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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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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0일 12시 23분 등록

. 저자 소개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나머지 30년은 암묵 속에 가려진 60 평생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의 표현처럼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발레계에 불꽃 같은 10년의 족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육체를 가진 발레리노로서 완벽한 예술성을 구현한 그는 고전발레의 시대를 마감하고 현대발레를 창시한 시조로 발레 역사의 전설이 되었다. 그의 일생을  리처드 바클이 표현한 시대별로 분류하였다.

 

■ 탄생~성장기 10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 1889 3,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폴란드 출신의 발레 댄서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삼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탁월한 재능을 물려받은 니진스키는 부모의 순회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레를 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족사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가 갓난애였을 때 세살 터울 형 스타시크가 3층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스타시크는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정신병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동료 댄서와 바람이 나 가족을 떠나고 이로 인해 니진스키의 가족은 아사 직전까지 까는 경제적 궁핍을 겪게 된다. 니진스키는 일기에서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고 이 시절을 회고했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 불안의 영혼이 뿌리내리게 된 시기였다.

 

■ 배우는 10

니진스키는 9살이던 1898년 황실학교에 입학하여 발레의 세계에 입문한다. 그는 이미 12살 때 신동으로서 러시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8세가 되었던 1907년에는 졸업과 동시에 마린스키 극장에 솔리스트로서 입단하였다. 이듬해 바로 주역이 되고 마린스키 최고의 발레리노로 등극했다. 그는 이 시기 추락 사고공기총 사건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겪었다. 내출혈과 뇌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추락 사고는 훗날 그가 정신이상에 빠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공기총 사건은 학우들의 질투와 시샘이 만들어낸 넌센스로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그가 더욱 내면 속으로 침잠하는 계기가 되었다.

 

■ 춤추는 10

1907년 미하일 포킨이 안무한 <아르미드의 관>의 대성공은 니진스키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 두 명의 후원자-파벨 드리트리예비치 류보프 왕자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만나게 되었다. 류보프 왕자는 니진스키에게 결핍된 부성애를 채워준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성으로서는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낀 친구였다. 류보프는 니진스키의 예술적 장래를 고려하여 그를 발레 뤼스의 창시자 디아길레프에게 인도했다. 러시아 발레의 창세기이자 황금기를 연 디아길레프와의 후원에 힘입어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와 동거하는 5년 동안 발레리노이자 안무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 그리고 30

1913, 발레 뤼스의 일원으로 남미순회공연을 떠난 니진스키는 헝가리의 백작 딸인 로몰라에게 청혼을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마자마자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니진스키의 열혈팬이던 로몰라는 니진스키와 가까워지기 위해 발레를 시작하고, 발레 뤼스에 입단하여 니진스키와 남미순회공연을 동행하게 되었고 항해공포증으로 인해 남미공연 동참을 포기한 디아길레프의 부재를 틈 타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디아길레프로부터 호시탐탐 정신적인 독립을 꿈꾸던 니진스키에게 결혼은 독립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이로 인한 디아길레프와의 뿌리깊은 애증관계는 그의 발레 인생에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여기에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1917년 이후 무대에 설 기회를 잃게 된 니진스키는 정신질환으로 오랜 기간 요양하다가 1950년 런던의 사설 진료소에서 신장 질환으로 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역자 서문

당대 영국 문학계의 앵그리 영맨(Angry Youngman)’의 기수로 알려진 윌슨은 스물아홉 살 때 쓴 이 작품 속에서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반 고흐, T.E. 로렌스와 함께 실패 아웃사이더의 전형을 꼽았는데, 니진스키가 정신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자기 분석서라 할 《일기》를 쓴 것도 스물아홉 살 때였다. 5

 

사실 우리의 일생은 대상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할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만남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 또는 역사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와의 정신적 교감 속에서 더없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었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우리의 내면에 일대 지진을 일으켜놓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5~6

 

영역판 역자도 밝히고 있듯이, 니진스키는 (아주 드물지만) 이따금 모순된 문장이나 틀린 표현을 쓸 때가 있는데, 역자는 그걸 전혀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그의 《일기》는 정신의학도를 위한 텍스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온갖 환상과 기억들과 자유 연상의 숨막히는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에 불합리한 문장도 그 자체로서 의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구성면에서도 마치 하나의 물줄기처럼 끊임없이 지속되는 연속적인 서술을 읽기 좋게 적당한 단락을 지어 편집한 불역과는 달리 니진스키 자신의 서술 양식에 충실한 영역본을 따랐다. 8

 

역자 해설

니진스키의 비극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전설적인 명성의 절정에서 홀연 암묵의 신비속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일기》는 이 양 극단의 가파로운 경계선에서 필사적으로 기록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으로부터 단절되어 내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한 천재 예술가의 내면의 여로를 나침반도 없이 한없이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이상하게도 특이한 기록이다. 마치 천 길 벼랑 끝에서 무시무시한 암흑의 심연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과 공포를 감지케 하는 소리 없는 영혼의 절규와도 같은 것이다. 13

 

과도한 상상력과 극단적인 감각 과민이 특징인 예술적 천재들은 광증의 희생자가 된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네르발, 훨덜린, 슈만, 반 고흐, 니체 등등……. 그러나 이들 중 아무도 니진스키가 남긴 일기 같은 걸 기록하지는 않았다.(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집필을 했지만 니진스키처럼 발광하기 직전에 쓴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세계 예술사상 니진스키의 일기는 아마도 이 같은 유형의 유일무이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4

 

1919119부터 34일에 걸쳐 6주 반 동안 그가 사로잡혔던 내면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일기》인 것이다.

 니진스키의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은 니진스키의 생애를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그리고 나머지 30년은 암묵 속에 가려진 60 평생으로 요약했다. 15

 

《회고록》속의 젊은 니진스키는 흔히 예술적으로 디아길레프에 의해 주조된, 말이 없고 시무룩한, 둔한 젊은이로 묘사돼온 니진스키는 완전히 다른 초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니진스키는 보르니슬라바와 더불어 디아길레프를 만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예술적 목표와 방향을 모색해왔다는 것, 또한 예술성과 창조성은 테크닉에 희생당하면 안 된다는 니진스키의 신조가 일찍부터 형성됐다는 보르니슬라바의 신념은 《회고록》의 라이프 모티프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명된 니진스키의 초상은 확실히 여태까지 알려져 온 것과는 다른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1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란 낱말을 처음 발명한 블로일러 박사를 필두로 프로이트, ,  크레펠린을 포함한 세계의 탁월한 정신병의들이 니진스키를 진료했지만, 끝내 그는 정상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충고는 한결같았다. “정신의학자의 간호 아래 그에게 최상의 상태로 육신을 편하게 해주고 조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로 하여금 자신의 꿈에 잠겨 있도록 내버려두세요.”

 이 같은 충고가 최상의 치료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스도보다도 더 고통을 받았다.”고 자탄했을 만큼 자신에게 슬픔과 고통만을 주었던 이 세계와 사람들 속에서 그 자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2

 

내 어린 딸은 노래하고 있다. “, , , .”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러나 그 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낀다. 그 애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은-! !-공포가 아니고 기쁨이라는 것을. 22

 

그의 모든 동작은 자연스럽고 가벼우며 유니크했다. 어떤 댄서도 니진스키처럼 손을 사용하거나 머리를 기울이거나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의 동작은 그와 같이 조형적이고 그처럼 놀랄 만한 단순하며 설득력이 있었다. 도대체 인공적이라거나 긴장이나 속임수 따위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고유한 자연스럽고 특수한 동작언어로써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비록 말로써 번역할 수는 없어도,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23

 

많은 발레에서 니진스키의 파트너로 함께 춤추었던 카르사비나는 니진스키의 유명한 ‘’엘레바시옹(elevation, 날아오름)’에 대해 그것은 전혀 비현실적이고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는 자신의 비상한 묘기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24

 

니진스키의 공연을 거의 전부 목격한 피터 리븐 공은 그의 춤이 주는 이 같은 인상, 즉 올라갈 때보다 더 천천히 내려오고 원하는 만큼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은 일루전(illusion)’의 비밀은 니진스키의 도약이 갖는 비범한 조형적 특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한 아마도 그것은 니진스키의 의지력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솟구쳐올랐을 때 그는 자신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다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7

 

한번이라도 그의 춤을 목격한 사람에게 니진스키는 영원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는 완벽한 도구로 만든 결과 어떤 역을 춤추든 완전히 자기가 맡은 배역의 인물이 돼버리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그의 춤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28

 

역사상 위대한 무용가는 거의 예외 없이 무용가문 출신이었던 것이처럼 니진스키의 위대한 천재가 이룩한 업적도 그의 혈통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니진스키의 양친은 둘 다 폴란드 출신으로, 바르샤바의 유명한 비엘키 시어터 스쿨에서 무용수업을 했고 비옐키 극장의 댄서로 활약했다. 특히나 발롱(ballon, 도약하는 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에 비상한 재능이 있었던 부친 토마스는 후에 러시아의 세토프 오페라 엔터프라이즈의 제1 무용수 겸 발레 마스터로 활약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순전히 독력으로 무용가의 길을 택했으며 그의 가계는 극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니진스키의 조부와 증조부는 둘 다 정치적 활동, 즉 폴란드를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생애를 바쳤다. 28~29

 

바슬라프의 양친이 무용가로 활약한 19세기 중엽에 바르샤바의 발레는 특별히 융성기에 있었다. 비옐키 극장의 레퍼토리는 많은 점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의 것과 유사했다. 파리와 빈 및 밀라노에서 온 많은 안무가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들의 발레를 선보이기 전에 바르샤바의 무대에 먼저 올리곤 했다. 따라서 비옐키 극장의 유산은 쥘 페로와 생 레옹 같은 탁월한 안무가의 작품과 더불어 세계적인 댄서들의 기여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유산을 바탕으로 탁월한 교사와 안무가들에 의해 교육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사설극장이나 오페라 극장들이 많은 발레 마스터와 솔리스트 및 코르 드 발레(군무)를 바르샤바의 비옐키 극장에서 훈련받은 예술가들로 충당했음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바슬라프의 양친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러시아로 오게 됐으며 결국 러시아가 제2의 조국이 되고 말았다. 32

 

한 사람의 육체가 역사적 선례와 흠 없는 기교, 그리고 그처럼 특이하면서도 보편적인 수법으로 현현되는 완벽한 예술성의 누적을 제시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니진스키는 단연 이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는 것이 무용사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더욱이나 그가 완벽하지 못한 육체적 수단을 가지고 완벽의 극치에 도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그이 허벅지와 다리의 근육은 비상하게 발달했지만 162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키와 짧고 굵은 다리는 이상적인 고전 발레리노의 조건으로선 핸디캡임에 틀림없었다. 33

 

러시아의 황실극장엔 항상 우수한 남성 댄서들이 끊이지 않았다. 남성 댄서가 발레리나들의 시녀라는 위치에까지 전락한 19세기 낭만주의 황금기에도 덴마크와 러시아에서만은 우수한 남성 댄서들이 계속 배출되었다. 35

 

남성 댄스를 위한 안무의 의미는 니진스키로 인해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남성을 위한 안무의 역할을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이전엔 남성 댄서의 역할은 보조적인 것으로, 그는 프리마 발레리나를 뒷받침하는 지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남성 댄서를 위한 파 쇨(pas seul, 독무)’이 있긴 했으나 대체로 짧은 것이었고, 아무도 거기에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단순히 발레리나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극적인 재능과 흉내내기(mimicry) 및 성격춤은 남성의 춤에서 한층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남성 댄서가 고전 발레에서 주도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니진스키 이후부터였다. 그는 남성 댄서를 발레리나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발레 예술에서 남성과 여성의 요소를 대등하게 만들어놓았다. 35

 

디아길레프에겐 댄서로서의 니진스키의 희유한 천재와 압도적인 성공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자기의 도움과 또 자신이 니진스키 주위에 구축한 예술적 환경이 있다면 당연히 니진스키는 독립된 창조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36

 

링컨 커스틴 같은 발레사가는 1935년에 이미 니진스키의 안무적 자질을 높이 평가했거니와, 1975년에 이 같은 그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킨 니진스키 연구서 속에서 그는 《목신의 오후》와 《유희》,

《봄의 제전》 및 《틸 오일렌슈피겔》 같은 발레에서 니진스키가 확립한 안무의 새로운 스타일은 대담한 창조적 모험으로서 오히려 니진스키의 안무적 천재는 댄서로서의 위대성을 능가한다고까지 공언했다. 37

 

고전 발레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던 당대인들의 시각에선 확실히 《판》은 발레가 아니었다.’ 사실 니진스키는 이 발레의 창조에 의해 그의 시댕의 모든 발레 전통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사지를 바깥으로 구부리는 고전적 스타일과 곡선 모양의 팔의 자세(port de bras)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화병이나 장식띠에 새겨진 인물의 조형미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날카롭고 모난 자세로 대체되었다. 느리고, 고도로 양식화된 액션은 많은 포즈와 억제된 액션의 순간과 짝지어진 것이었다. 커스틴에 의하면 《판》에서 니진스키는 암시적인 육체의 은유(metaphor)를 대신하는 기분의 어떤 문학적인 암시나 설화적인 의도도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는 따로따로 볼 땐 의미가 없으나 함께 두고 볼 땐 대단히 강력하고 간결하며 놀랄 만큼 알기 쉬운 일련의 움직임을 합성해놓았던 것이다. 41

 

니진스키의 제스처는 이미 친숙해진 이디엄의 확장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색채와 규모로 된 방향을 지닌 제스처의 새로운 사용이었다. 42

 

니진스키는 포킨이 바로 그걸 위해 투쟁했고 그 투쟁에 의해 중요한 진보를 달성했던 자연주의를 무시하고 초월했다. 그는 제스처의 초현실적인 의미를 추구했고 발견했던 것이다. 42

 

《판》은 음악 작품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공연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리허설되고 공연된 최초의 발레였다. 10분밖에 안 되는 짧은 발레가 무려 90회 이상의 리허설을 가졌다. 니진스키는 자신이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테크닉으로써 진정한 안무적 천재임을 과시했지만, 댄서들은 이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는 데 호된 시련을 겪었던 셈이다. 니진스키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스코어의 한 음 한 음을 경청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안무의 세부까지를 철두철미 지휘했던 것이다. 44

 

춤추는 니진스키를 논할 때 그의 타고난 무류의 음악적 본능은 자주 지적돼왔지만 이제 《판》의 안무에 의해 니진스키의 타고난 음악성은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음악적 관념에 따라, 음악의 표현적 흐름에 맞추어 안무가 구축된 최초의 발레였기 때문이다. ”

 니진스키의 몇 안 되는 발레를 통해서 볼 때 그에겐 최고의 음악성뿐 아니라 탁월한 구도 감각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는 “4차원의 세계- 새롭고 독단적인 박자 처리에 의한 음악적 템포에 입각한-와 연결된 3차원이 영역에서 작업했다.” 《판》이나 《유희》 및 《제전》에서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댄서들의 대조적 의상은 후기인상주의라는 일반화된 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44

 

앙리 뒤 마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트라빈스키가 한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니진스키의 안무는 음악에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받았다는 그의 암시에 대해 작곡가는 아주 강렬하게 반박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니진스키는 전()발레예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탁월한 예술가입니다. 한순간도 우리는 이와 달리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가 이룩하게 될 일을 후에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놀라운 댄서일 뿐 아니라 창조와 혁신에도 능한 예술가이지요. 《봄의 제전》의 공동작업에서 그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어요.” 47

 

그는 자신의 이념을 교수할 학교를 창설해서 이 학교에다 작곡가와 발레 교사 및 예술가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그들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일종의 예술적 실험소를 부설하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50

 

그가 궁극적으로 가정을 꾸미고 이 모든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한 곳은 바로 러시아였다. 또 서구의 사상과 자주 접촉할 수 있도록 파리에도 우거(寓居)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50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럴 소인(素因)이 선천적이라는 거야. 천재와 정신이상은 서로 근친이지. 정상과 비정상은 두 국가 사이에서처럼 국경이란 게 없어요.” 52

 

블로일러는 이 댄서가 강한 배우적 본능과 공격적인 성깔의 발작 및 굉장한 육체적 힘을 지녔다는 것을 알아봤다. 이와 같은 사람을 병원에서 관할하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분란을 초래할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고 그들을 학대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다. 53

 

바슬라프가 아직 갓난애였을 때 두 살 반 된 형 스타시크가 모스크바의 3층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그는 후에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끝내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56

 

바슬라프는 몹시 섬세하고 민감한 아이였으며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는데.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 빠져 어머니에게 소홀해진 것을 알고부터 이 같은 애착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56

 

이렇게 해서 바슬라프의 부친에 대한 감정은 이율배반적인 상태로 고착되어 그의 정서의 일부를 형성하게 된다. 57

 

니진스키의 학교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친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도 확연히 드러나는 그이 천재성은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최초의 경탄은 어느덧 시샘과 적의로까지 변해갔던 것이다.  그가 희생양이 된 1903(14)공기총 사건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으며, 그보다 2년 전에 있었던 추락 사고는 이 같은 경향이 정점에 이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때 그는 닷새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이 사고로 인한 내출혈과 뇌 손상이 훗날 니진스키의 정신이상에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60~61

 

“”내가 그들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자기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의 교감을 단념하게 된다. 61

 

예술가로서의 니진스키가 남긴 인생이 너무나 잊을 수 없고 위대한 것과 반비례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가 남긴 인상은 미미하고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대조를 나는 정녕코 본 적이 없다. 니진스키는 존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nonentity)이었다. 절대로 완전히 부재였다. 어떤  사회 내에서도 5분만 지나면 그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 그의 침묵은 그저 말하지 않는 사람의 평범한 침묵과는 달랐다. 그는 뭔가 이상했다. 그가 지적인지 어리석은지를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이 몇 가지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계급에 속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피터 리븐 공의 기술) 62

 

우리는 니진스키의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감정이란 낱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에서 볼 때 그가 말하고 있는 감정은 본능, 다시 말해 무의식의 심적 충동을 의미한다. ‘생각에 대응하는 느낌’, ‘논리에 대응하는 직관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이나 논리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느낌과 직관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64

 

프렝켈은 니진스키와 로몰라 사이에 존재하는 교육, 지성 및 교육상의 너무나 뚜렷한 차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로몰라는 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의 헝가리 가문 출신이며, 남편을 사납고 격렬한 성미의 발작을 보이는 러시아의 농부 타입이라 생각한다라고도 썼다. 프렝켈은 로몰라가 니진스키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자기처럼 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그에게 오랫동안 자신을 적응시켜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64~65

 

필경 세르게이의 자살은 니진스키의 의식 속에 무서운 충격으로 고착되어 훗날 그가 정서적 혼란을 겪게 됐을 때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69

 

성년의 문턱에서, 그리고 성인이 된 삶에서 니진스키는 그에게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세명의 인물과 차례로 조우하게 되는데, 즉 파벨 드미트리예비치 류보프 왕자와 세르게이 피블로비치 디아길레프 그리고 로몰라 드 풀츠키가 바로 그들이다. 69

 

사실 당시 러시아의 극장가에선 부유한 발레토마니아(Balletomania)들이 마린스키의 젊은 예술가들 가운데서 남녀를 불문하고 연인들을 구해서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해주고 더러는 함께 살기도 하는 것이 예삿일로 돼 있었다. 게다가 남자들 사이의 연애사건이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선 극히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졌으며 동성애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었다.(파리와 런던에선 그러지 못했다). 71

 

춤을 추고 있을 때면 언제나 니진스키는 류보프를 동반해 극장이나 또는 다른 사교적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남자가 소년을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했다…….그는 내게 사랑의 시를 써보냈다.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 나는 그걸 결코 읽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기에 언제나 그와 함께 살고 싶었다.라고 그는 훗날 《일기》에서 고백했다. 71

 

사실 류보프와의 관계는 니진스키에게는 최상류층 사회에 진입해서 자신의 가족과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그가 남자로서 성숙해질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훨씬 덜 수줍음을 탔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외양도 놀랄 만큼 세련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그의 춤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는데, 다시 말해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배역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코스튬이나 움직임 등에서 오리지널과는 다르게 자기식으로 변화를 가했던 것이다. 72

 

니진스키의 예술적 발전이란 측면에서 류보프와 페테르부르크 귀족사회가 그에게 미친 최고로 중요한 영향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란 인물에게로 그를 인도해준 것이었다. 유럽 예술의 특수한 시기를 창조한 이 비범한 인물은 러시아의 회화와 음악 및 무용을 20세기의 서구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등으로 동요하는 20세기의 휘몰아치는 흥분의 수년간을 통해 가장 높은 예술적 재능으로 빛나는 인재들을 서방에다 계속 공급했던 것이다. 그가 창시한 러시아 발레의 첫 파리 시즌은 서구에서 러시아 발레의 창세기를 열어준 세계 예술사상 영원히 기념될 폭발적인 대사건이었으며, 이것은 곧 현대 발레의 창세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디아길레프프를 분수령으로 하여 현대 발레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72

 

디아길레프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여성과의 성적 관계에 대해선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항구적 반려를 동성속에서 찾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의 삶의 비극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끌린 대상은 거의 언제나 동성애 성향이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성숙 단계에 있는 가장 남성적인 젊은이였던 이들은 남성으로서 충분히 성숙되자마자 맨 처음 매혹당한 여성을 위해 디아길레프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유혹자나 엽색가가 아니었다. 버리는 쪽은 항상 그가 아니고 상대방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끊임없는 행복과 실망의 연속이었으며, 슬픔과 놀람과 배신감을 보상처럼 남겨 주었던 것이다. 74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디아길레프는 삶의 절정기에 있었고 니진스키는 인생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76

 

두 사람은 5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애초부터 디아길레프에 대한 니진스키의 감정에는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이 처음엔 무의식의 밑바닥에 잠재돼 있었으므로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가 그가 인간과 예술가로서 성숙해짐에 따라 애초의 기대와 찬탄은 불신과 환멸로 바뀌어갔을 것이다. 선도자인 디아길레프는 마치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유연한 재료인 니진스키를 이상에 맞게 교육하고 그에게 삶의 지평선을 넓혀주었으며, 세계의 각광을 받으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도록 그를 도왔다. 그러나 이 제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스스로 독자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는 그걸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니진스키는 그의 의도대로 형성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디아길레프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두 사람의 불화는 바로 여기서 싹텄다. 다시 말해 니진스키의 독립과 자기 주장은 바로 디아길레프와의 파국이 시작되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명백히 표면화된 것은 니진스키가 그의 최초의 발레 《목신의 오후》에 의해 안무가로서의 자신을 굳건히 구축했을 때부터였다. 77

 

니진스키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며 영혼이었다. 그러나 극장이 없었으므로, 니진스키는 자기 속에 깊이 물러가 자신의 고유한 무용의 내면세계에서 살기 위해 삶의 현실로부터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93

 

영역자 서문

생각지성이성과 혼동하면 안 된다. 니진스키는 이성을 논리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서 발산되는 능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97

 

또 다른 니진스키적 개념은 메마름(dryness)’에 대한 것이다. 그는 메마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느끼는능력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게다가 또 다른 별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습관이란 낱말을 사용한 그의 의도이다.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적으로 획득한(그리고 반드시 나쁜) 행동 양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습관이 없는 것은 온갖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니진스키는 좋은(good)’ 혹은 나쁜(bad)’ 존재로서의 어떤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일은 아주 드물지만 거의 언제나 좋은 것(a good thing)’ 혹은 나쁜 것(a bad thing)’의 존재로 표현한다(‘끔찍한 일〔a terrible thing이란 표현을 그리 특별히 선호한다) 98

 

1부.    

관객들은 즐기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춤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춤을 추었다. 그들은 나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그래서 내가 자기들을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다. 108

 

나는 기분이 좋다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반대로 느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신경과민이었기 때문에. 112

 

오늘은 오랫동안 쓰고 싶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으니까. 나는 빨리 쓰진 못하지만 내 손은 빨리 쓴다. 지금은 한결 더 잘 쓰고 있다. 그리 자주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육필은 깨끗하다. 나는 쉽게 읽을 수 있게 쓴다. 113

 

나는 흥청거림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나는 유쾌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흥겨움은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흥청거림은 마음의 죽음인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하고 그래서 삶을 사랑한다. 116

 

다윈은 박식한 사람이다. 아내는 내게 그가 프랑스어로 된 《자연의 역사》라는 학술서를 저술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다윈의 자연은 인공적이다. 그는 자연을 좋아한다. 나는 자연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나는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은 나를 느낀다. 자연은 신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인공적인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자연은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나의 자연은 숭고하다. 나 역시 자연을 공부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감정에 일치하는 자연을 공부했다. 나의 느낌들은 광범위에 걸쳐 있다. 따라서 나는 자연을 공부하지 않고도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자연은 삶이다. 삶은 자연이고, 원숭이는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이다.원숭이는 인간의 자연이 아니다. 나는 인간원숭이가 아니다. 원숭이는 운동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 속의 신이다. 나는 운동을 느낀다. 나의 움직임들은 단순하다. 원숭이의 움직임은 복잡하다. 원숭이는 어리석다. 나는 어리석다. 하지만 나는 이성을 지녔다. 나는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원숭이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숭이가 내무에서 내려왔고 인간은 신의 자손이라 생각한다. 신은 원숭이가 아니다. 인간은 신이다. 인간은 두 팔을 지녔고 원숭이 역시 그렇다. 생체조직상으로는 인간이 원숭이를 닮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그들은 자기들이 헝가리어로 말하고 있는 걸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128~129

 

연필들은 부러진다는 걸 안다. 그러니 나는 만년필로 쓰겠다. 톨스토이와 또 최근 많은 사업가들이 사용한 펜 말이다. 나는 내가 쓴 어떤 것도 고치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의 습관을 바꾸겠다. 130

 

사람들은 필경 니진스키는 자신의 가공할 행위들을 실현하기 위해 미친 척한다고 말할 것이다. 134

 

내가 그녀에게 사람들은 그들이 느끼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한다. 고로 그녀는 느낌이 없다. 나는 그녀가 나를 버리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러므로 만약에 신이 원한다면 나는 그녀에게 용서를 청하겠다. 신은 내가 용서를 구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는 아내가 고기를 먹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육식이 나쁘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재빨리 먹는다. 144

 

나는 붓다이다. 나는 불교도이며 온갖 종류의 신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안다. 나는 일체의 것에 정통해 있다. 나는 나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 미친 체한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내가 무해한 광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안다. 내가 사람들을 해칠 광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는 싫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광인이다. 나의 광증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154

 

나는 반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의 반대편이기 대문이다. 그리스도는 신이다. 반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다. 나는 반그리스도를 사랑한다. 그는 신이 아니니까. 그는 지나간 경험의 폐기물이다. 지난 경험의 폐기물은 박물관들과 역사이다. 나는 역사와 박물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묘지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163

 

나는 5년 동안 쉬지 않고 디아길레프와 함께 일했다. 나는 그의 모든 속임수와 버릇들을 알고 있다. 나는 디아길레프였다. 나는 그의 모든 속임수와 버릇들을 알고 있다. 나는 디아길레프였다. 나는 디아길레프였다. 나는 디아길레프 자신이 그를 아는 것보다 한층 더 잘 그를 안다. 나는 그의 약한 면과 강한 면 모두를 알고 있다. 170

 

나는 톨스토이의 나무이다. 나는 톨스토이의 뿌리이다. 톨스토이는 나의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고, 톨스토이는 나의 같은 시대에 살았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톨스토이는 위인인데 나는 위인을 두려워했다. 173

 

나는 결혼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인생을 알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과오를 범하지만, 그들은 생활을 가지고 있다. 175

 

나는 셰익스피어를 극장에 바친 그의 사랑 때문에 좋아한다. 셰익스피어는 극장을 하나의 발명으로 이해했다. 나는 삶 속에서 극장을 이해한다. 나는 발명품이 아니다. 나는 삶이다. 극장은 삶이다. 나는 극장이다. 나는 극장의 습관들을 안다. 극장은 하나의 습관이고 삶은 비습관(non-habit)이다. 내게는 습관이 없다. 나는 정방형 무대의 극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원형극장을 좋아한다. 나는 원형극장을 세우겠다. 나는 눈이 무엇인지를 안다. 눈은 극장이다. 두뇌는 관객이고, 나는 두뇌 속의 눈이다. 186

 

나는 사람들이 니진스키는 그리스도인 척한다고 말할 것임을 안다. 나는 체하는 게 아니다. 그의 행위들을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

 

나는 다량의 정자를 갖고 있고 다른 아이를 위해 그걸 보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내아이를 선물로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9

 

그녀는 육식을 하니까 신경과민이 된다. 오늘 나는 육고기를 먹었는데 그건 신이 원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육고기를 먹었는데 그건 신이 원했기 때문이다. 신은 중요한 것은 육고기가 아니라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아내는 올바른 삶이 좋은 것이라는 걸 알지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알지 못한다. 올바른 삶이란 신에게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신에게 복종해야 되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를 알며, 그래서 그의 소원을 아는 것이다. 189

 

나는 이 책을 감정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이 책을 감정이라 부르겠다. 나는 감정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쓰겠다. 나는 감정에 관한 방대한 저서를 원한다. 그건 그대의 전생애를 포괄할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대의 사후에 책을 출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걸 지금 출판하고 싶다. 나는 그대가 그대 자신을 염려하기 때문에 그대가 염려된다. 198

 

사람들이 그대를 심판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그대가 말하는 모든 것은 신에 의해 말해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정신병원에 보내질 것이다. 그대는 정신병원에 갇힐 것이고 미치광이들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대가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198

 

나는 더 이상 아내를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 노트들을 프렝켈 박사가 검토할 수 있도록 그에게 주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203

 

나는 진실을 쓰겠다. 나는 졸라이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다. 소설은 감정의 이해를 방해한다. 로몰라가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소설 속에서 찾는 것은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진실이다. 졸라는 소설 속에서 진실을 위장했다. 나는 위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장은 위선적인 원칙이다. 나는 하나의 원칙이다. 나는 진실이다. 나는 야심이다. 나는 만인에 대한 사랑이다. 213

 

나는 운문으로썬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시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원할 때엔 나는 운문으로 쓰겠다. 나는 미처 준비 안 된 시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시를 미리 준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느끼지 않은 시를 쓰기를 중단했다. 218

 

나는 모든 사람이 니진스키는 미쳤다고,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보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모든 걸 본다. 나는 모든 걸 안다. 242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녀가 돌연 내가 쓰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염려한다. 그녀는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자기와 아이가 고아로 남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나의 처이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로무슈카(로몰라의 애칭)의 어머니는 끔찍한 애인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나를 내동댕이칠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245

 

나는 남풍은 눈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48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작곡가이지만 인생에 대해 쓰진 않는다. 그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소재들을 창안했다. 나는 목적 없는 소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자주 그에게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려고 애썼지만, 그는 나를 한갓 어리석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디아길레프와 얘기를 했는데,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모든 계획들을 인정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애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는 긴 코를 가진 아이였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252

 

프렝켈 박사는 키라에게 어떤 나쁜 일도 하면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아이는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가 하는 일들을 잊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61

 

나는 행복을 바라진 않지만, 이 행복을 통해 다른 종류의 행복을 줄 것이라 느낀다. 263

 

로이드 조지의 육필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가 대문자로 쓴다는 걸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이해되지 못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268

 

나는 예술에 대한 그의 취향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 한 가지 일을 말하면 그는 내게 다른 것을 말했다. 나는 자주 그와 다투었다. 나는 곧잘 내 방문을 잠그곤 했다. 우리들 방은 서로 터놓고 지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모든  실제적인 생활이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 알았으므로 그가 두려웠다. 나는 결코 방을 떠나지 않았다. 디아길레프 역시 혼자 남아 있었다. 276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등골이 오싹할 것이지만 나는 내가 살아 있을 동안 이것들을 출판하고 싶다. 이것이 불러일으킬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278

 

디아길레프는 논리와 감정을 다 지녔지만, 감정은 무언가 다른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나쁜 감정을 지녔고 나는 좋은 감정을 지녔다. 디아길레프는 누구보다도 더 큰 머리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머리 속에 나쁜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에 나쁜 감정을 지닌 것이다. 롬브로조는 나쁜 감정이란 머리의 모양에 의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쁜 감정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인지된다고 나는 말하겠다. 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이해는 잘한다. 나는 좋은 감정을 지녔기 때문에 잘 이해한단 말이다. 285

 

어머니는 나를 집에 데려와선 문지기(dvornik)가 가져온 가느다란 자작나무 가지로 나를 매질했다. 나는 매질이 두렵진 않았으나 어머니가 두려웠다. 어머니는 상처가 날 정도로 심하게 때렸지만 나는 어머니의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에 나를 때렸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을 않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를 느꼈고 나를 믿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신뢰한다는 걸 느꼈고 공불를 잘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좋은 점수를 받기 시작했다. 302

 

고기는 끔찍한 것이다. 고기를 먹는 아이들은 자위행위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소년 소녀들이 수음에 빠져든다는 걸 안단 말이다. 327

 

증기선 아봉 호 선상에서 나는 아내를 소개받았다. 나의 결혼에 대해 나는 이미 약간은 설명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결혼했다는 걸 말해야겠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나는 장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342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애는 나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애는  술고래를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347

 

나는 무얼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신은 나의 집필을 원한다. 이 집필의 중요성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곧 파리로 가겠다. 거기서 나는 온 세상이 떠들게 될 감명을 불러일으키리라. 나는 사람들이 나를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은 단순한 사람이다. 그리스도도 내가 평생에 걸쳐 받은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살고 싶다. 348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내 영혼은 병들었다. 나의 병은 영혼의 병이지 마음의 병이 아니다. 내가 다시 좋아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나는 알고 있다. 내 병은 쉬이 치유되기엔 너무나 위중하다. 나는 불치이다. 내 영혼은 앓고 있다. 나는 가련하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비참하다. 이 구절을 읽으면 누구나 고통스러워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느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348

 

2부 죽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사상가가 되고 싶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아니다. 나는 니진스키이다. 나는 그대들, 인간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신이라는 것을. 나는 그분이 사랑받지 못할 땐 죽는 신이다. 나는 신이 가엾기 때문에 나 자신이 가엾다. 신은 나를 사랑한다. 그러니 내게 죽음 속에서 생명을 주리라. 나는 죽임이다. 나는 죽음을 사랑하는 그이다. 355

 

죽음은 빛이 소멸된 삶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우리는 빛을 잃은 생명이라고 부른다. 358

 

인간은 오직 혼자일때만 느낌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358

 

만약에 내가 설명을 한다면 그녀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생각은 죽음인 것이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사는 것이다. 358

 

나는 계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계산을 두뇌를 지치게 한다. 계산은 죽음이다. 358

 

한 사람이 그가 경험한 일들에 대해 쓸 때 나는 그걸 생생한 인상이라 부른다. 359

 

디아길레프는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나는 젊었고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지만 더 이상 이 같은 일들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362

 

나는 아내에게 아이를 갖게 하기 위해 그녀와 성교하고 싶은 것이지 욕정 때문이 아니다. 나는 정욕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정욕 같은 감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신이 그걸 바랄 것이기 때문에 정욕을 느낄 것이다. 363

 

아내는 나에 대해 정욕의 감정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나는 정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정욕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363

 

발레에서 1년이란 여덟 달을 말한다. 댄스 시즌이 여덟 달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375

 

나는 대지는 부패물이라는 걸 깨닫는다. 부패는 좋은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부패 없이는 빵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부패물은 대지를 뒤덮고 있으며, 이런 식으로 지구의 열기를 파괴한다는 것도,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식이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란 천성적으로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생명을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진 것이다. 390

 

사람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더욱 많이 가질수록 한층 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적게 소유할수록 근심할 일이 한층 적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392~393

 

사람들은 내게 신경과민이 성격의 약한 측면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신경과민은 성격의 약한 면이 아니라 과민한 습관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396

 

나는 하루하루 살아갔다. 나는 춤을 연습했다. 나는 근육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나의 근육은 탄탄하게 되었지만 내 춤은 나빴다. 이것은 내 춤의 죽임이라고 느꼈으므로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다. 398~399

 

나는 죽음에 대해 쓰고 싶다.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좋하한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 게 뭐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410

 

나는 사람들이 영적인 죽음을 좋아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들이 신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자연 속의 신이다. 나는 신의 심장이다. 나는 심장 속의 유리이다. 나는 유리 심장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410

 

나는 죽음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기심과 짐승 같은 행동들을 문화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419

 

나는 비평가들이 조금밖에 일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술을 창작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해 쓰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위해 그의 전 삶을 희생한다. 비평가는 예술가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매도한다. 비평가는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지. 비평가는 이기적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의 의견에 대해 쓰기 때문이고 대중의 의견에 대해 쓰지 않으니까 말이다. 갈채는 평가가 아니다. 갈채는 예술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443

 

나는 춤출 땐 수음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내 춤의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447

 

나는 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저들의 결점을 고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결함이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개선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468

 

나는 니진스키의 육신을 유지하는 인간 속의 영이다. 476

 

편지

편지1 장 드 레츠케에게

저는 러시아를 사랑하지만 볼셰비키들은 싫습니다. 저는 그들의 승리를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볼셰비키의 승리는 무신론자의 승리라고 봐야지요. 신 없는 동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야수입니다. 488~489

 

편지4 드미트리 코스트로프스키에게

육신은 죽지만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네. 정신은 신이지. 육신이 산다면 신은 사는 걸세. 나는 신이야. 나는 육신 안에 깃들인 정신이네. 500

 

편지8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나는 시체가 아닙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표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의 적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적은 신이 아니니까요. 신은 적이 아니고요. 적들은 죽음을 추구합니다. 나는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은 악의를 지녔고요. 나는 포식동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포식동물입니다. 포식동물들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511

 

당신은 지성은 지녔으나 감정이 없는 인간입니다. 512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니진스키가 1919년 1월19부터 34일까지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자서전이다. 그러나 백 페이지에 가까운 역자 서문, 역자 해설, 영역자 서문이 없었다면 삶과 죽음, 편지로 구성된 그의 자서전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역자의 해설이 자서전의 5분의1을 차지하는 기현상은 니진스키의 일기가 그만큼 난해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신질환의 초기 증세인지는 몰라도 그의 일기는 일반적인 논리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A B이다. B C이다. 고로 A C이다라는 삼단논법은 그의 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A B이고 B C이고 C D이다식의 열린 전개나 ‘A B이다. A B가 아니다는 자기 모순적 문장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신과 이성, 육식, 사랑, 논리와 감정, 만년필과 잉크 등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그의 일기에서는 왜 그리 낯설게 다가오는지.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Merde!(제기랄)란 말이 치밀어 올랐다.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느 정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감잡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발레리노이자 안무가로서 니진스키와 내면의 생각들 사이에는 상호연관성이 떨어지는 chasm이 느껴졌다. 니진스키 자신이 서술해야 할 그의 예술세계는 해설자의 몫이 되었고, 무대에서 퇴장한 후 고통스럽게 보낸 소소한 일상이 부록처럼 니진스키의 몫이 되었다. 니진스키에 대해 충분한 사전조사를 했거나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그의 일기를 텍스트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서전으로서 이 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원전의 난해성으로 인해 역자의 해설에 의존해야 하는 자서전이 독자에게 주는 효용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차례 구성을 1 <> 2 <죽음>, 그리고 <편지>로 간략하게 구분한 이유는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그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으리라.

 

차라리 책의 형식을 자서전보다는 인터뷰 방식으로 꾸몄으면 좋았을 것 같다.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피력하지 못하는 자서전은 매력이 떨어진다. 그럴 바에는 니진스키 발레의 주요 쟁점들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다뤘으면 주인공과 독자가 직접 만나는 효과가 배가됐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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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21 09:52:01 *.30.254.28
저자에 대해,
성장하고, 배우고, 춤추는 시기별 구분이 인상적이야..
그래, 인터뷰 방식도 좋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는 지금, 성장의 시기인가? 배우는 시기인가?
우리는 언제 춤추러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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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6.22 14:57:35 *.128.159.233
크루즈에서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ㅎㅎ

여성 동지들이 이태리 남자들과 놀아날 때
우리는 누구랑 놀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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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5:14:25 *.145.204.123
응... 정말 우성 말대로
저자 정리를 리처드 버클 식으로 한 것 훌륭한 발상이었고,,, 
인터뷰 방식으로 편집하고 싶다는 생각도 참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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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6.22 15:01:30 *.128.159.233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꾹꾹 참고
좀더 깊이 들어갈 걸 그랬습니다.
동기들 리뷰를 보니 그런 마음이 드네요~~

그나 저나 경숙 누님은 크루즈에서 누구랑 춤추실 계획이신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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