔적과 타락의 흔적이 동시에 묻어나는 양식이었다. 양탄자는 60년 전에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화려한 색깔은 발길에 짓뭉개지고, 의례적이고 활기 없는 대화가 스며든 탓인지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506. 조국 당에서 멀리 떨어져 살 때는 칠레의 겨울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눈앞에 안 보이기 때문에 겨울철의 고단한 삶, 방치된 시골 마음, 맨발로 추위를 견디는 어린애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초록색 시골 풍경, 노란색과 빨간색 꽃, 국가에 등장하는 푸른 하늘만 기억했다. 이번에는 먼 이국 땅에서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계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34.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 죽기 바로 전날 네루다를 찾아간 변호사 피게로아의 증언에 따르면, 네루나는 책 한 권 들 힘조차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서 오메로 아르세가 병실 한 구석에서 정서해 준 초고의 교정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535. 길거리에서, 정류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네루다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536. 그리고 엘뤼아르와 마찬가지로 네루다에게도 공산주의는 권력이 아니었다. “시와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인본주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537. 그렇지만 우리가 회고록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식적인 견해 보다는 저자의 숨결과 맥박이 스며든 견해를 알고 싶고, 또 그런 견해와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온몸으로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려고 했던 한 인간의 진정성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통로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책의 제목(부제?)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자서전으로서 네루다의 삶의 궤적과 시인으로서의 그의 운명적인 생애를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다.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네루다의 책 제목을 활용하여 되새겼다.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노래하고, 시간과 투쟁하자! ^*^
이 책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의 삶을 기술한 회고록이다. 이야기는 평온한 유년기로부터 시작해서, 보헤미안 생활을 하던 청년 시절과 동남아시아에서 보낸 영사 시절을 거쳐,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념적 갈등, 칠레의 1970년대 정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굽이쳐 가고 있다.
한국에도 민중시인이 있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박노해’다. 네루다의 시와 시인으로서 그의 삶을 보며, 박노해의 ‘시’와 ‘삶’이 연상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연상되고, 포개지고 겹쳐졌다. 삶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좋고 나쁜 것이 어디있을까? 보헤미안 같은 네루다의 자유로운 삶이, 박노해의 삶보다 행복하다고 무조건 단정지을 수만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인상 깊었던 것은, 두 시인의 문체의 차이였다. 박노해의 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위대한 존엄과 의미, 삶의 무거움을 깊게 통찰한다. 반면 네루다는 힘든 상황, 무거운 일상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툭툭치며, 가볍게 터치하는 신선함을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은 소위, 천재들의 엄청난 성과물에 놀라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네루다는 아름다운 문장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시인이다. 산만한 일상의 소개와 주변인들의 지루한 이야기마저 그의 강렬한 매력으로 감수된다. 글이 살아 움직이고 스스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구원 과정이 끝나면 가장 먼저 시간을 갖고 정독하고 싶은 책 리스트 3위안에 올릴 책으로 적어놓았다.
마음 속에서 네루다에 대한 부러움이 연기처럼 솔솔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귀여운 남자, 사랑스러운 남자, 유머와 문학이 환상적으로 결합된 남자..그의 시를 읽으니, 부족해도 시로 화답하고 싶다. 3년 전, 집 앞 지하철 역에서 써놓았던, 어설픈 시 한편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시인의 마음으로...
외로움과 자유로움
봄기운 가득 어린
녹양역 지하철 역 앞
자전거를 세우고
담배를 피운다.
새벽하늘
언뜻 보이는 초생달
그 무심한 달빛에
마음은 더 그립고
서로 다른 인생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지하철
트로트 벨소리에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을 느끼고
잘 자고 난 뒤의 기지개 처럼
오래 앓은 기침소리도 물러난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아침
외로움만큼
가슴 가득 피어오르는
자유로움
* 가장 감동적인 구절
- “리얼리스트가 죽은 시인은 죽은 시인,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
-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쪽에서는 몽둥이로 패고, 다른 쪽에서는 진정하라며 꽃다발을 건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