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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4일 13시 24분 등록

북리뷰 51: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김상봉

책: 김상봉 철학 이야기 -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한길사. 2003.




*** 저자에 대하여

김상봉은 한때 문예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다. 그는 매우 분명한 글을 쓰고 신념을 따라 행동한다. 어떤 인연으로든 그를 알게 되면 자기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문예 아카데미에서 그리이스 철학에 대한 그의 강의를 들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기운 없어 보이는 겉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이스인의 자유를 설명할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그의 얼굴이 빛에 가득하고 그의 말들은 마치 시처럼  흘러나왔다.  철학을  오랫동안 용광로에 녹여 마침내 순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희랍철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한신대 해직교수 였다. 그 기간 동안  인사동 건국빌딩에 있던 문예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그가 학생시절 활동랬던 야학이 조금 진화한듯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는 그렇게 길위의 철학자가 되었다.  연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의 ‘최후유고’에 관한 논문으로 1992년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벌없는 사회의 사무처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지금 이 시대에 드문 용기있고 아름다운 학자의 말과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거인이다.

* 세상의 흙탕물 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김인정 인물탐험/ 철학자 김상봉  
출처:http://www.jeonlado.com/v2/ch01.html?&number=10840

▲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빛보다 어둠이 훨씬 더 깊은데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강자들의 눈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허위의식에 빠져선 안 되죠.” 세상을 텍스트로 삼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고자 하는 철학자 김상봉.

저울바늘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기아의 마른 몸, 죽어가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아프리카의 여인, 군홧발이 딛고 선 마루아래 숨은 아이들의 큰 눈망울.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일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이 큰 죄악임을 느끼게 하는 사진들이 있다. 브라질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작품이다.

원래 경제학박사였던 그가 사진가가 된 이유 또한 독특하다. 커피 재배현황을 조사하러 아프리카에 갔다가 그 곳의 기아와 고통을 목격하고는 경제학 보고서보다 사진이 참상을 알리는 데 더 유용하겠다 싶어 사진가가 됐다. ‘벌이’가 더 낫겠다 싶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고 그 공감대를 확장하기 위해 기꺼이 업을 바꾼 것이다.

“하여튼 바꾸고 싶고, 뒤집고 싶은 것 투성이었죠”

‘거리의 철학자’, 혹은 ‘학벌 없는 사회’ 산파로 알려진 철학자 김상봉을 마주하는 동안 세바스티앙 살가도가 떠올랐다. 철학의 근본은 타인의 고통에 답하기, 철학이란 세상에 널려 있는 고통에 대한 경악과 슬픔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이야기가 살가도가 사진을 찍는 이유와 닮아 있기 때문이리라.

“저는 원래 정치를 하려고 했었어요. 중학교 이후로 줄곧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뭣때문에 그렇게나 열을 받았던가 일일이 기억은 안납니다만, 하여튼 바꾸고 싶고, 뒤집고 싶은 것 투성이었죠. 정치를 해야 그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정치를 하려고 했던 거죠.”

유신치하, 부산 변두리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이었던 소년 김상봉은 중3때 담임선생의 권유로 학생회장에 출마를 한다. 그리고 학내 가장 큰 부조리로 여겨졌던 ‘우열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당선된 후 진짜로 공약을 실천했다. 말하자면 ‘정치적 성공의 맛’을 일찍이 본 셈이었다고나 할까.

연세대 철학과를 다니면서는 성공회와 카톨릭노동청년회가 꾸리는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고 운동권 서클활동을 함께 한다. 보통 운동권에 발을 디디면서 전공 공부에 소홀하게 되는 반면, 그는 이 시기에 외려 철학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른바 학습이란 걸 하면서 경제사를 공부하는데 두 차례 이상만 질문을 하면 아무도 답변을 못하는 겁니다. 아, 이래가지고 누구를 설득하겠나.

주장만 있지 논리가 없다. 빌려온 이론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뿌리박은 진짜 탄탄한 이론이 있어야 한다. 뭐 그런 생각을 했고 그 때문에 공부에 더 재미를 붙였죠.”

학자적 공부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모순된 세상을 바꿔내는 힘의 근간으로 철학을 받아들였던 셈이다. 이후 연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독일에서는 괴팅겐, 프라이부르크, 마인츠 등 3군데 대학을 옮겨 다니며 철학, 서양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했고 칸트의 《최후유고>(Opus postumum)에 대한 연구로 92년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독일의 교육환경에 큰 자극을 받았죠.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스승을 찾아서 옮겨 다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 서열이 없는 대신 공부하는 사람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있는 것이죠. 중고등학교에서도 우열을 나누고 줄 세우기를 하는 우리의 교육풍토가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죠.”

타인의 고통, 세상의 그늘에 주목하는 데서 철학은 완성

귀국 후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학내 문제로 해직이 된다. 이후 6년여 동안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길거리 철학 강좌를 개설, 철학부재의 사회에 신선한 철학 붐을 일으킨다. 99년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결성하고 우리 교육구조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선다. 학창시절 꿈꾸던 정치를 철학의 이름으로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빛보다 어둠이 훨씬 더 깊은데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강자들의 눈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허위의식에 빠져선 안 되죠. 서구철학이 존재의 질서와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에서 비롯된 빛과 긍지, 나르시즘으로 요약될 수 있다면 우리 철학은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깊은 공감, 타인에게 향하는 격분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철학도 정치도 타인의 고통에, 세상의 그늘에 주목하는 데서 시작되고 완성되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철학과 정치는 늘 세상의 빛을 좇아왔기에 어둠을 응시하고 아픔에 답하려는 철학자의 걸음은 바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세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를 결성해 이라크 파병 반대,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요구, 국보법 폐지 성명, 전시작통권 환수문제 관련 성명, 삼성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 등을 발표했다. 또한 2008년에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나섰다. 무모하리만큼 현실 깊숙이 발을 담구고 흙탕물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앉아서 절망하기보다는 새로운 전망을 찾아가야죠. 말하자면 ‘못 먹어도 go’하는 겁니다. 인생에 원래 무에서 왔다 무로 가는 건데 손해가 뭐냐는 거죠.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에 의를 구하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냉정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먹고 입을 것이 없어서 비루합니까? 그게 아니라 눈앞의 가치를 뛰어넘는 더 큰 가치가 없어 비루해지는 겁니다. 돈이 모든 행·불행을 결정짓는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시대의 미신입니다. 돈이 없어야 오히려 진짜와 가짜가 명확히 구별되죠.”

세상을 텍스트로 삼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철학자

몇 해 전 그는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을 했다. 그가 한국사에 있어 가장 뜨거운 철학적 실천, 즉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 사례로 꼽아온 5·18의 도시를 삶의 거처로 삼게 된 것이다.

“저는 인격적으로 빚을 져왔다고 생각을 해요. 내가 대학생일 때 나 대신 노동을 했던 동일방직 여공들에게, 또한 5·18때 목숨으로 피로 싸웠던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온 거죠.”

그렇게 빚진 마음으로 보아온 5·18의 도시를 내부에서 만나온 소감은 어떠할까.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아주 비관된 톤으로 ‘광주는 대체 뭐하고 있는가’를 되묻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술자리만 가도 광주사람들은 절망적인 소리로 광주가 대체 왜 이 모양인가를 이야기하죠. 철학에서 인간은 존재의미 자체가 스스로에게 문제가 되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는데 광주가 바로 그런 도시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들 가운데 유일하게 도대체, 뭐하는 도시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점에서 광주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구요, 내년이 5·18 30주년인데 더 치열하게 물어야죠. 저부터서. 5·18정신은 대체 무엇이었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세상을 텍스트로 삼고서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고자 하는 철학자.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만해 한용운의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채우려할수록 허기가 지는 욕망의 시대, 남에 대한 격분을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려는, 그리하여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철학의 길을 열겠다는 철학자 김상봉.

걸어온 그의 길도, 가고자 하는 길도 결코 만만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무엇도 그의 발목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학창시절 ‘정치의 맛’을 제대로 보고서 정치를 꿈꾸었듯 그는 이미 일상의 척도를 넘어서는 ‘꿈꾸는 자의 자유와 재미’를 톡톡히 보아버린 것 같다. 배부른 시대의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자청한 그 걸음걸이가 마냥 유쾌하여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김인정 <방송작가>





***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19. 이 책은 우리에겐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해도 좋을 그리스 비극의 전체상을 그려 보이기 위해 씌어진 글이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려 한 것을 한마디로 하라면 , 나는 그것을 그리스 비극의 정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큰 산일수록 골짜기가 많은 법이다. 예술이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비극이 위대한 예술인 까닭은 그것이 자기 속에서 삶의 다양한 계기들을 심오하게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20. 잘 알려진 대로 그리스 비극은 다른 시대가 아닌 기원전 5세기에, 다른 장소가 아닌 아테네에서 유일하게 꽃피었다 사라진 예술이다. 우리가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 기원전 5세기의 시대정신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시대야말로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는 행위를 가리킨다. 자유로운 시민들이 더불어 자기가 사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들의 공공적 삶을 스스로 형성하는 것, 이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23. 아테네의 비극시인들이 예술을 통해 형성하려 했던 현실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곧 자유로운 시민 공동체였다. 그리하여 아테네 민주주의와 함께 탄생하여 아테네 민주주의와 함께 종말을 고했던 예술, 그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었던 것이다.

26. 세상에는 왜 이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픔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 많은 슬픔과 고통에는 과연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진리는 회상속에 있고, 철학은 되돌아감으로써만 전진한다. 그러므로 철학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잊지말아야 할 것을 잊지않도록 상기시키는 일일 것이다.

27. 우리의 삶은 타인의 죽음에 빚진 것이며, 우리의 풍요는 타인의 가난에 힘입은 것이다. 철학이 만약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면 그것은 이제 다른 무엇보다 먼저 내 이웃의 슬픔과 고통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성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8. 스스로 형성하는 예술의 광채에 비하면 게으르게 생각하는 철학은 그저 그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핑계삼아 비극예술의 의미를 물었으며, 더 나아가 세상에 넘치는 슬픔의 존재의미를 물었을 뿐이다.

29. 생각은 본질적으로 반성이다. 반성은 돌이켜 생각함인바, 그것은 회상하는 것이요 감사하는 것이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해준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회상하고 그것에 감사할 때, 비로서 우리는 타인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만남이 진리이다. 진리는 인식과 사물의 일치가 아니라 나와 너의 만남, 자기와 타자의 인격적 일치에 존립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실현해야 할 만남의 진리를 위해서이다.

첫 번째 묶음...비극과 숭고

40. 비극이란 슬픔의 자기반성이므로, 비극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지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라고. 정신은 세상을 자기 자신의 넓이만큼만 넓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자기 가슴에 품은 슬픔의 깊이만큼만 깊게 세상의 슬픔을 응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슬픔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자기속에 품고 사는 슬픔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41. 어디선가 끊임없이 울음소리 들려오는데 나는 누가 왜 우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속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눈물이 낯설어진 시대에, 내가 도대체 누구의 어떤 슬픔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신의 깊이는 오로지 고통의 깊이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42. 책에 씌여있는 슬픔은 그저 당신의 슬픔에 다가가기 위한 몸짓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스 비극이란 슬픔 자체에 대한 하나의 해석, 이해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3. 비극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슬픔의 자기반성입니다. 슬픔이 자기를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 그것이 비극이지요. 거울은 정신입니다. 슬픔은 정신 속에서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추합니다.

51. 사람들이 일삼아 슬픔을 노래하고 사람들이 그런 정서에 젖어들게 되면 사람들은 유약한 감정에 흐르고 정신은 까닭없이 슬픔에 중독됩니다.

하지만 모든 슬픔이 다 위로받을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슬픔이 고통받을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경우 우리의 슬픔이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사로운 욕망, 과도한 욕심이 드리우는 그림자, 그것이 우리의 슬픔의 정체라면, 그런 슬픔을 문학의 이름아애 퍼뜨리는 것은 얼마나 혐오스런 일이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런 문학은 비극을 가장하여 사람들 마음에 가장 저급한 욕심을 충동질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격함과 절제.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문학을 통해 슬픔에 대해 말하되, 문학에서 표현되는 슬픔을 오직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의 조건으로서만 허락하는데 있습니다.

58. 우리는 먼저 비극이 씨앗의 단계에서 한편에서는 디오뉘소스 찬가에서 유래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영웅설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59. 디오니소스는 변모의 신이었고 모든 개별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자재로 이행하는 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신은 하나인 모두(hen kai pan)를 상징하는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의 신이지만 무한히 다양한 인격으로 변모할 수 있는 신이라는 말이지요. 그런 까닭에 영웅들의 생애가 디오니소스의 무한한 삶과 인격속에 녹아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60. 디오니소스적인변모와 이행을 통해 영웅들의 삶에 참여하는 것, 이 참여를 통해 영웅적인 위대함을 닮는 것, 아니 스스로 위대해 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영웅들의 삶과 고난을 회상하고 찬미하기 시작했을 때 마음에 품었던 욕구가 아니겠습니까?

디오니소스가 온갖 영웅으로 변모하듯이 영웅들의 삶에 참여하고 동화되어 그들처럼 위대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극의 뿌리에 놓여있는 근원적인 충동이었습니다. 모든 아테네 시민이 영웅들의 삶과 수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62. 신적인 것을 향하여 무한히 상승하려는 욕구, 전설 속의 영웅들처럼 위대해지려는 삶의 충동이야말로 모든 그리스적 비극정신의 본질인 것입니다.

63. 그렇습니다. 나도 영웅숭배 따위는 질색입니다.

멋지고 화려한 겉모습에 매혹되는 것은 모든 노예적 정신의 특징이니까요. 고귀하고 자유로운 정신은 자기와 같은 것, 즉 정신적인 것에서만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노예적인 정신은 언제나 자기 아닌 다른 것, 그러니까 사물적인 것의 보호아래서만 안정을 느낍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에 있건만, 언제나 보이는 것에만 사로잡혀서 사는 노예적인 정신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64. 그리하여 이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언제나 그가 이룬 일을 통해 모든 것을 평가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극의 사명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을 형상화하고 드러내 보이는데 존립했던 것입니다.

무릇 모든 것의 크기는 한계에 의해 규정됩니다. 어떤 것의 한계가 곧 그것의 테두리이며 이 테두리가 바로 어떤 것의 크기를 표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끝없이 자기를 확장하려하면 할수록 보다 더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게 됩니다. 의지가 저항에 직면할 때 왜소한 정신은 그 저항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처럼 의지가 저항에 굴복하는 지점이 정신의 테두리요 한계입니다. 그러나 강건한 정신은 저항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앞의 저항을 초월해갑니다.

65. 제거된 장애물이나 제거될 수 있는 장애물은 진짜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정신의 영리함을 증거할 수 잇을 뿐 결코 정신의 크기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추구하는 가치들 가운데에는 어떤 장애물이 앞에 선다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장애물 앞에서 정신이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6. 그 고통이 싫다면 정신은 그 장애물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더러는 그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장애물의 요구에 굴종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67. 정신이 자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고통의 크기를 통해서만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것의 가치의 크기도 그만큼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들 가운데서도 최종적이고도 절대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인들의 이해에 따르면 그성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간 존재의 중지입니다.

죽음은 정신의 크기를 검증하는 마지막 장애물입니다.

죽음은,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야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68. 그리스 정신의 위대함은 이미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부터 고통을 정신의 위대함과 숭고의 조건으로서 요구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모든 영웅적인 위대함은 인간의 근원적 한계라 할 수 있는 죽음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71. 그리스인들이 비극을 통해 자기들의 세계관을 표현하던 무렵에 이집트나 페르시아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크기와 위대함을 눈에 보이는 엄청나네 큰 사물을 통해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그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리스인) 그들은 도리어 시를 통해 말을 통해 자기들의 위대함과 탁월함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73. 그리스인들은 쇠나 돌이 아니라 말과 정신이 위대하고 신적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처음에 남들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이 아니라 시와 노래를 통해 신들을 찬미했습니다. 그것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이고 우리가 보는 비극입니다. 그리스에서 건축이 꽃피기 시작한 것은 시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정신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하여 더 이상 말과 글로 신들을 찬미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돌로 된 신전을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 아무리 항구적이라 한들 말의 영속성과 정신의 영원성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파르테논 신전은 세월의 비바람 속에 폐허로 남았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시와 철학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눈부신 것입니다.

74. 참된 정신의 위대함은 오직 고통의 불꽃을 견딤으로써 자기의 참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75.우리가 알고있는 세 사람의 비극작가들은 모두 5세기에 작품을 쓰기 시작해서 5세기가 다 지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5세기에 꽃피웠던 문학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전혀 비극적인 시대가 아니었고 가히 그리스의 황금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76. 이 시대는 페르시아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가 처음 그리스를 침공할 때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 배들로 다리를 만들어 군대와 물자를 건너가게 했는데 꼬박 7일 밤낮을 쉬지 않고 건너서야 모든 군대가 다 이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는 그만큼 엄청난 규모의 군대로 그리스를 침공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남을 위해서 싸우는 노예가 자기를 위해 싸우는 자유인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자유인은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아남기를 원치 않는 까닭에 자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78. " 나그네여, 스파르타에 가거든 전해다오.
      조국의 법을 지켜 우리가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을 그대가 보았노라고. "

적을 맞아 싸워 이기거나 아니면 싸우다 죽거나 하고 결코 들을 보이고 도망치지 말라는 것이 스파르타의 법이었다고 하지요.

80. 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 보일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불행한 현실속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행복한 삶을 꿈꿀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행복한 상황에서도 지금 있지않는 불행한 상태를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83. 노예적인 정신은 정신이 이룩한 업적 속에서만 정신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정신은 도리어 인간이 영웅적으로 패배하는 지점에서 정신의 크기와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창조는 자유의 완성이요 정점입니다. 창조하는 자는 자기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무로부터 무엇인가를 스스로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86. 현실의 한계 속에 갇혀버릴 때 정신은 노예상태에 떨어지게 됩니다.

자유란 그렇게 자기가 자기의 존재와 현실을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것에 존립하는 것이지요.

89. 예술은 상상력의 힘을 빌려 정신을 자기의 한계 앞에 마주서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능동적 행위의 의미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나게 합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 설때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비극은 산사람들을 상상력의 힘을 통해 죽음 앞으로 호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절실하게 되묻게 하는 것입니다.




*** 내가 저자라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개념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나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속마음을 다 말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냥 시류에 따라 조용히 물흐르듯 살았다. 무슨 영성의 차원이 높아서가 아니라 다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다.

이제 죽음을 공부하며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관이 과연 내게 남아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죽는다는데... 죽어간다는데...아니면 내가 죽어야 한다는데....양보 못할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줄곧 그리스를 생각하며 한없이 가난해져서 그들의 땅마저 내어놓아야할만큼 가난해진 그들에게 조상의 말과 글을 지키지 못한 무능함을 과연 나그네가 비난할 수 있을까? 지나가다가 불쑥, 아니면 툭 던진 돌멩이 하나에 그 찬란한 헬레니즘 문명이 조롱를 받아야 하겠는가?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들이 여행을 앞두고 떠올랐다 가라앉고는 한다.

한때 나의 영혼에  번개처럼   찾아와 정신의 골수를 뒤흔들고 지나간 그리스의 혼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고 싶었다. 피로 쓴 그의 글이 내 청춘의 한시절을 가슴 뛰게 하였으니 가슴속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사랑을 이제는 조금 내보여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다했던 "자유",  희랍인의 "자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유"를 공부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이며 숭고한 그의 자유를 위하여 나는 오늘 땀을 비오듯 흘리며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모두 일곱개의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수년 전에 저자의 직강을 들으며 이 책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그의 서문과 첫번째 묶음만을 읽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묶음들은 동일한 주제의 변주이다. 칸트를 전공한 철학자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강의를 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만큼 반복도 많다. 그러나 수줍게 책에 사인을 해주며 첫인사를 나누었던 작가는 지금도 꿋꿋하기 그지없이 자신의 삶을 살며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의 말과 글은 믿을 수 있다.  곧바로 이어 그의 다른 책 < 호모 에티쿠스>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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