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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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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일 12시 01분 등록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 로빈브라운 지음 / 최소영 옮김 / 이른아침/

* 저자에 대하여 *

<마르코 폴로>

“백만선생”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를 그렇게 불렀다.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프레스터 존의 땅 동방을 다녀왔다는 그는 온갖 신기한 풍습과 거대한 도시, 엄청난 인구, 진기한 보석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럽 밖의 세상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인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라고 했으며 더구나 입만 열면 ‘수백만의~’운운하는 그에게 ‘백만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동방견문록>이 8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공을 초월하는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동방견문록>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어 유럽 전역에 퍼졌고 ‘성경 다음으로 인기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 넓은 세계를 욕망했던 많은 사람들은 <동방견문록>을 보고 탐험의 의지를 불태웠고,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연 사람들에 의해 대륙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문화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유럽의 근대를 여는 데 <동방견문록>이 세운 공을 이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 마르코 폴로의 생애#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의 유명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삼촌 마페오 폴로 역시 상인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폴로 형제는 1254년, 즉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직전에 동방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가 자라는 동안, 동방으로 떠났던 폴로 형제는 킵차크 칸국과 일칸국 사이에 전쟁이 터져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가게 되었다. 도중에 이들은 쿠빌라이에게 가는 알라우의 사신을 만나 함께 쿠빌라이 칸을 만났다. 그리고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고, 교황을 만나기 위해 지중해에 위치한 아크레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아크레에 도착했을 때 교황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다리며 폴로 형제는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그때가 1269년, 열다섯이 된 마르코 폴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하지만 마르코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폴로 형제는 베네치아에서 2년 정도 머무르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 않자 쿠빌라이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동방 여행길에 오를 때 형제는 마르코 폴로도 함께 데리고 갔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폴로 일행은 아크레에서 성유를 얻어 떠났으나. 라이아스에 있을 때 새로운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아크레로 돌아갓다. 그곳에서 교황을 알현하고 그들은 다시 동방으로 떠났다. 그들은 투르크 지역과 페르시아, 파미르 고원, 카슈미를 지역을 거쳐 쿠빌라이의 수도로 들어갔다. 고비사막을 지나고부터는 쿠빌라이가 보낸 호위병들의 보호를 받았는게, 이는 쿠빌라이가 폴로 형제를 각별히 여겻음을 짐작하게 한다. 베네치아에서 쿠빌라이의 여름 수도 산두까지 들어가는 데 대략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동방견문록>의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는 그곳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개의 언어를 익힐 만큼 총명했고, 새로운 환경에도 금방 적응했다. 그는 곧 쿠빌라이의 총애를 얻었다. 그리하여 쿠빌라이는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사신을 보낸 때면 마르코 폴로를 자주 보냈다. 마르코는 사신의 임무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풍습을 눈여겨보았다가 돌아와서는 자기가 본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재미있게 전해주었다. 쿠빌라이는 그런 마르코 폴로를 흡족해했다. 마르코 폴로는 3년 동안 얀구이시의 총독으로 파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머물렀던 기간은 대략 17년 정도다. 그 사이에 중국의 북부와 남서부, 남동부 지역을 두루 다녔으며 거의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아마 샨두와 킨사이가 아닐까 한다. <동방견문록>의 3장과 5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샨두와 킨사이에 대한 그의 소개는 아주 상세하고 정확하며, 그것에 대한 이야기의 분량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중국에 머물면서 폴로 여행은 여러 차례 귀국의사를 밝혔지만 쿠빌라이는 그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쿠빌라이의 영토 일부를 다스리고 있는 아르곤 왕의 왕비가 세상을 떠났고, 아르곤왕은 죽은 왕비를 대신할 같은 혈통의 여인을 구하기 위해 쿠빌라이에게 사신을 보냈다. 쿠빌라이는 사신들에게 코가틴이라는 여자를 찾아주었다. 공주를 얻은 사신단은 육로를 통해 돌아가다가 잦은 정복전쟁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 때 막 인도에서 폴로 일행이 바다를 거쳐 돌아왔다. 이를 본 사신단은 그들과 함께 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쿠빌라이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들을 위해 거대한 배를 준비해준다.

1291년 코가킨 공주 일행과 폴로 일행은 무려 열네 척의 배를 거느리고 남중국해를 떠나 인도양으로 향했다. 2년여 기간 동안 항해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작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아르곤의 왕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쿠빌라이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폴로 일행은 더 이상 쿠빌라의 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출발했다. 1295년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척들에게조차 문전박대를 당하자 마르토는 자신이 입고 있던 타타르 복장을 뜯고 귀금속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마르코는 그간 보고 들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유럽 박의 세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 사람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랍다 못해 의심스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마픈 남짓한 삶을 살 때까지 타지에서 유랑의 삶을 보냈던 마르코 폴로,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을까. 고향에 돌아와서도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베네치아에 돌아온 지 1년쯤 지나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마르코 폴로는 전쟁에 참전했으나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감옥 안에서 이후 세계 역사를 움직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마르코 폴로와 피사의 작가 루스티켈로가 만난 것이다. 마르코폴로는 지난 25년간 자신이 겪었던 모든 신기한 경험들을 쏟아냈고, 루스티켈로는 그것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299년, 위대한 고전 <동방견문록>이 완성되었고 같은 해에 마르코 폴로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323년 1월9일에 남긴 그의 유언장에 따르면, 그는 도나타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또한 가족과 종교단체에 남긴 유산으로 짐작컨대 그의 생활은 어느 정도 풍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하인인 피에트로를 영원히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고 그에게 베네치아 금화 100리라를 주라고 유연장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유언장을 쓴 후 1년쯤 지난 1324년 1월8일,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임종직전, 친구들은 그에게 <동방견문록>에 썼던 거짓들에 대해 참회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당시 사람들이 마르코 폴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물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아직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참고도서>

마르코폴로의 길을 걷다 동방견문록 / 마르코폴로.루스티켈로 지음/ 배진영 엮어옮김/서해클래식/2004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김호동 역/사계절출판사/2000

 

* 내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

추천사- 마르코 폴로와 함께 떠나는 환상 여행

p.7 동방견문록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들 중 한 가지는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국적인 동식물을 소개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그것들을 부의 원천이자 무역의 대상으로, 그리고 위험한 짐승들로서 매우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전에 쓰인 여행기들은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저명한 자연주의자이자 자연 필름 제작자인 이 책의 저자 로빈 브라운(Robin Brown)이 마르코의 관찰에 대해 내린 평이다. 이는 동방견문록의 방대하지만 산만한 문학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고마운 평가라 하겠다.

 

저자 서문- 마르코 밀리오네

p.14 1324년에 마르코 폴로의 임종을 지켰던 신부는 마르코 폴로에게 그가 한 이야기 중에 취소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질문했다. 이에 마르코 폴로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채 쓰지 못했습니다."

p.15 마르코 폴로는 이제 아시아 대륙 전체에 걸친 여정을 기록하고 국가와 지역을 정확한 순서로 기술한 최초의 여행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르코 폴로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의 증가는 세계 탐험에 대한 의지를 확산시켰다.

p.21 그는 이 모든 역경을 헤치고 40년 동안 아주 미개한 수술법과 미신에 근거한 약품, 신비한 효험이 있는 약초만 있을 뿐, 의학에 근거한 병원이라곤 없는 시대와 장소에서 살아남았다. 목숨을 위태롭게 한 지독한 병에 걸렸던 때도 있었다. 그는 중국에 있는 쿠빌라이의 궁전으로 가는 길에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거의 1년 동안 산속에서 요양을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항상 부차적인 것이었고, 그는 귀중한 여행에 고무되어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p.31 마르코 폴로는 27년이란 세월 동안 특이한 여행, 모험, 정치적 음모와 전투를 겪으며 국왕의 '대표 대사'로서의 역할에 익숙해져 급기야 쿠빌라이 칸을 길들이게 되었다.

p.33 이미 40대 초반에 부유한 베네치아 상인이 된 마르코 폴로는 제노바와의 전쟁에 휩쓸리게 되고, 거기서 베네치아가 패하는 바람에 우리의 영웅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곳에서 18개월 동안 루스티첼로와 머물며, 사람들이 거의 믿지 않는 이야기책을 쓰게 된 것이다.

p.38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날마다 색과 모 영이 변하고 늘 새로운 잎과 가지, 꽃을 피우는 경이로운 이국적 화초로 생각하게 되었다. 뜨거운 빛도 심한 가지치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분재되는 것도 견뎌내는 강인한 식물 말이다.

p.51 이 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지배자인 대칸 쿠빌라이의 조신이자, 그와 절친한 친구가 됨으로써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룬 한 10대 소년의, 엄청나게 부유하고 비범한 한 여행가의 친근한 회고록이다.

 

서편

p.58 쿠빌라이는 폴로 형제와 함께 최고 관리자인 코고탈(khogotal)을 동행시켰다. 대칸은 교황에게 100명의 현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썼는데, 쿠빌라이가 말하는 현자란 '일곱 가지 학문'에 능하고,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으며,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진실하고, 타타르족이 숭앙하는 우상들은 악령에 불과하며, 동방의 사람들이 신븡로 숭배하는 것들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칸은 또 일해에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뿐인 진정한 신으로 숭배하겠다고 다짐하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성묘(성묘)에 있는 등잔의 성유를 조금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p.63 이윽고 폴로 일가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한 대연화가 열렸고, 이루에 그들은 조신(조신)으로 대우 받았다. 그들 가운데 마르코는 특히 인정을 받았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타타르족의 예법을 모두 익히고 그들의 네 가지 언어를 읽고 쓰는 데 능통했기 때문이다.

p.63 마르코는 대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명하게 일 처리를 완벽히 해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뛰어난 능력은 마르코를 높은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p.64 마르코는 또한 쿠빌라이가 멀리 떨어진 곳의 생활양식이나 풍습을 아주 소소한 것까지 낱낱이 듣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주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리 하여 마르코는 17년 동안 대칸의 부름으로 영토의 구석구석에 기밀 임무를 띠고 다녀오곤 했다. 때로 그는 왕의 윤허를 받아 개인적으로도 기나긴 여행을 했다. 곧 그는 유럽인들에게 여전히 동방의 비밀로 남아 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제1편 세상 밖으로

p.77 대아르메니아 남쪽 접경에는 모술이 있다. 북쪽에는 카스피 해와 접하고 있는 조르자니아가 있는데, 이곳의 땅에서는 기름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그 기름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식용보다는 피부병 치료에 사용되며, 불을 피우는 데도 좋다. 근처 모든 지방의 사람들이 기름을 구하러 이곳에 오며, 모두가 램프에 그 기름을 사용한다.

p.80 이 지역에는 오늘날 많은 읍과 성이 있고, 넘쳐 나는 비단으로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비단을 금실과 함께 짠다. 주로 이곳 사람들은 교역과 농사로 생계를 꾸리며, 좁고 험준한 골짜기가 많은 지형 덕분에 타타르족도 이곳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p.85 "그럼 산을 옮겨 보아라. 내 눈앞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여라. 그리고 겨자씨만큼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 이 산을 옮길 수 없다면, 내가 너희들을 신에게 버림받은 사악한 종자이자 쓸모없는 신앙에 기대고 있는 자들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p.92 도시에서는 비단과 금실로 짠 여러 종류의 천을 제조한다. 시골에서는 목화가 풍부하게 재배되고, 밀, 보리, 기장, 기타 여러 작물을 비롯하여 포도와 각종 과일이 생산된다. 누군가는 사라센이 종교적 믿음 때문에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율법의 계율을 교묘히 피해 포도주를 아주 달콤한 즙으로 졸아들 때까지 달여서 마시는데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종교적 양심을 달랜다. 다만 그들은 맛이 바뀌면 이름이 달라져야 한다며 포도주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여전히 포도주이다!

p.93 이곳의 여성과 아이들은 새와 짐승의 문양을 다양하게 수놓은 비단과 금실로 짠 아름다운 자수품을 만든다. 그것들은 부자들의 커튼, 침대보, 침실 쿠션으로 사용된다. 그들이 만든 자수품은 무척이나 섬세하게 잘 마들어져서 누구나 감탄할 정도이다.

p.96 그는 아제딘을 불시에 습격하여 델리 시와 근방의 수많은 곳을 괴멸시킨 뒤 그 지역을 지배했다. 그리하여 그곳에 주둔하던 피부색이 하얀 타타르족 남성들과 그 지역 주민인 피부색이 어두운 인도 여성들이 결혼하여 카루아나로 불리는 인종이 탄생되었다. '카루아나'는 그 지역어로 '혼열아'라는 뜻으로, 이들이 바로 레오바를레와 다른 지방의 거주민들을 습격했다.

p.108 또한 언덕 곳곳에서 자라는 아몬드과 피스타치오의 무역도 활발하다. 타이칸의 북동쪽으로 사흘간 가면 과일, 곡식, 포도가 풍부한 지방에 도달한다. 풍요로운 농산물 때문에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문제는 주민들이 모두 이슬람교도 인들이라 호전적이고 잔인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아주 달콤한 고급 포도주가 생산되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색을 밝힌다. 주민들은 열 뼘 정도 길이의 끈을 머리에 두르는 독특한 머리장식을 즐겨한다. 광적으로 사냥을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상처만 손질해서 보통 이것만 걸치고 다닌다. 또 그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기도 한다.

p.113 사람들은 피부색이 약간 어둡지만, 여성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들의 주식은 고기와 쌀인데, 이 모두를 절제해서 먹는다. 기후는 온화한편이지만 사막과 삼림 지대가 공존한다. 일부 산길들은 너무 험하여 헤쳐 나가기가 힘들 정도다. 마을과 요새가 많으며, 이곳의 왕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p.115 이 평원을 지나 12일 동안 가다보면 파미르라는 이름의 높은 고원에 도달한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고원을 가로지르려면 식량을 충분히 챙겨 가야 한다. 이 고원은 너무 높아서 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p.115 파미르 고원에서 관찰한 것을 이제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보겠다. 그곳은 공기가 희박해서 낮은 지대에서처럼 불이 높은 열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공기가 희박해서 낮은 지대에서처럼 불이 높은 열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조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곳은 광활한 산지로 가는 초입일 뿐이다. 산에 오른 뒤 쉬지 않고 골짜기를 건너고, 사람 하나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사막뿐만 아니라 많은 강을 건너는 등의 고초를 겪으며 40일 거리를 가야지만 베로로(Beloro)에 이를 수 있다. 이곳 고산 지대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야생 동물을 주식으로 삼으며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야만적이고 무례한 부족이 산다.

p.117 나는 카쉬가르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닷새 후에 유명한 고도(古都)사마르칸트에 도착했다. 사마르칸트는 대단한 곳이다. 도시를 둘러싼 아름다운 정원에서는 온갖 종류의 과일이 나는데, 도시 자체는 고귀하다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곳에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섞여 살며, 그들 모두는 대칸의 조카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집단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킨다.

p.124 이런 위험 속에서 한 달에 걸쳐 사막을 가로지르고 난 후 느끼는 여정의 고단함은, 대칸에 속한 중국의 셴시(Shen-si)구에서 멀지 않은 사치온에 도착하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p.132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이 여행은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막에서만 살아남으면 북쪽에서 타타르족이 처음으로 정착하여 통치권을 확립했던 카라코란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35 타타르들이 카라코란으로 이주하기 얼마 전인 1172년 경, 그들은 청렴함과 지혜로움, 통솔력과 용맹함으로 정평이 나 있던 지도자 칭기즈 칸을 왕으로 추대했다. 칭기즈 칸은 타타르족을 위해 처음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중용의 정치를 펼친 왕이었기에, 그들은 그를 신처럼 숭앙했다.

p.137 모든 대칸과 칭기즈 칸 혈족의 수장은 사후에 알타이 산맥으로 운구하여 묻는 것이 관례이다. 설사 100일이 넘는 거리에서 사망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시신이 알타이 산맥으로 운구 된다. 대칸의 시신이 사자(死者)의 무덤으로 운구 되는 동안에 이와 함께하는 호위대들은 도중에 만나는 모든 이들을 칼로 베어버린다. 사자와 함께 다음 세상에 가서 주인을 섬기라는 뜻이다.

p.147 북쪽으로 약간 방향을 바꾸면 프레스터 요한의 영토인 텐둑이 나온다. 텐둑 군주들은 칭기즈 칸이 나라를 정복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대칸의 지배를 받아왔다. 주도는 동일한 이름에 텐둑이라 불리는데, 이 도시를 지배하는 왕은 프레스터 요한의 직계 자손인 게르오게(George)왕이다. 그는 기독교도이자 성직자이다. 게르오게는 프레스터 요한보다 좀 더 작은 영토를 지배하며 대칸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와 텐둑의 다른 지방 군주들은 대칸 혈족의 딸들과 혼인을 한다.

p.148 마침내 중국이다! 먼저 여러분은 차간노르 즉 '백색의 호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중요한 도시에 닿게 된다. 여기에 대칸이 자주 찾는 대궁전이 있다. 그곳은 많은 백조가 모여드는 호수와 시내로 둘러싸인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을 둘러싼 평원에는 학, 꿩, 자고새, 기타 여러 새들이 많다. 사냥감이 풍부하여 대칸은 큰매로 이곳에서 사냥하기를 아주 즐긴다.

p.151 쿠빌라이에게는 눈처럼 하얀 빛을 내뿜는 1만 마리의 암수 종마가 있다. 칭기즈칸의 후예와 쿠빌라이의 편에서 용맹하게 싸운 명예로운 퇴역 군인 보리아트(Boriat)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암말의 젖을 마실 수 없다. 이 말들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하며, 말들이 왕의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에는 감히 그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p.153 이 나라에는 수도원이 아주 많다. 그 중 일부는 엄청나게 커서 도시와 맞먹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데, 그곳에서는 2천여 명의 승려가 산다. 그들은 평민보다 더 고상하게 옷을 입고, 머리와 수염은 모두 깍는다. 종교 의식과 행사에는 찬송을 부르고 향을 피우며 아주 엄숙하게 행동한다. 이 수도승 중에는 아내가 있는 사람도 있다.

 

제2편 왕 중의 왕

p.167 '쿠빌라이 칸'은 '왕 중의 왕'이란 뜻으로, 그가 다스리는 백성의 수, 영토의 크기, 재화의 정도가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왕도 능가할 만하기에, 나는 그 이름이 아주 적절히 잘 붙여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이 땅을 통치했던 어느 군주보다 백성들이 몸 바쳐 복종한 왕이었다는 사실도 여러분에게 꼭 일러두고 싶다.

p.167 쿠빌라이 칸은 타타르 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이다. 쿠빌라이는 칭기즈 칸의 6번째 계승자로서 1256년부터 통치를 시작했다. 적법한 계승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를 비롯한 관료들과 왕위를 놓고 싸워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용맹함과 후덕함, 신중함이 승리를 거두었다.

p.176 대칸, 혹은 왕 중의 왕이라 불린 쿠빌라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 키였다. 잘생긴 얼굴 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부분이 균형 잡혀 있다. 피부 빛이 좋은 그의 얼굴은 이따금 장밋빛으로 붉게 상기되었는데, 그것이 그의 안색을 더욱 밝게 한다. 그의 눈동자는 검고 또렷하며 코는 보기 좋게 우뚝 솟았다. 그에게는 네 명의 본처가 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네 명의 처는 모두 황후의 칭호를 가지고 있으며 각기 서로 다른 처소를 쓰고 있다.

p.184 궁전에서 화살이 닿을 거리 정도에는 1.5킬로미터 정도의 둘레에 높이가 적어도 90미터나 되는 거대한 인공 언덕이 있다. 거기에는 최고로 아름다운 상록수들이 심어져 있다. 쿠빌라이는 어디에 좋은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나무가 아무리 크거나 무겁다 해도 상관없이 그것을 뿌리와 흙까지 모조리 파서 코끼리에 실어 푸른 언덕에 옮겨 심게 한다. '녹색 언덕'으로 알려진 그곳의 정상에는 밝은 녹색으로 칠한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무와 우아하고 화려한 건물을 내려다보는 것은 정말 행복 그 자체이다.

p.196 이제 약속한 대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에 열리는 흰색 향연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그들은 한 해의 시작을 2월1일로 삼았다. 이날에는 쿠빌라이를 비롯한 온 백성들이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흰색 옷을 입는데, 그들은 이런 의식이 1년 동안 모든 이에게 행운과 기쁨, 평안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또한 모든 제국의 사람들은, 충만한 사랑과 많은 돈을 상징하는 흰색 천과 함께 금은보화를 대칸에게 보낸다. 이날은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잔치를 여는데, 잔치가 열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흰색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며 얼싸안는다.

p.202 나는 매 사냥에 필적할 만한 오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그 중에서도 대칸이 사냥할 때 일어나는 일들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면은 없다고 생각한다. 좁은 길이 나타나면 대칸은 코끼리를 탄다. 가끔 그는 내부에 금으로 만든 천을 대고, 외부에 사자 털로 덮은 멋지게 조각된 가마에 타고선 네 마리 코끼리로 이동한다. 사실 그는 통풍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안락한 가마가 필요하다.

p.205 사냥이 주는 쾌락이 얼마나 큰지는 설명하기 힘들다, 나는 사실 그것을 눈으로만 구경했을 뿐이지만, 쿠빌라이가 이곳이 있을 때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때를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이 다되면 그는 서서히 발걸음을 본궁으로 돌리는데, 궁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사냥은 계속된다.

p.212 천지를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쿠빌라이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없는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p.213 이 지역의 산에서 주민들은 검은 돌 같은 것을 캔다. 돌에는 갈라진 큰 금들이 보이며, 불을 붙이면 숯처럼 타고, 나무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내면서 밤새도록 타들어간다. 그 돌은 처음 불을 붙이면 불꽃이 약간 타오르다가 곧 달아올라 엄청난 열을 발산한다. 이곳의 장작도 양이 풍부하고 싸지만, 이 검은 돌이 불이 더 오래 가기 때문에 난로와 목욕물을 데울 때도 이 돌을 많이 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모든 사람이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으며, 여유가 더 있는 사람은 겨울에도 매일같이 목욕을 할 수 있다.

p.234 닷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이 왕국의 크고 고귀한 수도인 야치에 도달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신앙을 가진 상인들과 장인들이 산다. 우상 숭배자가 거의 대부분이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 사라센, 이슬람교도도 있다. 땅은 아주 비옥하며 밀과 쌀이 주로 생산된다. 주민들은 밀 빵이 몸에 나쁘다고 생각해 주로 쌀을 먹는다. 또한 쌀을 가지고 맑고 깨끗한 색에 허브 향이 나는 맛있는 술을 만든다.

p.264 수주에는 질병의 특징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쓸 줄 아는 뛰어난 의사들이 있다. 이보다 더 뛰어난 학자,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에 대하여 방대한 지식을 갖춘 철학자들도 있다.

p.265 킨사이는 '천상의 도시'라는 뜻으로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이 과히 그 이름에 걸맞으며, 정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할 만하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p.271 유독 어질고 순했던 킨사이의 왕들은 아마도 이곳 백성들의 성격과 태도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들은 평화적이고 조용하며, 무기를 소지하지도 집에 두지도 않는다. 도시 전체에 소란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으며, 사람들은 작업장에서도 아주 침착하고 성실한 분위기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며, 이웃사촌들과는 모두 한 가족처럼 생활한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를 조금도 의심하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한다.

p.274 킨사이에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하는 흥미로운 풍습이 있다. 그들은 아기가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기록해 두었다가 그 정보를 가지고 점성가에게 간다. 점성가가 그들에게 아기의 별자리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이것을 세심하게 기록해 둔다. 아이가 자라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여행이나 항해를 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 기록을 다시 점성가에게 가져가서 평가를 부탁한다. 그러면 그는 모든 상황을 비교 평가하여 앞일을 예상해 주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굉장히 신뢰한다.

p.276 지역의 중요성과 특히 장엄하고 부유한 모습을 고려할 때, 이곳이 세계에서 단연 최고의 도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p.276 쿠빌라이는 만지 지방을 정복하고 나서 오래된 하나의 왕국을 9구역으로 나누고, 정부와 지사를 각각 따로 두었다. 그들은 자기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 특히 세입에 대해 매년 감독관에게 보고한다, 관리들은 3년마다 한 번 씩 교체된다.

p.289 중국의 두 거대한 영지인 카타이와 만지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이제부터는 대륙의 크기에 따라 대 중 소로 나누어진 막강한 제국 인도로 이동할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대칸의 도움으로 그곳에 방문할 수 있었다. 주로 황실의 일로 갔는데, 가끔 아버지와 숙부와 함께 간 적도 있다. 사실 쿠빌라이는 우리를 보내기 싫어했지만, 페르시아의 아르군 칸과 약혼한 왕녀를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해 우리에게 임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여정은 수많은 특이한 경험으로 채워졌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내가 가는 길에 만났던 믿을만한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과 인도 해안의 지역들에 대해 권위 있는 정보를 듣게 될 것이다.

 

제3편 귀국 여행

p.317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섬들이 얼마나 남쪽에 치우쳐 있는지 이곳에서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8왕국 중에 6왕국을 가보았는데, 그곳에서 아주 이상한 경험을 했다. 먼저 펠렉(Felech)왕국에 대해 말해 보자면, 이곳의 원주민은 산속에서 인육을 비롯한 모든 고기를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가리지 않고 먹으며 짐승처럼 산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처음으로 본 것을 숭배한다. 해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상 숭배자들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라센에 의해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도 꽤 있다.

p.334 이곳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는 관상학에 정통한 사람이 많다. 그들은 또한 짐승과 새를 관찰하여 미래를 예견하기도 하는데, 그런 징조들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앞날의 운명을 잘 알아맞힌다.

p.334 또한 이들은 각자 매일 한 시간씩을 불길한 시간으로 정해 놓는데 이를 코이악(choiach)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이 시간이 되면 나쁜 일이 생길 거라 믿어 물건을 사지 않고 어떤 사업상 업무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불길한 시간이 언제인지 매년 책에 기록해 둔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점성학은 그들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것 같다.

p.335 13세가 되면 사내아이는 약 20그로트 정도의 돈을 들고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일거리를 구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사내아이들이 돈을 벌려고 종일 물건을 팔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진주 채취 시간이 되면 그들은 어부와 함께 뜨건운 열기 속에 나가 일하기 싫어하는 상인들에게 진주를 가지고 가서 거래한다. 상인들은 보통 아이들이 진주 값으로 부른 돈보다 조금 더 얹어준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팔아본 아이들은 머지않아 뛰어난 무역가가 된다. 그들은 번 돈을 집으로 가져가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묵묵히 가족을 위해 식사를 분지하는 어머니에게 드린다.

p.339 이 지역 사람들의 피부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검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검은색이 완전한 색이라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자신과 아이들의 피부를 매일 세 번 참기름으로 문지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들도 모두 새까만 색으로 표현하며 악마는 흰색으로 칠한다. 그들은 모든 악마가 다 흰색이라고 믿는다.

p.354 다시 바다로 나가 남쪽으로 약 800킬로미터 정도를 내려가면 서로 50킬로미터 떨어진 두 섬이 나온다. 그 중 한 섬에는 남자가, 다른 한 섬에는 여자가 살고 있다. 이 사라들은 세례 받은 기독교도들이며 구약성서의 율법을 따른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섬에 가서 4월부터 5월까지 그들과 동거하며, 남자들은 자기 '아내'와 한집에서 지낸다. 그 외의 시간은 남자들의 섬에서 보낸다. 자며 문제는 좀 복잡하다. 아들은 어머니와 12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에게 보내진다. 딸은 결혼적령기가 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며, 때가 되면 남자가 찾아와 청혼을 한다. 나는 이 같은 생활양식이 여자들의 섬이 남자들에게 해로운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들었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섬에서 일 년 내내 살려고 하다가는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p.357 수코테라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마법과 주술이 활발한 곳이다. 대주교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파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해적선이 지역 선박에 손해를 입히면, 마법사는 그 해적들에게 마법을 걸어 그들이 손해를 보상할 때까지 꼼짝 못하게 한다. 마법사는 또한 도망쳤던 이단자가 다시 섬으로 밀려오도록 바람의 방향을 바꿀 능력도 갖추고 있다. 마음대로 바다를 잠재우거나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고, 배를 난파시킬 수 있다. 솔직히 이것은 그들이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p.360 이 수역에서 이 섬 외에 선적이 가능한 유일한 섬은 잔지바르뿐이다. 이는 섬 방향으로 흐르는 물의 유속이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인도 연안에서 항해해 오는 배들은 20~25일 만에 잔지바르에 다다를 수 있다. 거친 물살이 계석 남쪽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돌아갈 때는 석 달 동안이나 고군분투한다.

p.360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일 년 중 특정한 시기에 섬의 남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로크(roc)라는 신기한 새 이야기를 한다. 그 새는 독수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더 크다. 그 새는 어찌나 크고 강한지 발톱으로 코끼리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낚아채서는 코끼리의 숨통을 끊기 위해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 그 새를 본 사람들은 한 결같이 새의 날개폭이 약15미터이고, 깃털은 길이가 약 7미터이며 두께는 그 길이에 걸맞을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p.360 쿠빌라이 칸은 이 비범한 새의 이야기를 듣고, 그 깃털이 얼마나 멋진지 조사하게 하기 위해 섬에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곳에 구류되어 있던 한 사신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구실 삼아 보낸 것이다. 나는 그들이 돌아와서 대칸에게 깃대의 길이가 13미터나 되는 로크의 깃털을 바쳤다고 들었다. 대칸은 이 깃털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사절에게 값진 선물을 내렸다. 그들은 또한 들소크기 만한 멧돼지에게서 무게가 6킬로그램 나가는 엄니도 뽑아 왕에게 바쳤다. 마다가스카르에는 기린과 야생 나귀 같은 독특한 야생 동물이 참 많다.

p.364 내가 인도의 주요 도시들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인도양의 섬들에 대해서도 다 다룰 수는 없다. 솔직히 그 수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데, 이 수역을 왕래하는 상인과 선원들의 말에 따르면 12,7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인도양을 항해해 온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 확인된 것이며, 물론 사람이 사는 섬뿐 아니라 무인도의 수까지 다 더한 것이다.

p.368 이곳에는 더위가 너무 심해 모든 건물에는 층마다 공기를 들여보내 주는 환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아마 그 환기 시설이 없다면 이곳에서 살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p.370 이제 나는 '어둠의 심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타타르족의 영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북단 국경 지대에 펼쳐진 이 지역은, 겨울 동안 대부분 태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태양이 있기는 하나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어스름한 동틀 무렵과 비슷하다.

 

후기- 여행을 마치며

p.390~394

그칠 줄 모르는 타타르 전쟁사에 지쳤는지 마르코 폴로는 여기까지 말 하고는 이야기를 끝냈다. 많은 역자들은 이런 뜬금없는 결말이 대서사시를 맺는 방식치고는 서툴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14세기 초에 유래한 토스카나 판본에는 그래도 짤막한 에필로그가 있는데, 거기서는 마르코의 갑작스런 글의 중단을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나는 이곳(흑해와 그 주변의 지방들)의 이야기들이 매일같이 다른 사람들․․․․․․그러니까 이 수역을 늘 항해하는 베네치아인, 제노바인, 피산(Pisan)인들에 의해 화자 되고 있기에 지루할 것 같아 이제 이야기를 그만 하려고 한다.

유명한 마즈던 번역본에서는 마지막 장을 다음과 같이 썼는데, 내용은 위와 비슷하지만 마르코가 직접 썼다고 보기에는 좀 의심스럽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타타르족과 사라센, 그리고 그들의 풍속에 대해, 또 내가 직접 여행하고 들어서 알게 된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다. 오직 대해(Greater Sea)와 그 주변의 지역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곳은 다른 사람들이 매일같이 왕래하기 때문에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세계 곳곳을 끊임없이 누비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다닌다.

우리가 대칸의 궁정에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는 책 서두에서 말한바 있다. 거기서 어떻게 우리가 대칸에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는지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같은 장에서 우리의 출발을 가능케 했던 행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기회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온갖 어려움 때문에 다시는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기회가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세계의 이야기들을 전하게 하시려는 신의 은총이라 믿는다.

신께 감사를! 아멘! 아멘!

이 후기는 막 번역된 원고의 도처에서 다소 마법적이고 이국적이며 음탕한 내용이 보이자, 어떤 고결한 성직자가 덧붙여놓은 주석 같은 느낌이 든다. 마르코의 이야기는 당시에 여러 면에서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 원고가 명백하게 신성 모독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뭔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프램튼의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라는 제목의 엘리자베스 시대 번역본에서는 끝도 모르고 이어지는 칭기즈 칸의 후예들 간의 전쟁 이야기를 12쪽이나 삭제했다. 프램튼은 북녘 땅의 어둠의 심장으로 희귀한 모피를 약탈하러 간 타타르족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서 결말을 맺기로 택했다.(나 또한 다소 지루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이 책에 복잡한 왕위 계승 다툼을 쓴 마르코의 마지막 내용을 포함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이 놀라운 이야기를 맥 빠지는 결말로 끝맺어야 할까? 마르코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본 것을 절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지쳐버렸던 것일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결말이 멋지다. 마르코와 그의 공동 저자이자 로맨스 작가였던 루스티첼로는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서두에서는 흥미로운 결말이 있을 것처럼 암시를 주더니 결국엔 이렇게 끝을 맺었다. 흥미로운 결말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서두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폴로 일가가 베네치아에 도착해 예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무렵이다.

1295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코르테 사비오네라(Corte Sabbionera)에 있는 고층 건물의 현관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도의 침입으로 생각했던 안에 있던 사람(마르코 폴로의 먼 친척들)은 처음에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실수로 빗장을 당겨 침입자들이 들어오고야 말았다.

그들은 다 해진 동양식 옷을 걸치고, 덥수룩하게 난 수염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금방 매운 듯 웅얼거리는 이탈리아 말을 하는 부랑아들과 마주쳤다.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진 그들은, 거기가 자기네 집이라고 주장했다. 세 사람은 오래전에 죽은 줄로 알았던 니콜로, 마페오, 마르코였다. 가족회의가 소집되고 도시 전역에서 온 다른 친척들 덕분에, 폴로 일가는 가까스로 자기들이 사기꾼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해명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족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나 신기했기에 베네치아 전체에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셋 중 가장 젊고, 일생 동안 다닌 여행을 바탕으로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마르코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확인시키기 위해 이국적인 파티를 열었다. 만찬에 앞서 여행자들은 진홍빛 공단 망토를 두르고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나서 망토를 벗어 귀한 천을 잘라서 손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식사 도중에 니콜로, 마페오, 마르코는 다시 사라졌다가 이번에는 비잔 벨벳으로 된 옷을 입고 나타나 다시 그것을 잘라서 손님들에게 돌렸다. 그들은 이것이 몽골의 관습을 엄격하게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런 과정이 세 번 되풀이되었다.

그 다음 그들은 테이블을 모두 치우고 하인들을 물러나게 했다. 마르코 포로는 그들이 처음 돌아왔을 때 입었던 낡아빠진 옷을 가지고 나와서 솔기와 주름을 뜯었다. 그러자 각양각색의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기타 보석들이 테이블에 쏟아져 내렸고,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오래전에 사라졌던 폴로 일가가 맞다는 것, 그것도 아주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모인 사람들에게 확인시킬 수 있었다.

이 멋진 이야기는 마르코 폴로 원고의 첫 인쇄 편집자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라무시오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는 그의 저서[항해와 여행에 대해서]에서 그 이야기를 '아주 나이가 많은 노신사이자 대단한 덕망과 성실성을 가진 원로원의 의원이며, 집이 산 마리노 운하에 있으며(...) 그 이야기를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이웃 노인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한' 아스파라 말피에오(Haspara Malpieo) 의원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영국의 시인인 존 메이슨필드(John Masefield)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맺었다.

마르코 폴로의 글을 역사서를 읽듯이 읽기는 어렵다. 소설을 읽듯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가 쓴 동방은 낭만적인 동방이다.

낭만적인 동방에서는 '태양의 나무', 그러니까 대사막의 끝에 있는 일종의 이정표 같은 나무가 자란다. 태양과 달의 열매가 그 나무에서 열린다. 다리우스와 알렉산드로스가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싸웠다. 마르코 폴로에 따르면 이것들은 나무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정보이다. 라틴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릴 수 있게 되자마자 나무 따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우리 현대인은 믿음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상실했다. 동방을 본 거의 최초의 유럽인인 마르코 폴로는 동방에 가본 그 어떤 사람보다 동방을 더 경이롭게 경험했고 충분히 만끽했다.

 

* 내가 저자라면 *

마르코폴로가 25년간 고향을 떠나 동방에 머물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상상으로 즐거웠다. 마르코폴로는 자신이 여행한 곳에 대한 구체적 위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특징에 대한 설명, 그 지역에 특이할 만한 동식물이나 물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 개인적인 감상에 대한 술회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안한 구체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도록 글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지만,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그의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자신의 평소 삶과는 다른 여행지에서의 감회를 느낄 겨를이 없이 그곳에 있는 동안은 그 지역의 문물을 직접 온몸으로 느끼며 자기 삶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았던 미지의 곳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어쩌면 신의 축복일 것이다. 폴로는 처음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를 따라 동방으로의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를 닮아 그의 기질에 맞았던 것일까. 쿠빌라이칸의 조정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벌써 4가지의 언어를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그의 총명함으로 대칸의 총애를 받게 된다. 처음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장면이 펼쳐졌지만, 그 삶의 장면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살았던 폴로의 인간됨에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그 방대한 양의 내용을 기록하고 그것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솜씨를 지녀 과거 그시절의 대칸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뿐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생소한 지역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사실 <동방견문록>은 <세계의 서술>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마르코폴로가 원했던 것은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찍부터 세계는 하나라는 동서합일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서양인의 시선에서 놀라움이 가득한 세계였을지도 모르지만 점차 그 세계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고 그들만의 개성으로 인식하고 그 특별함을 인정해주게 되었을 것이다.

서양인인 마르코폴로가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교해서 동양인인 내가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는 느낌을 마르코폴로의 길을 따라 가면서 글로 적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이 폴로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시선을 던지기에 가급적 자신의 감회를 자제하여 인간 마르코 폴로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 길을 다시 따라 간다면 객관적인 기술과 더불어 나의 감회를 함께 넣어 내 시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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