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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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브리지스 William Bridges / 이명원 옮김)
원제: The Way of Transition. 2000.
* 저자에 대하여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10인 중 1명인 읠리엄 브리지스는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3년 미국 문명사에 관한 논문으로 브라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문학 교수로 하버드, 콜롬비아, 브라운대학교에서 재직했다. 1970년대 중반, 동부에서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부로 이주한 후, '전환 관리 transition management' 분야로 활동영역을 옮기고 1981년 월리엄 브리지스&어소시에이트 사를 창립하여 워크숍과 강연을 통해 변화와 전환이라는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개인과 조직에게 전환기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는 조직의 변화 및 변화 관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여러 기업에서 조직 합병, 구조조정, 지도부 교체, 문화 변혁 등과 관련된 일을 지원해왔다. 인간성심리학협회의 대표를 지냈고, 베스트셀러 『전환』과 『전환 관리』를 포함하여 10권의 책을 저술했다.
아내의 암투병과 죽음으로 보다 개인적인 성격의 전환에 대해서 다룬 이 책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을 저술했다.
브리지스는 스스로를 뻣뻣하고 합리주의자였으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그러나 왠지 모를 그늘이 있는 여자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성격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상당한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들은 저자가 스물여섯 살, 아내가 열아홉 살때 결혼하여 37년 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세 딸을 낳고 길렀다. 영문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부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결혼 생활을 통해, 그리고 아내와의 때로는 좋았고 또한 때로는 힘들었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암 발병 직전, 아내의 불륜으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또 그 상처를 통해 자신이 용서하는 법을 배웠음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브리지스에게 결혼과 아내의 의미는 ‘그녀는 나를 내 자신으로 돌아가게 했다’(p.275)와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p.167)는 두 문장으로 표현된다.
브리지스는 아내가 암이 발병하고 이년 정도의 투병생활 후 사망하자, 큰 상실감을 겪지만 곧 열여덟 살 연하의 수잔 미첼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고 일 년 반 만에 재혼한다. 그의 나이 63세의 일이다. 그는 또 다른 변환을 통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변화의 첫째 요건은 익숙했던 방식을 버리는 과정이다.
나아가 자신의 예전 모습까지 버려야 한다.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만이 아니다.
과거에 성공적으로 해왔던 업무방식까지도 버리라는 말이다.
경험한 전체 세상, 정체성, 심지어는 현실 자체를
몽땅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윌리엄 브리지스 (William Bridges)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 전환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수업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학 작품은 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이를 읽는 독자들의 이해와 감상이 변한다. - 조지 엘리엇 - [6]
인생을 살다 보면 영영 떠났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6]
쉴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이 주었던 가치와 목표의식이 그리워졌고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일이 주었던 창조적인 느낌들이 그리워졌다. [7]
일을 중단했다는 것은 생계 수단을 포기했다는 것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계속성을 지니는 것 하나를 잃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8]
전환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정체성 역시 깨뜨렸다. [9]
내가 경험한 방향 상실은, 이를 만들어내 비동일화나 각성처럼 최종 단계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곡과 같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11]
이 책은 내 가 60대에 접어들고 21세기가 시작된,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있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에 서 있는 나에게 전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며 어떻게 생각되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 이상한 텅 빈 상태를 나는 중간지대라, 곧 림보Limbo라고 부른다.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다. [12]
* 고성소[古聖所, limbo]: 죽은 사람들 중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
01.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 - 변화와 전환의 차이점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이다. -앤 머로 린드버그 [14]
무엇인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변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이든 끊임없이 재조정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변화의 수단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14]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
전환이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리고 다시 잡게 되는 그 중간에 이전의 방식도, 그리고 새로운 방식도 통하지 않는 창조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전 것의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 이 세 가지 과정이 전환이다. [16]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전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놓아버릴 수가 없어서 전환을 거부한다. [17]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곧장 진행되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면, 전환은 중간지대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7]
인생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자서전 소제목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의식적인 변화, 즉 이직, 생소한 곳으로의 이주, 이혼 등이 아니라, 천천히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두루 영향을 미치는 감정상의 변화들이다. -나딘 고디머- [18]
엄밀히 말하자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전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전환을 ‘반작용의 전환’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아내가 죽은 후에 내가 겪었던 전환이 바로 반작용적인 전환이었다. 전환은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고 그것은 변화를 통해 내가 도달한 기이었다. [19]
발전적 전환이란 외적인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깃든 자연적이고 내재적인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청소년기에 겪는 전환은 발전적인 전환이다. 중년의 전환도 그렇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심오한 변화도 역시 발전적인 전환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점진적으로 깨닫든 아니면 갑작스레 깨닫든,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 [19]
한때 마음속에 그저 그늘진 존재에 불과했던 것들이 주목을 끌고 당당히 시선을 끌게 되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19-20]
우리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상태는 우리의 삶이 마치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래된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과 아직도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존재 방식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뒤섞여 다가오고, 믿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대혼란 상태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도 바로 이 상태이다. 그러므로 중간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창조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
발전적인 전환이 실제로 외적인 변화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내부에서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만든다. [21]
(아놀드 반 게네프, 네덜란드 인류학자) 그는 종교의식을 ‘통과의례’라는 말로 나타냈고, 이런 모든 의식들은 오래된 정체성으로부터 개인이 자유로워지는 방법과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런 상징적인 경험들은 자신이 속했던 이전의 세계와 그곳에서의 정체성에서 떨어져 나오는 의식인 종결과 함께 시작된다. ...
떨어져 나갔다가 재조직되는 그 사이에서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은 황무지로 내몰리게 되는데, 반 게네프는 이것을 ‘중간지대’라고 불렀다. [23]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는 말은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환의 시점에서 종결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것을 포기해야 한다.
(클라우드 베르나르) “이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학습을 방해한다.” [24]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 G.K.체스터튼 [25]
우리는 하나를 마치면서 또 다른 하나를 시작한다. 처음 시골로 이사했을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이제까지의 삶이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데 깜짝 놀랐다. ...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직업이 그리웠던 것이다. ...
오랜 친구들과 이웃들은 나를 더 이상 확신을 갖지 못하는 직업을 기꺼이 던져버린 용감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5]
자신의 오래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면서 통과의례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26]
의식의 생각은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고, 끝과 상실의 느낌들은 단지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을 창조하는 바닥 다지기 작업과도 같은 것이다. [27]
(소로) 그가 말한 작업의 핵심은 삶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될 수 있는 한 단순하게’라고 그는 말했다. [27]
이전의 것을 마치고 바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시작 전에 이전의 것을 마쳐야 한다. [27]
내용과는 상관없이 외적인 손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내적인 포기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이해이다. 놓아버려야 할 것은 직업이니 인간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 같은 것이다. 직업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들만 놓아버린다면 즉시 다른 대상을 찾게 되고, 그 대상에 대해 여전히 똑같은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을 갖고 연연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외부의 상황을 완전히 끝내지 않고도 내적으로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5]
상실은 내적인 것을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가장 적합한 신호이므로, 전환기에 놓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무엇을 놓아버릴 때란 말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35]
끝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삶을 끝내는 것이다.
변화와 전환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주관적인 현실과 정체성을 놓아야 하는 힘든 일을 하기 위해 외부의 변화를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37]
... 마침내 문제는 바로 ‘배운다’는 개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흔한 방법인 말은 정보의 취득과 관계가 있다. 한 번 정보를 습득하면 그것으로 끝난다. 이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안다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진실’ 혹은 다른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배우는 것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 속에서 그들을 다시 발견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럴 때 본질적인 유형은 의식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40]
02. 전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 전환점의 재발견
아내는 치명적인 질병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곧장 밀고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 항상 함께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예상했던 삶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전의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변화 이전의 자신을 놓아버리고 중간지대에서의 경험을 존중하게 된다면 좀 더 풍부하고 놀라운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아내를 밝은 불빛으로 이끌었고, 그녀는 이제 그림자 뒤에 숨어 있었던 것들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45]
아내가 오랜 시간 싸워온 것은 놓아버림의 문제였다. 나는 더 오래 걸린 편이었다. 하지만 맹목적이고 아무 생각 없는 투쟁을 놓아버렸을 때, 우리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낯선 곳에 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집안 어딘가에 전혀 알지 못했던 방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틀림없이 이곳이 중간지대이다. 이곳의 시간은 아주 특별하다. [58]
중간지대에 머물렀던 시간은 아내가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통찰력을 갖게 해주었다. 이전에는 전혀 쓰지 않았던 말과 글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공포를 주기도 했다. 중간지대는 이미 경험했던 어느 것보다도 큰 친밀함과 기쁨을 보장해 준다. 그러나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우리는 둘 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61]
03. 방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 전환점의 경험
누구나 훌륭한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성장의 수고는 하려 들지 않는다. -괴테 [62]
전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우리가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전환은 이전 상황에 맞게 행동했던 방식들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새로운 상황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게끔 새로운 방침을 알려준다. [62]
왜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를 개발할 변화가 필요한지 궁금할 것이다. 왜 우리는 매일, 매분마다 조금씩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 대답은, 우리가 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부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모습을 조금씩 매번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프로세스에 발맞춰 생애의 모든 요소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5-66]
창조성의 원천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전환의 기능이 없다면 자기계발이나 확신은 없을 것이다. 부족 중 젊은 구성원이 단식하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등의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신의 부름이나 조상의 영혼, 혹은 토테이즘의 대상인 동적 특수함을 강조하지 않고 오늘날의 정서에 맞게 변형해 본다면, 전환의 경험을 한다는 것, 특히 전환의 단계 중에서 중간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은 깊은 창조적 에너지와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68]
전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현실이 무너지면서 삶의 형식 속에 갇혀 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여 순수한 본래의 상태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주는 에너지를 되찾는 것이고, 오래된 통과의례처럼 상징적인 경험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74]
전환의 여섯 가지 기능들은 변화로 인해 삶을 둘러싼 안정적인 정체성이 흔들리고 반작용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상황을 인지하기 쉽게 한다. 변화 그 자체는 전환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변화는 일상적 삶을 살면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오래된 일상에서 만족을 얻거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게 된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오래된 삶과의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 [75-76]
삶은 순탄하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씨앗은 외벽을 파괴하고 나오지 않으면 자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 [80]
각 인간의 삶은 그 자신에게 부여된 길이다.
아무도 완전하고 완벽할 수 없다.
미숙한 사람도, 지적인 사람도
각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헤르만 헤세 - [83]
전환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84]
모든 사람의 상태는 사람이 만들어낸 질문에 대한 상형문자로 된 해결책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 그것을 삶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다. -랄프 왈도 에머슨[87]
04.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단념의 미학
끝을 맺는 것은 시작하는 것과 같다.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시작한다. - T.S. 엘리엇 - [89]
당신은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남자를 고르거나 직업 또는 이웃을 고르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것은 남자나 직업, 이웃이 아닌 당신의 인생이다. - 제서민 웨스트 - [96]
항상 내 고객들에게 외적인 것, 즉 사람이나 관계 그 자체만을 놓아버리고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내적인 결합 등은 그대로 놓아둔다면, 결국은 다른 사람이나 관계를 찾아 똑같은 희망과 공포, 꿈,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변화를 겪는 것이지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서 끝맺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전환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97]
아내가 떠나면서 내가 경험한 외로움과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죽었다고 느꼈을 때 느낀 치명적인 외로움을 구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했다. [99]
아내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좀 더 완전한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해주었다. [100]
* 이탈 : 우리가 잃은 것으로부터의 분리
* 비동일화 : 상실로 인해 오래된 정체성이 파괴되는 것
* 각성 : 생각 없이 받아들인 현실이 상실로 인해 박탈되는 것
* 방향감각상실 : 우리가 가진 정체성과 함께 나눈 현실을 모두 잃은 결과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상실감 [103]
과거의 상실에 대해 애도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 상실감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또한 그렇다. [105]
(애도) 그것은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마음속에, 그리고 내가 힐끗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삶의 구조를 해체하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했다. [110]
사람들이 동의한 한 가지는 앞으로 다가올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것을 놓아버리는 것은 특별히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다. [112]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났을 때 자동적으로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미리 예정된 결과는 일을 좀 더 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전환을 맞게 된다. 결과가 없다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중간지대에서 해야 할 일의 하나이고 전환과 창조 사이에 연결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이유이다. [113]
내가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했던 대상에게 이별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것은 끝을 맺는 능력이고 때로는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죽음은 인생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엘리엇의 비명에 써있는 것처럼 죽음은 때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의미하는 끝은, 오래된 것을 마감하고 인생의 새로운 한 장을 시작하게 한다. [116]
05. 우리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 전환점을 통과하는 방법
많은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어려움을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글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글의 주제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해 글을 쓰자면 2차 자료에 크게 의존해야하고 온통 각주로 뒤덮이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는 좋은 글이 나오기 어렵다.) [118]
그 학생들은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던 시기를 삶의 터닝 포인트로 거듭 묘사했다. 변화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들의 차이를 알게 된 때였다. 변화는 지리적인 이동이나 고등학교 졸업 또는 부모의 이혼 등을 가리킨다. 전환은 학생들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120]
몇몇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삶을 크게 상승시켰다. 한편으로 기르던 개가 죽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거나 첫 휴가를 갖거나 작은 연애사건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변화들은 내적으로 거대한 방향 조정과 재배치를 유발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 전환들은 변화가 계기가 되었지만, 결과는 자신의 삶에 대한 내적 발전의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동의하게 되었다. 삶은 여행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전환은 여행지이고 잠시 머무는, 체류지라고 할 수 있다. [122-123]
모든 통과의례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인형 속에 또 하나의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나무인형처럼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124-125]
삶의 문제 상황은 우리에게 전환이 임박했다는 사실은 알리는 신호임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의 문화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조언을 구하라고 부추기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환을 알리는 신호를 듣고 바라보는 것이 당면한 어려움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126]
위기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삶이 가져다준 선물이고 신호였다. [127]
서구에서는 발전을 이미 있었던 것을 배우고 추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된 지혜는 ‘발전’이 배움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가졌던 것을 던져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127-128]
서점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제공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삶의 기술을 익히고 싶은가, 아니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삶이란 기술을 모아놓을 수 있도록 축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적인 부분도 ‘삶’에 더해지거나 ‘삶’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정신 차려!’라는 멋진 말이 무엇인가를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제대로 살고 올바른 해답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삶의 길은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 여행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멋진 곳을 오르려면 구불구불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인과 결과, 입력과 출력, 힘과 충격 등 기계적인 세상은 평평한 표면에 곧은 직선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삶은 물고기 꼬리처럼 굽이치며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간다.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전환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133-134]
우리는 습관적으로 삶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들로 자신을 규정한다. ...
그들은 대부분 항상 변하는 사물에 싫증이 났고 자신의 삶이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힘차고 활기차다. [135]
사람들은 의미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할 때 자연스럽게 반성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137]
자서전의 형식은 당신이 겪은 중요한 삶의 전환, 살고 있는 ‘세상’, 당신이 끌어안았던 당신의 ‘정체성’,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현실을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138]
* 당신이 걸어온 길
- 큰일에 직면하거나 중요한 선택을 했던 교차점들
- 매혹적이었지만 하지 않았던 일들
- 완전하게 방향을 바꾼 경우 (장애물이 있었는가, 또 새로운 것을 발견했는가?)
- 시작한 뒤에 알게 된 것들, 또는 되돌아와야 했던 막다른 길들
- 중요한 이정표들
- 휴식을 위해, 재미를 위해, 또 그 무엇을 위해 잠시 쉬었던 지점은 어디인가?
-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생각되는 일들
- 지나치리라고 결정했지만 그냥 가고 있는, 우리가 가는 방향
- 늪과 사막들
- 길의 유실, 우회, 길 앞에 놓인 장애물들
- 가파른 곳 또는 브레이크를 극복해야 하는 곳
- 정말로 오르기 힘들었던 가파른 곳, 또는 앞 유리를 계속 닦아내며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서 내려와야 했던 내리막길
- 당신이 가는 곳마다 함께 하는 자연 경관과 모임과 같은 장소 (당신이 가는 길에 있는 장소에 이름을 붙여라) [139]
* ‘당신’이라는 이름의 강
- 당신의 원류는 어디인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당신의 근원은 무엇인가?
- 특히 상징적으로 근원은 강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당신의 인생으로 흘러들어오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강은 ‘유역’으로부터 물을 모은다. 당신의 인생의 물이 빠지는 곳은 어떤 나라인가? 산이 많은가 아니면 당신은 평야를 흘러가는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가? 아니면 황무지인가?
- 당신은 넓은가, 얕은가, 폭이 좁은가, 깊은가, 느린가? 당신은 급하게 차오르는가, 점차적으로 차오르는가? 아니면 당신은 아슬아슬한 폭포를 만나 흘러가기를 멈추었는가? [140-141]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영역을 갖고 있다.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전환 중 하나가 출현하면 그것이 곧 주제가 된다.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영적인 추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당신의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145]
06. 결혼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 전환점에서 사랑을 심화하는 방법
결혼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자 최고의 기회이다. - 조셉 바스 - [148]
나는 용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용서의 대인관계적 측면은 삶에 극히 중요하다. 용서는 우리의 결혼에 있어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여느 변화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가 발견했을 때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좀 더 깨지기 쉽다는 사실을 느꼈다. 다가올 그녀의 병 때문인지, 우리의 마지막 변화 이래로 거의 노력하려 하지 않았다. [165-166]
한 인간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모든 임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최후의 시험이자 증거인 것으로, 다른 일들을 위한 준비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166]
나는 묶여 있던 마법에서 깨어났다.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을 진실로 바라보았고, 그녀의 아픔과 자기거부 그리고 그녀가 갈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167]
07. 여행을 끝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여행의 이야기는 흔히 인생이 내리막길을 내딛거나, 죽음에 처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69-170]
여행은 마침내 하얀 고래와 마주치거나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때와 같은 상황에서 끝난다. 그 결말은 목표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목표는 내부의 어떤 곳을 향한 외부의 표현이며,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 변화가 내가 인용한 여행담이라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변화는 여행에 관한 설명들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역동적인 요소이며, 그것은 신화 속에서도 나타난다. [170]
황무지는 죽음의 세계, 한계에 이른 생명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이제는 놓아버릴 시간이고 쥐고 있던 것을 뒤로 하고 떠날 시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172]
당신은 길을 떠났고 곧 세 명의 낯선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지푸라기로 만든 뇌를 가진 허수아비와 심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양철로 된 나무꾼, 그리고 사나워 보이지만 사실은 놀란 고양이와 같은 겁쟁이 사자였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여행을 하는 내내 삶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히 똑똑하지 않은 당신의 일부분과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174-175]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혜는 가치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혜가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175]
마녀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당신은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대답은 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눈부신 발전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떠오른’ 것이다. [176]
마법사가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작 당신이었다. 당신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답은 발뒤꿈치에 있었던 것이다. ...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났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서 새로운 생명력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180-181]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은, 지리적으로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잊혀진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는 힘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여행이다. -조셉 캠벨 - [181]
일상생활의 지혜는 항상 순례자에게 똑바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고 의도한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전환의 길은 이와 반대이다. ...
다시 올라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지하세계의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들이여,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쓰여 있었다. [182]
전환의 방법과 삶의 여행 기술이 별개의 것이라면, 그래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모방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방은 언제나 죽은 것을 창조해 낸다. 모방은 본래의 뜻을 단순화시키고 실제로 중간지대에 놓인 바로 그 사람들이 진짜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187]
08. 나의 천직을 찾아내다 - 평생 먹고살 일
만약 젊은이들에게 직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몇 가지 논리적 접근법을 제안할 수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할 수도 있고, 일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무엇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어볼 수도 있다. 또 향후 수년 내에 성장 가능한 분야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고 인터뷰하도록 제안할 수도 있다. 또는 ‘훌륭한 직업을 갖는 열 가지 단계’와 같은 글을 써서 전해 줄 수도 있다. 스스로도 잘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191-192]
내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대부분의 성공은 경력 개발을 위한 특별한 일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부산물인 실천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경력을 개발하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이지 인생 자체는 아니다. 기회를 찾고, 자신을 선전하고,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회상을 통해 당신의 직업으로 확인된 길을 찾기 위해 이것도 시도해 보고 저기로도 한 번 가보라는 내면의 소리에 부응하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면 기회를 잡게 된다. [196]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 -존 도스 파소- [198]
우리는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사람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이웃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것은 사람도 직업도 이웃도 아닌 인생이다. - 제서민 웨스트- [201]
인생으로 들어가는 문은 대개 우리 뒤에서 열리고
우리를 뒤로 잡아끄는 손은 우리의 앞쪽에 있다. -조지 맥도널드 - [203]
자서전 수업, 마음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작문 수업, 그리고 순수 자기발견을 체험하는 강좌였다. 환자들에게 오늘이 있게 한 때가 언제였는지, 인생의 어느 장이 이 시점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될 때마다 내 마음의 그늘진 곳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 있는지 은연중에 찾곤 했다. [205]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마라. 작은 계획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없다. - 다니엘 H.번햄- [208]
다른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 경고했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 나를 보라! 나의 경력이 진정한 비상을 하려 하지 않는가!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변했다. 큰 프로젝트도 작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듯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 자원을 모아서 시작하고, 죽어라 열심히 일하면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시는 어떤 길이 불가능하다고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210]
직업에 대한 개인의 소명은 의미심장하다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직업 경력이 인생 전체를 구성하는 자서전의 부분에 그치지만, 다른 각도에서 직업은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여러 부분과 어울려 많은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직업을 일의 역사라는 좁은 의미가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이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직업은 세상에서 책무에 헌신한 자신의 일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일에서 삶을 지탱해 가기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걸었다. 물러서고 패배한 시간은 보다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길과 같았다. 내가 뒤에 남겨놓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진퇴양난에 빠지거나 길을 잃었던 순간이 여정의 다음 부분을 향해 방향을 잡기 위해 찾아야 했던 중간지대였음을 알았다.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인생의 다음 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리고 가야 할 짐이었다. [216-217]
09. 새로운 전환점에 서다 - 중간지대에서의 시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중간지대를 설명하기 힘들다. 중간지대는 그 시기가 끝나기 전에는 인생에 따스함과 의미를 주지 않는, 길고 추운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동면하는 계절이다. 또한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를 잇는 색다른 무인지대다.
중간지대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발산되는 혼란스런 신호를 받는 시기다. 따로는 신호가 소음과 뒤섞여 있고, 어느 때는 신호가 상쇄되어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음침한 적막뿐이다. 중간지대는 저기압 지역으로 사나운 날씨가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중간지대는 마음의 암흑 같은 밤이거나, 낮이나 밤으로 녹아 들어가길 거부하는 길고 어두운 황혼이다. [219-220]
그러나 그때 나는 ‘다시 일어서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미래를 상상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허비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발견이었으며, 내 자신이 또다시 미래를 공허하게 상상하고 있을 때면 마치 어린이에게 타이르듯 “괜찮아 잘될 거야. 그렇게 공상할 필요는 없어”라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몇 주가 지나자 구체적인 노력이 없이도 이른바 영국의 시인 존 키츠가 주장한 ‘소극적 수용력’을 발전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극적 수용력이란 원인과 사실에 민감해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구심’ 등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27-228]
미래는 현재의 일부라는 것을 발견했다. 해야 할 일은 서두르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하고 주의 깊게 기다리는 것이다. [251]
10. 나이를 먹으면 삶의 무대도 넓어진다 - 나이 듦의 미덕
연장자들의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연장자들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전환은 개인적,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환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계발하여 존경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258]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죽음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타오르며 그녀는 내 자신을 돌려주었다. [274]
‘나는 조수석에 앉아 몇 분 동안 그녀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 운전석 쪽으로 옮겨 차의 시동을 걸었다.’ [275]
약 2,000년 전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희는 완전해야 한다.”
‘완전한’으로 해석되는 그리스 형용사는 ‘텔레이오스’인데, 지정된 목표에 도착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우리가 온전하게 계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계발의 끝은 특별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융이 개인화되는 과정이라 말한 것이다. ‘죄 없이’ 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성숙함과 매우 유사한 의미이다. [276]
성공이란 말은 원래는 부와 명예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원래 의미는 단순하게 어떤 것 다음에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성공은 결과라는 말처럼 중립적인 말로, 나이 듦의 선물은 이러한 종류의 성공을 존경하고 오늘날 성공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강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277]
‘자연적인 진행은 하나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삶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279]
11. 인생의 새 장을 열다 - 끝은 새로운 시작
나는 미래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미래가 내 삶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과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간은 내부적으로 그 모든 문제와 씨름하며 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놀랍도록 풍성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할 사람만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새로운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수잔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이때부터 외향적으로 변했고 진심으로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고, 과거에서 미래로 움직이는 나의 길은 누구도 건너보지 못한 삶의 연장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282]
젊었을 때는 내가 선택한 삶이 여러 가지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거나, 인생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정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하나뿐인 인생이고 현실이 섬유처럼 염색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좀 더 주저하고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결단력이 생겼고, 모든 것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다. 연습 없이 바로 게임을 했으며, 시험하지 않은 채 바로 부딪히고 상처를 입었다. [287]
‘마음을 따르라’는 것이 ‘생각을 멈춰라’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매우 다르다. 마음을 멈추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이를 갈구하는 것이다. 해답은 행동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갈 길을 발견하는 데에서 온다.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방향을 찾는 메카니즘을 켜두면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시간이 없다. 그 대신 앞서 종결의 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89]
아내의 죽음과 나의 재혼에 연관된 전환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적인 전환에 대한 그 어떤 가르침도 따르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정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필요 없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 책은 존재 이유를 없앤다. 유일한 존재로 사는 방법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역경의 여정을 지나고 그러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계와 부딪히며 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옷걸이에서 내려져 새로운 코트처럼 입혀지길 기대하면서 옷장에 걸려 있는 밝고 신선한 삶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인 역경의 여행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여행으로 인생이 형성된다. 그것이 불필요하다면 여기에 있지도 않을 것이고, 삶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우주적 현실의 형태에 어떻게 구성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에 일조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290]
미래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움직임의 형태로, 또는 우리가 곁눈질로 볼 수 있는 양상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미래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또 예언의 기회를 잡기 우해 삶에서 우리를 이 지점까지 데리고 온 오랜 방식을 놓아버려야 한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초조하게 찾아 헤매기 전까지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래는 또한 과거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예시가 담겨 있고 미래는 그 예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295]
에필로그 - 전환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시간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즉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임을 믿는 것, 그것이 천재성이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라 그것이 우주의 감각이 될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 [298]
처음에는 그리 크게 느기지 않았던 두 가지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첫 번째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에 우울한 날들을 보냈던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가 반으로 나뉜 것이었다. [299]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쓰는 것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실마리였던가를 기억하게 만들어주었다. 중요한 전환점마다 나의 길을 비춰볼 글을 쓰곤 했다. 이 책은 그 형식에서 아내의 죽음 이전의 나와 내 인생이 방향을 재정립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이 시점의 나를 다시 연결해 주고 있다. 그것은 어두운 복도를 비추고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즐거움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것의 틀을 만드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 전환이 왔을 때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들을 묘사하고 특별한 일들을 기록할 수 있게 해준다. [302-303]
삶은 상상 속의 골대를 향해 가면서 상대편에 대항해 땅을 차지하려는 풋볼 경기가 아니다. [303]
우리가 일생을 통해 이루는 것은 서로 부딪히면서 ‘세상’이라고 알고 있는 또 다른 안전한 존재를 상실하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시작에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삶이 상실의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내 자신이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307]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본문의 중간중간 기록되어 있는 많은 유명한 인물들의 짧은 경구는 저자의 글을 읽어가면서 한 번씩 흐름을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어떤 책보다 인용문구가 많았지만 그 문구들이 책의 흐름을 방해하기 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만들며 이 책의 더욱 의미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의 목차는 아주 명료하다. 11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목차들을 쭉 따라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또한 각 장의 약간은 상징적인 제목에 달린 부제들은 더욱 명확하다. 제 1장의 ‘인생의 전환점에서 길을 묻다-변화와 전환의 차이점’이나 제 6장의 ‘결혼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전환점에서 사랑을 심화하는 방법’ 등을 읽어보면 저자가 각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소제목들은 저자의 주장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고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풀어나가고 있는 이 책의 특성에 걸맞는 표현들이다. 목차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목차의 명확함에 반했던 것에 비해 본문의 내용은 명확하거나 읽기 쉽지 않았다. 주로 외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변화’와 달리, ‘전환’은 보다 깊은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것까지 포함한 보다 본질적인 개념이라는 저자의 길고 긴 주장을 따라가고 나면 ‘중간지대’에 대한 끝없는 설명이 이어진다. 올해 초 홍승완 선배의 글들을 읽으며 깔끔하게 정리되었던 개념들이 오히려 어지러이 흔들린다. 또한 중간중간 이야기하는 자신의 변화와 전환에 대한 경험들, 특히 아내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겹쳐지고 섞여 혼란을 준다.
아마 이 모든 혼란은 책을 읽는 나의 깊이가 터무니없이 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립지대를 다룬 저자의 다른 책인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를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추천한 홍승완 선배도 처음에 읽다 관둔 책인데 세 번째 읽으며 ‘참 좋은 책’이라 느꼈다고 한다. 책은 변하지 않지만 그 책을 읽는 내가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다시 읽으며 변화한,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전환’을 겪은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상실은 내적인 것을 놓아버려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는 가장 적합한 신호이므로, 전환기에 놓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무엇을 놓아버릴 때란 말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35]
가지고 있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갈증에 시달리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움’과 ‘놓음’이다.
꽉 찬 냉장고를 비우지 않고서는 신선한 새 것이 들어가지 않듯이,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버리고 적절한 공간을 띄워주어야 신선한 공기가 흐르듯이, 새로운 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반드시 비워야 한다.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집착을 놓아야 한다.
단순히 상실이 아닌, 나에게 맞는 진정한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수도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비움’과 ‘놓음’이 어느새 평범한 우리에게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많은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어려움을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글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글의 주제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 [118]
내가 아는 주제, 내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근육으로 아는 주제라면 어찌 쓰기 어렵겠는가.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자.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쓰자. 단, 늘 똑같은 이야기의 되풀이가 되지 않도록 나자신의 폭을 넓히고 나의 수용력을 키우자.
삶의 기술을 익히고 싶은가, 아니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삶이란 기술을 모아놓을 수 있도록 축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적인 부분도 ‘삶’에 더해지거나 ‘삶’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정신 차려!’라는 멋진 말이 무엇인가를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제대로 살고 올바른 해답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134]
‘학습자’가 나의 테마라고 한다. 평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테마이다. 그러나 늘 잊지 말자. 해답은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꿈은 책에 있지 않으며, 인생도 책에 있지 않다. 간접경험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 어떤 간접경험도 내 몸으로 느끼고 내 마음으로 느낀 인생보다 훌륭하진 않다. 직접 부딪치고 내 안에서 되새기자. 백 권의 책을 읽음보다 한 권을 소화하는 것이 더 내 것이 된다.
나는 미래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미래가 내 삶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과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간은 내부적으로 그 모든 문제와 씨름하며 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놀랍도록 풍성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할 사람만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새로운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282]
선택할 수 없었던 가정환경을 통해 우리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유일한 존재로 사는 방법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역경의 여정을 지나고 그러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계와 부딪히며 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90]
나의 기준이 없는 것, 나의 방식이 없는 것.
나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따라, 나의 방식이 아닌 타인의 방식에 따라 주어진대로 사는 것은
결국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 것.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방식을 찾는 것.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마라. 작은 계획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없다. - 다니엘 H.번햄-
나이가 들수록 점차 소심해지는 것이 깊이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작아진 내 꿈이 진정 나의 피를 끓게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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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7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수정 중 | 종종 | 2015.01.05 | 2169 |
5026 | #7-열정과 기질 | 왕참치 | 2014.05.26 | 2173 |
5025 | #12 철학이야기 1_이수정 | 알로하 | 2017.06.26 | 2179 |
5024 | #40 대통령의 글쓰기 (윤정욱) [1] | 윤정욱 | 2018.01.16 | 2181 |
5023 | #25 -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 이동희 | 희동이 | 2014.10.14 | 2185 |
5022 |
#45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윤정욱) ![]() | 윤정욱 | 2018.02.19 | 2193 |
5021 | #23 사기열전1_1 [1] | 뚱냥이 | 2017.09.10 | 2195 |
5020 |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박혜홍 | 2018.08.05 | 2195 |
5019 | #1 익숙한 것과의 결별(장성한) [3] | 뚱냥이 | 2017.04.11 | 2196 |
5018 | 떠남과 만남 [2] | 박혜홍 | 2018.09.18 | 2196 |
5017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앨리스 | 2015.01.05 | 2197 |
5016 | #33 그림자 -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이정학) | 모닝 | 2017.11.27 | 2199 |
5015 | 숨결이 바람 될 때 | 송의섭 | 2018.01.28 | 2200 |
5014 | [구본형 다시읽기] 신화읽는 시간 [1] | -창- | 2013.09.08 | 2201 |
5013 | #13 철학이야기 2/2 (정승훈) | 정승훈 | 2017.07.02 | 2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