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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12시 37분 등록

두 번째 읽기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 카를 구스타프 융

1. ‘저자에 대하여’

<두 번째 읽기에서>

*융의 상징적인 삶에 대한 해석*

삶에 대한 융의 모든 접근방식은 꿈에 드러난 상징적 언어가 이도하는 상징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집중되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인ㄴ도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자기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는 오직 상징화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인 융의 견해다. 이것이 융이 분석심리학이라고 부른 그의 연구의 핵심이다.

융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종교와 의례의 영향이 줄어든 결과 일상생활이 빈곤해짐을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삶이 없으며, 우리는 모두 상징적인 삶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오직 상징적인 삶만이......매일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모든 것은 진부하다......그것이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리는 이유다.’(Jumg,1977)

상징에 대한 융의 정의는 ‘현존하거나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에 대한 최선의 기술이나 공식화’다(Jung,1971). 상징은 삶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성기를 지나면 사라진다. 상징의 기능은 심리학적인 중세와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하는 데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징은 개인의 인격에 무엇인가를 보태 줄 수 있고, 개인의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 다른 관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융은 상징주의의 일시적인 양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기술한다. “우리는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상징주의를 되돌릴 수 없다.”(Jung,1977) 이 절에서 그는 카톨릭 교회의 미사의 상징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카톨릭 교도들은 미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비로운 성모의 옷자락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고 말한다. 종교적인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은 외롭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신경증에 빠진다. 융은 평생 동안 도그마의 상징주의를 다시 소개하려고 노력한 개신교도였다.

상징의 형성은 의식적이며 지각된 문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며, 그 기원은 의식 영역 너머에 있는 원형적인 세계에 있다. 원형의 세계는 정신의 선천적이고 비개인적인 부분인데, 융은 이를 가리켜 집단적 무의식이라고도 하였다. 무의식의 원형적인 언어는 그 자체가 심상이나 환상 그리고 상징으로 표현되며 자아의식, 즉 정신의 알랴진 부분과 별개로 존재한다. 이 두 영역은 융이 초월적 기능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의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나중에 융은 이를 개인이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기 self라는 단어와 구별하기 위해 대문자 S로 쓰는 자기 Self의 신성한 측면으로 표기하였다.

융의 접근방식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은 서로 보상적이며, 한 영역에 있는 내용이 다른 영역으로 이행 가능하도록하는 것이 초월 기능이다. 개인의 정신적인 건강을 이끌어 가는 것은 바로 이 정신의 자기조절 기능이다. 융에 따르면 비판적인 주의와 방향성을 띤 의지로 인해 문명화된 인류에게서 제거되어 버린 것도 바로 이 자기조절 기능이다.

초월 기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융은 꿈 재료들이 이러한 목적에 충분한 에너지를 지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무의식적인 실수들 역시 너무나 단편적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 대신에 환상이 필요한데, 이는 가능한 한 개인이 의식적인 상태에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환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융은 의식의 중심에 존재하는 자아의 기능 또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자아는 주도권을 가져야 하며, 무의식적인 내용물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아야 한다. 초월 기능의 활성화에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내면의 대화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극의 초월을 통해 의식은 무의식적인 상징적 내용물들과 직면함으로써 확장된다. 융은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초월 기능이 목표나 목적 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무의미한 갈등을 넘어서도록 하고, 일방성을 피하도록 하며. 개성화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개성화의 과정은 심층적 융학파분석의 최종 목표이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그 사람 전체가 되는 길이다.

 

<참고도서>

1.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 /Ann Casement 지음/박현순, 이창인 옮김/학지사

2. 내 생애 처음 만나는 칼.G,융 /시카모토 미에이 지음/노지현 옮김/현실과 미래

3. 인간과 상징/칼 융 외 지음/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p.8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精髓만의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9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푹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p.10 기자가 융에게 신을 아느냐고 물었다....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쟈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p.12 이제 나이 83세에 나는 내 생애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일을 감행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직접적인 진술, 즉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p.13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p.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되다.

p.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p.32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서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p.44 나는 물건들이 금방 커졌다가 금방 작아지는 불안한 꿈을 꾸곤 했다....또는 새들이 앉아 있는 전깃줄이 점점 더 굵어져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나의 공포도 커져만 간다. 이런 꿈들은 사춘기의 생리적 준비단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이미 일곱 살 무렵에 그 전조를 경험한 셈이었다.

⇒ 어린 시절 5살전후의 기억으로 생각된다. 초록색 지붕에서 살던 때 나는 종종 융과 비슷한 꿈을 꾸곤 했다. 방안의 가구가 점점 커지더니 나를 향해서 넘어오거나 가구 밑에서 어떤 생물체가 나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꿈을 꾸고 공포에 질렸던 기억이 있다.

p.45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었다.

p.46 그 담 앞쪽에는 비탈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 약간 솟은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 돌은 나의 돌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돌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 역시 5살전후에 내가 자주 가던 가게 집 앞, 큰 길가의 평평한 돌에 앉아 시내를 향해 앉아 사람구경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 돌위에서 5살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항상 누군가를 기다린 것같은 그리운 느낌이 아직도 있다.

p.48-49 온갖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시 말해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거나 나의 예민한 감정이 상했을 때, 혹은 아버지의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나 어머니의 병약함으로 내가 침울해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싸서 침대에 뉘어놓은 남자 인형과 곱게 칠해진 매끄러운 그의 돌을 생각했다.

⇒ 어린 시절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이나 장소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만의 성소를 정해놓고 그곳에서 평온을 경험하거나,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을 자신의 가까이에 두어 지루하고 생각의 흐름이 막힌 느낌이 들 때 꺼내 보는 것은 소소하지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p.50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남근상 꿈에 대해서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다. 제수이트 역시 말해서는 안 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했다.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p.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 나의 경우 또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사건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형태만 다르고 본질은 같은 자신의 패턴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자신을 힘들게 한 패턴을 인식하게 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p.55 열한 살이 되던 해는, 그때 내가 바젤로 와서 김나지움에 들어갔지 때문에 그만큼 내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리하여 나는 시골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과 헤어져 그야말로 ‘위대한 세계’러 들어오게 되었다.

⇒ 나는 13살 되던 해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13살의 나는 그곳에 있으면 대학을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에게 나도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한 아버지 덕분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눈에 강남의 동네도 아이들도 선생님도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p.56 나는 나의 부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갈등에서 행방되기 위하여 나는 좋든 싫든 부모님을 판정해야 하는 상위의 중재재판관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자만심이 야기했다. 그 자만심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자존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동시에 약화시키기도 했다.

⇒ 부모님 사이의 갈등이 인식되었던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나는 엄마의 보호자여야했다.

p.59 여든세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 구체적인 연관성을 보여줄 수는 없으나 에너지적으로 어린시절의 기억 또는 그로인한 무의식 자원의 기억들이 개인의 삶에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고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신한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자신이 겪는 모든 경험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일을 벌리는 것, 그리고 허덕이는 것 모두 내가 만들어낸 나의 시나리오였다. 이제는 내가 쓴 힘겨운 나의 시나리오를 바꿔야 한다.

p.68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이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한 이후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나’이며 이것은 ‘깨어있는 나’, ‘변화하는 현재를 인식하는 나’이다.

p.73 이러한 소심증은 세계와 그 가능성에 대한 불신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나는 항상 무엇이 내게 닥치는지,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다. 아마도 이것은 수개월 동안 나를 버렸던 어머니와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의사가 내 상처 때문에 체조를 하지 못하도록 했을 때 나는 아주 만족했다. 나는 그 부담은 벗었지만 또 하나의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 * 어린 시절 엄마가 아파서 외가댁에서 몇 달 동안 자랐던 적이 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경험 때문일까. 나는 아픈 엄마를 보호해야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보호받아햐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보호받기 위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불쌍해보이려고 했던 것같다. 나도 모르게...내 무의식의 작용이다. 그래서 일까 이런 나의 무의식 때문에 나에게 불쌍하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 사실은 변화하기를 두려워하고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오히려는 패배가 편안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패배의 기억은 자신이 원했던 경험이었어도 상처를 남긴다. 나는 능력없고 가치없는 존재라는 사실과는 잘못된 에고를 만들어 낸다.

p.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인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超人性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 ‘신’의 존재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신이 허락하는 범위안에서 내가 원하는 창조가 일어난다.

p.80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p.81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p.81 내게 은총을 가져다준 것은 복종이었다.

⇒ 여기서 복종의 의미는 아마도 신에게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맡기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p.82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이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p.83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p.85 저 돌 위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복된 평온함이 찾아왔다. 돌이 온갖 의혹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지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핟.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 융은 내안의 신성을 돌을 매개체로 발견한 듯하다. 어릴적부터 無心한 사물에 자신을 투사하여 명상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던 것 같다.

p.87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p.87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는 두 세명의 선생만이 나를 특별히 신뢰해주었다.

⇒ 나도 학생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가치를 믿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p.90 내가 혼자 있는 순간이면 곧바로 이러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이며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p.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제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p.93 내게 일어난 바와 같이, 하느님은 자신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의지를 무력한 인간에게서 철저히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존재다.

p.95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만힝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p.96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에에서 그것을 실현해야 될 것처럼 여겨졌다.

p.96 나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었던 어떤 내적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증명되었다. 나는 확신을 붙든 적이 없었으나 확신이 나를 붙들어주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신념에 종종 대항하게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p. 101 나 또한 내 안에서 이러한 고태적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 자주 일어났다.

p.102 어머니는 나를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대했으며, 어른에게 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는 모두 이야기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는 너무 일찍 나를 믿을 만한 친구로 만들어놓고 자신의 여러 가지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p.103 나는 어머니를 한정된 범위에서만 신뢰하게 되었고, 그러자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이제는 어머니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 엄마가 아빠의 단점에 대해 자신이 힘들기 때문에 자식에게 쏟아놓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엄마의 정보에 의해 엄마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되는데, 엄마는 정작 자식이 아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식은 아빠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한다고 말한다. 자식은 그럴 때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엄마도 아빠도 부모 자체를 온전하게 신뢰할 수 없게 된다.

p.10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인간적이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존재다.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p.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자아는 뭔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p.121 히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p.128 너는 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며 소박하고 한눈에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p.128 나 자신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의미심장한 느낌이 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는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p.128 나는 단지 저 흐릿한 세계를 오늘날의 방법으로 밝혀보고자 시도할 뿐이다.

p.129 자신들이 질서있는 우주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있는 영원 속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 인간은 우주의 원리, 영원, 無의 개념을 인식해야한다. 자신이 머물러 있는 그곳의 상태를 인식해야한다. 우리는 우주 속에 있고 우주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p.130 동물들은 사랑스럽고 충직하며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하였으나, 인간들은 나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 인간에게 상처를 입어 신뢰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대체로 식물이나 동물에 애정을 지나치게 쏟는 경향이 있다. 동식물과 인간을 골고루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경향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p.131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나는 돌과 나 자신이 서로 유사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p.135-136 칸드의 인식론....이러한 철학적 발전은 열일곱 살부터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 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p.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p.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p.139 자연과학에서는 역사적 초기단계를 지닌 구체적인 사실이 마음에 들었고, 종교학에서는 철학이 포함되어 있는 영적인 문제가 그러했다.

⇒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p.144 제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성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제1의 인격이 반항하여 자기가 행동하기도 하고 행동을 야기하려고도 했으나, 당분간은 해결할 수 없는 분열에 처해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기다리면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p.146 처음으로 나는 낯선 어른들 사이에 혼자 있게 되었는데 가톨릭 신부의 집에 묵었다. 이것은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모험이었다.

p.150 거대한 낭떠러지들이 있어서 나는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곳은 엄숙했고 사람들은 정중하고 조용히 처신해야만 했다. 그들은 신의 세계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신의 세계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여행은 아버지가 일찍이 나에게 준 것들 중에 가장 값지고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이때 받은 인상이 너무나 깊었으므로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제1의 인격 역시 이 여행에서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얻었다. 그가 받은 인상들이 대부분의 내 생애 동안 항상 생생하게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성숙하고 독립된 존재로 여겼다.

⇒ 일상의 나를 초월한, 일상적 삶을 초월한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경험 중에 여행의 경험이 큰 재산이 되기도 한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사람은 모두 그 자체로 성숙하고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식해야한다.

p.154 환상의 근원은 아마도 나에게 깊은 충격을 준 한 가지 경험에 있는 듯했다.

⇒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험에 의해 무의식의 기억들이 작용하여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p.157 환상에 빠져 수개월을 매우 즐겁게 지내다가 결국 싫증이 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환상이라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백일몽을 꾸는 대신 점토를 회반죽 삼아 작은 돌들을 가지고 성들과 정교하게 방어시설을 갖춘 광장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p.158 나는 실제 사물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것에 관해 숙고할 만한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여겼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p.158-159 식물은 분명 순진무구한 신성한 상태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식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p.163 오랫동안 나는 결심을 하지 못하고 계속 결정을 미루기만 했다. 아버지는 무척 걱정하며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나는 아버지 말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결심을 하지 못하고 계속 결정을 미루는 습관, 흥미가 있는 것은 많으나 정작 무엇에 올인할지 모르는 갈등상황..대체로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패턴이었다. 이제는 그 패턴을 깨고 나의 천복에 올인할 때이다.

p.166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내게 확고했으나 다만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p.172 제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p.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대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불확실감이 생겨난다.

p.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즉 어린아이 마음 가운데 補償적인 성격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분위기로 알아차린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부모와의 관계와 가정 분위기가 아이들의 학습과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교사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p.175 돌이켜 보면 내 어린 시절의 발달이 미래의 사건들을 얼마나 미리 잘 말해주고 있으며, 아버지의 종교적 좌절과 오늘날 세계상의 충격적인 계시에 대한 적응법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한 계시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미 그 그림자를 던져온 것이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 무의식세계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무의식 세계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그다. 의식적인 부분이 물위로 솟아나온 빙산의 일각이라면 그 아래 물속으로 가리워진 거대한 나머지 부분이 무의식의 부분이다. 인간의식이 그 의식부분과 무의식부분의 결합으로 작용된다면 눈에 드러난 의식적인 부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부분이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변화려는 의지가 있고 자신이 변화해야함을 의식하지만 좀처럼 변화하지 못하는 것도 그사람의 의식을 구성하는 무의식의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p.176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p.177 그는 결혼생활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선행을 베풀고는 그 결과 대개 기분이 언짢았고 곧잘 부아를 내곤 했다. 부모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자주 타툼이 일어났다.

⇒ 착한사람컴플렉스가 적용되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주입된 정보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학습되어버려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가.

p.182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 신앙이든 무엇이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경험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간접지식이 많아도 직접경험이 없으면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사랑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듯이.

p.187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 나의 대학시절은 어떠했을까. 2학년까지는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남은 2년동안은 힘겹고 우울한 시절로 기억된다. 대학시절이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융이 부럽다.

p.193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p.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201 우리는 모든 삶들이 알고 잇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가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있게 되는 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p.202 나는 더 나은 방법이 정말 없어 사실들을 제시하는 대신 말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사실들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p.208 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어떤 객관적인 것을 경험했다.

p.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자신의 천복을 느끼고 그것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일치되고 서로 공명되어 하나가 되는 느낌. 이러한 느낌이 오면 뒤돌아 보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p.213 나의 첫 저서는 조발성치며(정신분열증)의 심리학에 헌정되었다. 그 책에서 내 인격이 선입견을 지닌 채로 이러한 ‘인격의 병’에 대하여 대답을 한 셈이다.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망상관념이나 확삭이 정신병의 특이한 증상일 뿐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의미도 지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p.213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 저녁, 나는 오랫동안 열망했던 사치스러운 소원을 이루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간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과도한 낭비를 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골동품을 팔아서 번 돈이 아직 얼마 남아 있어 그 돈으로 오페라구경도 하고 뭔휀과 슈투트가르트 여행도 할 수 있었다.

⇒ 자신의 성과와 성공에 대한 보상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작지만 계속된 성공의 경험을 제공하면 큰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217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23 이 환자에게 연상검사를 시행했다. 더 나아가 나는 그녀의 꿈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는 기어코 그녀의 과거를 드러내게 되었고, 그녀의 일상적인 병력이 밝히지 않고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의식으로부터 이른바 직접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어둡고 비극적인 사연이 드러났다.

⇒ 꿈이 이른바 무의식의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꿈을 실체를 분석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을 파악하여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정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p.225-226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를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을 통해서나 환자와 오랫동안 끈기있게 인간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최면에 관한 강의에서도 나는 학생들에게 소개한 환자의 개인적인 사연을 캐묻곤 했다.

⇒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교사는 학생의 표면적인 문제에 국한 하지 않고 그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관찰해야한다. 학생의 개인적인 사연을 교사가 알아야 공감대를 형성하여 학생을 이해하고 조력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p.230 나에게 환자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가는지 환자 자신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이나 무의식의 다른 표현들을 주의깊게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p.234 그녀는 살인범이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녀 자신을 또 살해했다.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살인범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셈이다. 누가 죄를 범하고 잡히면 그는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된다. 누가 도덕적 지각 없이 몰래 죄를 짓고 발각되지 않아다 하더라고,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벌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가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보이지 않는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진실을 밝혀지기 마련이고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내가 행한 일에 대한 댓가는 언제가는 받게된다. 좋은 일을 행했으면 좋은 댓가를 받을 것이요. 나쁜 일을 행했으면 나쁜 댓가를 받을 것이다.

p.236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교사는 학생의 사연을 알아야 한다. 거기서 학생에 대한 공감이 시작된다.

p.238 나는 이전에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던 정신분열증 환자의 말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 학생들의 말 한마디라도 관심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의미없게 여겨지는 때가 많다.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질문이라도 의미를 파악하고 대응해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식의 축적보다 인격적 수양의 문제로 인하여...

p.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은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ㄱ아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p.243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 겉으보 보면 문제아가 정말 문제가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모범생처럼 보이는 얌전한 아이들이 내면의 문제를 더욱 많이 갖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아들은 발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소위 모범생처럼 보이는 조용한 아이들은 내면의 문제를 발산한 창구가 없어서 도리어 훨씬 힘들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p.247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248 사람들이 문헌에서 환자의 저항에 고나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 환자에게 뭔가 강요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료는 환자로부터 자연스럽게 진전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잇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의사는 소위 ‘방법’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규격화된 일정한 방식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보편적 원칙은 최소한으로 설정해 놓고 학생의 개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방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의 틀로 만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p.249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로 무언가 할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p.250 중요한 것은 이론과 증명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자신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는 것이 다. 물론 이것은 총체적인 관점을 참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의사는 그러한 관점을 습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의학교육만으로는 충분치 한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의 지평은 의사 상담실의 시야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를 주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교육분속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환자도 이를 배우지 못하낟. 의사가 배워 알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화자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분석에서 의사가 개념체계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의사는 피분석자로 분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ㄴ 일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교육분석은 실제적인 삶의 한부분이지 무조건 암기아여(문자그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지식의 전달만이 아닌 몸과 마음이 총체적으로 성장되게 하는 전인교육이 필요하다. 학생을 잘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의 이해가 선행되어 온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허한 말이 아닌 진정한 경험을 통한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p.252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 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정에 따라서는 치료 전체가 빗나갈 수도 있다.

p.253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나는 나의 환자들을 진지하게 다룬다. 아마 나도 그들과 똑같은 문제 직면해 있는지 모른다.

모든 치료자는 제3자에 의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관점도 가지게 된다....여상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판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가 꾸미는 음모까지도 꿰뚫어볼 줄도 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p.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61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 동시성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순간 깨어있을 때 가능하다. 내가 의도하고 원하는 것에 대한 에너지를 우주에 보내면 우주가 모든 형상으로 대답을 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경험속에 우주의 메시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언하는 것에 관심을 갖으면 동시성은 우리주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다.

p.261 나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학생에게 교육할 모델에 대한 실마리...학생의 폭넓은 인격을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p.266 환자가 자기 자신의 길을 감으로써 스스로 책임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저항은 특히 완강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毒 일 수도 있어서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수실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가 내적인 체험, 즉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섬뜩한 기분이 들어 도망하기 일쑤다.

⇒ 학생 스스로 선택으로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다 본인들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다만 선택이후에 의지가 발현되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그전에 의지라는 것을 어떻게 발휘할지 모를 수도 있다. 다만 부모와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어떻게 의지를 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도와주면 될 뿐이다.

p.267 많은 경우 의사 편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요구될 때도 있다.

⇒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면 학생에게 본인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학생도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면 변화하려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p.268 환자들이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비로소 많은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어 그때에야 비로소 치료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교육의 효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그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학생의 삶에 교사의 가르침이 어떻게 작용하여 학생의 인식에 기여하고 발전시킬지는 모르는 일이다.

p.272 나는 피분석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그들과 나의 환자들이 나에게 끝없는 이미지의 연속으로 펼쳐보였던 정신현상과의 대면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의 환자들과 피분석자들은 나를 인간적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여, 그것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교사에게 학생의 존재는 배움을 전달하는 대상이 아닌 교사가 그들을 통해 배움을 얻어 성장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敎學相長의 관계일 것이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5 나의 정신적 발달을 향한 모험은 정신과의사가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p.276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나는 억압기제가 연상장애에 작용하고 있으며. 내가 관찰해온 사실들이 그의 이론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프로이트의 논지를 단지 지지할 수 있었다......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p.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p.281 내가 아는 바로는 과학적 진리는 얼마 동안만 만족스러운 가설이지 모든 시대에 걸친 교리는 아니었다.

p.287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 空, 虛, 無心, 中庸.....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진동추는 가운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흔들린다. 진동추의 움직임처럼 우리의 마음도 항상 변화하고 움직인다. 그 변화의 원리를 인식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p.288 모든 것이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인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다보면 돈과 명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p.295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298 꿈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298 꿈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00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땜누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p.301 프로이드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는 무엇보다 요술이나 속임수, 그리고 어떤 자의적인 것도 끼어들 수 없다. 나는 의식의 잔꾀가 무의식의 자연과정에도 확대된다는 가정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반대로 나날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무의식이 의식의 경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저항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 꿈은 무의식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다. 꿈을 분석하는 것이 무의식의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있다면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지대를 더 많이 받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나 존재하여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무의식의 실체를 꿈을 통해 알 수 있다면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나에 대한 치유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4-316 나는 이론적인 관점을 모두 접어두고 환자가 꿈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나는 꿈을 다룰 때 이와 같은 방식을 꿈해석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p.326 감정의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을 막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걸렸을 것이고, 결국 무의식의 내용이 나를 파괴했을 것이다.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p.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 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돕는 자가 환자 옆에 있지 않느냐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위 돕는 자인 나는 환자의 황상 내용을 나 자신의 견지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쓸모도 별로 없는 몇 가지 이론적인 편견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나 개인뿐 아니라 나의 환자를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자청해서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게 했다.

p. 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아니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이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p.343 오늘날 나는 이나마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나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나의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p.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대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는지란...내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내 영혼의 울림을 찾아서 떠나는 길이 바로 천복을 찾아 떠나는 길일 것이다. 영혼의 울림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길에 들어선다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영혼과 마음의 일치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p.357 만다라는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5 나는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무의식과의 대면을 시도했다. 무의식에 곤한 나의 작업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환상의 내용을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이것은 물론 나에게는 바람직한 발견이었다.

이것으로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제 나의 심리학은 역사적 토대를 얻게 되었다.

p.397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

p.420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p.422 이 책에서 나는 나 자신의 주관적 세계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세계관은 내가 이성적으로 궁리하고 자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반쯤 감은 눈과 반쯤 닫은 귀로 존재의 형상과 소리를 보고 듣고자 시도할 때 생기는 하나의 환상이다.

p.424 거기서 나는 ‘제2의 인격’안에서 살면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生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행>

p.429 내가 끝없는 시간의 연속과 그 가운데서도 거의 변함이 없는 존재들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깊은 감명에 여전히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내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럽인의 가속화된 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이 사람들 머리 위에 위협적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어두운 구름이었다.

p. 431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도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p. 457 인간은 창조성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p.458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객관적 실재와 의미를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인간은 그의 위대한 존재학립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p.509 나는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환상들>

p.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p.526 병을 앓은 후에 나에게는 왕성한 연구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많은 주요저작이 그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만물의 종말에 관한 인식내지는 직관으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p.527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나는 내가 무한 긍정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무한 긍정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결국 긍정하고자 했을 뿐 지금 나 자신에 대해 긍정하고 있지 못했다. 나를 능력이 부족한, 믿지 못하는 존재라는 어리석은 신념을 갖고 나를 있는 그래도 인정해주지 못했다. 변화의 시작은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긍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p.527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융은 인생에서 완전성보다 원만성을 추구하기를 권함)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 자신의 길을 천복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나도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길은 안전하고 편안 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현재는 항상 변화하고 그 변화의 흐름속에 우리가 있기에 안전한 길을 있을 수 없다. 단지 우리가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즐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p.527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어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1 내가 저승과 사후의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은 모두 기억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그 속에서 내가 살았고 나를 뒤흔들어놓았던 이미지요 생각들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내 저작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하지만 나는 사후의 삶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증명해야 할 것이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그런 생각들을 바야흐로 말하려고 한다.

지금은 거기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 즉 ‘신화화’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유롭게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아마도 죽음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p.536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을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 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 융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의식부분인 이성과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무의식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의식부분은 수면위로 조금 솟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무의식부분이 나머지 수면아래의 거대한 빙산의 나머지 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인식하는 이성의 작용보다 무의식의 작용에 의해 디자인되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의식을 의식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만 치부하게 되고 현실의 삶이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인생을 더욱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p.536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p.539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내가 사후의 일들에 관해 말할 때 나는 내적 감동으로 말하는 것이며, 거기에 관한 꿈과 신화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을 것이다.

p.540 우리는 시간과 공간, 인과론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세계가 그 배후나 그 아래에 놓여 있는 다른 사물질서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여기와 저기’라든지 ‘이전과 이후’라든지 하는 구별이 필요없다. 나는 적어도 우리 정신적 실존의 일부가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논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의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공간도 시간도 없는 절대적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 같다.

⇒ 시간과 공간과 인과론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경험할 수 있다면 현재의 우리에 삶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p.573 인간의 과제는 이를테면 그것과는 정반대로, 무의식에서 밀려오는 것에 관해서 의식지 못하는 상태에 있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의식을 형성해가야 하는 그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만년 사상>

p. 583 우리는 오직 의식을 확장해주는 학문을 통해서만 자연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와 같이 심화된 자기인식도 학문, 즉 심리학을 필요로 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광학지식 없이 이른바 손목이나 좋은 의지로만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늘날 심리학을 우리 본성상 필요로 하고 있다.

p.598 신의 경우 대극의 복합으로서 의미심장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실과 허구, 선과 악이 다 될 수 있다. 신화는 델피의 신탁이나 꿈처럼 이중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또한 욥이 이미 파악했듯이,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마자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p.599 그는 안팎으로부터 인간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이런 사실들을 신성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그 작용들을 신화의 도움으로 기술하고. 이것을 ‘신의 말씀’ 다시 말해 다른 저편의 누멘의 영감이요 계시로 이해한다.

p.608 원형은 본능의 한 특성으로 그 동적인 기질을 나ㅝ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하나의 특수한 에너지를 소유하게 된다. 그 에너지는 일정한 행동양식이나 충동을 유발하거나 강요하나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경우에 따라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원형을 그 특성에 비추어 다이모니아라고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p.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p.618 에로스는 우주의 생성원, 창조자, 그리고 모든 의식성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내게는 그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느님은 사랑이다라는 구절에 고나한 현학적인 해석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 문구는 신성이 복합대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p.618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 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내가 사랑아리는 말을 따옴표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 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서다.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는 전체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는 찬성하거나 분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그 속에 갇혀 있고 에워싸여 있다. 언제나 그는 거기에 좌우되며 그것에 기인하고 있다.

p.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에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회고>

p.623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p.624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거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이끌어 낼 수 없거니와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적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p.625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인생을 어떤 비개인적인 신성한 힘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 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대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인식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밀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어떤 일이 눈앞에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비밀스러운 세계라는 자체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즐기고 일어날 일들에 대해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다면 인생은 더욱 즐거워질 수 있으리라.

p.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p.642

자서전은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여 얻은 빛에 비추어 살펴본 나의 생애입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상을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나의 생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글로 써온 내용의 정수이며 그 반대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아이(i)의 윗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두번째 읽기에서>

융은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학습에 의해 이 길이 자신의 길이라 착각하고 들어선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영혼의 울림에 의해 자신의 길을 정하고 걸어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에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의 삶의 모습을 모델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우선 세상이 원하는 길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길에 용기있게 걸음을 내딪는 것부터 시작이다. 자신이 정한 길 이외에는 자신의 일에 통찰을 얻을 때까지 뒤돌아 보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일상 모든 부분에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정신분석학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자신의 꿈과 무의식을 분석하고 상징을 해석하고 환상속에 직접 빠져 그것을 기록하였다. 자신을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공헌하는 것은 중요하다. 직업을 갖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최종목표가 그것인 경우가 많은데 융을 보면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행해야 되는 것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융은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머리로 하는 사랑이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을 했다고 여겨진다. 융은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꿈에 대한 해석을 통해 환자가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 환자의 환상 경험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읽어내어 그것을 생활에 적용시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스로가 환상에 빠져 무의식의 상태를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했다. 융은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라는 말로 환자의 환생내용을 이론적 편견이 아닌 자신의 경험의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 환자를 위하는 척이 아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의사였다. 이러한 진심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일을 천복으로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융의 직업의식과 환자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이듯, 의사와 환자의 관계나 교사의 학생의 관계가 기본 원리는 같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융은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융은 의사를 환자보다 우월한 위치로 보지 않고 자신과 같이 본질적으로 상처를 입은 인간이라는 면에서 동등하게 접근한다. 교사도 마찬가지 이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어른이라는 입장으로 그들을 분석할 것이 아니라 배움을 추구하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학생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면서 표면적인 관계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교사 스스로가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학생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이 환자에게 그랬듯,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표면적인 관심이 있는 척이 아닌 따뜻한 시선과 가슴으로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서전속에 나오는 융의 경험들이 나의 경험속에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면 친근함을 느낀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상이의 경계를 넘나든 그의 경험을 통해서 지금의 내 삶 속에서 내가 의식하는 부분이 빙산의 일각이며 그 의식을 지배하는 거대한 무의식이 존재함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의식을 좌우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 사실은 나의 신화를 써가는 일이며 나의 천복을 알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융처럼 나의 꿈이라는 실체를 통해서 무의식이라는 잡히지 않는 비실체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융은 자서전을 쓰면서도 자신의 정신분석에 대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 뿐 아니라 정신분석에 관한 그의 사상까지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며 알게 된다. 마치 이 자서전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에 마침표를 찍고 마무리를 하는 듯하다. 융과 같은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천복으로 여기는 직업을 찾고, 이미 그 직업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가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 길을 걸어가다가 어느새 삶에 마침표를 찍고 싶을 즈음에 내 인생에 녹아있는 나의 신화와 천복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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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연주
2010.06.28 12:39:43 *.203.200.146
<2. 내마음에 무찔러든 글귀>에 들어갈 <두 번째 읽기>관련된 부분 아직 모두 타이핑하지 못했습니다.  완성하는 대로 바로 업데이트 하게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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