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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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유러피언 드림- 20100823
1. 저자에 대하여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년~
제러미 리프킨은 변환의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온 독보적인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다.
미국 Colorado에서 태어나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서 성장했다. 터프츠Tufts 대학 플레처 법외교학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1967 펜실베이니아 대학 워튼 경영 대학원Wharton School에서 경제학 공부했다. 1994년부터는 워튼 경영 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세계의 최고 경영자와 고위 간부들에게 과학,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이것이 글로벌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 조류 재단:Economic Trends>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의 공공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활발한 계몽운동과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으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포럼에서 자주 강연하고 있다.
여러권의 저서를 통해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노동의 종말'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1998)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리프킨은 미국과 세계 각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소유의 종말(2000)’에서 소유의 시대는 가고 “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한편 수소에너지가 세계 권력구도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수소 에너지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수소 혁명(2002)’은 경제, 정치, 사회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소 에너지 시대를 진단하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종합적인 사고와 신선한 시각으로 세계의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제레미 러프킨은 이책 ‘유러피언 드림(2004)’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그는 수많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으며 환경과 기술 분야의 많은 분야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CNN의'Larry King Live', 'ABC Nightline', 'Face the Nation'과 같은 미국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영향력 있는 일간지와 주간지에 기고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내셔널 저널National Journal'이 선정한 <연방정부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150명>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약력>
1977. 비영리 조직 'Foundation of Economic Trends (경제조류재단)' 설립, 이사장
1990. ~ 1991. 'The Green Lifestyle Handbook', 'Biosphere Politics' 발표
1993. 'Beyond Beef Coalition' 창립 운영
1994. ~ 현재. 현재 워튼 경영 대학원 교수
1995. '노동의 종말' 발표
1998. '바이오테크 시대' 발표
2000. ~ 2002. 'The Age Of Access', 'The Hydrogen Economy' 발표
2004. ~ 2010. 'The European Dream', 'The Empathic Civilization' 발표
CNN「Larry King Live」, 「ABC Nightline」, 「Face the Nation」등 출연
'National Journal'이 '연방정부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150명' 중 1인으로 선정
저서로는 이 책 유러피언 드림외에 유명한 종말시리즈인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이 있고, 스테디 셀러인 엔트로피와 그뢰 수소혁명, 바이오테크시대, 생명권 정치학 등이 있다. 그의 책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책 “유러피언 드림”의 판권은 현재 13개국에서 계약되었고 그 밖에도 계약이 다수 진행 중이며, 리프킨의 모든 작품들은 약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특히 이 책 유러피언 드림에 대해 그의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들 말하지만, 이제 유러피언 드림을 위해서라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라고 그리고 이책과 제레미 리프킨에 대해 로마노 프로디(전 EU집행위원장) 는 “ 19세기에 유럽인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 것처럼, 미국인 리프킨은 21세기 비전 유러피언 드림을 펼쳐 보인다. 리프킨은 유럽의 엄청난 실험과 그 파급 효과의 본질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 ”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미래학자이며 사회사상가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고 <뉴욕타임즈>는 그와 이 책에 대해 “ 리프킨은 항상 거시적 통찰력을 보이고 뜨거운 쟁점을 제시하여 많은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사회 정의의 예언자로서 그가 또다시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고 결론지을 만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학자이다.
그의 책은 내게는 다소 어려웠다. 하지만 나머지 책들을 읽어봐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도록 이끈 또 한사람의 대가였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P. 10] 그 폭풍의 눈속에서 두 조류가 서로 맞딱뜨렸다. 하나는 물질주의로 치닫는 세상에서 더 고매한 개인적 소명을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힘이었다. 다른 하나는 점차 무관심해지고 소원해지는 사회에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이었다. 미국인 모두는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으며 문화의 차이가 장려되고 모두가 양질의 삶을 누리면서도 환경을 보존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평화ㅘ 조화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사회의 모든 병폐를 제국주의 탓으로 돌렸다.
[P. 11] 아무리 불신이 팽배한 시기에도 미국인들은 “미국의 정신 American Spirit"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이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진 특별한 나라라는 확신이었다.
[P. 11] 반면 유럽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실제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미국인들만큼 갖지 못했다. 유럽의 정치는 개혁보다는 저항에 의해 이끌렸다.
[P. 11-12] 이처럼 유럽인들이 새 시대를 이끌고 있는 듯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한 설명 가운데서 한가지가 돋보인다. 미국을 현재의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것은 미국인들이 애지중지했고 한때 세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그 자체다. 아메리칸 드림은 성공하기 위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기회를 강조한다. 미국인들에게 성공이란 주로 물질적인 부를 의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물질적 출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리스크, 다양성,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맞은 더 넓은 사회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개척 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은 케케묵은 꿈으로 오래전에 폐기돼야 했다. 그에 따라 ”미국의 정신“이 과거에 사로잡혀 쇠퇴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 태동하고 있다. 그것은 차세대 인류 여정에 훨씬 적합한 꿈으로, 점점 서로 연결되고 가까워져 가는 상황에 알맞은 세계화 의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P. 12]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deep play"(완전한 몰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활동)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
[P. 12] 유러피언 드림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 시대의 교차 지점에 위치하며 두시대 사이의 간극을 이어주는 가교를 제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새 시대라기보다 모더니즘의 많은 결점들을 되짚어 보며 평가하는 모더니즘의 황혼기를 의미했다.
[P. 15] 포스트모던 사상은 미국의 주류에는 대단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사상은 유럽에서 위세를 떨었다. 미국인ㅇ의 절반 이상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기도교인의 비율이 높다, 또 그들은 상대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여전히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믿고 매일 매일 신앙에 따라 생활한다. 두 번째 그룹인 세속적인 미국인들은 대개 종교와는 다른 포괄적 비전을 추구한다. 그것은 역사를 점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물질적 발전으로 보는 합리적 계몽주의 비전을 말한다.
[P. 16]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인간의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자연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정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P. 16] 이렇게 자가당착에 빠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바로 유러피언 드림이다. 유러피언 드림의 기본은 구식 서양 이념의 명예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내재적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장된 세계화 의식을 인류가 포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역사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초월해 인류를 세계화 시대로 이끌어 주는 꿈이다. 요컨대 유러피언 드림은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P. 17]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무제한적인 부 축적보다는 삶의 질에 기초한 문명에서는 현대의 발전을 가져온 물질적 바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평형상태와 안정을 유지하는 세계 경제라는 것은 사실 매우 급진적인 제안이다. 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전통적 방식을 거부할 뿐 아니라 역사를 꾸준한 물질적 발전으로 보는 사고방식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 평형 상태를 이루는 세계 경제의 목표는 재순환을 통해 자원을 채워 줄 수 있는 자연의 능력과 인간의 생산 및 소비 사이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높은 질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는 것이다. 이런 지속 가능하고 평형을 이룬 경제는 무한한 물질적 진보만으로 규정되는 역사의 진정한 종말이다.
[P. 17] 유러피언 드림은 하나의 역사가 종식됨을 뜻하는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유럽인들의 새로운 비전에서는 개인의 부 축적보다 개인적인 변혁이 더 중요하다. 이 새로운 꿈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고양에 초점을 맞춘다. 유러피언 드림은 영토보다는 인간적인 공감대의 확장을 추구. 이 꿈은 18세기 합리주의 계몽 운동 아래 물질주의의 족쇄에 갇힌 인간성을 해방시켜 이상적인 새로운 미래로 이끈다.
[P. 17] 이 책은 오래된 아메리칸 드림과 새로 부상하는 유러피언 드림에 관한 내용이다,
[P. 17-18] 나는 본능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인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매료되어 왔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나는 사회적 집단 책임과 세계화 의식을 강조하는 유러피언 드림 쪽에 끌리고 있다. 나는 양쪽 꿈의 최선을 통합하고 싶은 열망에서 이책을 통해 둘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P. 18] 태동하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인류 최선의 노력이라고 나는 어느 정도 장담할 수 있다. 유럽의 신세대는 바로 그 꿈에 세계의 희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아주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세계가 미국을 희망의 등대로 생각했던 200여년 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졌던 바로 그런 책임감이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구세계”에서 얻는 새로운 교훈
1.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
[P. 21-22]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운명을 단순한 숙명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로 생각했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실천했는지 여부는 세상에 영향을 줄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철저히 믿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P. 22] “제러미, 미국에서는 말이야 어떤 것이든 네가 택하면 할 수 있고 네가 원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어. 그걸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말이야” 어머니에게는 개인의 의지력이 미래의 모든 가능성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원동력이었다. “너 자신을 믿으면 거대한 산더 옮길 수 있어” 라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꿈꾸는 사람들의 나라
[P. 23] 그것이 바로 "미국의 신조American Credo"다.
[P. 23] 역사가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미국의 서사시’라는 책을 펴내면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다.
[P. 23]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경우 아메리칸 드림에 상응하는 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여긴다,
[P. 24] 여러모로 유러피언 드림은 아메리칸 드림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대조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둘은 기본적으로 ‘자유freedom'와 ’안전security'에 대한 개념에서 판이한 시각을 보인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움의 의미에 대해 부정적인 개념을 견지한다.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자유를 ‘자율autonomy'과 연관지어 생각해 왔다. 자율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영역 밖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더욱 독립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자주적이고 스스로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됨으로써 자유로워진다고 믿는다. 부에서 배타성이 생겨나고, 배타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
[P. 24]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자유와 안전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해 그와는 다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유럽인들은 자유가 자율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embeddedness'으로 인해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것을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공동체에 소속될수록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상호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포괄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
[P. 24-25 ]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지만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메리칸 드림이 근로 윤리를 높이 사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여가 활동과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선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종교 전통 및 굳건한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철저히 종교와 분리되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동화주의를 표방. 미국인들은 이전의 문화 관계를 탈피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자주적 행위자free agent'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P. 25] 아메리칸 드림은 철저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복리에 관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복리를 좀더 중시하게 된다.
[P. 27] 아메리칸 드림의 으뜸가는 미덕으로 여겨졌던 것이 점점 더 약점으로 비치고 있고 심지어 인류의 염원을 성취하는 데 장애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현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부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옛 비전의 미흡한 점이 바로 새 비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P. 27]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데 대해 내가 지금 느끼는 회의가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와 깊이 얽혀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P. 29] 미국인들이 지금과 같은 무기력증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정도는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택받은 사람들
[P. 29-30]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미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가 공유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식될 수 있는 꿈이 아니었다. 그 힘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배타주의에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땅에서만 추구될 수 있는 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적인 맥락에서만 적용된다는 점이 그것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었으며, 미국이 성공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그런 배타성 때문에 시대에 뒤지게 되고 외면받게 된 것이다
[P. 31]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개념은 미국 역사를 통해 계속 이어져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 사상이 됐다.
[P. 31] 많은 미국인들이 아직도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들로 보고 있으며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간주한다.
[P. 33] 유럽인들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인들이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점이다.
[P. 34] 많은 유럽인들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 미국인의 82퍼센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반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야 절반은 신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앙에 관한 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개도국 사람들의 견해에 훨씬 가까우며 다른 선진국 사람들의 견해와는 크게 다르다.
[P. 35] 미국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종교적 확신을 갖기 때문에 이 세계를 선과 악이 끊임없이 싸우는 전장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P. 37]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화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범국가적 꿈이다. 유럽에서 국가적 긍지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보다 더 넓고 깊이 있는 상호 의존성을 포용하기 위해 국가 경계선을 초월한 정체성과 소속 의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38]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고 개인 및 집단적 복지를 위해 상호 의존하는 ‘경계 없는’ 세계에 미국인들이 적응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P. 39] 유럽인들은 종종 내게 미국인들이 미래에 대해 늘 낙곽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인들이 영원한 낙관론자인 것은 선민의식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개인으로서나 국민으로서 자신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성공하도록 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미국적 근로 윤리의 쇠퇴
[P. 39] 존 윈스롭이 아메리칸 드림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거기에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한 사람은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미국에 대한 프랭클린의 비전은 물질주의, 실용주의, 시장에서의 개인 이익을 강조한 유럽의 합리주의적 계몽 운동에서부터 나왔다.
[P. 39]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프랭클린의 비전은 끊임없이 부를 창출하고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독창적 천재들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P. 40] 프랭클린은 행복이 끊임없는 개인적 진보, 즉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뤄 내는 것에 의해 얻어진다고 믿었다.
그 결과 아메리칸 드림은 유럽의 양대 전통을 위대한 연합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P. 40] 아메리칸 드림이 그토록 오랫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구 두 가지, 즉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현세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 자기개선, 자립이 필요하고 내세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신앙심을 가져야 했다.
[P. 41] 아메리칸 드림은 전력투구하고 융통성을 살리고 자립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개념을 기초로 했다.
[P. 43] 아메리칸 드림이 기독교 종말론과 계몽 운동의 실용주의 및 합리적 행동을 아우른 고매한 이상에서 격하되어 한낱 요행을 바라는 형편없는 꿈으로 잔락한 것인가? 많은 미국인들의 경우 이미 그 대답은 “예스”이며 그런 미국인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로소득
[P. 46]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기독교 신앙과 미래를 위한 근면과 희생에 대한 믿음이 합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요소들을 대체하고 있는 합법적 도박, TV 리얼리티쇼 등은 공상 및 환상을 바탕으로 한다,
[P. 47] 그들에겐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거의 없다. 그들이 꿈꿀 기회를 갖기도 전에 꿈이 이뤄진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젊은이들에게 삶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동기 유발” 그 자체다. 그러니 술 마약, 도박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것이라면 순간적 쾌락만이 권태를 물리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P. 48] 과도하게 자신감을 부추기면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계속 칭찬을 들으면 모든 좋은 것을 자신이 가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노력으로 쟁취하는 꿈이 아니라 하나의 권리로 간주한다.
미국인들의 공공의식
[P. 50] 모순인 듯하지만 미국인들의 공공의식은 개인의 자유라는 뿌리 깊은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2. 새로운 기회의 땅
사회 경제적 신분 상승
[P. 56] 그러나 지금은 신분 상승이 둔화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한때 위대했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냉혹한 악몽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굴하고 신분 상승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에덴동산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탈출한 구세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계급과 신분에 얽매어 있던 그 구세계는 지금 서서히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라”
[P. 59] 어떻게 기회의 땅인 미국이 소득 불균형과 빈곤 측면에서 선진국 가운데서 꼴찌일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보다 한참 아래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비즈니스와 상업 활동에 대해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태도를 취한다. 교육받을 기회를 주고, 자유 시장이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거기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의욕 있고 재능있는 사람은 자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욕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지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미국은 언제나 ’기회 균등‘의 나라였지 ’결과 균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격언처럼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야 한다.”(Sink or swim)는 것이다.
[P. 60] 믿음과 현실 사이에 왜 이토록 큰 괴리가 있는 것일까? 그것 역시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개념. 다시 말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특히 정부의 간섭이 지나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기의 꿈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강인한 개척 정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부의 간섭없이 개인 목표를 추구할 자유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산성
[P. 64]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성공과 EU 경제에 대한 미국의 우월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준이 생산성이다.
[P. 65] 우선 미국 대륙의 거대함 자체가 세계 최대의 내부 단일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본이 되었다. 또 단일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상거래가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일하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일하느냐
[P. 73] 유럽은 짧은 근무 시간제를 도입하는 데서만이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직장과 가정 생활을 둘 다 무리 없이 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융통성을 주는 인적 자원 관리의 혁신에서도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P. 74]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일하기 위해 사는 반면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의 37퍼센트는 주 50시간 이상 일하며 남자 근로자의 80퍼센트는 주 40시간 이상 일한다. 또 많은 미국인들의 경우 근로 시간이 계속 늘어나는 반면 유럽에서는 근로 시간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일자리
[P. 75] 전통적인 통계수치가 아직도 유효한 분야가 하나있다. 바로 일자리다.
[P. 79]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이 개인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보장해 주느냐는 문제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무료교육 기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회적 지원이 거의 없이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했다, 반면 유럽인들은 치열한 적자 생존의 시장에서 균형을 잡는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불운한 사람들을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 80]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은 둘다 나름대로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 종종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움녕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냉혹하며 어려운 동포들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P. 80] 희안하게도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적을 무시한다.
[P. 80-81] 과거 종교적 열정이 개인의 성공과 통합되었을 때는 선민의식이 미국인들의 지위 상승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메리칸 드림의 개인적인 성공은 부유한 젊은이들에게 당연하거나 별것 아니거나 따분함의 대상이 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가난한 미국인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꿈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선민 의식뿐이다,
3. 소리 없는 경제 기적
[P. 83] 그러나 소득과 지출, 투자와 수익, 생계 수단 등의 ‘현실 세계’와 관련된 문제에 고나한 한 미국인들은 유럽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새로운 경제 수퍼파워의 탄생
[P. 86-87] EU는 아직 형성되고 있느느중이다. 현재 회원국 수는 25개국이지만 향후 10년에 걸쳐 4-5개국이 추가로 합류할 전망이다. 그렇게되면 EU의 영토는 남북으로는 지중해에서 필란드까지, 동서로는 흑해에서 아일랜드까지로 확장될 것이다. EU의 잠재력 대부분은 능률적이고 통합된 내부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자체의 능력에 달려 있다. 대륙 전체를 잇는 운송 네트워크, 통합 전기 및 에너지 공급 네트워크, 공동 통신 네트워크의 구축, 그리고 단일 금융 서비스 시장, 상거래에 관한 통합 규정 마련 등이 현재 초기 단계에 있다. EU는 운송, 에너지, 통신 부문에서 유럽 전체를 단일 첨단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트랜스 유러피언 네트워크”(TE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P. 90-91]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유럽의 회사들은 자신들을 유럽 회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에 미국의 회사들이 자신들을 뉴욕 회사나 캘리포니아 회사로 보지 않고 미국 회사이며 국제적인 회사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P. 91] 이제 미국인들은 미국의 50개주를 아메리카 합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을 보는 사고의 틀도 바꿔 그들을 EU의 일부로 생각해야 한다.
성공 측정 잣대의 신뢰성
[P. 99] GDP는 1930년대 대공황의 절정기에 미국 상무부가 만들어 처음에는 미국의 경제 회복을 측정하는 잣대로 사용되었고, 그 다음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전시 물자 생산 능력 측정에 사용되었다. GDP의 단점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경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경제 활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 99] “GDP는 더하기는 하지만 빼기는 못하는 계산기”라고 신랄하게 바판했다.
[P. 99] GDP는 모든 경제 활동을 유효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만약 실업과 빈곤 때문에 범죄가 증가해 경찰력 확충 비용, 법원 비용, 교도소 비용, 개인 감시 및 보호 시시ㅡ템 비용이 늘어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활동도 GDP에 포함된다.
[P. 102] 또 유럽의 길러리에서는 노숙자나 정신 장애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유럽에서도 노숙자나 정신장애자가 존재하며 그 수가 불어나고 있지만, 누욕, 워싱턴,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등 미국 대도시의 거리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P. 104] 유럽에서는 누가 얼마나 가졌느냐보다는 삶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 대다수 유럽인들은 이 점에서는 매우 확실하다.
[P. 104]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유럽과 미국에서 경험하는 ‘삶의 질’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삶의 질
[P. 107] 이처럼 부정적 경제 활동을 GDP에서 제외하는 것보다 경제 복지와 삶의 질을 측정하는 특정기준 자체만 따져보면 EU가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109-110] 미국의 비만율은 거의 전염병 수준이다. 미국인의 30퍼센트 이상이 만성 비만으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3억명 이상이 비만으로 분류된다.
[P. 110] 미국은 오랫동안 기회의 땅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기회란 것이 처음부터 충분한 재정 자원을 갖고 경쟁에 뛰어들어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EU국가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미국 아이들보다 더 유리한 입장이다,
[P. 112] 미국인들은 모든 사람이 “삶, 자유, 행복추구, 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성장이 삶의 질을 보장해 준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적 성장 그 자체는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P. 113] 이모든 것이 아메리칸 드림 및 유러피언 드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옛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누구나 가난을 딛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새 유러피언 드림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삶의 질 증진을 강조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개인의 기회를 중시한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P. 114-115] 유럽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깊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럽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과거에 대한 부인(否認)이라기보다 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꿈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뒤에 무엇을 남겨 두고 떠나는지 올바로 알아야 한다. 모든 여정에는 목적지뿐만 아니라 출발점도 반드시 있다. 유러피언 드림의 경우 그 출발점은 2000년대의 시작도 2차 대전 이후의 시대도 아니다. 그 출발점은 중세 말과 현대 초 사이의 여명기로 계몽 운동, 현대 과학의 태동, 개인주의의 개화, 개인 재산 개념의 확립, 시장 자본주의의 형성, 민족국가의 탄생 등 “현대 modernity"라는 제목이 붙는 사상과 관념이 확립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P. 115] 아메리칸 드림이란 유럽 역사에서 얼어붙어 있다가 18세기에 미국의 해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는 한순간의 사상을 대변한다,
[P. 116] 더욱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다음 미국 땅으로 옮겨 와 미국의 독특한 상황에 맞도록 개조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스스로 먼 지평선을 보며 전진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세계관은 이상하게도 유럽 역사에서 오래전에 지난 한 특정 기간에 갇혀있다. 다시 말해 아메리칸 드림은 너무 케케묵은 새로운 세계와 시대에 점점 어울리지 않는 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형성
4. 공간, 시간, 그리고 모더니티
화성에서 온 미국인, 금성에서 온 유럽인
[P. 120] 미국에서는 자율, 이동성, 자유 이세가지가 늘 함께 붙어 다닌다,
[P. 121] 휴대폰 기술이 유럽에서 먼저 성공했다는 것은 많은 사실을 시사한다. 휴대폰은 개인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휴대폰은 또 지리적인 제한에서 벗어나 공간적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면서도 시간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여기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인들은 독립적인 공간을 갈망한다. 각자가 자조, 자립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포괄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가족, 친척, 종족 등으로 구성된 넓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인들에는 프라이버시가 서로 관계를 맺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또 미국인들에게는 시간이 미래 지향적이며 새 기회를 탐구하는 도구로 간주된다. 반면 유럽인들에게는 시간이 과거 및 현재 지향적이며 서로간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돈독히 하는 데 사용된다.
시공(時j空)에 대한 유럽의 집착
[P. 124] 인간의 공간 및 시간 의식을 변화시킨 것은 신기술이다, 신기술로 개발된 도구들은 인간 존재의 연장으로서, 공간을 확대하고 시간을 줄이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수단이다.
[P. 126] 또 인쇄된 책은 모든 가정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알려 주는 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대상을 확장되었다.
자연의 개척과 이용
[P. 129] 미국인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좋아한다,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자율성을 매일 상기할 수 있도록 언덕 꼭대기나 이웃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려 한다. 그런 배타성이 미국인들에게 안전하다는 느낌과 자유를 준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있다. 도시의 구시가지 뿐만 아니라 일부 신시가지도 이웃과 구분되는 공간이 거의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P. 131] 그러나 원근법은 인간의 의식을 수평적으로 바꿔 현세를 중시하고 각자가 속세의 삶에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P. 132] 베이컨은 자신의 저서 전반을 통해 자연에 대한 전명 공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그 근본부터 바꿔 놓을 수 있다.”면서 이런 신과학의 목표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확립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P. 133] 데카르트는 자연에서 주관성과 활력성을 합리적이고 계산 가능한 영역으로 대체했다. “자유롭게 말하자면 나는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어떤 학문보다도 수학이 더 강력한 지식도구라고 확신한다.”
[P. 133] 로크는 자연의 용도가 더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것 외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P. 133] 자연이 수학적으로 파악되고 자원의 보고로 간주된 것은 중세에서 근세로 옮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P. 136] 곧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경제에 적용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철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애덤 스미스는 데카르트의 은유법을 차용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을 통치한다며 경제는 저절로 올바른 기능을 찾아간다고 주장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수용와 공급, 노동력, 에너지, 자본을 정확하게 조절하고 생산과ㅜ지구 자원의 소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시계추에 비유되었다.
시간의 비신성화
[P. 137] 공간이 신성한 영역에서 실용적인 영역으로, 신의 창조물에서 자원의 보고로 바뀌면서 시간에 대해서도 유사한 비신성화 현상이 일어났다. 시간은 단 몇 세기 동안 완전히 세속화해 공간 활용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과학적 기준에 맞추었다.
[P. 139] 결국 시간 문제에 관해 굴복한 쪽은 교회였다. 상인이 승리함으로써 돈을 기반으로 한 경제가 태동. ‘공정가격’은 ‘시장가격’으로 교체되었고, 시장 자본주의가 부상했고 교회의 권력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P. 139] 시간의 개념은 중세 말과 근대 초 사이에 또 다른 방향으로도 변했다. 13세기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에 의한 근대적 시계의 발명과 ‘스케줄’의 도입은 인류의 시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아 시장 경제와 민족국가 통치로 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을 제공했다.
[P. 140] 물론 현대 문화에서도 달력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중요성은 스케줄의 등장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스케줄은 시간 할당에서 달력보다 훨씬 큰 통제력을 갖는다. 달력은 1년 전체에 걸친 ‘매크로’ 시간을 규제하는 반면 스케줄은 초, 분, 시간 등 ‘마이크로’ 시간을 통제한다. 스케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다...........중요한 것은 어제 행해진 일이 아니라 내일 행할 수 있는 일이다,
[P. 140-141] 반면 스케줄은 생산성과 관련이 있다. 스케줄을 짜는 데 있어서는 종교적 역할이 거의, 아니면 전혀 없다. 중세가 끝나면서 시간은 생산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시간에는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순전히 실용적 의미만 남았다.
조지 우드콕은 “한 문화나 문명이 무엇인가를 고안했다가 나중에 그것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시간의 개념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시간 개념이 생긴 데는 다른 어떤 단일 요인보다 스케줄의 영향이 컸다.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스케줄이 영구 구원을 준비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좀 더 잘 활용하는 데 이용되기를 원했을 뿐 그 외 다른 목적으론 쓰여지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특히 스케줄이 현대 상업의 으뜸가는 도구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P. 141] " 우리가 지옥의 고통을 면하고 영원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이익을 줄수 있는 일을 시간이 있는 지금 서둘러 해야 한다.“
[P. 142]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이 처음 도입한 ‘스케줄’은 단순히 새로운 시간 개념인 것만이 아니었다. 에비아타 제루바벨은 특정 활동을 위한 시간을 정하고 그것을 철저히 따르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사에 기계의 규칙적이고 집단적 리듬을 주입했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 라인하드 벤딕스는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을 “서양 문명의 최초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렀다.
[P. 143] 초기 시계에는 문자반(文字盤)이 없었고 단지 시간마다 종이 울렸다. 시계를 의미하는 영어 단위의 ‘clock'도 ’종‘을 뜻하는 중세 네덜란드어 'clocke'에서 나왔다.
[P. 144] “시계는 그 속성상 시간을 인간사에서 분리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루이스 멈퍼드는 말했다. 또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자 데이비드 랜즈는 시계가 “인간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말했다.
[P. 146] 이 새로운 산업 시대에는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정확한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시계가 없었다면 산업 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계로 인해 사람들은 시간을 외부적이고, 자율적이며, 연속적이고, 정확하며, 수량으로 측정 가능하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런 시간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생산 및 제조 방식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P. 146] 자연이 신의 창조물에서 인간의 자원으로 변하고, 고리대금업 법규가 달라지고, 돈 경제의 탄생과 함께 공정가격이 시장가격으로 대체되고, 스케줄과 시계가 도입됨으로써 유럽인들의 공간 및 시간 개념은 큰 변화를 겪었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여
[P. 147] 현대 미국의 특징을 형성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현대식 효율성 개념이었다.
[P. 147] 미국에서는 효율성이 삶의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면서 포괄저인 행동 기준으로 굳어졌다.
[P. 148] 모든 기독교인들이 떨칠 수 없는 의문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P. 149] 이 열정적 신자들이 거대한 미국 대륙에서 부딪힌 난관은 길들여 지지 않은 야생 환경이라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거기서는 현실적 생존이 영구 구원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들은 끊임없는 생산을 강조한 칼뱅의 교리에다 계몽주의에서 강조된 합리적 행동, 기술적 우수성, 실용주의를 혼합함으로써 어려운 상황 아래서도 생존을 유지하는 동시에 신앙도 실천할 수 있었다.
[P. 155] 이 모든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근본적 차이로 귀결된다.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미국인들에게 행복이란 개인적 성취, 물질적 성공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행복은 서로간의 돈독한 관계 및 공동체 유대감과 결부되어 있다.
[P. 155] 약속의 땅이 높은 삶의 질을 상징한다면 ‘스톱워치’라는 길잡이만 갖고서는 그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개인주의의 발달
[P. 156] 대다수 미국인들은 강인하고 자율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개인의 전형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당히 큰 재인적 리스크(위험 부담)를 기꺼이 감수하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자부심은 ‘강건한 개인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프라이버시의 탄생
[P. 164] 프라이버시는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고, 인류의 시작부터 지배적인 사회 단위였던 대 가족 관계를 부인하고 개인 생활에 우선권을 두는 계기로 작용했다.
[P. 167] 과거에는 공개적으로 행해졌던 목욕도 개인적인 행위로 바뀌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탄생
[P. 170] 조직적으로 계획된 생활방식이 바로 신흥 부르조아 계급의 특지이었다. 일상생활ㅇ[서 교회의 통치가 개인 스스로의 통치에 밀려난 것이다.
[P. 170-171]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제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초연하고, 근면한 생활방식을 취했다.
[P. 172] 미국인들은 자율적 개인 개념을 통해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일 수 있고, 신앙 지향적이면서 합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상반되는 세계를 동시에 사는 것은 삶의 목적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종교 개혁적 측면은 영원한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고통을 경험할 것을 강조하지만, 계몽주의의 실용적, 합리적 측면은 바로 이 세상에서 인류 발전의 이름으로 행복을 추구하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P. 173] 유럽인들은 이점에 있어서 미국인들 만큼 혼란을 겪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종교적 열의를 포기하고 계몽주의의 이념만 갖게 되었다.
6. 사유 재산 개념의 발달
[P. 175] 유럽인들은 사유 재산권 개념을 자신들이 처음 만들어 냈지만 사회주의 개혁을 위해 그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P. 175] 사유 재산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과 민족국가의 탄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미국과 유럽이 그 제도를 어떻게 달리 수용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지금 유럽은 근현대의 양 기둥인 시장과 국가 개념을 초월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 경제 속에서 최초의 범대륙적 통치 체제로 옮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의 재산 개념
[P. 178] 노동력도 재산의 한 형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시장에서 팔았다.
재산과 종교 혁명
[P. 180] 루터는 직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calling'으로 파악함으로써 재산에 대한 자연법의 기초를 놓았고, 산업 시대를 낳은 자본과 부의 축적에 대한 정신적 버팀목을 제공했다. 루터는 아무리 비천하다고 해도 모든 직업은 주님의 눈에 똑같이 신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안에서 하는 일도 천국에서 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과 또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사유재산의 정당화
[P. 181] 사유 재산이 사회 조직의 원칙으로 자리 잡자 학자들은 그에 걸맞은 철학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다. 그들은 재산의 자연법 이론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재산의 자연법 이론은 중세 말에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해 종교 개혁과 그 직후 신속하게 발달했다.
[P. 184] 로크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연이 준 것 가운데서 무엇이든 채택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보태고 자기 고유의 것을 접합시키면 그것은 자기재산이 된다.
[P. 186] 따라서 헤겔은 재산을 욕구 충족의 수단 이상으로 간주했다. 더 깊은 차원에서 살펴보면 재산은 개인의 자유의 표현이다. 사람은 재산을 확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인격을 확장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넓혀간다. 다시 말해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넓히는 것이다.
[P. 187] 윌리엄 제임스는 한 걸은 더 나아가 우리가 소유물을 도둑질 당했거나 소유물이 파손되었거나 그냥 잃어버렸을 경우 우리는 “우리 인격이 줄어든 것”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소유물이 자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것 vs. 네 것
[P. 189] 사유 재산은 개인의 해방에 이르는 일종의 ‘승차권’으로 간주되었다, 자유는 당시의 의미로는 자율성 및 이동성과 동격이었다.
[P. 191] 데 소토는 빈자와 부자,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공식 재산법 체제를 확립하고 그 법을 기초로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전환 과정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사유 재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착
[P. 195] 미국은 처음부터 이주자들에게 넓은 땅을 거의 무상으로 배분했다..
[P. 197] 한 세기가 채 지나기 전에 수백만 에이커의 공유지가 개인 소유지로 변했다.
[P. 197] 이런 인구 밀도의 차이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은 모든 것이 조밀하고, 길이 좁고, 건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카페가 늘 붐비고 식당에서 주는 1인분의 양이 너무 작다고 느낀다.
[P. 200] 미국에서는 자유가 독립을 의미하며 독립은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통제력을 의미한다. 자립과 자조는 미국 독립 전쟁 훨씬 전부터 미국 장신의 주체였다, 미국ㅇ니들은 이웃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P. 203] 도시 개발의 제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주로 넓은 주택 및 상업 단지의 규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인접 구역들 사이나 주 및 연방 차원에서 조절된 장기적 도시개발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유 재산권과 민주주의의 충돌
[P. 205] 미국 사회의 특이한 점은 민주주의 체제라기보다 방대한 대륙의 자원을 발견하고 개발하고 자본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회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P. 206] 미국인들은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개인적 안전을 추구하며, 재산이 있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7. 자본주의 시장과 민족국가의 확립
[P. 201] 이제 미국인들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순수 자본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애덤 스미스가 제시했듯이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가 자신의 재산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속박 없는 시장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천하는 주된 무대다. 자본주의 무대가 손상되면 아메리칸 드림이 타격을 받는다. 미국인들이 자본주의 이론의 원칙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 이론은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서 핵심을 이루며, 그것이 없었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세력 강화
[P. 222] 중세의 유럽에는 서로 격리되어 주민 삶의 공동 경험이 인근의 산이나 강을 넘어가지 못하는 소규모 공동체가 수천 개나 있었다. 이런 공동체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왕국, 제국, 로마의 교황청등 더 큰 체제를 이루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의 통치는 영토보다는 사람에 대한 것인 경우가 더 많았다.
최후의 진정한 신봉자
[P. 231]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면 미국의 다른 모든 계획은 하루아침에는 아니라고 해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없다면 미국인들의 국민 정서에서 그들의 결속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사라질 것이다.
다가오는 글로벌 시대
8. 세계화된 경제의 네트워크 상거래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탄생
[P. 241-242]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람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이면 무엇이든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아니 필연적으로 사회에 가장 이익이 되는 활용방법을 선호하게 된다.
협동 시스템
[P. 243] 네트워크 관계의 핵심은 신뢰다, ‘위험 부담은 구매자가 진다’는 개념이 파트너십에 의해 발생하는 취약점을 누구도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개념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P. 245] 네트워크에 융화되는 데 따르는 이익은 여러 기업들이 복잡하고 모두의 머리를 함께 모아야 가능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 확실히 드러난다,
[P. 246] 네트워크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산 소유보다 소속 의식이 중요하다
[P. 250]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자유가 그 반대로 정의된다, 자유는 재산 소유보다는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된다, 소속되기 위해서는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 접근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누릴수 있다. 격리된 관계보다는 공유된 관계에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다.
[P. 254] 프리고지네는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진화의 조전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D[너지 흐름이 많은 그로벌 경제가 프리고지네가 말한 소산구조의 주된예다. 시스템 내의 에너지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기면 시스템 전체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붕괴되든지 아니면 더 복잡한 차원의 시스템으로 재조직된다.
9. 유럽 “합중국”
[P. 257] EU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통치 체제다.
유럽이란 무엇인가?
[P. 260] EU를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EU가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연합체 형성
[P. 262] 언제나 문제는 “더 많은 안전과 기회를 위해 국가의 주권을 약간 희생하는 것이 실보다 득이 많은 것인가?” 였다.
[P. 267] 유럽 국가들은 1987년 발효된 단일 유럽의정서(SEA : Single European Act)를 통해 개별 국가의 주권을 약간 포기하면서 연합 구성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P. 268-269]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실제적인 유럽연합(EU)이 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EU가 공동 시장을 훨씬 넘어서는 기구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EU는 세 기둥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회원국들은 1999년 1월까지 단일 통화 ‘유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둘째, 회원국들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포함해 정부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셋째, 회원국들은 모든 회원국 국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국가 간 사법 협력을 증진하고, 연합 전체의 이민 및 난민 정책을 통일하기 위해 법무 및 내무 규정을 확립하기로 합의했다.
[P. 271] EU는 본질적으로 영토를 기반으로 한 통치기구가 아니다, EU는 영토에 근거한 각 회원국의 권한을 초월하는 강력한 규제력을 가진 사상 최초의 범국가적 정부라고 볼 수 있다. 이 사실 하나만 해도 통치론의 새로운 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EU의 정통성은 영토의 지배나 과세 권한, 또는 경찰 및 군 동원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기반으로 규정과 법령, 그리고 지방, 지역, 국가, 국제, 세계 차원의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과정에 의해 움직이는 행동 규범에 있다.
새로운 EU 헌법
[P. 275] EU헌법에 하느님만 빠져 있는게 아니다. 사유 재산도 잘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 단 한줄로만 언급되며 자유 시장과 무역은 겨우 스쳐 지나가는 정도다.
[P. 277] EU 헌법은 그 초점이 국민이나 영토, 국가보다는 인류 전체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10. 중심 없는 정부
[P. 278] 꿈은 과거의 업적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반영한다. 그런 견지에서 유럽연합(EU)의 헌법은 앞으로 채워져야 할 미래를 상징한다.
[P. 278] 그런데도 불구하고 EU 헌법 입안자들은 자신들이 동경하고 살고 싶어하는 세계의 비전과 그 여정을 감독할 수 있는 규칙들을 문서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드백 혁명
[P. 283] 모든 직원들의 업무는 적어도 하루 전에 경영진에 의해 완벽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각직원은 대부분의 경우 문서화된 작업지시를 받아야 한다, 거기에는 각자가 해야할 업무의 세부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작업에 사용되는 수단까지 명시되어야 한다.
[P. 284]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키잡이’을 뜻하는 그리스어 ‘키베르네티에스kyberneties’에서 나온 용어다. 사이버네틱스에 따르면 의도적인 행동은 두 개의 요소, 즉 정보와 피드백으로 나뉘며, 모든 과정이 그 둘의 증폭과 복잡화로 이해될 수 있다.
[P. 284-285] 위너는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정보란 우리가 외부 세계에 적응하면서 그 외부 세계와 교환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과정은 우리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며, 우리가 그 환경 안에서 효과적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이다.
과정의 정치
[P. 288] 푸코는 이렇게 적었다.
정부란 배의 선원이든 가족의 일원이든, 화시의 직원이든 가정의 아이들이든 한지역의 주민이든 간에 모든 사람의 행동을 지도하고 안내하려는 모든 노력을 통칭한다,
네트워크 통치
[P. 291-292] EU는 우리가 지역적인 단계에서 글로벌 무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실험적인 통치 체제다. EU는 영토 내부의 재산 관계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계속 변하는 인적 활동을 관리한다. EU 안에서는 전통적인 정부와 대조되는 ‘다중심polycentric’ 통치에 관한 이야기도 유행한다. 전통적인 정부는 영토 지배를 기본으로 한다. 반면 다중심 통치 체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을뿐 아니라 정부의 기본 임무를 뛰어넘는 기능을 한다.
[P. 297] 그렇다면 EU는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EU는 무대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며 쇼를 감독하는 교섭 정부”라고 말했다. 그다면 EU는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EU가 통일된 여군, 국기, 본부(수도)emd 국가의 외형적 상징들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특징은 불확정성이다.
[P. 298] EU는 영토에 국한되는 전통적인 민족국가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다양한 소스에서 나오는 영향력의 흐름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더 역동적이고 연결성이 높은 동시에 더욱 분화되고 유동적인 환경이다.
11. 시민사회에 대한 구애
[P. 303] 민족국가 시대의 정치는 시장과 정부라는 두 개의 중심 축을 따라 움직인다. 그와 대조적으로 EU의 정치는 상거래, 정부, 시민사회라는 세 개의 축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잊혀진 부문
[P. 306] 그러나 역사 전체를 볼 때 인간의 현실 경험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며, 그 이야기가 모든 진화적 변화를 위한 기본적인 문화 DNA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요점은 문화란 과거나 현재나 시장과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과 정부가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과 정부는 부차적인 존재다.
[P. 306] 시민사회 단체를 ‘비영리단체’ 나 ‘ㅂ;정부기구(NGO)'로 분류하는 것은 그 중요성을 격하하는 것이며 심지어 시장이나 정부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신세대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시민사회기구’(CSO:civil society organization)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P. 309] 시민사회의 모토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파트너
[P. 309] EU는 CSO를 공공정책 네트워크에서 온전한 자격을 갖춘 파트너로 가장 먼저 인정한 통치체제다. EU는 시민사회를 통치체제의 ‘제3의 요소’로 인정했다. “국가와 시자으 그리고 시민들 사이의 중재자”로 간주할 것이다.
보편적 인권과 지역 문화 정체성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P. 311]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정치적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 과정에서 시민사회 부문의 참여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에는 넓게 분류해서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는 종교, 교육, 예술을 촉진하고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오락, 스포츠, 놀이를 조성하는 조직들이다.
[P. 311] 둘째는 목표가 훨씬 정치적이며 활동도 대부분 국경을 초월하며 보편적인 관심사를 다루는 권익 단체들이다. 셋째는 지역사회의 문화와 민족 소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로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관을 보존하고 생존과 성장을 위해 국내 및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12. 이민 딜레마
[P. 319] 유럽은 문화 다양성의 만화경(萬華鏡)이다. EU 주민들은 100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와 방언을 합해 여든일곱 가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유럽은 세계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다양한 지역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계급 정치에서 문화 정치로 전환
[P. 322] 이처럼 이민자들은 많은 차별을 겪는다. 그런 차별은 빈곤과 소외를 낳고, 사회적 불안을 부추겨 끊기 힘든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구세계’ 유럽의 인구 문제
[P. 326] 2050년이 되면 고령자 인구는 35퍼센트로 늘어날 것이다, 어린이 한명당 고령자가 2.4명이 될 것이고, 60세이상이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전망이다. 그 결과 유럽인들 나이의 중값은 현재의 37.7세에서 2050년 52.3세가 될 것이다, 반면 2050년 미국인의 아니 중앙값은 35.4세 정도까지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P. 327] 문제의 핵심은 유럽의 매우 낮은 출산율이다. 유럽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출산율이 낮다.
[P. 329] 유러피언 드림의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민 문제가 될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말로 부르짖기는 쉽지만 외부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자신들의 공간과 부를 나눠 갖기는 쉽지 않다.
[P. 331] 꿈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은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 했다. 그들의 희망은 후손들이었기에 그들은 출산을 신성시했다. 자녀를 갖는 것은 미레에 대한 믿음의 리트머스 테스트인 셈이다
[P. 332] 유러피언 드림이 계속이어지고 성취도려면 유럽인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 두가지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출산률을 늘리고 이민자를 수용하는 문제다.
이질적인 문화와 다양성의 존중
[P. 332] ‘과거를 털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이민 역학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이민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문화에 동화되려는 의지가 약하다. 대다수는 모국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다.
다중 공간과 심원한 시간에서 살아가는 법
[P. 342] 문화 집단은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연관되어 있고, 그에 따라 지리적 위치에 구속받지 않는다.
[P. 343-344] 영토를 초월하는 정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서로 경쟁하는 세력들을 공통의 목표 의식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13. 다양성 속의 조화
[P. 345] 유러피언 드림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며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인다.
[P. 345] 문제는 과연 어떤 새로운 유대 고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해묵은 관념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유러피언 드림을 실현 가능한 보편적인 꿈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영토를 기초로 한 의무와 재산권에서 탈피해 세계 전체의 집단 참여에 기초한 의무와 보편적인 인권에 애착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이성의 시대에서 공감의 시대로
[P. 350] 중세에 기독교적 영구 구원의 꿈을 활성화시킨 사회적 접착제는 신앙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물질적 진보를 위해 누구나 추구한 것이 이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는 공통된 취약성을 보호하고 세계화 의식을 갖기 위한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P. 350] 공감한다는 것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경험을 깊이 나누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공감은 언어처럼 생물학적으로 저절로 얻어질 수 있지만.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사 소통의 궁극적 표현이다.
[P. 350]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더 넓고 포괄적인 영역으로 공감을 확대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첫 단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공감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요인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주로 생물학적인 요인에 의해 이끌린다. 그러나 그 다음의 모든 단계에서는 인내심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공감은 우리가 특정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을 경험한 경우 그런 수용성이 가장 높다.
[P. 350] 삶의 여정은 주로 패배와 실패, 그리고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 경험한 고통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곤경을 이해 할 수 있고 그들을 위로 하며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P. 351] 공감은 새로운 사회적 접착체이며, 보편적 인권은 세계화 의식을 증진하는 새로운 행동 규범이다.
[P. 351] 신앙, 이성, 공감은 전부 성숙한 인간 의식에 필수적인 요소다. 각각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P. 352] 그렇다면 글로벌 시대의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신앙, 이성, 공감, 이 세 가지를 상호 보완적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편적 인권의 실천
[P. 361] 만약 모든 개인과 그룹이 독특한 정체성과 상호 충돌하는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면, 인정받고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이나 그룹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다시 말해 연약성과 취약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투쟁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세계관이 다르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네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가능하다. 어쩌면 “남이 네게 하기를 원치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공감의 정치
[P. 362] 공감은 타고난 선천적인 성향일 뿐 아니라 학습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후천적인 성향이기도 하다. 공감을 하려면 늘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 체제에 대한 다단계 네트워크 접근법이 중요한 것이다.
[P. 363] 보편적 인권이란 여성이든, 소수민족이든, 다른 문화이든, 어린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든, 모든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선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 363]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자신의 패권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14.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
사형 제도
[P. 366] 사형 제도보다 유럽인들을 더 긴밀히 결속시키는 이슈는 없다. 유럽인들이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19세기 미국의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이 노예 제도에 반대했던 것과 같은 철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P. 367] 사형제도 폐지는 EU 가입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왜 그런 조건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
[P. 370] 그런데도 독실한 기독교인인 미국인들은 용서에 인색하다. 범죄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는 본질상 보복적이다. 여러 여론 조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사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다.
새로운 형태의 군
[P. 391] 유럽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은 두 개의 축에 의존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의 국가 영토 방위에서 벗어나 초국가적 평화 유지와 인도적 개입으로 군사 전략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국가들 간의 더욱 긴밀한 협력을 위해 경제 원조를 외교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15. 제2의 계몽주의
입증 책임
[P. 421] EU는 이미 ‘예방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리스크와 취약성 공유에 대한 유럽인들의 새로운 시각과 개인의 무한한 기회에 기초하는 미국인들의 기존 시각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P. 422] 과학과 기술에 대한 EU의 규제 정책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예방 원칙’이다. 유럽의 정치 엘리트 대다수와 많은 대중들이 그 원칙을 선호한다, 반면 그 원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미국의 정치인들과 대중은 유럽보다 훨씬 적다.
예방 원칙
[P. 424] 예방 원칙은 피해가 가해진 뒤뿐만 아니라, 과학적 확실성이 과거의 정상적인 기준보다 낮은 경우에도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P. 427] 예방 원칙은 사회가 자연과의 관계를 보는 방식, 과학적 탐구와 기술 혁신을 보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P. 430] 예방원칙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개별적인 사건을 뛰어넘어 그 사람들이 전개되는 전체 맥락을 보게한다.
시스템적 사고방식
[P. 432] 20세기 들어 과학은 기본적인 가정 가운데 많은 것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가정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는 옛 개념은 사라지고, 그 대신 각 요소를 알려면 먼저 그 요소와 전체와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은 ‘시스템 이론’이라고 불렀다.
[P. 434] 오늘날 과학자들은 생물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구 표면과 대기권을 포함해, 어떤 형태의 생명체라도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았는 복합적인 생명유지 시스템이 생물권이다.
[P. 435] 지구화학적 물질과 생명체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피드백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작용함으로써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유지하고 생명체를 보호한다.
[P. 436] EU가 ‘예방 원칙’을 도입한 것은 상업적 개발을 포기한다거나 특정 경제 활동을 중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체를 유지하는 생물권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제1의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는 증거다. 인간이 거주하고 생계를 유지해 가는 생물권의 생명 시스템에 손상을 주는 경제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수익성이 높고 혜택이 많다고 하더라도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P. 437] 신과학 운동은 상호 관계와 피드백을 중시한다. 따라서 그것은 상업 분야와 통치 체제에 스며들기 시작한 네트워크 사고방식과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생태학과 자체 조절되는 생물권의 개념은 전부 상호 관계와 네트워크를 전제로 한다.
[P. 437] 프리초프 카프라는 이렇게 지적한다.
생태학에서 네트워크 개념이 점차 자리 잡으면서, 시스템적 사고자들은 생태계를 유기체들의 네트워크로 인식하듯이 유기체를 세포와 조직, 기관들의 네트워크로 간주함으로써 모든 시스템 차원에서 네트워크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P. 438] 지금 우리 세계에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그 신과학 운동을 ‘제2의 계몽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과학의 원칙과 가정은 네트워크적 사고방식과 더 잘 어울린다. 기존 과학의 특성이 분리, 활용, 해체, 단순화였다면 신과학의 특성은 참여, 보충, 통합,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동물의 권리
[P. 445] 야생동물들이 서식지와 개체수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연구용 동물과 가축들은 어쩌면 자구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더욱 잔혹한 대우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P. 449] 오래동안 과학자들은 죽은 자에 대해 애도하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절대적으로 구문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믿었다, 동물들은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개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동물들도 슬픔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들은 가죽의 일원이 죽으면 며칠동안 그 옆에 조용히 서 있으면서 가끔씩 긴 코로 시체를 만진다.
[P. 451] 지속 가능한 개발과 세계 환경 보호에 대한 잡념을 감안하면 EU에서 동물의 곤경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생물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지구상에 인간과 함께 사는 모든 존재를 돌본다는 의미다,
[P. 452] 동물에서 인간으로 질병이 퍼지는 문제를 보면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진다. EU의 새로운 동물 보호 법령 대부분은 동물이 우리 손에 의해 건강상의 문제에 시달린다면 그 효과가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동물과 인간 사이의 고결한 사이클을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P. 454] 동물의 권리를 고려하는 데까지 인간의 공감을 확대하는 것은 통치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다. 모든 존재가 생물권 내부 깊숙이 분리될 수 없는 생명체의 조직망에 연결되어 있다면,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진정한 세계화 의식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전체론적인 과학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조직망을 인식하고 보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태계의 재결합
[P. 457] 자연 생태계가 통합된 일체로서 관리될 필요가 있으며, 임의적으로 정한 정치적 경계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시스템적 사고방식과 분석법이 과학 분야와 공공정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P. 459] 생태계의 재결합은 혁명적인 발상이다. 특히 자연의 경계를 국가 간의 경계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울러 초국경 평화 공원은 근현대의 또 다른 기본적인 관념, 즉 사유 재산의 신성함도 거부한다. 평화 공원이 들어서면 ‘내 것 vs. 네 것’의 개념은 ‘우리의 것’으로 교체된다. 또 자연에 대한 소유권보다 접근권이 더 중요해진다.
[P. 460] 과연 EU가 각종 규제에 도입한 신과학 운동 개념을 구식 과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시장의 현실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신과학 시대로의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업계 자체가 연구 및 개발에 예방 윈칙과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처음부터 생태계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신기술과 제품,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16. 유러피언 드림의 보편화
[P. 461] 유럽은 새로운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 품었던 이상적 세계관을 상징하던 표현]가 되었다, EU라는 초 국가적 통치체제에 대한 이 원대한 새로운 실험을 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P. 461]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세대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지속 가능성, 심오한 놀이,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언 드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P. 461] 유럽 ‘합중국’이 얼마나 잘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이 효력을 잃고 정체성이 다층화하고 규모 면에서 세계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앞으로 사반세기 후에는 어떤 국가도 독립적으로 독행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유럽은 세계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세계의 현실을 가장 먼저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U 모델의 수출
[P. 469] 아시아인들의 사고방식은 상호 관계, 포괄성, 합의, 조화, 맥락적 사고를 강조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네트워크 세계와 글로벌 사회에 안성맞춤인 듯하다.
[P. 469-470]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물론 이 견해는 서양인인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아시아적 사고방식은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개인적 책임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적 방식은 반드시 개인의 번영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전체를 위해 완전히 희생당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전체의 복지를 위해 개인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 억제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의 생각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다윈의 적자생존과 생존 경쟁 개념에 집착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아시아인들의 생각도 ‘집단 사고’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글로벌 세계에서는 아시아적 사고방식이나 미국적 사고방식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P. 470] 나 개인적으로는 유럽이 미국의 극단적 개인화와 아시아의 극단적 집단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그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유럽인들은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책임 둘 다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다. 유럽의 비전이 미국과 아시아의 세계관 가운데서 최상의 자질들을 융합할 수 있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서양과 동양 전부가 동경할 수 있는 이상적인 꿈이 될 것이다.
‘직접적인’ 나쁜 행동과 보편적 윤리
[P. 474] ‘간접적인 나쁜 행위’가 ‘직접적인 나쁜 행위’와 똑같은 도덕적 열정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인간 의식의 세 번째 단계
[P. 479] 인류는 자신의 기억 속 깊은 곳에 깊이 남아 있는 ‘바다 같은 일체감’을 되찾고 죽음을 속이기 위해 거대한 피라미드, 대성당, 장대한 마천루를 만들어 냈다.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우리의 집착이 그토록 강한 것은 우리가 유아 시절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경험한 풍요로움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P. 480] 죽음 본능은 현대에 들어와서 만연하게 되었다, 우리는 점점 더 자연과 분리되어 왔으며, 자연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연을 조각 조각으로 분해한 다음 재산의 형태로 활용해 왔다.
[P. 481] 바필드는 인간 의식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눈다. 그는 인간이 역사 대부분에 걸쳐 수렵 채취로 살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P. 481] 수렵 채취 시대의 인간들도 자아의식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 의식이 별로 발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통합된 반식으로 살았다.
[P. 481] 그러다가 농경 생활이 정착되면서 인간 의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야생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자연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농업의 도래와 함께 인간의 의식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도 조금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자아의식도 서서히 싹 텃다.
[P. 481-482] 또 자아의식과 함께 개인의 자유의지, 즉 자신의 주변 세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도 나타났다. 그러나 자아의식과 개인의 정체성이 등장함으로써 자연 세계와의 친밀한 교류는 더욱 멀어져 갔다.
[P. 482] 인간 의식의 제3단계는 인류의 연계성을 ‘지상권geosphere'에서 ’생물권biosphere'으로 전환시킨다.
[P. 483] 그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생명 본능과 죽음 본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해야 한다. 20세기 초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하나의 단서를 던져 준다. 그는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찬양하는 사람은 삶을 확대할 수 있다.”고 적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죽음과 화해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죽음을 막아보려는 의도로 자연(인간성 포함)을 지배하고 제어하고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다시 말해 죽음 본능을 떨쳐 버리겠다고 자의식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능하다. 죽음 본능을 발휘하는 대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재결합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아에서 다른 사람으로 관계를 확대하고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다양한 관계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인격체
[P. 484] 개인의 정체성이 수많은 ‘하부 정체성sub-identity'과 ’거대 정체성meta-identity'으로 분열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생물권과 재통합하는 것이 인간이 개인으로서 의지할 곳을 잃지 않고 ‘비존재nonbeing'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P. 488-489]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죽음 본능에 갇혀 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들은 과도하게 소비하며, 모든 욕구를 채우려 하고, 지구의 자원을 낭비한다. 미국인들은 무제하적 경제 성장을 중시하며 강한자에게 혜택을 주고 약한자에게 불리함을 준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자신이 원하고 또 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일으켰다.
[P. 489] 오늘날 미국인들은 인구로는 세계의 5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세계에너지의 3분의 1을 소비하며 지구의 다른 자원도 엄청나게 사용한다,
[P. 490] 미국에는 다른 면도 있다. 미국은 새로 오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삶의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불우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역경을 딛고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또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책임을 진다. 미국인들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미덕이 개인주의의 바로 그런 다른 면이다. 그런 책임 의식이 죽음 본능을 떨치고 나와 생명 본능을 감싸 안는다면 미국은 또다시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P. 491] 기독교 역사 대부분에서 ‘다스림’의 개념은 자연 세계를 무자비하게 이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신세대 신학자들과 신자들은 ‘다스림’의 의미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P. 492] ‘다스림’의 의미가 ‘보호 및 관리’를 의미하는 쪽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관리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창조물인 자연을 이용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P. 492]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유 의지를 부여받는다. 개인은 자유 의지를 활용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을 선택하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의 동산을 보호하고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P. 493]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인간 의식의 제3단계를 향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도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약속의 땅, 즉 생명 본능과 지구의 일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한 청사진을 만들었다.
[P. 494] 유럽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 일한다. 물론 그들의 삶에서도 일은 필수적이다.
[P. 494] 유럽인들은 직업 경력보다 심오한 놀이,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결집을 중시한다.
[P. 495] 그러나 나는 유러피언 드림이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
[P. 495] 마지막으로 개인적 책임 의식이라는 문제가 있다. 개인적인 책임의식은 미국의 강점이지만 유럽에는 약점이다. 물론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꿈을 법제화할 수는 있다. 또 법령을 발표하고, 국제 조약에 서명하고, 실무 그룹을 구성하고 기준을 만들 수는 있다.
[P. 495] 새로운 여정에 필히 수반되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개인적 책임의식이 강하지 않다면, 그런 법령과 행정적 조치나 지적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유러피언 드림은 좌초하고 말 것이다.
[P. 495-496] 나는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일하며 거의 2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뒤 지금 내가 갖는 가장 큰 우려는 유럽인들의 희망이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지탱하기에 충분한지 여부다. 꿈에는 낙관론이 필요하다. 자신의 희망이 성취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희망과 낙관론에 넘치지만 유럽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EU라는 새로운 연합체에 대해서는 ‘신중한’ 낙관론을 편다.
[P. 496] 유럽인들의 마음에는 비관주의가 깊이 뿌리박고 있다. 유럽인이 겪은 수많은 정치 및 사회 실험의 실패와 오랜 역사에 걸친 유혈 참상을 감안하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P. 496] 유럽인들이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미국인들이 순진한 낙관주의를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매혹적으로 보이는 꿈이라도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P. 496-497]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모두 내 말을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양쪽 다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인들은 인류와 지구를 위해 집단 책임 의식을 좀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한다. 유럽인들은 개인의 행위와 관련해 개인적 책임감을 좀더 가져야 한다. 미국인들은 좀더 신중하고 조절된 전망을 가져야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좀더 희망적이고 낙관적이 되어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양쪽 꿈의 정수를 공유하면 우리는 서로 손 잡고 인간 의식의 제3단계로 활기 차게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P. 497] 우리는 지금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세계의 많은 부분이 어둠에 덮여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있다. 유러피언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오래된 아메리칸 드림과 새로 부상하는 유러피언 드림에 관한 내용이다,
종합적인 사고와 새로운 시각으로 많은 책을 출판한 제러미 리프킨이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이 “유러피언 드림”이다.
이 책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에 관해 비교 분석한 것으로, 리프킨은 아메리칸 드림이 더 이상 그로벌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인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매료되어 왔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나는 사회적 집단 책임과 세계화 의식을 강조하는 유러피언 드림 쪽에 끌리고 있다. 나는 양쪽 꿈의 최선을 통합하고 싶은 열망에서 이 책을 통해 둘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라고 먼저 자신이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먼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부의 축적과 자율성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고, 반대로 공동체 의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덕목이 어떻게 유럽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일하기 위해 사는 미국인'과 '살기 위해 일하는 유럽인'의 삶을 비교 분석하고, 세계 최대 단일 경제권인 EU를 살펴본다.
그리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본 아메리칸 드림과 자연을 생명 공동체로 파악하는 유러피언 드림과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 종교, 인종의 차이 등을 비교분석한다. 20여 년을 미국과 유럽 양 대륙에서 일하며 보냈다는 리프킨은 이 책에서 수많은 통계와 논거를 통해 유러피언 드림이 비단 유럽인들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환경에 맞춰 변하고 있는 세계적인 패러다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구세계에서 얻은 새로운 교훈”이라는 제목의 파트에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 퇴색되어 가는 근거와 증거를 통계치들을 인용하며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 형성”이라는 두 번째 파트에서는 모더니티, 개인주의 사유재산개념, 민족국가의 확립이라는 장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근거와 유러피언 드림의 필연적 발생 이유를 피력하고 있다. 마지막 파트인 “다가오는 그로벌시대” 에서는 신개념들을 많이 등장시키며 그것들과 유러피언 드림과의 연관성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이론이나 산일구조, 사이버네틱스나, 프리초프 카프라의 그 유명한 신과학운동,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 등의 태동과 자연스런 유러피언드림과의 연결가능성을 피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제3의 조류에 부합하는 것들이었다. 일부는 동의가 되었고 일부는 전혀 수긍할 수 없었다.
출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라고 이 책을 광고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대통령이 좋아했을만한 책이라고 생각되었다. 유러피언드림은 아직 미국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새로운 관점이고 이런 관점은 보수에 반발하는 진보성향의 정치가, 과학자, 경제인들이 인용하고 싶어할 문장들과 통계들로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성경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유럽인을 찬양하고 미국 기독교도들을 보복주의자로 평가하고 있는 점은 안티기독교도들도 무척 좋아할 이론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동의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도 않고 밝히고 싶지도 않지만, 모든 주장에는 비판자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지막에 “유러피언 드림이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말로 비평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게다가 책의 말미쯤에 그는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일하며 거의 2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말하며 “미국인들은 인류와 지구를 위해 집단 책임 의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한다. 유럽인들은 개인의 행위와 관련해 개인적 책임감을 좀 더 가져야 한다. 미국인들은 좀더 신중하고 조절된 전망을 가져야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좀더 희망적이고 낙관적이 되어야 한다.” 고 양측의 모두 비판한다. 그리고는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양쪽 꿈의 정수를 공유하면 우리는 서로 손 잡고 인간 의식의 제3단계로 활기차게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양측의 종합된 합의가 있을 때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문장으로 그는 “ 우리는 지금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세계의 많은 부분이 어둠에 덮여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있다. 유러피언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 ” 라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이 책을 쓴 당위성을 종합하여 결론짓고 있다. 대단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나는 글을 읽으며 내내 그의 의견에는 다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글을 쓰는 방식과 방대한 자료에는 놀라고 또 놀랐었다. 그리고 그의 결론에서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낀다. 전 세계 2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될 수 있는 비결이 보이는 듯하다. 나와 같은 단순한 사람은 철저히 배워야 할 능력인 듯하다.

미국이 최초 기반이었기에 버리지 못하지만
제3의 문화(물결과는 조금 다른의미) 조류에 동의는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완전 버리지 못하겠다 뭐 그런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모르겠어요
암튼 자크 아탈리를 읽어 보니 그는 제레미 보다 확실히 주장이 세더구만요
길게 쓰지도 않고
[인간적인 길]은 안읽어 봤는데 신유토피아라고 확신한 세부 사항들이 궁금해요
자크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를 봤는데 자신이 주장하는 7가지 원칙에 대해 개인, 기업, 국가, 인류가 다 해당된다고 점층법으로 확고히 못을 박는 사람이더군요
그러하니 다른 책에서도 그러했을 가능성이 있겠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저는 자크 아탈리가 땡기지만
책이 먹힐려면 제레미를 배워야 할 것 같아여
제가 대가가 되면 모르지만.. 그러기는 어려울듯하니
어쩡쩡하게 중용으로 포장해주는 비겁함이 제게도 필요할듯 하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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