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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9일 10시 17분 등록

2부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1부 동양과 서양의 분리>

1장   위대한 네 문명의 서명

1 동양 신화와 서양 신화의 대화

u       동양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영원 회귀의 신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정한 형식의 질서를 보여준다 (11).

u       개인의 첫 번째 의무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 태양과 달, 여러 가지 동물과 식물의 종, , 바위, 별들처럼- 을 아무런 저항이나 오점 없이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의식과 내재적인 전체성의 원리를 동일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 (12).

u       이러한 명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지향하는 전통에서는 세계 창조라는 우주적인 그림자놀이 속에서 빛과 어둠이 함께 춤을 춘다 (12).

u       생물이 출현하고 이들은 다른 생물의 죽음을 먹고 산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죽어서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 이러한 시간의 변화 속에 신화적 시초의 무시간적 원형이 존속한다. 이 때 개별적인 것들은 떨어진 잎사귀에 불과하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러한 의례를 행하는 것은 마음의 초점을 (사멸하는) 개인으로부터 영속적인 집단으로 옮기는 효과가 있다. 주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모든 생명체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13).

u       서양에서는 에고를 버리고 개체성의 탄생에 선행하는 영혼의 상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 첫번째 중요한 분기점은 근동 중심부에서 일어났다. … 그러다가 수메르에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분리하는 새로운 의식이 기원전 2350년경의 신화와 의례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왕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신의 봉사자이자 소작인이었다 (15).

u       초기의 신화적 사고에서는 왕이 지상에서 신의 최고의 현현이었지만 이제는 단지 유일신의 시중을 들면서 희생물을 바치는 사제에 불과하였다 (15).

u       그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새로운 분리 의식은 회귀에 대한 반대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동일성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 그것은 상실된 신의 임재와 비전으로의 회귀였다. … 이제 세계는 더 이상 영원성의 패러다임이 시간 안에 단순히 출현한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라고 하는 두 세력 사이의 유례없는 우주적 투쟁의 무대로 인식되어 갔다 (15).

u       이러한 우주 회복 신화의 최초의 예언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임에 틀림없다 (15).

u       세계 창조 후 1 2천 년이 지나 조로아스터가 출생하면서부터 그 투쟁은 선의 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선회하였다 (16).

u       인간 정신의 재정립을 위한 강력한 신화적 정식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이 정식에 의하면 인간 정신은 시간의 길을 따라서 가야 하고, 인간은 신의 이름으로 우주의 혁신을 위한 자율적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이는 새롭고 강력한 성전의 정치 (결코 명상적이 아닌) 철학을 확립시킨다 (16).

u       이러한 새로운 신화적 사고의 힘이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것은 퀴로스 대왕 (기원전 529년 사망)과 다리우스 1 (재위 기간 기원전 521~486)가 통치한 아캐매니드 제국 시대이다 (16).

u       히브리인들이 조로아스터의 보편적 메시지를 자신들의 역사에 적용함으로써 역사상 두번재의 그러한 신화적 사고가 등장하였다. 그 다음은 기독교의 세계 선교에서 나타났으며, 네번째는 이슬람에서 나타났다 (17).

 

2 둘이 된 일자 신화의 공유

u       이들 신화에서 최초의 존재는 원래 하나였으나 둘로 분화되었다 (18).

u       인도의 경우에는 신 자신이 분화되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된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의 본래적인 신적 실체의 현현이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9).

u       인도적 시각은 형이상학적이고 시적이다. 반면 성서적 시각은 윤리적이고 역사적이다 (20).

u       인도적 시각에서는상실된 것은 단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각자의 자아 (아트만) 안에, 바로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1).

u       성서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특권을 부여받은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이 역시 역사적인 물음이다. 여기에는 잘 알려진 3가지의 주장이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21).

u       이와 달리 인도의 경험과 시각에서는 성스러운 신비와 힘이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되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내재적이다. 신적인 것이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모든 것 자체이다. 우리는 신적인 것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떤 외적 준거, 계시, 성례전, 또는 권위 있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자신의 심리학적 정향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22)

 

3 에고에 대한 2가지 견해

u       카를 융은 <정상심리학과 병리심리학에서의 무의식>이라는 초기 저술에서 2가지의 심리학적 유형인 두려움에 시달리는 내향형과 욕망에 시달리는 외향형에 관해서 서술하였다 (24).

u       인도 신화에서는 자아가 를 말하자마자 먼저 두려움을 인식하게 되고, 그 다음 욕망을 인식하게 되었다 (24).

u       현대 서양에서 이해하는 영적 성숙은 이드로부터 에고의 분화를 요구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에고를 리비도적 기만 원칙으로 간주하여 비난하며, 궁극적으로 해체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24).

u       의 의식을 해소한 붓다는 의식 속에서 창조의 욕구에 끌리지 않고 그것을 무시해버렸다. … 사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반 세기 이상이나 더 살아야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한 다양하고 외관적인 이원성의 텅 빔 속에 참여하여 타인들- 실제로는 다르지 않지만-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자애롭게 가르쳤던 것이다 (30).

u       고전기 인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4가지의 목적을 제시하는 교리가 있었다. 그 목적들은 카마라고 불리는 사랑과 쾌락, 아르타라고 불리는 권력과 성공, 다르마라고 불리는 법적 질서와 도덕적 덕목, 마지막으로 목샤라고 불리는 미몽으로부터의 해방이다 (31).

u       앞의 2가지는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이라고 부른 것이며, 인간의 자연적인 근원적 욕구이다. … 동양적 관점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욕구들이 다르마 원칙에 의해서 억압되고 통제되어야 하고, 고전기 인도의 경우에는 이러한 원칙들이 각자의 카스트 규율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내면화된다 (31).

u       나는 원한다라는 유아적 욕구는 당신은 해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적용되는 (개인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원칙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원칙은 불변하는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태양의 운행 주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 (31).

u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을 지닌 붓다의 이름과 그의 성취에서 인생의 네 번째 목표인 미몽으로부터의 해방이 선언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장애물이 된다 (31~2).

u       인도 전통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 전부터 완벽하게 질서지워져 있다. … 결국 당신은 해야 한다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외치는 유아적 지평의 지루함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제공되는 것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목표인 유아적 에고의 전면적 소멸이다. 요컨대 당신모두로부터의 해방 (목샤)이다 (32).

u       동양의 이상은 에고의 발달이 아니라 에고의 억제이다 (33).

 

4 인도와 극동의 2가지 길

u       도는 초우러적일 뿐만 아니라 내재적이다. 도는 만물의 비밀스러운 본질이며 가장 심오한 신비이다 (36).

u       요가의 기본 원리에 관한 인도의 고전은 <요가 수트라>이다 (37).

u       <요가 수트라>의 핵심은 195개의 간결한 문장으로 된 매우 짧은 이야기이다. 이것은 엄청난 양의 주석서의 토대가 된다. 주석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요가의 해석이다. 이 책은 <마하바라타>의 저자로 알려진 시인 바샤가 선사 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 두 번째 책은 기원 후 850년경에 번성하였던 바차스파티미슈라 종파에 속한 사람이 쓴 실재의 과학이다 (37).

u       요가 기술의 핵심은 그 책 서두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요가는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중지하는 것이다” (38).

 

5 유럽과 레반트의 두 충성

u       동양에서 붓다의 교의가 극동인의 의식에 접목된 것처럼, 서양에서는 레반트에서 나온 신학이 유럽인의 의식에 접목되었다 (41).

u       서양에서는 신과 인간이 분리되어 있고 서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이다 (42).

u       신들의 형상으로 상징화된 비인간적인 우주적 힘과 영웅 안에서 재현된 인간성의 최고 원리 사이에 가치 갈등이 일어날 경우, 그리스인의 충성과 공감은 언제나 인간의 편을 향하였다. 인간 정신의 가장 대담하고 위대한 사유는 언제나 우주적 힘에 대항하여 등장하기 때문이다 (43).

 

6 비교의 시대

u       니체가 자유 정신을 위하여 헌정한 책에서 예언하였듯이, 새로운 사회 질서 안에서는 다양한 세계관, 풍습, 문화가 나란히 비교되고 경험되어야 한다 (45).

 

2장   신의 도시

1 경이의 시대

u       세계의 신화와 종교에는 2가지의 강력한 모티브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다. … 이 중 역사적으로 먼저 나타난 첫번째 모티브는 경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 두 번째 모티브는 자기 구원으로서, 이는 빛 바랜 세계로부터의 해방이다 (46).

u       서양에서는 인간과 신의 분리를 강조하기 때문에, 신으로부터의 분리를 고통으로 해석한다. 이 때 고통은 대체로 죄의식, 처벌, 속죄 등의 용어로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만물 안에 신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동양에서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독해가 차단되기도 하지만, 독해의 방법은 심리학적이다 (47).

 

2 신화의 발생

u       이는 서로 죽이기를 통한 생명의 순환을 나타낸다. 그리고 모든 상들은 동일한 신의 힘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여기에 표상된 신화적 주제는 자기를 먹고, 영원히 죽고 영원히 사는 발생적 에너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에너지는 만물에 내재한 생명과 죽음의 에너지이다 (52).

u       제임스 프레이저 경이 <황금가지>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우주적 희생을 나타내는 시적 의식이 이제는 주로 왕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왕들은 정기적으로 살해되고 때로는 왕궁도 함께 파괴되었다. 이제 가장 새롭고 가장 인상적인 삶의 확장을 표상하는 곳은 착유장이 아니라 궁정이기 때문이다 (53).

u       천상의 법칙에 따라 도시 국가의 삶의 절기를 규제하기 위해서 수학적 정확성을 지닌 달력이 발명되었다. 많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가 질서의 개념은 이러한 천상적 법칙과 상당한 정도로 동일시되었다. 달의 죽음과 부활, 일년의 주기, 그리고 수학적으로 예측된 보다 위대한 우주적 에온 (eons: 무한한 시간)의 주기가 궁정 의례에서 거의 그대로 모방되었다. 따라서 우주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는 하나가 되어야만 하였다 (54).

 

3 문화 단계와 문화 양식

u       루돌프 오토를 따라, 나는 종교만이 아니라 신화의 뿌리는 누미누스 (the numinous: 종교 경험의 원초적 형태이며, 성스러움에 압도되는 감정)에 대한 감지라고 가정하고자 한다 (58).

u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따라 그 문제를 고려하고 논의하여야만 한다. 자신의 안에 있는 누미누스가 어쩔 수 없이 요동하기 시작하여 그의 삶과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그래야만 한다 (58).

u       이러한 의미에서 사원의 상징과 신화의 분위기는 누미누스의 촉매이며, 거기에 그것들이 지닌 힘의 비밀이 놓여 있다. 그러나 상징의 특성들과 신화적 요소들은 누미누스 자체에 대한 접근을 차단시킬 수 있는 그들 나름의 연합을 통하여 자신의 힘을 획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리적 신조의 경우처럼, 이미지 그 자체가 최종적 용어라고 주장할 때 누미누스에 대한 접근은 어려워진다 (58).

u       인류의 문화가 수렵 단계로부터 농경과 목축의 단계로 전환됨으로써 관심의 초점이 급격하게 변화되었고, 결과적으로 낡은 신화적 메타포는 힘을 잃게 되었다 (59).

u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국왕 살해의례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그 의례가 토양을 주술적으로 기름지게 하기 위한 실천적 행위였다고 해석하였다 (59).

u       토착적 형식에 관심있는 학자들은 지방적 양식의 독특성을 논의하는 경향이 있음에 반하여, 광범위하게 확산된 기술, 물품, 신화적 모티브의 증거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인류의 단일 문화사를 포착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인류 문화사는 잘 정의된 지방적 양식에 의해서 표현되기도 하지만 잘 정의된 일반적 단계들에 의해서도 특징지어진다. 고등문명의 근본적인 신화적 유산의 기원과 전파를 분석하는 것과 다양한 지역의 신화적 양식의 발생, 성숙, 쇠퇴를 살펴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리고 단일한 인류사의 맥락 속에서 각 지역적 양식의 힘을 측정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다. 총체적 신화학은 이 3가지 측면을 가능한 한 모두 고려해야 한다 (61).

 

4 사제 국가

u       언젠가 토마스 만이 신화를 사는현상에 관한 논의에서 잘 설명한 것처럼, “고대인의 에고와 자의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달리 덜 배타적이고 덜 날카로운 구별 능력을 지닌다. 사실상 그들의 의식은 뒤로 열려 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의식은 뒤로 열려 있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다시 그것에 현재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처럼 부정확하게 분화되는 에고 의식에서는 모방이 오늘날 그 말이 지니는 의미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신화적 동일시였다. … 삶 혹은 의미있는 삶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신화의 재구성이었다. 삶은 신화를 언급하였고 신화에 호소하였다. 신화를 통해서만 그리고 과거를 언급함으로써만, 삶은 그 자체를 진실되고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신화로서의 삶과 인용으로서의 삶이라는 숭고한 놀이를 행한 결과, 시간이 폐기되고 삶은 축제가 되고 가면이 되었다 (67).

u       결정적인 실존의 순간에 인간은 처음으로 인간이 되고 우주 안에서 그의 무한한 고독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공포가 처음으로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두려움, 죽음, 빛의 세계의 한계, 냉혹한 공간의 현존에 직면한 인간적 공포로 드러난다. 바로 여기서 죽음에 대한 사색이라는 높은 수준의 사상이 출현하는 것이다 (71).

 

5 신화적 동일시

u       순장 제도는 일반적으로 인도의 브라만 전통에 속하며 1829년에 금지될 때까지 그 전통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지만, 사실은 그 전통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84).

 

6 신화적 인플레이션

u       사제 국가의 최초 시기는 선사 시대에 해당하는데, … 나는 이 시기를 기원전 3500년에서 2500년 사이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시기에는 신화적으로 동일시된 왕들이 상당한 정도로 (토마스 만의 적절한 용어를 빌리자면), “뒤로 열려 있었기 (open behind)” 때문에 그들은 살해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심지어 축제의 무언극에서 스스로 살해하기도 하였다 (88).

u       사실 인도에서는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왕들이 계속하여 살해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까지 이러한 일이 행해졌다 (88).

u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이미 나르메르 팔레트의 시기 (기원전 2850년경)에 그들의 개체성이 어느 정도 닫혀있었으므로, 성스러운 죽음-부활 장면이 더 이상 옛날의 감정을 가지고 연출되지 않았다 (88~89).

u       철저히 연출되어 왔던 이전의 낡고 어둡고 무시무시한 왕의 죽음 대신에 이제 청중은 장엄한 상징적 마임, 즉 세드 축제 (the Sed festival)를 보게 되었다. 여기서는 왕이 실제적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불편함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파라오의 권위를 새롭게 하였다 (89).

u       이제 우리는 이 주제의 역사에서 신화적 사로잡힘의 두 번째 단계를 인정해야 한다. 신 안에 흡수되고 상실된 에고, 즉 신화적 동일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에고 안에 흡수되고 상실된 신, 즉 신화적 인플레이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자는 초기의 사제 국가에서 희생된 왕의 현실적인 성스러움을 특징 짓고, 후자는 후기의 왕조 국가에서 숭배된 왕의 위장된 성스러움을 특징짓는다. 왕조 국가의 왕들은 세속적 측면에서 그들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96).

u       말하자면 그들은 광인이었다. … 전 사회가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광기로부터 위대한 이집트 문명이 출현하였다. …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학문적 주제의 상당 부분은 위대한 문명의 여명기를 특징 짓는 심리적 인플레이션의 위기 증거로 읽혀야 한다. 그것은 각각의 특정한 문명 형태의 출현 계기로 읽혀야만 한다: … 1. 신화적 동일시와 사제 정치적, 전 왕조적 국가. 2. 신화적 인플레이션과 고대적 왕조 형태 (96).

u       의례 속의 파라오들은 경전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하여성스러운 과거를 단순히 모방하는 자들이 더 이상 아니다. 파라오와 사제들은 그 자신들을 위하여 어떤 것을 창조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일련의 장엄하고 몹시 자기 관심적이고 거대하게 부풀려진 에고의 현존에 접하게 된다 (96).

u       시간과 공간의 베일을 넘어선 영원성의 영역에서는 이중성이 사라지며 그것이 하나가 된다. 죽음과 삶이 하나이며 모든 것이 평화이다 (97).

u       시간적 생성의 장의 모든 측면에서는 영원한 존재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는 이러한 비밀스러운 지식, 이것이 이 모든 문명의 표시이다. 그것이 바로 파라오의 죽음 의례를 고귀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조각의 장엄함을 가능하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배경이다. 조각과 의례 자체는 광기이지만 상징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존재의 메타포이다 (98).

u       불변의 질서로서의 화해- 그 안에서 갈등하는 힘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집트인의 세계관이자 국가관이다 (99).

u       이것은 파라오와 이집트의 광기였고, 오늘날까지도 동양의 광기로 남아 있다 (99).

 

7 내재적인 초월적 신

u       최초의 파라오에 의하여 건립된 수도에 있는 거대한 프타 신전의 사제적 정신은 이 텍스트 속에서 신성의 본성 (기원전 2850년경)에 관한 하나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관점은 심리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신체 기관은 심리적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심장은 창조적 관념과 연결되고 혀는 창조적 실현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은 우주화된다. … 따라서 신들은 존재의 신비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의 현현 (형상화된 실현)이다 (100).

 

8 사제예술

u       황소의 시대가 지나가고 또 다른시대, 즉 사자의 시대의 여명이 떠올랐다. 그러므로 달 황소의 신화는 이집트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자의 태양 신화에 의해서 압도되었다. 달빛은 차고 이지러지지만 태양빛은 영원히 빛난다 (111).

u       달은 성장, , 자궁 그리고 시간의 신비의 주인인 반면, 태양은 지성의 찬란함, 거대한 빛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칙의 주인이다 (111).

 

9 신화적 종속

u       피라미드 시대의 전성기에는 새롭고 비교적 인간적이고 자상한 부성적 특성이 제4왕조 파라오의 성격과 행동 속에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13).

u       신화는 환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신화적 동일시나 인플레이션의 결과- 즉 구체적인 신의 모방-로 형성된 문명이나 삶은 필연적으로 악몽, 다시 말해서 너무 심각하게 연출된 꿈의 게임- 다른 말로 하면 광기-의 특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반면 그와 동일한 신화적 이미지가 환상으로 적절하게 읽혀지고 자연이 아니라 예술로서 삶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허락될 때, 이전에 강제적인 이미지의 포로로 있던 심리학 에너지가 그 이미지를 다시 포착하게 되고, 나아가 그것은 삶의 확장을 위하여 선택적인 자발성을 가지고 재배치될 수 있다. 더구나 삶 자체는 꿈을 만드는 재료와 같은 것이므로, 그러한 강조점의 전환은 때가 되면 그 자신의 본성을 고귀하게 의식하면서 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114).

u       기원전 3천 년경의 고대 나일 강 계곡에서는 하나의 살아 있는 신화가 신석기 민속 문화를 세계의 고등 문명 중 가장 우아하고 지속적인 것의 하나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 그 신화는 실제로 산을 움직여 피라미드를 만들고 땅을 자신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신화의 압력 속에 있던 개인들은 그것에 너무나 매혹당하여 행동에서는 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에서는 어린아이였다 (114).

u       이집트의 최종적 돌파구는 제4왕조의 몰락과 사제들이 건립한 제5왕조 (기원전 2480~2350년경)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그 순간부터 파라오는 여전히 하나의 신이기는 하였지만 스스로를 일류 신이 아니라 이류 신으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화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새로우면서도 영광스러운 신성을 지녔으며 레라고 하는 이름을 지닌 태양-신이 등장하였다 (116).

u       (나일강의) 연속적인 변형은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119).

                        i.              왕조시대 이전의 신화적 동일시의 단계

                      ii.              초기 왕조 시대의 신화적 인플레이션의 단계 (1왕조~4왕조, 기원전 2850~2480년경)

                     iii.              신화적 종속이라는 절정 단계

u       집단 정신 분석학적 치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상징적 왕의 인격을 통하여 그 문명은 우주적 포로의 상태로부터 합리적으로 균형 잡힌 인간성의 상태로 나아갔다 (119).

u       그리스의 고전 시기가 도래할 때까지 세상 어디에서도 이집트 예술에 비견될 만한 것은 없었다. 기원후 400년경 인도의 굽타 시대에 주술이 대승 불교와 함께 중국과 인도로 전해졌다 (120).

u       , 이집트의 예술과 신비가 기원후 400~1250년경의 인도, 티벳, 중국, 일본에서 꽃피게 되는 예술과 신비에 영감을 전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한다 (121).

 

3장 인간의 도시

1 신화적 분리

u       아버지를 선호하고 어머니-여신을 점진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왕조 국가와 가부장제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났지만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철저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어떤 종류의 어머니-여신도 볼 수 없는 구약의 신화에서 정점에 달하고 있다 (132).

 

3 신화적 시간

u       기원전 3200년경에 이미 점토판의 첫번째 출현과 더불어 10진법과 60진법의 두 숫자 체계가 분명히 등장하였다 (136).

u       메소포타미아의 1년은 360일로 계산되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의 원 중앙에는 신성한 지구라트의 5가지 지점- 4개의 각은 동서남북 네 방향, 정상은 하늘에 상응하는-이 있으며, 이것에 의하여 신성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반면 시간의 원에는 세속적인 360일 이외에 5일간의 축제 주간이 덧붙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낡은 해가 죽고 새로운 해가 태어났으며, 신성의 원리가 세상 안에서 회복되었다. 더구나 하루가 한 해에 비례하듯이, 한 해는 위대한 해에 비례하였다. 그러한 각 에온 (eon 영겁)이나 위대한 해의 종말에는 대홍수, 그리고 우주적 해체와 귀환이 있었다 (136).

u       현재 우리의 시대는 칼리 유가라고 불리는데, 이는 마지막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이다. 이 시대의 기간은 전체의 꼭 1/10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각각의 우주적 에온을 측정하면서, 유럽에서는 기원 후 1100년경, 인도에서는 기원후 400년경,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00년경에 이 숫자를 발견한 셈이다 (137).

 

4 신화적 홍수

u       인도에서는 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두려움이 수많은 대중적 숭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대중적 형태에서는 어떤 신의 성격이 강조되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절대 법칙에 대한 궁극적 가르침이 존재한다. … 문제는 운명과 자유 의지, 정의와 자비와 같은 대립물의 쌍이다 (145).

u       고대 동양 세계는 초기의 원시 세계나 후기의 서양 세계와 대조적으로 이러한 기적에 의해서 절대적 최면 상태에 들어갔다 (151).

u       수학은 그 중요한 문화 변동의 순간에 이미 알려진 생물학적 죽음과 발생의 신비를 만났으며, 이 둘은 서로 결합하였다 (151).

u       이 모든 신화 속에서 마트, , 다르마, - 그리스 전통에서는 모이라-의 원리가 신화적 측면에서 여성으로 지각되고 표상되었다. 두렵고 놀라울 정도로 신비스러운 태모가 위의 한르, 아래의 땅, 땅 아래의 물, 그리고 자궁 속에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 태모의 형태와 지지가 고대 세계의 모든 제의적 지식을 지배한다 (151).

 

5 신화적 죄의식

u       이제 우주적 상상은 배경으로 사라지고, 신들은 더 이상 수학적 질서의 단순한 집행자가 아니라 그들 자체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비교적 자의적인 질서를 창조하는 전능한 창조자들로 등장한다 (153).

u       형이상학적 두려움, 위대하고 불변하는 진리 앞에서 느끼는 깊은 경외감, 그리고 모든 인간의 판단을 이름 지어지지 않은 신비에 종속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은 동양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존중되어온 감정들이다 (154).

u       우리의 (서양의) 영웅 개념은 현실적이고 특수한 개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렇게 운명 지어져 있다. 반면 동양의 모든 신화에 등장하는 진실한 영웅은 헛되이 삶을 추구하는 경험적 인격이 아니라 환생하고 윤회하는 자이다 (161).

 

6 슬픔의 지식

u       이제 인간 자신은 신보다 더 많은 친절, 사랑, 명예, 정의, 심정을 가지고 있음이 명백하게 되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증대하고 붓다의 두 번째 공리,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점차 마음에 와 닿았을 때, 신화와 의례 그리고 인간의 지혜가 지닌 최대의 관심사는 자연 숭배라고 하는 오래된 주술적 관심으로부터 눈물의 골짜기에서 평화, 조화, 영혼의 깊이를 얻으려는 보다 친근한 심리학적 과제로 전환되었다 (170).

 

<2부 인도의 신화>

4장 고대 인도

1 보이지 않는 대항자

u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의 책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을 물에서 찾는 믿음은 고대의 많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혹은 인더스 계곡 등에서 이러한 믿음이 매우 자연스럽게 등장하였다. 이들에게는 주기적인 강우나 지속적으로 흐르는 강물이 식물 생장의 가장 확실한 전제 조건이었다 (173).”

u       문화적 변형을 일으킨 독특한 지역 중에서 인도와 서양 양쪽에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는 보다 구체적인 지역은 서남부 이란이다 (173~4).

u       현재 우리의 지식에 의하면 고대의 장엄한 고등 문화들은 북위 20도에서 45도 사이의 지대를 벗어나 있는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고등 문화는 북회귀선의 북쪽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180).

 

2 인더스 문명: 기원전 2500~1300년경

u       가장 최근의 발굴자인 휠러 경은 인더스 문명은 로마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의 가장 거대한 정치적 실험의 전형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182).

u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 오른쪽 어깨의 숄을 내리는 행위는 초기 수메르의 사제상에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186).

u       남성보다는 여성의 성격을 지닌 궁극적 신격 개념이 이처럼 정교하게 발전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여신 숭배의 특성을 이루는 인신 공희가 1835년 법에 의해서 금지될 때까지 인도의 신전과 마을의 작은 숲에서 강력하게 잔존하였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87).

u       그 신화에 나오는 신적 존재는 살해되고 해체되어 그 신체의 부분들이 묻히며, 결국에는 그 공동체가 먹고 사는 식용 식물로 변화된다. 앞의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그 신화의 지배적인 주제는 세상으로 출현한 죽음이다. 특별한 점은 죽음이 살해의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점은 인간이 먹고 사는 식용 식물이 그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191).

u       인도 신화와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인도 신화의 가장 깊은 뿌리는 무시간적 적도 세계의 토양에 존재하며, 이 세계는 제의적 죽음의 세계로서 여기로부터 생명이 전개되어 나온다는 사실이다 (195).

u       이 때 문자 문명의 기술- 쓰기, 월력용 수학, 왕권 등-도 함께 들어왔다. … 이 도시들에서는 국왕 살해와 순장 의례가 행해졌다 (196).

u       시바의 상징은 삼지창이다. … 더구나 그의 특별한 동물은 황소이다 (197).

u       고전기 인도의 링감과 요니 상징은 이러한 후기 석기 시대와 중기 청동기 시대의 표상들 안에 분명하게 에견되고 있다 (198).

u       동쪽에서는 어떠한 방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토착인들의 문명 수준은 발달되지 않았고, 중석기 시대 정도이거나 심지어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하도록 길들여 질 수는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고대 세계에도 없었던 두 갈래의 여신 종교뿐만 아니라 카스트의 전제 조건들을 인도에서 발견하게 된다. 인도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상층의 정복민과 하층의 피정복민 사이에서 그처럼 인종적, 문화적 간격이 존재하는 곳은 없다. 오늘날에도 그 간격은 비인간성과 관용이 혼재하는 독특한 유산을 지닌 채 존속하고 있다 (200).

 

3 베다 시대: 기원전 1500~500년경

u       .. 아리안에 의하여 전복된 인더스 문명의 신화적 토대는 오래된 중기 청동기 시대의 식물-달의 리듬에 근거한 질서의 변형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질서 안에서는 사제적 역학이 부정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철저한 무저항의 복종을 요구하였다 (208).

u       여기에서는 윤회 관념, 재생의 소용돌이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열망, 요가, 구원의 신화, 채식주의, 비폭력, 혹은 카스트 제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 이는 후기 인도의 신화가 본질적으로 베다 신화가 아니라 주로 인더스의 청동기 지대에서 나온 드라비다 신화임을 의미할 뿐이다 (213).

u       청동기 시대의 질서 원리가 개인적 행위라는 베다의 영웅적 주제를 물리치면서 다시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217).

 

4 신화적 힘

u       인도에서 사제 계급이 귀족층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한 수단은 경외감이었다. … 그들은 베다의 주문을 읊고 그것이 지닌 분명한 힘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였다 (219).

u       지식을 의미하는 veda라는 말은 vid (나는 본다라는 뜻을 지닌 video와 비교해보라)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219).

u       베다의 찬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계시와 마찬가지로 신화적 과거의 위대한 성인들에게 들리어진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베다의 찬가는 진리의 보고이다. 따라서 베다는 연구하고 분석하고 명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힘이었다. 그것을 해석하는데에 몰두한 신학적 저작들은 브라민의 저작이라고 불리며, 최초의 것은 기원전 8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저작들에서는 베다의 찬가와 의례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적 요소로 간주된다 (219).

u       이 소멸할 수 없는 음절은 모든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옴이다/ 이 세 겹의 시간을 넘어서 있는 것- 그것 역시 옴이다 (219~220).

u       베다 찬가에 있는 그러한 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브라민 지식인들은 그 힘을 통제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220).

u       이 브라민들은 4 종류로 되어 있다 (221).

                        i.              신을 부르는 자를 의미하는 호트리.

                      ii.              희생제의를 드리는 자를 의미하는 아드흐바류

                     iii.              노래 부르는 자를 의미하는 우드가트리

                     iv.              감독 브라민

 

5 숲의 철학

u       베나레스는 요가의 주인 시바의 도시였다. … 이곳은 인더스 계곡의 인장에서 보이는 요가 자세를 최초로 출현시킨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곳은 무한한 과거를 지닌 신화 발생적 지대라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229).

u       아트만 교리는 희생제의에 관한 브라마나의 가르침이 아니라 내면화된 꿈의 상태 및 꿈 없는 상태의 교의와 연결되어 있다 (231).

u       파울 도이센 교수는… “아트만으로서의 브라만, 만물에 혼을 불어넣는 원리로서의 아트만, 그리고 죽음 너머의 영혼의 운명, 이것들에 관한 지식을 보여주는 구절들에서 우파니샤드 교의의 가장 중요한 점이 선포되고 있다 (235).

u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 즉 베다의 제의 전승의 전체 정신과 실제적으로 대립되는 아트만 교의는 처음에는 브라민에 의해서 고안되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브라민 계급에서가 아니라 크샤트리야 계급에서 받아들여지고 계발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러서야 브라민에 의해서 채택되었다 (235).

u       도이센은 인더스 문명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 후반에 저술하였지만, 베다의 견해와 우파니샤드의 견해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어떤 인도인들도 보지 못하였던- 가 너무 커서 도저히 후자가 전자로부터 발전하여 나올 수 없었음을 이미 파악하였던 것이다. 하나는 외부 지향적이고 의례적인 반면, 다른 하나는 내적이고 심리학적이었다. 하나는 아리안적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았다 (236).

u       신들의 사제인 브리하스파티 신은 울부짖는 힘의 주곧 주술적 절의 힘이다. 브라민은 그것에 상응하는 인간측의 대응물이다. 브라민은 그러한 힘을 적용하는 지식과 그것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대한 신들이다 (238).

 

6 내재적인 초월적 신성

u       우리는 이미 인도의 신화적 복합의 두 구성 요소를 비교해보았다. 하나는 초기 인더스 계곡의 것으로서 거기에서는 황소가 최고의 상징적 짐승이고 시바와 대여신의 상이 그 안에 예기되었다. 다른 하나는 베다의 체계로서 여기서는 사자에게 명예의 지위가 돌아갔는데, 전사가 소마를 마시고 태양이 달빛을 먹어버리듯이 사자가 황소를 삼킨다 (238).

u       이제 우리는 세 번째의 구성 요소인 요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주제에서 바라보면, 신화적 동일시를 유도하기 위한 기술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39).

u       인더스 계곡의 인장에서 고전적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상은 요가와 청동기 시대의 제의적 국왕 살해 신화가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후대의 요가 사상이 시바와 여신만이 아니라 영겁 회귀 관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239).

u       요가는 황홀경과 빙의를 유도하기 위한 지역적 샤머니즘 기술로부터 발전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엘리아데 교수가 말하였듯이, 숨을 조절하여 내적 열 (타파스: tapas)”을 발생시키는 것은 원시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기술이다 (239).

u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원시 인도는 주술적 열, 엑스터시 혹은 신적 빙의의 획득 수단에 관한 수많은 태고적 전통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원전 2500년경에 해당하는 초기 청동기 시대의 신화적인 질서에 요가 전통이 동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239).

u       신화의 외면 지향적인 베다적 부분과 요가의 내면 지향적인 비베다적 부분의 직접적인 유기적 접목을 지지하는 많은 요소가 베다 자체의 수많은 신들과 원리에 의해서 공급되었고, 브라민은 그러한 접목 가능성을 재빠르게 파악하였다. 이 점에서 그들은 지금가지 세상에 알려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창조적 민감성을 지닌 신화 해석자로 판명되었다 (240).

u       이 세계 전체는 그칠 줄 모르는 소마의 희생 과정이다. 불멸성이 시간의 불 속으로 영원히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243).

 

7 위대한 반전

u       말과 동일시된 우주는 이제 말처럼 성자에 의해서 그의 마음과 가슴 안에서 희생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을 희생제의의 내재화 (the interiorization of the sacrifice)라고 부를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근본적인 요가 행위이다 (244).

u       내재화된 희생제의는 자아를 풍요하게 하고 자아의 연꽃을 피게 하고, 그 화관 위에 앉아 있는 성자를 왕으로 확립한다 (245).

u       요가는 본래적으로나 필연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부정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 요가를 분석하고 있는 최초의 경전은 요가를 초연의 훈련으로 기술하고 있다 (245).

u       오늘날까지도 일반인의 마음 속에서 요가는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보다는 대체로 어떤 (시디:siddhi)”의 획득과 관련되어 있다 (246).

u       진실한 인도인에게 이 세계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 세계가 최상의 것일 경우에도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목적은 이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피조물들과 행위들은 매력을 지닌 유혹자로 나타나서 마치 덫처럼 사람의 능력을 옭아 맨다. 따라서 숲은 갈망하는 마음의 첫 번째 휴식처이다. 그러나 숲마저도 즐거움을 가르친다. 감각 자체의 문을 닫아야 한다 (251~2).

 

8 연기의 길

u       자이나교는 오늘날 숫자가 적은 소집단에 불과하지만 과거에는 적지 않은 신봉자들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추앙하는 스승인 마하비라는 기원전 485년경에 죽었는데, 그는 붓다와 동시대인이자 그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252).

u       둘 다 브라민이 아니라 크샤트리야 출신이었으며, 결혼 후에는 속세를 떠나 금욕을 추구하는 제자의 무리를 이끄는 방랑하는 구세주가 되었다. 둘 다 욕망 (카마)과 죽음 (마라)으로부터의 해방 (목샤)이라는 교의를 가르쳤는데, 이 때의 해방은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서원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252).

u       붓다의 방법이 전적으로 중도의 길이었음데 반하여 마하비라의 길은 보다 극단적이었다. 마하비라는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물질과 정신에 관한 고대의 이원론적 개념을 지니고 있었고, 우주 유기체 안에서 두 원리의 혼합을 극단적으로 싫어하였으며, 소용돌이로부터 불멸의 정신을 건져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지녔다. 그렇지만 모든 종류의 존재에 비상한 자애심을 가졌다. 마하비라에 의하면 모든 존재 (막대기, , 공기, , 그리고 모든 것)는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의지에 의해서 무익하고 잔인한 순환, 곧 고해의 영원한 소용돌이 안에 갇혀 있는 살아 있는 정령들이기 때문이다 (252).

u       붓다는 새로운 교의를 가르쳤지만, 마하비라는 당시에는 이미 낡은 교의를 가르쳤다 (253).

u       자이나교의 우주적 이미지에서는 시간의 질서가 6개의 하강하는 살로 이루어진 바퀴로 묘사된다. 하강기- 24명의 세계 구세주가 살던 긴 시기는 네 번째 살이고 우리 자신의 시대 (마하비라의 죽음 이후)는 다섯번째 살을 구성한다-에는 선이 악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나 다음의 상승기에는 악이 선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마침내 전 세계는 선으로 돌아간다 (254).

u       현자들 (이들은 세계에 대한 헛된 지식보다는 성스러운 문헌을 읽는 데에 몰두하여 왔다)…에게는 단지 가시적인 나무, , 대양, , 경이로운 은하수와 같은 모든 천박한 영광을 지닌 이 세계가 비참한 눈물의 골짜기일 뿐이다 (257).

u       여섯 시대의 하강 시리즈가 끝나면 상승 시리즈 (우트사르피니)가 시작되며, 대폭풍우와 황폐함이 견디기 힘든 지경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7일 동안 비가 내리고, 다시 7가지 다른 종류의 비가 내릴 것이다. 그러면 땅이 새로워져 씨들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과정은 슈라바나 달 (7~8)의 어두운 보름에 시작될 것이다. … 마침내파드마나타 (“연꽃의 주”)라는 이름을 지닌 한 구세주가 태어나서 다시 자이나의 종교를 선포할 것이다 (258).

u       수많은 사지와 기관들을 통하여 덫에 걸리고 순환하는 이 영혼들은 우리가 삶이라고 알고 있는 다양한 질서의 형태를 입고 벗는다. 외관상으로는 태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실제로는 비참하고 무력한 회전을 통하여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윤회하는 것에 불과하다. 엄청나게 다양한 이러한 현상의 질서들은 자이나교도들에 의하여 상세하게 분류되는데, 이는 실제로는 심리학적으로 등급화된 놀라운 범주 체계이다 (260).

u       더구나 인간 조건에 대한 심상의 측면에서 이것은 인간의 광기가 지각했던 그 어떠한 것보다도 음산하고 기괴하다 (260).

u       위대한 우주적 존재의 허리에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12단계의 영원 회귀의 주기에 의해서 시간의 경과가 표시되는데, 우리 모두가 수없이 통과하였고 아직도 통과하고 있는 화육들은 다음과 같다 (260).

                        i.              땅의 화육

                      ii.              물의 화육

                     iii.              식물의 화육

                     iv.              , , 식물의 3가지 영역에 있는 모든 화육들은 움직일 수 없는 것들로 알려지고, 이와 다른 3가지 영역에 있는 또 다른 무수한 화육들은 움직일 수 있는 것들로 알려져 있다.

                      v.              불의 화육

                     vi.              바람의 화육

                   vii.              움직일 수 있는 것이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건, 지금까지 명명된 모든 존재들은 4가지의 생명력, 즉 몸, 수명, 호흡, 촉각을 지니고 있다. 다음의 것들은 순서대로 더 많은 부가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viii.              유기체: 동물/ 인류

u       허리 높이에 있는 화육의 존재들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지옥과 천당에도 영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처벌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위에 있는 존재들은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보답을 받고 있다 (264).

u       아래에 있는 7개의 지옥에는 무시무시한 형상들이 있다. … 그들 모두는 4가지의 주요 감정인 자만, 분노, 미혹,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264).

u       자이나교의 관점에서는 지옥의 악마이건 천상의 존재이건 그들 자체는 재생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영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순간 행복할지라도 결국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나야 하는 운명에 처하여 있다 (265).

u       그들은 4가지의 주요 범주로 구분되며 그 안에서 보다 세분된다 (265).

                        i.              지상적 질서를 유지하는 신

                      ii.              황무지 혹은 정글의 요정

                     iii.              천체

                     iv.              다층으로 된 천상의 대저택에 거주하는 자

1.         시간적 영역 내에 존재하는 자

2.         시간적 영역을 넘어서 존재하는 자

A.       우주의 목에 거주하는 자

B.        머리에 거주하는 자

u       목의 영역 밑에 거주하는 신들은 모두 성적 유희에 탐닉하고 있으며, 지옥에서처럼 여기서도 생명 영혼들은 종류별로 색깔을 가지고 있다 (268).

u       지하만이 아니라 지상에도 다양한 영혼들이 상상력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구적 의미의 혹은 초기 베다적 의미의 유일신이나 신이 아니다. 그들은 빛나는 천상에서 깃발을 휴대하는 최고의 승리의 날에도 일시적으로 좋은 자리를 잡고 있는 영혼들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생에서 지은 선업 때문에 잠시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공덕이 다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 운명에 처하여 있다. 여기에는 처벌과 보상을 내리기 위해서 이들의 행위를 헤아리는 어떠한 심판자도 없다. 행위의 결과는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폭력 행위는 자동적으로 영혼 속에 무게와 어둠을 집어넣으며 친절한 행위는 영혼의 무게와 색깔을 가볍게 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자동적으로 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라간다. 이 세계의 창조주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영원 전부터 현재의 상태로 존재해왔던 것이다 (268).

u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일정해야 하는 법칙에 대한 상당히 발전된 탐구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269).

u       자이나교의 신화는 살려는 의지를 제거하고, 우주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기 위하여 도안된 것이다. 그리스 인들에게서도 금욕적인 경향이 있었다. 오르페우스주의, 피타고라스, 엘레아 학파 그리고 플라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그 어디에서도, 또는 우리가 아는 우리의 주제의 역사 그 어디에서도 자이나 종교의 절대적 아니!”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발견할 수 없다 (270).

u       그리스인이 사용한 코스모스라는 용어는 공간과 힘의 장이 아니라, 잘 정의되고, 유클리드적이고 측정 가능하고 지각 가능하고 조화로운 질서를 지닌 신체의 총합을 가리켰다. 유클리드의 숫자는 경계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슈펭글러가 주장하였듯이, “고전 문화는 점차 작은 것의 문화가 되었다” (270).

u       한편 인도적 심성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 그리스인은 우주에 대한 독해를 가시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그의 눈이 인식할 정도로만 그것을 공간 속으로 압착시켜 넣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도인은 공간 (아카사)으로 우주론을 시작하였지만 어떤 자도 볼 수 없었던 우주를 산출해냈다 (270).

u       세계의 슬픔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성자는 그 안에서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우주의 섬광만을 볼 수 있었다. 이 우주 안에서는 천당마저도 지바를 붙잡아 다시 비참한 무대로 유혹하는 향기로운 황금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의 빛 속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격렬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는 영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며, 이는 무한한 개인에게 무한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270~1).

u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 죽음 안에 있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도인의 독특한 힘과 우울은 인도적 심성 자체의 한 부분이다 (271).

u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으며, 시간이 존재하기를 멈추는 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이 슬픔의 세계는 영원히 슬픔의 세계로 존재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눈에 비치는 슬픔은 슬픔 전체의 넓이에서만이 아니라 깊이에서도 결코 그 거대함을 대표하지 못한다. 인간과 그 주위에 있는 야수, 식물 세계와 그것을 지탱하는 토양, 바위와 물, , 바람, 떠다니는 구름, 그리고 발광체를 지닌 공간 자체는 영원히 존속하고 영원히 미혹당하는 육체와 비참함의 덩어리- 그 존재 전체가 우주이다-의 가장 작은 파편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271).

 

9 불꽃의 길

u       수백만 번의 출생을 통하여 축적된 승려의 업보도 금욕에 의해서 소멸된다. 더 이상의 유입이 없다면 (271).

u       그러므로 자이나교 스승의 첫 번째 과제는 제자들 안에 있는 업의 유입을 막는 것이다. 이는 삶의 활동 영역을 점차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에 의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제자가 마침내 모든 감각의 문을 잠그었을 때, 두 번째 과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업보를 금욕 행위를 통해서 불태우게 하는 것이다.자이나교의 요기는 내적인 격렬한 열을 통하여 실제로 카르마의 물질을 태움으로써 이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가볍게 한다고 한다 (271).

u       초기 단계의 수도 생활에서는 노여움이 가라앉으며, 자만, 기만, 탐욕이 단순한 흔적 정도로 줄어든다. 수면 욕구도 극복되며 명상의 힘이 증대하고 새로운 기쁨이 생긴다 (274).

u       이제 자만이 사라지고 명상의 힘이 현저하게 향상된다. 여자는 이 단계를 넘어 더 나아갈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 홀림, 혐오, 두려움, 싫어함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미혹 (마야)은 여자의 마음에서 근절될 수 없다 (275).”

u       여자는 신앙의 측면에서 순수하고, 심지어 수트라 연구에 몰두하여 놀라운 정도의 금욕을 행할 수 있지만, 업보에서는 여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275).

u       다음으로 억제하여야 할 감정은 삶의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욕구이다. 이 욕구는 자이나교도가 미혹이라 부르는데, 여자는 결코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러한 욕망이 사라질 때에 성품은 실제적으로 중성이 된다 (275).

u       이러한 경이로운 정화를 행하였을 때 성자의 유머는 완전히 제거되고 그의 인간성의 마지막 기색도 소멸된다. 그러나 신체의 화학 작용은 생명- 영혼과 물질의 근본적인 연계 장치에 아직도 부착되어 일어나고 있다 (275).

u       이 지배력이 파괴도지 않고 단지 약화되거나 이완된다면, 절대적 자유로 향한 최종적 탈출이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금욕적 집중이 조금만 실패하여도 거의 죽었던 불이 다시 불꽃으로 타오를 잠재적 위험성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276).

u       이 단계를 달성한 자, 홀림의 소멸상태를 획득한 자에게는 2개의 단계만이 남아 잇게 된다. 첫 번째는 요가 안에서의 자기 동일성의 단계이고, 두 번째는 요가 없는 자기 동일성의 단계이다 (276).

u       그 설법 (우주의 설법) 안에는 슬픔을 넘어 저편으로 가기 위한 4가지 규율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들은 바로 자비, 경건, 금욕, 덕성이다 (277).

u       해방되어 무게가 없는 영혼의 단계는 어떠한 기도에 의해서도 도달할 수가 없다. 그것은 훨씬 아래에서 순환하고 있는 커다란 소용돌이와는 관계가 없다. … 그것은 단지 완전할 뿐이다 (278).

 

<5장 불교 인도>

1 서양의 영웅과 동양의 영웅

u       40년 전에 마드리드 대학의 아랍 어 교수이자 가톨릭 신부인 미구엘아신 이 팔라시오스는 단테의 <신곡>에 모슬렘의 영향이 있음을 밝혔다. 이는 유럽의 학문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279).

u       기원전 3500년에서 2000년경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변에서 사제 국가의 상징적 질서에 근거하여 번영을 구가하던 수메르 도시들은 인류 최초의 문명 중심지였다. 이곳의 도상학에서 동양과 서양이 공유하는 신화적 우주상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개인적 삶의 존엄성이 매우 독특하게 강조되어 각 영혼은 1번의 출생, 1번의 죽음, 1번의 운명, 1번의 인격 성숙만 지닐 수 있었다. 따라서 천당이건 연옥이건, 지옥이건 간에 그곳을 방문하는 공상가들은 죽은 자를 쉽게 알아본다. … 반면 동양에서는 그러한 인격의 지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관심의 초점은 개인이 아니라 윤회하는 지바, 곧 영혼이다.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개체성도 부여되어 있지 않으며, 영혼은 파도를 통과하는 배처럼 하나의 인격으로부터 다음 인격으로 나아갈 뿐이다 (281).

u       서양의 전형적 영웅은 하나의 인격이다. 그는 시간성의 고뇌와 신비에 심각하게 연루되는 운명을 지닌,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존재이다. 이와 달리 동양의 영웅은 영혼이다. 그 영혼은 본질적으로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영원성의 이미지일 뿐이다 (281).

u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따라서 서양의 교리-를 동양과 분리시킨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이 시점에서 지적할 필요가 있다 (282).

                        i.              첫번째의 가장 급진적인 혁신은 퇴행적 세계 주기가 아닌 발전적 세계 주기이다. … 여기에는 영원 회귀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ii.              이 신화를 특히 인도 신화로부터 분리시키는 두 번째의 급진적 혁신은 개인에게 부여하는 책임성에서 나타난다.

                     iii.              마지막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에 본질적인 세 번째 원리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길을 초연이 아니라 참여의 원리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을 인도의 세계관과 단지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것으로 만든다.

 

2. 새로운 도시 국가들: 기원전 800~500년경

u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00년경 활동)는 삶을 영원히 존재하는 불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붓다 (그와 동일한 연대에 속함)불의 설법에서 말한 것과 같다. 우주의 근본 요소에 대한 가르침은 두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89~290).

u       인도인만이 아니라 오르페우스주의자들도 우주란의 이미지를 알았고 그들은 우주적 무용수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알았다. 이미 탈레스 (기원전 640~546년경)의 말에는 영혼을 소유한 우주가 정령들로 가득 차 있다는 관념이 보이고 있다 (290).

u       사냥이라는 낡은 필요성만이 아니라 토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약간 세련된 도시 인구가 출현하였다. … 이들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최초의 체계적인 심리학자였으며, 아마도 여러 가지 면에서 최상의 심리학자였다 (291).

u       이제 주요 관심으로 대두한 것은 더 이상 주술적인 것 (날씨, 수확, 재화의 풍요, 그리고 장수)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것 (심리의 이완과 조화)과 사회학적인 것 (사제 전통을 대신하여 세속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와 개인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완벽한 신화 발생적  지대가 확립되었다 (291).

u       따라서 같은 종류의 심리학적 포획이 모든 곳에 나타날 것 같았으며, 사실 제의화된 절차 및 그와 관련된 신화의 배경 속에 그러한 것이 이미 침전되어 있었다 (291).

u       그러한 예비 지대에 있던 관념과 실천들은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났으며, 섬광처럼 빠르게 확산되었다. 칼 케레니 박사는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에서 유행한 오르페우스의 영적 입문 의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족에 속박되어 있는 광범위한 인구의 원시적인 제의의 배경을 벗어나,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종교적 욕구에 맞게 자신들의 예술을 수정하여 내놓았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입문 의례의 의미와 성격이 변화되었다. 그것은 저차원의 의례주의적 방향과 순수한 고차원의 영적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후자의 영역에서는 철학자들이 선구자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피타고라스 학파, 후에는 다른 자들이 나왔다. 그렇지만 모든 철학자들이 엠페도클레스식으로 행동하였던 것은 아니다 (291).

u       인도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났다. 죽음에서의 재생, 금욕, 심리학적 초연, 신화적 동일시와 같은 근본 주제들을 제공하는 전 아리안 시대의 도시에서 나타나는 낡은 의례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가르침이 출현하였다 (292).

u       인도와 그리스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 위치한 페르시아에서도 초기의 이원론적인 신화적 철학의 근본 모티브들이 갑자기 새로운 형태로 출현하였다. 이는 거의 동시에 출현하였고 곧바로 확산되었다 (292).

 

4 신화적 영원화

u       붓다의 신화는 태양의 신화이다. 그는 샤카족의 사자라고 불리며 사자 왕좌위에 앉아 있다. 그의 가르침의 상징은 태양 바퀴이다. 그의 교의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상태를 적합하게 나타내는 유일한 이미지는 빛이다 (295).

u       카필라라고 하는 이름은 붉은 자를 의미하며, 태양의 별칭이고 수정처럼 빛나는 영혼을 상징한다 (297).

 

5 중도

u       그는 (고타마 붓다) 내향성의 힘에서 카필라조차 넘어선다. 카필라가 대상 세계를 사라지게 하였다면, 그는 대상 세계만이 아니라 주체마저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298).

u       자신의 존재 (사트바)가 깨달음 (보디)인 보살 (보디사트바), 미래의 붓다들은 세상의 맛을 안 이후에는 항상 숲으로 향하였다 (300).

u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과 같은 모든 욕망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명상의 첫 번째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마음이 평안한 상태로 사색에 잠기고 있었다 (305).

u       모든 존재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로 끝나게 마련이다 (307).

u       몸이 행동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마음에 의한 것이므로 통제해야 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사유이다. 사유가 없다면, 몸은 통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물은 죄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309).

u       이러한 논리는 젊은 왕자가 카필라의 심리학파에서 빌린 것이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 의하여 자아니교를 논박하였으며, 나아가 이 은둔의 숲의 사람들이 행하는 조잡하고 훨씬 더 잔인하고 철저히 육체적인 요가를 통한 극단적인 고행을 반박하였다 (309).

u       여기서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사유에 대한 영향만이 아니라 공덕에 대한 영향이다 (309).

u       시간적 존재를 형성하는 근본 원인에는 3가지가 있다. 무지, 행위, 욕망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서로간에 전화된다. 이러한 사슬 속에 머물러 있는 자는 사물의 실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 “현자는 4가지 것을 안다. 명백한 것과 불분명한 것, 미몽과 깨달음. 이것들을 알면 불면에 이를 수 있게 된다.” (313).

u       늙은 성인 아라다는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먼저 탁발 생활을 하여라. 감각을 억제하는 생활을 하면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 때 명상의 첫번째 단계인 새로운 황홀경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현자는 계속하여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간다. 이 단계에서는 보다 높고 보다 빛나는 황홀경과 즐거움을 경험한다.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면, 즐거움이 없는 황홀경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단계에서 멈춘다. 그러나 네 번째 단계의 명상, 즉 황홀경이 없는 명상이 있다. 진실로 현명한 자는 이 단계도 넘어서 육체의 모든 감각이 제거된 상태로 나아간다.” (313).

u       이제 육체의 텅 빔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상 속에서 자기 몸의 모든 구멍을 이용하여 육체의 텅 빔을 느껴라 (313).”

u       어떠한 종류의 존재이든 실체적인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고 모든 존재에 대하여 자비를 느꼈다. 그는 고통을 넘어서는 길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이미 쾌락 (카마)에 탐닉하는 것과 고행 (마라)에 몰두하는 것 사이의 중도를 제시하였다. 이제 서로 충돌하는 이 두 극단의 바위 사이를 통과하는 첫 번째 열매로서 중도의 보다 깊은 영역을 맛보고 있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나트만)는 깨달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 (카루나)였다 (315~6).

u       우리는 이를 불교의 근본 정신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 구원되고 해방되고 혹은 발견되어야 할 윤회하는 영웅-영혼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 전체는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는 어떠한 자아, 존재,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와 반대로 느껴야 할 유일한 감정은 자비 (카루나)이다. 고통 받는 모든 존재가 실제로는 어떠한 존재도 아니라고 하는 역설적이고도 전달하기 힘든 진리를 깨달을 때, 자비의 감정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316).

u       요컨대 불교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은 단지 다양한 영적 나침반의 방위로부터 보리수로 나아가는 길일 뿐이다 (317).

u       각자가 나무를 스스로 발견하고 그 밑에 앉은 다음,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향한 길을, 고독한 사색을 통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여야만 한다 (318).

u       모든 것은 공덕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생을 통하여 공덕을 쌓음으로써 나는 처음으로 보살이 되었고, 이제는 승리자이자 전지자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공덕을 쌓도록 하라 (318).

u       여기에 소승의 길에 대립하면서 대승의 길의 핵심을 보여주는 세 번째 요점이 있다. 이것은 보살의 길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숲으로 퇴거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는 길이다. 다시 말해서, 보시, 무한한 보시, 곧 자신의 삶의 과제를 이기심없이 행함으로써 무아의 진리를 경험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318).

 

6 열반

u       철학적 교류의 수준에서 동서양이 최초로 의미있는 만남을 가진 것은 서양인 중 최초이자 가장 활력 있는 인물인 젊은 알렉산더 대왕이 동양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320).

u       인도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327년에 이미 인생의 목적에 대한 근본 개념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322).

u       하인리히 치머가 한때 언급하였듯이 라디오 방송 WOB: 곧 붓다의 지혜 (wisdom of Buddha)는 항상 방송되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수신기이다 (324).

u       붓다는 공덕에 의하여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였다 (324).

u       미륵은 고타마 사후 5천 년이 지난 후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행복한 신들의 천계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수많은 신 및 보살들과 함께 초전 법륜에 참가하기 위해서 내려왔던 것이다 (324).

u       붓다는 미륵과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인과에 종속되는 모든 것은 신기루, , 물에 비친 달, 메아리와 같아서 제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존하는 것도 아니다. 법륜 자체는 그것도 아니고 그것이 아닌 것도도 아니다. 이 법을 듣고 기쁨으로 맞은 후에, 이제 행복한 삶 속에서 영원히 이것을 실천하라. 이 길이 모든 붓다를이 따라간 대승의 길이다. 붓다, 보살, 프라티에카 붓다 (가르치지 않는 붓다), 아라한 (깨달은 성자)을 숭배하면, 마음 속에서 불성의 관념이 일어나고 그의 공덕을 통하여 법이 선포될 것이다 (325).

u       큰 마하 나룻배인 대승은 모든 사람이 탈 수 있고, 실제로 타고 있는 배이다. 그러나 이 배는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이미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325).

u       대승 불교에서는 승려, 아라한, 붓다에 대한 존경이 끝까지 그 특성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살 이미지로 상징되는 세계의 경이와 세계의 긍정에 관한 주제가 점차적으로 강화되었다 (326).

u       피안의 지혜를 다루는 대승 불교의 문헌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형태를 지닌 모든 것은 허깨비이다. 모든 형태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때 붓다를 보게 된다. … 만물은 붓다이다.” (326).

u       요가의 많은 훈련들은 샤머니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327).

 

7 위대한 고전의 시대: 기원전 500~기원후 500년경

u       사실상 후기 인도 문명은, 불교의 관점의 공이건 브라만적 관점의 공이건 간에, 만물 속에 작용하는 공의 에너지의 표현으로 꽃피었기 때문이다 (332).

u       붓다의 시대로부터 굽타 시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 (기원전 500~기원후 500년경)는 인도만이 아니라 문명화된 세계에 대해서도 위대한 고전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332).

u       로마,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잇는 육로와 해상로는 이 시기에 교역이 계속 증대함에 따라 새롭게 개통되었으며, 따라서 그 어느 쪽에서도 지역 신화가 고립되어 발전할 가능성은 없게 되었다. 관념의 교환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332).

 

8 3명의 불교도 왕

u       찬드라굽타의 손자가 위대한 아쇼카였다. 그는 기원전 268~232년경 사이에 통치를 하였다. … 최초의 불교도 왕이 되었다 (334).

u       아쇼카 시대의 탑도 아득한 과거, 특히 신석기 시대의 태모신 신앙을 암시하고 있다 (336).

u       불교도의 세계 포교는 아쇼카이 후원 하에서 시작되었다 (339).

u       전반적으로 불교적인 성격을 띠는 이러한 세계에는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인도- 아리안, 드라비다 그리고 그리스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340).

u       그리스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의 하나인 메난도로스 (기원전 125~95년경)는 불교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 불교 신앙의 넉넉한 후원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법륜이 그 왕조의 동전 위에 새겨져 있다 (341).

u       <밀린다 왕문경>이라는 중요한 초기 불교문헌 (아마도 일부는 기원전 50년경의 것이다)이 있다. 여기에서 왕 (밀린다= 메난도로스)은 불교 승려 나가세나와 논쟁을 벌이지만 마침내 패하여 불교로 개종한다 (341~2).

u       자아에 억눌린 채 이곳에 온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고통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아는 우리에게는 이 지상의 모든 삶과 존재 방식이 열반의 환희이다 (344).”

u       하인리히 치머가 처음으로 지적하였듯이, 불상을 등장시킨 이러한 현상은 근본 교리의 영역에 새로운 개념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개념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안다. 그것은 대승의 개념이며, 간다라 건축의 시기에 <반야경> 계통의 문헌에 기록되었다. 이 문헌에 의하면, 어떠한 세상도 존재하지 않았듯이, 세상을 구원할 어떠한 역사적 붓다도 존재하지 않았다 (346).

u       환상적인 역사적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열반에 들어갔지만, 대열반까지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위하여 게속해서 살아야 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붓다는 환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다 (346).

u       깨달은 자는 위대한 나룻배를 타고 출발한다. 그러나 그의 출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우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아무 곳으로부터도 출발하지 않는다 (348).

u       정토는 비교 신화학자에게 매우 흥미있는 대승 불교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서양의 낙원 개념과 매우 비슷하지만, 영적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마지막의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한다. 그것은 열반을 향한 일종의 출발점이다. … 우리는 아미타의 정토만이 아니라, 미륵, 바이로차나 (법신불) 그리고 고타마의 정토에 대해서도 듣는다 (350).

u       몰만 박사는 아미타바와 아미타유스라는 이름이 페르시아의 창조신이자 빛과 영원한 시간의 주인 아후라 마드자의 일반적 특성과 상응함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그는 페르시아의 종교적 영향 (알다시피 로마 군대와 함께 고울과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친)을 받은 모든 지역에서 아비타바의 삼신상, 2명의 서 있는 대보살 사이에 앉아 있는 아미타바와 유사한 것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352).

u       인간의 운명에 대한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의 견해를 비교하면, 양자의 근본 주제와 최고 관심은 시간적 존재로 하여금 영원성 속에서 최고선을 경험하도록 하는 준비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두 체계를 좀 더 가까이 놓고 살펴보면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양자의 하층 영역을 비교할 경우, 위대한 구원극에 관한 기독교적 이미지에서는 동물, 식물, 무생물의 존재 영역이 그 구성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354).

u       요약하자면, 서양의 인간/신 경계는 궁극적으로 오이디푸스적 상황의 관점에서 우주를 읽게 만들지만, 동양에서는 이러한 신인 동형론적 질서가 이보다 더 큰 구조의 앞마당에 불과하다 (355).

u       그러므로 서양의 연옥 이미지에서는 성취하여야만 하는 최고선, 다시 말해서 궁극적 목적이 천당에서의 지복이지만, 대승 불교의 아미타 이미지에서는 지복 자체가 정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그것은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형상으로 된 신, 신의 형상으로 된 인간, 그리고 마음에 의해서 지각된 우주를 넘어가야만 한다 (355).

u       명상하는 붓다 자신은 천상의 어떤 곳, 심지어 어떤 실제적인 극락의 어딘가에 있는 최고의 존재가 아니라, 모든 현상성에 내재하는 신비의 형상이고 가면이고 표현이다 (356).

u       일몰 시에 서쪽을 향하여 앉은 그녀는 지는 해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태양의 이미지를 기억해야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태양의 지각, 곧 제 1 단계의 명상이었다 (358).

u       거기로부터 고통, 비존재, 무상, 무아를 의미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이것이 바로 제2단계의 명상인 물의 지각이었다 (358).

u       잠잘 때는 예외이지만 눈을 뜨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이 사라지면 안 되었다. “이러한 지각의 단계에 도달한 자는 극락을 희미하게 본 자로 선언된다고 붓다는 말하였다. 극락에 대한 이러한 지각이 제3단계의 명상이다 (358).

u       다음 단계의 명상은 정토에 있는 보석 나무를 대상으로 한다 (4단계). … 열반은 목적이며 마음이 이제 해체되기 시작하고 있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해체하여야만 한다 (359).

u       황금 광선은 소망하는 보옥에서 100가지 보석 빛깔을 띠는 새로 되어 불, , 승을 화음에 맞추어 노래한다. 이러한 것이 제5단계의 명상, 곧 훌륭한 성질을 지닌 8개의 물에 대한 명상이다. 다음에는 아미타유스 붓다가 오기 전의 여섯번째이자 마지막에 해당하는 명상이 뒤따른다 (361).

u       이 명상이 완료되었을 때, 극락의 보석 나무, 보석 땅, 보석 호수 그리고 보석 공기를 희미하게 본 것으로 간주한다. 붓다는 말하였다. “이것을 경험한 자는 그를 무수한 윤회로 이끌고 갔을 모든 죄를 갚았으며, 이제 정토에서 태어날 것이다 (361).”

u       요컨대 붓다가 되는 것은 너 자신의 마음이다 (362).

u       이러한 지각의 단계에 도달하였을 때에 시냇물, 찬란한 광선, 수많은 보석 나무, 보석 오리, 보석 거위, 보석 백조가 불법을 듣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명상 속에서 가리워져 있건 더 이상 그렇지 않건 그 뛰어난 불법을 들어야만 한다 (365).

 

<6장 인도의 황금시대>

1 로마의 유산

u       모든 새로운 예술과 과학, 그리고 신학적, 사회적, 미적 질서를 그들 자신의 천재성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인 신화적 과거의 신들과 성자들에게 돌리는 경향이다 (369).

u       5세기 무렵 인도에서 나타나는 환상의 장대함과 정교화는 전적으로 예외적인 것이다. 거기에서는 종교적 신념과 의례, 도덕 질서와 사회 체계가 갱신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각 예술, 문학, 연극, 음악, 춤도 번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발전은 영원한 인도의 부흥을 나타내는 것으로 합리화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이전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문화는 인도의 것이 아니라 로마의 것이었다 (369).

u       기원후 1세기경 인도와 로마의 생생한 교역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업적 및 문화적 영향이 양방향으로 흘렀다 (371).

u       … 5세기 초의 인도에서는 시대를 가르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첫 번째 원인은 로마에 있었다. … “피난민들은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고,”, “그러한 땅은 지중해와 오래된 교역 관계를 지닌 인도였다 (372).”

u       그러므로 찬드라굽타 2세가 통치하던 관용적 분위기의 인도에서는 건축과 조각을 비롯하여 문학적, 사회적, 종교적, 철학적 형식에서 참으로 놀라운 재편이 갑자기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전의 인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며 수백가지 측면에서 후기 로마와 관계를 맺고 있다 (372).

u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다. “그처럼 많은 새로운 관념. 기술, 형태가 흡수되어 실제로 아주 새롭고 가장 중요한 인도 예술의 장이 열렸지만, 그것들은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 모든 것은 부수어져 인도적 개념으로 번역되고 인도적 원리 안에서 재건되었다 (373).”

u       헬레니즘- 로마적 유형론에 대립하는 인도적인 유형론이 발전함으로써, 이것은 서양과는 완전히 다른 삶에 봉사하였다 (374).

u       그 결과, “우리 시대에 나찌즘과 공산주의만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역사의 재서술이 이루어졌다. 실제의 과거는 망각되고 신화적 과거가 투사되었던 것이다 (374).

u       대담한 중국인 순례자 법현이 인도에 도착하여 놀란 것은 바로 이 활기찬 절정의 시기였다. 이 황금 시대의 인도는 얼마 동안 인류의 문명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374).

 

2 신화적 과거

u       인도 황금 시대의 중요한 신화적 자료는 서사시 <마하바라타>이다 (374).

u       불교의 아미타 신화에서도 빛과 참된 지식의 원리는 윤리적이고 실체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는 빛의 궁극적 승리가 우주적 관점으로 표상되지 않는다. 영원한 주기를 지닌 불교의 우주에서는 순환이 끝나는, 시간 너머의 시간을 위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소멸이란 개선될 수 없는 윤회의 삶으로부터의 초탈이라는 점에서 심리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의 원리는 회전하는 어둠의 원리보다 더 참되고 더 실제적인 질서이다. 어둠의 원리는 무지와 욕망의 단순한 기능이며, 그것들에 구속되어 맹목적인 주문에 시달리는 행위의 기능이다. 결과적으로 서양의 신화에서 사회적 질서와 형이상학적 질서가 동일시되듯이, 아미타의 신화에서도 심리학적 질서와 형이상학적 질서가 동일시된다 (381).

 

3 위대한 신앙의 시대: 기원후 500~1500년경

u       불교는 본래 포기의 가르침이며, 피안을 찾아서 수도원으로 은거한 삭발 탁발승이 불교를 전형적으로 대표한다. 이와 달리 굽타 왕조 부흥기에 부활한 브라만교는 수도원의 목적만이 아니라 세속 사회의 유지에도 똑 같은 관심을 보였다. 이 맥락에서 다르마라는 말은 불교에서처럼 일차적으로 초연의 교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우주적 법칙과 그 과정을 가리킨다. 불교 신화에서는 세계 질서의 성스러운 형상과 유지에 관한 것을 전혀 들어볼 수 없으며, 단지 현상성의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는 구세주의 모험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반면 브라만교의 신화에서는 이중적 교훈, 즉 다르마와 요가, 참여와 초탈의 교훈이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387).

u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을 절대적 무로 보며,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지의 힘에 의해서 상상된 현상성의 세계는 아무런 토대도 지니지 않은 신기루처럼 떠 있으며, 따라서 불교의 유일한 관심은 그것의 해체이다.무지가 생겨나므로 업이 생겨난다. 무지가 제거되므로 업이 소멸된다.” 이것이 소승 불교 팔리 경전의 표어이다 (387).

u       이와 달리 정통적인 베다-브라만-힌두적 체계는 만물을 자기를 내어주는 힘 (브라만)의 현현으로 본다. 이 힘은 초월적이지만 각 존재의 자아 (아트만)로서 만물 속에 내재하여 있다 (387).

u       이러한 존재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길은 불교적인 길과 비슷하게 보인다. 그 길은 나 (아함)를 포기하는 자아-희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388).

u       힌두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우주 질서를 신적인 것으로 긍정한다. 그리고 사회는 우주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인도의 사회 질서는 전통 사회의 질서도 영원하다. 사회적 장에서는 인간의 자유나 창조성에 대한 관용이 결여되어 있다. 진보적인 그리스나 로마 혹은 근대 서구에서와는 달리, 거기서는 사회를 지성과 변화에 따라 인간에 의해서 진화되어온 질서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법칙은 자연적인 것이지 결코 제안되거나 향상되거나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 , 식물, 동물이 각자의 본성에 깃든 법칙을 따르듯이, 각 개인도 그들 자신의 출생의 본성, 곧 브라민,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혹은 파리아 (천민)의 본성을 따라야 한다. … 그러므로 , 의무, 을 뜻하는 다르마라고 하는 인도어는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388~9).

u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는 위대한 개인이라고 하는 관념은 이러한 체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389).

u       굽타 시대에 이러한 체제의 통일성은 최초의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기원후 510, 젊은 지도자 미히르굴라가 이끄는 에프탈 훈 족이 북서쪽 지역을 침략하여 굽타 왕조를 조공 국가로 만들었다. … 2세기 후 그 막이 다시 올라갔을 때에는 무대 자체가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389).

u       그 동안 서양으로부터 새로운 신종교 운동이 도래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후기 굽타 시대의 태양신 수랴에 대한 숭배였다 (390).

u       그러나 이 무렵에 전적으로 새로운 레반트 신앙이 열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 7세기 중반에는 모하메드의 종교가 중동 전체를 정복하였다. 인도에서 그 종교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500년이 더 필요하지만, …. 참으로 많은 새로운 운동이 이슬람의 전파자들에 의해서 힌두의 날개 안으로 들어왔다 (390).

u       요컨대 훈 족의 침입 이후에 인도의 무대는 새로운 정신에 의하여 지배되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낯선 문화에서 오는 영향력의 증대,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굽타의 고전적 형식을 유지하려는 그 반대의 노력에 의해서 이 시기는 특징지어진다 (391).

u       인도 문화는 봉건적- 성직자적 성격, 곧 중세적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게 되었다. 초기 굽타 시대에는 거짓으로 귀족 통치를 부흥시키고 복구시켰지만, 이제는 그러한 귀족 통치 자체가 신성한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점증하는 야만화에 대항하여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방어하는- 엄청난 노력을 통하여- 시대의 필수 불가결한 모델이었다 (391).

u       이 시기는 로마의 몰락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유럽의 고딕 시대에 해당한다. 비잔티움의 절정기이자 이슬람의 전성기에 속하는 이 시대는, 유스티니아누스 (483~565)의 세기로부터 출발하여 한편에서는 투르크 족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도 (1453), 다른 한편에서는 콜룸부스의 후원자에 의해서 무어 족의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시대에까지 걸쳐 있다. 중국에서는 수당 왕조로부터 명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중국적 학문의 틀 속에 있는 불교의 도래 (552)로부터 아시카가 시대의 절정기 (1392~1568)에 이르는 모든 발전 과정이 이러한 천 년의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391).

u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서양으로부터 동양으로, 이렇게 거시적으로 보면, 이 시대는 모든 곳에서 종교적 봉헌에 기초한 예술이 만개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392).

u       이 시기의 사유 방식은 대체로 창조적이기 보다는 형식주의적이었으며, 신격화된 과거의 전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92).

u       인도에서는 사원의 크기가 증대하고 신앙 서적의 양이 늘어났지만, 그것들의 생명력은 점차 쇠락하였다. 감상주의와 표절이 사유와 정서를 대체하였다. 통속적 기예와 통속적 경건이 지배하였다. 마침내 종교적 영감을 빼앗긴 예술은 은밀한 방식으로 에로틱하게 되거나 아주 무표정하게 되었다 (392).

u       네팔과 티벳처럼 문명이 낙후한 오지에서만 인도의 예술 전통은 중세적 의미의 도상학으로 오늘날까지 실제로 살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 그대로 모든 활력과 풍부한 형식을 지닌 참된 인도 예술의 척도로 여겨질 수는 없다 (392).”

 

4 환희의 길

u       열반의 경계는 윤회의 경계이다/ 그 둘 사이에는 추호의 차이도 없다 (401).

u       보이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 진행하는 것은 결국 정지한다/ 붓다는 어디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401).

u       티벳의 오래된 기도 바퀴에 쓰여진 위대한 기도문인 옴마니파드메훔 (연꽃 (파드메) 속의 보석 (마니)은 한편에서는 윤회 (연꽃) 안에 열반 (보석)이 내재함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음 (보석)이 열반 (연꽃)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402).

 

5 이슬람의 침공

u       성스러운 힌두 도시 베나레스는 1194년에 함락되었고, 주 전체가 불교도의 거주지였던 비하르는 1199년에 함락되었다. 거기에 있던 나란다 대학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6만 명의 승려가 칼끝에서 가볍게 쓰러짐으로써 인도에서는 불교의 마지막 불꽃이 꺼져버렸다 (419).

u       이처럼 북부 지역 전체를 정복한 이슬람의 언월도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하여, 마침내 1565년 힌두의 마지막 남은 수도이자 찬란한 도시인 비자야나가르를 함락시켰다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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